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훈(가수)

 

투투
멤버
오지훈
김지훈
황혜영
유현재
듀크
멤버
김지훈
김석민
김지훈
Kim Ji-hoon

[image]
<colbgcolor=#ecf2ff><colcolor=#373a3c> 이름
김지훈(Kim Ji-hoon)
출생
1973년 3월 21일[1]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사망
2013년 12월 12일, (향년 40세)
서울특별시 중구
본관
김해 김씨
부모형제
아버지(작고), 어머니[2], 누나 1명, 형 2명
자녀
슬하 1남 - 김동혁(2007년생)
신체
183cm, 63kg[3]
혈액형
A형
종교
개신교
학력
서울 북성초등학교
서울 한성중학교
서울 인창고등학교
명지전문대학
활동
투투(1994년~1996년)
솔로 활동(1997년), 갱(1998년),
듀크(1999년~2007년)
솔로 활동(2007년~2013년)
1. 개요
2. 생애
2.1. 유년시절
2.2. 투투, 솔로 활동
2.4. 듀크 이후 사망까지
3. 예능 활동
4. 연기 활동
5. 세상을 떠난 후
5.1. 장자연 관련
6. 음반
6.1. 정규음반
6.2. 비정규음반
6.3. 참여 음반과 참여곡
7. 출연작
7.1. CF 광고
7.2. 시트콤
7.3. 뮤지컬
7.4. 영화
7.5. 기타
8. 수상경력
8.1. 시상식
8.2. 가요 프로그램


1. 개요



1990년 ~ 2006년 김지훈 무대 모음
대한민국가수로, 그룹 투투, 남성 듀오 듀크의 보컬로 훤칠한 키와 성악과 락을 하던 그의 목소리미성에 속하면서도 파워풀하다.
동아일보의 허엽기자는 듀크 1집 시절 그의 창법에 대해 '탁' 터지는 창법, 가성은 허공을 메아리치는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음역대가 높아서 저음에 속하는 사람들은 성별에 상관없이 그의 노래를 원음대로 부르긴 쉽지 않은 데다가, '그'만의 독특한 창법이 있어 모창하기가 쉽지 않다. 표현하는 음역대가 넓어서 고음뿐만 아니라 저음도 잘 표현한다.[4]
1994년 데뷔 초기에도 선배 가수들로부터 '노래 잘하는 가수'로 인정받았고, 2000년대에는 댄스 가수 중 가창력으로는 최상위권에 속한다고 평가받았다. 다만 듀크 시절부터 각종 예능에 자주 출연하며 만능 엔터테이너적인 이미지가 강해진 데다가, 댄스 음악을 하는 가수들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뛰어난 가창력에 비해 낮게 평가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2013년 12월 12일, 만 40세(향년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재주가 많은 그였기에 그의 부재는 대중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그는 현재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위치한 분당추모공원 휴에 안치되어 있다.

2. 생애



2.1. 유년시절


1973년 3남 1녀 중 막내로 출생한 김지훈은 서울 북성초등학교 재학 시절엔 생활기록부에 '용의 단정하고 매사 성실하며 온순함(1학년), 온순하고 침착하며 매사에 성실함(2학년).'등으로 기록되며 학교에서 온순한 학생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5] 그림 그리기에 특기가 있었던 그는 한성중학교 재학 시절에는 꿈이 만화가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성악을 배우는 등 가수로서 꿈을 키워가던 그는 서울 인창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교내 중창단 써클리트(Circlet)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6], 교내 밴드부의 보컬로 활동하며 가수의 꿈을 키워갔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배려로 고등학생 시절에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 자유로운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낮에는 오지 오스본의 'Goodbye To Romance'나 스틸하트의 'She's Gone#s-1[7]'등의 카피 곡을 노래하고 저녁에는 교회에서 클래식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당시에 음악을 지도하던 선생님과 친분이 두터워, 투투로 데뷔 한 뒤에 투투 1집 음반을 들고 그 선생님께 찾아가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제3회 KBS 청소년 창작가요제에서 김지훈

<좌> 제3회 KBS 청소년 창작가요제에서 김지훈 지나간 순간은 찢겨진 가슴되어 를 부르는 김지훈
<우> KBS2 가요톱10 1994년 8월 5주 제3회 KBS 청소년 창작가요제 영상 }}}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던 1990년 12월 제3회 KBS 청소년 창작가요제에서 '지나간 순간은 찢겨진 가슴되어'로 본선에 진출하였다.[8][9] 다만 본선에서 가사를 놓쳤던 터라 수상자 명단에는 들지 못했지만, 동네에서 조용한 아이로 인식되던 그는 TV 출연으로 동네의 유명 인사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청소년 창작가요제는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대회였던 터라 "동네에서 인기가 지금(2008년)에 부럽지 않았어요. 여학교에서 인기투표를 하면 제가 1등을 하기도 했어요."라고 고등학생 시절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에 여러 가요제에서 대상, 금상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1년에는, 밴드의 보컬자리가 공석이 되자 보컬을 구하던 강남 지역 출신의 오지훈, 유현재가, 1991년 당시 유현재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노래방 선배의 소개로[10], 김지훈은 1991년에 그 둘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밴드에 합류해달라는 둘의 제안을 받고, 그 둘이 있는 밴드의 보컬로 합류했다.

2.2. 투투, 솔로 활동


첫 방송을 하고 (남자 멤버) 셋이서 이대 입구로 워커를 사러 갔는데 알아보더라고요. 그러더니 2주 만에 갑자기 떠버린 거예요. - 2012.11.08일자 tvN E News 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지훈은 1992년 오지훈, 유현재와 명지전문대학 동기로 입학하였으며 투투 결성 전까지도 셋은 계속 밴드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는 머리를 길게 기르고 가죽 점퍼를 입고 금속성이 짙은 목소리로 록 밴드의 보컬로 활동했다고 한다. 모터사이클이 타고 싶어 관련 면허를 따고, 친척이 타던 모터사이클을 중고로 사서 종종 타고 다녔다고 한다.
1994년 4월에는 고3시절부터 같이 밴드 활동을 했던 오지훈, 유현재와, 그리고 앨범 작업 후 영입된 객원 멤버 황혜영과 함께 그룹 투투의 보컬로 방송 데뷔를 했다.
{{{-1 {{{#cce1f9 <좌> KBS2 가요톱10 1994년 8월 1주 일과 이분의 일
<우> KBS2 가요톱10 1994년 8월 5주 그대 눈물까지도 }}}}}}
1994년 4월에 발매된 투투 1집의 타이틀곡인 일과 이분의 일은 1994년 6월 1주에는 KBS2 가요톱10에서 28위로 첫 진입을 하였고, 6월 4주 18위, 6월 5주에는 8위로 수직 상승하여, 7월 2주에는 4위, 7월 3주에는 2위를 기록했다.[11] 일과 이분의 일은 SBS TV 가요 20에서 5번 1위를 기록하였으며, (1994년 7월 3주, 4주, 8월 1~3주) 가요톱10에서는 1994년 7월 27일부터 8월 24일까지 5주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여 골든컵을 받게 되었다.

일과 이분의 일 무한 반복 영상
그는 일과 이분의 일로 투투가 크고 많은 인기를 얻게 되자 쉴 틈 없이 강행군되는 스케줄 때문에 건강에 무리가 왔었다. 폐의 기능이 나빠져 산소통을 끼고 다닐 정도였는데, 하루에 3시간 이내로 잘 정도로 꽉찬 스케줄의 영향도 있지만, '라이브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라이브로 부를 수 있는 상황에선) 최대한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데뷔 초기 부터 '라이브 무대의 콘서트를 여는 것'이 꿈이라고 각종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꿈을 밝혔고, 유현재에게 기타를 배우는 등 투투 활동 시기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KBS2 가요톱10 1994년 11월 5주 그대 눈물까지도
후속곡인 '그대 눈물까지도'는 김지훈이 보컬을 맡고 오지훈이 기타, 유현재가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곡으로 가요톱10에서 1994년 10월 첫 주에 24위로 첫 진입 후 11-20권 내에 머물다가 12월에는 10위권안에 들면서 95년 초까지 상위권에 머물렀다. '그대 눈물까지도'는 그의 청아한 음색이 잘 드러난 노래라 그를 상징하는 노래로 회자되며, '일과 이분의 일' 때와 색다른 매력을 선보인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해 투투는 KBS 가요대상과 대한민국 영상 음반대상(現. 골든디스크)에서 신인상을, 서울 가요대상에서 랩댄스 부문 대상을, 골든디스크 본상[12]을 수상하였다.
{{{-1 {{{#cce1f9 <좌> KBS2 가요톱10 1995년 7월 1주 바람난 여자
<우> KBS2 가요톱10 1995년 12월 1주 니가 내것이 되갈수록 }}}}}}
이어 투투 2집 시기인 1995년에는 그룹의 리더와 보컬로서 활동하였고, 엠넷의 '고 엠넷 고'로 첫 MC 데뷔를 하게 되었다. 2집 수록곡 중 주된 방송 활동곡은 '바람난 여자'와 '니가 내것이 되갈수록'이며 2집 노래의 대부분을 김지훈이 불렀다. 나머지 멤버들은 객원 멤버 형식으로 앨범 당 1-2곡에만 참여하였다.

KBS 가요톱10 1995년 10월 1주 1위 후보곡 바람난 여자
바람난 여자는 가요톱10에서 1위 후보에 오르는 등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였다.

SBS TV가요20 1995년 11월 19일 니가 내것이 되갈수록
그는 1996년 1월 5일자 MBC 인기가요 BEST 50에서 '니가 내것이 되갈수록'의 무대[13]를 끝으로 투투 활동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활동 중에 입대한 터라 그의 입대 후에도 니가 내것이 되갈수록은 한동안 가요톱10에 순위권에 머물렀다.
김지훈은 1990년대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어서[14] 투투 활동시기에 돈도 많이 벌었을 것 같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그 당시에 데뷔 전 연습 기간까지 포함해서 약 2년간 약 1800만 원 정도의 수입만 받았다고 한다.[15] 투투 1기 시절인 1994년, 소속사에서 밥을 제공하지 않을 때에는 수중에 돈이 없어 멤버들이 밥을 굶기도 했다고.[16] 그는 1990년대 활동하던 댄스가수들을 보면 화려해 보이고, 밝고 역동적인 모습들을 보여주지만 결국 뒷면에는 힘든 때가 있었다고 말하면서, 1994년 가요톱10에서 골든컵을 타던 날 남자 멤버 셋(김지훈, 오지훈, 유현재)이 방송 끝나고 숙소에 들어가보니 담배값이 없어 길에 떨어진 담배꽁초 중 긴 담배꽁초들만 주워서 피었다는 일화를 그 예로 제시했다.
그는 1996년에 입대하였으며, 군 입대 훈련소 동기로 개그맨 김경식이 있다. 군대 선임들이 김경식에게는 딱따구리 소리를 내라고 하고, 김지훈에게는 반쪽 춤을 추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군 복무 중 군화를 묶으려고 허리를 숙이다가 그대로 허리를 다쳐서 의병제대를 했다.
제대 후 1997년 하반기에는 '익숙해진 슬픔'이라는 락 발라드 곡을 타이틀곡으로 하는 솔로 앨범을 내고 활동했었다. 솔로 앨범에서는 프로듀싱에 참여하였고, 자신이 작곡한 '꿈속에서'를 싣기도 했다. 솔로 앨범의 수록 곡들은 투투 시절의 앨범 수록 곡들보다는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때는 소속사와의 문제도 있었고 매니저가 돈을 받고 일을 잡지 않아 방송에 많이 나오지 못했다. 그가 듀크로 데뷔한 이후의 방송에서는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솔로 앨범 활동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였으나, 2008년 인터뷰에서는 세상을 조금 알아가는 나이가 되가면서 그런 경험이 이제부터는 당하지 않는 밑거름이 된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지훈은 2002년 11월 27일에 방송된 '야! 한밤에'의 '진실 혹은 대담'[17]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냐.'는 이정현의 질문에 대해 솔로 앨범 활동부터 약 2년간의 시기를 꼽으며 그 시기에 대해 '어머니는 미국에 가시고 형들도 사업이 안 좋아서 자신을 도와줄 입장도 안 되었고, 아버지도 안 계셨으며 (자신은) 후배들의 작업실에서 살았다.' 고 대답하였다. [18] 그 2년 동안 후배에게 피아노도 배우고 그때 써놨던 가사들과 곡들을 듀크 시절에 많이 사용하였음을 방송에서 언급하며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 바닥까지 갔다 오면 지금 하고 있는 자신의 일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 일인지 알게 돼요."라고 질문에 대한 답을 마무리했다.
1998년 8월부터 11월까지는 김석민, 김진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갱(Gang)'으로도 활동하기도 했다.[19] 갱 앨범과 듀크 1집에 수록된 비연은 듀크의 멤버로서 그리고 작곡가 김지훈으로서 처음으로 만든 자작곡이다.

2.3. 듀크


1999년에는 갱 활동을 같이 했던 뉴 투투 출신의 김석민듀크를 결성했다. 김지훈과 김석민이 직접 프로듀싱한 듀크 1집 음반은 테크노, 발라드, 락으로 나눠져 있다. 투투 이전 시기부터 록 음악을 했던 김지훈과 랩을 했던 김석민이 함께한 음반이기에 랩과 락을 접목하면 어떨까하고 1집 음반의 락 파트에 수록된 펑키락스타일의 '쉽지 않아'를 타이틀곡으로 1999년에 데뷔했으나, 1999년에서 2000년 초는 하드코어락이 대중적이지 않은 편이었던 데다가 TV 방송과 라디오 방송을 타지 못하는 등 반응이 저조했다. 어떻게든 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테크노 열풍에 힘입어 테크노 장르의 곡인 스타리안으로 타이틀곡을 바꿨다. 스타리안과 파티투나잇으로 가수로서 성공하자 듀크는 듀크 2집 마지막 활동으로 출연한 2001년 3월 27일자 MBC '신동진의 미니콘서트'에서 최초로 라이브 무대를 공개했다.

MBC 음악캠프 45회(2000년 4월 15일 Starian
1집의 타이틀곡인 Starian(스타리안)의 경우 독일 테크노 그룹 '666'의 음악을 듣고 나서 테크노의 마력에 빠져 만든 곡으로 김지훈의 작품[20]이다. 'Starian'은 인조인간인 스타리안이 인간의 감정을 느끼고 싶다고 절규하는 내용을 가사로 담고 있다. 그는 1999년 12월 29일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듀크 1집 활동에 대해 "신인보다 더 어렵습니다. 이전 팬들의 기대에 대한 부담도 크고, 한편에서는 어떤 음악을 했나하는 시선도 보냈고."의 말을 하며 그의 심경을 토로하였고, 듀크 1집에서 테크노라는 장르에 충실하기 위해 창법의 변화를 시도했음을 언급했다.[21]
Starian은 노래가 나왔을 당시 현영이 출연했던 뮤직비디오는 약간 주목을 받았지만 다른 가요들에 비해 크게 인기 끈 노래는 아니었기 때문에 소속사 사무실에서 눈치를 보기도 했었다고 한다.[22] (Starian의 경우 1999년에 DDR 3rd Mix version Korea에, 그리고 2001년에 펌프 잇 업 EXTRA부터 수록되어, 펌프 잇 업의 대표적인 장수곡으로 꼽히나, 발매 당시에 인기가 없는 노래는 아니었지만 2집의 타이틀곡 Party tonight 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2000년 상반기에 출연한 서세원쇼를 비롯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큰 인기를 얻은 뒤 각종 음악 방송과 예능에 출연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듀크 2집은 듀크 1집에 비해 많이 팔렸다.

KBS2 뮤직뱅크 (2000년 12월 14일) Party Tonight

KBS 열린음악회 월드컵 자원봉사자특집 (2001년 11월 11일) Party Tonight
듀크 2집의 타이틀곡인 Party Tonight의 경우 가요 프로그램에서 10위권 안에 들었다. 그 영향으로 MBC 게릴라 콘서트(2001년 2월 4일 방송)에 출연했고, '신동진의 미니콘서트'에 두 번 출연했다.[23]
2001년 3월에는 듀크에서 김지훈만 컴필레이션 앨범 수호천사[24]의 타이틀 곡 '수호천사'의 녹음에 참여하였다. 2.5집 시기인 2001년 하반기에는 열린음악회의 11월 11일자 방송에서 파티 투나잇을 부르기도 했다.[25]
그러나 판매량이 좋았던 듀크 2집과는 다르게 그 뒤에 나온 앨범들은 판매량이 2집에 비해 저조하여 음반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웠다.

MBC 음악캠프 109회(2001년 9월 8일) Boom Boom
2001년 7월에 발매한 2.5집의 타이틀곡인 'Boom Boom'은 1집 타이틀 곡인 Starian처럼 김석민, 김지훈이 작사를, 김지훈이 작곡한 곡으로[26] 순위 프로그램에서 12위, 18위 등을 기록해 2집의 후속곡인 두 번째 소원보다는 순위가 좋았으나 앨범 판매량이 2집에 비해 저조했다. 그래서 잘생긴팀의 게스트로 출연한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2기 합숙 9주차 1부 오프닝(.2001.10.27 방송)에서 듀크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 "이번에 저희가 특이하게 앨범을 접고 있습니다. 붐붐으로 한여름을 아주 강타하려다가 쨉만 몇대 날리다가..."로 재치있게 대답했다.
Boom Boom에 이어 궁둥이 댄스로, 듀크 2.5집 활동을 마무리했다. 궁둥이 댄스는 듀크 2집에도 실린 곡이다.

MBC 음악캠프 158회(2002년 12월 7일) 천국에서 내린 비

MBC 음악캠프 162회 (2003년 1월 4일) 주말의 명화
2002년에 발매한 3집의 타이틀곡인 천국에서 내린 비는 라디오 신청곡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2.5집 혹은 3집 시기에는 KBS2 뮤직 플러스에서 듀크의 노래가 HOT6 안에 선정되기도 했으나, 2.5집과 3집 앨범은 2집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2005년 5월에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엑스터시 1건, 대마초 1건)'으로 불구속 기소되어, 당시 기획했던 듀크 콘서트와 앨범 발매가 무산되었다. 그 후 일부 매체와의 인터뷰와 결혼식의 축가를 부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2006년 상반기까지 방송 활동을 하지 않았다. 2005년 8월, 동년 5월에 불구속 기소되었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벌금 2000만원과 추징금 4만1500원을 선고받았다.[27]
2006년 여름, 듀크의 싱글 앨범을 발매한 후 방송에 복귀하였으나 저조한 음반 판매로 수입이 나지 않았던 터라 그룹 듀크는 2007년 6월 1일에 해체했다.

2.4. 듀크 이후 사망까지


김지훈은 2007년에 결혼했다.[28] 2007년 하반기에는 SBS 드라마 황금신부의 OST인 '사랑합니다'를 불렀으며, 그는 이에 대한 소감으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연기자 수업으로 노래 연습을 전혀 못해 첫 녹음처럼 긴장한 가운데 녹음을 진행했다."고 하면서, "처음 해보는 OST 음악 작업이기에 녹음이 있는 당일까지 노래 연습을 계속했다."고 첫 OST 참여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2008년 6월 27일에 결혼식을 올린 뒤, 2008년과 2009년에는 솔로 가수로서 싱글 음반을 내려고 계획하기도 했으나 그 계획은 최종적으로 실행되지 않았으며, 음악 관련 예능이나 라디오 방송, 각종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는 활동이 대부분이었다. 가수로서의 활동보다는 예능 출연, 연기 활동을 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활동을 이어갔다.
결혼 이후에 결혼 전과 다른 캐릭터도 부여받으면서 각종 예능과 교양 프로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지만 2009년 7월에 엑스터시를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2009년 12월 2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3만원을 선고받았다.[29] 이 사건으로 MBC에서 출연금지 명단에 오르며 출연하던 프로그램들에서 하차했고, 그 이후로 방송 활동이 없는 긴 자숙 기간을 보내게 된다.
2010년 협의 이혼 서류를 서울 가정법원에 제출하였고, 3개월의 이혼 숙려 기간이 끝난 후에 이혼했다. 동년에 뮤지컬에 캐스팅되어 재기를 노렸으나, 이혼 관련 소식으로 작품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고 제작 발표회 전날에 자진 하차하였다. 그 후 몇몇 행사에는 가끔 모습을 드러냈고 재기의 의지를 드러났지만, 2012년 tvN e-news 과의 전화 통화 외에는 방송 활동이 없었다.
2012년에는 가수 이은하의 재즈 음반에 삽입된 'You don't have to say you love me'를 피처링했다.
2013년 7월 6일에는 서울의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있던 모 기업의 연례 행사에 김성면, 이성욱 등과 함께 초대가수로 공연에 참가하기도 했으나...[30]
2013년 12월 12일 오후 1시경 서울 중구 장충동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자살로 추정되었으며,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우울증으로 약물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관련기사

3. 예능 활동


투투 시절부터 각종 라디오 방송과 TV 예능에 출연하며, '투투의 뮤직 극장'에서는 성대모사를 '밤과 음악 사이'에서는 모창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투투 시절의 그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도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데다가 소속사에서도 신비주의를 유지하라는 권고가 있었기 때문에, 음악 활동에 집중하였다.
1995년에는 엠넷과 KMTV의 가요 방송에서 그룹 투투가 MC를 맡기도 했지만 투투 시절에는 만능 엔터테이너적인 면보다 음악적인 면으로 대중들에게 많이 각인이 되어있었다. 1997년에는 KBS2 슈퍼선데이에 출연하여 익숙해진 슬픔도 부르고, 개인기를 선보이기도 했으나.. 솔로 앨범 활동 자체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듀크로 데뷔한 후 2000년에는 2월부터 4월 중순까지 목표달성 토요일의 보조 MC를 맡기도 했다.(1회부터 1차 개편 직전까지 MC로 출연했으며, 2000년 4월 8일자 방송에는 스튜디오의 MC뿐만 아니라 무한 대결(무식한 대결)의 보조 MC로도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각종 음악 방송, 라디오 방송과 TV 예능에 출연하였고, 2000년 상반기에 출연한 서세원쇼의 토크박스에서 토크왕으로 선정되면서 큰 인기를 얻으며 서세원쇼에서도 여러 번 출연하였다. 2000년부터 4개 이상의 프로그램에서 고정 출연하기도 했으며, 앨범 활동이 없던 2003년에도 복수의 예능에서 고정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듀크의 멤버인 김석민과 같이 예능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혼자서 출연하는 경우도 많았다. 김석민의 경우 예능에 익숙해하지 않아 예능에 출연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경우 김석민이 일화를 제시해주고, 김지훈이 그 일화를 소스로 삼아 방송에서 언급하여 재미를 살려주는 식으로 방송 활동을 하기도 했다. 아니면 패널들이 '김석민 씨는 지금 뭐 하시나요? 혹은 왜 같이 안 나오셨나요?'라고 물으면 '석민이 형은 (지금) 자요.'라고 대답(농담)을 하거나.
성대모사와 모창에 능했던 터라 개인기 열풍의 대표주자로 부각되어 그룹 듀크가 2000년 12월 6일자 KBS 뉴스에도 출연했다. 김지훈은 KBS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반면에 알찬 음반에도 불구하고 음반이 많이 안 팔린다는 것, 많이 안 나간다는 게, 이미지가 아예 저 친구들은 재밌기만 하고 음악적으로는 성숙하지 못했다는 이미지가 많으신가 봐요."라고 말하며 재미있는 연예인으로만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2001년 상반기에 잡지 Mr.K와의 인터뷰에서는 듀크가 재미있는 연예인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 '웃긴 모습으로 비치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모습에도 관심을 가져줄 거라고 믿으며, 그런 날들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자신의 견해를 드러냈었다. 시간이 지나 2008년 1월에 출연한 KBS2 감성 매거진 행복한 오후에서는 "처음에는 굉장히 노래를 하고 싶었는데 자꾸 웃기라 그러니까 별로 안 좋았었는데. 지금와서 느껴보면 여러 어르신들도 알아보시고 저를 보면 굉장히 즐거워 하셔요. 식당 같은 데 가면 '아이구 이 맹구 왔네.' 이러면서 반찬도 좀 더 주시고. 그런게 괜찮은 이미지구나라는 걸 느껴요."라고 말하며 예능 출연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스타 데이트 - 최고의 만남에서 김민종과 개인기 대결의 상대로 김지훈, 유채영이 출연했다.

MBC 노브레인 서바이벌 27회 (2003년 12월 6일)
그는 기본적으로 목소리의 톤이 높기 때문에 성별에 상관없이 정해 놓은 인물의 성대모사와 모창을 잘 소화했다. 그의 개인기 중에서 특히 맹구 성대모사가 유명해,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10년 가까이 맹구 성대모사를 선보이기도 했다. 원조 맹구의 목소리와 싱크로율이 높은 지라 2000년 12월 31일에 방영한 연말특집 개그 콘서트 봉숭아 학당에 맹구 동생 멍구로 특별 출연하여 특유의 즉흥 연기도 선보였다.
퀴즈 형식의 예능에서는 문제를 잘 맞혀 상위권을 달리는 적이 많았는데, 알부라리 ch.27의 경우 정답을 예측할 수 없는 퀴즈를 내는 경우가 많지만 순발력으로 맞춰 매 회차 퀴즈마다 우승하는 경우가 많았다. (퀴즈 전적: 가족오락관의 경우 7승 1무 1패, 퍼즐특급열차(950925)에선 우승)
2003년 5월 4일부터 2004년 5월 2일까지 타임머신에서 패널로 출연하였으며, 일부 에피소드에서 코믹하고 유머러스한 연기를 하였다.
특히 브레인 서바이버에서는 (2라운드 1등으로 결승 확정을 포함하여) 3라운드까지 여러 번 올라가서 '가요계의 브레인, 브레인 서바이버의 공식 브레인'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우승을 여러 번 놓치자 '문턱 전문'[31]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브레인 서바이버의 2003년 9월 21일자 방송에서 결승에 진출한지 3전 4기 만에 우승하여, 03년 12월에 서울 인창고등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하였다. 전달 당시 후배들의 환호가 가히 '남고에 여자 연예인이 방문했을 때와 같았다'라는 후문이 있다. 인창고등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한 뒤에는 한성중학교로 명패를 달고 출연했으나 최고 성적 준우승으로 마무리했다.

MBC 브레인 서바이버 2004년 2월 15일자 결승전에서 김지훈과 강동원
2004년 2월 15일자 브레인 서바이버 출연 영상으로 결승전에서 '우승 경험이 있는 재주꾼(한성중 김지훈) VS 첫 출연에 결승에 오른 순수청년(거창고 강동원)'의 대결이라고 MC 김용만이 언급하였다. 출연진들의 즉석 투표에서는 김지훈에게 표가 더 나왔으나, 이날 방송에서는 순수 청년이 우승했다.
2007년 듀크 해체 뒤에도 케이블 방송에서 MC를 맡는 등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의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반고정으로 출연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경우 한동안 방송 활동을 잠시 쉰 적도 있는 데다가, 빠르게 변해가는 예능 트렌드에 적응하기 힘들어 했던 터라 2008년과 2009년에는 고정으로 출연하는 예능(예: KBS JOY 오빠가 왔다)에서 예능 적응의 어려움을 언급하기도 했다.
듀크 시절과 그 이후의 방송에서 입담이 좋기로 유명한 그였으나, 실제로는 여리고 숫기가 없는 편이라고 한다. 숫기가 없었다는 것은 그의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던 일로, 그가 출연한 방송들을 보면 투투 시절에 쑥스러움을 많이 탔던 것은 물론이고 결혼 이후에 출연한 예능에서도 관객들을 향해 제스처를 취하다가도 쑥스러워서 손으로 입을 가리기도 하는 등 숫기 없는 모습들을 드러내기도 했다.

4. 연기 활동


그는 투투 시절인 1994년에 SBS '기쁜 우리 토요일', KBS2 '톱스타 인생극장' - 투투의 뮤직 극장[32]등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회성으로 짧게 콩트 연기를 했지만, 1990년대에는 가수로서의 활동에 집중했다.
그는 경인 방송(iTV)의 시트콤 립스틱(2001)에 세 주인공이 사는 집의 가정부 역할로 출연하면서 주연배우 못지않은 분량의 조연으로 연기 활동을 했다. 이어 뉴 논스톱에 카메오로 출연했으며, 2003년에는 논스톱3에서 카메오로 출연한 뒤, 논스톱3의 출연진 개편 후 카페 사장으로 반고정 출연하며 조연으로서 극의 마지막까지 등장했다.
영화 내사랑 싸가지(2004)에서는 거지 역할로 특별 출연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연기학원을 다니며 연기 수업을 본격적으로 배웠고, 2007년 10월부터 12월까지 SBS 심리 극장 천인야화에 출연하여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천인야화에서는 재연극에서 재연배우로 출연하거나, 스튜디오에서 패널로 출연하였으며 MBC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에는 카메오로 출연하였다. 2007년부터 가수로서의 활동보다는 연기자로서의 활동을 늘려나갔는데, 듀크 활동 시기에는 연기에 대한 욕심이 없었지만 듀크 해체 후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고 나서는 연기에 흥미와 욕심도 생겼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2009년 상반기에는 뮤지컬 '위대한 Show'에 탤런트 안신우(성민)와 남자 주인공인 북한군 장교 '조동팔' 역으로 더블 캐스팅이 되어 뮤지컬 배우로서도 활동하였다. 그는 2002년 뮤지컬 '홍가와라'에도 출연하였지만, 뮤지컬의 주연배우로 참여한 것은 '위대한 Show'가 처음이었다.[33]
2010년에는 프랑스의 뮤지컬 '스타마니아'의 아리아를 이용해 제작된 뮤지컬 '코로네이션 볼'(2기)에서 클럽 DJ이자 오염된 아이 캐릭터인 '지기'역을 맡았었다. 그는 힘든 기색 없이 다른 배우들보다 일찍 와서 연습에 참여하는 등 작품에 대한 열의를 나타냈었다고 한다. 출연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어쩌면 내가 '지기'처럼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진정을 담아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2010년 연예계 약물 파문으로 1년 전 자신의 사건도 수면에 다시 오르는 데다가 12월에 이혼 소식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심적인 부담에 시달린 그는, 뮤지컬에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 제작 발표회 전날 자진 하차했다.하차 후 그가 맡은 역할의 일정에는 다른 뮤지컬 배우가 출연하게 되었고, 공식적으로 2009년에 출연한 '위대한 Show'가 마지막 뮤지컬 출연 작품이 되었다.

5. 세상을 떠난 후


2013년 12월 13일에 방송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16화에 투투 시절에 부른 그대 눈물까지도가 추모의 의미로 흘러나왔다.[34] '그대 눈물까지도'는 1995년에 발매된 투투 2집에는 영어 버전으로, 1997년에 발매된 그의 솔로 앨범과 2000년에 발매된 듀크 1집에 수록되기도 했으며[35], 그가 참석한 각종 행사와 결혼식에서도 축가로 부를 만큼 그를 상징하는 노래였기에 그의 장례식에서도 흘러나온 노래라고 한다.
그의 발인식이 있었던 2013년 12월 14일자의 KBS2 연예가중계에서는 그의 부고 소식을 전하며 그가 생전에 자주 부르던 노래인 김범수의 '지나간다[36]'를 추모의 의미로 틀기도 했다.
그의 장례식 이후 편곡자의 하드디스크에서 그가 부른 '그대 눈물까지도'의 음원이 발견되었다. 그의 가족들과 투투의 前 멤버이자 작곡가 오지훈의 허락하에 그의 1주기를 기념하여 2014년 12월 11일에 그대 눈물까지도가 유작으로 공개되었다.[37] 유작으로 공개된 '그대 눈물까지도'는 김지훈이 세상을 떠나기 약 6개월 전에 녹음한 버전이라고 한다.
2014년 11월 1일, 11월 8일, 12월 20일, 12월 27일, 2015년 1월 3일 총 5회에 걸쳐서 방영된 무한도전 토토가1이 방송된 후, 90년대 대중가요를 듣던 사람들은 그 시대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거나 자신들이 보고 싶은 스타에 대해 그리움을 나타내기도 했고 토토가 시즌 2에 대한 염원을 나타냈다. 그러나 90년대에 활동하던 가수들 중 몇몇은 하늘로 떠났거나 불미스러운 일로 활동할 수 없는 팀들도 존재하기에 아쉬움을 자아냈는데, 김성재, 서지원, 신해철과 마찬가지로 김지훈도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하늘로 떠난 스타로 언급되었다.[38]
일과 이분의 일의 경우 2006년 12월 3일자 X맨을 찾아라에서 김지훈이 출연자 이현지의 무대를 돕기 위해 깜짝 출연하여 이현지와 같이 일과 이분의 일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때, 유재석이 반쪽 춤을 따라 출 정도로 유재석이 좋아하는 노래라고 방송에서 언급하였고, 무한도전 자메이카 편에서는 유재석이 자메이카 사람들 앞에서 일과 이분의 일을 직접 부르며 반쪽 춤까지 추었던 터라 '김지훈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가 토토가 1에 나올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는 의견들이 있었다.
게다가 '일과 이분의 일'은 1994년에 나온 대중가요 중에서도 가장 사랑 받는 노래 중 하나로 꼽히기 때문에, 토토가 방송 이후에도 그의 부재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의견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일부 어린 세대와 일부 외국인의 경우 박보검아이린이 2015년에 뮤직뱅크 MC 신고식에서 '일과 이분의 일'을 부른 영상을 보고 노래를 알게 된 경우도 있어 (혹은 다른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서 일과 이분의 일과 반쪽 춤이 나온 것을 보고 알게 된 사람들도 있다.), 원곡 영상을 보고 추모 댓글들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듀크 시절에 부른 Starian은 Pump it up의 영향으로 남미를 비롯한 해외에도 알려진 노래이기에, 그가 떠난 후 Starian을 비롯한 듀크 시절 활동 영상에 외국인들도 추모 댓글을 남기고 있다.
투투 1집의 후속곡인 '그대 눈물까지도'도 역시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였고, 음악 소재 예능과 복고 소재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최근에도 (2016년) 상당한 지라 그가 부른 투투 시절의 노래들이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을 비롯한 음악 관련 방송에서 재조명되길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2016년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33회에서 그룹 투투 1기 멤버였던 오지훈, 유현재, 황혜영이 희열팀의 출연자로 출연하였고, 인피니트우현이 복원 슈가송으로 그의 노래인 '일과 이분의 일'과 '그대 눈물까지도'를 불렀다. 일과 이분의 일의 경우 우현과 투투 1기의 멤버들이 함께 무대를 선보였으며, 투투 멤버들의 근황 인터뷰와 출연진들이 그에 대한 회상을 한 뒤에 우현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그대 눈물까지도'를 불렀다.
오지훈은 '그대 눈물까지도'는 김지훈의 유작으로도 발매되고, 듀크 1집에도 실을 정도로 아끼는 곡이었다.'고 노래에 대해 설명하였다. 오지훈의 간략한 설명 뒤에 우현이 김지훈에 대한 추모곡으로 '그대 눈물까지도'를 부를 때 슈가맨에서 자료화면으로 그의 사진과 천국에서 내린 비의 뮤직비디오의 영상으로 틀어주었다.[39]
그의 독특한 음색과 넓고도 높은 음역대를 완전히 소화하기 힘들기 때문에 실제 복원 무대와 추모 무대에서는 원곡보다 키를 낮추어서 무대를 선보였다.[40] 방송에서 MC 유희열은 "(김)지훈 씨 노래가 고음이에요."라고 말하기도 했으니... 가창력뿐만 아니라 예능에서의 입담도 뛰어났던 그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
무표정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황혜영은 김지훈의 장례식 때 만삭이어서 그의 발인식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큰 충격을 받은 그때의 기억 때문에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제작진의 출연 제의를 여러 번 거절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꿈에 너무 밝은 얼굴의 김지훈이 나왔던 터라,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응원'이라고 생각하여, 슈가맨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방송이 나간 후 우현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41]에서 '선배님들께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솔로 활동을 하면서도 잠을 못 잘 정도로 끊임없이 연습했다'고 하며 "고 김지훈 선배님의 노래를 부르면서 선배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학창시절 때 선배님의 재치 있는 입담을 좋아했거든요. 또 선배님이 노래를 워낙 잘하셔서 제가 잘할 수 있을까 많이 걱정했죠."라고 대답하였다. 자신 또한 가슴 한 켠이 아리고 아팠기에 노래에 더 집중하였다고 복원송에 참여한 소감을 이야기하였다.

5.1. 장자연 관련


미투운동이 불면서 김지훈이 장자연에 대해 했던 말이 주목받았다. 김지훈은 아내를 통해 장자연과 친분이 있었고 장자연이 자살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또 김지훈은 이에 대해 찔리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자연의 영정사진을 직접 든 것도 김지훈. 김지훈은 장자연의 죽음에 대해 진실을 밝히려 했으나 그해 김지훈 본인이 마약 투약으로 구속되어 방송정지를 받았으며, 이듬해 이혼하면서 위기에 빠졌고 2013년 그도 목숨을 끊으면서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석연찮은 점은 장례식 당시 DJ DOC김창열이 썰렁한 조문소를 보고 동료 연예인들을 향해 여기 온다고 해되지 않는다. 라는 저격 트윗을 날렸다는 점이다. 장자연 사건이 재조명을 받으면서 김지훈도 단순 자살이 아닌 거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게 하고 있다.

6. 음반



6.1. 정규음반


<rowcolor=#373a3c> 음반
제목
발매일
타이틀곡
그 외 활동곡
투투 1집
TWO TWO
1994년 5월 1일
일과 이분의 일 듣기
그대 눈물까지도, 내 인생의 러시아워[42]
투투 2집
TWO TWO 2
1995년 6월 30일
바람난 여자
니가 내 것이 되갈수록
김지훈 1집
KIM JI HOON VOL. 1
1997년 7월 21일
익숙해진 슬픔
-
듀크 1집
2000 Duke Part One
2000년 2월 16일
Starian
Good Night
듀크 2집
Two House
2000년 11월 8일
Party Tonight
두번째 소원
듀크 3집
In Autumn (A Road, Sky And D.K)
2002년 10월 29일
천국에서 내린 비
주말의 명화
듀크 4집
포르노 그라피
2004년 7월 2일
아가씨, Hunters[43]
-

6.2. 비정규음반


<rowcolor=#373a3c> 음반
제목
발매일
타이틀곡
그 외 활동곡
싱글 앨범
Gang First Album
1998년 8월 1일
-
-
듀크 2.5집
Duke Summer Special
2001년 7월 26일
Boom Boom
Alone, 궁둥이 댄스
리믹스 앨범
Duke Story Of Winter(Winter Special Great Hit Remix)
2002년 1월 18일
-
-
싱글 앨범
The Rebirth Of Duke
2006년 7월 18일
Superman(Feat.강수지)
-
디지털 싱글
김지훈 정식 추모앨범
2014년 12월 11일
그대 눈물까지도
-

6.3. 참여 음반과 참여곡


<rowcolor=#373a3c> 음반
참여곡
발매일
'90 KBS 청소년 창작가요제
지나간 순간은 찢겨진 가슴되어
1991년 1월
'94 내일은 늦으리
아름다운 세상으로, 용사의 외침
1994년 11월 6일
룰라투투의 크리스마스
Silver Bell, 저 들밖에 한 밤중엔, 동화속의 크리스마스,
석별의 정, White Chirstmas
1994년 12월
수호천사
수호천사
2001년 3월 29일
Dj처리의 Cross Over Vol. 1
Last Night's Story, One Night Stand
2001년 10월 10일
Happy Christmas Last Christmas
X-Mas Party (Feat. DJ 사빈, DJ 이탁)
2001년 11월 27일
Stars On 45 Carol - 크리스마스를 빛낸 45인의 명사들
펠리스나비다
2002년 11월
I Love Christmas + Dance + Hiphop
White Christmas
2002년 11월 26일
Kiss In The Rain
We Can Do, Love Hunters
2004년 7월 23일
황금신부 정규앨범 OST
사랑합니다
2007년 9월 10일
이은하 - My Song My Jazz
You don't have to say you love me (Feat. 김지훈)
2012년 2월 21일

7. 출연작



7.1. CF 광고


<rowcolor=#373a3c> 연도
작품
1994
(주) 마이크로 - 마이크로 터치 샤프
1994
미코팬시
1994
롯데제과 개성파 초코 바 1 롯데제과 개성파 초코 바 2
1995
한국종합유선방송협회 30개의 채널 케이블 TV
2000
오리온 새알
2000
오리온 비틀즈

7.2. 시트콤


<rowcolor=#373a3c> 연도
작품
역할
2001
iTV(경인방송) 립스틱
가정부
2001
MBC 뉴 논스톱
성악과 학생 김지훈 (카메오 출연)
2003
MBC 논스톱3
김지훈
2007
MBC 김치 치즈 스마일
카메오 출연 70화: 의사 83화: 신문 기자

7.3. 뮤지컬


<rowcolor=#373a3c> 연도
작품
역할
2002
홍가와라
-
2009
위대한 Show
조동팔

7.4. 영화


<rowcolor=#373a3c> 연도
작품
역할
2004
내 사랑 싸가지
거지 (특별 출연)

7.5. 기타


<rowcolor=#373a3c> 방송일자
작품
소제목
역할
2007.10.19.
SBS 심리극장 천인야화
체크드라마 조급증 - 바쁘다 바빠 서차장의 하루
서차장
2007.11.09.
SBS 심리극장 천인야화
Dear 해미 해미에게 물어보세요 - 너는 내 운명
선배 약사
2007.11.23.
SBS 심리극장 천인야화
Dear 해미 해미에게 물어보세요 - 남편의 덫
담임 선생님
2007.12.07.
SBS 심리극장 천인야화
Dear 해미 해미에게 물어보세요 - 내 남편은 양치기 소년
오동팔
2007.12.21.
SBS 심리극장 천인야화
Dear 해미 해미에게 물어보세요 - 내 남편은 팔불출
남편

8. 수상경력



8.1. 시상식


<rowcolor=#000000> 연도
시상식 명
수상 부문
1994년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
SKC 신인 가수상
제5회 서울가요대상
랩댄스 부문 대상[44]
KBS 가요대상
신인상
골든디스크[45]
본상
2002년
제10회 한국최고인기연예대상
신세대가수상

8.2. 가요 프로그램


<rowcolor=#000000> 날짜
곡명
방송명
비고
1994.07.17.
일과 이분의 일
SBS 생방송 TV가요 20
첫 1위
1994.07.24.
SBS 생방송 TV가요 20
2주 연속 1위
1994.08.07.
SBS 생방송 TV가요 20
1위
1994.08.14.
SBS 생방송 TV가요 20
2주 연속 1위
1994.08.21.
SBS 생방송 TV가요 20
3주 연속 1위
1994.07.21.
KBS 가요톱텐
가요 톱텐 첫 1위
1994.08.03.
KBS 가요톱텐
2주 연속 1위
1994.08.10.
KBS 가요톱텐
3주 연속 1위
1994.08.17.
KBS 가요톱텐
4주 연속 1위
1994.08.24.
KBS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 골든컵

[1] 음력 1973년 2월 17일. 흔히 알려진 1973년 5월 5일은 주민등록상의 생일이다. 김지훈이 안치되어 있는 분당 추모공원 휴에서도 생년월일이 1973년 2월 17일(음력)로 기록되어 있다. 김지훈은 SBS에서 2001년 9월에 방영된 기분 좋은 밤 149회에서 자신의 생년월일을 '소띠 2월생'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일부 사이트에서도 김지훈의 1973년 2월 17일로 생년월일이 기록된 이유가 실제로 태어난 날이 음력으로 2월 17일이었기 때문이다. 도전 1000곡에서도 번호를 선택할 때 217을 선택하기도 할 정도로 음력 2월 17일은 그가 특히 애착을 가진 생일이었다. 다만 듀크 팬클럽인 DWC는 5월에 그의 생일을 기념했다.[2] 김지훈의 생전 기사(2005년)에서 어머니가 일흔이 넘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3] 몸무게의 경우 공식 프로필상의 몸무게(63kg)는 듀크 초창기 시절의 몸무게이며, 2008년 1월 감성매거진 행복한 오후에서 투투 시절은 지금(2008년)보다 20kg 정도 덜 나갔고, 솔로 앨범 시기엔 15kg 정도, 듀크 시절엔 10kg 정도 덜 나갔다고 언급하였다. 브레인 서바이버에서 강동원과 같이 서있을 때 별 차이가 안났다.[4] 투투 시절 때 메가히트곡인 일과 이분의 일의 최고 음역대는 "3옥타브 도#(C#5)"이며 네 어깨 손 올는 다른 어떤 사람 구간에서 최고 음역대를 찍는다. 그것도 후렴구가 아닌 구간에서. 이윤정(무대에서는 황혜영이 이윤정 대신 무대에 섰다.)의 파트보다 음이 더 높다. 여성 파트의 최고 옥타브는 "2옥타브 시(B4)" [5] TV는 사랑을 싣고 2003년 10월 26일자 방송에서 그의 초등학교 생활 기록부의 일부가 공개되었으며, 온순하다는 표현은 학년별 평가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단어다.[6] 재학 시절 내내 중창단 활동을 한 것은 아니고 중간에 탈퇴했다고 한다.[7] 김지훈이 생전 예능에서 자주 불렀으며 원 키 그대로 소화하여 그의 가창력을 뽐내기도 하였다. 1994년 9월 28일에 방영한 밤과 음악 사이에서는 She's Gone#s-1을 부를 때 살짝 실수를 하였지만, 2003년에 방송한 폭소 클럽에서는 완벽하게 소화해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지식인 등 웹사이트에서도 그가 She's Gone을 소화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8] 김지훈은 KBS 2TV '감성매거진 행복한 오후'의 2008년 1월 31일자 방송에서 청소년 창작가요제 본선에 진출한 사실을 언급하였다. 그가 참가한 제3회 청소년 창작가요제의 우승자는 가수 윤영아며, 가수 김경호는 제2회 청소년 창작가요제의 수상자였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김지훈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참가한 청소년 창작가요제는 제2회, 김경호는 제1회의 수상자로 언급하였으나 1990년은 제3회였으며, 1989년은 제2회가 맞다. 1988년 제1회는 '고교생 창작곡 경연대회'로 개최했고 1989년부터 '청소년 창작가요제'로 개최 1991년까지 개최되다가 1993년부터 EBS로 이관되어 95년까지 개최되었다.) 김지훈은 수상자 목록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1990년 제3회 KBS 한국방송공사 청소년 창작가요제의 LP 음반에는 그의 노래도 포함되어 있다. LP 음반은 수상자 7팀과 본선 진출자 중 비수상자 5팀의 노래가 수록되어있다.[9] 본선 참가번호: 11번[10] 유현재의 선배는 유현재에게 김지훈을 소개하기 전에, 1990년 청소년 가요제에 나온 아이라고 하며 밴드 보컬로 김지훈을 추천했다고 한다.[11] 가요톱10의 1994년 7월 1주차 방송은 상반기 결산 방송이며, 7월 1주의 순위를 측정하지 않았다.[12] 골든디스크로 알려져 있는 대한민국 영상 음반대상과는 다른 시상식이다.[13] 투투 2집 활동 말기에 다리를 다쳤던 터라 한 동안 병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녔기에, 마지막 무대에서는 다리를 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14] 일과 이분의 일이 수록된 데뷔 앨범은 1994년에 120만 이상 팔렸다고 한다. 출처: MBC 뉴스투데이, 2020. 8. 24. TV 앨범 '일과 이분의 일' 투투[15] 2008년 1월 31일자 KBS2 감성매거진 행복한 오후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투투 시절의 수입 문제는 객원 멤버로 활동했던 황혜영도 SBS 자기야와 2012년 11월 8일에 방영된 tvN e-news에서 언급하기도 했다.[16] SBS 자기야에 출연한 황혜영이 투투시절에 대해 언급한 사실이다.[17] 출연자: 주영훈, 이정현, 싸이, 이기찬, 황보, 김지훈[18] 김지훈의 아버지는 김지훈이 6살 때 세상을 떠났다.(이 사실을 2009년 5월에 방영된 KBS Drama 채널의 '하하호호 부부유친'에서 언급하였다.) 그는 2003년 혹은 2004년에 듀크로 활동하면서 번 돈을 모아 집을 산 뒤 미국의 누나 집에서 사시던 어머니를 모셔왔고, 결혼 전까지 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그는 여러 예능에서 1집만 세 번(투투, 솔로, 듀크) 냈었다는 사실을 언급했었다.[19] 이재민의 골목길을 리메이크한 골목길, 김지훈이 작사, 작곡한 '비연', 그리고 '쉽지 않아'가 있다. 세 곡은 모두 듀크 1집에 수록되어있고 '비연'은 듀크 2.5집에도 수록되어 있다. 듀크 2.5집의 비연은 김석민, 김지훈 둘의 목소리로 리메이크했다. 2.5집의 편곡자는 1집의 편곡자와 다른 사람이다.[20] 작사: 김석민, 김지훈, 작곡: 김지훈 편곡: 최재은[21] '듀엣 듀크 테크노 전사로 뜬다.', 허엽, 1999.12.29. ,동아일보 [22] 타이틀곡을 2개 정도 썼지만 흥행하지 못해 소속사 사무실에서 눈치를 봤다고 2002년에 출연한 야! 한밤에 - 진실 혹은 대담에서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듀크 1집의 타이틀곡인 'Starian'과 듀크 2.5집의 타이틀곡인 'Boom Boom'을 언급하는 듯하다.[23] 2001년 1월 30일, 2001년 3월 27일 방송[24] 수호천사는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주기 위해, 앨범의 수익금을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들에게 전달해주고 치료되어가는 과정을 전달하려는 의도로 기획된 앨범이다.[25] 열린음악회에서 'Party tonight'은 김석민, 김지훈이 랩을 다 소화하고 김태영의 피처링 부분은 김지훈이 불렀다.[26] 다만 편곡은 김석민, 김진수가 하였다.[27] 마약복용 듀크 멤버 김지훈, 벌금2000만원, 헤럴드POP, 정은정, 2005.08.17[28] 다만 결혼식은 2008년 6월 27일에 올렸던 터라 일부 언론에서는 결혼식 이전의 혼인 기간을 사실혼 또는 동거 기간으로 언급했다. 대한민국은 법률혼 국가기 때문에 결혼식 날부터 결혼이 성립했다고 볼 수 없다.[29] 관련기사: '마약 투약' 가수 김지훈 집행유예, 연합뉴스, 김계연, 2009.12.02[30]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른 것을 제외하고 그가 참여한 공식적인 공연 중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31] 당시 안재모, 유진에게 패했다.[32] 1994년 10월부터 방영된 주말 예능프로그램 톱스타 인생극장의 하위 프로그램으로, 출연 연예인의 이름을 붙인 ○○의 뮤직 극장이 제목으로 붙는 콩트다. 뮤직 극장에는 주로 가수들이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33] 여자 주인공 '럭시' 역할로는 바나나걸 1대 멤버인 안수지가 출연했으며, 김진수가 조연으로 출연했다.[34] '응사' 김지훈 떠났기에 더 슬픈 '그대 눈물까지도' [35] 그대 눈물까지도는 1994년과 1995년은 노래를 작곡한 오지훈이 편곡을, 1997년, 2000년, 유작은 다른 사람들이 편곡했다.[36] 연예가중계에서는 더원이 부른 버전으로 나왔다. 생전에도 '지나간다'와 '가슴에 지는 태양'을 비롯한 김범수의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그가 2003년에 조연으로 중간투입 된 논스톱3에서도 김범수의 '하루'를 부르기도 했다.[37] 관련 기사 [38] 관련 기사: [연예의 법칙] ‘보고 싶지만…’ 토토가에서도 볼 수 없는 90년대 스타들, 스포츠 동아, 2015.01.06. [39]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는 김지훈이 부른 1994년도의 원곡도 몇 초간 추모곡으로 흘러나왔다.[40] 일과 이분의 일은 한 키를 낮추어서 노래를 불렀고 그대 눈물까지도는 두 키 정도 낮추어서 불렀다고 한다.[41] '슈가맨' 남우현 "故 김지훈 생각나, 가슴 아렸다", OSEN[42]1994 한국 슈퍼모델 선발대회》 에서 선보였다.[43] 팬들의 의견을 물어 정한 더블 타이틀 곡이다.[44] 1994년 제5회 서울가요대상 수상자 목록 - 올해의 가수상(=대상): 김건모/ 트로트 부문 대상: 임주리, 최유나, 설운도 /팝발라드 부분 대상: 신승훈, 부활, 신성우 /랩댄스 부문 대상: 김건모, 투투, 룰라 /신인상: 구본승 /특별상: 이애숙 /최고작곡가상: 김창환 /최고편곡자상: 김형석 /최고작사가상: 양인자 /최고인기가요기획상: 사맹석[45] 2001년에 '골든디스크'로 바뀐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과는 다른 시상식이며, 전국음반도매상연합회가 주최한 행사였다. 유현재의 입대 후 있던 시상식으로, 시상식에는 멤버 3명과 음반기획자가 참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