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비판과 논란/자극적 폄하
1. 개요
황교익에겐 요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 그래서 그는 요리의 맛이나 식감, 요리의 역사나 요리법에 대해서 언급하기보다는 자극적 폄하를 통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한다.
요리 전문가를 자칭하는 사람에게 전문성이 없어서 요리 이야기는 안하고 정치, 사회 이야기나 한다는 것도 문제인데, 그의 정치/사회관은 편향되어 있다. 때문에 그의 '요리 평가'는 엉터리일뿐만 아니라 불쾌하다. 그는 요리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 요리가 나온 문화나 시대를 폄훼하고, 그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을 비하하고 비난한다. 맛에 대한 확고한 기준과 지식을 토대로 평가를 하지 않고 자신이 무조건 옳다는 근거 없는 자만감을 가지고 평가를 하니 그의 언행은 근거가 부실하고 모순덩어리가 될 수 밖에 없다.
떡볶이는 맛없는 요리라면서 떡볶이 광고를 하고, 활어회 이야기를 하면서 국민성 타령을 하고, 달게 먹으면 미개하다면서 막상 한국보다 당을 더 많이 섭취하는 일본 요리를 찬양하는 행태는 그가 특정한 요리와 맛을 지향한다기보다는, 그저 다른 사람들을 비하하기 위해 요리 평가를 한다는 걸 보여준다.
2. 달게 먹으면 미개하다
2016년 4월 28일, 황교익은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하여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국가일수록 음식이 단맛으로 범벅이 된다@면서, 지금 한국은 주식인 밥부터 모든 음식이 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은 단맛에 중독이 되었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단 음식만 찾게 되면서 정신에 병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황교익의 망언들이 다 그렇듯, 이 역시 사회 비판과 한국 비하, 음식 평론이 뒤섞인, 아무 근거도 없는 망언이다. 당장 아래 링크를 확인하면 헛웃음만 나올 것이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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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이 주장한대로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국가일수록 음식이 단맛으로 범벅이 된다면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미개한 나라이며, 한국은 미국, 독일, 영국, 일본을 까마득하게 앞서는 문명국가가 되며 더욱이 중국, 나아가서 북한은 지구 최고의 문명국가가 될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황교익은 한국의 음식이 전부 달아졌다고 주장했지만, 막상 한국인의 당 섭취는 권고량보다 더 적다. 그렇다면 한국의 음식이 달다는 건 황교익의 착각이거나, 아니면 설탕은 아닌데 단 맛이 나게 하는 무언가를 음식에 매번 넣는다는 말인데, 설탕 소모가 줄었으면 줄었지 감미료 소모량이 늘었다는 근거는 없으므로, 황교익은 처음부터 끝까지 되도 않는 소리만 한 것이다.
황교익이 가진 단맛에 대한 반감은 그가 요리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게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8년 9월 17일 맛으로 세상읽기, 맛으로 소통하기 강연@에선 서양에서는 단맛이 디저트에만 들어가니 요리에 설탕을 넣으면 반칙이라고 했으며, '우리 민족은 원래 단맛을 모르는 민족이었는데 일제가 MSG 팔아먹으려고 단맛에 중독시켰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덧붙였다. 돼지갈비의 양념이 달아지면서 남자 음식에서 여자 음식이 되었다는 황당한 논리는 이쯤 되면 덤에 가깝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 망언에는 제대로 된 근거가 하나도 없다. 황교익은 문명화된 사회일수록 단맛은 마지막에 불태우기 용으로 들어간다고 했지만, 서양에서도 주식에 맛내기용으로 설탕이 들어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당장 프랑스의 오리고기 요리부터 오렌지 소스를 쓰고, 디저트처럼 달게 만드는 요리가 아니더라도 설탕은 숨김맛으로 여기저기 다 들어간다. 스테이크 소스를 만들 때도 레드 와인을 그냥 졸이지 않는다. 질감이 있는 소스를 만들 때는 당연히 설탕이 들어간다.
그러면 과거 우리 민족은 단맛을 즐기지 않았는가? 그렇지도 않다. 시의전서의 장조림 레시피를 보면 백청을 넣어 달게 조리는 조리방법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약과 등 각종 달콤한 전통 과자도 많고, 조청 같은 단맛이 들어가는 소스도 많다.
결정적으로 본인이 그렇게 찬양하는 일본은 당류 섭취량이 한국보다 배로 많다. 팥에 설탕을 넣어 조리한 '단팥'부터가 바로 일본 음식 문화의 산물이다. 우리의 전통 조리법에서는 팥을 그렇게 달게 하는 경우가 없었다. 즉, 단팥죽, 단팥빵, 팥빙수, 모찌, 양갱, 모나카 등등 일본 음식 문화에는 설탕이 오래 전 부터 아주 깊숙히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단팥을 많이 즐기지만 설탕을 쓰는 과자도 나오고 도쿠시마현의 특제 가공 설탕인 와산본(和三盆)을 고급으로 쳐서 화과자로 만든 게 격식있는 다도회에서 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설탕 범벅의 끝판왕 카스도스라는 과자도 만들었다. 과자 뿐 만 아니라 일반 음식의 조리에도 설탕을 많이 투하하고 있다. 그중 발달한 조리법이 가정식인 가쿠니랑 니쿠자가이다. 가쿠니에는 반드시 설탕이 들어간다.[1] 게다가 돼지고기를 부드럽게 하는데 흑설탕을 넣는 기법도 있다. 또한 니쿠자가도 그렇듯 대부분의 '조림'류는 맛내기에 설탕이 들어간다.[2]
거기에 황교익이 자기 주장의 반박에 보충으로 '''"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12~18세)의 일평균 당 섭취량(80g)은 다른 연령에 비해 높고 이중 가공식품을 통한 당 섭취량(57.5g)은 세계 보건기구(WHO)의 당 섭취량 기준(약 50g)을 넘는 수준이다."'''이란 글을 가져왔고, 이 수치는 한국 청소년 당섭취량 WHO 기준치 초과에서 가져왔는데, 1차 사료가 아닌 점은 둘째 치고 이는 '''가공식품과 탄산음료 등을 통한 당 섭취를 줄이라고 권장'''하고 있는 글이며, 황교익이 주장하는 '''한국 음식에는 설탕이 많이 들어가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미개하다'''는 담론과 관계 없는 근거이다. 정말 그렇게 자기 주장이 맞다는 근거를 대고 싶으면 설탕 섭취량과 지능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결과나 통계라도 들고왔어야 하지 않은가? 그리고 설탕섭취량에 대한 부분도 매우 큰 표본에서 얻어내는 통계도 사회 전부에 적용하기엔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매우 작은 표본에서 얻어낸 통계도 그 통계를 얻어낸 표본 집단 이외의 사회 전반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황교익이 통계의 함정에 빠져서 잘못된 추론을 하고 있거나 통계를 의도적으로 오독하여 자기한테 유리하게만 해석하여 취사선택해 짜집기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의 목적과 의도 그리고 표본집단, 통계를 얻어낸 방식에 대해서 이해하지 않고 '''자기가 그나마 반박할 수 있는게 넓은 표본 집단에서 구한 설탕섭취량이니까 그것만이라도 다른 통계로 반박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러니 황교익의 논리로 황교익의 논리를 반박을 해보자면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못먹고 못살던 시대 사람이어서 단 맛에 익숙하지도 사용할줄도 모르던 황교익이 근래에 들어 90년대부터 뒤늦게 설탕과 단 맛을 활용하는 근대화(혹은 서구화)를 겪으며 변화하는 음식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화적 미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음식이란 시대에 따른 문화의 변화를 반영하지만 편견과 어린 시절의 추억에 매몰되어 자신이 삼삼한 맛에서 위안을 얻고 싶어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2.1. 미개한 단 맛의 기준
애초 골뱅이 통조림은 일본 수출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그 조리법은 일본인의 입맛에 맞추어졌고, 따라서 들척지근한 맛이 난다.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을지로 골뱅이는 언제부터 유명했을까
황교익/비판과 논란/일본 유래설에서 인용되었던 황교익의 옛날 기사에 '''일본인의 입맛이 맞추어졌고, 따라서 들척지근한 맛이 난다.'''라고 써놨던 것과 일본에서 맛본 김치와 일본 요리의 조화에 대해 썰을 풀었던 글을 보자. 그가 한국의 음식을 비난할 때 자주 쓰이던 들척지근이란 단어의 뜻이 그 사이 바뀌지 않은 이상 일본의 음식은 단 맛이 나고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생각하고 있었고 먹으며 또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일본의 한 료칸에서 먹은 김치이다.
일본식 김치가 아니라 한국식 김치이다. 료칸 주인 친구인 대구 분이 담가서 보내준 김치라 하였다. 한국 손님이니 특별히 내놓았을 수도 있다.
제대로 푹 익은, '한국 전통 김치 맛' 그대로의 김치였다. 이 김치를 먹으며 왜 일본인은 한국식 김치에 적응하지 못하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왜 발효도 제대로 되지 않은 들척지근한 김치를 먹는지 말이다.
이날 '''료칸 음식도 그랬지만, 일본 음식은 대체로 짠맛과 단맛이 적당히 섞여 있는 맛을 지니고 있다.''' 한국인의 입맛 기준으로 보자면, 양념의 맛이 강하지 않다. 냄새가 강한 것으로는 간장 정도이다.
슴슴한 일본의 여러 음식들 앞에서 한국식 김치는 무지 강렬한 맛을 내는 음식이다. 그러니, 이 한국식 김치를 먹고 나면 일본의 여러 음식은 '맹탕'이 되고 만다.
양념이 대체로 강한 한국음식들 앞에서 김치는 입가심 거리의 '졸병'일 수 있으나 일본음식들 앞에서는 강력한 '외인부대'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따라서 일본인은 김치를 여러 일본음식들에 어울리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고춧가루, 마늘, 젓갈 등의 양념을 줄이고 발효도 덜 일으켜 맛을 약화시키는! 묘하게도, 일본에서 일본식 김치를 먹을 때에는 "뭐 이런 맛이???" 하였는데, 진작에 일본에서 한국식 김치를 먹으니 더 어색하였다는!
음식 맛에 절대의 무엇이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별나면서도 빤한 경험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좋아하진 않는 것이 단 맛과 짠 맛의 조화가 이루어지지만 정작 향이 강하고 간이 강한 짜장면 자체는 노동자들이 빠르게 배 채우는 용도의 패스트푸드라면서 맛이 단순하다고 까고 있다.자장면은 노동자를 위한 패스트푸드로 탄생한 음식이다. 그러니 그 맛이 단순할 수밖에 없다. 음식을 내는 시람이나 이를 먹는 사람이나 그 맛을 깊이 음미하고 자시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단 한 입에 즉각적으로 '맛있다' 하고 반응이 올 만한 맛이어야 하고 후루룩 한 그릇을 뱃속에 밀어넣을 때까지만 만족감을 주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맛과 짠맛 그리고 기름 맛이 풍부하여야 하고 더불어 장의 향이 강렬하여야 한다.'''
적어도 50미터 밖에서도 자장면 냄새을 맡고 침을 줄줄 흘리게 하여야 자장면의 본색에 충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단 맛 자체가 미개하다거나 설탕을 넣는 것은 반칙이라거나 하는 것은 황교익도 스스로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고, 실제로 하고 싶은 말은 '''료칸 음식'''처럼 자기 입에 딱 맞는 정도의 단 맛과 짠 맛만 들어가 있으면서 삼삼해서 재료의 맛이 잘 살아나는 음식만 시장에 내놓으라고 밥 투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황교익/비판과 논란/평론관에서 일부 인용된 적이 있는 아래에 생활의 달인에 나온 팥빙수에 대한 칭찬에서 잘 들어난다. 나머지 부분어 자기 맘에 안드는 토핑이 올라간 프렌차이즈 팥빙수에 대한 비판과 섞어 먹는 행위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 부분이다.
생활의 달인에 나온 팥빙수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의외의 재미가 숨어 있다
먼저, 팥에서 느껴지는 단맛과 짠맛의 조화가 놀라웁다. 보통은 단맛을 강조하다가 짠맛을 놓치는데 이 팥빙수는 짠맛이 정직하게 느껴진다. 짠맛이 끝에 남아 단맛을 끊어버리니 단맛이 개운하다. 파 먹다 보면 바닥에서 우유를 만난다.
아주 조금의 우유인데 그 조금의 우유여서 우유의 맛이 더욱 산다. 사람의 감각이란 것이, 부족해 보이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팥빙수 위의 녹차를 먹자고 비빔밥 비비듯이 비비면 안 된다. 녹차의 맛이 사라지는 것을 넘어 팥빙수 전체에 씁쓰레한 맛만 남길 것이다.
이런 빙수는 옆으로 차근차근 파들어가면서 먹어야 한다. 그렇게 먹다 보면 녹차가 세 차례의 숟가락질에 걸려든다. 20~30번의 숟가락질에서 딱 3번 녹차의 상큼함을 만나는 것이다. 그것도 팥이 지겨울 만할 지점에서... 나는 "아, 봄이구나" 하였다.
2.2. 단 맛은 갈구의 맛이다
설탕전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전쟁 전에, 단맛에 대한 인식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간혹 쨉을 날리고 있다.
아래의 글도 그 쨉 중의 하나이다.
단맛은 불쾌하기도 하다 링크
댓글들을 보면, "단맛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되어 있다"는 나름의 과학적 지식을 크게 신뢰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는 늘 그렇게 배웠다.
당은 탄수화물이고, 이게 우리 몸의 에너지이니, 탄수화물이 분해된 당의 단맛을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되어 있다고. 그런데, 내가 설탕을 한 숟가락 퍼먹어보라 한 것은 그 당이 불쾌하게도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해보라는 뜻이었다.
여기에 역치 운운하는 것은 핵심을 벗어난 의견이다. 이때까지의 과학은 '특정한 농도의 당이 기분을 좋게 한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당은 대체로 일정한 농도 이상이면 그 단맛의 강도가 비슷하게 느껴지므로 설탕을 한 숟가락 퍼먹든 동량의 물에 타서 먹든 내 몸이 느끼는 단맛의 강도에는 큰 차이가 없다.
가공식품을 만들 때에 일정한 농도 이상의 당을 넣지 않는 것은 그 단맛의 강도가 높으면 거북해할 것이라는 걱정보다는 단맛의 강도 차이가 별로 없으니 원가 절감 차원에서 그리할 뿐이다.
어떻든, 내가 "단맛은 불쾌하기도 하다" 하고 말을 던진 것은 이 현상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내놓기 이전에 자신의 감각에 대해 한번쯤 집중해보라는 뜻이었다.
"인간은 단맛을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되어 있다"는 정도의 지식밖에 가지고 있지 못한 '외눈박이 과학자'의 말을 믿지 말고 자신의 감각부터 살펴보라는 것이었다.
쨉을 던졌으니, 마무리도 해야겠다.
단맛의 음식을 먹으면 인간의 뇌에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온다.
이 도파민을 두고 일부의 과학자들은 쾌락을 느끼게 해주는 물질이라 설명하고, 그래서 당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당이 도파민을 분비하게 하는 것은 맞으나, 도파민의 기능에 대해서는 잘못 알고 있다.
도파민은 쾌락을 주지 않는다. 기분을 좋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도파민은 도파민을 분비시켜준 그 음식을 계속하여 먹으라고 몸에 사인을 주는 물질이다.
즉, 단맛의 음식이 입에 들어오면 그 단맛의 음식을 계속해서 먹으라고 분비되는 것이 도파민이다. 도파민을 개념 짓자면, '쾌락의 물질'이 아니라 '갈구의 물질'이다. 단맛의 음식을 먹으면 도파민이 분비되어 그 단맛의 음식을 더 많이 더더더 많이 먹게는 하지만 쾌락을 주지는 못한다.
도파민은 음식을 더 먹게 만드니, 내 감각에 집중하지 않으면, 그 도파민으로 인해 쾌락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하게 된다. 갈구하는 것과 쾌락을 느끼는 것은 다름에도 우리는 이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단맛은 그 단맛의 음식을 끝없이 갈구하게는 하나 쾌락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단맛은 중독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마약중독이나 게임중독도 똑같은 도파민중독이다. 마약중독자는 마약에 취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할 뿐이며 게임중독자는 내내 게임만 하기를 갈구한다.
내 몸이 단맛의 음식만 먹겠다고 고집하고 있으면, 단맛중독이라 보아야 한다. 단맛중독은 결국 그 어떤 음식에서든 만족을 얻지 못하게 할 것이고.. 불행한 일이다.
내가 '외눈박이 과학자'라 한 것을 두고 심하지 않느냐는 반응이 있다.
과학자이면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말을 던져야 할 것인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특히 도파민의 기능 정도는 알만한 과학자가 당에 대해 그냥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하고 말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지 않고서는.. 나는 의심하고 있다.
그 의심이 확인되면 '거짓말하는 과학자'가 될 것인데, 당장에는 '외눈박이 과학자'로 둔다.
* 사족 *
단맛도 그렇고.. 사실 음식 그 자체에 쾌락의 무엇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뇌를 들여다보아도 음식쾌락은 참으로 복잡하다.
틈나는 대로 하나씩 풀어볼 작정이다.
황교익이 사실상 설탕과 단 맛을 싫어하는 이유이자, 그가 지목하는 모든 한식의 문제의 시발점이자 동시에 모든 사회 문제의 시발점이며, 한국을 미개하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황교익이 작성한 '''설탕수저론, 그 시작은 이렇다'''@라는 글에 링크로 걸어놓은 한국일보의 '''‘설탕수저’ 물고 나온 20-30대는 “태생적인 단맛 중독자”'''#@란 기사와 백종원/비평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일보와 같은 미디어들은 마리텔에 나온 백종원을 설탕 유행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일방적으로 지목하였고 공격하였으며, 황교익 또한 그 언론의 매도와 공격에서 선봉에 서 있었다. 황교익은 이 시기에 백종원과 설탕을 저격하기 위해 '''설탕전쟁'''을 준비하였고 이후 EBS 특강에서도 말하게 되는 '''설탕 수저론''', '''중독''', '''도파민''', '''갈구''', '''환각파티''', '''미개함'''을 주제로 자신의 사상을 최종적으로 정립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 자신이 싫어하게 된 떡볶이와 치킨(그 중에서도 양념치킨)에 설탕이 쓰인다는 점이 황교익의 사상에 확신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설탕에 죄가 없다.”
한국에서 식품과학의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인데, SNS에서 보면 유행어처럼 쓰인다. 이 뒤에는 으레 “그 설탕의 음식을 과하게 먹어 탈이 나고 하는 것은 각각 개인의 책임이며..” 하는 뜻의 말이 붙는다.
농약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사이다에 농약을 타서 먹인 자에게 죄가 있는 것이다. 칼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 칼로 사람을 죽인 강도에게 죄가 있는 것이다.
죄라는 말은 인격체에게 붙이는 것이다. "설탕은 죄가 없다"는 말장난일 뿐이다. 그들이 들고나온 '죄'라는 단어를 굳이 설탕과 관련 지어 말을 하자면 "아무 음식에나 설탕을 처바르는 자"를 앞에 두고 그 죄를 논하여야 할 것이다.
조리사 시험의 실기 음식 레시피를 보라.
한식은, 설탕 안 들어가는 레시피를 찾기가 어렵다. 탕이며 조림이며 구이며 볶음이며 생채며.. 죄다 설탕이 들어간다. 대중식당 음식을 하나하나 맛보면, 설탕 안 들어가는 게 밥 빼고는 찾기가 어럽다.
한국음식에서 설탕의 문제는 설탕 양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 음식에나 설탕을 처바르는 것의 문제이다. 이건, 건강의 문제가 아니다. 감각의 문제, 음식을 먹는 즐거움의 문제이다.
단맛은 갈구의 맛이다.
단맛의 음식이 입에 들어오면 그 음식을 더 먹으라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러니 밥상에 있는 단맛의 음식을 한번 입에 대었다 하면 자동으로 그 음식에 자꾸 손이 가게 되어 있다. 계속 먹게 만드니까 그게 맛있는 음식이구나 하고 착각을 하게 된다.
이 '단맛의 착각'을 이용하면 그 어떤 재료이든 적당히 먹을만하게 조리할 수 있다. 한식을 내는 식당들이 대체로 재료의 질에 무감각하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도저히 입에 넣을 수 없는 최악의 재료가 식당에서 사용되는 실태를 텔레비전 고발 프로그램에서 종종 보게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단맛의 착각'은 개인의 감각 영역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한 사회의 일상음식은 그 사회구성원 각자의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왜 거의 모든 한국음식에 설탕이 들어가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인문학적 고찰 대상이 될 수 있다.
“설탕에 죄가 없다”는 말로 이런 사회인문학적 고찰을 차단하겠다는 의도이면 지금의 이 설탕 문제에 '식품과학(자)의 죄'도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위의 글들을 정리하면 간단하다. 단 맛 = 도파민 분비, 도파민 = 갈망, 갈망 = 중독, 중독 = 미개함이고 따라서 단 맛 = 미개함이다. 도파민은 원함을 일으킨다와 당분을 먹으면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것, 그리고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가 각각이 참이라고 해도 그 모든 것을 종합하여 설탕이 중독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분해의 오류에 속하고, 도파민이 일으키는 수 많은 기능들 중에서 일부 기능으로부터 도파민 전체의 속성을 단정짓는 것 같은 행위는 결합의 오류에 속한다는 점에서 얼마나 많은 비형식적 논리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단순히 사실을 늘어놓는 다고 주장하는 모든 것이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자기 혀에 설탕을 부어보곤 불쾌하게 느껴졌으니 불쾌하다고 하는 점에서 자연주의의 오류도 엿보인다. 거기에 근거라고 내세운 켄트 베리지 교수의 실험에 대한 해석은 문맥을 무시한 인용이자 문헌오염으로 이 실험은 신경독으로 도파민 분비를 차단했을 때 의욕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실험이다.
도파민은 원함 체계와 좋아함 체계 중에서 원함 체계에 관여를 하며 동시에 인간의 의욕과 행복, 기억, 인지, 운동 조절 등 뇌의 다방면에 관여하는 물질 중 하나일 뿐이다. 행동과 그 행동을 하고자 하는 의욕에 관여하기 때문에 도파민 자체는 음식을 찾으려는 의욕에 영향을 주지 먹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나 만족하는 것과는 별개인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설탕을 맛보고 섭취하는 과정이 도파민 분비를 유도한다고 하지만 다른 자극이 도파민을 분비시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당류가 유독 도파민 분비를 많이 촉진한다고 하여도 그게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장기적으로 얼마나 규칙/불규칙하게 섭취해야 문제가 될만큼 많이 분비되는가에 대한 데이터 없이는 무의미한 말일 뿐이다. 그리고 도파민 분비 유도나 촉진과 별개로 당류가 갖고 있는 열량에서 오는 만족감과 포만감 엄연히 존재한다. 오히려 사카린이나 아스파탐과 같이 단 맛만 느껴지는 경우 설탕과 달리 열량이 없어 과식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고려하면 단맛 전반에 대한 혐오감은 초점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셈이다.
거기에 도파민은 과도하게 분비된다면 건강에 해롭지만, 너무 적게 분비되어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물질이다. 도파민이 중독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항상 중독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결코 아니며, 인간의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하고 인간의 뇌는 유연하기 때문에 노력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설탕은 도파민 분비와 재흡수하는 기전에 영향을 미치고 손상을 일으킬 수도 있는 코카인이나 메스암페타민이 아니다.
그리고 외눈박이 과학자라고 운운하며 그들의 헛된 말에 중독되었다는 글을 써놨는데, 도파민의 존재를 밝힌 것도 도파민의 기능이나 역할을 밝힌 것도 전부 과학자들이 한 것이고 전문가와 학계의 지식과 대중의 지식 혹은 상식 사이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갭을 이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거짓말 하는 과학자를 운운하는 짓은 단순한 반지성주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단맛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되어 있다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과학자들의 연구를 축약하는 말일 뿐이고 의무교육 시간에 간단하게 배우고 넘어가기 위해 나오는 토막 지식일 뿐이다. 인간을 비롯한 생물이 당류를 좋아하는 것은 지방이나 단백질보다 소화에 유리하여 쉽게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당류에 민감하고 당류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고 그런 형질이 우세한 경향을 보일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당류를 좋아한다는 말에 어느정도 부합하게 된다. 이런 당류의 문제는 과거와 달라진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영양과다 등으로 인한 비만, 고혈당으로 야기되는 건강의 문제에 해당되는게 맞고, 평소에 지속적인 과당 섭취로 인해 인슐린 수치가 높아 과당류가 포도당으로 전환되는 대신 글리코겐으로 변화하고, 높은 인슐린 수치로 랩틴(식욕억제 호르몬) 저항성을 갖게 되는 생화학적 문제이다. 당류 선호는 황교익이 말하는 것처럼 사회문화에 전반이 퍼져있는 질병이나 사회지배계층이 인민를 억압하기 위해 뿌린 통제수단 같은 것이 아니다.
이런 오류 투성이 주장이 나오는 것은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황교익이 도파민이나 탐닉의 개념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한채 함부로 도파민, 갈구, 중독이라는 단어를 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자기 영역도 아닌 사회인문학에서 남의 영역의 것을 끌어다 쓴다는 점에서는 더 악질적이다. 거기에 자기만의 사상을 정립하고 난 뒤에 전문가들을 향해 휘두르는 적대감에서는 반지성주의도 느껴진다.
도파민이나 엔돌핀과 같이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 그외 생화학 현상과 생리 현상에 대해 천연마약, 천연환각제 등등의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생물학을 사회학과 인문학과 엮어서 중독. 정확하게 말하자면 탐닉을 통해 사회현상이나 문화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이런 글들의 다수는 기업이나 언론이 공포 마케팅과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카린, 글루텐, 아스파탐, MSG, 카제인 나트륨에 대해 날조를 일삼았던 것과 유사한 패턴으로 어떤 정치적, 경제적 목적으로 조직적인 행보를 보이곤 한다. 특히 '''언론과 건강 프로그램들이 글루텐 불내증과 탄수화물 중독을 내세워 글루텐 탄압하고 시장에 글루텐 프리 제품이 유행시키고 정부가 이 악행을 방관하거나 숟가락을 얹는 것을 생각하면 어딘가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이런 것들과 황교익의 글을 자세히 보면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거나 사실을 말하더라도 과학자들이 조심스럽게 내놓은 실험 결과를 확대 해석하고 오남용하면서 구체적인 수치나 실험 조건과 실험 방법, 전제, 가정, 실험 목적 등을 얼버무리거나 숨기고 그 실험을 인용한 반박이나 보충 등을 무시하거나 극단적인 결과만을 예시로 들먹이며 교묘하게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등을 뒤섞어서 선동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해석해야 한다. 특히 황교익은 거증책임도 방기하고 문헌 해석도 못하고 근거도 부실한 상태로 설탕은 중독 물질이란 주장을 앵무새마냥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설탕과 도파민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황교익이 그 동안 설탕전쟁을 선포하며 언론 플레이 한 것들이 한가득 나오는데, 공통점으론 도파민만 들먹일 뿐 제대로된 근거는 없이 말만 조금씩 바꾸며 반복하고 있다. 이영돈이 MSG로 논란을 일으킨걸 저격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뻔뻔하다.
https://entertain.v.daum.net/v/20181210091500972
수요미식회 하차이후 나온 유튜브 채널 황교익Tv에서는 2주차 단맛 강의에선 또 백종원 언급하면서 마약엔 죄가 없고 설탕에도 죄가 없다 다만 '''당의 경계심을 무너뜨린 사람은 죄가 있다'''면서 우회적으로 비난하였다.[3] 네티즌 반응은 싸늘하다. 백종원 슈가보이 드립도 이젠 꽤 오래 지났고 백종원 한명 가지고 한국인의 단맛을 추구하는것이 아니란건 명백히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허수아비 때리기가 나오는 것은 사실상 황교익이 공격하고 있는 것이 실제 백종원이 아니라 위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 황교익과 언론의 프레임질과 기만질로 만들어진 허구의 백종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허구의 백종원은 설탕으로 대한민국을 병들고 썩어들어가게 하는 존재이자 모든 설탕의 사용과 단맛의 근원으로서 설탕을 죄악시하는 언론들의 집중포화를 받은 바 있고, 심지어 그리스에 빗대어 한국에 경제 위기가 찾아올거라는 의식의 흐름 기법에 기댄 사설도 올라온 바 있을 정도이다.[4] 황교익은 자기의 유명세를 위해 프레임질을 하면서 가짜 권위를 만들고, 그 권위에 도전하는 모양새로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있을 뿐이다. 고작 마리텔 시절 슈가보이라는 별명 때문에 설탕과 단맛 그리고 유행을 원죄로 짊어지라며 공격받는 백종원만 불쌍하게 된 모습이다.
3. 양념을 친 음식은 미개해
시사인 기사에선 갖은 양념을 버무려 먹는 요리에 대해 '분별 없는 음식', '미개'라는 단어를 쓰며 극렬하게 비난했다. 정작 황교익 본인은 이 '''분별 없고 미개한''' 만능 간장에 무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광고 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참고로 과일맛. 단맛도 넣었다. 쇼핑몰에 묘사된 광고를 보면 알겠지만 해산물 유기농으로 표현하며 아주 여러 가지를 첨가해놨다.
황교익의 궤변이 다 그렇듯, 이 역시 아무 근거가 없다. 한 때 누벨 퀴진 열풍이 불어서 양념이나 소스를 되도록 적게 사용하고 재료 그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게 좋은 요리라는 견해가 있었지만 이건 그 시대의 유행일 뿐이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지금도 고급 요리로 취급 받는 프랑스 요리는 '''소스'''가 중요한 요리이다. 한 때 서양에서 야만적인 요리로 취급되었던 초밥이나 회가 지금은 고급 요리로, 더 나아가 대중적인 요리가 된 것을 보면 요리에 대한 인식은 시대와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설령 황교익의 말이 '''객관적으로, 세계의 진리라서''' 갖은 양념을 쳐서 먹는 것이 정말로 미개한 문화라고 해도, 그의 비판은 '''현실적, 대중적 차원에서 공허한 비판'''이다. 집밥은 갖은 양념으로 때우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황교익이 좋아해 마지않는 가이세키 요리를 사주겠다고 하면 마다할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허나 그런 요리들은 대부분 엄청나게 '''비싸며''', 집에서 해 먹으려고 해도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하는 데 드는 수고'''가 어마어마하다. 그가 그토록 증오하는 백종원의 요리 방송이 인기를 얻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유명 쉐프들의 요리가 맛있을지언정 그걸 실제로 해 먹거나 사 먹기에는 돈도 시간도 없는데, 백종원은 철저히 '''한국 서민들의 조건에 맞춰서''' 쉽게, 자신들이 가진 요건에서 맛있는 요리를 해먹을 수 있게 레시피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애초에 향신료나 조미료를 사용하는 주된 목적 중 하나가 단순히 맛을 돋우기 위함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원 식재료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향신료와 조미료를 첨가하여 다소 감추기 위함'''도 있다. 영국 요리의 문제점으로도 지적되는 것이 향신료를 제대로 쓸 줄 몰라서, 원재료의 질이 낮은 것을 제대로 커버하지 못하기 때문에 요리의 전체적인 맛 자체가 떨어진다는 소리까지도 나올 정도이다. 그런 향신료나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려면 결국 고급 식재료를 써야 한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으며, 대다수의 서민들이 매일 그런 고급 식재료를 사서 먹을 수 있을지를 황교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황교익이 찬양한 가이세키 요리도 결국은 '''고급 코스 요리'''라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일본 서민들이 과연 삼시세끼 그런 요리를 먹을 수 있을까?
일본 서민들은 요리할 때 조미료를 치지 않을까? 애초에 일본에서도 아지노모도 같은 MSG 조미료를 만들어서 팔았고[5] , 그걸 일본의 식민지인 한반도에서도 팔았기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들은 '아지노모도'라는 이름을 기억할 정도이다. 본 문서의 음식맛과 관련된 황교익 비판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이 대목은 해당 대목 모두에 어느 정도씩 적용될 수 있다.
3.1. 각재기국은 조리법이 덜 발달된 요리
제주 토박이들이 찾는 각재기국 맛집 수요미식회 영상
제주도 향토 음식 중에는 각재기국이라는 음식이 있는데 전갱이와 배추를 넣고 끓인 국이다. 황교익은 이걸 먹어보고는 맛이 없다면서, 각재기국의 요리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망언을 했다.
문제의 수요미식회 20회의 핵심 발언을 분석하면
요약하자면 각재기국은 제대로 요리를 할 형편이 되지 않아서 대강 만든 요리고, 어설프게 만들었으니 맛이 없다는 것이다.굽거나 졸여 먹으면 맛있는 전갱이[6]
>좋은 조리법이 아니기 때문제주는 여자들이 너무 바빠요[7]
'''대충''' 집에 있는 배춧잎을 따서 된장 넣고 푸욱 끓이면 완성
조리법이 발달하지 못한 단계의 음식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입맛은 사람마다 다르니[8] 그가 각재기국을 맛없다고 평가할 수는 있다. 문제는 각재기국이 그가 그렇게도 찬양하는 재료의 맛을 살린 요리인데도 조리 방법이 어설프다고 폄하했다는 것이다.
- 제주 향토 요리 보존 연구원의 반론 만화
- 황교익의 블로그 제주에서 꼭 맛봐야 하는 것, 전갱이 2010 (아카이브)
블로그를 보면 건조한 전갱이를 구운 건 '진짜 일본 맛이다'라고 표현 할 정도로 찬양하는 반면 각재기국은 '구이보다 못하다'면서 비하했다. 그리고 5년 뒤에는 수요미식회에서 각재기국을 평할 때는 블로그의 글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망언을 하면서 각재기국을 비하했다. 모든 요리의 시작은 불에 굽는 것이니 따지고 보면 황교익이 그렇게 칭송하는 전갱이 구이가 각재기국보다 더 원시적이고 요리법이 덜 발달한 요리인데 황교익은 각재기국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그가 이전에 했던 말과 반대되는 말을 하면서 각재기국을 비하한 것이다.
사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리상 고온 다습한 해양성 기후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음식들의 간이 심심한 편이다. 이는 제주도에서 '''소금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해안은 대부분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강우량도 많아서 천일염을 만들기 힘들고, 바닷물을 직접 끓이거나 움푹 파인 돌바닥에 바닷물을 넣고 건조시켜서 소금을 얻어야 했지만 양이 매우 적어서 본토에서 소금을 가져다 써야 할 정도로 과거엔 '''소금이 귀했다.''' 그리고 전갱이는 고등어보다도 부패가 빠르기 때문에 보존이 어려워서 전국에서 즐기지는 못하는 생선이다.
즉, 제주도의 특성과 전갱이의 특성을 추측하면 소금이 귀한 제주도에선 금방 상하는 전갱이를 즉석에서 먹는 방법(각재기국)이 보편화 된 것이다. 물론 이 가설도 어디까지나 추측에 지나지 않다. 다만 최소 황교익의 '''여자들이 바빠서 조리법이 발달하지 못했다.'''보다는 설득력 있고 논리적이다.
참고로 객관적으로 각재기국을 평가하지 못하는 황교익은 2018년 11월 23일에 제주도에서 강연을 한다. 도민 공감 강좌, 황교익-하상욱 제주서 강연
4. 이탈리아 요리는 재료빨
이탈리아 요리는 토마토 소스, 올리브 오일 정도를 제외하고 요리할 때 양념을 되도록 적게 쓰며, 열을 많이 가하지 않은 재료 그 자체의 풍미를 추구한다. 이는 누벨 퀴진 항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이탈리아 요리의 특징이 1800년대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여타 지역에 전해지면서 하나의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은지 오래이다. 즉, 황교익이 입이 닳도록 찬양하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식사의 원조는 이탈리아다. [9]
그러나 문제의 방송을 보면 황교익은 이탈리아의 요리를 기술이 나쁘고 그냥 재료만 좋다고 평가 절하했으니, 직업적으로 요리를 분석하고 평가한다는 사람이 이탈리아 본토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10]
그런데 프랑스 요리에 대해서는 호평을 하는데, 그의 일뽕 가치관을 감안한다면 이해가 되긴 한다. 일본에서 '국민 소득 수준이 적당한 국민들이 이탈리아 요리를 먹다가 수준이 높아지면 프랑스 요리를 찾는다' 라는 드립이라던가. 프랑스 요리 문서 참고.
그리고 쉐프가 잘 생겨서 음식이 맛있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런데 주방에 있는 쉐프를 자세히 볼 수가 있나? 그리고, 설령 셰프 얼굴을 사전에 알고 가더라도, 서양의 유명한 셰프들 중에는 객관적 기준으로도 잘 생긴 축에 속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제이미 올리버라던지...). 그런 사람들은 그럼 다 뭐가 되는건지.
5. 떡볶이는 맛없는 음식
2018년 1월 17일 tvN 수요미식회에서 떡볶이를 "단 맛은 계속 입맛을 당기게 하고, 매운 맛은 통각을 잊게 만들기 위해 몸에서 엔도르핀 분비가 촉진된다"며 "때문에 떡볶이는 계속 먹게 만드는 맛 없는 음식"이라고 평했다.# # 억지다. 이런 식이면 전세계에 있는 매운 맛과 단 맛이 섞인 음식 모두 맛 없는 음식이다. 마파두부, 회과육, 칠리 새우처럼 칠리 소스(중식버전)를 사용한 요리도 전부 맛 없는 음식이다. 게다가 '계속 먹게 만드는 맛없는 음식'은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맛있으니 계속 먹게 만드는 게 아닌가?
황당한 건 '떡볶이는 맛없다'는 주장마저 일관성이 없다는 거다. 황교익은 생활의 달인에 출연해서 달인의 떡볶이를 보고 떡볶이계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극찬한 바 있다. 영상 2010년 6월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서는 떡볶이 맛의 포인트는 떡과 고추장양념이며, 떡볶이의 본질은 고추장양념이라고 주장했다. 황교익 블로그 그러고 8년이 지나 황교익은 떡볶이의 맛 포인트 두 가지를 모두 부정한다. 2010년의 황교익은 이명박 당선 2년만에 떡볶이 맛에 대해 세뇌가 완료된 모양이다. 아예 떡볶이 광고까지 찍어서 MB의 떡볶이 세뇌(?)를 돕기까지 했다. 게다가, 정작 일본에서는 치즈 떡볶이가 나름대로 인기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
음식평론가 이용재가 떡볶이에 관한 칼럼을 썼다. 마지막 문단이 백미다. 그 내용은 이렇다.
읽고 어떤 분이 떠오른다면 그건 기분탓이다. 아마도.우리는 정말 떡볶이를 사랑한다. 그리하여 '''떡볶이가 싫다고 말한 한 음식평론가가 광고하는, 지극히 모순적인 떡볶이'''일지라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명한 경구를 응용해서 말하자면 ‘과는 미워하되 떡볶이는 미워하지 말아’야 바람직하다. 한편 파리 구더기로 발효시킨 이탈리아의 치즈 카스 마르주처럼, '''만드는 법이 위험을 내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음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과연 유효한지도 재고해봐야 한다.'''
5.1.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먹었던 것
황교익은 대중이 즐기는 요리라면 일단 폄하하고 본다. 그는 수시로 대중이 즐겨 먹는 건 진짜 맛있는 요리가 아니라 그저 쉽게 구할 수 있는 요리이며, 대중은 그걸 맛있다고 스스로 체념하고 안주하려한다고 주장한다.
즉, 떡볶이가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떡볶이가 유아기 때 흔하게 주어진 음식이었고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기 때문이고 더 비싸고 맛있는 요리가 있지만 그걸 깨달으면 불행해지기에 떡볶이가 맛있다고 스스로를 세뇌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교익의 주장은 먹을 게 풍족하다 못해 넘치는 현대에서도 떡볶이를 먹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당장 통일벼는 식량 증산에 큰 기여를 했지만, 먹고 살 만해지니 외식산업이 지금보다 발달하기 전인 1980년대에 이미 소비자에게 외면당하면서 도태되어 결국 단종되었다. 그런데 1980년보다도 먹을 음식 종류가 훨씬 다양한 2010년대라면, 과거에 맛없는데도 다른 먹을 거리가 없어 먹을 수밖에 없던 음식은 진작에 시장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일례로 꿀꿀이죽도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먹었던건데 지금 그걸 먹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떡볶이가 여전히 분식의 대표로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떡볶이만의 경쟁력이 있다는 증거이다. 결국 정말 가난할 때 먹을 게 없어 먹던 음식이라도, 대체제가 많은 현대에도 먹고 있다면 그건 대중이 그 음식을 맛있어 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그렇게 좋아하는 가이세키 요리도 메이지 이전, 육식금지령으로 인해서 식문화를 차별화하기 힘들어지자 형식적으로 정해진 코스의(일즙이채, 이즙오채 등 형식) 음식들의 겉모습'''만''' 최대한 화려하게 만들어내어 눈으로 감상만 하는 혼젠요리가 모태이기 때문에, 색과 향이 강한 양념을 버무리는 식으로 화려한 겉모습을 해치는 방식의 조리법을 사용할 수 없어서 생긴 문화다. 물론 현재의 가이세키 요리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요리가 나오지만, 황교익의 논리대로라면 이 가이세키 요리도 결국 육식을 못 하는 상황에서 음식을 최대한 화려하게 치장하기 위해 색이 강한 간장과 같은 양념류를 사용하기 힘들어지자 원 식재료의 맛을 살린 요리라고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세뇌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5.2. 엄마가 좋아하면 아이도 좋아한다
요즘 아이들 중 떡볶이를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지 않냐는 반박에는 "엄마가 좋아하면 아이도 좋아하게 되어 있다"고 주장.[11][12]
페이스북에서 떡볶이에 악감정이 있는지 별의 별 기사를 올리는 중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사람들은 떡볶이를 먹고 맛 자체가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라 어렸을 때의 추억과 호르몬 작용만으로 먹는 것을 맛있다고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므로 맛이 없는 음식이라는 주장이다. 호르몬 운운하니까 언뜻 굉장히 과학적으로 들릴 수 있는데, 인간이 기계가 아닌한 맛을 느끼는 변수는 여러가지가 있고 몸에 들어간 음식의 화학작용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차라리 그냥 맛있어서 떡볶이를 먹는다는게 더 객관적인 분석이지, 단지 호르몬 작용으로 인해 맵고 짜고 단 양념을 꾸역꾸역 입에 쳐넣는다는건 생물과 화학에 대한 심각한 몰이해고 너무 심한 비약이다.[13]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다른 음식을 맛없다고 주장하면 그건 당신 입맛이라며 지나갈 텐데 떡볶이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한국인은 떡볶이를 당연히 맛있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거기다 비판이 이어지자 딴에 수습하겠다고 하는 말이 가관인데, 이명박이 떡볶이를 밀어줘서 국민이 세뇌된거라는 정치팔이까지 하고 있는 지경. 위의 비판 문단에서 전혀 상관 없는 정치적 맥락을 끌어오는 문제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 논리는 아이의 편식 문제만 생각하더라도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부모가 좋아한다고 아이도 부모의 취향에 따르게 되는 거라면 아이의 편식 문제가 왜 생기고 부모는 그걸 고치기 위해 골머리를 썩히겠는가? 사람들 사이에서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오이만 반례로 들어보면 부모는 오이를 잘 먹는데 자녀가 오이를 극도로 불호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얼마든지 존재한다.
5.3. '세뇌'라는 단어의 오용
실제 황교익이 주장하는 '맛에 대한 심리적 세뇌'라는 믿을 만한 근거는 전무하며 오히려 '식환경에 대한 적응'(학습효과)에 의해 맛에 길들여지는 경향이 있다는 소리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일 정도다. 이건 황교익이 주장하는 세뇌와는 전혀 다르다. 세뇌는 외부 환경에 의해 강요된 정보를 자의식이 '''강제적으로 받아 들여 실제와 구분하지 못하게 된 것'''이지만 적응은 자아가 '''직접적 판단에 의해 선택한 결과'''라는 측면에서 애초 '''철학적 위상''' 자체가 판이하다. 사실 황교익은 종종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면도 보이는데, 이 자체가 황교익의 인문학적 소양이 상당히 얕음을 보여주는 면이기도 하다.[14]
5.4. 맛없는걸 맛있다고 착각한다
황교익 논리의 핵심인 '맛없는걸 맛있다고 착각한다'는 주장 자체도 애초에 완전히 비과학적이다. 건강한 뇌가 일상에서 '맛없는건데 맛있다고 착각한다'는 뇌 생물학적 오류가 집단으로 발생한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15]
다시 말해, 맛있는건 그 자체로 실존하는 맛있음이지 '착각'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떡볶이를 좋아하는 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맛없는걸 맛있다고 착각했다'는, 뇌의 집단 오류 현상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경우 이건 전 세계적 이슈가 될것이다.''' 당연히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각에 관련해서 과학이 밝힐 수 있는 착각은, 어떤 음식의 미각적 정보에 대한 절대적 오류같은 걸 찾았을 때 뿐이다.
예를 들면 짠 맛을 느낄 성분이 검출되지 않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짠 맛을 느낀다든가 하는 식의 착각 말이다. 그런데, '맛있다'라는 객관화가 불가능한 감각을 어떻게 과학에 끼워넣을 수 있는가? 착시조차도, '직선이 곡선처럼 보인다.' 같은 경우를 가리키지, '웃기라고 그린 그림이 무서워보인다.'같은 경우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맛없는걸 맛있다고 착각한다'는 말 자체가 허무맹랑하단 뜻이다. 이정도면 오감으로 느끼는 세상이 사실 착각이라는 매트릭스나 나비가 꿈을 꾸는게 나인지 내가 나비의 꿈을 꾼것인지 모르겠다는 호접몽을 논하는 수준이다.
5.5. 떡볶이에 끌어들이는 진영 논리
황교익이 한식의 세계화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2#3#4#4 이러한 황교익이 자신의 블로그에 포스팅했던 오래된 떡볶이 맛집에는 큰 반감을 보이지 않는데, 미국 존 케리 국무부장관이 내한하여 떡볶이를 먹었던 것을 정치적 쇼라고 비판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한국음식에서 전통성은 무엇인가#라는 포스팅에 이어, 한국인은 짜게 먹으나 그 짠맛을 모르고 먹는다#에서 본격적으로 떡볶이를 적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한식의 세계화에서 선봉장 격인 떡볶이의 세계화에 대해서 비판을 했지만, 이후 이 적대감이 떡볶이라는 음식 전반으로 번지는 모양새이다. 즉, 처음부터 떡볶이를 싫어한게 아니라 한식의 세계화와 떡볶이를 밀어주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떡볶이를 싫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황교익 주장에서 자주 반복되는 음식 이야기에 정치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행위의 대표라 볼 수 있다.정부가 이끄는 한식 세계화의 주요 아이템 중 하나가 떡볶이이다. 정부 예산으로 떡볶이연구소까지 차렸다. 이 연구소에서 세계인의 입맛에 맞춘 떡볶이라면서 개발한 음식을 본 적이 있다. 가래떡에 크림소스니 토마토소스를 넣고 볶은 것인데, 이탈리아의 파스타 조리법에 가래떡을 넣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외국인이 싫어할 것 같은 고추장을 빼고 외국인이 좋아할 것 같은 소스를 첨가하는 방식으로 ‘개발’한 것이다. 또 고추장을 넣지 않는 ‘전통의 떡볶이’가 하나 있었으면 했는지 간장 양념의 떡볶이를 두고 궁중떡볶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조리학과 실습 수준의 음식을 정부 예산으로 한 연구 결과라고 내놓으니 보기에 민망했다. 가래떡으로 할 수 있는 음식이란 것이 빤할 수밖에 없는데, 한식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뭔가를 보여주려 하니 이런 억지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개인이 어떠한 정책을 비난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자기가 싫어하는 정책을 싫다고 표현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합당하다. 하지만 그것을 불필요한 곳에 까지 끌어들여 이야기하는 것은 흔히 정치병이라고 불리는 옳지 못한 행위이다. 단순히 음식의 맛을 논하는 자리에 정치 논리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불필요한 곳까지 그 이야기를 끌고 온다면 의도를 의심해야 한다.
5.6. 짜장면과 떡볶이
옛날 자장면과 떡볶이@
2018년 11월 초순부터 활동이 잠잠하던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더니 꽤 논란적인 부분에서 해명하는듯 글을 올리고 있다. 다만 황교익의 논리가 다 그렇듯이 기존의 논리에 더한 괴논리 전제가 깔려져 있다.
우선 블로그 글을 들어가보면 전제 조건이 추억 논리가 깔려져 있다. 처음 언급된 짜장면은 1950~60년대생의 유년기에 즐겨 먹었던 짜장면이 어린 시절의 위로의 음식으로 각인되었고 '''기운이 없고 기분이 우울해지거나 하면 짜장면을 먹는다'''라는 예시인데, 40~60대의 중년층이 기운이 없거나 우울해질때 기분 전환을 시키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며[16][17] 그 중 하나가 바로 술이다. 그토록 황교익이 까는 혼술, 혼밥으로 우울감을 풀어보는것은 있어도 짜장면으로 우울을 풀고 '''자장면으로라도 위로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가히 황당할 수 밖에 없다...[18]
그리고 중간에는 떡볶이가 맛없는 이유가 단맛의 흡입 때문이라는데 사실 전 세계의 음식들 중에 이런 단맛의 흡입이 많기에 꽤 근거가 빈약하며 매운맛이든 뭐든 탄수화물을 과다 흡입하게 되는 요리들은 사실 굉장히 많다. 황교익 논리대로 떡볶이가 맛없다고 하려면 대다수 요리들이 맛없다고 해야 설득력이 있다.
또한 황교익은 현대의 사회 문제를 논하면서 이런 식으로 언급하는데
이쯤되면 대체 뭔 말을 하는지 청중들이 자동 해석해야 하나 라고 의심될 정도의 궤변인데 언급된 황교익의 말을 풀이하면 황교익의 20~30대는 떡볶이를 황교익식으로 부정해야하며 60-70대 노년층 덕분에 한국 길거리에 이런 맛없는 음식이 난무한다고 투덜거리거나 한탄해야 옳다고 하는거다."그래, 이 맛없는 떡볶이를 맛있다고 먹는 우리 세대에게 당신들은 무엇을 했는가" 하는 기성 세대에 대한 반항을 기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요.
사실 떡볶이를 먹는 사람들은 맛의 평가가 다양하며 황교익식대로 풀이하는 사람은 있을지는 몰라도 떡볶이를 파는 사람들은 로보트가 아니다. 현대인의 트랜드에 맟춰서 다양한 바리에리션을 내놓고 있고 떡볶이가 유행하는건 맛있어서 유행하는거지 황교익식 이론대로 유행된게 아니다.
그리고 현대에서도 떡볶이의 트랜드가 변화하는 시대인데 분식 떡볶이 이외 떡볶이 전문 식당이나 외식산업에서도 크림 떡볶이, 데리야키 떡볶이 등 매운맛이 아닌 다른 소스로 풀이되는 떡볶이로 발전되가는 시대며 그저 어묵과 튀김으로 토핑이 되던 떡볶이가 모 뷔페 프렌차이즈가 퐁듀처럼 치즈 찍어먹는 떡볶이 라던가 다른 프렌차이즈는 통오징어나, 차돌박이를 사리로 내놓는등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황교익은 마지막으로
이쯤되면 어떤 비장한 사명감으로 주장하는지는 모르나 경제 대국이라면서 국민의 삶이 형편없는건 떡볶이 탓이 아니다....어디까지나 정치적 문제와 복지, 서비스! 노동에 대한 부당함과 갑질, 법적인 문제등 대한민국 국민들이 바보라서 이런 문제들을 황교익식 논리 형편없는 맛의 떡볶이를 먹으며 자기 위로하는건 절대 아니다...황교익의 논리라면 20대는 무슨 비굴하게 굴종하고 사는 세대로 착각하나 본데 절대 아니다. 부당한 일이 있으면 시위라도 해서 반발하는 세대다.행복도에서 꼴지인 나라에서 삽니다. '''경제 대국이라면서 국민의 삶은 형편없습니다. 바꾸어야 합니다. 가끔씩은 위로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어진 조그만 위로에 만족하며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 하면 분개해야 합니다. 떡볶이는 위로를 주지만 맛있는 음식이 아닙니다. 더 맛있는 음식이 주어져야 한다는 정치적 사회적 요구가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파인다이닝에 가서 칼질을 할 수 있는 세상." 강연 때에 당신이 꿈꾸는 세상은 무엇인가고 질문을 받을 때에 하는 말입니다. '''이런 세상을 만들려면 젊은 세대가 당장에 정치적 사회적 목소리를 더 키워서 내야 합니다. "떡볶이는 맛있는데, 왜 그래" 하며 뒤에 숨어 주어진 것으로만 위로받고 말아야 할 일이 아닙니다.'''
참고로 위의 행복도 꼴지인 나라에서 산다라는 말의 근거는 언론들의 선동과 날조를 하는데 자주 오용하는 OECD 통계에서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악마의 편집 혹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수준으로 통계에 대한 고찰이나 통계의 기준과 왜 그러한 통계가 나왔는가에 대한 해석과 주석 등을 모조리 배제한 채로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결과만 들이밀고 있는 모습은 팩트체크와 팩트폭력이 활발해진 지금으로선 우습기만 한 일이다. 더 나은 삶 지수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객관성이 상당히 결여된 주관적인 성향이 강한 통계를 인용하고, 게다가 그 안에서 조사국(36개 국가)내 순위와 OECD 가입국(34개 국가)내 순위를 갖고 행복도 꼴지 운운하는 것은 철지난 선동이고, 한국에 대한 평가 부분은 읽어보지도 않은 것이 분명하다.
5.7. 대중들의 반발
사람들이 이에 반발하는 이유는 ''' '그런 추억팔이로 먹는 것이 아니라 떡볶이의 맛 자체가 맛있기 때문' '''인데도 그것을 자신들이 세뇌당한 결과물, 맛없는 것을 맛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단언을 했기 때문. 그러니까 입맛의 문제로 지나갈 말이 아니라 먹는 사람들을 폄하하는 발언으로 들릴 수 있는 발언이라서 문제가 된 것이다.
또한 요즘 아이들이 떡볶이를 좋아하는 것도 엄마가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맞으려면 부모와 아이의 입맛이 철저하게 같아야 하는데 현실은 꼭 그렇지는 않기 때문에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기만 하다면 왜 부모들이 편식하는 자녀에게 골고루 음식 먹이느라 고생하겠는가? 게다가 황교익은 자신의 책에서 본인의 집에서 라면은 금지된 음식이지만 세명의 자식들은 먹자고 조르고, 좋아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라고 적었다.# 라면을 싫어한다는 본인의 자녀가 먹는 것도 못 막고 심지어 각자의 입맛이 다른 걸 보고도 아이는 엄마가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세뇌로 인해 떡볶이를 좋아하게 된 것이라면 성인이 된 후에 떡볶이를 맛보고 반하는 외국인들은 뭘까? 그 외국인들도 어려서부터 부모의 영향을 받아 떡볶이를 좋아하도록 세뇌되어서 떡볶이를 좋아하는 것인가?
실제 해당 수요미식회 방송에서도 떡볶이는 추억으로 인해 맛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맛 자체로 떡볶이를 좋아한다, 떡볶이는 떡도 중요하다고 패널들에게 반박을 당한 바 있다.[19]
6. 전라도 음식이 맛있다는 건 인식의 문제다?
2017년 7월 21일 방영된 tvN의 예능 알쓸신잡 8화 전주편에서 '전라도 음식이 맛있는 이유'에 관해 패널들이 토론했는데 이 과정에서 황교익이 신빙성도 없는 주장을 펼쳤다.
유시민이 황교익에게 '전라도 음식이 왜 맛있느냐'고 묻자 황교익은 위 떡볶이 발언처럼 '맛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에 유시민은 "전주에서는 만화 카페에서 먹는 라면도 맛있다."라며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는 반론[20] 을 펴자, 황교익은 "남도 음식이라는 개념은 1980년대에 생겼다. 이는 지리적 용어가 아닌 정치 사회학적 용어이다. 1960년대 산업화가 곳곳에서 진행되던 중 상대적으로 농업이 특화된 지역이 있었는데 그곳이 전라도 지역이다. 1970~80년대에 사람들에게 전라도에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먹으니까 그게 맛있는 거다.'''"라고 반론했다. 그러자 유시민은, '''"대구에 살던 나는 이런 맛있는 음식의 존재 자체를 몰랐었다.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라고 계속 반박하자 중간에 듣던 정재승이 지리적 요인은 없겠냐며 중재를 시도했다. 황교익은 '''"전주가 서해안, 평야, 산지 등과 모두 가까워서 지리적 이점이 많아 음식 문화가 발전한 측면도 있다."''' 며 기존 주장에서 한발 물러서서 마무리했다.
실제 황교익의 주장이 사실일까?
위 기사의 내용으로 알 수 있듯 전라도나 전주 음식이 맛있다는 인식은 오래되었으며, 1960년대 이후 산업화로 인해 없던 인식이 갑자기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전주는 음식 솜씨가 조선서 제일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과연 음식 솜씨는 사치도 하려니와 첫재는 더운 철에는 더운 철을 따르는 듯한 민첩한 솜씨도 있는 듯하고 제법 영양분에 대한 주의도 게으르지 않은 듯합니다. 지금도 먹고 싶은 것은 그 슬슬 녹는 듯한 생정과입니다.
- '''1932년''' 9월 11일자 동아일보
호남 지방이 큰 규모의 산지, 하천, 평야, 바다가 모두 혼재하여 다양한 종류의 식재료가 생산되기 때문에 식자재가 풍족해서 다른 지방에 비해 식문화가 더 발달할 수 있었다.[21] 한때 유행했던 케이준스타일의 음식도 뉴올리언스 지방의 엄청나게 풍부한 식자재와 함께 낮은 인구밀도로 인해서 한끼 식사에 식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여 만들어진 요리 스타일임을 생각해보면 이게 전라도 음식 문화가 발달한 핵심요인이다. 분명 황교익도 지리적 요인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긴 했지만, 인식의 문제라는 주장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요인 정도로만 설명한게 문제였다.
여기에 더해 농담조로 말했지만 유시민을 보고 '어린 시절을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이런 걸 맛있다고 느끼냐.'며 좀 불쌍하다 식으로 말했는데, 아무리 예능이라지만 상당한 무례한 발언이다. 물론 유시민도 크게 불쾌한 기색 없이 넘어갔기에 큰 문제는 안됐지만.
게다가 '맛있을 거라는 환상 때문에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다'란 논리는 이미 떡볶이 문서에서 근거도 없고 매우 비과학적인 발언인 것을 알 수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황교익이 계속 주장하는 '백종원의 솔루션 때문이 아닌 방송에 나갔기 때문에 가게가 잘 나가게 된 거다'라는 비슷한 논지의 주장[22] 만 보더라도 이 영상에 나온 가게 후일담만 보더라도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맛있을 거라는 환상이 있어도 맛없는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게 하지 못한다는 것.
황교익 본인은 SNS를 통해서 "나는 전라도 음식이 맛없다고 한 적이 없다. 단지 그런 인식이 있다는 점을 언급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황교익은 알쓸신잡 시즌2에서도 이 주장을 계속했다.[23]
차라리 황교익이 "지리적 요인이 전라도 음식이 발달한 가장 중요한 원인이고, 동시에 전라도 음식에 대한 인식도 원인일 수 있다." 는 식으로만 완곡하게 논조를 펼쳤어도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있었을 지언정, 호남비하 논란으로까지는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기어이 2018년 11월 페북에 당신들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라는 자극적 제목을 올리며 변명했다. 역시나 논점을 호도하며 지역 감정을 조장하려는 세력의 음모라고 주장한다.[24] 논점은 전라도/전주 음식이 맛있다는 인식이 존재하는데 정말 맛있는지(황교익은 단지 생각 때문이다라고 주장), 그 인식이 언제 생겼는지(황교익은 1960대 이후라고 주장), 왜 생겼는지(황교익은 음식맛과 무관하게 이촌향도로 인한 향수 때문이라고 주장)에 관한 것이다. 그것을 마치 자신이 전라도 음식을 맛없다고 해서 비난 받는 피해자인 것처럼 호도하며, 존재하지 않는 지역 감정 조장 세력에 대한 극언을 퍼붓는 중이다.
7. 한국 치킨은 맛이 없다
떡볶이 논란과 비슷한 주장을 치킨에 대해서도 주장한 적이 있다. 한국의 치킨이 그냥 튀김옷과 양념맛이고 덜 자란 닭을 써서 맛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치킨에 대해 모든 사람이 맛있게 느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2(보면 알겠지만 자신이 전에 비평했던 떡볶이와 청매도 들먹이며 정당화 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황교익의 개인적 바람과 달리 구글에서 Korean Frie까지만 쳐도 한국식 닭튀김이 가장 상위에서 끝없이 쏟아진다. 그게 레딧이나 4ch의 스레드건, 개인 포스팅이건, 언론 기사건 정말 맛있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맛 없다는 소리는 찾아보기조차 힘들다는 것.[25] 당장 유학생들 몇몇만 데려와서 물어봐도 유학 당시 서양 친구들을 한국식 치킨하는 데 데려가서 먹여본 뒤에는 무조건 한국식 치킨만 먹자고 한다는 식의 전설같은 무용담(?)을 말해주는 경우가 허다하니, 한국식 치킨의 맛은 이미 다양한 루트를 통해 검증받고 있다. 닭의 종류고 뭐고 간에 '한국 치킨은 맛이 없다'는 황교익의 개인적 바람 자체가 국내외에서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굳이 반박하자면 좀 더 성장한 닭은 백숙 같은 요리로 만들어 먹으면 치킨용 닭에 비해 더 맛있는 건 사실이지만, 닭은 성숙 정도에 따라 용도가 달라진다는 걸 간과한 말이다. 너무 키우면 노계라 해서 고기가 질겨지고 특유의 냄새가 심하기 때문. 커지는 만큼 속까지 익히기 어려워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염지가 힘들어 양념이 속까지 배이지 못하고 냄새 제거도 어렵다. (칠면조 요리법이 단순한 것도 그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노계는 압력솥을 이용해 조리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쓰거나 백숙으로 먹고 육수를 낼 때 쓴다.
무엇보다 한국 치킨용 닭은 세계적으로 비하면 작은건 사실이지만 사실 기르는 기간은 한국이나 기타 다른 나라나 비슷하다. 특히 기업형 양계를 하는 경우는 100%다. 양자의 차이는 '''닭을 얼마나 기르느냐가 아니라, 소비특성상 어떤 닭을 쓸 것이냐'''에 가깝다. 하림을 포함한 기업형 양계는 전세계적 추세에 가깝게 닭을 기른다. 그 추세가 35일 남짓만 기르는 형태일 뿐이다. 그리고 그 나라 취향에 맞게 닭의 유전형질을 디자인하다 보니, 닭가슴살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하고 증량에 목숨거는 국가들과 다른 형태의 닭고기들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 갈라파고스라는 것의 근본적인 원인도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닭가슴살이 한국에서는 '퍽퍽살'이라는 오명으로 홀대 당하는 것처럼 각국의 취향차이가 드러난 것에 가깝고, 여기에 판매자 요구가 더해진 것이다. 예를 들어서 1마리 500g 정도로 팔리는 생체 700g 5호닭은 5-6주를 기른다. 그런데 1300g인 10호 닭이 28일, 1700g인 15호가 35일, 3kg까지 키우는데도 40여일 정도만 걸린다.
참고로 이런식으로 밀집 사육[26] 을 근거로 운운하며 양념치킨에 대한 비판에 대한 해답은 전 국민이 치킨을 약 1~2개월이건 키우고 양계장은 밀집사육이 아닌 방목형[27] 으로 모조리 전환하여 양념을 안쳐도 되는 치킨을 먹자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닭값(원자재)이 비싸져 현재 포화된 치킨 업계가 '''또 욕을 얻어먹으며 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치킨값은 현재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들수 없는 치킨업계의 최대의 고민이다...'''만약 황교익의 주장을 감명 받아 모든 치킨업계에 닭을 공급하는 기업이 죄다 방목형으로 전환하여 판다면 생닭값만 해도 치킨값의 배 이상으로 뛸 것이다.
닭 항목에도 보면 품종 개량과 사육 기술의 발달로 닭의 사육기간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황교익은 '영계'라는 것은 '옛날에 봄에 부화한 닭을 복날에 잡는 경우로 약 100일 정도 사육한 닭을 뜻하므로 지금 30일 전후로 출하하는 닭은 영계가 아니라 병아리다'라는 주장을 하나, 이러한 기술의 발전과 시대의 차이를 완전히 무시한 단견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예전엔 이랬으니 지금도 예전 기준에 미달되면 부를 자격이 없단 소리는 당장 우리나라 역사만 봐도 문제가 많은데 황교익식 논리를 인간에 적용하면 '''조선시대때까지만 해도 결혼 적령기는 주로 20세 이전이었다.''' 즉 지금 대학교, 대학원 다니는 학생들까지 결혼적령기를 놓친 노처녀, 노총각이고 빠르면 초등학생때 느려도 고등학생때는 결혼해야 제대로된 적령기안에 결혼한다는 소리다. 식품쪽으로만 봐도 예전엔 야채란 말그대로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야채나 버섯들또한 지금시대에선 계획적으로 육성하기도 하므로 야채라고 부를수 없고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다는 계절과일, 계절채소라는 것도 온실재배나 유전자 개량 등이 나오며 다 옛말이 되었다.
그리고 애초에 '''성장 단계와 맛은 별개의 문제다.''' 정확히는 성장단계 또한 맛에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긴 하지만 '''무조건 나이먹은 동물이 맛있는 것도 아니고 어린 동물이 맛 없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같은 동물이라도 음식종류에 따라 요구되는 성장 단계도 다르다. 대표적으로 외국에선 '''송아지 요리'''가 명물인 곳도 있다. 황교익식 논리에 따르면 (본인기준)올바른 기간동안 성장한 소가 더 맛있어야 할텐데 그럼 그 쪽 사람들은 소 키울 시간이 아까워서, 소가 크는 동안 육성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 송아지 요리를 먹는가? 당연히 아니다. 거기에 송아지 외에도 외국에선 어른 양을 머튼 새끼 양을 램이라고 하여 엄연히 별개의 식재료로 구분하며 이 두 종류는 서로 사용되는 요리가 다른 것이지 같은 요리에 쓰이나 고급진 요리, 저렴한 요리 차이가 아니라는 소리. 거기에 닭은 양이나 소에 비해 살집의 차이를 빼면 성장단계에 대한 맛의 차이가 큰 편도 아니다. 거기에 현재는 여러 기술의 발달로 몇달내내 꾸준히 키워야 간신히 닭이 1KG이 되는 시대도 아니다.
무엇보다 이제는 기술의 발달로 '맛' 성분조차 측정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황교익이 한국의 10호 닭(치킨용으로 주로 쓰이는)이 외국 닭이나 장기 사육한 닭보다 상대적으로, 아니면 절대적으로 맛이 없다는 주장을 하려면 이러한 자료를 들고 와서 말하면 된다. 주장하는 자가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입증책임이다. 황교익의 문제는 정작 자신의 주장에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반박하려는 기존 통설이나 별 문제없이 존재하고 있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마찬가지로 과학적 증거가 아니라 유사 사회학적, 심리학적 썰을 엮어 문제 있는 것으로 취급하려한다는 점이다. 치킨이 맛이 없다는 주장을 최초로 한 것도 그 뿐이고 인터뷰 자료 역시 그의 인터뷰 뿐이다.
닭고기가 맛이 없기 때문에 치킨집이 많다는 것 역시 근거없는 비약이며, 육계가 구이용이고 외국에서는 별로 튀김으로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미국USDA의 닭분류를 보면 구이용으로 한정되는 것도 아니고, 미국이나 브라질 등의 닭소비량은 한국을 한참 뛰어넘는 수준이며 이들 나라에 닭튀김 요리가 없는 것이 아니므로 '별로 튀김으로 먹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려면 또다시, 직접 자료를 가져와서 주장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미국 흑인 요리인 소울푸드의 대표 요리가 프라이드 치킨인 실정이다.
황교익의 주장대로라면 맛있는 치킨의 정의는 키우는 생육과 '''양념맛'''을 쓰면 안된다는 건데 주장대로라면 중화요리 깐풍기와 좌종당계는 양념맛만 드는 요리가 된다.[28] 아니 전세계 대부분의 닭 요리가 양념맛 요리가 된다. '''세계적으로 보면 형태가 좀 다를 뿐 대체로 양념을 치지 않는 백숙보다, 양념 치킨 수준이거나 그 이상의 강한맛을 내는 양념을 쳐서 볶아먹는 닭요리가 압도적으로 많다.'''[29]
또한 닭이 맛이 없다며 튀김 껍질과 양념만 먹어도 맛있다고 하는데, '''모든 튀김은 튀김옷과 양념만 먹어도 맛은 있다.''' 다만 그게 내용물이 맛이 없다는 반증은 되지 못하며, 맛이 없기 때문에 튀기는 것이라는 인과관계가 성립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흠을 잡기 위한게 아닌 이상 그렇게 먹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가 치킨 대신 제안한 튀김 중 무튀김은 차치하고 고구마 튀김은 한국인이 어린 시절부터 '''떡볶이'''와 자주 먹게되는 음식 중 하나인데, 이것을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자주 접하고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되어서 잘못 되었다는 주장에 그는 반론이 가능할까? 골목마다 있는 '''떡볶이''' 집에서 고구마튀김을 팔고, 고구마 튀김도 튀김옷과 양념만 먹어도 맛있다.
사실 진짜 웃긴 것은 황교익의 비판과 거의 같은 내용들은 이미 나온 바 있다. 다만 대상이 다르다. 바로 미국 KFC를 포함한 미국식 치킨체인에 대한 비판이다. 한국 닭을 병아리라고 부르는데, 그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기간동안 길러진 KFC용 닭들은 한국 닭들의 거의 2배에 가까운 무게와 2배 이상의 가슴살을 가지게 성장해서 전세계에서 1억 달러어치 이상 팔린다. 이렇게 급하게 성장하기 때문에 살아서는 뼈의 성장이 따라가지 못해서 관절염에 시달리고, 고기가 되어서는 양념맛이 없으면 먹을 수가 없다는 비판을 듣는다. 그리고 그 KFC 단 한 곳을 통해서 영국에서만 연간 2000만 마리 이상의 닭이 길러져서 죽는다. 이것은 BBC가 2015년 방영한 The Billion Dollar Chicken Shop에서 다룬 내용이다. 황교익이 말하는 것과 거의 같은 내용인데 닭의 크기와 대상만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덤으로 비슷한 시기 황교익은 미국 닭은 2kg이 넘어서 양이 많다면서 미국 닭을 찬양한 바 있다. 사실 황교익이 2가지를 추가했다. 하나는 의미가 없다. 한국에서 닭을 빨리 잡는 이유로 '''양계장 위생 문제'''를 꼽았는데, 닭을 오래 기를수록 폐사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빨리 잡는다는 주장이었다. 참고로 닭을 더 빨리 잡는 곳이 하림 등의 기업에서 계획적으로 생육하는 곳이고, 백세미를 도입한 것도 기업 양계쪽이었다. 다른 하나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바로 한국은 닭을 마리수로 계산하지 kg 단위로 계산하지 않는 소비형태이기 때문에 닭의 크기가 작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위에 언급된 KFC 형의 크고 맛없는 닭 문제가 다시 나올 것이고, 동시에 소비자들 사이에선 '이제 닭다리마저 퍽퍽살이다'라는 불평도 같이 나올 것이다.
또한 치킨 칼럼을 쓴 이후 그와 페북 친구였던 요식업 매니저 글을 차단하며 비판을 궤변으로 돌려주는 내용이 발굴되었다. 1부 2부
프레시안 황교익대담 기사보면 알겠지만 황교익은 몇개월 전에 공장식 축산이 가격에 직결되는걸 알고는 있었다. 그리고 치킨이 맛없다에선 밀집사육을 비판하며 가격은 논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황교익은 전기구이 통닭만이 진정한 치킨인 양 편향되게 추켜세운 바 있다.(#) 이는 황교익의 일반적인 비판점인 지식의 부족이 자신의 과거 경험에 대한 미화와 맞물려서 일어난 것으로 추측하게 된다. 덤으로 양념보다 재료맛이 중요하다는 것은 딱 일본요리의 관점이기도 하다. 이 경우에도 (KFC를 비판했던 BBC의 방송과 마찬가지로) 공장식 축산에 대한 문제제기와 마리수로만 거래되어서 지나치게 작은 닭이 유통되는 부분에 대한 환기로 끝났다면 의미있는 반향이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황교익은 이 경우에도 그 선에서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7.1. 잘못된 비판의 초점과 의도
황교익은 EBS 빅뱅 특강에서 시중에 판매되는 닭이 작은 것은 마리당 가격으로 판매해서 그렇고, 닭을 그람 단위로 판매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마리당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굳이 크게 키우기 위해 사료를 더 많이 먹여서 소비자에게 팔 이유가 없다는 말과 함께 최대한 닭 비슷한 모양으로 작게 만들어서 파는게 판매자에게 이득이라는 말을 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람 단위로 파는 것을 법제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반적인 말의 흐름을 따지면 비난의 초점을 양계장, 계육을 공급하는 유통사, 그리고 정육점과 식당들에게 분별없이 겨누고 있든 모양새인데, 이미 정육 자체가 무게 단위로 판매 되고, 우리가 소비하는 닭은 5호에서 17호까지 어느 정도 무게 단위로 나뉘어 구분되어 판매된다. 닭을 실제로 조리해서 소비자에게 내놓는 치킨집이나 닭 요리를 내놓는 식당에서 1마리라는 단위로 판매한다고 하여도 그 닭들은 보통 5호 ~ 13호 사이의 닭 중 특정 사이즈를 일괄적으로 공급 받은 물건이다. 이미 소비자들은 특정 무게 단위로 공급 받아 내놓는 닭을 소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초점을 어디에 겨눠야 할지 모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나마 식당에서 닭을 1인분이나 1마리라는 모호한 단위만 표기하고 병기 하지 않거나 아예 어디에서도 알 수 없게 한 상태로 판매하는 경우 몇 호의 닭을 쓰는지, 어떤 부위가 얼마 만큼 재료가 들어가는지 모르는 경우에나 직관적으로 알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가게 주인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이 비판의 초점에 포함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황교익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다. 그람 단위 판매의 목적과 비판의 초점은 닭 요리 자체가 아니라 닭 요리에 들어가는 닭의 사이즈를 향한 것으로 '''특정 크기의 이상의 닭만 시장에 내놓고 그것만을 조리하고 소비하라고 양계장에서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시장 전체에 강요하려는 것'''에 있다. 닭을 포함한 가금류는 물론 인간이 키우는 식용가축 전반이 품종, 생육 기간과 중량, 생육 방식, 가공 상태, 유통 방법에 따라서 육향, 질감, 조리방법, 조리 난이도[30] 가 달라진다. 결국 프렌차이즈나 식당마다 맛이나 조리방법에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치킨을 판다고해도 일정 크기 이상의 똑같은 크기의 닭을 쓰고 특정 레시피만 따라하라는 법은 있을 수 없고, 소비자의 소비특성에 관여하는 것은 정부가 나서서 할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의도도 글러먹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결국 황교익이 이러한 잘못된 비판을 이유를 하는 이유는 그가 '''조리방법에 따라 닭크기가 구분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튀김용 닭은 세계적으로 13호 이하의 작은 닭을 쓴다는 사실을 황교익은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닭시장의 문제점은 튀김용 닭과 영계를 이용한 삼계탕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시중에서 12호, 13호 이상의 닭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에 있다. 튀김을 제외하고 닭도리탕이나 백숙을 만드는데는 분명 큰 닭이 낫기 때문에 이러한 큰 닭을 제대로 키워내고 있지 않다보니 닭곰탕과 같이 큰 닭을 쓰는 요리는 도태되는 산란용 폐계를 쓰는 경우가 있다는 문제점에 집중해야 한다. 황교익이 요리와 식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시장 구조와 식재료 유통에 대해 익숙하지 못하여 식재료에 대한 비평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이 닭크기에 대한 논쟁인 것이다.
8. 일본 요리에 대한 맹목적 찬양
맛서인이라고 불리는 주요 이유. 한국 요리에 대해 편집증적으로 까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중국 요리와 이탈리아 요리처럼 동서양에서 손가락으로 꼽히는 요리에 대해서도 별 것 아니라는 투로 평가절하하지만 일본 요리에 대해서는 '굉장히 매력있다', '한식과 일식은 가장 흡사하다'는 등 유달리 일본 요리에 대해서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황교익의 일식과 중식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확연히 알 수 있는 장면 캡쳐1990년대 이후 서울의 일본 음식은 두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웬만큼 한국화한 일본 음식과, 최근 일본에서 직수입한 일본 음식. 한국화한 일본 음식은 가난한 한반도에서 버티느라 싸구려에 촌스럽게 변했으며, 직수입한 일본 음식은 세계 으뜸의 경제대국을 이룬 국가에 걸맞게 비싸고 샤방샤방했다. 비교하자면, 남대문시장의 냄비우동과 강남 프랜차이즈 일식집의 사누키우동, 피맛골 참새집 꼬치와 홍대 앞 일본 유학생 출신 요리사의 꼬치, 성북동 기사식당 돈가스와 일본에 로열티를 지급하는 돈가스같이 말이다.[31]
당연히 중국 요리 항목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웍 하나만 있으면 아무 음식이나 다 되는 게 아니다.''' 다만 상업적으로 볶음 요리가 대중적으로 퍼져 세계에 알려졌을 뿐이지, 웍으로 만드는 건 볶는 요리가 전부가 아니고 조림까지 가능하다. 게다가 가게마다 다르지만 찜 요리만 담당하는 요리사도 있을 정도로 중국 요리는 세분화되어 있다. 찜요리 뿐이랴. 정말 고급지게 제대로 하는 가게라면 면 담당부터 구이 담당까지 전부 나눠져 있다.[32] 애당초 웍자체가 중화 식칼과 같이 몇천년 이어온 효율적인 조리도구다.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청두 편과 하얼빈 편을 보면, 중식은 웍 하나로 뚝닥 만드는 요리가 아닐 뿐더러 넓은 영토와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만큼 지역에 따라 조리법도 다양하다. 당장 중국인들 스스로 '''중국의 모든 지역 요리를 먹어 보는 게 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게다가 중국 요리는 한국, 미국, 일본 등 각 나라의 사정에 맞춰 적극적으로 현지화 하기로 유명한 요리다. 이런 바리에이션까지 포함하면 중국 요리의 범위는 어마어마하게 넓어진다. 황교익이 중식당 한두곳이나 가서 먹고 전문가 행세하면서 평가질하는 중식은 실제 중국 음식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심지어 황교익은 일본에서 먹은 마파두부가 중국의 사천 마파두부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더 맛있을 거라고 말한 바 있다. 이쯤 되면 황교익 본인의 입맛이 "일식이 가장 좋은 요리"라는 편견 그 자체라고 광고하는 수준이다.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최소한 직접 먹어 보고 나서 내 입맛에는 별로였다, 다른 요리가 더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게 정상이다.
이에 대해서 마산이 고향인 황교익이 일본 교토에서 반찬 가게를 했던 외할머니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담백한 맛, 소금간, 재료 본연의 맛을 위주로 한 교토 요리(경음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양념이나 조미료맛 얘기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작 일본 현지에선 경음식에 대해 교토 지역만의 독특한 식문화로 인정하지, 일본 전체의 보편적인 식문화라고 보기 힘들다. 흔히 일식 하면 떠올리는 정갈하고 담백한 이미지와 달리, 실제 일본 요리는 조미료를 자유롭게 사용하며 나름대로 진한 맛 요리도 수없이 많다. 모든 일식이 교토 요리처럼 간소하다는 이미지는 누벨 퀴진의 영향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게 사실이라면 황교익 본인 또한 '''어린 시절에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맛에 익숙해져서''' 이런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게 되었다는 결론인데, 결국 황교익이 줄기차게 주장하던 사회적 압박이니 가족의 영향이니 하는 가설에 자기도 포함되는 셈이다. 황교익 본인이 올린 내 고향 음식, 우메보시@라는 글을 보면 충분히 일리있다.
이탈리아 요리나 중국 요리를 폄하했다는 건 방송에서 농담식으로 한 말을 악의적으로 편집했다는 쉴드도 있으나, 그건 음식 전문가라는 신분이라면 결코 해서는 아니될 태도이다. 전문가가 아닌 게스트가 자기 취향에 따라, 그리고 무식해서 외국 요리를 폄하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어느 정도는 개그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그 경우에도 너무 심하고 악의적이라면 비난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최고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해당 국가의 게스트 앞에서 그런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그야말로 황교익의 평소 심성과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 바로 그가 아니고선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게다가 황교익이 분별력 없다, 미개하다라고 까는 요소들 상당수가 일본 요리에도 적용되는 것이고(물론 본인은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일본 요리 지식 관련에서도 오류를 보이기 일쑤다. 즉 황교익이 찬양하는 것은 일본 요리가 아니라 '''자신의 환상 속의 일본'''의 요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9. 북한의 마약과 남한의 고추
2011년 블로그에 북한의 마약 문제를 고추의 통각 엔돌핀 효과를 결부하여 마치 남한이 편한곳은 아니다라는 궤변 글이 발굴되었다.북한에 마약이 범람한다는 뉴스를 본다.
가난과 폭압의 세월을 버텨야 하는 인민들이 마약에 기대어 잠시나마 그 고통을 잊으려는 것이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
남한에서는 매운맛의 음식이 꾸준히 유행하고 있다.
매운맛은 통증을 유발한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몸은 이 통증을 잊기 위해 엔돌핀을 분비한다.
엔돌핀은 기분을 좋게 하는 생리 물질이다.
그러니까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 이유는 이 엔돌핀을 분비하게 하여 기분을 좋게 하려는 것이다.
남한도 그리 편안한 세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모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반응이....
황교익 말대로 북한의 주민들이 고통을 잊기 위해 마약을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북한 전 지역에 마약이 만연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모르는 것 같다. '''남한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마약을 매매하는 것은 범죄 행위이다.''' 반면에 북한은 빙두라고 하여 아예 합법적으로 장마당에서 마약이 유통된다. 북한도 과거에 마약 밀수로 달러를 챙겼다. 그러다가 미, 중, 러[33] 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북한의 마약을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그래서 북한 정권은 마약 밀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마약을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고위 간부들이 즐겼던게 어느 시점부터 장마당에 풀린 것이다.[34]
애당초 마약과 고추는 전혀 다른 것이고 엔돌핀 분비와 마약류의 중독은 '''절대 동일시 할수 없다.'''
황교익은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 이유는 이 엔돌핀을 분비하게 하여 기분을 좋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남한도 그리 편안한 세상이 아니라는 뜻이다."라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궤변이다. 마약 중독과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을 동일 선상에 놓았다. 이렇게 따지면 매운 음식을 즐겨먹는 나라들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된다. 심지어 미국인들도 매운 것을 즐겨먹는 사람들도 많다.
태그의 '''중독의 사회'''도 그저 어이없을 뿐
고통을 즐긴다
맵다고 느끼는 감각은 맛이 아니다. 맵다는 감각은 아픔의 감각인 통각이다.
고추에는 캡사이신이라는 매운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것이 입안에 들어가 통각을 자극하면 몸에서 이 통증을 잊기 위해 엔돌핀이라는 '생리적 마약'을 분비하게 되고, 따라서 기분이 좋아지게 되니 사람들이 고추를 즐기게 된다. 그러니까 매운 고추를 즐기는 우리 민족은 엔돌핀, 즉 '생리적 마약' 중독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 또한 고추 중독자이기는 하지만, 외식업체들이 이 통증의 감각물을 남용하는 버릇으로 해서 노이로제에 걸려 있기도 하다. 한국음식에서 매운 음식이란 그 음식 전체가 매운 성분으로 처발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음식 전체에 풀어 덩이든 액체이든 똑같은 강도의 통증이 느껴지도록 조리된다. 고추장불고기, 고추장낙지볶음, 배추김치, 매운탕, 김치찌개, 떡볶이 등등. 매운 통증을 강렬하게 즐기기에는 그만인 조리법이기는 하지만 이 때문에 고기나 낙지, 배추, 생선, 떡 같은 주요재료의 맛이 어떤지 파악할 감각의 여유가 없어진다. '무대뽀'의 음식인 것이다.
가끔 다른 나라 음식에서 포인트로 들어가 있는 맵디매운, 청양고추보다 몇 배나 매운 고추를 발견할 때면, 우리 민족의 '무대뽀' 고추 사랑을 일종의 집단적 정신질환으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근거 없는 담론을 황교익이 한 두 차례 했던건 아니고, 황교익이 제시하는 '''한민족이 고통을 잊기 위해 매운 맛에 중독되었다.'''라는 말과 비슷한 담론을 꺼내거나 공감하는 사람이 없는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글들의 문제점은 인체의 생리 현상을 생리적 마약과 같은 자극적인 표현과 함께 마약과 중독이란 표현을 오남용하면서 생리적으로 이러하니 이러했을 것이다라는 결합의 오류에서 비롯된 추측일 뿐 실질적으론 어째서 그러한 담론이 도출될 수 있는지 어떠한 증거도 대지 않고있다는 점에 있다. 황교익이 말하는 사회적 고통이 무엇인지, 왜 다른 나라에서는 그들이 마약이라고 부르는 매운 맛에 중독되지 않았는지 증명할 통계나 문헌 없다면 진짜 고추가 마약으로 쓰였다고 볼 수 없다. 한국만 겪고 다른 나라는 겪지 못해서 고추를 유행시켜야 했던 사회적 고통이란게 실존하긴 할까? 근거 없는 담론과 근거 없는 명제는 누구나 그럴듯하게 제시할 수 있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에 있다. 고추와 매운맛 그리고 중독을 엮어 사회가 병들었다며 진단하려는 황교익의 모습은 근거를 입증하지 않고 전문가를 자처하는 단편적인 모습 중 하나이다.한국인의 연간 1인당 고추 소비량이 4kg이 넘고, 세계 일이위를 다툰다는 통계가 있다. 4kg이란 숫자는 국내 건고추 생산량을 인구수로 나눈 것인데, 풋고추까지 포함시킨다면 아마 세계 1위는 떼어논 당상일 것이다.
한국인이 고추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임진왜란(1592~1598년) 때이다. 그때 일본인이 가져왔다. 고추의 원산지가 남아메리카이므로 유럽인이 신대륙 발견(1492년) 후 퍼트린 신대륙의 신작물이 동방의 끝에까지 이르는 데 꼭 100년이 걸린 것이다. 또 이 고추가 한반도 전체에 퍼져 재배되고 한민족의 식탁에 주요 식재로 자리하기까지는 또 10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면 이 고추가 한민족을 ‘중독’시키기 전에는 한반도에 매운맛을 내는 식재가 없었을까? 고추 같은 통각적 매운맛보다는 후각적 매운맛을 내는, 그러니까 맛의 특징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산초나 초피나무의 열매와 껍데기가 있었다. 또 일부 권력자들은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값비싼 후추를 쓰기도 했다.
1700년대 이후부터 고추는 한국음식 곳곳에 침투하게 된다. 채소를 소금으로 절인 ‘짠지’에 젓갈과 함께 침투하여 김치를 만들어내었으며, 고조선부터 내려오던 콩 발효 음식인 된장에 뛰어들어 고추장을 빚어내었다. 한국인의 주식인 쌀밥이나 보리밥, 잡곡밥은 밋밋한 탄수화물 맛에 그 하나로만 지속적으로 먹을 수가 없다. 이 단순한 탄수화물로 차려진 식탁에 매운맛의 고추는 일종의 맛의 포인트가 되어주었고, 오래지 않아 한국인은 이 고추에 중독이 되어갔다.
조선을 거치면서 한민족이 고추에 서서히 중독되어갔기는 했지만 농업기술이 크게 발달하기 전인 1960년대 이전까지 고추는 귀한 식재였다. 집집이 김장을 담글 수 있을 정도의 고춧가루를 확보하는 데도 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 고추의 품종 개발과 재배기술의 발달로 상업적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1970년대 이후 한국인의 고추 소비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이런 고추 소비 추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현재 1990년대 후반에 비해 1인당 고추 소비량이 40% 정도 늘었다는 자료도 있다.
고추의 용도는 다양하다. 우리는 주로 가루로 내어 양념으로 쓰거나 요리하여 반찬으로 먹는다. 세계 각 나라들도 독특한 고추 요리를 발달시켜왔다. 유럽에서는 주로 매운맛을 내는 소스로 이용하고, 중국에서는 일부 요리에 넣을 뿐 일반 가정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다.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는 말린 토마토와 말린 고추를 함께 갈아 독특한 양념으로 이용하며, 인도에서는 카레 맛을 내는 데 쓴다. 동남아와 남태평양 섬 지방에서는 기름진 음식이나 비린내 나는 생선에 곁들이는 양념으로 사용한다.
(중략)
최근 고추의 캡사이신이 건강이 좋다 하여 외국에서 한국음식 붐이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한때 서양의 기준으로 ‘맛’에 포함되지도 않았던, 통증으로 분류되었던, 매운맛이 건강에 좋고, 그 매운 음식의 한복판에 한국 음식이 있다는 사실이 퍽 반가운 일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한민족의 고추 중독 이야기에 반드시 따라나오는, 한국인이 고추에 중독되어가는 과정이 고단한 삶에 그 원인이 있다는-고추의 캡사이신은 통증을 유발하고 이 통증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 뇌에서 ‘기분 좋게 하는’ 엔돌핀이 분비되는데, 조선봉건 이후 식민시대, 한국전쟁, 가난 등 고난의 길을 걸어온 한민족이 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고추에 중독되었다는-분석을 들을 때면 그 매운맛으로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 아문 상처에서 전해오는 아릿한 통증을 느낄 때도 있다.
한가지 웃긴점은 이미 황교익은 위의 글에서 원산지 남아메리카에서 유럽을 거쳐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는 점과 유럽과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지, 중국에서 이미 고추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밝히며 세계적으로 매운 맛이 어느 정도 통용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교익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한국만 유독 유별나게 매운 맛을 특히 더 사용하고 있고, 고추 소비량이 많고 이는 사회병리학적으로 매운 맛에 사회 중독된 것은 한국 사회가 병들었기 때문"이라고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타 국가에서 고추와 매운 맛의 유행, 소비 등등의 이유와 과정 대해서 최대한 얼버무리면서 전형적인 문헌오염과 가정망각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걸 지적할 때에 주로 사용하는 필살기가 한국의 매운 맛은 들척지근[35] 한 매운 맛이라며, 타국가의 매운 맛은 개운한 매운 맛이라고 변명하는 것이다. 매운 맛이 개운하면 중독성이 사라지고 몸이 건강해지며 마약이 아닌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