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구아 프랑카
1. 개요
상호 소통이 불가능한 서로 다른 언어의 화자끼리 의사소통을 위해 정한 언어. 한국어로 번역하여 '공통어'라 부르기도 한다.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정한 언어인 공용어와는 다른 개념이다.
2. 어원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라는 말은 라틴어로 '프랑크족의 언어'를 뜻한다. 재밌게도 정작 이 단어가 생긴 중세 당시의 링구아 프랑카는 라틴어였다.
'링구아 프랑카'는 원래 '사비르어(Sabir)'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를 '지중해 링구아 프랑카(Mediterranean Lingua Franca)' 또는 '좁은 의미의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 stricto sensu)'라고도 한다. 사비르어는 동지중해 일대에서 서유럽인들과 다른 지역의 상인들이 교역하면서 로망스어 바탕에 여러 언어가 섞여 발생한 피진 언어로, 11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통용되었다. (참고) 중세 당시 동로마 제국과 아랍권에서는 서유럽인들을 '프랑크족'이라고 퉁쳐 일컬었고, 사비르어 역시 '링구아 프랑카'로 불렸다. 이후 '링구아 프랑카'는 의미가 확장되어 '공통어' 역할을 하는 언어 전반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3. 사례
- 영어: 20세기부터 지금까지 전 지구의 링구아 프랑카.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지구 전체의 링구아 프랑카의 자리를 얻어냈다. 전세계 사람들은 좋든 싫든 영어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고 있다. 당장 한국인들이 외국인을 보면 국적 불문하고 주로 영어부터 꺼낸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영어는 UN의 공용어 중 하나이며 영연방은 물론이고 수 많은 국제 기구들의 공용어로도 쓰이고 있다.
- 프랑스어: 라틴어가 위축된 이후 영어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인 15세기~20세기까지 유럽을 포함한 서구권에서 널리 쓰였다. 프랑스어는 현재 유엔과 유럽 연합, 아프리카 연합, 라틴 연합, 기타 국제 기구의 공식 언어이고, 여러 학문 분야에서도 프랑스어를 쓰고 있다. 현재도 프랑스 식민지였던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의 여러 국가과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에서는 나라 안의 민족마다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민족이 다른 사람들끼리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프랑스어가 사용되고 중동의 레바논에서도 자주 쓰인다.
- 라틴어: 로마 제국의 흥성으로 전 유럽에 라틴어가 퍼지면서 로마 제국 이후 이후 근대 이전까지 유럽, 특히 서유럽에서 널리 쓰였다. 학명이 라틴어화된 이름을 쓰는 것도 라틴어가 카를 폰 린네가 살던 18세기 까지도 학술적, 교양적인 언어로써 크게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린네가 살던 시기에는 이미 프랑스어가 당시의 링구아 프랑카였다.
- 코이네 그리스어: 로마 제국의 서쪽은 라틴어를 공용어로 썼지만, 공화정 시절부터 그리스와 중동, 이집트 등 제국 동부 지역에서는 코이네 그리스어가 광범위하게 쓰였다. 신약성경이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여진 것도 제국 동부를 중심으로 널리 퍼진 기독교 신자들끼리 모국어가 달랐기 때문이다. '코이네'라는 단어는 단어 뜻부터 '보편적이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로마 제국이 분할되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그리스어 지역만 영토로 남게 된 동로마 제국은 공식적으로 라틴어보다는 그리스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슬람 제국의 발흥으로 동로마 제국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킴으로써 그리스 민족만이 쓰는 언어로 전락했다.
- 아람어: 고대 서아시아의 국제어. 본래 아람인이 쓰던 언어였으나 아시리아 제국의 공용어가 되면서 서아시아 전역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아람어를 모어로 사용한 사례에서 보듯이 히브리어보다 아람어를 더 자주 사용할 정도였으며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 페르시아도 아직 페르시아어가 널리 퍼진 언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공문서는 아람어로 주로 썼다.
- 한문(고전 중국어) : 19세기 말까지 동아시아 지역(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에서 글말로 두루 쓰였으며 이들 사이에 서신을 전할 때 한문으로 주고받았다.
- 표준중국어: 중국어는 방언 차이가 매우 커 방언마다 다른 언어로 간주할 수도 있을 정도이므로, 서로 다른 지역의 방언을 쓰는 사람끼리 방언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중국은 국가적으로 표준중국어 교육과 사용을 강조하고 실제 중국인들도 다른 방언을 쓰는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표준중국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므로, 중국어의 방언들을 서로 다른 언어로 본다면 표준중국어는 중국인[1] 들의 통용어라고 할 만 하다. 이러한 현상은 20세기에만 있던 것은 아니라서, 명나라 시절부터 서로 다른 방언을 모국어로 하는 중국의 관료들은 표준중국어의 모태가 되는 방언인 관화로 의사소통했다. 그리고 UN 공식 언어 중 하나로 지정되었고 중국과 대만, 싱가포르의 공용어, 링구아 프랑카로도 쓰이고 있다.
- 만주어: 청나라 초기에 고위층 중심으로 건주여진어를 베이스로 하여 만들어진 표준만주어가 많이 쓰였으나, 중원 지배의 장기화로 인해 표준중국어의 조상격 언어인 관화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고 더 나아가 만주어 자체도 사어가 될 위기에 처하였다.
- 스페인어: 스페인과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중남미에서 공용어이자 널리 쓰이는 언어이고, UN, 유럽 연합, 라틴 연합의 공식 언어로 지정되어 있다.
- 아랍어: 이슬람교를 비롯한 이슬람 문화권의 국제어이자 아랍권의 공용어. 현재 UN 공식 언어 중 하나이기도 하다. 비무슬림 중에서는 아랍계 기독교인들이나 미즈라힘들이 아랍어를 사용한다.
- 러시아어: 소련의 영향으로 인해 구성국들 사이에 러시아어가 깊숙히 파고들었으며 해체된 지금도 이들 국가에서 쓰이고 있다. 동구권도 소련의 영향을 많이 받은 만큼 러시아어가 주요 외국어가 되었지만 공산권 붕괴 이후로는 영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중이다. 그래도 러시아가 소련만큼은 아니지만 강대국 지위를 되찾은 만큼 동구권 내에서 러시아어의 지위는 아직 낮다고 보기 힘들다. 러시아어는 현재 UN, 독립국가연합, 유라시아 연합, 유네스코의 공식 언어 중 하나다.
- 말레이어/인도네시아어: 근세 시절부터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해상 교류가 상당했는데 섬이 많고 고립된 지역이 많아 지역마다 모어도 천차만별이었으므로 서로 다른 모어를 가진 이들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상인들을 중심으로 말레이어를 사용했다. 오늘날에도 인도네시아의 언어는 수백 개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므로 전 국민이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말레이어의 인도네시아 표준인 인도네시아어를 국가 언어로 지정하고 인도네시아어 교육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으며, 그 결과 오늘날에도 인도네시아인들은 출신 지역마다 서로 다른 모어를 가지지만, 기초교육을 받은 거의 전 국민이 인도네시아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싱가포르 또한 말레이인이 최대 소수민족이고 말레이어가 국어인 만큼 말레이어가 영어, 표준중국어, 타밀어와 더불어 4대 공용어이다.
- 일본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의 통치하에 놓인 동아시아와 남태평양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퍼져나갔다. 특히 대만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민족마다 언어가 달라서 서로 다른 민족과의 소통을 위해 일본어가 많이 사용되었고 대만이 중화민국으로 편입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 패망 이후 각 식민지에서 일본어의 공용어 지위를 박탈하면서 국제어의 지위를 잃고 다시 일본 열도 내에서만 링구아 프랑카 역할을 하게 되었다.[2] 이후 일본이 강대국 지위를 되찾으면서 일본어의 국제적 지위는 다시 높아졌지만[3] 일본 제국 시절의 국제어 지위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편이다.
- 독일어: 수세기 동안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사용되었으며 한자 동맹 간 저지 독일어로 소통했고 신성 로마 제국도 공용어는 라틴어였으나 독일어가 많이 사용되었다. 오늘날의 구어로서의 표준 독일어도 본래는 독일어권 지역 각 방언(방언이라고는 하나 방언만으로는 소통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간의 소통을 위해 어느 정도 인위적으로 형성된 언어이다. 심지어 "미국의 공용어가 될뻔했다"는 도시전설까지 있었고, 체코를 비롯한 동유럽 일대에서 독일어 사용 인구가 매우 많았을 정도로 영향력이 강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는 나치의 만행으로 인해 독일어의 영향권이 크게 축소되었다. 하지만 유럽 연합에서는 공용어중의 하나이자 영향력이 강한 언어이다.
- 터키어: 정확히는 오스만어로, 오스만 제국 시대에 아나톨리아 반도와 동남부 유럽의 무슬림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황궁을 비롯해 통치조직 내에서도 쓰였다. 다만 로마 제국이 그랬듯이 여러 언어들을 인정했으므로 오스만 투르크어만 쓴 것은 아니다. 오스만 제국의 피지배민족들이 여러 나라로 갈라져 제각기 독립하고, 오스만 제국이 무너진 후에 들어선 터키 공화국의 언어 개혁으로 생겨난 현대 터키어가 터키의 공용어 자리를 차지하면서, 오스만어는 단순히 링구아 프랑카 지위를 상실한 걸로 모자라 사실상 사어로 전락했다.
- 산스크리트어: 역사적으로 인도 반도의 국가들끼리 널리 사용되었다. 현재는 영어가 그 자리를 꿰찬 상태.
- 히브리어: 수세기에 걸친 유대인 추방으로 인해 각 지역으로 분열된 유대인들 간에 쓰였다. 현대 이스라엘에서 히브리어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인들과도 일반적으로 통용된다.
- 포르투갈어: 포르투갈과 브라질 외에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곳에서 공용어, 통용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 페르시아어: 이란,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에서는 공용어이자 링구아 프랑카로 쓰이고 있지만,[4] 페르시아 문화권에 속했던 중앙아시아국가들과 무굴 제국, 오스만 제국, 일 칸국에서는 링구아 프랑카로 자주 사용되었다.
- 케추아어: 예전에 잉카 제국 시절에는 링구아 프랑카로 사용되었지만, 스페인의 정복 이후에는 세가 줄어들다가 페루의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 마야어: 예전에 마야 문명을 이루던 유카탄 반도 지역에서는 마야인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스페인의 정복으로 세가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마야어는 널리 사용되고 있고 유카탄 지역에서는 가르치는 경우도 흔하다.
- 나와틀어: 나우아인이 메소아메리카의 주류 민족이 되면서 공용어가 된 언어. 본래 나우아인은 북쪽에서 남하해온 민족이었으나 톨텍 시기 멕시코 고원의 패권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아즈텍 제국에 이르러서는 나우아인의 일파인 멕시카족이 메소아메리카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을 세워 메소아메리카 전역의 공용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스페인의 정복으로 현재 나우아틀어 화자는 멕시코 전체 인구의 1%밖에 안된 상태이다.
- 힌디어, 우르두어: 힌디어의 경우 인도에서는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어서 남인도를 제외한 북인도에서는 널리 사용되고 있고, 인도 주변의 네팔, 부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에서는 많이 배우고 있다. 힌디어와 방언 수준으로 가까운 언어인 우르두어 또한 인도와 파키스탄의 무슬림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며, 펀자브어, 벵골어 등 다른 언어가 모어인 인도계 무슬림들도 우르두어를 많이 배운다.
- 암하라어: 에티오피아에서 쓰이고 있으며, 실제로는 에피오피아 내에서는 인구가 더 많은 오모로 족의 오모로 어 화자가 많지만 암하라 족의 영향력이 세고, 이전 이디오피아 제국 황실 언어이기도 한 암하라어가 공용어가 되어 쓰이고 있다. 암하라어는 에티오피아 국내 뿐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영향력 있는 언어로 쓰이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 대륙 중 유일하게 자체 문자를 가진 언어이기도 하다.[5]
- 스와힐리어: 케냐와 탄자니아, 우간다에서는 영어와 함께 공용어이자 국어로 지정되어 있고 르완다, 콩고민주공화국, 코모로, 마다가스카르에서는 국어 및 필수외국어로 지정되어 있어서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 연합, 동아프리카 공동체의 공용어로도 지정되어 있다.
- 하우사어: 서아프리카에서는 많이 쓰이는 토속어로 서아프리카내 여러민족들이 링구아 프랑카로도 사용하고 있다.
- 소그드어: 고대 말부터 중세 초까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소그드인들을 중심으로 사용되었고 링구아 프랑카로 사용되었으나, 중세에 소그드인들이 이슬람화되고 페르시아어나 중세 튀르크어 등 다른 언어들이 링구아 프랑카 역할을 대체하면서 소멸했다.
4. 링구아 프랑카를 목적으로 만든 인공어
- 에스페란토: 에스페란토 자체가 인류의 링구아 프랑카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현재는 에스페란티스토들의 링구아 프랑카로서 기능하고 있긴하다.
- 링구아프랑카노바: 에스페란토와 같은 인공 국제 보조어. 로망스어군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5. 여담
메탈기어 솔리드 V 더 팬텀 페인의 악역으로 스컬 페이스가 나오는데, 민족해방충을 사용하여 인류의 링구아 프랑카인 영어를 없애는 것이 목적이다.
6. 같이보기
[1] 경우에 따라 대만인, 홍콩인, 마카오인, 그 외 세계 각지에 진출한 화교들도 포함할 수 있다.[2] 류큐인, 아이누족, 윌타족 등 일본의 소수민족들이 일본어를 링구아 프랑카로 쓰는 게 대표적이다. 참고로 일본은 미국처럼 공용어가 지정되어 있지 않다.[3] 일본 애니메이션이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끄는 게 대표적이다.[4] 타지키스탄에서는 타지크어라 부르고 키릴 문자로 표기하지만 페르시아어와 거의 같다.[5] 에리트레아의 공용어이자 에티오피아 북부 일부 지역에서 사용되는 티그리냐어 또한 이 암하라 족의 자체 문자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