정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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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며 제40대 국무총리, 제23대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냈고 제22대 KBO 총재를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이름이 비슷한 정치인으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정운'''천'''이 있어서 가끔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다. 오죽했으면 2008년 당시에 이런 일도 있었다.
2. 생애
2.1. 학창시절
1947년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출생했다. 어릴 때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한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석사,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이론 거시경제학과 화폐금융론, 국제금융론.
2.2. 교수생활
잠시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조교수 생활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강의해 왔다.[2] 2002년에는 서울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경제학적으론 스승인 조순과 마찬가지로 케인즈주의자로 분류된다.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는 신자유주의와는 상반되는 성향. 신문기고를 통해 자주 재벌개혁을 부르짖었다. 덕분에 "민주화를 위한 교수 협의회"(민교협)에도 참여하여 '진보 성향을 가졌다'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실제로 그와 상관된 일은 조선일보 신문기고 이외에는 한 적이 별로 없긴 했다. 그러다 이후 MB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내며[3] 진보 진영에선 배신자 소리도 들었다. 실제 본인의 정치 성향은 본인의 학문적 성향과는 대조적으로 중도~중도 우파라는 평가가 많다.
최재성 의원에 따르면 KCI급 논문은 9편, SSCI급 논문은 1편으로 일각에서 주장한 것에 비하면 연구 성과가 꽤 있는 편이다.
그러나 본인 교과서 문제풀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학생들 질문에 설명을 버벅였다는 후기도 꽤 있다.(...) 조교나 젊은 교수들에게 대부분 내용 집필을 시켰더라도 미국 아이비리그 경제학 박사 출신 교수가 학부 교과서 수준도 설명 못한다는 건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치 관여한다고 교수 시절부터 연구, 강의에는 손을 놓았다는 증거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휴강이 잦고 불성실해 등록금 아까운 강의니 교과서 보고 독학하는 게 낫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런데 제자이자 한림법학원 강사 황종휴에 따르면 학부시절 수업에서는 처음 10-15분간은 거시경제와 관련된 시사적인 이야기를 한 뒤에 교과서 내용은 본인이 알려주지 않고 학생 1명을 시켜 해당 진도의 내용을 설명하게 한 뒤에 본인이 그 설명에 대해 피드백하는 발표식 수업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휴강이 잦고 불성실하다는 이야기는 없었는데 직계 스승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안 그랬을 수도 있으며 위의 악평은 2000년대 후반에 국무총리 지명 직전에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4] 어찌보면 학습 효과를 올리는데 긍정적일 수는 있으나 한편으로 불성실한 수업에서도 발표수업은 교수의 편함을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으니 판단은 각자가 알아서 하기를 바란다.
김대중 정부 출범당시 한국은행 총재로 물망에 오른바 있었으나 본인이 고사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노무현 정부 시절에 서울대학교 총장(제23대. 2002년 7월~2006년 7월)을 역임했으며, 반엘리트주의 성향을 지닌 노무현 정부와 정책상에서 부딪쳐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었다. 민교협 소속으로 당선되어 진보세력의 기대를 모았으나, 딱히 내세울 업적은 별로 없었다. 지역균형선발제도 도입으로 스누라이프에서 끊이지 않는 논쟁을 일으킨 것 정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 업적. 서울대 미대 창립자의 친일 문제를 건드려 해임된 김민수 교수가 복직하는 것을 막았다가 김 교수가 해임무효소송에서 승소하자 복직시켰다.
2.3. 정치 행보 : 국무총리 및 동반성장위원장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여권 후보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불출마를 선언했고,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한승수 후임으로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그의 국무총리 취임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치적 딜이라는 분석이 있었다.[5] 그 딜의 내용은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교수를 총리로 임명해 주면 충청도 출신의 정 총리가 앞장서서 행정기관의 세종특별자치시 이전을 반대해 준다는 것이다.[6]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런저런 부적격 사유로 인해 양파선생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고, 용산참사 등 이런저런 일을 정리하느라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딜의 핵심인 세종시 계획 백지화가 박근혜와 친박의 강경한 반대로 무산되면서 대통령으로서는 이용가치가 사라졌기에 국무총리에서 물러났다는 평이 있으나, 그럼에도 이 시기에 이명박, 이재오와 상당히 친해지게 된다. 국무총리 재임 시절 천안함 피격사건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김영삼이 이명박을 발탁한 인물이기도 하고, 김영삼과 이명박이 가까웠던 만큼 국무총리 재임 시절에는 김영삼과도 상당히 교류가 있었던 편이다.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생활을 끝내고 현재는 자신이 설립한 동반성장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명예교수로 강의하고 있다.[7]
그런데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 때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다.# 요는 자신이 주장하는 동반성장을 실제 할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 문재인이기에 그를 지지한다는 것. 이후 자신의 동의 없이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지지 발표를 했다는 조선일보발 기사가 뜨기도 했으나, 없어진걸 보면 진실은 저너머에.. 사실 문재인 지지 여부를 떠나 정운찬은 박근혜 지지는 절대 안할 인물이긴 했는데, 왜냐하면 정운찬 본인이 박근혜와 친박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였던 인연이 있어서인지 이명박 대통령 및 친이계 좌장 이재오와는 지금까지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8] 또한 늘푸른한국당 창당 준비 때부터 이재오, 최병국과 행적을 함께하기도 했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 2017년 들어 안철수를 만나며 손학규와 함께 국민의당에 들어갈 가능성 또한 점쳐지고 있으나, 국민의당의 경우 안철수, 천정배와 경선을 거쳐야 하는 데다가, 정운찬 본인이 박지원보다 이명박, 이재오 간 친분이 더 깊으며,[9] 국민의당 특성상 호남 이외 지역에서는 지지도가 낮다는 문제가 있다. 정운찬이 안철수, 손학규와도 접선 빈도가 늘긴 했으나, 다시 국민의당과 박지원이 언론 플레이를 해 불쾌하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늘푸른한국당 및 국민의당, 바른정당 주로 이 3곳과 교류를 계속 하고 있는 만큼 어디로 출마할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 듯 하다.
그 후로 유승민, 김종인과 경제 토론회를 여는 등 바른정당과 서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었으나.. 3월 15일 바른정당에도 입당하기 않기로 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역대급 간잽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정운찬 前총리, 바른정당 입당 안한다(종합). 이후 본인은 바른정당 측에서 내세운 경선 일정에 대한 의견 불일치로 입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정운찬 "통합정부 제안, 자유한국당은 제외…문재인도 와라".
그리고 4월 14일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정운찬의 정치적 스탠스가 친이계와 가장 가까운데 늘푸른한국당, 바른정당이 모두 현재 세가 약한데다가 역대급 사건 및 제3지대의 축소로 인해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하고 대선 출마를 포기한 듯 하다.[10]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도 꽤나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어 거취가 주목되고 있지만,[11] 본인 측 입장은 어떤 대선 주자를 도울지 고민중인 듯 하다. 현재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양 쪽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상태. 본인은 직접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나 SNS를 통해 수많은 루머가 양산되고 있다. 그만큼 대선 결과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상황.
2017년 6월 6일 현충일 본인을 포함한 사회 각계인사 498명이 성명을 발표하였고, 문재인 정부에서 일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후보자의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을 촉구하였다.
3. KBO 총재
2018년 1월 3일 정식으로 취임식을 갖고 총재 자리에 공식 취임했다.
취임 후 넥센 히어로즈 구단의 대표이사라는 작자가 소송에서 지고 구속당하는 사태가 터지자 바로 직무정지 처분을 내리고, 3월 7일에는 공식적으로 ‘서울 히어로즈 구단 안정화에 대한 KBO의 입장’[12] 을 발표했다. KBO가 히어로즈 측에 경영 정상화와 시즌 운영 계획에 대한 답변서 제출을 요구했으며 넥센 히어로즈 박준상 대표과도 만났다고 한다. 이후 히어로즈 측으로부터 답변서를 얻어냈다고 한다.기사1 기사2 또한 이른바 '파이어세일'을 막기 위해 트레이드 승인도 엄격하게 적용한다고 선포했다.#[13]
그리고 자신의 목표인 '클린 베이스볼'을 위해 9년 만에 외부 감사를 받기로 했다. 늦어도 5월 중순에는 감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이렇게 초반에는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이후 KBO에 쌓여있는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리그 수준이 하락하면서 야구팬들에게 많이 까이고 있다. 적어도 전임 구본능 총재보다는 못하다는 평가가 대다수. 리그의 표준화를 망치고 있으며 관중 감소의 주 원인으로 완전히 낙인으로 찍혔다.관중 감소 기사
2020년 10월 13일 KBO 이사회에서 12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총재직 연임의사가 없음을 밝힘에 따라 임기 만료 후 물러날 예정이다.
3.1. 총재 취임 이전
야구광이자 두산 베어스의 팬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한국프로야구/2013년 포스트시즌의 경기에 대해 평가 기사정운찬의 가을야구 엿보기를 쓰기도 했다. 기자 이름이 정운찬인 줄 알고 눌렀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경기고등학교 야구부에서 활동한 적도 있으며 이후 미국 유학을 가서도 메이저리그를 보느라 졸업이 2년 미뤄졌을 정도(...) 스스로 야구바보라면서 야구에 대한 찬양을 가득 담은 "야구예찬"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또한 야구 관련 다큐나 인터뷰에도 종종 얼굴을 비추곤 하는데, 심지어 아무개 스포츠 야구기자에게 야구광이니까 야구 구단도 만들 생각 없냐는 질문까지 받았다. 2008년엔 라디오 중계에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했으며, 2016년에는 前 두산 베어스 김현수 선수의 결혼식 주례를 직접 서 주기도 했다.
KBO 총재에 뜻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내가 하고 싶다고 해도 시켜주지 않을 것 같다. KBO 총재 자리는 정치적 역량이 있어야 하는데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 야구에 대한 사랑만으로는 할 수 없는 자리."라고 답했다. 하지만 2017년 11월 29일 KBO 22대 총재에 만장일치로 추천되었다.
그리고 2017년 12월 11일 정식으로 의결되어 2018년부터 KBO 총재로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이후 KBO의 새 사무총장으로 장윤호를 뽑았다.[14]
이런 점 때문인지 야빠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물론 나무위키의 야빠 게시판에 누군가가 정운찬을 야구광 자랑인양 서술하자 오래안가, 731부대가 독립군 이딴 헛소리나 하는 무식한 역사관의 서울대 총장이 야빠라고 그리도 좋습니까? 되려, 야빠로서 망신입니다라는 비아냥으로 반론하며 이 서술을 삭제, 수정하듯이 야빠들에게도 이딴게 야구광? 이라며 불쾌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총재 취임 이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진행한 OX 퀴즈보면 당시즌 홈런왕이나 가장 우승이 오래된 팀도 모르고 심지어는 '''양대리그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에 진짜 야구를 좋아하는 건지 컨셉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게다가 밑에 후술하는 대로 KBO 총재로서 온갖 병폐를 보여주며 야구팬들에게도 긍정적인 부분이 많이 사라졌다.
3.2. 취임 과제
취임 첫해에 들어기지마자 과제가 많았다.
우선 시즌 첫해라 그런지, 정치인 출신이라 그런지 클린 베이스볼 추구를 한다고 했지만 KBO 홈페이지의 자유 게시판을 사실상 폐쇄했고 사건사고는 오히러 더 늘어났다.
또한 야구의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지 시즌을 시작하자마자 심판과 선수들간의 충돌이 벌어졌고, 일정상 날씨 변화(주로 우천 취소 여부)에 대한 대책 강구, 비디오 판독을 각 구장의 전광판으로 보여주기로 결정함에 따라 방송사와 KBO의 협의가 있어야 했지만 해당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9개 구장마다 전부 화면을 비추어야 정상인데 대부분 다 틀지 않는다고 하며, 이러한 전광판 변화가 전혀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한편으로는 2019 시즌부터 올스타 휴식기를 일주일로 늘렸는데 10개 구단 현장은 대 환영이라고 총평을 내놓았다.
또한 2018시즌 2연전 일정의 폭염이 계속 이어지자 선수들의 체력방전에 대비한 휴식 문제, 그리고 제일 큰 과제는 이번 2018 아시안게임의 강제 2주 휴식 후 남은 정규시즌 일정 문제, 더불어 향후 국제대회의 선수 선별 과정에도 머리를 맞대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3.3. 총재 시절 논란
상기한 과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기는 커녕 오히려 '''리그 수준을 바닥으로 쳐박아버렸다.'''
3.3.1. 총평
kbo역대 최악의 총재 중 한명.
잦은 국외 출장 논란에서도 서술했듯이, 미국식 GM을 보고 배우고 싶다고 운운하다가 해외 출장 등등 잡무 처리하는 데 바쁜 나머지 팬들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 일들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야구인들과 만나려고 하지도 않은 건 덤이다. KBO의 신문선이라는 소리도 있다.[15]
사실상 임기 첫 해를 2018 아시안게임에 올인한 셈이었으나, 올인은 결국 최악의 실패로 돌아갔고 졸지에 정규시즌이 뒷전이 되고 말았다. 이것도 모자라 선수 선발 과정에서 생긴 잡음과 별 의미도 없는 사과문, 국정감사 소환이라는 촌극까지 벌어지면서 여론과 팬들의 반응은 싸늘해져 버렸다. 이후 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지면서 관중은 감소해 버렸고 포스트시즌은 2018년 11월 12일 역대 최고로 늦게 마무리가 되었다. 심지어 국정감사에서는 선동열 감독을 보호한다던 말을 싹 뒤집고, 그 동안 야구계의 숙원 중 하나였던 전임 감독제에 반대했다는 폭탄 발언을 날리거나, 야구장에 가지 않고 TV로 경기를 보는 선 감독의 행보를 반대했다고 주장하는 등 쓸데없는 말만 반복하면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당연히 선동열 감독은 자진사퇴를 하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KBO 총재에게 야구인들이 대놓고 반감을 표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경기장 안에서는 조용조용히 넘어가고 있지만, 팬들에게는 이래저래 까야 제맛으로 전락했다. 오죽하면 야구 출신기자들과 비야구인 출신 대니얼 킴 해설위원은 유투브 DKTV 2018년 11월 14일 방송을 통해서 사퇴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멘트를 남겼다. DKTV
2019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지며 총관중수가 750만 미만에 그칠 것이라는 걸 KBO가 스스로 인정해버렸다. 10년만의 평균관중 1만명 선 붕괴 예상론도 나올 지경이다. 다만 서술했듯이 정운찬 본인은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지 않고 팬들의 의견에 침묵하고 있다. 재임기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국제대회의 경쟁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게 됨은 물론, 관중수 및 흥행의 하락 또한 가속도가 붙을 것이며 암흑기였던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2020년 코로나 사태로 미국에 수출하게 되었으나 미국 야구판에서 불은 강하게 붙었으나 개막 다음날부터 영상등 저작권 매체 제재로 해외에서도 생각보다 그리 강하게 이슈 메이킹이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16]
그리고 심판 판정 문제나 심판 및 선수단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등 팬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논란이 재임기간에 유독 많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2020년을 끝으로 총재직에서 물러난다는 기사가 나왔다. 역대 최악의 총재라는 평가만 남긴채 욕만 잔뜩 먹고 물러나게 되었다.
그래도 막판에는 허민 키움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에 대한 징계 의지를 보여주었고 실제로 상벌위원회는 엄중경고를 권고했지만 총재 직권으로 2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냈다. 반응은 징계 자체는 솜방망이라 불만이 많지만 총재는 잘했다는 게 중론.
4. 정치인으로서의 논란
4.1. 성희롱 가해자 옹호 논란
서울대 총장 시절, 국내 최초 성희롱 소송으로 알려진 서울대 신정휴 교수 사건과 관련하여 “재계약에서 탈락한 우 조교의 앙심에서 비롯돼 억울한 사람이 매장된 사건이었으며, 당시 우 조교를 지원한 여성운동이 신중하지 못했다” 라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
후술하겠지만 이후 KBO 총재 시절에도 성추행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4.2. 731 부대 발언 논란
2009년 대정부 질문 당시 이런 말을 하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의원: "마루타가 뭔지 아세요?"참고로 731 부대는 '''동양판 아우슈비츠'''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잔학한 생체 실험을 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전쟁범죄 부대 사례 중 하나다. 차라리 그런 부대를 모른다고 했으면 중간이라도 갔을 것을, '''항일 독립군'''이라는 표현을 해버리면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이후엔 '항일 독립군을 괴롭히던 부대'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중간에 말을 잘랐다... 라는 변명을 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없었고 흑역사 확정.정운찬 총리: "전쟁과 관련한 포로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박선영 의원: "그럼 731 부대는요?"
정운찬 총리: "저, 항일 독립군…인가요…
이후 하도 비꼼 아닌 비꼼을 당해서인지, 한번은 대정부질의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순간 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본인 입장에서도 흑역사긴 한듯.
4.3. 세계 7대 자연경관 사기 논란
요약하자면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이런 사기극에 "7대 자연 경관 선정 범국민 추진 '''위원장'''"까지 맡았다. 선정 이후 사기 논란이 일자 제주도가 얻은 경제효과는 천문학적이었다는 민망한 소리를 '''무려 서울대 총장 경력의 경제학 교수'''가 말했다. 거기에는 그랜드 캐년도 빠져 있었고, 일단은 블로그였다는 게 문제. 이래저래 망신을 당했다.
4.4. 이용삼 의원 빈소 방문 논란
4선의 이용삼 의원의 빈소에 방문 했는데 4선 의원인줄 모르고 "젊은 나이에 할 일이 많으신데 이렇게 애석하다, 초선의원으로 할 일 많으시고 전도가 창창하실텐데…" 라고 유가족에게 말 실수를 하는 바람에 유가족이 '4선 의원이라고' 정정을 해주는 헤프닝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정운찬의 말실수는 이어졌는데 "자제분들이 많이 어리실텐데 염려가 크겠다"고 위로하자 유가족들은 "고인은 처가족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총리가 "다 돌아가셨나요"라고 물었고 유가족들은 황당하다는 듯 "결혼을 하지 않으셔서 독신이시다, 독신으로 지금까지 사셨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정 총리는 "아, 그렇군요, 참 애석한 일"이라며 고인의 동생에게 "이제 남아계신 형님께서 돌아가신 동생을 대신해 많은 일을 하셔야겠다"고 다시 한번 실수를 했다. 이 의원의 동생은 "제가 동생"이라고 짧게 말했고 정 총리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이에 대해 김현 민주당 부대변인은 "최소한의 사실관계조차 모른 채 고인의 빈소를 찾았다니 기가 막히다, 유가족이 겪었을 당혹스러움이 어떠했을지 민망스럽기 그지없다"며 "정운찬 총리의 좌충우돌 행보를 언제까지 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논평했다.
5. 저서
5.1. 교과서
- 거시경제론 : 본인의 대표적인 저서이다. 이준구 미시경제학과 더불어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쓰이는 우리나라 학자가 지은 학부 중급용 교과서이자[18] 5급공채 및 국립외교원 고시생들이 많이 보는 책으로 오랫동안 자리잡았다.[19][20] 2020년 기준 12판까지 나왔다.
초판부터 5판까지는 케인즈학파 시각에 따라 일관적으로 쓰여졌으며 수식도 복잡하지 않고 간단한 수식을 넣었으며 설명도 꽤 자세하고 풍부해서 100% 이해와는 별개로 처음 공부하는 사람에게 어려운 책은 아니었다.[21]
그런데 6판이 나오는 2003년부터 본인의 제자인 김영식#s-5 교수와 공저로 작성되었다. 이 때 케인즈학파 내용과 새고전학파 내용이 섞이다보니[22] 내용흐름파악이 어려워졌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23] 게다가 넣어야할 내용이 많다보니 서술도 압축적으로 바뀌고 수식도 복잡해져 가독성이 떨어졌다. 당시 서문에서는 의도한 것이라고... 그 때문에 초보가 읽기 어렵다는 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한 특징으로 행간의 의미까지 읽으면 거시경제학의 실력이 는다는 평도 있다. 7판 이후로 두 학파의 어색한 섞임은 사라지기는 했는데[24] 책이 처음에 쉽게 읽히지 않는건 11판까지도...
6판 이후에는 하나의 책에 많은 것을 다뤄 빠지는 것이 없는 책으로 평가받았으나 다양한 원서들이 소개되고 점점 교과서가 많아지면서 여기서도 빠지는 내용이 드러나고 있다. 다만 RBC의 해석에서 소수설을 취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시경제 교과서 중 오류가 적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외에도 우리나라 경제현황을 잘 소개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타 교과서에 비해 케인즈주의자인 저자 본인의 의견이 많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제9~11판 교재의 전반부에서는, 최근(대침체 이후) 한국의 대내외적 경제 상황에 대한 정운찬 교수의 견해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물론 이 부분은 거시경제학 전반에 대한 이해가 깊다면 동의할 수 있으며 다른 교재에 비해 특징적인 부분이기는 하지만, 소속 학파를 막론하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서술해야 할 교과서에는 불필요한 부분이라는 평도 있다.
내용 자체는 좋아서 그래도 서울대학교 거시경제학 수업에서 많이 쓰이며, 타 학교에서도 원서 못지 않게 많이 쓰인다.[25]
9판부터는 거의 김영식 교수가 주도하여 집필하는 듯하다. 그래도 7, 8판은 정운찬 본인도 집필에 참가했고 또 고시생을 고려해서 썼다고는 했지만, 김영식 교수가 9판부터는 고시생 의식하지 않고 학교 강의용으로만 의식한다고 쓴다고 했기 때문. 실제로 9, 10, 11판에서는 순서도 많이 바뀌고[26] 희한한 모형도 많이 들어가서 안 그래도 어려운 책이 더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런데 12판은 수식도 서술도 쉽게한다고 했다고 그리고 5판부터는 연습문제를 넣었는데 처음에는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입시문제를 넣다가, 8판부터는 행정고시 기출문제를 많이 넣어서인지 연습문제가 좋다는 평가가 있으며, 따로 파는 연습문제 해설집은 아예 김영식 교수 가 작성한다. 해설집은 6판 때부터 김영식 교수가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위에서 언급된 교수 시절 교과서 문제도 이해 못한다는 악평은 아무리 빨라도 5판이 나오기 시작한 2002년부터인듯. 사실 2002-2006년까지 총장을 지낸지라 강의의 대한 그 악평은 2006-2009년에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27]
그런데 6판이 나오는 2003년부터 본인의 제자인 김영식#s-5 교수와 공저로 작성되었다. 이 때 케인즈학파 내용과 새고전학파 내용이 섞이다보니[22] 내용흐름파악이 어려워졌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23] 게다가 넣어야할 내용이 많다보니 서술도 압축적으로 바뀌고 수식도 복잡해져 가독성이 떨어졌다. 당시 서문에서는 의도한 것이라고... 그 때문에 초보가 읽기 어렵다는 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한 특징으로 행간의 의미까지 읽으면 거시경제학의 실력이 는다는 평도 있다. 7판 이후로 두 학파의 어색한 섞임은 사라지기는 했는데[24] 책이 처음에 쉽게 읽히지 않는건 11판까지도...
6판 이후에는 하나의 책에 많은 것을 다뤄 빠지는 것이 없는 책으로 평가받았으나 다양한 원서들이 소개되고 점점 교과서가 많아지면서 여기서도 빠지는 내용이 드러나고 있다. 다만 RBC의 해석에서 소수설을 취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시경제 교과서 중 오류가 적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외에도 우리나라 경제현황을 잘 소개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타 교과서에 비해 케인즈주의자인 저자 본인의 의견이 많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제9~11판 교재의 전반부에서는, 최근(대침체 이후) 한국의 대내외적 경제 상황에 대한 정운찬 교수의 견해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물론 이 부분은 거시경제학 전반에 대한 이해가 깊다면 동의할 수 있으며 다른 교재에 비해 특징적인 부분이기는 하지만, 소속 학파를 막론하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서술해야 할 교과서에는 불필요한 부분이라는 평도 있다.
내용 자체는 좋아서 그래도 서울대학교 거시경제학 수업에서 많이 쓰이며, 타 학교에서도 원서 못지 않게 많이 쓰인다.[25]
9판부터는 거의 김영식 교수가 주도하여 집필하는 듯하다. 그래도 7, 8판은 정운찬 본인도 집필에 참가했고 또 고시생을 고려해서 썼다고는 했지만, 김영식 교수가 9판부터는 고시생 의식하지 않고 학교 강의용으로만 의식한다고 쓴다고 했기 때문. 실제로 9, 10, 11판에서는 순서도 많이 바뀌고[26] 희한한 모형도 많이 들어가서 안 그래도 어려운 책이 더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런데 12판은 수식도 서술도 쉽게한다고 했다고 그리고 5판부터는 연습문제를 넣었는데 처음에는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입시문제를 넣다가, 8판부터는 행정고시 기출문제를 많이 넣어서인지 연습문제가 좋다는 평가가 있으며, 따로 파는 연습문제 해설집은 아예 김영식 교수 가 작성한다. 해설집은 6판 때부터 김영식 교수가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위에서 언급된 교수 시절 교과서 문제도 이해 못한다는 악평은 아무리 빨라도 5판이 나오기 시작한 2002년부터인듯. 사실 2002-2006년까지 총장을 지낸지라 강의의 대한 그 악평은 2006-2009년에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27]
- 경제학원론 : 사실 조순 교수의 저술로 시작된 책인데 이후 본인이 공저자로 들어갔고 김영식 교수, 홍익대 전성인 교수도 공저자로 참여하였다. 이준구 - 이창용 공저와 맨큐저에 비해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으나 초창기 1세대 경제학원론 책으로써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평을 받는다. 요즘은 11판까지 나왔으며 학교에서 두 학기 분량으로 경제학원론을 강의한다는걸 고려해서 미시, 거시파트로 나뉘어져서 출판된다.
다만 비슷한 것들이 너무 많아 점유율은 떨어진다. 특히 요즈음 경제학개론 책 중에는 맨큐나 이준구 저작이 가장 많이 쓰이기도 하고.
- 화폐와 금융시장 : 경상대학교 김홍범 교수와 공저로 쓴 화폐금융론 교과서. 많이 읽히는 원서인 미시킨 저보다는 모형이 풍부하지는 않으나 우리나라의 화폐금융제도를 충실히 소개하고 있다는 평이 있다.
- 통계학 : 통계학 기초를 설명한 책이다. 1998년에 나온 책이나 현재는 절판된 상태.
- 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
5.2. 기타
- 한국경제 죽어야 산다
- 가슴으로 승부하라
- 야구예찬 : 본인이 야구를 좋아해서 쓴 책.
6. 여담
- 본인 스스로 직접 밝힌 젊은 시절 일화가 있다.
> 대학 다닐 때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
> "학교 어디 다니나?"
> "경제학과 다닙니다."
>
> "아니, 학교 어디 다니냐고?"
> "'상대' 경제학과 다닙니다."
>
> "아니, 그러니까 학교는 어디냐고?"
> "당연히 서울대지 다른 대학을 다닐 데가 있습니까?"
사실 저 나이대의 서울대 출신들이 '대개' 갖고 있는 자교에 대한 프라이드는 하버드 이상급이라 할 정도로 유별나다.[28] 이건 지금 학과에 따라 타대 의대에 밀리기도 하는 현재 서울대와 달리 그 때는 서울대 하위학과도 대부분 타대랑 입결 차이가 꽤 나는 그야말 국내 최고 명문대라 그랬다는 이유도 있다. 심지어 위의 발언도 젊은 시절 자신의 오만을 고백하는 말이 아니라 강의 도중 나처럼 자부심을 갖고 당당해지라며(...) 자랑하듯 한 말이다. 실제로 서울대 신문은 대학신문, 서울대앞 길은 대학로 식으로 학교명을 기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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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어디 다니나?"
> "경제학과 다닙니다."
>
> "아니, 학교 어디 다니냐고?"
> "'상대' 경제학과 다닙니다."
>
> "아니, 그러니까 학교는 어디냐고?"
> "당연히 서울대지 다른 대학을 다닐 데가 있습니까?"
사실 저 나이대의 서울대 출신들이 '대개' 갖고 있는 자교에 대한 프라이드는 하버드 이상급이라 할 정도로 유별나다.[28] 이건 지금 학과에 따라 타대 의대에 밀리기도 하는 현재 서울대와 달리 그 때는 서울대 하위학과도 대부분 타대랑 입결 차이가 꽤 나는 그야말 국내 최고 명문대라 그랬다는 이유도 있다. 심지어 위의 발언도 젊은 시절 자신의 오만을 고백하는 말이 아니라 강의 도중 나처럼 자부심을 갖고 당당해지라며(...) 자랑하듯 한 말이다. 실제로 서울대 신문은 대학신문, 서울대앞 길은 대학로 식으로 학교명을 기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특유의 엘리트 의식 때문인지, 대학입시에서 한국사를 영어로 시험을 치르자는 주장을 했다가 욕을 거하게 먹기도 했다. 본인은 '외국에서 활동할 사람만을 대상으로', '영어과목 내용에 한국사 관련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사를 잘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도였다고 해명했다만, 그렇다 쳐도 상당히 비판받을 요소는 있는 주장이다. 남들 듣기에는 (한국사를 굳이 외국인에게 알려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국뽕과 (그걸 굳이 영어로 시험을 쳐가면서 해야 한다는) 사대주의가 결합된 이상한 주장인지라... 진짜 그런 의도였다면 그냥 역사 전문 통번역가를 양성하자고 하는 게 훨씬 나았을 듯.
- 학원강사 제자로 황종휴가 있다.
[1] 음력 2월 29일.[2] 이 시기 제자였던 유종일 교수 썰에 의하면, 서울대 운동권이었던 자신을 전담하는 교수가 정운찬이었는데, 의외로 그는 자신의 역할을 귀찮아하지 않고 니들 말에 동의하지만 최소한 학점 관리는 하라고 충고해줬다고 한다.[3] 당시 친이계가 차기 대권주자로 박근혜 대항마로 키우려고 섭외한 나름 거물급 인사였다.[4] 아래의 저서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황종휴 강사가 수업을 들을 당시는 교과서의 연습문제가 없었다.[5] 허나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명박과 정운찬은 이명박이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되기 이전부터 서로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6] 이명박 정부가 끝난 뒤 동아일보에서 시리즈로 연재한 '비밀해제 MB5년'에서도 정운찬을 '원포인트 총리'로 표현했다. 다만 해당 링크에서도 언급되었듯 차기 대권 주자로 밀어주며 박근혜를 막고 이재오와 정운찬을 차기 친이계 수장으로 해서 정권을 재창출할 생각도 있었다고 보여진다. 실제로 이명박도 차기 대권 주자와 당권을 각각 정운찬, 이재오에게 배분하고 차기 정권을 친이계로 재창출시킬 의도가 있었던 듯하다.[7] 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할 때가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는데 이 때 이명박도 정운찬을 도와줬다고 한다.[8] 실제 이명박은 대통령 시절 차기 대선 주자로 이재오와 정운찬을 지지하기도 했다.[9] 그래서 정운찬이 늘푸른한국당으로 출마할 경우 친이계열, 중도보수 계열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정운찬 본인은 노무현보다 이명박을 더 높이 평가한 적도 있었다.[10] 실제로 정운찬은 17대 대선에는 비노계의 대권 주자(한나라당/열린우리당)로 구분되었고, 18대 대선때는 이재오와 더불어 친이계의 잠룡으로 분류됐다. 또한 이명박과 이재오는 한나라당 시절, 정운찬에게 한나라당에 입당해서 경기 성남 분당 을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11] 문재인 캠프와 안철수 캠프 모두에서 합류 요청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문재인 캠프는 상도동계 주축 및 정운찬에게 합류해달라고 부탁했고, 김현철, 김덕룡 및 상도동계 주요 인사들은 이에 공식적으로 문재인 지지 선언으로 화답했다. 현재는 정운찬의 합류 여부만 남은 상태.[12] 넥센 히어로즈는 메인스폰서+히어로즈 식으로 이름이 정해지며, 구단의 법인명은 서울 히어로즈이다.[13] 구단이 재정적 위기를 막기 위해 타 구단에 트레이드를 제안한다는 소문이 이미 2017년부터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14] 전 스타뉴스 대표였던 장윤호는 1987년 일간스포츠에 입사해 1997년부터 2002년까지 6년 동안 미국 특파원 생활을 했다. 이후 일간스포츠 체육부장, 야구부장, 편집국장을 지냈다. 즉 박찬호의 LA시절 미국 특파원의 인터넷이 아닌 첫 신문 기재로 기자 출신이며, 박찬호와 인연이 깊다.[15] 예전에 김우중은 입으로는 개혁을 외치면서 골프만 쳐대는 신문선에게 빡친 나머지, 나중에 축협 회장에 물러난 뒤에 "다신 내가 신문선, 허승표 무리들이랑 뭔가를 하겠다면 내가 미친 놈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걸 KBO 총재에게 대입해보면, 네티즌들이 당시 김우중의 심정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는 정치인이 야구를 어쩌겠다는 소리를 믿으면 내가 미친놈이다."라는 식으로 말이다.[16] 근데 사실 처음에 호기심 때문에 본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토쟁이들이었다.[17] 당시 자유선진당 소속 의원이었으며 대변인을 맡았던 그 사람 맞다. 2018년 지방선거에 서울시 교육감 보수진영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18] 경제학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거시는 정운찬의 거시경제론, 미시는 이준구의 미시경제학을 한 번쯤은 접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거시경제론의 경우에는 고유의 수리적 접근 때문에 더 쉬운 설명 난이도를 원하는 사람은 박영사의 김경수-박대근 교수 저서나 법문사의 김준영 교수 저서로 접근하기도 했다. 주로 행정고시 준비생들이 많이 찾는 편이였...지만 사실 행시생들도 2010년대 이후부터 경제학 지식이 탄탄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정운찬 저를 강의없이 처음부터 보는 경우는 드물다. 요즘은 강사 저에 의존하기도 하고.[19] 웃기게도 MB정부 국무총리 지명을 받을 때 이 책을 태우겠다고 쓴 고시생들도 몇 있었다[20] 김진욱은 수험경향에 맞지 않아서 초시생들은 보지마라고 하나, 정운찬 교수의 제자인 황종휴 강사는 꾸준히 읽기를 권하며 이게 그래도 제일 낫다며 오랫동안 강의를 했었다. 윤지훈도 읽기는 어렵지만 이거만큼 좋은 책이 없다고 했고 프라임 법학원의 장선구 강사도 강의용으로 많이 쓴다. 2010년 후반 이전까지는 이준구 미시경제학과 더불어 바이블이였다.[21] 오히려 2000년대 초반에는 고려대 세종캠퍼스 경상대학 교수 김기화 처 거시경제학이 범위 측면에서는 넓었딘. 그리고 새고전학파의 주류인 barro 저의 내용이 잘 반영된 조하현 저도 있었고, 중앙대 안국신 저도 이 교과서를 보충할 수 있는 좋은 책이였다. 6판 이전의 교재는 이준구 미시경제학의 포지션을 강하게 띠는 책이였다[22] 미국 거시경제학교과서들은 케인즈학파 책과 고전학파 책을 잘 섞지는 않으며 그나마 잘 조화된 책이 맨큐의 거시경제학이다[23] 그런데 김영식 교수는 새고전학파 중에서도 소수파인 stephen williamson 거시교과서의 내용을 넣느라 새고전학파 주류인 Barro의 견해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한계도 있다.[24] 김준영, 김기화, 안국신 저가 원래는 이런 편제였다. 김경수-박대근 저, 이우헌 저, 이종화-신관호 저, 주상영 저 등 다음 세대의 교수들이 집필한 저도 현재 정운찬-김영식 저와 유사한 체계를 따른다. 조하현 저도 3판으로 개정될 때는 비슷한 순서로...[25] 성균관대 교수를 지냈던 김태동 전 경제수석도 이 교과서를 많이 썼다[26] 2007년 발간된 제8판까지는 수험목적에 적합한 목차인 '입문-총수요·총공급 모형-실업·인플레이션-소비·투자·노동·화폐·자산시장-IS-LM모형과 일반균형-경제성장-경제정책'으로 이루어졌으나, 2010년 발간된 제9판부터는 제1편 제2장 '최근 거시경제의 주요 흐름' 단원부터 냅다 IS-LM 모형이 등판하는 등 불친절해졌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책을 교과서로 쓰더라도 제8판 순서나 본인이 생각한 순서대로 가르치는 교수·강사도 많으며, 제9~11판을 쓰는 학생들은 책의 앞뒤를 오가며 공부하곤 한다.[27] 반면에 공저자 김영식 교수는 질문하러 가면 그래프를 그려주면서 설명할 정도로 친절하다고[28] 역시 서울대 법대 엘리트 출신 이회창도 사석에서 고려대 출신 기자에게 "고려대 나오고도 기자 할 수 있느냐?"라는 말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동일한 나이대는 아니지만 수학 강사 박승동도 고려대를 나온 젊은 강사에게 "남들 공부했을 때 뭐 하셨는지요?" "고대라는 게 어디있는 학교입니까?" 물론 박승동의 경우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는 의도에 더 가깝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