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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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내스트의 삽화[1]
1. 개요
2. 시초
3. 목적의식
4. 형태와 위험성
5. 사례
5.3. 나라별 현황
5.3.1.1. 입시 위주 교육
5.3.1.2. 교육 현장에 대한 불신
5.3.1.3. 정신과 치료 기피
5.3.1.4. 진영 논리와 권력자에 대한 반감
5.3.1.5. 사례
5.5. 기타
6. 유의점
7. 어록
8. 같이 보기
8.1. 집단주의 관련
8.2. 기타


1. 개요


Anti-intellectualism / .
지적사고논리적 고찰보다는 감성과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행동, 직감의 우위를 주장하며, 이 밖의 철학, 수학, 자연과학, 연구방법론, 교육, 지식인 등의 '지혜', '공부' 또는 '배움'과 관련된 대상에 대해 적대감과 불신을 갖는 사상이다.

2. 시초


반지성주의라는 용어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1963년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를 출판하면서부터다. 호프스태터는 1950년대를 휩쓴 매카시즘의 광풍과 1952년 대통령 선거에서 대중들이 지적인 애들레이 스티븐슨 민주당 후보에게 공공연히 적개심을 표출하던 현상에 주목해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은 미국의 반지성주의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번역 출판되었다.

3. 목적의식


반지성주의적 전체주의가 행해지는 이유는 집단의 체제 유지를 우선시하라고 강조하고, 이 과정에서 세뇌에 가까운 우민화에 의존하므로, 학문에 기반한 소수의 비판을 억누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 대부분은 사상적 이유로 인한 지식인 계층을 제거하려 드는 방법보다는 그저 단순히 지식인 계층이 권력 유지에 장애물이 되기에 적대하는 일이 훨씬 잦다.

4. 형태와 위험성


형태적으로는 근본주의, 전체주의, 파시즘 정부 및 사이비 종교가 정치적 반대자를 억압하기 위해 반지성주의를 조작하고 이용한다.

4.1. 파시즘·전체주의


반지성주의는 '''파시즘'''의 성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단기적으로 다수의 권력을 더 공고하게 만들 수 있었고 그들의 감정을 만족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와 민중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파시즘은 실질적인 통치에는 테크노크라트를 중심으로 한 전문가집단에 많이 의존했다. 반지성주의처럼 보이지만 전문가주의이기도 한 것.
나라에 문제가 있다면 권력이나 폭력(전쟁 등)으로 해결하려 드는 것도 이 형태에 속한다. 애초에 반지성주의의 뿌리이자 결말로 그 이상 알면 다친다, 넌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같은 속설로 지성을 가진 자를 권위로 찍어누르려면 결과적으로는 힘으로 입을 다물게 하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전쟁의 경우, 대량살상무기가 대거 만들어지고 있는 21세기에 들어선 반대쪽 극단인 경직된 엘리트주의 기조와 함께 우발적 핵전쟁상호확증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 예전보다 수많은 사람들, 특히 정치와 관계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으며, 최악의 사태에서는 핵무기 혹은 그에 맞먹는 것으로 그들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인류의 미래마저 지울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들어 더 진지하게 경계해야 할 사상이다.

4.2. 다수 여론을 빙자한 견강부회


반지성주의자들은 기존의 지식인들이 다수의 대중과 격리된 엘리트에 지나지 않으며 권력과 여론 등을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이러한 지식인들과 대립하며 대중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옹호자라고 주장한다.
멀쩡한 지식인들은 나라에 문제가 있을 때 토론과 검증된 지식으로서 해결하려고 하지만, 이들은 소위 떼법이라 하는 (보이는 것만 믿는) 비전문가들의 양적 공세에 큰 의의를 두어, 여론를 조직적으로 크게 조작하기도 한다. 요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행태를 대놓고 일으키면 티가 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절차성을 밟은 시늉이라도 하는 형태도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반지성주의적 대중주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많이 보였던 형태이나 최근에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2]

4.3. 우민화


전문가 집단이 갖고 있는 배타성과 일반인 집단이 갖고 있는 반감이 전문성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하면서, 이제는 양측 사이에서 소통을 매개할 수 있는 소통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기사가 있는데 대중은 들리는 그대로, 비판적 수용 없이 믿기 때문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예를 들어, '몸에 A가 좋다'는 헛소문이나 실제로 심지어 팔리기까지 하는 수소수, 게르마늄 팔찌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은 참과 거짓을 구분할 비판적 사고력이 떨어지는 게 있다. 이런 우민에 반지성주의마저 결합되면 답이 없다.
세상에는 지성의 산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인지해야한다. 현대 의학의 도움 없이는 독감조차 죽을병이 된다. 목숨이 달린 일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은 교통수단 없이 먼 거리를 이동하기 불가능에 가까운 점 역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5. 사례



5.1. 정치


진시황이 후생(侯生)과 노생(虜生)을 비롯하여 자신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파묻어 버렸던 분서갱유도 넓게 보자면 반지성주의의 일종. 반지성주의의 엑기스는 2천 년이 넘게 지난 뒤 문화대혁명을 통해 아주 제대로 구현되어서, 중국 전체의 지성과 사상과 의식과 미래를 이끌어 갈 동량이 사라지거나 크게 후퇴했다.
캄보디아크메르 루주는 론 놀 정권을 몰아내고 집권한 뒤, 이상적인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한답시고 고등교육을 받은 캄보디아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이때 벌어진 대학살로 지식인계층이 증발하면서 캄보디아의 인적자원은 완전히 붕괴했으며, 지금도 이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치 독일나치당 정권이 자신들의 체제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을 "유대인", "나약한 엘리트" 로 규정하고 정치적 탄압을 가한 것은 훌륭한 반지성주의의 사례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저서인 《나의 투쟁》에서도 반지성주의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고. 아돌프 히틀러는 지구상의 모든 고귀한 예술작품과 과학적 성과는 아리안 인종으로 나와야 한다는 편협한 가치관에 따라 유대인 혈통의 과학자예술가들이 해외로의 망명을 부채질했고, 이는 히틀러와 나치의 패배와 몰락으로 이어졌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기꾼 트로핌 리센코농업에 관심을 기울여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리센코는 그런 스탈린의 권력과 비호를 등에 업고 자신을 비방하는 소련과학자들을 모함하여 숙청하였고, 그의 이론에 기반한 농업 정책은 수많은 소련의 인민들을 굶겨 죽였을 뿐 아니라 소련의 농법과 생물과학 발전을 저해했다. 니키타 흐루쇼프는 비록 스탈린을 격하했지만 리센코의 농법을 그대로 지지하였고 이는 흐루쇼프가 실각하는 데 결정적인 명분을 제공하였다. 이후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기름진 땅인 우크라이나를 끼고도 적국인 '''미국'''에게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어찌보면 소련의 패망에 한몫을 한 셈이다. 이는 변증법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사상의 입맛에 맞는 생물학이 리센코의 용불용설이어서 그런 것이다. 물론 소련과 현실사회주의가 파시즘이란 이론은 반박이 많이 된 상태다. 이를 전체주의론이라 하는데 이거 1950년대 이론이다. 한나 아렌트 등이 이를 주장했다. 이들은 전체주의=파시즘이기에 전체주의 국가인 소련 또한 파시즘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 파시즘은 전체주의 뿐 아니라 대중의 지지(대중주의=포퓰리즘)가 없으면 성립이 되지 않는데[3](그래서 극우가 대중과 연결된 반지성주의와 연관이 짙다) 소련은 성립부터 레닌이 제헌의회를 없애버리며 대중의 선거 결과를 무시하고 성립했다.
북한 역시 반지성주의와 굉장히 밀접하다. 김일성은 1인독재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 인텔리(지식인) 계층의 영향력과 기존의 모든 사상을 말살해버렸는데, 이 과정에서 주체사상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모든 문제를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믿는 지식인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의견을 발표할 수 있다면 독재가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체사상은 반지성주의와 지식인에 대한 적개심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과학적 사실이 A를 가리키고 있어도 아기돼지 꿀꿀이가 B가 사실이라고 말하면 꼼짝없이 B라고 발표해야 하는 곳이라...[4] 결국 얘네도 정상적인 의미에서의 지적 성실성은 사실상 기대할 수 없는 한심한 수준. 이런 현실에서 무슨 발전이 있고, 혁신이 있겠는가? 주체사상과 유일영도체계가 확립된 이후에 북한이 나날이 퇴보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굳이 김일성이 아니더라도, 모든 독재자들은 지식인 계층과 이성을 적대시하고, 항상 감정적 선동을 선호한다. 소위 우민화 정책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대중이 개돼지 상태에 머무를 때 다루기가 쉽기 때문이다. 때문에 '''모든 독재는 언제나 지적성실성과 사고의 자유를 내세우는 지식인을 탄압한다.'''
미국의 대외 외교정책이 삽질을 반복하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반지성주의 때문이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이 대표적 사례이다.[5] 한국 광복이후 미군정 치하에서 한국의 실정을 이해하지 못한채 들어와 점령군 행세를 하여 갖은 삽질을 한 결과 한국의 좌우익 대립과 사회 혼란이 가중된 것과, 한국전쟁 시기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현지인들을 좌익으로 몰아 살상한 노근리 학살 사건을 위시한 미군의 일련의 전쟁 범죄 역시 반지성주의의 산물이다.

5.2. 근본주의 기반 종교


'''나는 우리에게 지각과 이성, 그리고 사고력을 부여하신 하느님께서 우리가 그것들을 사용하는 행위를 금하시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탈레반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들은 이슬람과 무관한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작태를 부리고 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도래 이전의 수많은 역사 유적폐허로 만들었으며 IS는 서구의 과학기술과 철학에 대한 노골적인 증오를 표출한다. 그 예로 모술 지역을 점령한 후 "무신론과 부도덕한 서적들을 불태우겠다"고 공언하며 공공 도서관에서 6,000여 권의 과학, 기술, 철학, 역사, 종교 관련 서적들을 싹 불태워 버렸다. 그런데 정작 이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혐오해 마지 않는 서구기술의 총아인 트위터 등의 SNS로 열심히 선전선동을 일삼고 있다.
탈레반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적어도 종파를 막론하고 극단주의적인 종교인들이 반지성주의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은 흔해 보인다. 미국이나 극우 성향의 한국의 개신교 역시 이런 문제가 종종 제기되어 왔다. 특히 신비주의(charismatic) 계통이나 복음주의 계통에서 유난히 반지성주의적인 측면이 심하다. 또 어떤 이들은 덮어놓고 무조건 "믿을 것" 만을 강요하고 의심을 거부하는 측면이 반지성주의와 상통한다고도 생각한다. 이러한 근본주의 계통에서는 온건파 신학자들을 '믿음이 약한 먹물들'로 폄하하기도 하고, 진보적 성향을 보이는 신학자나 교회는 적그리스도로 간주해버린다.[6] [7]
현대 기독교가 반지성주의로 타락했다고 분석하는, 한번쯤 읽어볼 만한 글.#ㅍㅍㅅㅅ #뉴스엔조이 근본주의 개신교가 반지성주의로 치닫는 것은 그들 신학에서 인간이성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인본주의적 신앙관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앙에 이성이 개입되는 것을 '인본주의'라는 '잘못된' 신앙관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학은 필요없다! 오로지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라는 식의 태도도 일종의 반지성주의적 신앙관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기독교장로회대한성공회 등 후기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이고 있는 개신교 교회나 한신대성공회대 감리교 계통의 신학대학 등 진보 성향의 신학교에서는 신앙과 이성의 어울림을 강조한다. 물론 이들 교단에서도 드물지 않게 근본주의 성향의 목회자들이 나타난다.
그나마 가톨릭의 경우는 20세기 이후로는 반지성주의와 엮이는 경우가 비교적 덜한데, 실제로 요한 바오로 2세가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이라는 제목으로 유화적인 회칙을 천명했던 적도 있고, 신앙과 이성이 양립 가능하며 실제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1936년교황청에 과학한림원(Pontifical Academy of Sciences)도 설립했고, 중세 시대에는 가톨릭교회 자체가 당대 유럽의 학문의 산실이었다.[8][9] 근세, 근대에도 공부는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는 이유로 수도자가 되는 일이 있었다. 그레고어 멘델이 그렇게 수도회에 입회하여 수도사제가 되었다. 물론 가톨릭도 처음부터 순순히 진화론이나 기타 과학적 성과를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다. 사실 21세기만 해도 교황아프리카에서 콘돔 사용이 에이즈를 유발한다고 운운하여 엄청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미국근본주의 기독교단과 기독교 우파들의 종교적 반지성주의가 전사회적으로 심각한 폐해를 끼치고 있다. 창조설, 성서무오설 등에 기반해서 보편적인 자연과학을 부정하는 행태는 극우 기독교의 보편적인 현상이며 선진국 중에선 유독 미국에서 심각하다. 이 현상은 미국 남부의 바이블벨트와 중서부 지대에 근거를 둔 과격파 남부 침례회, 오순절교회 교파 등의 근본주의 교회들의 영향력 때문이다. 소위 개척시대부터 '먹물'들보다 힘쓰고 장사 잘하는 '현실적인' 사람들을 숭상하는 경향이 강했던 미국 남부와 중부의 역사적 문화적 성향이 짙은 현상임을 볼 수 있다.
종교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반지성주의가 순기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성경을 스스로읽고 잘못해석하는경우, 잘못된해석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는경우를 예방할수있다.

5.3. 나라별 현황


공교육 제도가 정비되고 개개인들의 지식수준 또한 과거에 비해 대폭 상승한 현대 사회에서도, 비단 여러 개발도상국 뿐만 아니라 미국, 서유럽을 위시한 서구권 국가들, 그리고 한국이나 일본등 아시아권 선진국들에서도 반지성주의는 그 세를 여전히 펼치고 있다. 이는 각국의 근대사 및 현대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많으며, 어느 나라도 이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는게 실정이다.

5.3.1.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교육열이 상당한 편이고 인간개발지수 또한 상위권이며 식자를 우대하는 국민적인 태도가 있으며, 실제로 국민 교육 수준이 매우 높은 나라라서 언뜻 반지성주의가 약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편이다. 반지성주의를 부족한 교육 탓이라 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지식의 양보다는 '''지식에 대한 태도'''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 옳다. 모르는 것을 새롭게 배우거나, 이해 못 해도 그럴 수도 있겠다고 개방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모르는 지식을 배우길 거부하고, 누군가가 알려주는 것 자체에 적대감을 표하는 사람이 극명하게 나뉘지 않는가.
빠르게 발전해온 대한민국의 특성상 세대별로 반지성주의의 발현 원인이 약간 다르다. 한국전쟁이후 절대적인 교육인프라가 부족했던 탓에 기성세대는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 빼곤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성년이 된 학교 졸업 후에도 시대변화에 따라갈 수 있는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법, 이른바 평생교육이라고 하는 교육복지 제도가 매우 부족했다.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 또한 길기 때문에 따로 공부할 짬을 내는것도 어려웠다.
교육받을 기회를 놓친 이들의 컴플렉스는 먹물이라는 멸칭에서 나타나듯 교육받은 자들에 대한 질투와 적대감으로 변했다.
이는 육아 방식을 둘러싼 갈등에서 드러나는데, 노인 세대들은 전문가들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들 세대에서 익숙한 방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어 젊은 부부들과 갈등을 일으킨다.
또한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검증도 안 된 영양즙을 맹신하는 경향도 보인다.

5.3.1.1. 입시 위주 교육

젊은 세대의 반지성주의는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강제하는 구시대의 입시 교육+주입식 교육의 극단화에서 비롯된다. 교육 현장에서 수험에 비중이 낮은 과목은 등한시되며 설령 수험과목이더라도 기술적인 문제 풀이와 관련 없는 심화 지식 및 학습법 또한 예외가 아니다. 알아야 할 지식과 알면 시간 낭비인 지식을 정해놓고 그 알아야 할 지식도 닥치고 외우게 시킨다. 이 과정에서 지식은 더이상 삶에 도움이 되는 양분이 아니라 맞혀야 하는 표적과 그것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전락할 뿐이다.
이렇다 보니 공부의 즐거움을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아무래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공부 자체에 흥미를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기성세대 관점에선 이런 학생들은 기특한 학생이지만, 공부에 재미를 못 붙이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어른들 말을 안 듣는 한심한 낙오자일 뿐이다. 당연히 양쪽의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영국이 섬이라고 말한 사람을 합심해서 쫓아내고 기사에 사흘이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잘난체하지 말라며 분노하는 그들은 얼핏 보면 단순히 유식한 사람을 증오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이런 양극화 현상 속에서 밀려나 기성세대로부터 인정 못 받는 부류들이 스스로를 감싸는 항변에 가깝다.
반지성주의의 전 단계라고 볼 수 있는 출세 목적 교육에 매몰되어 돈 되는 실용적인 학문 이외의 것을 배격하거나 쓸모없다며 천시하는 세태와 실업, 그 중에서도 청년실업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다보니 당사자들도 어쩔 수 없이 돈 되는 학문(경영학, 공학) 이외의 것(인문학, 과학 분야 중 특히 순수과학)은 진로에 방해된다며 멀리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입시 위주 교육 + 억지 독후감이나 청소년 권장도서 따위로 학생들이 글을 읽는 행위 자체를 기피하게 되고 유튜브나 스마트폰등으로 정보가 단순화+시각화 되다보니 실질적 문맹의 증가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10] 단순히 교육학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이 대학을 나와도 글을 제대로 읽거나 해석하고 주관을 가지되 극단주의로 기울어지지 않는 형평성을 지닌 사람들이 매우 적어지면서 생기는 부작용은 매우 크다.(지식, 지능과 성격이 다른 통찰력의 비중이 크다.) 기사나 어떤 사건사고에 대한 확인이나 사실관계 확인 없이 댓글을 달고 또 간단한 지표들만 해석하고 또 글을 쓸때 너무 가볍게 다룸으로써 생기는 문제점이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 SNS, 그리고 나무위키 등 대중적인 대형 커뮤니티등에서는 이미 숱하게 드러나 있다.
실질적 문해력이 낮아지고 있는 독자들은 출판계 흐름에도 좋지 않은 쪽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독서 소비율도 감소추세이다. 또한, 책이라는 게 어디까지나 입시나 취업을 위한 수단이나 보니, 자연히 입시용 교재나 자기 계발서 위주로 시장이 형셩될 수밖에 없다.
한국 출판계가 정보와 순수성을 지닌 책들에 비해서 비교적 깊이는 적고 순수성은 떨어지고 대중적이고 감성만 있는 글과(브런치의 대다수 글들[11], 에세이, 경수필) 책들을(자기계발서, 웹소설, 만화책) 선호하게 되는 것은 기존 작가들의 자질의 문제도 있지만 지나치게 (순수에만 치중하여 대중성을 말아먹거나, 되도않는 철학 또는 편향성을 갖추거나) 독자들이 대중성만 갖춘 시장을 선호하고 그것이 생산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있을 수 있다.
'''대중적인 서적들을 소비한다고 해서''' 대중의 선호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책을 주관없이 고르거나 (자신이 읽어보기 이전에 추천받거나 평가되지 않는 것들은 배제하거나, 기존에 있던 평가만 보고 책에 대하여 선입견을 갖음) 제대로 된 독서습관을 갖추지 못하는 것(책 자체를 읽는 것 이전에 다른이의 평가에 의존하거나 독서자체를 생각하며 즐기는 것이 아니라 쓰잘데기없는 속독이나 요약으로 암기식 독서로 시간과 돈만 투자하고 이도저도 안됨) 등의 부작용이 있다.
실질적인 문해력과 독서습관과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고 무게를 담고있는 서적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줄어들다 보니 대체제로써 '책 라디오'나 SNS 독서 추천, 유튜브로 '독서 리뷰'같은 것들이 많아지게 되었는데 다른 현상이 일어난다. 오디오북이나 영상을 통해 책을 읽도록 유도되는 것이 아니라 주객전도 되어서 책의 줄거리를 간략화시킨 영상만 보고 책은 안 읽는 사람들이 많아진다.[12]
이런 부작용은 대부분의 독자가 글에 대한 주관을 가지고 통찰력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고작 인용이나 인기팔이, 스노비즘에 휘둘리기 쉽게 만든다. 책벌레나 학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지만 독서의 순기능인 주관적인 가치관과 통찰력, 지식생성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반지성주의를 타파하려면 대중의 변화뿐만 아니라 교육부 자체도 개혁이 필요하다. 멍청하게 시험이나 수능에서 현실에 별로 쓰이지도 않을 어려운 단어만 출제자들이 어린애들에게 별 도움도 안되면서 그렇게 해왔었다고 지식이나 자랑할려는 심보로 비비꼬아서 출제[13]하는 것도 막아야 하며, 작품에 대한 해석이나 주석따위 외우는 잘못된 해설방법이나 그런 교육방침도 대대적으로 뜯어 고쳐야한다. 학교 방학숙제로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대다수의 교사나 심지어 대학까지 자체도 기존의 입장만을 고수하고 주관이나 통찰력이 아니라 글의 줄거리나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만 보고 자신들과 제자들을 평가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농담이 아니라 교사나 어른들 부터가 실질적 문맹일 확률도 높다.) 독후감같은 것을 쓰라고 하지 말고 타인을 교정하기 이전에 본인이 스스로 배우고 생각하게 만들며 행동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방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의 수업과 그 삶이 인생에 있어서 전부이고 진정한 교육인양 포장해서는 안 되며 성적이 나오는 것에만 주의하지 말고 인간으로써 자립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 국영수사과 예체능 지식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는 지식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철학, 윤리학, 그리고 왜곡되지 않은 역사 그대로를 보여 주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교육이나 돈관리를 역시 미성년자들은 스스로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격려를 해주고 독립할 수 있게 교육시켜야 한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자기가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과연 잘하는지에 대해서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다.''' 인간에게 학습은 결코 개념이나 상식, 기억력으로 습득되지 않는다. 가장 원초적이고 빠른 길은 이해인데 이 이해란 본인이 스스로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과정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이기에 이성보다 감이 더욱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절대 교육할 때 원리원칙에 의거해서는 안 된다. 좋은 교육자란 단순히 정의를 잘 풀어내거나 설명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느끼게 해주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며 무엇보다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교육자였던 예수, 소크라테스, 공자, 맹자, 앤 설리번 등등 좋은 교육자들은 절대 학생들에게 학문적 정의나 그런것들에 치중해서 가르치지 않았다. 스스로가 가르치는 이에게 연장자로써 사랑도 많이 하고 학생들에게 질문도 많이 던졌으며 생각을 이끌어냈다. '''뭣보다 제자들이 알건 모르건 늘 생각하게 이끌어줬을 뿐이지 개개인의 덕성을 평가할 뿐 학문적 성취나 현재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느 교육을 받았건 그것을 잠재된 학습능력과 관련되었다고 보지도 않았으며 서열을 메기는 일 따위는 전혀 없었다.''' 사랑하고 응원하며 스스로 책읽고 아이들을 존중하며 가르쳐되 배울 때도 자세를 낮추어 배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문해율이나 진정한 의미의 공부, 그리고 애들 인성 관련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대대로 선순환이 이루어 질 것이다.

5.3.1.2. 교육 현장에 대한 불신

현재의 학부모 세대들은 뇌물을 받거나 기분 내키는 대로 체벌을 하는 막장 교사들에게 시달려 온 기억이 있기 때문에 교사에 대한 이미지가 결코 좋지 못하다. 이렇다 보니, 애초에 공부를 잘해야만 교사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교사 집단 자체를 꼰대라 여기며 불신하고, 이러한 태도를 자녀들이 배운다.
결론적으로 말해 '''현대 대부분 학교나 사회에서는 사랑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대부분의 부모와 교사들이 이론만을 중요시하고 지식만 가르쳐준다.'''
실제로 인생은 단순히 지식을 알려진 방식대로만 습득하고 배우는 것으로 헤쳐나가지 못한다. 자신이 독립된 인격을 가지고 배울 것을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자신의 감정이나 여러가지 변수에 대처하는 것이 살면서 훨씬 중요한 일이다. 인생은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는 것인데 '''그런 훌륭하고 독립적인 자아를 가지기가 워낙 힘들고 그런 사람도 적으니 어른들도 모르고 학생들에게도 그런것이 전수되지 않는다.'''
실제 세상에서는 계속해서 배워야하며 자신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게 엄청 위험하고 또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많은데도 '''정답이 절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정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인생인데 확실하지 않으면 정답이 아니며 확실한 것 정답만을 찾는 것이 공부이자 인생의 전부'''라는 그런 엉터리 방법으로 교육받았으니 근본적인 문제점을 아예 자각하지를 못한다.
어른이나 앞으로 태어날 세대들이나 학교나 돈, 특정 직업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서로간의 편을 가르며 그 길에서 벗어나면 불안정하고 안 될 것이라고 선입견부터 가져버리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팽배해져 있다. 이런 어른들로부터 상처 받은 학생들은 어른들을 불신하고 이것이 결국은 반지성주의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언론이든 기성세대든 그리고 정치든 맹신해서도 안 되고 무조건 불신해서도 안 된다.
다들 자기 입장에서는 자기가 옳다고만 말할 뿐이지 실제로 어떤 모순이 있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유행이건 대형커뮤니티건 이런 나무위키 건 책 대충 읽고 절대 아는 척 하지도 말고 남의 의견에 쉽게 동의하거나 반박하지 말고 그냥 어떤 소리가 나오는지만 듣고 흘겨 들어라.
제일 현명한 사람은 세상의 생각 이전에 자기부터 먼저 생각하며 자신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다. 인터넷은 당신이 동조한다는 것만으로도 찌라시나 불쾌한 세상일들이 없어지는 데 도움이 되기는 커녕 불을 붙이고 감정소모만 크게 만들 뿐이고 당신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는 커녕 시간이 뺐기는 것이다.

5.3.1.3. 정신과 치료 기피

대한민국 국민들은 입시와 취업 준비로 인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음에도, 정신과를 잘 찾지 않는다. 정신과를 찾는 것이 쪽팔린다고 생각하다 보면, 현실 도피를 위해 악플을 달거나 극단적인 커뮤니티 활동에 몰두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정신과 치료 기피도 궁극적으로는 반지성주의로 빠지는 길이다.
정신질환은 학습과 감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데 의심은 가지만 직접 검사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다. 신경증이든 정신증이든 정신병이 있다면 결코 확인하거나 치료받기 전까지는 진짜 운이 좋아서 그 스트레스의 원인을 완전히 극복하지 않는 이상 나아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커지다가 나중에 반드시 치료해야 할 지경에 이르는데도 극단적인 방어기제가 발동해 그런 치료나 도움의 손길마저 거부하게 만들어서 결코 법적으로 보면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며 그런 정신적인 불안에 호소하는 본인을 막아줄 방법이 아직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런 것들이 주위에도 악영향을 미쳐 사회적으로도 매우 골치아픈 것이다. 심해지면 이것도 암처럼 인생을 박살내버리며 답이 없는데 심해지기 전에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이런 마음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자신의 마음은 박살나있는데 고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한국은 문화적으로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특히 더 심하다. 그렇지만 그걸 해소하지 않고 버틴다면 나중에는 바보나 백치 정도가 아니라 진짜 미치광이가 되는 것이다.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정신병은 결코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당신이 약한 것이 아니다. 그런 마음의 불안을 감추고 회복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멀쩡한 척 하라는 이 세상이 가식적인 것이다. 오히려 당신이 이런 내면의 일그러짐을 간과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힘을 추구할수록 본인도 행복하지 못하며 주위 사람들도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고통받게 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끊어버려라 교수든 친구든 심지어 가족이든 직장 상사든 자신을 인간답게 대접해주지 않는 사람에게 돈이나 사회적 시선 때문에 참고 견딘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반지성주의와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그 작은 시도야말로 당신을 더욱 현명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면 쉽게 화내고 판단하고 이성은 계속해서 분별력을 잃어가고 그 이성이 조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신적 스트레스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 간략화 된 판단과 이성이 퇴색된 사고방식조차 정당화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우울증을 앓고 있던 정황이 있어도 자신의 활동을 계속한 링컨같은 사례도 있다. 그러나 갈수록 악화되기만 했고 정도로 의지가 강한 사람은 매우 드물뿐더러 죽을때까지 엄청나게 고생을 해야했다. 그도 결국 정신병을 극복하지 못했으며 더군다나 우리는 링컨처럼 정신이 강건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정신적으로 단련이 된 사람들도 삶에 대한 의지와 자신의 잠재력을 꺾어버리고 한없이 심연속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정신질환이다.
직장환경이나 학교생활등 각자가 다른 삶을 누리고 사는 사회속에서 좋게봐줘서 가끔씩만 기쁜일이 있을뿐 대부분의 일상에서 무기력하고 계속 열받음을 느끼는 환경 속에서 응분이 쌓이고 있는데 도대체 생각할 겨를 자체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세상을 좋게 봐줘야 할 필요가 어디있단 말인가? 계속 스트레스 받고 억눌리는 환경에서 남들은 그것을 버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정신적으로도 이성적으로 봐도 결코 좋지가 않다. 인간은 감성없이 이성으로 억지로 유지하고 버티려고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본인에게 스트레스주는 환경에서 그렇게 악착같이 버틴다 해도 업무효율도 떨어지고 삶의 질 자체가 떨어진다.
사랑과 더불어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할 수 있어야 당신의 감성과 이성이 선동에 빠지지 않고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진짜 비겁한 사람은 그것을 약하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그 입장을 후대에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세상이다. 그런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것이 자신의 건강 뿐만 아니라 지적인 생활을 위해서도 그리고 사람이 성장하려면 반드시 필요한데 말이다. 치료받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고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을 고쳐야 된다.
범죄나 무식, 편향성이 과연 어디서부터 온다고 생각하는가? 주로 마음이 병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오래 버티고 제때 그 상처를 치료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상처가 커지면 커질수록 발생하는 것이 주 원인이다. 대부분 인간의 갈등과 문제점은 법과 이성적 사고 이전에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데서 부터 온다. 예나 지금이나 다른 사람들을 돈이나 수단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대접하고 본인 스스로도 이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여서 커지지 않게끔 해소하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물론 인류가 무지를 벗어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며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다.

5.3.1.4. 진영 논리와 권력자에 대한 반감

교육 문제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반지성주의가 발현되는 원인에는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감, 학문과 정책이 연관되어 발생하는 정치적 진영논리, 종교, 음모론의 성행등도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살벌한 입시경쟁과 학벌 숭배 풍조는 극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만들어 내는데, 패배자로 내몰린 대중들의 의식 속에 엘리트 계층에 대한 적개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특히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심각한 양극화로 대중들의 삶이 점점 피폐해져 가자, 2000년대 중반 이후 온라인 공간의 확대를 타고 이런 불만이 공공연히 터져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공자님 말씀이나 하고 있고, 애초에 너네 먹물들이 나라를 이렇게 만든 거 아니냐"'''는 식의 불만이다. 문제는 대중들이 '''진짜로 사회를 이렇게 만든 주범인 정치, 경제 엘리트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박봉과 고된 업무로 힘들게 살기는 마찬가지이며, 전혀 저 사태와 관련이 없었던 인문학순수과학 쪽의 지식인들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쪽 계열 학자들의 절대 다수는 대중들이 막연하게 상상하는 '엘리트'에 전혀 해당되지 않으나, 대중들은 그런 것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특히 일부 주류언론, 기득권 세력들은 이런 경향을 이용해서 대중들을 선동해서 비난의 화살이 지식인들에게 향하게 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려는 철면피 행태를 보이고 있기도 한다.
때로는 전문가가 편향되어있거나 그러고 있다는 오해를 받아 불신을 받기도 한다. 시장vs정부의 대립으로 대표되는 경제학 관련 이슈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고 싶어하고, 시장은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신고전학파vs케인즈학파의 학문적 논쟁이 좌우진영의 논거가 되어 정치적인 성격을 띄게된다. 과학또한 정책결정의 근거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광우병 파동 당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사대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등 일반인의 능력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에 있어서 전문가의 증언은 사실을 전달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정치인들에 의해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된다. 사학도 마찬가지다.
독립운동때부터 좌우로 분열되어있던 한국의 정치세력이 지금도 고스란히 좌우로 남아있는 까닭에 똑같은 역사적 사실을 놓고도 사학자들의 근현대사 해석이 갈릴 수 있다. 박정희나 김대중같은 인물의 공과를 논하는것은 곧 현재의 좌우진영을 평가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이외의 비정치적 분야에서도 디워논쟁처럼 뜬금없는 좌우대립이 촉발되기도 한다. 당시 미학 전공자인 진중권, 그리고 수많은 영화인들이나 비판적인 입장을 낸 일부 관객들의 문제제기에 대해서 소위 디워빠들은 무능한 충무로와 먹물들의 질투와 시샘, 친미 사대주의자들의 자국비하라는 식의 감정적인 반발을 보였다. 이렇듯 전문가가 자의든 타의든 민감한부분들 건드리는 경우가 생기면 대중들은 실제 팩트와는 무관하게 자기 정치적, 사회적 입장에 따라 답정너식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의 말이 자신이 생각한 결론과 다르면 전문가를 무조건 의심하는 것이다.'''
서구권의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심한 편은 아니지만 반지성주의에 있어서 종교의 영향도 상당하다. 한국의 기독교가 미국의 근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들 역시 매우 과학에 적대적이다. 특히 진화론은 기독교가 최우선 타도 대상으로 놓고 있는 타겟이다. 교과서 진화론 삭제 사건에서 나타나듯 정부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힘이 있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생명과학 뿐만이 아니라 지구, 우주과학도 성경의 교리와 배치되기 때문에 기독교의 공격목표가 된다. 영미에서 만들어지고 한국에도 수입된 지구 평면설, 아폴로 계획 음모론 제기의 근간에는 종교적인 반발심이 깔려있다. 이들 중에는 인류가 우주로 나가본 적이 없다거나 더 나아가 우주란 거 자체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아무리 교과서에 실려있는 기초적인 내용을 알려줘도, 전문가들이 공들여 설명해줘도, 심지어 직접 체험하라고 배를 태워줘도 절대 믿지 않는다. 지구🌎 평면론, 사실은 평평하다?
반지성주의는 별 이유없는 단순한 신비주의나 음모론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세기말시기가 유행의 시작이었다. 이때 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심령, 초능력, 외계인같은 대놓고 농담거리인 소재에 곁들여 교묘하게 말이 되어 위험성을 지닌 유사과학, 유사사학같은 검증되지 않은 화제들이 생성되고 전파되었다. 기존에 존재하던 과학적, 역사적 진실이 거짓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은 백신을 불신하고 인간의 자연치유능력을 과신하여 안아키같은 곳에 빠져들거나 정부의 악행이 역사적으론 이미 망했지만 실제로는 비밀리에 존재하는 일루미나티가 벌인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국회의원 후보는 본인 유튜브나 팟캐스트에 서울대학교에서 농과대학이 입결이 가장 낮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는 의미가 없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막말을 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것이 엘리트에 대한 불신[14]과 농업에 대한 무지함[15]이 복합된 것이다. 그런데 이 게 문제인 것이 그 후보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이러한 것이 장기적으로 대학에서 농과대학은 쓸모가 없다는 식의 반학문적, 반과학적 이론이 설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요소들이 유일한 원인으로 작용하기보단 서로 복합되어 시너지를 일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근절은 쉽지 않다. 베리칩 음모론은 엘리트에 대한 불신과 기독교 세계관이 결합하고 환빠는 강단사학에 대한 열등감, 식민사학(으로 간주하는 실증사학)에 대한 적개심, 극단적 민족주의가 결합하여 탄생했다. 겉으로는 같은 반지성주의 현상에 몰입된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그 동기가 제각각일 수 있다. 인간의 달 착륙을 부정하는 반지성주의자들을 예로들자면 과학자들이 아니꼬워서, 미국의 업적이라 깎아내리고 싶어서, 성경에 어긋나니까 등 여러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반지성주의자들의 주장은 전문가들의 반박을 맞고 해프닝으로 끝나게 된다. 그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 집단과 동등한 수준의 일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황우석의 사례처럼 대중의 무지를 이용하여 전문가가 혹세무민할 가능성도 상존하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관심과 견제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국내의 반지성주의의 득세에 대해 기존의 엘리트들도 크게 반성하고 스스로 큰 혁신을 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자신들이 지식과 명망을 개인의 이득이나 목적을 위해 곡학아세하여 엘리트들에 대한 신뢰성을 스스로 깎아먹었던 것을 인정하고 이에 대하여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 따져보면 지식인들 스스로의 자업자득인 면도 상당히 크기에 반지성주의는 단순한 엘리트들에 대한 근거없는 적대감이라고만 인식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애초에 엘리트들에 대한 비판론자의 정당하고 진중한 비판과 지적을 절대로 반지성주의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반지성주의가 염려하지 않을 수준인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알게 모르게 미국서구권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미국의 영향을 모르는 사이에 강하게 받는데, 이는 대한민국 내에 강하게 퍼져 있는 무의식적인 미국 중심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비록 2020년 들어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구미권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졌다고는 하지만 이는 의식적 차원이고, 오랜 기간 동안 뿌리내린 무의식적인 관념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딘지 이상해 보이는 사회 현상이라도 미국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안심이 되고 조금은 더 당당하게 그 현상을 마주할 수 있는 심리가 바로 이러한 이유로 나타난다. 미국의 반지성주의 및 반과학은 늘어만 가고 있는데 한국이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계속 미국의 성향을 닮아 가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아직 대한민국이 반지성주의가 심각하게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유튜브 등을 통해 갈수록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미국식 반과학주의·반지성주의가 알음알음 퍼지고 있는 것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

5.3.1.5. 사례

  •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도 "촛불시위는 지지하지만, 지금 인터넷에 퍼진 광우병에 관한 속설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차분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지식인들은 대중들에게 인터넷상에서 MB의 충견이니, 한나라당의 하수인이니 하는 식의 조리돌림을 당했다.
  • 2015년, 송유근 논문 표절 사건에서도 송유근의 학자적 역량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문은 모두 "천재를 시기하는 주류기득권 학자들의 질투" 식의 대중들의 감정적인 반발에 직면했다.[16]
  • 2005년, 황우석줄기 세포 논문 조작 사건
  • 2016년, 12월 이후로 발생하는 태극기 시위 등에서 대중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지식인/전문가들에게 극단적인 적개심을 표출하는 현상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 1980년대, 운동권에서 주체사상이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 이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운동가들이 가장 혹독하게 비판한 게 주체사상이 사실상 반지성주의라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을 종합한 게 이진경[17], 조국, 진중권 등이 공동집필한 《주체사상비판》이다.
  • 국내 의료계에서는 지난 2009년 9월경에 《FTA를 대비한 전통 민중의술 활용을 위한 입법 정책 방안》이라는 보고서(?)가 나오면서 소위 민중의학이라는 개념이 나타나서 논란이 되었다. 해당 문건은 "입법정책연구회"라는 사단법인에서 국가 예산을 들여 심도있는 연구를 통해서 국회의원들에게 전달된 적이 있는 보고서라고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유사과학 + 오컬트 + 신비주의의 결정체라고 해도 될 수준이다.[18] 당장 현대의학계의 반응은 둘째치더라도 한의사에게도 황당하다 못해 실소가 나올 지경이라며 대차게 까였다. #[19] 그 내용 중에는 "의료행위는 면허가 있는 일부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민중 모두의 소유이며, 이제는 의술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줄 때이다" 같은 요지의 표현들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빼도박도 못하는 반지성주의의 완벽한 사례 중 하나다.
  • 2017년 농촌진흥청이 시민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GMO 개발을 사실상 포기하게 되었는데, 시민단체의 말만 듣고 과학기술 정책을 결정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 역시 제대로 된 이해와 합의보다는 맹목적 공포감과 반감에 크게 휘둘린 결과이므로 반지성주의로 볼 수 있다.
  • 일제의 잔재를 뿌리뽑고 우리 을 복원하자는 명분으로 진행된 아까시나무 제거 작업도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원래는 민둥산을 빨리 회복시키기 위해 뿌리가 강하고 빨리 자라는 아까시나무를 심었던 것인데, 강한 생명력 덕분에 아까시나무가 산림의 주요 수종으로 자리잡자, 일제가 우리 산을 망치려 외래 식물을 심었다, 다른 나무를 몰아내어 주류를 차지했다는 오해를 부른 것이다. 기사 아까시나무가 기존 나무를 몰아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도 나무를 많이 베어내어 다른 나무가 없었던 것뿐이다.
숲 전문가의 견해에 따르면 아까시 나무가 해롭다는 것은 지극히 인간 위주의 관점일 뿐이라고 한다. 벌과 새의 관점에서는 밀원 식물[20]인 아까시나무가 오히려 생태적이라는 것이다. 링크 그리고 극양수인 아까시나무는 숲이 우거지면 숲이 다시 파괴되기 전 까진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다행히도 이러한 지적이 많이 알려져 현재 농가에서는 양봉 활성화 차원에서 다시 아까시나무를 심고 있다고 한다.
  • 악의 핏줄 같은 미신이 끼어들 때가 많다. 전문가들은 비행청소년의 발생 원인을 환경에서 찾고, 여기에 중점을 두고 해결책을 짜면 대개는 다 해결이 된다.(대표적으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인 방법을 생각하는 대신, 인간이 해결 불가능한 미신을 부여하기 때문에 "어차피 저 사람 몸에는 악의 피가 흘러서 교화는 헛수고야." 라고 개선 시도 자체를 포기한다. 이로 인해 진작에 예방할 수 있었던 작은 비행조차 방치되어 큰 범죄까지 이어지고 만다. 사실 이러한 악의 핏줄론을 조금 더 과학적으로 만든 담론이 사이코패스 담론이다. 사이코패스 자체는 심리학에서 연구되고 있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과도하게 대중들에게 부풀려졌고, 이에는 공포 마케팅이 한몫 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렇게 된 것에는 대중 이전에 전문가들의 책임 역시 크게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 환경관련 과학 연구에서는 특히 일부 기업과 과학자들의 반지성주의가 존재하기도 한다. 가령 기후변화 부정론 같은.
  • 신중론자들에 대한 반응. 신중론자들은 지금까지 나온 의혹들을 통해서는 인과관계를 명확히 할 수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판단을 보류하고, 섵불리 확신하는 것을 저지한다. 그러나 반지성주의는 이를 회색분자라고 욕하거나 심지어 신중충이라고 매도한다. 특히 맞을 짓한 사람에 대한 비난 여론에서 '신중'을 외쳤다간 "감싸는 거냐?"소리를 꼭 듣는다. 이런 일로 인해 초래된 것이 세 모자 성폭행 조작 사건 등의 여러 마녀사냥 사건들.
슬프게도 신중론자들이 욕을 먹게 된 건, 실제로 불리한 입장에 선 사람들이 곤란해지면 '신중하라'라고 외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유명인의 논란'에 대해서는 신중론자들은 욕을 먹지만, 유독 페미니즘과 연관된 성추행 의혹에서는 신중론이 힘을 얻는다. 반대로, 페미니즘 유명인이 사건을 일으켰을 경우, 이번엔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 신중론이 힘을 얻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 일어나다보니 신중론이 불이익을 막기 위해 일어나는 불 끄기처럼 보이기 쉽고, 신중론 자체가 나쁜 것으로 보이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다만 유형만으로 궁합을 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훨씬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안 및 결과를 부정하려 하는 것은 반지성주의가 맞다. 성격유형론은 한 사람의 모든 면이 아닌 일부만을 보여주는 도구일 뿐이다. 심지어 취업공지를 올릴 때, O형이나 B형 인원을 구한다고도 한 것이나 A형이 아니면 면접에서 탈락시키는 것도 있었다. 혈액형 성격설의 경우 특히 문제인게 일단 ABO식 혈액형 발견 이후 이에 대한 연구가 제국주의인종차별우생학에서 시작되었고, 한국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우생학자에 의해 들어온 유사과학이다. 당시 혈액형이 4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한데다가 "아프리카는 O형이, 아시아는 B형이, 유럽은 A형이 많으니 O형은 유전적으로 가장 열등한 사람들이다" 이라든지, "일본인보다 B형 혈액형 비율이 많은 조선 민족은 유전적으로 열등하다" 라며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링크 참조.
물론 재미로 보는 것이나, 자신만의 성격과 적합한 역할 등을 찾기 위한 나침반 정도로 사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를 가지고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성격을 함부로 단정짓고 과학적인 실제 결과물을 무시하는 것은 곤란하다. 무엇보다 혈액형 성격설을 가지고 '혈액형 성격설을 비판하는 건 비사교적이고 남에게 불쾌감이나 안겨주는 아싸/찐따와 같은 작자'라고 인신공격하는 건 정확히 반지성주의에 해당한다.

5.3.2. 미국



[21]
반지성주의라는 용어가 널리 퍼진 것은 냉전시대 미국의 사회상, 그중에서도 매카시즘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한 것이다.
현대 미국인들은 반지성주의 풍조가 심각하다.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미국에선 공부'''만''' 잘하는 사람을 하찮게 본다"는 이야기는 이런 반지성주의 풍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부만 잘 하는 사람을 미국에서 흔히 '너드(nerd)'라고 비하하는데, 이 또한 반지성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인들의 지식인에 대한 반감은 반지성주의 이외에도 실질적으로 힘 쓰는 사람을 더 우월하고 남성적이라고 보는 마초이즘은 물론, 미국의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하다.
흔히 말하는 카우보이 문화라고 하는 것이 이것인데, 미국 문화에서 영웅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정치/문화적 엘리트를 싫어하면서 적당히 투박하고 생존력이 좋으며 총 잘 쏘는 사람이다.[22] 선비승려, 이에 상응하는 지식인 계층의 사람이 영웅 역할로 등장하는 동아시아 문화권과는 상반되는 위치에 있으며, 동아시아 계통의 문화권의 학구열이 매우 높은 것과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이러한 영웅상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권에서는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이러한 타입의 영웅들을 협객이라고 부르는데 협(俠)의 가치를 전혀 없다고 보지는 않았지만 사회를 근본적으로 안정시키는 최고의 가치는 인(仁)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술한 근본주의 기반의 종교와도 연결된다.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더는 미국의 기독교가 18세기에 대각성운동을 거치면서 복음주의로 변화함으로써 반지성주의의 기원이 되었다고 보았다. 이성의 영향으로 종교적인 열정이 식어버린 청교도신앙을 비판하며 나타난, 믿음=구원의 단순한 공식과 극단적인 배타성으로 어필한 복음주의는 알기 쉬웠고 빠져들기도 쉬웠기에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미국을 정복한 복음주의는 존재 자체가 성경에 대한 도전인 과학과 공존할 수 없었기에 1925년 버틀러 법과 같은 방식으로 공격에 나섰다. 21세기에도 창조설교과서에 기재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대중들 사이에선 진화론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지구온난화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것은 덤이다. 미국은 당장 내일이라도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할 수 있고, 세계를 감시 도청할 수도 있으며, 수십 년 전에 사람을 달로 보낸 나라이다. 그런 나라에서 반지성주의에 호응한 백신 반대 운동 기승으로 홍역 파동이 분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백신이 정부와 거대 제약 회사가 사람들 상대로 치는 사기라 진지하게 믿는 일이 미국에서는 전혀 드물지 않다.# ## 이외에도 전혀 의학적 검증이 되지 않은 동종요법(homeopathy)같은 대체의학이나 천동설, 지구 평면설, 달 착륙 조작설 같은 것들이 기독교에서 비롯됐거나, 기독교와 연관이 깊은 대표적인 반지성주의 현상들이다. 하층민이나 저소득층같이 교육수준이 낮은 계층만이 아니라 교육수준이 높은 중산층 이상, 심지어 사회적 성공을 이룬 상위계층 사람들중에도 이에 몰입하는 사람이 흔하다는 것이 미국 사회의 무서운 점이다.
이런 행태는 바이블벨트푸어 화이트 계층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미국 전역, 모든 계층으로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2000년 및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아들 부시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것을 이런 반지성주의 경향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23] 다만 이런 해석은 진보진영 내에서도 논란이 많으므로 섣부른 판단은 금물. 단 지지자들의 성향과 별개로, 트럼프 본인은 반지성주의자임이 거의 확실하다.
유튜버 올리버쌤이 미국인들의 무식함을 소개하면서 언급하기도 했다.
심지어 소아과 의사가 "과학자들이 백신을 만드는 이유는 종교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험이다. 산부인과적 질병들은 사람들이 꿈에서 악마 혹은 마녀와 성관계를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일부는 파충류인간 혹은 외계인에 의해 운영된다. 외계인의 DNA는 현재 메디컬 트리트먼트에 사용된다(...)"라는 황당한 '''큐어넌''' 음모론을 공개석상에서 진지하게 이야기할 만큼, 미국 사회의 반지성주의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5.3.3. 유럽


유럽이라고 반지성주의자들의 행태는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녹색주의 등으로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하진 않다. 실제로 2020년, 유럽과 미국을 필두로 5G 전파나 기지국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확산시킨다는[24], 고등학생 수준의 과학 상식만 있어도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법한 해괴하고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한 가짜 뉴스가 돌기도 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5G 기지국에 대한 방화 사건이 몇 건 발생했으며, 영국 정부는 이러한 음모론에 대한 해명에 나섰다.
이 외에도 미국처럼 독일,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 코로나19가 확산중임에도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고 이를 지적하는 사람을 폭행하거나 총으로 쏘는 등의 행태가 무수히 이어지고 있다.
유명 축구선수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누나는 동생의 코로나19 확진 후 "코로나는 사기극이다, 테스트를 믿지 않겠다."라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며 이런 행태를 대변하기도 했다.

5.4. 학문



5.4.1. 창조과학교과서 진화론 삭제사건


2011년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사건. 미국 사이언스지와 네이처에서 보도하면서 제대로 국가망신 당하였다.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자 엄연한 학문 분과인 진화생물학을 일부 개신교 신자를 빙자한 창조론자들이 단체를 조직하여, 교과부에 민원을 넣어, 교과서상의 진화생물학의 예시인 시조새의 존재와 말의 진화과정 파트를 삭제조치한 사건이다.
자세한 것은 문서참조.

5.4.2. 포스트모더니즘 철학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근간이 되는 사상들인 상대주의다원주의 또는 회의주의해체주의가 반지성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연관된 철학자들(그 중에서도 주로 프랑스 철학자들)의 글을 읽으면 반복적으로 이성주의 전반에 대한 비판 혹은 적개심이 드러남을 쉽게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가 있다. 이들은 포스트구조주의로 묶이기도 하는데, 원분류야 어쨌든 포스트모더니즘 계통에서 반복적으로 참조하는 철학자들이다.
본격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서뿐만이 아니라, 현대철학 입문서 중 포스트모더니즘을 최종 기착지로 작성되는 대중 철학서들도 반이성주의, 반지성주의적인 관점에서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세계 대전의 원인이 이성주의에 있으므로 이성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는 식의 대단히 과격한 내러티브가 자주 등장한다.
자크 데리다의 경우 로고스(logos)로 대표되는 서양의 이성주의를 남근이성중심적(phallogocentric)이라고 서술한 바 있다.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인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서 로고스에 기반한 자연과학이야말로 궁극적인 맨스플레인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과학수학에 매우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벨기에 출신 페미니스트 뤼스 이리가레는 과학이 유체역학의 난제들을 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과학과 수학이 남성 중심적인 학문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고체역학이 유체역학보다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이유, 예컨대 과학이 난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이유는 유체를 여성적인 것으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리가레의 해석이다. 남자는 돌출했고 딱딱해지는 성기를 가진 반면, 여자는 달거리에 질액이 스며나오는 구멍을 가지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남자도 가령 정액을 방출할 때처럼 흘러나오는 것이 있지만 남자의 성기가 갖는 이러한 측면은 강조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남성 성기의 딱딱함이지 유체의 흐름을 부추기는 역할이 아니다. 이와 같은 고체의 이상화는 수학 분야에서도 어김없이 확인된다. 수학에서는 유체를 박판이라든가 그 밖의 변형된 고체들로 파악한다. 여자가 남성 중심의 이론과 언어에서 지워져 오로지 비남성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유체도 과학으로부터 지워져 오직 비고체로서만 존재한다.”

그 밖에도 뤼스 이리가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2은 광속에 특권(privilege)을 부여하기 때문에, 성별이 정해진 공식(sexed equation)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관점을 적극 수용한 일부 극단주의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수학과 과학이라는 학문 전반을 남성중심적인 학문으로 간주하고 이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페미니스트들의 이러한 모습은 심슨 가족의 'Girls Just Want to Have Sums' 에피소드에서 풍자되기도 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이러한 행태로 인해 90년대에 발생한 사건 중 하나가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이다. 그러나 해당 사건 이후에 포스트모더니즘 진영에서는 오히려 반과학적 성향이 더 짙어졌다. 이는 대체로 과학 이론도 사회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든지, 과학자 사회의 임의적 합의에 불과하다든지, 전문가들이 담당하는 분야에도 민주주의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식이다.
이를 이용해 포스트모더니즘 진영은 일정한 사실과 반지성주의를 섞어내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연구 결과는 적극적으로 사용하다가, 불리한 연구 결과가 나오면 과학 역시 서구 문명의 제국주의적, 압제적, 자본주의적 백인 남성 가부장제의 산물이라고 몰아 붙이는 것이다. 지적 성실성보다는 이념정치가 우선이라는 논리. 미국언론, 인문학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기 때문에 지식인의 이름으로 반지성주의적 주장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이렇듯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반지성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근간이 된 사상들인 상대주의다원주의 또는 회의주의해체주의라는 사상들 그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반지성주의와 완전히 동일한 사상이라고 간주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반론도 존재한다. 철학적으로 상대주의·다원주의나 회의주의·해체주의의 경향을 보인다고 하여 이를 무조건적으로 반지성주의라 간주하는 것은 정당한 비판을 넘어선 부당한 '''비난'''이라는 것이다.
이는 상대주의·다원주의회의주의·해체주의 자체도 이성에 의존하여 비판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지적이다. 어떤 사상을 반지성주의라고 칭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학문이나 이성에 회의적일 뿐만 아니라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이성보다 더 우선시해야 할 것이며,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반지성주의적 성향에 대한 비판도 바로 그렇게 이성보다 다른 무언가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하고 있다. 하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반지성주의를 이유로 상대주의·다원주의나 회의주의·해체주의라는 사상들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반지성주의와 완전하게 동일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 역시 나오는 것이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등장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회의주의와 같은 사례의 경우에는 그것을 반지성주의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다. 한 가지 예시를 들자면 회의주의를 무조건적으로 반지성주의로 간주하게 되면 그 회의주의의 일부인 과학적 회의주의 역시 반지성주의로 간주할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과학적 회의주의를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반과학적 성향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회의주의 중에서도 과학적 회의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반지성주의와는 가장 상극인 사상인데, 이를 회의주의의 일부라는 이유로 반지성주의라고 싸잡아서 비판하는 것은 그다지 올바른 비판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5.4.2.1. 반론: 다양성 간과

통속적인 포스트 모더니즘 비판자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을 역사적인 개념으로, 즉 구체적인 시대와 장소를 바탕으로 변모해온 개념으로 파악하기보다는, 고정불변하며 단일한 사상인 것처럼 파악하고 비판한다. 만약 포스트모더니즘이 그러한 단일성을 지향했다면 그 또한 유의미한 비판이 될 수 있겠지만,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가들이 항상 경계했던 것이 그러한 일반화라는 점에서 그와 같은 비판은 설득력을 잃는다. 그들이 비판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은 (1) 누구의 포스트 모더니즘이며, (2) 어느 시대 어느 장소의 포스트 모더니즘이고, (3) 그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가? 포스트 모더니즘을 표방하는 학자들 중에 종종 반지성주의적이거나 혹은 반과학적이었던 학자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포스트 모더니즘을 '대표한다'고 어떤 고민도 없이 선언해버리기는 어렵다[25].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가로 지목되는 대표적인 학자들의 사상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그들이 반지성주의적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론하자면 이하와 같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세계대전의 원인이 이성에 있다고 진단했다는 것은 비판이론에 대한 가장 피상적인 수준의 이해일 뿐이다. 그들은 세계대전처럼 복잡한 원인들이 얽힌 문제를 그렇게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드러내보이고자 했던 것은 이성과 계몽의 개념에 내재되어 있는 야만성이라고 해야 보다 정확할 것이다. 『계몽의 변증법』을 저술하던 당시의 문제의식은 '이성이 세계대전의 원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인간은 이성을 사용하여 홀로코스트와 같은 산업화된 학살을 자행했는가'에 가깝다. 그 문제의식에 답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내린 결론이 '신화는 계몽이었으며, 신화의 단계로 되돌아가기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계몽은 그럼에도 점점 더 신화로 되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 비판』을 썼고, 문화산업론을 비롯한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 역시 이른바 '자유주의적'이라고 자부하는 자본주의 세계의 문화가 어떻게 개인을 표준화하고 규격화해 유적 존재로 만드는지를 다뤘다. 그들은 계몽을 비판하고 이성의 독주를 비판했지만, 그러한 비판은 반지성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26] 에 대해 반성하고자 한 시도였다.
데리다가 '남근이성중심적'인 사고를 비판한 것 역시 근대 유럽에 만연해 있던 남성우월주의적 도식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19세기 철학자인 쇠렌 키르케고르의 주저 『죽음에 이르는 병』에는 '여성에게는 지성이 없으며, 여성의 특징은 배려와 섬세함이고, 배려와 섬세함을 갖추지 못한 여성은 비여성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보다 이전인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에서도 시민적 덕성을 의미하는 '비르투'는 또한 남성다움을 의미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1944년에 가서야 여성참정권이 인정되었으며, 그렇듯 시민적 삶이나 지적인 활동은 오랫동안 남성들의 전유물로 간주되었다. 뿌리를 타고 올라가 보면 이러한 도식은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때도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은 여자에게 남성과 같은 수준에서의 이성이 없다고 믿었다. 만약 이런 역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면, 데리다의 주장은 반지성주의적인 것으로 오독되기 쉽다. 그러나 그가 서양철학사의 남성중심적인 면모를 비판하고, 남성=이성적, 여성=비이성적이라는 도식을 비판한 것은, 단순한 반지성주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양철학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미셸 푸코를 반지성주의자로 지목하는 사람들이 (그리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있다는 것은[27] 기이한 현상이다. 그는 어떤 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로 분류될 수 있는 인물이고[28], 또 당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서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등과 교류를 나눈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학문적 작업을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간단하게 요약해버리는 것은 온당한 이해라고 하기 어렵다. 그의 방법론은 많은 면에서 역사적 사실들에 기대고 있었으며, 고고학적, 계보학적, 혹은 해석학적 방법론을 따르는 그의 연구는 실제로 역사학적인 작업에 가까웠다. 비록 그때 당시 그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 중 현재는 더 이상 사실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들 역시 있지만, 그렇다고 그의 방법론이 역사적이었다는 사실까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가 비판한 것은 근대와 권력이었지 이성 그 자체가 아니었다. 스스로 계몽주의자를 자처했으며 평생을 지적인 작업에 몰두했던 푸코에게 '반지성주의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라캉, 들뢰즈, 가타리의 경우에는 수학과 과학을 남용한다고 비판받을 여지가 확실히 있다. 라캉의 경우에는 수학적 개념이나 논리학의 기호들을 남용한 것으로 악명이 높으며, 들뢰즈나 가타리 역시 다양체와 같은 수학적 개념들을 철학에 적용하려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앨런 소칼이 '지적 사기'라고 그들을 비판한 것은,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함부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학자의 미덕이라는 점에서 옳다. 이러한 남용은 학자로서의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반지성주의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학문적 작업 전체를 반지성주의적이라 비난하는 것 또한 옳지 못하다. 앨런 소칼이 『지적 사기』에서 비판하고 있는 부분 역시 학자로서의 성실성을 지키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였지, 그들의 학문적 작업 전체가 아니었다.
한편, 과학적 실재론 대 반 실재론 논쟁과 그에 따라나오는 구성주의 논쟁, 과학에서의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둘러싼 여러 논쟁들을 단순히 '반지성주의적인 것'으로 격하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과학을 한낱 주술에 불과한 것으로 격하시키는 반지성주의적 태도임을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과학을 합리성의 전형이라고 믿을 수 있으며, 그러한 과학에 기생하는 것으로 보이는 과학철학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지성인답게 그러한 주장을 하고자 한다면, 그의 입장과 반대대는 주장들에 반지성주의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반론을 제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과도한 표준화 및 일반화에 대한 경계는 포스트모더니즘만의 특징이 아니라는 사실관계를 지적해야만 하겠다. 조지 버클리는 『인간 지식의 원리론』에서 과도한 유비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으며, 데이비드 흄은 과학적 구성주의에 가까운 입장을 취했다. 버트란드 러셀이 인간의 의식을 칠면조의 의식에 빗대 경험론의 독단을 비판한 예시 또한 유명하다. 심지어 그런 비판을 했으리라 기대하기 어려운 헤겔조차도, 차이를 없애고 모든 것을 단일화하려는 이성의 시도를 '모든 소가 검게 보이는 밤처럼' 무의미한 인식이라고 비판했다[29]. 이처럼 이성의 사용에 대한 반성은 꾸준히 되풀이되어온 것이고, 그것을 일반화된 이해만으로 반지성주의라고 단언하는 것이야말로 이성에 대한 숭배의 태도일 뿐이다. 이성 숭배는 반지성주의적인 것을 넘어 열린 사회 그 자체에 대한 도전이며, 비판이론가들이 계몽에 내재된 전체주의적 계기라고 지적한 그런 것이기도 하다.

5.4.3. 유사역사학


역사학계에선 주류 역사학들을 지성의 기준으로 놓았을 때 유사역사학자들이 반지성주의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강단 사학[30]/재야사학'이란 용어를 주장한다. 기존의 정식 역사학계를 친일 식민사관에 찌든 집단으로 치부하고, 정식 학자가 아닌 '재야의 사학자'인 자신들이 '진정한' 역사학을 연구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강단사학이니 식민사학이니 하는 극단적 수준까진 가지 않더라도 비주류적인 주장을 하는 재야사학자들이나 대중적으로 인기는 얻지만 주류 학계에선 비판을 면치 못하는 이덕일 같은 인물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학계는 '지들끼리만 돌려보는 논문이나 만드는 무가치한 집단'이라고 비난해대는 네티즌들도 의외로 꽤 많다.
웃긴 건, 정작 재야사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의 주장을 펼 때 근거로서 가져오는 자료들이 전부 그들이 말하는 강단사학에서 연구한 자료들이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띄어쓰기가 없고, 한문으로 쓰여져 있는 데다가, 수백,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고문서들이라 현대어로 해석하는 과정이 난해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수식어를 슬쩍 바꿔서 해석하는 식으로 기존의 정설을 아예 왜곡하여 환빠식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들은 역덕이나 제도권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적 있는 경우들을 제외하면 역사학에 대한 관심이 적은 데다가 이런 유사역사학자들의 해석이 역사왜곡이든 뭐든 '결론은 대한민국이 가장 위대하다.' 는 식으로 결론이 나기 때문에 유사역사학자들의 역사왜곡을 바로잡으려는 학자들을 식민사관이라 매도하며 유사역사학자들을 칭송한다. 거기다 교수, 학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대중에게 자주 노출되기가 어려운 주류 역사학자들에 비해, 유사역사학자들은 작가, 인터넷 강사 등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자주 노출되기 쉬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에 이들이 끼치는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또는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유사역사학자가 비 역사학 전공인 교수라면 교수라는 권위를 내세워 영향력을 끼친다.
개중에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학계 탓을 하는 이들도 있으나, 교수와 학자들은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바쁜 사람들이다. 특히 학자의 연구성과를 오직 논문의 갯수로 계량하려 드는 풍조가 한국에 자리잡으면서 더더욱 바빠졌다.
특히, 이들 유사역사학자들은 대부분 타인의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거나 가르치는 것을 메인으로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대중들에게 쉽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도가 튼 사람들이다. 또한, 논문을 기고하는 것이 주 업무인 교수들에 비해 유사역사학자들은 청중 앞에서 끊임없이 말을 하기 때문에 언변 또한 주류 학자들보다 뛰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기다 이들이 내놓는 주장들 역시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위대한 나라이고 한민족이 가장 위대하다.' 라는 대중의 입맛에 딱 맞는 주장들 뿐이다보니 역사학을 모르는 대중들은 유사역사학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정통 역사학자들을 적폐로 몰아세운다.

5.4.4. 유사과학


유사역사학과 비슷한 사례. 기존 과학을 적폐로 몰아세우며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한다.

5.5. 기타


대중 매체의 일부 창작물도 반지성주의의 사례로 꼽힌다. 완전히 정신이 나간 미친놈이거나 자존감이 지나쳐 콧대 높은 예술가/지식인 캐릭터가 노력-우정-승리주인공 일행에게 관광타는 경우.
반대로 킹덤과 같이 반지성주의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작품도 있다.
폴 포트크메르 루주는 반지성주의의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극단적인 사례인데, 예를 들어 국민들에게 무슨 대답을 할 때 1초 이상 대답이 늦어지면 붙잡아서 고문을 한다든지,[31] 안경 쓴 사람이나 양복이 있는 사람이나 손이 부드러운 사람은 다 죽이라든지, 어떤 사람을 길에서 영어로 "hey" 라고 불러서 뒤돌아보면 사람의 본능이고 영어 한마디 안 했는데 먹물 먹었다는 뜻이니 역시 잡아 죽인다든지...반지성 그야말로 반지성주의의 알파에서 오메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사례들을 보면 이런 측면에서 모든 종류의 극단주의도 반지성주의적인 측면이 나타난다. 극단주의 사상에 심취한 대중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어긋나는 부분을 지적하는 지식인들에 대해서 적개심을 표출하며, 말살하려고 든다. 정치적 극단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과학적 증거를 무시하고 음모론에 열광하든가, 종교극단주의 세력들이 모든 종류의 과학기술을 적대하는 것은 종종 보이는 현상이다.
서양중세가 반지성주의에 찌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사실상 중세의 시대상에 대한 편견 및 고정관념이다. 플랫 에러 같은 경우처럼 이런 주장에는 오히려 사실과는 정반대인 거짓 주장들이 적지 않다. 중세의 시대상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중세 문서를 참고할 것.

6. 유의점


오해하지 말아야 할 건 '지식인의 행태 비판'과는 다르다. 반지성주의와 지식인의 행태 비판을 동일시하는 주장을 하는 '지식인'들의 경우 그 의도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지식인, 교수는 믿을 게 못 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E.H 카도 그의 명저 사후개정판 서문에서 그런 주장을 했다. 보통 우민화 정책 등과 연관해서 비판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 용어지만, 이 개념 자체가 꼭 틀린 것은 아니다. 대립되는 양쪽에서 어느 것에 무게를 싣느냐 하는 문제일 뿐이다.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은 극단적인 반지성주의로 가는 경우이다.
특히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혹은 인터넷에서 흔히 사용되는 비하표현인 "무식한 사람"[32]과 유사하게 들리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그냥 비하의 표현이나 낙인의 수단으로서 남용되기도 하는 불쌍한 표현이다. 그냥 자기와 주장이 다르고 이념이 다른 집단이라면 언제든지 서로가 서로를 반지성주의라고 낙인찍곤 하니 말이다. 그렇게 쓰이는 표현이 이 하나뿐이겠냐마는...
극단적 반지성주의/반지식인주의와 극단적 엘리트주의/전문가주의/지식만능주의는 극과 극은 통한다의 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7. 어록


'''"분노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선전의 가장 큰 적은 '지식인 주의'이다."'''

- 파울 요제프 괴벨스

'''"책을 너무 많이 읽는 것은 해롭다."'''

- 마오쩌둥[33]

'''진정한 천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음은 바보들이 단결해서 그와 맞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 조너선 스위프트[34]

[35]

'''나는 우리에게 지각과 이성, 그리고 사고력을 부여하신 하느님께서 우리가 그것들을 사용하는 행위를 금하시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

'''신들조차도 어리석음을 무찌를 수 없다.'''

- 프리드리히 폰 실러

'''인간의 멍청함이 가진 힘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로버트 A. 하인라인

모세는 학문적으로 훈련이나 교육을 받지 않은, 평범한 상식을 지닌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방식으로 설명했다. 반면 천문학자들은 인간 지성의 예리함이 파헤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큰 노력을 들여 연구한다. '''그러한 연구에 반감을 가져선 안 되며, 과학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이라면 생각 없이 거부하는 광신도들의 오만으로 비난받을 존재가 아니다.'''

'''장 칼뱅'''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

찰스 다윈

'''이 시대의 아픔 중 하나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무지한데, 상상력과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의심하고 주저한다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

호신불호학(好信不好學)이면 기폐야적(其蔽也賊)이라.

(그저 믿기만 좋아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도적과 같다.)

논어 17장(양화) 제8절

"인간의 지성은 일단 어떤 의견을 채택한 뒤에는... 모든 얘기를 끌어들여 그 견해를 뒷받침하거나 동의한다. 설사 정반대를 가리키는 중요한 증거가 훨씬 더 많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며... 미리 결정한 내용에 죽으라고 매달려 이미 내린 결론의 정당성을 지키려 한다."

프랜시스 베이컨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기존의 견해들이 온전하게 유지되도록 새로운 정보를 걸러내는 일이다."

워런 버핏

"우리들은 모두 세상을 자신의 선입관에 맞춰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와 상반된 관점은 필연적으로 생각하는 수고로움을 동반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죠.''' "

(We all have a tendency to think that the world must conform to our prejudices. The opposite view involves some effort of thought, and most people would die sooner than think – in fact they do so.)

버트런드 러셀, 《상대성 이론의 참뜻》(1925)

"만약 누군가가 유능한 교수라면, 그의 첫 번째 임무는 학생들에게 그들 자신의 가치입장의 정당화에는 불리한 사실들ㅡ즉, 학생의 당파적 견해에 비추어볼 때 학생 자신에게 불리한 그런 사실들ㅡ을 인정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모든 당파적 견해에는ㅡ예를 들면 나의 견해도 포함해서ㅡ이 견해에 극도로 불리한 사실들이 있습니다. 만약 대학교수가 그의 수강생들을 그것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한다면, '''그는 단순한 지적 업적 그 이상을 행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너무나 소박하고 당연한 일에 대한 표현치고는 어쩌면 너무 장중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감히 그것을 '도덕적 업적' 이라고까지 부르고 싶습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 pp.65-66

"제임스 핸래티가 다시 돌아와 자신이 범인이라고 털어놓아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거에요. 그들을 원망하지 않아요.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으니까요.'''"

A6 사건의 목격자인 밸러리 스토리가 2002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

에제키엘 3장 27절[36]

'''우리는 오래된 편견을 던져 버리는 대신 상당히 소중히 여긴다. 더욱 수치스러운 것은 그것이 편견이기 때문에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다.'''

에드먼드 버크

"현명한 자는 보는 걸 믿고, 겁쟁이는 믿는 걸 본다.''

이오시프 스탈린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펼치는 것이 인생의 낙이라고 하였다. 어느 때부터 신문에서 매일 담배의 유해성을 지적하는 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기사가 계속되자 그는 '''신문을 끊었다.'''

담배의 중독성에 관한 유머 중 하나.[37]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

이경규

'''대중은 생각하지 않는다네.'''

유사과학 탐구영역 64화中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이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라.'''

공부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헛되고, '''생각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논어 위정편


8. 같이 보기



8.1. 집단주의 관련



8.2. 기타




[1] 반지성주의를 표현하고 있는 토머스 내스트(Thomas Nast)가 그린 1875년경에 시사 만화의 장면. 비쩍 마른 학자와 둔한 권투 선수를 대조함으로써 독해와 연구는 스포츠 같은 신체 활동과 반대라는 포퓰리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토머스 내스트는 1840년 9월 27일 ~ 1902년 12월 7일. 독일 태생의 미국 캐리커처 화이자 미국 카툰의 아버지로 간주되는 시사 만화가. 대표작으로 현대판 산타클로스와 공화당의 정치적 상징으로서 코끼리 심벌이 있다.[2]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누군가 어떤 주장을 갖고 있다면, 일단은 당연히 해당 문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해당 분야 전문가를 가장 먼저 설득하고 싶어한다. 논리적 설득에 실패했을 때, 실력으로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하고, 힘을 얻기 위해 이해도가 떨어지는 대중을 선동하게 된다. 대중들에게 왜 이 주장이 전문가들 속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게 되고, 반지성주의적 기반하에 대중들의 지식 체계가 쌓인다. 민주주의에서의 힘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무관한 민주 즉, 왕으로써의 대중의 결정에 좌우되기 때문에 이런 반지성적 수단이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집단이나 개인에 의한 독재 체제에 비해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 민주주의지만, 그 안에 내재된 문제점들이 결코 적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들 중 하나.[3]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집단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법적인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로버트 팩스턴,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4] 북한의 논문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명제들이 "김일성/김정일 수령님께서 일찍이 이렇게 교시하시었다..." 로 시작해서 "따라서 김일성/김정일 수령님께서 교시하신 바가 옳음이 증명되었다..." 로 끝나도록 서술되며 그러다 보니 논문 분량도 실제 연구성과에 비해 크게 부풀려진다. 4페이지 정도로 짧은 북한 논문에서조차도 실제 연구 내용은 겨우 2페이지 정도라는 것. [5] 특히 이라크 전쟁은 결과적으로 다에시의 발흥으로 이어졌고 정작 적극적으로 토벌해야 할 다에시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바람에 러시아의 중동 내 영향력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6] 실제로 근본주의 교단의 대표격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은 에큐메니컬 교회들과 그 어떤 교류도 금지하고 있고, 진보교단의 세례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7] 사실 뭐 박사학위를 땄다고 교적에서 파인다거나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례는 없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소위 신학적 자유주의에의 경도를 걱정하는 수준. 다만 공부 많이 하는 사람은 믿음이 약하다고 대놓고 말하는 경우는 종종 눈에 띈다. 적지 않은 기독교인 지식인들이 한국 기독교근본주의적 태도를 문제삼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8] 물론 당대 학문이란 게 신학을 중심으로, 그와 충돌할 일이 없는 법학의학, 예술 같은 것들이었긴 하다.[9] 중세대학이 생기기 전에 고등교육을 담당하던 곳도 신학교 같은 교회와 관련된 교육시설들이었다.[10] 우리나라의 문해율은 전세대에 걸쳐서 OECD에서 하위권이다.[11] 이 경우는 단순히 대중적이거나 감성만 있는 게 문제가 아니다. 대중들의 고민을 콕 집어 풀어내어 소통하는 것은 좋으나, 블로그에나 적어야 할 잡설을 늘어 놓는 경우도 보인다.[12] 이것은 영화,드라마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5~15분 내외로 줄거리를 요약해주는 소위 결말포함 유튜버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아예 요약영상만 보고선 영화봤다고 여기는 것이다.[13] 대부분의 현직 교사들도 수능을 어려워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14] 그 후보가 본인이 고졸 나왔고, 먹물을 쓰는 사람보다 본인이 우월하다는 발언을 많이 했다.[15] 농업은 단순히 힘만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학적인 원리도 직간접적으로 이용된다.[16] 특히 송유근 사례의 경우는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으로 아직까지도 송유근의 사례를 '천재를 질투하는 주류 학계와 무지한 국민들' 운운하며 송유근을 옹호하는 송유근 빠들이 적지않게 보인다. 그러나, 송유근이 논문을 표절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 학계에서도 인증된 사실이다. 또한, 과학 지식 부족과 천재에 대한 왜곡된 환상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미적분을 푸는 것처럼 보이는 송유근의 유년시절 모습과, 이론물리학 같은 어려운 주제에 도전하겠다고 말하는 것' 으로 인해 주목을 받기 시작한 유년 시절부터 장성한 성인이 된 지금까지 대학교를 조기입학하고 석사 과정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각종 지원까지 받았으나 변변한 성과가 없음에도 끝까지 송유근을 천재라고 주장하는 것만 보면 알 수 있다.[17] 박태호 현 서울과학기술대 철학 교수. 이진경은 과거군사정권 시절 사용하던 가명으로 1987년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약칭 사사방)으로 사구체 논쟁에 불을 지른 인물이기도 하다. 1990년 일명 "노동계급" 사건으로 안기부에 체포돼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생활을 하였다. 출소 뒤에 서울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3년부터 서울과기대 교수로 재직 중.[18] 무슨 삿된 기운이니 깨달음의 경지니 영혼 치료니 우주초염력이니 자연요법이니 하는 단어들이 목차에서부터 당당하게 난무하고 있다. 가만보면 비과학적인 내용들도 문제지만 이나 부항 같은 기존의 대체의학 범주의 주제에서까지 아주 충실하게(?) 십중팔구 뻘소리만 늘어놓는다. 여기에다 전문용어의 자의적 정의는 덤.[19] 해당 시리즈물의 전체 내용을 보려면 이 사이트의 칼럼란으로 가면 된다. 블로그에는 일부만 업로드되어 있다.[20] 蜜源植物, 을 빨아 오는 원천이 되는 식물. 꽃이 많이 피고 꿀이 많은 식물을 뜻한다. 아까시나무 외에도 메밀, 꿀풀, 자운영 등이 있다.[21] 영상 초반에 U로 시작하는 국가의 이름을 말하라고 하는데, 시작은 유고슬라비아('''Y'''ugoslavia), 그 다음은 유타(...), 심지어는 '''유토피아''' 얘기까지 나온다. 유고슬라비아는 그러려니 할 수 있으나, 유타 주를 나라로 알고 있는 사람이나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라는 용어를 국가로 설명하는 등, 생각보다 지식 결여가 심각한 사항임을 볼 수 있다. '''한국인강원도무릉도원을 나라로 알고 있는 격이다.''' 실제로 U로 시작하는 나라는 '''미국(United States)''', 영국(United Kingdom), 아랍에미리트(UAE, United Arab Emirates), 우크라이나(Ukraine), 우루과이(Uruguay),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우간다(Uganda) 등 많다. 자기 나라가 U자로 시작하는 것도 간과한 셈.[22] 이런 미국식 영웅과 대척점에 있는 적 세력은, 대개 지혜와 과학력, 자본 등으로 무장한 매드 사이언티스트 류의 악당인 경우가 많다. 다만 과학자지식인 히어로가 아주 없는 건 아닌데, 이런 경우에도 과학자 자신이 몸소 악과 맞서 싸우는 경우가 많지, 주변인이나 정치 세력을 이용해서 간접적으로만 맞서싸우는 경우는 적다. 토니 스타크고든 프리맨 등이 대표적인 예시. 여기에는 캐릭터에게 감정을 이입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도 있겠으나, 이런 식의 살신성인을 미국 문화에서 높이 사고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본다는 점도 큰 이유로 작용한다.[23] 2000년 선거에서 아들 부시와 대결했던 앨 고어하버드 대학교 졸업 학력에 무엇을 물어봐도 막힘없이 자신의 식견을 술술 풀어내는 달변까지 전형적인 엘리트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다. 입만 열면 말실수로 사람들을 웃기던 아들 부시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아들 부시도 도널드 트럼프마냥 무식한 인물은 아니었다며 아들 부시를 재평가하는 의견이 늘어나고 있다.[24]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광자질량이 없는 입자이므로 전자 같은 미시세계의 입자라면 몰라도 바이러스나 세균 같이 충분히 큰 입자가 거기에 실려 전파될 리 만무하다. 아예 꿈쩍도 안 한다.[25] 사실 재현/대표의 문제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따르는 사상가들의 주된 화두이기도 하다.[26] 이것이 비판이론가들이 말하는 근대성의 역설이다. 그에 따르면 근대는 이성적인 형식과 제도를 통해 비이성적인 폭력과 지배를 실현한다.[27] 당장 이 문단을 쓰는 시점에서 반지성주의 문서 역시 푸코를 들뢰즈나 데리다와 도매금으로 언급하고 있다.[28] 특히 그가 권력을 비판하고 근대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학자라는 점에서 그렇다.[29] 사실 헤겔의 경우에는 이성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보편자를 무규정자로 놓는 철학자들에 대한 비판이지만... 비판이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전자의 의미로도 이 표현을 자주 인용한다[30] 일반적으로 정식으로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강단에 올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사회과학적 방법과 원칙에 따라 역사를 연구하고 서로 검증비판하는 사학자들을 일컽는다. [31] 즉 건전한 의심이나 회의를 아예 생략하고 윗사람의 지시를 무비판적으로 맹종하라는 뜻이다. 짤없이 반지성주의.[32] 좀 더 저속한 유사표현들도 많다. 지잡대라든지[33] 홍위병에게는 책을 너무 많이 보면 해롭다면서 정작 자신은 책에 묻혀 지냈다.[34]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한 말로도 알려져 있으나, 원조는 이쪽이다.[35] 역설적이게도, 이 말을 한 스위프트 본인은 당대의 천재적인 과학자였던 아이작 뉴턴을 매우 싫어했으며, 뉴턴 역학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그의 저서 걸리버 여행기의 3편에서 등장하는 라퓨타는, 뉴턴과 당시의 과학계를 신랄하게 비꼬는 내용이다. [36]바빌로니아의 침입으로 이스라엘의 존망이 위태로웠던 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레미야, 에제키엘 등 참 예언자들의 진심어린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거짓 예언자들의 달콤한 말은 잘만 믿었던 것을 꼬집는 구절이다.[37] 이쪽은 보기 싫은 것(담배의 해악)은 거부하는 소극적 확증편향으로 볼 수 있다. 적극적인 확증편향의 예로는 '봐라! 아무개는 담배 피우고도 100살까지 살았다!'라는 기사를 제시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