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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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뜯어서''' 끓는 국물에 넣고 익혀낸 요리. 반죽의 모양을 제외한다면 칼국수와 매우 흡사한 요리다.[1] 실제 둘을 합친 칼제비란 메뉴도 있다. 다만 수제비는 사실 국수보다는 파스타[2] 에 가깝다.
북한에서는 '뜨더국/뜨덕국'으로 불린다고 한다. 요리할 때 반죽을 손으로 뚝뚝 뜯어낸다는 점 때문인 듯. 이 외에도 던지기탕이라는 별칭도 있다. 한자어로는 박탁(餺飥 - 수제비 박, 수제비 탁)이라고 한다. 어원은 명확하진 않지만 손(手)으로 접었다(摺)고 해서 슈져비→수제비가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2. 상세
지금은 대표적인 서민 음식으로 불리지만, 사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밀이 귀했기 때문에 수제비[3] 역시 귀한 음식이어서 양반들의 접대 요리로 쓰일 정도로 고급 요리였다. 다만 이때도 밀을 이용하지만 않았을 뿐 대체품으로 메밀가루 등을 이용해서 서민들도 수제비 비슷한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사실 곡물가루를 이용한 요리 중 가장 간단한 축에 속하니 굳이 밀 아니더라도 대체품이 있긴 했다. 실제 제주도엔 지금도 메밀가루를 이용한 '조게비(수제비의 제주도 방언)'라 불리는 전통 요리가 남아있다.
이런 수제비가 서민 음식으로 굳어지게 된 건 미국의 밀가루 러쉬가 시작된 미군정 이후부터였는데, 당시 미국이 원조로 퍼다준 밀가루는 싼 값에 유통되었고, 밀을 이용해 싸고 빠르게 취식할 수 있었던 요리인 수제비가 선호되었다. 다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수제비도 지금처럼 부재료가 풍부하게 들어간 스타일이 아니라 보통 물에다 고추장이나 된장, 소금 등으로 간만 해서 채소 조금 넣고 끓여냈다고 한다. 게다가 아직 대가족 시대라서 많은 식구가 먹을 양을 한꺼번에 끓이다 보면, 요즘 수제비처럼 쫄깃한 게 아니라 퉁퉁 불어 퍼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지금도 노인들 중에서 일부는 수제비를 추억으로 즐겨먹는 반면, 일부는 반대로 가난한 시절이 떠오르고 맛 없는 음식이란 생각에 지겹다고 잘 안 먹는다.[4]
1990년대 들어선 일명 '항아리 수제비' 등이 한동안 인기를 끌기도 했고, 21세기 이후 퓨전 요리가 인기를 끌면서 일반적인 국물에 끓여먹는 수제비가 아닌 서양식 소스와 퓨전한 뇨키풍으로 만든 수제비를 선보이는 곳도 생겨났다. 중화 요리와 퓨전한 짬뽕 수제비는 중국집에서 이젠 흔히 볼 수 있는 메뉴고, 짜장 수제비도 존재한다. 해산물 추가는 기본. 결과적으로 이런 여러 바리에이션들 속에서 수제비는 지금도 대표적인 밀가루 음식 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
6.25 전쟁 이후로 오랫동안 가난한 서민들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요리로, 지금도 집안에 손님이 찾아왔을 때 이걸 대접하면 엄청 가엾게 보인다고 한다. 사실 밖에서 식사로 대접하기 위해 수제비 전문집에서 먹거나, 집에서 손님과 먹더라도 매운탕을 먹고난 이후에 부차적으로 먹는거면 몰라도 집에서 손님에게 수제비만을 대접하는 일은 거의 없다. 손님과 집주인이 아주 친해서 귀찮게 상차림을 하지 않고 가볍게 한 끼 때우기 위해서 만들지 않는 이상은.... 사실상 외국의 수프에 대한 인식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3. 조리법
- 밀가루로 반죽을 만들고, 냉장고에 30분~1시간 가량 넣어둔다.
- 육수를 낸다. 육수도 사골 등 본인이 내기 나름이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대중적인 육수는 역시나 멸치 육수. 멸치 한 줌을 10~20분 가량 끓이고 건져내면 된다. 다시마나 새우 등의 해산물도 같이 넣을 수 있다. 다만 다시마는 오래 끓이면 안 좋으니 10분 미만에서 뺄 것. 만약 육수 내기가 번거롭다면 맛이 좀 덜해도 멸치 다시다를 한 스푼 끓이는 방법도 있다. 얼큰한 수제비는 육수에 고춧가루와 고추장, 혹은 김칫국물을 푼다.
- 애호박, 당근, 양파, 감자 등 원하는 대로 야채를 채썰어서 육수에 넣고 끓인다. 빨리 익히려면 채써는 게 좋다.
- 끓는 중에 소금과 국간장으로 간을 한다.
- 끓이면서 밀가루 반죽을 뚝뚝 뜯어 넣는다. 팁이 하나 있다면, 얇게 펴서 뜯어 넣는 게 나중에 먹을 때 식감이 더 좋다. 조미료을 넣을거라면, 이때 넣는게 좋다.
- 야채가 다 익을 때 정도면 완성.
- 마무리 1분 전에 마지막으로 계란 푼 물을 부어서 국물이 걸쭉하고 계란국 느낌이 나게 만들 수도 있다.
'국수 잘 만드는 사람이 수제비도 못할까'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이것만으로도 간단하지만, 야매요리 버전은 더 처절하게 간단하다.
- 육수 대신 계란국을 끓이고, 여기에 수제비를 뜯어 넣을 수 있다.
- 라면 스프를 끓이고, 수제비를 뜯어 넣어도 된다.
반면 수제비의 맛 자체는 국물이 좌우한다. 일반적으로는 반죽에 밀가루나 쌀가루 말고는 딱히 들어가는 재료가 없다 보니...
초보자들은 수제비를 끓일 때 반죽에서 전분이 흘러나와, 반죽은 흐물흐물해지고 국물은 걸쭉해져서 망칠 수 있다. 반죽을 치댈 때 식초나 레몬즙 또는 감자즙[5] 혹은 전분이나 계란 물을 섞어주면 끓여도 반죽이 퍼지지 않고 쫄깃쫄깃하다. 양조절 잘못하면 맛이 엇나가는 초 종류보다는 감자를 갈아넣거나 계란을 넣는 게 무난할 것이다.
그리고 KBS2 스펀지의 코너인 초간단 스펀지에 따르면 라면으로도 수제비를 만들 수가 있다고 한다. 만드는 방법은 라면을 잘게 빻아 가루로 만든 다음 국물은 라면 스프를 이용해서 끊이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4. 그 외
모양이 투박하지만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어서 자취 생활 중에서도 해먹기 좋다. 그래서인지 요리 아마추어가 면을 직접 뽑아 먹으려고 시도했다가 망하면 수제비로 급선회하는 모습을 꽤나 자주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무한도전 식객 특집의 유재석.
뜯는 정성에 따라 맛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음식이기도 하다. 귀찮다고 대충대충 큼직하고 두껍게 뜯어서 넣으면 반죽이 균일하게 익지 않아서 씹었더니 생 밀가루가 그대로 들어있는 참사가 벌어지게 된다. 어릴 때 먹었다가 트라우마를 얻기 좋은 음식.
라면과 함께 끓이면 라제비라는 요리가 된다. 옛날 분식집에선 자주 보이던 메뉴였으나,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강남역 인근에서는 아직 라제비로 유명한 분식집이 존재한다.
지역에 따라 국물이나 반죽 모양이 특이한 요리가 있다. 해안 지방에서는 조개나 북어 등으로 국물을 우리거나, 아예 미역국 같은 국물에 반죽을 올갱이 모양으로 만들어서 넣기도 한다. 내륙에서는 김치나 고춧가루를 푼 새빨갛고 매콤한 국물도 있고, 된장국에 반죽을 넣기도 하며, 아예 반죽 자체를 생략하고 걸쭉하게 푼 밀가루를 국자로 떠서 꿇는 국물에 부어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쫄깃한 수제비가 아니라 흐늘흐늘한 아주 연한 수제비가 된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일일이 뜯는 것이 귀찮다면 만두피를 이용해도 좋다. 얇고 야들야들한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쪽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냥 시중에 있는 만두피를 2등분해서 분리해 넣으면 끝. 수제비라기보다는 넓은 파스타면 같은 느낌이 난다.
중국 요리 중에도 있는데 거다탕(疙瘩汤)이라고 하며, 토마토와 달걀로 만드는 시홍스지단탕(西红柿鸡蛋汤)을 베이스로 한다.[6]
프랑스 요리 중에서도 뇨키 같은 파스타 부류에서 비슷한 형태를 한 것이 있고, 미국 요리 중에서도 덤플링(Dumplings)이라는 동그랗게 빚어 고기 국물 같은데 넣어 삻아먹는 형태를 한 요리가 존재하는데,.[7] 미군에서 1943년까지 취사병들에게 보급해서 교육시킨 "TM 10-405, The Army Cook"라는 군용 요리책에 'Chicken Stew with Dumplings'이라는 치킨 스튜에 넣는 레시피가 나올 정도로 대중적이다. 이 덤플링은 반죽에 밀가루, 베이킹 파우더, 소금, 후추와 더불어 돼지 기름이 들어가는 것이 거의 빵 반죽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요리 재현. 미국의 이웃나라인 캐나다에도 Fricot이라는 전통음식이 있는데, 유럽인들의 북미 정착 초기부터 먹어온, 나름 유서 깊은 음식이라고 한다. 요리 재현.
일본 요리에서는 스이톤(水団, すいとん)이라고 부른다.[8] 수제비의 전신에 해당하는 것은 꽤 오래 전부터 존재했으나, 밀가루 비슷한 게 보급되어 분식이 가능해진 건 에도 시대 쯤부터로 이때 스이톤 전문점이 열렸다고 한다. 보면 지역별로 간장, 된장 등 국물 재료가 다르고, 반죽도 수제비처럼 손으로 뜯은 것부터 경단처럼 만든 것, 만두소를 넣은 만두국 가까운 것, 밀가루풀을 국자로 떠넣어 만든 흐늘흐늘한 것 등 제각기였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 때는 밀가루를 구할 수 없어서 콩가루, 옥수수 가루, 수수 가루 등 별별 걸로 다 만들었고, 땔감이 부족해 속이 설익은 상태로 나오기도 했다. 국물과 건더기 낼 재료도 부족해 그냥 맹물이나 소금물에 끓이거나, 일본에서 구황 식품 수준으로 잘 먹지 않는 고구마 줄기 같은 것을 쓰기도 했다고.
응용으로 별개의 국물 요리를 끓일 때나, 다 먹고 남은 국물에 수제비 반죽을 뜯어넣어서 먹는다거나 하는 사리처럼 활용할 때도 있다.
몇몇 매운탕 집에서는 사리 개념으로 수제비 반죽을 넣어주거나, 아예 처음부터 넣고 먹게 해주기도 한다.
최진실이 가장 좋아했던 그리고 가장 싫어했던 음식이라고 한다. 본래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인 최진실은 이후 탤런트로써 자수성가하여 부유층으로 신분상승을 했는데, 회식자리에서 수제비는 쳐다보기도 싫다며 기자들에게 투정을 부린 바가 있다. 이게 논란이 되자 결국 최진실은 "빈곤하신 분들을 조롱했던 것은 아니고 제가 단지 수제비가 너무 지겨워서 그랬던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합니다."라며 사과했다. 사실 이건 딱히 최진실의 잘못이라 보긴 어렵고 단지 최진실이 말실수를 했던 것에 불과하다.[9]
5. 관련 문서
[1] 칼국수를 수제비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으니 말 다 했다. 그 지방에서는 위 그림과 같은 수제비는 '뚝수제비'라고 구분해서 부른다. [2] 뇨키가 서양의 수제비라고 할 정도로 흡사하다.[3] 당시엔 '운두병(雲頭餠)', '영롱발어', '산약발어' 같은 명칭으로 칭해졌다.[4] 참고로 일본도 비슷한 사정 때문인지 전후 시기 수제비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지금은 기타칸토 지역(군마, 이바라키, 토치기) 정도에서만 일상 식사로 남아있으며, 그 외의 현에서는 전후 시대의 추억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편이라고. 물론 먹기로 치면야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겠지만. 만화 맛의 달인 에피소드 중에서는 "요즘 수제비는 옛날 수제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나이 든 사람이 나오는데, 그 당시처럼 만든 수제비를 먹고 나서 "그 맛이긴 하지만 그때처럼 맛있게 먹진 못하겠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5] 그래서 마트에서 파는 수제비가루 중에는 아예 감자 전분이 섞여서 나오는 제품이 많다. 서양 수제비라고 할 수 있는 뇨키도 반죽에 감자를 으깨서 넣는다.[6] 김풍이 냉장고를 부탁해 32회에서 선보인 바 있다. 그 후 김풍의 레시피를 베이스로 하여 정형돈이 냉장고를 부탁해 1주년 특집에서 선보인 바가 있다.[7] 다만 요리명이 아닌 그냥 Dumplings라고 검색하면 차이니즈 덤플링이라고 만두가 주로 검색된다.[8] 한국의 전통 음식 중에도 수단이 있다.[9] 비슷한 사례로 이명박도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인지라 이후 현대건설 사장→대한민국 국회의원→서울특별시장→대한민국 대통령 순으로 자수성가를 하여 엄청난 부유층으로 신분상승을 하게 되었는데, 청와대에서 공무원들에게 "나는 거의 모든 음식들을 매우 좋아하지만 예외적으로 잡곡밥은 매우 싫어한다. 그 옛날 내가 가난했던 시절에 지겹도록 먹었기 때문이었거든!"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이명박이 유일하게 싫어하는 음식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