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철도가
1. 개요
원제는〈경부'''텰'''도노래(京釜鐵道歌)〉로, 1908년에 최남선이[1] 일본의 철도창가를 멜로디와 가사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곡이다. 실질적으로 녹음된 기록은 현재 한국과 외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고, 대신 가사로만 구절로써 전해지고 있다. 의왕시에 있는 철도박물관에 원본이 전시되어있다. 인천에 있는 한국근대문학박물관에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저 영상이 아마 이 곳인 듯.
총 67절로, <밀밭에서> 곡조에 맞춰서 부르면 된다.
자매버전(...)으로 경인철도가, 호남철도가, 경원철도가, 경의철도가, 마산행진곡, 경주행진곡이 있다.
2. 가사
내용은 경부선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졌지만, 애석하게도 당시 한일합병과 일제강점기 전 노래이므로, 부국강병 내용이 많이 들어가있는 것이 일본 철도창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경부텰도노래'''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소리에 / 남대문을 등지고 떠나나가서
빨리 부는 바람의 형세같으니 /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
늙은이와 젊은이 섞여 앉았고 / 우리 내외 외국인 같이 탔으나
내외친소 다같이 익혀 지내니 / 조그마한 딴 세상 절로 이뤘네
관왕묘[2]
와 연화봉[3] 둘러보는 중 / 어느 덧에 용산역 다달았도다새로 이룬 저자는 모두 일본 집 / 이천여 명 일인이 여기 산다네
서관(西關)가는 경의선 예서 갈려서 / 일산수색 지나서 내려간다오
옆에 보는 푸른 물 용산나루니 / 경상 강원 웃물배 뫼는 곳일세
독서당(讀書堂)의 폐(廢)한 터 조상하면서 / 강에 빗긴 쇠다리 건너나오니
노량진역 지나서 게서부터는 / 한성(漢城) 지경(地境) 다하고 과천땅이다.
조조양양 흐르는 한강물소리 / 아직까지 귀속에 쳐져있거늘
어느 틈에 영등포 이르러서는 / 인천차와 부산차 서로 갈리네
예서부터 인천이 오십여 리니 / 오류 소사 부평역 지나간다네
이 마음에 틈을 타 다시 갈 차로 / 이번에는 직로로 부산가려네
의 묵은 터 바라보면서
잠시동안 시흥역 거쳐 가지고 / 날개 있어 나는 듯 안양이르러
실과 같은 안양내 옆에 끼고서 / 다달으니 수원역 여기로구나
이전에는 유수도(留守道) 지금 관찰부(觀察府) / 경기도의 관찰사 있는 곳이라
경개 이름 다 좋고 서호(西湖) 항미정(杭眉亭) / 그 옆에는 농학교(農學校) 농사시험장[5]
마음으로 화령전(華寧殿) 첨배(瞻拜)한 후에 / 대성인의 큰 효성 감읍(感泣)하도다
달 바라는 나각(螺閣)은 어찌되었나 / 물 구경 터 화홍문 변이 없는지
운담(雲淡) 풍경 때맞춰 방화수유정(訪花隨柳亭) / 양어(養魚) 상연(賞蓮) 겸하는 만석거(萬石渠)[6]
로다
광교산을 옆하고 떠나나가서 / 잠시간에 병점역 이르렀도다
북(北)에 뵈는 솔밭은 융릉 뫼신 데 / 이름높은 대황교(大皇橋)[7]
거기 있다오
이다음에 정차장 오산역이니 / 온갖 곡식 모이는 큰 장거리오
그 다음에 정차장 송탄역이니 / 물새사냥 하기에 좋은 터이라
서정리를 지나서 평택이르니 / 들은 늦고 산낮아 들만 넓도다
묘한 경개 좋은 토산(土産) 비록 없으나 / 쌀 소출은 다른데 당하리로다
게서 떠나 성환역 다달아서는 / 해가 벌써 아침때 훨씬 겨웠네
오 십 년 전[8]
일청전 생각해보니 / 여기 오매 옛일이 더욱 새로워
일본사람 저희들 지저귀면서 / 그 때 일이 쾌하다 서로 일컬어
얼굴마다 기쁜 빛 가득하여서 / 일본남자 대화혼(大和魂) 자랑하는데
그 중에도 한 노파 눈물 씻으며 / 그 때통에 외아들 잃어 버리고
늙은 신세 표령(飄零)[9]
해 이 꼴이라고 / 떨어지는 눈물을 금치 못하니
말말마다 한이오 설움이어서 / 외국사람 나까지 감동되거늘
쓸데없는 남의 공 자랑하기에 / 저의 동포 참상을 위로도 없네
척수루의 빈 터는 볼 수 있으나 / 월봉산의 싸움터 자취 없도다
안성천의 다리를 얼른 건너서 / 순식간에 직산역 와서 닿았네
백제국의 첫 도읍 위례성 터는 / 성암산에 있으니 예서 삼십리[10]
천오동에 놓았던 구리 기둥은 / 돌 주초만 두개가 남았다더라
이편저편 보는 중 모르는 틈에 / 어느 덧에 천안역 다달았도다
온양온천 여기서 삼십리이니 / 목욕하러 가는 이 많이 나리네[11]
인력차와 교자가 준비해있어 / 가고 옴에 조금도 어려움 없고
청결하게 꾸며논 여관있으나 / 이는 대개 일본인 영업이라니
이런 일은 아무리 적다하여도 / 동포생업 쇠함을 가히 알리라
그네들이 얼마나 잘하였으면 / 이것 하나 보전치 못하게되오
백제 때에 이 지명 탕정(湯井)[12]
이라니 / 그 때부터 안 것이 분명하도다수천년간 전하던 이러한 것을 / 남을 주고 객(客)되니 아프지 않소
소정리와 전의역 차례로 지나 / 갈거리(葛居里)[13]
를 거쳐서 조치원오니낙영산(落影山)의 그림자 멀리 바라고 / 화양서원 옛일을 생각하도다[14]
/ 몇십분이 안되어 부강역이니
충청일도 윤내는 금강가이라 / 쌀 소금의 장터로 유명한데오
사십리를 격조(隔阻)한 공주 고을은 / 충청남도 관찰사 있는 곳이니[16]
내포(內浦) 일판 너른 뜰 끼고 앉아서 / 이 근처의 상업상 중심점이오
계룡산(鷄龍山)의 높은 봉(峰) 하늘에 닿으니 / 아(我) 태조(太祖) 집 지으신 고적(古蹟) 있으며[17]
금강루의 좋은 경(景) 물에 비치니 / 옛 선비의 지은 글 많이 전하네
마미(馬尾)[18]
신탄(新灘) 지나서[19] 대전 이르니 / 목포(木浦)가는 곧은 길 예가 시초라[20] 은진(恩津)에 있어 / 지나가는 행인의 눈을 놀래오옥천역 다달아서는 / 해가 벌써 공중에 당도하였네
마니산성 남은 터 바라보는중 / 그 동안에 이원역 이르렀도다
속리사(俗離寺)[23]
가 여기서 삼십리라니 / 한번 가서 티끌 마음 씻을 것이오운연(韻連) 죽던 양산(陽山)[24]
이 육십 리(六十里)라니 / 쾌남아(快男兒)의 매운 혼 조상하리라나 눈에 띠우고
그 다음에 영동역 다다라서는 / 경부사이 절반을 온 셈이라[26]
이십사번(二十四番) 화신풍(花信風)[27]
불어올 때에 / 때 좋다고 꽃피는 금성산인데정든 손을 나누기 어렵다하여 / 꽃다운 혼 스러진 낙화대(落花臺)로다[28]
황간 두역을 바삐 지나서 / 추풍령의 이마에 올라타도다
경부선 중 최고지(最高地) 이 고개인데[30]
/ 예서부터 남쪽은 영남이라오다달아보니[32] / 이전부터 유명한 큰 장거리라[33]
사통하고 팔달한 좋은 덴 고로 / 이 근처에 짝 없이 굉장하다네
/ 이름 있는 도선굴 있는 곳이라
산 아래 지었던 길재 사당은 / 지낸 세월 오래라 저리되었네
금오산성(金烏山城) 너른 곳 지금 어떠뇨 / 세 연못과 한 시내 그저 있는지
무릉도원 깊은데 역사(役事) 피하듯 / 이전부터 그 근처 피란(避亂) 곳이라
을 지나면 왜관역이니 / 낙동강의 배편이 예가 한이요
삼백년전 당하던 임진왜란에 / 일본군사 수천명 머무던 데라
왜관 지나 신동에 신동 지나면 / 영남천지 제일 큰 대구군이라[36]
경상북도 모든 골 작고 큰 일을 / 총할(總轄)하는 관찰사(觀察使) 여기 있으니
부하(府下) 인구 도 총합 사만오천에 / 이천이백 일본인 산다하더라
산 이름은 연귀(連龜)이나[37]
거북 못 보고 / 집 이름은 영귀(詠歸)나[38][39] 관원 있도다.
연년마다 춘추로 열리는 장(場)은 / 우리나라 셋째의 큰 교역이니[40]
대소 없이 안 나는 물건이없고 / 원근없이 안 오는 사람이었네
누구누구 가르쳐 팔공산인지 / 일곱 고을 너른 터 타고 있으되
수도동의 폭포는 눈이 부시고 / 동화사의 쇠북은 귀가 맑도다
달성산의 그윽한 운취 끼고서 / 경산군을 지나서 청도이르니
청덕루의 불던 피리 소리가 없고 / 소이서국(小伊西國)[41]
끼친 예(禮) 그림자도 없네
성현터널[42]
[43] 빠져서 유천다달아[44] / 용각산을 등지고 밀양이르니장신동의 기와집 즐비한 것은 / 시골촌에 희한한 경광이러라
밀양군은 영남의 두서넛째니 / 예전에서 도호부 두었던 데라
상업상에 조그만 중심이되어 / 상고들의 내왕이 끊이지 않네
객관(客館) 동편(東便) 영남루(嶺南樓) 좋은 경개는 / 노는 사람 지팡이 절로 멈추고
만어산에 나는 돌 쇠북과 같이 / 두드리면 쟁쟁히 소리난다네
그 다음에 있는 역 삼랑진이니 / 마산포로 갈리는 분기점[45]
예서부터 마산이 백 리 동안에 / 여섯 군데 정차장 지나간다네
원동역을 지나서 물금에오니 / 작원관(鵲院關)을 찾으며 낙동강 끼고
머지 않은 임경대 눈앞에 있어 / 천하재자(天下才子) 고운(孤雲)을 생각하도다
통도사가 여기서 육십 리인데 / 석가여래 이마뼈 묻어있어서
우리나라 모든 절 으뜸이 되니 / 천 이백 칠십년 전 이룩한 바라
/ 해육운수 연하는 구포역이라
낙동강의 어귀에 바로 있어서 / 상업 번성하기로 유명한 데라
수십분을 지난후 다시 떠나서 / 한참 가니[47]
부산진 거기로구나우리나라 수군이 있을 때에는 / 초선두어 요해처(要害處) 방비하더니
해외 도적 엿봄이 끊이었는지 / 남의 힘을 빌어서 방비하는지
해방함 한척 없이 버려 두었고 / 있는 것은 외국기 날린 배로다
수백년전 예부터 일인(日人) 살던 곳 / 풍신수길 군사가 들어올 때에
부산으로 파견한 소서행장의 / 혈전하던 옛 전장 여기 있더라
범어사 대찰이 예서 오십리 / 신라 흥덕왕시에 왜관 십만을
의상이란 승장이 물리치므로 / 그 정성을 갚으려 세움이라네
삼십리를 떨어진 동래 온정은 / 신라부터 전하는 옛 우물이라
수 있으면 도상의 피곤한 것을 / 한 번 가서 씻어서 뉘기리로다
영가대(永嘉臺)[48]
의 달구경 겨를 못하나 / 충장단의 경배야 어찌 잊으리초량역을 지나선 부산항이니 / 이 철도의 마지막 역이라 하네
부산항은 인천의 다음 연 데니 / 한일 사이 무역이 주장이 되고
항구 안이 너르고 물이 깊어서 / 아무리 큰 배라도 족히 닿네
수입 수출 통액이 일천여만 원 / 입항 출항 선박이 일백여만 톤
행정 사무 처리는 부윤이 하고 / 화물 출입 감독은 해관이 하네
일본사람 거류민 이만 인이니 / 얼른 보면 일본과 다름이 없고
조그마한 종선도 일인(日人)이부려 / 우리나라 사람은 얼른 못하네
한성 남산 신령이 없기전부터 / 윤산 신령 없은 지 벌써 오래니
오늘날에 이르러 새삼스럽게 / 강개함도 도리어 어리석도다
검숭하게 보이는 저기 절영도 / 부산항의 목쟁이 쥐고 있으니
아무데로 보아도 요해지이라 / 이충무의 사당을 거기 모셨네
인천까지 여기서 가는 동안이 / 육십시간 걸려야 닿는다는데
까지는 불과 일시에 / 지체없이 이름을 얻는다하네
슬프도다 동래는 동남 제일현 / 부산항은 아국 중 둘째 큰 항구
우리나라 땅같이 아니 보이게 / 저렇 듯한 심한양 분통하도다
우리들도 어느 때 새 기운 나서 / 곳곳마다 잃은 것 찾아 들이여
우리장사 우리가 주장해보고 / 내나라 땅 내 것과 같이 보일가
오늘 오는 천 리에 눈에 띄는 것 / 터진 언덕 붉은산 우리같은 집
어느 때나 내 살림 넉넉하여서 / 보기 좋게 집 짓고 잘살아보며
식전부터 밤까지 타고온 기차 / 내 것같이 앉아도 실상 남의 것
어느 때나 우리 힘 굳세게되어 / 내 팔뚝을 가지고 굴려볼거나
이런 생각 저생각 하려고 보면 / 한이없이 뒤대에 연적나오니
천리길을 하루에 다달은 것만 / 기이하게 생각되 그만둡시다
개통 당시 경부선을 어림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대전 대신 공주가 비중있게 등장하거나, 증약역, 미륵역, 초량역 등 지금은 폐지된 역이 대거 등장한다거나, 금오산역을 지나는 노선[50] 이 등장하는 등 개통 초기 시대상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