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역사
1. 실업 시절
LIG손해보험[1] 의 창단일은 1976년 6월 24일로,[2] 당시 금성사배구단이라는 이름으로 창단했다. 전신은 철도국-체신부 배구단으로 1970년대 후반 당시 공공기관·공기업이 운영하던 체육팀을 인수하여 재창단한 것이다.[3] 어쨌든 당시만 해도 꽤 많은 회사들이 실업배구구단을 창설했는데 몇 년 못가서 해체 하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다가 럭키금성그룹이 배구단을 창설하면서 실업배구계의 민영팀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고 한다.
창단 이래 체신부 감독이던 조배호 감독의 지휘 하에 3~4년 사이에 종합선수권, 실업연맹전을 포함한 6개의 대회를 우승하고 각종 스타플레이어들을 입단시키는 등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하나 싶었는데 현재 배구 팬들이 떠올리는 LIG 특유의 '''맨날 당하기만 하는 안습 이미지'''는 이 때부터 시작됐다.
그 시기에 입단한 선수중에 김호철 전 현대캐피탈 감독과 강만수 전 우리카드 감독도 있다. 다들 2, 3년 동안 활동하며 많은 우승컵을 안겨줬다. 그러나 현재 배구팬들은 김호철 감독과 강만수 감독을 현대자동차의 레전드로 생각하지 LG화재의 레전드로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김호철 감독은 이탈리아에 진출한 후 대한민국에 복귀할 때도 친정팀인 LG화재가 아니라 현대자동차로 돌아왔으며, 2000년대 이후 대한민국 배구계의 위기 상황때도 LG화재가 아닌 현대캐피탈을 선택했다(…).
창단 직후 곧바로 맞은 전성기도 1980년대 들어 곧 끝나게 되는데, 바로 고려증권 배구단의 창단과 20년 넘게 지속된 악연의 라이벌 현대자동차 배구단[4] 의 창단이 그것이다.
이 시기 들어 강두태가 고군분투했으나 고려증권과 현대자동차의 등장으로 LG화재는 예전처럼 우승컵을 차지하는 건 힘들어졌고 한양대를 위시한 대학배구팀의 저항도 거셌다. 게다가 선수 수급문제마저 돈을 앞세운 현대자동차에게 완벽히 밀려버렸다.
강두태 은퇴 후 서남원과 이상렬, 최영준 등이 팀을 이끌어가며 1991년 슈퍼리그에서 실업팀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전에서 LG화재마저 꺾어버리고 우승을 차지한 한양대학교의 우승 주역 멤버 하종화, 윤종일, 강성형, 문양훈을 현대자동차에서 모두 싹쓸이 스카웃해가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더욱 타격을 입었다.[5][6]
어지간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대학을 거치면 현대자동차에 입단해서 스카웃 전쟁에서 패배한 LG화재는 고등학교 때부터 잠재력있는 선수들을 선택, 장학금 등을 지원해가며 대학 졸업 후 LG화재로 입단하게끔 스카웃 전략을 바꿨고 LG화재의 목표는 바로 김세진, 권순찬, 김기중이었다. 사실 권순찬과 김기중은 그렇다 쳐도 김세진은 다들 알다시피 역대급에 해당하는 공격수였고, 한양대학교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세진의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학 최고의 센터였던 구준회, 후인정과 더불어 경기대 폭풍을 이끌었던 구본왕까지 스카웃에 성공하며 보란 듯이 반격에 나섰지만... 이러한 LG화재의 꿈을 박살낸 일이 벌어졌으니,
'''바로 그 삼성화재 배구단이 창단한 것이다.''' 삼성화재 배구단이 창설되고 그 이후에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선..
사실 삼성화재는 김세진뿐만 아니라 구준회와 구본왕까지 노렸지만, LG화재는 구단의 해체까지 각오하고 저항하자 김세진만 삼성화재로 가는 걸로 합의하고 구준회와 구본왕은 남았다.[7]
여기에 삼성화재의 1993, 1994, 1995학번 핵심 자원 싹쓸이 파동 이후 이어진 배구계의 냉랭한 분위기 속에 다시 1999-2000 슈퍼리그 출전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LG화재는 김완식, 문병택, 이종만, 김재만 등을 강제 은퇴시키는 삽질을 저지른다.
물론 저 때 뿐만 아니라 5년 뒤인 2002년 이경수 파동으로도 LG화재는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자유계약제였던 실업배구는 2000년부터 현재와 같은 드래프트제로 변경된다. 이는 모든 구단이 합의했다. 삼성화재는 창단 당시 스카웃전쟁에서 타 구단을 압도해버린터라 선수층이 두터웠고, 반대로 현대캐피탈이나 대한항공, LG화재는 스카웃 전쟁에서 패배한 여파로 선수 수급에서 어려움을 겪어 평소에 뽑지 않았던 대학교에서 스카우트하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당시 최대어인 이경수는 순위로 보면 대한항공에서 지명할 확률이 99.9%였으나 뜬금없이 드래프트가 열리기 전에 LG화재와 이경수 간의 영입계약이 맺어졌다. 그리고 같이 드래프트를 거부한 경희대 세터 황원식도 영입했다. 협회와 타 구단은 당연히 반발했고 그 여파로 LG화재는 2001-02 시즌 슈퍼리그에는 참가했지만 2002-03 시즌에는 아예 리그 자체 참가를 포기했다.[8] 나머지 98학번 선수들을 대상으로 드래프트는 실시되었지만...[9]
결국 이경수 파동은 2003년 중반에 가서야 간신히 해결되어, 이경수와 황원식의 LG화재행을 인정하는 대신 프로 출범 후 치르는 첫 드래프트에서 LG화재가 행사할 1라운드 지명권을 대한항공에게 넘겨주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경수 파동은 이후 이 팀을 짓누르는 짐이 되고 말았다.
1.1. 구단 레전드
강두태[10] , 홍기택, 서남원, 이상렬, 강호인, 최영준, 김성채, 구본왕, 구준회[11] , 이경수, 김요한
강만수, 김호철은 현대에서의 이미지가 더 크게 박혀있는 것이 현실이라 레전드라고 보기 힘들다. 여자 배구계에서 감독으로 명성을 떨치는 이정철 前 기업은행 감독(선수 은퇴 이후 주무를 맡음)과 황현주 前 현대건설 감독은 팀에서 주전으로 뛴 적이 없었으므로 역시 레전드라고 칭할 수는 없다.
팀 에이스 계보는 강두태-이상렬-김성채-이경수-김요한으로 이어지고 있다. 원맨팀이라 불릴 정도로 에이스가 전부 해결하고 그 덕분에 부상을 달고 살다 우승컵을 들지 못한 채 은퇴하는 전통(?)이 있는데 현재 이경수는 은퇴를 선언했다. 김요한도 시즌마다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게다가 김요한 이후에 이와 버금가는 활약을 하는 토종 공격수는 전무해서 이 안습의 계보도 끊어질 상황. 김요한마저 트레이드를 통해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로 이적했다.
외국인 선수 중 레전드라고 한다면 두 말할 거 없이 팀 에이스인 이경수와 김요한의 부상 공백 속에서 맹활약을 했던 보스니아 특급 밀란 페피치와 호주 형 토마스 패트릭 에드가를 꼽는게 당연지사. 그러나 현재는 승점자판기로 용병들은 화병에 걸린다고 한다. 결정적인 뒷심이 없고 중요한 순간 범실로 게임을 날린다는 점에서 답이 없다....
2. V-리그 시대: 구미 LIG손해보험 시절
2.1. V-리그 원년부터 2006-07 시즌까지
배구의 인기가 갈수록 몰락하자 배구연맹은 프로화를 모색하고 2004년 슈퍼리그를 폐지, 세미프로 형태인 V-투어를 시작하며 가능성을 찾는다. 결국 2005년 V-리그 첫 시즌을 개최하게 되고 실업팀 중 한국전력을 제외한 나머지 구단들은 전부 프로화한다.
2005년까지는 '''구미 LG화재 그레이터스'''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로고도 위의 방패 로고와 다른 것을 사용했다.
LIG는 삼성화재에서 신치용 감독의 참모 역할을 했던 신영철 코치를 2004년에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명예회복에 나선 듯. 하지만 완전 프로화가 되기 직전, 즉 V-투어 시절 구단끼리 스카웃 전쟁이 재개됐고 삼성화재는 이형두, 박재한, 고희진을, 대한항공은 장광균과 김영래를, 그리고 현대자동차는 당시 송만덕 감독이 신기에 가까운 스카웃을 보여 주며 권영민, 이선규, 윤봉우, 장영기, 박철우를 영입했다.[12] LIG는 대어들을 다 놓치고 그나마 김종일, 김장수, 김재춘을 건지는 데 그쳤으며 현대캐피탈에서 홍석민과 방신봉을 영입하는 걸로 만족해야만 했다.[13] 역시 이경수에 매달리느라 전력 보강에 손을 놓았기 때문으로 이 후유증은 위에 언급했듯이 '''현재진행형'''이다.
스카웃 전쟁에서 패배했다면 2005년 프로화로 다시 시작된 드래프트에서 거물급 선수들을 잡았어야 했는데 그것도 실패. 1라운드 1순위는 이미 이경수 파동으로 대한항공에게 양보를 했기 때문에 당시 드래프트 시장에 나왔던 괜찮은 선수들을 대한항공(신영수, 김형우[14] ) 현대캐피탈(주상용, 하경민), 삼성화재(김정훈)[15] 가 데려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하현용을 얻은 것이 다행이었지만,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한 손석범의 대안이 되어 주리라 생각했던 곽승철은 폭망하고 데뷔 시즌 후 결국 은퇴했다.
또 다시 선수 수급에 실패했지만 2005년 프로 원년에는 LIG는 대한항공을 누르고(!) 3위를 기록했다. 그래서 4위를 기록한 대한항공이 을 데리고 가는 바람에 LIG는 임동규를 데려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2005-06 시즌엔 외국인 선수 농사도 실패[16] 하고 감독이 바뀌나 안 바뀌나 별 차이도 없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또 3위를 기록(!) 결국 리그 4위를 기록한 대한항공이 김학민을 데려가 버렸다. 그리고 3위를 기록한 KB는 이종화를 지명했고, 그 결과에 대해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7]
이 와중에 신영철 감독이 하현용, 곽동혁을 폭행한 사건이 일어났고,[18] 이를 내부 고발한 당사자인 이동훈, 황원식, 김종일은 구단의 공공연한 홀대 속에 쫓기듯 상무에 입대했다.[19] 그리고 공익요원 복무를 마치고 돌아 온 손석범은 합쳐서 3년 반이나 되는 공백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2009년 이동엽, 안준찬과 함께 황동일을 상대로 우리캐피탈에 트레이드 됐다. 결국 2006-07 시즌의 부진이 겹쳐서 신영철 감독은 2007년 3월에 경질됐고, 후임 감독으로 온 사람이 바로 '이란 배구의 대부'라고 불리는 박기원 감독이다.[20]
2.2. 박기원 감독 시절
2007-08 시즌엔 LIG가 1순위를 차지했다. 물론 대한항공에 이어 4위를 기록했지만 그래도 확률추첨제를 실시했던지라...[21]
2007-08 시즌 드래프트에서 1순위를 차지한 LIG는 당시 최대어인 인하대학교의 김요한을 지명했다.[22][23] 그리고 수비를 보강하고자 리베로도 한 명 더 지명했다. 바로 한기호.[24]
당시 선진화된 스피드 배구를 하고자 했던 박기원 감독은 인맥을 통해 당시 유럽 리그에서 대활약을 펼쳤던 스페인 출신의 라이트인 기예르모 팔라스카를 영입했다.[25] 그런데 스피드 배구는 무슨... 윙 리시버로 기용된 김요한은 리시브에 취약해 오히려 타 구단의 목적타 서브에 박살났고, 팔라스카는 당시 세터 이동엽의 느린 토스에 적응도 못했다. 게다가 팔라스카는 시즌 중간에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참가하느라 시간을 날려버렸고 막판에는 태업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LIG는 2007-08 시즌을 날려 버렸다. 그래도 이 때 거둔 수확은 한 시즌 내내 김요한을 윙 리시버로 돌리면서 어느 정도 김요한을 완성시킨 것 밖에...[26]
2008-09 시즌 팔라스카를 돌려보내고 네덜란드 출신 카이 반 다이크를 데려왔다. 그리고 여기서 박기원 감독의 운명을 갈라버린... 그리고 김남성 전 우리캐피탈 감독의 최대 낚시질로 평가받는 ''''LIG와 우리캐피탈의 3:1트레이드''''가 단행된다. 박기원 감독은 스피드 배구를 하기 위해 당시 신장도 크고 그나마 토스가 빠른 황동일을 눈여겨봤고, 그를 데려오고자 황동일을 지명했던 우리캐피탈에게 손석범, 이동엽-황동일 간의 트레이드를 제안한다. 그러면서 은근히 황동일에 미들블로커인 신영석까지 추가해서 2:2 트레이드를 시도하는데, 여기서 김남성 감독은 거의 배구 팬들 사이에서 신의 한 수라고 평가받는 낚시질을 해버린다. 바로 황동일 급의 세터를 받는 대신 당시 LIG가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안준찬을 추가시켜 줄 것을 요구한 것. 대신 신영석의 트레이드를 묵살시켜 버렸다. 그래서 희대의 손석범, 이동엽, 안준찬 ↔ 황동일의 3:1 트레이드가 성사됐고, 이것은 박기원 감독의 운명을 갈라놨다. 황동일은 애초에 아포짓으로 뛰다가 경기대학교 진학 전 뒤늦게 세터로 전향했기 때문에 토스의 질이 아주 나빴고 궤도도 일정치 않았다. 뭐 그래서 쓸데없는 모션과 짧은 토스, 게다가 네트와 바짝 붙여주는 괴상한 토스를 올려주는 등 세터로 보기엔 너무 미달이었고 김요한-이경수라는 걸출한 윙 리시버들과 수준급 용병 아포짓이 있는데도 별다른 성적도 못내고 무너져 벼렸다.[27]
결국 스피드 배구를 주장하면서 개혁을 가했던 박기원 감독은 성적에 목을 메게 되었고 2008-09 시즌엔 갑자기 용병 카이를 미들 블로커로 전향시키고 김요한을 아포짓으로 바꿔서 경기를 치루는 등, 2009-10 시즌엔 결국 삼성화재나 현대캐피탈 처럼 리시브를 강조한 구식 배구로 돌아오는 등 꽤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결국 2009-10 시즌에 중도 사퇴했다.[28] 시즌 잔여경기는 감독대행은 코치였던 김상우가 맡으며 시즌을 마감했다.
이후 박기원 감독은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다.
2.3. 2010-11 시즌
2010-11 시즌 시작 전, 다시 한 번 명예회복을 노리고자 당시 계약만료가 되었던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의 영입을 시도한다. 거의 합의 직전이라 언론에도 보도 자료를 돌리고 홍보에 나섰지만 김호철 감독이 LIG로 간다는 소식에 깜짝 놀란 현대 수뇌부 사이에서 김호철 감독 붙잡기에 나섰고 결국 LIG가 아니라 다시 현대캐피탈 잔류를 선택하게 된다. 괜히 보도자료 돌리면서 설레발 쳤다가 창피만 당한 꼴. 게다가 FA로 풀린 현대캐피탈 세터였던 권영민 영입마저 불발로 돌아갔다.
결국 정식감독으로 임명된 김상우가 리그에 나서지만 황동일은 세 시즌째 나아지지 않았고, 그나마 중앙을 지켜줬던 하현용이 상무에 입대했고[29] , 김요한과 이경수가 잇다라 부상을 당하며 불운한 시즌을 보냈다. 그래도 보스니아 특급 밀란 페피치[30] 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우리캐피탈과 KEPCO45, 삼성화재의 부진에 힘입어(?) 정규리그 4위를 기록, 준PO 진출에 성공했다.
그런데... 삼성화재에게 패배하여 준플레이오프 탈락... LIG팬들은 그야말로 가루가 되도록 이런 LIG를 까고 또 깠다...[31]
'''사실, LIG는 삼성을 상대로 상당히 선전했다.'''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이 가빈 한 명에 탈탈 털려 전패를 당했기 때문에 '''준플레이오프에서 1승을 거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2.4. 2011-12 시즌
그러나... 김상우는 경질되어 엠스플의 해설위원으로 돌아가 버렸다. 김상우의 갑작스런 경질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으나 삼성화재식의 훈련 방식을 선수들에게 적용하려 하자 선수들이 여기에 반발했다는 것이 썰이 있었지만 확인된 것은 없다. 항간에는 새벽훈련을 도입하려가 고참 선수들 항명으로 짤렸다는 설이 팽배했지만 새벽훈련은 박기원 감독 시절부터 도입된 것이니 결국 낭설로 드러났다 문제는 후임 감독이 경기대 감독이었던 이경석. 그리고 당연히 프런트는 그야말로 신나게 까였다... 능력은 있지만 지나칠 정도로 폭압적인 성향이고, 개인 비리 문제로 경기대학교에서 퇴진했다가 슬그머니 복귀한 이력의 감독인지라 당연히 까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맞이한 2011-12 시즌 LIG는 속절없이 추락했다. 날개 공격 자원의 부족과 지나치게 비대한 세터와 리베로 자원 으로 인해 전력 불균형이 커진데다가 이경수와 페피치의 부상은 나머지 공격수들의 체력 부담을 가중시켰다. 두 차례의 트레이드(김영래, 조성철 ↔ 황동일 / 주상용, 이효동 ↔ 임동규, 정성민)를 단행했고 페피치까지 중도 퇴출하면서 돌파구를 찾았지만 시즌 초부터 떨어진 6위 자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승부조작 파동으로 중도 이탈한 상무를 제외하면 사실상 최하위.
2.5. 2012-13 시즌
[image]
2012 KOVO컵 우승
지난 시즌 KEPCO, 드림식스에게도 밀리며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센터 하현용이 상무에서 전역했고, 날개 김요한과 이경수가 부상에서 회복된 상태에서 수원컵 대회를 맞이했다. 컵대회 결승에서 삼성화재를 3-0 셧아웃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1995년 전국체전 이후 17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번외 경기가 아닌 KOVO 주관 리그 정식대회에서 우승하기로는 거의 최초의 우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32] 또한 오프시즌에 영입한 쿠바 국가대표인 오레올 까메호에게 거는 기대 또한 있어서 순식간에 시즌 다크호스로 떠오른 상태. 그러나...
LIG는 정규 시즌에 돌입하면서 상승세를 타며 전반기를 2위로 돌았지만 결국 4라운드부터 상승세가 꺾이면서 원점으로 돌아갔고, 2013년 2월 13일 삼성화재와의 경기에서 다 잡았던 경기를 역전패당하자 이경석 감독을 중도 경질했다. 트레이너로 영입한 브라질 출신의 조세 하이문두 레이테 감독대행[33] 체제에서도 달라진 것은 없었고 카메호를 시즌이 다 끝나기도 전에 돌려보내면서 잔여 시즌을 사실상 접었다. 성적은 전년도와 똑같이 꼴찌에서 두 번째(5위). LIG의 밑에는 전 시즌 승부조작 사태로 무려 전현직, 군복무 중인 선수까지 무려 8명이 연루되어 제명된 후유증으로 전력이 파탄나 승점자판기로 전락한 KEPCO 뿐이었다.
시즌이 끝난 뒤 조세 하이문두 레이테 대행은 트레이너직에 복귀했고, 문용관 전 대한항공 감독을 영입했다.
몇 년 후인 2014-15 시즌에 오레올의 동생인 오스멜도 대한민국에서 뛰게 됐다. 뛰게 된 팀은 다른데, 불명예스럽게 쫓겨난 것은 같았다. 그리고 오스멜이 부상으로 중도 하차한 후, 다음 시즌에 그 오레올은 노재욱과 같이 최태웅 감독의 부름을 받아 현대캐피탈에 입단해서 날아다니면서 KB 올드팬들을 멘붕 오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습을 2015-16 시즌에 여농서의 라이벌 팀이 더 독하게 재현하고 있다.
2.6. 2013-14 시즌
특색 없던 팀 로고를 방패모양으로 바꾸고, 문용관 신임 감독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어창선 전 도로공사 감독을 영입했다.
시즌 개막전에서 한국전력에게 아쉬운 패배를 당한 뒤 이어진 삼성화재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김요한이 손등 부상을 당해 한동안 전열에서 이탈했다. 여기에 2라운드에서 러시앤캐시에 완패하며 신생 팀에게 창단 첫 승리를 안기는 등 시즌 시작부터 힘겨운 행보를 이어갔다.
외국인 선수 토마스 에드가가 준수한 활약을 보였고 김요한이 다행히 3라운드부터 합류하면서 쌍포를 형성했으나 순위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결국 플레이오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고 그나마 러시앤캐시의 상승세에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이다가 힘겹게 5위를 지킨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나마 수확이라면 신인 손현종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과, 부상으로 인해 은퇴했다가 복귀한 정기혁이 센터 한 자리를 지켜주었다는 것, 그리고 리베로-세터 멀티 신승준을 얻은 정도.
시즌 종료 후 한국전력에 주상용과 권준형을 내주고 김진만과 양준식을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어창선 수석코치와는 재계약하지 않고 강성형 전 현대캐피탈 코치를 수석코치로 영입한데 이어 국가대표팀 코치로 있던 김경훈 전 현대캐피탈 코치를 추가로 데려왔다.
2.7. 2014-15 시즌: 모기업의 매각, 그리고 구단의 새로운 출발
모기업인 LIG손해보험이 2014년 5월 매물로 나왔고 6월 27일 KB금융지주 이사회에서 인수승인을 확정지으며 LIG손해보험의 지분 19.47%(1168만 2580주)를 6,850억 원에 인수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후속 작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KB금융지주의 내분 사태가 겹치면서 매각 작업은 사실상 올스톱 상태가 됐다가 겨우 수습되었다.
일단 2014-15 시즌은 그대로 LIG손해보험 유니폼을 입고 시작한 가운데, 12월 24일이 되어서야 금융위원회에서 LIG손해보험의 KB금융지주 편입을 승인함에 따라 2015년 1월 중순 이후 팀명을 변경할 예정이었지만 올스타전을 전후해서도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남은 시즌은 LIG손해보험의 이름을 유지하게 되었으며 2014-15 시즌이 끝날 때까지 배구단의 이름 ‘LIG 손해보험 그레이터스’를 유지할 예정이었고 결국 6월 중순까지 유지하게 되었다. 관련 기사
한편 5라운드 도중인 2015년 2월 5일, 문용관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다. 남은 시즌은 강성형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치르게 되었다.
2014-15 시즌은 13승 23패, 승점 36점으로 6위로 마감하였다. 그래도 2015년 3월 15일, LIG로서 치르는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카드를 이기며 유종의 미를 거둔 것은 위안. 게다가 현대캐피탈만 만나면 쩔쩔맸던 LIG가 현대 상대로 3승 3패를 기록했고 유관순체육관 연패도 끊었다.
'''그리고 이날 경기를 끝으로 39년간 이어오던 범 LG가의 역사가 종료되었다.'''
2.7.1. 2014-15 시즌 선수단
3. V-리그 시대: KB금융그룹 산하로 바뀐 이후의 역사
3.1. 2015-16 시즌 : KB손해보험 스타즈로 시작하는 첫 해, 하지만 승점자판기로 전락
4월 7일 강성형 감독대행이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면서 새롭게 탈바꿈하는 KB호의 선장이 되었다. 이틀 뒤인 9일에는 현대캐피탈에서 권영민을 받고 정영호와 노재욱을 내주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6월 24일 모기업 LIG손해보험이 KB손해보험으로 사명이 바뀌면서 구단명도 '''구미 KB손해보험 스타즈'''로 바꾸었다. 스타즈 팀명은 여자농구(청주 KB 스타즈)에 이어 여기서도 쓰게 되었다. [34]
7월 컵대회, 조별리그는 3전 전승으로 4강에 올랐으나, 탈락이 확실했던 팀에게 준결승에서 지는 바람에... 후새드.
2014-15 시즌 후 에드가와 재계약하지 않고, 대한항공에서 뛰었던 마틴 네메크를 영입하였다.
KB손해보험은 10월 13일에 구미시민들에게 첫 선을 보인다. 첫 경기에서는 OK저축은행을 상대한다. 그런데 시즌 개막을 불과 4일(팀의 첫 경기이자 첫 홈 경기를 1주일) 앞둔 10월 6일 '''이경수가 은퇴'''를 선언했다.
리그를 진행하면서 코보컵 때의 모습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차라리 여농은 서동철 감독의 건강문제로 대행체제를 유지한다는 핑계가 있다지만... 마틴이 항공시절과 달리 허우적대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고, 권영민과 김요한, 하현용이 코보컵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완벽하게 폭망하는 중. 게다가 강성형의 우유부단한 지도력도 문제.
오죽했으면 11월 15일 구미에서 열린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와의 KBS1 지상파 중계 경기에서 금지어에게 통산 800블로킹의 희생양이 되면서 3-0으로 진 이후 기사의 댓글 중에 '''얘네랑 여배 현대[35] 랑 붙으면 누가 이기냐?'''라는 댓글이 베스트를 먹을 정도로 답이 없는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17일에도 현대캐피탈 상대로 '''드디어 1세트를 따냈지만''' 승점 획득에는 실패했다.
1라운드에서 패승패패패패를 기록한데다 '''2라운드 전패'''를 기록하며 10연패에 빠졌다. 1라운드 우리카드와의 경기에서 풀셋 접전으로 이긴 후에 승리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배하는 내내 셧아웃 아니면 3-1로 당하는 지라 승점도 우리카드와의 경기에서 획득한 '''2점'''이 전부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승점 3점을 상대방에게 퍼다주고 있다. 이 상황에 KB손해보험측에서 '''배구를 즐기는 꿀팁'''이라는 홍보기사를 올려서 KB팬들은 그야말로 속에서 사리가 쌓일 지경이다.기사 이런 와중에 주장 하현용이 훈련 도중 부상을 당하면서 가뜩이나 취약한 센터진이 더 휑하게 됐다.
3라운드 첫 경기 대한항공과의 인천 원정. 대한항공은 이전경기에서 산체스가 손목 부상으로 못 뜀에도 OK저축은행을 3-2로 이겼기에 질 거라 예상한 팬들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대한항공은 6일 동안 3경기를 치르는 빡빡한 일정에다가 저녁 경기 풀세트 경기 후 하루 휴식만 취하고 오후 2시 경기를 치러야 했기에 KB에게는 연패를 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항공의 사마리아인 본능[36] 이 발동하며 2세트 전패와 10연패를 모조리 끊고 시즌 2승을 기록했다.
그리고 12월 1일 한국전력과의 수원 원정 경기에서 3-1로 승리하며 2연승을 달렸다.
12월 10일 우리카드를 셧아웃시켜 버리면서 '''승점 1점차'''까지 따라붙었다. 빠르면 다음 주에 탈꼴찌를 할 수 있는 상황.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에 극적으로 탈꼴찌를 했다.
현재까지 절망적이던 10연패를 공제해도 팀 전력은 노쇠한 외국인과 세터를 알아서 데려와서 자멸한 하위권이라 볼 수 있다. 본래 강성형 감독 본인이 말하던 빠른 배구는 감독부터가 이해도가 아주 떨어지고 있고 그렇다고 데려온 베테랑 세터의 토스가 안정적이지도 않고 1세트도 못 버티다 엉망진창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여전히 공격수들 개인기 놀이에 의존하는 중. 미들 블로커 쪽도 정기혁의 은퇴와 하현용의 부상으로 연차 1~3년차 선수들로 돌리고 있어 매우 헐거운 상태.(하현용은 다행히 4라운드 첫 경기인 OK저축은행전에 복귀했다.) 덕분에 예년에 비해 안정된 리시브와 수비를 가지고도 늘 좋았던 공격스탯이 반대로 급전직하하여 추격의 실마리도 마땅치 않은 상황.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에 유독 약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전반기에 '''단 한 세트도''' 못 따냈다(…). 하지만 4라운드에 세트를 따면서 그 기록은 이제 여자부의 대전 KGC인삼공사만 가지게 된 것[37] 은 다행이지만 승점을 못 얻고 패했다. 그러나 패한 세트들도 듀스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후반기의 KB는 마냥 OK를 비롯한 타 팀에게 쉽게 잡아먹히지는 않을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다. 우리카드와 달리 뒤늦게라도 정신 차린 상황이기에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할 것 같았는데... 4라운드에서는 그로저에게 한 경기 최다 서브득점(15점), 5라운드에서는 시몬에게 한 세트 최다 서브득점(7점) 허용구단이 되었다. 그나마 수비가 되나 했더만 그것도 허상이었던 격.
일단 5라가 마감된 시점에서 5점 차로 꼴지 인 우리카드와의 6라운드 경기(2월 14일)에서 이겼다면 꼴찌로 인수 첫 시즌을 마칠 가능성은 대폭 하락하는데 0-3으로 완패하며 자칫하면 그 답 없던 LIG시절에도 안했던 꼴찌로 시즌을 마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2월 24일 우리카드가 완패하면서, 홈 마지막 경기인 2월 27일 대한항공 상대로 승리하면 꼴찌를 면한다. 하지만 3-1로 아쉽게 패했고(게다가 이 날 이경수의 은퇴식이 있었다.) 3월 1일 한국전력에게 3-2로 이기고서야 6위를 확정지었다.
3.2. 2016-17 시즌
FA시장에서 내부 FA인 김요한과 김진만을 다 잔류시키고, 2014-15 시즌 당시 팬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이선규를 3.5억에 영입했다. 전시즌 센터 공격라인이 제대로 맛이 간 것을 보강하기 위한 차원의 영입인 듯.
트라이아웃에서는 2순위가 되면서 가장 거한인 210cm의 벨라루스 출신 센터-아포짓 멀티 플레이어 아르투르 우드리스를 영입했다. 원래 노린 가스파리니가 대한항공에 지명된 걸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평.
6월 3일 보상선수로 부용찬을 삼성에 줬다. 대개 손현종 혹은 이강원이 갈 거라고 본 배구팬들은 멘탈이 잠시 그로기가 되었다. [38]
6월 16일 이미 삼성서 웨이버 공시 된 곽동혁을 영입하게 되었다. 사실상 이선규, 곽동혁 : 부용찬+돈 4억4천(이선규 200%) 의 2:1 트레이드.
지난해에 이어 여농 연고지인 청주에서 열린 KOVO컵에서는 준결서 우카를 이기며 복수에 성공했지만, 결승전 상대이자 조예선서 이기지 못했던 한전을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위안거리는 새 외국인 선수인 우드리스가 MIP를 수상할 정도로 잘했다는 거.
유니폼은 홈 노란색, 어웨이 은색, 리베로 남색이다.
일단 2016-2017 시즌도 6위를 달리고 있으나 경기력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 12월 17일·20일 삼성화재전과 OK저축은행전을 연달아 잡아내면서 시즌 첫 연승을 달리게 되었다.
4라운드 들어서 5경기 승점 10점을 획득하며 상승세를 타면서 삼성화재를 8점차까지는 추격하는 데 성공하였다. 선두권 팀들에게 고춧가루 제대로 선사 하는 중. 특히 황택의-이강원의 호흡이 눈이 부시다. 현대캐피탈전 대역전패가 너무 아깝다는 후문. 만약 현대캐피탈까지 제압했다면 승점 29점까지 올라와 5라운드 성적에 따라 중위권 판도에도 사정권에 들어올 수 있었다. 5라운드에서도 4라운드와 똑같이 승점 10점을 따냈다. 특히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에 잇다라 승리를 거두며 플레이오프권 추격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6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3연패에 빠지면서 이번에도 봄 배구는 물 건너갔다. 결국 강성형 감독은 시즌 종료 후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였다.
'''2017년 3월 10일 한국전력과의 경기가 구미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3.3. 2017-18 시즌 : 구미를 떠나 의정부로
3.3.1. 오프시즌
5월15일 남자부 트라이아웃에서 2순위로 얻었고 포르투갈 출신의 알렉산드르 페레이라를 선택했다. 페레이라의 주포지션이 아웃사이드 히터인 관계로 국내 선수를 아포짓으로 둘 확률이 높아졌고, 실제로 권순찬 감독은 이강원을 아포짓으로 고정하겠다 공언한 상태. 손현종 황두연을 번갈아 로테이션으로 돌릴 수 있다는 장점과 풀타임이 버거워진 김요한의 몸상태를 감안하면 전술상의 고민이 엿보이는 외국인 선수 영입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6월 18일에 김요한과 이효동을 내주고 강영준과 김홍정을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이 트레이드로 보아 사실상 김요한 대신 이강원을 키우려는 의중을 보였고 대신 센터 자원인 김홍정과 레프트 강영준으로 백업층을 두텁게 하려는 의도인 듯.
2017년 4월 30일자로 구미시와의 연고지 협약이 만료되었다. 구미시와 팀 서포터즈인 '가디언즈'는 시민들을 상대로 연고지 재협약 10만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으나, 협약만료 한달이 넘어가는 6월 7일 현재도 재협약 기사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보통 재협약을 하게 되면 만료와 거의 동시에 순조롭게 재협약 발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시즌 종료 직후 '연고이전을 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가 하루만에 기사를 내린 바 있다. 이러한 일들은 구미 팬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구미시는 마케팅홍보 및 운영비 지원, 체육관과 주차장 무상이용 등 상당한 혜택을 구단에 제공해왔으나 한 달째 재협약 기사가 없다는 사실은 적어도 구단이 새 연고지를 물색 하고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만일, 새 연고지를 물색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구미시라는 지역의 부정적인 정치적 이미지이다.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 이유는 오로지 마케팅이다. 그 중에서도 충성심 마케팅과 기업홍보 목적도 있겠지만 가장 우선되는 것은 스포츠를 통한 기업 이미지 순화, 포장이다. 대표적으로 OK저축은행이 배구단을 창단하면서 대부업체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 그 예이다. 그런데 '구미'라는 지역은 대외적으로 박정희의 생가 및 기념관이 있고 동상이 세워져 있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또한 홈코트로 사용하는 체육관의 이름 역시''' '구미 박정희체육관' '''이다. 이런 특성에 호감을 가지거나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2017년 현재 정치 상황상 그 정반대로 반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이런 도시를 연고지로 하며 '구미KB' 라는 구호를 내건다면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기업 입장에선 결코 탐탁치 못할 것이다.
둘째는 KB라는 기업이 구미시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LIG손해보험 시절에는 구미에 범 LG가 기업(LG, GS, LS, LIG) 소속 공장이 총 5개가 있어 지역연고가 확실했다. '포항에는 포스코', '울산에는 현대' 와 같이 지역민들은 기업에 대한, 기업은 지역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그러나 LIG손해보험이 KB손해보험이 되면서 구미시에 대해 전혀 애착이 없는 KB가 구미시에 남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39]
연고이전은 많은 스포츠 팬들에게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특히 수도권으로의 연고이전은 훨씬 더 많은 비난과 조롱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일련의 상황에 대해 의외로 많은 배구팬들은 대구광역시로의 연고이전이라면 지지하고 있다. 그동안 배구단은 프로농구단을 피해 중소도시에 자리잡아 왔었다. 그런데 마침 대구는 고양 오리온의 연고이전 으로 농구단을 비롯한 겨울 스포츠가 없는데다가 지역 중심지 역할을 하는 대도시이다. 또한 수도권으로의 연고이전은 구미시민들에게 큰 박탈감을 안겨줄 것이 뻔하다. 하지만 구미 바로 옆의 대구는 같은 대경권이자 대구권으로서 그 박탈감이 훨씬 적어질 수 있다.[40] 또한 경북권의 중심도시인 대구를 연고로 하게 된다면 대구시민을 넘어서 경상북도 배구팬들의 사랑을 널리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도권에 편중된 현재 배구지형의 특수성 때문에 지방으로의 연고이전에 대해서는 많은 배구팬들이 옹호적이라는 것이다. 더불어서 대구KB의 성공이 배구 전국화의 신호탄이 되어 광주전남, 부산경남에도 구단이 생기거나 이전해와 배구가 전국구 스포츠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하나 걸림돌이 있다면 대구 역시 박근혜의 고향으로써 최순실 게이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둘째가 주 이유라면 몰라도 첫 번째라면 대구로 옮긴다는 발상 자체가 매우 위험한 생각이었다.
7월 11일 기사로 연고이전이 기정사실이 되었는데 의정부시로 이전한다고 한다. 너무 긴 이동거리 [41] 와 열기 부족이 이유라고 한다. 반응은 홈구장 이름으로 인한 조롱 말고는 좋지 않다. 비록 경기북부가 프로스포츠 불모지라고는 하나 자신들이 인기를 얻게 도와준 최고의 외부적인 변수였던 옆동네 대구서 고양으로 도망간 '''고양 오리온스의 야반도주를 그대로 재현'''해 현재의 배구 인기에 거하게 찬물을 쏟을 결정이 될 듯하다.
정말로 오리온스의 야반도주와 비슷한 점이 많은데, 이전 당시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점[42] , 연고이전의 이유로 숙소와의 이동거리, 관중 동원 부족 등을 언급함, 경기 북부로 이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당연히 구미시청과 구미시체육회는 반발을 하고 있고 구미시장은 대놓고 '''"구미시에서 KB를 매장시키고 KB와 관련된 모든 걸 구미시에 발도 못 들이게 만들겠다!!"'''는 말까지 하고 말았다. 그리고 7월 17일 결국 의정부시가 새 연고지로 확정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18일에 협약식을 할 예정. 홈경기장은 의정부실내체육관으로 확정되었다. 한편 구미시는 이후 체육기금 등 여러 가지 기금사업 주거래은행을 기존의 KB에서 다른 은행으로 돌리는 등 보복을 했다.
의정부로 옮긴 직후 구미 최후의 팬미팅을 해서 마지막 감사인사를 했다. 기사 또한 의정부 홈경기 때 구미에서 출발하는 단관버스를 지원하고 있다. 이미지 세탁이니 뭐니 하고 있지만, 대구에 최소한의 감사인사조차 왜 해야 하느냐 반문 던지고 고양 정착 첫 해에도 대구를 비난했던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보다는 그나마 낫다는 말이 많다.
2017년 7월 27일 오전 6시 경 리베로인 박민범이 윙스파이커로 포지션 변경을 하기로 하고 훈련 중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권순찬 감독의 말에 따르면 대학시절 준수한 활약을 했으며 지금처럼 수비위주였다고, 필요한 때에 임팩트 있는 공격을 해줬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한다. 주 공격수가 아닌 수비에 더 치중하는 보조 공격수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셈.
2017년 8월 18일 오후 3시 30분경에 트레이드가 발표되었다. 한국전력에 권영민을 내주고 전진용을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팀 입장에서는 입지가 좁아진 권영민을 내주고 이수황의 군입대로 구멍이 난 센터진에 전진용이 활기를 불어넣어 주길 바라는 듯.
2017년 9월 26일 열린 V-리그 남자부 신인드래프트에서 1R 남성고 세터 최익제, 2R 성균관대 라이트/레프트 정수용, 3R 인하대 레프트/리베로 박광희, 수련선수로 홍익대 센터 채영근을 지명했다.
2017년 10월 10일, 개막을 앞두고 주전 리베로 곽동혁이 종아리 근육 파열 부상을 당하면서 개막전 출장이 불투명해졌다. KB로서는 큰 악재로, 곽동혁은 지난해 디그 성공률 1위를 기록했던만큼, 당장 리시브 성공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백업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3.3.2. 정규리그
유니폼은 홈 노란색,
어웨이 은색,
리베로 남색이다.
10월 15일 의정부에서 열린 삼성화재와 홈 개막전에서 35점을 올린 알렉스의 활약으로 풀세트 끝에 3-2(18-25 25-22 25-18 23-25 15-13)로 이기며 연고지인 의정부에서 첫승을 올리며 승점 2점을 얻었다. 3일뒤인 다시 홈에서 열린 현대캐피탈과 경기서 3대0(31-29, 25-18, 25-14)으로 셧아웃 승리 홈 2연승이자 승점 3점과 동시에 승점5점을 추가하며 선두로 올라섰다. 참고로 LIG 시절을 포함해서 KB가 현대를 셧아웃으로 잡은 것은 이번이 처음. 김요한을 트레이드하면서 이강원과 함께 팀의 중심으로 낙점받은, 2년차 황택의가 폭풍 성장하면서 그동안 KB의 아킬래스 건이던 세터 자리를 확실하게 채워주고 있다.
28일 인천에서 열린 대한항공과 원정경기서 이강원과 알렉스 페헤이라의 활약으로 3-0(25-22 27-25 25-23)으로 이기며 승점 3점이자 3승1패 8점을 기록했다. 29일에 열린 한국전력이 삼성화재 한테 3-0으로 패했기 때문에 KB손해보험이 승점1점차로 선두로 도약했다.
11월4일 안산에서 열린 OK저축은행과 경기서 풀세트 끝에 3-2(24-26 25-17 14-25 25-19 15-12)로 이기며 승점2점을 추가해 삼성화재를 밀어내고 1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리매치인 11월 08일 경기에서는 2-3(25-19, 25-23, 26-28, 25-27, 9-15)으로 대역전패를 당했다.
3월 4일, 우카와의 대결에서 패하면서 봄배구 진출 실패가 확정되었다.
그래도 3월 14일, 현캐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유종의 미는 거두었다. 특히, 이날 경기 승리는 '''3년만의 천안 원정 승리'''이기도 하였다. 최종 순위는 4위. 근 7년만에 역대 최고성적을 거두며 팬들에게 내년을 기대케 하는 반등의 시즌인 것이다.
이 외에도 다른 강팀들을 상대로 분전하는 등 의정부 이전 효과를 보고 있다. [43]
3.4. 2018-19 시즌: 이번에도 물 건너간 봄 배구
3.5. 2019-20 시즌: 또 한 번 부상으로 물 건너간 봄 배구
3.6. 2020-21 시즌:
[1] 이하 LIG, 2005년 이전에는 금성사, 금성통신, 럭키금성, LG화재 등 과거 럭키금성-LG그룹의 여러 자회사들이 운영해 왔으나, LG그룹에서 LIG그룹이 계열 분리되고 지역연고 홈앤드어웨이 리그 방식으로 바뀌며 현재의 팀명을 쓰고 있다. 다만 LIG그룹의 모체인 LIG손해보험은 LG에서 분리된 뒤에도 한동안 LG화재라는 이름을 유지해 왔다. 현재는 LG도, LIG와 연관이 없는 KB금융그룹 산하 스포츠팀이 되었지만 본문에는 범LG가의 역사를 다루기에 예전 일화를 옛 이름(2006~2015)인 LIG라는 명칭으로 통일해 기재함을 알린다.[2] '''공교롭게도 KB손해보험으로 다시 창단한 날짜도''' (2015년) '''6월 24일이다!'''[3] 이런 방식으로 재창단을 한 다른 사례로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가 있다. 현대건설의 전신은 한국산업은행 여자배구단이었다.[4] 물론 현대캐피탈 팬들은 LG화재/LIG - KB를 라이벌로 여기지도 않는다. 그동안 쌓아놓은 업적 자체가 넘사벽이라...[5] 이러한 싹슬이로 현대자동차를 제외한 나머지 구단에선 현대자동차에 항의하는 일까지 벌여졌고, 협회의 중재안으로 LG화재는 윤종일을 데려올수 있었으나, 4인방 전원이 아니면 의미가 없었는지 거절하게 된다. 물론 이건 LG화재의 삽질 중 하나.[6] 그리고 1991-92 대통령배(슈퍼리그의 전신) 대회 상무 우승의 주역 중 하나였던 센터 유병종을 입대 전의 태도 불성실을 이유로 복귀를 거부하기까지 했다.[7] 구준회는 그런 대로 활약했지만 구본왕은 부상으로 일찌감치 은퇴했다.[8]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선수가 손석범이다. 손석범은 이경수 파동으로 1년 반을 쉬고, 다시 늦은 나이의 공익요원 복무로 2년 넘게 쉬면서 예전 기량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우리캐피탈에 트레이드된 후 은퇴했다.[9]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드래프트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지명을 받지 못한 홍익대 세터 원영철이 아무런 태클을 받지 않고 LG화재로 가게 되었다는 점이다.[10]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중반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날개 공격수. 팀에 대한 충성심이 커서 이탈리아 팀의 제의를 뿌리쳤을 정도였다. 은퇴 후 팀의 코치를 맡았으나 중도에 물러난 후 개인 사업을 하다가 1991년 3월 26일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11]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소속 리베로 구자혁의 부친이다.[12] 현대캐피탈이 영입한 저 5명은 훗날 리그 2연패의 주역들.[13] 물론 현대캐피탈행이 유력했던 세터 손장훈을 빼오는 성과를 올리기는 했지만 정작 손장훈은 폭망했다. [14] 신영수는 대한항공이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으면서 지명했고, 김형우는 바로 이경수 파동 해결에 따라 LIG가 대한항공에게 넘긴 지명권으로 얻었다.[15] 레이싱 모델 육지혜의 남편이다.[16] 엄밀히 말해 실패는 아니었다. 당시 외국인 선수였던 브라질 출신의 키드(본명은 길마 나시멘토 테이세이라)는 현대캐피탈의 숀 루니 다음으로 활약이 좋았다. 삼성화재는 아쉐가 폭망하고 윌리엄 프리디를 데려왔지만, 프리디는 삼성화재의 스타일과 맞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알렉스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17] 물론 괜찮은 신인 나온다고 일부러 져주기를 해서 꼴찌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결국 여자부에서 병림픽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18] 이 때부터 신영철 감독에게 밉보였던 곽동혁은 군 면제였음에도 돌연 은퇴 공시되었고 한참 지나 한국전력의 유니폼을 입고 코트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3년 다시 신영철 감독과 만나게 되고 1년 뒤 삼성화재로 트레이드된다.[19] 사건 당시 구단측이 선수단의 휴대폰 수거까지 하며 내부고발자를 찾아냈다는 얘기도 있다.[20] 물론 이란 국가대표팀 감독을 하기 전에도 이탈리아에서 성공을 거둔 지도자. 이후 대한민국 남자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을 맡았으며 2016-17 시즌 대한항공 감독으로 취임했다.[21] 그런데 확률추첨제만 아니었어도 LIG에 이어 2순위를 차지하게 될 대한항공이 확률추첨제로 오히려 3순위로 밀려버리고 뜬금없이 삼성화재가 2순위가 돼 버렸다.[22] 사실 2007-08 드래프트는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로 불린다. 김요한과 함께 인하대학교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유광우, 도 포함됐으며 현재 대한항공의 주전으로 뛰고 있는 진상헌과 한선수까지 참가했다. 역대 드래프트 명단을 보면 제일 화려했을 때가 이 때였다.[23] 여담으로, 대한항공은 당시 세터가 필요했고 확률추첨제에서도 2순위를 가져갈 확률이 높아서 세터 유광우를 지명하려고 했었다. LIG도 세터가 필요하긴 마찬가지였지만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만들 생각에서 이미 김요한의 지명을 생각해둔 상태. 그런데 앞서 설명했듯 뜬금없이 삼성화재가 2순위로 걸렸고 삼성화재 역시 최태웅의 뒤를 이을 세터가 필요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유광우를 지명했다. 대한항공은 울며 겨자먹기로 두번째 취약 포지션이었던 센터보강을 할 수밖에 없었고 우승팀이자 드래프트 최하순위였던 현대캐피탈은 을 지명하는 행운을 거뒀다. 대한항공은 노렸던 유광우 대신 한선수를 지명했다. 그러나 유광우는 부상 오진에 따른 치료 및 재활로 거의 두 시즌을 날렸고 한선수는 데뷔 시즌 말미에 주전 세터로 도약하면서 국가대표 주전 세터까지 차지하게 된다. 이로써 대한항공이 승리하는 듯했으나 유광우가 살아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선수는 상근예비역 입대로 한창 때에 자리를 비우게 된다.[24] 보통 선수들이 못하면 팬들은 억지로라도 쉴드를 쳐주는데 LIG팬들이 쉴드치는 것도 포기하고 오히려 타 구단 팬들보다 더 대차게 까는 선수가 바로 한기호. 리베로이면서 리시브도 윙 리시버에게 떠넘기고 공격이 오면 안 막고 도망가면서 오히려 심판에게 아웃이라고 소리치는 등... 저러한 행동으로 LIG팬들은 그에게 걸맞는 별명을 하나 만들어줬다. '피구왕 한기호'라고.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면 팬들에게 '한기호라는 선수 수비 잘 하는 선수인가요?'라고 질문하자. 그럼 한 대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부용찬에게 주전 리베로 자리를 내줬다. [25] 원래는 아르헨티나 태생이다. 그의 형 미겔도 스페인대표팀 세터로 맹활약했다. 미겔은 2019년 6월 심장마비로 타계했다.[26] 실제로 시즌 초반에는 리시브가 박살났지만 후반부에 들어선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고 이번 시즌은 부상당하기 전까진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27] 반면에 황동일로 낚시질에 성공한 김남성 감독은 오히려 삼성화재에서 제2의 여오현으로 기대하고 있었고 당시 상무에서 복무 중이었던 이강주를 전력보강 선수로 빼내 오는데 성공한다. [28] 참고로 2009-10 시즌 LIG가 영입한 외국인 선수는 피라타. 당초 데려왔던 팜펠이 석연치 않게 퇴출된 뒤 영입한 선수다. 그런데 당시 삼성화재에 입단한 가빈 역시 LIG가 원래 노리던 선수였다. 역시나 이번에도 스카웃 전쟁에서 패 to the 배.[29] 하현용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특례를 받아 조기전역을 노렸지만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남은 복무 기간을 다 채웠다.[30] 자국 국가대표 출신의 아포짓으로, 이경수 김요한의 연쇄부상으로 망가져버린 2010-11 시즌, 엘아지에서 홀로 공격을 담당하며 플옵 진출까지 이룬 엘아이지 역사상 최고의 용병. 그러나 다음 시즌에선 본인이 부상을 당해버려 시즌 중반에 쓸쓸히 떠나야 했다. 하지만 부상 회복 후 일본 배구계의 명가인 사카이 블레이저스에 진출, 팀을 우승시키며 건재함을 뽐냈다.[31] 삼성화재는 창단 시절 LG에게 빼앗은 선수만 해도 '''우승 트로피 몇 개'''나 되는 수준이어서 웬만한 LIG팬들은 삼성을 정말 증오한다...[32] 대통령배 출범 이전 제외.[33] 감독 대행이긴 하지만 V-리그 출범 후 최초의 남자부 외국인 사령탑이다. 여자부는 2009-10 시즌 중반부터 2010-2011시즌까지 팀을 이끈 흥국생명의 반다이라 마모루 감독대행(일본)의 사례가 있었다.[34] 그것도 둘 다 여자농구 - V리그 남자부 에서 쓰는 팀명이다![35] 이 당시 16경기 연속 승점 획득 행진 중인 사기캐 시절이었다. [36] 유독 하위권 팀 상대로 제대로 이기는 경우가 없었다. 참고로 지난시즌인 14-15시즌 꼴지인 우리카드의 3승 중 2승이 계양 원정이었다. 나머지 1승은 당시 임시연고인 아산에서의 OK저축은행전. [37] 현대건설전 4전 전패에 세트 전적 0-12였다. 5라운드서는 3-2로 승리.[38] 참고로 기록표를 보면 부용찬의 15-16시즌 디그는 2위이다만. 세트당 리시브 48.7%(그러나 리시브해서 넘어간 건 시도에 포함이고 여러 조건을 더하면 성공률은 상상 이상으로 더 낮음).. 이러니 디그보다 리시브에 엄청난 걱정이 있을 수 밖에 없다.[39] 단 이 논리에는 맹점이 있는 게, KBL과 V리그가 프로화가 된 시대에는 야구나 축구와 달리 모기업의 연고지를 따라가는 경향이 많이 희박해졌다. 대전과 삼성그룹, 천안과 현대차그룹은 한국의 그 많은 지자체 중 한 곳으로서의 관계밖에 없다. 특히나 태생이 국영기업인 KB는 구미나 의정부는커녕 연고지 자체가 없다. 구미시와 이렇다할 인연이 없다는 게 사유가 될 수는 없는 것.[40] 구미시의 팬들도 "열은 좀 받지만 옮기는 데가 바로 옆 대구라면 억지로나마 납득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41] 과거에는 홈 경기 치르려고 이천 LG 챔피언스 파크서 창원까지 가야했지만 KBL 연고지 정착 계획으로 선수들도 창원에서 출퇴근하면서 훈련하게 되었다. 심지어 같은 배구팀인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경우 수도권에 있었던 숙소와 연습장을 오히려 연고지인 천안으로 옮겨버렸기 때문에 사실상 핑계나 다름이 없다.[42] KB손해보험의 구미에서의 마지막 봄배구는 2010-11시즌이었으며 오리온스도 대구에서의 마지막 네 시즌에 10-9-10-10을 찍었다.[43] 첨언하자면 도로공사는 경북에서만 우승을 맛봤고, 성남 시절 우승을 단 한 번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