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월드컵/역대 대회

 



역대 FIFA 월드컵 대회를 다루는 문서.


1. 1회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최초로 열린 FIFA 월드컵. 별도의 예선전도 없이 초청 팀만으로 대회가 진행됐다. 우승은 개최국인 우루과이아르헨티나를 누르고 차지했다. 이 때는 규정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아서 결승전에서는 자기나라 공을 쓰니 마니 하는 싸움도 벌어졌다. 전반전은 아르헨티나제 축구공을 사용했고 후반전은 우루과이제 공을 사용했다.
개막전이 프랑스대 멕시코였는데 잘못해서 멕시코의 공격수가 프랑스의 골키퍼 테포의 턱을 걷어찼다. 턱 골절상을 입은 테포는 들것에 실려나갔는데 당시에는 선수교체 규정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경기 도중 수비수 샹트렐이 포지션을 골키퍼로 변경하고 경기를 재개했으나 프랑스가 압승을 거두었다. 그 다음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만나 탈락했다.
결승전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붙었으며 전반에 아르헨티나가 2-1로 앞서다가 후반에 2-4로 우루과이가 역전했다.

2. 2회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조별리그 없이 1R부터 플레이오프 방식(16개 국가 출전이므로 1라운드 자체가 16강)이었기 때문에 첫 경기부터 지면 짤없이 탈락하는 "죽음의 대회"였다. 4년 뒤에 열린 프랑스 대회도 역시 마찬가지. 개최국 이탈리아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는 아메리카 대륙 팀들에게 있어서는 잊고 싶은 기억이다. 북/남아메리카 본선 참가국이었던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모두 '''1라운드 에서 짐'''을 싼 것. 심지어 멕시코의 경우에는 '''3주간 배타고 로마까지 갔다가 본선은 한 경기도 못 치르고 다시 3주동안 집으로 돌아가는''' 초유의 안습사태가 벌어졌다. 지역예선 상대팀이었던 미국이 엔트리를 늦게 제출하면서 두 팀은 '''개막식 3일 전'''에 로마에서 지역예선 경기를 벌여야 했다. 그 경기에서 패배한 멕시코는 결국 귀향. 그러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이렇게 탈락한 것은 베니토 무솔리니 정권에 대한 '''항의'''로 '''2진급''' 선수를 보낸 것이다. 절대 안습이 아니다.
아르헨티나는 루이스 몬티, 엔리케 구아이타,라이문도 오르시등 여러 선수들이 다른 국적으로 참가해서 전력 누수가 심했다.
참고로 이 대회 개막전에서 이탈리아가 미국을 7:1로 대파하여 역대 월드컵 개막전 최다득점 승이란 기록을 남겼다. 더구나 이 당시 이탈리아의 안젤로 스키아비오는 개막전 해트트릭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로 남아있다.
겨우 2회째 대회에서 승부조작으로 얼룩지다보니, 월드컵 대회 자체가 판이 엎어질 뻔했다고 봐도 된다. 무솔리니 때문에 후대 세대에서는 영영 축구 월드컵을 볼 수 없었을 뻔했다.

3. 3회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네덜란드령 동인도(지금의 인도네시아)가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출전하게 된 대회. 이탈리아가 대회 최초 전승 우승으로 지난 대회에 이어 2연패를 했다.
1938년 월드컵 이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1950년까지 대회가 중단이 되었다.
여담으로 이 대회가 독일이 첫 1라운드 탈락이란 쓴잔을 받았던 독일 입장에선 쓰라린 대회였다. 독일은 이로부터 80년 후의 대회에서 세기의 사상 최대의 이변을 겪으며 다시 한번 1라운드 탈락이라는 굴욕을 맛봤다.

4. 4회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제2차 세계대전때문에 12년만에 치러진 월드컵. 2차 세계대전 피해로 전쟁의 피해 때문에 다들 개최를 꺼리는 바람에 그나마 전쟁의 피해를 가장 적게 받은 남미에서 개최 신청을 했는데, 그 결과 브라질이 개최국으로 선정되었다. 이 대회가 개최될때 한반도에서는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사실상 제대로 자리잡힌 월드컵은 이게 처음이다.''' 2회 대회의 승부조작, 3회 대회 직후 2차대전으로 인해 월드컵 자체가 망할 뻔했다가 겨우 살아난 것이다.
흥행을 위해 1라운드를 조별 리그로 해서 각 조 우승팀만 2라운드로 가고 2라운드도 풀리그로 치러서 그 리그의 우승팀이 곧 대회 우승팀이 되는 방식으로 했다. 따라서 별도의 결승전이 없었다. 인도, 스코틀랜드, 터키가 기권했는데 스코틀랜드와 터키가 같은 조인 탓에 해당 조는 우루과이와 볼리비아밖에 없어서 한경기만 치뤘다. 결과는 우루과이가 볼리비아를 8-0으로 누르고 2라운드 진출.
개최국인 브라질은 결선 라운드에서 스웨덴스페인을 차례로 이긴 뒤 마지막 우루과이전에서는 비기기만 해도 우승[1]이었는데 그만 역전패하는 바람에 아깝게 준우승에 머물자, 충격에 빠져 자살한 국민들이 많은 데다가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의 색깔까지 바뀌었다는 슬픈 사연이 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을 마라카낭의 비극이라고 부른다.[2][3] 그리고 이 대회에서 인도가 독립 국가로서는 최초로 출전한 아시아 팀이 될 뻔 했으나 FIFA 규정상 맨발로는 경기를 할 수 없어서 기권했다.
이 대회에서 사실상의 결승전이라 할 수 있는 결선 라운드 마지막 경기(브라질 vs. 우루과이)의 관중 수는 공식 집계 된 수만 해도 무려 199,854명으로, 이는 현재도 월드컵 최다 관중 기록으로 남아 있다.

5. 5회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대한민국이 첫 출전한 대회. 아시아 최초의 독립 국가 출전이기도 하다. 여기서 대한민국은 헝가리에게 9실점, 터키에게 7실점씩 총 16점을 실점하여 현재까지 한 대회 최다 실점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4].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이 휴전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인데 이 상황에서 기어이 일본을 꺾고 본선에 올랐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은 여권발급과정이 더럽게 복잡해서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소요되었다[5]. 이 때문에 선수들은 본선 진출하고도 여권 문제로 시간을 많이 소모해서 경기 전날 도착했다. 경기 전날 도착도 도착이지만 이 당시 상식적으로 한국에서 스위스까지 직항기가 존재했겠는가? 선수단은 좁고 좁은 자리에 끼인 채 정말 여기저기 경유해가며 엄청난 시간을 소요해서 도착했다. 출전한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며 특히 100개가 넘는 슈팅 속에서 9실점 밖에 안한 한국팀은 알고보면 선전한 것이다.
이 대회 경기당 평균 골이 5.38골이였으며, 8강전서 오스트리아스위스를 7-5로 꺾는 등 야구경기 점수라고 해도 믿을만큼의 대량득점 경기가 꽤 나왔다.
조별리그서 서독터키를 7-2로 꺾었으나 헝가리에 3-8로 패했다. 이후 터키와 플레이오프를 떴으나 독일은 또다시 터키를 이겼다. 같은 조였던 서독과 한국은 경기를 치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조별 리그 진행 방식이 특이했던 것이었다. 같은 조의 4팀을 2강 2약으로 분류한다. 강팀끼리, 약팀끼리는 대결하지 않고 강팀과 약팀만 대결한다. 그러므로 한 팀은 2경기를 치른다. 조별 리그에서 전후반 동점이면 연장전을 치르고 그래도 동점일 경우에만 무승부로 처리한다. 2경기 결과 2팀이 공동 1위이면 추첨을 통해 1, 2위를 가리고, 1위 한 팀 뒤 2팀이 공동 2위이면 두 팀이 대결하여 최종 2, 3위를 결정한다. 대회 시작 전에는 서독 축구 수준을 그리 높게 보지 않아서 헝가리, 터키가 강팀, 서독, 한국이 약팀으로 분류됐다. 따라서 한국은 서독과 경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터키는 한국을 잡았으나 서독에 패해 1승 1패 동률로 서독과 공동 2위였다.골득실, 다득점, 승자승 규정이 없어서 터키와 서독은 8강 진출을 두고 다시 경기를 했다.
당시 강력한 우승후보이자 국가대표 50경기 연속 무패에 빛나던 헝가리는 조 1위로 8강에 진출하고 브라질과 상대했다. 비가 내려 경기 여건도 좋지 않았고, 양측 선수들이 동물마냥 미친듯이 싸우면서 3명 퇴장, 4명 경고가 선언되었으며 프리킥만 42번, PK만 두 번이 부여되는 난투극 끝에 4강에 진출하고 디펜딩 챔피언 우루과이를 간신히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 상대는 서독. 결승전에선 서독이 헝가리를 3-2로 이기며 우승하였다.
이 당시 서독과 헝가리의 결승전은 자유 진영 대 공산 진영의 타이틀 매치라는 정치적인 함의도 담고 있었고, 이 때문에 양측 선수단의 신경전이 대단했다. 서독은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인해 떨어진 국가적 위신을 스포츠 부문에서나마 회복하게 되었고, 베른의 기적(Wunder von Bern)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심지어 2003년에 같은 이름의 영화까지 만들어졌을 정도. 하지만 당시 흥분한 서독 관중들이 서독 정부에서 금지한 독일 국가의 1절을 목청껏 합창하는 등의 지나친 행동을 보이자 '전쟁에서 깨진 지도 얼마 안됐는데 아직도 정신 못차렸냐'고 까이기도 했다.
체류 비용 때문에 한국팀은 조별 리그 탈락 직후 서둘러 귀국했지만, FIFA측은 오히려 경기 출전료 9000달러를 가져가라고 한국 축구협회에 독촉장을 보내기도 했다. 이 출전료는 6회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에서 한국이 불참하자 벌금 형식으로 징수되었다.

6. 6회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브라질이 결승전에서 개최국인 스웨덴을 꺾고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대회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하기 전까지 남미/유럽에서 개최한 월드컵중 다른 대륙에서 우승한 유일한 대회였다. 그리고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가 데뷔한 대회이자 강팀 중 하나였던 이탈리아가 출전하지 못한 첫 대회.
한국은 이 대회에서 어이없게도 한국측 관계자가 예선 참가 신청 서류를 분실하는 바람에 FIFA로부터 참가를 거부당했다.

7. 7회 1962 FIFA 월드컵 칠레


브라질이 2연패한 대회. 본선보다 지역예선이 문제였는데 FIFA에서 실력과 흥행이 시원찮은 아시아팀의 진출을 막기위해 대륙별 플레이오프를 동유럽의 강호였던 '''유고슬라비아와 묶어버리는 부커질'''을 감행했다. 당연히 아시아 팀들( + 호주)은 반발했고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모든 팀들이 불참해버리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결국 한국이 일본을 이겼지만 유고슬라비아와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고 당연하게도 유고가 본선에 진출했다.

8. 8회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3연패를 노린 브라질이 1라운드부터 죽을 쑨 굴욕을 당한 대회. 그리고 2006년 이전까지 가장 편파판정의 논란이 많았던 대회는 이 대회이다. 그리고 북한이 첫 출전해서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간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북한에게 탈락하자 분노한 이탈리아인들은 새벽에 몰래 입국하는 대표팀을 기다리다 썩은 토마토와 계란을 투척했다.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 주장인 안토니오 라틴이 이유없이 퇴장당했다. 결승전에서 잉글랜드는 서독을 4 대 2로 이겼다. 이때 결승골이 된 3번재 골이 크로스바를 맞고 아래로 튕겨 수직으로 골라인 바로 위에 떨어졌다.[6]이것은 현재까지도 논란거리이다. 이 대회 지역 예선에서는 지난 대회 아시아가 유고슬라비아와 플옵을 하게 했던 것도 모자라 이번엔 '''아시아·오세아니아·아프리카를 한 데 묶어버렸다'''. 이에 아프리카 팀들이 남아공 빼고 전부 다 기권하는 통에 남아공과 남북한, 그리고 호주 이렇게 4팀만 참가하게 되었는데 남한은 기권하고 남아공은 실격돼서, 결국 북한이 호주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본선행.

9. 9회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FIFA 월드컵/공인구가 처음으로 도입된 대회로 펠레-자일지뉴-토스탕-제르송 등 역대 최강 편대를 앞세운 브라질 뿐 아니라 역시 월드컵 2회 우승에 68년 유로 우승국 이탈리아, 오랫만의 부활을 꿈꾼 우루과이 모두 우승후보로 꼽혔고 베켄바우어의 기세가 물오른 서독에 디팬딩챔피언 잉글랜드까지 어느 나라가 우승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국 브라질이 우승을 차지하며, 통산 3회 우승으로 줄리메컵을 가져가게 된다. 참고로 브라질은 이 대회에서 6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전승 우승은 1938년 대회 이후 32년 만의 일.

10. 10회 1974 FIFA 월드컵 서독


동독의 본선 진출로 월드컵 사상 최초의 분단국가 동반 진출. 대진추첨 결과 동독과 서독은 같은 조에 속해서 서독 대 동독이라는 빅매치가 성사됐다. 동독은 이 경기에서 서독을 이기고 조 1위, 서독은 조 2위를 차지했다. 독일의 분단 역사에서 동독과 서독 대표팀의 축구 경기는 친선경기조차 한 적이 없고, 이 대회의 맞대결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개최국인 서독이 우승을 차지하였다. 서독과 네덜란드의 결승전은 당대 축구계의 두 거목인 서독의 프란츠 베켄바우어와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의 대결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서베를린에도 몇 경기가 배당되었다. 따라서 몇몇 국가들은 경기를 치르기 위해 동독 땅을 잠시 밟아야 했다. 동독도 서베를린에서 한 경기를 뛴 덕에 대회 도중 잠시 귀국.

11. 11회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개최국 아르헨티나가 우승하였다. 같은 조였던 브라질이 폴란드를 3-0으로 이겼기 때문에 페루를 상대로 4점차 이상 승리를 해야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던 아르헨티나는 페루에게 페루가 아르헨티나에게 패하면 무상곡물지원을, 브라질은 페루가 아르헨티나를 이기면 선수 1인당 100만달러의 상금을 지불하기로 약속했다는 의혹이 있다.[7]
결승전에선 네덜란드를 상대로 아르헨티나가 3-1로 이겼다.[8]

12. 12회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이탈리아가 3회째 우승을 차지하였다. 12강 리그에서 맞붙었던 이탈리아와 브라질의 대결은 희대의 명경기로 손꼽힌다.
12강 리그에서는 희대의 조편성이 되었는데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탈리아로 이루어졌다. 이 팀들은 이 월드컵을 기준으로 평가해도 전원이 월드컵 우승 유경험팀인 지옥의 조편성이였다. 이게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조편성으로 기록되었다. 지금 기준으로 치면 최소 월드컵 2회 이상 우승한 팀들로만 묶인 셈이다.
조별리그에서 알제리는 2승 1패로 조별 리그가 끝났고 1승 1패인 서독과 2승인 서독 대 오스트리아전만 남겨 둔 상태였다. 서독이 오스트리아를 2점차 내로 승리하면 둘다 진출하게 되는 상황이고 전반 10분 서독 선수 흐루베쉬가 골인을 한 뒤 양팀은 하프라인 근처에서 공만 이리저리 돌리며 경기를 끝냈다. 결국 알제리는 골득실 차로 탈락하였고 그이후 대회부턴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는 동시에 진행하게 된다. 히혼의 수치 문서 참조.
조별리그 프랑스와 쿠웨이트전에선 프랑스의 지레스가 후반 39분에 팀의 4번째 득점을 성공시켰음에도 불구, 주심에 의해 어처구니없는 취소 판정을 받았다. 스투파르 주심이 “관중들의 피리 소리를 선수들이 주심의 휘슬로 혼동해 플레이를 멈췄다”는 쿠웨이트 왕자 파하드의 항의를 받아들여 득점 판정을 번복된 적이 있다. 준결승 프랑스와 서독전에선 서독 골기퍼 슈마허가 프랑스 선수 바티스통을 가격하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마허는 퇴장당하지 않았으며 결국 승부차기에서 프랑스의 마지막 키커의 슛을 막아내면서 서독이 결승전에 진출하게 된다.
이탈리아는 1차 조별리그에서는 3무승부를 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2차 조별리그 이후부터 파올로 로시라는 걸출한 스타 플레이어의 종횡무진 활약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모두 이기고 독일과 결승전에서 만나 우승을 했다.
디팬딩 챔피언인 아르헨티나는 당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다.[9] 마리오 켐페스디에고 마라도나 중에 한 명만 보유해도 우승 후보라고 평가되는 시절인데 아르헨티나는 이 두 명의 스타 플레이어를 모두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선수단이 스페인에 도착하자 자국에서 거짓 선전했던 것과는 달리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실의에 빠진 나머지 선수들은 대회기간 내내 울기만 했다. 작전 지시를 해야 하는 감독도 작전 지시를 하지 못하고 그저 울기만 했다. 그래도 디팬딩 챔피언 출신이라 저력이 있었던 아르헨티나는 어떻게든해서 2라운드에는 올라갔으나 브라질전에서 마라도나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상대 선수를 발로 걷어차 퇴장당하는 바람에 숫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해 탈락했다.
헝가리 대 엘살바도르 전에서 10-1이라는 점수가 나오기도 했다. 만약 헝가리 쪽에서 실점하지 않았더라면 이 기록이 월드컵 역사상 최다 점수차 경기가 될 뻔했다.

13. 13회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콜롬비아에서 열리려던 대회였으나 콜롬비아가 개최를 포기해서 개최권이 멕시코로 넘어갔다. 출전국수가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어나면서 2라운드 조별리그가 토너먼트로 돌아갔다.[10] 그리고 대한민국이 32년만에 월드컵에 출전하였다. 이 대회부터 대한민국은 현재까지 연속 본선 진출을 이룩하고 있다. 이 대회는 월드컵 역사상 한 선수에게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몰렸던 대회이다. 참고로 아르헨티나 vs 잉글랜드의 경기가 매우 극적인 것으로 유명하며 이 경기에서 월드컵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오심이라 할 수 있는 '''신의 손 사건'''과 월드컵 역사상 가장 멋진 골이 모두 일어나기도 하였다.

14. 14회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압박축구가 절정에 달하던 때로, 이 대회의 경기당 평균 골 수는 2.21골로 역대 월드컵 대회 중 가장 골이 안 터진 대회로 남았다. 실제로 이 시기는 축구사에서 가장 골이 안 터지던 시기이며 보통 유럽리그의 득점왕들이 10대 중반에서 후반대에서 결정났던 시기였다. 독일이 통일하기전 마지막으로 참가한 대회다. 대한민국은 월드컵 역대 본선 진출 대회 중 유일하게 3전 전패로 광탈했다.
개최국 이탈리아는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에게 4강전에서 패하며 3위에 머물렀다.
결승전에선 독일이 아르헨티나를 1:0으로 이기고 우승했다.

15. 15회 1994 FIFA 월드컵 미국


예선전에서 대한민국일본가까스로 제치고 출전했다. 조별 예선 결과 2무 1패로 2002년 월드컵 전까지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대회. 대한민국은 볼리비아를 상대로 0:0 무승부를 거두며 대한민국 축구 국대 사상 최초의 월드컵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볼리비아도 클린시트를 기록한 경기. 사우디아라비아가 처음 나와서 16강 진출로 북한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월드컵 본선 2라운드에 진출하였다.
결승전 브라질vs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는 승부차기까지 간 접전끝에 이탈리아 선수인 로베르토 바조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인해 브라질이 통산 4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16. 16회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20세기 마지막 월드컵. 출전국수가 24개국에서 32개국으로 늘어났다.[11] 한국 대표팀은 네덜란드, 벨기에, 멕시코와 같은 조였는데,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1무2패로 예선 탈락하였다. 특히 네덜란드전 5대0 패배 이후, 차범근 감독이 대회 중간에 경질되기도 하였다. 일본이 이 대회 처음 나와서 3전 전패했다. 한국과 같은 조였던 벨기에는 3무로 무패탈락했다. 이후 2002년 월드컵에서 2무를 더하면서 5경기 연속 무재배를 했다. 개최국인 프랑스지네딘 지단의 활약에 힘입어 결승에서 브라질을 3대0으로 이기면서 우승했다.
이 대회 이후로는 개최국의 우승이 없어서 개최국이 우승한 마지막 대회이기도 하다. 단, 차후에 공동개최를 한다 해도 개최국 중 하나가 우승하면 해당 대회가 거기에 기록될 수 있다.

17. 17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1세기 최초의 월드컵이자 아시아에서 개최된 최초의 대회, 또 최초의 공동개최 대회. 2002 월드컵은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이변의 대회였다. 대한민국의 그 유명한 4강 신화를 이룩한 대회이기도 하다. 전 대회 우승팀 프랑스한 골도 못 넣고 탈락하는 굴욕을 당했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아르헨티나는 40년 만에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고, 황금세대의 포르투갈도 부진 끝에 조기 탈락했다. 우루과이 역시 두 번의 무재배 끝에 탈락했다. 또한 이탈리아가 16강에서, 스페인이 8강에서 개최국인 한국에 밀려서 탈락하였다.[12] 잉글랜드도 브라질에 밀려 4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지역 예선 1위 팀이 모두 8강에서 전멸했다. 결국 4강에 간 팀은 대한민국, 터키, 브라질, 독일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브라질과 독일은 예선에서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13] 터키 역시 강팀으로 평가 받지 않았지만 48년 만의 최고 성적을 내면서 승승장구했다. 결승전 결과 브라질이 독일을 2:0으로 꺾으며 32년 만에 전승 우승했다.[14]

18. 18회 2006 FIFA 월드컵 독일


독일 통일이후 32년만에 독일에서 열렸다. 우연히도 호주가 32년만에 또 출전. 한국은 첫경기 토고전에서 사상 첫 월드컵 원정 첫승을 하였지만 1승1무1패로 아쉽게 도전을 마쳤다. 최초로 해트트릭이 한 명도 안 나왔으며, 심판들의 판정 문제가 유독 많아 도마 위로 오르기도 했다. 대표적인 논란들로
  • 대한민국vs스위스전에서 스위스의 추가골 상황에서의 오프사이드 논란
  • 크로아티아vs호주전에서 옐로카드를 3장이나 먹고서야 퇴장당한 크로아티아 선수
  • 이탈리아vs호주전에서 이탈리아의 결승 페널티킥 판정 논란
    • 이탈리아는 전반 종료 직전 수비수 마르코 마테라치 퇴장으로 수적 열세에 몰려 있었고, 경기는 호주의 우세 속에 연장전으로 돌입하는 듯 했다. 그런데 후반 추가시간 종료를 3초(...) 남겨둔 상황에서, 이탈리아 선수 그로소는 패널티 박스 안에서 넘어졌고, 주심이 이를 호주 수비수 닐의 반칙으로 선언, 프란체스코 토티가 PK를 넣으면서 극적으로 이탈리아가 8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연전연승한 이탈리아는 2006 월드컵을 우승했다. 헌데 그로소는 닐의 태클에 걸려넘어진 게 아니다. 즉, 헐리우드 액션(...) 2006 월드컵이 끝나고 호주를 방문한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호주가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올라갔어야 했다. 호주 팬들에게 오심으로 공정한 경기를 치르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사과한다" 라 말했다. 한편 존 오닐 호주축구협회 회장은 "블래터 회장이 늦게라도 사과한 것은 환영할만 하고 좋은 일"라면서도 "이미 월드컵은 4개월 전에 끝났고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고 대응, 다소 시큰둥한 자세를 취했다.[15] 블래터의 이 발언은 당연히 이탈리아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이탈리아 축구협회 부위원장 지지 리바는 블래터 회장이 유례없이 월드컵 우승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은 점을 들며 블래터 회장이 이탈리아를 차별대우하고 있다고 격분했다. 그러자 블래터 회장은 30일 인터뷰를 통해 "이탈리아는 훌륭한 축구를 펼칠 수 있다는 것과 훌륭한 기술적 재능을 입증해보였다"며 이탈리아의 분노를 삭히는데 애를 썼다. 블래터 회장은 "나는 호주가 좋은 경기를 펼쳤기에 호주도 8강 자격이 있는 팀이라는 뜻으로 말한 것 뿐이고 아마도 경험 부족이 호주가 연장전까지 경기를 끌고 가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해명했다.[16]
  • 브라질vs가나전에서 브라질의 두번째 골 오프사이드 논란
등이 있다. 이번 대회부터 공격에 가담하지 않는 선수는 오프사이드 적용을 받지 않게 바뀐 오프사이드룰 때문에 유독 오프사이드 판정에 관한 논란이 많았다. 그 외에도 일본의 축구선수인 야나기사와 아츠시가 32강 조별리그 크로아티아전에서 나온 '''신칸센 대탈선슛'''이라는 개그슛이 유명하다.
스위스는 월드컵 사상 최초로 '''무실점 탈락'''과 승부차기 '''모두 실축'''[17]의 불명예스러운 주인공이 되었다. 32강 조별리그에서 프랑스에 0:0 무승부, 토고에 2:0 승, 대한민국에 2:0으로 승리를 거둔 스위스는 16강전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 전후반 연장 합하여 0:0으로 마친 후, 승부차기에서 무려 0:3으로 패배하며 16강 탈락했다.
대회 우승은 이탈리아(통산 4회째)가 차지하였지만, 대회 '''최고의 화제는 준우승을 차지한 지네딘 지단프랑스'''였다. 유럽 지역 예선 탈락 위기에 몰린 프랑스 대표팀을 위해 국대에 복귀한 지단[18]은 팀을 극적으로 본선에 합류시키고, 조별예선에선 다소 고전하긴 하였지만, 우승후보였던 스페인, 브라질을 각각 16강, 8강에서 물리쳤으며, 4강에선 포르투갈을 상대하며 루이스 피구와 마지막 라이벌 대결을 승리로 이끌고 결승에 올라 선취골을 넣기까지 하였으나... 연장전에서 마르코 마테라치의 심리전에 말려들어 '''마테라치를 머리로 받아버리고는 퇴장을 당했다.''' 커리어 마지막 경기가 월드컵 결승전이었는데, 그 경기에서 골을 넣고 또 퇴장을 당한 셈이다. 거의 축구 영화를 찍어낸 지단은 월드컵 MVP(골든볼)를 수상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한편, 이탈리아는 대회 4회 우승을 이루어 브라질을 바짝 추격했다. 전통의 라이벌 독일의 땅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탈리아는 묘하게도 16년 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3위를 하며 독일(당시 서독)에게 우승을 내준 바 있는데 이번에는 독일이 3위를 했다.(...) [19]
그리고 이 대회는 8강 진출 팀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제외하고 모조리 유럽이더니 1934년, 1966년, 1982년에 이어 네 번째로 유럽이 4강을 독차지하였다.
한편 이 대회에서 독일의 메탈 그룹인 크립테리아[20]가 독일이 아닌 '''한국을 위해''' 그것도 '''한국어로''' 응원곡을 두 개 써 준 것이 알려지면서[21] 크립테리아가 한국에서 유명해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19. 19회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로 아프리카에서 개최. 대한민국의 7연속 본선 진출. 더군다나 북한이 44년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하여 남북한 동반 본선 진출했다. 이는 1974년의 동서독 이후 36년만의 일이다. 그 밖에도 중동국가 전부가 본선 진출에 실패한 것과 오세아니아 지역 라이벌이었던 호주와 뉴질랜드가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동반 진출[22]에 성공한 것이다. 아프리카쪽에서는 전통의 강호 카메룬나이지리아의 귀환과 지난 대회에 이어 연속 진출을 이루어 낸 신흥 강호 가나코트디부아르의 활약이 볼거리로 예상되었다. 반면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최다 우승국인 이집트는 조별예선에서 알제리와 승점, 골득실, 상대전적이 같아 중립국에서 단판승부를 펼쳤으나 패하여 또 한번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다.
본선 진출 32국가가 모두 결정되었는데, 유럽대륙 플레이오프에서 오심으로 인한 골프랑스아일랜드를 꺾고 본선에 진출한 것 때문에 논란이 일었다. 아일랜드 축구협회는 FIFA에 재시합을 요구했으나... FIFA는 헌법재판소처럼 재시합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아일랜드는 특별히 33번째 팀으로 출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형평성 문제[23]로 거부크리를 맞았다. 또한 1시드 배정 기준을 2009년 10월 FIFA 랭킹으로 잡아서 공교롭게도 9위인 프랑스가 1시드를 못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게 지난 대회와 다른 방식이어서 '프랑스한테 1시드 주기 싫어서 일부러 방식을 바꾼 것이냐'며 음모론이 확산되었다. 프랑스가 브라질이나 이탈리아와 같은 조에 묶여서 피 볼 가능성이 존재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아공과 한 조가 되었다.[24] 프랑스는 조 편성 당시에는 천운 소리를 들었으나 결과는...
개막은 2010년 6월 11일. 남아공과 멕시코의 대결로 시작되었다.
시작하기 전부터 앙골라에서 2010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앞두고 벌어진 토고 축구대표팀의 피습사건, 남아공 내부의 인종갈등 문제, 알 카에다가 테러 공격을 예고하는 등의 무시무시한 상황 때문에 개최치인 남아공의 치안이 다시금 최대의 문제로 급부상.
그러나 정부 측은 문제없다고 발표하고 결국 별탈 없이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는 SBS에서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이어 또 다시 단독중계를 실시했다... 그리고 그럼 그렇지 해설진 '''망했어요'''
SBS가 단독중계의 명분으로 내세운 "전파낭비 방지" 때문에 결국 SBS는 비인기 경기를 포함한 전경기를 생중계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SBS는 SBS 메인 채널과 스포츠 채널을 총동원해서 중계하는 바람에 결방사태가 속출했고, 산하 채널을 동원해도 중계하기 어려운 경우 SBS 고릴라 플레이어까지 동원해 중계해줬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일을 2013년 JTBC에서 조금이나마 겪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방송되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는 3주 정도 결방되기도 했는데, SBS에서 드라마의 내용을 10분 짧게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김수현 작가에게 했다가 김 작가로부터 트위터에서 돌직구를 맞은 일도 있다.
여담이지만, 이 대회 공인구 이름은 '자블라니'(Jabulani)인데, 이는 남아공 공용어 중 하나인 줄루어로 '축하한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름만 들으니 왠지 내가 고자라니가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자블라니의 발음이 '잡을라고 하니'를 줄인 '잡을라니'와 발음이 같다는 것을 이용한 유상무상무식 개그도 존재. 월드컵 결승전 전용으로 금테를 넣은 바리에이션인 '조블라니(Jobulani)'도 있다.
시작전에 흥행 면에서 우려가 많았다. 잉글랜드 경기가 그나마 가장 잘 팔리는 경기인데도 28000장 파는데 '''3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해외 팬들의 남아공 치안에 대한 불신 등이 원인이다. 이에 주최측은 경기 당일 현장 판매와, 티켓 가격의 대폭 하향[25]등으로, 그래도 막판 꾸준히 관중 몰이에 성공하면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대회가 끝났다. 관중 평균도 역대 3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같은 잘 하는 팀은 맞지만 주춤하고 있었던 팀들과 같이 한조가 됐는데, 이 조들의 공통점이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결국 원정 첫 16강에 진출했다.
스페인의 첫 우승으로 이번 대회는 종결되었다.[26]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조별리그에서 스페인을 이긴 스위스가 1승 1무 1패로 탈락한 것이다.[27]
그리고 '''최초'''로 개최국인 남아공이 1라운드에서 광탈하는 굴욕을 당했다. 그나마 마지막에 프랑스를 이겨 토너먼트 진출을 저지한 것으로 만회했다.

20. 20회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1994년(미국) 이후 20년만에 개최권이 미주 대륙으로 돌아왔다. 남미만 놓고 본다면 1978년(아르헨티나) 이후 36년 만의 일.
64년만에 개최권을 따 낸 브라질이 1950년 자신의 안방에서 우루과이에게 역전패하여 우승컵을 눈 앞에서 어이없게 놓쳐버린 충격을 딛고 이번엔 과연 우승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아시아 팀들이 전부 졌잘싸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최악의 경기를 펼쳐서, 해당 대회는 32개국 출전 이후 처음으로 어느 한 대륙이 통째로 못하는 대회이기도 했다. 그나마 아프리카 팀은 카메룬을 제외하고 선전했다고 볼 수 있었지만, 아시아는 그런 거 없다.
조편성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희대의 조편성들이 나왔다.
  • 2010년 대회 결승에서 맞붙은 바 있는 두 팀인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같이 편성된 B조
  • 4개팀 중 3개팀이 월드컵 우승 유경험팀으로 구성된 D조, 우루과이 2회, 이탈리아 4회, 잉글랜드 1회로 이 조의 월드컵 우승 총합이 7회에 달한다.
  • 반면 톱시드빼고 모두 약체로만 편성된 F조. 아르헨티나 이외에는 이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나이지리아로 이란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지난 대회당시 지역예선에서 떨어졌던 팀들이다.
  • FIFA랭킹이 제일 높은 G조. 2014년 4월 기준으로 독일이 2위, 포르투갈이 3위, 미국이 13위이다.

  • 우승은 독일이 차지했다.

21. 21회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동유럽에서 최초로 열리는 월드컵.
한동안 월드컵에 자주 진출하던 팀이 떨어지고, 월드컵과 인연이 없던 팀들이 올라왔다. 아래에 나온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미국도 32년 만에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고, 코파 아메리카 우승국인 칠레도 막판에 브라질에 대패하는 바람에 탈락했다. 반면 페루와 이집트가 오랜만에 출전했고, 사우디와 튀니지, 스웨덴, 폴란드도 12년 만에 출전했다.
사상 최초로 빅4가 4강에서 전멸한 대회다. 이탈리아는 스웨덴에 밀려 60년 만에 본선조차 못 올랐고, '''디펜딩 챔피언''' 독일은 80년 만에 조별 리그에서 짐을 싸는 수모를 겪었다. 그 외에도 아르헨티나는 16강에서 프랑스에, 브라질은 8강에서 벨기에에 발목을 잡히면서 떨어졌다. 그 외에 강팀이라고 평가 받는 네덜란드는 이탈리아와 함께 본선에 못 올랐고, 스페인은 개최국 러시아에게 승부차기 끝에 16강 탈락했다. 포르투갈은 우루과이에 져서 16강에서 짐을 쌌지만, 그 우루과이 역시 프랑스를 만나 떨어졌다.
한편으로는 유럽의 강세가 돋보였다. 프랑스는 한 번도 이긴 적 없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를 잇달아 꺾고, 벨기에는 우승 후보인 브라질을 꺾었다. 잉글랜드도 콜롬비아와 대면하여 사상 첫 승부차기 승리를 이루었다. 결국 4강에서는 12년 만에 남미 팀이 전멸하였다.
또한 36년 만에 토너먼트에서 아프리카가 전멸했다. 이집트는 모하메드 살라가 있었지만 3전 전패로 일찌감치 짐을 쌌고, 튀니지는 벨기에와 잉글랜드에 지는 바람에 탈락했다. 모로코는 이란과 포르투갈에 잇달아 지는 바람에 탈락. 나이지리아는 첫 출전국인 아이슬란드를 이기긴 했지만 나머지 강호들에게 져서 탈락했다. 세네갈은 일본과 '''승무패, 골득실차, 승자승까지 똑같아서''' 페어플레이 점수로 아깝게 탈락했다.
반면 지난 대회처럼 최약체로 평가 받던 아시아 팀이 조금 선전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집트를 이겼고, 이란은 모로코를 이겼다. 한국은 3전 전패 우려 속에서 당시 FIFA 랭킹 1위인 독일을 2:0으로 이겨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일본은 콜롬비아를 이기고 세네갈과의 페어플레이 점수가 낮아서 16강에 진출했다.[28] 호주도 승리가 없었지만 우승 팀인 프랑스를 상대로 선전했다.
한동안 승리를 못 하거나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팀이 잇달아 승승장구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러시아, 우루과이에 털렸지만 맨 마지막에 이집트를 이겨 24년 만의 승리를 만끽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튀니지도 벨기에와 잉글랜드라는 강호들에게 졌지만 파나마를 이겨 40년 만에 승리하였다. 이란도 첫 경기에서 모로코를 이겨 20년 만의 승리를 거두었다. 페루도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이후 40년 만에 승리를 거두었다. 개최국인 러시아는 32년 만에 16강에 진출하여 옛 소련의 영광을 어느 정도 되찾았고, 크로아티아도 20년 만에 16강에 올라 기쁨을 누렸다.
특히 크로아티아는 처음으로 3전 전승을 한 것도 모자라 토너먼트 3경기 연속 연장전을 펼치면서 사상 첫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프랑스. 두 팀 간의 치열한 혈투 끝에 프랑스가 20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2. 22회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예정)


중동에서 개최되는 첫 월드컵이자 북반구에서 여름이 아닌 가을에 여는 월드컵이다.
21회, 22회 월드컵 유치과정은 2018 2022 FIFA 월드컵 유치전 참고.

23. 23회 2026 FIFA 월드컵 캐나다·멕시코·미국 (예정)


북중미 3개국인 캐나다, 멕시코, 미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24. 24회 2030 FIFA 월드컵 (예정)


개최에 관심을 보인 나라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에서 다룬다.

[1] 브라질이 2승을 거둔 것에 비해 우루과이는 스페인과 비기고 스웨덴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뒀기 때문이다.[2] 바뀐 이후의 색이 지금의 색이고 바뀌기 전의 색은 그냥 흰색 상하의에 어깨에서 팔까지 바깥으로 파란 줄이 있었을 뿐이다.[3] 참고로 우루과이브라질에 잡혀먹힐뻔하다 독립한 나라기 때문에 우루과이 입장에서 보면 도쿄대첩에 맞먹는 기적이었다.[4] 다만 해당 문서의 대한민국 문단으로 가면 상세히 설명돼 있는데 오히려 헝가리가 조롱을 당했다. 이름없는 아시아 어느 국가에게 '''고작 9골밖에 넣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래에도 나오는 것이지만 이때의 헝가리는 당시 서독을 8:3으로 패퇴시켰을 정도로 최강팀이었다. 다시 말해 같은 유럽팀이었던 서독에게 8점을 넣은 헝가리가 최약체로 분리된 아시아의 대한민국에 겨우 9골 밖에 넣지 못했다며 까인 것. 더구나 이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 골키퍼였던 홍덕영 선생은 헝가리의 100개의 유효슈팅 가운데 오직 9개만 막지 못했고 그 댓가로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현지 관중들과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5] 하지만 이때를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전쟁이 끝난 후 겨우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온 나라가 전쟁의 폐허속에서, 그리고 국가 재건을 위해 정신이 없었을 때였으니 정부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었을리 만무하다. 게다가 이 당시 한국은 그야말로 최빈국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월드컵 본선에 올랐던 것이다.[6] 원칙상 골라인 안으로 완벽하게 들어가야만 골이다. 골라인에 걸리면 노골이다.[7] 브라질이 페루쪽에 지급하는 보상금은 페루가 아르헨티나를 이기면 선수 1인당 100만 달러, 무승부일 경우 선수 1인당 6만 달러였다.[8] 이때 요한 크루이프가 현역이었지만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왜냐면 월드컵이 개최되기 전에 요한 크루이프와 그 가족들이 납치당하는 사건이 있었고 요한 크루이프는 사건 이후 충격받은 가족을 위해 가족의 곁을 지키는 선택을 했다.[9] 실제론, 브라질이 그 유명한 Zico, Socrates, Falcao, Toninho Cerezo 등 '황금 4중주'의 미드필더진과 남미 예선 전승에 '81년 유럽투어 등 무패가도를 달리고 있었기에 당시 전문가 및 영국 도박사들에 의해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0순위로 여겼다. 우승 확률 11대10까지 베팅률을 보이기도 했다. [10] 그리고 조 3위가 16강에 갈 수 있게 된 첫 대회다.[11] 따라서 조 3위는 16강에 진출을 하지 못한다.[12] 이후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이 결과에 대해 무척이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고 지금까지도 심판의 편파 판정의 덕으로 이겼다고 여기는 중이다. 게다가 현지에서는 이 경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싫어할 정도다.[13] 브라질은 득실차 끝에 남미 예선 3위로 진출, 독일은 플레이오프에서 우크라이나를 이기고 본선에 진출했다.[14] 그리고 이 대회는 남미가 최후로 우승한 대회가 되었다.[15] 블래터가 2006년 10월, 호주를 방문했을때의 일인데 호주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WC 이탈리아-호주전 PK는 오심", 블래터[16] 블래터가 반 이탈리아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FIFA 블래터 회장, 伊 반발에 한발 물러서[17] 세번 연속으로 실축하면서 0대3으로 패배했다.[18] 이미 레알 마드리드 은퇴로 프로 커리어는 끝을 선언한 상황이었다.[19] 사실 1990년 대회에서 이탈리아는 아르헨티나와의 승부차기에서 패배해서 3/4위전으로 밀려났다. 어쩌면 독일 입장에선 조금 억울할 수도... [20] 메인 보컬인 조지인이 한국인 교포 2세. 이 때문에 크립테리아는 자신들을 독일 밴드가 아니라 독일-한국 밴드라고 주장한다고 한다.[21] 단 2.5집의 Go Reds!란 노래는 앨범 전체의 분위기와 개사 전 원곡의 내용을 봤을 때 '''이게 왜?!'''란 말이 나오긴 한다. 2집의 '승리를 위하여'는 사실 Victoriam Speramus라는 자신의 노래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인데, 그냥 무난한 응원가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22] 호주가 아시아 연맹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가능했던 상황이었다.[23] 이걸 인정하면 다른 팀들도 오심을 꼬투리잡아 특별 출전 요구가 빗발칠 수 있다고 한다.[24] 그런데 포르투갈은 정말로 브라질과 같은 조에 묶여버렸고 그 결과 7골을 기록했으나 그 골은 모두 북한에게서 뽑아낸 골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북한에게 7-0떡실신을 시킨 것을 빼고는 나머지 경기에서는 득점 자체가 아예 없었다. 브라질과도, 코트디부아르와도 0-0 무재배를 쳐냈으며 스페인에게 0-1 패배를 했다.[25] '''20달러, 한화 약 2만 2천원.'''[26] 준우승은 네덜란드였다. 그런데 그동안 월드컵 역사에서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독일, 이탈리아 중 한 팀은 반드시 결승전에 진출해왔다. 이른바 월드컵 빅4라고도 하는데 이 빅4 외의 국가끼리 결승전에 진출한 최초의 월드컵인 셈이다.[27] 그 전까지는 우승 팀을 이긴 팀(1954년 헝가리, 1974년 동독, 1978년 이탈리아)이 모두 조별 리그를 통과했다.[28] 그러나 조별리그 마지막 폴란드전에서 몇십분동안 공돌리기만을 진행해 논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