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처급 구축함/함정 목록
1. 개요
2. DD-445 플레처
3. DD-446 래드포드
4. DD-447 젠킨스
5. DD-448 라 발레트
6. DD-449 니콜라스
7. DD-450 오배넌
8. DD-451 셔벌리어
9. DD-465 소플리
10. DD-466 월러
11. DD-467 스트롱
12. DD-468 테일러
13. DD-469 드헤이븐
14. DD-470 배시
15. DD-471 빌
16. DD-472 게스트
17. DD-473 베넷
18. DD-474 풀럼
19. DD-475 허드슨
20. DD-476 허친스
21. DD-502 시그스비
22. DD-509 컨버스
23. DD-532 히어만
24. DD-537 더 설리번즈
25. DD-533 호엘
26. DD-557 존스턴
27. DD-579 윌리엄 D. 포터
28. DD-661 키드
29. DD-680 멜빈
1. 개요
플레처급 구축함의 함정들을 소개하는 문서.
주요 활동은 모든 전투를 적은게 아니라 DANFS를 보며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전투를 하나씩 적은 것이기에 빠진게 있을 수도 있다.
2. DD-445 플레처
플레처급 구축함 네임쉽이며 과달카날 전역에서 여러 해전에 참가한 구축함으로 과달카날 해전 제1야전에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전투를 계속하여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은 행운함이기도 하다. 당시 플레처는 신형 SG레이더를 탑재했고 미국 함대 후미에 있었는데 레이더 정보를 받아 당시 해전에 참가했던 여느 함선들보다도 훨씬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행운까지 겹쳐서 어뢰에 명중당할 뻔 했는데 어뢰가 배 밑으로 지나가 명중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후 여러 작전에 참여하여 종군훈장 15개를 수상했으며 미 해군 구축함 중에서 15개를 수상한 USS 모리스와 함께 8번째로 많이 받은 구축함이었다.
종전 후에는 1969년까지 제7함대에 소속되어 대잠업무를 집중적으로 맡았다. 1969년에 퇴역한 후 워싱턴 D.C.에 전시할 것이 고려되었지만 결국 1972년에 대만 회사에게 팔려 스크랩 처리되었다.
3. DD-446 래드포드
4. DD-447 젠킨스
5. DD-448 라 발레트
6. DD-449 니콜라스
7. DD-450 오배넌
감자로 잠수함을 잡은 구축함. 자세한 건 문서로.
8. DD-451 셔벌리어
1943년 10월 6일 벨라라벨라섬에서 철수하는 일본군을 막는데 동원되다가 일본군 함대의 어뢰에 맞아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거기다가 뒤따라오던 오배넌이 셔벌리어를 피하지 못하고 기관실을 들이받은건 덤. 이러한 상황에서도 어뢰로 구축함 유구모를 격침시켰지만 결국 퇴함 명령이 떨어졌다. 생존자들은 오배넌에 의해 구조되었으며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셔벌리어는 아군 구축함들의 뇌격으로 자침되었다.
셔벌리어라는 이름은 기어링급 구축함에게 계승 된다.
9. DD-465 소플리
10. DD-466 월러
11. DD-467 스트롱
1943년 7월 5일 뉴조지아섬에 상륙하는 미군 병력을 지원해 해안 포격을 벌이던 중 일본군 구축함의 뇌격으로 격침되었다. 생존자들은 셔벌리어가 구조했다.
12. DD-468 테일러
13. DD-469 드헤이븐
1943년 2월 1일 상륙정을 호위하던 중 과달카날 철수 작전을 지원하던 일본군 폭격기에게 격침당했다. 생존자들은 호위받던 상륙정이 구조했다.
14. DD-470 배시
15. DD-471 빌
16. DD-472 게스트
17. DD-473 베넷
18. DD-474 풀럼
19. DD-475 허드슨
20. DD-476 허친스
21. DD-502 시그스비
22. DD-509 컨버스
23. DD-532 히어만
존스턴과 함께 사마르 해전에서 대활약한 구축함. 일본군 전함 2척과 중순양함 2척에 어뢰를 날렸고, 세계 최대 초전함인 야마토급 전함 야마토와 나가토급 전함 나가토를 전장에서 지체시켜, 구리다 제독이 전황을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을 주었다. 어뢰에 쫓기던 야마토와 나가토는 물론이고, 구리다 함대의 전함과 순양함들은 히어만을 비롯한 미군 구축함들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었고 사무엘 B. 로버츠가 이 공격으로 대파되었지만, 히어만은 포탑 하나가 날아가는 등의 큰 피해를 입고서도 4대의 함재기와 협력하여 토네급 중순양함 치쿠마를 대파했고, 치쿠마는 그날을 넘기지 못하고 격침되었다. 이후 토네급 중순양함 토네가 히어만에게 덤볐지만 토네는 함재기들의 공격으로 도주했고, 구리다 함대는 공격을 중지하고 퇴각했다. 결국 히어만은 이 사마르 해전에서 일본 함대와 맞서 용감하게 나서서 싸운 3척의 구축함과 1척의 호위구축함 중 유일한 생존함이 되었고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게 된다.
수리를 끝마친 히어만은 이오지마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에서 대잠 초계 임무를 맡았다. 오키나와 전투 과정에서 가이텐을 실은 잠수함 I-56을 격침시켰다. 이는 히어만이 올린 마지막 격침 성과였다. 종전 직전 카미카제 공격을 1차례 받았지만 대공포로 무사히 격추시켰고, 무사히 종전을 맞을 수 있었다.
이후 히어만은 현역 일선에서 물러나 훈련함으로 쓰였다가 1961년에 아르헨티나 해군에 공여되고 브라운(Brown, D-20)으로 개명되었다.
24. DD-537 더 설리번즈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주로 대잠 및 대공 초계 업무를 맡았다.
25. DD-533 호엘
사마르 해전에서 존스턴이 공격당하자 히어만, 사무엘 B. 로버츠와 함께 구리타 함대에 용맹하게 돌격한 또 한 척의 구축함. 공고의 앞을 가로막고 분전하다 포위당해 격침된다. 돌격한 구축함 중 가장 먼저 격침당해 다른 세 척에 비하면 유명하진 않다.
26. DD-557 존스턴
레이테 만 해전의 일부인 사마르 해전에서 대활약한 '''전설이 된 구축함.''' 존스턴 항목 참조.
27. DD-579 윌리엄 D. 포터
포터의 추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항해 도중 포터함이 폭뢰를 실수로 떨어뜨리면서, 전 함대가 유보트의 기습으로 상황을 착각하여 급하게 회피 기동을 실시해야 했다. 이 회피 기동은 포터가 자신의 실수를 실토할 때까지 계속되었다.[27] 이런 추태에 화가 난 어니스트 킹 제독은 직접 포터의 함장을 질책했고, 포터의 함장은 개선하겠다는 답을 보냈다.
이후 항해 도중에 있던 대공 사격 훈련에서 포터함은 목표물을 전부 격추시키며 체면치레를 하는 듯 했으나, 진짜 대참사는 어뢰 발사 훈련에서 터졌다..... 그날 어뢰 훈련은 가상 발사 훈련이었지만, 포터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승선해있는 USS 아이오와를 향해 실수로 폭약이 장전된 진짜 어뢰 1발을 발사'''하는 전대미문의 실책을 저질렀다.[28]
이를 수습하는 과정도 가관이었다. 전 함대가 무선 침묵을 유지하는 상황이었으므로 USS 포터에서는 USS 아이오와에게 무선 교신 대신 발광 신호를 보내서 상황을 알리려 하였다. 하지만 너무 급박하게 신호를 보내느라 승조원이 당황한 것인지, 이 발광 신호조차도 첫번째는 '어뢰가 USS 아이오와 반대편으로 발사', 두 번째는 '어뢰가 전속력으로 후진 중'이라고 전혀 알 수 없는 의미로 발신하고 말았다.
결국 다급해진 포터 함에서는 무선 침묵을 깨고 어뢰가 발사됐다고 실토했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USS 아이오와는 당연히 대패닉, 다가오는 어뢰에 회피 기동을 했다. 장갑과 방뢰 벌지를 잔뜩 붙여놓은 거대한 전함이라도 자칫 취약부위를 맞으면 어뢰 한 방에라도 격침당할 수 있기 때문인데, 설상가상으로 해당 함에는 '''군통수권자인 루스벨트 대통령과 어니스트 킹 해군참모총장까지 타고 있었다...''' 실제로 사고가 났다면 아군의 팀킬로 비싼 전함 1척이 침몰함과 동시에, 해당 함에 탑승하고 있던 대통령과 해군 제독들까지 사망할 수도 있는 전대미문의 대참사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29]
그런데 해군차관을 지냈던 만큼 평소 해군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자국 해군에 대한 애착이 깊었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아군 어뢰가 자신이 탑승한 아이오와의 근처로 발사되었다는 보고를 듣고 '''그 발사된 어뢰를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자신의 휠체어를 어뢰가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겨 달라고 하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연출했다. 이 와중에 시크릿 서비스 경호 요원들은 권총을 꺼내 드는 등의 대혼란을 연출했고 다행히도 포터가 발사한 어뢰는 아이오와 뒤에서 약 3,000야드(약 2.7킬로) 떨어진 곳에서 폭발해 아이오와는 무사했으며, 대열로 돌아온 '''USS 아이오와는 단단히 화가 났는지, 16인치 주포 9문 전부를 포터에 겨누며 해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당연히 플레처급같은 조그만한 구축함들은 방어체계도 약해서 아이오와의 16인치 탄 '''1발이라도''' 지근탄[30] 으로라도 맞을 시 명줄이 위태위태하고 '''스트레이트로 맞으면 침몰 확정이다.''' 이에 겁에 질린 포터의 함장은 모든 사실을 자백해야만 했다.
당연히 포터는 함대에서 쫓겨났고, 버뮤다 군사항구로 귀항하자마자 무장한 해병대원들에게 포터의 전 승조원들은 '''대통령 암살미수죄로 전원 구속당했다.''' 포터의 함장은 어니스트 킹 제독에게 불려가 아군에게 어뢰를 사격한 치명적인 실수와 '''유리한 상황이었음에도 어뢰로 목표물을 명중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질책을 받았다. 결국 암살 시도는 아니고 실수라는 결론이 나오기는 하는데 가장 책임이 큰 어뢰 담당자가 징역 14년을 선고받는 등의 후폭풍이 일었다. 그러나 징계를 받은 승조원은 없었는데 루스벨트 대통령이 함장을 포함한 승조원 전원을 사면할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함장은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았고, 실형을 받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이후 해군은 이 사건이 너무 쪽팔려서인지 전쟁 이후까지 쉬쉬했지만, 해군 내부에서는 소문이 다 났는지 이후 USS 포터 함을 만나는 배들은 죄다 "쏘지 마! 우리도 공화당원이야!ㅋㅋㅋ"라고 인사했다고.(루스벨트가 민주당원이었으므로)
이런 대형사고를 터트린 포터는 어니스트 킹 제독 명령에 의해 아무도 가고 싶지 않아하는 알류산 열도로 배치된다. 사실상의 문책성 좌천. 자중하고 조용히 살아야 마땅하나... 이후에도 포터의 사고뭉치 행렬은 계속 이어졌는데, 술 취한 수병이 함대 사령관 숙소의 마당에 실수로 5인치 주포 포격을 한다던가[31] , 교전 중에 동형 구축함인 USS 루스를 기관포로 긁어버린다던지[32] , 아군기 3대를 격추시켰다는 의심을 사는 등 힘든 인생,아니 함생을 살았으며, 최후에는 오키나와에서 발 폭격기의 카미카제 공격으로 격침되었다. 이 최후도 포터함답다면 포터함다운 최후였는데, 태평양에서 전투 중에 카미카제가 포터 옆 바다로 추락했는데 가속도를 타는 바람에 용골 가까이까지 파고들어가서 USS 포터 함 바로 밑에서 기뢰마냥 폭발했고, 함체에 구멍이 나는 등의 피해를 입고 결국 침몰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사상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단, 인터넷에 퍼진 내용과 다른 경우도 있으므로 다각적인 자료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출처: USS William D. Porter(DD-579) 역사에 남은 배들
28. DD-661 키드
1945년 4월 11일에 카미카제 공격을 받아 보일러실이 폭발하고 총 38명의 승조원이 사망하였다. 하지만 곧 정상 운항이 가능한 상태로 수리되었다. 승무원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카미카제 당시 손상된 해적 그림도 다시 그려넣었다. 종전 직후에는 임시 퇴역되었다가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재취역하였고, 1952년 9월에 한반도에 도착해서 연안 정찰 및 화력 지원 임무를 맡았다.
1964년에 정식으로 퇴역하였고, 1975년에는 박물관함으로 지정되었다. 여타 플레처급 선보다 보존 상태가 좋았기에 1945년 8월 당시 고증에 맞는 장비를 장착하는 복원 작업이 진행된 후 1983년에 루이지애나 주도(州都) 배턴루지에서 대중에게 문을 열었다. 이로써 키드는 3척만 남은 플레처급 박물관함 중 하나가 되었다. 키드의 무장은 현재도 실 사격이 가능할 정도로 잘 보존되어있어서 매년 7월 4일 독립 기념일마다 축포를 발사하고 있다.
키드의 함명은 키드급 구축함에 계승되었으며, 키드급이 대만에 팔려간 후에는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에 계승되었다. 알레이버크급 키드도 졸리 로저를 달고 입항하기도 했다.
29. DD-680 멜빈
레이테 만 해전에서 벌어진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서 일본의 후소급 전함 후소를 뇌격으로 격침시켰다. 이오지마 전투 당시 카미카제 공격을 받아 대파된 새러토가를 호위하기도 했다.
플레처급으로 이루어진 구축함전대로 31노트 버크로 유명한 알레이 버크 제독이 대령 시절에 지휘한 구축함전대로 세인트 조지 곶 해전에서 당시 5척이던 제23구축함전대는 동수의 제31구축대를 레이더로 먼저 발견하여 기습, 아무런 피해 없이 3척을 격침시키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후에도 여러 전과를 거두어 미합중국 대통령 부대 표창 받고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미 해군 구축함전대 중 하나이다.
제23구축함전대 홈페이지
제23구축함전대 홈페이지
[1] 미해군 제독. 멕시코 혁명 당시 베라크루스 상륙작전을 지휘해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대서양 함대 총사령관도 했다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전역해 1928년 사망했다. 프랭크 잭 플레처 제독의 삼촌이다.[2] 미국-멕시코 전쟁과 남북전쟁에 참전한 미 해군 장교. 미국-멕시코 전쟁 당시에는 전쟁용 슬루프 워렌의 상륙 부대를 지휘해 멕시코군 브릭 말레크 아델을 나포했다. 남북전쟁 당시에는 연합 철갑선 버지니아의 첫 희생양이 된 프리깃 컴벌랜드의 함장이었으며 이후에는 철갑선 뉴 아이언사이즈의 함장이 된다. 1866년 제독이 되고 1890년 사망.[3] 미국-멕시코 전쟁과 남북전쟁에 참전한 미 해군 장교. 남북전쟁 당시 전쟁용 슬루프 오네이다의 함장이자 패러것 제독의 참모장이었다. 전후 제독 자리까지 올랐고 1893년 사망.[4] 미영전쟁과 미국-멕시코 전쟁에 참전한 미 해군 장교. 1862년 미 해군에 소장(rear admiral) 계급이 만들어지고 나서 그 계급장을 처음 단 인물 중 하나다. 다만 고령인지라 소장 계급장을 단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5]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한 해병대 장교. 200명의 해병대원과 50명의 선원들을 이끌고 바하마의 주요 섬인 뉴프로비던스에 상륙해 몬태규 요새, 총독관저, 나소를 점령했다. 이 미합중국 최초의 상륙작전은 대륙군에게 그토록 필요한 대포와 탄약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줬다. 미 해병대 "초대" 사령관으로 여겨지는 인물. 초대에 따옴표가 있는건 해병대 대빵이긴 했지만 당시에는 해병대 사령관이라는 보직이 없었기 때문이다.[6] 1차 바르바리 전쟁에 참전한 미 해병대 장교. 데르나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Marines' Hymn에 나오는 트리폴리의 해안이 바로 이 전투를 말하는거라나.[7] 초창기 미해군항공대 조종사. 1916년 장갑순양함 노스캐롤라이나 (ACR-12)에서 벌어진 실험에 참가해 최초로 함상 캐터펄트에서 사출된 조종사가 되었으며 1992년에는 항공모함 랭글리 (CV-1)의 비행갑판에 최초로 착함했다. 1922년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8] 초창기 미해군항공대 조종사. 1916년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9] 19세기 말 미 해병대 장교. 미국-스페인 전쟁, 의화단 운동 진압, 필리핀 반군 진압, 베라크루스 점령, 아이티 점령 등에 참가했다. 이후 장군까지 되어 1920년 은퇴해 1926년 사망. 필리핀에서 민간인 학살을 벌였다는 얘기가 있다.[10] 남북전쟁에 참전한 미 해군 장교. 모빌만 해전 당시 슬루프 머논가힐라의 함장으로 연합군 철갑함 테네시에게 닥돌했다. 머논가힐라와 다른 영방군 함선의 맹공을 받은 테네시는 결국 항복하게 된다. 전후 제독의 자리에 올랐고 1876년 은퇴했으며 1882년 사망했다.[11] 미국-멕시코 전쟁과 남북전쟁에 참전한 미 해군 장교. 전후 제독까지 된다.[12] 19세기 초 미 해군 장교이자 탐험가. 미국-멕시코 전쟁 참전자로 실종된 존 프랭클린 제독을 찾기 위한 구조대를 이끌기도 했다. 1862년 은퇴해 1865년 사망.[13] 남북전쟁에 참전한 미 해군 장교.[14] 미국-멕시코 전쟁에 참전한 해군 장교. 프리깃 콩그레스에서 복무하던 장교로 샌디에이고 점령에 참가했다. 사실 군 경력보다는 캘리포니아 및 네바다 인디언 현안 감독관이나 캘리포니아 측량감, 주오헝제국 미국 공사와 같은 이후 경력이 더 다채롭다. 1893년 사망.[15] 미국-멕시코 전쟁과 남북전쟁에 참전한 해군 장교. 남북전쟁 때는 건보트 오와스코와 모니터선 상거먼을 지휘했다. 1879년 사망.[16] 미해군항공대 초창기 조종사. 1926년 리처드 에벌린 버드와 함께 북극 횡단 비행에 성공해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1928년 대서양 비행에 성공한 독일 항공기 "브레멘"의 승무원을 구조하는데 투입되었다가 폐렴으로 인해 사망했다.[17]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해군 제독. 1926년 사망.[18] 19세기 해군 장교. 윌크스 남극 탐험대 선박 중 하나였던 전투용 슬루프 피콕의 함장이었다. 1862년 사망.[19] 전간기 미해군항공대 조종사. 1938년 수상기를 몰며 훈련에 참가하던 중 PBY 카탈리나와 충돌했지만 승무원들을 살리기 위해 계속 조종석에 남았다. 그의 희생으로 생존한 승무원들은 낙하산을 타고 탈출할 수 있었다. 명예 훈장 추서됨.[20] 미 해군 제독. 미국-스페인 전쟁의 원인이 된 장갑순양함 메인이 폭발할 때 그 함장이었다는 희귀한 경력이 있다. 1907년 은퇴해 1923년 사망.[21] 미 해군 제독. 무연화약 도입과 어뢰정 개발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미국-스페인 전쟁 시절 순양함 몽고메리 (C-9)을 지휘하며 참전한 경력이 있다. 1909년 사망.[22] 1차 바르바리 전쟁에 참전한 미 해군 군의관. 탑승하고 있던 케치 인트레피드의 승무원들이 바르바리 해적들에게 나포된 프리깃 필라델피아에 잠입할 때 인트레피드의 임시 지휘관을 맡았다.[23] 아르헨티나 배 치고는 이상한 이름인데 아일랜드계 제독의 이름을 따서 그렇다.[24] 남북전쟁에 참전한 미 해군 장교. 건보트에서 복무하며 연합군의 포화를 무릅쓰고 지상군에게 포격지원을 해주거나 지휘하던 건보트가 전복되어 완전히 침몰하는 일을 막기 위해 고의적으로 좌초시키는 등의 공을 세웠다.[25] 남북전쟁에 참전한 미 해군 장교. 건보트 세인트루이스의 중위로 헨리 요새 전투에서 세인트루이스호 상륙 부대를 지휘해 거점 하나를 무력화시키는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전시 한정 대위로 승진.[26] 남북전쟁에 참전한 미 해군 장교. 전쟁 전부터 해전용 폭발탄을 연구하는 등 공학자 기질이 충분한 양반이었다. 남북전쟁 당시에는 건보트 뉴 에라의 함장을 맡았는데 이 배를 철갑함으로 개조한 다음 미영전쟁 당시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의 배 이름을 따 에식스라고 개명까지 해버렸다. 이렇게 만든 철갑선을 가지고 연합군의 철갑선 아칸소를 자침시키는 공을 세우기도 하고 준장 계급까지 올라갔지만 남북전쟁이 끝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심장병으로 사망.[27] 게다가 승조원 한 명이 폭뢰로 인한 물살에 떠밀려 가 실종되었다. 사실상 사고사.[28] 발사관에 어뢰가 없었어야 하는데, 3번 발사관에 어뢰 1기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제거 작업 중에 실수를 한 듯.[29] 사실 어뢰 한 발로 전함을 격침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뢰로 격침된 전함들은 대부분 한 두 발로 격침되지는 않았다. 진주만 공습에서도, 레이테 만 해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말 재수없이 한 방에 보일러실이 터지고 탄약고 유폭까지 일어난다면 가능하겠지만 아이오와급정도 되는 최신 전함의 설계는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날 정도로 허술하지는 않았다. 다만 아이오와급 문서를 보면 나오지만 사우스 다코타급과 아이오와급 전함들이 이전 함급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뢰에 취약한 편이기는 하였다. 물론 취약하다고 해서 한방에 침몰까지 가는 일은 없지만. 예외적으로 후소급 전함 1번함 후소는 미해군 구축함 멜빈의 어뢰 1~2발로 격침되기는 했지만 항목에 들어가보면 나오듯이 여러가지 문제점이 많은 구식 전함이었다. 반면 아이오와급과 유사한 크기인 야마토급 전함의 2번함 무사시는 자료에 따라 다르지만, 어뢰 10발, 폭탄 16발 혹은 어뢰 20발, 폭탄 17발을 맞고서야 격침되었으며 완전히 가라앉기까지 네 시간이나 걸렸다. 다만 무사시가 맞은 것은 함재기에서 쏜 항공어뢰이며, 멜빈의 어뢰는 선박용 중어뢰라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 윌리엄 D. 포터가 쏜 어뢰도 중어뢰이다. 설령 아이오와가 어뢰를 맞았다 한들 흘수선 위에 있던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망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을 확률은 한없이 낮다. 그래도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도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은 당연하고, 어뢰를 정말로 맞았으면 사고 수습과 아이오와급의 손상으로 인한 함대의 속력 저하 때문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테헤란 회담에 제시간에 참석하지 못하는 등 외교적으로 여러 가지 지장이 왔을 것이다. 일어나기 힘든 최악의 경우지만 폭발 충격으로 배가 흔들려 대통령이 물에 빠져 바로 구해내지 못하고 그대로 실종됐다면? 후술하겠지만 발사된 어뢰를 보겠답시고 어뢰가 잘 보이는 곳(즉 현측)으로 옮겨달라고 하기까지 했으니... 게다가 소아마비로 하반신 장애가 있던 루스벨트였으니...[30] 탄이 살짝 빗겨나가 근처 수중에서 폭발한 경우를 말한다.[31] 하필 함대 사령관이 숙소에서 파티를 벌이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사상자는 없었다고 한다.[32] USS 루스는 후에 카미카제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안습[33] 진주만 공습 당시 제1전함부대 사령관. 공습이 벌어지자 기함인 전함 애리조나 (BB-39) 함교로 달려가 지휘를 하던 중 애리조나가 유폭되며 전사했다. 명예 훈장 추서됨.[34]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 해군 장교. 초계정 알세도(Alcedo)에서 소위로 복무하다 배가 독일군 잠수함에게 격침되며 전사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최초로 격침된 미군 전투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