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2011년
1. 스토브리그
1.1. 갑작스런 감독 교체
2010년 12월 30일 선동열 감독이 용퇴하고 류중일 작전코치가 제13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많은 삼성의 올드팬들은 과거 라이벌이었던 해태 출신의 감독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고, 기존의 공격야구에서 지키는 야구로 팀컬러가 변화한 것을 못 마땅해하거나, 양준혁의 소극적 기용에 불만을 가졌던 상황이었기에 대체로 환영했다. 반면 5년의 재계약을 한지 1년만에 갑자기 단행된 인사이동에 의문을 품거나, 그동안 선동열 감독의 리빌딩 과정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던 팬들은 이에 대해 반발을 했다.
1.2. 코칭스태프 이동
감독이 교체되기 전 김성래 오릭스 버팔로즈 2군 타격코치를 1군 타격코치로, 한화 이글스에 있던 성준 투수코치를 재활군 코치로 영입했다.
타네다 히토시 1군 타격코치와 전병호 재활군 코치와의 재계약을 포기했고, 이후 감독이 바뀐 이후에도 대다수 코치들은 유임됐다.
김한수 2군 수비코치를 1군 보조 타격코치로, 트레이닝코치란 직함을 달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주루·작전을 맡았던 김재걸은 3루 및 주루코치를 맡게 됐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트레이닝 분야 코치 연수를 받고 온 김현욱은 코야마 진 코치와 트레이닝코치를 분담해 맡았다. 류중일의 감독 승격으로 인해 공석이 된 1군 수비코치에는 김용국을 영입했다.
장효조 2군 수석코치가 2군 감독으로 직함만 바꿔달았고, 공석이 된 2군 수비코치 자리에는 김호를 영입했다.
1.3. 선수 이동
2010년 시즌 후 김진웅, 박진만, 심광호, 임동규, 임익현, 정홍준, 채형직, 최천수가 방출됐다. 박진만은 당시 주전 자리에서 밀려났는데 고액연봉자라 트레이드 카드로 쓰기도 어려워서, 조건 없는 방출 형식으로 고향팀인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방출된 심광호는 LG 트윈스로 이적했다. 신고선수 김지호, 송주호, 이만기, 전준호 등도 신고선수 해지로 방출됐다.
2010년 10월에 KIA 타이거즈에서 방출된 문현정이 테스트를 받고 정식선수로 입단했다.
배영수가 FA로 풀렸다. 일본 진출을 선택하면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계약 직전까지 갔으나, 선천적으로 높은 간수치 때문에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했고 결국 계약도 결렬되면서 배영수는 삼성과 2년 재계약했다.
2011년 초에 정민우가 개인사로 임의탈퇴됐다.
1.4. 군 입대 및 군 제대
상무에서 복무한 김경모, 김기태, 김동영, 모상기가 복귀했다. 이동걸도 군복무를 마쳤다.
김현우와 백상원과 허승민이 상무에, 양지훈이 경찰 야구단에 입대했다. 길태곤과 홍효의는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1.5. 신인 지명
- 포지션은 지명 당시 기준.
1.6. 외국인 선수
프란시스코 크루세타와 팀 레딩과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감독이 교체되기 전 라이언 가코를 영입했지만 다른 외국인 선수를 정하지 못했는데, 재일교포 카네무라 사토루를 영입하려다 결국 SK 와이번스에서 활동한 카도쿠라 켄을 영입했다.
2. 전지훈련
- 코칭스태프 : 류중일, 장태수, 김성래, 김평호, 성준, 정회열, 김태한, 김현욱, 김한수, 김종훈, 김용국, 김재걸, 오치아이 에이지, 코야마 진
- 투수 : 곽동훈, 구자운, 권오준, 권혁, 김효남, 명재철, 박민규, 배영수, 백정현, 안지만, 오승환, 윤성환, 윤영삼, 이규대, 이우선, 임진우, 임현준, 장원삼, 정인욱, 정현욱, 차우찬
- 포수 : 이정식, 진갑용, 채상병, 현재윤
- 내야수 : 강명구, 김상수, 박석민, 손주인, 신명철, 임익준, 조동찬, 조영훈, 채태인
- 외야수 : 강봉규, 김종호, 박한이, 배영섭, 오정복, 이영욱, 정형식, 최형우, 라이언 가코
당초 외야수로 분류됐던 라이언 가코는 결국 외야수비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3. 정규시즌
류중일 코치가 감독으로 된 첫 해. 삼성은 작년까지의 그 삼성이 맞나 싶을 정도로 스타일이 확 바뀌었다. 선동열 체제에서의 수비적인 야구에서 벗어나 삼성 본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공격야구로 스타일을 회귀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이해에 삼성이 거두었던 79승 중 '''절반 이상인 41승이 역전승'''이었다. 그 중에서 11승은 8회 이후에 해낸 것으로, 이에 삼성팬들은 '''약속된 승리의 8회'''라고 칭하며 굉장히 좋아했다. 이로 인해 선동열 전 감독에 대한 인식이 더욱 악화되었는데, 선동열 감독은 5회까지 리드를 잡지 못하면 2,3점 차에도 패전조를 올리는 일명, '포기하는 야구'를 해왔기 때문.
하지만 선동렬 감독의 유산도 분명 있었다는 평이 많다. 선동렬 감독이 임기 내내 공을 들이며 완성하려 했던 강력한 불펜진은 아이러니하게도 류감독 부임 해였던 2011년에서야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물론 류중일 감독이 선감독과 다르게 선발투수를 오래 끌고 가며 불펜 투수들의 체력도 적절하게 관리해준 점 역시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당시 불펜진은 조까 라인이라 불리며 무시무시한 위용을 자랑했다. 특히 삼성의 마무리 오승환이 완벽히 부활, 몬스터 시즌을 보내며 삼성라이온즈에 큰 힘이 되었다.[3]
다만, 시즌 초반에는 그렇게 공격력이 좋은 편도 아니었고, 투타 밸런스도 영 맞지 않는 모습이 많았다. 게다가 신진 3인방 중 한 명이던 채태인이 5월 3일 경기에서 '''세기의 지름길 개척'''을 시전하면서 이 때부터 채태인의 평이 급격히 나빠지기에 이른다. 그래도 시즌 초반부터 류중일 감독이 선수들의 부상 관리를 철저히 해주었고, 또한 때마침 4강권에 두산 베어스가 누구 때문에 자멸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상대적으로 '''2012년보다는''' 상위권에서 시즌 초반을 보냈다. 그러다가 여름이 오자 '''역시 올라갈 팀은 올라갔다'''.
6월 28일, '''1위'''로 올라섰다. 이후 전반기 막판까지 KIA와 1위 다툼을 했으나, 후반기가 시작된 7월 26일부터 28일까지 광주에서 KIA를 상대로 3연전을 싹쓸이하면서 1위를 재탈환하였고, 이후 롯데, KIA, SK가 2위 쟁탈전을 벌이는 사이에 2위 그룹과 승차를 더욱 벌려 거의 '''1위'''를 굳힌 상태. 별 이변이 없는 한 5년 만의 한국시리즈 직행이 유력해졌다.
한편, 2011년 8월 10일 삼성의 프랜차이즈였고 류중일과 환상의 키스톤 콤비였던 강기웅을 16년만에 다시 불러들였다. 1996년 트레이드 파동으로 은퇴하고 이 일 저 일 다하면서 먼 길을 갔던 강기웅을 다시 데려온 것이다. 류중일 감독의 힘도 컸겠지만 2011년 들어서 프랜차이저들을 대거 코치로 기용하고 챙기려는 삼성의 행보에 팬들의 환호도 컸다. 강기웅은 2군 타격코치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로써 1루수 김성래, 2루수 강기웅, 유격수 류중일, 3루수 김용국으로 이어지는 철벽 내야 수비진이 다시 힘을 합치게 되었다.
9월 27일, 두산을 5:2로 꺾으면서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로써 2006년 이후 5년만에 한국시리즈 직행이 확정되었다.
3.1. 사건/사고
4월 16일 두산과의 경기 중 구장에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9월 7일 장효조 2군 감독이 간암으로 투병하다가 결국 별세했다. 공석이 된 2군 감독 자리는 양일환 투수코치가 겸했다.
4. 포스트 시즌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에게 4승 1패로 통합우승을 달성하였다.
5. 시즌 총평
2011년 삼성은 류중일 감독 체제 이후로 나름대로 "공격적인 야구"를 추구했다. 그러나 이미 타선은 선동열 전 감독의 지휘 하에 막장이 되어있던 상황.[4] 이에 류중일 감독은 "달리는 야구"로 타선을 어느 정도 만회했고[5] 거기에 강화된 타선의 집중력으로 팀 타율 6위임에도 불구하고 팀 득점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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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부문에서 류중일은 오치아이 코치에게 전권을 위임했고, 오치아이 코치는 선동열 전 감독과 달리 선발을 최대한 길게 끌고 가는 스타일. 초반에는 투수 교체 타이밍이 늦어 삼성 팬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지만 어쨌든 시즌 내내 불펜진은 과부하가 걸리지 않음으로써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고 이에 오승환의 부활이 더해져 2000년대 역대 최강의 불펜진을 구성했다. 선발에서는 딱히 눈에 띄는 에이스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선발진이 탄탄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며 시즌 내내 5~6선발 체제를 고집했고, 배영수를 제외하면 모두 양호한 성적이었다. 정인욱은 선발로써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해 한화 이글스를 제외한 다른 모든 팀에게 상대전적이 앞섰다는 기록도 있다. 하필 이 때 한화 이글스는 야왕 신드롬에 힘입어서 말이다.
6. 아시아 시리즈
11월 25일부터 시작된 아시아 시리즈에서 처음 상대인 호주 퍼스와의 승부는 이겼지만, 26일의 소프트뱅크와의 경기에서 '''참패'''했다. 주전들이 빠진 1.5군 수준의 소프트뱅크에 9대0으로 털린 것. 물론 진 것도 진 것이지만 과정이 너무 안 좋았다.
하지만, 다음날 퉁이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6:3으로 이기며 결승에 진출했으며 11월 29일에 있었던 소프트뱅크 최정예 1군과의 결승전에서 '''5:3으로 승리, 지난 경기를 설욕하며 KBO 프로야구팀 사상최초이자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다.'''
7. 선수별 개인 성적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 투수는 이닝이 많은 순서대로, 타자들은 타수가 많은 순서대로.
- 타자들의 포지션에서 괄호 안은 선발출장 수. 포지션 순서는 선발출장이 많은 순서대로.
7.1. 투수
- 우완
- 좌완
7.2. 타자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8. 수상 및 기록
8.1. 투수
- 오승환 : 세이브 1위(47세이브), 2011년 한국시리즈 MVP
- 윤성환 : 전구단 상대 승리
- 차우찬 : 전구단 상대 승리
- 장원삼 : 2011 아시아 시리즈 MVP
8.2. 타자
9. 관련 문서
[1] 원래 입단 계약을 맺었지만, 정규시즌 개막 전 음주운전으로 불구속되면서 그대로 방출됐다.[2] 대학 시절에는 외야수로 출장했는데, 삼성 입단 이후에는 내야수로만 출장했다.[3] 당시 1승 47세이브, 방어율 0.63. 블론세이브는 단 1회. 마무리 투수임에도최형우, 윤석민과 함께 시즌 MVP 후보에 오를 정도로 강력한 임팩트를 보여준 시즌이었다. 자세한 것은 항목참조[4] 2011 시즌 삼성의 팀 타율은 0.258로 전체 6위.[5] 2011 시즌 삼성은 팀 도루 1위(163개)로 2위 두산(130개)를 크게 앞질렀다.[6] 대타 및 대주자로만 출장.[7] 삼성 선수로는 2007년 이후 4년만에 나온 골든글러브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