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퓨전 판타지와 일본 이세계물의 비교
1. 개요
한국의 이세계물 작품군인 퓨전 판타지와 2010년대 이후 유행하는 일본의 이세계물 장르를 비교하는 문서.
2. 상세
2010년대 이후 일본 라이트 노벨에서 이세계물이 유행하면서 한국 퓨전 판타지와 일본의 이세계물 유행을 비교하는 사례가 종종 존재한다. 둘 모두 판타지를 배경으로 원래 살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주인공이 넘어가는 서사를 차용한 장르인 만큼, 겉보기에는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 때 주로 비교되는 대상이 2000년대 초중반 한국에서 유행했던 이고깽 등의 퓨전 판타지 작품들인데[1] 결론부터 말하면 두 장르 간의 연결고리는 극히 미약하다.
일본 이세계물의 원조는 성전사 단바인으로 한국보다 몇 년이나 앞서 이세계물이라는 장르를 선보였으며, 그렇기에 간혹 이세계물은 일본이 원조며 한국의 퓨전 판타지는 일본의 그것을 따라한 거라는 주장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성전사 단바인은 이세계로 가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거대로봇물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일본에서''' 현재 소설가가 되자및 라노벨 업계에 유행하고 있는 판타지 배경 이세계물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은 제로의 사역마[2] 인데, 제로의 사역마는 2004년 출간 작품이다. 이에 비해서 한국의 판타지 이세계물인 '퓨전 판타지'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인 사이케델리아는 '''2000년 출간작''', 묵향 2부 다크 레이디는 '''1999년 출간작'''이다. 한국의 퓨전 판타지(이세계물) 유행이 일본의 이세계물에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은 '''시기적으로도 성립이 불가능한 셈이다.'''
물론 일본이 이세계물을 먼저 선보인 것은 사실이고 2010년대 이세계물 유행 이전에도 적지 않은 수의 이세계물이 일본에서 창작되기는 했지만, 묵향과 다크메이지, 소드 엠페러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퓨전 판타지에는 묵향의 타이탄과 기갑물 설정에 영향을 끼친걸로 추정되는 천공의 에스카플로네를 제외하면 일본의 이세계물이 한국 퓨전 판타지에 끼친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3] 오히려 마나=기나 소드마스터, 서클 매직 같은 설정만 봐도 알 수 있듯 한국의 퓨전 판타지는 무협소설과 드래곤 라자나 카르세아린 같은 1세대 국산 판타지 소설의 영향을 훨씬 더 크게 받았다.[4]
2000년대 한국 퓨전 판타지가 주인공이 낮선 세계에 마주하는 하는 상황에 중점을 둔다면, 일본의 이세계물은 낮선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중점으로 둔다.
세부적으로 본다면 일본은 깽판물이 절대다수였던 2000년대 한국의 퓨전 판타지와는 다르게 일상물 요소가 중심인 슬로우 라이프물이나 쿠킹 판타지도 인기가 많다는 걸 들 수 있다.
또한 일본 이세계물에서는 2000년대 퓨전 판타지와는 다르게 소드 아트 온라인과 JRPG에서 유래된 스테이터스 같은 게임적 요소가 작품 내에 쓰이는 것도 차이점인데, 이는 일본의 이세계물이 소드 아트 온라인 등의 겜판소 유행 이후 그 영향을 받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1세대 정통 판타지 소설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퓨전 판타지와의 명백한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용사나 용사소환 등의 개념이 필수요소로 자리잡은 일본 이세계물과는 달리 2000년대 한국 퓨전 판타지에서는 용사라는 호칭이 거의 쓰이지 않았다.
주인공이 판타지 세계로 차원이동하게 되는 계기 역시 드래곤이나 대마법사의 마법실험이나 우연히 벌어진 사고, 적의 사술이나 진법에 당해서 이동하는 등 일본 이세계물의 이세계 전생 계기인 용사소환이나 환생 트럭과는 명백히 다르다.
또한 주인공한테 치트 능력을 줄 때 신님전생을 주로 사용하는 일본 이세계물과는 달리 2000년대 한국의 퓨전 판타지는 주인공한테 먼치킨 능력을 부여할 때 드래곤이 주로 등장해서 주인공한테 무술과 마법을 가르쳐 주거나, 마나를 넘겨준다는 것 역시 차이점이다.
이후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의 퓨전 판타지는 MEMORIZE를 기점으로 인간불신, 회귀물, 갑질, 사이다, 튜토리얼, 상태창, 냉혹한 주인공 등의 요소를 메인으로 하는, 사실상 2000년대의 퓨전 판타지와 이름만 같고 완전히 다른 장르로 변모하게 되었고 묵향 이후로 기존 퓨전 판타지의 필수요소가 된 마나=기, 소드마스터, 서클 매직, 묵향/경지, 현대인 천재론, 판타지를 여행하는 현대인을 위한 안내서 등의 세계관을 전부 폐기하고 상태창과 튜토리얼 등 게임 요소를 도입하는 건 물론 환생좌를 기점으로 중세 유럽풍 판타지 세계관이라는 틀까지 벗어던지면서 세계관, 클리셰, 캐릭터, 스토리 전개 모두가 기존의 퓨전 판타지는 물론 일본의 이세계물과도 완전히 동떨어진 양상으로 장르가 변화하게 되어 현재의 한국 퓨전 판타지(한국식 이세계물)와 일본의 이세계물은 공통점이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애초에 장르 호칭부터가 이세계물(일본)과 퓨전 판타지(한국)로 완전히 다르다. 일본의 이세계물이 이세계 소재를 다룬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면 한국의 퓨전 판타지는 무협소설과 판타지 소설을 포함한 다른 장르의 작품들을 서로 퓨전한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명칭으로 어원부터가 분명히 구분된다.
또한 일본 이세계물과 한국 퓨전 판타지가 가진 차이점은 장르명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이세계물과 한국의 퓨전 판타지는 겉보기에는 유사한 클리셰는 사용하지만 그러한 클리셰를 부르는 호칭부터가 다르다.
당장 판타지 세계를 부르는 호칭부터과 이계(한국)와 이세계(일본)로 구분되며[5] 이종족(한국)과 아인종(일본), 소드마스터(한국)와 검성(일본)[6] , 서클 매직(한국)과 속성 마법(일본), 환생(한국)과 전생(일본), 차원이동(한국)과 이세계 전이(일본), 먼치킨(한국)과 치트(일본), 용병(한국)과 모험가(일본)[7] 등등 한일 양국의 장르소설에서 비슷한 개념을 서로 다르게 칭하는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다.
만일 한국 퓨전 판타지의 기원이 일본 이세계물에서 왔다면, 일본과 같거나 비슷한 단어들이 한국 퓨전 판타지 내부에서도 사용되어야하는데[8]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점으로 미루어봤을 때 한일 양국의 두 장르가 기원이 다름을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
이세계 전생물이 이세계 전이물보다 훨씬 비중과 인기가 높은 일본의 이세계물과는 다르게 한국의 퓨전 판타지는 전이물에 해당하는 차원이동물과 전생물에 해당하는 환생물이 퓨전 판타지 내부에서 거의 대등한 비중과 인기를 가졌었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또한 이고깽, 사축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인 주인공이 대다수인 일본 이세계물과는 다르게 2000년대 한국 퓨전 판타지는 사이케델리아, 아이리스로 대표되는 현대인 주인공과 묵향, 다크메이지, 이드로 대표되는 무림인 주인공이 퓨전 판타지 내부에서 둘 다 인기를 얻어 서로 대등한 비중으로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 역시 가장 큰 차이점중 하나이다.
세계관적인 면에서도 같은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한국 퓨전 판타지의 경우에는 무협소설의 설정을 직접 결합한 묵향의 영향으로 인하여 무협 설정이 그대로 도입되어 JRPG의 영향을 받은 일본 이세계물과는 내용적인 면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묵향의 영향으로 한국 판타지 세계관에서는 깨달음 및 경지 달성 추구, 기공 설정, 단전에 대응하는 마나홀 설정 등의 무협소설 설정이 무림고수에 대응되는 기사뿐만 아니라 마법사, 정령사 등 모든 판타지 설정의 기반에 자리잡게 되었고, 이러한 무협 설정들은 헌터물 등 웹소설 시대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보다 높은 경지를 도가나 불교 사상에 기초하여 깨달음을 통해 인간이 정신적으로 초월적인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신화를 가지고 살아왔고 그 설정이 무협을 거쳐 판타지에 도입된 영향이다.
등장하는 종족, 몬스터의 차이도 있는데 엘프, 마족 등 대중적인 판타지 종족은 별 차이가 없지만, 오크, 트롤, 고블린 등만 나오는 한국의 판타지물과 달리 일본의 이세계물은 훨씬 더 다양한 몬스터들이 나온다.
또 드래곤에 대한 묘사도 차이가 있는데, 한국의 판타지물에서 드래곤은 세계 최강의 종족, 신의 대리인으로 등장하지만, 일본 이세계물의 드래곤은 그저 강력하고 지능 높은 몬스터로 묘사되는 것이 그 차이이다. 물론 모든 작품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드래곤이 강력한 몬스터로 등장하는 한국 작품이나 드래곤이 최강의 종족으로 등장하는 일본 작품도 있다.
또 한가지 큰 차이점은 바로 '''국뽕'''인데,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자국 혐오가 대세가 되어 국뽕 자체가 사장되어버린 201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의 웹소설과는 다르게 과거 2000년대~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산 양판소에서는 강철의 열제 등 국뽕 작품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한국의 국뽕 양판소는 대다수의 작품들이 '한민족,한국의 우월함'보다는 '현대인,지구인의 우월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반면 현재의 일본 이세계물은 반대로 '일본 대단해' '우수한 야마토 민족'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과거 2000년대 한국의 국뽕 양판소와 비교해서도 그 비율이 엄청나게 많다. 예를들어 '서양에게 전수받은 문명'을 가지고 일본이 부심을 부리는(...) 어이없는 전개는 과거 2000년대 한국식 이고깽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행태였다.
번외로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 한국 웹소설 시장에서 기존 2000년대 퓨전 판타지나 한국식 이세계물, 망나니물, 책빙의물, 게임빙의물, 귀환물, 탑등반물 등의 기존 국산 이세계물 작품군과는 맥락이 다른, 일본 이세계물의 클리셰를 차용한 작품들이 일부 발매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내에서 일본 이세계물의 클리셰를 차용한 작품군은 국내 웹소설 시장에서 한국식 이세계물을 포함한 기존의 국산 이세계물 작품군을 밀어내지도 못했고, 주류 장르로 부상하지도 못하였으며, 아직까지 소수 마니아층이 즐기는 극히 마이너한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
3. 용어 비교
단, 이는 2000년대의 기준이다. 윗 문단에 상술한 것처럼 2010년대 이후에는 검성, 이세계, 전생 등의 용어와 모험가 설정 등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수입되어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4. 결론
결과적으로 따져보자면, 2000년대 한국의 퓨전 판타지와 2010년대 이후 일본 라이트 노벨의 이세계물은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진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기원을 가진 두 장르가 서로 지나친 유사점을 보이는 것은, 서로 비슷한 정서와 주제를 가진 채 만들어진, 일종의 수렴 진화를 거친 장르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이세계물이나 2000년대 한국의 퓨전 판타지는 둘 모두 10대를 타겟으로 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리만족에 충실한 장르였으며, 그 대리만족을 주는 수단이 현실세계가 아닌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먼치킨이 되어 깽판을 친다는 거였기 때문이다.
또한 2000년대 한국의 퓨전 판타지에 영향을 준 90년대 PC통신 시절 한국의 1세대 판타지 소설 작품들이 슬레이어즈, 로도스도 전기 등의 일본 판타지 작품의 영향을 받았기에 세계관 설정에서도 어느 유사한 부분이 발견되는 것이다. 일본 이세계물 역시 슬레이어즈, 로도스도 전기,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등 과거 일본 판타지 장르의 세계관을 그대로 차용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술하였듯 퓨전 판타지와 이세계물은 장르 성립 시기 자체가 다르기에[9] , 2010년대 이후 일본 이세계물과 2000년대 한국 퓨전 판타지 사이의 연관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만 2010년대 이후 일본 이세계물이 한국에 정발되면서, 한국 퓨전 판타지에서도 일본의 용어를 차용하거나 클리셰를 일부 도입하는 변화와 교류가 생겨나기도 하였으며, 쏘지 마라 아군이다! 처럼 일본 이세계물의 클리셰를 그대로 차용한 작품이 발매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20년 현재 시점에서 국산 이세계물의 주류 장르는 어디까지나 한국식 이세계물을 기반으로 하는 파생 장르(아포칼립스물) 또는 후계 장르(탑등반물), 또는 책빙의물과 게임빙의물, 또는 귀환물이다. 국내 웹소설 시장에서 일본 이세계물의 영향력은 마니아층만 즐기는 일부 작품을 제외한다면 몇몇 클리셰와 검성, 이세계 같은 용어 차용, 모험가 설정 도입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
5. 관련 문서
[1] 2010년대 이후 나타난 한국식 이세계물로 대표되는 2010년대 한국 퓨전 판타지는 2000년대 한국 퓨전 판타지는 물론 일본 이세계물과도 완전히 동떨어진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유사점을 찾기 힘들다.[2]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도 일본식 이세계물 장르 확대의 발단으로 소드 아트 온라인과 함께 제로의 사역마를 꼽고 있다. 또한 일본어 위키백과 나로우계 문서에서는 '''제로의 사역마 2차 창작 작품들이 나로우계 이세계물 템플릿(클리셰)의 원형이 되었다'''고 언급되고 있다.[3] 그마저도 창세기전 시리즈의 마장기가 타이탄 설정의 원형이라는 주장이 있다. 물론 그 창세기전도 천공의 에스카플로네나 FSS 등의 영향을 받았겠지만.[4] 물론 한국의 1세대 판타지 소설은 로도스도 전기와 슬레이어즈 등의 일본 판타지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건 1세대에 국한된 이야기이며 퓨전 판타지로 대표되는 2세대로 들어와서는 일본 판타지 소설이 아닌 1세대 판타지 소설의 세계관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5] 일본에서 이세계물이 들어온 현재에는 이세계라는 단어도 많이 사용되지만 2000년대 당시에는 이계의 사용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세계 드래곤은 예외적인 경우이다.[6] 검성이라는 단어는 한국에서는 주로 무협소설에서만 사용됐으며 2000년대 당시의 판타지 소설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다만 2010년대 이후의 한국 웹소설에서는 소드마스터라는 용어 자체가 양판소의 상징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검성이 소드마스터의 대체 단어로 자주 사용되는 편이다.[7] 다만 2010년대 이후 한국 판타지 소설에서는 일본 이세계물의 영향을 받아 모험가가 기존의 용병을 대신하거나, 탐험을 하는 모험가와 전쟁을 하는 용병이 공존한다는 형식으로 일본의 모험가 설정을 도입한 작품이 상당수 있는 편이다.[8] 이와 대비되는 사례로 중국이 기원인 한국 무협소설에서는 장르 자체의 배경을 칭하는 무림은 물론 정파(무협 소설), 사파(무협 소설), 사형제 명칭 같은 중국 무협의 용어들을 아직까지 대부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9] 퓨전 판타지는 2000년대에 성립되었고, 일본 이세계물은 2010년대에 들어와서야 클리셰가 정립되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