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가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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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家要錄. 조선 초기, 1450년대(세종) 왕실 어의 전순의(全循義)[1] 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현존 가장 오래된 농서이자 요리책.
대개 가장 오래된 요리책이라 꼽히는 수운잡방보다 50년 ~ 100여년 더 빠른 것으로 추정되지만 하필 앞 부분이 낙장되어 버리는 바람에 저술연대가 100% 명확하지 않아 저술자, 저술연대, 출처가 분명한 수운잡방보다는 대체로 중요도와 관심도가 뒤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다만 책 말미에 지은이 전순의와 베낀이 최유준이 기록되어 있고, 책의 내용 분석을 통해서도 적어도 세조 조 1459년에 편찬되었음이 거의 확실시된다. 같은 저자가 세조의 명을 받아 1460년에 저술한 식료찬요와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동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농업 부문은 작물, 원예, 축산, 양잠, 식품 등의 내용을 총망라하였고, 요리 부문은 229가지의 조리법이 수록되어 있다.
15세기 조선 초의 식생활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으며, 책에 수록된 온실 설계법은 서양의 온실보다 약 170년 정도 앞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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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가요록에 기록되어 있는 1450년대 한국의 온실.
한 부분의 낙장도 없이 무사한 조리서 부문과는 달리 농서 부문은 최초 앞부분이 닳아 사라진 상태다.
일단 농상집요를 많이 참고하였지만 다른 부분이 많다. 책 구성이 난잡한 농상집요와는 달리 작물 형식에 따라 타당성있게 분류하였고, 농상집요에는 없는 양잠 등의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또한 농상집요가 중국 농서이기 때문에 한국과는 다른 부분이 많은데 이 부분은 제거하거나 한국의 풍토에 맞게 없는 부분을 추가했다. 예컨대 양채(養菜) 부분은 중국의 두시와 맥시 제조법을 지우고 우리 나라 고유 시(豉) 제법인 전시(全豉)를 넣었다. 그리고 농상집요에는 없는 길일(吉日)을 점치는 등의 미신들도 기록되어 있는데, 고려 이후 민간에 널리 퍼진 고유 민간 신앙들을 모두 넣은 것이다.
술을 만드는 법이 66가지, 장류를 만드는 법은 19가지, 식초는 17가지, 김치는 37가지, 과일 및 채소 요리 17가지, 어육 요리 10가지, 죽 6가지, 떡 10가지, 국수 6가지, 만두 2가지, 수제비 1가지, 과자 10가지, 좌반 4가지, 식해 7가지, 두부 1가지, 탕류 7가지 등이 기록되어 있다.
계량이 기록되어 있는데 두 홉(合)이 한 잔(盞)이 되고, 두 잔이 한 작(爵)이 되고, 두 되(升)가 한 대야(鐥)가 되고, 세 대야(鐥)가 한 병(甁)이 되고, 다섯 대야(鐥)가 한 동이(東海)가 된다고 기록했다. 한 동이는 한 말(一斗)과 같은 분량이고, 한 병(甁)은 6되(升) 정도다.
고기 요리는 아직까지는 중국식과 한국식이 혼합된 모습을 보인다. 이전 고려 왕조 500여 년 동안 불교 문화의 영향으로 육식 문화가 많이 쇠퇴되어서 한반도에 있는 고유한 고기 조리법들은 모두 소실되었기 때문. 고려도경 같은 책을 보면 고려 왕실의 높으신 분들도 조리법이 완전히 사라져 몽둥이로 그냥 처잡아서 내장이 터져 똥내가 나고 피도 안 뺀 고기를 그냥 대충 구워서 대접하고 먹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고기를 어느 정도 먹었다는 반론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올바른 조리법 없이 대충 되는대로 구워 먹었던 것이 사실이라 약 500여 년 동안 상위 귀족들이 중국 조리법을 수입해 조금씩 제대로 먹은 것 외에는 사실상 우리 나라의 고기 조리법들은 모조리 사라졌다. 그러다 조선이 들어서고 산가요록이 집필되는 사이에 한국인들이 드디어 고기에 환장해서 다시 달려들게 되는데 옛 고기 조리법들이 거의 다 소실된지라 이때까지는 몽골풍의 수입 조리법이 약간씩 혼합된 것이다. 후대의 요리책으로 갈수록 다시 한반도만의 고유한 조리법들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 외 기타 등등 많은 음식들의 상세한 조리법들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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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山家要錄. 조선 초기, 1450년대(세종) 왕실 어의 전순의(全循義)[1] 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현존 가장 오래된 농서이자 요리책.
대개 가장 오래된 요리책이라 꼽히는 수운잡방보다 50년 ~ 100여년 더 빠른 것으로 추정되지만 하필 앞 부분이 낙장되어 버리는 바람에 저술연대가 100% 명확하지 않아 저술자, 저술연대, 출처가 분명한 수운잡방보다는 대체로 중요도와 관심도가 뒤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다만 책 말미에 지은이 전순의와 베낀이 최유준이 기록되어 있고, 책의 내용 분석을 통해서도 적어도 세조 조 1459년에 편찬되었음이 거의 확실시된다. 같은 저자가 세조의 명을 받아 1460년에 저술한 식료찬요와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동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농업 부문은 작물, 원예, 축산, 양잠, 식품 등의 내용을 총망라하였고, 요리 부문은 229가지의 조리법이 수록되어 있다.
15세기 조선 초의 식생활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으며, 책에 수록된 온실 설계법은 서양의 온실보다 약 170년 정도 앞서는 것이다.
2. 농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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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가요록에 기록되어 있는 1450년대 한국의 온실.
한 부분의 낙장도 없이 무사한 조리서 부문과는 달리 농서 부문은 최초 앞부분이 닳아 사라진 상태다.
일단 농상집요를 많이 참고하였지만 다른 부분이 많다. 책 구성이 난잡한 농상집요와는 달리 작물 형식에 따라 타당성있게 분류하였고, 농상집요에는 없는 양잠 등의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또한 농상집요가 중국 농서이기 때문에 한국과는 다른 부분이 많은데 이 부분은 제거하거나 한국의 풍토에 맞게 없는 부분을 추가했다. 예컨대 양채(養菜) 부분은 중국의 두시와 맥시 제조법을 지우고 우리 나라 고유 시(豉) 제법인 전시(全豉)를 넣었다. 그리고 농상집요에는 없는 길일(吉日)을 점치는 등의 미신들도 기록되어 있는데, 고려 이후 민간에 널리 퍼진 고유 민간 신앙들을 모두 넣은 것이다.
- 양잠 : 잠성(蚕性), 욕운(浴運), 제두분미분(製豆紛米紛), 수우분(收牛糞), 사양총론(飼養總論), 식잠지리(植蚕之利), 만잠지해(晩蚕之害), 잡기(雜技), 종상(種桑) 등.
- 과일 나무 기르기 15종 : 배, 능금, 밤, 대추, 복숭아, 앵두, 포도, 오얏, 매실, 살구, 모과, 은행, 등귤, 제과길일(諸果吉日), 과일나무 접붙이기(椄諸果)
- 나무 기르기 10종 : 대나무, 소나무, 잣나무, 당나무, 닥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오동나무, 바자울(갈대나 옥수수대, 싸리, 대나무, 잔가지 등으로 일정한 문양이 생기도록 엮어 만든 담장), 나무베기
- 채소 기르기 18종 : 오이, 수박, 동아, 박, 토란, 아욱, 가지, 순무, 겨자, 생강, 마늘, 파, 염교, 부추, 버섯, 상추, 근대, 미나리
- 염색 식물 및 약초 6종 : 지초, 홍화, 쪽, 치자, 지황, 국화, 양귀비꽃
- 사육 : 말, 소, 양, 돼지, 닭, 거위, 오리, 물고기, 벌
3. 요리서 내용
술을 만드는 법이 66가지, 장류를 만드는 법은 19가지, 식초는 17가지, 김치는 37가지, 과일 및 채소 요리 17가지, 어육 요리 10가지, 죽 6가지, 떡 10가지, 국수 6가지, 만두 2가지, 수제비 1가지, 과자 10가지, 좌반 4가지, 식해 7가지, 두부 1가지, 탕류 7가지 등이 기록되어 있다.
계량이 기록되어 있는데 두 홉(合)이 한 잔(盞)이 되고, 두 잔이 한 작(爵)이 되고, 두 되(升)가 한 대야(鐥)가 되고, 세 대야(鐥)가 한 병(甁)이 되고, 다섯 대야(鐥)가 한 동이(東海)가 된다고 기록했다. 한 동이는 한 말(一斗)과 같은 분량이고, 한 병(甁)은 6되(升) 정도다.
- 술 : 취소주법, 향료, 옥지춘, 이화주, 송화천로주, 삼해주, 벽향주, 아황주, 녹파주, 유하주, 두강주, 죽엽주, 여가주, 연화주, 진상주, 유주, 절주, 사두주, 오두주, 육두주, 구두주, 모미주, 삼일주, 칠일주, 점주, 무국주, 소국주, 신박주, 하절삼일주, 하일절주, 과하백주, 손처사하일주, 하주불산법, 부의주, 급시청주, 목맥주, 맥주, 향온주조양식, 사시주, 사절통용육두주, 상당주, 주승사절주, 자주, 예주, 삼미감향주, 감주, 점감주, 유감주, 과동감백주, 목맥소주, 수주불손, 기주법, 양국법, 조국법 외 기타등등
- 장류 : 메주, 간장, 란장, 기화청장, 태각장, 청장, 청근장, 상실장, 천리장, 치장 외 기타등등
- 김치 : 집저, 하일집저, 하일장저, 하일가집저, 과저, 가자저, 청침채, 동침, 나박, 토옵침채, 우침채, 동과침채, 동과랄채, 침백채, 무염침채법, 시용침채, 생총침채, 침송이, 침강법, 침동과, 침산, 침서과, 침청태, 침도, 침행, 침궐 등
- 식해
고기 요리는 아직까지는 중국식과 한국식이 혼합된 모습을 보인다. 이전 고려 왕조 500여 년 동안 불교 문화의 영향으로 육식 문화가 많이 쇠퇴되어서 한반도에 있는 고유한 고기 조리법들은 모두 소실되었기 때문. 고려도경 같은 책을 보면 고려 왕실의 높으신 분들도 조리법이 완전히 사라져 몽둥이로 그냥 처잡아서 내장이 터져 똥내가 나고 피도 안 뺀 고기를 그냥 대충 구워서 대접하고 먹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고기를 어느 정도 먹었다는 반론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올바른 조리법 없이 대충 되는대로 구워 먹었던 것이 사실이라 약 500여 년 동안 상위 귀족들이 중국 조리법을 수입해 조금씩 제대로 먹은 것 외에는 사실상 우리 나라의 고기 조리법들은 모조리 사라졌다. 그러다 조선이 들어서고 산가요록이 집필되는 사이에 한국인들이 드디어 고기에 환장해서 다시 달려들게 되는데 옛 고기 조리법들이 거의 다 소실된지라 이때까지는 몽골풍의 수입 조리법이 약간씩 혼합된 것이다. 후대의 요리책으로 갈수록 다시 한반도만의 고유한 조리법들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 외 기타 등등 많은 음식들의 상세한 조리법들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