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고등학교 흑인 코스프레 인종차별 논란

 



1. 개요
2. 샘 오취리의 입장문
3. 논란
3.1. 논란의 원인
3.1.1. 샘 오취리의 과거행적
3.2. 논란 후 샘 오취리의 대처
3.3. 인종차별 여부
3.3.1. 인종차별이 맞다
3.3.1.1. 타 문화를 패러디하면서 갖춰야할 예의
3.3.1.2. 인종차별의 의도가 없었더라도 문제가 없는것은 아니다
3.3.1.3. 다른 문화상대주의적 관점과 동일하게 비교해야 한다
3.3.1.4. 더이상 블랙페이스에 대한 사회적합의를 미룰수 없다
3.3.1.5. 정치적 올바름을 향한 시대적 요구
3.3.2. 인종차별이 아니다
3.3.2.1. 의도의 문제
3.3.2.2. 눈찢기 등의 반대논거에 대한 반박
3.3.2.3. 인종차별 주장이 내재한 한계
3.3.3. 명확한 답이 나올 수 없다
3.3.4. 문제의 핵심은 인종차별 여부가 아니다
3.3.4.1. 반박
3.3.5. 논란의 한계 및 의의
4. 반응
4.1. 당사자들
4.2. 당사자 외
5. 유사 사건의 발생


1. 개요


의정부고등학교 학생 몇 명이 이른바 "관짝소년단"으로 유명해진 Coffin Dance를 패러디 한 졸업사진을 촬영한 사실이 있었다. 이에 2020년 8월 6일 Coffin Dance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Coffin Dance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흑인샘 오취리가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해당 졸업사진에서 얼굴을 검게 칠한 것이 흑인들에게 매우 불쾌한 행위라며 지적하는 글을 게시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네티즌들의 의견은 1) 얼굴을 검게 칠하여 흑인을 흉내낸 것은 블랙페이스로, 이는 역사적으로 인종차별의 의미를 갖는 행동으로 오늘날 서구권에서는 금기로 자리 잡혔으므로 부적절하다는 쪽과, 2) 해당 학생들은 그저 Coffin Dance를 흉내낸 것일 뿐 인종차별의 의도를 갖고 블랙페이스를 한 것이 아니므로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쪽과, 3) 그 밖에 사람에 받아들이기에 따라 다르므로 명확한 답이 나올 수 없다는 쪽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이 일이 이렇게 큰 논란이 된 것은 블랙페이스에 대한 샘 오취리의 문제 제기 자체가 문제였다기보다는, 샘 오취리가 자신의 유명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일개 고등학생들에 불과한 사람들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학생들의 사진과 학교 이름까지 박제하여 국제적으로 조리돌림시켰다는 점(해당 학생들의 얼굴을 모자이크도 하지 않았다), 게시물의 한국어영어 내용을 다르게 써서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에게 각각 다른 이중적인 메세지를 던졌다는 점 등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2. 샘 오취리의 입장문


참 2020년에 이런 것을 보면 안타깝고 슬퍼요. 웃기지 않습니다!!!! 저희 흑인들 입장에서 매우 불쾌한 행동입니다. 제발 하지 마세요!!!! 문화를 따라하는 것 알겠는데 구지 얼굴 색칠 까지 해야 되요????? 한국에서 이런 행동들 없었으면 좋겠어요!!!!!!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한 번 같이 이야기 하고 싶어요.

Time and time again why won’t people get that blackface is very offensive and not funny at all!!!!!! There have been so many instances both on and off air where people paint their faces black here in Korea and think it’s funny! It’s not and I am highly against it and highly disappointed.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은 왜 블랙페이스가 굉장히 모욕적이며, 재미있는 행동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나요!!!!!! 방송에서나 아닌 데서나 한국에서 얼굴을 까맣게 칠하고는 이걸 재밌다고 여겨 온 사례를 매우 많이 마주쳤습니다! 이건(블랙페이스) 재미있는 행동이 아니며, 나는 그것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는 바이며, 크게 실망했습니다.)

You put in so much effort to educate people here in Korea and make them understand that you can appreciate a culture without making mockery of the the people.[1]

This has to stop in Korea!!! This ignorance cannot continue!!!!!

(한국에서는 (흑인들을) 다른 이들의 조롱거리로 만들지 않고서도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교육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한국은 이런 행동(의정부고의 블랙페이스와 같은)을 당장 그만둬야 합니다!!! 이런 무지는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teakpop #notoblackface #notoignorance

논란이 심해지자 8월 7일 6시 10분 경 아래의 사과문을 올렸다. 위의 이전 입장문에서는 영어로도 블랙페이스의 인종차별적 성격을 영어로도 설명하였지만, 사과문에서는 한국어로만 사과 내용을 작성한 점을 두고, 오취리의 고향인 가나나, 기타 이 사건을 접했을 외국인 입장에선 사건이 어떻게 끝났는지 알 수 없어 문제가 재점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

제가 올린 사진과 글 때문에 물의를 일으키게 된 점 죄송합니다.

학생들을 비하하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제 의견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선을 넘었고 학생들의 허락 없이 사진을 올려서 죄송합니다. 저는 학생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합니다. 그 부분에서 잘 못했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쓴 부분이, 한국의 교육이 잘못되었다는것이 절대 아닙니다. 해석하는 부분에 오해가 있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의 교육을 언급한 것이 아니었는데 충분히 오해가 생길 만한 글이었습니다.

Teakpop 차체가 한국Kpop 대해서 안좋은 얘기를 하는 줄 몰랐습니다. 알았으면 이 해시택을 전혀 쓰지 않았을 겁니다. 너무 단순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많이 받았었는데 이번일들로 인해서 좀 경솔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배운 샘 오취리가 되겠습니다.


3. 논란


여론은 '''샘 오취리의 반응과 문제를 제기한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가운데, 오취리가 제기한 블랙페이스 이슈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3.1. 논란의 원인


블랙페이스에 대한 지적은 한국에서도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여느 때와는 다르게 큰 논란이 된 데 대하여, 네티즌들은 오취리의 문제 제기 방식을 문제 삼는 편이다. 이는 다음과 같다.
  • 공개된 SNS 계정에 해당 졸업사진을 얼굴에 모자이크를 하지 않고 올려 초상권을 침해한 점
  • (학생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책임을 물릴 정도로 잘못한 일인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없이, 아직 미성년자일 가능성이 높은 학생[2]들을 유명 연예인인 자신이 공개적으로 그들의 사진과 학교정보를 업로드하여 해당 학생들이 국제적으로 조리돌림 당하게 만든 점
  • 한국어와 영어로 적은 내용이 각각 달랐으며, 특히 영어로는 한국인들이 (인종차별 문제에 관해) 무지하고 교육 받을 필요성이 있다는, 얼핏 한국인들을 폄하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을 한 점[3]
  • K-POP의 가십 거리를 다루는 "#teakpop"(티케이팝)[4] 해시태그를 사용해 블랙페이스 주제와는 무관한 해시태그로 소위 "화력 요청"을 한 점
  • 샘 오취리 본인은 인종차별에 대한 언급없이 블랙페이스가 흑인들에게 불쾌한 행위라며 지적한 것이 전부였으나 많은 사람들이 샘 오취리가 학생들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았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점

3.1.1. 샘 오취리의 과거행적



오취리는 과거 방송에서 스페인의 얼굴 찌푸리기 대회 이야기가 나오자 웃긴 얼굴을 만든다며 손가락으로 눈을 찢고 뻐드렁니를 표현한바 있다(0:55부터). 오취리가 의정부고 코스프레를 비판하자 많은 사람들이 오취리에게 역으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다. 사람들이 저 행위가 정말로 오취리가 동양인 인종차별을 했다고 생각해서 지적하는 것은 아니고[5][6], 오취리의 주장처럼 만약 의도와 무관하게 검게 칠했다는 사실만으로 인종차별이라면 본인의 이 행동도 똑같이 인종차별이 된다는 자기모순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후 샘 오취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눈찢기에 대해 '''나는 동양인을 비하할 의도가 전혀 없었지만 그걸 통해 사람들이 그걸 인종차별적 행동이라 비판한다면 그렇게 볼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무슨 이유에서 그러는지 알거같다'''는 대답을 한다.기사
샘 오취리가 BBC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해 남긴 입장은 의도가 없었더라도 문제있게 볼 수 있었다고 평가함으로서 자신의 행적때문에 블랙페이스라는 주제를 사람들이 진정성있게 받아들이지 않는것을 방지하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샘 오취리가 인종차별에 대해 논하고 'ignorance'라는 표현까지 써서 한국인의 블랙페이스에 대한 무지를 교정하기를 바랬다면, 자신의 과거 행동에 대해 '의도는 아니었지만 기분나빴다면 이해한다'와 같은 어정쩡한 유감표명 대신 확실한 사과를 하거나,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등장한 인종차별성 표현에도 대해서도 'ignorance'라는 표현 정도는 써서 비판했어야 했다. 또한 의정부고 논란은 '황인(한국인) - 흑인'의 문제로 삼더니, 자신의 눈찢기는 '샘 오취리 개인 - 한국인'의 문제로 축소시켜버린 것이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성 행위에 대해선 한국인 전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본인이 취한 동양인 차별성 행위에 대한 문제는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려 한다는 전형적인 아전인수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image]

'''인스타그램 유저: Cute once you go black you never go back. Lol (귀엽네. 흑인한테 한 번 가면 다시 못 돌아오지. ㅋ)'''

'''ㄴ샘 오취리: preach!!!!! (동의!!!!!)'''

이 논란 이후에는 2019년 3월 인스타그램에 타 여배우와 함께 찍은 사진에 '''인종차별'''적[7]이고 노골적인 '''성희롱''' 덧글에 '''동조'''하는 덧글을 달았던 것이 밝혀졌다. 위에 언급된 과거 행적이 흑인의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언행이라면, 이것은 성희롱과 더불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인식에 동조하는 덧글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샘 오취리 논란 문단 참고
이와 같은 사건들로 인해 보여지듯 과거행적에서 오취리도 인종차별 문제에서 깨끗하지는 못하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상황이고 샘 오취리한테 블랙페이스를 지적할 자격이 있느냐는 여론도 존재한다. 샘 오취리의 자격 논란을 소개한 기사. 샘 오취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결국 인종 간의 '존중'인데,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존중하라는 것은 만국공통 사회생활의 기본 중 기본이다.
특히 의정부고 논란은 팩트에 기반한 논리대결이 아니라, 불분명한 기준을 가진 감성대결 속에서 오취리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커지고 있다.[8] 샘 오취리의 이야기에 대하여 지극히 감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할경우, 결과적으로 이 사건에 분노한 한국 대중들이 더이상의 의논 없이 샘 오취리를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실질적으로 추방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허나 샘 오취리가 올바른 주장을 했음에도 왜 추방되어야하는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게 되고 해외에서 이미 이슈화된 한국사회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추가적인 오해와 편견을 만들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또한 아전인수 혹은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의 올바른 의미는 과거의 행적과 대비되는 주장을 했을때 비판점을 항상 가지는것이 아니라 본인의 편의에 맞게 논리를 임의로 선택하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일때 가지는 것이므로 오취리가 실컷 잘못을 저질러놓고는 이제와서 깨어있는 사람으로서 옳은 소리를 하려하기 때문에 듣기 싫다는 이야기를 하는것은 논리상 어폐가 있다.[9]
오취리가 보여준 과거 행동이 실망스러우냐 아니냐의 여부를 떠나서, 오취리 관점에서 대변하는 블랙페이스 비판의 정당성을 이전의 오취리의 행적을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본인의 과거 행실이 깨끗하지 못하니, 남의 행실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논리는 피장파장의 오류에 해당한다. 즉, 오취리 본인의 행실과 별개로 블랙페이스를 다뤄야지, 오취리 개인의 행적과 연관해 블랙페이스를 논하는 것이 오류에 해당한다.

3.2. 논란 후 샘 오취리의 대처


며칠 뒤 샘 오취리는 논란이 된 글을 삭제하고 별도의 사과문을 게시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사과문에 대해서도 고등학생들의 초상권을 침해해 가며 인종차별 문제 제기를 할(이른바 "저격"을 할) 때는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로 작성하여 전 세계적인 공론화를 유도한 것과는 달리, 사과문은 한국어로만 작성하고 영어로는 작성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네티즌들은 오취리가 한국이 '블랙페이스 관련 논란을 잘 모르는 문화권'의 국가인 점을 배려하여, 영어로도 블랙페이스가 인종차별인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했더라면, 특히 해당 고등학생들의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았더라면 논란이 더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도 폈다.[10]
한편 이후 비판이 치솟자 오취리는 '''일시적으로 계정을 비공개 처리'''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대한민국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이미지 회복을 시도했으나 뒤이어 박은혜 성희롱 사건이 터져 사테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아예 계정을 없앴다.
이후 진행된 8월 13일자 BBC 인터뷰에서도 '''한국에서 인종차별과 싸우는 흑인'''이란 주제로 인터뷰해서 영 여론은 좋지 못하다. 또한 본인이 비정상회담에서 눈찢기를 한 것은 동양인 비하의 의도가 없었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의정부고 학생들도 흑인 비하의 의도가 없었는데 문제 삼아놓고 본인은 의도가 아니었으니 괜찮다고 하는 내로남불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물론 의정부고 학생들은 흑인 흉내의 의도는 분명하고 흑인 비하의 의도가 없었던 경우고, 오취리가 눈을 찢은 건 아예 동양인을 흉내내려는 의도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단순 비교는 어렵긴 하지만.
그 와중에 비판하는 측에 대해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이를 이해하려는 몇몇 한국인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어디나 대화를 원하지 않고 그저 공격만 하려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논란이 됐다"라고 말했는데, 기사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진영논리를 펴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3.3. 인종차별 여부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학생들이 '인종차별의 의도'를 갖고 코스프레를 했을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 부분만큼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서양권으로 이민가서 거주하는 한인들도 대부분 공통된 의견을 표현했다.[11] 샘 오취리도 학생들이 인종차별을 자행했다고 직접적으로 비난한 것이 아니라 흑인들이 보기에 기분이 나쁜 행동인 것을 지적한 것이 전부였고 "기회가 되면 한 번 같이 이야기 하고 싶어요"라면서 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요구한 것이었다. 하지만 코스프레로서 피부를 검게 칠한 것이 '인종 차별'인지 여부에 대해 상당한 의견 대립이 있다.
'''이 문단에서 논하는 '블랙페이스'는 현실에서 대중이 인식하는 블랙페이스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흔히 검은 피부톤을 따라하기만 해도 '블랙페이스' 내지 '블랙 피싱'이라며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마냥 그렇게 일관하면 상대편으로부터 '이중잣대 내지 내로남불식 논리'로 치부되어 무시되기 십상이므로 논의에 앞서서 '블랙페이스의 본질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논의를 반드시 거쳐야지만 '의정부고 학생들의 패러디는 인종차별이 맞다는 주장'도 논의의 의의를 가질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블랙페이스, 블랙 피싱, 이 문단의 하위 문단인 3.3.2.1.을 참조 바람.

3.3.1. 인종차별이 맞다



3.3.1.1. 타 문화를 패러디하면서 갖춰야할 예의

흑인들에게 블랙페이스는 단순히 ‘다른 인종을 따라하기 위해 얼굴을 어둡게 칠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미국의 인종차별 역사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짐크로우법'[12]이 19세기 가장 인기 있던 블랙페이스 캐릭터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을 정도로, 블랙페이스의 역사는 곧 흑인 차별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블랙페이스는 19세기 중반 공연 <민스트럴쇼>에서 백인 진행자들이 얼굴을 검게 칠하고 흑인 노예 흉내를 낸데서 시작되었다. 당시는 흑인들이 연극 무대의 주인공으로 서는 것이 불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이 쇼에 등장하는 흑인들은 하나같이 게으르고, 무식하고, 겁이 많은 캐릭터로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었다. 백인 시청자들이 흑인들을 따로 만날 통로가 없던 상황에서, 이러한 이미지는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는 고정관념을 공고하게 만들었다. 일종의 ‘낙인찍기 효과'였다. 이 쇼가 워낙 인기를 끌면서, 흑인들의 방송 출연이 가능해졌을 때조차 흑인 출연자들은 이런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계속해야 했다. 백인 시청자들이 그런 흑인 캐릭터에만 흥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인종주의 역사를 다룬 책 <낙인찍힌 몸>의 저자 염운옥 경희대 연구교수는 “흑인들이 블랙페이스를 볼 때는 노예제가 존재했던 시절부터 ‘인종적 타자’로 취급받아왔던 비극적인 차별의 역사가 모두 딸려온다. 샘 오취리가 블랙페이스를 강하게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라며 “한국인들이 해외 유명인들의 옷에 그려진 욱일기를 보고 식민지배의 역사적 맥락을 떠올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희화화하는 표현이 없다고 해도 홀로코스트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을 ‘분장’할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적 역사에 대해서는 그만큼 교육이 됐기 때문”이라면서 “흑인들의 비극적 역사를 연상시키는 블랙페이스를 ‘별 것 아닌 일’로 여기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의 인권감수성의 부족하다는 뜻”이라고 했다.[13]
이렇게 블랙페이스가 가지고 있는 유구한 혐오의 의미를 감안하면, 이 일에서는 Coffin Dance의 창시자인 벤저민 에두뿐만이 아니라 샘 오취리를 포함한 모든 흑인들은 물론 블랙페이스의 문제점에 관심을 갖고 인종차별 반대를 외치고 있는 모든 사람들까지도 당사자라고 할 수 있으며, 단순히 상징적인 인물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이들의 문제제기를 전부 기각할 수 있을 만큼의 당위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따라서 블랙페이스의 문제는 흑인 인종차별에 대한 토론을 오랜시간 진행한 미국뿐 아니라 모든 흑인사회와 연결된 문제이고, 더군다나 관짝춤은 아프리카의 표준적 흑인사회에 속하는 가나의 신생문화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뒷받침되어야한다. 블랙페이스 는 흑인 당사자들이 불쾌감을 드러내는 명백한 차별이 맞다.

3.3.1.2. 인종차별의 의도가 없었더라도 문제가 없는것은 아니다

의정부고 학생들의 행동에는 차별의 의도가 없었고, 관짝소년단을 대상으로 했을 뿐 흑인이라는 인종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라고 한다. 그러나 의도가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블랙페이스가 의미하는 사안의 심각성을 분장을 한 어린 학생들이나 대한민국 사회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흑인을 자주 마주치지 못했던 대한민국과 달리 아프리카, 유럽, 북미와 남미를 통틀어 전체적으로 흑인의 차별 문제는 수백년간 토론되어 왔고 현재도 진행중인 문제인데, 오취리와 같은 민감한 반응은 흑인 문제에 관심이 부족한 지역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인식에 속한다. 그 와중에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을 거부하고 한국은 순수한 의도로 흑인분장을 했으니 다르게 받아들여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샘 오취리의 표현 방식이 거칠었다는 지적은 다른 논지이므로 그에 대한 논의는 뒤로 미뤄두도록 하고, 그의 발언내용을 살펴보면 그가 학생들의 행동에 대한 강력한 유감을 표했을지언정 그들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세우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행동이 인종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학생들의 의도가 인종차별을 향해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에게 더이상의 책임을 묻지 않으려 하고 도리어 오취리를 질책한다.
이러한 주장은 '의정부고 학생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옳은가'를 토론할 때는 유효한 논점이지만 '그 행동 자체가 인종차별로 간주되는가'를 논할땐 논점을 이탈한 주장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이미 '학생들에겐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쪽으로 이미 전반적인 의견합의가 이루어졌고[14] 현재 이 섹션에서 논쟁하고 있는 것은 후자에 해당되기 때문에 논점을 이탈한 주장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학생들을 비난하거나 학생들에게 책임을 물을지의 여부를 판단할때는 그 학생들의 의도성을 따져봐야 하지만 블랙페이스라는 행동 그 자체가 인종차별로 간주되는 것인가를 판단할때는 학생들에 대한 평가를 하는게 아니라 행위 그 자체를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가졌던 의도성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의도성이 없다는 것은 상대방 쪽에서 너그럽게 넘어가 줄 관용의 이유가 되는것 뿐이지, 반드시 넘어가 줘야하는 당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부주의하게 실수가 발생해 누군가에게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피해를 입혔다면 의도성이 없어서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수 없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뭐가 잘못된거냐고 책임을 더 얹는 것이 아니라 추후에 이에 대한 시정을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문제되는 행동을 외면하고 그 의도만 강조한다면 행동으로 의도치 않게 모욕적인 감정을 느낀 이들은 이에 대해 최소한의 항의도 못하고 입막음만 당할 뿐이다. 이는 나무위키에서 이 문서를 읽는 한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의도가 행위를 정당화 시켜 준다면 예를 들어 해외에서 악의적인 의도가 아니라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욱일기를 사용하는 행위에 대한 시정을 요구할 명분도 사라지게 된다. 실제로 욱일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외국인들의 주된 반응은 "이게 나쁜 의미가 담긴 상징인줄 몰랐다. 한국인들에게 상처를 줄 의도로 쓴게 아니다.", ”단지 실수였을 뿐이다."인데 그 사람들이 "내 의도를 외면하고 행동만 추궁하는 한국인은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입증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들이며 애꿎은 사람만 잡는다”라 말해도 상관없다는 건지 의문이다.
무언가를 표현하려면 기본적으로 대상자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타인의 인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내세울 수 있는것이다.
또한 블랙페이스 분장 없이 음악과 복장, 관짝 소품만으로 패러디를 한 사례[15]도 있다보니 재현도를 위해서라도 분장을 굳이 했어야 했나 하는 의견도 나타나고 있다. Coffin Dance 밈이 유명해진 계기는 관을 들고 춤을 추는 행위와 음악 그 자체이지 그 행위를 하는 당사자들의 인종이 흑인이라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블랙페이스로 넘어가지 않더라도 한때 엄청난 밈이었던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할 때도 딱히 싸이의 피부색에 신경쓰지 않고 흑인이건 백인이건 말춤으로 코스플레이를 했다. 이는 코스 플레이에서 해당 인물의 행동에 더 중점을 둔 것이다. 그나마 외형을 따라한다고 해도 썬글라스 정도에 그쳤을 뿐이지 동양인 흉내를 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흑인 코스플레이어들이 말하는 인종차별 영상에서는 '피부색이 다르더라도 내가 그 캐릭터를 표현할 수 없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라는 요지의 인터뷰가 나온다.
아래 반대 측 주장에서는 과실책임의 원칙을 근거로 의도가 있는 행동만이 비난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오히려 과실책임의 원칙 자체가 의도가 없는 행동을 규율한다. 의도가 있는 행동을 법학에서는 고의라고 하는데, 과실책임의 원칙은 이런 고의를 넘어서 의도는 없었지만, 문제를 일으킬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지만 그 문제를 회피하지 않은 행동에 책임을 물리는 원칙이다. 따라서 과실책임의 원칙 자체가 반대 측의 의견을 반박하는 논거이다. 고의책임이 아니지 않은가.
또한 반대 측은 과실책임의 원칙의 예외[16], 의료법, 환경법, 자동차배상법 등 굉장히 다양한 특별법에서 무과실책임의 원칙이 사용된다. 민법에도 이와 유사한 규정이 상당히 많다. 민법 제756조는 피용자가 불법행위를 저지르면, 사용자가 책임지는 사용자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물론 756조 단서에는 사용자가 일정한 경우에 면책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 규정은 거의 사용되는 일이 없어 이른바 중간책임으로 사용되고 있다.
형사법에서도 의도가 없는 처벌하는 행동은 많다. 과실범이 대표적이다. 과실치사나 과실치상을 생각해보라. '너는 죽일 생각이 없었지만 잘못하면 저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어. 그럼에도 저 사람이 죽게 만들었으니 처벌해야 겠어' 즉, 의도가 없다고 그게 나쁜 행동이 아닌 건 아니다. 의도가 없었음에도 처벌받는 사례는 수두룩하다.
반대 측 논거의 가장 큰 문제는 법의 원칙들이 이번 사안에도 다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처럼 서술하였다는 점이다. 일단 법적 원칙이 틀리기도 했지만, 이번 사안은 '의정부고 학생들의 행동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인가'가 아니라 '의정부가 학생들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가 의정부고 학생들에게 법적으로 책임묻자는 게 아니지 않는가? 물론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지만, 말 그대로 최소한일 뿐이다.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그게 모두 옳은 행위인 것은 아니다.

3.3.1.3. 다른 문화상대주의적 관점과 동일하게 비교해야 한다

반대측은 “눈찢기는 아시아인 내지 아시아인종에 해당하는 불특정 대상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행위지만, 관짝소년단은 '특정인물' 내지 매우 한정적인 집단을 표현한 것이다. 즉 행위가 나타내고자 하는 근본적인 의도가 완전히 다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의도, 즉 인종적 특징을 대상으로 했는지 여부로 눈찢기와 관짝소년단을 비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종차별 여부에서 다루는 것은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하면서 시도한 블랙페이스이지, 관짝소년단 자체가 아니다.
또한 상대 측은 의정부고 학생들이 시도한 블랙페이스는 인종적 특성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비교대상인 눈찢기는 또 인종적 특성을 의도했다고 전제하고 있다. 반대측은 눈찢기에서 행위 자체를 논하면서 블랙페이스에서는 갑자기 의도를 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면 아시아인이 아닌 다른 인종들이 강남스타일이나 PPAP를 패러디 한답시고, 눈찢 퍼포먼스를 한다던가, 얼굴을 누렇게 칠하면서 아시안의 신체적 특징을 흉내내는 것은 무엇인가? 반대측의 논리대로라면 차별 의도가 있거나 인종적인 특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상황이니까 문제 삼으면 프로불편러가 된다.
실례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 한국 덕분에 16강에 진출한 멕시코 축구팬들이 한국에 감사를 표하면서 눈찢기 포즈를 취하는 사진을 올린 일이 논란이 된 적 있는데##, 당사자들은 해당 포즈가 아시아인에 대한 비하란 것을 몰랐고 악의가 없었다고 하였으나 한국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악의가 없었으니 인종차별이 아니다"라고 그냥 넘어가지 않고 문제제기를 하였고 당사자들도 이에 대해 사과하고 사진을 삭제한 일이 있었다. 샘 오취리 역시 블랙페이스에 대해 당사자의 의도는 무해했더라도 흑인으로서 언짢음을 표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시아인들이 불쾌하고, 차별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차별 행위인 것이고, '''인종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어도''' 아시아인의 ‘인종적 특징’이 본의 아니게 들어갔기 때문에 인종에 대한 묘사로 비춰지는 것이다.
또 일부는 블랙페이스가 분장이라는 큰 카테고리의 흑인비하라는 특정한 의도로 이루어진 것만 지칭하는 것이고 하겐크로이츠나 욱일기는 제국주의라는 대집단을 배경으로 홀로코스트와 일제의 잔혹한 역사를 미화하기위해 탄생한 상징이라는점에서 블랙페이스와는 비교가 어렵다고 하지만 이러한 변명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런 대소관계의 논리로 나쁘게 쓴 욱일기만을 비판하고 운수대통과 근하신년을 상징한다는 욱일기를 장려할수는 없다. 또한 18세기 제국주의에서 출발한 흑인 노예화가 인종차별을 야기했다는 것은 왜 인지하지 못하는가? 대집단인 제국주의에 대한민국과 황인종도 같은 고통을 받았다. 즉 같은 논리로 따졌을때 흑인의 인종차별과 일제강점기 역사의 배경은 같다고 할수 있는것이다. 따라서 대소관계의 상징적 의미를 따져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의 행동을 흑인 비하와 어떻게든 분리시키려고하는 노력은 하지 말아야한다.

3.3.1.4. 더이상 블랙페이스에 대한 사회적합의를 미룰수 없다

과연 일각의 주장대로 블랙페이스 문제는 인종이라는 잣대로 사람들의 의사를 함부로 제단하고 금지하려 하는 잘못된 발상인가?
블랙페이스는 문서 자체에도 나와있고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그 전통에 얽힌 흑인에 대한 비하적 의미가 심하여 서구권에서는 인종차별이라는 압도적인 합의가 자리잡고 있다.
압도적이라 말할수 있는데에는 여러가지 근거가 있는데, 첫번째로는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 역사가 세계 인종차별 역사에 해당할만큼 이 문제에 대하여 가장 논의가 많이 이루어진 역사가 있는 미국의 오랜 토론끝의 합의를 세계에서 표준적으로 택하고 있으며, 두번째로 그 미국에서 2019년 실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백인이 블랙페이스를 하는것을 받아들일수 있냐는 설문에서 yes(받아들일 수 있다)를 압도하는 no(받아들일 수 없다)의 응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17] 링크
이 분장 자체가 일종의 혐오의 상징이 되어서 터부시되고 있는 것인데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아직도 전세계를 두고 보아도 인종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흑인에 대한 차별문제는 서구권에서 현재진행형인 주제이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같은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흑인이 사회적인 탄압을 받는다는 인식을 다수가 공감하고있다.
우리는 이유가 어떻든 블랙페이스라는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것을 아는것이 중요하다. 더 이상 사회전반에서 흑인이 의도적인 차별을 받지 않는 시점에 왔는데도 블랙페이스가 금기화된 이유는 긴 역사를 가진 흑인의 신체적 형태를 이용한 희화화, 개그소재 이용, 비하가 자료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더이상 피부색에 의한 차별이 만연하지 않을지언정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에 현대문명의 역사는 아직 짧고 인종차별의 역사는 길다.
대한민국은 더이상 오래전부터 살아온 한민족만의 사회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2020년 현재 다문화주의 국가로 자리잡은 상태이며, 2019년 대한민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의 수는 2,524,656명에 이른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사회로서 대한민국이 추구해야할 지향점에 문화적 포용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흑인이 없던 기존의 대한민국과 달리 오랜시간 토론과 역사가 있었던 유럽과 아메라카, 아프리카의 유색인종에 대한 금기시되는 행동을 우리 또한 자제해야만 한다. 이것은 더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내가 그동안 살아온 세상에서 문제가 안생겼으니 거부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버틸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번 논란에서 흑인들의 비판은 흑인의 피해의식에서 시작된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생각보다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이 후진적으로 남아있는 국가에 속한다. 2018년 12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인종차별 정서가 심해지는 한국의 위기상황 경고하며,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이주민이 그 혜택은 향유하지 못하는 현실이 대한민국의 인종, 피부색, 민족, 사회계층 차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의 인종차별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며 한국의 인종차별 철폐협약 이행에 관해 심의했다. 특히 대다수 선진국 국가가 시행중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는 것에 대해 한국 정부에 대책 수립을 권고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에 2020년 3월 한국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법제화 를 위해 연구한 보고서에 한국사회 인종차별의 실태에 대해 상세한 통계와 함께 사례들이 적혀있는데, 한국사회가 차별이 얼마나 극심한지 그대로 보여주었다. 링크
다음의 사례는 대한민국의 아프리카 유학생이 2019년 12월 관련 연구에 참여하면서 설문에 응답한 내용이다.[18]

코트디부아르 출신 D의 사례: TV나 SNS에서 나오는 아프리카 비하적인 방송을 보면 ‘무식한 사람들’이란 생각부터 든다. 한국 사람이든 누구든 밖(외국)에 나가보지 않고 당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세네갈 출신 I의 사례: 여전히 아프리카 사람은 교육도 못 받고 아직도 정글에 사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명동 같은 시내에 나가면 사람들이 양해도 없이 사진 찍는 것은 아주 불쾌하다. 버스나 전철을 타면 내 옆에 빈자리가 있어도 사람들은 앉지않고 어린 아이들은 엄마한테 나를 보면서 “왜 피부가 다르냐”고 묻는 걸 듣는다. 흑인이라도 미국에서 왔다고 하면 뭔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온 줄 알고 물어봤다가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말하면 실망하고 대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검은 피부, 외모, 가난한 국가, TV에서 아이들 배고프고 물 없는 그런 이미지만 보고 아프리카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자들은 아르바이트 구직 활동을 하면서 국적과 피부색이 가장 큰 장벽임을 경험하였다. 1차 경험은 구직 과정에서 일어나는 무시와 냉대이며, 2차 경험은 아르바이트 활동 중에 경험하는 비하적인 언행이다. 한국어 수준이 높은 참여자들은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차별과 무시, 욕설을 고스란히 알아듣게 된다. 이와 같은 아르바이트 진입의 기회와 차별 장벽은 참여자들에게 짙은 마음 속 상처로 남았다.

사례통합: 연구 참여자들은 한국사회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무시와 냉대를 경험하고 있으며 특히 아르바이트 구직과정에서 한국인들이 보여주는 차별경험을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프리카 출신 국적과 검은 피부색은 구직활동에 있어 가장 불리한 조건이다.

위의 논문을 통하여 대한민국에 부정할수 없는 제3세계 출신 흑인을 향한 인종차별적 대우와 혐오를 확인할수 있다. 단, 대한민국의 인종차별의 형태는 타 문화권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것 또한 상세히 나와있다.
또한 시커먼스나 2000년대까지만 해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었던 피부를 검게 칠한 원주민 분장처럼 한국에서도 블랙페이스를 희화화의 목적으로 사용한 사례가 있었고 이미 80년대부터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존재해 왔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에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흑인 비하적인 분장을 내보냈다가 비판을 받고[19] 제작진이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 있다.# 명백하게 흑인을 희화화할 목적으로 행해진 블랙페이스 분장은 일각에서 주장하듯 영미권에서만 행해진 것이 아니었고, 한국에서도 꾸준히 행해지는 동시에 이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되었던 주제임을 감안하면 "블랙페이스는 서양권에서만 행해진 한국과 상관없는 일이니 외국의 잣대를 한국에 들이대지 말라"라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대한민국의 흑인에 대한 문화적인 배려가 부족한 상황에 흑인들은 반복적으로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는것에 지친 상황이다. 가나에서도, 가나를 제외한 외국의 입장에서도 샘 오취리는 대한민국의 연예인이 된 흑인으로서 유명한 사람에 속한다. 한국사회와 그나마 가장 가깝게 맞닿아있는 샘 오취리의 눈과 입으로도 그들의 인식을 변화하지 못한다는것을 느낀다면 흑인들이 대한민국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만약 블랙페이스가 흑인들만의 피해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들의 의견을 묵살하기로 결정했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다. 인종차별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가진 모든 국가와의 문화적 교류의 감소가 요구된다. 더이상 대한민국은 자국민의 인종차별을 외국에서 당할 때에도 항의하기 힘들며 아무리 순조롭게 지내던 상황에도 블랙페이스 이야기가 나오면 모든 불이익을 감수해야한다. 그게 아니면 문제를 회피하는 본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피곤하고 답답한 논쟁을 이어가야한다.
실제로 몇몇 백인들이 kpop을 따라한다며 얼굴을 어둡게, 혹은 노랗게 칠하거나 쌍커풀을 없애고 눈을 작게 보이게 하는 메이크업을 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이에 한국인들이 불쾌함을 호소하자 "너희처럼 변하려는 건데 좋아해야 하는게 아니냐"라며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 사람이 한국인이나 아시아인을 조롱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도 상당수 한국인과 아시아인들은 뭔가 찝찝함과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해당 문화권 사람들에게 불쾌함과 모욕감을 줄 수 있는 행위는 자제하는 게 옳을 것이다. 해당 문제에 이야기하는 유튜버 영상 (영어).

3.3.1.5. 정치적 올바름을 향한 시대적 요구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관심은 결국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관심의 한 축에 속한다. 한국사회는 부당해고문제, 낙하산 인사, 성차별, 서열강요 및 괴롭힘 등등의 공정사회를 이루기위해 피할 수 없는 주제들에 적지 않은 관심이 있고, 이런 문제를 토론한다는것 자체가 대한민국이 정의로운 사회를 향해 끝없이 노력한다는 의미이며 그 이야기의 끝에 어떤 결론이 명확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부분적이나마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토론은 중요하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인종이 가진 생물학적 구분을 더 이상 깊게 파고들 수 없는 것도 정치적 올바름 때문이다. 순수히 학문적인 영역에서도 영향을 받을만큼 강한 시대적 요구가 자리잡은 상황에, 단순히 코스프레를 한다는 목적에서도 즐거움만 있어야할 패러디에 가장 민감한 인종차별의 요소를 거리낌없이 쓰는것을 좋게 봐주리라 기대하는것은 환상에 가깝다.
사실 한국인의 내면화된 인종주의에 대한 고찰과 다문화주의와의 충돌을 우려하는 내용은 이 사건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제기되어온 문제이다. 관련 논문에서는 한국인의 무의식적으로 범해지는 흑인에 대한 혐오를 단순한 단일민족주의와 순혈주의를 넘어서 흑인과 비교해 더욱 백인화된 존재로서 우월감을 느끼기 때문으로 지적하고있다.

한 검은 피부색 혐오 중독증에 걸린 듯한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은 오랜 세월 이어온 단일민족주의 순혈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한국 사회 일반의 뿌리 깊은 외국인 배타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팽배하고 있는 인종차별을 한국의 순혈주의 자민족중심주의로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그것은 이러한 인종차별이 모든 외국인이 아닌 유독 한국인보다 검은 피부를 가진 외국인에게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중략)

비서구인 즉 유색인종의 '백색신화'(white mythology) 에 대한 맹신과 백색 에 대한 욕망은 서구 중심적 '근대성'에 의해 구성된 지식과 존재의 '식민성' 에 그들이 포섭된 결과이다. 19세기 말 한국의 백인 우월주의가 내재된 인종주의의 수용과 확산도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

(중략)

20세기 초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은 서구의 정신분석학을 전유하며 식민지 흑인이 왜 검은 피부를 경멸하며 하얀 가면을 쓰고자 했는지를 그의 저서 '검은 피부, 하얀 가면'(Black Skin, White Masks) 에서 밝히고자 했다. 앤틸레스 (Antilles) 흑인에게 백인이 그들의 운명이 된 것을,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문화를 상실한 채 백색 신화의 신봉자가 된 것에 대한 파농의 비판과 질타는 오늘날 전지구적 세계 체제(global world system) 에서 작동하는 인종의 정치학을 앞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파농의 논의는 오늘날 백인 인종주의가 내면화된 채 인종차별적 경향이 출현하고 있는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중략)

한국의 인종현실은 백색 가면을 쓴 굴절된 황색 우월주의가 유색인종에게 물질적 심리적 폭력을 강제하고 있다. 이러한 황색 우월주의 또한 파농이 말한 열등 콤플렉스의 왜곡일 뿐이다. 열등 콤플렉스에 의해 왜곡된 채 발현된 황색 우월주의는 열등 콤플렉스에 의해 백인이 되고자 한 앤틸레스 흑인의 태도와 동일한 것이다. 한국인과 앤틸레스 흑인이 유색인종에 대해 멸시와 차별의 태도를 보인 이유는 그들보다 더 백인화 되어 있다는 문명화 되어 있다는 착각에서 나온 것이다.

[20]

3.3.2. 인종차별이 아니다



3.3.2.1. 의도의 문제

어떤 행위를 평가하거나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때는 '''원칙적으로 의도를 고려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헌정질서가 채택한 근대 사법의 3대 원칙 중 하나인 과실책임의 원칙에도 부합한다. 일부 사례의 경우에는 '무과실책임'(인식과 의사와 무관하게 행위 내지 어떤 결과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책임을 묻는 경우)을 긍정하기는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측의 입증곤란을 이유로 입증책임을 완화하거나 없애는 것으로서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일각의 주장처럼 '의도는 중요치 않아. 네가 그 행위를 했다는 게 중요하지.' 같은 논리가 팽배하게 되었을 때 그로 인한 피해자는 '그런 논리를 펴는 당사자'가 될 수 있으며 '국가와 같은 거대 집단'이 그런 논리를 형사재판 등에 악용하게 되면 권위주의, 반민주주의 시절로 회귀되는 결과에 이르게 되어 더더욱 답이 없어진다.
한편 의도무시 논리는 주장자 스스로 자신의 핵심 입증사항을 스스로 방기하거나 회피하는 것으로서, 공론장에서 이런 주장을 펼치게 되면 주장책임을 다하지 않은 바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특정인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과정에서는 그런 주장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당화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의도 유무의 논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또한 법적인 책임은 못 지워도 도덕적인 비난을 가하고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찬성측 주장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최소한 대한민국 국내에서는 해당사항이 없다. 대한민국은 흑인, 더 크게 보면 타 인종이 많이 거주하는 다문화 문화권과 사회가 아니고, 다문화주의적 교육과 시민의식, 에티켓에 대하여 큰 비중을 두고 교육하는 나라도 아닌 건 솔직히 사실이고, 또 그런 배경에는 제국주의 시절 서양권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폐쇄적인 단일민족국가로 수 세기를 살아와서 그럴 필요 또한 없었다는 배경은 감안해야 한다.
이 이야기가 왜 나오냐면, 위의 과실치사나 과실치상의 경우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잘못하면 저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어야 성립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예측조차 하지 못했다면 과실에 대한 죄도 성립하지 않는다. 기대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즉, 이 사건의 경우 흑인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었(==계획범죄에 대한 면책)고, 거기에 더해서 블랙페이스 행위에 대한 국제적인 보편적 인식을 기반으로 국제적으로는 해당 행위가 흑인 비하, 인종차별 행위에 해당한다, 또는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조차 몰랐으면(==기대가능성이 없다), 과실범에 대한 사안도 면책이 된다.
쉽게 생각해서 어떤 운전자 A가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도로 위의 사람을 치었다고 생각해 보자. 왕복 2차선 수준의 동네 골목길에 인도의 구분이 없고, 차와 사람이 섞여 다니던 길에서 충분히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휴대폰을 보며 충분히 감속하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부주의하게 주행을 하다가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던 사람을 치어 죽었다고 생각해 보자. 이건 과실치사에 해당한다. 보행자도 찻길 가장자리로 통행하게 되어 있는 좁은 골목길이고, 주변에 상점과 주택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어 운전면허 및 관련 교육을 이수한 성인의 경우, 충분히 언제든지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속을 하고, 전방주시를 소홀히 했으므로 설령 사람을 치어 죽이려던 의도가 없더라도 이에 대해 과실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고, 밤중인데다, 가로등이 고장나 어두껌껌한 왕복 8차선 고속도로에, 안개까지 짙게 낀 상황에서, 전방 주시를 꼼꼼히 하고, 규정속도 이하로 주행하고 있는 운전자 B가 있다. 술에 취해서 고속도로 노면 위에 드러누워 있던, 아스팔트 색깔과 동일한 색상의 옷을 입고, 피부색을 가져서 도로 노면과 전혀 육안구분이 불가능한 흑인을 치어 죽였다. 이 때는 과실치사도 당연히 성립하지 않고, 그 어떠한 민형사상 책임도 없다. 이런 경우 도덕적 책임을 묻거나 비난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1차적으로 자동차전용도로에 보행자가 드러누워 있다는 사실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며, 2차적으로 주변 환경(한밤중, 짙은 안개, 고장난 가로등, 아스팔트 색깔의 피부색을 가진 흑인, 검은 옷 등)에 의해 시각적으로 인지하고 사고를 회피하려 노력할 기대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3차적으로는, 운전면허 관련 교육을 할 때 이러한 상황까지 예측하고, 주의해야 한다고 교육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물론 치어 죽인 게 잘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민사적, 형사적 책임은 물론, 도덕적으로도 가해자를 비판할 수는 없는 상황이란 것이다. 당시 이 사건의 경우에도 여러 제반사정을 감안해 보면 사실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1차적으로, 역사적 특성으로 극단적인 단일민족국가인 대한민국에 평생 거주한 일개 고등학생이 글로벌, 다문화적인 시선에서는 해당 행위가 흑인 비하 내지는 차별행위가 될 수 있다는 예측은 전혀 할 수 없었고,
2차적으로, 한국의 문화와 다민족국가(미국 등)의 문화는 많이 차이나며, 현실적으로 흑인과 같이 살거나 흑인 친구를 사귀거나, 서민층, 빈민층도 쉽게 미국에 가서 흑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지리적, 문화적 여건이 되지 못해서 그러한 글로벌적인 보편가치를 해당 학생이 학습할 수 있는 기대가능성이 없었고,
3차적으로, 대한민국 교육계, 또는 외무부에서는 이러한 상황이나 행위를을 조심해야 한다고 교육하거나 주의를 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행위 자체만 놓고 보면 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민형사상 책임을 지우거나, 도덕적인 비난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와 같이 극단적인 대응을 하고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면, 그것은 저러한 제반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게다가 외국인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잘못된 방법으로 해당 행위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고 해당 학생들을 비난한 샘 오취리의 잘못이 더 크다고 할 것이다.
단순히 피부색을 흑인의 피부색으로 분장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인종차별을 목적으로 한 블랙페이스'라고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사실상 가장 큰 의견 차이를 불러일으키는 요소일 것이다. 이 명제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으며, 그 답에 따라서 동일 내지 유사 사건들에 대해서 전혀 다른 입장을 갖게 될 것이다.

'코스프레를 위한 재현 행위가 인종차별의 의도로 조롱하기 위한 행위인 것인가?'

만약 1980년대 개그 프로그램 <쇼 비디오 쟈키>의 코너 '시커먼스'처럼 흑인을 희화화하는 경우라면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사안은 비형식적 오류의 일종인 '''의도확대의 오류''' 내지 '''문맥을 무시한 인용의 오류'''로 연결된다.[21] 이걸 이 사안과 연결시켜 보자면, 전자는 언행 당사자가 의도하지 않은 인종차별까지 의도했다고 단정하는 오류이고, 후자는 패러디의 맥락을 무시한 채 피부를 검게 했다는 점만 강조하여 인종차별의 의도가 있다고 단정하고 인용하는 오류이다.
단순히 얼굴을 검게 칠했다는 것만으로 인종차별 의도가 담긴 것으로 단정된다면, 흑인에 대해서는 코스프레나 패러디도 일절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사실상 흑인 이외의 인종이 흑인분장을 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흑인으로서 열등감(컴플렉스)을 느끼고 흑인에 대한 성역화 내지 역차별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도 '블랙 피싱(Blackfishing)'이라는 이름으로 피부를 검게 태우거나 검게 분장하는 것을 비난하고 금기시하는 등 마치 흑인 이외 다른 인종이 침범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만드는 성역화가 이뤄지고 있다. 영상(연합뉴스) 이런 배타주의적인 발상은 장기적으로 흑인문화를 더더욱 위축시켜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고착화시킬 우려마저 있다. 인종차별이라고 주장하는 측의 의견대로 흑인 분장을 제외하고 의상과 소품만으로 재현하려 했다면, 인종차별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진 누군가가 '검둥이는 되기 싫다는 것이냐'라는 식으로 트집을 잡을 땐 뭐라고 답해야 하는가? 즉, 다른 인종이 흑인 유명인을 코스프레할 때 검게 칠하면 블랙페이스, 안 칠하면 화이트워싱(내지는 이번 경우는 동양인들이 주체이므로 옐로워싱)으로 어떻게든 인종차별로 물고 늘어지는 게 한도 끝도 없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앞의 두 행위를 피하기 위해 흑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의 사람이나 캐릭터들만 코스프레의 대상으로 한다 해도 ‘흑인의 존재를 지운다. 인종차별이다’는 주장까지 가능하다.
'차별'이란 의도와 목적이 전제된 행위다. 의도도, 목적도 상관없이 교집합을 형성하는 것만으로 차별로 몰고 가고 금기시 한다면, 이 세상에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란 존재할 수 없다. 앞뒤 다 자르고 피부색을 어둡게 하는 행위니 인종차별이라면, 보령머드축제는 인종차별축제인가?사진 단지 검어진다는 이유로 이를 블랙페이스라 주장하는 흑인이 있다면, 그걸 존중하여 폐지를 검토하는 것이 도덕적인 행위인가?
욱일기를 비롯한 군국주의 상징도 마찬가지다. 창작물이나 심볼로 이것들을 이용하는 사실 자체는 아무 문제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의미로 썼느냐는 것이다. 그간 영화, 게임 등에서 나치히틀러가 수없이 등장하지만 문제시된 적이 거의 없는 이유는, 절대다수가 나치를 악역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를 조금이라도 미화하거나 옹호하는 시선을 보여준 작품들에 한해서 논란이 발생하는 정도다.[22] 일본매체의 욱일기 사용이 한국에서 문제가 되는 이유도, 단순히 그것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부정을 희석하거나, 나아가 긍정적으로 쓰기 때문이다. NHK에서 일제시대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며 욱일기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이를 군국주의 미화로 받아들일 것인가?
따라서 이건 애당초 블랙페이스와 동일선상의 비유도 될 수 없다. 설령 지리적, 문화적 한계로 인해 군국주의 상징물을 모르고 썼더라도 이것들이 그 자체로 가진 부정적인 의미를 이해시키고, 쓰는 것을 금지시키는 대신 쓰는 목적을 다르게 유도하면 되는 것이다.[23] 인류를 비극으로 몰고갔던 범죄의 상징물이, 피해자의 역사를 이유로 아예 그 자체를 금기시하는 '흑인의 형상'보다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다는 웃지 못할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24]
의도의 문제에 대해서 다룬 기사는 링크 참조 바람. 기사(머니투데이-김고금평)
또한 본인들이 패러디 잘했다며 좋아하며 끝낸 상황에서 자꾸 무슨 이유로 인종차별 여부를 논하냐는 의견도 있다.

3.3.2.2. 눈찢기 등의 반대논거에 대한 반박

이번 사례는 눈찢기 포즈와 곧잘 비교되지만, 애초에 동일선상에 두기 어렵다. 눈찢기는 아시아인 내지 아시아인종에 해당하는 불특정 대상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행위지만, 관짝소년단은 '특정인물' 내지 매우 한정적인 집단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행위가 나타내고자 하는 근본적인 의도가 완전히 다르다. 눈찢기는 인종적 특성을 과장시켜 강조하는 것이고, 의정부고 패러디의 정체성은 '''관짝소년단 그 자체다.''' 이 경우, '흑인'이라는 정체성은 부차적인 것으로, 뒤로 밀려난다. 밈의 주체가 백인이었건, 아시아인이었건, 무슨 인종이었건 지금처럼 인기를 끌었다면 그것이 동물이나 외계인이 되었어도 마찬가지로 따라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의정부고 코스프레의 대상은 관짝소년단이지, 보편적인 흑인이 아니다. 이것에 대해 무려 '인격침해'를 말할 수 있는 자격은 관짝소년단에게만 있다. 일부러 흑인들 있는 자리에서 보란듯이 연출한 것조차 아니다. 도대체 누구의 인격을 침해한 것일까.
또한 눈찢기는 대부분 동양인을 따라 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다. 처음 보는 사람이 뜬금없고 이유 없이 과장되게 자신을 따라 한다면 누구나 기분이 나쁠 것이다.
눈찢기를 굳이 비교하려면, 흑인의 특징을 의도적으로 과장하고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블랙페이스 공연 자체와 견주어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의정부고 학생들의 분장에 어떤 비하의 의도를 찾아볼 수 있는가. 관짝소년단, 백 번 양보해도 자연 상태의 흑인을 충실하게 '재현'하려고 했을 뿐이다. 즉, 의정부고 학생들의 코스프레를 동양인 차별로 역지사지하길 원한다면, 눈찢기가 아니라 흑인이나 백인이 최대한 동양인처럼 분장하고자 노력한 결과를 예로 들어야 한다. 단지 흑인을 '표현'할 권리를 박탈하거나 강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아무리 흑인이 인종차별과 관련된 괴로운 역사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타 인종에 대해[25] 인종차별을 빙자한 억압을 행사할 자격으로 이어질 순 없다.
가로로 긴 눈매를 한 특정 아시아인을 재현하기 위해 눈찢기를 하는 경우에도, 이번 사례와 차이점이 있다. 눈찢기는 분장이 아니다. 가로로 긴 눈매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손으로 당기고 있는 것은 특정 아시아인을 충실하게 재현한 것이 아니다. 분장을 통해 특정 아시아인의 눈매를 충실히 재현했다면, 눈찢기 포즈를 한 경우에 비해서는 큰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눈이 엄청 작은 캐릭터를 코스프레할 때 손으로 눈을 찢지 않고 묘사한 사례가 있다. 포켓몬스터 웅이 코스프레
여기서 문제점이 드러난다. 백인 유명인이나 백인 캐릭터의 코스프레를 위해 분장하는건 아무렇지 않다가, 흑인 유명인이나 흑인 캐릭터의 코스프레를 위해 분장하는 것은 인종차별이라고 주장하는건 전형적인 이중잣대라고 볼 수 있다. 백인, 흑인, 황인 가리지 않고 타 인종 분장 그 자체를 비판한다면 차라리 주장이 일관되기라도 하다. 그러나 백인은 괜찮고 흑인은 인종차별이라는 주장은 오히려 인종차별을 더욱 부추기는 역효과만 날 수 있다.
사실 눈찢기와의 비교는 매우 간단히 해체될 수 있는데, 역으로 한국인이 눈찢기를 용인한다면, 흑인 역시 흑인분장을 용인할 수 있는가? 라는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다.[26] 눈찢기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도 박지성, 손흥민 등 많은 관심을 받는 스타들의 경험에 의한 것이었고, 대중 개개인의 분노가 축적되어 뿌리부터 차별로 인식된 것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순간부터 눈찢기는 인종차별 행위라고 '교육'을 받은 측면이 크다.[27]

3.3.2.3. 인종차별 주장이 내재한 한계

현재의 논란은 '인종'이라는 막연한 기준만으로 '특정인물, 집단'이라는 세세한 대상의 모든 것을 단정하려고 한, 시작부터 무리하고 소모적인 논쟁이었다. 버락 오바마, 마이클 조던, 펠레를 설명할 때 그들이 '흑인'이라는 사실이 맨 앞에 언급되어야 하는가? '''피부색이 세상 그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요소인가?'''[28] 여차 정치적 올바름 논란에서 보이는 행태들과 흡사하게도, 정작 '인종'을 '개인'보다 우선하여 주객전도 된 것은 비판하는 사람들 측이다.
또한 서구권에서의 인종차별에 대한 논의도 말이 좋아 논의지, 현실은 ‘흑인은 절대적인 피해자, 백인은 무조건 가해자’ 포지션을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이런 주장을 했다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낙인 찍히는 순간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기 십상인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29] 백인이 흑인을 공격한 것은 인종 문제로 뉴스를 타지만, 흑인이 백인을 공격한 것은 그냥 일반 범죄 취급이다. 기사 이런 사건에도 언론과 저명인사들 대부분은 감히 흑인을 비판하지 못한다.
이런 이중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가 NBA에서 일어났다. NBA에선 과거 흑인 비하 발언으로 인해 구단주가 농구계에서 추방된 사례가 있으며,기사 최근 BLM 운동의 영향으로 흑인 인종차별에 항의하며 NBA 플레이오프까지 보이콧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정작 흑인 인권운동에 앞장서던 흑인 선수가 백인 선수에게 인종비하 발언을 하자, 어떠한 공식적인 징계도 내려지지 않았다.기사[30]
이러한 풍조 및 사례가 흑인사회 내에서 문제시 되고 자정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과연 그들이 외치는 '인종차별 금지'와 같은 구호며 문화를 순수한 의도로 보고 무비판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옳을까? 문서 전체에서 수차례 지적되지만, '''우리는 유사한 구호와 거기에 섣불리 권력을 부여했을 때의 폐단을 이미 경험했다.'''
즉 인종차별이 나쁘다는 것 자체는 만국공통이나, 무엇이 인종차별인가, 인종차별의 가해 및 피해 주체는 누구인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공식적인 역차별 사례마저 존재한다.
코스프레의 명확한 대상이 이를 즐거워하고 축하해주고 있는 마당에, 단지 ''''기분 나빠하는 흑인도 있으니까''''라는 이유로 죄의식을 가져야 하고 위축되어야 한다면, 표현의 자유의 가치를 얼마나 형편없이 취급하고 있는 것인가. 혹시라도 흑인이 기분 나빠 할지도 모르는 모든 행동은 시작부터 포기하거나, 흑인 몰래몰래 행해져야 흑인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고, 그것이 포용일까.
현재 한국사회에서 의정부고 코스프레 = 인종차별이라는 수학적 공식이 부모에 대한 효도 수준으로 당연시되지 않고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국민적 상식과 사회규범을 보편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31] 너무나 당연하다. 다른 역사를 거친 다른 문화이기 때문이다.[32] 이것을 제쳐두고 '인종차별이다'라는 주장과 그 과정에서 비판을 거부하고 '외국에선 이러니까'라는 자세, '흑인'이라는 지나치게 포괄적인 기준에 맞춰 국민의식을 바꾸자는 발상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만약 이번 논란이 비판자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모는 과정을 거쳐 정치적으로 용인된다면, 이미 차고 넘치는 프로불편러들의 사례에서 보듯 수준 낮고 극단적인 사례마저 막을 방법이 없다. 여긴 한국이고, 한국에 받아들여지는 문화는 한국적으로 소화되어야만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
인종차별이 나쁘다는 것은 전세계 대부분이 공유하는 가치이나, 인종차별의 범위 및 기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전세계 모든 국가와 민족들이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하고 사유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이것은 인종차별 반대를 부르짖는 자들이 말하는 '다양성의 인정'과 정반대에 위치하는 '획일화'다.
블랙페이스를 금기시 하는 것이 흑인 문화에 대한 존중이라는 주장에 대해, 상기 기사의 김고금평 기자는 이렇게 반론한다.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배척이나 금지가 아닌 드러내며 이해하는 것이다.".

3.3.3. 명확한 답이 나올 수 없다


차별이라는 것은 불쾌감, 모독감 같은 본능적인 감정에서 기인한다.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없는 동물들도 감정은 느낄 수 있기에 차별행위에는 화를 낸다.# 이런 사람의 감정은 정해진 규칙이나 타인과의 합의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감정을 느끼는 요소는 천차만별이다. 개개인의 문화, 가치관에 따라 동일한 행위를 보더라도 다른 감정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블랙페이스를 차별행위로 받아들이는지, 차별행위로 받아들이지 않는지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이유는 명확하게 규정된 규칙이 아닌 감정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33] 타인이 차별행위라고 느끼는 감정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면 괴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다른 감정에 대해 긍정이나 공감을 강요하는 행위나, 틀린 것이라도 철저하게 부정하는 것이나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입맛대로 강요하는 것은 똑같다. 정치적 올바름이 비판받는 이유중 하나인 교조주의적 행태를 서로 범하는 것이다.[34]
관짝소년단이 괜찮다고 했기에 문제 없다는 주장의 오류도 여기서 기인한다. 샘 오취리 본인은 얼굴을 검게 칠하는 블랙페이스를 문제삼은 것이지 선글라스 끼고 관짝을 어깨에 짊어지고 춤춘것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다. 코스프레가 아닌, 블랙페이스로 인해 불쾌감을 느낀 주체는 샘 오취리인데, 정작 제 3자인 관짝소년단의 기준을 들고 와서 샘 오취리의 감정을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샘 오취리가 불쾌하게 느꼈다고 했기에 차별이라는 주장도 샘 오취리 본인 혹은 그와 같은 생각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니 이를 기준으로 타인의 감정을 평가한다면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샘 오취리가 차별이라고 해서, 그게 나에게도 차별행위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내가 차별행위가 아니라고 해서, 샘 오취리에게도 차별행위가 아닌것이 되지 않는다.
차별행위가 인간성을 의심받는 저급한 행위로 취급되는 이유는 '모독감을 주는 행동을 하여 차별받는 당사자에게 인간으로써 지켜야 할 매너를 지키지 않기 때문'이지 그 행위 자체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35] 올바름이라는 개념 자체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올바름이라는 것을 차별행위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정작 차별행위를 당해도 차별을 한 사람이 나는 올바르다고 생각하기에 문제없다는 자세를 취해도 역시 차별행위로 문제삼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모든 차별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타인이 차별이라고 느끼는 것을 하나의 답으로 규정하는건, 그 논리 그대로 차별에 이용당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차별을 당했다고 화를 낼 자격 자체가 없어지는 셈이며,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선 내로남불밖에 답이 없다.
중국인이 아닌 아시아인들이 해외에서 가장 흔하게 겪는 현상으로는 일부 서양인들이 아시아인들을 보면 "니하오"라고 인사하는 경우가 있다. 놀리기 위한 의도를 가질 때도 있고, 악의 없이 진심으로 순수하게 인사하는 것뿐일 때도 있다.[36] 악의 없이 "니하오"라고 하는 경우에는 해당 발언을 한 사람이 아시아인과 교류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그런 행동이 중국인이 아닌 아시아인에게 불쾌감[37]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하는 것이다.[38] 누군가는 나름대로 선한 의도를 가지고 반가움을 표현하는 옳은 방식으로 "니하오"라고 인사했지만 누군가는 불쾌감을 받는다. 동일 행동에 상반된 감정을 가지는 것이다.[39]
블랙페이스가 차별행위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정할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수치로 잴 수 없는 감정을 재는 행위와 같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에 다중 관점이 적용돼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위 '인종차별이 아니다' 주장 속에는 이 항목에 더 어울리는 내용도 적지 않다. 이번 인종차별 논란을 '도덕의 강요'로 보고,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 및 개개인의 사상의 차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서술은 굳이 의정부고 코스프레의 선악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접근조차 이 주제를 인종차별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대립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권, 생명 존중, 정의와 같은 보편적 사회규범을 무시하는 관습까지 정당하게 간주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3.3.4. 문제의 핵심은 인종차별 여부가 아니다


샘 오취리의 본래 입장문을 보면 의정부고 학생들의 행위가 인종차별이라고 단정지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40] 그 행위가 흑인들에게 불쾌한 것이라는걸 지적하는 것이 전부이다. 서구권에서[41] 흑인들이 블랙페이스를 불쾌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 행위 자체보다는 그 행위가 가진 역사적 맥락에서 기인한다. 한국인들이 욱일기를 불쾌하게 여기는 이유가 방사형의 패턴 그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일제의 전쟁범죄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기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블랙페이스와 욱일기가 가진 근본적인 속성이나 배경은 다르더라도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행해진 사건들 때문에 각 집단이 가진 역사적 아픔을 떠오르게 하는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는 부분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욱일기는 해를 중심으로 빛이 뻗어나가는 모양을 기하학적으로 형상화시킨 것이기 때문에 일본이 아닌 다른 문화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형태의 디자인 및 색조합이고 욱일기는 이 보편적인 디자인을 차용한 것 뿐이다. 즉 욱일기라는 형상 자체에 내재된 부정적인 맥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제의 전쟁범죄가 거기에 부정적인 맥락을 부여한 것이다. 욱일기 디자인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비슷한 디자인인 북마케도니아 국기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고, 만약 일본이 제국주의적 침략을 하지 않고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문제가 된다는 말과 같다.
블랙페이스의 역사적 맥락에 한국이 관여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종차별의 의도를 가지고 얼굴을 검게 칠한게 아닐시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은 흑인 사회가 그 동안 겪었던 역사적 아픔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우리한테 흑인들의 역사적 맥락까지 배려해 줄 의무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인들이 이와 같은 입장을 견지한다면 일본이 아닌 해외에서 군국주의나 제국주의와 상관없는 목적으로[42] 욱일기를 사용하거나 욱일기 디자인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명분을 우리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타 집단이 가진 역사의 아픔에 대한 배려와 공감을 거부하면서 우리가 가진 역사의 아픔에 대한 배려와 공감을 요구하는 것은 역지사지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동일한 논리를 적용시키면 욱일기는 동양권에서만 터부시되는 것이기에 서양권이 받아들일 의무가 없다고 해도 된다. 이게 반복되면 결국 역사적 차이로 인해 다른 문화권이 가진 각자의 역사적 아픔은 서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결론만 나온다.
남이 불쾌한 행위로 느끼는걸 행한다는건, 결국 불쾌감을 선사하겠다는 이야기이다. 그 순간부터 우리 역시 이렇게 불쾌감을 받는 것에서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다. 상대방에 대한 매너를 지키지 않았으므로, 상대 역시 매너를 지킬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차별행위 역시, 차별행위를 하지 않는건 스스로 차별행위를 받지 않기 위해 하는 방어기제라고 봐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는건 무슨 거래가 아니라 현대 사회를 더블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덕목 중에 하나이다. 배려해줬는데 상대방 쪽에서 마찬가지로 배려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손해가 아니라 그냥 상대방이 배려를 받을 정당성을 상실하는 것 뿐이다. 상대방은 인간적인 대우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고, 이쪽은 그래도 될 이유가 생겼기에 상대방에 대해 매너를 지키지 않아 따라오는 인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상대방이 나처럼 배려해줄지 안해줄지 모르니깐 처음부터 배려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냥 단순하게 상대방을 배려해주지 않겠다는 말을 합리화한 것일 뿐이다.
특히 자주 나오는 문제는 '서양권' 이라는 것을 하나의 존재로만 보고 그에 맞춰 대응하는 것이다. 한국인 기준에서 서양에 속하는 곳의 사람 수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그들중 누군가가 차별행위를 했다고, 그 사람이 아닌 '서양권'에 속한 사람 아무나 그들의 행태가 내로남불이라고 하거나, 우리에게 차별행위를 당해도 괜찮다는 말은 연대책임을 씌우겠다는 것이다. 책임질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 단순히 같은 문화권이랑 이유로 책임을 덮어씌우는 행태다.
흔히 나오는 반론 중의 하나인 서양권에서 통칭하는 블랙페이스라는 개념이 차별과 조롱을 목적으로 한 과장된 분장만 포함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순수한 코스프레일지라도 블랙페이스 그 자체를 서양권에서 생활하는 흑인들이 불쾌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서양권에서는 이미 이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적 합의가 완료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한 여론조사가 이것을 뒷받침해준다. 서양권에서는 둘을 구분지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욱일기를 욱일기와 비슷한 디자인과 비교하는 비유도 적절하지 않다.[43] 한국에서 불교 만자(卍字) 문양을 계속 사용하는 것과의 비교도 적절치 않은 것이 한국에서 사용하는 불교 만자 문양은 나치가 하켄크로이츠를 차용하기 훨씬 전부터 사용되던 전통인 반면 의정부고 블랙페이스 이슈, 혹은 넓게 보면 한국 내에서의 블랙페이스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44] 이 둘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물론 서양권에서 받아들여지는 기준을 우리가 반드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의무 같은건 없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누군가의 취향이나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아픔에서 기인한 불쾌함이다. 이것을 두고 서양권의 기준이라고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냐고 묻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오인하고 있는 것이다. 본 단락에서 우리가 블랙페이스에 담긴 역사적 아픔을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서양권의 문화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누군가의 역사적 아픔이기 때문에 배려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서양권에 거주하는 흑인이 흑인의 전부는 아니지만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 인구만 해도 남한의 인구와 비슷하고 서양권의 다른 나라들까지 포함한다면 그보다 더 늘어나기 때문에 절대로 작은 숫자라고 볼 수는 없다. 서양권에서 동양권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사실일 수 있으나 그것이 우리가 다른 문화권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의 논거로 사용된다면 이것은 전형적인 피장파장의 오류이다.
당연하게도 이해와 배려를 하는 과정은 쌍방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강제성을 가지고 있는 어떠한 정치적 합의가 아니라 전반적이고 점진적인 사회적 인식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 시점을 기점으로 동시에 이루어질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해와 배려에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가 먼저 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각자 주어진 상황 속에서 서로 배려를 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모두가 상대방이 먼저 자신들에 대한 100% 이해와 배려를 베풀기 기다리며 그전까지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위해 노력하기를 '''거부'''한다면 상호 이해와 배려는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 단번에 실현되지는 않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왔던 집단만이 타 집단에게서도 배려를 받을 정당성을 가질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기로 선택한다면 상대방이 우리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다른 문화권이 가진 역사적 아픔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추후에 반대의 상황이 일어나서 우리가 가진 역사적 아픔에 대한 배려를 받지 못했을 때 당당하고 정당하게 그에 걸맞는 시정요구를 하기 위해 필요한 선행조건인 까닭도 있다.[45]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던 집단이 나중에 자신들을 배려해달라고 주장한다면 과연 설득력이 있겠는가? 우리가 그들의 기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면 반대로 우리도 욱일기 사용 같은 이슈에서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 '악의없는 사용일지라도 욱일기 사용을 금기시하는' 우리의 기준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게 반드시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닐 수 있지만 우리가 배려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도 배려를 해야 한다는 원칙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이해와 배려를 받기 원한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명백하다. 배려를 안 해주고 안 받는 선택도 있기야 하겠지만, 점점 국경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여러 문화권들간의 교류가 잦아지는 현대사회에서 이것은 우리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3.3.4.1. 반박

한편 욱일기와 동일 선상에서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상술했듯이 서양권에서 흔히 생각하는 대놓고 차별과 조롱을 목적으로 둔 블랙 페이스 공연의 과장된 분장과 의정부고 학생들의 특정 '인종의 특성'을 가진 특정 유명인을 흉내내기 위해 그 인물의 인종 특성을 묘사한 분장은 의도부터 다르다.
그런데 이 시작점부터 다른 둘을 서양인들은 구분짓지 않는다면서 대보는 예시가 욱일기라면, 자연적으로 생긴 인종적 특성이라 흉내와 분장의 범위에서 볼 때 차별과 조롱인지, 아니면 코스프레인지 서로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욱일기는 전범의 역사를 가진 일본 제국군의 '''상징 문양'''이다. 본 딴 대상이 명확한 대상이기에 애초부터 의도가 명확히 정해진 문양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과 흑인을 흉내내기 위해 얼굴을 검게 칠했다는 공통점은 있을지언정 의도에서 차이가 벌어질 수 있는 인종 표현 분장은 1대1로 대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윗문단에서 서양인 관점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인종 자체를 조롱하기 위한 과장된 흑인 분장과 그저 특정 유명인을 표현하기 위한 피부색 분장을 시작부터 의도까지 다르지만 어쨌든 둘 다 역사적 아픔에 기인한 블랙 페이스로 보며 둘을 구분짓지 않기에 결국 문제가 된다는 입장이지만, 반대로 오히려 서양쪽에서 둘의 차이를 구분해볼 여지를 논해볼 수 없냐는 것이다.
굳이 욱일기의 예시에서도 공통점만 존재하고 출발과 의도가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면, 욱일기의 모양을 그대로 본따서 흰바탕에 빨간 원, 빨간 줄이 뻗어나가는 디자인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저 욱일기와 닮았을 뿐으로 빛이 뻗어나가는 디자인을 쓴 배경을 사용한 것을 볼 때는 한국인들 입장에서도 옹호의 입장이 상당하다.[46] 윗문단에서 서술했듯이 욱일기와 비슷한 방사형 문양을 욱일기와 동격으로 취급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한국 내에서 조차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며 이에 따라 외국인이 자국에서 색이 다르고 패턴도 미묘하게 다른 방사형 무늬의 소품을 사용하고 있을 때를 가정해보면 한국인 입장에서도 의견이 갈릴 것이다. 한국인 입장에서 '어디까지를 욱일기와 동격인 범주로 설정하는게 적절한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가 타문화권이 겪은 역사적 아픔을 배려해야 하는가'라는 현 주제와 관련이 없는 별개의 문제라는 반론에 대해서는 앞서 들은 예시인 욱일기와 다른 원형의 방사형 무늬의 디자인을 서양인이 사용할 때 한국인들 입장에서도 의견이 갈릴지언정 대놓고 욱일기에서 따온 디자인과 같은 취급을 하며 전범의 상징 취급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서양인의 관점에서는 하켄크로이츠가 금기시된 디자인이지만 그렇다고 한국에 있는 모든 사찰의 만자 상징을 바꿔버리자고 주장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의 의견이다. 물론 하켄크로이츠와의 비유도 한국에서 사용하는 불교 만(卍) 문양은 나치가 하켄크로이츠를 차용하기 훨씬 전부터 사용되던 전통인 반면 의정부고 블랙페이스 이슈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반론이 있는데, 어느 것이 먼저인지의 전통적 순서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유럽을 포함한 서양권에서는 불교 만자의 문양도 단지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금기시 되어있다시피하며 동양 국가에 방문한 서양인들 중에서 사찰의 만자 무늬를 보고 당황하는 경우를 숱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연히 나치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그 시각을 배려하기 위해 만자 무늬를 바꿀 의무는 없다.
그리고 서양권에서 자신들은 욱일기를 별 생각없이 쓰고 지적을 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으면서 정작 한국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인종차별 잣대를 들이대며 '이거 하지마라', '저거 하지마라'라고 비난하는 것이 그들 스스로 명분이 없으며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이 있다. 자신들은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으면서 상대에겐 자신들의 아픔을 공감하라고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또한, 비서양권 흑인을 코스프레 한 것에 대해 아무튼 서양권 흑인들에게 이러이러한 아픔이 있으니 블랙페이스 코스프레를 한 의정부고 학생들이 무조건 잘못이고 무지했던 거라고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서양권 중심으로 세계가 문화적 공감을 형성해야한다는 오만함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도리어 샘 오취리 본인이 서구권 흑인들에 대한 문화적 이해만이 존재하고 그 밖의 문화권 속 흑인들의 감성에 대해서는 문화적 몰이해성을 띈 발언을 한 것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해와 배려'에는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상호간의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진정한 의미의 융화로 나아가갈 수 있다. 더구나 그 바탕에 '차별받지 않기 위한'과 같은 조건과 목적이 깔린다면 이미 이해와 배려에 근거한 것이 아닌, 득실을 따지는 '''거래'''가 되어버린다. 막연한 믿음에 근거한 공수표 거래야말로 최악의 선택이다.[47]

3.3.5. 논란의 한계 및 의의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문화가 마주쳤을 때, 다소의 충돌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관습도, 상식도, 규칙도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적 가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란이 의례 그렇듯, 인종차별 여부를 두고 갈라진 견해 또한 어느 쪽이 일방적으로 맞거나 틀렸다고 규정하긴 어렵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모두 다 일리있는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복수의 문화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융화시키기 위해선 사회의 전반적인 구성원들이 납득 가능한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어려운 점은 그 '기준'이라는 것이 어느 누군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들이 논쟁과 토론의 과정을 거쳐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블랙페이스에 대한 논의가 많이 진행되어서 합의에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는 미국 사회에서조차 어느 특정한 시점에 기존의 시각들을 뛰어넘는 새로운 '기준'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여러개의 잠재적 기준들이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실제로 '할로윈에 블랙페이스 분장을 하는 것이 용납되는 (acceptable) 것인가'라는 주제의 설문 결과를 보면 2013년엔 43:37, 2015년엔 47:37이던 찬성:반대 비율이 2019년에는 16:58으로 역전된 현상이 나타난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그동안 흑인 사회와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던 한국 사회에서 서로 의견이 갈리고 이런 논란이 일어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블랙페이스 이슈는 절대적인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기에, 흑인들의 입장을 존중하는 측에서도 '상대 입장을 생각하자'와 같은 원론적인 부분을 통해 접근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점이 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해야한다'는 명제에 반대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문제는 여기서 '배려'가 무엇인가, 혹은 '배려의 범주'는 어디까지인가 같은 세부적인 부분에서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가질수 있기 때문이다. 단 이것이 설득이나 이해가 아닌 강요로 흐를수 있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실제로 샘 오취리의 문제제기가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성급하게 학생들을 질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부분에 있다. 일반적으로 배려라는 것이 의무적인 것은 아닌데 학생들이 악의없이 했던 행동들에 대해 실질적인 불이익이 돌아와서 배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듯한 모습을 보이게 되자 블랙페이스에 대한 메세지조차도 사람들의 거부감을 사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강요 내지 성급한 질타는 지양되어야 하고 이렇게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는 형식의 문제제기는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건의 규모에 비해 논란이 크게, 오래가는 이유에는 이제까지 대한민국 내에서조차 선한 의도만을 앞세워 사회적 합의를 고려하지 않고 적용된 규칙들로 인해 누군가가 과도한 피해를 보게 되고, 이에 대한 반발로 국론이 분열되는 등의 폐해가 생겨온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저변에 깔려있었던 부분도 작용했을 수 있다.
한국내에서 타 문화권의 잣대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현재 놓여진 환경 안에서는 당장 큰 갈등이 일어나진 않을순 있으나 앞으로 활발해질 국제화 현상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한계점이 있다. 국내적으론 출산율 저하와 맞물려 시간이 지날 수록 흑인들의 인구비는 늘어갈 것이다. 특히 근래 다문화 가정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머지않은 미래에 적지 않은 혼혈 구성원 혹은 이민자 2세대들이 '한국인'으로서 사회진출이 예정되어 있다. 국제적으론 앞으로 점점 국경의 의미가 축소되고 서로 다른 문화권들 간에 교류가 더 활발해지는 흐름에 놓일수 밖에 없을것이다. 즉 기존에 한국 내에서 통용되고 있던 '한국만의 문화와 상식'이란 개념을 다른 문화권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계속 주장할 수 없는 시간이 언젠가 올 것이기에 기존의 관점만 고집하기 보다는 적절한 절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피부색은 흑인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자라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한국인'이 블랙페이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더이상 역사나 문화, 국경을 기준으로 이야기하기가 어렵고 자칫하면 자국민 간 차별의 문제로 번질 수 있다.[48] 또한 다른 문화권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기준만 고집하는 태도를 유지한다면 국제화의 흐름에서 고립될 수 있고 결국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한국은 이제까지 사실상 섬나라[49]나 다름 없는 환경 때문에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제한적이었고 대한민국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인종은 '외국인'인 경우가 절대다수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논란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왜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라냐'라고 분리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앞으론 그럴 수 없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해외뉴스에서나 보던 인종갈등 문제가 9시 뉴스 헤드라인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상술한 한계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란은 지금 현 시점에서 한국 사회가 블랙페이스라는 이슈에 대해 가지는 인식을 정확히 보여준다는 부분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또한 블랙페이스에 대한 논의가 이렇게까지 대중들에게 큰 관심을 받은 전례가 없었던 점을 고려해보면 이번 논란을 통해 단번에 합의점에 도달하진 못하더라도 블랙페이스에 대한 대중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부분에선 의미를 가지는 사건일 것이다.

4. 반응



4.1. 당사자들


  • 의정부고등학교 측에서는 본 논란에 대해 인종차별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흑인 비하 의도도 결코 없었다고 해명하였다.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당시 학생들은 분장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으나 흑인이 등장하는 영상을 흉내 내면서 피부색을 어둡게 칠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역차별처럼 비칠까 봐 우려했다고 한다. 혹시 인종차별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고민했고, 이를 학급에서 투표까지 했으나 투표 결과 비하 의도가 있다고 판단한 학생들은 없었다고 한다. 관짝소년단이 크게 인기를 얻어 그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따라하고자 했던 것이며 패러디 외에 어떤 의도도 없었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은 ‘블랙페이스’(blackface)라는 개념도 모른다. 정말 순수한 생각뿐이었다고 한다.[50] 다들 많이 놀랐으며 스스로 A4 용지를 꽉꽉 채워 자신들의 제작 의도를 적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국민적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고 한다.
  • 의정부고등학교 학생자치회는 영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관짝소년단 단장에게 의정부고 관짝소년단 사진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글을 보냈다. 이에 패러디된 당사자인 관짝소년단 리더 벤저민 에두(Benjamin Aidoo)는 본인의 인스타그램트위터하트 이모지와 함께 해당 학생들이 한국 의정부고등학교 소속임을 언급하고 졸업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 샘 오취리 본인은 2020년 8월 8일 04시 기준 인스타그램을 비공개로 전환했다가 다시 공개로 전환했다. 인스타그램을 비공개로 전환할 경우 해외에서 오취리가 한국인들에게 일방적인 공격을 받아 인스타그램을 닫았다는 식의 좀 더 큰 논란으로 번질 수 있어서, 그냥 댓글만 제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댓글 중 추천수가 많고 긴 댓글 위주로 삭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8월 13일 6시 기준으로 아직 인스타그램 업데이트가 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패드립성 악플도 방치된 상태이다. 그러던 중 8월 25일, 위에서 언급된 흑인의 성기능에 대한 인종차별적 스테레오타입과 타 여배우에 대한 성희롱 덧글에 동조한 것이 논란이 되자 당일 17시 30분 다시 비공개되었다가 오후 9시경 아예 삭제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샘 오취리 문서 참고.
    • 2020년 8월 13일에 BBC와 5분 길이의 전화 인터뷰를 했다. 기사의 타이틀은 ''Sam Okyere: The black man fighting racism in South Korea"[51] 관심과 이해 부족을 지적하는 내용에 가깝다.[52]

4.2. 당사자 외


  • 유튜버 영알남 채널에 의정부고 관짝밈, 샘오취리 분노에 대한 영국인의 생각이라는 제목으로 영국에 거주하는 흑인 친구에게 영알남이 해당 사건을 전해주고, 흑인 친구가 이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이야기한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해당 흑인 친구는 관짝밈의 세세한 부분까지 구현하려 한 것은 좋았으나 블랙 페이스 분장을 한 부분이 선을 넘었다고 말하며, 입장을 바꿔서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외국인이 한복을 입고 다른 것은 다 좋았는데 한국인 흉내를 낸답시고 눈 찢는 시늉을 했더라면 어땠을지 생각해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후 이 흑인 친구는 논란의 시작점인 의정부고 학생이 말 그대로 어린 학생 신분이었다는 점과 흑인의 문화를 우호적으로 봐주었다는 점. 그리고 논란 또한 고의가 아닌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던 무지에서 나왔다는 점을 이해하는 관점을 펼쳤으며 이에 대한 관용 없이 학생의 얼굴을 대중이 모두 보는 SNS에 공개적으로 올리며 저격한 샘 오취리에게도 비판적인 태세를 취했다.
  • 샘 오취리의 인스타그램에 평소였다면 상상하기 힘든 악플 러시가 이어졌다. # 주로 유명인이 일반 학생들을 저격하는 것에 대한 비판하는 내용도 있으나, 패드립성 악플을 다는 경우도 발견된다.
  • 오취리의 여동생이 샘 오취리와 연대한다는 해시태그를 달자 일부 흥분한 국내 네티즌들이 샘 오취리의 여동생 인스타그램에도 공격성 메시지를 보낸 사례 및 관짝소년단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의정부고 졸업 축하 게시물에서 블랙페이싱을 인종차별이라고 지적한 외국인들의 인스타 계정에 한글로 악플을 남겨서 비공개로 전환되는 사례들마저 발생하여 논란이 더 악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 다니엘 린데만은 샘 오취리가 이 일로 논란이 된 과거 비정상회담 방영분에 함께 나왔던 자신의 못생긴 표정 캡쳐를 SNS에 올리고 '예쁘다'고 덧붙였다가 나치라고 욕을 먹는 등 악플 공세를 당했다. 한국 지인이 당일 사진을 보내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SNS에 올렸는데 그야말로 타이밍이 나빴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다니엘은 해명하기 위해 지인과의 실제 카톡 내용을 공개했고 결론은 그냥 '셀프 디스'였다고 한다.
  • 해당 논란을 다룬 국내 뉴스 기사들은 상당수가 과거에 오취리가 눈 찢는 사진 등을 첨부하거나 Educate, Ignorance, teakpop이란 단어의 사용 논란 등을 지적하였다. 이후 샘 오취리를 두둔하며 네티즌들이 과민 반응한다고 비판하는 기사#가 나왔으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제목으로 오히려 기사에 대한 비판 의견이 폭주하기도 했다. 샘 오취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비판적인 논평을 쓴 기사#도 있다. 이 외에도 샘 오취리의 인스타 영어 게시물이 잘못 번역되어 대중에게 전달되었다는 식의 기사도 있으나, # 오히려 해당 번역이야말로 원문의 느낌표를 지우고 상당히 순화하여 재창작한 번역에 가깝다.
  • 해당 논란을 접한 여러 흑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한 유튜버는 장례식이라는 슬픈 행사와 상반되는 흥겨운 동작과 복장에서 나오는 관짝춤이 가진 의미는 죽은 자가 현생을 평안히 마무리하고 남겨진 사람과 작별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승화하는 데에 있다며, 그 의미를 따져볼수록 깊고 엄숙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의정부고의 흑인분장 사진은 그 문화를 가진 흑인사회의 입장에서 절대 평온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비판을 제시했다. 링크 흑인 유튜버 의견2[53] 한편 레딧 등지에서도 관련 의견이 여러 차례 올라왔는데, 샘 오취리가 흑인으로서 블랙페이스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이의제기를 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해쉬태그로 teakpop을 달아 이것을 K-POP 관련 논쟁으로 엮으려고 한 것[54], 그리고 비정상회담에서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눈을 찢는 행위를 한 것은 오취리 본인의 잘못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레딧1 레딧2
  • 위근우는 '위근우의 리플레이'에서 차별주의자들이 샘 오취리를 비난하기만 하는 식으로 부당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평론하였다. 심지어 오취리가 명백히 한국에서 한 잘못을 외국에서 축소하여 사과문을 올렸음에도, 위근우는 충분히 사과했다고 오도하였다. #

5. 유사 사건의 발생


사건 발생 후 4일이 지난 8월 10일에는 또 다른 고등학교에서 유사한 졸업사진이 공개되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공주고등학교에서도 Coffin Dance를 패러디한 졸업사진을 찍었는데, 여기에서도 학생들이 얼굴을 검게 칠하는 "블랙페이스" 분장을 한 것이다.
특히 한 학생이 본인의 SNS 계정에 해당 졸업사진을 공개하며 해시태그로 샘 오취리를 덧붙여 논란이 되었다. 기사는 "일련의 사태를 이해하기 어렵다", "또 다른 학교에서 블랙페이스가 반복됐다", "그저 코스프레라고 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그들은 심지어 샘(오취리)을 해시태그로 태그하기까지 했다"는 한국 내 외국인 커뮤니티의 비판 여론을 소개했다.#
"샘 오취리" 해시태그를 게시한 행동에 대하여 풍자의 영역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인종차별 여부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는 민감한 주제를 가벼이 다룬 행동이며, 또한 일부러 오취리를 해시태그한 행동 자체가 조롱의 의미가 있으므로 사태의 원인이 된 의고와는 달리 공주고의 사건은 비판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1] 이 문장에서 주어 "You"는 일반적인 불특정 인물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지 않으면 뒤에 나오는 "you can appreciate a culture without making mockery of the people"절의 해석이 이상하게 된다. Generic you라고 불리는 이런 형태의 "you" 용법은 실제로 영어 문법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용법이다. 예를 들어서 "You always eat turkey at Thanksgiving in the U.S.!"라는 문장은 어느 '''특정한 인물'''을 두고 그 인물이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에 터키를 먹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으로''' 미국에선 '''사람들이''' 추수감사절에 터키를 먹는다는 뜻이다 #. 즉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대로 이 문장을 '(특정한) 누군가가 한국 사람들을 교육시킨다'는 식의 해석은 오역이고 오히려 한국에서 그런 노력을 이미 하고 있다는 뜻의 문장이다 (문맥상 그런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블랙페이스에 대해서는 아직 무지하다는 뜻).[2] 고등학교 3학년생은 유급이나 입학 유예를 하지 않았다면 만 17~18세로 청소년보호법에 의거하여 보호를 받아야 할 미성년자이다.[3] 한국의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인들은 인종차별 문제에 무지하므로 계몽해야 한다'는 투의 오만하고 공격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였으며, 오취리의 문제 제기에 동의하는 이들은 "educate"나 "ignorance" 등 해당 글의 영어 표현에 별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영미권에서 "ignorance"는 공격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많다. 무조건 괜찮거나 무조건 공격적이라기보단 문맥에 따라 달라진다.[4] 영어의 "sip tea(차를 마시다)"는 대략 한국어의 "팝콘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이 해시태그는 K-POP을 비하하는 뉘앙스가 담긴 해시태그라고 한다.[5] 실제로 해당 방송 당시 저걸로 문제된 적이 없다[6] 다만 저 방송분의 정확한 주제는 '안면 근육만으로 얼굴 찌푸리기 대회'다. 다른 패널들은(기욤 패트리, 다니엘 린데만 등) 실제로 얼굴만을 사용하여 웃긴 표정을 지었지만, '''유독 샘 오취리만''' 손가락까지 써 가며 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건지는 의문[7] 흑인의 성기능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이 또한 흑인들이 시달려오던 인종차별의 일종이다.[8] 즉 샘 오취리의 주장이니까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주장을 샘 오취리가 하고 받아들이길 요구한다는 점을 용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9] 일관되지 않은 삶의 행적을 두고 이중성 자체는 비판할수 있지만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옳은 이야기를 한다고 나쁠건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할수 있는건 sns 계정을 삭제하고 침묵할지언정 샘 오취리가 본인의 과거행적을 두고 잘했다고 평가한적은 없기 때문.[10] 이 문서의 4.2. 단락에 소개된 영알남의 흑인 친구의 사례를 모범으로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11] 즉, 블랙페이스의 인종차별적 성격에 대해 한국인 전체가 무지하다는 의미다. 사실 서양인이 동양인의 국적을 구별하지 못해서 한국인을 중국인 혹은 일본인이라고 부르는 걸 인종차별로 이해하는 등, 한국인들 전반적으로 인종의 개념과 차별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도 있다.[12] 1876년부터 1965년까지 미국에서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를 규정한 일련의 법률들을 총칭한다. 명목은 '분리'였지만 실제로는 차별로 기능했다.[13] '의정부고 관짝소년단이 왜 인종차별인지 헷갈리는 당신에게 Q&A'링크[14] 실제로 오취리가 비난받던 이유도 이것이다.[15] JTBC 장르만 코미디 4회 중[16] 그러니까 무과실책임의 원칙이 극히 예외적으로만 적용된다고 서술했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17] 전체 설문인원중 58%에 해당하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응답하였으며 단 16%의 사람만이 '받아들일수 있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다수가 백인인 미국에서 소수를 차지하는 흑인사회의 경우 73%가 블랙페이스를 받아들일수 없다고 대답하였고 단 6%만이 받아들일수 있다고 응답했다.[18] 김환철, 서은숙 (2019). 아프리카 흑인 유학생의 한국생활 적응에 관한 연구. 한국아프리카학회지, 58, 3-39논문 링크[19] 더불어 샘 오취리는 당시에도 블랙페이스 분장에 대해 불편을 표시했었다.#[20] 하상복 (2012). 황색 피부, 백색 가면. 인문과학연구, 33, 525-556, 링크[21] 흑인들 사이에서는 인종차별의 역사가 있어서인지 이런 오류를 흔히 보인다. 블랙페이스 혹은 화이트워싱을 연상할 수 있는 언행만 있으면, 의도와 맥락을 무시하고 그걸 무조건 인종차별로 단정짓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의정부고 학생들의 패러디에서 Coffin Dance를 재현하는 걸 넘어서 인종차별 의도 등 제3의 의도를 담고 있는 것처럼 비춰졌다면 패러디의 당사자인 벤저민 에두가 "졸업을 축하한다"라면서 호의적이고 유쾌한 반응을 절대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22] 본 문서의 인종차별 주장 측의 논리대로면, 퍼스트 어벤져는 나치 독일이 아닌 다른 상대와 싸워야 했는가?[23] 그럼에도 긍정적인 의미로 계속 사용한다면, 그때 가서야 비로소 제대로 비판할 근거가 생긴다. 만약, 기필코 계속 사용하겠다고 한다 한들, 해당 국가 혹은 인물에 대하여 비판을 하거나 불매운동 등을 할 순 있겠지만 그 나라의 문화며 교육을 '옳은 길'로 인도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고 오만한 발상이다.[24] 애당초 전범의 상징물과 의정부고 코스프레가 동급이라면, 흑인의 생김새 자체가 범죄라는 건가?[25] 심지어 그 역사에 관여하지도 않은[26] 서로에게 금지시키기보다 서로에게 허용하는 방향이 훨씬 건설적이기도 하다.[27] 관련된 역사가 없기 때문에 분노의 근거도 뚜렷하지 않다.[28] 마이클 조던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해 인종차별을 언급했지만, 정작 압도적인 영향력을 지녔던 현역 시절에는 흑인인권에 대한 침묵으로 비판받아왔다. 그렇다고 그가 흑인에 대한 배신자로 기억되어야 한다면, 그건 옳은 것인가?[29] 이는 페미니즘을 비롯한 기타 PC 사회운동가들이 보이는 행태와 유사하다. 불리할 땐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입을 닫다가, 유리한 사건에 한하여 진영논리를 들고 나온다.[30] 당사자끼리 사과하고 풀었다곤 하지만, 위의 구단주도 크게 뉘우치긴 마찬가지였다.[31] 의정부고 코스프레가 민트럴쇼와 같은 분장이었다면 얘기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32] 수천년 간 영향을 주고 받아 온 이웃나라 중국이나 일본도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화가 존재한다.[33] 대다수 한국인처럼 블랙페이스 행위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일지 않을 경우, 앞서 여러차례 언급된 명제 '코스프레의 싱크로율을 높이기 위한 검은 피부색 분장과 과거 서구권 백인 코미디언들이 흑인 노예 시절 흑인들을 비하하며 희화화하기 위해 행했던 블랙페이스가 같은 행위인가'에 대한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34] 문서 항목이 처음부터 잘못 만들어진 측면도 있다. vs 형태가 되어버리다보니 일정선의 허용이나 이해보다도 서로 '옳음'을 판가름하는 방향으로 흘러버린 것[35] 차별 표현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인사 차원에서 부모님 안부를 묻는 것과 '느그 부모님 안녕하냐?' 따위의 표현이 절대로 동일선상에 오를 수 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36] "니하오"라고 할 때 말투, 태도, 표정, 행동,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37] 보통 불쾌감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국적을 잘못 생각한 게 아니라 '아시아인 = 중국인'이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기에 느끼는 점도 있고, 그 나라의 공용어가 아닌 중국어로 인사하는 행동은 특히 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시아인에게는, 피부색만 보고 '중국어를 할 줄 안다.' 또는 '외국인임이 분명하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중국에서 중국인이 아닌 아시아인들이 같은 상황에 처하는 경우는 별로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다. 인종적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모습만 보고 상대방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을 뿐더러, 안다 해도 상대방이 쓰는 언어를 모른다면 중국 땅에 있는 이상 중국어로 말을 걸 수밖에 없다.[38] 한국에서도 과거에 백인을 보면 당연히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부분은 과거부터 한국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아주 많이 언급해왔다. 이원복 교수가 먼나라 이웃나라를 집필한 이유 중 하나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양인은 전부 미국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현재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한국 방송에 많이 출연하면서 그런 편견이 많이 사라진 편이다.[39] 비슷한 사례로 프랑스인들에게 영어로 인사를 하거나 길을 물으면 빈정 상해서 상대도 안 해주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다.[40] 본래 입장문에 '인종차별' 이나 'racism' 같은 단어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41] 관짝소년단 당사자들처럼 서구권이 아닌 지역에서 나고 자란 흑인들의 생각은 다를수 있다.[42] 예를 들자면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혹은 과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사례처럼 유니폼의 색깔과 패턴이 비슷해서 (현재는 한국팬들의 항의를 통해 홈구장 반입은 금지된 것으로 알려져있다)[43] 욱일기와 비슷한 방사형 문양을 욱일기와 동격으로 취급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타문화의 갈등이 아니라 한국 내에서 조차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다. 그리고 한국인 입장에서 '어디까지를 욱일기와 동격인 범주로 설정하는게 적절한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가 타문화권이 겪은 역사적 아픔을 배려해야 하는가'라는 현 주제와 관련이 없는 별개의 문제이다. 한국 내에서 조차 논쟁의 대상이 되는 '욱일기와 비슷한 방사형 문양의 사용도 자제하자'라는 주장을 다른 문화권에서 수용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44] 예를 들어 네덜란드의 Zwarte Piet 풍습은 이걸 전통이라고 보는 것이 옳은가의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을지언정 전통과 블랙페이스가 충돌하는 이슈로 볼 수 있지만 한국 문화에서 이와 같이 블랙페이스와 충돌하는 전통은 없다.[45]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상호배려'라는 가치를 논함에 있어 우리 스스로 당당해 질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호'배려에서 상대방의 배려를 요구하는건 순수하지 못한 목적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46] 이에 대한 반론으로 욱일기는 그저 방사형 무늬가 문제가 아닌 해당 무늬에 얽힌 역사적 배경이 문제라 욱일기와 비슷한 디자인과 비교하는 비유도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지만 상술했듯이 욱일기는 인조적으로 만들어진 '''전범단체를 상징하는 문양'''이라 애초부터 모티브 대상이 블랙페이스 분장보다 명확해지며, 이에 반해 시작점은 '흑인을 흉내내기 위한 피부 분장'이라는 점에서만 공통점이 있을지언정 의도도, 흉내 대상도 다른 피부 분장을 그저 블랙 페이스라는 이유로 구분짓지 않고 금기시하는 서양쪽에서의 시각을 바꿔서 둘의 차이를 구분해볼 여지를 논하는 것이다. 사실 욱일기 자체도 빛이 뻗어가는 모양을 딴 방사형 무늬에서 시작한 것이고, 비슷한 방사형 무늬만 보아도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존재할 정도의 민감한 문제다. 애초에 앞서 링크된 영상도 앞서 논란이 일었기에 옹호 여론도 생긴 것이며 극단적인 의견으로는 욱일기를 의도한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저렇게 색만 다른 한없이 가까운 디자인은 경각심을 가지고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47] 먼저 배려했는 데도 배려받지 못한다면, 그렇다고 그때 가서 배려를 멈출 수 있을까? 99%의 사람이 배려하더라도 1%의 사람이 배려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그걸 이해해줄까? 불행히도 이 입장은 쌍방이 마찬가지다.[48] 이미 다민족, 다인종 국가인 미국이나 유럽의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결국 다문화 존중의 방향을 향해 갈 공산이 크다.[49] 지형 자체는 반도지만 육로가 DMZ로 인해 막혀있어서 섬나라처럼 되었다.[50] 따라서 학생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적으로 얼마나 인종과 다문화문제에 대해 무지한지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다.[51] 샘 오취리: 한국에서 인종차별과 싸우는 흑인.[52] 1. 유학생으로서 한국에 처음 왔었고, 아프리카에도 우간다와 가나와 같은 여러 나라가 있음에도 그 차이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부족하던 걸 느끼며 많은 대중 노출을 통해 아프리카계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려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2.학생들이 비하의 목적으로 블랙페이스를 한 게 아닌 건 안다. 하지만 블랙페이스가 많은 흑인, 다문화 국가에서 꺼려지는 역사적 맥락이 있는 걸 지적하려 했다. 3. 블랙페이스가 가진 역사적 맥락은 한국에서 생소하다. 이 때문인지 많은 논쟁이 있었고 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이 많았다. 4. 방송에서 눈찢 퍼포먼스를 한 건 스페인의 못생긴 얼굴 대회 이야기가 나왔을때 한국인을 흉내, 비하한다(Mocking)는 목적없이 단지 얼굴을 최대한 일그러뜨리려고 한 것. 애초에 내가 한국에서 일하는데 한국인을 비하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안좋게 받아들였다면 그럴 수 있다.[53] 이쪽은 논란이 될 것을 우려해서인지 댓글을 막아놨다.[54] 오취리가 teakpop 태그를 단 진짜 이유는? 오취리가 사용했던 혐오스러운 #teakpop 의 진짜 용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