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정보사령부

 




'''대한민국 국군정보사령부'''
'''大韓民國 軍情報司令部'''
'''Korea Defense Intelligence Command (KDIC)'''
[image]
'''우리는 금석을 뚫는 충성심으로 점을 찾아
선을 이어 통일성업 완수에 헌신한다
'''
'''창설일'''
1946년 1월 15일(남조선국방경비대 정보과)
1990년 9월 29일(국군정보사령부)
1999년 3월 30일('''국군정보사령부''')[1]
'''소속'''
[image] 대한민국 국군
'''상급부대'''
[image] 국방정보본부
'''종류'''
기능사령부
'''역할'''
국군 정보업무 수집
'''사령관'''
[image] 육군 소장 이화수(육사 44기)
'''정보단장'''
[image] 육군 준장 김주희(여군 35기)
'''위치'''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1. 개요
2. 상세
3. 특징 및 업무
3.1. 북한 관련
3.2. 해외 관련
4. 편제
5. 출신인물
5.1. 사령관
5.2. 장교/부사관
5.3. 병
6. 기타
6.1. 병사들의 근무환경
6.2. 지원 및 선발
6.3. 부대가
7. 부대 위치와 이전
7.1. 안양 이전 前
7.2. 안양 이전 後
8. 사건사고
9. 여담
10. 관련 문서

[image]
[clearfix]

1. 개요


'''국방정보본부령'''
'''제4조(부서와 부대의 설치)'''
② 정보본부 예하에 다음 각 호의 부대를 둔다.
1. 군사 관련 영상ㆍ지리공간ㆍ인간ㆍ기술ㆍ계측ㆍ기호 등의 정보(이하 "영상정보등"이라 한다)의 수집ㆍ지원 및 연구에 관한 업무와 적의 영상정보등의 수집에 대한 방어 대책으로서의 대정보(對情報)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기 위한 '''정보사령부'''
대한민국 국군의 '''첩보부대'''로서 북한의 정찰총국과 그 역할이 상응된다. 대한민국 국방부 직할부대인 국방정보본부 산하에 설치되어 있으며 신호정보를 관장하는 777사령부와 함께 국방정보본부의 관리, 통제, 지휘를 받는다. 사령관소장이 맡는다.[2] 국가정보원과 마찬가지로 노출을 피하기 위해 대외용 위장 명칭을 사용하며 속칭 회사(Company)라고 불린다.

2. 상세


국군정보사령부 변천사
1940년 ~ 1950년

1950년 ~ 1960년

1960년 ~ 1970년

군정청 국방 총사령부 정보과(1946년 1월)
→조선경비대 총사령부 정보국(1948년 8월)
육군본부 정보국 정보대(1948년 11월)
육군 정보국 정보대(1과)
육군 정보대
Military Intelligence Group
육군 정보국 공작과(2과)(1950년 7월)
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
→첩보분견대본부 독립(1951년 3월)
육군 첩보대(1961년 7월)
Army Intelligence Unit
해군 작전국 정보과(1948년 9월)
해군 정보부대 (1954년)
Navy Intelligence Unit

공군 20특무전대
Airforce Intelligence Service Unit
1970년 ~ 1990년

1990년 ~ 현재
육군 정보사령부(1972년 2월)
Army Intelligence Command
'''국군''' 정보사령부
  (해군 첩보부대, 공군 20특무전대 통합)
  '''Defence Intelligence Command'''
해군 첩보부대(1971년 5월)
Underwater Demolition Unit
공군 20특무전대
Airforce Intelligence Service Unit
※ 부대 이념 - 위국헌신 군인본분
육군의 정보 부대는 처음 1946년 1월에 '''군정청 국방 총사령부 정보과'''로 발족하여, 1946년 8월 '''조선경비대 총사령부 정보국'''을 거치고, 같은 해 11월 말 '''육군본부 정보국'''으로 개편되었다. 이것이 입수 정보를 분석 판단하는 정보대인 1과로 불렸고, 후에 육군 정보대(MIG)가 된다. 1950년 7월에 육군본부 정보국 내에 공작과가 만들어져 주로 첩보를 담당하는 2과(영문약자가 HID였다.)로 불리다가, 1951년 3월 독립된 첩보부대가 되었다. 첩보분견대본부(HID)는 1961년 육군 첩보대(AIU)로 개칭하고, 1972년 정보대(MIG)와 첩보대(HID)를 통합해 육군정보사령부(AIC)가 되었다.
해군의 정보 부대는 1948년 9월 '''해군 작전국 내 정보과'''로 발족하였으며, 1955년부터 자체적으로 UDU요원을 선발했다. 1970년 이전까지 NIU내 해상정찰대의 UDT요원 들을 '''해군첩보 수중파괴단'''(UDU)라 불렀고, UDT부대에서 북파공작원을 직접 양성후 해군 정보부대(NIU)에 전속 하였다. 1971년 5월 5일 해군첩보부대령에 의해 UDT교관단으로 구성된 해군 첩보부대 교육대가 설치 되면서 공식적으로 UDU라고 칭하였다. UDU 기수는 UDT기수를 그대로 이어받아 UDU 1기가 아닌 UDU 17기로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공군의 정보부대는 1954년 9월 美 극동공군이 일본으로 이전함으로서 美 6006부대가 사라지게 되자, '''20특무전대'''가 6006부대의 임무를 떠맡았다. 일명 실미도 부대라 불리는 '''684부대'''가 바로 20특무전대 소속이다. 그 후 1990년 육·해·공군 정보부대를 통합해, 기존에 있던 육군의 HID, 해군의 UDU, 공군의 AISU국군정보사령부가 되었다. 방첩부대였던 제3과는 국군기무사령부를 거쳐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정보사령부의 존재 자체를 잘 알지 못 한다. 이 때문에 이를 주로 아는 부류인 밀덕들에 의해 그동안 국군정보사령부 문서가 정보사 내 여러 부대들중 하나인 특임대 위주로 서술되어 있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보안이 철저한 정보부대의 특성으로 공개된 사항 자체가 적은 이유도 있으나 과거 북파공작원부대라 불렸던 특임대가 대표 아이콘이기도 했고 가십거리로도 더욱 좋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특임대 위주만의 서술은 되려 주객이 전도된 것인데, 애초에 특임대 자체가 엄연히 공작대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부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특임대가 활발히 활동했던 과거에는 현재 공작대와 특임대 사이에 있는 경계가 더더욱 옅었기에 구분하는게 무의미했다. 또한 현재는 특임대의 규모보다 신호정보부대와 해외공작대의 규모가 특임대를 압도한다. 임무범위의 범지구적 확대, 기술의 발전, 국가 위상의 비약적 상승 등 너무나도 많이 바뀌었기에 수많은 나라를 상대로 과거 북한을 대부분 목표로 활동했던 과거와 같이 공작대의 일부 특수부서와 특임대를 앞세워 무력으로 깽판을 치면 너무 많은 위험부담과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때문에 많은 임무들이 정찰기, 인공위성으로 대체되었고, 여전히 인공위성 등으로는 부족한 휴민트를 암암리에서 공작대의 우회공작관들이 과거와는 달리 조용히 수집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공개된 정보사의 영상정보 수집 자산으로는 금강, 새매정찰기가 있으며 우회공작은 탈북여성강간 사건에서 드러났듯 탈북자, 조선족 등을 포섭하여 임무를 수행한다고 알려져있다. 영상정보 수집 관련해서는 현재까지는 정보사에서 금강정찰기와 같은 자산들을 직접 운용하여 수집한 첩보를 가공하여 정보를 생산했었다면 공군에 항공정보단이 창설되고 최신 영상정보 수집 자산인 글로벌호크가 항공정보단에 배속 되는 것을 시작으로 추후 계획자체가 항공정보단의 임무 확대 및 정찰비행단의 창설인 것으로 볼 때 정보사령부의 역할과 기능에 축소가 불가피해 보이며, 이는 항공정보단, 해군정보단의 사례가 극명하게 보여주듯 국직부대에서 육군, 해군, 공군으로의 기능 환원을 의미한다.
[image]
2020 국방백서에 국직부대의 해체, 축소 개편에 따른 각 군으로의 기능환원이 명시 되었다. 실제로 지난 몇년간 정보사령부에서 각 군으로[3] 기능이 이관되어 왔으며 이러한 기조는 향후에도 지속될 것이 명백해졌다.

3. 특징 및 업무


정보사는 말 그대로 군의 정보기관이며 군사안보지원사령부(전 기무사)가 방첩과 국내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면 정보사는 북한과 해외 담당 관련 업무를 수행한다. 현재는 불명이지만 과거에는 국내에서도 정치공작 및 테러, 감청 등을 진행한 적이 있다. 777사령부, 국가정보원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의 협업을 지속해오고 있으며, 정보수집을 위한 경쟁도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주 업무는 사령부 특성 상 첩보 및 기밀업무이며 그 중에서도 '''블랙 옵스''' 쪽으로 치중된 것으로 추측된다. 워낙 비밀스럽고 폐쇄스러운 곳이라 알려진 것이 매우 적다. 777사령부가 담당하는 신호정보를 제외한 모든 출처의 군사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부대들이 있으며,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간첩의 임무를 수행하는 공작대, 보통의 정보사 인력들이 해결하기 힘든 수준의 위험한 특수전을 수행할 목적의 특임대가 예하에 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를 참고. 직할 부대는 아니지만 특수요원들의 침투 수단을 제공하며 정보사령부의 첩보임무 또한 수행하는 공군 소속의 제28비행전대도 관련 부대이다.
공작요원, 즉 첩보 요원의 경우에는 공작관(Agent Handler)이라는 임무 특성 상, 그리고 민간에 알려진 여러 정보를 추측했을 때, 장교가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예하의 특수임무부대에서 활동하는 특수요원들은 대부분 민간 출신의 요원(부사관)들이다. 현장에서 공작원으로 뛰는 최고 직급은 중령이라고 한다. 현재는 팀장이라고 부르고 있으며[4] '전무'라는 가짜 직급을 쓰기도 했다. 대령 이상은 현장에 나가지 않고 주로 여단에서 지휘/감독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한다.
정보사는 침투용 70t급 잠수정을 포함한 여러 침투수단을 운용하고 있다. 70t급 잠수정의 경우 10명 내외의 특수요원이 탑승해 적진 정찰 및 기뢰봉쇄 등의 특수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필요할 경우 대형함정도 폭파할 수 있는 무장이 가능하다. (정보사 소속 침투단정을 타고 휴가중인 장교의 친구들과 놀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노후 잠수정이 정비 중 폭발해 인명피해가 난 사고도 있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보안을 위해 현장에서는 보고문건을 국내로 보내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자칫 도청당했다간 몰살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 따라서 '태풍이 왔다 / 배가 잘 들어왔고 물건을 잘 받았다' 같은 암호로 간단하게 보고하고, 정식 보고는 국내에 들어온 뒤에 하게 한다.
정보사가 수집한 각종 첩보 중 일부는 SI로 분류되어 가공된 후 일선 군 부대에 정보공유의 일환으로 제공된다.
그 외에 언론 보도로 알려진 소소한 임무로는 지상군 페스티벌과 같은 안보 관련 행사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남파공작원 및 간첩 등으로부터 노획한 침투장비 전시도 담당하고 있다.

3.1. 북한 관련


공식적으로 7.4 남북 공동 성명 이후 미수복지역으로 직접 투입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현재 민간에 나온 정보로는 1994년까지의 파견 경력이 확인되었다. 폐쇄적이고 비밀스럽다 보니 알려진 것이 적다.
정보사는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할때 현지 정보원을 통한 수집을 즐겨하며 '북한인, 조선족, 중국인, 탈북자' 등을 주로 정보원으로 포섭한다. 물론 이들은 들키면 처형당한다.
예를 들어 1997년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대포동 미사일기지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고 하자. 일반인의 상상대로라면 정보사 특수임무수행팀의 요원들이 방탄복, 야시경, 군복과 소총 등으로 완전무장하고 들어가 사진을 찍어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공작대 소속의 공작관 요원들이 중국 선양이나 베이징 같은 곳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탈북북한군 출신을 고용해 카메라와 돈을 줘서 보내는 식으로 얻은 자료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이들은 국경부터 미사일기지까지 길을 정확히 아는데다, 잡혀도 자신의 고용주 얼굴 말고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찍어온 사진은 미국의 첩보위성으로도 정확히 판별되지 않는 자세한 설비를 판별할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 원자력 연구소나 핵실험장에서 물, 흙 등의 시료를 채취해오는 것도 정보사 특수임무수행팀 보다는 중국인이나 북한 치하의 거주민들을 통해서 제공되는게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중앙일보(2011)에 보도된 'CKW 사건'에 따르면, 1998년 40대 초반의 정보사 중령이 북한에 7개월간 납치된 뒤 고문당하고 이중간첩으로 전향한 일이 있었다. 그는 단둥의 한국고려인삼공사 지사장으로 위장해 대북 공작망의 현지 책임자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위치가 노출되어 숙소에 외부인이 침입하고 피를 흘릴 정도의 격투를 벌여 납치 당한 것이다. 방첩기관에서 전향을 밝혀냈고, 이에 그를 전역시킨후 군무원 2급으로 재채용하였다. 중앙일보(2011)는 "1996년에서 1999년 사이에 정 중령 외에 피랍된 장교는 없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조선족, 탈북자 등 블랙요원 일부가 잡혀서 납북되었다고 한다.
1997년 북한의 미사일 기지 근처에서 복무하다 탈북한 북한군 출신 2명을 모아서 기지에 침투시키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오게 했다.1명은 탈출 과정에서 사살당했다.
2006년 가을 중국 내 한국 블랙요원(정보사인지 국정원인지는 불분명)의 지시를 받은 탈북자 출신 공작원 2명이 함경북도 길주군의 한 야산에 잠입했다. 한 명은 바닥의 흙을 긁어냈고, 다른 한 명은 그 과정을 소형 캠코더로 촬영했다. 이들이 채취한 흙과 물은 며칠 뒤 북-중 국경을 넘어 남한 요원에게 전달되었으며, 캠코더로 현장을 찍은 동영상 파일은 핵실험 현장 주변에서 가져왔다는 근거가 되었다. 그 해 10월 9일 북한은 핵실험 사실을 공식 발표했으며, 얼마 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국정원장은 "북한 핵실험의 규모와 핵 물질 성분을 분석했다, 핵 실험장 근처 시료를 우리 휴민트가 직접 가져와 분석했다"고 발표했다.
위의 여러 이유로 1990년대 이후에는 한국에서는 정보사 특수요원을 미수복지구 내에 직접 보내는 것에 큰 초점을 두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침투한 대원들이 체포되어 목숨이 위태롭게 되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국제사회에서 체포된 인원들이 공개가 되어 정전협정위반으로 북한에게 공격당하면 대한민국의 국제사회 신인도(信認度)가 말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옛날 북한보다 못살던 대한민국이 아니라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크다. 차라리 공작대가 우회공작을 펼치는 것이 더 안전한 것이다.

3.2. 해외 관련


논리적으로 생각해도 당연한 것이지만, 북한 이외의 미국, 일본, 중국을 비롯한 외국 등지에도 정보사측 인원을 보낸다. 시사인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 당시 자이툰 부대가 파견되기 전 정보사 팀이 선발대로 들어갔다. 이 팀이 정보사 예하의 공작대 팀인지 혹은 특수임무대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재외근무수당 지급대상에 외교부 직원, 국가정보원 전문관과 대위가 같이 병기되어있는데 위관급 장교의 경우 대부분 국방무관의 부관신분으로 주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부관업무도 수행하겠지만 중국, 일본측 요원들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드러난 정보사를 대상으로한 공작활동 사례를 보면 대강 우리측 요원들도 어떤 활동을 수행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앞선 일본측의 공작활동 사례에 대한 자세한 다른 기사에 나오듯 공식적인 무관신분 이외의 블랙요원 즉, 신분을 아예 속이고 입국하여 활동하는 인원들도 있다. [5]

4. 편제


국군정보사령부 및 예하 부대의 정확한 위치와 세부적인 편제사항, 부대 내의 시설, 병력현황 등에 대한 모든 내용은 ''' 군사 II급비밀'''로 분류됩니다.

5. 출신인물



5.1. 사령관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사령관.
'''역대 국군정보사령관'''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000


사령관

00대
김영철
예) 육군 소장
학군 4기[6]
제12보병사단

00대
오향균
예) 육군 소장
육사 29기
사령관
#
00대
김황록
예) 육군 중장
육사 40기
국방정보본부장

00대
이친범
예) 육군 소장
육사 40기
사령관

00대
이영기
예) 육군 소장
육사 41기
사령관

00대
김영환
예) 육군 중장
육사 42기
국방정보본부장

00대
최세환
예) 육군 소장
육사 42기
사령관

00대
이화수
육군 소장
육사 44기
사령관


5.2. 장교/부사관


국가안전기획부 소속 대북공작원. 암호명 '흑금성'. 흑금성 사건의 주인공. 정보사 한미합동 공작대 공작관 출신.
정보병과 최초의 여성장군이며 준장 진급 후 정보사령부 정보단장으로 근무하고있다.#
  • 김종대
로드 FC 소속 종합격투기 선수, 특수임무대 육상 부사관 요원 출신.
  • 주의환
특수임무대 육상 부사관 요원 출신. 전역 후 주먹이 운다(XTM)에 출연한 경력이 있으며 출연 당시에는 경찰특공대 준비중이었지만 현재는 그만두고 특수부대 입시 전문 학원을 운영중이다. 그리고 유튜버 활동도 하고 있으며 현재 활동하는 수많은 군 출신 유튜버들 중 거의 유일한 HID출신이다. 매미킴과 합방을 한 적도 있다.
  • 홍순기
특수임무대 육상 요원 출신. 해병수색대 병 전역 후 재입대하였다. 해상보안 민간군사기업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현재는 산악 트레일 관련 영상을 가끔 올린다. 주라벨tv에 자주 나왔으며, 매미킴 마라톤 영상에도 출연하였다.

5.3. 병



6. 기타



6.1. 병사들의 근무환경


병은 각 출신 군대와 병과마다 다르다. 거기다가 예하부대가 주력이 해군인지 공군인지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지상 전투와 관련된 병과는 뽑지 않는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편하다. 아무래도 -간부들을 보조하는 역할이기에 몸도 편하고 무엇보다 서울 근방인지라...
특이점은 육군만 선발 제한이 많다는 것. 아마 병과가 너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기군단/기훈단에서 얼마만큼 잘하냐에 따라 자대가 결정되는 해, 공군에 반해 육군은 육군훈련소를 수료한 병사들만 정보사령부에 갈 수 있다.[7][8] 한 연대에서 정보사령부로 가는 육군은 많아야 3명 정도, 1달마다 입대하는 해, 공군에 반해 1주마다 들어오는 육군이 약 500 ~ 2,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진짜 적은 수다.
해군 갑판병 같은 경우에는 특이하게 6개월간 배를 타야하는 운명을 거스를 수 있다. 단 기본적으로 육상근무라 다른곳으로 2차전입을 신청할 수 없는게 단점. 물론 육상근무라 2차전입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공군도 들어오긴 하지만 대체적인 필요병과는[9] 육, 해군이 대부분이라 헌병이 많이 가게 된다. 일단 세 군 중 가장 긴 시간 동안 부대 내부의 치안을 유지하기에 딱 좋은 수단이기 때문(...) [10] 다수의 통역병(어학병)이 선발을 거쳐 배치된다.[11] 자세한 것은 어학병 자대배치 문항을 참조. 헌병 외에도 조리병, 설비병, 토건병 등이 자대 배치를 받는다. 특히 공병/시설 병과 장병들은 80kg AM-2 매트에서 영영 해방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6.2. 지원 및 선발


  • 특수임무수행부대의 요원 선발은 정보사 특임대 문서 참조
  • 장교는 특임대, 공작대 등에 상관 없이 대부분이 중위~대위급의 초급 장교 시절에 실력이 검증된 우수한 인원에 한해서 추천을 받아 선발한다.
  • 정보사 군무원 채용 공고로 대강 추측이 가능한 사항이지만, 군무원 채용루트를 통해서도 우회공작대 요원을 선발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련 일을 하였던 퇴역군인 혹은 국정원과 같은 관련기관 출신들을 재채용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해당루트의 경우에는 말이 군무원이지 실제 수많은 케이스에서도 드러났듯, 해당 업계의 분위기상 프리랜서식 계약일 것이다.

6.3. 부대가



7. 부대 위치와 이전


[image]
사진 출처: 한국경제(2013)
모든 부대의 위치는 본래 대외비 이상의 기밀에 속한다. 하지만 사건이 터지면 '''제도권 언론의 신문기사'''로 공공연히 나오는 상황이다. 물론 현재는 정보사 본청이 이전하였기에 옛 부지 위치 자체를 밝히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2017년 2월 기준으로 위병소 자리는 터널 발착으로 인해 없어진 상태. 정보사 외에도 국가정보원 역시 본청의 위치는 언론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려저 있다. 물론 비인가자의 출입 통제는 한다. 실제로 예하부대가 위치한 곳을 가보면 기가 막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신병위로휴가를 갔다온 본청 병사들이 길을 몰라 택시를 타고 난 뒤 "대법원 근처예요."라면서 우물쭈물하면, 택시기사가 "아 ㅋ 정보사령부요?"하면서 데려다주는 일도 허다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전입한 지 얼마 안된 참모부 병사가 밖에 야식을 시키면서 대외명칭인 '☆☆산업'을 사용하면, 배달하는 중국집 사장님이 "아, 정보사요?" 하고 답하는 바람에 기분이 머쓱해진 적도 있을 정도.
이게 잘 알려진 이유는 부대가 위치한 곳이 도시 한가운데라 지역발전에 장애가 되고, 한강 이남 도심을 가로지르는 대로 하나를 떡하니 막아 도로가 끊겨 있고, 여기에 가로막힌 서초구 주민들이 강남구로 가려면 길을 빙 돌아가야 하는 때문에 '''부대 이전이 만년 떡밥'''이라 그렇다. 2005년에도 세곡동[12]으로 움직일 계획이 있었지만 국가정보원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다. 그러다 2013년에 돼서야 경기도 안양시 수방사 제1113공병단 인근으로 사령부를 이전하는 것이 확정되자, 2014년에 서울시의회에서 정보사 부지에 터널을 뚫는 공사를 승인했고, 2019년 4월 22일 개통했다.
처음 정보사가 위치할 때는 허허벌판이었지만 1970년대에 개발이 진행되면서 시가지 한가운데가 되어 버렸다(공공기관이나 시설 같은 곳 중 이런 곳 허다하다). 거기다 1992년 이 부지에 대한 초대형 사기사건이 터졌고, 정치권이 개입되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상당히 큰 정치스캔들로 퍼졌다. 결국 배후는 없는 걸로 마무리됐지만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전 국민에게 정보사 위치가 알려졌다.
현재 이 부지는 2018년 12월 13일을 기하여(국방부고시 2018-034호) 군사보호구역에서 해제되었으며, 사실상 안양 이전 직전 상태 그대로 방치된 채 출입을 막고 있다. 2019년 5월 31일에 1조956억2천400만원으로 MDM을 중심으로 한 컨소시엄에게 낙찰되었는데, 해당 부지에 대해 서초구가 주거 용도로 사용하지 못 하도록 강짜를 놓은지라 '''첨단 비즈니스 허브'''가 무엇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7.1. 안양 이전 前


처음 지을 때는 가장, 위장을 목적으로 해서 크게 주목받지 않을 위치에 은밀하게 부대를 건설했는데, 20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나니 방배동서초동을 잇는 요충지를 틀어막고 온갖 민원과 주목을 한몸에 받는 자리가 되어 버렸다.
걸어서 몇분만 가면 서초역이 나오는 기가 막힌 위치로 인해, 병역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서울 시민에게는 선망의 부대'''였다'''. 외박을 갈 때 강남구, 삼성동, 잠실(롯데월드)로도 나가기 좋기 때문. 다만, 다른 부대와 달리 부대생활 하면서 서초동 시가지가 그대로 보이면서도 휴가 때 빼고는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우울감에 시달리기 딱 좋았다. 그리고 다른 부대와 달리 면회 금지였다.[13]
창설 당시 평당 800원이었던 부지가 이젠 3,000만 원으로 점프했다고 한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해도 수백 배 넘게 오른 셈. 강남 땅값이 다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부대 이전이 만년 떡밥이었기 때문에 (특히 내무)시설 개선 투자가 미흡했다(놀랍게도 나무 관물대 쓰는 평상 내무반이다). 윗선에서도 "어차피 옮길 건데 뭐" 라고 생각했던 듯 하다. 다만 이전되는 안양시에는 (내무시설을 포함하여) 확실히 좋은 시설로 짓겠다고 약속했었다고 한다.
지금은 울타리 일부가 없어졌고 데크가 깔렸으며 세콤이 없어졌다. 다만 안전상의 문제가 있으니 건물 내부, 특히 본청 지하는 들어가지 않는 것을 권한다. 부지 바로 뒤편 내방역 1,8번출구로 나오는 방배e편한세상 1차-2차 사이에 서리풀터널을 뚫었다.

7.2. 안양 이전 後


만안구 박달동으로 이전했다. 위치는 공식 보도자료로 배포되었기 때문에 군사기밀이 아니니 안심해도 된다. 애초에 정보사령부 같은 상급 부대의 이전은 너무 큰 이슈인 데다 근래의 도시화·정보화로 인해 숨기기도 어렵다. 사실 제대로 위치를 숨겨야 하는 조직은 사령부 본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여러 명칭으로 위장해 활동하는 예하 실무 부대들이다.
대략적인 위치는 안양시 내의 대한민국 육군 수방사 직할 육군 제1113공병단 근처에 있다. 일부 수방사 출신 위키러들은 안양 유격장 맞은편이라고 하면 알 듯. 확실히 본청은 잘 만들어 놓았다. 국방부합참 신청사같이 으리으리하게 지어 놓았다. 군부대라기보단 대학 건물같이 생겼다.
물론 그래도 장병들 특히 강남3구 권역이 본가인 이들 입장에선, 시설이 좀 안 좋더라도 서초구가 더 좋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안양시도 나쁘지는 않지만. 특히 휴가 갈 때 걸어서 몇 분 정도면 서초역이 나왔던 걸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이전 당시 현지 주민들의 반발이 심했기 때문에, 주민 편의를 위해 복지·체육시설을 지역 주민들에게 일부 개방한다고 한다. 주민들의 반발도 이해는 되는 것이 그러잖아도 이 동네는 이미 군 부대가 너무 많아서 개발이 거의 안 되고 있다(…). 사실 군 부대로 쓰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라 일제강점기부터 군 주둔지로 쓰였던 곳이다. 국방부에서는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인근 국방부 소유 땅에 중학교를 세워줬는데 그게 박달중학교이다.

8. 사건사고


1988년 8월 6일, 육군정보사령부 소속 군인들이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 오홍근 기자에게 소지 중이던 대검을 휘둘러 공격한 백색테러 사건.

  • 시노하라 사건
1993년, 정보본부 소속 해군 소령인 고영철이 진급을 청탁하기 위해 후지 TV 서울지국장 시노하라 마사토에게 3년간 한미 연합작전 계획, 대북 정책, 북한의 NPT탈퇴 관련 첩보, 북한 정세 등이 담긴 군사 2급 비밀 문건을 넘겼으며, 시노하라 마사토가 이를 원문 그대로 군사 전문지인 군사연구 4, 5월호에 기고한 사건이었다.# 그 결과 고영철과 시노하라 마사토는 징역 후 국외추방 당했다.
  • 태안 침투용 고속단정(RIB) 전복 사건.
2010년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항 200m 앞바다에서 국방부 산하 정보사 특수임무대 해상소속 3t급 고속단정(RIB)[14]이 바위에 부딪쳐 좌초됐다. 이 사고로 고속단정에 타고 있던 류모(40)씨 일가족 4명과 박모(52)씨 일가족 3명, 전모(55)씨 부부 등 정보사에 근무하는 현역, 전역장교 및 가족 등 15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고 그중 대위 1명이 병원에서 숨졌다. 사고가 난 고속단정은 천안함 피격 사건과 같이 긴급한 해상인명구조에도 사용될 뿐 아니라, 적진 침투용, 해상 감시용, 해상 선박 검문/검색용, 적 선박 공격용 등으로도 사용되는 다용도의 신속기동단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수임무대 해상 외에도 해군 특수전전단, 해병대, 육군 특전사, 해경특공대, 해양경찰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번에 사고가 난 고속단정은 길이 7.7미터, 폭 2.9미터, 2.5~3톤 중량이며, 250마력 모터 2개로 운항한다. 최대 속도는 45노트(83km/h)에 이른다. 침투작전을 위해 M60 기관총 2정을 거치할 수 있으며, 무장병력 13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이 사건에서 비판받아야 할 점은 대북첩보부대의 특수 장비를 빌려 물놀이를 했다는 점, 사고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점, 사고 부대의 위치와 임무가 언론을 통해 거의 드러나 군사보안 측면에서 심각한 위해가 되었다는 점이 문제다. 고속단정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단순한 물놀이 보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해상침투 및 안전보트용으로 사용되는 조그만 고무보트인 IBS와도 다르다. 생산국가도 많지 않고 관리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장비를 물놀이로 사용하겠다고 빌려주라고 하고, 여기다 민간인까지 태우라고 한 해군 간부의 사고방식은 국민들은 물론 다른 장병들로부터도 분노를 사기 알맞다. 사고 시 고속단정을 조종한 이는 정보사령부 소속 상사. 대북침투 부대의 특성상 각종 장비를 능숙하게 다루는 건 필수다. 여기다 몰래 민간인까지 태우고 고속단정을 조종하는 사람이 사고를 냈다는 건 정보사령부의 장비운영 능력 부족과 보안기강의 해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표하게 만드는 것이다.
  • 정보사 해외 공작원 명단 유출 사건.
2013년부터 국군 정보사령부에 근무한 공작원 팀장 황모 씨가 돈을 받고 해외정보요원 명단을 포함한 주요 기밀을 팔아넘긴 사건황씨는 2013년부터 올 1월까지 109건의 군사기밀을 홍씨에게 누설했고, 홍씨는 이중 56건을 해외 정보원에게 팔아 넘겼다. 범행 당시 현직 군인 신분이던 황씨가 군 선배이자 전역한 홍씨에게 자료를 휴대전화로 촬영해 유출하는 식이었다. 또 황씨는 2016년 12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중국에 파견된 정보사소속 요원들의 신상 정보를 홍씨에게 누설했고, 이런 자료를 넘겨 받은 홍씨는 중국 정보원에게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일본 측에는 주로 북한·중국의 무기 체계와 관련한 우리 측 군 정보를 넘겼다고 한다. 황씨는 군사기밀과 해외파견 공작원들의 신상정보를 넘겨주는 대가로 홍씨로부터 510만원 및 1만 위안(164만원 상당)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2급 군사기밀과 정보관 신상을 700만원도 안 되는 돈에 팔아넘긴 셈이다. 군형법상 일반이적은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으로, 형법상 일반이적은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돼있는 중대범죄 행위다. 이들이 누설한 기밀은 주변국들의 무기 정보 등 민감한 정보가 포함돼 있어 유출될 경우 주변국과의 군사·외교적 마찰을 불러올 우려가 있는 자료들이다. 신상정보가 새나간 정보관들은 업무를 중단하고 귀국, 정보사 업무에도 적지 않은 차질을 빚었다.
2017년 국군 정보사령부 소속 대위가 정보사령부에 근무하면서 당시 평소에 알고 지내던 모 경찰서 여경인 B경사(36)에게 대북관련 군사기밀 문건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A대위는 B경사에게 대북관련 기밀문건 5건 등 군사기밀을 SMS로 수 차례에 걸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탈북 여성 성폭행 의혹 사건.
2016년 8월 16일 오전 8시 30분경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대한민국 해군 잠수함사령부 수리창 1곳에서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코스모스급 소형(70여t) 잠수정(SDV) 1척이 수리 도중 폭발한 사고. 관련 기사


9. 여담


흑금성의 일화를 다룬 공작이라는 책에 정보사의 실패사례와 공작 사례가 정리되어 공개된 것이 있다.군사갤러리 요약글

10. 관련 문서



[1] 국군정보사령부령 폐지.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편입[2]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대통령 취임 당시 정보사, 기무사의 사령관이 중장이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 취임 직후 모두 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다. 하지만 편제는 그대로 두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3] 공군 항공정보단, 해군 해군정보단 등[4] 국방부에서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A형, B형이 따로 있다. C형의 존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추가하길 바람.[5] 블랙요원이라고해서 맨날 드라마에서 마냥 총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총과 칼을 쓰는 요원들도 있는 반면에, 유학생, 기자, 연구원, 회사의 주재원 등으로 위장하여 정보수집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들도 있는 편이다.[6] 고려대[7] 애초에 해, 공군은 논산 훈련소 외에 사단 신교대가 여러개 있는 육군에 비해 훈련소가 하나씩밖에 없다.[8] 논산 훈련소에서 1차 선별후 면접을 통해 차출함.[9] 행정, 수송, 통신, 전산[10] 실제로 국직부대라는 특성 때문에, 여기 근무하는 공군들은 300일은 무슨. 육군 후임이 공군 선임보다 먼저 전역하는, 정신적으로 매우 해로운 꼴을 아주 빈번하게 봐야한다. 치안 담당을 제외하고도 공군 고참이 분대장을 장기 역임하는 동안 육군 후임들 다수는 똥병장으로 편하게 지내다가 먼저 전역을 해버린다. 국직부대라 해도 결국 선후임은 달군번으로 퉁을 치기 때문에, 여기 근무하는 공군 병들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아주 많이 받는다. [11] 한미연합사 또는 육군본부와 더불어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어학병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편제 역시 작지 않다. 수도권이나 광역시의 유명 어학원 또는 SAT/ACT 준비학원만 가도 이 부대에서 근무한 강사나 조교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12] 지금의 보금자리주택 강남지구 일대[13] 그 대신에 외특박 및 휴가를 나갈 때 사복을 입고 나가는 부대였다. 문제는...가끔 몇몇 본근대 주임원사가 두발규정을 이상할 정도로 빡세게 굴리는 바람에 사복입은 빡빡이(...)가 되어 사복을 입고 나가는 것 자체가 무색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14] Rigid Inflatable Boat의 이니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