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호/선수 경력
1. 한화 이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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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했던 신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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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수로 뛰던 2003~2004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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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루수 전향 이후.
대구고 시절 그다지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지만, 당시 한화 스카우트였던 정영기의 안목으로 발굴된 선수. 정영기가 와서 2차 1라운드 지명을 할거라고 이범호에게 알려줬는데, 당시에 이범호는 안 믿고 있었다가 진짜로 지명받자 놀랐다고 한다. 한편, 한화 이글스 구단 관계자들은 "대구 이씨가 왔다!" 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대를 표시했는데, 이는 이글스에서 맹활약 했던 이정훈, 이강돈, 이상목이 대구 출신이었기 때문. 별 인지도가 없었고, 연고지역 선수도 아니었던 이범호가 이런 이유로 지명되었다는 카더라 썰이 존재한다. 2003년즈음 이범호가 주전으로 자리 잡을 때 즈음 당시 아시아 최다홈런을 향해 달려가던 이승엽한테 천진난만하게 싸인을 받으러 가는 장면이 스포츠신문 기사에 실리면서 그의 존재를 더 높였다.
입단 이후 2루수, 3루수로 출전하면서 2001년을 기점으로 재능을 꽃피웠다. 2004년 유승안 감독은 이범호를 공격형 유격수로 키우기 위해 유격수로 내보내며 타율 0.308, 23홈런을 기록하며 타격은 나쁘지 않았으나[2] 문제는 실책이 '''30개'''(...) 당시 한화의 내야는 정말 개판 수준이라고 봐야 할 정도의 상태였고, 유승안 감독이 물러나고 김인식 감독이 부임한 2005년부터 3루수로 완전히 정착하며 그 해 골든글러브를 수상, 차세대 대표 3루수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활약을 바탕으로 2006년 1회 WBC에 참가했고, 2년 연속으로 3루수 골든글러브를 받으며 2000년대 중후반 리그의 공격형 3루수로 자리잡았다.
2007년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때 오승환에게 홈런을 때렸는데 그 때 MBC ESPN에서 화면에 꽃장식을 하여 꽃범호의 이미지를 부각시킴과 동시에 수뇌부가 야갤러임을 공공연히 알리기도 했다.
2. 소프트뱅크 시절
2009년 시즌이 끝나고 FA로 풀렸다.
본인은 적정한 수준만 해주면 한화 이글스에 남겠다고 했지만 결국 우선 협상기간인 12일을 넘기고, 일주일 뒤인 11월 19일 일본 프로 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2+1년에 최대 5억 엔에 달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의 언론 플레이에 실망한 한화팬들은 새로운 별명 '''월추'''(월드추남)라고 부른다.[3]
입단 이후 경미한 어깨 부상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스프링캠프에서 아키야마 코지 소프트뱅크 감독에게 수비 능력을 계속해서 지적받았고 결국 개막전부터 원래 주전 3루수였던 마쓰다 노부히로에 밀려 대타 혹은 지명타자 땜빵으로 뛰었다.[4] 그 와중에 마쓰다의 부상으로 3루 수비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는 이범호의 몸 상태도 몸 상태지만 소프트뱅크 고위층에서 아키야마 감독에게 영입 의사를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아키야마 감독이 원치 않은 선수였기에 처음부터 잡음이 많았으며 주전자리 확보도 힘들었다.
그리고 팀 내에서 장타력이 부족함을 느꼈는지 고향 베네수엘라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로베르토 페타지니를 전격적으로 영입했는데, 이는 이범호에게 직격탄으로 날아왔다. 다행히도 페타지니가 몸 상태를 끌어올리느라 2군에서 유예기간을 갖는 동안까지는 1군에 붙어 있었으나, 페타지니의 1군 승격과 함께 곧바로 2군으로 추락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페타지니는 내일 모레 마흔이라는 나이 + 6년간의 일본리그 공백을 상큼하게 씹어먹고 맹활약했다. 허나 소프트뱅크의 중심타자인 호세 오티즈가 무릎부상을 당하며 외국인 슬롯이 하나 비게 되자 8월 5일 오랜만에 1군에 등록되어 두 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아키야마 감독은 원래 3루수인 마쓰다를 오티즈의 포지션인 좌익수로 돌리고 이범호를 3루수로 잠시 기용했었다.
팀에서 홀대를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최악의 수비력 때문이다. 타격만 따지면 2군에서 타율 .277, 출루율 395, 장타율 .535, OPS.929로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수비에 대해서는 기본기가 안 되어 있다는 혹평을 받았다. 참고로 2군에서 필딩률이 .907다.[5]
때문에 이범호가 1군에서 2경기 연속 홈런 등으로 활약하자 주전 3루수인 마츠다를 좌익수로 컨버젼시키면서까지 자리를 마련해주었을 때도 불안한 수비와(1군 필딩률 .930) 침묵한 타격으로 팀에게 제대로 찍히면서 사실상 일본생활이 끝이 났다. 사실 수비력만 준수했어도 기회를 더 부여받았겠지만 9할 초반대의 수비력으론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6]
하지만 오로지 '돈'만 본다면 일본 진출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거기서 2년 동안 벤치만 뎁혀도 고연봉이 보장되며, 국내 복귀시 또 상당한 연봉거품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2010 시즌 성적은 48경기/타율 .226/28안타(4홈런) / 1도루/ WAR -0.2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우선 보류명단에는 포함 되었었으나 구단측에서 보유 의지가 약하다는 기사가 연이어 터지는 등 시즌 종료 후의 거취가 불안정했다. 소프트뱅크 스프링캠프에는 참가하였으나 이후에도 국내 복귀로 교섭이 계속 되었던 듯 하다.
결국 소프트뱅크 측의 양해를 얻어 원 소속 팀이였던 한화와 수차례 교섭을 하였으나, 서로 밀고 당기는 신경전을 벌여온 끝에 교섭이 결렬되었다. 이 과정에 설레발 기자의 찌라시와, 팬, 구단 간의 신경전으로 제법 큰 병림픽으로 발전하는 등, 영 좋지 못한 전개가 근 2개월간 계속되었다.
그래도 나름 기억에 남을 플레이도 했었다. 바로 2010년 5월 7일 홈 경기에서 와쿠이 히데아키의 노히트 노런을 코앞에서 저지한 것. 아웃카운트가 3개 남은 9회 말 무사에 올라와서 안타를 쳤다. 그 안타가 그날 소프트뱅크의 유일한 안타였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범호가 입단할 때 팀에 이(李)씨가 한 명 더 있었기 때문에 이범호가 LEE로 유니폼을 마킹하면서 리두쉬안은 유니폼 마킹을 T.LEE로 강제로 바꾸게 되었다. 그런데 이범호가 1년만에 소프트뱅크를 떠나면서 다시 LEE로 회귀.
3. KIA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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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한국 복귀
2011년 1월 27일, '''뜬금없이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였다. 소프트뱅크 측에서는 남은 계약 기간에 해당하는 2011년 연봉 1억 엔을 지급하는 것으로 계약을 종료했지만,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당장 KIA 타이거즈의 포지션 이동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고, 한화 이글스 팬들은 이범호를 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능한 한화 프런트를 까는 데 혈안이 되었다.
계약 기간 1년에 계약금 8억, 연봉 4억 등 총 12억 원에 계약하기로 합의하고 1월 29일 KIA 타이거즈의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여 시즌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이범호 본인은 KIA 입단에 대해 말을 극도로 아끼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는데,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울 때 KIA가 손을 내밀었다."'''라고 말한 대목을 봐서는 한화와의 협상이 실제로도 매우 험난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화의 보상선수 지명권에 대해 신인이 자동보호 되는지의 여부로 인해 시끄러웠지만 KBO가 신인선수는 1년 이내에 트레이드를 제외하고는 이적을 금지한다는 야구 규약 109조를 인용해 자동보호된다는 유권해석을 하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화에서 장고 끝에 지명한 보상선수는 안영명. 이로써 안영명은 트레이드 8개월 만에 친정팀인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였다.
3.2. 2011 시즌
해당 항목으로.
3.3. 2012 시즌
3월 17일 SK 와이번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손목 통증을 호소하여 팬들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이후 좋아지나 싶더니 왼쪽 허벅지 통증이 일어나며 전력 이탈. 별다른 3루수 대체 자원도 없었던 데다 김상현(1980)마저 손바닥 골절로 전력에서 이탈한 상황. 때문에 4월 기아의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팬들은 이러다 먹튀가 되는 게 아니냐며 걱정을 하였다. 심지어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며 두더지라고 까였다. 뜬금없이 태국 마사지 기사까지 뜨면서 팬들을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7] 헌데 마시지 받다 부상당한 이 황당사례는 그후 7년뒤 천조국의 야구팀인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카를로스 코레아가 갈비뼈가 뻐근해 집에서 마사지를 받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대참사(...)가 벌어져 장기부상 티켓을 끊게 되는 사례가 생겼다.
5월 초부터 퓨처스리그에서 몸을 가다듬으며 복귀를 준비하였다. 그간 지명타자로만 출장하다가 5월 13일에는 시즌 첫 3루수 선발 출장을 하였다.
5월 17일 오랜만에 1군 선발 출장을 하였다. 5타석 4타수 무안타 1볼넷 2삼진을 기록, 아직은 기대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고 있다.
5월 19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4타수 2안타 1타점 1홈런 1득점을 기록, 이어서 5월 20일에는 3타수 3안타 3타점 1홈런 1득점 1도루를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으나, 팀이 연패하는 바람에 빛이 바랬다. 그나마 이범호가 부활했다는 사실이 팀에게는 위안이 될 듯.
복귀 후 클린업의 한 축을 담당하며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다만 햄스트링 부상이 워낙 재발성이 높고 위험한 부위이다보니 무리한 베이스러닝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부상 여파로 인해 타격폼이 불안해져 시간이 갈수록 방망이도 시들해지는 상태.
결국 햄스트링 부상을 완치하지 못한 탓인지 7월 9일 다시 2군행.
담당의사의 말에 따르면 부상부위는 완쾌되어 운동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본인이 '다시 다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제대로 뛸 수가 없다고. 햄스트링 부위 자체가 한 번 부상을 입으면 회복된 후로도 심심찮게 재발하는 부위긴 하지만, 하필 팀이 타선의 침체로 4강의 문턱에서 꼴깍꼴깍하던 와중이라 순전히 본인의 '느낌' 때문에 경기에 출장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팬들로부터 먹튀라며 욕을 엄청나게 얻어먹었다. 전형적인 입스 증상이다.
결국 이 부상 때문에 시즌이 끝날 때까지 1군은 커녕 2군에서도 더 이상 경기를 뛰지 못했고, 마무리 캠프 합류도 늦어지게 되었다.# 11월 21일 늦게나마 캠프에 합류. #
태업하며 놀러다니기만 한다는 일부 팬들의 비난도 있었지만, 그래도 시즌 내내 재활을 게을리하지는 않은 듯하다. 12월에는 아예 서울로 올라와 재활에 전념한다고. 한 달동안 처가살이하면서 재활
3.4. 2013 시즌
해당 항목 참조.
3.5. 2014 시즌
3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개막전에서 1회초 2루 주자 김주찬을 불러들이는 적시타를 쳐 2014년 프로야구 1호 타점을 기록했다.
5월 2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정현욱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치며 부상에서 복귀한 후 첫 안타를 만루홈런으로 장식하였다.[8]
5월 24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앞선 수비실책을 만회하는 투런홈런을 쳤다. 실책이 호투하던 임준섭의 실점으로 이어졌기에 더 가치있는 홈런이었다.
6월 26일에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는 김광현을 상대로 시즌 9호 홈런을 때리는 등 3타수 3안타 1홈런 3타점 2득점으로 맹활약하며 팀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05경기 406타석 350타수 94안타 19홈런 82타점 47득점 2도루 52사사구 타율 0.269 출루율 0.360 장타율 0.497 OPS 0.857으로 마무리하였다.
3.6. 2015 시즌
전반기에는 부진했으나 후반기부터 엄청난 각성 모드를 보여주며 '''팀 내 타자 WAR 1위를 달성'''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3.7. FA
2015 시즌 후 두 번째 FA 자격을 얻었고 우선협상 기간 마지막 날인 11월 28일 오후에 원소속팀 KIA와 3+1년 최대 36억(계약금 10억, 연봉 6억 5000만)에 계약을 맺고 잔류하게 되었다. 본인도 KIA에 남길 강력하게 원했으며 다만 협상 과정에서 이견이 있던 게 '''계약기간'''이었다고. 팬들은 거품 낀 시장에서 싼 가격에 잘 잡았다며 좋아했다.
3.8. 2016 시즌
해당 항목 참조.
3.9.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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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이뤄낸 우승의 꿈'''[9]
이범호/2017년 항목으로.
3.10. 2018 시즌
2월 21일, 한신과의 연습경기에서 '''만루홈런'''을 쳤다.
3월 25일 kt wiz와의 경기에서 1회말 1,2루에서 홈런을 쏘아올렸고, 8회말 2사 1루에서도 홈런을 쏘아올리며 한 경기에 홈런 2개를 기록했다. 이 날 성적은 5타수 2홈런 5타점 2득점.
이후 좁은 수비, 형편없는 타격으로 경기를 망치고 있다. 4월 3일 SK전에서 2사 만루의 찬스때 2루수 뜬 공을 쳐버렸다. 4월 4일 SK전에서도 6회 1사 1, 2루에서 뜬공, 8회초 무사 1, 2루에서 뜬공을 치며 욕을 먹었다. 하지만 10회초 전유수로부터 결승홈런을 때려 9:6 대역전승을 이끌었다. 홈런을 친 이후 울컥한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타격 부진으로 꽤 힘들었던 듯.
4월 6일 넥센 전 첫 타석에서 손에 공을 맞았다. 정밀검진을 해보니 전치 4주 골절이란 결과가 나와 당분간 3루수는 정성훈-최원준 체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배트스피드도 굉장히 느려지는 등의 노쇠화의 징조가 급격히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부상은 굉장히 치명적이다. 실전감각을 찾는 것 까지 계산해봤을때 올스타전 즈음 복귀가 예상될 줄 알았는데 4월21일 티 배팅을 하고있다고 한다.
4월 30일 2주 전에 사구를 맞았던 안치홍과 함께 1군에 복귀했다.
5월 6일 광주 NC전 홈런을 기록했다. 그리고 다음 타자 김민식도 홈런을 치며 백투백 홈런이 되었다.
5월 8일 광주 두산전 1회말 3점 홈런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전 경기와 마찬가지로 다음 타자 김민식이 홈런을 때려내며 2경기 연속 이범호-김민식 백투백 홈런이 나왔다.
5월 22일 광주 kt전 2대1 상황에서 쓰리런 홈런을 기록하였다.
부활의 신호탄일지 아님 우연의 일치일지
5월 25일 마산 NC전에서 또 포수와 백투백 홈런을 쳤다. 다만 포수는 김민식에서 한승택으로 바뀌었다.
5월 31일 광주 넥센전에서 한경기 두홈런으로 승리의 도움이되었다. 최근 올라온 타격감으로 타율은 어느새 3할 근처까지 도달했다.
6월 10일 사직 롯데전에서 4회말 우천 중단이 되자, 롯데 덕아읏을 향해 누군가를 놀리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image] [10]
6월 16일 엘지전에서 상대 선발 투수 헨리 소사를 상대로 선제 투런을 때려냈으나 팀은 끝내기 패배.
6월 17일 엘지전에서 유강남의 평범한 땅볼 타구를 못 잡아서 실점의 원인이 되었다.
6월 20일 NC전에서 8회말 1루에서 역전 투런을 때려냈고 팀은 승리했다.
6월 29일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여 1군에서 말소되고 3루수 유망주 자원인 류승현이 올라왔다. 이제 진짜 3루 수비를 보기에는 몸이 안 따라주고 있다.
부상이 괜찮아졌는지 7월 25일부터 퓨처스 경기에서 3루수와 지명타자를 번갈아 보면서 출전하고 있다.
1군에 복귀했는데 타격감이 많이 죽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후반기 타율이 0.133으로 끔찍한 수준이다.
8월 8일 넥센전에 여전히 빠른공에 배트가 늦는 모습을 보였다. 만루 상황에서 유격수 키를 넘기는 2타점 적시타를 쳐냈으나 이후 무안타를 기록, 수비에서도 여전히 안일한 모습을 보여 팬들의 분노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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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수의 송구가 조금 부정확하긴 했으나 못 잡을 정도는 아니었고 놓친 후에도 걷는 모습을 보인 탓에 팬들이 굉장히 분노하는 중이다.
8월 12일, 9년만에 자신의 한경기 3홈런과 함께 5타점을 기록하며 대활약을 펼쳤다.
9월 이후의 모습은 제발 은퇴하라는 소리가 절로 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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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9월 28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5위 싸움을 하는 중요한 경기에서 정찬헌을 상대로 8회 1사 만루에서 좌측담장을 넘어가는 통산 17호[11] 만루홈런을 쳤다.
최근 경기를 보면 노쇠화가 완연하다. 보통 내야수의 경우 30대 중반 이후면 수비 범위가 좁아지거나 공을 글러브에서 빼서 송구하는 순발력이 느려지는 등 노쇠화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이범호의 경우 1981년생, 즉 현재 38세로 곧 40을 바라보는 나이다. 타격은 힘껏 쳐도 외야플라이가 되고 145km/h 이상의 공에는 여지없이 헛스윙이 나오는 등 느려진 배트 스피드가 보이며, 수비에서는 수비범위가 굉장히 좁아 기대를 접게 된다.
사실 이미 역대 KBO 주전 3루수 중 최고령이고 타팀이면 지명타자나 대타로 나설 입장인데 지명타자로 간다고 해도 3루수 자리에 공격 구멍이 생기는데다가 어떤 놈이 자리를 틀어막고 안나오면서 버티고 있고, 3루수 후계자의 군입대가 1년 늦춰지면서 2018년에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전 3루수를 하고 있다.
그나마 그 후계자가 전역을 해서 내년에는 3루 수비 부담이 줄어들 수 있지만 - 감독의 똥행정신으로 주전이 보장되어 있기에 그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3루수 대체자가 '''수비가 불안한 신인''', '''이전 팀에서 3루 접고 1루로 전향한 1년선배''', '''2루수라고 국대보냈더니 3루수 본 선수''' 아니면 '''십잡스'''인 상황. KIA 타이거즈의 3루수 교통정리는 2019년에 더 시급해진 상황.
그러나 와일드카드전에서는 혼자 야구했다.
3.11. 2019 시즌
2018 시즌이 종료된 후, 3+1의 1년 옵션이 발동되었다는 소식에 수많은 팬들이 뒷목을 잡았다. 특히 구단 관계자의 인터뷰 중 "이범호가 옵션발동의 조건을 충족한 '''것으로 알고있다'''" 라는 충격적인 말은 이 구단의 모랄이 어느 지경인지 보여주는 대목. 타격의 한방은 인정하지만 배트 스피드가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느려졌고 수비범위야 말할 것도 없는 수준인지라 팬들은 또다시 '''범땅범안'''[12] 을 봐야되냐며 대환장파티를 예상했다. 게다가 리빌딩을 목적으로 염두에 두는 3루수 유망주 후보로 최원준, 황대인, 류승현, 이창진 등[13] 3루 후보는 많아보이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는 황대인인데 아파서 드러누워버린데다가 아픈 부위가 '''하필''' 어깨인지라 걱정되는 상황.
그리고 허벅지 부상으로 스프링캠프 탈락인 줄 알았으나... 햄스트링 통증으로 결론이 난 듯 하다. 오랫동안 야구를 본 팬들 중에선 2012년, 2013년의 이범호가 떠오르고 있을지 모른다. 어찌되었던 올 시즌 이범호 외의 3루수 옵션들을 확실하게 준비해야될 상황이고, 후보자들에게는 사실상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주전 3루수의 기회가 온 셈이다.
2월 22일 햄스트링이 손상된것으로 확정났다. 은퇴가능성까지 열려버린 상황.
그 후로 2군 경기에 나와 주로 지명타자 또는 3루수로 나오다 4월 9일부터 다시 1군에 콜업되었다. 또한 콜업과 동시에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시사했다. #
더이상 3루 수비가 불가능한 몸상태라서 1군 복귀 이후 주로 지명타자나 대타로 출전했다. 그러나 최형우, 나지완 등 지명타자 요원이 많은 데다가 팀이 야수 세대교체를 진행중이라 1군에서의 입지가 매우 좁은 상태다. 김기태 감독은 결국 5월 1일 이범호를 1군 엔트리에서 말소하는 결단을 내렸다.
5월 27일 현재 3루는 최원준, 박찬호가 맹활약 중이고, 지명타자 겸 오른손 대타 요원으로는 제한적으로 외야 수비도 가능한 나지완이 있으므로 다리 상태 때문에 제대로 뛰기조차 힘든 이범호를 엔트리에 넣을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9월 확장 엔트리 전까지는 1군 복귀가 힘들어 보인다.
결국 6월 18일 부로 프런트에 은퇴 결정을 알리면서 현역 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다.보도자료 다만 예우 차원에서 2000경기를 채우기 위해 7월 중에 1군에 콜업하여 2000경기를 채워줄 예정이며, 은퇴식은 전반기 마지막 토요일 홈경기이자 그의 전 소속팀 경기인 7월 13일 한화 이글스 전에 갖기로 하였다. 구단에서는 그의 은퇴를 기념하며 은퇴식 경기의 전 좌석을 그의 등번호인 25% 할인하여[14]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은퇴 발표 다음날인 6월 19일부터는 1군 등록 없이 1군 선수단과 동행하면서 훈련하고 있다. 이 와중에 안치홍이 손가락 부상을 입으면서 1군에서 말소되자 임시 주장직을 맡게 되었다.
7월 13일 KIA 챔피언스 필드 한화 이글스전을 통해 은퇴가 결정되었다. 이에 대해 박흥식 대행은 7월 4일 1군에 등록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
7월 4일 KIA 챔피언스 필드 NC 다이노스전에 등록되자마자 5회 무사만루에서 대타로 나와 '''1타점''' 희생 플라이를 쳤다.[15] '''통산 1996경기째.'''
7월 5일 5대1로 앞선 8회말 6번 대타로 나와 3구 우익수 플라이 아웃으로 무사 1,2루에서 대타로 나와 큼지막한 외플로 진루타에 성공하였고, 득점으로 연결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통산 1997경기째.'''
7월 6일 KIA 챔피언스 필드 LG 트윈스전, 7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했다. 2회말 주자 2사 1,2루 기회에서 우중간 안타를 기록하며 결승타를 기록했다. 4회는 4구 좌익수 플라이아웃으로 '''2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하였다. '''통산 1998경기 째.'''
7월 11일 삼성 라이온즈 파크 삼성 라이온즈전, 6회초 2아웃 만루상황에 9번 대타로 나와 아쉽게 우익수 라인드라이브 아웃으로 물러섰지만 '''통산 2000번째 경기를 출장하게 되었다.'''
'''이로써 7월 13일 마지막 은퇴경기는'''.. 광주 KIA 챔피언스 필드 한화 이글스전 6번 3루수로 선발라인업에 출전하게 되었다. 모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25번 이범호가 새겨진 은퇴 기념 유니폼을 착용했다. 2회 5구 볼넷, 4회 초구 중견수 플라이아웃, 5회 4구 좌익수 플라이아웃으로 '''2타수 4사구 1'''을 기록하면서 '''20년간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팀은 10-5 패배. 공교롭게도 마지막 타석에는 만루의 사나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듯한 '''4점차로 지고있는 2사 만루 상황'''이었지만 아쉽게도 좌익수 플라이아웃으로 물러났다. 이 아쉬움을 은퇴식에서 만루홈런 퍼포먼스로 끝을 맺는 것으로 달랬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등번호 '''25번'''을 박찬호에게 물려주었다.
은퇴 후 2019 KBO 올스타전에 나눔올스타 1루 주루코치로 잠시 등장했고, SBS Sports 중계석에서 특별 게스트로 출연했다. [16]
4. 국가대표 경력[17]
4.1. 2006 WBC
제 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참가했다. 이는 이범호의 커리어 첫 국제대회 참가였다.
본래 이 대표팀에서 이범호의 위상은 백업 3루수, 대타자원 불과했다. 하지만 주전 3루수 김동주가 대만전 1루 해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부상을 얻어 조기낙마하게 되면서 졸지에 주전 3루수로 경기에 나서게 되었다.
이범호는 1라운드 2차전 중국과의 경기 3루수로 선발출전해 4타수 2안타, 1타점-1득점을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10:1 대승에 기여했다.
1라운드 3차전 일본과의 경기 역시 3루수로 선발출전했다. 3타수 0안타를 기록한 후 4번째 타석 때 박용택과 교체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일본을 3:2로 꺾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2라운드[18] 역시 이범호는 주전 3루수로서 3경기 모두 선발출전했다. 먼저 멕시코와의 2라운드 1차전, 2타수 0안타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한 후 정성훈과 교체되었다. 하지만 팀은 멕시코를 상대로 2:1로 승리했다.
2라운드 2차전 미국과의 경기에서는 3타수 1안타, 2타점-1득점 맹활약하며 팀의 7:3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2라운드 3차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또 다시 3타수 0안타를 기록했다. 이 경기도 이범호는 부진했지만 팀은 2:1로 승리했다.
마지막 일본과의 4강전 역시 주전 3루수로 선발출전했다. 하지만 상대 선발 우에하라 고지에 꽁꽁 묶여 2타수 0안타를 기록하는 것에 그첬다.[19] 결국 대한민국은 0:6 영봉패를 당하며 대회 3위에 만족해야만 했다.
이번 대회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6승 1패, 3위를 기록하며 세계 야구에 위상을 떨친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20대의 어린 이범호는 17타수 3안타, 0.176의 타율을 기록하며 세계무대의 벽이 여실히 높음을 체감해야만 했다.
4.2. 2009 WBC
이범호는 본래 WBC 대표팀 구성 과정에서 김동주와 최정에게 밀려 대표에서 제외되었지만, 김동주가 일본 진출 시도와 그 실패 후유증 등으로 대표팀을 고사하면서 다시 내야수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자신의 커리어 2번째 WBC 참가이다.
타율이 높은 최정, 수비가 안정적인 이범호가 내야수 TO 한자리를 놓고 경쟁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박진만의 엔트리 하차로 결국 둘 다 대표팀에 승선하게 되었다. 이 대회에서 이범호는 이대호의 수비 불안 및 빈타로 인해 더욱 가치가 높아지게 되었다. 게다가 소위 말하는 단기전 크레이지 모드에 들어섰는지 홈런 3방을 포함한 불방망이까지 휘두르며 명실상부한 공격의 핵이 되었다.
홈런 말고도 2라운드 일본과의 승자전에서 만루에서 밀어내기 볼넷을 고르는 모습과 결승 일본전에서 9회말 2사 1,2루에서 다르빗슈 유의 슬라이더를 받아쳐 동점타를 쳐내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줬다. 그러나 이후 고영민의 삽질, 임창용의 2실점, 이용규의 플라이아웃, 최정과 정근우의 삽질 등으로 인해 그의 드라마틱했던 동점타는 아쉽게도 묻히고 말았다.
최종 성적 8경기, 20타수 8안타(3홈런), 7타점 - 5득점, 2볼넷, 0.400/0.458/0.900, OPS 1.358 괴물같은 성적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WBC 준우승 1등 공신이 되었다.
정규 시즌에서는 부상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 한화의 추락의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어쨋든 1년 스탯은 매년 찍어주던 성적을 찍는데 성공했다.
[1] 아쉽게도 1점 차이로 연금은 받지 못한다.[2] 이 해 35개의 2루타로 이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3] 이 때의 언론플레이에서 한화팬들이 실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한화에 남기 싫다는 티를 냈다. 인터뷰에서 '우승 할 수 있는 팀으로 가고 싶다.'거나 '롯데도 좋다.'라거나 FA기한이 다 되어가고 김태균이 '돌아올 땐 한화로 돌아오겠다'는 인터뷰를 하자 급하게 '해외로 나가지 못한다면 한화에 남겠다.'고 인터뷰를 한 뒤 다음날 에이전트를 교체한다거나... 그리고 결국 한화로 돌아오지 않으면서 한화 팬들과는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다.[4] 그 이전에 아키야마 감독은 3루수 영입 의사가 없었다. 기존 3루수 마쓰다 노부히로가 기복이 심하고 출루율이 낮은 약점이 있지만, 주루 능력과 장타력을 겸비한 인재고 실제로 2010년엔 19홈런 71타점의 기록을 남겼다. 팀의 간판타자인 고쿠보 히로키와 마쓰나카 노부히코가 나이와 부상 문제로 기량이 떨어지자 대체 전력으로 쓸 거포 1루수를 필요로 했던 것을 이범호가 1루를 볼 줄 안다는 말에 영입했던 것이다. 이대호와 이범호를 착각해서 데려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5] 이게 얼마나 심각한 수비율이냐면, 데뷔 초창기 타격은 천재, 수비는 둔재 소리 듣던 밀워키 브루어스의 라이언 브론이 112경기 나와 26개의 에러를 기록하며 기록한 필딩률이 .895였다. 3루수로서 저 에러개수 자체가 경악할 만한 숫자인데 문제는 이범호는 1군도 아니고 2군에서 저 실력이라는 것. 보통 수비 평균적으로 못한다고 보는 선수들 필딩률이 .950이하인 경우가 많은데 그것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수치이다.[6] 사실 타격이 매우 좋았으면 어찌어찌 됐을수도 있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주전 3루수 젤러스 휠러는 3년 동안 필딩률 .929 .942 .936이라는 눈 뜨고 보지 못할 수비력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홈런왕 경쟁을 할 정도의 맹타격(3시즌 373경기 72홈런)을 보여주며 3루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소프트뱅크는 라쿠텐과 달리 이미 확고한 주전 3루수가 있던게 더 큰 문제였겠지만...[7]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태업하고 있다는 비난을 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몸이 다 낫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출장하여 부상 재발로 골골대느니 완벽히 몸상태를 갖추고 나오는 게 차라리 낫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8] 이 홈런은 이범호의 개인 통산 8호 만루홈런이기도 하다.[9] 위 사진은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쐐기 만루포를 날린 직후다. '''이게 아니었다면 5차전에서 질 수도 있었던 것.'''[10] 나중에 은퇴 전 인터뷰에서 밝히길 과거 한화 이글스에서 한솥밥을 먹던 선배인 당시 롯데 조원우감독과 김민재 코치, 그리고 친한 김원형 코치에게 장난으로 '이대로 끝나도 우리는 지지는 않는다', '형 긴장되죠?'는 의미로 했다고 한데 카메라에 절대 잡힐지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경기 끝나고 사과 전화를 했다 한다.[11] 포스트 시즌 기록은 만루홈런 1개[12] "'''범'''호가 친 '''땅'''볼은 '''범'''호쪽으로 치면 '''안'''타다" 라는 말로, 호사방에서 나온 말인데 갸갤에서 아주 크게 공감했다.[13] 넓게보면 황윤호, 노관현도 포함할 수 있다.[14] 내야 상단석인 K3석은 50% 할인[15] 정타였으나 안타깝게 우익수 정면으로 갔다.[16] 그리고 홈런레이스에서 로맥이 우승을 차지할 것이다 라고 예언을 했고 적중했다![17] 아쉽게도 1점 차이로 연금은 받지 못한다.[18] 8강[19] 일본전 8타수 0안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