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외교

 




1. 개요
2.1. 대한민국과의 관계
2.2. 북한과의 관계
2.3. 중국과의 관계
2.4. 일본과의 관계
2.5.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3.1. 스페인과의 관계
3.2. 독일과의 관계
3.3. 프랑스와의 관계
3.4. 영국과의 관계
3.5. 이탈리아와의 관계
4.1. 볼리비아와의 관계
4.2. 페루와의 관계
4.3. 아르헨티나와의 관계
4.4. 브라질과의 관계
5. 지역별 관계
6. 관련 문서


1. 개요


칠레의 외교에 관한 문서.
칠레는 서방 국가들과 우호적이다. 이 점이 볼리비아,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과 대비되는 부분이다.[1] 하지만 2011년과 2013년에 반미 시위도 있었고 칠레 국민들이 무조건 미국과 서방세계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아니 반미감정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애초 그 피노체트는 미국이 만든 사람이다.
남아메리카 바깥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세계 최초로 미국러시아를 모두 무비자로 갈 수 있는 자격을 최초로 얻기도 했다. 이는 현재 지구상에서 단 3개국만 허락된 특권으로, 대한민국브루나이가 각각 2, 3번째가 되었다. 러시아와 미국 둘 다 무비자로 가기 힘든데 러시아는 특히 적성국가인 일본, 영국, 미국, 우크라이나, 폴란드, 스웨덴 등의 국적자들에게는 아주 까탈을 부리며 이 나라들은 당연히 러시아에 갈려면 '''초청장'''과 함께 비자가 필요하다. 베트남 역시 한국은 무비자 입국이 되지만 일본, 영국, 미국 여권은 비자를 받아야 한다.
또한 제3세계 중립국들이 모여 만든 기구인 비동맹노선(Non-Alignment Movement)의 정회원국이기도 하다.

2. 아시아



2.1. 대한민국과의 관계




2.2. 북한과의 관계


북한과는 1972년에 수교하였는데 바로 이듬해인 1973년에 극우이자 박정희 지지자인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벌여 집권하자 공산국가 따위와는 단교한다며 국교를 단절하였다가 피노체트가 퇴장한 후인 1992년에 재수교하였다.

2.3. 중국과의 관계


칠레는 오래전부터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피노체트 때는 중화민국을 승인하고 수교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다가 민주화 이후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했다.
앞서 말했듯 중국인인 19세기 아편전쟁 후 건너온 청나라 사람들인 쿨리에서 비롯되어 이민 역사가 길다. 피노체트 시절에는 반공기조 때문에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하지 않고 대만중화민국을 승인하고 수교하다가 나중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해 외교관계를 갖는다.
특별행정구인 홍콩, 마카오에는 칠레 출신 이주자들이 있으며 홍콩에서 이국적 관광지로는 칠레를 뽑는다. 칠레는 홍콩과 그리 멀지 않은 호주를 거쳐도 돼서 생각보다 접근성도 뛰어난 편에 속한다.
경제적으로 상당히 연관이 깊다. 정치적으로 영향력 확대 문제인 패권주의가 아닌 경제적 교류로는 중국과 관계가 깊은 나라가 많으니 이상할 건 없다. S&P 분석에 따르면 중국 성장률이 반토막날 시 피해 보는국가 첫번째로 칠레를 꼽았다 연합뉴스

2.4. 일본과의 관계


일본도 칠레와 외교관계를 맺었다. 쿨리가 들어가던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메이지 유신 후 신대륙으로 보낸 농업이민 중 일부가 칠레로 오기도 했다. 일본 농업이민은 대게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하와이, 캐나다 밴쿠버, 멕시코 캘리포니아 반도, 페루, 브라질 등이 주 목적지였는데 이 중 페루로 갔던 사람 일부가 칠레로 간 것이었다.
1937년 6월경 칠레가 일본 제국에게 살라스 이 고메즈 섬을 포함해 이스터 섬을 매각하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영미와의 외교가 극심하게 악화될 것을 우려해 실제 진행되지는 않았다.[2]
다른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처럼 칠레와 일본은 매우 우호적인 편인데 양국은 둘 다 TPP에 가입되어 있고 경제분야에서는 일본 기업들이 대거 진출했다.

2.5.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19세기에 칠레에는 아랍인들이 이주했다.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출신자들인데 시간이 지나며 이들은 칠레에 대부분 동화했다.
칠레는 경제적으로 아랍 국가들과 밀접한 면이 있다. 특히 신흥국인 아랍에미리트와 관계가 깊으며 팔레스타인 이민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편이기도 하다. 더구나 요즘에는 소말리아, 예멘, 차드, 모리타니 등 정정이 불안정한 타 아랍국가 출신 난민들도 칠레에 정착하기도 한다. 이러한 아랍인 이주민들 덕에 칠레에는 이슬람교 모스크가 곳곳에 들어서 있다.

3. 유럽



3.1. 스페인과의 관계




3.2. 독일과의 관계


칠레 육군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 삘이 나는 정복과 군장을 사용한다. 아무래도 독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국가라 그 영향이 극심하게 남아 있다. 심지어 제식도 그 유명한 구스 스탭을 하는데, 과거 구소련 영향권의 국가들의 그것이 아니라 빠르고 절도있는 나치 독일의 그 스타일 그대로 똑같이 한다.
거기다 칠레군은 매년 독립기념일 행사로 군 수뇌부는 물론 무려 대통령이 참석하는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하는데, 슈탈헬름피켈하우베를 쓰고 독일식 정복을 차려입은 1개 군단수준의 인원이 프로이센식 구스 스탭을 하는 모습을 보면, 여기가 대체 어디인가 싶을 정도다.
이것은 칠레에 19세기에 이주한 독일인 이민자들 덕이다. 마푸체를 갈아엎는 과정에서 남부 파타고니아에 독일과 구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이민자를 대규모로 받아들인 게 칠레 정부로 특히 추운 날씨의 알프스 산맥 언저리에 살던 바이에른인과 오스트리아인들이 대거 기후와 지형이 비슷한 파타고니아로 건너왔다. 그래서 남부 칠레의 스페인어 방언은 독일어와 남슬라브어 억양이 섞여 있으며 아직까지 독일어를 집에서 쓰는 가정도 흔하다. 과거 주 대한민국 칠레 대사를 역임한 페드로 슈미트(Pedro Schmit)대사가 독일계 칠레인이며 미셀 바첼레트 전 대통령도 독일계 칠레인이다. 이러한 역사 덕에 독일-칠레 간 관계는 아주 좋으며 독일은 남미 대륙으로의 확장성에 있어 칠레를 꼭 있어야 할 중요한 파트너로 본다.

3.3. 프랑스와의 관계


프랑스와는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다. 프랑스인 이민자들도 북중부 지역에 스페인인, 이탈리아인들과 함께 같이 들어와 프랑스계 칠레인들도 있으며 아직까지 가정에서 프랑스어를 쓰기도 한다.
비록 마푸체 왕으로 옹립된 프랑스 청년 오를리 앙투안 건 같은 일도 있었지만 프랑스가 딱히 칠레에서 행패를 부린 나라는 아닌지라 19세기 칠레 독립 후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현재도 교류가 많다. 축구에서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칠레 축구 국가대표팀 간 친선경기가 자주 열리는데 2002년 칠레가 프랑스를 1-0으로 잡은 적이 있다.

3.4. 영국과의 관계


영국과는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다. 영국은 19세기에 칠레와 외교관계를 맺은 이후 칠레에 있어 중요한 파트너로 유독 영국인들이 칠레에 자주 드나들었고 영국 영향이 강했다. 그러면서 영어 단어가 칠레 스페인어에 섞이기도 했다. 이러한 칠레를 들락거리던 영국인 중 아예 칠레로 이주해 알박기를 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에두아르드(Edward) 가문이 대표적인 예다. 물론 이 사람들은 영어를 안 쓰다보니 잊어버리고 그냥 스페인어를 쓰지만 성씨가 앵글로색슨 성씨라 금방 티가 난다. 그리고 영국인을 따라온 아일랜드인들도 알박기를 시전하기도 했는데 칠레 독립영웅 베르나르도 오히긴스가 원래 아일랜드계 칠레인이었다. [3]
아르헨티나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다툼과 7년 전쟁 당시 영국 해군부에노스아이레스 침공 등의 문제가 더해져 영국과 사이가 아주 안 좋은데 비해 칠레는 영국과 쭉 관계가 깊고 긴밀했으며 이것이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 공군에 영공을 개방하는 실수로 이어졌다. 아르헨의 라이벌이라는 브라질조차 깠던 이 사건 때문에 한동안 칠레는 타 남미 대륙 국가들과 사이가 서먹했다가 최근 화해했다.

3.5. 이탈리아와의 관계


이탈리아와는 19세기에 외교관계를 맺은 이후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칠레 북중부에는 스페인계와 함께 이탈리아계 칠레인들도 대거 살고 있으며 이들은 초기 식민개척 때 스페인 왕실이 불러온 사람들이었다. 이웃 아르헨티나가 유독 이탈리아계 존재감이 높은 것과 달리 칠레에선 중북부 백인 주류였던 바스크, 갈리시아인들에 좀 눌려있긴 했으나 이들도 상당한 숫자를 자랑한다. 이탈리아인 이민자들은 칠레에 피자, 파스타이탈리아 요리를 보급하기도 했다.

4. 아메리카



4.1. 볼리비아와의 관계



칠레와 볼리비아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했지만, 영토문제로 인해 갈등을 빚고 있다.

4.2. 페루와의 관계



페루와도 태평양 전쟁 당시 페루가 차지하고 있던 아리카, 타라파카, 타크나 등 남부 해안가 땅 일부를 뜯어가 페루하고도 사이는 원만하지 못하다.[4]
최근에는 해상 영토 분쟁이 해결되어 사이가 원만해졌다. 칠레와 페루는 APECTPP에 둘 다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고 외교적으로도 일단 둘 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우호적인 편에 속한다.

4.3. 아르헨티나와의 관계


아르헨티나하고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후 파타고니아와 아타카마 사막 지대, 티에라델 푸에고 섬의 소유권을 놓고 국경/영토 분쟁을 벌였으며[5] 게다가 현재에도 국경을 접한 안데스 산맥 남부 지역에 위치한 세로 무라욘과 피츠로이 산의 영유권을 두고 국경 분쟁이 존재하고 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을 놓고 아르헨티나와 싸우고 있었던 영국을 지지하여 아르헨티나하고도 사이는 좋지 않았다. 무려 영공까지 개방해줘서 남미국가들 대다수가 칠레를 극딜한 적 있었다. [6] 하지만 피노체트 군사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7] 지금은 그 당시에 비해 다소 사이가 좋아진 편이다. 이 두 나라의 관계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영어판 위키의 칠레-아르헨티나 관계 항목에서 볼 수 있다.

4.4. 브라질과의 관계


남미에서는 브라질과 국경을 맞대지 않은 두 나라 중에 한 나라라서 그런지[8] 브라질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다. 아예 브라질의 UN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브라질의 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는 남미 국가들의 사이에서 브라질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적극 지지할 정도이다.
양국 모두 개신교 교세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칠레 개신교는 독일계 칠레인들의 루터교 전파에서 시작되었으며 브라질은 오순절교회 신자가 많다.
축구로 들어가면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을 월드컵에서 늘 따라다니던 팀으로 아직 브라질을 이겨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2002년 한일월드컵 남미 지역예선에선 2000년 8월 룩셈부르고 감독[9]이 이끌던 브라질을 마르셀로 살라스의 골로 1-0으로 격파하는 이변을 일으킨 바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안 그래도 한수 아래라 생각한 콜롬비아에게 남미예선 첫 경기부터 0-0으로 비기며 불안하게 출발한[10] 브라질은 이후 약체로 비웃던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에게도 깨지는 등 계속 깨지면서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으며 룩셈부르고 감독도 모가지가 날아갔다. 이후 칸디뇨 코치가 임시로 감독을 하면서 베네수엘라 축구 국가대표팀을 마라카이보 원정에서 7-0으로 대파해 겨우 체면을 살렸다. 그리고 레앙 감독이 취임했으나 여기는 더 꼬여서(...) 숙적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몬테비데오 센테나리오 원정에서 1-0으로 깨지고 심지어 최약체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라파스 원정에서 지는 등 망신살 뻗치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의 취임 후 겨우 이래저래 만회해가며 본선에 진출했다. 월드컵 본선에선 늘 브라질이 칠레를 이겼으며 가장 최근엔 자국에서 열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전에서 또 칠레를 이겼으나 이번엔 경기내용이 신통찮았고 결국 미네이랑의 비극이라는 개망신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5. 지역별 관계



6. 관련 문서


[1] 칠레는 주변국들과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2] 일본 외무성 외교 사료 Q&A 쇼와 전전사[3] O'는 아일랜드인 성씨에서 흔하다. 코난 오브라이언도 아일랜드인이라 O'brian이라고 쓴다.[4] 타크나는 1929년에 칠레가 페루에게 반환했다.[5] 사실 칠레는 티에라 델 푸에고 섬 전 지역와 파타고니아의 대서양 연안 지역을 합병하려다가 아르헨티나와의 세력 다툼에서 밀려 파타고니아의 대서양 연안 지역을 합병하지 못하고,티에라 델 푸에고도 아르헨티나와 영토를 동, 서로 분할하여 섬 동부 지역을 아르헨티나에게 내주고 서부 지역만을 차지했다.[6] 헌데, 특이한 건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인 카를로스 메넴의 아내인 세실리아 볼로코(Cecilia Bolocco)는 칠레 사람이란 거다. 메넴 전 대통령이 블로코와 결혼하려고 했을 때도 아르헨티나 국내에서도 악질 칠레 여자와 왜 결혼하냐며 메넴 전 대통령을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도 아르헨티나에서의 행보도 좋지 않았는데 2001년도에 아르헨티나 국기를 모독하고 칠레 국기를 찬양하는 언행을 보이는 등 아르헨티나 내에서도 욕을 먹기도 했었다.[7] 영어 위키백과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분쟁 관련 항목에 있는 설명에 의하면,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진 후 칠레의 민주주의 정부에서는 포클랜드 문제에 있어서 아르헨티나를 지지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8] 나머지 한 나라는 에콰도르[9] 독일계 브라질인으로 공교롭게 성씨가 룩셈부르크라는 국명과 비슷하게 들린다.[10] 물론 그 땐 보고타 원정이라 고산병 여파도 좀 있었다만 어쨌든 브라질은 경기내용이 그렇게 쉴드를 쳐 주기에는 너무나 형편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