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국가별 현황

 


1. 개요
2. 한국
2.1. 바둑 인구 급감
2.2. 인기 상승추세로 반전
2.3. 바둑 스포츠토토 도입
3. 중국
4. 일본
4.1. 제한시간
6. 한중일대 외 국가의 바둑
6.1. 미국
6.2. 유럽
6.3. 북한
7. 바둑 랭킹
7.1. 세계 랭킹
7.2. 한국 랭킹


1. 개요


바둑은 중국에서 유래해 한국, 일본 등에 전해진 이후로 공통적으로 오랫동안 즐겨 온 반상유희지만, 현대 바둑의 본격적인 역사는 제도적으로 바둑을 발달시켜 왔던 일본이 선두 주자로 나서면서 시작되었다.

2.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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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KBS 바둑왕전. 이창호 九단(좌) - 이세돌 九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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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GS칼텍스배. 신진서 九단(좌) - 이세돌 九단(우)
한국바둑의 경우 역사적으로는 삼국시대부터 흥했지만 조선시대 일본바둑에 주도권을 잃은 뒤로 해방 이전까지는 논하기 힘들고, 해방 직후에도 국제적으로 찬밥 신세였지만 조남철을 필두로한 일본 유학파들이 주축이 되어 국내 바둑의 기틀을 닦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재 유학파 조훈현과 그의 내제자 이창호 세대에 이르러 비로소 기세를 폭발시키며 세계 바둑계를 뒤흔들기에 이른다. 조훈현 九단이 마지막 일본 유학파 타이틀 보유자가 되고 그 이후 이창호 九단과 이세돌 九단으로 이어지는 순수 한국파 기사의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
조훈현이 저물고 이창호가 두각을 드러낸 1990년대부터 2010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20년 동안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압도적으로 우세한 종목이었다. 유일하게 비교할 수 있는 대상으로는 양궁(여자) 정도. 전성기 때는 쇼트트랙보다도 한국 바둑이 더 확실히 세계 최강을 지키고 있었다. 한국 바둑의 여명기와 중흥기에는 피겨 스케이팅김연아처럼 환경이 열악한 가운데 하늘이 내려준 스타로 인해 갑자기 급부상한 것도 일부 있었다.
1989년 세계 최대 규모로 탄생한 국제대회인 응씨배에서 한국 대표로 유일하게 출전했던 조훈현 九단이 우승한 이래 한국 기사들은 우승을 밥 먹듯이 해왔으며 1993년에는 '''모든 국제대회의 우승을 한국인이 독차지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후에도 이런 일이 꽤나 반복되었다. 1997년에는 서봉수 九단이 진로배에서 다섯 명의 한국 대표팀의 2장으로 출전하여 중국, 일본 대표 9명을 상대로 '''9연승'''을 거두어 우승을 결정지었고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23연속으로 우승하였다.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시대부터 세계를 장악하기 시작한 한국 바둑은 이후 최철한, 박영훈, 이세돌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더욱 입지를 굳혔다.
한국 기사들이 세계대회 결승은 꾸준히 올라가고 있지만 이제 결승에 올라가더라도 중국의 젊고 유망한 신예들이 많아서 이제 우승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1] 2013년 세계 대회에서 한국이 단체 기전은 전부 우승을 차지했으나, 개인전에서는 우승에 실패했다. 한국도 기전 규모도 상당히 축소되고 정상급 기사의 평균 연령층이 올라가는 등 인프라가 많이 약화되었고 중국 바둑의 약진으로 이전과 같은 압도적인 기세는 덜하다. 그래도 해외 보급을 부단히 해서 그런지 미국과 유럽의 아마추어 바둑 애호가들은 한국을 성지로 생각한다. 한상대 세계바둑사 시리즈

2.1. 바둑 인구 급감


한국의 경우에는 밑바닥 바둑 인구가 좀처럼 증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후원까지 줄어들어 바둑 기전 여럿이 없어지는 등 한국기원대한바둑협회의 마땅한 대책이 없이 악순환에 빠져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 바둑계의 대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 바둑갤에서도 바둑 망해간다는 한탄 글을 볼 수 있다.
참고로, 한국 바둑계는 初단이 九단이 되는 것보다 아마추어가 입단하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돌 정도이다. 初단이 九단으로 승단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마추어가 프로가 되기에는 각 지역 기원마다 은거고수가 널려 있기 때문. 그리고 한국은, 정부에서 인정하는 제도권안의, 정규 학교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 한국바둑고등학교명지대학교 바둑학과가 있다. 바둑학과에서 학부뿐만 아니라, 석/박사 과정까지 있다.

2.2. 인기 상승추세로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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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민국한국갤럽에서 조사한 여론조사.
대한민국의 바둑을 둘 줄 안다고 응답한 바둑인구는 1992년 정점을 찍은 이후 2004년에 바닥(20%)을 찍었다. 바닥을 찍었을 때부터 대한민국의 기업들이 바둑 후원을 안 해서 사라지고 있었는데, 2013년 여론조사에서 25%로 살짝 반등했다. 바둑에 관심 있다는 응답도 20%로 반등. 문제는 청년층이 바둑을 모르는 현상이 심하다는 것이다. 미래가 안 보인다.(...) 기업들이 다시 바둑대회를 후원해서 기전이 늘어나야 관심을 받으며 할 수 있고, 이는 바둑 인구의 증가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 한국기원2016년 3월 이세돌 - 알파고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로 바둑계가 더 알려지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그러려면 한국기원도 계속 바둑 보급에 노력해야 할 듯.
그래도 2016년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이후 추세 반전에 성공해서, 바둑 인구와 바둑에 대한 우호도는 높아지는 추세이다. 한국기원에서 2018년에 내놓은 여론조사에서도 그렇고, 바둑TV 시청률도 크게 상승중이다. 0.11%인 K리그보다도 높고, 심지어 2018-2019년 한국프로농구 올스타전 시청률이 0.093%다. 네이버 댓글에도 바둑 댓글은 적은 편인데, 이정도면 꽤 선방하고 있다고 봐야 할것이다.[2]
2018년 한국바둑리그 시청률은 '''0.26%''', 한국여자바둑리그 시청률은 '''0.358%'''까지 상승하여, 바둑 시청률이 '''한국프로농구까지 뒤집어버렸다'''. 기사 그리고 바둑기사들이 유튜브트위치, 아프리카TV 등으로 진출하여 이슈몰이를 하면서, 바둑 인터넷 방송으로 바둑을 접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2018-2019 프로농구 시청률은 0.19%다. 그리고 엠스플이 농구 중계 포기 선언을 했다. 참고로 한국바둑리그나 한국여자바둑리그 시청률은 프로야구 키움 nc kt급이라고 봐도 될듯하다.

2.3. 바둑 스포츠토토 도입


이전부터 바둑은 도박성이 강한 스포츠였다. 그래서 이전부터 스포츠토토 도입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의견은 계속 있었다. 이에 바둑에 스포츠토토를 도입하면 엄청난 돈이 들어오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실제로 공청회도 열었다. 할지 말지 아직 정식 발표가 나오지 않았고 논란도 있다. 2013년에 와서는 그냥 흐지부지 된 듯하다. 스포츠토토 바둑 적용의 제일 큰 문제는 바둑은 승부조작이 너무나 쉽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로 사설토토는 바둑 쪽으로도 범람해서 문제가 된다.''' 승부조작의 마수가 언제든 뻗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다가 2017년, 대한바둑협회한국기원이 다른 데에서는 반목을 하다가도 유소년 바둑인구 증가를 위한 예산 마련을 위해 바둑토토 추진을 서로 합의했다. 이에 2018년 한국기원 프로기사회에서 기사회 총투표를 시행하여, 찬성 101 vs 반대 59로 가결시켰다. 찬성의견 반대의견 투표결과 한국기원 이사회의 최종 승인을 거쳐서 문화체육관광부에 의견이 전달되면 실제로 바둑토토를 발행하게 된다. 바둑토토를 발행하는 것은 2019년으로 예정.

3.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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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중국 아함동산배. 구리 九단(좌) - 미위팅 九단(우)
문화대혁명 당시 바둑을 반혁명적인 것으로 규정해 잠시 바둑산업이 개차반이 났다가 이후 복권되는 등 침체기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바둑 인구가 많고 현재는 국가 차원에서의 관리도 충실한 편이라 2020년 현재는 한국과 엇비슷하거나 조금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정상급 기사들의 실력은 백중지세지만 기사층의 두터움, 인프라의 충실함 등은 중국이 한 수 위라고 보면 될 듯.[3]

4.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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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기성전. 이야마 유타 九단(좌) - 이치리키 료 八단(우)
일본은 현대 바둑 기전 시스템을 확립하고 정석포석, 을 연구하며 현대 바둑의 기초를 정립하여 1980년대까지 세계 바둑을 주도하였다. 특히 1980년대 초반까지는 '세계 바둑=일본 바둑'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국은 나라 이념에 휘둘리며 바둑은 박해받기 일쑤였고, 한국은 바둑은커녕 나라 구실도 힘들었던 터라 일본이 주도할 수 밖에 없었다. Go rating을 봐도 일본기원의 기사들이 상위권을 독차지하던 시절이었다. 이렇다 보니 세계 각지의 실력자는 일본기원에서 활동하거나 유학하는 것이 당연했고[4] 당시 일본바둑계를 주름잡았던 역사적인 기사들 중에서도 외국 출신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현대바둑의 아버지라 불리는 우칭위안, 60~70년대에 활약했던 린하이펑, 80~90년대에 활약했던 조치훈 등이 있다.[5]
그러나 1984년부터 시작된 중일 슈퍼 대항전에서 중국에서 '철의 수문장' 녜웨이핑이 일본의 정상급 기사들을 상대로 11연승을 거두고,[6] 일본에서 바둑을 배워 온 조훈현이 제1회 응씨배에서 우승하는 등, 일본바둑 천하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1990년 말까지는 요다 노리모토, 왕리청같은 톱기사들의 선전으로 그럭저럭 국제 경쟁력을 유지했지만 2000년대 이후 일본 바둑은 젊은 층의 바둑에 대한 기피로 인해 뚜렷한 쇠퇴를 보이기 시작하였고, 현재는 국제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이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정상급 바둑 기사들의 연수입은 여전히 세계 톱 10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데, 그 이유는 일본 내 기전의 상금이 웬만한 세계대회보다 높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상금이 많은 기전인 기성전의 경우 현재 우승상금이 무려 4500만엔(한화로 약 4억 8천만원 안팎)이다.[8] 반면 일본이 주최했던 메이저 세계대회들은 전부 폐지돼,[9] 2020년 현재 일본이 주최하는 국제 메이저 세계대회는 단 1개도 없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 다시 메이저 세계대회를 열어야 하는거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일본기원의 공식 입장은 "아직 메이저 개최 움직임은 없다. 계속 노력하겠다."이다.기사 다만 현재 일본이 주최하고 있는 월드바둑챔피언십의 경우 상금 규모 면에서 이미 메이저 세계대회와 별 차이가 없고 2018년에는 6강 토너먼트, 2019년에는 8강 토너먼트로 점차 확대되고 있어 이 대회가 향후 메이저 세계대회로 확대될 가능성은 있다.
한편 2016년 1월에는 일본에서도 중국과 한국처럼 '''바둑리그'''를 개최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시행되지 못하고 결국 '''무산'''되었다.

4.1. 제한시간


바둑에 '제한시간'이라는 룰을 처음 도입한건 일본 바둑계이다. 근대 이전의 바둑에선 애초에 시간제한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초기 현대바둑에선 혼인보 슈사이기타니 미노루의 대국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사람당 40시간이라는, 사실상 시간제한이 없는 수준의 넉넉한 시간을 부여받았지만, 타이틀전이 생기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제한시간이 줄어들게 되었다.
물론 제한시간을 점점 줄이고 있는 한국과 중국의 바둑 기전들과는 달리 일본의 국내 기전들은 지금도 제한시간을 넉넉하게 주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가장 상금이 많은 3대 기전(기성전, 명인전, 혼인보전)의 경우 본선 리그 제한시간은 5시간씩 주어지며, 타이틀전은 무려 8시간씩 주어진다. 때문에 많은 일본 프로 기사들은 제한시간이 짧은 대회에서 단련된 한국 및 중국 기사들과 붙을 경우 초읽기 등에 몰렸을 때 고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10][11]

5.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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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기왕전. 린쥔옌 九단(좌) - 왕위안쥔 九단(우)
1980년대 일본, 1990년대~2000년대 한국, 2010년대 중국 바둑이 세계 바둑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대만 바둑은 세계 바둑계의 중심에서 비껴나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대만 바둑 역시 세계 바둑 현황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다.기사 세계 최대의 국제 바둑 기전응씨배를 창설한 잉창치(應昌期 - 응창기)는 대만인이고, 1960~70년대 일본 바둑계 최정상권에서 활약했던 린하이펑(林海峰 - 임해봉)일본도 대만 출신이기 때문이다. 일본 여류 기전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셰이민먀오리현 출신 대만인이고, 2005년 LG배자이자 2000년대 후반 일본 1인자였던 장쉬 역시 대만인이다. 그 외에 천스위안 九단은 한국기원에서 입단하여 활동하다 중화민국병역의무 이행을 위해 대만으로 귀국해서 대만에서 최정상급 기사로 활약했고,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혼혈 헤이자자 七단은 모델 활동을 병행[12]하고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로 바둑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07년에는 당시 대만 바둑 1인자였던 저우쥔쉰(周俊勳 -주준훈)이 LG배에서 우승하며, 일본기원 출신이 아닌 순수 대만기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세계대회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 저우쥔쉰은 얼굴에 있는 홍반때문에 '''홍면기왕'''이라는 별명이 있으며, 대만 국어 교과서에 저우쥔쉰이 어린 시절 홍반으로 인해 집단따돌림을 당할 때 쓴 일기가 실려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기사
원래 대만도 세계 바둑을 주도하는 한 축이어야 했으나, 대만 내부에서는 정작 '대만기원'과 '해봉기원'의 주도권 싸움으로 인해 '''모든 바둑 대회가 아예 5~6년간 시행 중단되었던 흑역사'''도 있었다.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2000년 대만기원을 해산하고 신 대만기원을 만든 뒤에 구 대만기원과 해봉기원이 신 대만기원의 하부지구로 격하되면서 갈등을 봉합했다. 그 후에도 저우쥔쉰의 대만기원 제명 후 해봉기원 입적 등 갈등이 심심하면 터졌지만 2018년 현재는 이런 갈등도 많이 줄었다.
사상 처음으로 '''미국 기업을 끌어들인 국제 바둑대회''' 중환배(대만 중환그룹+미국 JP모건 체이스 2개국 합작 대회)를 개최하는 등 대만도 국제 대회 개최를 할 수 있는 바둑 기반 역량이 있으나, 가끔씩 보이는 수준이며, 중환배 폐지 이후 대만에서는 국제 바둑 기전을 개최하지 않고 있다. 2010년대 초반에 대만 최대의 금융그룹인 '''푸본금융그룹'''(2018년 한국의 현대라이프생명을 인수했다.)이 국제 바둑 기전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소리소문없이 묻혔다(...)
대만 국내 바둑 기전 중에서 가장 큰 기전은 기왕전이며 제한시간은 3시간, 1분 초읽기 5회다. 또 다른 기전인 국수전은 제한시간 2시간이다. 이렇듯 대만의 국내 바둑 기전은 보통 국제 바둑 기전의 표준적인 시간(2~3시간)과 비슷한 편이다.
대만의 계가법은 응씨배에서 채택하고 있는 전만법(응씨룰)이 기본 바둑 계가법이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는 일본식 계가법을 채택한 기전이 늘고 있다. 대만 최대 기전 기왕전도 일본식 계가법(덤 6집 반)을 채택하고 있다.
대만 바둑기사들은 최정상급 기사들을 제외하면 보통 투잡을 뛰는 것이 일상적이다. 대만 여성 기사들 중 가장 강한 헤이자자 七단도 모델 활동을 겸하고 있을 정도로 대만 국내 바둑 대회 상금이 적기 때문이다.

6. 한중일대 외 국가의 바둑



6.1.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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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바둑 콩그레스. 텍사스댈러스.
미국바둑연맹
미국 바둑 협회에 프로 기사들이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일본기원에서 프로 면장(免狀)을 받은 후 미국에서 활동하는 기사들이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the surrounding game"이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도 만들어지고 있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차민수 같은 한국의 프로 기사들이 직접 바둑 보급에도 힘쓰고 있다.
주로 미국 바둑협회 소속 기사들은 일본기원에서 프로 입단 시험을 치르는 편이다. 한국기원에는 입단 시험을 치르는 외국 출신 연구생이 거의 없다.[13] 규정상 금지된 건 아니나, 한국에 와서 바둑 교육을 받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한국기원 소속 연구생들의 생활이 열악한 편이라... 일본기원은 유학생들이 그래도 좀 있다. 외국인들이 편하게 연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잘 잡힌 편이기 때문이다. 중국기원은 외국인 유학생 금지라서 해당사항이 없다.

6.2.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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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바둑 콩그레스. (영국 런던)
유럽바둑총연맹 영국바둑협회 프랑스바둑연맹
유럽에는 프로 바둑을 담당하는 기원이 없고 바둑협회가 아마추어와 프로를 동시에 관할한다.[14] 유럽 바둑 연맹(European Go Federation)[15]유럽연합 전체를 관할하며, 비EU국가에도 지부가 있다. 개별 유럽 국가에도 국가별로 NOC같은 조직이 존재한다. 유럽에서는 라쇼드퐁(스위스), 함부르크(독일), 암스테르담(네덜란드) 바둑대회 등이 매년 개최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권위가 있고 규모가 큰 바둑 대회는 알파고와 대결했던 판후이의 우승으로 유명한 유럽 바둑 챔피언십(European Go Championship)이다. 하지만 참가자들의 레벨은 아직 그리 높지 못해 2013~2015 유럽 바둑 챔피언십 우승자인 판후이조차 프로 2단, goratings 점수는 3000점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유럽 바둑 저변 확대를 위해 오래전부터 일본에서는 보급 기사를 파견하는 등 바둑 보급 활동을 해왔고, 최근에는 중국과 한국에서도 보급 기사들을 파견해서 바둑 보급 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6.3. 북한


북한도 바둑 인구가 있지만 실력은 한중일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떨어진다. 최고수가 한중일의 아마추어 수준이다. 그래도 북한 기사들이 세계대회나 남한 대회에 가끔 초청되어서 출전하는 경우가 있는데[16] 남한 기사들이 북한 기사들 만나면 인터뷰하고 사인 받으려고 난리가 날 정도로 반응은 좋다.
남북한관계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북한 기사들이 옛날 농촌 청년처럼 순수하다고 남한 기사들이 좋아한다.(...) 북한 기사들과 많이 인터뷰 해본 유창혁 9단이나 서봉수 9단 등도 북한 기사들이 예의가 바르다며 칭찬하기도 했다.

7. 바둑 랭킹



7.1. 세계 랭킹


현재 바둑계에는 축구의 FIFA 랭킹같은 공식 세계랭킹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축구연맹처럼 세계 프로 바둑계를 총괄할 수 있는 권한과 권위가 있는 단체가 없기 때문이다.[17]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바둑 세계랭킹은 Go rating인데, 이건 프랑스의 레미 쿨롬 박사가 'WHR(Whole-History Rating·전체 기간 순위 측정)' 알고리즘을 적용해서 만든 랭킹으로 당연히 '''비공식'''이다.#

역대 바둑 프로 기사들의 Go rating을 보여주는 동영상. 일본의 초기 강세와 한국 의 장기집권, 현 중국의 강세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Go rating 사이트
그 후 알파고가 인간 프로 바둑 기사들의 레벨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수준이 되자, Go rating 사이트에서는 알파고를 랭킹에서 삭제했다.

7.2. 한국 랭킹


한국기원에서도 Elo 레이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한국 랭킹을 매기고 있다. 1달에 한번씩 그 달에 기사가 두었던 바둑들의 등급을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분류하고 상대방의 실력, 그리고 승패에 따라 승점과 감점 가중치를 달리 하여 계산하는 방식이다. 2010년에 한번 개정된 것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

역대 한국 랭킹 1~5위의 변화를 보여주는 동영상.


[1]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의 신예들인데, 이들은 국가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관리를 받고 무수한 연습상대와 다양한 중국 내 기전 참여 기회를 제공받기에 세계대회 토너먼트에서 우승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중국의 신예들이 다른 기사들과의 경쟁을 하다보니 하위 단계에서 다른 신예들에게 탈락을 하는 경우마저 발생해 이전 한국의 절대 1인자 체제처럼 독주하는 케이스가 없고 여러 신예들이 차례차례 세계기전을 하나씩 우승하기에 의외의 복병에게 당한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다.[2] 역으로 말한다면, K리그와 프로농구가 그 진입장벽 매우 높고 시간도 오래걸리는 바둑보다 시청률이 낮을 정도니 두 리그가 얼마나 부진한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3] 사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랭킹 10위권까지는 한국이 우세, 10위권 밖으로는 중국이 우세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2020년 현재는 최상위권도 커제를 앞세운 중국이 근소하지만 우세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2000년 이후 입단한 한국 기사들의 vs중국전 승률이 40%에 못 미친다고 한다.[4] 한국 내에선 일본 유학파로 조남철, 김인, 조훈현 등이 대표적. 이들 이름만 봐도 80년대까지 최정상급 기사들은 거의 유학파라고 봐야 했고 서봉수 정도만이 예외였다.[5] 다만 예전과 달리 이제는 한국의 유망주들이 일본에 오는 경우는 없고 아직까지 국내 인프라가 크지 못한 대만 출신 유망주들이 많이 오는 편이다.[6] 이 공적으로 녜웨이핑은 중국 정부로부터 기성(棋聖) 칭호를 받기도 했다. 다만 녜웨이핑은 80년대 후반부터 열리기 시작한 메이저 세계대회에서는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다.[7] 그래도 2010년대 후반부터 이치리키 료, 시바노 도라마루 등 젊고 강한 기사들이 등장하면서 조금씩 경쟁력을 회복해 나가고 있다.[8] 그래서 과거 기성전 6연패에 빛나는 후지사와 슈코 九단은 "나는 1년에 4판만 이긴다" 라는 말을 했는데 기성전 결승은 7전 4선승제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사실은 후지사와가 기성전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뽐냈으나 그 외 나머지 기전에서는 성적이 좋지 못했다. 이를 두고 일본의 한 바둑 평론가는 "일본에는 2명의 슈코가 있다. 후지사와 슈코, 그리고 괴물 슈코"라는 평을 남긴 적이 있다.[9] 세계 최초의 메이저 세계대회 후지쯔배도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을 계기로 폐지되었고, 2002년부터 개최되었던 메이저 세계대회 도요타덴소배는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2009년에 폐지되었다.[10] 그래서 일본도 국제 경쟁력 회복을 위해 천원전, 왕좌전, 십단전 증 일부 기전들의 제한시간은 3시간으로 줄였다.[11] 반대로 한국에는 강동윤 九단처럼 제한시간이 긴 장고바둑에서 고전하는 정반대의 케이스도 있다.[12] 단순히 모델 일만 하고 있는건 아니고 예능 프로에도 나오고 있다.[13] 한국에서 활동 중인 코세기 디아나, 마리야 자카르첸코는 외국인 특별 입단으로 입단했다.[14] 한국은 한국기원(프로)과 대한바둑협회(아마) 단체가 나눠져 있어 갈등과 반목이 매우 심하다. 기원과 협회를 중재하고 최종적으로는 대한양궁협회대한축구협회처럼 단일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는 교감이 있으나 임의단체인 한국기원은 '상징성'을, 법정단체인 바둑협회는 '법적근거'를 가지고 반목하고 있어 바둑 단체 통합에 진전이 없다.[15] 현재까지 37개 국가가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16] 김정은 정권 들어서면서 조선기원(북한기원) 소속 기사의 세계대회 출전에 애로사항이 꽃피는 중이라고 한다. 조선로동당 측에서 국외출장허가를 잘 내주지 않는다는 듯. 탈북할까봐... 의외로 김정일 시절에는 조선기원 소속 기사들이 세계대회 많이 나왔고, 남한 국내대회에서도 1년에 2-3차례 정도 본선 시드 배정으로 북한 선수를 출전시켜준 적도 있다.[17] 국제 바둑 연맹이라는 단체가 있긴 하지만 이 단체는 국제 축구 연맹같은 권한과 권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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