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레이와 시대

 



1. 개요
2. 즉위
3.1. 즉위식
5. 2021년


1. 개요


나루히토 본인이 천황레이와 시대의 행보.

2.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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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2일, 즉위식 때 나루히토의 모습

2019년 5월 1일. 오전 10시 30분부터 10분 가량 고쿄 내 정전 마츠노마(松の間)에서 '검새 등 승계 의식(剣璽等承継の儀)'로 불리는 첫 즉위 행사를 치르면서 정식으로 나루히토는 황태자가 아니라 일본국 천황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이 행사는 천황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삼종의 신기(三種の神器)'''를 나루히토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천황으로서의 자격'을 정식/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동영상 속의 휠체어를 탄 노인은 나루히토의 숙부(작은아버지)이자 전임 아키히토의 남동생인 마사히토 친왕으로서, 가장 가까운 방계존속이기에 황족 중 성년 남성이 작은아버지와 동생뿐이고 해서 승계 의식을 할 때 연단 밑에 배석한 것으로 보인다. 연단 위에 배석한 남성은, 그동안 형을 밀어내고 '''자신이 천황 자리를 차지하려고 갖은 수작을 부렸지만 실패한''' 동생 후미히토 친왕.
오전 11시 10분부터 10분 남짓 같은 장소에서 '즉위 후 조견의 의(即位後朝見の儀)'에 참여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내각) 부처 대신과 광역자치단체장 등 국민 대표들을 처음으로 천황의 자격으로 접견해 만나게 된다.
나루히토 천황은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 세계 평화를 간절히 희망한다"면서 즉위 후 첫 소감(오코토바·お言葉)을 밝혔다. 다만 부친 아키히토와는 달리 현행 일본국 헌법 수호에 대한 발언을 하지 않은 것에, 일본 황실 특히 천황 제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이들을 중심으로 설왕설래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행 일본국 헌법에 근거하여 일본의 천황은 정치색이 드러날 수 있는 발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돌려서 현항 헌법 수호 의사를 말한 게 아닌가"라고 평했다. 한편으로는 "개헌을 용인하는 대신 무남독녀 아이코 공주의 황위 계승을 인정받는 것을 아베 총리와 타협한 것이 아닌가"라는 식의 억측까지 나오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절대 군주에서 입헌 군주로 격하된 천황은 일본 정부 내각의 정식 허가 없이는 어떤 행사도 치룰 수 없는 존재[1]이니, 일본 천황의 현 상황에 발언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나루히토 천황은 분명히 "'일본국 헌법'과 '아키히토 천황 퇴위특례법'에 의하여 황위에 올랐으며, '일본국 헌법'에 근거하여 국민들 곁에서 국민들을 위로하겠다"는 발언을 통해서 아베 총리의 개헌 야욕을 본인 나름대로 견제하는 역할을 해냈다.
첫 일반 국민들의 축하 인사를 받는 '일반참하(一般參賀)' 행사를 5월 4일에 치렀는데, 이날 약 14만 명의 사람들이 고쿄를 방문했다고 한다. 새 천황 즉위에 대해 일본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2] 영상 8일에는 고쿄 내 궁중삼전(宮中三殿)을 참배하여 천황 즉위를 정식으로 보고하였다.#
한편 일본 정부는 올 10월 22일 새 천황의 즉위식을 대내외에 알리는 피로(披露) 의식을 열고, 이날부터 10월 31일까지 대규모 축하 향연을 4차례에 걸쳐 마련한다. 외국 축하사절들에게 가부키(歌舞伎) 등 전통 일본 문화를 소개하고 초청에 응해준 것에 감사의 뜻을 표하는 자리인 축하 만찬 행사는 10월 23일[3]이다. 아베 신조 총리와 아베 아키에 여사의 주최로 도쿄 뉴오타니호텔에서 별도로 열린다.
축하 퍼레이드인 슈쿠가온레쓰노기(祝賀御列の儀)는 도쿄 도심(고쿄~아카사카)을 새 천황 부부의 카퍼레이드 행사 10월 22일에 계획했지만, 연달아 온 태풍으로 인해 11월 10일로 연기되었다. 11월 10일. 오후 3시에 도쿄 도심 4.6km를 카퍼레이드를 하였다.#
나루히토의 즉위 관련 의식은 올 11월 14∼15일 추수감사 의식인 '다이조사이'(大嘗祭)[4]를 올리는 것으로 장기간에 걸친 즉위 의식의 막을 내린다. 다이조사이만을 위한 임시 건물을 지어서 그곳에서 천황 혼자 들어가서 '''특정 의식[5]'''을 치른다고 한다.[6]

3. 2019년


즉위 첫 해인 2019년 6월에 G20 정상회담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고, 이듬해에는 2020 도쿄 올림픽이 열려 국내외에 신임 군주로서의 존재감을 알리기에 좋은 기회가 연이어 있다.
게다가 황태자 시절 해외로 유학해 각종 식견과 인맥을 넓히고 국제회의 등에 참석해 자신의 소견을 영어로 말하거나 천황이 되면 이러한 부분에 신경쓰겠다며 친선 교류에 열정적이었고,[7] 마사코 황후 역시 입사 3년만에 중요한 통상 외교 부분을 담당할 정도로 상당히 유능한 외교관이었으며, 과거 외교 일선에서 활동하게 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나루히토 황태자와 결혼했으나 궁내청과 황실에서 이래저래 시달렸고, 질병을 이유로 공무조차 최소화되다보니 흐지부지될 뻔 했는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이룰 수 있게 된 것. 그 덕분인지 몰라도 마사코 황후는 결혼 초창기에 버금갈 정도로 기대에 찬 표정을 하면서 황후가 된 이래 단 한 번도 제대로 쉬지 않고 주어진 모든 공무를 소화중이며, 덕분에 향후 천황부부 내외가 일본의 국제 친선 교류에서 전대보다 더 활발히 참여하고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도 상당하다.
5월 4일 새 천황 즉위에 따른 첫 번째 일반참하 행사[8]의 연설을 통해 자신의 정식 천황 승계 사실을 선포하면서 "국민들의 행복과 발전, 국제사회와 협력 하에 세계의 평화와 발전을 기원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후 연설에서는 당시 현지가 초여름 날씨라서 참관하러 온 일본인들 중 120여 명 가량이 탈수증 등을 호소하자 이를 걱정한 듯 5회차 참하 연설에서는 "무더운 가운데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밝히면서 건강 관리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부탁했고, 6회 차에는 갑작스러운 비 예보[9]에 당초보다 10분 일찍 진행해 국민들이 젖지 않게 신경쓰는 등 행사 전반적으로 '국민들에 대한 배려'가 상당히 엿보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현재까지 나루히토의 대국민 연설들은 아버지이자 전임 천황인 아키히토 때와 달리 일반 국민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들 위주이며 이러한 연설 스타일 및 일반 참관 행사에서 보여준 여러가지 태도 등으로 보아 앞으로 국민들에게 보다 탈권위적 및 개방적이고 친근한 모습의 천황상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몸으로 받고 있으며, 일본 언론 매체들도 이와 동일한 평가를 내고 있다.
5월 7일 궁내청은 나루히토 천황의 집무 장면[10]이 담긴 영상을 최초로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했다. 이러한 영상 공개는 그동안 나루히토가 천황 승계가 확정되자 언론들과 인터뷰를 하며 말한 "국민들을 배려하고 국민들과 함께 행동하는 한 발자국"을 실천하려 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5월 8일에는 아내 마사코 황후와 함께 궁중산전(宮中三殿)을 방문하여 10월 이후로 예정된 다이조사이 등의 일정을 보고할 예정이며 이를 위해 마사코 황후는 5월 7일 오후 늦게 고쿄를 방문해 리허설을 마쳤다.
5월 9일 주일중국대사로 9년 간 있었던 청융화 부부를 마사코 황후와 함께 토구고쇼에서 접견하였다.[11] 참고로 접견행사는 일본국 헌법에 규정된 천황의 정무(국사행위) 중 하나이다. 신임/퇴임 외교관 접견, 신 내각 접견, 내각에서 올린 서류에 대한 결재, 전통 제례 주관 등이지만 아키히토 상황이 천황일 때는 이러한 정무보다는 자연재해 위문 등에서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이러한 국사행위 관련 보도들에 "천황이 원래 저러한 업무도 하는 줄은 몰랐다"는 일본인도 제법 많다고 한다.
5월 11일 마사코 황후, 아이코 공주와 함께 고쇼를 방문해 아버지 아키히토 상황, 어머니 미치코 상황후 내외와 저녁식사를 하였다.
5월 14일, 즉위 후 최초로 아베 신조 총리와 대면해 국내외의 정세, 현안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 장면을 일부 공개했는데 이것도 앞선 공식 집무 과정을 촬영해 공개한 것과 마찬가지로 '''최초'''이다.
이러한 것에 대해 일본 야당 측에선 (이번 영상 공개가) '천황의 정치적 발언 등을 금하는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항의했으며, 이에 아베 총리와 자민당을 지지하는 측은 "이전부터 하던 천황과 수상의 정례적인 업무를 이번에 영상으로 점진적으로 공개한 것 뿐이며, 이걸 근거로 천황을 정치적인 논쟁에 끌어들이려는 게 아니냐"며 반박했다. 게다가 이 와중에 야당 측이 아키히토 상황까지 거론하자, 궁내청까지도 "상황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강하게 나오고 여론도 악화되자 논쟁은 사그라들었다.
5월 23일, 봄 훈장 서훈[12]에 참석해서 훈장 등을 수훈하였다.
5월 27일 즉위 후 첫 해외국빈으로 방일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의 예방을 받으며 국제 외교무대에 데뷔했다. 또한 통역이 배석했음에도 중간중간 통역 없이 트럼프 대통령 내외와 직접 영어로 대화를 나누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또한 현악기 연주에 조예가 깊은 나루히토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80여년 전 미국에서 제작된 비올라를 증정했는데, 기사1 기사2 사진 모음 아내인 마사코 황후로부터 "비올라를 오늘 한 번 켜보라"고 권유했다.
그 다음날인 5월 28일 보도에 의하면, 나루히토는 만찬 종료 후 처소로 돌아가 비올라를 받자마자 켜보았고, 상당히 좋은 음을 냈다고 한다.
6월 1일 마사코 황후와 함께 천황이 되고 처음으로 지방 공무차 나고야시를 공식 방문하였다. 그 뒤 아마시에 위치한 전통 자기 시설을 시찰한 후 그곳에 있는 자기 제작 체험장을 방문해 그곳에 있던 아동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당일 밤에는 숙박하고 있는 나고야 관광 호텔 옥상 아래 대형창에서 천황 내외의 방문을 환영하는 제등 행사를 펼치자, 이에 대한 답례로 황후와 함께 등을 움직여주기도 했다. 그 이후 현장에 있던 주민들에 대해서 "부디 조심해서 돌아가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발언을 관계자를 통해서 전달하였다.
6월 2일 전국 식수제 행사에 참석해 11년 만에 전국 식수제 행사에서 기념연설을 했는데, 여기에서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단어들을 구사하면서도 국민들에게 정중한 어조로 연설을 하였다. 이후 기념식수까지 마친 다음에는 오카자키시에 위치한 지체 장애인 의료시설을 방문해 환자와 의료진을 격려한 뒤 센트레아 나고야 중부국제공항에 대기중인 특별기편으로 도쿄로 돌아가 환궁하였다. 쉬운 단어와 정중한 어조로 구성된 연설에 대해서는 "나루히토 신 천황이 전임 상황 부부보다 더 가까이 국민들에게 다가가면서도 국민들을 받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라는 평가가, 특별기 편으로 환궁한 것은 일요일에 신칸센 특별편을 편성시킬 경우 철도 시간표에 불필요한 혼선을 일으켜 대국민 민폐를 끼칠 것을 회피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물론 마사코 황후의 건강을 배려한 것도 있을 것이다.
6월 4일 크로아티아 의회 의장 부부 방일에 고쿄에서 마사코 황후와 같이 환담을 가졌다. 원래 나루히토 천황 단독으로 되어 있었으나, 황후의 건강 상태가 양호해서 부부 동반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6월 8일 종숙부인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의 서거 5주년 추모식에는 불참했지만[13], 이후 황후와 함께 묘소에 참배하였다.
6월 9일에는 결혼 26주년을 기념, 토구고쇼에서 상황 부부를 위시로 현 황족들과 구 황족들이 모인 축하연회가 성대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8월 1일에는 일본 참의원의 임시 국회 개장 행사에 단독으로 참여하였다. 참석 후 아내와 딸 아이코 공주와 함께 즉위 후 처음으로 E655계 전동차[14]를 타고 이즈로 휴양을 갔다. 이 방문은 공식 휴양이 아닌 사적 여행을 겸한 요양으로 취급받아, 황실 전용 객차가 빠진 5량 편성으로 이동하였다. 휴양을 마친 8월 5일에 다시 해당 열차를 타고 도쿄로 돌아왔다.
또한 천황 내외로서 공무들을 처리하느라 정신 없지만, 이상하게도 언론 노출 빈도는 동생 후미히토 일가의 (공무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공무에 대한) 것보다도 상당히 적은 편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일본 여론은 "후미히토코무로 케이로 인해 여론이 악화되자 이를 무마하려고 친분이 있는 언론인들을 동원해 자기네들을 부각시키는 게 아닌가"라는 추측을 하면서 언론에 대해서 "지금 천황은 후미히토가 아니다. 더 이상 황실과 천황을 모욕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다.
8월 15일 그의 즉위를 기준으로 처음 거행된 일본무도관에서의 태평양 전쟁 종전 74주년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전몰자를 추도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날을 맞았다"며 "소중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과 유족을 생각하며 깊은 슬픔을 새롭게 느낀다. 종전 이후 74년간 여러 사람의 부단한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나라(일본)의 평화와 번영이 구축됐지만, 많은 고난에 빠졌던 국민의 행보를 생각할 때 정말로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후 오랫동안 이어온 평화로운 세월을 생각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깊은 반성'(深い反省)을 한다"고 했다.# 참고로 국내 보도에서는 단순히 깊은 반성으로만 표기하였으나 실제 연설문에서는 '深い反省の上に立って'(깊은 반성 위에 서서)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아버지 아키히토 상황이 작년 전국 전물자 추도사에서 언급한 깊은 반성과 함께(深い反省とともに)라는 단어를 바꾼 것이다. 어렸을 때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뒤 "두 번 다시 전쟁을 겪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책임감을 느꼈던 아키히토 상황과 달리 전후에 태어났지만, 전쟁을 겪은 세대들의 절실한 마음을 이해하고 이를 계승하는 의도에서 단어를 바꾼 것이라고 추측된다.
8월 19일 천황이 되어 공식 요양에 돌입하기 위하여 나스시오바라역에 도착해서 나스 요양소에서 약 10일간의 공식 요양에 돌입했다. 8월 1일~5일 사적 요양 당시에는 JR 히가시니혼의 E655계 전동차[15]를 타고 갔지만 이번에는 신칸센을 타고 갔다.
9월 7일 항공기편으로 아키타현마사코 황후와 함께 도착하여, 아키타현의 유기동물 보호센터를 방문했다. 다음 날인 8일에는 상황/상황후로부터 물려받은 공무인 '전국 풍요로운 바다 만들기 대회'에 참석하여 소감을 발표하였다. 원래 해당 공무 후 아키타항 방문을 하려고 했으나, 태풍 파사이의 영향으로 항만 방문이 취소되고 도쿄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지속적으로 마사코 황후와 국내의 여러 공무들을 소화하고 있지만, 명색이 현임 천황 부부의 공식 활동임에도 언론 보도는 잘 안 되고 있는 실정. 예를 들면 9월 28일 전국체전 참석 보도, 10월 2일 천황 부부가 천황이 돼서 처음으로 태풍 15호 파사이 피해지인 치바현과 지난 8월 집중호우 피해를 입은 사가현에 위무를 가는 대신 금일봉을 제공한 일이 있는데, 이들 역시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다.
대신 상황 부처,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의 보도는 단지 친구를 만나는 것이나 오페라를 보러 가는 등의, 공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일정조차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빈축을 사고 있다. 이러한 언론들의 태도를 두고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혹은 상황 부부의 영향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추측을 하고 있다.

3.1. 즉위식




先に日本国憲法および皇室典範特例法の定めるとこにより皇位を継承いたしました。

얼마 전 일본국 헌법황실전범특례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황위를 계승했습니다.

ここに正殿の儀を行い即位を内外に宣明いたします。

이 자리에서 정전의 의례를 거쳐 즉위를 내외에 천명합니다.

上皇陛下が30年以上に亘る御座いの間常に国民の幸せと世界の平和を願われ如何なる時も国民と苦楽を共にされながらその御心をご自身のお姿でお示しになってきたことに改めて深く思いよいたし、ここに国民の幸せと世界の平和を常に願い国民に寄り添いながら憲法に則り日本国および日本国民統合の象徴としての務めを果たす事を誓います。

상황 폐하께서 30년 이상 재위하시면서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바라시어 어떠한 때에도 국민과 고락를 함께하시면서 그 성심을 자신의 모습으로 보여주신 것을 다시 깊게 생각하면서, 여기서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고 국민의 곁에 있으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 및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国民の叡智と弛み無い努力によって我が国が一層の発展を遂げ国際社会の友好と平和、人類の福祉と繁栄に寄与する事を節に希望いたします。

국민의 뛰어난 지혜와 해이해지지 않는 노력으로 인하여 우리나라가 한층 더 발전을 이루어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 인류의 복지와 번영에 기여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즉위식 연설문

즉위식 대외 의식을 알리는 ‘소쿠이레이세이덴노기’(即位礼正殿の儀)에서 세계 195개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기구 요인 600여명이 참석한다. 22일 오후 1시부터 천황의 거처인 고쿄(皇居) 내 궁전(宮殿) 영빈관인 '마쓰노마'(松の間)에서 약 30분간 진행된다. 일본 정부는 국가로 승인된 195개국 중 시리아를 제외한 194개국에 초청장을 보냈고, 한국을 포함해 174개국이 초청에 응하였다.
대표적으로 일레인 챠오 미국 교통장관[16],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 영국 찰스 왕세자,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캄보디아 국왕 노로돔 시하모니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2박 3일간의 방일 기간 중 정부 대표로서 즉위식에 참석하였다.#[17] 또한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도 전달했다.#
천황 즉위식의 상세 계획에 따르면 나루히토 천황은 즉위식에서 '다카미쿠라(高御座)[18]'라는 이름의 단상에 오를 계획이다. 마사코 황후는 덮개에 백로가 장식되고 '다카미쿠라'보다 조금 작게 만들어진 별도의 '미초다이'(御帳臺)에 오르게 된다.
이번 의식에서 나루히토 천황 부부는 아키히토 선황 때와는 다르게 식장을 에워싼 복도로 걸어들어오지 않고, 징 소리와 함께 막이 열리면서 곧바로 등단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카미쿠라는 일본서기 등에 언급된 전통적인 천황의 단상이다. 황궁의 접견실인 마쓰노마(松の間)에서 열리는데, 천황은 다카미쿠라에 서서 발언(고토바)를 한다. 이후 검과 거울 등 3가지 제사 도구인 삼종신기가 천황의 책상에 놓인 다음, 아베 신조 총리가 축사하고 이어 입법, 행정, 사법 3부의 장이 만세삼창 '요고토'(よごと)을 한다.
다카미쿠라의 위치는 일본 총리 등이 서게 되는 곳과 1.3m의 높이 차이가 있는데, 위헌이라는 논란이 있다.#
해외 왕족을 공항 등에서 영접하거나 배웅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이는 황족이 감소하고 있는 일본 황실의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 황실에선 이런 영접 및 배웅 행사는 남자 황족이 맡는데, 황실에서 나루히토를 제외하고 남자 황족이 부친 아키히토 상황, 황사 후미히토 친왕과 황숙 마사히토 친왕, 조카 히사히토 뿐이다. 그러나 아키히토와 마사히토는 고령이고(각각 1933년, 1935년생) 건강이 좋지 않다. 히사히토는 이제 겨우 13세라서 이런 행사를 맡기가 곤란하다. 결국 후미히토 혼자서 다 해야 하는데, 이는 상당히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때문에 해당 행사를 아예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
즉위식 행사를 위해 사용된 금액이 160억 엔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루히토 천황은 첫 즉위식에서의 메세지는 '''"헌법에 따라 일본 및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책무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라는 말과 ‘즉위례 정전의식’에서 “상황(아키히토 전 천황)이 30년 이상의 재위기간 항상 국민 행복과 세계 평화를 바라고, 어떤 때도 국민과 고락을 함께 하면서 그 마음을 스스로의 모습으로 나타내온 것을 재차 깊이 생각한다”고 밝혔다.#
즉위식 날에 "종일 비가 내리다가 즉위식이 시작되자 비가 그치며 고쿄무지개가 떴다"는 목격담이 SNS상에 여럿 올라오고 있다. 링크 일본 국민들은 이를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오카미의 은총이라며 길조로 받아들이고 있다.

카퍼레이드가 본래 10월 22일로 예정되었다가 연기되었는데, 11월 10일 오후 3시에 도쿄 도심 4.6km를 카퍼레이드를 하였다.

4. 2020년


1월 2일 즉위한 후 처음으로 새해 기념 일반참하(一般参賀) 행사를 맞이하였다. 여기서 나루히토 천황은 작년 태풍과 호우로 인해 고생하는 국민들을 격려하였으며, 작년 아키히토 전 천황이 말한 것처럼 일본과 전 세계인들의 행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 날 오전 행사 3회까지는 작년에 생전 퇴위한 아키히토&미치코 상황 부부도 모습을 비쳤는데, 미치코 상황후의 건강이 최근 이슈가 된 것에 대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려 안심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날은 총 5회의 행사가 있었으며, 약 6만 8710명이 고쿄를 방문하였다.#
2월에 신종 코로나 사태로 인해 23일로 예정된 회갑(60세) 생일 맞이 국민 초대 행사(일반참하·一般參賀)를 취소하였다.# 천황 생일 국민 초대 행사가 취소된 것은 1996년 주(駐)페루 일본대사관 인질 사건으로 취소된 이후 24년 만이다.
23일. 자신의 회갑을 맞아 열린 기자 회견에서 코로나 사태 우려, 헌법 준수, 소수자 관용에 대한 필요성을 지적했다.#
4월 19일 나루히토의 동생인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가 황위계승 1순위인 황사(皇嗣)가 된 사실을 내외에 알리는 행사(立皇嗣(りっこうしの礼)가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잠정 연기되었다. 아래에 나온 것처럼 11월 5일 시행되었다.
5월로 예정됐던 방영(訪英) 일정이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연기됐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가정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8월 15일. 종전 75년을 맞이해 2019년에 이어서 비슷한 언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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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건강 문제로 사임한 아베 신조의 후임 스가 요시히데 총리에게 정식으로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로써 1년 전 레이와 연호를 선포한 스가가 나루히토 덴노의 인준을 받는 첫 총리로 기록되었다.
메이지 신궁 창건 100주년을 맞아 참배를 했다.# 이세신궁에서 동생 후미히토가 황사(皇嗣)가 된 사실을 내외에 알리는 행사(立皇嗣(りっこうしの礼)를 알리는 것을 가졌다.#
11월 8일 동생 후미히토의 황사 등극을 알리는 릿코시 선포식(立皇嗣宣明の儀)을 치뤘다. #1 #2 #3
11월 29일. 의회 개원 130주년 맞아 의회에 참석했다.#

5. 2021년


코로나19로 인해 신년사를 영상으로 보냈다. 전문 이에 대해 내용은 평이했지만 일본 황실에 이어진 일종의 금기를 깬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지적이 있다.
황실의 영상 메시지 발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아키히토 천황이 처음 발표했고, 2016년 8월 역시 아키히토 천황이 퇴위 의향을 표명한 것이 두 번째였다. 그러나 이런 영상 메시지나 신년 메시지 발표 자리에 황후는 참석하지 않는 것이 그간 계속 이어진 관례였다. 아키히토 천황 재위 중 메시지 발표 자리에도 미치코 황후는 동석하지 않았으며, 나루히토 천황도 즉위 뒤 첫 신년인 2020년 1월 1일에는 혼자 메시지를 발표했다. 그런데 2021년 신년 메시지에는 마사코 황후가 나란히 배석한 것은 물론, 처음 인사와 마지막 약 30초 분량을 직접 발표한 것이다.[19] 이것이 양성평등에 유난히 보수적인 일본 황실이 변화하는 신호일지의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자신의 생일 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1년은 코로나19에 휘둘린 해였다"면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슬픔에 공감을 나타내고 애도의 뜻을 밝혔다.#
[1] 이번 퇴위의식이나 신 천황 즉위 행사 직전에 일본 임시 내각 각료회의를 통해서 이러한 행사 및 행사에서의 천황 발언 등이 인정받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2] 원래는 10월 26일 경에 실시하려 했으나, 여러가지 의견 등을 감안하여 5월 4일로 앞당겼다. 일반참하는 총 6회에 걸쳐서 진행되었으며, 나루히토 천황은 대국민 연설을 했다. 상황/상황후 그리고 요코 공주를 제외한 성년 황족들이 참석하였다. 오후 1시 이후부터는 나루히토 천황, 마사코 황후, 5월 1일자로 황사가 된 후미히토, 그의 아내 키코 비, 장녀 마코 공주, 차녀 카코 공주만 참석해서 거행되었다.[3] 마코 공주의 28세 생일이기도 하다.[4] 2018년에 남동생 후미히토가 "종교(신토)색이 짙다. 다이조사이에 대한 비용을 대폭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5] 천황으로서, 일본 황실의 조상신이자 태양의 여신이라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신성한 정기를 받는 의식[6] 이 의식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이 없는 이유는, 너무나도 성스러운 의식이라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일본 학자들도 그저 추측만 하고 있을 정도로, 알려진 게 없다. [7] 그래서 "일본 최초의 해외 유학파 출신 천황"으로 불리기도 한다.[8] 골든위크(황금연휴) 도중에 이루어진 것도 있어서, 약 14만 5천여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9] 5월 4일 오후 늦게부터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상당한 비 혹은 우박이 발생하였다.[10] 여기에서 말하는 집무는 일본 내각이 제출한 각종 서류들에 대한 서명 및 천황의 어새/국새에 의한 날인을 의미한다.[11] 당초 나루히토 혼자만 접견할 예정이었는데, 마사코 황후가 하루 앞선 8일 궁중 제례행사를 마친 후에도 컨디션에 문제가 없자 같이 참석했다. 중국대사와의 접견 당일에도 천황 내외 모두 화기애애한 모습이었다는 후문.[12] 원래는 3월달 경에 해야 하지만, 이번 서훈식은 신 천황이 맡기는 게 맞다는 의견으로 일본 내각 결정을 통해서 5월로 연기하였다고 한다.[13] 일본에서는 천황 내외가 다른 방계황족의 추모식 등에 참석하는 것을 일종의 금기로 여긴다고 전해진다.[14] 천황 전용 객차를 연결할 수 있는 전용 차량으로, 직류 1500V, 교류 20kV 50, 60Hz를 모두 대응하는 교직 겸용이다. 또한 모든 신호체계가 탑재되어있어 오우 본선 일부 구간과, 타자와코선, 대부분의 사철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국 운행이 가능하다. 전임 천황 아키히토는 이 전용 열차가 인근 열차 시각 체계를 전부 바꾸게 되어 국민 생활에 큰 불편을 주므로 잘 타지 않았다. 대신 신칸센은 그러한 경향이 적기 때문에 신칸센을 주로 이용하였다.[15] 천황 전용 객차 제외[16] 원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참석하려고 했지만 일정이 안 맞아 챠오 교통장관이 대신 참석.[17] 굳이 작금의 불편한 한일관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주요 국가들이 총리나 부통령, 왕세자 등 자국 정부의 2인자급 인사를 파견할 예정이므로, 한국도 국무총리를 파견하는 것이 무난하다.[18] 현재 이 어좌는 1913년 다이쇼 덴노의 즉위에 맞춰 제작된 것으로, 평소에 교토고쇼의 자신전에 보관되어 있다. 쇼와 덴노 때까지는 즉위식을 교토에서 했지만, 아키히토 때부터 도쿄에서 하게 되어 어좌를 분해하여 도쿄의 고쿄로 가지고 와서 사용했었다. 아키히토 천황 즉위 당시에는 어좌 운송 중에 과격파들이 습격할 우려가 있어 자위대의 헬기로 운송했으나,# 이번에는 트럭 8대에 나누어 실어 교토에서 공수되어 사용했다고 한다.[19] 적응장애로 오랜 시간 고생했던 마사코 황후가 거의 20년 만에 육성으로 이렇게 오래 발언하자 감격해했다는 일본인들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