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비판

 


1. 개요
2. 언어적 문제
2.1. 직관 및 사실에 반하는 언어 강요
2.2. 사고가 언어를 결정한다. 그 반대가 아니라.
2.2.1. 언어적 상대성
2.4. 언어의 역사성을 간과해 세대 갈등을 조장
2.5. 관점의 차이
2.6. 그 외의 여러 가지 언어적 문제
3. 사회, 계층과의 괴리
3.1. 국내 현실과의 괴리
3.2. 소득 중/하위계층과의 괴리
3.3. 인권 운동과의 괴리
3.3.1. 시골귀농인에 대한 차별 근절 소홀
4. 표현의 자유 억압
5. 피해자 코스프레
6. 창조논란과 침소봉대
7. 역차별과 딜레마
7.1. 희생과 양보 강요
7.2. 또다른 차별과 선택적 올바름
8.1. 교조주의와 불관용의 문제
9. 정치적 올바름 지지자들의 문제
9.1. 모든 정치적 올바름 위반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문제
9.3. 언론과 매체의 문제
9.4. 기타 정치적 올바름 지지자에 대한 비판
10. 언론에서의 정치적 올바름 비판


1. 개요




Equality (한글 자막) 원본
Modern Educayshun (한국어 캡션 자막 지원)
Neel Kolhatkar가 극단적인 정치적 올바름은 역차별을 낳는다는 것을 풍자하며 만든 영상. 아래 서술되어 있는 여러 문제들로 인하여 90년대부터 이 운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생겼고, 2019년인 지금은 정치 성향을 가리지 않고 비판 세력이 옹호 세력을 능가하는 형세가 되었다. 주요 비판은 다양성을 배려한다는 의미에서 시작했던 운동이 되려 또 다른 전체주의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단어를 고르는 것에만 집착하는 이들을 'PC 경찰'(PC police)라고 부르면서 비꼬는 것은 기본이고, 이미 'political correctness'라는 단어 자체도 살짝 냉소적인 어감을 띄게 되었다. 2016년,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공개적으로 'PC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미국 인터넷에서는 SJW라고도 부르는데, 의미의 어원을 보면 "우리 위대하고 정의로운 사회 운동가님들"이라면서 비꼬는 표현이다. 미국 유튜브나 커뮤니티에서는 SJW에 대한 반감이 이루 말을 못할 정도로 극심한데, 그냥 웬만한 영화 오프닝 영상이나 블리자드 관련 트레일러에도 추천을 많이 받는 베스트 댓글을 보면 꼭 SJW를 비꼬는 댓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1] 뉴욕타임스는 PC의 부정적인 영향을 정체성 진보주의의 종말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실었다.
한국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이들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프로불편러, PC충 등의 표현이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PC에 대한 반감이 거세져서 PC와 반PC의 양 진영이 대립하고 있는 것에 가까우므로 "PC가 타파되고 있다"는 식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2], 최근 젊은 세대의 흐름이나 정서를 보면 복합적인 변화가 있다. 2020년을 바라보는 현재 시대가 인종, 성별, 문화 등 총체적 과도기이기도 하고, 당분간은 가치관이 다른 두 진영이 오래 대립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부정적 예문이 있기도 하다. # 신문이나 언론의 용례를 봐도 상당히 부정적인 어감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용례 일본에서는 말사냥(코토바가리/言葉狩り)이라는 언어 순화 운동과 관련된 표현이 있었으며, 최근의 문화적 추세에 따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말해야 할 때는 영어 발음 그대로 'ポリティカル・コレクトネス' 또는 일본식 4음절 약칭인 'ポリコレ(포리코레)'라는 표현도 사용빈도가 상당히 늘어나고 있다.
후술할 결과도 있지만 현재 PC는 인종 대부분을 막론하고 나쁜 여론을 가지게 되었다.

2. 언어적 문제



2.1. 직관 및 사실에 반하는 언어 강요


차별적인 의미가 있어 보이는 언어를 억지로 고치려다 보니 의미가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거나, 심지어는 과학적, 역사적 사실과 엄연히 다른 표현을 강요하기도 한다. 예컨대 子가 '아들 자'이므로 여성을 배제하는 성차별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문제는 이 때문에 子가 아들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 경우에도 무분별하게 단어를 고치려다 보니 의미가 파괴되어 버린다. 學 자에 들어간 子를 억지로 子女로 고친 어느 대학교 과잠과 같은 사례는 한자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무시하고 子=아들=남성 이라는 매우 단순무식한 논리구조로 없는 글자를 만들어낸 경우.
또 다른 예시로는 페미니즘 계열에서 '자궁'을 대체하는 단어랍시고 '포궁(胞宮)'이라는 단어를 내세우는데, 포궁은 '세포집'정도의 의미로서 태아가 자라는 곳을 의미하기에는 의미가 너무 협소하다. 이런 이상한 단어를 끄집어내서 쓸 바에야 '아기집' 정도의 단어가 훨씬 직관적이고 의미를 잘 전달한다.[3] 비슷한 예시로 '처녀막'의 '처녀'가 여성혐오적이라는 이유로 자꾸 의학적 사실과 다른 '질주름' 같은 단어를 들이미는 사람들도 있다.

2.2. 사고가 언어를 결정한다. 그 반대가 아니라.



만약 우리가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신체 장애인이나 불구자 대신 '다른 능력을 갖춘differently abled' 사람들이라 부르기로 하고선 이후 공공장소에다 진입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위선적으로 말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 (중략) 이는 이름 변경과 여건의 개선이 요구되는 어떤 그룹에서 이름 변경과 더불어 불합리한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절대로 끝나지 않을 회피의 목적으로 새로운 이름이 요구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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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가재걸음』 중 「정치적 올바른 말하기」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을 쓰게 만들어도 사람의 사고나 인식까지 좋게 바꿀 수는 없다. 단어의 의미나 어감은 어원에 관계없이 언중의 사고와 인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는 원래 개선하려고 한 나쁜 인식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에까지 옮아와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말 하나만 더 만들어놓을 뿐이다(특히 후술하는 바와 같이 새로운 말이 생겨난 이후에 부정적인 인식이 더해지는 경우). 한 국내 방송에서는 출연자가 '동성애자가 싫다'고 하였는데 이유가 무엇이냐는 진행자들의 질문에 '그냥 싫다'며 동성애에 대한 비호감을 특정 종교의 극성 신자나 교육받지 못한 몰지각한 사람들의 발로로 모는 것이 불쾌하다고 한 적이 있다. 결국 단어 순화도 일종의 미봉책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게이(gay)를 들 수 있는데, 'homosexual'이라는 말이 차별적인 의미로 사용되던 1960년대, 남성 동성애자를 더 완곡하게 가리키기 위해 본래 '즐거운, 활달한'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 'gay'를 채택했다. 남성 동성애자를 'gay'라고 가리키기 전까지 'gay'란 말에는 어떠한 비하적 의미도 담겨있지 않았다. 허나 남성 동성애자를 'gay'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gay'란 말에 덧붙여졌다. 결국 그 이후 'gay'란 말의 어감이 달라져서, 본래의 '즐거운'이라는 의미보다는 '구린, 저급한'이라는 뜻이 되고 말았다.
한국어에도 여기에 해당하는 사례가 있는데, '백정'이 바로 그것이다.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백정은 (직역이 없는) 평범한 농민을 뜻하던 단어였고 흔히들 생각하는 도축 기술자들은 양수척이라는 단어로 따로 칭했었는데, 조선 시대에 들어 도축업자들에게 (신)백정이라는 이름을 붙여 양민 계층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이 따라주지 않아 도축업자는 백정이라 칭하게 되었으면서 양민들은 더 이상 백정이라고 부르지 않게 되었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백정에 대한 천대는 기존 사회 체계를 완전히 뒤엎어버린 6.25 전쟁 이후에 완전히 사라졌음에도, 백정이라는 단어가 가진 부정적인 뉘앙스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미가 된 '벙어리'도 마찬가지이다. 벙어리의 어원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뉜다. 국립국어원의 설명 '버워리'에서 변화되었다는 주장과 '벙을- + -이'로 분석하는 주장이다. 전자는 '버워리'가 "말을 하지 못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버우다’에 접미사 '-어리'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파생명사인데 16세기 이후로 '벙어리'로 변화되었다는 주장이다. 후자는 '벙을다'가 "막다", "막히다"라는 뜻이 있는데 '벙을- + -이'가 "막힌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말을 못하는 사람"으로 의미 전이가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아줌마 역시 마찬가지이다. 해당 항목에도 나와있듯 아줌마는 원래 이모를 뜻하는 단어였다. 후에 이모 또래의 손윗 여성을 부르는 용도로도 쓰이게 되는데, 멀리 갈 것 없이 오늘날 식당 등에서 일하는 손윗 여성을 기분 나쁘지 않게 호칭할 때 이모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즉, 아줌마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이모 또래의 여성을 친근하게 부를 때 사용했던 것인데, 그 또래 여성들이 보여왔던 부정적인 행동들로 인해 뜻이 변색되어버렸다.
또한 '(구) 정신분열증'의 경우 기존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조현병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겨났지만 조현병 환자의 범죄가 잇따라 보도되면서 기존의 부정적인 이미지("분열"이란 단어 때문에 해리성 정체감 장애와 혼동한다든가, "정신이 망가졌다," "실조"와 같은 부정적 단어가 주는 편견이라든가)에 '잠재적 범죄자', '걸어다니는 폭탄'이라는 이미지까지 추가되어 부정적 이미지가 더욱 강해졌다.
이런 현상을 언어학 용어로 'pejoration'이라고 부른다. 의미변화 문서 참고. 이런 식이라면 계속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새로운 단어를 찾아서 써야 한다. 결국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에 대한 언중들의 실제 인식이나 사고가 바뀌지 않는 이상[4] 단어를 바꾼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political correctness'라는 단어 자체도 이런 식으로 의미가 변했다. 'You're so politically correct.'라고 하면 '당신 너무 꼰대 같아요.'라고 하는 거지 절대 칭찬하는 말이 아니다.
'여자', '힙합'처럼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라고 해도 그 단어를 어떤 뉘앙스로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냐에 따라 차별적인 단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힙합' 자체는 음악 장르를 지칭하는 중립적인 단어지만 '힙합이나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상당히 차별적인 단어가 된다. 한편 # 국내 학교 현장에서는 심지어 진보적 가치 중 하나인 '다문화'라는 단어조차도 다문화가정 학생을 소외시키고 폄하하는 혐오단어가 되어버렸다. 단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에 대한 화자와 청자의 태도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단어만 바꾸는 것 이전에 실질적인 차별을 없애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단어만 바꾼다고 한들, 그 바뀐 단어가 또다시 차별적 표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다테마에와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인종차별을 없애거나 후진국에서 온 사람들을 차별 없이 대하자는 취지이지만 정치적 올바름이 생기면서 직접 모욕하는 차별은 줄었어도, 차별 양상은 심화되었고,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그것이 폭발하기도 했다.

2.2.1. 언어적 상대성


'정치적 올바름' 운동에 관여하고 있는 일부 활동가들 중에는 인간의 인식이나 생각이 언어에 영향을 받는다는 '언어적 상대성'이라는 개념에 근거하여 이러한 편견이 담긴 언어의 사용이 이러한 편견을 강화시키기에 이런 언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비록 언어가 사고를 절대적으로 규정한다는 '언어 결정설'(linguistic determinism)은 언어학계 내에서 많은 반론이 나오고 잘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언어가 사고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친다는 약한 수준의 '언어적 상대성'(linguistic relativism)은 오늘날에도 상당한 경험적 증거들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5]
사피어-워프 가설 자체도 증명하기도 어려운 가설인데, 여기에 근거를 두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언어를 바꿈으로서 무의식이나 내면의 편견을 교정할 수 있다.'는 주장은 다소 많이 나간 감이 없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도 편견 및 고정관념을 연구하는 사회심리학자들은 대체로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도리어 암묵적 편견의 형태로 "더 세련되게", "더 우회적으로", "더 교묘하게" 상존해 있다가[6] 사회적 분위기가 "차별을 보여도 되겠다" 싶은 쪽으로 흘러가면 쾅 하고 터져나오는 식[7]이라고 설명한다. 언어 결정설이 옳다면 트럼프 당선 직후 쏟아져나온 수많은 혐오발언과 유색인종 위협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현실에서는 입을 검열당하게 된 사람들이 생각을 고치기보다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8] 또한 비하적 단어를 중립적으로 바꾼다고 해도, 그걸 비하적인 목적으로 쓸 사람은 잘만 쓴다.[9]
다른 시각으로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거창한 학문적 기반을 깔아놓고서 시작한 건 아니기 때문에 학문적 기반의 문제를 가지고 까는 것 자체가 애초에 성립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따르면 정치적 올바름은 과학적 가설을 실현하려는 운동이라기보다는 사회 윤리에 기반을 둔 운동이므로 위의 주장이나 그에 대한 비판은 운동의 본질과는 많이 동떨어진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결정론' 내지는 사피어-워프 가설에 근거한 주장은 ‘정치적 올바름’이 목표로 하는 사회 윤리 실현의 효과가 떨어진다고 볼 수는 있으나, 그 운동이 가지는 본질을 비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뒤집어 말하면 학문적 근거도 없이 학문의 영역을 침범하는 유사학문적 접근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므로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고 할 지언정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학문적 근거도 없이 사회 윤리라는 권위를 빌어 언어의 사용을 강제하려다 학문에 의거한 비판을 받으니 '우리 운동은 학문의 영역이 아니다' 내지는 '우리 의도는 좋았다'면서 비판을 회피하려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므로 오히려 질이 더 나쁘다고도 할 수 있다.

2.3. 표준어 제일주의와의 대립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소수 집단에서 자의적으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단어는 만들어지자마자 표준어에 등재되지 않으며, 실제로 소수 집단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내고 소수자만이 쓰는 말이 표준어로 등재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를 쓰도록 하는 것은 기존의 정상적인 표준어를 정치적 목적으로 몰아내면서, 동시에 특정한 정치 성향을 가진 집단이 '표준이 아닌 단어'를 임의로 만들어내서 그 단어를 쓰도록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가 된다.
또한 우리말에 정상적으로 정착한 외래어[10]를 억지로 순화하여 사용자가 적은 순화어를 표준어로 제시한다.[11]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점은 언어순화 운동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순화 운동/논쟁 문서 참조. 이러한 순화어를 사용하지 않는 다수를 몰아내는 일이 간혹 벌어지는데, 이것은 표준어 제일주의와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긍정적인 변화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 진영 역시 이 같은 '압력'을 사용해서 표준어를 변질시킬 수 있으므로 결국 이러한 언어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과도하게 허용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2.4. 언어의 역사성을 간과해 세대 갈등을 조장


원래는 일반적인 의미로 쓰였던 단어가 세월이 흐르면서 부정적인 의미로 통하는 경우가 있다. 벙어리, 장님, 문둥이 같은 단어가 그러한 예이다. 애초에는 언어장애, 시각장애, 한센병 환자를 뜻하는 순우리말이었을 뿐이었다. 한글 점자를 개발한 박두성의 생전 발언을 통해 이러한 단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링크

"눈이 멀쩡한 사람이 그렇게 마음이 어두워서 되겠소? 단지 눈이 멀었다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소? 눈 밝은 사람은 노력하면 얼마든지 글을 읽고 쓰겠지만 눈먼 사람에게 조선말까지 빼앗으면 저 아이들은 부모와 형제자매와 어떻게 이야기를 나눈답니까? 저 아이들에게 장님에 벙어리까지 되라는 말이오?"

하지만, 현대의 국어사전에는 이러한 말이 장애인을 낮잡는 말이라고 정의되어 있어서, 이런 분들도 졸지에 장애인을 비하한 사람으로 몰릴 수 있다.
물론 이미 단어의 뜻이 완전히 변한 상황에서 과거에는 나쁜 말이 아니었다며 원래 뜻으로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신 어르신들이 엄연히 살아 계신 상황이므로, 전혀 비하할 의도 없이 이러한 단어를 쓰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80년대생만 하더라도 국민학교 시절에는 이러한 단어를 교과서나 아동용 서적에서 흔하게 접했다.
따라서 언어의 변천사에 대한 이해 없이 "현재 국어사전에 나쁜 말이라고 나왔으니 저 말을 쓴 사람은 인권 감수성이 부족한 미개한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몰아간다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표준어 자체가 제정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가 부족했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최근들어 일부 비표준어가 복수 표준어로 추가되는 것은 그러한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위 세대에게는 기존의 표준어가 이제는 의미가 바뀌어서 젊은 세대들이 오해할 수 있으니 다른 단어를 쓰는 것이 좋다고 권유하고, 아래 세대에게는 본래는 나쁜 의미가 아니었으니 어르신들이 무심코 그 말을 쓰셨더라도 오해하지 말자고 알려 주어야 할 것이다. 이 기사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치적 올바름은 침묵을 불러오게 되어 계층 간의 단절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2.5. 관점의 차이


이탈리아에서 맹인cieco 대신 시각 장애인non vedente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사자들은 맹인이라는 용어에 모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며, 이 용어의 사용을 줄이는 것보다는 그들에게 필요한 연대감과 존경심[원주]

을 더욱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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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가재걸음』중 「정치적 올바른 말하기」

다른 사람들이 차별적이라고 여기는 용어를 바꾸려고 할 때 그 용어를 당사자들은 오히려 수용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을 실제로 적용하고자 할 때 문제가 되는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Indian'을 대체한 'Native American'이라는 단어이다. 아무래도 'Indian'이라는 단어는 종종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비하명칭으로서 경멸적인 어조로 쓰이기도 하는데다가 본래의 사전적 의미에 있어서도 아메리카 원주민을 뜻하는 용어로서는 여러모로 부적절한 것이어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측면을 떠나서 단순히 의미론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꽤 문제가 있는 표현이었던 관계로 결국 새로이 'Native American'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게 되었지만 어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 'Native American'이라는 단어를 그들 스스로가 만든 단어가 아니라 미국 정부와 백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단어라는 이유로 싫어하는 편이며, 오히려 'Indian'이라는 단어를 스스로의 민족명으로서 쓰고자 하고 있다고 한다.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미국 정부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지만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또 반대로 일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는 상황이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참 애매한 상황이다.
물론 이 '아메리카 원주민'이란 용어도 마치 '아시아인'을 말하는 것처럼 엄청나게 다양한 집단을 한 마디로 묶는 일이라, 실제 남아메리카에는 '인디언'의 스페인어 표현인 '인디오'를 싫어하고, 자기 민족명을 쓸 걸 바라는 사람도 많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다만 외부인들이 같은 문화권 내에서도 수 십개의 소 민족으로 갈라지는 경우도 흔한 원주민 민족명들을 다 하나 하나 알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적어도 북미에서는 각자의 부족명(나바호, 모히칸 등)으로 불러주길 바라며, 부족명을 모른다면 차라리 지금까지 계속 써 오던 '인디언'을 선호하는 여론이 더 크다.# 콜럼버스의 오해로 생긴 단어라 해도 수 백년 동안 '인디언'이란 소리를 듣고 살다 보니 차라리 이쪽에 미운정이라도 가지, 인디언들 내에서도 '미국 원주민'은 지나치게 딱딱하고, 인위적이며, 관료주의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의견이 많다.[12]
'Nigger'라는 단어도 비슷한 점이 있다. 예시로 흑인들 끼리는 서로를 'Nigger'라고 부르면서 예사로 즐겁게 지내지만, 백인의 경우엔 'Nigger'의 N자만 꺼내도 그야말로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도 있는 심각한 인종차별이 된다.
실제로 흑인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보다 그냥 흑인을 뜻하는 Black을 선호한다.[13] 사회,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까마득한 옛날 조상들이 끌려 나온 이후로 미주의 흑인들은 아프리카와 실질적인 연고가 하나도 없는데, 왜 자기는 가 본 적도 없는 아프리카를 갖다 붙이냐고 되려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흑인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면 백인은 유럽계 미국인이 될 수 있다는 건 덤. (영국계 미국인, 독일계 미국인 이라는 표현은 없는 표현이던가? 유럽계 미국인이라는 말은 미국에서 엄연히 잘 사용되고 있는 단어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제안한 것이라 하더라도, 어떤 이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이므로, 정말로 공정함을 추구한다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 적절한 이름을 찾아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또한 새로운 명칭을 찾아야 한다면 가능한 한 가치 중립적인 표현을 찾는 것이 좋다. 장애우라는 명칭을 둘러싼 논란과 마찬가지로, 너무 착한 의도를 드려내려다 오히려 그 명칭의 대상을 동정의 대상으로 끌어내리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너무 좋은 이름을 지으려는 의욕이 강해서 기존에 쓰던 말 중에 적절한 말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장애인 차별 언어의 양태에 관한 연구 보고서 발간하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별성이 높은 부류(병신, 저능아, 애꾸눈, 무뇌아, 앉은뱅이, 불구자)와 차별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부류(장님, 장애자, 농아인, 정상인, 맹인, 장애우)가 있고, "같은 어휘라도 문맥과 상황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차별성 정도가 다르다"며 "특히 문맥 속 대안 표현에서 차별 관련 표현을 그대로 사용해도 상관없다는 의견이 독립적 단어형에 비해 전체적으로 높게 나타나 사회 전반적으로 문맥 속에서 사용되는 차별 관련 표현의 사용을 일부 허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2.6. 그 외의 여러 가지 언어적 문제


'단어 바꿔 부르기'라는 측면을 살펴보자면, 단어를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의견 수렴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대안 용어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다는 한계도 있다. 후술하겠지만 벙어리장갑의 대안으로 만든 손모아장갑이란 단어가 그러한 예이다. 장애인 단체에서 캠페인을 벌였음에도 국립국어원에서는 정식으로 채택하지 않아서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못했고, 매스컴에서도 잘 쓰이지 않는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통장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통장갑이라는 표현이 더 간결해서 좋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한국에 한정해서 보자면 대안으로 나온 단어들이 한자어이거나 너무 긴 말이라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예를 들어 벙어리, 귀머거리 같은 단어들은 어원적으로는 순우리말이었지만, 함부로 사용하여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겼다. 여기에 대안으로 나온 단어가 언어장애인, 청각장애인인데, 순우리말을 한자어가 밀어 낸 모양새라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물론 반대로 언어순화 운동과 결합하여 한자어가 순우리말로 바뀐 사례도 있다. 예를 들면 탈북자 → 새터민. 다만 맨 뒤의 민(民)은 한자어이다. '새터민'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기존에 널리 쓰이던 한자어도 새로운 말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는데, '맹인'이 '시각장애인'으로 바뀐 게 그러한 예이다. 하지만 언어의 경제성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변화라고 볼 수도 있다.
한국어가 외국어 기준으로 욕처럼 들린다는 이유로 논란이 이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니가이다. 워너원김재환이 이 때문에 오해를 받았는데, 외국인 기자들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기사를 내어 오해가 증폭되자, 팬들이 해명에 나섰으나, 아직 오해가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 기사
영미권 기독교 일각에서는 성 중립적(gender inclusive) 표현이 사용된 번역본(NRSV, NIV 2011년판 등)에 대해 가부장적 사회였던 고대의 시대적 배경을 무시하고 성경을 모조리 현대적인 언어로 바꾸어버려 성경의 뜻이 왜곡될 수 있다며 반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은 NRSV, NIV 2011년판과 같이 성 중립적 표현이 사용된 번역본을 피하고 과거의 어법대로 쓰인 KJV, ESV, CSB, RSV와 같은 번역본을 선호한다.
법률적으로 위헌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67조, 제68조에는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을 '당선자'라 하는데, 공직선거법 187조,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등에서는 '당선인'이라 한다. 최소한 공직선거법 187조 등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사람을 '당선인'이라 지칭한 모든 조항은 위헌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14] 사실 'OO자(者)' 보다 'OO인(人)'이 낫다는 논리에 어떤 근거도 역사적 맥락도 없다.

3. 사회, 계층과의 괴리



3.1. 국내 현실과의 괴리


외국에서 온 개념이기 때문에 왜 그러한 생각이 생겼는지를 살펴보지 않고 국내에 무작정 도입하면 국내 문화와 충돌이 빚어진다. 버블 시스터즈 흑인 비하 논란이 그러한 예인데, 국내에서는 흑인음악 그룹이니까 흑인 분장을 했다고 이해했지만, 이것이 미국인들에게 흑인 비하라는 오해를 불렀다. 과거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흑인이나 아시아인에게 비중 있는 배역을 주지 않았고, 주조연급으로 나올 경우에는 백인 배우에게 흑인 분장이나 동양인 분장을 시켰기에, 다른 인종으로 분장을 하는 행위가 미국에서는 인종 차별로 비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미국에서 문제가 되니까 인종차별이다라는 식으로 문제 삼는다면 일반 대중들의 저항감을 부르게 된다.

3.2. 소득 중/하위계층과의 괴리


...전통적으로 희극은 불구자나 소경, 말더듬이, 난쟁이, 뚱뚱보, 백치, 일탈자, 평판이 나쁜 직업, 열등 민족으로 간주된 겨레 등에 의지해서 소기의 목적을 이루어 왔다. 그런데 이제 그 모든 것이 금기가 되어 버렸다. 오늘날엔 감히 무고한 천민이나 천덕꾸러기를 흉내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을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골의 코나 아넬리의 주름살이나 미테랑의 송곳니를 아무리 웃음거리로 만든다 해도, 놀림을 당하는 그들이 놀리는 자들보다 언제나 더 강한 쪽이 될 것임을 우리는 직감으로 알고 있다.

...동네의 백치를 희화거리로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반민주적인 행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좋다. 그렇다면, 그에게 발언권을 주고 생방송에 나가서 자기를 직접 소개하도록 권유하는 것은 어떨까? 그것은 완전히 민주적이다. 실제의 마을에서처럼 예술적 표현의 매개물은 생략해도 된다. 사람들은 술주정뱅이를 흉내내는 배우를 보고 웃는 것이 아니라, 알코올 중독자에게 직접 술값을 내주고 그의 타락을 비웃는다.

...이제 바보를 비웃는 것은 다시금 차이를 존중하는 태도, 이른바 <정치적으로 반듯한>태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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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중 『텔레비전에서 동네의 바보를 알아보는 방법』

정치적 올바름은 시민 단체에 적극 참여하는 지식인 계층이나 금융업 종사자들의 지지를 받는 반면 소득 중하위계층에게는 지지를 받지 못한다. 이는 하층민들의 사회적, 교육적 환경이나 경제적 배경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한 인식의 차이도 존재하기는 하나 사실 하위 계층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생활 여건상 PC의 취지에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15] 이는 다수자의 무조건적인 양보를 강요하는 PC의 성향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어보자.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수가 많은 계층은 농노, 임노동자 역할을 담당하던 수드라 계급이다. 만약 이들에게 PC적 잣대를 기준으로 소수자를 배려하라는 요구를 하면, 자신들에 대해 기존에 가해지는 차별도 해결되지 않은 마당에 이런 요구가 달갑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 노릇이다. 단순 독자 연구나 가정이 아니라 나렌드라 모디가 이런 다수자 계급의 불만을 노려서 인도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정권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PC는 정치에 관심 있는 지식인층의 호응을 얻는 이념이다. 정당들 입장에서는 소수자들의 발언권이 강화되면서 사용 가능한 패가 늘어나니 환영할 만한 일[출처]이지만, 생계 문제가 급한 일반인들에게는 자신의 권리가 축소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더군다나 상당수의 선진국, 중진국의 중산층 혹은 하층민 계급 청년들은 청년실업에 시달리는데다 외국 자본의 유입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증하면서 동요하는 현실에서,[16] PC는 이들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17] 외려 PC의 사상은 외국 자본에 의한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긍정[18]하고 정체성 정치 같은 '''원론적인 사회 정의를 추구'''하기 때문에, 하층민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현장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는 룸펜들의 탁상공론이라고 반발하는 경우도 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정치적 올바름을 배척하던 도널드 트럼프가 훨씬 더 적은 선거 비용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운 힐러리 클린턴을 압도하고 당선된 이유 중 하나가 힐러리의 주장과 공약이 소득 하위계층에게는 별 매력이 없어서였다. 힐러리 지지자들 상당수가 PC 성향이 강한 유명인사였던 점도 소득 하위 계층과의 거리감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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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내 인종별 PC 비호감도를 나타내는 자료출처
흑인, 동양인, 히스패닉들은 모두 PC에 찬성할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견과 다르게, 인종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의 PC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소득 중/하위계층과 PC 사이의 괴리를 설명해주는 자료이다.

3.3. 인권 운동과의 괴리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를 쓰는 것이 오히려 추악한 현실을 애써서 포장하려 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특히 인권 운동 자체에서. 급진파들은 이에 대해 날것인 입장인데, 흑인 민권 운동의 온건파의 대명사인 마틴 루터 킹은 연설에서 항상 흑인을 Negro라는 당시에는 온건한 말을 썼지만, 과격파인 말콤 X는 당시에는 현재의 Nigger의 위상이었던 'black'을 고집했다. 또한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 문제를 두고 이에 소극적이었던 마하트마 간디는 하리잔(신의 아이들)이라는 완곡한 단어를 썼는데 진짜 불가촉천민 출신 정치인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는 이 용어에 반대하며 기존의 불가촉천민을 일컫는 용어 중 하나였던 달리트(부숴진 자들이란 뜻)를 쓰는 것을 고집했다. 한국에서도 참담하게 실패한 백정, 장애우라는 사례가 존재한다.

3.3.1. 시골귀농인에 대한 차별 근절 소홀


이러한 괴리는 시골에서의 인권 운동에서 더욱 심각해진다. 정치적 올바름의 시작은 성 소수자 인권을 증진시키고 성 소수자 차별을 철폐하는 것이었으나, 점차 이성애자(헤테로)에 대한 적개심으로 변질되었다. 게다가 차별 철폐 운동이 도시에 집중되어 시골에 주목하지 않았다. 정치적 올바름 지지층은 점점 도시 내 남성의 권리를 좁혀가는 어용 집단으로 변질되었고, 자연스럽게 시골에서 아직까지 남은 시대착오적인 차별 근절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권력에 집착하는 어용으로 변질된 만큼 목숨을 걸고 낙후 지역의 여성인권을 상승시키는 건 뒷전이 되었다.
진짜 문제는 섬노예 등의 곪은 악습이 시골에서 비일비재한데다 정치적 올바름 지지층이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골의 악습은 섬노예만이 아닌 외지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에 있다. 시골 사정에 밝지 못한 약자들을 매일 협박하거나 강간해놓고 묻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한데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들은 적극적으로 시골의 시대착오적인 성인지 감수성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았다. 정치적 올바름 지지층이 섬노예와 시골 귀농인 중 귀농 성 소수자의 인권증진 및 보호에 대해서 참여하는 여론은 그쪽 진영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 성폭력 무고죄 폐지와 남성혐오에만 집착하여 악법을 만드는 데에 매진할 동안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데에 투자해야 할 귀중한 재원을 낭비한 것이다.

4. 표현의 자유 억압


일부 좌파는 테크놀로지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테크놀로지에 저항하는 것은 그들이 아웃사이더일 경우에 한해서이며, 테크놀로지 체제가 비좌파에 의해 통제되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만약 좌파가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그래서 좌파가 테크놀로지 체제를 언제든 쓸 수 있는 도구로 만든다면, 그들은 그 때부터 열광적으로 테크놀로지를 이용하고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지원할 것이다. 좌파주의가 역사에서 끝없이 반복해 왔던 그 패턴 그대로의 행동이다. 러시아 볼셰비키가 아웃사이더였을 때는 검열과 비밀경찰에 대해 격렬히 저항했고, 소수민족의 자율권을 외쳤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권력이 넘어오자마자 볼셰비키는 더 철저한 검열을 실시했고 짜르 치하에서의 비밀 경찰보다도 잔인한 비밀경찰을 창설했다. 그리고 소수민족에 대단 억압도 짜르 시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미국의 경우, 몇십 년 전 대학에서 좌파가 소수였을 때, 좌파 교수들은 열렬히 학문의 자유를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좌파가 주도권을 쥔 대학들에서 좌파들은 나머지 모든 사람으로부터 학문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이것이 바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운동이다) 똑같은 일이 좌파와 테크놀로지 사이에도 벌어질 것이다. 일단 테크놀로지를 자기 통제하에 넣고 나면, 좌파는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나머지 모든 사람을 억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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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카진스키, 유나바머 선언문(1993)

Q: 최근 SNS 등을 통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아동 콘텐츠의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논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특히 아동 콘텐츠에 이에 대한 잣대를 드는 것은 그것이 주 대상인 어린이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지역과 시대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제작할 때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주의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일왕국의 프린세스 프링>은 이러한 최근의 시대적 담론이 오가기 전부터 기획되었기 때문에 이를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신세대 공주님답게 프린세스 프링이 좀 더 자유롭고 능동적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마차 대신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고, 드레스 대신 바지를 입고, 영화감독이 되어 영화를 연출하거나, 생일왕국을 지켜내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죠. 그렇다고 해서 굳이 여성성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분홍이건 파랑이건 색깔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용하는 힘이야말로 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린세스 프링이 그런 캐릭터로 자리매김하길 희망하고요. 한편 캐릭터 중 퐁과 젤리콩은 성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 설정했습니다만 여자 캐릭터가 터프한 일을 하고 남자 캐릭터가 섬세한 일은 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해서 그 작품이 성차별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건 작품이 지향하는 시선과 내용이거든요. 요즘 논해지는 아동 콘텐츠에 있어서의 성차별 문제가 대두되기 훨씬 전부터 저희는 세상의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고자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저희는 무지갯빛 다양한 꿈을 가진 캐릭터들이 그리는 근사한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게 모두를 위한 생일왕국의 모습이길 바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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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왕국의 프린세스 프링 김수련 감독 인터뷰 중 일부 - #

PC적 표현은 문맥에 맞게 쓰여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PC적 표현을 써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쓰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하려면, 일단 PC적 표현으로 바꿔 보고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 꿀 먹은 벙어리: 속담의 의도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게 아니므로, 사회통념적으로는 '꿀 먹은 언어장애인'이라고 하는 게 이상한 표현이고 '꿀 먹은 벙어리'를 관용어구로 볼 수 있다. 하지만 KBS에서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용어라며 미미시스터즈의 곡 '미미'를 금지곡으로 정했다.
  • 벙어리: 록밴드 넬의 인디 시절 2집 수록곡 '벙어리'도 같은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다만 그 기준이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위와 같은 예는 누가 보더라도 기괴하고 이상한 금지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교육 현장에선, 벙어리, 귀머거리가 비하어가 아니었고 심지어 성경책에도 버젓이 쓰인 단어였다. 그래서 저 당시에 학교에 다녔던 세대라면 이런 단어가 비하어 목록에 새로 추가된 사실을 모르고 가사를 지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기준이 없다는 점을 악용한 검열로 볼 수 있다. 합리적인 사람들만 모여서 PC의 기준과 금지곡을 의논한다면 PC에 미숙하니 마니 하는 문제가 나올 이유가 없다. 하지만 똥군기가 적용되는 집단에서는 윗사람이 금지시켜야 한다고 하면 무조건 금지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게다가 미국처럼 PC를 엄격히 적용하는 나라에서도 문학이나 영화 등의 창작물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PC를 요구하지 않는다. 덕분에 편견과 증오로 가득찬 쓰레기 같은 창작물이 버젓이 헌법의 보호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역기능을 무릅쓰고라도 보호되어야만 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다. 상황과 적절성을 고려하지 않고 껄끄러운 표현이 등장하기만 하면 허겁지겁 입부터 틀어막는 식으로, 예를 들어 노예 12년이라는 작품에서 "검둥이(nigger)"라는 표현을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바꿨다거나, 포레스트 검프에서 "천치(idiot)"라는 대사를 모두 "지적 장애인"으로 편집했다고 상상해 보자. 실제로 미국에서도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니거(nigger)가 나온다는 이유로 이 책을 퇴출하자느니 마느니 수십 년 째 공방이 펼쳐지는 상황이니 PC와 표현의 자유를 조화시키는 작업은 아직도 지난할 따름이다.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게임 회사 또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이런 현상에 대해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게임 분야에서는 비난하는 쪽이 더 많은 양상을 띈다. 국내 최대 게임 방송사인 OGN에서는 논평을 통해 '정치적 올바름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월권 행위가 될 수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표현이라도, 해당 표현이 특정인이나 대상에 대한 악의나 증오를 담지 않지만 내용 전개상 필요한 단어와 제스처인데 무조건 일괄 규제하고 탄압하고, 모자이크 처리하거나, 해당 내용 없이 작품을 전개해야만 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그 예로 미국에서 PC 광풍이 한창 불었을 때 흑인을 니거로 표현한 게 올바르지 못하다며 도서관에 비치된 옛날 책들을 전부 찾아내 지우거나 수정했는데, 요즘엔 그렇게 지운 것을 다시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정치적 올바름에 입각하여 일부 소설, 음악, 드라마, 영화에서의 내용, 장면에 대해 선정성, 폭력성을 이유로 자르거나 내용을 수정하게 하도록 압력을 넣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내용이나 문맥이나 내용 전개 상 어색한 부분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게임만화, 애니메이션 등에 대해서도 선정성, 폭력성, 정서적 문제, 모방 등을 이유로 간섭과 편집을 하거나, 하도록 관련 기관에 압력을 넣는다.
특정 단체에서의 요청 외에도 정치적 올바름에 입각한 네티즌들의 요구, 요청 등도 존재한다. 과도한 편집 검열로 작품의 순수성과 예술성을 침해한다는 점과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에 대해 비판, 반발 여론도 나타나고 있다. 예술 작품의 예술성, 작품성은 존중받아야 된다. 움베르토 에코는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홍위병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PC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붉은머리를 한 창작물 캐릭터를 흑인으로 대체해나가는 것이 포착되면서, 새로운 차별을 만드는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다.[19] 미국에서 발언권이 낮은 중앙아시아인[20]/북아프리카인[21]들을 흑인 캐릭터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동인 만화 만드라고라 공장[22], 좀비랜드는 자칭 인권단체나 자칭 인권운동가를 비롯하여 극단적인 정치적 올바름을 고집하는 집단들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꼬집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역시나 해당 만화의 팩트폭력에 자신들의 정곡이 찔린 나머지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 등을 언급하거나 만화의 내용을 곡해[23]하여 비난과 공격을 가하고 있다.#[24] 정작 그들은 염전노예가 된 장애인들, 자폐아동, 시각장애인과 안마시술소의 특수성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는 건 함정.
문화업계(특히 애니메이션, 게임) 일부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25]

5. 피해자 코스프레


과거에는 인종, 국적, 성별 등과 상관 없이 공통적으로 같은 기준이 적용되었던 이슈가 정치적 올바름과 맞물려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을 둘러싼 논란이 있다. 이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더 큰 비난을 받은 게 아니냐는 것. 물론, 일부 사람들이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으로 어그로를 끌기는 했지만, 국민 대다수의 정서는 이것이 국정농단이니 성별과 정치적 성향을 떠나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박근혜와 최순실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유의미한 성별 편중은 나타나지 않았다.
2020년에는 WHO 사무총장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자신이 흑인이라 인종차별 비난을 받았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시전했다. 코로나19 방역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왜 흑인 이야기가 나오는 건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처럼 고위층이 자기가 잘못해 놓고, 방패막이로 소수자 임을 내세우는 데 정치적 올바름이 악용되고 있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비교적 소소한 이슈이긴 하지만 명품백 논란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물론 과거의 된장녀 논란은 사치의 기준이 고작 스타벅스 커피 1잔이라 논란이 될 법 했지만, 굳이 명품백이 아니더라도 본인의 소득 수준에 걸맞지 않은 소비 생활은 남녀를 막론하고 논란이 되어 왔다. 일제 강점기에 모던 보이, 모던 걸 풍자가 유행했던 것이나, 옷만 멋지게 차려 입고 무전취식하는 남자를 풍자한 <빈대떡 신사>라는 노래가 당시 시대상을 보여 준다.
이처럼 과거에는 남녀를 막론하고 비난받던 행동을 지적하는 것이라도, 현재는 여혐으로 의심받기 쉬워졌다. 물론 이는 스타벅스로 어그로를 끌던 과거 인터넷 어그로들의 주작 글이 큰 역할을 했음을 무시할 수 없지만, 가산을 거덜낼 정도의 사치를 지적해도, 지적받는 사람이 여성이면 '''빼애액 여혐이다'''하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기 좋은 상황이 빚어졌다. 정작 남자가 비슷한 짓을 할 때는 남혐이라는 지적은 전혀 나오지 않는 상황.

6. 창조논란과 침소봉대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에 대한 논란은 늘 있어왔으나, 최근에는 정치적 올바름, SJW 개념과 교묘하게 엮어 트집 잡기를 정당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연예인의 사진을 밝은 톤으로 보정하는 것을 화이트워싱이라 비난하는 일이 일부 해외 케이팝 팬들에게서 나타나 국내 케이팝 팬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원래 화이트워싱은 비백인이 맡아야 할 배역을 백인이 빼앗아 가는 것을 비판하는 개념이었으나, 사진 색감에 참견을 하는 것으로 변질된 것.
2010년대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향이 쨍하고 밝은 색감으로 변하여 요즈음 홈마들은 사진을 밝은 톤으로 보정한다. 트렌드가 아니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야간 행사인 경우 보정을 거치지 않으면 형체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어두운 사진이 나온다. 이런 경우, 원래 강한 조명과 메이크업으로 인해 본래 피무가 까무잡잡한 연예인도 피부가 뽀얗게 나오게 된다.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남성들도 분 세수를 할 정도로 미백을 신경 써 왔으며, 최근에는 자외선 차단에 신경을 쓰면서 90년대와는 달리 선탠을 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그런데 이것이 '''한국인들은 백인을 선망하여 피부를 하얗게 꾸민다'''는 식으로 왜곡되어 알려진 것. 이 때문에, 홈마가 색감을 밝게 보정하면 '''화이트 워싱''' 논란을 제기하여, 이에 질린 홈마가 활동을 접어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사진을 실제보다 더 어두운 톤으로 뽀샵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블랙워싱이란 개념도 있는데, 본래는 흑인을 진정으로 존중하지 않으면서 어설프게 흑인 흉내를 내는 백인들을 지적하는 개념이었으나, 이와는 상관없이 단순히 건강미를 위해서 태닝을 하는 사람들도 마구잡이로 비난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26] 지금은 자외선이 노화를 일으킨다 하여 사그라든 유행이기는 하나, 건강미를 위해 태닝을 하는 사람들이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씁쓸한 현상이다.
또한 페미니즘 이슈나 기타 도덕적 이슈를 엮어서 애꿎은 연예인에게 악플을 다는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이유, 설리. 특히 기존의 잣대로 딱히 도덕성을 문제 삼기 어려울 경우,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워 '''님들이 모르는 도덕적인 문제점을 알아냈다'''며 창조논란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설리의 경우는 여성 악플러들이 페미니즘을 방패막이로 삼아 남성들이 설리를 죽였다고 책임 전가를 시도하기도 했다. 또한 희철이 지적했듯이, 설리의 죽음을 젠더 갈등속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유리하게 만드는 데 이용하는 양상을 보였다. 즉,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악플 정당화에 악용되며 책임회피도 가능한 만능 카드가 된 것이다.
흔한 연예인의 엽사를 장애인 비하라고 확대 해석하여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라면 이런 엽사에 대한 악플을 달 때 '''장애인 같다'''라는 말을 썼겠으나, 지금은 그런 말을 하면 비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영악한 악플러들이 무고한 연예인에게 '''장애인 흉내를 냈다'''는 누명을 씌우는 것이다. 즉 자신의 나쁜 의도를 상대방에게 덮어 씌우기 위해 정치적 올바름이란 개념까지 동원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27]
그리고 설령 해당 연예인이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익명제 커뮤에서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별 관심을 끌지 못하는 오래 전 사건을 뒤늦게 들추어 내어 마치 최근에 터진 중대 사건처럼 이슈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를 익명제 커뮤니티에서 이슈화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어떤 연예인이 최근에 범죄를 저질러서 지탄을 받을 경우, 물타기를 위해 이미 10여 년 전에 죗값을 치른 다른 연예인의 사례를 끌어들여 '''얘가 더 나쁜 놈이다'''라는 식으로 침소봉대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기가 쉴드 치는 연예인의 잘못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 이들의 의도. 이러한 경우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남자 연예인은 타격이 없다고 선동을 하기 위해 자료를 만들기도 한다.[28]
또 하나는 자기가 싫어하는 연예인이 자기가 즐겨 보는 프로그램에 나오거나 멋있어 보이는 배역을 맡은 경우이다. 자기가 원하는 연예인이 출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도덕성을 명분으로 들어 비난하는 것. 악역을 맡았을 땐 아무런 논란이 없는데, 인기를 끌 만한 배역일 경우에 논란이 되는 경우라면 의심해 볼 수 있다.[29]
물론, 과거에도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의 활동 재개에 대한 비판은 늘 있어 왔고 오영훈 의원은 이러한 연예인의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으나, 위헌의 소지가 있어서 어차피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지적을 받고 흐지부지되었다.
그런데, 익명제 커뮤에서 나타나는 비판은 기존의 한국적인 정서와는 궤를 달리한다.[30] 예를 들면 저지른 범죄가 성 관련 범죄가 아니며 죄질 자체도 비교 불가 수준인데, '''범죄자를 봐 줄 거면 조두순 같은 성범죄자도 옹호할 것이냐'''라며 논리 비약을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작품을 소비하는 것은 범죄를 옹호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매도하기 때문에, 해당 연예인의 팬이 아니고, 단지 작품이 좋아서 감상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반감을 불러일으킨다.[31] 또한 익명제의 특성상 타 팬덤이 견제 차원에서 어그로를 끄는 것을 도덕적 명분으로 위장할 수도 있다.
그리고 기준의 잣대가 일관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정다은은 범죄자임에도 한때 정의로운 고발자로 영웅시된 적이 있었다.[32] 반면 어떤 연예인이 성범죄자를 비판했는데, 그 발언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마초 전과를 끄집어 내며 '''전과자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냐''''며 비난하는 일이 같은 커뮤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론 전자의 경우를 쉴드 친 사람이 후자의 경우를 비난한 사람과 동일인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전자의 경우를 쉴드 치면서 후자의 경우에 대한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지 않았다면 그건 그것대로 모순이다.
이는 '''극성 팬덤이 존재하느냐'''와 진영논리에 따라 여론이 갈리기 때문이다.[33] 따라서 반대로 누가 보더라도 욕 먹을 만한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대중들은 유명인의 몰락을 좋아한다. 악플 때문에 사람이 죽은 걸 잊었느냐?'''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정치적 올바름의 개념을 아전인수로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정치적 올바름을 비롯해 도덕적 명분을 과하게 내세우는 연예 커뮤의 설전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는 일반 대중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범죄가 하나도 없는 연예인이 이러한 논란에 휘말린 경우,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는 안티들 특유의 선민의식에 반감을 느껴 정치적 올바름이란 개념 자체를 혐오하게 되기도 한다. 인터넷 커뮤에서 PC충이란 멸칭이 흔히 쓰이는 것은 이러한 여론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결정적인 사건이 TWICE 사나 일본 연호 사용 논란 선동 사건인데,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서 아는 척하는 안티들이 사나를 극우주의자로 매도하였고, 심지어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녀를 사칭하는 어그로까지 등장하여 사나를 비판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외면하는 사람들이란 프레임을 씌우려 했다가 호사카 유지 교수 같은 전문가들의 등장으로 무식이 탄로났다. 이것만 보더라도 2010년대 중후반부터 정치적 올바름이 연예인 안티질에 얼마나 악용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7. 역차별과 딜레마


영문학 교수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 대해 강의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을 수 있다.[34]

질투심 많은 살인자 흑인의 모습이 비서방 학생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베니스의 상인』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을 수도 있는데, 대중적인 반유대주의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명백한 이유 때문이다(비록 샤일록이 고상한 인물일지라도).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를 강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느 아프리카 종족(그 후손들이 그 대학에 다니고 있다면)의 신화와 철학을 간과한다는 의미를 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도곤 신화(도곤은 아프리카의 한 종족)에 대한 가르침이 모두 유용하고 정당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불행히도 <정치적 올바름>은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치는 자를 비난하고, 도곤 신화를 가르치는 자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광신주의와 근본주의를 대변한다. 다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합리성을 구현하였고, 도곤 신화는 단지 야만적인 정신상태의 표현이었다고 가르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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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미네르바 성냥갑』 중

실제로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사회적 소수자대상화하지 말라'는 의견이 널리 퍼졌지만, 정작 이 때문에 사회적 다수자의 입장이 무시당하거나 역으로 사회적 다수자를 대상화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기도 한다.
앞서 움베르토 에코오셀로와 샤일록을 둘러싼 예상 논란을 예시로 든 것과 같은 맥락으로, 여성 캐릭터는 무조건 완벽하게 그려져야 한다는 압력이 나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폭력남을 못 떠나는 여성의 심리를 묘사한 경우, 폭력 미화 논란이 생길 수 있다.
라나 델 레이Ultraviolence를 발표했을 때,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여성 인권을 후퇴시켰다는 비판이 나온 게 그러한 예이다.
반면 남성 캐릭터가 팜므파탈에 휘둘리는 경우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남주가 잘생긴 경우 BDSM 성향이 있는 여성 시청자에겐 좋은 팬서비스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소수자를 배려한다는 의도에서 나온 표현이 또 다른 소수자를 배제할 우려가 있다. 예를 들면, 벙어리 장갑의 대안적인 표현으로 나온 손모아 장갑은 손가락이 붙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으며, 남녀 사이에 우정이 존재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성소수자를 배려해 이성애자 남녀 사이에 우정이 존재할 수 있나요?로 바꾸는 것은 양성애자를 소외시키는 부작용이 나온다. 정치적 올바름 타령을 하면서 정작 사회적 소수자들의 정당한 생존권과 노동권을 하잖게 보는 경향도 종종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F1에서 퇴출당한 레이싱걸, 생계을 위해 유흥시설에서 성매매을 하다 매스컴의 공격에 엉뚱하게도 실업자가 된 여성들, 인권단체의 집요한 공격에 인해 만드라고라 공장이 폐업되면서 실업자가 된 청각장애인[35] 등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해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 등을 언급하여 반론을 제기하지만, 사실 반론 또한 "장애인, 여성=보호 대상"이라는 편협적인 논리에 말미암아 그 지역(회사)만의 문제을 일터 전체로 어거지로 확장하여 비난하는 꼴이라 결국 "일터는 위험하니 여성들과 장애인들은 일하지 말라"는 소리나 다를 바 없다.
클리토리스를 가진 여성이란 표현이 트랜스젠더 여성을 배제한 표현이라는 지적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비판할 수 있다. 애초에 트랜스젠더 여성을 그냥 여성으로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문장을 읽었을 때 당연히 트랜스젠더 여성까지 포함해서 생각할 것인데, 굳이 트랜스젠더 여성을 언급함으로써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이 아니다'라는 차별 발언에 힘을 실어 주게 되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에서 남자 아이돌들의 여장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여자 아이돌의 남장이 걸크러시로 받아들여지는 것과는 달리 희화화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운다. 여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우스꽝스럽게 표현된 여장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정말로 완벽한 여장은 남녀를 막론하고 거부감이 덜하며 놀림거리가 되는 일도 드물다. 대표적인 사례가 복면가왕에 출연한 경국지색 어우동 외모가 여리여리하고 목소리도 여가수에 가까웠지만,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양성적인 매력을 뽐냈기에 젠더 고정관념 논란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으며, 해당 연예인의 인지도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여장을 아름답게 하면 논란을 차단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의도가 걸크러시를 유발하는 멋진 언니의 이미지를 표현하려 한 것이라 할지라도, 남자 연예인이 의도한 콘셉트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의도치 않게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김종국 같은 근육질 남자 연예인을 여장 이벤트에서 배제시킨다면, 거꾸로 이것이 젠더 고정관념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여자 중에도 전문 보디빌더처럼 근육질인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남자 티가 나는 트랜스젠더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자 아이돌의 남장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여자가 그래봤자 어차피 여자라며 남자에게 위협적이지 않기 때문에 애교로 봐 주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여자 아이돌의 남장 이벤트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에 혼성 듀오 유리스믹스에서 활동한 애니 레녹스처럼, 남장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걸크러시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애니 레녹스는 2009년에 에이즈 퇴치에 힘쓴 공로로 평화여성상을 수상하는 등 여성을 위한 활동을 열성적으로 해 왔다. 링크 다만 걸크러시에 대해 혹자는 레즈비언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 유행어일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용어가 없으면 걸크러쉬와 여성애가 혼동될 거란 생각은 안 하는 모양이다. 그게 착각할 종류의 일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성소수자 코스프레는 분명 존재했던 유행이다. 또한 창작물에서 남장 여성이 레즈비언으로 설정된 경우, 레즈비언에 대한 편견을 고착화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반면 남장이 꼭 걸크러시로만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미소년 스타일이 아닌 수염이나 진한 눈썹 등으로 남장한 사례도 분명 존재하며, 이것은 걸크러시처럼 칭송받지 않고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PINK FUNKY 뮤비의 화사의 남장이 있다. 당장에 남장이란 검색어 뒤에 수염이라는 단어 하나만 더 붙여도 우스꽝스럽게 표현되는 남장이 소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7.1. 희생과 양보 강요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일반 시민들의 희생과 양보를 강요하며, 또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일반 시민들은 여성, 어린이, 성소수자들의 사회적 입지가 약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배려를 해야한다는 의견 자체에 반론을 제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배려는 어디까지나 사회적 공동체에서 허용 가능한 수준에서 이루어져야하는 것으로, 특혜로 보일 수준까지 희생과 양보를 강요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예를 들어 이태원 클럽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에서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회적 거리기간 중에 클럽을 방문한 무개념 성소수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권이 침해된다거나 잠적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방역을 위해서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옹호를 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이런 주장은 많은 모순을 안고 있다.
첫째, 공동체에 피해를 일으키는 행동은 정치적 올바름으로 옹호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상기 사건은 성소수자건 클러버건 비난 당해야 마땅한 사안인데, SJW는 성소수자가 아웃팅 될 것을 우려한 인권 문제로 몰고가며 비난을 희석시키려고 든다.
둘째, 규범을 착실히 준수하는 사람이 항상 희생과 양보를 강요 받는다. 코로나19 감염증 사례에서 1차로 신천지 신도가 대량 감염의 원인이 되었을 때, 그들의 잠적을 막기위해 특정 종교 집단을 비난하지 말아달라고 일반 시민들은 희생과 양보를 강요 받았으며, 그로 인해 병상이 부족해서 일반 시민 환자는 입원도 못하거나 입원해도 '나 빼고 모두 신천지#'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2차로 사회적 거리기간 중 클럽을 방문한 무개념 성소수자에 의해 또다시 코로나19 대량 감염이 발생하자, SJW들은 또다시 성소수자들의 인권 보호와 방역을 위해 그들이 아웃팅 당하지 않도록 일반 시민들의 희생과 양보를 또다시 강요하고 있다.
이처럼 규범을 준수하는 일반 시민들의 희생과 양보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인지 몹시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가해자가 그들의 기준에 부합하는 경우라면 설령 가해자일지라도 그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피해자들의 희생과 양보를 지속적으로 강요하며, 만일 그를 거부하게 되면 꼰대나 인권의식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비판한다. 성차별 덕을 본 4050 세대가 20대 남성에게 페미니즘을 들먹이며 희생과 양보를 강요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희생과 양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경제 분야, 의식주 분야에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경우이다. 기존의 경제 정책에서는 저소득층을 위한 희생과 양보를 하는 계층은 주로 고소득자와 상위 계층으로서 분담을 할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인 반면, 정치적 올바름에 근거한 정책의 희생자들은 고소득자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일반적으로 지방 공단 중소기업의 경우 대졸 신입 남성 생산직이 고졸 여성 사무직보다 전문 지식 수준은 물론 업무 강도가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월급은 둘 다 최저임금에 가깝게 책정된다. 만약에 반대로 대졸 여성이 고졸 남성보다 같은 직장에서 더 힘든 일을 하고 임금을 비슷하게 받으면 심각한 성차별 문제로 지적이 나오고도 남는다. 대졸 남성의 경우는 불평이나 이직이라도 할 수 있지 고졸 남성의 경우 왜 자신은 사무실에서 엑셀 다루면 안 되냐고 차라리 자기가 엑셀 더 잘 한다고 불평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치적 올바름의 지지자들은 희생을 할 만한 여유가 전혀 없는 계층이 '사회적 강자' '사회적 다수자'라는 프레임 아래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불편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7.2. 또다른 차별과 선택적 올바름


정치적 올바름을 외치면서 정작 또 다른 차별을 낳고 있다. 그 예로 현재 대두되고 있는 '진저 차별'로, PC를 외치는 많은 매체들 중에서 원래 백인이었던 캐릭터들이 흑인으로 바뀌는 사례가 있는데, 유독 적발의 백인이었던 캐릭터들만 흑인으로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인어공주 실사화 캐스팅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진저 차별이 대두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그 외에도 흑인이나 히스패닉은 동정하면서, 동양인은 예외로 두고 인종차별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단적으로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강제로 주입시킨 것과는 반대로 동양인 차별 표현이 대놓고 나왔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동양인 차별이 심해지고 있는데 정작 정치적 올바름 주의자들은 함묵하고 있다. 오히려 한인 노인이 폭행당한 사건을 언급한 손녀에게 사회 정의를 위해서 침묵하라는 협박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여성을 존중하고 지지한다고 하던 사람들이 정작 로더럼 아동 성착취 사건에 대해서는 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존중해야 한다던 여성을 무시하고, 유색인종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던 범죄자들을 옹호했다. 심지어는 '다양성을 위해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소리까지 하기도 했다.
물론 피해자들을 아예 지원 안 한 건 아니었지만, 피해자 중에서 유색 인종 출신 소녀에게만 관심과 지원을 해 주고 나머지 백인 소녀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또한 상술한대로 미국 사회에서 발언권이 약한 중앙아시아인북아시아인의 경우 PC의 혜택에서 거의 완전히 배제된다.[36]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식의 선택적 올바름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8. 선민사상계몽주의


비단 정치적 올바름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지만 SJW들의 선민사상은 도를 넘어서 듣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수준까지 와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에서 코로나19 감염 2차 웨이브를 불러온 용인 66번 확진자와 그가 방문했던 클럽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각 커뮤니티에서 비난이 폭주했는데, 정작 철딱서니 없는 그 확진자와 감염된 사람들의 행동보다는 동선 공개가 성 소수자에 대한 인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하는 식이다.
물론, 그들이 방문한 클럽이 게이클럽이라는 TMI를 보도한 일부 언론은 감염자를 숨어 버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나, 그 과정에서 SJW들은 확진자들에 대한 비판은 생략하고 '너희들의 성 소수자에 대한 비뚤어진 비난이 문제다'는 식으로 가르치려 드는 행위를 했고, 그로 말미암아 성 소수자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무조건적 반발심리가 더욱 확산되었다.[37]
애초에 대한민국의 방역 방식은 국뽕 제외하고 냉정히 봤을 때 개인 사생활 침해의 위험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38] 대한민국은 사스, 신종 플루, 메르스로 인해 커다란 전염병 피해를 겪었기 때문에, 방역의 사회적 이익을 고려해서 다소의 개인 사생활 침해를 용인하는 쪽으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현행 우리나라 전염병에 대한 법률은 사회적 자숙 기간에 위험시설을 방문했고 그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다면 추가 감염자 발생을 막기위해 개인 사생활 침해를 용인하는 개인 동선 발표를 하도록 되어있다. 실제로 신천지 신도를 비롯해서 불륜으로 의심되기에 충분한 개인 사생활 동선까지도 모조리 공개된 바 있다. 따라서 성 소수자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고, 당연히 이러한 공개를 비판하는 행위나 그에 대한 옹호도 용납 될 수 없다.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 성 소수자''''도''''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지 우대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태원 클럽 사태 이후, 성소수자 아웃팅에 대한 우려 때문에 확진자 동선 공개 방침이 바뀌었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방문한 업소명을 드러내지 않다 보니, 엉뚱한 업체가 확진자가 다녀간 업소라는 루머가 맘카페를 통해 퍼져 애꿎은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정보를 가리는 게 이러한 부작용을 낳는다면, 차라리, 업소를 확실히 특정하는 게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 그나마 나은 방법일 수도 있다.

8.1. 교조주의와 불관용의 문제


'정치적 올바름' 개념의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개선 사항'을 '지도'한다고 착각하는 집단이 특별히 국민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는 '특정 단체'와 같은 소수 집단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국민 전체의 언어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규범을, 소수의 집단이 독자적인 가치관에 따라서 제멋대로 단정적인 판단을 내려 제시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이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소수파 조직들은 어느 날 갑자기 '특정 용어는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으니 쓰지 말고, 이러저러한 용어를 쓰라'고 '지시'를 내리는 셈이 된다. 보통 이런 조직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도덕적 우월감에 도취해 스스로를 신성시하며, 상하관계가 수직적이고 이른바 '교리'가 매우 교조주의적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지시에 영향을 받게 되는 수동적 대중들은 그 교조적인 소수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 전혀 참여할 수 없다. 바로 하루 전까지는 멀쩡하게 쓰이던 용어가, 어느날 갑자기 누군지도 모르고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던 사람들의 '밀실 회의' 결과 하루 아침에 '차별적 용어'가 되버리고, 그 용어를 입에 담는 것 자체로 '차별주의자'가 되버리는 도덕적 단죄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쾌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이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런 불쾌함을 느끼는 것마저 짜증나지만,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교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단죄를 받은 사람들이 차별의 잠재적 가해자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인정해야 하며, 자아비판을 통해 자신 내부의 차별적 요소를 고쳐야 한다'고 여기니 더더욱 울화통이 터진다. 참고로 일본에서 유래된 엔자이 또한 이와 비슷한 논리[39]가 담겨 있다.
원래부터 여러 가지 개념이 혼재되었던 용어 '정치적 올바름'은 다른 개념들을 흡수하고 확장되면서 삶의 기준 내지 도덕 기준까지 확장되었다. "PC하게 살자"란 말까지 나올 정도. 그 결과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더 교조적으로 발전해 사회적 올바름을 인위적으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어떤 것이 더 좋은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인위적인 기준선을 설정할수 없는 것이며, 본래 군중의 세세한 움직임이 역사라는 틀 안에 모여 하나의 '인식'으로 형성되는데, 이를 특정 단체의 가치관에 기반한 '올바름'이라는 이유로 자연적인 흐름에 반해서 결정한다는 것에서 문제가 있다. 이는 상당한 반발력을 조장할 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않고 결정한다는 점에서 그 올바름 역시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이 가면 갈 수록 높아진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PC의 개념이 삶의 기준 내지 도덕 기준으로까지 넓어진 현재, 이 기준은 높아지다 못해 전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이 요구하는 가치관에 맞춰 칼같이 살지 않으면 정치적 올바름 지지자들에게 비난을 들을 수준에 이르렀다. 이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에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사람들을 대안 우파의 끄나불이라고 비난하며, '당신들이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PC란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것 아니냐'라고 말하면 '그 사회가 사회적 강자들 위주의 가치관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며, 그런 가해자의 윤리는 이제 사회에서 도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반박한다.
게다가 이러한 운동은 전체주의적 사고에 입각했다고 볼 여지도 있는데, 한 가지 대상(장애인, 동성애자 등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한 가지 관점[40]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해서 가지는 관점은 지극히 그 개인의 것이며, 그 관점을 표현하는 것이 언어다. 만일 그 관점을 모욕적인 언사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비난을 돌리고 피해를 주었다면 제재해야할 일이지, 언어를 제재하는건 제재의 방향도 옳지 않고, 정당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은 '누구나 존중받고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기 입법과 자기 책임이다.
결론을 내자면 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에 너무 과도하게 집착하는 교조주의자들도 존재하며, 그러한 교조주의자들 덕에 역차별이나 부작용과 같은 사회적 트러블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 또한 교조주의자들의 과도한 집착 역시 중도층이나 정치에 관심없는 사람들의 반감과 거부감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교조주의자들과 아래의 '프로불편러'들 때문에 오히려 정치적 올바름의 대상이 되는 가치 및 운동 자체에도 역으로 냉소와 반감을 가지게 만드는 부작용도 일어나게 된다. 성 문제에 대한 교조주의 때문에 오히려 성평등 운동 자체에 반감을 가지는게 그 예시다. 성 문화에 대한 교조주의는 반대로 성 소수자 등의 엉뚱한 피해자를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일부 성 소수자들도 반감을 갖는 문제.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의 경우가 이런 이유로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한다. 개인을 존중하려는 취지는 좋지만 정작 약자에 대한 옹호가 아닌 불이익을 받을 예정인 강자의 자기옹호에 불과하며, 그에 따른 강자의 강요로 새로운 근본주의, 불관용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에코 본인은 미국식 정치적 올바름을 거의 혐오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싫어하며 그의 저서인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서 몇 개의 에피소드를 할애해 신나게 비꼬고 있다. 미국의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 역시 마찬가지로 'PC 경찰'들이 지겹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9. 정치적 올바름 지지자들의 문제


특히 한국의 경우 정치적 올바름 지지자의 범위와 페미니스트, 좌파, 신좌파, 퇴행적 좌파의 범위가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페미 또는 좌파 비판이 정치적 올바름 지지자들의 비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통 페미 또는 신좌파와 대립하는 쪽은 정치적 올바름도 좋아하지 않는다.

9.1. 모든 정치적 올바름 위반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문제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진영에서 정작 본인들 혹은 본인들이 옹호하는 대상이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되는 행동을 보인다면 무시, 방관 내지는 암묵적 동조를 하거나, 그들의 행동에 대해 말도 안되는 궤변을 늘여놓으며 정당화까지 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즉 내로남불이중잣대가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진영에서 따라다닌다는 상황이 꼭 발생한다는 것인데 아래 문단은 이에 대한 비판을 다룬다.
대표적인 예시가 미국 SJW들은 이슬람주의를 비판하는 경우가 적다. 마지드 나와즈 같은 이슬람 자유주의 성향 무슬림의 경우 스트립 클럽을 방문했을 당시 SJW단체로부터 가짜 무슬림이라고 비방을 먹었지만, 정작 이슬람 근본주의 선교사들의 미성년자 성폭행은 침묵한다.(...)[41] 같은 맥락에서 히스패닉과 흑인과의 갈등을 다루면 “유색인종 사이를 이간질한다.”라는 비판을 하며,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 당시 폭행당한 한인 노인의 손녀가 폭행 사실을 밝히자, 오히려 피해자인 해당인들에게 소수 인종간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방을 퍼붓기까지 했다.
정치적 올바름 운동은 진보주의를 자처하면서도 극단적인 문화상대주의를 추구함으로써, 오히려 현대 민주주의 시민사회의 보편가치를 부정하는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슬람권 국가들의 주민들도 엄연히 세계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천부인권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민주주의를 숙주로 삼아 인권을 침해하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선교하려는 이슬람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에 어긋난다.
이러한 문제는 미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LA 폭동이나 퍼거슨 소요의 사례에서는 미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로 불리던 흑인들이 자신들을 차별한 사회 집권층이 아닌 자신들보다 더 소수자인 한인들을 공격해 강약약강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상당수 언론은 인종차별 논란을 살까 두려워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못했고, 사건의 전말을 알지 못한 외국에서는 아직도 차량 과속하다 붙잡힌 가석방 수감자나 경찰의 권총을 탈취한 범죄자를 두고 '무고한 운전사' '작은 거인' 등으로 포장하고 있다. 폭동으로 피해를 본 다른 소수인종들에게는 2차 피해인 셈. 흑인들이 저지른 인권침해 행위는 왜 눈감아주는가?
한국의 페미니즘도 어찌 보면 여기에 속한다. 한국의 페미니스트, 여성계가 옹호하고 있었던 메갈리아에선 레즈비언만 챙긴다는 소위 TERF가 깽판치고 있었고, 이들은 #(아카이브) 메갈리아 게이 비하 및 아우팅 시도 사건을 일으켰다. (메갈리아에게 아웃팅 당한 피해자의 심정 고백 자료) 이후 내부 갈등이 심해졌고, 메갈리아 운영자가 성 소수자 비하를 금지하자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게이 혐오 동조자들은 이에 반발하여 아예 워마드로 독립을 하였을 정도이다.[42] 워마드는 아예 TERF를 표방하며 성 소수자, 트랜스젠더라도 생물학적 성별이 XY염색체라면 무조건 혐오하는 양상을 보이며, '똥꼬충'등의 동성애자 비하 발언 및 '젠신병자'등 트랜스젠더 비하 발언을 일삼는다.[43] 꼭 메갈이나 워마드 뿐만 아니라 트위터에서도 자칭 페미니스트라는 사람들이 성 소수자 혐오를 내비추는 성향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흔히 트페미들 닉네임이 '트랜스ㅇㅇㅇ'라는 식으로 되어있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TERF들이 트랜스젠더를 조롱하기 위해서 쓰는 닉네임이다.#
이 외에도 '메갈유머'라는 유명한 트페미 계정은 '보전깨', '자박꼼', '보확찢[44]' 등이 한국 게이가 만들었다는 허위사실을 퍼트려[45] 트위터에서 게이 혐오 선동을 한 바 있고 한동안 페미위키에서도 게이가 그런 여혐 단어들을 만들었다는 허위 사실이 등재되어있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보전깨 같은 경우는 일베 짤방게시판에서 한 일베유저가 레즈비언인척 연기하며 조건녀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다가 상대 조건녀가 내뱉은 발언을 캡쳐해서 퍼지게 된 것이고, 일베 짤방게시판 같은 경우는 오히려 성 소수자를 매우 혐오하는 사이트다. 자박꼼 역시 버스에서 한 술취한 노인네가 막말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퍼지게 된 것으로 전파된 것으로 게이와도 무관하고, 보확찢 등의 용어도 게이와 무관하다. 오히려 게이를 혐오하는 일베 및 디시 야갤등의 남초 우익 사이트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들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수많은 페미니즘 진영을 메갈리아를 지지한건 물론, 심지어 워마드를 두둔하기도 있다. 성 소수자의 인권도 옹호한다는 TIRF에서 마저도 말이다. 물론 페미니즘계가 메갈리아,워마드의 성 소수자 혐오 행동이라는 단일 사건 하나 자체를 옹호하는건 아니고, 오히려 그 사건은 그냥 묵인하고 묻어둔 채 그 외 기타 메갈리아가 행한 미러링이라는 움직임에 이의를 가지고 메갈리아,워마드라는 사이트 전체를 쉴드, 옹호하다 보니까 메갈리아,워마드에서 터지는 성 소수자 혐오 사태는 그냥 방관해버리게 된 것 이다. 일례로 '에이즈는 똥x충 게이 새x들한테나 있는거다'라는 성 소수자 비하 발언을 한 갓건배 역시 그녀가 페미니스트이며 미러링 운동의 실질적인 대표주자라는 이유로 수많은 페미니즘 계에서 그녀의 성 소수자 혐오는 묵인한 채 그녀의 남성에 대한 미러링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며 옹호했다. 물론 정상인 입장에서 보면 그 미러링이란 행동 자체가 비판받을 만한 짓이지만 성 소수자 인권을 옹호한다는 페미니즘 계에서 지들이 옹호하고자 하는 대상의 성 소수자 혐오는 비판하긴 커녕 일단 덮기에 급급했었다. 이는 페미니즘계가 지들이 옹호하고자 하는 대상이 행한 짓은 지들이 원하는 것만 보려는 식으로 평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예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페미니즘의 일종이라고 페미니즘 성향 언론들이 인정까지 했을 정도이며,#(아카이브) (사실 맞긴 맞다.)
이렇게 페미니즘 내부에서 성 소수자 포용/배척 진영으로 나뉘듯이 성 소수자 내에서도 페미니즘 포용/배척 의견으로 나뉜다. 대게 페미 옹호적 성 소수자들은 PC주의적인 반면 페미 반대적 성 소수자들은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 강요나 퀴어축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그나마 교차 페미니즘 진영 혹은 TIRF에서는 워마드 및 TERF 같은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래디컬 페미 진영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한서희의 트랜스젠더 혐오 발언으로 인해서, 트랜스젠더 인권도 존중하는 교차 페미니즘 진영과 자유주의 페미니즘,TIRF와 TERF 진영간의 충돌이 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교차페미라 하더라도 여전히 마찬가지로 성 소수자 혐오 성향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었던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교차 페미들도 매우 많다.[46],오히려,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한국 페미니스트가 극 소수인 수준이다. 마찬가지로 게이 등 남자 성 소수자와 트랜스젠더 혐오 발언을 일삼았던 갓건배역시 한국의 수많은 페미니스트들과 여성계가 엄청나게 많이 감싸주고 쉴드쳐줬다. 호주국자 역시 각종 성 소수자 혐오, 인종차별 발언을 포함하여, 사회적 약자인 남자 아동을 대상으로 몰카찍고 성희롱하는 성 범죄를 저지르는 등 정치적 올바름에 반하는 행보를 엄청나게 보여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호주국자를 위해 모금운동을 벌이기까지 하였다.[49]
또한 메갈리아 및 메갈리아를 위시한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일삼는 한국 남성 혐오(한남충) 및 백인 남성 찬양(갓양남)은 명백한 백인 우월주의라는 인종차별이다. PC적 관점에서 봤을때 이 역시 지탄받을 일이다. 다만 한국에서 백인이 다수자, 동양계가 소수자가 아니라 그 반대이기 때문에 이건 아주 모순은 또 아니다.[50]
어떤 매체의 경우는 평소 내세우는 명분과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트랜스젠더 비하 발언을 한 한서희를 옹호한 위근우가 그러한 케이스이다. 그러고 정치적인 올바름을 내세우는 매체들은 메갈리아,워마드 등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며, 이들이 저지른 범죄에는 침묵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매체들이 본격적으로 그러한 태도를 드러낸 시기가 공교롭게도 메갈리아 등이 티셔츠 제작 등 적극적으로 모금 운동을 펼쳤던 시기와 겹친다. 이 경우는 모금한 금액을 어떻게 썼는지 그 내역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이다.
또한, 같은 기준을 모든 연예인에게 공정하게 적용하지 않고, 거대 기획사일수록 찬양식으로 기사를 쓴다거나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회사 소속 아이돌에게만 유독 엄격한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도 있다. 특히, 애초에 정치성보다는 오락성을 더 강조했던 매체가 이 시기 이후부터 그러한 색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라면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과는 달리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2019년 홍콩사태 이후에는 평소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던 부류들이 중국의 인권 탄압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52]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정치적 올바름을 풍자하던 사우스파크가 눈치 보지 않고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과 검열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패기를 보여 주었다. 링크

9.2. 프로불편러



1990년대 이후 들어 2010년대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미권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이 정치적 + 도덕적 올바름 - 즉 인종, , 장애, 종교, 직업에서의 올바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행동을 비꼴 때 사용되기도 한다. 관련 예시(한글자막)[53] 웹툰 작가 조석도 이를 개그소재로 삼기도 했다. 이는 쉽게 말해 "지금 이 발언이 불편한 건 저뿐인가요?" 표현을 남용하는 경향으로 정리될 수 있다.[54] 특히 소수자 운동이나 여성운동, 인권운동 등에 관심이 많은 신좌파 운동가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서 까탈스럽다는 반응을 듣기도 하는 편이다. 그때문인지 인권도 적절히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지경.
극단적인 사례로 듀나의 영화게시판에서는 "귀여운 아기 사진이라도 올리면 안 된다"는 여론이 나타났었다. 유산을 경험한 한 회원이 아기 사진을 볼 때마다 고통스럽다고 호소하는 글을 올렸고, 이에 동조하는 회원들이 '아기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불임 부부나 유산/사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며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을 공격했고, '그럼 길거리는 어떻게 다니냐', '이건 과도한 것 아닌가?' 라는 반론과 함께 논쟁이 있고, 결국 아기 사진을 올리되, 아기 사진이 있다고 경고를 하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합의되었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들이 극소수 때문에 올바르지 않은 행위가 된다. 예컨대 "엄마 아빠 사랑해요" 같은 평범하고 훈훈한 글조차도 따지자면 한부모 가정, 소년소녀가장들에게 공격적일 수 있으니 쓰면 안 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쉽게 말해, 이 논리가 사회 전적으로 적용된다면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자기까지의 모든 행동들이 각각 어떤 누군가에 의해 전부 비판을 받고 제재당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에서 이와 관련하여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말하면 차별적? 카드뉴스를 내기도 했다. 미국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는 종교적으로 편향된 단어고 대신 "해피 홀리데이!" 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게 확 이슈로 떠오르면서 상당한 사회적 반발을 초래하고 있는데, 가장 큰 반발은 역시 "나는 비기독교인인데도 별 생각 없는데요? 메리 크리스마스에 불쾌함을 안 느끼는 제가 비정상인가요?" 이런 것.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애초에 기독교의 명절인데 거기다 대고 종교 편향이다 뭐다 괴이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야말로 문화의 다양성을 짓밟는 자폭이다. 오히려 자신들이 말하는 다양성, 다원성 존중을 스스로 어기는 모순이며, 소위 정치적 올바름이랍시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생각없고 이중적인지 보여주는 사례. 반발이 너무 커서 미국 일부 주에서는 자기네로 들어오는 주요 도로에 표지판을 붙여서 "우리 주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허용됩니다. 이게 싫으면 당신이 우리 주에서 나가시든가" 같은 문구를 넣기도 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도 대선 활동 중에 이걸 꼬집었다.
미국에서는 그 밖에도 특정 이들에게 위화감과 부정적 인식을 키울 수 있다는 교내 국기 게양을 금지하거나출처 주류 배달을 종교적 신념으로 거부한 무슬림 직원으로 인해 민원이 빗발치자 그를 해고한 회사를 가지고 종교탄압이라며 억대의 벌금을 물리는 등출처의 사례로 인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
한국의 프로불편러와도 비슷하다. 다만 프로불편러는 혼자서 물어뜯는 것이 아니라 조리돌림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9.3. 언론과 매체의 문제


앞 항목에서 소개한 이 기사의 경우, 해외 활동이 잦은 아이돌들이 앞으로 조심해야 한다는 이유로,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례들을 열거하긴 했지만, 실제로 해외에서 논란이 된 사례는 아니라는 점에서 창조논란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인종 차별 논란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얼굴이 까만 멤버에게 얼굴색과 관련된 별명을 짓는 것도 문제 삼았지만, 이는 별명이 붙은 당사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예컨데 프랑스 영화 컬러풀 웨딩즈를 보면 흑인 남성, 백인 여성 커플이 서로를 초콜릿, 치즈케이크라고 부르는 알콩달콩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참고로 이 영화는 다문화 가정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려내어 호평을 받았다.
또한, 기사에서 내세운 취지와는 달리, 정작 우리나라 아이돌의 주 활동 무대인 아시아권 여러 나라들의 금기, 역사, 정치 문제에 대한 주의 사항은 다루지 않았다.[55] 현장에서 일하는 관계자들에게는 기자들의 주관적인 판단보다는 마케팅 타깃이 되는 고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 동남아의 경우, 역사적, 정치적인 문제가 매우 복잡하고,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 국가들도 많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할 점이 많다. 비유하자면, 서양인들이 한국, 중국, 일본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동남아에 대해서 오해하는 부분이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이돌들에게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는 매체들은 이러한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너무 무지하며, 기준점도 미국 진보계, 페미니즘계에 두고 있어 서구 편향적이라는 한계가 보인다.
유명인사들에게 성 소수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을 던지며 강제적으로 대답을 들어내려는 기레기스러운 태도 역시 문제다. 성 소수자들을 지지해주는 이들이 있다면 비판적이거나 중립적, 무관심한 이들도 있기 마련인데 지지해주지 않으면 무조건 못배우거나 꼰대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기사를 내며 조리돌림 당하게 유도한다. 성 소수자를 옹호하지 않는 이들 중에는 성 소수자를 옹호하지 않았다고 조리돌림당한 일로 인해 성 소수자를 싫어하는 부류도 있다.

9.4. 기타 정치적 올바름 지지자에 대한 비판


또 일부 정치적 올바름 지지자들의 성향 또는 행적을 비판하는 경우도 많다. 인벤 메갈리아 편파 운영 의혹으로 인해 인벤 대표가 대한항공 수준으로 회사 내 임원들의 집단괴롭힘 가해자 파벌을 만들고 사내 복지를 멸시하고 공금 횡령의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떠벌린 사실이 지속적으로 내부고발된 것에서 비롯되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평가를 악화시킨 캐슬린 케네디 역시 본인의 의견만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다만 섬에 사는 인도인의 경우 흑인 SJW에게 인신공격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는 안다만제도의 역사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로힝야문제에서 그랬듯이, 이들은 갈데가 없다. 또, 여성성우가 소년연기를 하는 것에 대해, 카스트라토를 연상케 한다며 (정확히는 역발상)혐오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예시로는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에게 가끔 쓰이는 태어났다라는 표현도, 시비가 걸리기도 한다.

10. 언론에서의 정치적 올바름 비판


'정체성 정치의 종말[56]' 기사 (번역) 또한 이를 비판했다. 여기서는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전략을 비판했다. 가는 곳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틴계, LGBT, 여성 유권자를 콕 짚어 불러낸 것이 전략적 실수란 것이다. 다양화된 미국에서 어떤 '집단'을 거명하려면 모든 집단에 대해 말해야 하는데, 이는 불리지 못한 사람들이 배제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했다.
인문학 잡지 스켑틱에 실린 캐럴 태브리스의 글 '편견이라는 이름의 괴물'도 이 문제를 지적한다. 저자는 정치적 올바름이 말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신중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순기능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것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잡초의 윗부분만 자르는 것일 뿐 본질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57] 자세한 내용은 해당 잡지 Vol. 11에서 볼 수 있다. 링크

[1] 또 "PC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말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다만 트럼프가 당선 이후 반PC 성향을 철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그렛이 늘어난 것을 보면 트럼프가 반PC여서 당선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2] 'Political Correctness'에서 Correctness가 상당수의 대중들에게 부정당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PC가 타파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반론도 있다.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3] 이에 대해서는 낙태 합법화 운동과 연관지어 자궁 자체가 아기집이 아닌, 그저 수정란이 착상할 뿐인 장소이고 따라서 낙태 역시 생명을 훼손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냥 세포를 떼어내는것 뿐으로 인식을 전환하기 위함이라는 주장도 있다.[4] 언중들의 태도가 변화된 대표적인 예시로 niggar가 있다.[5] 언어와 편견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대표적 연구자로는 언어적 집단 간 편향을 발견한 앤 마스(Anne Maass), 언어적 범주 모형을 제안한 귄 세민(Gün R. Semin), 언어적 기대 편향을 발견한 대니얼 위그볼더스(Daniel Wigboldus)가 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은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고정관념에 어긋나는 대상에 대해서는 애매하게 묘사하려는 경향이 있다.[6] 그래서 사회심리학계에 상징적 차별이나 현대적 차별 같은 후속 개념들이 80~90년대에 와르르 쏟아져나왔고, 이 중 일부는 2000년대 이후 들어서 개념화와 관련하여 학계 일각의 강한 공격을 받으며 대대적인 수정을 거치기도 했다.[7] 미국에서 한 사람이 자신의 생일 케이크를 사려고 베이커리에 갔는데 주인장은 판매를 거부하였다. 손님으로 갔던 그 사람은 사실 동성애자였고, 그 동성애자는 경찰에 주인장을 신고했다(??). 경찰이 오자, 주인장이 말하길 "이 케이크들은 전부 유통기한이 지나서 원래부터 폐기하려고 했고, 그걸 판매하는 건 규정 위반이다."라고 경찰에게 말하며 경찰이 보는 앞에서 케이크를 모두 음식물 쓰레기 통에 버려서 경찰이 그냥 돌아간 사례도 있다고 한다.[8] 이를 다루고 있는 심리학적 논의로 "정당화-억제 모형"(JSM; justification-suppression model)이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논문을 찾아볼 것. Crandall & Eshleman, 2003; Crandall, Eshleman, & O'Brien, 2002.[9] PC와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예컨대 "호모"를 (즐거움을 의미하는) "게이"로 바꾸었다 해도 여전히 편견은 감소하지 않더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Crawford, Brandt, Inbar, & Mallinas(2016) 참고.[10] 외래어는 외국어와 달리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단어를 뜻한다. 우리말에 정착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을 의미한다.[11] 다만 순화어는 정치적 올바름과 무관하게 언어순화 운동으로서 국립국어원에서 지속적으로 하는 일이다.[원주] 우리는 호메로스를 위대한 맹인 시인이라 부르며 언제나 고결한 감정을 느낀다.[12] 여담으로 미국의 하층민 교육수준이 낮고 특히 일부 백인 하층민들은 여기에 화이트 트래시 특유의 우월의식까지 더하여 자신들을 Native American이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한국인 유학생이 백인 하층 미국인들에게 Native American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더니 "우리가 Native American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그 전엔 Indian이라고 부르던, 백인들이 미국 땅에 오기 전에 먼저 살고 있던 민족이 있지 않느냐?"라고 한국인 유학생이 설명을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Native American이다"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참고로 이런 사람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일반적인 분류는 미국족(American Ethnicity).[13] 미국에서 흑인을 black people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백인을 white people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질적으로 동일하다. 즉 전혀 차별적인 단어가 아니다.[14] 다만 헌법과 다른 용어를 사용해 같은 개념을 지칭했다고 해도 위헌 판결이 날 가능성은 희박하다.[15] PC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같이 발전한 사상인데 선진국이나 중진국의 하위 계층들에게 세계화는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후진국 하위 계층에게 주는 달갑지 않은 현상이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출처] : 독재자의 핸드북 /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알라스테어 스미스 공저[16] 제국주의 시절에 맹위를 떨친 좌파운동도 지금의 세계화처럼 전 지구적 규모로 재화와 노동인구의 이동이 일어난 반동으로 벌어진 현상이기 때문이다.[17] 물론 굳이 PC가 청년 실업 해소 방안을 제시할 이유가 없긴 하다.[18] 대표적인 사례로는 호주 대도시 대다수 및 캐나다 벤쿠버에 중국/홍콩발 부동산 투기 자금이 몰리며 집값이 폭등했을 때 일반인들은 타격을 받았지만 정치권 등에서는 해외 자본이 투자되었다며 반색한 사례가 있다.[19] 대표적으로 디즈니 인어공주 실사판의 에리얼더 위처 실사판의 트리스 메리골드 등이 있다.[20] 영화 알렉산더에서 소그드인인 록산나를 흑인으로 묘사한 경우 등등[21] 미드 스파르타쿠스에서 일부 카르타고인 캐릭터들을 흑인 배우들에게 연기시킨 경우 등등[22] 원제는 '정적의 나라(静寂の国)'#[23] 이미 여러차례 합헌 결정이 난 바 있는 '비시각장애인의 안마시술소 운영 제한' 문제을 만화의 내용과 서로 어거지로 짜집기해가며 문제삼는 경우도 바로 만화의 내용을 곡해하는 경우에 속한다.[24] 해당 SNS 반응들을 종합하자면 이는 사실상 "신성(?)하고 전지전능(?)한 인권단체, 인권운동가에 토달지 말고 순종(?)하라"는 소리다.[25] 물론 SIE라는 예외도 있긴 하다.[26] 사실, 우리나라 90년대 초반에는 햇살이 강한 해외 휴양지 인싸들의 영향을 받아 건강미를 위한 태닝이 유행했었다. 룰라채리나가 이러한 케이스였고, 태생적으로 유난히 검은 피부를 타고난 이본은 당시에 핫했던 신세대 미인으로 통했다.[27] 심리학에서 이를 투영이라 한다.[28] 하지만 악마의 재능이라도 있지 않는 한, 성별을 막론하고, 사고를 치고 재기를 못한 연예인들이 더 많다. 단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일 뿐.[29] 이러한 경우, 과거의 도덕적인 문제는 우연히 얻어걸린 것이고, 도덕적인 문제가 없다면, 의도적으로 창조논란을 만들 수도 있지만, 익명제 커뮤의 특성상 어떤 사람이 그런 글을 썼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숨은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또한, 애초에 캐스팅 물망에도 오르지 않았는데, 단지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출연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혼자서 가상 캐스팅을 해 놓고 화풀이를 하는 망상분자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대형 팬덤이 아닌, 개인의 소행일 가능성도 있다.[30]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 한국인들은 사건이 터질 당시에는 지탄해도, 일단 죗값을 치렀다면 흉악범이 아닌 이상, 세월히 흐른 후에는 잊어 주었다. 주로 옛날 연예인들이 연루된 마약 복용이나 간통 사건이 이러한 케이스. 사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에게 직접 피해를 주지 않은 타인의 도덕적 문제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을 공중파에서 출연 금지를 시키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미칠 영향력을 우려하는 게 주된 명분이라, 세월이 흘러 청소년 팬들이 떨어져 나간 경우라면 굳이 막을 명분이 없었다. 옛날 연예인들이 과거에 친 사고가 굳이 거론되지 않은 것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다. [31] 참고로 이러한 논리적 오류를 미끄럼 논증이라고 한다.[32] 무엇보다도 허위 사실 유포 전력 때문에, 폭로 자체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게 자연스러움에도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비난하느냐고 쉴드 치는 추종자들이 있었다.[33] 정다은의 경우는 성소수자라는 점 때문에 여자 연예인을 성희롱하여도 남자 연예인들에 비하면 가벼운 비난을 받았다.[34] 참고로 오셀로는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지만, 사악한 부하 이아고의 흉계에 넘어가 파멸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이다. 극중 오셀로의 부정적인 모습이 흑인 학생의 감정을 상하게 할 것을 우려하여 강의를 못 하게 한다면, 오셸로를 파멸시킨 이아고의 사악함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게 되는 딜레마의 빠진다.[35] 원제는 "침묵의 나라(静寂の国)"이며, 인권단체의 탈을 쓴 SJW 집단을 풍자한 만화다.[36] 뮬란(영화)에서 설정, 각본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을 그렇게 강조해놓고, 정작 위구르인 인권 탄압과 관련된 인물이나 단체들이 감사 크레딧에 올라간 사례가 대표적이다.[37] SJW들의 이런 행동은 오히려 성 소수자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는 이적 행위이다. 성 소수자는 그 이름이 나타내는 것처럼 어떤 사회에서도 주류가 될 수 없는 계층인데, 그들을 비호하겠답시고 주류층의 무조건적 반발을 일으키는 행동을 하면 역효과만 불러온다.[38] 이 부분은 아무리 쉴드를 치려고 해도 부정 할 수 없다. 설령 민감한 정보를 가린다고 하지만 그래봐야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된다. 특정 시간대에 일반적이지 못한 숙박시설을 방문한 기록이 공표된다면 누구라도 불륜이나 바람 피운 것으로 의심하게 된다.[39] 즉, "(무고여부 상관 없이)사법부에 기소된 죄인은 "자신이 범죄자라는 사실"과 "자신의 결백 입증에 더 이상 승산이 없음"에 눈을 떠야 하며, 자아비판을 통해 자신의 죄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라는 논리.[40] 대개는 주로 신좌파적 가치관에 기반한다.[41] 물론 마지드 나와즈도 “히잡의 의미는 정숙”이라는 발언을 했던 상태에서 그런 데를 갔으니 욕 먹는 거 자체는 할 말은 없다. 비방 발언의 강도(가짜 무슬림이라는 말은 이슬람에서 제일 심한 욕 중 하나이다. 신도를 악질적으로 사칭하는 위선자가 지옥 제일 끝에 떨어진다는 교리와 믿음 때문이다.)가 심한 게 문제였지.[42] 이미 메갈리아가 사라졌으니 메갈리아는 워마드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절반만 옳다. 초기에 들어온 남연갤 유저들은 이미 나갔고, 중간에 들어왔던 일명 교양파와 죽창파의 일부는 쭉빵이나 트위터 등지로 흩어졌고, 성소수자 혐오만 외치는 TERF가 워마드로 계승되었기 때문이다.[43] 이에 대한 비판에 대해 워마드 회원들은 '젠신병자 같은 말들도 일베에서 먼저 탄생한건데 왜 워마드를 욕하냐'는 주장을 펼치는데, 이 논리는 '니그로'같은 흑인 비하 발언은 서양권에서 처음 탄생했기에 동양인인 우리들이 흑인에게 마음껏 사용해도 된다 혹은 "김치녀라는 단어는 외국에서 생겼기에, 우리 한국 남성은 이 표현을 써도 된다."와 같은 논리이다. 즉 혐오발언을 최초로 탄생시킨 곳이 어디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단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이 다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하다.[44] 보지를 확 찢어버리고싶다 라는 뜻[45] 이건 오히려 호모포비아 성향이 강한, 일베저장소나 디시인사이드 등 극우 커뮤니티에서 만들고 사용하는 단어다. 보전깨의 경우는 일베도 아닌 성매매직업 여성이 만든 용어이고.[46] 사실 이건 한국의 교차 페미가 대부분 TIRF인 게 크다.[47]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여성은 억압당하는 사회적 약자 겸 피해자임과 동시에 남성과 구별되는 우월한 존재라는데, 여자를 피해입히는 여자 가해자와 여자에 의하여 발생한 여자 피해자는 그들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하는 존재들이다. 역으로 남자에게 가해행위를 가하는 여자 가해자라면 일종의 투사나 잔 다르크 비슷하게 취급된다.[48] 이는 한국 페미니스트의 주류를 이루는 레디컬~남성혐오 진영에서 여자에 의해 발생한 여자 피해자는 남자를 가해자로 몰고 적대하기를 부추기는 작업에 하등 쓸모가 없기 때문.[47] 그러나 이들의 이런 행위가 정작 반페미/반PC 진영에선 소위 말하는 여적여의 증명으로 취급당한다.[49] 한편으로는 여자 피해자가 나올 때 가해자도 여성인 경우라면 입다물고 외면하는 반면 남자 가해자에 의해 발생된 여자 피해자라면 바로 선동에 써먹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하는데,[48] 이는 사회적 약자인 피해자에 대한 그들의 이중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자기들이 써먹기에 용이한 입장을 지닌 피해자만을 부각시키고 그렇지 않은 피해자는 홀대하는 이런 행동 역시 정치적 올바름에 있어서 어긋난다.[50] 실제로 일부 SJW들은 이슬람세계에서 소수자인 토착 기독교인들은 그 국가에서 이슬람 보수주의를 비판해도 되지만 유럽이나 미국은 무슬림이 절대적 소수자이기 때문에 그러면 안된다는 궤변을 펴기도 한다. 또한 SJW가 남성혐오를 반대하는 이유도 워마드사례를 보아하듯 남성소수자가 비하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 백인+기독교인+성다수자+비장애인+남성+기타 소수자 정체성이 딱히 없는 사람을 겨낭해 하는 모욕은 뭐라하지 않는다. 또한 다수자의 정체성을 공격하기도 한다. 예시를 들자면 SJW논리는 한국으로 대입하면 똥꼬충은 절대로 쓰면 안되는 혐오발언이지만 남성에게 냄져라고 공격하는건 된다. 이 정도이다. 왜냐하면 냄져라는 정체성은 다수자적 정체성이지만 똥꼬충은 소수자적 정체성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51] 중국 자본. 게임계나 영화계 등에서 중국 자본의 입지는 결코 무시를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52] 특히 기업계 쪽이 이런 반응이 두드러졌는데, 덕분에 입으로는 정치적 올바름 타령을 하면서도 뒤로는 돈[51]을 쫓을 궁리나 하냐는 비판이 재기될 정도. 심지어 일각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을 사실상 중국이 주도한 게 아니냐?"거나 "정치적 올바름은 사실 돈 불리기 위한 지독한 마케팅일 뿐이였던 거였냐?"는 등의 근거가 불확실한 소문이 떠돌 정도다.[53] 인권운동의 역사가 깊은 서구에서는 이런 식으로 폭주하는 인권운동에 대한 과도기적 비판도 이미 충분히 무르익고 성숙해진 상태다.[54]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덧글란에서 숱하게 볼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결국 시간이 흘러, "나만 불편한가?"는 비꼬는 표현으로 변했다.[55] 흔히 동남아라고 묶어서 말하기 때문에 동일시되기 쉽지만, 베트남캄보디아는 역사적으로 앙숙이므로 캄보디아에 가서 베트남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는 것은 현지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다.[56] 'PC의 종말'에서 이 제목으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정체성 리버럴리즘의 종말'로 제목이 바뀐 상태.[57] 예컨데 클리토리스를 지닌 여성이라는 표현이 트랜스젠더를 소외시키는 표현이라고 문제가 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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