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식 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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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〇式鉄帽(きゅうまるしきてつぼう)
1930년 개발이 완료되어 1945년까지 일본군이 사용한 제식 방탄모.
1. 개요
1930년 육군에 채용되어 90식 철모라는 명칭이 붙었다. 초기에는 방탄모, 방독면같은 장구류 일부를 무기로 간주하던 일본군의 장구류 분류에 따라 철투구(鐵兜)[1] 라 부르다가, 1932년에 피복류로 분류되면서 철모(鐵帽)로 개칭했다.
이전부터 프랑스의 엘랑 비탈전술을 도입하던 일본군은 제1차 세계 대전기 연합군으로 참전하면서 프랑스군의 아드리안 헬멧(Adrian helmet)을 공여받거나 입수해 자기 스타일에 맞게 개량한 사쿠라 헬멧을 착용했는데, 여기에 다시 독일군, 영국군 등 외국 방탄모를 분석해 얻은 결과를 반영하고 일본인의 체형에 맞게 개량한 것이 90식 철모이다.
약 1mm두께의 크로몰리 합금강판으로 제작된 90식 철모는 적의 도탄을 유도하기 위해 앞뒤 양옆이 각각 대칭형이 되도록 디자인되었으나, 처음으로 실전에 배치된 제1차 상하이 사변에서 45% 분량이 당시 중국군이 쏘는 독일제 게베어 1898소총의 탄알에 뻥뻥 뚫리는 경이로운 기록을 보여주면서(...) 개량 필요성이 나타나게 되었다.[2]
90식 철모 테스트 영상 https://youtu.be/42TIazrD4gI
이런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1938년 소총탄에 대한 내구성을 강화한 후속모델로 98식 철모가 도입, 일선에 보급되었지만 일본군답게 보급 능력이 영 좋지 않아 일선에서 운용하는 제식 방탄모는 여전히 90식 철모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이었다.
무게는 내피를 제외하고 1kg로[3] 정수리 부근에 작은 4개의 통기구가 있어 머리의 체열을 배출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사이즈는 머리 차이에 따라 대형(大号)과 소형(小号) 두 종류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대형은 높이 153mm, 너비 236mm, 길이 280mm, 소형은 높이 150mm, 너비 234mm, 길이 268mm였다.
착용시에는 내피(부유대) 안에 전투모를 쓰고 그 위에 방탄모를 쓴다음 방탄모의 '''턱끈을 묶는''' 식으로 착용했었다.[4] [5]
2. 전후의 90식 철모
1945년 히로히토의 항복으로 일본군이 개입하던 모든 전쟁이 패전으로 끝났고, 복원성[6] 을 통해 귀환하거나 본토 결전을 준비하던 일본군은 해산과 함께 무장해제가 이루어졌다. 새롭게 조직된 일본 자위대는 주일미군으로부터 공여받은 M1 철모를 도입해[7] 90식 철모는 과거의 유물로 남게 되었다.
이걸 놀리기만 하는것이 아까웠던 일본 경찰은 이것을 입수해 다시 도색한 다음 일선 경찰 기동대와 타격대, 경찰특공대의 방탄모로 재보급했는데, 이렇게 남은 물량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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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한신교육투쟁사건 당시 90식 철모를 쓰고 조선학교에서 재일동포 어린이들을 끌어내는 일본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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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스나가와 사건 당시 90식 철모를 쓰고 시위대와 대치 중인 경찰 기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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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시부야 총격전당시 90식 철모를 착용한 경찰 타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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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아사마 산장 사건당시 90식 철모를 착용한 경찰 기동대. 마지막 사진속의 경찰들이 서로 방탄모가 다른데, 회색빛이 도는 방탄모를 쓴 경찰들은 나가노현에 배치된 현경 기동대이다. 반면 더 짙은 파랑색의 방탄모를 쓴 경찰들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급파된 경시청소속 타격대로 주일미군에게 공여받은 M1철모를 썼다. 이들은 나가노 현경과 경시청 타격대간 지휘권 문제로[8] 마찰을 빚었고 계급간 알력과 기동대의 특성상 일본군에서 특채된 인원들의 전역 전 계급, 짬밥타령까지 겹치며 진압작전에 난항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3. 타국에서의 활용
3.1. [image] 대한민국 국군
대한민국은 8.15 광복 직후부터 일본군으로부터 몰수한 90식 철모의 물량을 조선경비대에 보급해 사용했고, 6.25 전쟁으로 미군의 물자 공여가 이루어지면서 M1 철모로 교체된 이후에는 경찰이나 대한청년단, 서북청년단 등 2선급 병력 내지 정치깡패, 민병대 등지에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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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식 철모를 착용하고 99식 소총으로 무장한 조선경비대대원. 허리에 찬 대검은 일본군의 제식 대검으로 쓰이던 30년식 총검이며, 무릎앉아를 하고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신고 있는 전투화 역시 일본 육군의 기병용 부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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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여수·순천 10.19 사건당시 경계근무를 서는 청년단원. 역시 99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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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여수·순천 10.19 사건당시 좌익혐의자들을 감시하는 경찰관. 마찬가지로 99식 소총을 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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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 전쟁기 공주 형무소 재소자 학살 당시 재소자들을 연행하는 경찰관. 이들이 타고 있는 트럭은 일본 육군이 주력으로 사용하던 닛산 트럭을 해방 후 노획한 것이며 재소자들을 압송하는 경찰관들은 마찬가지로 99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왼쪽의 군 특무대원이 M1 카빈으로 무장한 것과 대조된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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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 전쟁기 마산 전투당시 진해 인근에서 임시 방어선에 투입된 해군사관학교생도들.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을 다루는 사수와 부사수 둘다[10] M1 카빈으로 무장하고 있다. 정황상 진해요항부를 접수하면서 일본 해군 육전대의 장비를 노획해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는 일본군이 결7호 작전을 위해 준비했던 일제 아리사카소총 등의 화기류와 함께 남로당의 무장대에 확보되어 제주 4.3 사건 당시 사용하기도 했으며, 민간으로 흘러들어간 90식 철모 일부는 군화, 반합, 수통 등 일본군의 비전투장비가 그러하듯 바가지나 개밥그릇(...)등 새간살이로 쓰이기도 했다. 그렇게 남은 파편화된 유물들이 다랑쉬굴등 제주도나 경상북도 일부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3.2.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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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에도 소수가 공개되어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관동군을 무장해제 시키며 확보했거나 소련/중국이 지원한 듯.
3.3. 중화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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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이 끝난 후 중국 국민혁명군은 중국 본토의 일본군을 무장해제시키며 확보한 90식 철모를 철모 중앙에 붙은 별을 청천백일문장으로 바꾸는 식으로 약간의 개조를 한 후 지급했다.
정황으로 보아 중일전쟁부터 국공내전시기까지 지급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국부천대이후에는 미군에게 공여받은 M1철모를 사용한듯.
3.4.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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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으로부터 무장해제당한 일본군의 장구류를 넘겨 받았던 중공 홍군 역시 90식 철모를 사용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군의 상징이었던 별은 겸사겸사 빨간칠만 해서 사용했다. 90식 철모는 인민해방군으로 개편된 이후에도 사용하다 70년대 무렵 GK80이라는 이름으로 국산화하여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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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의 GK80철모
GK80은 1997년 홍콩 반환이후 현대적 케블라 방탄헬멧인 QGF02로 대체되었다.
3.5. 동남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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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당시 쁠랙 피분송크람치하에 있던 태국은 일본의 지원을 받으며 친일 성향을 띄던 추축국이었으므로 태국 육군에서도 일부가 공여되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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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당시 베트민과 북베트남정규군 역시 착용했다.
4. 매체에서의 90식 철모
태평양 전쟁이나 중일전쟁, 대한민국의 무장 독립 투쟁등 일본군을 다룬 매체에 등장한다. 단 국내 매체에서의 일본군은 줄곧 헝겊으로 만든 전투모를 착용한 모습으로 나오다가 2010년대에 들어서야 90식 철모가 고증되는데, 제작비(...)문제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11]
4.1. 대한민국
2015년 개봉된 영화 암살에서 독립군과 교전을 벌이는 일본군이 착용하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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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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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2015)[12]
4.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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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퍼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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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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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레드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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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드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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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지마에서 온 편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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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라3에서 양장군의 사병 병사들이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국공내전 직전의 시기인 1945~49년 시기인 만큼 고증
4.3.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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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십삼채(진링의 13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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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 난징![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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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모감독의 영화 인생에서 푸궤이를 비롯한 국민혁명군 패잔병들이 착용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4.4.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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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야마토
아르키메데스의 대전
5. 여담
- 1930년부터 일본군에 채용되어 일본 육군과 일본 해군 둘다 사용하였는데, 일본 해군에 납품된 방탄모는 전면부 정 중앙에 오각별[15] 대신 닻과 벚꽃이 붙어있었다.
- 중국인민해방군은 중일전쟁당시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남기고 간 물건을 1980년대까지 사용했다. 대한민국에서는 6.25 전쟁직후 대부분 도태되었다.
- 당시 일본군부의 군국주의로 폭주하던 일본제국 국민들에게도 친숙한 물건이었기에 전시 구호업무를 맡은 경방단[16] 의 안전모도 90식 철모를 본따서 만들었다. 일본 본토 공습이 극심해진 대전 말에는 공습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린이들에게도 해당 안전모를 축소한 물건이 지급 되었다.
6. 관련 문서
[1] 일본어로는 테츠카부토. 이를 제식명칭까지 함께 한국 한자음으로 부르면 90식 철두다.[2] 사실 7.92mm 마우저급 탄약은 최신 소재를 채용한 현대의 방탄모들도 관통당할 확률이 굉장히 높다. 운동에너지가 4000J를 넘어가는데..[3] 라이벌이었던 미군의 M1철모와 똑같다.[4] 다른 나라들처럼 버클로 조이는 방식이 아니라 착용자가 직접 묶어서 조이는 싸구려스런 방식이었다.[5] 내피 부유대 구조가 시원찮은 경우 머리를 잘 잡아주지 못해 천모자를 쓰고 철모를 써야 편한 경우가 있다. 소련군의 SSH-60/68 철모도 부유대 구조가 시원찮아 많은 소련군인들이 필롯카,전투모나 반다나를 쓰고 그 위에 철모를 쓰곤 했다.[6] 과거 육군성과 해군성을 개편해 만든 조직으로 전신이 전신이니만큼(...) 제1복원성, 제2복원성으로 나뉘어졌다. 업무는 일본 본토 내에서 종전을 맞은 장병들과 식민지•전선에서 귀환한 포로들의 전역 조치와 귀가 여비 지급등 행정 업무에 국한되었다.[7] 과거 일본군과의 관계를 끊으려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단 단번에 바꾸는 것이 어려웠던 소총 등의 화기는 계속해서 운용했다.[8] 경시청은 실질적으로는 일본 경찰의 본부 구실을 하지만 법적으로는 도쿄지방의 경찰조직에 불과하다. 일본 경찰은 전 경찰관이 국가직 공무원인 대한민국 경찰청과 달리 중앙공안위원회의 산하기관으로 편성된 일본 경찰청과 지방 도도부현 관할로 지방공안위원회의 감독을 받는 경찰본부로 이원화되어있다. 과거 일본제국 경찰이 고등경찰과 특별고등경찰등으로 국민에게 패악질을 저질러 댄것에 대한 일종의 자기반성이자 견제구인 셈이다.[9] 이 사진은 사진기자 헤이우드 마기(Haywood Magee)가 찍어 1950년 7월 「픽쳐포스트」지에 실렸다. 처음에는 "공산주의자 동조 혐의자", "스스로 무덤을 파서 총살됐다"라고 적어놓았으나, 나중에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남북 모두에게 학살을 당했다고 보다 중립적인 시각으로 서술되었다.[10] 사실 총열밑에 부사수 한명이 더 있다.[11] 이점은 6.25 전쟁당시 조선인민군을 다룬 매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련제 철모 쓴 인민군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야 제대로 고증되었는데 이때도 제작비 때문에 최정예부대를 맡은 엑스트라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씌워줄수밖에 없었다.[12] 사실 대호의 배경은 1925년으로 90식 철모의 채용 시기인 1930년보다 5년이 더 빠르다. 일본군 정예 병력을 상징해 준비한 소품인듯.[13] 두번째 사진의 병사가 쓴 철모 밑에 전투모의 챙이 보인다. 표정이 우스꽝스러운 것은 자폭용으로 수류탄을 격발시키기 직전 죽음을 앞둔 모습이기 때문.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의 수류탄은 안전레버가 없이, 안전핀을 덮고 있는 안전캡을 아래로 꾹 누르면 격발핀이 힘에 의해 아래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밑의 뇌관을 때려 불꽃을 일으키고 지연신관에 점화되는 방식으로 격발되었다. 그런데 손으로 눌러주는 정도로는 제대로 확실하게 점화하기 힘들어서, 일본군은 수류탄을 격발시키기 위해 신관부를 돌이나 전투화 굽으로 찍거나 수류탄을 쥐고 철모에 때리는 짓을 반복해야 했다. 이 항목에 예시로 올라온, 윈드토커 영화의 한 장면도 그것을 재연한 것.[14] 마지막 사진의 꼬마는 일본군에 부역하는 한간이 아니라(...) 중국군 사이에서 잔심부름을 하거나 장전 등을 도와주는 소년병이다. 쓰고 있는 철모는 노획한 물건.[15] 헤이안 시대부터 음양오행을 뜻하는 문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16] 경찰에 소속되어 소방보조업무와 전시 치안유지를 맡던 지역단체로, 당시에는 일본 소방조직 전체가 일본제국 경찰의 산하 기관이었기에 준군사조직적 성격이 강했고 경찰서장의 지휘를 받았다. 오늘날도 일본 소방소속 자율소방대인 소방단으로 개편되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