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셀틱스/역사

 


1. 초창기 (1946년 - 1950년)
2. 명문의 시작 (1950년 - 1957년)
2.1. 전설의 시작, 1956년 드래프트
3. 빌 러셀 시대 (1957년-1969년)
4. 존 하블리첵, 데이브 코웬스, 조조 화이트의 빅3 (1970년-1978년)
5. 래리 버드의 시대 (1979년-1992년)
6. 암흑기 (1993년-1998년)
7. 폴 피어스 시대 (1998년-2013년)
7.1. 빅3
8. 리빌딩으로 시작한 브래드 스티븐스 시대
8.1. 2013-14 시즌
8.2. 2014-15 시즌
8.3. 2015-16 시즌
8.4. 2016-17 시즌
8.5. 2017-18 시즌
8.6. 2018-19 시즌
8.7. 2019-20 시즌
8.8. 2020-21 시즌
9. 관련 자료


1. 초창기 (1946년 - 1950년)


1946년에 NBA의 전신인 BAA가 창설되자 보스턴 가든 소유주 월터 브라운에 의해 창설되었다. 창단 초기인 1948년에 플옵에 진출한 걸 빼고는 거의 안습한 나날을 보냈다. 이 당시 유별한 기록이 있다면, NBA 역사상 최초로 흑인 선수를 드래프트 지명한 것이다. 그의 이름은 척 쿠퍼이며 듀케인대 출신으로 1950년 2라운드 드래프트에서 지명 받았다. 다만 그의 성적은 영 좋지 않았다. 물론 2라운더 치고는 준수한 성적이지만[1] 현재 흑인들이 지배하고 있는 NBA와 비교하면 좀 떨어지긴하다. 앞서 말했듯이 초창기에는 정말 안좋았던 사정의 셀틱스 였다. '''레드 아워백'''과 척 쿠퍼가 드래프트된 1950년 셀틱스의 1라운드 픽 '''밥 쿠지'''가 올 때까진 말이다.

2. 명문의 시작 (1950년 - 1957년)


1950년 그 당시 트라이시티 블랙호크스 [2]의 감독인 레드 아워백을 감독으로 앉히고 난 뒤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픽으로 홀리크로스 칼리지 출신인 밥 쿠지를 뽑으면서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다만 이 둘의 환상적 조합은 처음부터 환상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악연이라 봐야하는 것이 옳다. 레드 아워백은 쿠지가 너무 튄다해서 드래프트 지명을 거부했다. 그러나 쿠지가 처음 지명된 시카고 스탁스가[3] 부도가 나면서 자동적으로 셀틱스에 오게 되었다.
이 당시 레드 아워백은 모든 대학 선수들과 상대 팀 선수들의 스카웃 리포트를 작성하고 모든 트레이닝을 자신이 직접 짜서 선수들을 지도했다. 그리고 1949-1950시즌때 6등을 하고 22승 46를 기록하던 약팀을 부임 첫해인 1950-1951 시즌에 3등으러 도약시켰다. 이 시즌에 첫번째로 NBA 올스타 전이 열렸는데 역대 첫번째 올스타 MVP를 차지한 것은 다름아닌 보스턴 셀틱스 소속 센터 에드 맥카울리였다. 센터 에드 맥카울리와 특급 포인트 가드인 밥 쿠지를 앞세우고 명장인 레드 아워백이 지휘한 셀틱스는 계속해서 리그에서 2,3등을 다투는 신흥강호의 팀이 되었다. 하지만 리그에서의 놀라운 성적을 뒤로하고, 플레이오프에서는 계속 암담한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그당시 최강의 팀이었던 현 필라델피아 76ers인 시라쿠세 내셔널스에게 지면서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결국 이대론 어쩔수 없다 생각한 레드 아워백은 올스타급 센터인 에드 맥카울리와 클리프 헤이건[4]을 트레이드 시켜 1라운드 2번 픽을 얻는 초강수를 두게 되는데.....

2.1. 전설의 시작, 1956년 드래프트


[image]
왼쪽부터 월터 브라운 구단주, 루이스 피에리 주주, 빌 러셀.
그 당시 최고의 대학 선수는 다름아닌 빌 러셀이었다. 당시 1라운드 1번 픽을 가진 팀은 현 새크라멘토 킹스의 전신인 로체스터 로얄스였는데 왜 로체스터가 1번 픽을 가지고 있음에도 빌러셀을 드래프트 하지 않았는가에대한 일화가 있다. 출처는 '''Let Me Tell You a Story : A Lifetime in the Game'''이라는 책이다

존 파인슈타인: '어떻게 그들이 빌 러셀을 드래프트하지 못하게 했나요?'

레드 아워백: 'Ice Capades요'[5]

존 파인슈타인: 'Ice Capades라고요?'

레드 아워백 '네, 맞아요. 월터 브라운씨는 Ice Capades의 회장이었죠. 저는 로체스터의 구단주인 레스터 해리슨을 부르고 그에게 말했죠. 만일 빌러셀을 지명하지 않고 우리에게 넘기면 'Ice Capades'를 로체스터에서 일주일간 열리게하겠다고요.'

그렇다. 가장 위대한 센터라 평가받는 빌 러셀은 고작 쇼하나가 1주일간 로체스터에서 열리는 것을 조건으로 셀틱스에게 간것이다가 일반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것에는 여러 사정이 있다.
첫번째로는 그당시 리그 사정에 대해서 좀더 알아야 한다. 그 당시 로체스터의 구단주는 레스터 해리슨이었다. 레스터 해리슨이 속한 리그는 NBL었다. 레스터 해리슨의 팀은 사실상 세미-프로의 팀이었는데, 그는 그가 가진 자산으로 팀을 준수하게 이끌어나갔다. 구단주로서 뿐만이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그러나 NBL과 BAA가 통합되어 NBA가 탄생하자 사정은 달라졌다. NBL이 BAA와 NBA로 통합이 되었으나 구 NBL의 팀들은 구 BAA의 구단주들의 압도적인 자본력에 의해 뒤로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실제로 NBL의 팀 5개가 통합된지 10년도 안되어 사라져갔다. 구 BAA의 구단주들은 [6] 아레나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대도시를 기반으로 연고를 두고 있었지만, NBL의 팀들은 중소기업과 중소도시에 기반하였기에 당연한 이야기라 볼 수 있다.
로체스터도 예외는 아니었다. 로체스터에는 아레나가 하나밖에 없으며 그 아레나 마저도 너무작아서 아이스 하키조차 열 수 없었다. 그리고 NBA는 상업적으로 더욱 팽창하기 위해 계속 이런 약소한 NBL팀들에게 압박을 주고 있었다.[7] 빌 러셀이 드래프트 되기 직전의 해까지도 계속 이런 압박을 주었다. 대도시로 연고이전하라고. 중소기업 레스터 해리슨은 어떻게든 팀을 유지 시키려고 애썼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지속적으로 꼴지팀이 된 것이다. 그리고 TV 중계권으로 얻는 돈이 없었던 그 당시에는 입장 인원이 수입의 주요 대상이었는데 제대로 된 아레나도 없는 로체스터에, 더욱이 최하위 순위를 기록하던 팀에 NBA 관중이 많을리가 있나. 수입이 거의 없고 드래프트 최상위픽 선수들의 몸값이 점점 오르고 있는 상황이라 빌 러셀을 드래프트하기에는 너무 무리였다. 그 당시 빌 러셀을 영입하려던 익시비션 독립 농구 구단인 할렘 글로브트로터스는 5만 달러를 빌러셀에게 제시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8]
두 번째로 협상에 대한 정보력 부족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빌 러셀은 글로브트러터스와 우선으로 협상을 하게된다. 하지만 그는 글로브트러트스와 협상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단 반지의 제왕이라는 별명처럼 빌 러셀은 승부욕이 강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NBA에서 우승하고 싶었지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글로브트러스트는 NBA와는 거리가 먼 보여주기식의 농구를 하는 독립리그 구단이니 당연히 싫어할 수 밖에. 설상가상으로 글로브트러스트의 관계자들은 빌 러셀 본인을 앞에 두고 빌 러셀과는 한 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 옆에 있던 매니저와만 대화를 나누는 말그대로 선수를 대놓고 무시하는 병크를 저질렀다. 빌 러셀은 이 때 자신이 바보 취급당했다고 생각해 엄청 빡쳤다고 회상했다. 로체스터의 구단주인 해리슨도 사전 접촉을 빌 러셀과 했으나 그 당시 해리슨 혼자 간것이 아니라 전 흑인 농구 선수인 돌리 킹을 같이 데려온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으며 제시 금액인 25,000$를 10배한 250,000$를 사인 금액으로 불러 볼까 생각도 해봤다고 하며 글로브트러스트때의 협상과 같은 모욕감을 느꼈다 증언했다. 이것에 대해서 셀틱스는 잘 알고 있었다. 러셀의 가족과 그들의 사정에 대해 잘아는 전직 셀틱스 선수가 지속적으로 아워백에게 정보를 흘려주었기 때문이다. 이 것을 바탕으로 셀틱스는 빌 러셀과의 협상을 훌륭하게 이끌어냈다.
세 번째이자 궁극적 이유로는 로체스터에는 이미 1955년 드래프트에서 3번 픽으로 뽑혔으며 1955-56시즌 신인상을 수상한 센터인 모리스 스토크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전도유망한 선수가 있는데 무엇을 이유로 빌 러셀을 무리하게 지명해야 했을까?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빌 러셀은 결국 셀틱스와 약 $22,000에 계약을 체결하게된다. 그러나 이러한 로체스터의 최선의 선택은 최악의 선택으로 바뀌게 된다. 바로 모리스 스토크스가 3번째 시즌인 바로 다음해에 뇌에 부상을 입어 선수생활을 접게된것이다. 결국 그는 이러한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 부상으로 인해 1970년 사망하고 만다. 뛴 세 시즌 모두다 올스타에 선정될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기에 윌트 체임벌린보다 더욱 흥미로운 빌 러셀의 라이벌리를 형성할 수 있었던 그의 은퇴는 더욱 더 뼈져리게 안타깝다.
1956년 드래프트에는 빌 러셀에 가려진 두 명의 레전드 선수가 있다. '''토마스 윌리엄 '토미' 하인손''', '''K.C. 존스'''가 그들. 토미 하인손은 홀리 크로스 대학의 선수로 3학년때 지역 드래프트 픽에 의해 뽑혔다. 그 역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정도의 파워 포워드였다. '''K.C. 존스'''는 2라운드 13번째 픽으로 지명되었으며 샌프란시스코 대학에 재학하고 있다가 참여를 했다. 이 세명의 선수들 모두 명예의 전당에 헌액이 되었으며 보스턴 왕조를 지태하던 기둥들이었다.

3. 빌 러셀 시대 (1957년-1969년)


'''명실상부 NBA 역대 최강의 왕조'''
'''전력이 이미 우승권인 팀에게 끝없는 레전드들이 드래프트되면 이뤄지는 결과'''
[image]
빌 러셀은 루키 첫 시즌 부터 셀틱스의 우승에 기여를 했지만 그렇게 큰 기여를 하지는 않았다. 빌 러셀보다는 오히려 신인상을 받은 토미 하인손이 더욱 주목을 받았고, 밥 쿠지는 올스타 MVP에 정규시즌 MVP까지 받는 데 성공했다. 한마디로 신인상, MVP 둘다 석권한 당시 최강의 팀이었다. 창단 최초로 정규시즌 1등은 덤이었다.당시 정규시즌 성적이 '''44승 28패'''였다. 다만 앞에서 말했듯이 셀틱스는 강팀이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항상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번에 달랐다. 디비젼 파이널에서 계속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가장 큰 관문인 내셔널즈를 상대로 스윕을 가져갔다. 1957년 파이널에서 세인트 루이스 호크스를 상대로 7게임을 치르고 우승한 것.
그 다음해 셀틱스는 더욱더 향상된 정규 시즌 성적을 기록하였다. '''49승 23패'''를 기록하고 빌 러셀이 드디어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다. 그리고 이번 디비젼 파이널에서도 원수인 워리어스를 5경기를 치르고 4승을 먼저 가져가 작년과 붙었던 호크스와 다시 붙게 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매우 아쉬웠다. 호크스한테 6경기를 상대로 4경기를 먼저 내준것이다. 이것이 왜 매우 아쉬운 것이냐 하면은 셀틱스가 진 게임 1, 게임 3, 게임 5. 게임 6 모두 3점차 이내로 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Game 6 경기에서 밥 페팃 선수를 막지 못한 것이 너무 컷다. 무려 50 득점을 성공하면서 이 경기는 파이널 최고의 명경기 중 하나로 남게 된다. [9]. 그리고 이 시즌의 드래프트에서 셀틱스는 또 다른 HOFer 레전드를 얻는데 그 선수가 바로 15,411점 4,305 리바운드 2,209 어시스트를 기록한 '''샘 존스'''이다.
전설의 8-Peat가 시작이 된 1958-1959시즌 셀틱스는 상승세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정규시즌 성적은 더욱 상승했다. '''52승 20패'''를 기록하고 디비젼 파이널에서 힘들게 7경기나 펼쳐지는 시리즈를 내셔널스와 치르고 숙명의 라이벌인 레이커스와 만난다. 8번의 연속 우승중 5번의 레이커스와 격돌이 있었는 데 가장 처음 레이커스와 만난 파이널이 이번 파이널이다.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는 정규시즌 성적이 5할도 되지 않는 팀이었으나 그 전년도의 우승팀인 호크스를 4승 2패로 제압하고 파이널로 올라오지만 장렬하게 스윕당하면서 셀틱스의 우승으로 끝나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까지 미네소타를 연고지로 둔 팀들 중 NBA 파이널에 올라간 시간은 이때가 유일하다.
그 다음시즌과 그 다다음 시즌에도 역시 셀틱스는 정규시즌에서 각각 '''59승 16패, 57승 22패'''를 기록하고 두 파이널에서 호크스를 만나서 두번다 이기는 결과를 내어 1958 파이널의 설욕을 완전히 떨쳐낸다. 그리고 1960-1961 시즌 빌 러셀이 3연속 정규시즌 MVP의 첫 MVP를 탓다.
1961-1962 시즌에서는 '''60승 20패'''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 때 NBA 파이널의 명승부 중 하나가 탄생했다. 바로 NBA 파이널 역사상 두번 밖에 없는 게임 7의 오버타임 승리를 셀틱스가 가져간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NBA 게임 7 오버타임 경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빌 러셀은 백투백 MVP를 차지한다. 그리고 1962년 셀틱스 역대 최고의 스코어러 중 한명인 '''존 하블리첵'''이 1라운드 7번픽으로 드래프트 되었다.
그 다음 시즌인 1962-1963 시즌에도 셀틱스는 레이커스를 만나지만 아직까지 레이커스한테 셀틱스는 너무 큰 상대였는지 6경기 중 4승을 셀틱스가 먼저 가져가며 또 다시 레이커스는 패배자가 되었다. 빌 러셀은 3연속 MVP 수상에 성공, 올스타전 수상은 덤이었다. 그리고 쿠지는 그의 나이 만 35살, 1963년 3월 17일에 은퇴식을 치뤘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역대 최고의 포인트 가드중 하나인 그가 코트위를 떠나는 순간 보스턴은 7분간의 은퇴식을 예정시켰으나, 최고의 팀과 팬들이 그를 위해 성대한 반응을 보이자 코트위를 떠나는 것이 너무 슬펐는지 쿠지는 말을 잇지 못해 7분의 은퇴식이 20분으로 늘어났다. 그가 말을 잇지 못하자 팬들도 말을 잊지 못하였는 데, 20분이 지나자 남쪽 보스턴에 사는 조 딜런이라는 헌신적인 보스턴 팬이 'We love ya, Cooz'[10]라 크게 소리를 지르자 조용하던 텐션이 다시 올라갔다라 한다. 그의 통산 기록은 '''16,960 득점, 4,786 리바운드, 6,955 어시스트'''
1963-1964 시즌은 세기의 라이벌인 윌트 체임벌린과 빌 러셀의 첫 파이널 대결이 첫번쨰로 이뤄진 해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했나, 윌트 체임벌린이 이끄는 워리어스는 1승 밖에 거두지 못하고 파이널에서 무너졌다.
1964-1965, 1965-1966시즌 역시 우승에 성공하며 NBA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인 8연속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이 두시즌 모두 레이커스와 경기를 치루었으나 셀틱스가 이겼다. 1964-1965 시즌에는 빌 러셀이 5번째 MVP를 타게 되었다. 그리고 빌 러셀과의 드래프트 동기인 '''토미 하인손'''이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통산기록은 '''12,194득점, 5,794 리바운드, 1,318 어시스트'''이며 은퇴 후에도 선수들의 권리를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특히 FA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을 하였으며 올스타 전때 파업을 이끌어 FA 제도를 사무국이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맡았다. 1965-1966시즌에는 셀틱스의 정규 시즌의 독보적 포스가 끝나던 시기였다. 드디어 연속 컨퍼런스 1등 기록이 끝났다. 그 이유는 바로 윌트 체임벌린을 앞세운 필라델피아 76ers가 이제는 정규시즌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1966-1967 시즌, 드디어 레드 아워백이 감독직을 내려놓고 단장직에 전념하자 감독이 빌 러셀로 바뀌었다. 빌 러셀은 1969년까지 플레잉코치로 뛰게되었으며, NBA 역사상 최초의 흑인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정규시즌 우승 실패로 시즌을 끝을 맺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연속 우승 기록이 깨졌다. 바로 디비젼 파이널에서 윌트 체임벌린의 76ers에게 4승 1패로 참패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 디비젼 파이널이 셀틱 왕조의 한 축을 담당한 '''K.C. 존스'''의 마지막 경기 였다. 그의 통산 기록 '''5,011 득점, 2,399 리바운드, 2,908 어시스트''' 였다.
그러나 8연속 우승한 셀틱은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았다. 1967-1968 시즌 셀틱스의 정규 시즌 기록은 저번 시즌에 비해 떨어진 2등을 기록해 다비젼 파이널로 직행하지는 않았으나 디비젼 세미 파이널에서 피스톤스를 잡고 디비젼 파이널에서 작년에 연속 우승을 저지한 76ers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명승부가 이어졌다. 게임 1은 무난하게 셀틱이 가져갔지만 정규시즌 1위는 강력했다. 게임 2, 3, 4를 차례대로 가져가면서 시리즈 전적은 3승 1패로 76ers가 유리하게 되었다. 거기에다 그때까지의 NBA 역사에서 3승 1패의 시리즈 전적을 뒤바꾼 팀이 아예 없었음을 생각해 보면 76ers가 시리즈를 가져갈게 분명했으나 게임 5,6,7을 셀틱스가 이기면서 시리즈를 완전히 뒤바꾸고 레이커스와의 결승에 가서, 레이커스를 상대로 다시 이겨 버렸다.
빌 러셀의 은퇴 시즌인 1968-1969 시즌에 셀틱스는 셀틱스 답지 않은 정규시즌 성적을 기록했다. 4등을 기록했으며 '''48승 34패'''를 기록해서 셀틱스가 무너지나 싶었지만 디비젼 세미파이널부터 76ers를 만나 압도적으로 5전 4승으로 이기고 닉스까지 6전 4승으로 이겨 레이커스와의 파이널을 가졌다. 이번에도 역시 셀틱이 우승을 가져갔으나 매우 끈질긴 시리즈였다.
그리고 이번 시즌을 끝으로 빌 러셀은 은퇴를 하게 되었으나, 약간 씁쓸한 은퇴식이 되었다. 30,000명 관중이 파이널 경기 바로 다음 날 빌 러셀을 축하해주러 셀틱스 아레나에 갔더니 빌 러셀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레드 아워백은 빌 러셀이 이렇게 갑작스레 코치직과 선수를 관둘거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해서 빌 러셀을 대체할 신인 센터를 드래프트하지 않은 것이었다. 또한 러셀은 감독이었기 때문에 그의 갑작스런 은퇴로 셀틱스는 레전드 센터와 뛰어난 감독을 동시에 잃게된것이다. 거기에다 본인의 은퇴 이야기의 저작권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본인의 한 달치 급여인 $10,000에 판것으로 인해 프렌차이즈의 미래를 팔았다는 오명까지 쓰게되었으니, 여러모로 씁쓸한 결말이다. 결국 셀틱스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암흑기를 겪게되는 데, 이런 암흑기를 어느 정도 지탱해주는 데 힘을 준 선수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신인 센터 대신 드래프트된 가드 조조 화이트이다.

4. 존 하블리첵, 데이브 코웬스, 조조 화이트의 빅3 (1970년-1978년)


1969년에 셀틱스 황금기 멤버이던 톰 하인손이 감독직에 부임한 뒤 초반 2시즌은 플레이오프에 못 갔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빌 러셀의 갑작스런 은퇴로 인해 명코치와 역대 최고의 센터가 사라지고, 설상가상으로 샘 존스까지 은퇴하니 셀틱스는 순식간에 최정상급 팀에서 하위권 팀으로 몰락했다. 이를 메우는 방법은 리빌딩 하나밖에 없었다. 결국 1969-70시즌은 1949-50 시즌 이후로 기록된 첫번째 루징 시즌이 되었다. 그러나 루징 시즌을 보내면서 얻게된 1라운드 4픽에서 플로리다 주립 대학에서 명예의 전당에 훗날 들어가게되는 데이브 코웬스를 지명하고, 수준급 포워드인 폴 실라스를 트레이드로 영입하고, 팀의 중심 존 하블리첵의 기량이 최전성기에 접어들면서 셀틱스는 시즌이 끝나고 바로 다시 우승권 팀으로 우뚝 섰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1971-72 시즌에서는 '''56승 26패'''의 정규시즌 기록을 남기게 되었으며, 이 당시 1등을 기록하나 뉴욕 닉스에게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4승 1패로 지고 만다. 그러나 1972-73 시즌에서는 '''68승 14패'''라는 작년 보다 향상된 기량을 보이면서 또다시 동부 커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나, 팀의 기둥인 존 하블리첵의 오른쪽 어깨가 게임 6에서 부상을 당하고 만 것이다. 결국 존 하블리첵은 한 손을 사용하면서 게임 7까지 치르는 투혼을 보여주나 결국 팀은 아쉽게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뉴욕 닉스와 동부 커퍼런스에서 시리즈 우승을 거의 가져가는 수준이 되면서 셀틱스의 또다른 왕조의 탄생의 신호탄이 터지는 듯 보였다.
그리고 결국 1974 파이널에서 우승을 하는 쾌거까지 이루게되는데, 상대는 역사상 최고의 센터 중 하나라 불리는 카림 압둘 자바[11]가 버티는 밀워키 벅스 였다. 네 경기는 2승 2패로 팽팽한 경기들을 보여주었으며 게임 5까지 셀틱스가 가져가며 홈코트에서 우승을 가져갈수 있던 찬스를
셀틱스가 가져가게 되었다. 그러나 게임 6에서 카림 압둘 자바가 그의 전매특허인 스카이 훅샷을 위닝 샷으로 가져가면서 이번 파이널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게임 7에서도 역시 카림 압둘 자바는 뛰어난 공격력을 보여주었으나 이것이 흠이 되고만다. 지나치게 공격에 비중을 둔 나머지 그의 같은 포지션에 있던 올스타급 센터인 데이브 코웬스를 수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진것이다. 결국 데이브 코웬스는 28득점 14 리바운드를 가져가고 존 하블리첵이 16득점을 넣어 가볍게 102-87로 1974 파이널을 가져가게 된다. '포스트 빌 러셀의 시대'의 첫 승리라 더욱 값진 승리 였다.
이러한 기량을 1974-75 시즌에도 이어갔다. 이번 정규 시즌은 '''60승 22패'''로 마치고 역시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순조롭게 순항하였으나 위싱턴 불릿츠에게 충격적인 탈락을 겪으면서 떨어지게 된다.
1975년 포스트 시즌의 충격적인 탈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1974년의 우승 멤버를 유지시키되 약간의 조정 작업을 거쳤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폴 사일라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서 피닉스 선즈로 보낸 1970년 7라운드 106번째로 드래프트된 찰리 스콧을 트레이드로 얻게된것이다. 비록 셀틱스는 작년에 비해 떨어진 '''54승 28패'''를 거두지만 포스트 시즌에서는 승승장구를 하게된다. 이 파이널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NBA 역사상 첫 6월달 경기가 바로 1976년 파이널 4차전이라는 것이다. 게임 4까지는 팽팽한 접전이 계속 이어졌으며 시리즈도 2승2패를 양팀다 기록하고 있었으나 게임 5에서 승리의 여신이 셀틱스에게 가게되었다. 역사상 첫 6월달 게임이라서 그럴까? 이번 파이널의 4차전은 '''NBA 역사상 최고의 게임으로 남게된다.''' 바로 2번의 오버타임을 통해서 '''3번째 오버타임'''까지 가는 접전이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명승부에는 명승부라는 찬란한 별명속에 가려진 오심들이 너무 많았다.
첫번째로 폴 사일라스가 셀틱스의 타임 아웃이 남지 않았음에도 심판에게 타임아웃을 요청했는데, 이건 명백히 테크니컬 파울이라 자유투를 피닉스 선즈에게 주었어야하는 데 심판은 이를 무시했다. 이 때 점수가 95-95라 선즈에게는 게임을 끝낼 수 있는 기회였다.
두번쨰로는 존 하블리첵이 첫번째 오버타임 종료 22초전 100-101로 셀틱스가 지는 상황에서 두번의 자유투를 얻게되고 첫번째시도는 성공했으나 두번째는 의도적으로 자유투를 놓치고 다시 자기 쪽으로 리바운드 시켜 조조 화이트에게 패스를 하는데 조조 화이트는 8초나 남았으며, 정규 시간이 종료되기 까지를 기다리고 슛을 쏘기 보다는 바로 슛을 쏘는 이상한 행동을 저지른다.[12] 그리고 조조 화이트는 위닝 샷을 쏘았으나 놓치고 피닉스가 주도권을 잡고 타임아웃을 요청했을 때 남은 시간은 무려 5초였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 돌아가면서 3초 때 남았을때 심판이 타임아웃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번 경기에서 하이라이트는 두번째 오버타임의 마지막 20초였다. 그 당시 셀틱스는 여유롭게 109-106으로 리드를 지켜나갔으며, 그 당시에는 3점 슛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어서 사실상 셀틱스가 이긴 것이나 다름 없었다. 선스가 공격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선즈의 딕 반 아스데일이 짧은 점퍼를 코너에서 성공시키면서 스코어는 109-108이 되었으며 이후 존 하블리첵에게 인바운드 패스가 가자 선즈의 폴 웨스트팔이 스틸을 성공시키고 기적적으로 나가려던 공을 살려 반 아스데일에게 패스 시켰으며 그는 커티스 페리에게 성공을 해 18 풋 슈팅을 왼쪽에서 시도하나 실패로 끝난다. 하블리첵은 다시 그공을 리바운드시키나 공을 잡지 못해 다시 페리에게 그공이 가게된다. 페리는 그후 15 피트에서 슛을 성공시켜 기적적으로 점수를 109-110으로 만든다.
그러나 하블리첵은 바로 드라이브 인을 성공시켜 득점을 성공시키고 111-110으로 경기를 만들고 버저가 울리면서 셀틱스의 승리로 오버타임이 끝나서 셀틱스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돌아가 환호하고 팬들이 기뻐할때, 공이 바스켓 안으로 들어갔을 때 2초가 남은 것을 CBS 애널리스트 릭 배리가 포착하면서 경기는 2초가 남은채 다시 진행되었는데, 이 때 이겼다고 생각한 기뻐하던 보스턴 가든의 팬들이 전투 모드로 전환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으며 심판들이 보스턴 가든의 팬들에게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주심을 공격하고 스코링 보드와 책상을 뒤엎었을 정도라고 하니 그 당시 분위기는 얼마나 험악했을지 상상이 안간다. 어쨌든 피닉스는 2초 밖에 안남은 상황에서 하프 라인에서 인바운드 패스를 해 동점을 만들기 위해 남지 않은 타임 아웃을 요청시켜 보스턴이 자유투 한개를 얻게한다. 조조 화이트는 그 자유투를 가볍게 성공시켜 점수를 112-110로 만들고 피닉스는 하프 라인에서 인바운드를 시도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선즈는 득점을 성공해 게임을 세번째 오버타임으로 이끌게 된다.
그리고 세번째 오버 타임을 위한 작전 시간때 팬들이 코트위에서 난동을 피우고 선즈의 벤치에 행패를 부려 선즈의 선수들이 선즈의 벤치로 가려면 팬들을 제치고 나가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을 했다고 했는데, 선즈의 감독 존 맥클로드가 이 난동을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게임 7을 여기에서 치르지 않겠다고 말하자 그때야 난동이 진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셀틱스는 이 혈투를 세번째 오버타임때 128-126으로 가져갔다. 이 때 파울 아웃 당한 선수만 보스턴에서 찰리 스콧, 데이브 보웬스, 폴 사일라스였고 선즈에서는 알반 아담스와 데니스 오트리였으며 우려 5명씩이나 파울 아웃 당했다.
게임 6 인터뷰때 선즈의 감독은 이때의 난동때문에 받은 피해를 꼭 앙갚음해야겠다고, 게임 7은 꼭 치르게 될 것이라고 당당히 말했으나 결국은 87-80으로 셀틱스가 이기게 되었다. 셀틱스의 하블리첵은 무려 8개의 NBA 타이틀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후 1977~1979년까지는 잠시 부진했으며, 그나마 활약한 선수는 세드릭 맥스웰 뿐.

5. 래리 버드의 시대 (1979년-1992년)


그러다가 1978년에 1라운드 6픽으로 래리 버드를 지명하면서 팀이 180도 달라지기 시작, 1980년에 1라운드 3픽으로 케빈 맥헤일을 영입한 데 이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부터 로버트 패리시를 영입하면서 '빅3' 라인업을 구축하면서 1981년, 1984년, 1986년에 세 차례 리그 우승을 하면서 1980년대 초~중반에는 쇼타임 레이커스의 라이벌 구도를 이루었다.
그러나 1986년 우승 이후 셀틱스의 몰락은 찾아오기 시작했는데, 1985/86 시즌에 케빈 맥헤일이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14경기를 결장하게 되자 결국 팀은 새로운 구심점을 되찾고자 했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 케빈 맥헤일 이후 신인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 1986년 드래프트에서 메릴랜드 대학교의 천재 포워드 렌 바이어스를 전체 2번픽으로 뽑으면서 '보스턴의 향후 10년을 책임질 드래프트'라고 자부했으나, 결국 리그 데뷔도 하기 전에 약물중독 쇼크로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그 다음해인 1987년에 전체 22번 픽으로 노스이스턴 대학교 출신 스윙맨 레지 루이스를 뽑으며 미래를 준비하려 하는데...

6. 암흑기 (1993년-1998년)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생각외로 낮은 편인데, 국내에서의 NBA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90년대 중후반이 이 팀에게는 암흑기였기 때문이다.(...) 래리 버드가 은퇴하고 1993년에 마지막으로 플옵에 나간 뒤 1995년 플옵 진출을 빼고 2001년까지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못했을 정도니.
이는 사실 래리 버드의 전성기 시절때부터 조금씩 조짐이 보였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셀틱스의 성쇠는 버드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실제로 바닥권 팀이었던 셀틱스는 버드 입단 이후 우승 후보가 되었고, 버드가 부상으로 내리막을 걸으면서 함께 몰락했다. 버드가 최정상급 선수였던 88시즌까지 셀틱스는 비록 동부컨퍼런스 결승에서 피스톤즈에 석패했지만 57승을 하며 강호로 군림했다.
그러나 K.C. 존스 감독이 떠나고 그의 오른팔인 지미 로저스가 감독으로 승진한 89시즌 개막 5경기만에 버드가 부상으로 아웃되자[13] 42승으로 추락하고, 피스톤즈에게 1라운드에서 허무하게 패했다. 버드와 맥헤일이 부상없이지막으로 같이 뛰었던 90시즌에 57승을 거두긴 했으나 떠오르는 신진스타 패트릭 유잉이 이끄는 닉스에게 1라운드에 2승3패로 석패하고, 크리스 포드가 감독으로 승진한 91시즌에는 버드&맥헤일의 부상에도 분발해 56승을 거두고 2라운드까지 나갔으나 피스톤즈에게 6경기만에 패하고 만다. 1992년에는 래리 버드가 은퇴한 후 맥헤일, 패리시도 노쇠화된 반면, SG 레지 루이스와 PG 디 브라운이 대신 급성장했고, 케빈 갬블과 릭 폭스도 기량이 쩔어도 우승권까지 가기엔 무리였다. 1993년 플레이오프에선 신흥 강호 샬럿 호네츠에게 1라운드에서 패했다.
그 동안 셀틱스의 차세대 기둥으로 성장하던 스윙맨 레지 루이스는 데뷔 6년차이던 1993년 플옵에서 샬럿 호네츠와의 경기 도중 쓰러지고도 회복되나 싶더니 그해 7월에 연습시합 도중 심장마비로 2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전체 2픽 쓰고 1경기도 못뛰고 사망해서 보상조차 받지 못한 렌 바이어스에 이어 레지 루이스까지 세대교체의 구심점이 될 젊은 인재를 허무하게 잃고 버드, 맥헤일, 패리쉬 3인방이 30대가 넘어가면서 체력과 힘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서서히 은퇴했으며, 팀의 전통이던 하프 코트 플레이도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결국 팀에 남은 보물이라곤 1990년 올 루키 퍼스트팀 출신 셔먼 더글라스와 1991년 슬램덩크 콘테스트 우승자 디 브라운 외엔 없었고, 1993년에는 크로아티아의 명 PF 디노 라자가 영입돼 팀의 중심에 섰으나, 그는 무릎 부상으로 신음하여 4년 뒤에 그리스 파나시나이코스로 떠났다. 1997년 켄터키 대학교의 명장으로 알려진 릭 피티노를 사장 겸 감독으로, 단장에는 크리스 월러스를 영입하여 트레이드를 빈번히 진행해 그 난관을 타개해보자 했으나, 그 효력을 보지 못하고 암담한 나날을 보내왔다. 그야말로 참담한 세대교체 실패. 특히 96-97시즌에는 아직 신생팀 티를 벗지 못한 밴쿠버 그리즐리스(14승 68패) 다음으로 나쁜 성적인 15승 67패를 찍으면서 당시 1번픽이 확실했던 팀 던컨을 얻나 했는데[14] 3번픽에 그치는 불운도 있었다. 셀틱스는 그 3번픽으로 천시 빌럽스를 뽑았지만 루키시즌에 토론토로 트레이드했다.
이때의 트라우마는 이후 부임한 단장 대니 에인지의 로스터 운영 철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7. 폴 피어스 시대 (1998년-2013년)


1998년 폴 피어스를 드래프트 10번으로 지명한 이후 데뷔 2년차 앤트완 워커와 짝을 이뤄 '다이나믹 듀오'가 결성됐고, 이 콤비의 활약으로 조금 성적이 오르기 시작해 레드 아워백 부회장이 사장직에 복귀한 2001/02 시즌에 오랜만에 5할 승률을 넘기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고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올라가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골밑이 허약한 탓에 이 콤비의 시너지가 안 터지면 '난사 듀오'라는 비난이 돌아왔고, 2003년에 운영부사장 겸 단장으로 돌아온 대니 에인지앤트완 워커댈러스 매버릭스로 팔아버림으로써 '다이나믹 듀오'는 해체됐다. 대신 피어스가 홀로 최선을 다하긴 했으나 에인지 단장의 미숙한 팀 운영으로 팀 성적은 점차 떨어졌고, 2004년에 닥 리버스 감독이 부임해 그 시즌에는 디비전 1위를 하기도 했으나 다음 2년동안 또다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6년에는 팀 원로이던 레드 아워백 사장이 세상을 떴다.

7.1. 빅3



그리고 2007-08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에인지 단장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 개고생만 하고 있던 케빈 가넷레이 앨런을 영입하는데 성공, 셀틱스를 외롭게 지키고 있던 피어스와 가넷, 앨런이 만나 빅3를 구축한다. 여기에 인성문제가 있었지만 가능성은 확실했던 켄터키 대학교의 포인트가드 라존 론도가 빅3의 시너지효과를 입어 크게 성장하면서 2008년에 바로 우승을 차지한다.
다만 정규시즌은 66승 16패로 전체 1위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상당히 고생해야했는데, 1라운드에서 정규시즌 37승 45패를 기록했던 애틀란타 호크스에게 원정 경기를 전부 내주며 7차전까지 가며 힘을 빼야했다. 홈 경기를 모조리 잡으며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지만, 이어 2라운드에서 만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도 원정 경기를 전부 내주며 7차전까지 갔으며, 7차전에서 르브론 제임스폴 피어스의 엄청난 쇼다운 끝에 신승을 거두며 간신히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
컨파에서 만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상대로 2차전에서 플레이오프 홈 전승이 깨져버리며 위험했지만, 3차전에서 바로 원정 전패 기록을 깨버렸고 결국 4:2로 디트로이트까지 격파하며 전통의 라이벌 LA 레이커스를 파이널에서 만나게 되었다.[15] 레이커스를 상대로 1차전에서 폴 피어스가 무릎을 다쳐 시리즈 아웃되는듯한 아찔한 순간과 켄드릭 퍼킨스의 부상이 있었지만 라커룸으로 들어갔던 피어스가 컴백하자 오히려 TD 가든의 분위기가 달아올랐으며, 돌아온 폴 피어스가 3점슛을 두 번 연속으로 꽂아넣는 것을 시발점으로 그 기세를 몰아 1,2차전 홈 경기를 잡아내었다. 그리고 원정에서 3,4,5차전이 열렸는데, 3차전을 내줬지만 4차전에서 한때 24점차까지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뒤집어내는 대역전극을 보여주며 사실상 시리즈의 승기를 가져오게 된다. 결국 5차전을 패배했지만 홈으로 돌아온 6차전에서 무려 39점 차의 압승을 거두며[16] 감격적인 파이널 우승에 성공했다. 많은 선수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우승을 만끽했으며, 케빈 가넷은 "Anything is possible!!" 이라는 보스턴 팬들과 가넷 팬들의 뇌리에 영원히 남을만한 명대사를 남겼다.
이후 애틀랜틱 디비전에서는 꾸준히 1위를 하는 동부의 강팀으로 다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리핏을 노릴 기세로 달렸던 08-09 시즌에는 케빈 가넷이 시즌 도중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고, 62승 20패 동부 2위로 정규시즌을 끝마쳤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는 시카고 불스를 만나 역대급 혈전을 벌인끝에 간신히 4:3 승리를 거두며 2라운드에 진출했으나, 다음 상대인 올랜도 매직에게 결국 홈에서 7차전을 치르는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패배하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09-10 시즌에는 정규시즌 50승 32패 동부 4위로 이전의 2시즌에 비해 꽤 아쉬운 성적이었던지라 플레이오프에서 어렵지 않겠느냐하는 예상이 많았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폴 피어스의 버저비터를 필두로 마이애미 히트를 4-1로 제압하고, 2라운드에서 동부 1위였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홈코트 어드밴티지도 없고 2-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내리 3연승을 거두며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만난 동부 2위 올랜도 매직에게 역시 홈코트 어드밴티지가 없음에도 1~3차전을 먼저 따내는데 성공했으며, 비록 4,5차전을 내주며 주춤하긴 했지만 6차전 홈 경기에서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파이널에 진출했다. 파이널에서 2년전에 이어 LA 레이커스를 또 만나게 되었는데, 엎치락 뒤치락하는 접전끝에 시리즈 스코어 3:2 우위를 점하며 6,7차전이 원정경기이긴 했지만 우승에 가까워졌었다. 그러나 6차전 1쿼터 도중 핵심센터 켄드릭 퍼킨스가 부상으로 시리즈 아웃되더니 패배하면서 암운이 드리워졌고, 7차전에서 대혈전을 펼쳤지만 결국 레이커스의 복수를 허용해야만 했다. 이 3시즌간 1회 우승, 1회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왕조라 부르기엔 뭔가 모자란 성적을 거둔데다 2010년부터는 마이애미 히트르브론 제임스크리스 보쉬를 불러 신흥 빅3를 만드는 바람에 NBA 우승과는 갈수록 멀어졌다. 빅3의 구성원들은 늙어가고 있었고 급기야 레이 앨런이 론도와의 불화로 12-13 시즌부터 히트에 합류하면서 해체된다.
그러나 그 기간동안 펼쳐진 빅3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1-12 시즌은 보스턴 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단축시즌에서 39승 27패 동부 4위[17]를 기록하며 많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았지만, 1라운드에서 만난 상대인 애틀란타 호크스에게 홈코트 어드밴티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4-2로 승리했고, 2라운드는 시즌 전체 1위 시카고 불스를 업셋하고 올라온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격파하며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올라갔다. 컨파에서 만난 마이애미 히트는 비록 크리스 보쉬가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입은 부상으로 시리즈 초중반 결장했다지만 매우 힘든 상대였으며, 실제로 1,2차전 원정 경기를 내주며 어렵게 시리즈를 시작했다. 특히 2차전은 라존 론도의 득점이 대폭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패배했기에 더욱 아쉬웠다. 그러나 3차전부터 가넷, 론도, 피어스등의 활약으로 저력을 발휘하여 내리 3연승을 거두는데 성공하면서 기적적으로 파이널 진출을 눈앞에 두게되었고, TD 가든에서 열리는 6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내나 했지만, 각성한 르브론 제임스의 대활약에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결국 7차전 원정 경기에서 접전끝에 체력이 방전되며 탈락, 파란만장했던 시즌을 끝마치고 말았다.

8. 리빌딩으로 시작한 브래드 스티븐스 시대


7년간 버틀러 대학을 해드코치로 지휘하면서 7할 이상의 승률을 가져가고 팀을 대학농구의 강자로 만들어낸 브래드 스티븐스를 6년 2천2백만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브래드 스티븐스는 경기에 따라 표정과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상당히 승부욕이 강한 감독으로 알려졌으며 젊은 감독답게 농구세이버 수치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한명의 슈퍼스타를 중심으로 팀을 이끌어나가기 보다는 다섯명의 끈끈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많은 패싱을 통해 팀을 이끌어나간다고 알려져있다. 여러모로 그렉 포포비치와 많이 닮았다.

8.1. 2013-14 시즌


2012-13 시즌이 끝나고 닥 리버스 감독과 가넷의 트레이드 루머가 나왔다. 그 루머란 리버스 감독과 가넷이 LA 클리퍼스로 가고, 디안드레 조던과 드래프트 픽이 셀틱스로 간다는 것. 하지만 감독과 선수가 함께 트레이드 될 수는 없다는 사무국의 입장에 결국 리버스 감독만이 드래프트 픽을 대가로 LA 클리퍼스로 떠났고, 빅3의 남은 일원인 케빈 가넷과 프랜차이즈 스타 폴 피어스마저 제이슨 테리와 묶어 브루클린 네츠로 보내고 본격 리빌딩에 들어갔다. 셀틱스가 받아오는 것은 크리스 험프리스, 제럴드 월러스, 키스 보건스(사인 앤 트레이드), 마션 브룩스, 크리스 조셉, 네츠의 1라운드 픽 3장(2014, 2016, 2018)이다.
라존 론도도 부상에서 뒤늦게야 돌아왔고, 에이버리 브래들리, 자레드 설린저가 조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분전했지만 그 외에는 경쟁력 없는 선수단에 힘입어 라이벌 레이커스와 함께 3할 승률을 기록하며 사이좋게 플레이오프 탈락. 최종 성적은 유타 재즈와 동률인 25승 57패(.302) 동률인 재즈와 뒤에서 공동 4위의 승률이며, 드래프트 픽 순위를 위한 동전 던지기에서는 패배함으로서, 순위대로라면 전체 5위의 드래프트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의 가드 마커스 스마트를 뽑으면서 론도를 트레이드 시킬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8.2. 2014-15 시즌


시즌 1/4을 보낸 시점에서 동부 중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브래들리, 설린저, 올리닉 등 유망주들을 육성중이고 좋은 조직력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승부처에서 득점을 해줄 에이스가 없다 보니 4쿼터에 털리는 경기들이 많다. 리더인 론도는 루키시즌 이래 처음으로 평균득점이 한자리대로 떨어지는 등 위력이 감소한 상태.
2014년 12월 19일 론도가 댈러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셀틱스는 론도와 드와이트 파월을 보내고 자미어 넬슨, 브랜든 라이트, 제이 크라우더와 추가로 2015 드래프트 1라운드 티켓, 2016 드래프트 2라운드 티켓, 그리고 1290만 달러에 달하는 트레이드 익셉션도 받았다.
그렇게 본격 탱킹모드에 들어가는 듯 했으나 다른 동부팀들이 의외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노선을 전환, 후반기가 시작되는 트레이드 데드라인 기간에 피닉스 선즈아이제아 토마스를 영입하며 플레이오프 진출 욕심을 보여준다. 그 결과 시즌 막판에 6연승을 기록하며 동부 7위인 40승 42패로 시즌을 마치며 진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건 좋았으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스윕당하며 광탈. 로스터 정리가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은 상황이라 오프시즌에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8.3. 2015-16 시즌


2015-16 시즌을 앞두고 아미르 존슨과 데이비드 리를 각각 FA와 트레이드로 영입해 빅맨진을 강화했다. 정규시즌에 들어와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선전하고 있다. 골든스테이트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2차 연장까지 가는 혈전끝에 패배하기는 했지만 젊은 선수들의 분전이 돋보이는 경기였다.
2월 14일 시점에서 32승 23패로 포스트시즌 커트라인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1월 중순 이후로는 마커스 스마트를 필두로 한 리그 정상급의 수비를 앞세워 연승가도를 달리기도 하는 등 상당히 빠른 리빌딩 속도를 보이며 전반기를 동부 3위라는 호성적으로 마무리하였다.
아이제아 토마스도 팀의 주전 가드로 활약하며 4월 2일까지 15경기 연속 20득점 이상을 퍼부면서 팀의 순위 상승을 이끄는 중이다. 그리고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같이 한번도 홈코트에서 져본적이 없는 스테판 커리의 골든스테이트를 109-106의 스코어로 잡아내며 골든스테이트의 홈경기 연승을 끊었을 뿐 아니라 성장하는 신진세력의 무서움을 과시했다.
4월 14일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마이애미 히트와의 홈 경기에서 전반전 종료기준 24점차 리드를 당했지만 후반전 대역전에 성공하며 98-88로 승리를 거뒀다. 최종성적은 48승 34패. 그런데 문제는 보스턴과 동부 3~6번 시드 다툼을 하던 애틀란타 호크스, 샬럿 호네츠, 마이애미 히트가 똑같은 성적을 거뒀다는 것이다(...) 결국 4팀 동률로 타이브레이커까지 따져본 끝에 보스턴은 동부 5번시드로 플레이오프를 시작하게 되었고, 정규시즌 상대전적에서 1:3으로 밀렸던 상대인 4번시드 애틀란타를 1라운드에서 만나게 되었다.
결국 정규시즌 상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애틀란타에게 시리즈를 2:4로 내주게 된다[18]. 그나마 3,4차전 토마스의 대활약으로 반격을 한것까지는 좋았지만, 5차전에서 그 토마스가 부진에 빠지며 대패했고 6차전에서 보스턴 선수들의 슛감이 단체로 난조를 보였다. 그래도 브래드 스티븐스 감독 집권기간 동안 성적이 점점 좋아지고 있고 미래가 더 기대되는 팀이기에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프시즌을 잘 보내는 것이 선결과제겠지만.

8.4. 2016-17 시즌


'''리빌딩을 뒤로하고 동부의 정규시즌 1위로 거듭나다'''
2016-17 시즌을 앞두고 애틀란타에서 매물로 나온 알 호포드와 4년 1억 1300만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와 계약기간이 만료된 케빈 듀란트의 유력한 행선지로 꼽혔지만[19] 그러나 듀란트는 결국 골스행을 택했다.
시즌 초반 호포드와 크라우더의 부상으로 인해 장점이던 수비가 붕괴되어 고생하고 있다. 첫 10경기를 딱 5승 5패 반타작으로 마감했다. 고연봉 FA인 호포드는 지지부진하지만 경기당 평균 27득점을 돌파한 아이재아 토마스의 눈부신 활약으로 2016년을 20승 14패로 마무리지었다. 여기에 2017년 들어서는 5승 1패의 엄청난 상승세로 25승 15패를 기록, 동부 컨퍼런스 2위 토론토 랩터스를 2경기차까지 좁혔다. 특히 아이재아 토마스는 최근 10경기에서 평균 득점이 무려 31.8점에 달할 정도로 괴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이 기간 동안 득점 부분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12월 31일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는 3점슛 9개를 포함해 무려 52점을 퍼부었고, 4쿼터에만 30점을 쏟아 부으며 르브론이 있을 때 라이벌이었던 마이애미를 참담하게 짓뭉개버렸다. NBA 역사상 최단신 선수 중 하나라는 악조건을 이겨내고 NBA 최고의 득점원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2월달에는 드디어 토론토 랩터스를 제치고 동부 2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TD가든에서 펼쳐진 맞대결에서 승리하면서 지난번 맞대결에서 4쿼터에 10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한 아쉬움을 털어내었고 동부 2위 자리를 지켜나가고 있다.
시즌 중반에 팀이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실해지자 카멜로 앤서니, 블레이크 그리핀을 비롯한 수준급 포워드들과 네츠와의 트레이드로 얻어낸 어마무시한 양의 드래프트 카드와의 트레이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아미르 존슨, 제이 크라우더가 이번 시즌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고 뛰어난 수비 실력으로 토마스의 수비 범위를 커버해주고 있지만, 아무래도 우승권 팀들의 포워드들이 르브론, 레너드, 듀란트를 비롯한 MVP급이니깐 부족한 면이 꽤 있다. 비록 트레이드가 성사되지 않을 순 있지만 보스턴 팬들은 이왕이면 토마스와 롤이 겹치는 카멜로 앤서니보단 닥 리버스와 인연이 있고 셀틱의 약점인 리바운딩 능력과 포스트 공격이 뛰어난 블레이크 그리핀이 더 낫지 않나하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새로 영입된 알 호포드는 셀틱스의 약점이었던 리바운딩을 보완하기 위해 영입했으나 약점을 보완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공격형 빅맨답게 수준급의 득점 능력과 3점슛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프로 3년차인 마커스 스마트는 거의 모든 스탯에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제아 토마스는 두말할 필요없이 4쿼터의 지배자로 떠오르고 동부 최고의 포인트 가드 자리에 올라오면서 이번 시즌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MVP레이스의 행방을 더욱 묘연하게 만들고 있다.
전반기 막바지에 어려운 원정 연전을 잘 돌파하면서 37승 20패로 마쳤다. 7연승을 달리다가 서부 원정 4연전 첫경기인 새크라멘토 킹스전에서 드마커스 커즌스가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졸전끝에 패배하며 분위기가 안좋아질법했지만, 이후 유타 재즈,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댈러스 매버릭스를 차례로 연파했고 홈으로 돌아와 접전끝에 필라델피아 76ers를 꺾었다. 전반기 마지막 경기인 시카고 불스원정에서 백투백임에도 불구하고 잘싸웠으나 지미 버틀러에게 클러치 자유투를 허용하며 아깝게 1점차로 패배했지만 그래도 훌륭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안드레 드러먼드, 지미 버틀러, 폴 조지 등 루머가 많이 떴지만 결국 트레이드 없이 지나갔다. 특히 엘리트급 포워드의 자리를 지미 버틀러로 메울려고 했으나 트레이드 협상이 중단되었다는 소식만 나왔다.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이어진 사실상 2위 결정전이라 불러도 될 토론토 전에서 카일 라우리가 결장했음에도 이번에 토론토로 트레이드 된 세르지 이바카가 맹활약을 하면서 3쿼터까지 가져갔던 리드를 지키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상대편에게 완벽하게 틀어막힌 아이재아 토마스는 덤이다.
아마도 트레이드를 안하려던 것을 봐서는 대니 에인지는 이번 년도까지만 플레이오프는 포기를 하려는 듯 보인다. 이번 시즌 알 호포드로도 해결 못한 리바운딩과 같은 문제가 너무 많이 있었고, 한 선수가 멱살캐리할 수 있는 게 농구라해도 요즘 대세가 그 반대인 런앤건 농구인데, 이 농구는 모든 선수가 평균이상의 슈팅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농구를 쓰는 팀과 감독의 예시 중 하나가 바로 보스턴 셀틱스, 그리고 브래드 스티븐스이다. 그러나 제일렌 브라운, 테리 로지어를 비롯한 유망주들이 아직 포텐이 터지지 않았고, 1년 1200만달러의 아미르 존슨은 기대이하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수비능력은 준수하지만 작년애 비해 모든 스탯이 하락했다. PER이 정확히 15다. 1200만 달러의 선수가 정확히 리그 평균 실력을 보여주고 있단 말이다(...) 다행히 이번 년도가 마지막이지만.
거기에다 이번 드래프트에 거물급 신인인 론조 볼과 마켈레 풀츠가 나오기 때문에 이번 드래프트 순위는 1위 또는 2위가 사실상 셀틱이라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 드래프트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셀틱입장으로는 어렵다.
후반기를 험난한 서부 원정 5연전의 영향으로 4승 4패 딱 5할로 시작했지만, 그 와중에 동부 1위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서부 1위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잡으며 저력을 보여줬다. 특히 골든스테이트에게는 또다시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며 작년에 이어 오라클 아레나 2연승을 달리게 되었다.
2017년 3월 8일(미국시각) 기준으로 현재 성적은 41승 24패이며 1위 클리블랜드와는 2경기 반 차이다. 3위인 워싱턴 위저즈가 2경기 덜한 1경기차로 턱밑까지 추격했기에 끝까지 안심할 수 없는 순위 싸움이 될듯하다. 그래도 서부 원정 5연전을 마치면 홈 경기가 많이 남아있기때문에 그 점은 큰 힘이 될것 같다.
3월 10일 덴버 너기츠 원정에서 패배하면서 서부 원정 5연전을 2승 3패로 마쳤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아직 원정 11경기를 남긴 가운데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함께 다소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기에 격차를 줄일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놓친 다소 아쉬운 마무리였지만 이제 보스턴은 홈 11경기, 원정 5경기가 남은 상황이니 잘 추스려야할듯. 워싱턴 위저즈가 보스턴이 주춤하는 사이에 연승을 달리며 동부 2위 자리를 가져갔지만, 원정 경기가 아직 12경기가 남아있어서 잔여일정은 보스턴이 많이 좋은 편.
하지만 덴버전 이후 7경기 6승 1패를 기록하면서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클리블랜드와의 격차를 어느덧 반경기 차로 좁힘과 동시에 잠시 주춤하면서 보스턴에게 2위를 반납하고 3위가 된 워싱턴과의 격차는 2경기 차로 늘려 놓으면서 동부 1번 시드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3월 26일 마이애미 히트를 접전끝에 잡으며 드디어 클리블랜드와의 승차가 없어졌다. 셀틱스가 2경기를 덜 치러서 승률에서 밀려 2등이긴 하지만 클리블랜드의 원정경기 수와 앞으로 만날 상대들의 승률을 보면, 또한 최근 어수선한 클리블랜드와 홈에서 연승을 달리는 셀틱스의 모습을 보면 셀틱스의 1위 등극이 유력해보인다.
결국 클리블랜드가 샌안토니오에게 패배하면서 반경기차 1위에 등극했다.
3월 29일 밀워키 벅스와의 홈경기에서 명경기끝에 100-103으로 패배하며 다시 2위로 내려갔다. 하지만 다음날 클리블랜드가 시카고에게 패배하며 1위에 재등극했다.
현재 클리블랜드와 50승 27패의 동률의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상대전적에서 밀려 2위가 된 상황에서, 4월 5일 홈에서 클리블랜드와 중요한 맞대결을 펼친다. 노장들이 많은 클리블랜드는 인디애나와의 2차연장-올랜도와의 홈경기-보스턴과의 원정 백투백 경기라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고 보스턴은 이틀을 휴식하며 홈 경기를 대비하고 있으며 상대 센터 트리스탄 탐슨이 결장하기에 좀 더 유리한 입장. 그래도 클리블랜드의 빅 3의 위력은 대단하기에 안심은 할 수 없다.
결국 클리블랜드와의 대결에서 인사이드에서 큰 약점을 드러냈고 저조한 3점슛 성공률로 인해 91-114 완패를 당하며 동부 1위가 힘들어졌다.
이후 애틀란타와의 백투백 원정 경기에서도 패배하며 사실상 동부 1위는 물건너간줄 알았으나 클리블랜드가 홈에서 주전멤버들이 전원 결장한 애틀란타에게 참패하고 보스턴이 샬럿 원정을 잡으며 아직 희망을 버리긴 이른 시점이 되었다. 현재 클리블랜드와 보스턴은 0.5경기차이고 타이브레이커는 클리블랜드에게 있지만, 보스턴은 브루클린, 밀워키와 홈에서 경기가 남아있는 반면 클리블랜드는 애틀란타, 마이애미와 백투백 원정 경기를 치른 후 토론토와 홈 경기를 하는 험난한 일정이라 역전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
결국 보스턴이 브루클린을 잡고 클리블랜드가 애틀란타, 마이애미에게 모두 패배하며 다시 1게임차 동부 1위 자리를 탈환했다. 2017년 4월 12일에 있을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동부 1위 자리가 최종 결정될 예정.
최종전에서 밀워키를 홈에서 112-94로 잡고,클리블랜드가 토론토에게 83-98로 패배하면서 07-08 시즌 이후 9년만에 동부 1위를 확정지었다. 최종 성적은 53승 29패.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는 시카고 불스다.
플레이오프 시작 직전 아이제아 토마스가 누이 동생을 교통 사고로 잃는 아픔을 겪었고, 라존 론도의 리딩과 시카고의 인사이드 공격에 홈 1,2차전을 내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지만 론도가 3차전부터 손가락 골절로 시리즈 아웃되고 브래드 스티븐스 감독의 스몰라인업 선택이 제대로 먹히면서 내리 4연승을 따내 2라운드에 진출한다. 2라운드 상대는 워싱턴 위저즈.
정규시즌에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던 상대인 워싱턴이었고, 플레이오프에서도 신경전이 이어지며 서로 홈코트를 사수하는 엄청난 혈전을 벌인끝에 7차전 켈리 올리닉의 하드캐리로 보스턴이 간신히 시리즈 승리를 가져갔다. 5년만에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으며, 이제 6년동안 동부를 지배해온 르브론 제임스가 있는 디펜딩 챔피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만나게 되었다. 보스턴은 1,2라운드를 4:2, 4:3 승리로 돌파한 반면 클리블랜드는 전부 스윕으로 이겼으니만큼 체력은 밀리지만 홈어드밴티지 이점을 살리길 기대해봐야할듯.
워싱턴과의 7차전 바로 다음날에 있었던 2017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1번픽을 가져가는 겹경사를 맞이했다.
홈에서 펼쳐진 1, 2차전은 모두 무기력하게 내주고 말았고 아이제아 토마스가 시즌 아웃되었다. 그렇지만 적지에서 펼쳐진 3차전에서는 압도적인 불리함을 뒤집는 저력을 발휘하며 승리했다. 4차전에서는 카이리 어빙의 폭발에 역전패당했고, 결국 5차전 홈경기에서 또다시 무기력하게 패배하며 시즌을 마쳤다. 비록 끝은 무기력했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빠르게 동부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까지 해냈기에 나름 의미 깊은 시즌이라 할 수 있다.

8.5. 2017-18 시즌


'''새로운 BIG 3가 탄생하다'''[20]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한다'''
2017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획득한 1픽을 필라델피아에 넘긴 뒤 3픽을 받았고, 레이커스가 필라델피아에 넘긴 2018 드래프트 로터리 1라운드 2~5픽까지 받아오는 거래를 단행했다. 만약 2018 드래프트 로터리 2~5픽 권리를 행사하지 않아도 새크라멘토가 필라델피아에 넘긴 2019 드래프트 로터리 1라운드 티켓을 받아올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 필라델피아로부터 얻은 3픽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시카고의 지미 버틀러를 트레이드해오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예측이 ESPN으로부터 나왔지만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초에 지명하리라고 예상되던 조쉬 잭슨 대신 제이슨 테이텀을 3픽으로 지명했다. 그리고 헤이워드 영입에 성공하면서 아이제아 토마스, 고든 헤이워드, 알 호포드라는 BIG 3가 결성 되었다. 거기에 제이슨 테이텀은 서머리그에서 더블 더블을 달성하는 등 이번 드래프트 최고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샐러리캡을 덜어내기 위해 켈리 올리닉, 에이브리 브래들리를 떠나보내야만 했고, 미국 현지 시간으로 8월 22일 아이재아 토마스, 제이 크라우더, 안테 지지치, 브루클린에게 받아온 1라운드 드래프트 픽을 내주는 조건으로 카이리 어빙을 가져왔다. 다만 국내 팬들은 어빙이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선수는 맞지만 브루클린에게 받은 픽까지 써야 했냐는 의견을 많이 내고 있다. 이로써 보스턴은 지난 시즌과는 확 달라진 선발 라인업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런데 토마스의 몸 상태가 당초 알려진 것보다도 더 심각하다는 것 때문에 선수나 픽을 보상조로 캐벌리어스에게 더 주거나, 심하면 '''트레이드 취소'''가 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결국은 2020년도 마이애미 2라운드 픽을 추가로 주는 것으로 트레이드가 마무리 되었다.
1-5 트레이드라 균형이 맞지 않는거 같지만 토마스는 부상에 만기계약, 크라우더는 헤이워드 영입으로 백업으로 밀린 상태이고 브루클린 네츠가 앨런 크랩이나 디안젤로 러셀 등 유망한 선수 영입으로 픽순위가 중위권 픽으로 될 가능성을 감안하면 카이리 어빙이라는 슈퍼스타급 가드를 데려온 것은 성공으로 결론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클리블랜드가 시즌 중반 수비가 완전히 무너지며 결국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토마스와 크라우더를 내보내어 팀을 갈아 엎었기에 네츠픽이 남았지만 셀틱스가 큰 이득이라는 평가.
이로써 어빙-헤이워드-호포드라는 빅3를 만들어 지난 해와는 확 달라진 스타팅 라인업을 구축하며 야심차게 시즌을 시작했지'''만...'''
10월 17일 클리블랜드와의 개막전에서 1쿼터 5분만에 헤이워드가 큰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따라갔으나 결국 아쉽게 3점차로 패배했고, 홈 개막전에서도 밀워키에게 패배하며 개막 2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렇듯 이후 험난한 여정을 걸을 것을 예상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디트로이트에게 연승이 끊기지 전까지 17연승을 내달리며 리그 전체 단독 1위에 올라섰다. 르브론의 그늘에서 벗어나 1옵션임을 증명하는 어빙의 에이스적 면모, 몸값거품 논란을 잠재우기라도 하듯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호포드, 여전히 야투율은 아쉽지만 수비 집중력 등 전년 대비 많이 성장한 로지어, 헤이워드의 부상으로 브라운, 테이텀이 오히려 고른 출장 시간을 보장받으면서 팀의 짜임새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젊고 빠른 선수들로 로스터를 채운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제일런 브라운은 작년의 기대치를 저버리지 않고 리그 정상급 슈팅가드로 성장중이며 헤이워드의 자리를 완벽하게 메꾸고 있다. 한편 헤이워드의 재활도 순조롭게 진행중이며 피어스와 같은 레전드와의 면담, 셀틱스 팬들의 엄청난 지원을 통해서 정신적인 서포트도 받고 있다. 작년과는 다르게 클리블랜드의 동부 패자자리를 뺏을 수 있을지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후 12월에는 빡빡한 일정으로 인한 체력문제와 낮은 득점생산력으로 11승 8패를 마크하며 고전하나 싶었지만 2018년 들어서 다시 7연승을 달리면서 토론토, 클리블랜드 등 경쟁자를 제치고 리그 1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꾸준히 리그 최소실점을 기록하는 등 최고의 수비조직력이 핵심동력이 되고 있으며, 브라운과 테이텀, 로지어 등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눈에 띄게 발전하는 등 미래까지 기대된다는 평가. 더군다나 브루클린이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내면서 클리블랜드에게 내준 1픽의 가치가 떨어질 위기에 처했고(...) 토마스가 돌아온 뒤로 클리블랜드의 수비조직력이 무너지고 있는데다 본인들은 올해 레이커스 혹은 내년 킹스의 픽 권리를 갖고 있어 상위권에 올라있으면서도 꾸준히 신인수급을 할 수 있는 등, 여러모로 에인지 단장의 구단 운영능력이 부각되고 있다.
7연승 이후에는 4연패 포함 5승 6패로 다소 부진한 편. 어빙과 스마트 등 주축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고 테이텀, 로지어 등의 루키 선수단이 50경기 벽을 경험하면서 공격이 말을 듣지 않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리그 최강급의 수비와 뒷심으로 동부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호포드를 센터로 두면서 발생하는 림프로텍팅의 부재와 공격옵션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은 여전히 약점으로 꼽히고 있다. 일단 피닉스에서 바이아웃으로 풀린 빅맨 그렉 먼로와 1년 5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으며 골밑 보강을 꾀했다.
3월 15일 현재 초반에 쌓아놓은 승수의 덕을 보며 3위권과의 격차는 많이 벌려놨지만 어빙, 호포드, 브라운, 스마트 등 주요멤버들의 부상으로 인해 패배가 늘어났고 토론토 랩터스가 압도적인 기세를 보여주어 랩터스와 46승 22패 4.5게임차의 동부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남은 정규시즌 기간동안 주요멤버들의 부상 관리에 집중할 예정이기에 2위로 플레이오프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어빙, 호포드, 브라운, 스마트, 헤이워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백투백 일정이고 존 월이 결장한 상태이긴 했지만 동부 상위 시드권인 워싱턴 상대로 홈에서 1점차 석패를 당하긴 했어도 2차연장 접전까지 가는 저력을 보였다.
3월 20일(미국 날짜) 오클라호마 시티 선더와의 홈 경기에서 어빙, 브라운, 스마트 등 주전들 대부분이 결장하고 경기종료 20초 남기고 6점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OKC가 자유투를 흘리기도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물고늘어진 결과 기적적인 1점차 역전승에 성공했다. 이런 근성과 끈끈함으로 이뤄낸 역전승들이 이번 시즌 정말 많다.
이후에도 주전들의 줄부상 라인업에도 불구하고 서부 강호들인 포틀랜드, 유타와의 경기에서 기적의 역전승을 만들었다. 유타전은 어빙, 호포드, 스마트, 모리스, 헤이워드가 빠지며 차, 포, 마, 상 없이 장기를 둔것이나 다름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극강의 수비력과 브래드 스티븐스 감독의 치트키스러운 클러치 작전 세팅으로 극적인 97-94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현지날짜 3월 31일 토론토 랩터스와의 홈 경기에서도 110-99 승리를 거두며 파죽의 6연승, 어느덧 6경기를 남기고 토론토와의 승차를 2게임으로 줄였다. 부상자 속출과 타이트한 일정으로 사라진줄만 알았던 1번시드에 대한 희망이 살아나고 있다. 원정이긴 하지만 만약 랩터스와의 마지막 맞대결도 이길경우 기적적인 역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적적인 연승행진을 달렸으나 계속된 접전으로 인해 얇은 로스터에 과부하가 걸려 밀워키 벅스와의 원정 경기와 토론토 랩터스와 원정에서 벌인 재대결에서 패배하며 2연패, 4경기 남기고 승차 3경기가 되며 사실상 2번시드가 결정되었다. 게다가 토론토와의 경기 다음날 카이리 어빙의 플레이오프 아웃이 결정되는 우울한 상황이 발생했다. 최종 성적은 55승 27패로,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는 밀워키와 만난다.
밀워키 벅스와의 시리즈에서는 1차전부터 연장전까지 가는 혈전을 벌였고 양 팀 모두 에너지 넘치는 수비를 보여줬으나, 결국 작년 2라운드 워싱턴 위저즈와의 시리즈처럼 보스턴이 홈 경기를 모두 잡아내며 4:3 승리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2라운드 상대는 동부 3위이자 플레이오프에서 수없이 만났던 상대인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대다수 전문가들이 식서스의 우세를 예상했으나, 그 예상을 뒤엎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4:1 승리를 거뒀다. 특히 벤 시몬스를 시리즈 내내 거의 완벽하게 봉쇄한 것이 주효했다. 그렇게 2년 연속 도달한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여전히 동부의 왕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재대결하게 되었다.
홈 어드밴티지를 가지고 시작한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플레이오프 내내 아쉬웠던 원정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홈 경기에서 막강한 모습을 보이며 클리블랜드를 벼랑끝으로 몰아넣기도 했지만, 결국 마지막 7차전에서 타이트한 7인 로테이션으로 인한 체력 방전과 제이슨 테이텀을 제외한 영건들이 7차전의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탓인지 부진한 공격력을 보여주었고 진흙탕 싸움끝에 끝내 르브론을 막지 못하며 이번 플레이오프 첫 홈 경기패배와 함께 탈락하고 말았다. 클러치 타임으로 돌입하면 돌입할수록 카이리 어빙의 공백이 더욱더 뼈아프게 느껴졌다. 플레이오프 시리즈 2-0 리드시 시리즈 최종 성적 37승 0패의 기록에도 흠집이 났다. 하지만 어빙과 헤이워드라는 1, 2옵션과 빅맨 다니얼 타이스없이 플레이오프를 치렀고 그 때문에 저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브래드 스티븐스 감독의 탁월한 지략과 선수들의 끈끈함을 바탕으로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하여 7차전 승부를 연출한 모습으로 인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젊은 선수들이 상당한 플레이오프 경험치를 얻은 상태에서 어빙과 헤이워드가 복귀할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던 플레이오프였다.

8.6. 2018-19 시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고액연봉자인 어빙과 헤이워드가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동부 최상위권 팀이 될 줄 알았으나 시즌의 1/5을 진행한 시점에서 승률 5할을 왔다갔다하는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호포드는 노쇠화가 진행될 나이에 헤이워드는 부상복귀 후 폼이 아쉬운 상황에서 지난 시즌 선전을 이끌었던 테이텀, 브라운 로지어 등 영건 군단은 제멋대로인 플레이를 하며 교통정리가 잘 안되는 중. 팀 케미스트리가 안좋다는 소문도 여럿 흘러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어빙과 헤이워드 없이 컨파까지 올라간 영건들이 둘의 복귀(특히, 어빙) 이후 줄어든 롤에 불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올스타 브레이크 전 성적은 37승 21패로 동부 4위.
4월 7일 동부 4번 시드가 확정되었으며,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대결하게 되었다. 시즌 최종성적은 49승 33패.
인디애나와의 1라운드 시리즈는 끈적한 수비싸움이 이어졌으나, 네경기 모두 클러치타임에서 우위를 점하며 스윕승을 거두고 가장 먼저 2라운드에 진출했다. 2라운드 상대는 전체 1위 밀워키 벅스.
2라운드 1차전 원정경기에서는 좋은 수비 전략과 함께 후반전에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대승으로 시리즈를 기분좋게 시작했다.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가속하기 힘들도록 전방에서 1차로 저지하고 이 후 속도가 완전히 붙지 못한 쿤보를 호포드와 베인즈 센터진이 막아내는 전략으로 쿤보를 완전 봉쇄하는데 성공하였다. 다만, 이후 시리즈에서 수비적으로는 밀워키를 그럭저럭 막아내는 편이었으나, 밀워키가 보스턴의 공격을 더욱 잘 막아냈기에 내리 4연패를 당하며 1:4로 실망스럽게 시즌을 끝마쳐야 했다.

8.7. 2019-20 시즌


'''테이텀과 브라운의 브레이크아웃 시즌, 공수 모두 리그 한손가락 안에 드는 팀'''
시즌 내내 영건들과 불화가 끊이지 않았던 카이리 어빙이 결국 브루클린 네츠로 떠났고 주전 센터인 알 호포드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 떠났다. 역대급 오프시즌에서 팀의 고액연봉자 2명을 떠나보내고 스타급 선수를 2명 이상 데려오기 힘들었던 이유는 고든 헤이워드의 너무 높은 연봉 때문. 다만, 최상급 포인트 가드인 켐바 워커를 사인 앤 트레이드 방식으로 영입하였으며, 에네스 칸터를 2년 10밀이라는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잡아내는데 성공하면서 어빙, 호포드와 베인즈의 빈자리를 어느 정도 채우는 데에는 성공했다. 전 시즌 인터뷰에서 어빙과 팀 시스템에 대해 비난했던 테리 로지어켐바 워커와 트레이드 되어 샬럿으로 떠났다.
켐바 워커를 붙잡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전력누수가 있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차기 시즌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2018-19시즌까지의 켐바 워커 자체가 어빙보다 야투 기복이 심한 선수이며 전체적으로 어빙과 매우 비슷하지만 약간 다운그레이드된 느낌의 선수이다. 특히, 보스턴 수비 시스템의 핵인 알 호포드가 떠나 간 것은 수비 측면에서도 매우 불안한 점이며, 대체자로 영입된 에네스 칸터의 경우 수비력이 안 좋기로 유명한 센터이다. 거기에, 고든 헤이워드는 32.7밀의 맥스 계약자임에도 지난 시즌 부상 복귀 후 그저 그런 롤 플레이어 급 활약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희망적인 관측도 있는데, 제이슨 테이텀제일런 브라운 두 영건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마커스 스마트도 건재하다. 또한, 새로 영입된 켐바 워커의 경우 샬럿에서 리더쉽은 검증된 선수이기에 전 시즌의 카이리 어빙 처럼 팀내에서 불화가 생길 가능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22] 또한, 에네스 칸터의 경우도 공격력 만큼은 이미 리그 탑 수준으로 검증된 선수고, 지난 시즌 포틀랜드에서는 수비력으로도 매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고든 헤이워드도 지난 시즌은 부상 복귀 첫 시즌이었기에, 이번 시즌에 기량을 회복한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도 있다.
여담이지만 19년 서머리그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선수가 셀틱스와 Exhibit 10 계약을 맺은 타코 폴이다. 셀틱스의 캠프에 초청을 받아 뛰었던 폴은 키가 2미터 31센치, 윙스팬이 2미터 50센치의 거인인데, 그런 거구의 몸에 비해 뛰어난 기동력을 보였기에, 알 호포드와 애런 베인즈가 나가고 에네스 칸터로 채운 센터 라인에 들어가는 것을 기대하는 셀틱스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즌 개막전에서는 필라델피아에게 석패하면서 불안이 현실이 되나 했으나, 그 뒤로 리그 '''10연승'''을 하면서 거짓말처럼 리그 전체 1위로 올라섰다. 12월초 기준으로는 밀워키가 14연승을 하면서 보스턴은 2위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 현재, 홈에서 극강의 모습을 보여주며 홈경기 전승(원정 7승 5패)을 기록중이다. 특히 오버페이 논란이 일었던 브라운이 대오각성하고 헤이워드 역시 20 어시스트 이상을 심심찮게 찍는 등 드디어 기량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핵심. 켐바 워커 역시 좋은 폼과 리딩을 보여주고 있고 그 결과 경기 당 평균 득점이 113점으로 리그 최고의 공격팀으로 거듭났다. 특히 댈러스전에서는 테이텀이 야투 18개 중 1개만을 성공시키는 극악의 부진을 겪었음에도 승리했고, 워싱턴과의 11월 14일 경기에서는 1992년 이후 최다 득점인 140점을 몰아치며 승리하면서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물론 이 기세를 길게 이어나가지 못하고 원정 5연전에서 2승 3패의 애매한 성적을 거두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승을 쌓고는 있지만 18연승의 대폭주를 비롯해 멀리 치고 나간 밀워키를 따라잡기엔 역부족. 마이애미, 토론토, 필라델피아 등과 2위 그룹에서 치열한 순위 다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부침이 심한 모습을 보여주는 토론토필라델피아와 비교했을 때 긴 연패를 당한 적은 없어 마이애미와 함께 좀 더 앞서나가는 중이다. 물론 칸터가 돋보일 정도로 빅맨진 뎁스가 얇다는 점은 주시해야 할 상황.
그렇게 안정적인 리그 전체승률 3위로 19년을 마쳤으나 1월에 터진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3연패만 2번을 당하며 주춤했다. 그 사이 연승을 달리며 치고 나간 토론토에게 동부 2위 자리를 내주고 한때 4위권 턱걸이로 밀렸으나 테이텀브라운의 부상복귀 이후 빠르게 팀을 추스르면서 더 이상 밀리지 않고 꾸준히 승을 쌓으며 토론토, 마이애미와 2위그룹을 수성 중. 인디애나가 복귀한 올라디포브록던의 부진으로 더 치고 올라오지 못하고 필라델피아가 끔찍한 원정울렁증으로 추락하는 와중에 그래도 승률 7할 언저리를 유지하고 있다.
2월 들어서는 테이텀이 각성하며 팀을 이끌고 있다. 이미 이번 시즌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며 올스타에 선정된 테이텀이지만 올스타전 이후로 평득이 30점을 넘어가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3점 성공률이 50%로 고공행진하고 있다. 팀은 이에 힘입어 3위 자리를 확고히 했지만 마찬가지로 엄청난 폼을 보여주는 2위 토론토 랩터스와의 격차는 줄지 않고 있다. 테이텀은 결국 2월 이달의 선수상을 차지했다.
시즌 중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벤치에 대한 의문점이 커지고 있다. 원래는 켐바 워커, 제일런 브라운, 제이슨 테이텀, 고든 헤이워드 중 한명 이상씩 벤치타임에도 플레이하는 것으로 벤치 문제를 덮어왔는데 3월 들어 주전들의 부상이 곂치면서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켐바 워커가 무릎 문제로 출전시간 제한이 걸리고 브라운이 햄스트링 부상, 헤이워드가 경미한 부상 반복으로 오락가락 하는 상황에서 보스턴은 테이텀에게 더블팀을 붙이면 제압가능한 팀이되었다. 식스맨인 스마트는 벽돌만 던지고 있고 칸터도 최근 성적이 좋지않다. 다행인 점은 얇디 얇은 빅맨 댑스를 보완해줄 로버트 윌리엄스가 부상에서 복귀했고 세미 오젤레이가 준수한 폼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올랜도 버블에서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3번시드를 확보하였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벤 시몬스가 빠진 지구 라이벌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만나게 되었다. 상대전적은 1승3패로 밀렸지만 시몬스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필라델피아를 가볍게 4대0 으로 스윕하면서 2라운드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토론토 랩터스를 만나게 되었다. 첫 2경기를 가져가면서 쉽게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는듯 했지만 아누노비에게 0.5초를 남겨놓고 결승 3점슛을 얻어맞으며 3차전을 내주고 4차전까지 내주게 되었다. 5차전에서 엄청난 수비력으로 이겼지만 6차전을 2차연장끝에 패하며 단두대매치를 벌이게 되었다. 마지막 7차전에서 테이텀브라운의 활약으로 92-87승리 2년만에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였다. 상대는 리그 승률전체 1위인 밀워키 벅스...가 아니고 그들을 이긴 5번시드 마이애미 히트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마이애미 히트에게 1차전(보스턴 114 : 117 마이애미), 2차전(보스턴 101 : 106 마이애미)을 패배하고 3차전을 106 : 117로 이겼지만, 또 다시 4차전에서 112 : 109로 패배, 그러나 5차전에서 121 : 108로 승리, 하지만 최종적으로 6차전에서 125 : 113으로 패배하면서 4-2로 파이널 진출에 실패하고 아쉽게 시즌을 마무리하게 됬다.
결국 제일런 브라운을 뽑은 이후 4년간 3번의 컨퍼러스 파이널 진출을 이뤄냈지만 파이널에는 가보지 못하게 되면서, 현 시점의 셀틱스는 꾸준히 플레이오프에서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강팀이지만 우승할 역량은 안되는 팀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비슷한 평가를 받는 밀워키 벅스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 밀워키의 경우에는 팀의 중심을 잡고 있는 에이스가 플레이스타일의 한계로 다전제에서 지워지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면 현재의 보스턴은 현재의 주축들이 단신으로 팀을 우승권으로 이끌 슈퍼스타는 되지 못하는데 이를 보완해줄 벤치 뎁스가 처참한 것이 발목을 잡는다. 몇 년간 꾸준히 문제가 되었던 믿을만한 빅맨의 부재 역시 다니엘 타이스의 등장으로 어느 정도는 보완했지만 타이스 역시 언더사이즈에 공격력이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선수이기에 결국 공격력이 있는 주전 빅맨을 데려올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일각에서는 이번 컨퍼런스 파이널에서의 패착을 근거로 브래드 스티븐스 감독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하나, 동시에 비슷한 수준의 명장이라 평가받는 닉 너스의 토론토 랩터스고든 헤이워드 없이 이기기도 했고, 시장에 나온 감독 중에서 스티븐스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사람도 딱히 없어 경질론이 크게 대두되는 편은 아니다.

8.8. 2020-21 시즌


옵트인 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고든 헤이워드가 옵트 아웃으로 샬럿으로 떠나면서, 가성비가 나빴던 헤이워드의 계약을 정리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사인앤 트레이드 방식이 아닌 FA로 내보냄에 따라, 보스턴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아무리 가성비가 나빴던 계약이었다지만,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헤이워드 없이 켐바 워커 혼자서 출전한 경우 볼이 돌지 못해 공격에서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 빈자리를 메우려고 제프 티그를 영입한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티그의 경우 노쇠화가 심해져 이 역할을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을 지는 의문점이 남는다. 또한, 수비에서는 제역할을 해주었지만 공격에서 3점이 안된다는 문제가 있었던 와나메이커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내보냈다.
빅맨진은 다니엘 타이스에 밀린 에네스 칸터가 팀을 나갔으며, 이를 대신하여 트리스탄 탐슨을 영입하였다. 이는 업그레이드가 분명한 상황. 또한, 드래프트 최고의 슈터로 평가받았던 애런 네이스미스를 14픽으로 뽑아 보스턴에 부족했던 3점 슈터를 보강하였다.
이번 시즌은 제이슨 테이텀이 루키계약으로 싸게 묶여있는 마지막 시즌인데, 고든 헤이워드가 사인앤트레이드가 아닌 FA로 나가버리면서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느낌이 강하다. 보스턴의 영건들은 아직 우승을 캐리할 수준까지 성장하지는 못했고, 지난 시즌 큰 기대를 하고 데려온 켐바 워커도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며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 고든 헤이워드의 부재로 공격에서 더욱 답답한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지난 시즌에 비해 전력이 상승되었다 라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 밀워키는 여전히 정규시즌 학살자이며, 브루클린은 케빈 듀란트가 복귀하며, 마이애미는 지난시즌 버블에서 엄청난 스텝업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필라델피아와 아틀란타는 이적시장에서 확실히 스텝업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토론토는 여전히 강팀이기에 이번 시즌 보스턴이 4위 안에 들어가기도 마냥 쉽지는 않은 상황.
반대로, 희망적인 측면은, 켐바 워커는 플레이오프가 끝나고 무릎에 줄기세포 주사를 맞았는데, 최근 본인의 트위터에서 나아지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만약, 켐바의 부진이 무릎 부상에 의한 것이었고 이 문제에서 벗어난다면 이번 시즌은 지난 시즌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예측 할 수 있다. 또한, 다니엘 타이스는 빠른 선수들을 수비하는데 부족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번에 영입된 트리스탄 탐슨은 가드 수비가 매우 좋은 빅맨 중 하나이기에 상황에 따라 빅맨을 기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또한, 14픽으로 데려온 네이스미스는 보스턴에 부족했던 3점을 보완해 줄 좋은 영입이라고 평가받는다.
켐바 워커가 부상으로 결장했지만 브라운과 테이텀의 엄청난 활약으로 동부 전체 1위를 질주중이다
그러나 2월 23일 동부 컨퍼런스 6위로 추락한데 이어 5할 승률까지 깨지며 2월 26일에는 컨퍼런스 '''9위'''로 까지 내려왔다.

9. 관련 자료



  • - NBA Entertainment. 2004.

[1] 보스턴 시절 경기당 6.8득점 기록 [2]애틀랜타 호크스 [3] NBA의 전신이라 볼 수 있는 BAA에서 3시즌을, NBA에서 1시즌을 보냈다 1946-1947시즌에는 정규 시즌 1등에 결승까지 간 강팀이었다. 비록 현재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전신인 필라델피아 워리어스에게 졌지만, 그 후로도 3위권안에 드는 성적을 거뒀으나 아시다시피 부도때문에 망했다.[4] 1953년 셀틱스에서 지명후 1년을 더 켄터키 대학에서 지내고 2년을 군대에서 복무함 [5] 여기서 Ice Capades는 아이스 스케이팅쇼를 뜻하는데 이 쇼의 회장인 사람이 다름아닌 셀틱스의 회장인 월터 A. 브라운이다. [6] 대표적으로 셀틱스의 구단주 월터 브라운 [7] 실제로 1956년 현재의 애틀란타 호크스인 밀워키 호크스는 밀워키에서 세인트루이스로 연고 이전했다. [8] 단 이것은 글로브트러터스의 구단주가 다른 구단이 러셀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퍼뜨린 언론플레이였다.[9] Game 1 102-104 호크스 승, Game 2 136-112 셀틱스 승, Game 3 111-108 호크스 승, Game 4 98-109 셀틱스 승, Game 5 100-102 호크스 승, Game 6 110-109 호크스 승 [10] 밥 쿠지의 애칭 [11] 이 당시는 개명 전이므로 루 앨신더.[12] 보통 동점 상황에서 위닝 샷을 가져갈 기회가 나올때에는 정규시간이 끝나기 바로 직전에 쏘는 것이 정상이다. 위닝 샷이 안들아갔는데 시간이 남아 상대팀에게 주도권이 넘어가 오히려 역관광을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위해서인데, 8초나 남았음에도 조조 화이트는 바로 쏜 것이다. [13] 이때 2옵션인 맥헤일도 6경기만 소화했다.[14] 97년 드래프트는 팀 던컨외에는 대어가 없다는 평가를 당시에도 받았고 모든 선수들이 은퇴한 현 시점에서 봐도 던컨, 빌럽스, 트레이시 맥그레디를 제외하면 딱히 이름을 남긴 선수가 없는 흉작 드래프트였기 때문에 1번픽이 중요했다. 그나마 나중에 이름을 날린 빌럽스와 맥그레디도 드래프트 된 팀이 아닌 다른 팀에서 터졌고...[15] 여담으로 이 당시 보스턴은 2라운드까지 모두 7차전을 치르는 동안 14경기에서 8승 6패를 거뒀는데, 문제는 이 8승이 전부 홈 경기에서만 챙긴 것이라는 점. 원정은 6경기 전패다. 홈코트 어드벤테이지가 한 경기만 부족했더라도 컨파조차 올라오지 못하는 대형참극이 나올 뻔했다. 하물며 1라운드에서 홈코트 어드벤테이지가 없었더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6] 1차전의 폴 피어스처럼 1쿼터의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던 레이 알렌이 2쿼터에 돌아와 3점슛을 펑펑 터뜨렸고, 케빈 가넷이 골밑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4쿼터 시작 4분 정도 지난 시점에 이미 30점 차이로 압살하고 있었다.[17] 디비전 우승자격으로 4위였으며 실제 성적은 애틀란타에 밀려 5위. 그것 때문에 PO 1라운드 홈코트 어드밴티지가 애틀란타에게 넘어갔다.[18] 참고로 애틀란타는 셀틱스와의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1958년 이후 첫 승리를 기록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9차례 맞대결을 펼쳤으나 모두 패배했었다.[19] 듀란트의 등번호인 35번은 레지 루이스의 번호로서 셀틱스 영구결번인데 루이스의 어머니는 듀란트가 셀틱스에 합류한다면 35번을 써도 좋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20] 그러나 헤이워드의 시즌 아웃 부상으로 이번 시즌 Big 3가 가동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21] 점프 후 착지를 잘못해서 생긴 부상인데,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엄청 크게 다쳤다.''' 코트 위의 모든 선수들이 차마 그 장면을 못 쳐다볼 정도였으며 상당수의 NBA 선수들이 SNS를 통해 헤이워드의 쾌유를 기원했다.[22] 다만, 전 시즌의 불화는 카이리의 문제였는지 영건들의 문제였는지가 확실하지 않다. 영건들과 로지어의 불만은 성격 차이 보다는 팀 내에서의 볼 포제션 문제에 가까운데, 켐바도 어빙만큼의 온볼 플레이어기 때문에 불화가 생길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리더쉽과 프렌드쉽은 다르긴 하지만, 어빙도 NBA에서 다른 선수들과 잘 지내기로 유명한 마당발 중 한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