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대한민국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중략)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후략)

'''제11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제21조'''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22조''' ①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우리나라는 건국헌법이래 문화국가의 원리를 헌법의 기본원리로 채택하여 왔다. 문화국가원리는 국가의 문화국가실현에 관한 과제 또는 책임을 통하여 실현되는바, 국가의 문화정책과 밀접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과거 국가절대주의사상의 국가관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국가의 적극적인 문화간섭정책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국가가 어떤 문화현상에 대하여도 이를 선호하거나, 우대하는 경향을 보이지 않는 불편부당의 원칙이 가장 바람직한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날 문화국가에서의 문화정책은 그 초점이 문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생겨날 수 있는 문화풍토를 조성하는 데 두어야 한다. 문화국가원리의 이러한 특성은 문화의 개방성 내지 다원성의 표지와 연결되는데, 국가의 문화육성의 대상에는 원칙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문화창조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문화가 포함된다.

'''헌법재판소 결정 2003헌가1 (2004. 5. 27.) 中'''

[image]
[image]
블랙리스트의 표지
2016년 12월 26일, SBS가 입수한 실제 블랙리스트 내용
1. 개요
2. 유래
3. 상세
4. 명단
5. 관련 인물
6. 작성 경위
7. 배후 의혹과 진상
8. 반응
9. 틀 둘러보기
10. 관련 문서


1. 개요


"문화융성이 아닌 '''검열융성'''"

송형종 서울연극협회 회장, 2017년 1월 11일 열린 항의집회에서(#)[1]

"'''문화대혁명에서나 가능할 발상'''"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의원(기사)

(SBS 힐링캠프에서 개그맨 최효종이 국회의원 모욕죄로 고소됐던 것에 대해 질문하자) "'''코메디인데요. 풍자이니 정치권에서 반성하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또 저는 패러디를 개인적으로 워낙 많이 당해서 면역이 잘 돼 있어요"'''

2012년 당시 18대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정권에 비우호적인 문화·예술인을 탄압·규제하기 위해 비밀리에 작성한 리스트로, 그 목적은 '''각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국가 차원에서 불이익을 줌으로써 억누르기 위한 것'''이다. 흔히 박근혜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부가 바뀌고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수면 아래 묻혀있던 진실들이 하나둘 떠오르면서 '''모든 것의 시작은 이명박 정부'''였는데 박근혜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규모를 확장시켰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2]
이명박 정부는 세밀하게 문화인들의 성향을 분류하고 감시하여 자기네들에게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들을 집요하고 저열하게 보복하여 매장시켰다. 비록 박근혜 정부보다 그 블랙리스트 명단의 규모가 작았을지언정 세부내용은 박근혜 정부보다도 촘촘하고 집요하며 저열하기 짝이 없는 복마전을 방불케 했다. 당연히 블랙리스트 작업에는 원세훈을 위시한 당시 국정원이 빠지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때의 블랙리스트에 관해서는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서를 참고하길 바란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블랙리스트 작업은 그대로 계승되었다.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는 서명자 594명, 세월호 시국선언 한 문학인 754명,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을 한 문화인 6,517명 그리고 박원순 후보 지지선언을 한 문화인 1,608명, 총 9,473명으로 이루어졌다. 거의 1만 명에 육박하는 것이며, 몇몇 진보 예술계 인사뿐만 아니라 단순히 정권에 협조적이지 않은 예술계 인사들 상당수와 그냥 단순히 야당 정치인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예술계 인사들을 포괄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는 민주주의 원칙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반헌법 행위다. 비록 서로 동기는 달랐을지언정 이들은 그저 야당 의원을 지지했다고, 여당과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시민을 탄압했다.

2. 유래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라는 문건이 있다. 이 문건의 내용을 요약하면 '문화계 좌파인사 척결, 예산지원을 끊음으로써 우파로 전향시킬 것' 등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건과 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실제로 정청래 당시 문광위 소속 의원이 이 문건을 입수해 2012년 7월에[3] 들고 나와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황식 당시 국무총리에게 따진 적이 있다. 물론 김황식은 자신은 그런일은 모른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국감에서 문건에 대해서 물어보기 위해 유인촌[4] 당시 예술의전당 이사장을 불렀으나 유인촌은 이사장직을 사퇴하고 국감에 출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관련 보도는 완전 묻혀버렸는데,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이것과 궤를 같이 한다.

3. 상세


원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별개 사건으로 불거져 나왔으나,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양 사안이 밀접하게 연관되었으며, 이 블랙리스트 건은 최순실의 국정농단만큼이나 심각하다는 주장도 있다. 1심 판결에서 국정 농단은 유죄, 블랙리스트 작성 문제는 무죄로 판결이 났으나 계속 정황증거들이 발견되면서 논란은 가라앉기는 커녕 오히려 더 커지는 상황이다. 결국 2심에서 국정 농단과 블랙리스트 작성 문제가 모두 유죄로 판결이 났다.
익명의 관계자의 신고로 2016년 10월 12일 한국일보에서 최초로 보도되었으며 2016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도종환[5] 의원실에서 처음 주장이 시작되었다.
익명의 제보자는 “지난해(2015년) 5월 흔히 말하는 ‘블랙리스트’가 청와대에서 내려왔고, '우리 입장에서는 이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문체부 공무원들의 푸념을 들었다”면서 “실제 이 문건을 직접 보기도 했거니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사진으로 찍어두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때는 저 말이 진짜일까 싶었는데, 이후 예술계에서 이런저런 잡음이 들리면서 정부가 이 블랙리스트를 충실하게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내용을 보면 박근혜 정권 집권 초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가, 정황상 2015년 전후로 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블랙리스트를 추린 키워드가 문재인, 박원순, '''세월호''' 등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2014년 이후 제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사태 이후 최순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잡은 시점과도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옛날부터 조용히 존재했을 수도 있지만, 반체제 인사나 종북주의자 등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은 대한민국이 휴전 중임을 감안하면 납득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증언은 세월호 사고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상대편 대선 후보 지지자''' 혹은 '''야당 정치인 지지자'''였다.
2016년 10월 13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전면 부정했으나, 2016년 11월 7일자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조윤선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 1차관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고 한다. 해당 문건이 작성된 시기는 2014년 여름부터 2015년 1월 사이로, 당시 조윤선은 청와대 정무수석이었고 정관주는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을 맡고 있었다.
채널A 단독보도에서 문체부 전직 고위관계자 2명의 증언에 따르면 블랙리스트가 청와대 정무수석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작성해 문체부로 전달됐다고 말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실장은 "예술계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시가 있었다.(#) 문화부 예술정책과에서 관리하였다고 증언이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한 민간 독립영화전용관들을 정부지원사업에서 배제한 정황이 드러났다. 극장 블랙리스트가 실제로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단체들은 실제로 예산 삭감 같은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갤러리 및 극단조차 블랙리스트에 찍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체육계에도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2013년 말 개봉했던 영화 변호인을 본 직후 혀를 차고 못마땅해 하며 "왜 이런 영화를 만드는 회사들을 제재하지 않느냐"고 유진룡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말했던 사실이 당사자인 유 전 장관의 인터뷰릍 통해 드러났다. 그는 CBS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순수 문화예술 쪽에서도 반정부적인, 반정부적인 행동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나 단체에 대해서는 왜 지원을 하느냐? 왜 제재를 하지 않느냐는 요구를 김기춘 실장이 직접 또는 모철민 교육문화수석, 김소영 문화체육비서관을 통해서 다각도로 문체부에 전달했다" 며 이것이 이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관리는 주도면밀했다.(#) 황당한 것은, 지원을 해주려고 해도 지원받을 수 있는 문화예술인이 없다는 것이다.(#) 관리는 주도면밀했지만 선정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황당함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친 새누리당 성향의 하철경[6] 예총회장마저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국가정보원이 이 리스트를 작성하는데 조직적으로 개입된 정황이 특검에서 밝혀졌다.(#) 리스트 속에는 국정교과서 반대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블랙리스트와 반대로, 적극 지원하거나 추천하는 이른바 '화이트리스트'도 작성·관리된 사실을 확인했다.(#)
한국문학의 해외진출을 돕기 위해서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이 블랙리스트에 근거해서 유명 작가의 해외 진출을 거꾸로 막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블랙리스트의 시발점은 박근혜 대통령 풍자 연극 ‘개구리’였다.#
조윤선 관련 2017년 7월 27일 선고된 1심 판결에서는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으나, 특검은 당연히 항소한 상태다. 그리고 본문서에서는 1심 판결을 근거로 조윤선 관련 작성분이 삭제되는 반달이 자행되었다. 그리고 2017년 8월 말 조윤선의 근무처였던 청와대 제2부속실에서 다량의 새로운 물증이 발견된 상황이며, 그 중 특검은 조윤선과 송광용이 블랙리스트 인사의 작품을 차단한 성과를 올렸단 내용의 문서를 증거로 제출한 상태다.#
그런데 2017년 10월 SBS 단독 보도로 블랙리스트는 '''박근혜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존재해 왔음이 밝혀졌다.#
2017년 11월 우병우까지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정원이 블랙리스트 명단을 작성한 후 우병우의 지시로 그의 최측근인 추명호 당시 국정원 제8국장과 최윤수 제2차장을 통해 문체부에 직접 전달한 것. #1#2
2017년 12월 1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우병우 민정수석실에서 문화예술계와 방송계에 이어 '과학기술계 블랙리스트' 지시를 내린 정황이 국정원 적폐청산 TF에서 드러났다. #
2017년 12월 12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우병우가 2016년 7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세종도서'와 관련해, 좌편향으로 분류되는 도서와 저자들을 사찰하고 검열하도록 국정원 측을 독려해 '출판문학계 블랙리스트'에도 관여한 정황이 밝혀졌다.#
2017년 12월 20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의 중간 조사 결과, 블랙리스트 총 피해건수는 문화예술인 1898건, 문화예술단체 772건 등 총 2670건에 달한것으로 드러났다. # 이는 특검의 공소장에서 드러난 436건과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서 나타난 444건보다 6배 이상 많은 엄청난 수치다. 또한 청와대, 국정원, 문체부 뿐만 아니라 '''경찰청 정보국'''까지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다. #2 또한 문체부의 특정작가 및 특정 도서 배제 지시를 받은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심사결과표와 심사위원회 회의록까지 조작해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사실도 밝혀졌다. #3
2018년 1월 18일, 진상조사위의 추가 발표 결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블랙리스트를 가동해 2016년 실시한 4개 사업에서 특정 개인과 단체에 대한 지원배제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 최소 24명의 문화예술인과 5곳의 문화예술단체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배제를 당했으며, 문화예술 명예교사 사업 12명, 예술강사 선발 12명, ‘시시콜콜’ 사업 4곳, ‘문화파출소’ 사업 1곳이 지원배제 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2월 1일 추가 보도된 조사 결과에서는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이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부터 블랙리스트를 가동해 문화예술인과 문화예술단체를 지원 배제한 사실도 드러났다. # 아울러 콘진원이 블랙리스트 등재 문화예술인을 심사위원에서 배제하거나 규정을 어겨가며 특정 심사위원을 배정하는 등 구체적이고 일정한 심사 패턴으로 블랙리스트를 실행해 사업 지원배제를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박근혜 정부 당시 연재만화 지원사업과 대중음악 지원사업 등에 대한 심사에서 콘진원 내부 간부와 일부 외부 심사위원들이 블랙리스트 예술인·단체의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문제를 다룬 작품을 지원 배제한 사실도 확인됐다.
2월 6일, 추가 발표 보도된 조사 결과에서 사회참여적 독립다큐영화들이 박근혜 정부 시기에 '문제영화'로 분류되어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지원사업에서 배제된 사실 27건이 확인되었다. # 진상조사위는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문체부-영진위를 동원하여 우수한 독립다큐들을 '문제영화'로 낙인찍고 중요 지원사업에서 수차례 지원 배제했다"고 밝혔다. 또한 구체적으로 "문체부는 독립영화지원사업에서 문제영화 배제실행 계획을 수립한 후 박근혜 정부 대통령 비서실에 보고하였고, 국정원은 수시로 문제영화에 대한 정보동향보고를 작성하고 문체부·영진위에 배제 작품 명단을 하달하였으며, 이에 영진위는 사회적 논란이 되지 않도록 심사위원 구성 등 심사과정에 내밀히 개입하여 문제영화 배제를 실행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4월 13일, 박근혜 청와대가 영화 투자사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모태펀드 운용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
5월 8일,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입은 문화예술인이 8931명, 단체는 342개로 집계됐다고 밝혀졌다. #
6월 27일, 이명박근혜 정권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문체부 공무원들과 산하기관 직원들 130여명에게 무더기로 징계 및 수사의뢰 권고가 내려졌다. #

4. 명단



5. 관련 인물


  • 박근혜- 특검이 발표한 공범#
  • 최순실[7][8]
  • 김기춘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9]
  •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 차은택의 외삼촌
  • 송광용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 유진룡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증언.
  •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유진룡 장관의 후임. 차은택의 은사.
  •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 모철민 전 문체부 1차관
  • 김종 전 문체부 2차관 - 문체부의 실세
  •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 이병기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 조동원 전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10]
  • 추명호국정원 8국장
  •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


6. 작성 경위


[image]
[image]
[image]
조윤선 장관이 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주도

(당시 블랙리스트 작성 및 전달 경위에 대한 확인 작업 결과) "조윤선 수석과 정관주 국민소통비서관이 작성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의 교감 아래 명단 작성 작업을 벌인 것으로 파악했다."

— 문체부 전직 당국자

한겨레는 최근 복수의 전·현직 문체부·문화예술위원회 관계자들과 접촉해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과정을 취재했다. 이들은 2014년 여름부터 2015년 1월까지 조윤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정무수석실 산하 정관주 당시 국민소통비서관이 지원하지 말아야 할 문화예술계 인사와 단체들의 명단을 협의해 작성했으며, 이 명단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을 경유해 문체부와 문예위로 내려보내 지원사업 선정에 반영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정관주 1차관이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과 전달을 주도했다고 문체부 전직 당국자를 비롯한 복수의 전·현직 관료들이 밝혔다. 다른 전직 문체부 관계자는 “2014년 여름 개략적으로 명단을 작성한 (블랙리스트) 몇 장이 내부 연락망을 통해 문체부로 전달됐으며, 이후 2014년 11월~12월 수차례 메일로 추가 리스트 명단이 내려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명단을 준 교문수석실이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부처가 아니어서 청와대 행정관들에게 출처를 문의해보니, 리스트가 정무수석실에서 왔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여름에 온 리스트는 내용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으나, 2014년 11월 이후 방대해져 최종 지원 배제 명단을 만드는 데 적지 않은 애로를 겪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영화 '다이빙벨'의 부산영화제 초청 불허 논란과 광주비엔날레에서 홍성담 작가의 박 대통령 풍자화 전시 불허 파문 등으로 문화예술계의 시국 이슈가 쟁점화되는 상황에서, 반정부적 예술인들을 어떤 식으로든 통제해야 한다는 의도가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블랙리스트가 문체부에서 예술위로 전달, 배포된 구체적인 경위도 확인됐다. 한겨레와의 접촉에서 여러 예술위 관계자들은 “문체부 예술국 사무관 ㅇ씨가 블랙리스트를 별도의 문서로 프린트한 뒤 전남 나주시에 있는 예술위로 찾아왔다”며 “ㅇ 사무관은 예술위의 2015년도 예술인지원사업에서 해당 문서에 표기된 명단의 예술인들은 빼달라고 직접 요청하며 작업을 독려했다”고 밝혔다.
한 예술위 관계자는 “ㅇ 사무관이 ‘우리도 달갑지 않지만, 윗선에서 시키는 일이니 꼭 해야 한다’며 재심의를 요구해 그동안 완성한 심의 결과를 원점으로 돌리고 다시 평가심의위원들을 설득해 재심의 작업을 벌여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통상 늦어도 매년 1월초 심의 결과를 확정발표하는데 블랙리스트에 있는 심의 대상에서 배제할 예술인 명단을 반영하느라 2015년 3월 말에야 전체 지원 대상을 확정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문서는 2014년 연말께 예술위에 전달됐으며, 시각예술, 공연예술, 문학 등 3개 영역에 걸쳐 20여 쪽 분량으로 500여 개의 단체·개인명이 적혀 있었다고 여러 예술위 관계자들이 전했다.(#)
한편 조윤선 장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이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관련 기사) 그리고 소송전으로 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옥죄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리영상. 2016년 12월 29일. SBS 뉴스브리핑

7. 배후 의혹과 진상


[image]
[image]
청와대 정무수석실와 문체부가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는 의혹이 있다. 문체부 등에 따르면 청와대로부터 '특정 예술인을 배제하라'는 지시가 내려가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초였고, 그해 4월 세월호 사건 이후 본격화됐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초기만 해도 반정부 성향의 예술인들도 안고 가려고 했으나, 2013년 8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부임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김기춘이 최순실과 박근혜의 눈치를 살피기 위해 문화예술인들의 목소리를 잠재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블랙리스트 배후는 '''최순실박근혜김기춘조윤선'''으로 이어져 있는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11][12]
최근 공개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2014년 8월 8일 김기춘 실장이 '홍성담 배제 노력, 제재 조치 강구'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적혀 있다. 박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그림 '세월오월'을 그린 화가 홍성담 씨에 대한 지원을 끊으라는 취지로 보인다. 이 그림에는 김기춘 실장도 희화화된 채 등장한다. 비망록에는 김 실장이 '문화예술계의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2014년 10월 2일), '영화계 좌파 성향 인적 네트워크 파악'(2015년 1월 2일) 등의 구절도 나온다.(#)
2017년 1월 6일, 특검팀은 문화체육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소환은 기본이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직접 수사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윤선 장관이 블랙리스트에 대한 입막음용으로 문체부 전·현직 간부들을 회유하며 대가성 인사를 제안한 정황이 드러났으며, 신동철, 정관주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이 피의자 소환함에 따라 실질적으로 청와대 행정관이 썼던 것으로 보고 있다.(#, #)
최종적으로 국정원-청와대-문체부의 합작이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진보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명단인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해 만든 뒤 이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을 확인했다. 김 전 실장은 또 블랙리스트와 별도로 박 대통령이나 정부를 비판하는 인사들을 따로 관리한 이른바 ‘적군 리스트’도 만들어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리스트는 모두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던 시절 정무수석실 주도로 만들었다.(#)
2017년 1월 10일, 최순실이 사건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단독] "문체부가 만든 블랙리스트, 최순실 측에 보고" (JTBC))
특검 수사가 진행되면서 문화계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것이 밝혀졌다.([단독] "모든 분야에 '블랙리스트'…김기춘이 지시") 또,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개입했다는 내부 진술이 나왔다.(#)
2017년 1월 19일, 특검은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2014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이 “좌파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문체부 예산이 지원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파악했다.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당시 신동철 대통령정무비서관(56·구속) 주도로 지원 배제 인사 80여 명의 명단이 작성됐다는 것이다. 이 명단이 최초의 블랙리스트라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이 최초의 블랙리스트에는 박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그림으로 논란이 됐던 홍성담 작가 등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포함됐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세월호 참사 뒤에 블랙리스트가 내려왔으며, '''블랙리스트에 관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블랙리스트를 비판했지만 대통령은 묵묵부답이었다'''라고 증언했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이 블랙리스트를 지시했거나 최소한 묵인했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탄핵심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블랙리스트 뿐만 아니라 어버이연합 등을 동원해서 관제데모를 주도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블랙리스트부터 관제 데모까지…사상·표현 자유 억압(JTBC))
실질적으로 실행했던 단체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었다.(시사인)
문재인정부가 탄생하고 17년 7월 정무수석실에서 블랙리스트 관련 문건이 발견되면서 좀더 자세한 정황이 파악 될 수 있다.
하지만 7월 24일 1심 선거공판에서, '''조윤선이 집행 유예를 받고 김기춘 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 결과에 대해 너무 가벼운 처벌이 아니냐는 논란이 존재한다.
논란이 심해지자 해당 판결원인 황병헌 판사는 이에 대해 해명을 했는데, 법조계에서도 이 해명하는 행동부터가 이례적이라고 평하고 있다.기사
게다가 이 블랙리스트의 재판의 1심의 판결에서 재판부는 '대통령은 보수주의를 표방해 당선되었고 보수주의를 지지하는 국민이 기반이므로, 좌파 지원 축소와 우파 지원 확대를 표방한 것 자체가 헌법이나 법령에 위반되지 않다. 그러므로 국정기조를 강조하고 정책입안과 실행을 두고 특정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범행으로 볼 수 없다.'란 이유로 김기춘과 조윤선에게 주어진 직권 남용을 뺀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런 지시를 내린 박근혜에 대해서도 '좌편향 예술계에 대한 지시를 내렸던 점'을 이유로, 국정 기조를 강조하고 그에 따라 정책 입안과 실행을 지시한 것을 두고 범행을 지시하거나 기능적 행위지배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단 면죄부를 주었다.# 이 판결은 헌법 제11조, 제19조, 제21조, 제22조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데다가 이 후의 정권이 적대적이거나 의견에 반하는 당, 정치세력, 문화계, 국민에 대한 탄압을 지시해도 위의 전례를 이유로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단 얘기가 되어서 더욱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압박에 굴복받아 CJ가 OCN의 드라마 <처용> 제작 때 갑자기 문성근 씨를 하차시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에 감독이 제작비와 드라마 구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차했다고 얘기했다.#

8. 반응


당연하지만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인들의 반발이 매우 거세다. 물론 여기에 안 들어간 일부 문화인들의 불만(?)도 있었다
  • 평론가인 황현산은 “만드는 사람조차 왜 이런 것을 만들어야 하는지 제 팔자를 한탄하며 만들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샤머니즘의 정치 아래서는 만인이 불행하다”라고 주장했다.
  • 안도현은 "블랙리스트에 내 이름이 없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다."라고 반어적으로 비꼬았다.(#)
  • 가수 이승환 역시 "왜 나는 없냐"며 리스트의 정당성(?)을 의심하기도 했다.[13]
  • 시나위신대철 또한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농담조로 "그 블랙리스트는 가짜다. 내 이름이 없으니까."라는 말을 하였다.
  • 이외수는 "명단이 발표되었을 때 제 이름이 빠져 있어서 극심한 소외감과 억울함을 금치 못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풍자했다.(#)[14]
  • 손숙은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지금 이 시대에… 정말 다들 미쳤나?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 또, 무한도전 정준하 대상 프로젝트 특집 당시 멤버들이 박명수의 의상을 지적하자 의류 업계 블랙리스트 체포라는 자막이 달렸으며 이후 박명수가 MBC 수뇌부가 맘에 안든다고 하였다.[15] 박명수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MBC가 박근혜 정부와 어떤 관계인지 생각하면 시사 개그를 잘하는 박명수의 특성상 묘한 기분이 드는 대화다. 무도멤버 중, 박명수만이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던 것을 생각하면 묘한 발언이다.
  • 시인 고은은 자신이 블랙리스트에 있다는 기자의 전화를 받고서는 영광이라고 하였다.
  • 한편 수많은 아이돌 팬덤들의 공포, 우려, 갑론을박과 달리 불행인지 다행인지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아이돌은 24K가 유일했다.
  • 2019년, 뒤늦게 보수 계열의 소설가인 이문열조차 블랙리스트는 명백히 잘못되었으며, 역효과만 낳았다고 당시 총리였던 황교안 면전에서 이야기했다. # 이문열은 당시 블랙리스트를 시행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이었다가 블랙리스트가 밝혀지자 중도에 자진사임했었다.

문화예술인에게 실질적으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일단 내게 돌아오는 결과 중 어떤 것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불이익을 받은 내용인지 모를 것이다. 체감을 못 한다. 게다가 크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불이익을 준다 해도 눈에 띄게 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리스트에는 충무로 막내 스태프들까지 있다. 그 모든 인원을 어떻게 일일이 뭘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겠나. 하지만 일단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웃기다. 현 정권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면서 스크리닝 정도의 역할은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ㅡ 최광희 평론가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내 이름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막상 확인하고 나니 화가 난다기보다는 우습다. '''함께 서명했던 지인들 중 취합 과정에서 누락되었거나 연락이 채 닿지 않아서 명단에 빠진 이들이 있다.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지금이라도 넣어줄 수 없냐고 무척 아쉬워했다.''' 자녀가 있는 친구들은, "언젠가 자식들이 이 시대에 대해 물었을 때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굉장히 좋아했고. 세월호 서명이든 지지 선언이든, 그저 예술인으로서 상식적인 일들을 해왔을 뿐이다. 문화가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건 당연한 거다. 그런데 블랙리스트라니…. 이 명단이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마치 명예의 전당처럼 취급받는 지금의 분위기를 보라. 상황 자체가 코미디다.

ㅡ 변정주 연극연출가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많은 네티즌들 또한 비슷한 반응을 보였으며, 상당수 인물을 반정부적 발언이나 행위도 아니고 고작 '문재인 지지'를 이유로 올렸다는 것이 졸렬하고 유치하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16] 편가르기 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는 것. 리스트를 실제로 작성한 공무원도 자괴감 들고 괴로워했을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문화체육부 자체에서도 이렇게 정도를 벗어난 정책에 대한 반발이 극심했던 것으로 보이며, 조윤선김기춘을 구속하는데 결정적인 증거를 특검에 제보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문화체육부 직원들이었다고 한다.

9. 틀 둘러보기




10. 관련 문서



[1] "문화융성"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세운 4대 국정기조 중 하나이다. 그런데, 블랙리스트가 폭로되기 전부터 문화예술계에서는 이미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책의 목표는 문화융성이 아니라 검열융성이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고 한다.(#)[2] 박근혜 정부는 문화계뿐만 아니라 과학계, 교육계 등 온갖 영역의 민간단체를 사찰하고 정부 비판 인사 내지 그럴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을 탄압했다. 그리고 이들의 끝판왕인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3] 문건 자체 작성일은 2008년 8월 28일. 즉 이명박정부 초창기이다.[4] 유인촌은 이명박 정권 시작부터 3년 가량 문체부 장관을 했고, 문체부를 나온 이후 예술의전당 이사장으로 갔다. 유인촌의 문체부 장관 기간은 완벽하게 문건과 겹친다.[5] 시인 출신 국회의원이다. 도종환 본인도 세월호 시국선언 문학인 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6]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신청까지 했다.[7] 최순실이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확실한 물증은 보도된 적은 없다. 하지만 최순실 특검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사건으로 인지하고 있으며, 법원도 이를 인정하였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특검의 수사대상이 아니라는 이의신청을 하였지만 법원이 기각한 것을 봐서 확실한 물증 혹은 충분한 증언 등을 확보한 것은 확실하다. [8] 내부고발자인 노승일고영태가 검찰에 넘긴 자료에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수년 동안 상당한 양의 자료를 모았으나, 관련 내용이 공개된 것은 거의 없다. [9] 이사건으로 인해 현직 장관에서 구속되는 첫번째 인물이 되었다. 구속 직후 장관직을 사임하였다.[10] 이 인간의 지시로 국정원이 블랙리스트 명단을 작성한 후 추명호와 최윤수를 통해 직접 문체부에 꽂아낸 정황이 드러났다.[11] 특히, 블랙리스트 명단 사유에 무려 50여년 전인 1967년 일어난 동백림 사건으로 간첩으로 몰린 이응노 화백을 도왔다는 이유로 올라 있다. 철저하게 박정희 정권의 정통성과 간첩조작 사건과 관련된 세세한 사안까지 수십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검토했다는 점에서, '''이 리스트를 김기춘이 반체제 탄압용으로 광범위하게 관리했음을 암시한다.'''[12] 블랙리스트가 작성되었을 시점 전에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남영동1985 영화의 배급사 대표가 2012년에 당시 국회의원이던 조윤선에게 영화를 홍보하러 찾아가서 자신이 저 영화를 배급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조윤선이 갑자기 악수하던 손을 뿌리치면서 "왜 다른 편이 여기 와서 이래요."라고 말한 일이 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문제의 배급사 역시 문제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다고(일반 영화기업 중에는 유일하게 등재).(#)[13] 이에 대해서는 정부 지원을 줄여서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사람들이 대상이며, 이승환은 소속사도 스스로 굴리고 행사만으로 충분하고 남는 수익이 나오기 때문에 정부에서 지원받지 않아도 경제적인 타격이 없기 때문에 올리지 않았다는 추측이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론 이승환 자신이 광장에 나선 최초의 가수라고 하는 자평과는 달리, 이재명의 준동을 보고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 만큼 활동시기가 짧았던데다, 정치적, 사회적 매장을 시키려던 문재인과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을만큼 거리를 두고 있던 점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을 지지한 인사는 모두 블랙리스트에 포함시켰기 때문. 정작 이승환이 가까이 했던 김어준은 프랑스로 도피하면서 이 동안의 자세한 행적에 대해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입을 닫고있고, 이재명은 요란했을 뿐이지 정작 성남시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기에도 그는 박근혜 정부의 타겟이 아니었다.[14] 대신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는 포함되어 있다.[15] 참고로 이후 유재석이 높으신 분들도 박명수를 별로 안좋아하더라며 상처받는 사람 없어서 다행이란 드립이 오고 갔다.[16] 박근혜 지지자들 중에는 블랙리스트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며 문재인 지지 자체가 반체제 행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뭐 이런 사람들은 문화계 예술계는 죄다 빨갱이라고 주장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