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장고기
'''Corned Beef'''[1]/ '''Salt Beef''' / '''Bully Beef'''[2]
1. 개요
염장한, 즉 소금에 절인 고기이다. 전통적인 보존식품으로서 햄도 일종의 염장고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영어명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쇠고기를 소금에 절여 보존한 것을 이야기한다. 돼지고기를 염장한 것은 베이컨, 하몬.[3]
전통적인 보존식 및 전투식량으로 사용된 염장고기와 현대의 콘비프는 다른 음식이라 해도 맞을 정도로 맛과 모양이 다르다.
넓게 보면 살라미도 여기에 속한다. 소금을 비롯한 향신료에 절인 채 건조시킨 소시지이다.
2. 전통적인 염장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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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비스킷과 함께 범선시대 뱃사람들의 주식이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신선한 고기를 먹으려면 살아있는 가축을 싣고 다녀야 했는데, 장거리 항해시 큰 배에는 양, 소, 닭 같은 가축을 배에 싣고 다니다 도축해 먹었다. 물론 이렇게 얻을 수 있는 신선한 고기의 양은 제한되어 있었기에[4] 보통 선상 잔치를 벌이거나 선장/함장이나 제독, 항해사, 장교나 동승한 귀빈 등 높으신 분들의 식사용으로만 사용되었다. 돈 많은 소수는 젖소나 염소도 싣고 다니며 수시로 우유나 염소젖 및 이를 가공한 크림 등을 먹는 호사를 즐기기도 했다. 이따금 이렇게 한 배에 탄 동물을 수간(...)하는 사건이 터지기도 했고 영국 해군의 경우 해당 동물과 수간범을 교수형에 처하며 해당 동물은 도축 후 승조원들이 먹었는데, 고기 한점 먹자고 죄없는 동료에게 누명을 씌운 무고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그 외 선원이나 수병들이 돈을 모아 선장, 함장의 허가하에 항구에서 살아있는 가축을 사서 싣고 다니다 적당한 때 도축해 먹기도 했다.
그러나 이게 워낙 문제가 많다. 목축업을 배안에서 한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가축에게 줄 건초 같은 사람은 못 먹는 먹이를 따로 챙기고, 배설물도 치워야 하며 도축 직전까지 건강한 상태로 돌봐야 하니 여간 수고롭지 않았다. 건초가 싼 것도 아니고, 가축이 죽고 나면 남은 건초는 그대로 쓸모없는 짐짝이 된다. 어쩔 수 없이 배에서는 대개 염장고기를 먹었다. 선박의 특성과 그 시대의 상황상 선원들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공급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건빵과 염장고기가 주식이 돼버린 것이다. 이것도 항해 내내 먹은 건 아니고, 빵이나 염장하지 않은 고기가 상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출항 후 며칠 동안은 여건이 허락되는 한 신선한 것들을 먹을 수 있었으며, 원양 항해를 하지 않고 항만이나 해안선을 초계하는 소형 함정들은 몇 시간 혹은 며칠마다 입항해 재보급을 받을 수 있어 프리깃이나 전열함 같은 대형함이나 원양 상선들보다 더 좋은 식재료를 접할 수 있었다.
당시에 고기를 장기간 보관하는 가장 값싸고 편리한 방법이기 때문에 육지 노동자들도 많이 먹었으며 현재도 염장고기를 이용한 요리법이 살아남아있다. 당시에는 노동자들에게 염장고기 대신 생고기가 지급되면 보존 처리가 안 되어 믿을 수가 없으니 부담스러워서 되려 수령을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언뜻 과거의 유물 같지만 지금도 영미권에서는 자주 먹는 음식이다. 간단한 예로 서구식 아침에 빠질 수 없는 베이컨이 있다. 다만 냉장기술이 발달하고 비교적 금방금방 소비되는 현대의 특성상 제조 공법도 순하게 바뀌면서 예전의 고무같은 질감과 소금덩어리급 짠맛 고기는 아니다.
염장고기가 쇠퇴한 이유는 보관기술의 발달도 발달이지만, 현대 사회는 이전만큼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인 탓이 더 크다. 자동화가 되지 않아 모든 일들을 일일히 수작업으로 처리해야 했었던 과거에는 그만큼 노동 강도가 더 높아서 이에 비례하여 인체의 염분 소비량이 높았기 때문에 이를 벌충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섭취해주어야 하므로 염분 농도를 높게 만들었지만(실제로 막노동이나 물류센터 근무 등 육체 노동에 종사하는 인원들은 아직도 평균적으로 짜게 먹는 편이다.), 자동화가 되면서 수작업의 필요성이 많이 떨어진 현재에 과거같은 고농도 염분 식품을 주기적으로 섭취하면 염분 과다로 병원행 예약이 된다. 같은 맥락에서 젓갈 같은 다른 염장식품들 또한 과거에 비해 염도가 많이 낮아졌다.
2.1. 제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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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축을 도축한 뒤 조리하기 쉽게 작은 덩어리(쇠고기는 4파운드, 돼지고기는 2파운드)로 손질한다. 그리고 소금·초석에 재워 고기의 수분을 빼낸다.
- 탈수가 끝나면 소금물을 채운 큰 나무통에 고기를 넣고 밀봉한다.
- 적당한 시기가 지나면 꺼내 먹는다.
제조 과정에서 초석을 넣는 이유는 고기 속까지 염분이 잘 스며들도록 도와주면서 색이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는 발색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보툴리누스균으로 인한 식중독을 방지해준다. 이것은 의외로 현대에 들어서도 꾸준히 사용하고 있으며, 뉴스에서 흔히 말하는 아질산나트륨의 효능을 내는 물건이다(질산나트륨이 미생물에 의해서 아질산나트륨이 되어서 효능을 발휘하는 식이다보니 현대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질산나트륨을 직접 쓰는 편). 문제는 염분이 잘 스며들도록 하고 발색제 역할과 함께 고기의 육질을 단단하게 강화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점. 질산염은 단백질 사이의 결합을 매개하여 육질을 쫀쫀하게 해주는 특징이 있어서 오래 묵은 염장고기는 나무토막처럼 단단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며 대체로 그 식감은 연골을 씹는 것 같았다고 한다. 요즘의 염장고기도 단단하기는 마찬가지이며, 어느 정도냐 하면 최소 육포 정도의 굳기이다. 오래 묵은 단단한 고기는 이빨로 뜯어먹는 것은 불가능하고, 잘 드는 칼로 깎아내듯 자르거나 심하면 톱으로 썰어야 한다.[5] 그래서 염장고기를 만들 땐 지방이 풍부한 부위를 선호한다. 요리하면 기름이 나오면서 부족한 수분을 어느정도 보완해주고 지방 영양소 공급도 해준다.
유튜브에 올라온, 18세기의 염장고기 제조 방법을 설명해 주는 영상이다. 돼지고기 어깻살과 소금을 이용하여 만든다.
개인이 초석을 구하기는 어려우므로(초석은 화약의 재료로도 들어간다) 만일 집에서 만들어보고 싶다면 고기를 한번 삶아 절이는 방법도 있다. 보튤리즘의 위험성이 줄어들고 오히려 날것을 그대로 절이는 것보다 훨씬 보관성이 뛰어나다. 맛은 그냥 소금맛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습식으로 소금물에 절이는 방법과 건식으로 소금에 파묻어 절이는 방법중 아무거나 고르면 된다. 취향에 따라서 후추, 마늘, 파슬리 등을 첨가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소금에 고기를 묻고 3일에서 일주일 정도 묵히면 완성이다. 자연인에서 삼겹살을 소금 단지에 파묻어 보존하는 이가 나온 적 있는데, 만든 지 얼마 안 된 것인지 그냥 생고기와 별 차이 없었고, 불판에 구우니 똑같았다.
2.1.1. 제조 장소
제조는 항구 주변의 가공소에서 이루어졌는데 영국이 해양강국이었던 탓에 워낙 많은 물량을 만들어내다보니 품질이 엉망인 것이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에 들어가는 고기는 좋은 편이 못 되는데[6] 당시 염장고기에 사용된 것은 특히 저질육이었고 바쁘게 만들면서 위생상태까지 최악이라 흙이나 털이 섞인 건 이상한 일도 아니고, 배설물이 섞여 있기도 했다. 더 경악할만한 점은 유통기한 개념도 없어, 제때 폐기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차 대전 참전자의 일화를 보면, 염장고기가 든 나무통을 받았는데 굉장히 오래되어 보였고 내용물은 녹색(!)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래서 혹시 넬슨 시절에 만든 게 아닐까 농담을 했는데 아무도 그걸 농담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그나마도 유럽식 항만 시설이 없는 곳에서는 염장고기를 대량으로 만드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 개발이 덜 된 식민지에서 보급이 필요해진 함선에서는 승조원들이 살아있는 가축을 끌고와 직접 도축한 뒤 만들었다. 승조원이 세~네자릿수인데다가 몇달치를 채워넣어야 하는 특성상 수백마리를 어떻게든 구해서 도축하면 바다가 핏물로 인해 말 그대로 시뻘개질 정도였지만 대량으로 만들어놔서 쳐박아놓은 다음 창고에서 몇달 푸욱 썩고서야 보급되는 염장고기보다는 갓 만든 염장고기가 훨씬 부드러웠기에 승조원들은 좋아했다. 영국 해군의 경우, 도축과 육류 가공을 전담하던 정육병은 승선한 해병대원 중에서 차출해 맡기는 관습이 있었다.
미국이라고 딱히 다른 건 또 아니어서 1800년대 후반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육류 가공업체였던 아머사(Armour & Company)[7] 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당시 미군에 50만 파운드의 염장고기 납품이라는 초특급 계약을 맺었을 때도 저급한 고기, 심지어 상한 고기도 섞어서 염장고기를 만들었을 정도였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수천 명의 미군들이 식중독을 앓기 시작했고, 얼마 안 가 아머사의 염장고기가 문제임이 미군의 조사 결과 드러나 바로 전량 회수되었다. 이것 때문에 정부가 본격적으로 육류가공공장업계에 규제를 가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때를 기점으로 아머사는 신용을 잃고 흔들거리기 시작하다가 30년 뒤인 대공황 때 회사의 대주주인 아머 가문이 회사 주식을 모두 다 처분하기에 이른다.[8]
2.2. 취식 방법
세 끼니 내내 대량으로 먹어야 했던 선원 입장에서는 맛도 맛이지만 고기의 심한 염분도 큰 문제였다. 장기간의 항해에도 변하지 않도록 고기는 소금기에 쩔 대로 쩐 상태다보니 물로 씻든 어떻게 해서든 덜 짜게 만들어야 했다. 일반적으로는 큰 솥에 염장고기를 때려넣고 푹 삶아서 염분을 빼는 방법이 애용되었지만 깨끗한 물을 구하기 쉬운 육군이 주로 애용한 방법이었고 해군이라면 항해 초반일 때만 가능했다.
바다에서는 여차하면 저런 처치 없이 눈 딱 감고 그냥 먹기도 했고 심할 경우 조금이라도 염분을 줄이려고 바닷물에 씻어 먹기도 했다. 바닷물도 짠데 거기에 씻어서 먹는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인지 잘 드러난다. 오죽 짰으면 괴혈병의 원인이 과다한 염분 섭취에 있다고 오해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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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비스킷을 잘게 부순 다음 염장고기를 섞어 죽처럼 끓이는 방법도 있었다(랍스카우스, lobscouse).[9] 십비스킷은 소금간이 모자라 둘을 섞으면 적당한 간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맛은 별개의 이야기. 영화 마스터 앤드 커맨더에선 돼지 꿀꿀이죽만도 못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소설 혼블로워에서도 십비스킷과 함께 수병들이 매일 먹던 음식이다.[10]
랍스카우스를 좀 괜찮은 소금간한 고기에 채소, 그리고 십비스킷을 사용해서 정성들여 끓이면 이렇게 된다.
일단 염장고기를 물에 삶을 수 있었다면 영국 해군은 삶은 것을 그냥 먹었다. 반면 네덜란드 해군은 여기에 버터와 겨자씨를 섞어 만든 소스를 뿌려 먹었다. 어찌 되었건 간신히 목구멍으로 넘길 맛이 난다는 것 자체는 동일했다. 그나마도 폭풍이 불거나 해서 바다가 잔잔하지 못하다면 화재 위험 때문에 화로를 쓸 수 없어 요리가 불가능했으므로 찬 음식 그대로 먹어야 했다.
그럼에도 바다 위에서는 엄연한 선호 식품이었다. 장교나 상선사관들의 소유물이거나 비싼 돈주고 사서 함부로 먹을 수 없는 살아있는 가축, 마찬가지로 말단 선원과 수병들에겐 그림의 떡인 병조림, 통조림 등의 고급 식품을 제외하고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식품 중에서는 럼, 그로그와 함께 가장 선호되는 음식이었다. 일단은 고기니까... 때문에 염장고기를 줄이고 야채절임 같은걸 주면 수병들이 싫어했고, 배식받을 때 고기를 덜 받았니 더 받았니 하면서 싸우는 일도 흔했다. 사실 이는 모병제를 유지했던[11][12] 영국군의 특성도 관련있는데 빈부격차가 극심했던 당시에 밀가루로만 만든 빵과 고기, 덤으로 술까지 삼시세끼 식사로 나온다는건 엄청나게 매력적인 일이었다. 비록 그게 건빵에 염장고기라고 할지라도 어차피 하류층이 먹는 식단이라는건 그 정도면 진수성찬일 정도라서 그렇게 큰 불만은 없었다고. 아무리 그래도 항해가 계속되어 돌빵과 돌고기를 먹으면 불만은 생겼겠지만... 사실 그나마도 맨날 주지도 않았다. 일주일에 절반 정도만 배급되었고 나머지 날에는 말린 콩, 버터, 치즈를 먹어야 했다. 더군다나 치즈 보관소가 함저부 가까이에 있었는데 습하고 냄새나는 곳에 쳐박혀있는 치즈에 비하면 염장고기는 양반이었다.
이러한 염장고기의 입지는 19세기 중반 이후 통조림과 냉장고가 등장하면서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나 제한 배급 식량이나 비상식량으로서 제1차 세계 대전 때까지는 여전히 대량 생산되었다. 염장고기를 이용한 요리 중 하나인 '크림 소스에 버무린 염장 쇠고기를 얹은 토스트(일명 SOS, "Shit on Shingle". 뜻은 '''널판지 위의 무언가.''' 과연 납득가는 이름이다)' 같은 경우 1910년부터 '''1962년'''(!)까지 미 해군 요리 교범에 실려있었다. 미 해군 출신들의 회고에 의하면 1940년대에도 2주에 한 번 정도는 식단에 올라왔는데,[13] 짬밥 좀 먹은 부사관이나 장교들은 전반적으로 좋아했으나 젊은 수병이나 하급 부사관들은 그 요리를 계속 먹을 바엔 차라리 탈영하겠다는 충동까지 들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이전에 비해 고기 질은 많이 개선됐다지만 짠맛은 여전해 조리 전까지 계속 물에 담궈 고기의 염분을 최대한 빼내야 했다. 게으른 조리병이 그 고기 염분 빼는데 쓴 소금물을 그대로 소스 만드는 데 쓰는 만행을 저지른 경우는 더 짰다.
3. 현대의 콘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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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스타일의 콘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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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프 파스트라미 스타일의 콘비프
염장고기에서 향신료를 추가하고 말리는 과정을 적게 하여 염장고기만큼 오래 보관하지는 못하나 그 대신 특유의 풍미가 나게 만든 일종의 '''햄'''과 비슷한 물건[14] 이다.
고기를 소금과 여러가지 향신료에 절여 만든 가공식품이다. 전통적인 염장고기와 맛 자체가 다르며 말리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얇게 썰어 샌드위치에 넣어먹거나 스튜에 이용한다.
각종 향신료를 발라 만든 햄과 비슷한 형태의 물건은 콘비프보다는 파스트라미라고 부른다.[15] 보통 얇게 썰어서 드레싱과 함께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는다. 루벤(Reuben) 샌드위치라 불리는데 뉴욕의 명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인 샌드위치 햄보다도 더 독특한 풍미를 즐길 수 있다. 사진의 부위는 소 양지(뱃살)[16] 로, 원래 질기고 결합 조직이 많거나 냄새가 심한 싸구려 부위인 뱃살이나 엉덩이살, 어깨살을 냄새 없이 부드럽게 먹기 위한 조리법이다. 소금과 향신료에 절였다가 향신료+소금 가루를 덮어 오븐에서 4-12시간 익혀 만든다. 저온(70-110도)에서 오래 익힐수록 육질이 부드러워지며, 10시간 이상 익한 것은 손으로 쥐어도 쉬이 부서진다. 그대로 또는 샐러드나 샌드위치에 넣어 먹는다.
3.1. 통조림 콘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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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통조림 제품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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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콘비프의 통조림 외관.
Corn'''ed''' Beef, 콘'''드''' 비프인데 일본에서는 흔히 '''콘비프'''라고 언급된다. 한국에서도 주로 콘비프라고 부르나 대중적인 음식이 아니라 불릴 일이 적다.
외관은 돌려서 따는 구형 스팸 캔과 유사하나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사다리꼴의 윗면이 아닌 아랫쪽을 따게 되어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짜게 만든 다진 소고기볶음 정도의 맛이라고 보면 된다. 짠맛의 수준은 스팸 오리지널보다 약간 더 짠 수준이다. 캔에 뭉쳐져 있기 때문에 스팸처럼 그대로 썰어 사용하기도 하지만 부서뜨려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으며 사실 썰다가 부스러지는 경우도 많다. 사실 따지고보면 소고기로 만들고 잘 부서지는 스팸이다 그냥. 위의 진짜 염장고기와의 관계는 대략 생햄과 스팸의 관계와 비슷하다.
1차 대전 당시 대영제국 육군 소속 한 이등병이 참호전 상황에서 염장고기를 써서 만든 '콘비프 스튜'로 한 끼를 때우는 상황을 재현한 영상이다. 20세기의 육군이다보니 염장고기와 비스켓의 질도 나아졌으며 맑은 물도 있고 현지에서 공수한 야채들이 더해진데다 HP 소스까지 더한 윗 문단의 해군들이 먹던 것에 비하면 호화판이라 할 수 있는 구성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위에서 설명한 '랍스카우스'와 동일한, 으깬 염장고기와 비스켓에 물을 부어 끓이는 요리법으로 만든 음식이다. 이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어본 사람의 경험담에 따르자면 '더도 덜도 아닌 딱 '''영국 맛''''이었다고. 모든 것이 부족한 야전에서 먹는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다는 게 총평이다. 영상에 비해 훨씬 더 좋은 재료와 화력으로 요리했음에도 결과가 이런 것을 보면 조리법 자체의 한계라고 봐야할 듯. 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 방식으로 손꼽히는 참호전이 펼쳐지던 1차 대전 당시엔 이마저도 비전투 상황이나 후방 지역 같은 평온한 때에서나 가능한 음식이었다. 한창 교전이 펼쳐지는 급박한 시점에서는 요리는 꿈도 꿀 수 없고 보급된 염장고기와 비스켓을 그냥 생으로 씹어먹어야만 했다고 한다. 이 때의 처참한 맛은 영국군마저도 도저히 버틸 수가 없는 지경이라 참호전 당시를 회고하는 수기나 소설에선 이 끔찍한 맛에 대한 고통이 절절하게 묘사돼 있다고 한다. 필수 영양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순무의 섬유질로 헛배라도 채우려 애쓰던 독일군이나 대놓고 굶던 러시아 군보다는 양호하지만.
위엣 설명만 보면 마치 맛대가리가 끔찍하게 없는 음식을 비용문제로 억지로 먹인 싸구려 짬밥같은 느낌이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염장고기는 일반 생고기보다 비쌌다(...). 그도 그럴 것이 생고기야 그냥 고기 자체니까 추가비용이 들게 없지만 고기를 재워야 하는 소금은 당시엔 결코 싸다고 보긴 힘들었던 데다가[17] 초석은 전쟁시에 엄청나게 많이 소모되는 화약의 주 재료였기 때문에 기회비용이 매우 큰 재료였고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모병 포스터의 단골메뉴인 '매 끼니마다 X파운드 상당의 식사 제공!!' 이라는 낚시는 맛대가리 없고 비싼 염장고기가 주범이었다.[18]
오늘날의 통조림 콘비프는 본고장인 유럽, 북미에서는 영 시들한 대우를 받지만 동남아시아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점은 스팸과 마찬가지. 필리핀 등에서는 콘비프에 밥을 곁들여 먹거나 덮밥처럼 만들어 먹는 음식도 있다. 보통 그대로 데워서 양파를 곁들이거나 양파와 같이 볶아서 먹는다. 사진 미국의 영향 외에도 동남아 지역이 덥고 습한지라 짠 음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인기를 끄는 면도 있다. 특히 필리핀에서는 한국에서 참치캔이나 스팸을 선전하는 수준으로 콘비프 통조림 광고를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스팸에 비하면 영 인기가 없는데, 단순히 인지도가 낮기 때문이고 쌀밥에 환장하는 한국인의 입맛과 궁합이 무척 좋다. 먹어보면 장조림이 생각나는, 결대로 찢어진 쇠고기에서 적절한 훈제향와 고기 비린내가 솔솔 풍기는 짭짤하고 느끼한 맛인데, 여기에 상기한 대로 양파를 곁들여주면 양파가 느끼한 맛과 비릿한 풍미를 적절하게 잡아주면서도 양파가 씹히는 아삭한 식감이 더해져서 밥반찬으로 손색이 없다.
일본에서는 태평양 전쟁이 끝난 이후 시점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원래는 GHQ가 일본을 좌우하던 시절에 미군병들이 먹고 남은 콘비프를 일본인들에게 대량으로 뿌린 것이 그 시조였다. 당시에는 미군병이 준 콘비프가 한국의 부대찌개처럼 대단한 성찬이었고 전후의 만성적인 식량, 특히 육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체적으로도 콘비프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콘비프는 이름과는 달리 쇠고기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고 약간의 쇠고기에 대량의 말고기, 거기에 여러 잡다한 고기를 집어넣은 혼합육이었다. 결국 콘비프라는 이름은 사기였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출시 55년차에 일본식품법이 개정되면서 순쇠고기 제품만 콘비프라고 표기하는 것이 허용되어 기존의 제품은 콘미트로 이름이 변경되었고, 기존의 브랜드를 버리기는 아까웠는지 콘비프라는 이름으로 순쇠고기 제품을 발매했다. 일본에서는 싼 맛에 고기맛을 즐길 수 있고 가난했던 시절 많이 먹었던 탓에 과거의 향수를 표현하는 식재료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노자키(Nozaki's)사의 콘비프가 가장 대중적인 편이다.
미군 식당[19] 에서 메뉴로 나올 때도 있다. 06년까지는 조그만 감자 조각이 함께 들어 있었다. 위 항목들만큼의 미칠 듯한 짠 맛은 아니지만 베이컨 급의 화력은 된다. 11년부터는 드문드문 나오기는 했으나 간 것보다는 야채와 볶아 짠 맛을 줄인 형태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포트 베닝의 수색대 훈련소 식당에서는 햄이나 미트 로프와 같은 형태로 큰 덩어리를 썰어 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어디까지나 짬밥이다 보니 미군에서는 덩어리 콘비프를 잘 찢어서 만든 물건이 아닌 통조림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미군 부대에서 썼던 물건인 만큼 부대찌개에 들어가기도 한다.
과거 80년대에 콘비프라는 이름으로 통조림 제품이 국내 생산 되기도 했다. 하지만 별도의 광고도 하지 않았고, 맛이 좀 더 짜고 조미료 맛이 안 날 뿐 스팸과 차별화되지도 않고 생소한 음식이어서 그런지 소리없이 사라졌다. 이후 국내에선 생산하지 않으며, 온라인 수입몰이나 대형 마켓의 해외상품코너에서 이따금 보인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필리핀 퓨어푸드社의 호멜 콘비프 통조림. 근데 필리핀 현지에서는 위 사진의 Libby 제품이 더 흔하고 고급이며 호멜 제품은 두 번째 쯤 된다. 그 외에 흔치는 않지만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산도 들어오는 듯. 간혹 해외에서 발간된 요리책이 국내에 번역되어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레시피에 콘비프가 들어가면 스팸이나 장조림 캔으로 대체하라고 적혀있다.
4. 관련 문서
[1] 영어로 corn은 옥수수를 뜻하기도 하지만 이는 indian corn의 약자로 보통은 밀 혹은 밀을 포함한 곡물 전체를 통칭하는 단어로 사용하였다.#참고 여기서의 corned라 하면 곡식 알갱이 같이 굵은 소금을 쳐서 절이는 것을 의미한다. 덕택에 극심한 오역의 경우 옥수수 쇠고기라고 하기도 한다. 보통 일본어 번역판을 중역하는 가운데 자주 벌어진다.[2] Bully Beef는 통조림 절임고기를 뜻하는 단어로 일반 콘비프뿐만 아니라 스팸 등도 포함하는 용어다.[3] 베이컨은 단기간의 약염장이고, 쇠고기로 만드는 염장고기와는 돼지 다리로 만드는 하몬이 더 비슷하다.[4] 냉장보관설비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일단 도축하면 바로 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상온에서 보관하면 5일쯤 지나면 표면이 굳어버리는데 딱딱해진 겉부분을 잘라서 벗겨내고 먹었지만 한계가 분명해서 도축한 후 최대한 빨리 먹을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가축이 소비하는 먹이와 물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많이 실을수도 없었다.[5] 흔히 보는 하몽과 프로슈토도 슬라이싱이 아니라 깎는다는 뜻의 카빙(Carving)이란 표현이 자주 쓰인다.[6] 군대의 특성상 육체 노동이 심하여 그에 비례하는 단백질 보충이 시급하기 때문에 많은 양의 고기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낮은 가격의 고기를 구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도 마찬가지라서 한국군만 해도 구제역 파동이 일어나면 돼지고기가 늘어나고 조류독감 파동이 일어나면 닭고기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는 어느 정도는 정부가 이미지 하락으로 판매량이 떨어져버린 물품들을 대신 팔아줌으로서 농민들의 손해를 조금이라도 경감시켜주기 위해 사주는 것도 있지만.[7] 도살장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돼지, 소, 닭의 부산물은 당시 화학업계에서 후발주자였던 아머사를 순식간에 1위로 올려놨으며 만약에 후술할 스캔들만 없었으면 아머사가 현 시점에서도 세계 최고의 화학제품 회사였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 기준으로도 최악의 위생환경을 자랑하는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노동 조합 없이 진짜 입에 풀칠하고 살 정도로만 돈을 주며 부려먹는 악덕 회사로 악명이 높았다.[8] 그리고 회사 자체도 공중분해되어 각기 다른 회사로 팔려가게 된다. 그 중에서 비누를 만들던 부서는 다이얼사(Dial Corporation)로 분리되었다가 여러 회사의 손을 거친 끝에 2004년 독일 헨켈사에 인수되었다.[9] 그냥 '스카우스(scouse)'라고 하기도 한다. 리버풀 사람들과 사투리를 가리키는 별명도 여기서 유래한 것.[10] 사실 십비스킷을 이용한 랍스카우스는 변형 버전으로, 원래는 저런 요리가 아니다. 원본 랍스카우스는 영국뿐 아니라 독일, 노르웨이 등 북해 주변국가들에서 지금까지도 널리 먹는 요리들 중 하나이다.[11] 해군은 워낙 인기가 없어서 징병제도 병행했다.[12] 말이 징병제지 실제로는 납치에 가까웠다. 술취해 길가에 널부러진 청년들 잡아다가 배에 태우고는 망망대해로 나오면 성실하게 복무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13] 미 해군 음식인데 어째서인지 HBO의 미 육군 101공수부대를 다룬 밴드 오브 브라더스 1화 '''커레히''' 에피소드에서 작중 신참소위인 윈터스와 닉슨의 식사장면에서도 나온다. 일단 상기했듯 육군도 염장고기를 아예 안먹은건 아니기 때문에 만들어 먹었을 가능성 자체는 아주 없는건 아니다만.[14] 햄이라고 하면 돼지 뒷다리를 염장한 것을 말하니...[15] 원래는 터키식 쇠고기 햄을 뜻하는 고유명사다. 향신료 배합을 그대로 베껴온 것.[16] 물냉면 위에 찬 편육으로 올리는 부위다.[17] 소금은 군수물자기 때문에 전쟁중엔 값이 올라가고 과거엔 소금으로 세금 벌려고 국가의 소금 전매가 흔했다.[18] 두번째는 건빵이다. 건빵은 밀가루로 만들었는데 당시엔 밀가루도 비쌌다.[19] Dining Facility/ DF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