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의 묘

 


<colbgcolor=#000><colcolor=#fef200> '''반딧불이의 묘''' (1988)
''火垂るの墓 / Grave of the Fireflies''
'''장르'''
애니메이션, 드라마, 전쟁
'''원작'''
노사카 아키유키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
'''각본'''
타카하타 이사오
'''제작'''
하라 토오루
'''출연'''
다츠미 츠토무, 시라이시 아야노 외
'''음악'''
미치오 마미야
'''미술'''
야마모토 니조
'''작화감독'''
콘도 요시후미
'''제작사'''
[image] 스튜디오 지브리
'''배급사'''
[image] 도호
[image] 에이원엔터테인먼트
'''개봉일'''
[image] 1988년 4월 16일
[image] 2014년 6월 19일
'''상영시간'''
89분
'''일본 흥행 수익'''
'''5억 9,000만 엔'''
'''대한민국 총 관객'''
'''3,674명'''
'''국내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1. 개요
2. 평가
3. 상세
4. 등장인물
5. 원작과 작가
6. 감독의 의도
7. 피해자 코스프레 작품 논란
7.1.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주장
7.2. 피해자 코스프레가 아니라는 반박과 의견
8. 이야깃거리
8.1. 7,000엔의 행방은?
9. 제작 스텝 리스트(애니메이션 영화)
10. 여담


1. 개요


4歳と14歳で、生きようと思った。

4살과 14살에, 살아 보자라고 생각했다.

간략한 내용은 주인공 세이타, 세츠코 남매가 태평양 전쟁 중 겪는 피난생활을 다루고 있다. 소설과 애니메이션, 실사 드라마, 실사 영화 등 여러가지 장르로 미디어 믹스 되었으며 그 중 1967년에 출판된 노사카 아키유키[1]의 단편 소설과, 1988년 개봉된 동명의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이 가장 유명하다. 2005년에는 실사 드라마, 2008년에는 실사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감독은 타카하타 이사오. 애니메이션은 원작 소설에서 일부를 생략하기는 하였지만 대사를 포함하여 원작을 시간순으로 거의 충실하게 옮겼다. 이에 비해 실사 드라마와 실사 영화는 각색이 많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일본에서 개봉 된 지 26년 후인 2014년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개봉하였는데, 이는 일본에서 개봉 된 1988년 당시에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 지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국내에 정식 소개되기 전, 1990년대 초중반부터 흥한 '시네마테크' (일본 등에서 가져온 비디오테이프에 한국어 자막을 단 영상을 불법으로 상영하는 소규모 상영회)에서는 '반딧불이의 묘'가 아닌 '반딧불[2]무덤'으로 번역해서 소개했다. 그 이유는 원제인 '火垂るの墓'는 일본어로는 '호타루노 하카'로 읽는데, 이는 墓를 음독하면 보(ボ)=묘지만, 훈독으로 읽으면 하카(무덤)로 읽기 때문이다.
이 점이 다시금 재고된 탓인지 최근에 번역되어 나온 소설 판본에는 '반딧불이의 무덤'이라는 타이틀로 출판되어 있다.

2. 평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다만 한국 일반 관객 사이에선 피해자 행세물이라는 잘못된 낙인이 찍혀 저평가 받는다. 그러나 1점 테러를 당했음에도 3점 이상이 뜨는 것을 보면 한국에서도 제대로 본 사람들은 고평가한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고평가하고 있다. 미국도 진주만 공습 때문에 일본이 피해자 행세를 하는 걸 매우 싫어하는데 미국에선 이 작품을 피해자 행세물로 보지 않는다. 미국에선 타카하타 이사오의 대표작으로 다른 것도 아니고 반딧불이의 묘가 꼽힌다.

3. 상세




4. 등장인물


  • 세이타 / CV : 타츠미 츠토무/김일
고베 출신으로 중학교 3년생. 작중 만 14살.[3] 이 작품의 주인공. 아버지는 일본 해군 장교(대위)로, 과거 회상이나 숙모의 말로 비추어 볼 때 원래부터 꽤 부유한 집안[4]으로 묘사된다.
1945년 6월 5일의 '고베대공습'에서 먼저 대피한 어머니와는 니혼마츠(二本松) 역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공습이 지나가고 집합 장소인 세이타가 졸업한 국민학교#에서 재회한 어머니는 상반신에 큰 화상을 입고 이윽고 사망. 늦둥이 여동생 세츠코와 니시노미야에 있는 먼 친척 아줌마네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친척 아줌마한테 구박을 받다가(이 부분은 세이타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과 객관적 상황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는데, 자세한 것은 아래 단락 참조) 집을 나와 근처 방공호로 옮겨 산다.
사실 친척 아줌마가 구박했다고 해봐야 친척 남매들과 식사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부분과 잔소리를 듣는 수준이었다. 평화시에도 자기 아이 키우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하물며 어려운 전쟁통에 남의 아이를 맡아주는 상황이라면 그 정도 대우는 특별히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더구나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즉, 어려운 시절에 기여도가 없는) 세이타 남매에 대한 차등 대우는 어느 정도 있을 수밖에 없다.[5][6][7] 그리고 친척이 도쿄에 있는 친척도 있지 않냐는 말을 하며 사라지자 주소를 모른다고 칭얼거리기만 한다.
친척집을 나오고 처음 얼마 동안은 남매끼리 보금자리를 꾸려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곧 생활비가 떨어지자 힘든 생활을 하게 된다. 세츠코가 영양실조에 걸리자 어떻게든 먹을 것을 구하려고 도둑질을 하다가 들켜서 실컷 얻어맞고 파출소에 끌려 가기도 한다. 지금껏 조금씩 거래해오던 농가 아저씨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농가 아저씨도 자기네들도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라며 거절하고 지금이라도 친척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급에 도움 되는 생활을 하는게 어떻냐며 조언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세이타는 자존심 때문에 친척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습 상황에서 빈집털이를 한다. 세츠코가 죽어간다는 것을 실감하고[8], 고베로 가서 어머니가 남긴 저금을 찾아와서 세츠코에게 수박을 먹이고 계란죽을 끓여주려고 한 날 세츠코는 결국 죽는다.[9] 세츠코를 화장하고 방공호를 떠났으며 여동생 세츠코와 함께 유령이 되어 높은 빌딩이 들어선 현재의 도시인 고베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10]
방공호를 떠난 뒤의 내용은 영화 시작부분으로 보이며, 원작에서의 인물의 사망 직전 내용은 이렇다. 한 달이 지난 1945년 9월 시점에서는 산노미야역 구내에서 부랑아로 살아가고 있었다. 세츠코가 죽고 난 뒤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던 세이타는 음식 냄새에 이끌려 산노미야 역 근처의 암시장에 오게 되었다. 여기서 먹을 걸 구하기 위해 가진 물건들을 대부분 팔아버린다.[11] 이윽고 가진 물건이 다 떨어지자 기차역 구내에서 눌러앉은 채 부랑아 생활을 하게 되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거지꼴[12][13]되어 역 구내에 앉아 있는 세이타를 불쌍히 여겼는지 주먹밥을 놓고 가기도 했다. 물론 그걸로는 충분하지 못했고 돈이 다 떨어지고 난 뒤 굶주림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처지가 되었다. 이미 어머니의 유품을 포함해 옷과 신발마저 다 팔아치운 뒤라 음식을 구할 수 없었고, 계속되는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나머지 물로 배를 채워야만 했다.[14] 제대로 된 음식은 구경조차 하지 못하고 물로 끼니를 해결하다 보니 영양실조로 인한 지독한 설사까지 계속되었다.[15] 급기야 온 몸에 힘이 다 빠져 기둥에 기대어 주저앉은 뒤 일어나지 못한다.[16] 그러다가 결국 영양실조로 인한 전신쇠약으로 인해 옆으로 쓰러져 객사한다.[17] 이후 다른 죽은 부랑아들과 함께 화장된다.[18]

세이타의 여동생. 작중 4세[19]로 오빠인 세이타하고는 11살 차이 난다.
작중 최대의 피해자.
5살도 채 안 된 유아로 오빠인 세이타를 따라다닌다. 세이타는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세츠코에게 숨겼는데, 니시노미야 친척집으로 가서 살고나서부터 어느샌가 웬일인지 어머니를 찾지 않는다. 세이타는 그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된다.[20] 어머니 얘기가 나올 때마다 유골함이 클로즈업된다. 그러다 결국 방공호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만다.
세츠코의 행동이 철부지인 세이타의 행동에 영향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친척이라 해도 생판 남이기 때문에 세이타가 세츠코를 타이르거나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교육을 안 한 탓에, 친척 집에 살 때 살기 위해 어머니의 기모노를 팔 수 밖에 없었는데 친척이 이를 팔려고 하자 어머니 것이라며 울며 저지하는 모습, 또 어머니의 옷으로 팔아서 얻은 쌀이 이미 동난줄 모르고 쌀이 자신의 어머니 유품과 바꾼 것이라 주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4살 아이가 무엇을 알겠는가. 지극히 평범한 그 나이대의 어린아이일 뿐이다.
죽기 직전에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상한 소리를 하고 눈에 생기가 사라진 상태. 세이타가 방공호로 돌아왔을 때 세츠코는 사탕 대신 하지키(御弾き)#[21]을 빨고 있었다. 그리고 돌멩이를 내놓으면서 오하기,오카라타이탄(콩비지 볶음)이라며 먹으라고 권한다. 원작에서는 의사가 영양분이 있는 것을 먹이라고 하니, 세이타는 "나의 손가락을 베어서 피를 마시게 할까? 손가락 하나쯤 없어도 괜찮으니까 손가락을 잘라서 그것을 구워서 먹일까?"라고 생각하는 대목이 있다. 세이타가 서리를 하다가 붙잡혀 실컷 두들겨 맞고 파출소에 끌려갔을 때, 어떻게 따라왔는지 파출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이타를 보고 "어디가 아파? 의사 선생님 불러서 주사 맞아야겠네."하는데 어머니가 평소 하던 말투를 흉내낸 것이라 세이타는 더 서럽게 운다.
사실 세츠코가 오래 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8월에 접어들면서 세이타와 세츠코는 돈이 떨어져 가진 물건들을 팔아 먹을 걸 마련하고, 나중에는 그나마도 구하지 못해 개구리를 잡아먹고 심지어 공습 중에 도둑질까지 하는 등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게다가 남매의 유일한 희망이던 아버지도 죽은 것으로 밝혀져 친척집을 제외하고는 거두어 줄 사람이 없는 천애고아가 된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세이타는 친척집에서 스스로 뛰쳐나왔기 때문인지 영양실조와 굶주림으로 고생하면서도 돌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22][23] 이러니 세이타와 같이 굶어죽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24] 세츠코의 죽음은 전적으로 자존심 때문에 여동생을 죽게 만든 세이타에게 책임이 있다.
참고로 세츠코(節子)라는 이름은 돌아가신 작가의 어머니의 이름에서 따왔다. 일본판 성우는 5살 소녀가 연기했다. 타카하타 감독은 이 소녀가 있어서 제작이 매우 편해졌다며 고마워하고 높이 평가했다. 먼저 목소리를 녹음하고 거기에 맞춰 작화를 했다.[25]
여담이지만 세츠코가 죽은 원인이 영양실조가 아닌 공습 후 맞은 유해물질이 섞인 비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공습 이후 내린 비를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가 맞았고 공습 당시 수많은 재가 날아다녔으며 공장들이 파괴되었다는 언급이 나온 점, 그 비를 맞은 세츠코가 눈에 심한 통증을 호소했고 임시 대피소에선 별다른 처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 포스터의 밝기를 높이면 공습을 퍼붓는 전투기가 보인다는 점, 영양실조 판정을 내린 의사가 내린 진찰은 고작 청진기를 갖다댄 것이 끝이라는 점, 세츠코 몸에 나타난 여러 이상징후 등등 영양실조를 원인으로 지목하기엔 석연찮은 점들이 많다. 이 추측에 대해 지브리는당시 제작에 참가한 사람이 줄고 있어 확증하긴 어렵다는 답변을 했다.

  • 어머니 / CV : 시노하라 요시코
세이타,세츠코 남매의 모친으로 일본 해군 대위인 남편을 둔 주부로 큰아들인 세이타에게 어린 여동생인 세츠코를 맡기고 니혼마츠 역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공습으로 부상을 당한다. 나중에 세이타와 대피소에서 만나지만 이미 상반신 전체에 화상[26]을 입어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27] 원래 심장이 좋지 못해 제대로 된 병원에 옮기려고 했으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포기했다.[28] 공습을 당해 전신화상을 입은 시기가 6월 여름인데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붕대만 감아놓은 상태로 누워있어야 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가 썩어[29] 온 몸에 구더기와 파리가 들끓는 끔찍한 모습이 되고,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해 결국 사망하고 만다. 어머니의 유골함은 세이타 남매가 사는 곳을 옮길 때마다 옮겨서 소중히 보관했다. 그녀가 사망하고 나서 몇 달 뒤 남편도 중순양함의 침몰로 전사했다.

  • 아버지
세이타,세츠코 남매의 부친으로 작중 가장으로 일본 해군 대위. 관함식(觀艦式)[30] 장면에서 아버지가 경례하는 장면에서 옷소매에 새겨진 계급을 확인할 수 있다.
원작자의 아버지가 모델. 전쟁에 출전해 있기에 회상 씬과 사진으로만 출연. 애니메이션만 보면 순양함의 함장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세이타와 세츠코의 나이와 아내의 나이를 봐도, 아버지가 그 나이에 함장급(적어도 대좌)의 높은 계급일 수가 없다. 원작에서도 대위로 나오는데, 다만 TV 드라마판에서는 유복한 삶에 대한 현실성과 세이타의 자존심을 부각시키려 한 것인지 대좌로 변경되었다. 패전 후에 세이타는 아버지가 승선했던 연합함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아버지가 전사했다고, 절망한다. 아버지가 타고 있던 마야는 침몰했지만 구조된 인원도 있어서 정확히는 생사불명이지만, 작중 간간히 편지를 보냈음에도 답장이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 아주머니
공습후 집합장소인 국민학교에서 만난 아주머니. 세이타 남매의 어머니랑 친분이 있는듯. 잠깐의 등장이지만 남매를 걱정하고 챙겨준다.

고베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니시노미야 시에 사는 친척 아줌마. 세이타 아버지의 사촌 형제의 부인으로, 촌수를 따지자면 당숙모. 남편은 죽어서 지금은 미망인. 원작에는 미망인 또는 소모(小母)로 표기된다. 원작 정발판에서는 숙모라고 번역했다. 다만 일본에서는 친척 관계를 일일이 따지지 않고 친척 아줌마는 '오바상'으로 퉁쳐서 부르고, 작중에도 오바상으로 부른다. 원작에서는 만약의 경우 공습으로 집이 불타거나 피난을 가야 할 경우 서로 신세를 지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다.[31] 세이타는 몰랐지만, 어머니가 기모노, 모기장 등 피난 살림을 옮겨 놓았다.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만 보자면 자칫 나쁜 숙모로 비춰질 수 있으나 작중에서 이 인물이 남매를 특별히 박대한 적이 없다. 남매의 어머니가 처녀 때 입던 기모노로 바꿔서 흰 쌀밥을 며칠 주다가 곧 남매들에게는 멀건 죽만 준다지만, 이는 자기 자식들만 편애한다기보다는 학업과 노동에 대한 차등 보상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작중에서도 몇 번이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먼저 먹어야지'라는 발언을 하고 자기도 같이 죽을 먹는다. 구박이라 해봐야 잔소리 뿐이고 남매를 은근히 구박하면서도 밥은 분명히 다 줬다. 오히려 주인공 가족이 남긴 돈[32]을 가로채지도 않았고, 남매가 독립하려고 하자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33] [34]
물론 시대상황을 감안했을 때 숙모의 행동 중 비난받아야 할 일은 세츠코 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린 일 하나뿐이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남매들에게 잘 대해줬다고는 결코 볼 수 없다. 이러나 저러나 살게 해주는 것만으로 눈칫밥을 먹여도 할 말 없는 얹혀 사는 입장이라도, 애들 엄마가 죽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너무 대놓고 짐덩어리 취급이 심하긴 했다. 그러나 아직 4살 밖에 안 된 세츠코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느 정도 판단력이 있을 나이의 세이타마저도 친척집에 신세지고 있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그걸 감안 안 하는 철부지적 행동을 했기에[35] [36] [37] 세이타에게도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시대 상황을 감안하여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평가하려면 현대가 아닌 영화에 나오는 세이타 또래 나이대의 친척 남매들과 비교해봐야 한다. 동나이대 아이들은 다 학업과 노동을 수행[38]하고 있으며 작중에서도 친척 아줌마 집에서 놀기만 하는 남매를 다른 사람들도 의아하게 쳐다보는 장면이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어머니의 옷을 팔거나 다른 남매들에게 밥을 더 많이 준다는 대우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친척 아줌마의 대우는 현실적으로도 그다지 나쁜 수준이 아니며 오히려 상식적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친척 아줌마는 사례비나 기타 양육비를 받고 이들을 맡은 것이 아니고 경제적으로 곤궁한 시기에 입까지 늘어난 판인데 세이타 남매 본인들의 생활비 부담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물건을 팔아서 살림살이에 보태 쓰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이를 감정적으로 아이들 엄마의 옷을 팔았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나중에 가면 세이타 남매 역시 어머니의 옷을 포함한 모든 물건을 다 내다판다. 남들 다 하는 학업과 노동, 집안일도 안 하겠다 하면서 집안 살림에 돈을 보태주거나 일 나가는 집안 사람들의 수고를 더는 것조차도[39]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싫다고 한다면 이 남매는 숙박비, 양육비도 한푼 안내고 그냥 부모님 집에서 자랄 때처럼 아무 대가 없이 살면서 도련님, 아가씨 대접도 그대로 받아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봐줄 여지가 있다면 남매 모두다 막 어머니를 눈앞에서 잃은 참이라 엄청난 충격에 빠져 있을 것이라는 점인데 이를 감안하더라도 남매의 처우가 너무 나빴다는 것은 지나치게 주인공 중심으로만 해석한 것이다.
다만 이 작품이 세이타 남매의 시선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극중에서는 명확히 악역 포지션에 있긴 하다. 세이타는 어머니의 죽음을 동생에게 숨겨달라 부탁하지만 그녀는 세이타가 없을 때 아무렇지 않게 말해버린다.[40] 게다가 그 사실이 드러나는 게 세츠코가 울면서 죽은 반딧불을 묻어주는 장면인지라 빼도 박도 못하고 나쁘게 보일 수밖에 없긴 하다.
원작에는 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과 하숙인이 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딸과 하숙인만 등장. TV 드라마판에서는 딸이 많은 집안에 막내아들을 뒀다는 설정이 추가되었으며, 남편은 육군으로 징집되었다가 전사했다는 설정이 붙었다.

  • 친척 아줌마의 딸 / CV : 김서영[41]
여학생. 세츠코에게 게다를 사주고, 세이타 남매를 걱정하는 듯한 말도 한다. 나름 세이타 남매를 많이 생각해주는 사람인 듯.[42] 어머니가 국밥을 나눠주면서 하숙인과 자신한테는 냄비에서 밥과 건더기가 가득한 국밥을 떠주고, 세이타와 세츠코에게는 위에서 국물만 떠주는 것을 알아채고 얼굴을 붉힌다.[43]

세이타 남매를 가엾게 여기기는 하지만, 하숙인이라는 입장이라 내색을 안 한다. 잔정이 있다는 점에선 세이타네 숙모의 딸과 비슷하다.
애니메이션에선 드러나지 않는데 원작을 보면 고베 세관에서 근무한다. 일의 특성 상 암시장 사정에 밝아 전시에 구하기 힘든 쇠고기, 물엿 등을 아주머니에게 선물하면서 호감을 샀다. 친척 아줌마의 딸에게 연애감정(짝사랑)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일개 하숙인(타인)임에도 불구하고 세이타 남매의 숙모에게 취급이 은근 좋은 데어서[44] 숙모가 세이타 남매를 단지 자기 자식이 아니어서 차별한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세이타 남매에게 반찬거리가 될 만한 야채를 (돈 받고) 파는 아저씨. 세이타 남배를 불쌍히 여겨 자신도 없는 형편에서 먹을 것을 판다. 선술했듯 작중에선 꽤나 친절한 성격으로 묘사된다. 이 때 집 나온 남매를 걱정해서 "친척 아줌마 집으로 돌아가서, 도나리구미(隣組)에 들어가서 배급을 받으라"고 충고한다. 이 말이 맞는 게, 도나리구미에 속하면 방화 예방작업 등을 하고 배급을 받을 수 있었다.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 빗길의 행인
세이타 남매가 농부 아저씨와 헤어진 후 어느 비 오는 날 마주한 행인. 처음엔 속을 알 수 없는 무심한 표정으로 세츠코를 내려다보는 모습으로만 나와서 약간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세츠코가 빗길에 감자를 실수로 떨구자 이를 주워주려는듯 손을 뻗어줬다. 허나 그가 감자를 채갈지도 모른다 의심했던 세이타가 먼저 감자를 주워버리고 도망치듯 세츠코를 데리고 떠난다.[45] 다만 세츠코는 그 행인을 의심하지 않았는지 가볍게 인사를 했으며,[46] 행인은 그런 둘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등장 종료.

영양실조에 걸린 세츠코에게 설탕물을 먹이려고 사탕수수를 훔치려는[47] 세이타를 붙잡고, 용서를 구하는 세이타를 마구 두들겨 패고는 파출소로 끌고 갔다.[48] 하지만 세이타를 동정한 파출소장이 너무 심하게 때렸다며 미성년자 폭행과 상해죄 얘기를 꺼내자 당황하고, 알아서 하라는 말과 함께 달아나다시피 파출소에서 나간다.
원작 소설에서는 감자를 훔치려다 지키고 있던 밭 주인에게 실컷 얻어맞고 전쟁 중에 서리는 중죄라며, 돼지우리(감옥)에 갈 거라며 세이타를 파출소로 끌고 갔다.

세이타를 감싸 준 파출소장. 어깨에 달린 구(旧) 일본 경찰 계급장을 보면 경부보(警部補). 세이타를 동정해서 집으로 돌려보낸다.
원작에서는 나이나 외모 묘사는 없고, 계급도 순사로 나온다. 세이타에게 설교를 하고 곧 돌려보낸다.

세츠코가 죽은 후, 세이타가 구역소에 가서 신고하니 "화장터는 예약이 밀려서 1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는데, 배급계 공무원으로 세이타에게 쌀을 배급했던 이 아저씨가 특별 배급한 을 주면서, 세츠코를 어디 절 한 구석에서 화장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무심하게 "오늘 날씨 참 좋네."라고 말하는데, 전쟁으로 사람의 목숨과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됐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난 장면이다.

  • 행인들
세이타가 부랑아가 되어 산노미야 역에서 생활할 때 지나가던 사람들로, 패전으로 각박해진 인심을 잘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거지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의 세이타와 다른 전쟁고아[49]들이 역 구내에 기둥마다 몇 명씩 기대어 앉아있는 것을 보면서 미군들이 보면 안 된다, 더럽다, 죽었나 등등 말을 하며 지나간다. 중간중간에 세이타 또래의 여학생들이 지나가는데, 부랑아가 되어 앉아 있는 세이타의 모습과 대비된다. 어떤 아주머니는 지나가다가 기둥에 기대어 주저앉은 세이타를 불쌍히 여겨 먹을 것을 주는데, 부랑아가 된 세이타가 왜 산노미야 역에 자리잡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50]

세이타가 죽은 뒤 등장. 역 바닥을 청소하다가 굶어죽은 세이타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또 죽었냐"고 한다.[51]

세이타와 비슷한 처지의 부랑아들이 역 구내에 머무르는 것을 싫어하며 역 밖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부랑아들은 대부분 돌봐주는 사람 없이 거리 위를 떠돌아다녀 몹시 지저분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먹을 걸 구하기 위해 산노미야 역에서 구걸을 하거나 소매치기 행각을 벌였기 때문이다. 세이타의 경우만 봐도 세츠코가 죽어 방공호를 떠난 뒤 거리를 떠돌면서 한 달 가까이 씻지 못해 몸에서 악취가 풍겼고 옷에서는 온통 이가 들끓는 등 지저분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52]

먹을 걸 구할 돈이 없는 부랑아들은 입고 있던 옷이나 신발을 팔아서 얼마 동안 연명할 수 있었지만, 그것마저 다 떨어진 뒤에는 맨발에 헐벗은 모습을 하고 산노미야 역 구내에 자리잡는다. 이런 아이들이 수십 명씩이나 역 구내 기둥에 기대어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있으니 역무원들 입장에서는 보기에 좋지 않았을 것이다.[53][54] 세츠코의 유골이 담긴 사탕통을 발견하고, 그냥 던져서 버려버린다.

  • 기둥에 기댄 소년
세이타가 영양실조로 쓰러져 죽은 날 밤, 역무원들이 세이타의 유품을 뒤지다가 세이타가 앉아 있던 기둥 뒷편에서 발견한다. 비중은 거의 공기이지만 전쟁으로 각박해진 당대 사람들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세이타보다 어린 나이의 소년이며, 대부분의 부랑아들처럼 헐벗은 모습을 하고 기둥에 기대어 앉아있다. 역무원이 다가가서 잠깐 보더니 "눈빛이 흐리멍텅해서 이제 글렀다"고 한다. 한마디로 굶주림으로 인해 의식이 혼미한 상태가 돼서 눈빛이 초점을 잃었고, 머지않아 세이타처럼 쓰러져 죽을 거라는 뜻이다.[55]

  • 부랑아들
애니판과 원작에서는 단순히 언급만 되지만, 드라마판에서는 부랑아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약간 묘사되어 세이타가 어떻게 생활했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세이타가 부랑아가 되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들은 친척 아주머니와 딸이 산노미야 역에 가는 씬과, 세이타가 죽어가는 씬에서 등장한다.[56] 처음 등장하는 부랑아 소년은 출입구 근처에 앉아 있다가 자신의 앞 쪽으로 지나가는 어떤 아주머니가 넘어지면서 짐을 흘리자 재빠르게 훔쳐 달아난다.

다음으로 세츠코와 비슷한 나이대의 어린아이와 중간 나이대의 소년, 그리고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역 기둥에 기대어 같이 앉아 있다. 역 기둥에 기대어서 허공을 응시하며 멍하니 앉아있는 소년도 보이는데 역무원들이 청소하는 과정에서 역 밖으로 쫓아낸다.[57] 마지막으로 쫓겨난 소년 옆에서 엎드려 있던 다른 소년도 역무원들에게 내쫓긴다.[58]

그리고 세이타가 부랑아 생활을 할 때 산노미야 역에서 같이 생활하는 다른 부랑아들의 모습도 보인다. 대부분 고개를 푹 수그리고 힘없이 돌아다니며 초점없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59] 마지막으로 세이타도 나오는데, 이미 옷과 신발을 다 팔아버린 채 초라한 모습으로 기둥에 기대어 앉아있으며 허공을 바라보다가 앉은 채로 죽고 만다.[60]

부랑아가 된 세이타는 이미 돈이 다 떨어진 상태라 가진 물건을 다 팔고, 어머니의 유품까지 팔았지만, 그걸로는 얼마 못 버텼고, 그 이후에는 사실상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을 것이다.[61][62]

5. 원작과 작가


소설은 1967년 잡지 올(all) 요미모노(オール讀物) 10월호에 게재, 같은 시기에 발표한 단편 <아메리카 히지키(アメリカひじき)>와 함께 제58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초반, 2002년, 2003년, 2006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내용은 사실상 작가 본인의 자전(自傳)으로 실제로 기아로 여동생을 잃었던 체험이 바탕이 되고 있다. 그 덕에 원작 소설은 애니메이션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내용보다는 당시 기성세대에 대한 시니컬한 냉소주의가 더 강하다.[63] 굳이 예를 들자면 노벨문학상 작가 귄터 그라스양철북과 비슷한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참고로 노사카 아키유키는 고베 공습으로 양아버지[64]를 잃고, 이어서 피난을 갔던 후쿠이현에서 여동생을 영양실조로 잃었다. 이때 여동생을 구하지 못한 속죄를 위해 소설로 쓴 것.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죽었지만, 노사카 아키유키는 살아남아 방황하다가 친아버지가 다시 거두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종의 참회록으로 쓴 소설이지만, 작가는 인터뷰에서 소설 속의 세이타는 상냥했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면서 "여동생(1년 4개월)의 먹을 것을 뺏어먹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잔혹한 오빠였다. 여동생을 때려서 뇌진탕을 일으키게 한 적도 있다. 소설을 쓰다 보니 일기를 공개하는 것 같아, 있는 그대로 쓰지 못하고 자신을 치장(미화)하는 거짓말을 했고 그래서 이 소설을 읽지 못한다. 또 이 소설로 돈을 벌고, 애니메이션화가 되어서 인세를 받는 것이 깊은 상처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애니메이션이 완성되고 마련한 시사회에서는 영화를 보다가 감정이 북받쳐 도중에 퇴장한 일화가 있다.
노사카의 다른 단편 중에는 '고추잠자리'도 있는데 이게 일각에 도시전설처럼 와전되듯 알려진 "카미카제 대원이 훈련기 몰고 자폭하려다 콕핏에 앉은 벌레를 보고 순간 생명의 귀중함을 깨달아 적함까지 갈 남은 연료를 무인도 가는데 써서 무인도에 불시착한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모름" 이라는 일화의 원전이다.
해당 작가의 다른 서적에 대한 해석적 방법론에 대한 논문에서, 작가는 전공투 출신이며, 천황제를 부정하는 신좌익계라고 분석한다. 반 미국, 혐 일본적인 사상적 전환을 가져 정치적 발언으로서 이러한 소설을 연속으로 출간했다고 분석한다. #논문
무엇보다 노사카 아키유키는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던 인물이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아베 신조 등의 일본 총리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에 대해서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하였으며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원고에서는 '''"이 나라가 과거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기 전의 시기로 다가가고 있음이 확실하다."'''라는 섬뜩한 경고까지 남겼다.기사 1 기사 2
그에 대하여 그가 극우라고 잘못 알려졌는데 김세완은 90년대 후반, 유니텔 만화동호회에서 이러한 글을 쓰기도 했는데 당시 누이동생이 죽은 걸 미군 탓으로 여겼다든지 빵이나 서구풍 음식을 먹으면 굴욕이라는 망언을 했다고 서술한 적도 있었다.

6. 감독의 의도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반전 작품 같은 게 절대 아니다. 그런 메시지는 일절 실려있지 않다'고 했으나 반전 애니메이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서 어쩔 도리가 없다고 회고했다. 그는 오누이가 둘만의 가정생활을 이뤄내는 것에 성공하지만 주변 사람과의 공생을 거절하고 사회생활에 실패하는 모습이 현대에도 통한다고 해설하고 고등학생과 20대의 젊은이들이 공감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참고로,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인터뷰를 인용한다.

"그 시대, 미망인이 말한 것쯤은 특히 냉혹하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세이타는 그것을 참지 못한다. 방공호로 옮겨살 것을 결심하고 세이타는 말한다. "여기서라면 아무도 없고, 세츠코와 둘이서 마음대로 할 수있다." 그리고 생각없이 '순수한 가정'을 세우려고 한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 가능할 수 없으니까 세이타는 세츠코를 죽게 만들었다." - 아니메쥬 1988년 5월호. 타카하타 감독 인터뷰에서[원문]


미국판 DVD에 수록된 타카하타 감독의 인터뷰 영상. 1999년 영어 자막.
요약하면, "일본인 관객의 다수가 세이타에게 동정심을 가져서 나로서는 의외였다. 나도 전쟁 체험자이지만 당시 다들 힘들게 살아남았다.[65] 머리를 숙여야 할 때는 숙이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돈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요즘 아이들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세이타에 대한 비난 여론이 있었더라면 좋았다." 감독의 발언까지 고려해보면 영화를 만들면서 세이타-세츠코 남매를 통해 전시의 일본이 피해자라는 코스프레를 할 의도는 없었던 걸로 보인다.
이웃집 토토로와 동시 개봉을 해서 어느 쪽을 먼저 봤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졌다고 하면서, 이웃집 토토로를 먼저 보고 행복감에 젖어있다가 반딧불이의 무덤을 이어서 보다가 영화가 상영 중인데도 도중에 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반딧불이의 무덤을 먼저 본 경우에는 그런 일은 안 생겼다고 한다.

7. 피해자 코스프레 작품 논란


감독의 정치 성향을 보면 극우 미디어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일본의 전쟁 피해자 코스프레 작품 아니냐는 논란이 있어 피해자 코스프레가 맞다는 주장과 반박을 서술한다.

7.1.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주장


주인공의 대사 중 "무적의 일본 함대"라는 대사가 있다거나, 군함행진곡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는 일본이 스스로를 피해국가로 인식시키려는 목적을 지니고 만든 홍보성 애니메이션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1990년도 당시 9시 뉴스에서 우익 애니메이션이라고 비난한 적도 있다.
참고로, 주인공들이 '무적의 일본 함대~'어쩌구 하는 대사를 하는 이유는 작중 주인공들의 아버지가 일본군 해군의 순양함(마야(중순양함)) 에서 근무하는 배경도 있었으며 실제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했다는 소식을 처음 듣자 현실부정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탓에 한국에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다. 정성일 평론가의 평에 따르면 영화 자체에 일본인=피해자라는 의식이 깔려 있으며, 관람자에게 그 이데올로기를 전염시키고, 아주 감동적이기 때문에 관람자로 하여금 영화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거부하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수십 년간 수탈 받은 피해자가 옆에 있는데 침략국인 일본이 마치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작품이라는 게 비판론의 주된 요지.
또 남매의 비극은 비참했던 일본인 개인을 내세워 전범행위를 덮으려는 의도로도 볼 수 있다. 집단의 잘못을 덮을 때 집단 내의 피해 입은 개인을 내세워 동정심을 일으키는 것은 흔한 수법이다.

7.2. 피해자 코스프레가 아니라는 반박과 의견


요약하자면 이 영화는 '''멍청한 남주인공이 자기 멍청함 때문에 개고생하고 그 멍청함 때문에 동생과 함께 죽는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2차대전 당시 일본 상황을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영화라는 해석이다. #
간단히 말해서 일본의 과거 행적을 대놓고 보여주며 비판의 선상에 놓는 작품은 아니지만, 정작 작품 자체를 보면 극우나 일본의 피해자 행세와도 거리가 멀다. 특히 가장 중요한 건 주인공 남매가 죽는 직접적인 원인이다. 요컨대 작품에서 주인공의 사망 원인은 '''자존심 때문에 친척집을 나온''' 것이라고 해도 좋다. 작중 일본제국의 행적을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내용 같은 것은 나오지 않으며, 그저 두 명의 개인 이야기에만 초점이 집중되어 있다.
세이타, 세츠코 남매가 친척 아주머니집을 나와서 살 때 남매에게 채소를 팔던 농부 아저씨조차 친척 아주머니집으로 돌아가 배급받으면서 살라고 충고했을 정도였다. 부유했던 집안이 부모의 죽음으로 한순간에 몰락한 것과 친척 아주머니 집에 얹혀산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고 여기에 친척 아주머니가 텃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던 세이타가 결국 여동생을 데리고 가출한 것이 컸다. 방화예방 활동을 하고 일감이 몰린다는 공장을 찾아가 일하며 배급을 받고 살았더라면 남의 집에서 눈칫밥 먹을지언정 굶어죽지는 않았을 텐데 전술한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만들어진 비극이다.
친척 아주머니는 주인공 남매를 학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남매 가족의 재산을 약탈한 것도 아니다. 다만 가족의 기모노를 판 것뿐인데 당시엔 남매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죽은 상태였다.[66] 이미 입을 사람도 없고 놔둬봤자 자리만 차지하는 짐일 뿐이며, 팔면 귀중한 돈 및 식량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당시 남매 가족의 재산은 인플레이션이 심할 때도 자립을 하고 꽤나 쌀밥을 먹으며 버틸 만큼 상당했다.
그리고 친척 아줌마는 주인공이 자립하려 할 때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아줌마가 본심으로는 주인공을 걱정했다는 걸 보여주는데 주인공 남매는 아주머니를 자신을 구박하는 적으로만 보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워 집을 떠났다가 죽었다. 친척집에서 나오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학업에 열중하는 모습 또는 공장에 다니는 모습을 보이며 친척 아주머니의 가계에 도움되는 생활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세이타가 거지가 되어 굶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가장 안타까우면서도 가장 어리석은 사람을 꼽자면 바로 주인공인 세이타일 것이다. 주변이 변하고 환경이 변했으니 이젠 그 자신이 환경과 주변에 맞춰서 살아야 하는데 여전히 환경과 주변이 자신에게 맞춰줘야 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인해 그야말로 민폐가 되어버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의 근대사를 주제로 한 드라마를 보더라도 한순간에 몰락을 경험한 주인공이 온갖 설움과 어려움을 견디면서도 '나와 내 가족들은 어떻게든 살리리라'는 마음 하나로 역경을 헤쳐나가는 내용을 많이 볼 수 있다. 중학교 3학년짜리가 무슨 수가 있겠으랴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다못해 자질구레한 일을 해주면서라도 목숨을 연명할 방법은 있었다. 그것도 싫고 주변에서는 자신과 여동생을 자신들이 느끼기엔 구박(?)만 해대니 못 견디겠다면서 나왔다는 것은 주인공의 미숙함을 다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그러므로 피해자 행세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는 (전쟁의 피해자인)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개인의 국적과 국가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67]
감독 자신도 극우는 커녕 오히려 대척점에 있는 일본 공산당 당원이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헌법 9조의 회' 결성집회에서 애니메이션 팬들이 전쟁 홍보용 애니메이션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던 일화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작품이 반전 요소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소수의 일본 국민들은 브레이크 없이 치달은 결과 가해자가 되어버렸다고 말하며 군국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평화헌법을 옹호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일본의 독립 언론인 야스다 고이치가 기고한 기사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링크
감독이 2015년 1월 1일자 가나가와 신문에 기고한 글이 네이버 블로그에 번역되어 올라왔는데 참고로 읽어보자.링크
게다가 해당 내용을 한국 블로거가 번역해서 게시해도 되는지 문의하자

"전쟁말기의 자국민의 비참한 체험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 근본적인 원인, 즉 그 이전에 타국으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와, 그것들이 타국민에게 안겨준 참상에 대해 확실하게 전달하고, 생각하게 할 수 있어야만이 비로소 <반전>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한 편의 영화로 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자국의 타국으로의 침략을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우며,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굉장히 힘들다. 그렇기에 진정한 <반전>은 영화에서보다, 교육 등 보다 이성적인 방법으로 끊임없이 실천해야만 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신이 평소 해왔는데, 그 내용도 첨가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저 코멘트에 따르자면 본인의 입장에서도 반딧불의 묘는 불완전한 반전 영화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해석을 통해 논란이 있는 영화이며 외적으로 오용되지만 나쁜 영화라고는 할 수 없다.
또한, 영화초반 공습 장면에, 시민들이 폭격에 맞아 사망하고, 부상당하며, 참호 밑으로 대피해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와중에 한 일본 군인이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일본군부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원작 소설을 기준으로 볼 때,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에는 작중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의 모습이 문학적으로 당시 일본 국민과 지배층의 모습을 은유하고 있다는 것도 있으니 참고할 것. 사실 작품을 꼼꼼히 보면, 주인공 남매가 처음부터 가난했던 것도 아니다. 주인공 남매가 겪은 고난과 빈궁은 엄밀히 말하면 당시 일본인들이 겪었던 평균적인 상황[68]과는 좀 다르다. 1944년에 설탕 절임 복숭아를 먹었다거나, 통조림을 먹었다는 대목도 있고, 심지어는 음식을 상한 것도 아니고, 단 게 싫다고, 냄새가 이상하다고 버렸다는 대목도 있다. 게다가 은행에는 7,000엔의 저금이 있었고 폭격을 피하기 위해 시골로 내려가면서 바리바리 싸간 것이 우메보시, 버터, 치즈, 기모노, 풍금...이것들이 모두 당시 기준으로는 대단한 사치품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69] 불쌍하게 여기라고 만든 인물이 아니다. 작품 초반부에 나오는 역 구내에서 부랑아가 된 세이타의 모습은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난 뒤인 1945년 9월의 모습이다. 즉 최소한 친척집에 있을 때까지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친척 아주머니에게 천대받기 싫다는 여동생의 징징거림에, 아직 어린 오빠가 빡쳐서 자기들이 독립하겠다고 집을 뛰쳐나가는 바람에 그 꼴이 난 것. 물론 그 친척 아주머니가 아주 잘했다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상식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눈치밥은 좀 먹여도 상당히 인간적인 대우를 해줬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는데 말이다.[70]
작중 남매의 가출이 왜 문제냐면, 이는 곧 토나리구미(隣組)를 비롯한 지역 조직을 중심으로 편성된 식량 배급 체계에서 이탈하는 것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부모가 남겨준 유산으로 암시장에서 식량을 사 와서 남매끼리 재미있게 살았으나, 돈이 다 떨어지고 가진 걸 다 팔아치운 뒤 더 이상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되자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여동생을 영양실조로 죽게 만들고, 혼자 남은 오빠는 산노미야 역에서 거지처럼 생활하다가 동생의 뒤를 따르게 된 것이다[71]
앞에서 설명한, 남매가 그동안 누렸던 풍요로움이 이들의 인격 형성에 상당히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부족함 없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살았기에 한순간에 자신들이 누리던 특권을 모두 잃어버리면서 밀려드는 상실감을 버틸 수가 없었던 것. 오늘날로 말하면 갑의 입장에서 누리던 것을 잃고 을의 입장으로 내려왔었을 때 이를 수용할만한 포용력이 모자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성장 배경 때문에 철부지 같은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오빠가 판단력이 더 미숙한 여동생이 투정부리는 것을 적당히 달래지 못하고, 부화뇌동하여 친척집을 나가버린 것이 죽음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세이타, 세츠코가 아직 미성년자로 판단력이 미숙한 게 정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도 냉정히 생각하면 세츠코 한정으로나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고작 4살의 철부지 유아는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하는 게 당연하지만, 중학교 3학년 학생인 오빠 세이타는 마음만 먹으면 세츠코와 같은 어린아이를 달래고 바로잡아주어야 할 정도의 판단력과 능력은 갖출 수 있는 나이니까.
그리고 1940년대에 세이타 나이(14세)면 그리 어리다고도 볼 수도 없다. 미국이건 일본 제국 시기 한국이나 일본이건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다.[72] 그리고, 2차대전 시작 이전에 일본이 다른 동양 국가들에 비해서 여유로운 상황이었던 점이나 전쟁에 돌입한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여동생 세츠코는 일본 민중을 은유하는 것, 오빠 세이타는 일본 지도부를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전후 일본이 겪은 고난은 결국 자업자득'''이라는 것을 은유하는 것이다.
또한 발간 당시 '전쟁은 국가지도층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고, 일본 민간인은 오히려 지도층의 무모한 야욕에 희생되었을 뿐이다'라는 역사관이 유행하던 것이 비추어 생각한다면 결국 지배층은 어떤 식으로든 다수 대중의 요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고, '''전후의 참상은 결국 일본 국민들이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책임의 대가를 스스로 치룬 것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무적의 일본 함대 운운하는 대사 역시 세이타의 시점에 가깝게 진행되는 이야기 특성상 주인공 입장에서는 아주 당연한 대사고, 더 나아가 이것이 주인공(그리고 당시의 일본 대중)의 전쟁에 대한 무지를 상징하는 대사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점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불쌍한 애들을 괴롭히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쯤으로 묘사되는 친척 아주머니 역시,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그리 나쁜 인물도 아니다. 어머니의 기모노를 대신 내다 팔아준다고 하더니 자기들에게는 고작 쌀 한 단지 주고 말았다고 남매가 서러워하는 부분도, 사실 암시장 거래의 위험성이나 아이들을 부양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적절한 분배 비율에 대한 이견의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기모노와 바꿔온 쌀 중에서 자기 가족 몫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남들은 다 농사일이나 대피훈련 등으로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방에서 종이를 오리거나 피아노를 뚱땅거리는 여동생과,[73] 방 안에 틀어박혀서 아무것도 안 하는 오빠를 좋지 않은 눈으로 보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하고...[74]
즉, 전쟁에 돌입한 일본의 태도가 마치 어린애와 다를 바 없었다는 비판으로도 해석 가능한 셈. 작중에서의 묘사에서 그러한 의도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는 의견이 있으나, 그런 의도가 드러난 부분이 있다. 작중에서 숙모가 주인공 남매가 부모님 돈으로 밥을 사 먹자 섭섭하게 생각하는 장면이 등장하며, 집을 떠날 때는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다. 또한 숙모가 주인공 남매의 재산을 뺏는 장면도 없다. 작중에선 물가가 극단적으로 올라가는데, 주인공 남매가 물건을 한번에 사지 않고 천천히 쓰는 장면이 나온다. 부모의 돈이 엄청났다는 증거인데, 이걸 뺏지 않은 것만 해도 과연 악인일지 의문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봤을 때 세이타와 세츠코는 희생자인 동시에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물이고(세츠코는 아직 유아이니 어느 정도까진 봐줄 여지가 있지만.) 무조건적인 동정의 대상이 되기에는 석연찮은 인물임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이 아이들이 당시 일본 사회에서 일종의 특권계급이던 해군 장교의 자식들로써, 남보다 훨씬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는 점은 작중에서 명확히 묘사된다.
이러한 비평적 해석과는 별개로 적지 않은 독자나 시청자가 이 작품을 일본인의 자기연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이고[75], 이는 오롯이 작가나 감독이 책임져야 할 영역인 것 역시 분명하다.
이 영화를 보고 아이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는 시청자는 드물었다. 받아들이는 쪽에서 남매의 어리석음을 제대로 지적할 수 없을 정도로 연민에 빠지는 연출이 의도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제대로 된 해석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남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이 영화에서 의도된 결과다.[76] 원작에서 나오는 표현조차 생략해 가며 남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한 것은 이 영화가 가진 한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 행세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다.
다만, 감독 자신이 '''전쟁 개시 전부터 일본 국민들이 브레이크 없이 치달은 결과 가해자가 되어버렸다'''고 이야기하며 일본의 전쟁 범죄 행위에 당시 일본 국민의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주장한 바 있다는 점 역시 감안할 필요는 있다. 전쟁의 광기에 대해 그 국가 구성원인 국민 자신들 역시 명백한 책임이 있다는 전제에 따라 본다면, 이와 같은 해석에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일본의 좌파들은, 일반 국민들에게 흔히 박혀있는 책임회피의식[77]에 대해서 꾸준히 비판해왔다.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이렇게 꾸준히 일본의 전쟁 책임을 꾸준히 주장해온 사람으로 이런 사람이 피해자 행세물을 만드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볼 수 있다.[78]

8. 이야깃거리


감독인 타카하타 이사오는 반딧불이의 묘 개봉 이후 조금 더 일본을 비판하는 장편을 기획했다. 《국경》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조선만주국을 배경으로 난징 대학살을 고발하는 내용의 《국경 BORDER 1939》의 기획안까지 제작했으나, 당시 천안문 사태로 인해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면 좋지 못할 꺼란 스즈키 토시오의 판단에 의해 취소되었다.
원제인 火垂るの墓의 火垂る는 반딧불을 뜻하는 蛍(ほたる)의 어원으로 추측되는 말 중 하나다.[79] 물론 영제가 Grave of the Fireflies이며, 작품 내에서 반딧불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을 고려하면 원제의 火垂る도 당연히 반딧불을 뜻하는 게 맞다.
작품의 배경이 된 도시는 고베로, 애니메이션 마지막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가 내려다 보는 도시도 현대의 고베다. 세이타가 아사한 곳은 고베의 산노미야역. 작중 초반의 공습장면은 고베 공습 중 피해가 컸던 1945년 6월 5일 공습을 묘사한 것이다.
한편, 제작 스탭중 안노 히데아키가 있었는데 순양함의 원화를 맡겼을 때 밀덕후답게 신이 나서 극사실주의로 원화를 그려내 왔더니 정작 작화 감독인 콘도 요시후미는 관함식 장면을 화려하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실루엣만 보이게 하고, 흑백영화처럼 어두운 색으로 처리해 버렸다. 색칠한 장본인은 안노의 절친 히구치 신지의 부인 타카야 노리코.[80]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와의 대담에서 반딧불의 묘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있다.

스즈키 토시오 (이하 스즈키): 그리고나서, 반딧불의 묘 때에 다시 나타났었지?

안노 히데아키(이하 안노): 그렇죠. 취직 활동이죠. 일거리가 없어서요. 미야상한테가서 뭐 일거리 없습니까 물어보니, 토토로의 오프닝을 하던지, 타카하타상 쪽의 뭐랄까 전함 그릴 사람이 없다는데, 그쪽을 하든지 어디 할래? 그래서 미야상하고는 전에 (같이)해 봐서 타카하타상하고 일을 해보고 싶었죠.

스즈키: 그래. 그랬지.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전함에 일루미네이션(여기서 웃음 터짐)하고 불꽃.

안노: 네. 일루미네이션과 불꽃입니다. 실은 전함이 아니라 순양함(巡洋艦)입니다. 전함이 아니라.

스즈키: 그래서 그 다음엔가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에, "두 사람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으니까 "라고 말하던데...

안노: 한번 같이 일해 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략 압니다.

작가의 딸이 학교에서 '반딧불의 묘'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썼을까요' 라는 숙제를 받아 오자, "마감에 쫓겨서, 헥헥거리며 썼다.(締め切りに追われ、ヒィヒィ言いながら書いた)"라고 대답해 줬다고 TV방송에서 밝혔다는 일화가 유명하며, 이는 최승호 시인의 일화와 함께, 인터넷에서 문학 교육의 현실을 비판하는 이야깃거리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이 일화는 거짓으로, 작가의 딸이 개인 블로그에서 '''아버지가 할 것 같은 말이지만(いかにも父が言いそうなことではありますが) 사실무근(全くの事実無根)'''이라고 직접 도시전설임을 인증했다.(출처) 이 가짜 일화는 일본어판 위키백과에도 2007년부터 2018년까지 구체적인 방송 이름과 방영 날짜 등의 정보 없이 사실인 것처럼 실려 있었으며, 처음에는 손녀딸이라고 쓰여 있었다가 중간에 딸로 슬쩍 내용이 바뀌었다. 이 일화는 위키백과에 실리기 전부터 2ch 등의 일본 사이트에서 도시전설처럼 회자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언급은 2003년의 2ch 영화작품·영화인 게시판의 어떤 스레드인데, 여기에는 숙제를 제출해서 틀렸다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일본에서 첫 개봉시 같은 제작사의 이웃집 토토로와 동시상영으로 공개되었는데[81][82] 이웃집 토토로를 먼저 상영하고 반딧불의 묘를 뒤에 상영해버리는 바람에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이어서 나오는 반딧불의 묘 때문에 순식간에 관객들의 기분이 암울해져, 어이없게도 이웃집 토토로의 이미지가 꽤 안 좋아진 일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보다 보면 은근히 토토로와 비슷한 구도의 컷이 나오며, 토토로와 대치되는 형태로 사용되는 이미지도 나오며(우산, 조력자)서사 구조도 대조적으로 채용하고 있었던 탓도 있다.[83]
일본 대중 문화가 금지되었던 90년대초에 신촌 모처에서 애니메이션 동호회 주관으로 열린 상영회에서는 아키라와 함께 상연되었다.[84] 본편 상연 중 주인공인 애들이 죽는 장면에서 누군가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이니까) "꼴 좋다!" 라고 외치자 괸객들 반은 웃고 반은 화를 내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대원방송을 통해서 더빙 방영을 했다. 세이타 역에는 김일이, 세츠코는 김서영. 여러 케이블 채널에서 가끔씩 방영하는 편이며, 방영할 때마다 시청자 게시판엔 부모로 보이는 이용자들이 왜 이런 애니를 방영하냐며 항의글을 자주 올리는 편이다. 또 한국에서는 원작의 지명도가 낮다 보니 원작소설의 작가인 노사카가 우익이라는 출처불명의 루머가 돌고 있다.
스웨덴의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인 아치 에너미의 곡중 The Day You Died는 이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작품 속에서 세츠코가 즐겨 먹던 캔 상자 안에 든 사탕[85]은 '사쿠마식 드롭스'라는 상품으로, 1988년에는 작중 배경인 전시에 판매된 상품을 디자인과 내용물을 복각한 상품이 나오기도 하였다. 복각판은 아니지만, 2008년에는 실사 영화 공개 기념으로 세츠코가 캔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사탕을 찾는 모습이 그려진 제품이 발매되기도 했다.[86]
세이타와 세츠코가 풍금을 연주하면서 "호니하니 호이토 호호호하니"하는 대목은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도레미파솔라시를 금지하고 대신 일본어로 '이로하니호헤토'[87] 로 바꾼 것이다. 영미를 악(귀축영미 鬼畜英美)으로 규정하고 영어 사용 금지, 서양 문화를 금지한 정책이었다.[88] 이 이로하 관련 이야기는 비슷한 시대를 다룬 스물네 개의 눈동자란 소설에도 나온다.
반딧불의 묘는 2005년 2시간 30분 단편 드라마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요코가와 세이타 역: 이시다 호우시 요코가와 세츠코 역: 사사키 마오

8.1. 7,000엔의 행방은?


어머니가 저금해 둔 7,000엔이면 당시 가치로는 엄청난 거금이다. 1940년대 일본의 교사나 은행원 초임 월급도 100엔이 채 안 되던 상황, 2017년 기준으로 한국에서는 200만 원이 좀 안 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단순계산으로 1억 4천만 원(!)에 해당한다. 그러나 세이타는 그 큰돈을 어림잡아도 한 달 반밖에 안 되는 사이에 다 날리고 여동생 세츠코를 영양실조로 보내고 자신도 부랑아가 되어 비참하게 살다가 죽고 만다. 세이타가 죽은 이유가 자기 본인의 잘못도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그러나 세이타가 7,000엔을 '''아무렇게나 낭비하는 바람에 다 쓴 것은 아니다.''' 영화 후반부에 세츠코가 영양실조로 쓰러진 후 세이타가 맛있는 것을 사다 주겠다고 은행으로 가서 남은 저금 3천엔(위의 계산을 토대로 6000만원 정도)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고작 음식 조금 사온다고 이런 거금을 찾는 것이 의아할 텐데, 전쟁 전에야 거금이었지만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떨어졌던 것이다.[89]
타카하타 감독도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그 시절에는 아무리 돈이 있어도 물자 자체가 극심하게 부족한 상황이라 물건을 살 수 없었다. 특히 식량은 더해서, 원작에 따르면 계란 1개에 3엔, 기름 1되 100엔, 쇠고기 100돈(刄 약 375g) 20엔, 쌀 1말(18리터) 25엔이던 게 패전 직전에는 더 올라 1되(升 1.8리터) 40엔 , 이것도 암시장에서 겨우 살 수 있고, 쌀은 (화폐 가치가 계속 떨어지니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상황인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해서, 국가에서도 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극 중에서도 쌀을 시장에서 사지 못하고 어머니의 유품인 옷 몇 벌을 물물교환으로 쌀 1말(18리터)을 구한다.[90] 즉 실제로 전후 인플레이션이 극심한 시기에 7,000엔은 현재 가치로 억원 정도만큼 쓸 수 있기는 커녕 잘 쳐줘야 백만원 수준도 될까말까한 식량과 바꿀 수 있는 정도로,[91] 이는 두 아이가 두세달 정도 버티는 것은 몰라도 장기적인 생활비로써는 턱없이 부족하다.
작중 세이타가 은행에서 돈을 찾아와 동생을 위해 계란죽을 끓여주려고 하는데 그 계란 하나가 구하기도 어렵고 비쌌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보면 .... 또 세츠코가 다시 먹고 싶어하던 '사쿠마식 드롭스'는 아무리 돈이 있고 구하려고 노력해도 물건 자체가 없어 살 수가 없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이후 설탕 공급이 중지되어 사탕 생산을 할 수 없게 되고, 기업정비령(企業整備令)으로 인해 1945년에는 회사가 폐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9. 제작 스텝 리스트(애니메이션 영화)


  • 제작, 기획 - 사토 료이치
  • 음악 - 마미야 미치오
  • 캐릭터 디자인, 작화감독 - 콘도 요시후미
  • 레이아웃, 작화보좌 - 모모세 요시유키
  • 미술감독 - 야마모토 니조
  • 촬영감독 - 코야마 노부오
  • 음량감독, 음량연출 - 우라카미 야스오
  • 원화 - 하네 유키요시, 오오타니 아츠코, 안노 히데아키, 카와치 히데오, 오쿠야마 레이코, 야마우치 쇼주로, 코사카 키타로, 키가미 요시지, 우메츠 야스오미, 오가와 히로시, 코타베 요이치 [92], 사이다 토시츠구 외
  • 동화 - 동화공방, 오! 프로덕션, 드래곤 프로덕션, 그룹 라이너스, 스튜디오 포켓 외
  • 배촬 - 히라타 슈이치, 히구치 노리코, 스도 에이코, 히시야마 토오루, 히라카와 에이지 외
  • 특수효과 - 카오루지 타니후미
  • 캐릭터 색채설계 - 야스다 미치요
  • 임상 - 스튜디오 키리, 스튜디오 딘, 타츠 프로덕션, IM 스튜디오, 토레스 스튜디오 M, 포비 기획, 스튜디오 OZ, 스튜디오 샤프트, 스튜디오 엔젤, 스튜디오 톰캣, 셀 아트 스튜디오 외
  • 촬영 - 럭키 모어
  • 편집 - 세야마 타케시
  • 음량효과 - 오히라 노리요시, 이토 미치히로
  • 제작비조 - 우에다 신이치로
  • 제작 데스크 - 오시키리 나오유키
  • 연출조수 - 스도 노리히코
  • 녹음제작 - 오디오 플래닝 U
  • 녹음 스튜디오 - APU 스튜디오
  • 현상 - 토쿄현상소
  • 제작 - 스튜디오 지브리
  • 프로듀서 - 하라 토오루
  • 각본, 감독 - 타카하타 이사오

10. 여담


  • 타가하타 이사오 감독은 스태프진에게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책 <戦火のなかの子どもたち>(전쟁 속의 아이들)을 읽도록 지시했다고 하며 이와사키 치히로에 대해서는 '어린이를 순간의 귀여움이 아니라, 내면을 지니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자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작가'라고 평했다.
  • 게임 쿠키요미를 자세히 보면 두 남매가 나오는데 그 남매가 바로 이 남매이다.
  • 명암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포스터 제목 뒤에 폭격중인 B-29가 보인다.
  • 2020년에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들이 넷플릭스에 제공되었는데, 장편 작품 중 유일하게 제외되었다. 민감한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에 한국 정서를 고려해서 빠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으나,[93] 실은 반딧불이의 묘 해외 배급 판권이 지브리가 아닌 신쵸샤 쪽에 있기 때문이다. 한때 왓챠 플레이에 반딧불이의 묘가 수록되어 있어 관람할 수 있었으나 2020년 현재는 왓챠플레이에서 내려간 상태이다.

[1] 1930년 출생, 2015년 12월 11일 타계.[2] 예전에는 반딧불과 반딧불이는 동의어로 썼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반딧불’을 ‘반딧불이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빛’과 ‘반딧불이’의 동의어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반딧불’은 ‘반딧불이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빛’, ‘반딧불이’의 동의어로 쓰였다.[3] 1931년생으로 추정.[4] 군국주의 시절인 일본 제국에서 아버지가 일본 제국 해군의 장교였으니, 그 가족인 세이타네는 물질적으로 큰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5] 당시는 전시 배급 체제라 도나리구미에 속해서 방화활동 등을 하면 구청에서 나온 배급계에서 쌀이나 식량 물품을 암시장보다 훨씬 싼 값으로 살 수 있었다. 배급이라고 해서 공짜는 아니었고 배급표와 돈이 있어야 했다. 그러니 친척어른 입장에서 보자면, 세츠코는 4살밖에 안 되니 이해해도 이미 중학교 3학년인데도 아무것도 안 하는 세이타가 얄미울 만도 하다. 다만, 애니와 다르게 원작에서는 세이타는 방화활동에 참여한다. 감독의 의도적인 생략.[6] 사실 영화나 애니에서 이런 류의 캐릭터는 대부분 소년소녀가장 속성을 지닌(즉, 어려운 환경 때문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철이 바짝 든 애어른 캐릭터)인 반면에, 세이타는 그렇지 않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철없는 중학생의 모습 그대로이며 이런 묘사가 현실성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친척 아줌마 역시 지속적으로 구박은 해도, 밥을 따로 먹는 상황에서도 세이타가 안 치우고 그냥 둔 설거지거리를 궁시렁 대면서 설거지를 하는 등 아예 나쁘게 대한다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입이 늘어난 것에 대한 걱정과 배급활동에 도움 되는 활동을 하지 않는 세이타를 보면서 식량부족에 대한 불안에 계속 쪼아댄 것으로 봐야 한다.[7] 그리고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묘사에서도 빈둥빈둥 놀고 있는 세이타를 보고 어이없어 하는 숙모의 모습이 종종 보이는데 초반에는 공습 이후로 일하던 공장과 학교가 타버려서 못 간다는 이야기에 납득은 해주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후 저녁에 공장에 일하는 하숙인에게 전황에 관해 물어보는데 하숙인 왈 '다른 공장이 타버려서 남아있는 공장에 일거리가 전부 몰리고 있다'는 말을 한다. 즉, 세이타는 마음만 먹으면 일 할 수 있는 환경이 있음에도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놀고먹는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으며 이 외에도 철없이 피아노를 치며 세츠코랑 노래를 부르는 행동에 결국 화가 난 친척 아주머니가 지적을 하자 아니꼽다는 표정을 짓는다. 밖으로 안 나간다고 쳐도 철부지 동생 간수라도 잘 하고 집안일이라도 빠릿빠릿 하면서 일손을 조금이나마 덜어줬다면 친척 아주머니가 미미하게나마 그를 조금 더 좋게 봤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런 건 없었다.[8] 세츠코를 목욕시키려고 옷을 벗기니 영양실조로 인해 온통 종기가 나 있고 갈비뼈가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정신이 오락가락해 돌멩이를 음식이라고 하면서 먹는 상황까지 간다.[9] 원작에서는 이미 가진 돈은 다 떨어지고, 연못에서 수영하고 놀다가 돌아와 보니 세츠코는 죽어있었다.[10] 그 도시를 보고있던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가 현재의 도시(80년대)에 살아있었으면 이미 50대(세이타) 중후반 밎 40대(세츠코) 중후반이 될 중년의 나이였을 것이다.[11] 세이타는 처음에 어머니의 유품인 낡은 기모노를 팔아서 보름 정도를 버틸 수 있었다. 이후 입고 있던 교복 윗도리와 각반에, 신발까지 팔아치우고 마지막으로 남은 바지마저 팔려고 했다. 차마 바지는 팔 수 없었던지 계속 망설였고 그러는 사이 어느 새 산노미야 역 구내에서 생활하는 부랑아가 되었다.[12] 작품 맨 첫 부분의 고개를 푹 숙인 채 산노미야 역 기둥에 기대어 앉아 있는 세이타가 이 시기의 모습이다. 부랑아가 된 세이타가 얼마나 비참하게 생활했는지는 이 부분만 봐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13] 세이타는 어머니의 유품을 시작으로 입고 있던 옷과 신발까지 팔아버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바지도 팔려고 시도했다. 이제 남은 건 오랜 노숙 생활로 인해 누더기가 되어 버린 바지와 런닝셔츠 밖에 없었다. 이런 옷차림을 한 채 맨발로 역 구내와 암시장 주변을 돌아다녔을 세이타가 행인들과 역무원들에게 어떤 취급을 당했을지는 쉽게 짐작 가능하다. 덤으로, 방공호를 떠난 뒤 한 달 가량을 씻지 못한 나머지(심지어 여름이다) 몸에서는 지독한 악취가 풍겼고 옷은 온통 이로 들끓고 있었다.[14] 세이타는 역무원들에게 역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지만, 한번 산노미야 역 구내로 들어오면 아예 그 자리에 눌러앉아 뿌리를 내리다시피 했는데, 배는 고파도 물은 얼마든지 마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15] 영양실조로 인한 설사는 방공호에서 살 때부터 나타났다고 언급된다. 하지만 이후 부랑아 생활을 하며 돌이킬 수 없이 심해진 나머지 하루에도 몇 번씩 설사를 했고, 나중에는 한번 주저앉으면 다리에 힘이 빠진 나머지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워하게 되었다.[16] 불행하게도 설사는 세이타가 움직일 능력을 상실한 뒤에도 용서없이 계속되었고 기어갈 힘조차 없는 세이타는 그만 앉은 자리에서 똥을 지리고 만다. 부끄러운 나머지 도망가려고 했지만 몸이 안 움직여주니 무용지물이었고 급한 대로 손 닿는 범위 안에서 먼지로 덮어보려고 한다. 하지만 손 닿는 범위가 한계가 있다 보니.... 지나가는 행인들이 보기에는 굶주림으로 미쳐버린 부랑아가 자기가 싼 똥을 가지고 노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17] 세이타는 죽기 전 오늘이 며칠인지 계속 생각하는데, 부랑아가 된 이후 날짜 감각조차 상실했다는 걸 보여준다. 세츠코가 죽은 뒤 한달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다보니 잊어버린 걸로 추정된다.[18] TV 드라마판에서는 전쟁고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다음날에 죽었다는 설정이 추가되었다.[19] 작중 1941년생으로 추정.[20] 숙모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말해준 것이다.[21] 하지키는 우리나라 식으로 치자면 납작한 유리구슬같은 것이다. 흔히 납작구슬 혹은 납작유리구슬, 아니면 원예용 유리자갈이라 파는 그것.[22] 당시 세이타 나름의 오기와 자존심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친척 아주머니가 세이타 남매를 안 찾는 걸 보면 이제 와서 돌아간다고 해도 받아줄 것 같지도 않아서 안 돌아가기로 한 것일 수도 있다.[23] 그러나 사실 친척이 안 받아줄 확률은 0% 에 가깝다. 현실에 대입해봐도, 일단 일본은 주위에 안 좋은 소문이 퍼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일종의 메이와쿠) 일단 친척간인데다 4살, 14살짜리 어린아이들을 안 받아줬다가는 이웃에 바로 소문 퍼지고 동네에서 온전히 살기 힘들다. 친척이 주인공 남매한테 어떤 감정이었든 관계 없이, 주인공이 사과하고 다시 받아달라고 간청하면 반드시 받아주기는 한다고 봐야 한다. 즉 돌아가지 않은 건 그냥 주인공의 똥고집과 자존심 때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24] 아직 몸이 다 자라지도 않아 연약한 연령대였는데 무리하게 집을 나와서 제대로 된 보금자리도 식사도 없이 방공호에서 살았고, 얼마 안 가 돈을 거의 탕진한다. 가진 물건을 팔아 먹을 걸 구할 수 있었으나 당연히 한순간이었다. 이 연령대 아이들에겐 지속적이고 제대로 된 영양공급이 필요하다. 이러니 얼마나 갈진 안 봐도 비디오였다. 게다가 병원에 제대로 갈 상황도 못됐으므로...[25] 애니메이션 감독이 가장 고심하는 부분이 기존의 어른 성우에게 어린이 배역을 맡기면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가식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그렇다고 어린이의 목소리를 쓰려고 하면 긴장해서 연기가 안 되는 점이다. 다행히 이 소녀는 휼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수십 번이나 반복하는 리테이크에 지쳐서 칭얼대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 지친 상태의 감정이 목소리 연기에 반영되어서 상승 효과가 나왔는지 모른다.[26] 눈과 코, 입 부분을 제외한 상반신 전체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곳곳에 피가 스며나와 있었다.[27] 영화판에서도 (분명 붕대를 다 두르긴 했지만) 비위 약한 사람은 흠칫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걸 꽤 적나라하게 묘사해 놨다.[28] 세이타는 다음 날 인력거를 불러 병원으로 옮기려고 했으나 이미 가망이 없어 인력거 기사가 돈 받기를 포기하고 돌아가버렸다.[29] 병원은 매일 아침마다 화상 환자들 붕대 갈아주고 소독해주는 게 아침 일과다. 그런 걸 전혀 못해줬으니.[30] 국가의 원수 등이 해군 함대를 검열하는 의식. 군함의 장비와 병사들의 사기(士氣) 등을 살핀다.[31] TV 드라마판에서는 이 장면을 집어넣었다.[32] 참고로 이 돈은 인플레이션이 심할 때도 남매들끼리 꽤나 음식을 사서 한동안 자립이 가능할 정도로 큰 돈이었다. <반딧불의 묘>가 일본의 피해자 행세물이 아니라는 증거 중 하나다.[33] 하지만 남매가 떠나자 바로 집으로 들어가려 한다. 진심으로 걱정했는지 다행이라 생각됐는지는 의심해볼 부분.[34] 이때 집에 들어가려던 참에 남매가 콧노래를 부르며 가는 것에 놀란다. 아마 이것 때문에 아예 신경을 끊은 듯하다.[35] 다른 상황도 아니고, 무려 '''전시'''라는 위기상황에서 남의 집에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이니 세이타가 최소한 집안일이라도 돕는 시늉이라도 좀 해야 하고 동생이 철없이 굴거나 하면 자기가 타이르는 시늉이라도 해서 덜 밉보일 필요가 있는데, 그마저도 안 하고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36] 게다가 작중 나온 대사에 아주머니가 집주인을 언급한걸 보면 아주머니도 세들어 사는 입장이다.[37] 사실 전쟁중에는 친척끼리도 인심이 각박해지기 쉽다는 걸 생각해보면 세이타의 태도가 안일하긴 했다. 게다가 세이타는 현재 돌아갈 집도 없어진 상황이니 더더욱 숙모에게 잘 보여야 했는데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집안 사정이 더 어려워지면 숙모가 쫓아낼 가능성이 더 높았다) 완전히 거꾸로 해버린 셈.[38] 같은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 맨발의 겐만 봐도 학업을 하면서 비는 시간대에서는 막노동을 하거나 돈이 될 만한 고철을 찾는 등의 행동이 나온다.[39] 단순히 학업과 노동의 문제만이 아닌 게 세이타는 자기들이 먹은 그릇의 설거지조차도 안 했다. 게다가 공장에서 일하는 하숙인 왈 타 버린 공장의 일감이 남아있는 공장으로 몰리고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 정도면 정신적 충격 때문에 학교나 공장에 나갈 수가 없어서 그냥 아무 일도 안한 거라는 것도 핑계라고 봐야 한다. 만약 진심으로 공장에 일 할 생각에 있었다면, 일감이 몰린다면 해당 공장은 인원을 모집하려고 했을 것이고 당시 시대상 청년들이 대부분 전쟁터에 끌려갔기 때문에 하숙인에게 부탁하면 공장에 일할 수 있는 기회라도 얻을 수 있었다.[40] 가혹하긴 하지만 이는 거쳐야 할 벽이기도 하며 전시라는 유례없는 사태였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세츠코에게 현실을 직시를 하게 해줘야 했다.[41] 세츠코와 중복.[42] 밥을 따로 해먹는 세이타 남매를 보고, 자기 엄마가 심한 소리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는 장면.[43] 근데 그녀는 일단 세이타 남매의 외숙모의 딸이며, 하숙인은 세이타 남매의 외숙모에게 먼저 도움이 될만한 일(암시장에서 물자를 구해다준 것)을 해서 호감을 샀던 반면 세이타 남매는 하숙인처럼 호감을 사려는 시도조차 안 하고 철부지처럼 구니 당연히 취급이 차이 날 수밖에 없긴 했다.[44] 딸도 친척도 아닌 그에게 세이타 남매의 숙모가 밥과 건더기가 가득 든 국밥을 떠주는 게 그 증거.[45] 상대가 얼마든지 길바닥에서 자신의 물건을 탐내고 훔칠 가능성을 아직 아이인 세이타가 재보고 이를 경계할 정도로, 당시 '전시'라는 상황 탓에 민심이 상상 이상으로 각박하고 예민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46] 이 시점에서 행인은 세츠코의 손에 들린 감자에 전혀 관심을 들이지 않고 세츠코를 쳐다만 본다. 세이타가 지레 의심하고 도망갈 때도 뭐라 하지도 않고 감자를 탐내지도 않으며 둘을 바라보기만 한다. 전시라 쳐도 코흘리개 애들의 감자까지 훔칠 정도로 사정이 급했다면 뒤에 나오는 밭 주인처럼 가차없이 빼앗았을 거지만 행인은 그렇지 않고 지나갔으니 최소한 아이들의 물건을 훔칠 생각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가 세이타를 전혀 쫓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는 것부터가 그를 향한 세이타의 의심이 빗나갔다는 걸 알 수 있다.[47] 겨우 한 대의 사탕수수만 뽑았다.[48] 세이타와 실갱이를 하던 도중 "여태 서리하던 녀석이 너지?" 하고 추궁하는데, 이를 볼 때 먹을 것이 부족하고 물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마구 뛰는 괴랄한 시장 상황 때문에 서리를 하는 사람들이 그 사탕수수밭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49] 산노미야 역 구내에는 세이타 말고도 수십 명의 갈 곳 없는 전쟁고아들이 부랑아가 되어 기둥에 기댄 채 주저앉아 있었다.[50] 바지까지 팔 생각을 할 정도로 극심한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었던 세이타가 산노미야 역에서 생활하는 이유도 행인들의 동정심을 얻어 먹을 걸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고 물이라도 마음껏 마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51] 그만큼 부랑아들이 산노미야 역에서 매일 많이 죽어나가는 상황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역 구내 기둥마다 자리잡고 앉은 부랑아들은 수십 명에 달했으며, 대부분이 세이타처럼 굶주림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52] 세이타는 8월 말에서 9월 말까지 약 한달 동안 거리 위에서 부랑아로 지냈다. 그 기간 동안 한번도 씻지 못한 세이타의 몸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났고, 입고 있는 누더기옷은 온통 이로 들끓고 있었다. 나중에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해 그 자리에서 설사를 하고 마는데, 당연하지만 주변에 가기만 해도 악취가 풍겨왔다. 지나가는 행인들도 그런 세이타의 모습을 보고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지나갔다.[53] 이미 수중에 돈 한푼 없고 팔 물건도 다 떨어지자 더 이상 먹을 걸 구할 방법이 없으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기차역에 오게 된 것이다. 거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가진 물건조차 다 팔아버린 부랑아들은 하나같이 맨발에 누더기옷을 걸치고 지저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54] 대부분의 부랑아들은 돈이 다 떨어지고 난 뒤에는 산노미야 역 구내에 눌러앉았으며, 세이타도 마찬가지로 역에 한번 들어오면 기둥에 기대어 자리잡고 아예 뿌리를 내렸다. 이미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아이들이 역 구내에 하루종일 죽치고 있는 것도 모자라서 하루에도 몇 명씩 굶주림으로 죽어나가니 시체를 수습해야 하는 역무원들이 좋아할 리 없다.[55] 배고픔에 지쳐 쓰러져 가는 아이들을 보고 오히려 이제 죽을 때가 됐다는 말이나 하는 비정한 모습은 전쟁으로 인해 각박해진 인심을 보여준다.[56] 드라마판은 약간의 각색이 이루어졌는데, 친척 아주머니의 딸과 세이타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이며, 세이타가 세츠코와 집을 뛰쳐나간 뒤에도 찾으려고 해서 산노미야 역까지 온다.[57] 역무원들이 와서 가만히 앉아있던 소년을 빗자루로 쳐서 쫓아내며 더럽고 지저분한 녀석이라고 미군들이 곧 들어올텐데 이런 아이들이 역에 있으니 부끄럽다고 말한다. 사실 이 소년을 포함한 부랑아들의 모습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닌데, 하나같이 맨발로 다니며 헐벗은 옷차림과 지저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이타도 예외가 아니라 수 차례 역무원들에게 내쫓겼다고 작 중에서 언급된다.[58] 자세히 보면 계속 엎드려서 구걸을 하고 있는데 가진 물건과 돈이 다 떨어진 부랑아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알 수 있다. 돈도 다 떨어지고 가진 물건조차 없으니 별 수 없이 거지가 되어 역 구내에서 구걸을 하는 것이다.[59] 돈이 다 떨어진 부랑아들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물로 배를 채우며 연명했다. 역 구내에 있으면 배는 고파도 물은 얼마든지 마실수 있기 때문이다. 영양실조에 걸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로 인한 만성적인 설사도 계속되었다.[60] 나중에 역무원들이 죽은 세이타의 유품을 살펴보다가 세이타의 일중 모자를 보고 놀라는 묘사가 있다. 일중에 다닐 정도로 부유할(것이라고 예상되는) 소년이 역전에서 부랑아 생활을 하다 굶어죽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세이타가 얼마나 멍청한 선택을 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61] 사실 세이타가 자존심을 버리고 친척집에 돌아가면 다 해결됐을 문제이다. 웃긴 건 정작 부랑아가 된 뒤에는 입고 있던 옷과 신발을 다 팔아치우고, 거지꼴을 한 채 산노미야 역 구내에서 생활한다. 자신이 돈이 다 떨어지자 숙모가 팔자고 했을 때 안 팔려고 했던 어머니의 기모노는 물론이고 입고 있던 교복에 신발까지 팔아치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봤을때, 애초에 친척 아주머니를 안 믿었을 가능성이 있다.[62] 사실 원작 소설 포함 그 어디에서도 부랑아가 된 세이타(1945년 9월 이후)가 먹을 걸 얻으려고 구걸을 하거나 소매치기를 했다는 대목이나 묘사가 없다. 세이타는 옷과 물건을 다 팔아버린 뒤에도 역 구내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다가 행인들이 주는 음식과 물로 연명했다는 걸 의미한다. 만약 세이타가 다른 부랑아들처럼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고 구걸이나마 적극적으로 했다면 살아남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63] 노사카 아키유키의 데뷔작인 '에로 선생님들' (이 소설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인류학 입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다.)은 포르노 감독을 주인공으로 욕망에 충실한 전후 일본인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요컨데 냉소주의와 풍자, 골계미적 성격이 강했던 작가.[64] 어린 시절 부모의 별거 및 이혼으로 인해 다른 집안에 입양되었다.[원문] 「あの時代、未亡人のいうことぐらい特に冷酷でもなんでもなかった。清太はそれを我慢しない。壕に移り住むことを決断して清太はいいます。『ここやったら誰もけえへんし、節子とふたりだけで好きに出来るよ。』そして無心に”純粋の家庭”を築こうとする。そんなことが可能か、可能でないから清太は節子を死なせてしまう」/『アニメージュ』1988年5月号の高畑監督インタビューより[65] 미야자키 하야오 말에 의하면, 타카하타 이사오는 전쟁 때 폭격으로 불탄 자리를 이틀 간 헤맸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먹을 것도 고구마 쪼가리 하나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저런 사람이 되어버린 거라고 말했다.[66] 웃긴 건 나중에 세이타가 부랑아가 되고 난 뒤 어머니의 기모노는 물론이고 자신의 옷과 신발까지 다 암시장에서 팔아치운다는 것이다. 막상 본인이 굶주리는 상황이 오자 암시장에서 다 팔아버리고 결국 그마저도 다 떨어지자 맨발에 누더기차림으로 산노미야 역 기둥 한 구석에 자리잡는다. 게다가 자존심은 어디로 갔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정심에 던져주는 음식으로 연명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아 물로 배를 채워가며 연명한다. 물론 이것도 임시방편이라 세이타는 곧 굶어죽고 만다. 이미 옷과 신발까지 다 팔아치웠는데, 돈은 다 떨어졌고 더 이상 팔 것도 안 남았는데 스스로 일해서 입에 넣을 걸 손에 넣으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으니.[67] 작품 자체가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를 중심으로 그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와 갈등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당시의 일본사회가 이 작품의 배경이 되기 때문에 약간 불편한 장면도 없진 않겠지만 어디까지나 주요 화자는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다. 그리고 이들이 당시 겪었던 어려움은 어느 인간 사회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68] 단적으로 작품 초반부에 나오는 산노미야 역 구내에 있던 다른 부랑아들은 세이타처럼 스스로 친척집에서 뛰쳐나온 것이 아니라 진짜로 의지할 곳 없는 처지일 가능성이 높다. 받아줄 친척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부랑아 생활을 하는 세이타와는 다르다.[69] 당시 일본의 상황이 어느 정도로 가난했냐면 내각의 고위 인사들도 고작 '버터 바른 군고구마'를 먹지 못해 별미라 칭할 지경이었으며, 군대로 차출되어 나가는 사람에게 송별회를 한다며 준 음식이 '구운 오징어'(...)이다. 심지어 영화 일본 패망 하루전에서는 도쿄 대공습 이후 히로히토 덴노 부부가 궁성에서 하는 식사가 단촐한 바지락죽 한 그릇이 전부이며, '민간에선 아직 식량 유통이 가능해서 앞으로 폐하와 함께 식사를 할 때는 자택에서 각자 도시락을 지참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고위 관료들의 건의가 나오자 히로히토가 허락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 황실조차 덴노와 고위 관료들의 식사 모임에 올려야 할 음식들도 제대로 구하기 힘들 지경이었던 것.[70] 세이타가 성숙해서 칭얼대는 여동생을 달래고 방화조에 들어가던 하다못해 친척 아주머니 집안일이라도 돕는 것으로 밥값을 하려고 노력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71] 세이타가 판단력이 미숙하다는 것이 여기서도 드러나는데, 여동생마저 굶어 죽은 상황이라면 친척집에 돌아가는 게 현명한 선택이겠지만, 부랑아 생활을 하며 암시장에서 가진 물건을 다 팔아치운다. 입고 있던 옷에 신발까지 팔아버리고 난 뒤에도 친척집에 돌아가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산노미야 역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세이타의 쓸데없는 자존심이 만들어낸 모습이다.[72] 예를 들면, 경의선 마지막 기관사로 유명한 고 한준기 옹은 1943년부터 '''17세'''에 일본에서 철도 기관사로 근무했다. 그 당시 일제가 닥치는 대로 징병을 하는 바람에 철도도 17세 인력을 써야 할 정도로 막장이 된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당시는 중학교나 (구제)고등학교 진학 비율이 많지 않고 10대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았다.[73] 애초에 어린 아이인데다 폭격에 의한 공포로 인해 생긴 행동이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피아노 소리도 시끄러운 데다 전시에는 공간을 차지하기만 하고 쓸 데가 없는 가구인 피아노를 얘 때문에 팔지도 못하니 짜증이 날 만한 상황이기는 하다.[74] 하다못해 공부라도 하라는 숙모의 말에 전쟁의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답했는데, 친척 형, 누나들은 공부하러 나갔다(더구나 세이타는 누구보다 학업에 더 집중해야 할 중학교 3학년이다.). 거기다가 숙모가 알아서 해먹으라고 쌀을 줬을 때도, 먹고 나서 뒷처리도 안 했다. 숙모 입장에서 이 남매는 도움이 하나도 안되는 밥벌레나 다름없는데 내쫓기는 커녕 구박하면서도 식사는 꼬박꼬박 챙겨줬다.[75] 사실 주인공 남매가 상징하는 의미를 심층적으로 이해하였다 하더라도, 남매들을 동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감성적 연출이 비판론 측에서 삼는 문제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비판적 의견을 대변하는 데 평론이 인용되었던 정성일 평론가도 이 해석은 분명히 언급하고 넘어갔다.[76] 일단 어린 소년소녀 남매가 주인공이니 관객들은 일단 이들의 입장과 관점에 서서 작품을 감상하며 자연히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으니, 연민을 먼저 느낄 수밖에 없긴 하다.[77] 전쟁은 당시 지도자들의 책임이며 자신들은 그에 쓸려갈 뿐이었다는 논리[78] 물론 스폰서 때문에 감독 의향과 다른 작품이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스튜디오 지브리는 타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유로운 창작을 할 수 있게 만들어진 회사로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는 작품에 대해서 거의 간섭을 안 하는 걸로 유명하다. 즉 이 작품은 타카하타 이사오 개인의 메시지가 온전히 담겼다는 것이다.[79] 그 외에는 〈火照る〉〈星垂る〉〈火太郎〉 등이 어원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출처 - #[80] 안노가 나중에 감독한 톱을 노려라!의 주인공의 이름을 제공한 인물이다.[81] 그런 이유로 평론가 오쓰카 에이지는 두 작품을 세트로 비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작품을 세트로 비평하게 되면 반딧불의 묘는 절대로 일본 피해자설을 주장하는 작품으로 해설할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순문학의 죽음 오타쿠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83~85쪽 참조[82] 이렇게 된 이유는 제작사 측에서 이웃집 토토로가 대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웃집 토토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 수작이 되었다.[83] 자세한 내용은 이웃집 토토로 항목에서 6.2. 반딧불의 묘와의 관계를 참조할 것.[84] 가정용 타이틀의 단체 상연은 따지자면 불법이지만, 당시에는 저작권 인식도 없었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 참고로 두 작품 모두 반전 코드를 담고는 있지만 분위기가 워낙 달라서 보던 사람의 기분이 이상해졌었다.[85] 애니메이션 판에서는 세이타가 세츠코에게 입 벌려 보라고 하면서 사탕을 먹인 것으로, 실사영화 판에서는 친척 여자아이들이 캔 안의 사탕을 늘어놓으며 세츠코에게 사탕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나왔다. 아니메 판의 경우에는 세츠코가 좋아하고 드롭스를 다시 먹고 싶어한다.[86] 약간의 혼란이 있는 거 같은데, 이 두 제품은 동일한 디자인이다. 한쪽 면은 원래의 디자인을 복각한 형태고, 다른 면은 그 디자인 위에 세츠코의 모습을 겹쳐서 프린트한 제품이다. 그와는 별개로 동일한 깡통에 조금 밝은 디자인을 넣은 현행 제품도 존재한다.[87] 한국어로는 가나다라마바사. '가장조', '사단조'할때 '가~'가 이거다. '도레미파...' 순서대로는 '다라마바사가나(하니호헤토이로)'.[88] 당시 일제 치하인 국내에서 나온 국민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일본식인 '이로하니호헤토'로 계이름이 붙어 있었다. 정확하게는 도레미파.. 는 영어가 아니고 이탈리아어이지만 서양 문화 규제 및 금지 정책 때문에 금지했다. 근데 정작 당시 이탈리아는 같은 추축국이었으므로 팀킬 조치이다(...)[89] 실제로 이것보다 이전에 발생한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의 초인플레이션 사태에선 생필품들의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지폐만 너무나도 흔한 것으로 취급되기까지 했다. 너무 남아돌아서 그냥 장난감이나 벽지 바르는 용도로까지 취급될 정도.[90] 비슷한 시기를 다룬 이 세상의 한 구석에에서도 주인공 스즈가 암시장에서 배급보다 50배나 비싼 가격으로 설탕을 구입하는 장면이 그려진다.[91] 그나마도 지금은 대량생산에 의한 저렴한 가공식품도 많고 통조림등 장기보존식도 많이 있어서 단순히 생존만을 위해 가성비 좋은 고열량 식료구입이 가능해 좀 더 버틸 수 있겠으나 당시는 그런것도 없고 농산물, 신선식품 위주에 공산품도 비싸고 구하기 어려워서 체감 가치는 훨씬 더 낮다.[92] 논 크레딧. 닌텐도 소속이라 몰래 했다고 한다.[93]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졌던 게, 마찬가지로 태평양 전쟁 관련 소재를 다룬 바람이 분다는 정상적으로 수록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