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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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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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는 베이징시, 톈진, 허베이성, 산둥성, 산시성(산서성),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에서 사용하고, 남쪽으로는 난징, 장쑤성, 안후이성, 후베이성, 후난성 북부에서 사용하고, 서북쪽으로는 시안, 뤄양, 산시성(섬서성), 허난성, 간쑤성,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사용하고, 서남쪽으로는 청두, 충칭, 쓰촨성, 윈난성, 광시 좡족 자치구에서 사용한다. 중국 인구의 70%는 먹고 들어가며, 화자 수 또한 '''9억 명'''이 넘어서 세계 최대 화자를 자랑하는 방언(이자 단일 언어)이다.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둥간족들의 둥간어도 관화에 속해 있다.
2. 상세
官話라는 명칭은 글자 그대로 관리(官吏)들이 쓰는 말(공용어)이라는 뜻인데, 명나라가 세워진 이후 중국 대륙 각지에서 북경으로 올라온 관리들이 관화를 소통 언어로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중국어의 표준 방언 비슷한 역할을 해왔으며, 흔히 중국어라는 이름으로 배우는 표준중국어(보통화, 중화민국 국어, 싱가포르 표준 화어)도 관화를 표준화한 것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들의 대다수가 이 관화를 사용하는데 이는 지리적 영향이 크다. 한국 화교들은 대부분 산둥성 출신이 많아서 북방 방언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1] 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들의 절대 다수가 광둥성이나 푸젠성 출신이라서 민남어나 광동어를 사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류원(리우웬)이 말하는 관화
겨울왕국의 <Love Is an Open Door> 관화 더빙판 <爱的门打开了>
3. 특징
객가어나 광동어 같은 다른 중국어 방언에 비하면 옛 발음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관화의 발원지인 북방지역은 당송시기 이후 예로부터 몽골 계통의 유목민족[2] 들이 정착해 와서 영향을 받았고 몽골족의 원나라 이후 중고한어 시대가 끝나고 근고한어 시대로 바뀌면서 입성음을 비롯한 받침음이 사라지고[3] 성조가 만기중고한어의 8성에서 4성으로 줄어들고 전탁음이 소실되고 [v]음가가 사라지고 二의 발음이 er(얼)로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관화는 몽골족에 의해 개조된 중국어라고도 할 수 있다.[4]
성조의 갯수가 비교적 적은 이유도 남송이 멸망해 중고한어 시기가 끝나고 원나라가 성립되면서 근고한어 시기로 바뀌는 혼란을 겪어 간략화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또한 청나라 말기 이후 현대음으로 바뀌면서 구개음화가 심하게 되었기에 한국 한자음과의 괴리 정도도 객가어에 비하면 매우 크다.
강희자전에서 당운(唐韻)이 호각절(湖覺切)로 나와있는 배울 학學의 경우 원래 원나라 말기와 명나라 시대부터 청나라 전, 중기까지 쓰였던 근세 관화에선 '''hio(히오)'''정도로 발음했었으나 청나라 말기 이후 현대관화에선 gi [ki](끼), ki [kʰi] (키), hi [xi] (히)음이 각각 현대음으로 바뀌면서 ji [t͡ɕi] (찌), qi [t͡ɕʰi] (치), xi [ɕi] (씨)로 구개음화되어 '''xue(쒸에)'''로 발음이 변형되어 버렸다. 광둥어 hok6, 객가어 ho̍k, 민베이어 hă, 민둥어 hŏk, 민난어 ha̍k(그리고 베트남어 học)으로 발음하는 남방방언과 비교하면 관화는 구개음화가 매우 심하게 진행되고 입성을 비롯한 받침음이 거의 사라진 방언이라 할수있다. 아울러 '사람 인人'자도 청나라 중기 시절까지의 근세관화에선 yin(인)으로 발음했었으나 청나라 말기 이후 ren(런)으로 발음이 바뀌게 되었다.
근세 관화의 발음을 한글로 표기한 노걸대언해를 보아도 갈 거去자는 '''큐''', 풀 해解자는 '''기에'''[5] 로 발음하도록 표기되어 있었으나,[6] 현재는 구개음화로 각각 '''qu(취)''', '''jie(찌에)'''[7] 로 발음하고 있다.
다만 산동성 동부지역 관화의 경우 청나라 중기 이전의 근세관화음을 보존하고 구개음화의 영향을 받지 않아 사람(人)을 ren이 아닌 yin이라고 발음하고 九를 jiu(찌우)가 아닌 giu(끼우)라고 발음한다. 구한말 화교에 의해 전래된 중국음식 중 라조기, 깐풍기에서 '기' 발음은 구한말 이주해 온 화교들이 상당수가 산동반도 동부 출신이었기 때문에 산동동부지역의 발음을 한글로 변환해 적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4. 역사
기원은 북송말기(12세기 초) 화북지역의 북방 중고한어가 관화로 갈라져 나온 것이 시초다. 이 북송말기 관화가 여진족의 금나라[8] , 몽골족의 원나라를 거쳐 원나라 말기와 명청시대엔 이 방언이 표준음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관화는 시대별로 중세 관화, 근세 관화, 현대 관화로 나뉜다.
- 중세 관화 시기: 12세기초부터 14세기까지 (북송 말기, 금나라, 원나라)
- 근세 관화 시기: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난징 방언 중심, 원나라 말기, 명나라, 청나라 전·중기)
- 현대 관화 시기: 20세기 이후 (베이징 방언 중심, 청나라 말기,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관화에 속하는 지역들은 다른 방언 지역보다는 방언 차가 심하지 않다. 그래도 너무 크므로 북방 방언을 셋으로 쪼개어서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분포를 살펴보면 베이징을 중심으로 화북 - 화중에 이르는 평야지대를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동북 3성이나 화북 - 화중과 달리 지리적으로 폐쇄성이 강한 쓰촨성이 관화 사용 지역에 포함되어 있는데, 원래 이 지역에서 사용되던 파촉(巴蜀)어가 절멸했기 때문이다. 명나라가 쓰촨 지역을 한화하고자 후난, 후베이 등 쓰촨 분지 바깥의 주민들을 이주시켜, 쓰촨에 남아있던 파촉어가 절멸했다. 명나라 이후로는 그 이전까지 이 지역에서 널리 쓰이던 독특한 방언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9] 현대 쓰촨 방언은 북경 표준어의 범위에 속하기는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독특한 억양과 체계를 가지고 있다.
5. 글과 문자
중국어, 백화문 참조.
6. 하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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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화의 세부 방언 지도(출처: 영어 위키백과)
관화는 대체로 관화계 방언 8가지에 진(晉) 방언을 합쳐 총 9가지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동북 관화(Northeast), 중원 관화(Zhongyuan), 북경 관화(Beijing), 난은 관화(Lanyin), 기로 관화(Jilu), 강회 관화(Jianghuai), 교료 관화(Jiaoliao), 서남 관화(Southwest), 그리고 진(Jin) 방언.
6.1. 북경어/표준중국어
북경어(베이징어)는 베이징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화의 방언을 말한다.
북경어는 현대 중국어의 표준 방언이며, 이를 토대로 근현대 중국계 국가에서 규범을 정리해 표준어로 삼은 것이 표준중국어이다. 표준중국어라는 말은 정치중립적 용어일 뿐이며, 실제로는 국가에 따라 보통화(중국), 중화민국 국어(대만), 싱가포르 표준 화어(싱가포르)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중국의 표준어(공용어) 개념은 원나라와 명나라 시기부터 성립되었으나 청나라 중기까지는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관화가 아닌 난징을 중심으로한 관화가 표준어의 기능을 했다. 그러나 청나라 말기 들어서 난징 지역이 태평천국의 난 등 여러 반란으로 인해 몰락하자 표준어의 중심은 급격히 베이징으로 쏠리게 되었고, 오늘날 모든 중화권 국가들이 베이징 중심의 표준말을 공용어로 쓰게 된다.
관화는 엄밀히 말하면 표준중국어가 아니지만 현대에는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표준중국어가 널리 보급되었기 때문에 표준중국어를 '관화(Mandarin)'로 일컫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중국어라고 함은 대개 이 언어를 일컫는다.
흔히 관화나 표준중국어를 북경어라 하기도 하지만 북경어(베이징 방언)는 관화의 하위 일파이며, 베이징 방언과 표준중국어는 100% 일치하지 않는다. (한국어에서도 표준어-서울말이 같지 않은 점과 동일.) 오히려 헤이룽장성의 하얼빈 같이 한족의 이주 역사가 짧아 방언이 거의 없다시피한[10] 개척 도시의 말들이 더 보통화에 가깝다. 표준중국어가 베이징 방언을 기초로 형성된 것 뿐이지, 베이징에서 쓰이는 말이 모두 표준중국어는 아니다. 북경어의 가장 큰 특징은 어미에 시도때도 없이 儿(er)을 붙이는 이른바 '얼화(儿化)' 현상.
성균관대학교 중국연구소에 따르면 중국 인구 중 약 8억 명이 표준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아마도 관화가 모어인 화자 수를 말하는 것 같다. 오늘날에는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표준중국어 보급 정책 덕에 교육 못 받은 지방 노년층이 아니고서야 중국 대륙에서 표준중국어(보통화)가 안 통하는 곳은 거의 없다. 오히려 소수 민족 밀집 지역인 윈난성 같은 경우는 표준중국어가 소수 민족간의 공용어 노릇을 하고, 상하이같이 방언 절멸을 걱정하는 동네도 있다. 홍콩이나 마카오도 1980년대에는 표준중국어 화자가 드물었으나, 2016년 현재는 표준중국어가 많이 통한다.
대만에서도 대만 정부가 국민당 독재 시절에 강력한 표준중국어 보급 정책을 펼쳤기에 절대다수가 표준중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대륙식의 중국어와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한국 사람이 문화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것처럼 대륙 사람도 대만의 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대륙과 대만은 남한과 북한보다 더 의사 소통이 잘 되는데, 이는 폐쇄적인 남북관계와는 다르게, 중화권[11] 은 드라마, 영화, 음악 등의 문화가 상당히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대만이 아닌 지역에 있는 중국계 화교들의 모국어는 대체로 자신의 출신 지역 방언(대개 중국 남부의 방언)으로 표준중국어와는 다르지만 다른 지역의 화교들과의 의사소통에는 표준중국어가 쓰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6.2. 진 방언
晉語. '''산시(山西) 성''' 중심 방언 지역. 사용지역은 내몽골 자치구서부 후허하오터 지역과 산시 성 북부, 허베이 성 서부지역에서 쓰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방 방언의 일부로 봤는데, 자세히 뜯어보니 북방 방언과는 좀 달라서 20여 년 전부터는 따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진 방언을 북방 관화와 나눠서 따로 설명하는 것에 이견이 존재하며 따라서 아직 그 자체만의 로마자 표기법도 정립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중국 학계에서는 대체로 관화와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북방 방언으로 보는 경우가 우세하다. 따라서 북방 방언은 관화 하나뿐만 아니라 진 방언까지 포함해 총 두 개라고 볼 수도 있다. 화자 수는 '''6,000만 명'''이다.
6.3. 민강화
쓰촨성 중서부 일대에서 사용되는 방언. 본래 관화의 쓰촨 방언이 관화와 다른 것도 다른 것이지만, 민강 방언은 그 다른 수준이 심각해 남송 시대와 그 이전시기에 쓰촨 성 일대에서 쓰이던 파촉어의 후계 언어가 아니냐는 설이 있다. 사용자는 3000만 명 정도.
6.4. 강회(江淮) 방언
난징 등에서 쓰이는 방언. 난징 방언이 가장 대표적이다.
6.5. 번외: 노국음(老國音)
20세기 초 중화민국 북양정부 시기 베이징 방언과 난징 방언 등 관화의 여러 방언 발음들을 참고하여 인위적으로 통일시킨 표준어. 그런데 너무 인위적이라 아무도 이 발음대로 읽지 않아서 유명무실한 표준어였다. 그래서 결국 노국음이 폐지되고 베이징 방언의 구어를 다듬은 신국음(新國音)으로 대체되었다. 이것이 중화민국 국어이고, 현 중화인민공화국 보통화와 싱가포르 표준화어의 기초가 된다.
[1] 북방 방언의 하위 방언인 산동 방언. 한국의 중화요리 메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데, 유린기, 깐풍기, 기스면의 '기'는 鷄(닭 계)를 산동 방언 발음으로 읽은 것. 표준 중국어는 '지'(jī)로 읽는다.[2] 거란족, 선비족, 몽골족, 실위족 등등 선비족은 아예 한족화된 뒤 수나라, 당나라를 건국했을 정도로 중국역사의 한 획을 그은 민족이었다.[3] 이처럼 입성이 단일화되고 이후 사라지는 과정은 오어와 민어의 일부 방언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북방음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이미 상고음에서 중고음으로 바뀌는 시대에 어말의 성문파열음, 그리고 /s/로 끝나는 운미(-s, -ps, -ts, -ks, -ʔs 등)가 각각 상성과 거성을 남기며 사라지는 과정이 있었다.[4] 가끔 홍콩인을 비롯한 남중국인들이 북방 중국인들을 북방오랑캐 혹은 한화된 몽골놈들이라 욕하는데, 홍콩 사람들이 쓰는 광동어가 중고한어의 음가를 관화보다 더 잘 유지했기 때문에 자부심도 많은 편이다.[5] 원문에선 '''계'''[6] 좀 더 후대에 간행된 중간노걸대언해(重刊老乞大諺解)에서는 去의 발음이 '''츄ㅣ'''로 표기되었다.[7] 중국어 ji는 무기음 이므로 지 보다는 '찌'에 더 가까운 발음이다. 물론 관화방언에 따라서 '지'에 가깝게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8] 당시 금나라와 대치하던 남송은 화북을 상실했고, 그로 인해 화남 지역이 주 영토였으므로 남송의 주류언어는 북송 말기 중고중국어로부터 분리되어 갈라져 나온 화북 방언이었던 초기 관화가 아닌, 중고중국어의 남방 방언이었다. 남송이 멸망한 것을 기점으로 중고중국어의 시대가 끝나고 원나라가 들어서면서 근고중국어 시대가 되었다.[9] 다만 이런 파촉어의 명맥을 완전히 끊어놓은 것은 명나라의 이주 정책이 아니라 명말청초 사천에 할거한 군벌 장헌충의 전설(...)적인 학살이라고 보기도 한다. 장헌충이 쓸어버린 사천으로 마침 청나라 팔기군의 입관으로 집을 잃은 북경 한인들이 옮겨진 결과라는 것. 명조 초기부터의 사민정책이냐 장헌충 시절이냐에 이견이 있다 뿐이지 어쨌든 청대에는 사천은 확실히 관화 지역이 되었다. [10] 다만 청나라 말기 동북 지방으로 집단 이주한 한족들 상당수는 산둥성 출신이라 이주 초창기 주민 상당수는 구어로 관화의 산동 방언을 썼을 것이다.[11] 중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마카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