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1. 개요
2. 대종사 소태산 박중빈
3. 창시에 영향을 준 요인
3.1. 불법 연원
3.2. 기존 종교 영향
4. 교리
5. 불교와의 차이
6. 평가
8. 교도
9. 종교 재단 산하 교육 기관 및 시설
10. 사건 사고
11. 군종 활동
12. 여담
1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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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16년 4월 28일 소태산 박중빈이 대각하여 창시한 종교이다. 공식사이트
현재 민족종교 중 신도수가 가장 많다.
한글 이름, 영문 이름 모두 불교가 들어있어 불교의 한 종파로 생각하기 쉽다. 불교에서 차용한 용어와 개념이 있지만, 불교의 한 종파로 보기 어려운 독자적인 교리로 이루어져있다. 종교의 시작도 승려가 아니라 수행을 하던 도인이 깨달음을 얻어 창시하였다. 경전인 원불교 전서에도 2대 종법사인 정산종사에게 한 손님이 "당돌한 말씀 같사오나 원도(圓道)라 또는 원교(圓敎)라고 이름하시는 것이 모든 교법을 포용하는데 더 원만하지 않을까요."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1]
원불교에서 불교의 경전과 수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종사가 먼저 깨달음을 얻고, 이후 여러 종교의 경전을 살핀 후 ‘내가 스승 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나 도를 얻은 경로가 부처와 비슷하므로 연원을 부처님에게 정하고”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대종사는 설법을 할 때 불법을 중심으로 삼았다.
원불교는 불교종단협의회(종단협)의 전신인 대한불교총연합회 창립 당시에 참여한 12단체 중 하나였다. 1970년대에 불교재산관리법 관련 이해득실 문제로 종단협을 탈퇴하였다.# 세계불교도우의회(WBF)에는 가입되어 있다. 가톨릭, 개신교, 불교와 묶어 한국 4대 종교라고 할 때가 있다. 온갖 사이비 논란으로 얼룩진 신흥종교의 굴레에서 비교적 자유로우며 재정 관리가 투명하다.
처음엔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라는 교명을 사용했다. 1918년에는 대명국영성소좌우통달만물건판양생소(大明局靈性巢左右通達萬物建判養生所), 1919년에는 불법연구회기성조합(佛法硏究會期成組合)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원'불교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징물은 원. '''○''' 이런 동그라미 모양의 표식이 건물에 붙어있으면 원불교 계열의 건물이라고 보면 된다. 그림이 아니라 실제로 반지 모양의 구조물을 걸어놓는다. 불교에서는 '법륜'이라 하여 원 모양의 바퀴를 불교의 상징으로 삼기도 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완전히 불교와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일원의 진리(법신불 일원상 : ○)을 스스로 믿고 깨달아 실천하는 종교이다. 기존 불교로부터 차용한 법신불이라는 명칭은 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에 의해 정해진 것으로 창시자 소태산 생전에는 심불(心佛)이라는 독자적인 용어로 불리었다.
경전은 정전대종경을 합쳐서 원불교 교전이라고 하며, 여기에 불조요경과 예전, 정산종사 법어(세전&법어), 교사, 교헌, 성가 등을 합쳐서 원불교 전서라고 한다. 보통 한 권으로 묶여있다.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를 신앙하지 않는다. 존재우주 만유에 관통하여 두루 있는 진리를 인정하고 감사히 여기며 수행한다.
연호로 '원기'라는 말을 사용하며, 원기 원년은 소태산 박중빈이 대각을 이룬 해인 1916년이다.
믿음을 증명하고자 죽거나, 몸을 다치는 일을 금지한다. 서대원[2] 교무가 대종사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손을 자른 일이 발생하였을 때 대종사는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몸은 곧 공부와 사업을 하는 데에 없지 못할 자본이어늘 그 중요한 자본을 상하여 신을 표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며, 또는 진정한 신성은 원래 마음에 달린 것이요, 몸에 있는 것이 아니니, 앞으로는 누구든지 절대로 이러한 일을 하지 말라.

대종경 제10 신성품 17장

다른 종교과 원불교를 같이 공부해도 된다. 대종사는 원불교를 공부하는 것이 다른 종교를 변절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였다.

송광이 사뢰기를 [제가 오랫동안 저를 직접 지도하여 주실 큰 스승님을 기다렸삽더니, 오늘 대종사를 뵈오니 마음이 흡연(洽然)하여 곧 제자가 되고 싶나이다. 그러하오나, 한 편으로는 변절 같사와 양심에 자극이 되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예수교에서도 예수의 심통 제자만 되면 나의 하는 일을 알게 될 것이요, 내게서도 나의 심통 제자만 되면 예수의 한 일을 알게 되리라. 그러므로, 모르는 사람은 저 교 이 교의 간격을 두어 마음에 변절한 것 같이 생각하고 교회 사이에 서로 적대시하는 일도 있지마는, 참으로 아는 사람은 때와 곳을 따라서 이름만 다를 뿐이요 다 한 집안으로 알게 되나니, 그대의 가고 오는 것은 오직 그대 자신이 알아서 하라.] 송광이 일어나 절하고 제자되기를 다시 발원하거늘, 대종사 허락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나의 제자된 후라도 하나님을 신봉하는 마음이 더 두터워져야 나의 참된 제자니라.]

——

대종경 제14 전망품 14장


2. 대종사 소태산 박중빈


말씀은 항시 실생활에 연결되는 실담(實談)을 하셨고 형이상학(形而上學)에 흐르는 고원한 말씀을 하지 아니하셨으며, 모든 제자에게 공리 공론을 매양 크게 경계하시었다.

——

대종경선외록 1장 15절

과거 세상에는 불보살들이나 회상을 연 도인들의 역사와 경전을 꾸밀 때에 태몽(胎夢)을 비롯하여 특별한 이적 특별한 예언 등을 많이 넣어서 장엄이 심하였다. 그것이 그 분들을 신봉하게 하는 데에나 권선(勸善)을 하는 데에는 다소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일반 대중 가운데에서는 큰 도인이 나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대들은 나의 역사나 경전을 만들 때에 절대로 장엄을 실상에 넘치게 하지 말라.

——

대종경선외록 2장 16절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1891년 5월 5일에 태어났다. 밀양 박씨이며 어릴 때의 이름은 진섭, 청년 시절 이름은 처화이다. 7세부터 세상의 근본 이치를 궁금해 하기 시작하여 20년 가까이 수행했다. 산신에게 기도하기도 하고, 도사를 찾아다니기도 하고, 머리 속에 떠오르는 주문을 외우기도 하던 중 몸이 쇠약해지고 정신이 들었다, 안 들었다 하게 되니 마을 사람들이 폐인으로 여겼다.
1916년 음력 3월 26일 새벽, 그동안 하던 일이 그저 고생이었고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수도 하고, 손톱도 자르고 하겠다하니 가족이 기뻐했다. 그날 사람들이 동경대전과 주역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모두 환하게 이해됐다. 대종사는 시골 외지에서만 있었고, 공부를 한 것이 아주 어렸을 때 2년 밖에 없었기 때문에 보고 들은 것이 없었다. 대각을 먼저 이룬 후 유불선 책들을 모아서 읽기 시작했다. 이후 석가모니불이 성인 중 성인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회상을 열 때 불법을 중심으로 삼겠다고 마음 먹었다.
대종사는 처음에 보천교를 포교하는 사람으로 행동하며 사람들을 모은 후 자신의 깨달음을 가르쳤다. 이 과정에서 8명의 신실한 제자를 얻었다. 기적이 거의 없는 원불교 경전에서 이질적인 부분이 한 곳 있는데 여기이다. 9명은 수행을 하던 중 세상을 위해 희생하자며 함께 자결하기로 하였다. 약속한 날 한 명도 빠짐 없이 모여 단도를 꺼내놓고 결심을 담아 종이에 인주 없이 지장을 찍었는데 조금 있자 핏빛으로 지장 9개가 드러났다. 대종사는 판결이 났다며 죽지 않고 더욱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후 따르는 사람이 늘어나며 모임이 점점 갖추어졌다.
1943년 6월 1일 열반하였다.#
‘게송’은 열반 직전 남기는 것보다 온전한 상태에서 남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생전에 미리 제자들에게 전했다.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至極)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


3. 창시에 영향을 준 요인


원불교 창시에는 불법 연원과 기타 종교 영향의 두 가지 관점이 있다.

3.1. 불법 연원


대종사는 처음에는 산신(山神)을 만나기 위한 기도를 했고 다시 도사(道士)를 만나려 고행을 계속했다. 산신이나 도사를 모두 만날 수 없게 되자 '내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하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입정삼매(入定三昧)에 빠지기도 했다. 26세 되던 해인 이른 새벽에 동녘 하늘이 밝아올 즈음, 드디어 우주와 인생의 근본진리를 확연히 깨치게 되었다.
우주의 자연현상에 깊은 의심을 품고 20년간 스승 없이 혼자서 구도에 힘쓴 끝에 1916년 4월 28일 큰 깨달음을 얻었다. 대각을 얻은 후 모든 종교의 경전을 두루 둘러보다가 불교금강경을 보고 "내가 스승 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나 도를 얻은 경로가 부처와 비슷하므로 연원을 부처님에게 정하고, 불법을 주체로 삼아 완전 무결한 큰 세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리라" 하였다.
과학의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해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여, 쇠약한 그 정신을 항복받아 물질의 지배를 받게 되므로, 모든 사람이 도리어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진리적 종교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 필요하다.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이다.

3.2. 기존 종교 영향


학계에서는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외에도 신흥종교인 천도교, 대종교, 증산계통 종교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개교의 동기'에서 중심 철학으로 내놓는 개벽사상은 근대 한국 신종교적 사유에서 나온 것이며, 원불교 역시 개벽사상의 독자성과 상호교류의 두 가지 측면을 인정한다. 단계적인 관점에서 동학의 창교자 수운 최제우와 증산교 계통의 교조 강일순의 사상을 완성시키고 실천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증산 선생은 곧 드물게 있는 선지자요 신인이라, 앞으로 우리 회상이 세상에 드러난 뒤에는 수운 선생과 함께 길이 받들고 기념하게 되리라. - 대종경 제6 변의품 31장

너희가 하나의 진리를 깨치고 보면 차차 수운 선생과 대종사가 두 분이 아닌 것을 알게 될 것이요, 증산 선생 일과 대종사의 일이 다른 일이 아님을 알게 되리라. - 한울안 제1편 법문(法門)과 일화(逸話) - 6.돌아오는 세상

수운 선생과 증산 선생이 이 회상의 선지자이시다. 대성의 출현에 앞서 반드시 선지자가 예시하는 것은 자고의 통례다.

증산 선생은 천지 대운을 자로 재듯 하신 분이다. - 같은 책 같은 구절 30절

2대 종법사 정산 송규는 대종사를 만나기 전 강증산 계열인 보천교와 고부인 교단을 찾아간 적이 있다.# 원불교 초기에 사용했던 <수양연구요론>은 강증산의 딸 강순임이 선물한 <정심요결>을 바탕으로 했다. #
증산 강일순을 신앙대상으로 삼는 종교단체 일부는 원불교가 증산계열의 '판 밖의 난법'이라고 주장한다. 증산계 교단이 백여 개가 넘는데, 원불교도 그런 증산계 종교의 하나라는 주장이다. 강일순의 제자 차경석이 세운 보천교가 일제 강점기 시절 신도가 조선인 전체의 1/3에 달할만큼 흥하였기 때문에 신흥종교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시절 종교에 관심 있다 하는 사람들은 보천교부터 먼저 찾아갔을테니. 그러나 교리나 역사, 정통성 등 모든 방면에서 원불교와 여타 증산계열 종교들은 확연히 다르다. 사회적 물의를 빚거나 교조의 신격화 등으로 사이비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은 증산계열 종교들이 사회적 이미지가 좋은 원불교에 묻어가는 물타기 전략으로 볼 여지도 있다. 원불교에서는 이런 논쟁 자체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원불교의 창교자 박중빈은 원불교라는 교명을 쓰기 전 불법연구회로 교명을 정하여 활동을 시작했는데, 박중빈이 스스로 금강경을 연원으로 들었다. 사상이나 교리, 교단의 형태에서도 강일순 교단과 원불교뿐만 아니라 동학계열(천도교, 수운교 등), 김일부계 등이 비슷한 시대에 일어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일부 공통점이 있지만, 강일순에게 직접 영향을 받았다거나 강일순 교단의 아류로 보기보다는 당대 신흥종교의 분위기와 민중의 관심이 개벽이나 좋은 세상을 바랐으므로 서로 비슷해졌다고 보아야 타당하다는 것이 학계의 주류 입장이다. 현재 원불교와 증산계 교단의 교리, 교조 강일순과 박중빈의 가르침을 비교하더라도 서로간의 차이 역시 크다.

4. 교리


개교의 동기이다.

현하 과학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여, 쇠약한 그 정신을 항복받아 물질의 지배를 받게 하므로, 모든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에 어찌 파란 고해가 없으리요. 그러므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받아,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함이 그 동기니라.

대종사가 말씀하신 ‘일원상 서원문’이다.

일원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입정처(入定處)이요, 유무 초월의 생사문(生死門)인 바,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이요,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으로 능이성 유상(能以成有常)하고 능이성 무상(無常)하여 유상으로 보면 상주 불멸로 여여 자연(如如自然)하여 무량 세계를 전개하였고,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成住壞空)과 만물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사생(四生)의 심신 작용을 따라 육도(六途)로 변화를 시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은생어해(恩生於害)로 혹은 해생어은(害生於恩)으로 이와 같이 무량 세계를 전개하였나니,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體性)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함.

사은(四恩), 네 가지 큰 은혜이다.

천지의 은혜

부모의 은혜

동포의 은혜[3]

법률의 은혜

사요(四要), 사회적으로 필요한 네 가지이다.

자력양성(自力養成) -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지자본위(智者本位) - 배워야 한다.

타자녀교육(他者女敎育) - 내 자녀 뿐만 아니라 타인의 자녀도 교육을 돕는다.

공도자숭배(公道者崇拜) - 공공의 이익을 위해 힘쓰는 사람을 모범으로 삼아 본받는다.

삼학(三學), 인간이 해야할 세 가지 수행이다.

정신수양(精身修養) - 마음 속 요란함을 가라앉힌다.

사리연구(事理硏究) - 어리석음을 명석함으로 돌린다.

작업취사(作業取捨) - 그르침을 없애고 올바른 선택을 한다.

팔조(八條), 삼학을 촉진하는 신, 분, 의, 성(진행4조)과 버려야 할 불신, 탐욕, 나, 우(사연4조)이다.
진행4조

신(信): 믿는 마음

분(忿): 분발하는 마음

의(疑): 일과 이치에 모르는 것을 발견하고 알고자 하는 마음

성(誠): 간단없는 마음

사연4조

불신: 믿지 않는 것

탐욕: 상도에 벗어나 과하게 취하는 것

나(懶): 어떤 일을 이루려 할 때 싫어하는 마음

우(愚): 어리석음. 옳고 그름과 이익과 손해를 알지 못하는 것.


5. 불교와의 차이


"불교와 무엇이 다른가?”는 질문은 원불교 교도들이 자주 듣는 질문이다. 원불교는 '불법의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를 표방한다.
불교는 여러 종파가 있고 각각의 차이가 있으므로, 일부는 원불교만의 특징으로 보기 어려운 것도 많다.
  • 원불교의 교당은 일반 도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정해진 건축양식은 없고, 일반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 당대의 현대적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원불교 중앙총부에는 초창기에 일제강점기 건축 양식대로 지어 아직 남아있는 건축물이 근대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있다.[4]
  • 불교의 비구, 비구니와 달리 원불교는 남녀 성직자 모두 교무로 통칭한다. 복장 역시 스님과 많이 다르다. 머리를 강제로 깎지 않으나 형태가 대체로 제한된 편이다. 원불교의 예복이 따로 제정되어 입고 있다. 활동이 좀 왕성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개량한복을 입기도 하며, 단체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현대식 복장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 원불교의 교조는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이며, 소태산 박중빈은 창종 후 석가모니 부처님에 연원을 대었다. 따라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원불교의 본사이자 연원불이기도 하다. 원불교 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 종사는 대종사와 부처님의 관계를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내가 있게 한 근원이지만, 아버지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고 이야기하였다.
  • 삼학, 팔조, 사은, 사요 등 원불교의 핵심 교리는 소태산 대종사가 생전에 직접 편찬, 감독한 것이다. 불법(佛法)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원불교의 자체 경전인 원불교 교전이 있다. 원불교 교전에는 반야심경, 금강경, 수심결 등 일부 불조요경 파트도 있으나 핵심은 대종사가 생전에 직접 참관하여 편찬한 원불교 정전과 제자들이 기록했던 대종사의 말씀을 모은 대종경이다.
  • 출가수행자에게 수백가지 계문이 주어지는 불교에 비해 원불교의 계문은 재가 출가 구별없이 최대 30가지[5]로 비교적 융통성이 크고, 출가와 재가를 구분하지 않는다. 육식 등에도 부정한 방법으로의 취식이 아니라면[6] 출가자에게도 큰 제약이 없다.
  • 원불교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위단회는 남녀 같은 수로 구성되고, 재가 교도도 참여한다. 종법사는 계속 남자였지만, 원불교의 행정 수반인 교정원장과 사법 수반인 감찰원장이 모두 여성교무였던 적도 있다.
  • 여성 교무가 결혼을 하면 교무를 그만두는 것이 관습법이었다. 과거 남녀차별이 심했던 시대에는 이 관습법이 여성 교무에게 도움이 되었지만 이제는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있었고, 2019년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전산 종법사가 이 관습법을 개정하여 독신 서원을 한 정녀 이외 여성 교무들이 혼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같은 해 8월 개교 104년 만에 여성 교무의 결혼을 허용했다.#
  • 교당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 정신수양-사리연구-작업취사의 삼학공부를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잡을 것을 강조하며 하나의 종교로 유지해왔다. 원불교는 신흥종교들 중 창설 이래 분열된 이력이 한 번도 없는 매우 드문 종교이다.
  • 불교의 연호인 '불기' 대신 원불교의 자체 연호인 '원기'를 사용한다. 소태산 박중빈이 깨달음을 얻은 1916년이 원기 원년이 된다.
  • 원불교 교무는 사회 참여가 매우 활발하다. 교세 대비 매우 많은 수의 교육, 복지 재단 등을 운영하고 있다.
  • 한제자 여쭙기를 [불상 숭배와 일원상 숭배의 다른 점은 어떠하옵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불상 숭배는 부처님의 인격에 국한하여 후래 제자로서 그 부처님을 추모 존숭하는 데에 뜻이 있을 뿐이나, 일원상 숭배는 그 뜻이 실로 넓고 크나니, 부처님의 인격만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는 것보다 우주 만유 전체를 다 부처님으로 모시고 신앙하여 모든 죄복과 고락의 근본을 우주 만유 전체 가운데에 구하게 되며, 또는 이를 직접 수행의 표본으로 하여 일원상과 같이 원만한 인격을 양성하자는 것이니, 그 다른 점이 대개 이러하나니라.] - 대종경 제2 교의품(敎義品) 12장

6. 평가


교세가 미미하고 인지도는 이름만 알려진 정도지만, 경험자들에 의하면 대부분 '잘 모르고 가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종교'라는 평이 많다.[7] 일단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거의 없고, 회계관리나 성직자들의 청렴도 역시 꽤 높은 수준.[8] 민족 종교라서 마이너한 규모의 종교임에도 사이비적인 요소가 없고[9], 각종 국가행사에 4대 종단의 일원으로서 참여하는 등 사회적으로도 나름 인정받고 있다. 금전적 폐단이나 미신적 요소가 다른 종교에 비해 적은 것은 원불교가 애당초 100년 전부터 불교계에 만연했던 여러 문제점들을 혁파하고 미래 시대에 맞는 종교를 주장하며 만들어진 종교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짧은 현재진행형 종교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형태로 발전하게 될지는 미지수이나, 지금까지는 비교적 초심을 잘 이어가고 있는 편.
타 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며 화합하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서로간에 갈등이 많이 일어나는 불교-개신교-천주교 사이에 끼어서 이들을 이어주는 윤활유 역할을 많이한다. 군종 장교들의 훈련을 담당하는 한 간부의 말에 따르면, 스님, 목사님, 신부님만 입소한 기수는 세 그룹이 따로 노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여기에 원불교 교무가 끼어있는 기수는 부대 전체가 단합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일시적인 노력이 아니라, 원불교 교전 맨 앞 도입부에 그렇게 해야한다고 명시되어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이다.

7. 교무


원불교의 성직자를 일컫는 말.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8. 교도


자체통계로는 14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나링크, 실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집계결과 8만 4천명 정도로 전체 '''종교 인구수의 0.4%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전라북도가톨릭 인구(천주교 전주교구)의 신자 수보다 적다. 이렇듯 단순히 신도 숫자만 본다면 참으로 적지만 아주 듣보잡은 아니다. 한국에서 개신교, 불교, 천주교의 세력이 워낙 막강하므로 소수 종교 쪽에 속하긴 하지만, 일단 4대 '종단'으로 평가 받고 있다.[10][11] ...라고 하지만 센서스 조사 기준으로도 200명 중 1명 꼴, 그나마 전라도 이외 지역이라면 더 낮은 비율로 분포한 원불교 신자를 찾는 것 자체가 힘든게 사실. 호남이나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이라면 교당을 찾는 것도 힘들다.
2대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영광군[12]익산시[13] 모두 전라도에 위치해 있어서 주로 전라도 지역에 신자가 많다. 원불교의 성당이라 할 수 있는 교당과 신도의 약 1/3이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신도수가 적은 이유는 다른 종교와 달리 포교에 관한 원불교만의 독특한 원칙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원불교 교도들은 타인에게(심지어 가족에게 조차도) 원불교를 직접 권하는 식의 포교를 잘 하지 않는다. '''스스로 행동을 잘하고 모범을 보이면, 남들이 이를 따라하게 되고 저절로 포교가 된다'''는 논리이다.
과거에는 "원불교 가면 여자도 공부시켜준다더라"는 유입요인이 많았다고 한다. 윗 세대에서 여성교무의 수가 남성교무를 압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불교는 사회활동 및 계몽활동을 통해 성장해온 종교라 주류 종교에 준하는 상태가 되었다.
재계에 원불교를 믿는 집안이 종종 보인다. 삼성 이재용 사장의 결혼도, 재계의 원불교 모임을 통해 어머니들끼리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범 삼성가 사람들이다. 이건희 전 회장과 그 가족들이 원불교 신자로, 특히 부인 홍라희와 그녀의 친정인 보광그룹 집안이 독실한 원불교도이다. 홍라희의 동생 홍석현중앙일보 회장도 차량 이동 중 틈틈이 원불교 교전을 읽는다고 하며, 홍라희의 어머니 김윤남 여사는 미국에 원불교 미주 선학 대학원과 선교의 전초기지 원달마 센터 건축을 위해 200억 원을 기부했다. 김윤남 여사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유산 168억 원도 유족들이 원불교에 기부했다. 원불교 교무의 주류가 천주교의 정의 구현 사제단만큼이나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정치인으로는 전 국회부의장 해석 정해영과 그의 아들 정재문 등이 있다. 정해영은 1985년 원불교중앙교의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이 외에도 김성곤, 이개호, 김재위, 정세현, 전정희, 주영훈, 김의겸, 한병도, 최용안, 류범수 등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강원도지사 최문순, 여주시장 이항진, 경남 사천시장 송도근, 고성군수 백두현, 충남 계룡시장 최홍묵 등이 원불교를 믿고 있다. 사실 이 외에도 원불교에 교도로 등록된 정치인은 찾으면 매우 많다. 그러나 위의 정치인들은 제외한 나머지는 표 관리 차원에서 여러 개의 종교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대다수이므로 크게 의미는 없다.
원불교 신자 연예인은 거의 없다. 연극인 추송웅, 前 프로게이머 이병민[14], 개그맨 김대성, 개그맨 김민수, 웹툰작가인 하얀늑대 정도가 있다. 스포츠계에서는 농구선수 전정규가 있다.

9. 종교 재단 산하 교육 기관 및 시설


전라북도 익산시
서울특별시
  • 휘경여자고등학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동 위치)
  • 휘경여자중학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동 위치)[15]
압박스러운 교육라인업과 최대의 병원인 원광대학교병원을 가지고 있어서 익산시에서만큼은 원불교의 배경이 참으로 강력하다. 개신교 축구단 이랜드 할렐루야가 익산에 연고지 자리잡으려다가, 원불교 측 반발로 나가야 했던 적도 있는데, 이를두고 자업자득이라면서 비웃는 반응이 컸다. 성남 일화가 천안 시절 및 성남에서도 개신교 측의 반발로 나가거나 푸대접을 받는 거와 똑같이 당했으니. 게다가 익산에 연고지 자리잡으려 했던 것도 원불교를 제압하고 개신교 선교를 위해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익산시의 배후를 장악했다는 원광대학교 출신(중에서 의대 및 한의대)들도 본체인 원불교의 세력에 비한다면 사소할 뿐이다. 복지사업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종교이며, 병원의 숫자는 오히려 불교보다 많다. 그 외에도 보화당 한의원(전국), 원광한의원(전국), 용산 원의원, 원치과 등을 운영하고 있다.
소태산 박중빈의 생가(영산 성지)가 위치해 있어 원불교에서 익산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전라남도 영광군에도 원불교 계열 학교가 많고, 특히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곳이 2개나 들어서있다. 전남에서 명문고로 꼽히는 해룡고등학교, 같이 붙어있는 해룡중학교도 원불교 재단이고, 원불교 성직자를 양성하는 영산선학대학교, 대한민국 최초의 대안학교인 영산성지고등학교[16], 역시 대안중학교의 선두주자 격인 성지송학중학교(2002년 개교)가 위치해 있다.
이외 지역에도 대안학교를 건설하여 경기도 용인시헌산중학교, 전라북도 김제시에 지평선중/고등학교, 경상남도 합천군에 원경고등학교, 경상북도 경주시화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경기도 안성시에는 최초의 새터민 학교인 한겨레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쯤 되면 교육덕후가 따로 없다.
원불교에서 만든 라디오 방송이 있다. 원음방송이라고 하는데 서울, 부산, 익산, 광주, 대구에서 방송을 하고 있고, 제주에도 설립할 예정이라고 한다.
라디오야구 중계를 듣는 일부 야빠 사이에서는 음원 구성이나 해설 면에서 가장 우수한 중계를 제공하는 라디오 방송국으로 꼽히기도 한다. 라디오의 특성을 잘 살린 중계라는 듯. 포스트시즌에는 한명재가 캐스터 알바를 뛰기도 한다.
2014년 12월 12일 첫 흑인(국적은 미국) 교무가 배출되었다. * 기존의 미국인 교무는 10여 명.

10. 사건 사고


  • 주한미군 THAAD 배치 논란/지역 선정 문서 참고. 원불교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이유는 배치 지역인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근처에 정산 종사의 생가로써 원불교의 5대 성지 중 하나인 성주 성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11. 군종 활동


2006년 3월 24일에 군종장교 승인을 받았다. 이로써 원불교가 군종교구를 설립하고 군종활동을 펼 수 있게 되었다.
2017년 8월 6일 미국 원불교 로스앤젤레스교당에서 한인 여성 최초로 미해군 (원)불교 군종장교로 김일덕 교무가 임관되었다.# 불교 군종으로 임관했다. 미군의 군종 병과는 종파별로 구별되지 않아서 카톨릭, 성공회, 개신교 등이 전부 기독교로 통합되어 있을 정도인데, 원불교도 불교의 파생 종파 중 하나로 판단한 듯 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원불교 존재를 알게 되는 곳이 바로 육군훈련소원광대학교다.[17] 100년 역사에 불과한 신흥 종교인 탓에 원불교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다수. 그나마 한국사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한 줄 정도는 읽어봤을 것이다.
육군훈련소/종교활동 문서에도 써있지만, 사실 대한민국처럼 종교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회에서 20대 팔팔한 남성들이 종교를 접할 기회는 군대 종교활동밖에 없다. 이 점을 익히 알고 있는 각 종파에서는 특히 육군에서의 포교를 위해 힘쓰는데, 여기에 제일 힘을 쓴 곳이 원불교, 그리고 이단 시비로 인해 개신교 군종장교를 파송하지 못하는 제칠일안식교다. 그 중 원불교가 군종장교를 파송하는데 성공하였다. 군 인사법이 통과되어 군종장교를 배출할 수 있는 공인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불교, 천주교, 개신교의 견제로 2007년에 처음 1명이 임관된 이후 꾸준히 군종교무를 배출하고 있다.
일원상 서원문을 외워서 끝까지 발표하면, 육군훈련소에선 초코파이나 몽쉘, 운 좋으면 훈련병 시절에 먹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는 피자까지도 먹을 수가 있다.
그 외에도 군 법회에 시작전과 도중에 레크리에이션으로 가위바위보 혹은 2단 줄넘기나 장기자랑, '''덩치대결''' 등등을 하는데, 대충 초코파이 한 통부터 피자 1판까지 나오기도 한다. 덩치대결의 경우 가장 키가 크고 가장 몸무게가 무거울 경우에 선물을 주는데 193cm라고 '''19통에 3통 더'''같은 경우도 있다. 이정도 되면 1박스가 넘는다. 물론 그것 말고도 육군훈련소 한정으로 행운 번호 뽑기라고 해서 다양한 것도 제공하기도 한다. 첫주차엔 다들 잘 모르지만, 2주차, 3주차가 지나면 훈련병들은 원불교의 실상을 다들 알고 원불교에 다녀오는 훈련병들의 주머니를 노린다.
받지 못하고 그냥 구경만 해도, 교무님들이 초코파이가 떨어지면 슬쩍 들어가시더니 10통을 계속계속 꺼내오는걸 보고 있노라면...
육군 군종 교당 목록이다.
  • 계룡대 - 계룡대교당
  • 상무대 - 상무대교당
  • 국군함평병원 - 국군함평병원교당[18]
  • 육군사관학교 - 화랑대교당
  • 육군학생군사학교 - 학생군사학교당[19]
  • 육군훈련소 - 육군훈련소교당
  • 육군부사관학교 - 충용교당
  • 제5보병사단 - 열쇠교당
  • 제7보병사단 - 칠성교당
  • 제9보병사단 30연대 - 독수리교당
  • 제17보병사단 - 번개교당
  • 제35보병사단 - 충경교당
  • 제35보병사단 103연대 - 백마교당
  • 제53보병사단 - 충렬교당
2014년 대한민국 공군에도 최초로 교당이 설립되었다. 공군사관학교에 설립된 성무교당으로,[20] 과거 면회실이었던 건물을 교당으로 활용하고 있다. 성무교당의 봉불식에 관하여 공군의 월간지인 <월간 공군> 2014년 5월호에도 짧게 소개되었다. 사관학교에 세워진 만큼 사관생도들이 주로 법회에 참석하는 편이다.
단, 논산과는 달리 진주 공군기본군사훈련단에는 교당이 건립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종교행사에 원불교가 없다.

12. 여담


  • 한 번도 교리 해석 문제로 종교가 분열된 적 없다. 지도자인 종법사를 투표로 뽑는데 투표가 끝난 후 진 쪽에서 선출된 종법사를 부정한 적도 없다. 성직자여도 종법사 투표 때는 당연히 세속적인 정치공학이 들어갈 수 밖에 없지만, 현재까지는 분열 없이 교단이 이어지고 있다. 종법사를 선거로 뽑는 것은 1994년 4대 종법사 선거부터이다. 83세였던 상산 박장식 종사는 경기고, 경성 법학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작은 종교였던 원불교에 입교한 후 평생 존경받을 만한 수행 모습을 보여주었다. 많은 사람이 상산 종사가 4대 종법사 자리를 이어받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상산 종사는 젊은 사람이 맡아야한다고 계속 거절했다. 그래서 선거를 치뤘는데 상산 종사가 아닌 56세의 좌산 이광정 종법사가 선출되었다. 좌산 종법사가 원로원으로 찾아오자 상산 종사는 밖으로 나가 길 위에서 좌산 종법사에게 크게 절했다.
  • 한자어를 사용하는 불교와 달리, 모든 경전 및 말들이 고유어나 쉬운 한자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21] 특히 수양 활동을 마음 공부라고 하는데, 이는 위 일원상 서원문에서 봤듯이 심신을 단련함으로써, 우주의 만물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출가하여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생활에서의 수행도 못지 않게 중요하게 다룬다. 수행이라고 표현하지만 고행과 같은 수행은 아니고, 생활하면서 맞닥뜨리는 각종 일을 겪으면서 감사하고 배우는 마음공부도 중요시한다.
  • 보통 원불교 교당들은 새로 지은 건물에 황금색 원을 거는데,[22] 정식 명칭은 법신불 일원상이다. 원불교에서는 궁극적 진리의 상징으로 일원상(동그라미)을 내세운다. 또한 수계를 받으면, 성씨까지 모두 버리고 2글자 법명을 주는 불교와 달리, 여기는 성씨를 그대로 유지해 주어 3글자[23] 이름으로 법명을 지어 준다. 물론 법명과 속명(원래 이름)이 같은 경우도 없지는 않은데, 대개 부모가 이미 원불교 교도인 소위 모태신앙 신자들이 대부분이거나, 옛 시기에 입교하여 새로운 법명을 받은 경우가 많으며, 비교적 최근에 새로 입교한 신자들은 자신의 속명과 동일화한 경우가 많다. 물론 기존 신자들도 이런 사례가 종종 있다.
  • 길거리를 가다가 흰 한복 저고리 상의에 검정 한복 치마를 입고 머리를 뒤로 빗어 쪽진 여성을 발견하면, 거의 원불교 교무라고 보면 된다. 원래는 여성 교무가 더 많았으며, 정녀라는 이름이 따로 있지만 지금은 호칭으로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여성이 시집을 가면 남성에게 예속되던 과거 사회 분위기에 따라 남성 교무는 결혼을 하고, 여성 교무는 독신으로 지내는 규정에 가까운 전통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으므로 2019년 이 규정이 폐지되어 여성 교무도 결혼할 수 있다. 현재는 남녀 교무 수가 거의 비슷하지만, 전술한 내용대로 현재는 원로 교무는 여성의 비중이 높으며, 신규 교무의 남녀 성비는 남초로 기울어지고 있다.
  • 교무들은 몇 년마다 다른 지방의 교당으로 새로 발령되는데, 이는 한 지역에서 오랜 시간동안 머물어 해당 지역에서 인맥+유착 등을 통한 부당한 축재를 저지르는 것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함이다.[24] 다만 예외적으로 새로 건립한 개척교당의 경우에는 교단 안정화를 위해 종종 발령 주기보다 오래 머물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발령을 반드시 받는다.
  • 원불교는 종교 활동보다도 사회 활동을 많이 추진한다. 사회복지활동과 교육사업등 다양한 공헌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예가 '원광 어린이집'이다. 농촌에서 선교를 시작할 때 농사일로 바쁜 부모들을 대신해 아이들을 돌보며 선교해서, 어르신들에게는 어린이집으로도 많이 알려져있다. 여기서 파생된 게 '원광유치원'인데, 전국적으로 퍼져있다.
  • 한국 자생종교로는 가장 건실하게 성장했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부정적인 기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삼성그룹이 특검 수사를 받을 당시 삼성 특검을 자제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원불교의 기관 중 가장 잘 알려진 원광대학교와 엮인 부분이 많은데, 이런 기사나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 정토 출신의 관계자들의 불친절함 등으로 재학생들 중 원불교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졸업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다른 종교에 비해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훨씬 적다. 물론 규모나 신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당장에 100년 이상 단 한 번의 분열도 없이 단일 교단으로 똘똘 뭉쳐온 역사가 있는 신흥종교는 원불교 뿐이다.
  • 미국, 유럽, 중국, 남미, 아프리카 등 전 대륙에 교당을 건설하고 있고, 미국에는 정부에서 정식 인가를 받은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를 세워 현지인들을 교육하고 있다.
  • 2020년 8월에 사랑제일교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 관련 확진자가 파주병원에서 탈출한 이후 25시간 만에 경찰에게 붙잡히는 일이 있었는데, 해당 확진자는 원불교 원남교당에 11시간 동안 숨었다고 주장했다. 기사 이와 별개로 추적하던 경찰도 CCTV와 휴대전화 위치추적 등을 통해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다 마지막 동선이 원남교당 근처에서 배회하던 모습이 CCTV에 포착되어 해당 교당에게 수색 고지를 내리고 수색을 진행하기도 했다. 수색 결과 별다른 특이점이 확인되지 않았고, 원불교측에서 해당 법당은 매일 문단속을 철저히 하기 때문에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다고 발표하였으며, 만약의 불상사에 대비하여 자체적으로 법회를 중단했다. 기사 해당 교당은 방역을 위해 폐쇄 조치되었다. 당연히 해당 확진자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싸늘했는데, 타 종교의 시설에 잠입하여 물타기를 시도한 게 아니냐는 게 중론이었다.

1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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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산종사법어-제2부 법어-제4 경륜편-1장[2] 대종사께 삼천 대천 세계가 우주에 있는 것인지 여쭙는 재밌는 대화가 있다. 또 여쭙기를 “과거 부처님 말씀에 삼천 대천 세계가 있다 하오니 사실로 있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있나니라. 그러나, 삼천 대천 세계가 이 세계 밖에 따로 건립된 것이 아니라 이 세계 안에 분립된 가지 가지의 세계를 이른 것이니, 그 수효를 헤아려 보면 삼천 대천 세계로도 오히려 부족 하나니라.” 다시 여쭙기를 “현 천문학계에서도 이 우주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밖에 더 큰 세계가 많이 있다 하옵는데 어떠하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부처님 말씀은 해석하는 사람의 견지에 따라 다른 것이며 현재의 학설도 비록 분분하나 멀지 않은 장래에 견성한 큰 학자가 나의 말을 인증할 것이니 나를 믿는 사람이라면 다시 의심하지 말라.” - 대종경 제6 변의품(辨疑品) 5장[3] 동, 식물도 이에 포함된다.[4] 사실 불교 사찰도 시대에 따라 건축양식이 달라지기는 했다. 조선시대 이후 사찰이 한옥의 형태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을 뿐이다.[5] 처음 입문하면 10가지를 지키고, 이후 수행 정도(법위등급)에 따라 등급 당 10가지씩 누적되어 20가지, 30가지로 점점 올라간다. 이후에는 계문을 초월했다고 여겨 30가지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교인이 스스로 자신만의 계문을 만들기도 한다.[6] 예를 들어 단순히 고기가 땡긴다는 이유로 기르던 동물을 잡아먹거나 직접 사냥에 나서는 것.[7] 군대에서 원불교를 접한 사람들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8] 이미 원불교의 투명회계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 순사'''가 "불시에 검사했는데 단 한 푼도 틀리지 않았다. 순사 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독하다."고 말하며 꼬투리 잡기에 실패할 정도로 알아주는 수준이었다.[9] 교리 상으로, 창시자를 깨달음을 얻은 평범한 인간으로만 묘사할 뿐, 신격화하거나 우상화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백지혈인과 관련해 종교적 요소가 있으나, 이것이 대종사에 대한 신격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10] 언론에서 흔히 '4대 종단'이라 하면 앞의 세 종교와 함께 말석을 차지한다. 특히 군종장교가 있는 종교와도 완벽하게 같기 때문에 4대 종단이라는 의미가 중요하다.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및 김영삼 대통령 사망시에도 장례식에 공식적으로 참가하였다.[11] 덧붙여 '6대 종단'이라고 하면 여기에 유교천도교가 끼는데, 천도교는 그래도 한때 신자 10만 명까지는 유지했으며, 유교는 종교로 믿는 신자는 드물지만, 한국 역사와 사회에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에 끼는 것에 가깝다. 여기에도 못끼는 군소 민족종교(대종교 등)을 묶어서 만든 한국민족종교협의회까지 포함해서 7대 종단으로 부른다. 그나마 이 중 대종교가 일제 시대에 일어난 민족주의 운동이 시초라는 점 + 단군의 압도적인 인지도로 간혹 따로 분류되기도 하는 등 맹주 취급을 받는다.[12] 소태산 대종사가 태어난 곳.[13] 원불교의 HQ라고 할 수 있는 중앙 총부를 설립하여 전법 활동을 시작한 곳.[14] 고향이 원불교의 성지인 익산시이다.[15] 근처에 있는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은석초등학교불교 학교이자 3개 학교가 모두 붙어 있다.[16] 19'''82'''년 개교다! 당시에는 '영산성지학교'였고, 고등학교로 정식 인가받은 건 1998년이다.[17] 원광대학교 계열을 제외하면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동에 위치한 휘경학원 소속 휘경여자중, 고등학교도 포함이 된다.[18] 비아교당 교무 겸임[19] 증평교당 교무 겸임[20] 공사를 '성무대(星武臺)'라고도 부르기 때문에 성무교당이 되었다.[21] 다만 불조요경은 제외. 불조요경은 불교 경전들의 일부 내용이 들어있는데, 이쪽은 아직도 어려운 한자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 조계종이 교단 내 모든 경전을 번역본으로 전환한 것과는 대비된다.[22] 혹은 검은색 원을 걸기도 한다. 이는 흰 종이에 붓으로 원을 그렸던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23] 아주 예외적으로 2글자, 4글자 이름이 존재하기도 한다.[24] 가톨릭사제수도자도 이렇게 한다. 개신교에서는 구세군이 이와 같은 방식을 쓴다. 차이라면 부부가 같이 교회를 맡는다는 것. 사관은 신자하고만 결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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