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퇴(무기)

 



1. 개요
2. 상세
3. 플레일과의 차이점
4. 역사
4.1. 중국의 철퇴
4.2. 한국의 철퇴
4.2.1. 삼국시대
4.2.2. 남북국 시대
4.2.3. 고려시대
4.2.4. 조선시대
4.3. 일본의 철퇴
4.4. 서양의 철퇴
4.5. 성직자들이 애용한 무기?
5. 사용법
6. 미디어 믹스
6.1. 드라마
6.2. 게임 - 성직자용 무기?
6.3. 애니메이션
6.4. 철퇴를 사용하는 캐릭터


1. 개요


鐵槌
병장기의 하나. 끝에 돌기나 무게추가 달려있고 한손으로 휘두를 수 있는 몽둥이다. 철추(鐵椎)라고도 한다. 우리말로는 쇠몽둥이.[1]

2. 상세


구조가 간단하고, 만들기 쉽고, 사용법도 직관적이면서 파괴력도 뛰어난 무기로서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모습과 다양한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판타지 등의 창작물에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철퇴의 머리, 즉 추 부분의 크기는 어른 주먹 정도의 크기다.[2]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나 바위를 깨부수는 돌망치와 비슷한 크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정도 크기의 쇠뭉치로도 충분한 파괴력이 있기 때문에 쓸데없이 무겁고 크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1~2킬로그램 정도 질량의 쇳덩어리를 강하게 휘두르면 사람 두개골이나 뼈를 깨부수는건 일도 아니고, 사람보다 훨씬 두꺼운 짐승의 두개골도 깨버릴 수 있다.
창작물에는 사람 머리만한 철추가 달린 거대 철퇴가 종종 등장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큰 철퇴는 휘두르긴 커녕 들어올리기도 힘들기 때문에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런 철퇴의 무게는 적게 잡아도 40킬로그램에 육박할 것이며[3] 도저히 사람이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실제 중세시대에 사용된 철퇴들의 철추 부분의 무게는 무거워야 2.5킬로그램 정도였으며 500그램 남짓한 작은 것도 있었다.
모닝스타처럼 뾰족한 돌기들이 있는 철퇴는 철판 등의 갑옷을 입은 중장병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다. 뾰족한 돌기가 없이 매끈한 철퇴로 갑옷의 철판을 내리치면 철퇴가 철판을 따라 미끄러지며 제대로 충격이 전달되지 않는데, 돌기가 있으면 돌기에 맞은 부분이 찌그러지며 철퇴가 걸려 충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격한 규제나 처벌을 철퇴로 은유하는 경우도 많다. "법의 철퇴를 맞았다"는 식으로.

3. 플레일과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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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일(Fl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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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에서의 묘사
보통 한국에서 철퇴라고 하면 가시가 달린 둥근 철퇴머리가 줄이나 사슬로 자루와 연결된 무기, 그러니까 '''플레일(Flail)'''을 생각하는데 원래는 몽둥이형 무기를 부르는 게 맞다. 중세의 플레일은 대부분 모닝스타형 머리를 달았으며 머리가 두 개 이상 달린것도 흔했다. 플레일은 볼 앤 체인(Ball and Chain)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 명칭은 말그대로 '철구가 달린 사슬'을 의미하기에 죄수의 발목에 채우는 철구 달린 족쇄를 의미 하는 경우도 많다.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철퇴=플레일로 각인이 됐지만, 진짜 철퇴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도 태조 왕건이다. 정작 처음만 빼고는 철퇴라고 부르지 않고, 특별히 '법봉'이라고 불리는 그 가시 쇠몽둥이다. 그리고 아래의 링크 영상에서도 보겠지만 처음엔 쇠방망이(쇠몽둥이)라고 원래 의미에 맞게 썼다.
플레일은 정식 한국명칭이 없어서 편의상 철퇴로 불리게 된 듯 한데 플레일은 도리어 철구, 철추, 도리깨 등에 가까운 물건이다.
무기로서 쓰인 것이므로 본래 가장 적절한 번역은 '''편곤'''이 된다.
게임 디아블로 3에서도 농기구에서 착안한 특징을 이유로 '플레일'이 '도리깨'로 번역되었다.
현재 한국에서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에 한해 둔기류는 메이스, 둔기머리에 뾰족한 가시가 튀어나온 종류는 모닝스타, 사슬이 달린 형태는 플레일이라고 부르도록 통용되고 있다.

4. 역사


철퇴는 역사적으로 곤봉의 타격력을 강화하는 형태로 시작했으며 금속을 다루기 이전부터 주먹돌이나 수석을 매달아서 사용했으므로 돌도끼와 비슷한 연원을 지니고 있다.

4.1. 중국의 철퇴


고대 중국에서는 퇴(槌)는 '망치'를 가리키는 말이고, 위에서 이야기하는 철퇴는 곤봉의 개량으로 취급되었다. 따라서 수(殳)·곤(棍)·저(杵)·장(杖)·봉(棒)이 모두 철퇴라는 뜻과 통하는 말. 무기화된 도리깨를 괜히 곤봉+채찍, 즉 편곤(鞭棍)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그 중에서도 중후을묘에서 출토된 전한대의 수(殳)는 창과 철퇴를 결합한 상당히 특이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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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후을묘 출토 수.출처:바이두 막대 부분은 복원품. 3개 중 좌우의 철퇴가 달린 게 수다.
이후 중국 송나라, 특히 남송 시대에 들어 금나라의 중장기병에 대항하기 위해 대부(大斧, 전부戦斧)나 각종 둔기류가 발달하면서 철퇴류의 종류도 세분화되었다.
명나라척계광기효신서를 인용한 무예도보통지를 참조하면, 봉 끝을 쇠붙이로 싼 가려봉(訶蔾棒/訶藜棒), 칼날과 쌍갈고리를 단 구봉(鉤棒), 쇠끌개만을 단 조자봉(抓子棒), 우리가 흔히 철퇴 하면 생각나는 삐죽삐죽한 침이 사방에 돋은 낭아봉(狼牙棒)과 골타(骨朶, 질려골타蒺藜骨朶)[4], 낭아봉과 비슷하나 절굿공이처럼 위아래로 모두 철침과 철추가 달린 저봉(杵棒)[5], 도리깨처럼 생긴 철련협봉(鐵鏈夾棒), 머리가 참외처럼 생긴 철퇴인 과(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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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가 구봉, 그 오른쪽에 있는 것이 가려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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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조자봉, 백봉[6], 저봉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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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병서 <무비지>에 실린 낭아봉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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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요략>에 실린 낭아곤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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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아봉 유물 중 하나의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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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려골타(蒺藜骨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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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철련협봉, 철(철편의 일종), 연주쌍철편(連珠雙鐵鞭).

4.2. 한국의 철퇴



4.2.1.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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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 출토 고구려 철퇴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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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만들어진 경주 능지탑지 십이지신상 중 미(未)상(*). 편곤과 비슷한 도리깨 형태의 철퇴를 들고 있다.
고구려의 무기 유물 중에도 철퇴가 있고, 고려에도 의장대 중 철퇴의 일종인 골타를 든 골타자대가 있었다. 이를 통해 오래 전부터 철퇴가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2.2. 남북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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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발해의 왕녀인 정효공주 무덤 벽화이다. 발해 시대에는 고구려식 각궁, 환두대도와 함께 발해군의 주력 무기였다. 일반적으로 흔히 생각하는 철퇴와 비교하면 굉장히 특이하게 생겼는데, 무게추가 한쪽으로 쏠려 있어서 도끼처럼 찍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오히려 망치에 가까운 느낌이다. 재밌게도 서양 최서단에 있는 나라 아일랜드에도 실레일리라고 하는 비슷한 모양의 무기가 존재한다.

4.2.3. 고려시대



이의방이고를 철퇴(鐵槌)로 쳐 죽인 사건과 이의방의 후손 이방원이 부하이자 자객조영규로 하여금 선지교에서 정몽주를 철퇴로 쳐 죽이도록 교사한 사건이 있다. 후술하겠지만 조선 초에 유난히 암살용으로 자주 쓰인 것을 보면 고려시대에도 자객들의 필수품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타격부위가 구에 가깝기에 작은 표면적에 무거운 무게로 뭉쳐져 있어 도검보다 무거우면서도 크기를 작게 만들 수 있어 숨기기에 간편해 기습적으로 상대를 후려칠 수 있어 암살용으로 특화되었기 때문이다.
부월과 함께 고려군의 주력 무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4.2.4. 조선시대



'''鐵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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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궁궐의 호위무사들이 사용했던 은입사철퇴
조선의 과()[7]라는 철퇴
조선시대의 은입사철퇴는 현대에 입사장 최교준이 복원한 게 있다. 실물 사진은 여기 참조
조선 시대에는 암살이나 반역용으로 많이 사용했는데 우선 칼에 비해 길이가 짧아 숨기기 쉽고, 사용이 쉬워 쉽게 반란군을 숙달시키는데 유용했기 때문이다. 상술했듯 대표적으로 고려 말에 정몽주이방원의 수하에게 철퇴로 암살당했고, 계유정난수양대군 일파의 김종서 암살 시도 때 철퇴가 이용되었다. 김종서는 철퇴를 맞고 의식을 잃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국에는 발각되어 살해당했다.
유명한 야사(野史)에서 태조 이성계는 아들이 보낸 함흥차사를 죽이다 못해 나중에 태종에게 옥새를 넘겨주었을 때, 첫 면전에서는 활을 쏘았으나 태종이 기둥으로 숨었으며, 좌정 후에도 태조의 화가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꿰뚫어 본 하륜의 충고대로 태종이 직접 술을 올리지 않고 내시를 통해 술잔을 올리자, "이게 하늘의 뜻이로구나"라 하면서 소매에 숨기고 있던 철퇴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동서양 모두 철퇴의 위력에 관심을 가져서 철퇴의 위력과 파괴력, 실전성을 시험해보았다.
맨 위에 있는 과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의장용으로 자주 쓰인 금립과는 색깔이 금색이고 참외 모양의 머리가 서 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고, <세종실록오례의>에 따르면 민간에서 부르는 말(향명鄕名)으로는 패라올(孛剌兀, 한자는 당시 공문서의 음차표기.[8])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머리를 은색으로 칠한 것은 은립과, 머리가 옆으로 뉘여져 있는 것은 색깔에 따라 금횡과(金橫瓜)/은횡과(銀橫瓜)라고 했다.
의장용 과는 머리까지 나무로 만들기도 했다. 실제로 전쟁터에서 휘두를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의례 때 철퇴를 들고 행진하거나 한참 서 있어야 하는데 금속제라면 힘든 게 당연지사. 물론 자비 따윈 없이 몸통까지 금속으로 만든 유물도 존재한다. 작은 거라면 버틸만 하지만 큰 거라면... 참조.

4.3. 일본의 철퇴



4.4. 서양의 철퇴


서양에서도 철퇴는 고대부터 널리 사용된 무기였다. 단 보병이 철퇴를 쓰는 경우는 드물었고, 대부분의 경우 중장기병이 사용했다. 철퇴는 크게 휘둘러야 위력을 발휘하는 무기이므로 밀집해서 싸워야 하는 보병이 쓰기는 힘든 반면, 덩치 큰 에 타서 병사 사이의 간격이 넓고 높은 위치에서 공격하는 기병 입장에서는 철퇴를 휘두를 공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꺼운 갑옷을 입은 상대를 공격하기 좋은 무기였기 때문에, 기병 중에서도 중무장한 적을 상대할 일이 많았던 중장기병들이 철퇴를 많이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고대에는 중장기병이 많았던 서아시아중앙아시아, 동유럽 스텝 지역에서 철퇴를 많이 썼고, 보병이 주력이었던 서유럽이나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는 철퇴를 많이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중세 이후 서유럽 지역에서도 기사로 대표되는 중장기병의 비중이 커지면서 철퇴의 사용도 늘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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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지드 메이스(Flanged Mace)
플랜지드 메이스 형태 자체는 고대에도 존재했지만, 사슬 갑옷이 일반화된 중세 유럽 전장에서는 12세기 쯤부터 단순한 쇳덩어리 머리가 아닌 여러장의 철편을 부착해서 만든 플랜지드 메이스(Flanged Mace)가 유행한다. 이런 형태는 타격 면적이 좁아서 큰 압력이 집중되기 때문에 사슬 갑옷을 관통해서 타격을 먹이고, 튼튼한 판금 갑옷에 대해서는 관통을 하지 않더라도 내부에 충격을 전달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판금 갑옷을 착용한 사람이 한번에 제압되는 것은 아니고 머리를 여러 차례 가격해서 피해가 누적되도록 하거나 손등, 팔꿈치, 목 등 외부 충격에 취약한 부위를 노려서 공격해 무력화시키는 방법으로 운용해야 한다.

실험 영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철판은 둔기에도 상당한 반발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찌그러지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에 충격을 전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살상을 하지는 못해도 전투 불능상태로 만들수는 있다. 사실 전투 불능상태라 하더라도 중세 야전 의료수준의 한계를 생각하면 사소한 골절로 후유증이 남거나 사망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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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위키백과)
위의 비슷한 구조의 철퇴들이 인도/페르시아의 철퇴 시슈파르(Shishpar) 중에서도 발견 된다.

4.5. 성직자들이 애용한 무기?


하술되는 RPG의 영향으로 성직자들은 날이 달린 무기는 사용이 금지되어서 철퇴를 썼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 현실에서는 딱히 그런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수사신부들이야 엄격한 수도생활동안 날붙이로 사람죽이는 연습할 기회를 갖는다는 자체가 무리였겠지만, 중세유럽의 주교좌 성직자들은 수도자 생활하다 뽑힌 극소수의 평민 외에는 거의 장성하여 가산을 장남에게 양보하고 출가한 귀족가의 차남들이라 검술을 모를 리도 없었고 검의 사용을 피할 이유도 없었다. 더군다나 기사수도회 가입자들은 기본적으로 기사이면서 성직자였고, 오랜 전투로 심신이 상한 기사나 군인들이 몸을 의탁하기 위해 수도승으로 들어간 사례도 많다.
반대사례를 보면, 샤를마뉴의 12기사 전설에서 랭스의 주교 튀르팽이 사용하는 무기도 검이었으며 심지어 교구 신부가 자기 관구의 교인과 여자를 놓고 검으로 결투를 해서 상대를 죽여버린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 일로 성직자 일은 그만 뒀다.
또한 서양 검술 기록 중 가장 오래된 문서인 1280년대 I.33문서의 내용이 수도자 루테게루스가 검술을 가르치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면 검 잘 다루고 검을 장비하고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수도승들이 많았으면 많았지 금지되거나 없었다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다. 그나마 근거로 추측할 만한 것이라면, 둔기는 검에 비해서 저렴하고 요구 숙련도가 낮은 데다가 평시엔 지팡이로 쓰다가 위급시 호신무기로 쓸 수 있기에 순례자들이 잘 애용하던 것이 와전된 것이라고 여겨지는 정도.
다만 칼에 비해 덜 폭력적인 무기라는 인식엔 역사적 근거가 아주 없지는 않다. 먼저 1066년헤이스팅스 전투에 참가한 바이외 주교 오도(1035?~1097)는 "피를 보기 싫어서" 철퇴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1214년의 부빈 전투[9]를 기록한 연대기 작가는 백병전에서 '끝이 가느다란 신형 검으로 프랑스 기사의 투구 눈구멍을 꿰뚫어 죽이는' 영국-신성로마제국-플랑드르 연합군을 잔인하다고 비난하는 한편, 필리프 2세의 사촌인 보베의 주교 필리프가 전열이 무너질 뻔한 위기 상황에서 '철퇴를 들고 여러 명의 영국인들의 투구 위를 내리쳐 바닥에 쓰러트린'것은 호신용이라 괜찮다(...)며 옹호했는데, 프랑스 입장에 편향된 서술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타격무기로 갑옷 외부에 충격을 가하는 전투법이 갑옷 틈새로 치명적인 급소를 집요하게 노리는 갑주 검술에 비해 덜 잔인해 '''보인다'''는 것은 당시 기준으로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10]
종합하면, 검으로 직접 상처를 내는 게 '''좋지 않아 보였다'''는 정도지 '''금지되었다'''라고는 할 수 '''없다'''고 보는 게 맞을 듯.

5. 사용법


철퇴를 다룰 때는 막대기나 검으로 때릴 때와는 달리, 어깨와 팔꿈치를 먼저 휘두르고 하완부와 팔목, 철퇴의 막대, 그리고 추에 이르는 길이를 살려 마치 채찍이 날아가듯 후려치는 것이 좋다. 글로 이해가 안 간다면 야구에서 오버핸드 투수의 투구법을 보면 된다. 메카니즘이 완전히 동일하다. 이렇게 하면 같은 힘으로 휘두르더라도 종말속도는 더 빨라지고, 무게×속도는 즉 타격력으로 이어지므로 적을 효과적으로 때려눕힐 수가 있다.
물론 타격과 타격 간의 간격이 길어지고, 다시 자세를 잡는 것도 힘들어지지만 그냥 휘둘렀을 때에도 철퇴가 빗나갔다는 것은 이미 큰 약점을 보인 것이기 때문에 별 의미 없다. 일격필살의 기세로 휘둘러야 한다. 비슷한 메커니즘이라 채찍처럼 팔꿈치가 먼저 몸 앞으로 나온 뒤 팔이 자연스럽게 회전하며 내리찍는 느낌이다.

6. 미디어 믹스



6.1. 드라마


'''"좋은 철퇴를 구했으면 좋겠소이다. 쇠방망이 말이오. 3척 쯤 되는 쇠방망이면 좋겠는데."'''# 영상

태조 왕건 98화 中

'''"누가 칼을 쓰라 하였는가? 나라를 배신한 역적들의 가족들이다. 철퇴를 쓰도록 하라. 칼을 쓰는 것은 그나마 시신을 온전하게 보존해주는 처형법이다. 역적들에겐 아니된다. 철퇴를 써라."'''

태조 왕건 165화 中

태조 왕건에서는 궁예가 애용한다. 궁예 눈에 거슬리거나, 죄 지은 사람(또는 죄를 뒤집어쓴 사람)들은 철퇴에 맞아 죽었다. 특히 80화, 83화, 98화, 102화에서 그 점이 더 부각.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가 특히 유명하다. 하지만 궁예 본인이 직접 철퇴로 죽인 것이 아니라 금대가 대행했다.[11]
삼년산성 전투에서 호족들의 배신으로 크게 패한 왕건은 진노하여 다시는 배신자가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배신자와 그의 가족들을 무자비하게 모조리 철퇴로 처형시켰는데, 이를 지켜본 신료들은 '''이런 광경을 어디서 본 것 같다'''면서 겁을 먹는다. 마지막 생존한 아이가 살려달라고 비는데도 자비가 없었다. 그러나 처형을 명한 왕건과 형을 집행하는 군사가 아이를 죽이는 것에는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박술희가 병사에게 역적의 자식이니 망설이지 말고 아이를 죽이라고 명해서 아이마저 죽게 된다.
다만 궁예는 제 눈에 거슬리면 무조건 다 때려잡았고 왕건은 호족들의 배신으로 분노가 폭발한거니 동일선상에 두기 어렵다. 이 때 왕건의 대사는 철퇴 사용의 의도를 정확히 드러낸다. '''"누가 칼을 쓰라 하였는가! 칼을 쓰는 것은 시체를 온전히 남겨주는 처형법이다. 역적들에게는 아니된다. 철퇴를 써라!"''' 사실 그렇기 때문에 부관참시가 있는거다. 망나니를 통한 처형도 그렇고. 조선시대는 시신을 온전한 상태로 남기는 사약을 통한 처벌은 명예형으로 취급받았고, 목을 베어 신체를 훼손하는 참수형보다 목을 매어 죽임으로써 신체를 훼손하지 않는 교수형이 더 가벼운 형벌로 취급되었다. 다만 이런 인식은 유교에서 비롯된 것이라 화장을 하는 불교국가인 고려에 적용하긴 무리가 있기 때문에 고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12] 어쨌든 왕건은 배신에 대한 본보기로 잔인한 처형을 했을 뿐 본인도 내심 착잡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작중에는 단 한번만 나왔다. 박술희도 형벌 집행은 누구도 예외없다는 것 때문이지 그가 사람죽이기를 즐기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무인시대에서는 이의방, 경대승 휘하의 도방 장사 오척, 최충수의 수하 준존심이 주무기로 사용한다. 이의방은 긴 자루와 철침이 돋은 철퇴(낭아봉)를, 오척과 준존심은 사슬이 달린 철퇴(도리깨)를 사용한다.

6.2. 게임 - 성직자용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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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붙이를 사용할 수 없던 성직자들이 사용하던 무기. '''베는 것보다 뼈를 부수는게 덜 폭력적이라는 발상대체 어디에서 나온것일까?'''

- 국내 인디 게임 서프라이시아에서

많은 판타지 작품에서 성직 종사자들의 주무기로 등장한다. 사실 이는 D&D 클래식의 설정을 무분별하게 가져온 것이다. 던전 앤 드래곤 섀도 오버 미스타라에서는 클레릭의 최강 무기로 등장했다.
절단 피해와 타격 피해가 나뉘어지는 게임에서는 철퇴는 주로 절단 피해를 거의 혹은 전혀 입히지 않고 타격 피해만을 입히는 무기로 등장한다. 그래서 검이나 창 등 날붙이에 비해 직접적인 살상력은 떨어지지만 적을 생포하는 데에 유용하거나, 방어구 관통력이 높아 중갑옷을 입은 적을 잡는 데에 유용하거나, 피격 시 스턴 등의 상태이상 효과를 주는 유틸형 무기로 등장할 때가 많다.
대부분 메이스 형태의 철퇴만 등장하고 플레일은 거의 묘사되지 않지만 플레일이 등장하는 경우 메이스와는 별개의 클래스로 분류될 때가 많다.
제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배틀필드 1에 근접전용 무기로 등장한다. 곤봉에 톱니바퀴나 못을 박아서 만든 급조 철퇴들이 일반 무기로 등장하며, 아예 철퇴를 주 무기로 쓰는 정예 병과인 참호 강습병도 DLC로 추가되었다. 일반 철퇴 및 곤봉류만 해도 적당히 뒤통수를 때리거나 들러붙어서 난타하면 적이 금방 누워버리며, 참호 강습병의 철퇴는 딱 한 방에 모든 보병이 즉사하는 황당한 파괴력을 보여준다. 맞아 죽는 모습도 살아있다면 상당히 고통스러워 보일 정도로 가차없이 후려 맞는 모습니다.
토탈 워 시리즈에서는 보병보단 기병, 그것도 동방계 팩션 기병들의 부무장으로 주로 등장하며 장갑 관통 특성이 있기에 중무장한 적들에게 탁월한 성능을 보여준다.

6.3.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스의 주역기체 건담 발바토스를 상징하는 무장으로 초대형 플랜지드 메이스가 나온다. 양손 메이스에 파일벙커가 내장된 흠많무한 무기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갓빠따라는 별명 등으로 불리며 칭송받고 있다.
다른 모형과 달리 무등급 1/100은 발매 당시에는 메이스가 포함되지 않았으나 6형태의 상품에서 파일벙커 기믹[13]까지 재현되어 추가되었다. 상기한 메이스는 지구 강하 당시 전투로 유실되었고[14] 5형태 지상전 사양부터 전기톱 기능을 내장한 신형 렌치 메이스를 사용한다. 이 메이스는 그레이즈 아인과의 결전에서 파괴되어 타치로 그레이즈 아인을 쓰러뜨리게 된다.
그리고 건담 발바토스 루프스 렉스로 개조되면서 기존보다 더 큰 메이스를 무기로 쓰게 되었다.

6.4. 철퇴를 사용하는 캐릭터


창, 도끼, 클로 등의 무기도 사용하나, 주 무기는 철퇴.
건담 해머. 이름은 해머지만 형태도 운용방법도 플레일에 가깝다.
플렌지드 메이스 형태.
위의 건담과 마찬가지로 건담 해머를 사용한다.
이 쪽은 모닝스타.
이 쪽은 폴 웨펀 형태이다.
주 무장이 한손/두손둔기이며, 초반 무기중에 대놓고 메이스 라고 존재한다. 과거에는 마법사 직업군 한정으로 메이스를 장착 할 수 있었다. 현재도 그런지는 불명.
정확히는 플레일.
이 쪽은 플레일인데 손잡이가 짧은 반면 사슬이 엄청나게 길어서 거의 유성추처럼 날려서 쓴다.
3편부터 한정.
아치 코믹스에서 발매한 '소닉 붐' 3호에서...
인간 형태 한정.
대관령 근처에서 나오는 잡몹이다.
G1과 무비 1편 한정.

[1] 단, 쇠몽둥이라는 단어 자체는 손잡이 끝에 추가 달린 형태의 무기와, 말 그대로 쇠로 만든 몽둥이 형태의 무기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이다. 즉, 철퇴와 철편을 아울러서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2] 다만 플랜지드 메이스는 어른 주먹보다는 더 큰데, 이 쪽은 쇠뭉치로 된 추가 아니라 철판이 여럿 달려 있는 형태의 철퇴라서 부피가 더 크다.[3] 지름이 22cm인 월드컵 공인구만한 구형의 철제 추가 달린 대형 철퇴가 있다고 가정하고 그 무게를 구해 보면 이러한 거대 철퇴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의 밀도가 약 7.87g/cm3이고, 지름이 22cm인 구의 부피는 약 5,572cm3이기 때문에 둘을 곱하면 이 거대 철퇴는 추의 무게만 '''약 43.8kg'''의 미친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수치는 순수한 철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실제 무기 제작에 사용되는 강철은 탄소를 비롯한 불순물이 섞여 있어 밀도가 약간 달라지긴 하지만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기 때문에 어쨌거나 40kg이 넘는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4] 삼국지연의에서 무릉만의 왕 사마가의 무기인 철질여골타는 최소한 남송 이후에야 나온 무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대부분의 무기가 사실 원말명초의 무기이긴 하지만...[5] 오봉이라고 잘못 적은 자료들이 있는데 저봉이 맞다.[6] 무예도보통지에 인용된 중국 장수 척계광의 기록에는 중국 북방에선 곤봉을 백봉(백방), 남쪽에서는 곤이라 부른다고 적고 있다.[7] 차폭(車幅)이라고도 한다.[[http://tugups.blog.me/2577318|*] 차폭은 수레바퀴의 바큇살이란 뜻. 아마도 몽둥이 삼아 쓰기에 가장 적절한 굵기와 길이였을 것이다.][8] 뜻이 아닌 음차로 표기하는 건 중국에서부터 있던 일이다. 훈민정음이 나오기 전은 물론이요, (당장 이두를 생각해보자.) 이후에도 공문서는 한자로 쓰다보니 이런 사례가 꽤 있다. 예를 들어, 북송의 손목이 쓴 고려견문록 겸 어휘집인 계림유사에 보면 고려의 어휘를 기록하면서 고려에서는 활 궁 자를 '활'로 발음하는 걸 표기하기 위해 弓曰活(궁왈활)이라고 적어놓았고, 과일인 을 중국에선 시(枾)라 하지만 고려에선 감이라 한다고 구덩이 감(坎)자를 사용해 표기했다. 참조.[9] 백년전쟁 이전까지 프랑스가 영국이 통치하던 아키텐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토(노르망디 포함)를 한방에 회복하게 된 전투다. 영국의 존 왕은 이 패배를 당한 후 귀족들에게 몰려 마그나카르타를 서명하는 굴욕을 겪게 된다.[10] 보베 주교 필리프 드 드로이(Philippe de Dreux)는 1158년생으로, 부빈 전투 당시에는 56세였다. 3년 뒤에 사망한다.[11] 이 당시 소품으로 사용한 철퇴는 신문지를 물에 불린 뒤 풀을 먹여서 뭉친 뒤 뾰족하게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 당시 철퇴에 맞았던(...) 배우 김진오의 회고에 따르면 이게 그냥 살짝만 맞았는데도 별이 빛나는 밤이였다고 한다(...). 대신 철퇴를 클로즈업해서 찍은 인서트 컷을 촬영할 때 사용된 소품용 철퇴는 쇠뭉치로 또 하나 따로 만들어둔 거라고 금대 역을 맡은 배우 최운교가 밝혔다. 즉 촬영에 사용된 철퇴는 최소 두 개 이상이라는 것이다.[12] 그러나 꼭 그렇지도 않은 게, 고려의 국교는 불교였지만 통치 체계는 유교였기에 딱히 고증이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시신을 훼손하는 처벌은 고대부터 있었고 저지른 죄가 무거울수록 신체를 심하게 훼손해 처참하게 죽인 것은 그 때나 조선시대나 똑같았다.[13] 완성형 상품은 로봇혼과 넥스엣지에서 적용됐다. 그리고 MG 건프라에서도 적용.[14] 25화에서 1기가 종료되고 우주공간에 잠시 스쳐 지나가긴 했다.[15] 플레일.[16] 정확히는 그 자체가 철퇴가 모티브다.[17] 라인하르트의 스승으로 아이헨발데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18] 소설에서 모닝스타를 사용한다.[19] 정확히는 플레일로 가장 현실과 비슷하게 사용한다.[20] 카나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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