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1. 개요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4권 <책모편> 8장 ~ 5권 <풍운편> 10장
- 은하영웅전설 OVA 41~54화
- 시기 : 우주력 798년, 제국력 489년 표준력 11월 20일 ~ 우주력 799년, 제국력 490년 표준력 5월 25일
은하영웅전설의 역사에서는 드물게도 무려 4개의 세력이 참여했는데, 각각 골덴바움 왕조, 페잔 자치령, 자유행성동맹, 은하제국 정통정부이다. 그런데 작전 시작한 지 얼마 안가서 페잔이 망하고 정통정부는 유명무실했기에 실질적으로는 골덴바움 왕조 vs 자유행성동맹이었다.
2. 주요 인물
2.1. 은하제국
- 페잔 회랑 방면군
- 총사령관
- 은하제국군 최고사령관 겸 재국재상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제국원수
- 제1진: 미터마이어 함대
- 함대 사령관: 볼프강 미터마이어 상급대장
- 휘하 함대 사령관
- 칼 에두아르트 바이어라인 중장
- 폴커 악셀 폰 부로 중장
- 드로이젠 소장
- 제2진: 뮐러 함대
- 함대 사령관: 나이트하르트 뮐러 대장
- 제3진: 라인하르트 함대
- 함대 사령관: 은하제국군 최고사령관 겸 재국재상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제국원수
- 휘하 함대 사령관
- 이자크 페르난트 폰 투르나이젠 중장
- 베르너 알트링겐 중장
- 롤프 오토 브라우히치 중장
- 카르나프 중장
- 그뤼네만 중장
- 참모 및 부관
- 우주함대 총참모장 겸 통수본부총장 대리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상급대장
- 수석부관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 소장
- 차석부관 테오도르 폰 뤼케 대위
- 재국재상 수석비서관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백작영애
- 친위대장 귄터 키슬링 대령
- 제4진: 슈타인메츠 함대
- 함대 사령관: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대장
- 참모장 나이세바흐 중장
- 제5진: 바렌 함대
- 함대 사령관: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대장
- 총사령관
- 이제르론 회랑 방면군
- 총사령관: 오스카 폰 로이엔탈 상급대장
- 부사령관
- 참모
- 참모장 한스 에두아르트 베르겐그륀 중장
- 예비대
- 파렌하이트 함대
- 함대 사령관: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대장
- 슈바르츠 란첸라이터
- 함대 사령관: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대장
- 파렌하이트 함대
- 대기 그룹
- 제도방위사령관 겸 헌병총감 울리히 케슬러 대장
- 통수본부차장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대장
2.2. 자유행성동맹, 은하제국 정통정부
-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
-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 의장(국가원수) 욥 트뤼니히트
- 국방위원회
- 국방위원장 월터 아일랜즈
- 통합작전본부
- 통합작전본부장 도슨 원수
- 우주함대 사령부
- JL77
- 기지 사령관 브레첼리 대령
- 류카스 성역
- 기지 책임자 오브리 코클랭
- 은하제국 정통정부
- 정부
- 폐제 에르빈 요제프 2세[2]
- 국무상서 요펜 폰 렘샤이트 백작
- 군부
- 군무상서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원수
- 군무성 차관 알프레트 폰 란즈베르크 백작
- 제독 레오폴트 슈마허 대령
- 부관 베른하르트 폰 슈나이더 중령
- 정부
2.3. 페잔 자치령
3. 전개
3.1. 배경
황제 납치 사건, 은하제국 정통정부 발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 하에 제국 안의 反동맹 분위기는 그야말로 절정을 달리고 있었고, 이는 라인하르트가 노린 바였다. 더군다나 제국령 침공작전의 실패로 동맹과 제국의 군사적 차이는 동맹이 따라잡기 힘든 정도까지 벌어져 있었으니 정말 동맹 제압 & 우주 통일을 위한 신이 내린 타이밍이라고 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동맹과 제국 사이에 이전까지 유일한 군사작전이 가능했던 이제르론 회랑은 동맹군이 점거하고 있었고, 회랑 중앙의 난공 불락요새에는 희대의 먼치킨 양 웬리가 버티고 있었다. 만약 구시절처럼 이제르론 요새를 돌파하는 방법으로는 승리 가능성은 둘째치고 엄청난 피해를 제국이 짊어져야 하는 바, 이전과는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3.2. 작전 발령
따라서 제국군 수뇌부는 9월 19일 다음과 같은 작전을 발령한다.
1. 이제르론 요새를 대규모 함대로 공격한다. 이는 일종의 기만전술로 전 우주의 관심을 이제르론 회랑에 묶고 동맹군의 주력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서다.
2. 동맹군의 주력 & 우주의 관심이 이제르론 요새에 쏠려있는 사이에 제국군 주력함대는 페잔 회랑을 돌파, 동맹령에 침입한다.
3. 만약 양 웬리가 이것을 눈치채고 페잔 회랑으로 올 시 양 웬리가 없는 이제르론 요새를 점령하고 배후로 돌아서 페잔 회랑에서 협공하여 끝장낸다.
이 작전을 들은 제국군 제장들은 '''앞다투어 자신을 이 작전에 참가시켜달라고 했다.'''
이튿날, 9월 20일 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 제37대 황제 에르빈 요제프 2세가 제위를 박탈당하고 새로이 생후 8개월의 카타린 케트헨 폰 페크니츠가 제위에 올랐다. 그녀는 골덴바움 왕조에 있어 첫 여제였고 사상 최연소 황제였다.
당시 제국으로써는 압도적인 병력 우위를 점하고 있어 굳이 이제르론 요새를 정면으로 돌파할 이유가 없었다. 페잔이 긴 세월동안 제국, 동맹 어느 쪽으로부터 침략받지 않은 것은 페잔의 방어 정책이 '''어느 한 쪽이 페잔을 공격한다면 페잔은 그 반대세력과 손을 잡아 이를 저지한다'''였기 때문이다. 페잔에는 자체적인 군사력이 전혀 없었다. 소수의 경비함대 정도가 존재한다는 언급이 전부이며 전면적인 군사적 침략을 막아낼 힘이 없었다. 게다가 제국도 자기네들이 건설한 이제르론 요새의 위력을 알았기에 함부로 공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뿐더러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의 제국군을 이끈 로이엔탈도 힘으로 뺏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로 무력으로는 상대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겼다.
이렇게 계획을 확정한 은하제국군은 작전에 무려 8만 7500척의 함정과 1200만의 병력을 동원했다. 우선 이제르론 방면으로 3개 함대를 보냈다. 이제르론 방면군 총사령관은 로이엔탈 상급대장, 부사령관은 렌넨캄프, 루츠 대장으로써 이제르론에 이목을 집중하게 한 뒤 그 사이에 단숨에 페잔 항로를 제압하여 동맹령을 침공하려는 의도였다. 이제르론 방면군의 지원은 아이제나흐 대장이 맡았다. 에른스트 폰 아이제나흐는 화려한 공적은 없지만 후방 교란 양동 작전 양륙 지원 등 지루하지만 중요한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여 한번도 라인하르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적이 없었다.
페잔 방면의 제1진은 미터마이어, 제2진은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입은 부상을 회복하고 현역으로 복귀한 뮐러 대장이었다. 난국에 강하다고 정평이난 뮐러를 미터마이어 뒤에 둔 것은 라인하르트의 탁월한 인사라 할 수 있다. 물론, 뮐러 자신은 이전의 설욕을 위해 내심 이제르론 공략 작전에 참여하고 싶었했다. 제3진은 라인하르트 본인이 직접 지휘했다. 그 직속부대로는 알트링겐, 브라우히츠, 카르나프, 그뤼네만, 트루나이젠으로 각 중장이 지휘하는 함대가 배속되었다. 총기함 브륀힐트에는 총참모장 오베르슈타인 상급대장 수석 부관 슈트라이트 소장, 차석 부관 뤼케 대위, 친위대장 키슬링 중령이 동승했다. 그리고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도 정식 중령 대우로 기함에 동승했다. 제4진은 슈타인메츠 대장으로 만일 제국군이 동맹령에 침투했을 때 페잔 항로가 봉쇄당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 반전해서 이를 격퇴하는 임무를 맡았다. 최후위가 되는 제5 진은 바렌 대장으로 페잔 항로와 제국 본토를 잇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비텐펠트와 파렌하이트 두 대장의 함대가 예비 병력으로서 대기하게 되었다. 둘 다 공세에 강하여 아마도, 동맹군의 숨통을 끊는 국면에 달했을 때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케슬러 대장은 방위 사령관으로 메크링거 대장은 후방 담당으로서 둘 다 제도 오딘에 잔류했다. 작전 발동은 로이엔탈 지휘하의 이제르론 방면군의 출발을 시작으로 했다. 기일은 제국 표준시 11월 10일로 정했다.
3.3. 동맹의 반응
이러한 정보 중, 이제르론 방면에 관한 것만이 의도적으로 공표되어 페잔을 경유해 동맹에 전달되었고, 동맹정부는 군부의 최고 간부들과 모여 국방조정회의를 개최하였다. 처음에는 비상사태인 것은 분명하나 이제르론 항로에는 난공불락의 요새인 이제르론 요새도 있고 무엇보다도 불패의 명장 양 웬리가 있기 때문에 제국군이 동맹령에 진입할 수 있을리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우주함대 사령장관 알렉산드르 뷰코크 대장은 제국의 로엠그람 공작이 앞서 언급한 난공불락의 요새와 불패의 명장이 있음에도 그 전쟁의 천재가 아무 승산도 없이 싸움을 걸어올 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이제르론 공격이 그저 양동에 지나지 않고 적의 주력부대는 페잔 회랑를 향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다.
그의 걱정은 적중했으나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이를 듣고 독창적이지만 페잔이 정치적 중립을 버리고 1세기 가까운 전통을 버리면서 제국에 가담할 거라곤 생각할 수 없으며 애초에 그리해서 제국이 더욱 거대화하면 페잔 자신의 존재가 위축되게 될거라며 페잔이 그런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리 없고 또한, 페잔은 동맹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여 거대한 권익을 유지하고 있기에 만일 동맹이 제국에 정복당할 사태에 놓이면 이때까지 이어진 그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며 상인으로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을 그들이 할리가 없다고 희의적으로 생각했다.
뷰코크는 페잔은 분명히 동맹에 자본을 투자하고 있으나 그것은 동맹 소행성의 광산 토지 및 기업에 대한 것이지 동맹 정부 그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페잔인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자본만 안전하다면 동맹이라는 국가가 붕괴한다 하더라도 그다지 불안함을 느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뷰코크의 걱정은 어떤 구체적인 증거에 의한 것이 아닌 이상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며 일축했다. 결국 이제르론 방면 방어태세를 강화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3.4. 작전 개시
우주력 798년 11월 20일 은하제국군은 오스카 폰 로이엔탈 상급대장이 이끄는 제국군 함대 3만 6천 척이 이제르론 회랑에 나타났다. 라그나뢰크 작전의 최초 포화였다. 그의 함대 포진을 본 양 웬리는 당당한 포진이며 두께도 너비도 흠잡을 데가 없다며 대단하다는 평가를 했다. 설령 양동작전일 뿐인데도 전력을 다하는 것이냐며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햇다.
계획대로 이제르론 요새 공략은 실패했으며, 은하제국군 최고사령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원수는 즉각 증원 병력을 보내겠다고 발표했다.(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
우주력 798년 제국력 489년 12월 9일, 라인하르트의 명에 따라 볼프강 미터마이어 상급대장은 2만 척의 함대, 200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수도성 오딘을 출발했다. 라그나뢰크 작전의 제2막이 올랐다. 그런데 함대는 이제르론 회랑이 아니라 페잔 회랑으로 향하고 있었으며, 이에 제국군 장병들의 의구심을 증폭되었다. 장병들의 의구심은 미터마이어 상급대장은 12월 13일 직접 전 함대에 이번 작전의 진정한 목적을 공표함으로써 해소되었다. 미터마이어 함대는 페잔 회랑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페잔 상선들을 모두 나포, 격침함으로써 자신들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감췄다. 결국 페잔 자치령은 얼마 없는 경비함대로도 싸우지 못하고 허무하게 제국에게 제압당했다. 이 과정에서 페잔 주재무관으로 있던 율리안 민츠 소위가 헨슬로 판무관을 데리고 페잔을 탈출하였다.(페잔 점령 작전, 율리안 민츠의 페잔 탈출)
페잔이 제국에게 점령당했다는 소식은 동맹 시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동맹정부는 보도관제로 페잔이 점령당했다는 사실을 감추었지만, 페잔 방면에서 온 우주선 승무원들이 떠들어대는 바람에 동맹 시민들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민들은 동맹정부에게 해결책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지만, 정작 국가원수 욥 트뤼니히트 최고평의회 의장은 정부 공보관을 통해 '책임이 막중함을 통감한다'는 말을 남기고 잠적해버렸다. 거기에다 트뤼니히트를 칭송하던 매스컴들은 '의장 한 사람만의 책임이 아니다. 전 국민의 책임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트뤼니히트를 옹호하고 '정부에 협조하지 않고 권리만을 주장하는' 국민들을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뤼니히트 일파로서 그동안 부패한 삼류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월터 아일랜즈 국방위원장이 갑자기 참 정치인으로 각성했다. 그는 즉시 각료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열고, 제국에 항전하되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하는 방침을 수립했다. 아일랜즈는 우주함대 사령장관 알렉산드르 뷰코크 대장을 만나 군의 협조를 요청했고, 뷰코크도 흔쾌히 협조했다. 뷰코크는 군부 1인자인 통합작전본부장 도슨 대장을 찾아가서 전권을 위임받고 전력을 긁어모아 3만 5천 척의 함정을 확보한 뒤, 그 중 1함대 소속이 아닌 2만 척의 함정을 반으로 갈라 14,15 함대를 편성, 함대 사령관으로 라이오넬 모튼 중장과 랄프 칼센 중장을 임명했다. 그 때 총참모장 오스만 중장이 급성뇌출혈로 쓰러져서 부참모장 춘우 지엔 중장이 총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자유행성동맹군 수뇌부는 회의 결과 페잔 회랑으로 침공한 제국군의 행동선과 보급선이 한계에 달할 때 공격하는 것과 이제르론에 있는 양 웬리에게 책임은 우주함대 사령부가 질 테니, 최선이라 생각하는 방법을 택하라는 훈령을 보내기로 했다.
한편 라인하르트 타도를 주장하는 은하제국 정통정부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정규함대라도 있는 동맹과 달리 군사력이라고 해봤자 병사 5명에 불과했으므로, 제국이 침공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다 제국과 동맹이 강화를 한다면 제국은 정통정부 요인에 대한 처벌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국재상이자 정통정부 수반인 요펜 폰 렘샤이트 백작은 내각회의를 열었으나 일곱 명의 상서 중 두 명은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도망쳤고 대책은 없었다. 결국 다음날 내각회의에 나온 사람들은 렘샤이트 백작과 군무상서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원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우주력 799년 1월 4일 제국군 제1진은 페잔 회랑을 돌파하여 자유행성동맹으로 향했고 같은 해 1월 9일 자유행성동맹을 침공했다. 얼마 뒤 이제르론 요새를 지키는 양 웬리 함대가 이제르론을 버리고 동맹령으로 후퇴했다.
1월 24일. 독립상선 베료즈카 호가 율리안 민츠 이하 승객 80명을 태우고 페잔을 떠나 동맹령으로 향했다.
1월 30일. 제국원정군은 페잔에서 2,800광년을 항해해서 포레비트 성역에 집결하였다. 이 때 제국원정군의 병력은 전투함 112,700척, 지원함 41,900척, 장병 1,660만에 달했다. 한편 동맹군은 란테마리오 성역을 전장으로 정했는데, 지역 성계에서 동맹정부가 수도 하이네센을 제외한 성계의 방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터져나왔고, 그 의혹이 현실화 될 경우 지역 성계가 방위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동맹을 이탈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란테마리오에서 동맹군과 제국군은 격돌하였으며, 싸움의 결과는 동맹군의 패배로 끝났지만 갑자기 제국군의 후방에 나타난 양 웬리 함대 때문에 제국군은 동맹군에게 결정타를 날리지 못했다.(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
하이네센으로 돌아온 양 웬리와 그의 참모진들은 모두 승진하였으며, 특히 양은 32세 나이에 원수로 승진해 브루스 애쉬비의 기록을 갱신했다. 그리고 양은 아일랜즈에게 라인하르트를 죽여 제국군을 물러나게 한다는 계획을 알려주었다. 한편 간다르바 성계의 행성 우르바시에 거점을 건설한 제국원정군에서는 로이엔탈 함대도 합류하여 총병력만 2000만에 달했다.
하지만 우주력 799년 2월 말부터 양 웬리 함대의 준동이 시작되었다. 양 웬리는 우선 제국군 수송선단을 습격하여 제국군의 보급에 차질을 빚게 만들었으며, 라이가르-트리푸라 성역에서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대장과 헬무트 렌넨캄프 대장의 함대를 차례로 분쇄했고 타실리 성역에서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대장의 함대마저 격퇴했다. 이렇게 되자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원수는 자신이 직접 함대를 이끌고 양 웬리를 상대하고, 다른 제독들은 동맹령 각지를 정복한다는 작전을 수립하였다.(수송선단 습격전, 라이가르 성역 회전, 타실리 성역 회전)
우주력 799년 4월 24일.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는 버밀리온 성역에서 격돌했다. 성역의 전투는 뮐러 함대의 합류에도 라인하르트가 밀리고 있었으며, 끝내 기함 브륀힐트가 동맹군 주포 사거리에 들어왔으나 갑작스런 동맹 국가원수 욥 트뤼니히트 최고평의회 의장의 정전 명령으로 양 웬리는 라인하르트에게 항복했다. 이는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가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에게 가서 버밀리온 성역의 제국군을 돕는 게 아닌 동맹 수도성 하이네센을 정복하여 항복을 받자고 진언했고, 그 말을 따른 두 제독의 함대가 하이네센 상공까지 오자 숨어지내던 욥 트뤼니히트가 갑자기 나타나 항복을 주장하고 반대하는 아일랜즈 국방위원장과 뷰코크 우주함대 사령장관을 지구교도의 도움으로 모조리 연금하는, 이른바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제국군에게 항복했기 때문이다. 전투가 끝나자 양 웬리 함대는 4만 척의 제국군에게 포위당했고, 처음으로 라인하르트와 만나 회담을 진행하였다.(버밀리온 성역 회전)
우주력 799년 5월 25일. 패전한 동맹과 제국은 평화조약을 맺었다. 그 조약에는 동맹의 군사력 제한이나 배상금 지불, 제국 함정의 동맹령 자유 항행 등등 동맹에게 불리한 조건들로 가득했다. 이로써 동맹은 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하였다.(바라트 화약)
원정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돌아온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원수는 우주력 799년 6월 20일 골덴바움 왕조의 황제 카타린 케트헨 1세의 섭정을 맡고 있던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 공작에게서 제위를 넘겨받았고, 6월 22일 즉위함으로써 로엔그람 왕조를 개창하였다.
4. 평가
이 작전의 결과로 동맹은 마지막으로 국가를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거의 유일한 기둥이었던 군사력까지 거의 완전히 소멸하여 실질적으로 멸망하였다.
4.1. 제국
전략적인 면에서는 베스트. 상대보다 많은 병력의 이점으로 한 쪽은 적의 정예군을 붙잡는 동안 주력군은 다른 통로를 통해 무방비인 후방으로 진격한다는 개념을 설정하고 그대로 실행했으며 또한 페잔을 점령한 뒤 페잔 항로국의 데이터를 신속히 확보해 동맹과의 결전에서 유용하게 쓰일 항해도를 확보하는 등 주요 전략 시설물 확보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훌륭했다.
물론 양 웬리라는 상대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어 전술적인 면에서는 승전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4.2. 동맹
제국령 침공작전과 구국군사회의의 내전으로 파탄이 나 페잔에게 거의 종속되다시피한 국가 경제력을 가진 상황에서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군사력을 거의 전부 잃어버렸고, 체제 특성 상 직업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이 국가운영을 하는데 이들이 궤변과 이익유도로 자기들 위주로 국가를 장악하여 국가가 점점 약화되고 있던 시점에서[3] 동맹의 운명은 패망으로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보통이라면 동맹을 파행으로 이끄는 게 정상이던 제국군의 원정이 파행으로 가고 있던 국가를 정상화 시켰을 정도.
제국군이 원정을 개시하자 그동안 자기들 마음대로 활개치던 트뤼니히트와 그의 세력들은 잠적을 하거나 마비되었고 그 덕분에 제국군 앞에서 지리멸렬하는 추태만은 막을 수 있었다. 걸림돌들과 장벽들이 사라지자 평소에는 이들에게 시달렸던 우주함대 사령장관 뷰코크 대장은 실질적인 군 최고 수뇌로서 비록 가망성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실행을 시켰으며 동맹군 지휘관들도 독자적으로 행동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제국군에 대항하여 일방적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특히 양 웬리는 평소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100%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독자적인 권한을 부여받아 기대에 부응하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 있었다면 트뤼니히트의 잠적 이후 뜻하지 않은 행운이 굴러왔는데 바로 앞에서 나온 아일랜즈가 갑자기 각성하여 의장 없는 평의회를 이끌어가며 뷰코크, 양 웬리 등 그나마 동맹에 몇 없는 명장들에게 지원을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 하여서 동맹이 이길 뻔한 전투 버밀리온 성역 회전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