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도어 카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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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수학자, 작가, 테러리스트, 반기술주의자. 본명보다 FBI에서 붙여준 '''유나바머(Unabomber)'''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3] 16번의 폭탄테러를 통해 3명을 살해했으며 2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산업화로 인해 오히려 인류가 존엄성과 자율성을 박탈당하고 가축의 지위로 전락할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자신의 신념에 입각해 과학기술의 발전, 산업화에 책임이 있는 과학자, 기업가들을 상대로 폭탄테러를 저질렀다.
대표작 "산업사회와 그 미래"(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에서 고도로 기술화-산업화된 현대 문명이 극소수의 엘리트들에게 신과 같은 권력을 주는 반면,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자율성을 박탈해 무력하게 만드므로, 현대 과학기술과 지구상의 산업기반시설을 모조리 파괴해 빼앗긴 자율성을 되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4]
IQ 167의 높은 지능과 냉철한 판단력, 복잡한 행동을 실행하는 추진력을 동시에 가진 인물로 경찰의 수사를 교란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 때문에 자필 선언문을 대형언론사에 투고하는 대범함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연방수사국은 17년간 그를 체포하지 못했다.
2. 범행 이전 생애
2.1.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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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일리노이에서 폴란드계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애칭은 테드였다. 그의 부모는 남동생인 데이비드에게 심한 두드러기가 나서 테드를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제한하고 병원에 격리시키기 전까지는 테드가 행복한 아이였다고 평가했다.
격리가 있은 후 테드는 수개월 동안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테드의 어머니 완다는 사진을 보고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테드가 의사와 함께 있었을때, 테드는 우리에 갇혀있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무력한 동물들에게 동정심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테드 카진스키는 시카고의 셔먼 초등학교에 다녔고 담당선생은 카진스키가 "건강하고 잘 적응함"이라고 평가했다. 4학년 때 일리노이주 에버그린 파크로 이사했고 에버그린 중앙학교에 전학했다.
전학 당시 측정된 카진스키의 지능 지수는 167#이었으며 6학년으로 월반하였다. 카친스키는 나중에 이를 중추적인 사건이라 평가했다. 월반 이전 그는 동료들과 비교적 사교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월반 이후 나이든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이 왕따당했다고 생각했다.
2.2. 고등학교 입학
카진스키는 시카고의 에버그린 파크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학문적으로 우수했다. 카진스키는 마칭 밴드에서 트럼본을 연주했으며 수학, 생물학, 동전, 독일어 클럽의 멤버로 들어갔지만 동급생들에게 외부자로 간주되었다. 재학기간 동안 카진스키는 수학에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라플라스 변환을 비롯한 복잡한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 전반에 걸쳐 카진스키는 동년배 학생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학교는 더 복잡한 문제를 출제했고 카진스키는 곧 그것을 습득했다. 끝내 그는 11학년을 월반하였고 여름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15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미국 고등학생 top 1%만이 수여받을 수 있는 내셔널 메릿 장학금에서 결선에 선발되었으며 하버드 대학교에 지원하도록 권장받았다.
그의 고등학교 동급생은 나중에 카진스키가 정서적으로 준비가 안되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준비되지 않은 그를 하버드로 보냈다. 그는 운전 면허증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2.3. 하버드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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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에 하버드 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졸업까지 하버드의 기숙사인 엘리엇 하우스에서 살았다. 당시 그를 본 주변인물들은 카진스키가 조용하지만 인격적인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그와 같은 건물을 썼던 동기는 체포 이후 그의 성격을 묻는 인터뷰에 대해 "단지 개인의견이지만, 나는 그가 똑똑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2학년 때부터 카진스키는 미국의 세뇌 프로그램인 MK 울트라 계획의 피해자가 되었다. 당시 카진스키는 MK울트라를 주도하던 하버드의 심리학자 헨리 머레이가 이끄는 "고의적으로 잔인한 심리 실험" 연구에 참여당했다.
이 실험은 피실험자에게 동료 학생과 개인 철학에 대해 토론할 것이라고 말하고 개인적인 신념과 열망을 자세히 기술한 에세이를 작성하게 했다. 그리고 해당 문서를 다른 사람에게 인계한 뒤 피실험자에게 에세이의 제목을 과소평가하며 에세이의 내용을 사용하여 조롱, 모욕, 멸시하도록 하고 피실험자에게 전극을 꽂은 후 생리적 반응을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촬영되었고, 여러 번에 걸쳐 반복되었다. 이 실험은 궁극적으로 3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매주 누군가가 카진스키를 언어로 학대하고 굴욕감을 갖게 하였다. 카진스키는 "학문의 일환"으로 이 실험을 200시간동안 하였으며 이는 그의 내면에서 악마적 증오와 분노,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였다.
다만 카진스키 본인은 단 한 번 30분 정도 진행된 것 외에는 해당 연구와 관련된 일을 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체포 뒤 언론이 시청률을 얻기 위해 그의 범행동기를 두고 자극적인 방향으로 과장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언론들의 보도들은 어느 정도 걸러들을 필요는 있다.
1962년 카진스키는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성적은 Math 210 클래스 B, Math 250 클래스 B이며, 3.12의 GPA였고 졸업 당시 20세였다. 이 성적은 그 당시가 성적 인플레이션이 없었던 시대라고는 해도 하버드에 월반 입학한 것에 비해서는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시카고 대학교, UC 버클리등의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지원금이나 조교수의 딜을 얻는 건 어느 대학원에서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미시간 주에서 연 2,310달러의 지원금[5] 과 졸업 후 조교수직을 제안해 미시간 대학교의 대학원에 입학하기로 했다.
2.4. 미시간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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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미시간 대학교 수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67년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주요 연구과목은 복소해석학과 기하함수이론이었고 교수들에게 굉장히 뛰어난 학생으로 평가되었다.
수학과의 교수였던 피터 듀런은 카진스키가 "다른 대학원생들과는 다른 특이한 사람이었다"며 "그는 수학적 진실을 발견하는데 있어 뛰어난 힘을 갖고 있다"고 말했고 복소해석학 교수였던 조지 피라니안은 "그는 현명하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 학생이었다"라고 평했다. 미시간에서, 카진스키는 총 18개의 과목에서 5개의 B와 12개의 A를 받았다.
그러나 카진스키는 미시간 대학의 추억이 즐겁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가 물리학 과목을 제외하고 꽤 많은 A를 받았다는 것은 미시간에서의 '표준'이 얼마나 비참하게 낮은지를 보여준다..."
1967년, 카진스키의 논문 "Boundary Function"은 미시간 대학교 최고 수학상인 Sumner B. Myers 상을 수상했다. 그의 박사고문인 앨런 쉴드는 "내가 감독한 것 중에 가장 훌륭한 논문"이라고 평가했다.
2.5. 교수 입문
1967년 말 UC 버클리 대학교의 조교수로 선임되었고 이로서 UC 버클리 기하학 및 미적분학 역사상 최연소 수학 교수(24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이었다. 학생들의 교수 평가에 따르면 카진스키는 항상 불편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교육했고, 교과서대로만 가르쳤으며, 학생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카진스키는 재임 후 불과 2년 뒤인 1969년 6월 30일에 조교수직을 사임했다. 당시 수학과의 학과장인 존.W 애디슨은 이것을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사직이라고 했다. 애디슨은 카진스키의 사직을 막기 위해 많은 설득을 했지만 실패했다. 1996년, 버클리의 부총장인 캘빈 무어는 자신이 카진스키의 '인상적인' 논문과 저서를 보았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직위를 상승시킬 능력이 있었고 오늘날의 주요 교수진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2.6. 야생 생활
사퇴 이후 가족들에게 얹혀살거나 막노동을 하며 지냈다. 카진스키는 동생인 데이비드가 관리직으로 있던 고무 공장에 들어가 일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같이 근무하던 여성 노동자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자와의 관계가 서툴렀고, 사랑을 거부당하자 해당 여성에 대한 외설적인 글들을 공장 곳곳에 써붙였고, 결국 동생에 의해 해고당한다. 이 공장에서의 사랑은 카진스키가 해본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의 사랑이었다.
동생에게서 해고 당한 이후 31살이 된 1973년에 몬태나 주 링컨 블랙풋 강가[6] 에 가로 3.3m, 세로 3m의 이동식 오두막[7] 을 짓고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자연환경에서 생필품을 자급자족하는 야인 생활을 시작한다.
몬태나에서 카진스키의 목표는 기술문명에 의지하지 않는 자유롭고 자립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트래킹, 식용식물 식별, 유기농업, 활을 이용한 사냥과 같은 기타 원시적인 생존 기술을 스스로 익혔다. 연 400달러 이하의 돈으로 생활했으며, 마을에 들어갈 때는 기어가 없고 오래된 자전거를 사용하고, 고전 작품을 읽기 위해 지역 도서관에 자주 방문했다. 카진스키는 야생생활 중 많은 양의 책을 도서관에서 읽었으며 개중에는 독일어와 스페인어로 된 원전도 있었다.
이윽고 부동산 개발을 목적으로 한 산업화와 산림 개발 등으로 인해 자신의 오두막 주변의 생태계가 파괴되어 생계를 위협받았고, 지속적으로 산림업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이로인해 반드시 산업사회에 복수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카진스키는 오두막에서 계속 칩거하며 무정부주의나 사보타주에 대한 책을 탐독하면서 사회에 대한 분노를 계속 키워갔고, 1978년부터는 사제 폭발물 제조법을 독학으로 익혀 산업화와 기술발전에 책임이 있는 기업가, 과학자들에게 우편물로 폭탄을 배달하면서 테러 행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3. 범행
3.1. 유나바머
카진스키가 노린 주된 목표는 대학 교수나 박사 등 지식인 계층과 항공사였고, 위력은 약한 편이었지만 폭발물들이 계속 부상자를 내고 항공기 운항에도 차질을 주자 FBI에서도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우편물의 발신인 확인이 되지 않던 상황이어서 해당 인물의 인적 사항도 알 수 없었고, FBI는 해당 테러리스트가 주로 대학교와 항공사에 폭발물을 보낸다는 것에 착안해 University와 Airline의 첫머리에 Bomber를 결합해서 '유나바머(Unabomber)' 라고 불렀다.
수사가 지지부진한 와중에도 계속 미국 각지에서는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미확인 폭발물에 의한 사고가 잇따랐다. 게다가 폭발물의 위력도 점점 강해져 피해자들이 실명이나 수족 절단 등을 당하는 중상을 입었고, 1985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1987년 솔트레이크시티 테러 이후 약 6년 동안은 유사 범죄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1993년부터 다시 폭탄 테러가 감행되기 시작했다.
카진스키는 이제 폭탄 우편물만 보내지 않고, 테러 대상에 오른 이들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는 등 한층 대담한 테러 행각을 시작했고, 1994년과 1995년에는 각각 PR 업계의 중역과 캘리포니아 산림 연맹의 회장이 폭발물 우편으로 잇따라 사망했다. 이렇게 해서 총 스물두 명의 중경상자와 세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테러가 일단 마무리 되었다. 물론 정말 끝난 건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테러 협박 편지의 대상에는 미국의 주요 정치권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는 안보에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그의 협박편지로 인해 시카고의 공항 전체가 1주일 이상 폐쇄되었으며 항공교통편이 붕괴되었다.
마지막 폭탄 테러 후인 1995년 9월, 그는 35,000글자와 232절로 이루어진 52페이지의 혁명 선언문, '산업 사회와 그 미래' 를 희생자의 가족들과 언론사에 익명으로 발송하였다.한국어 번역본 카진스키는 이 선언문에서 무분별한 산업화에 반대하는 대규모 세계 혁명을 주창하고, 이 선언문을 뉴욕 타임즈와 같은 일간지에 올리지 않는다면 자신의 테러를 멈출 수 없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 제안의 수용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였는데, 테러범과의 타협은 대외적으로 FBI의 수사능력 부족을 인정하는 꼴이었고, 이와 동시에 테러범의 승리와 미국 정부의 패배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 법무장관 자넷 리노와 FBI 국장 루이 프리의 동의하에 선언문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였으며 '공공 안전에 대한 우려와 범인의 추적이 목적'이라고 설명하였다.
3.2. 난항
유나바머의 범죄 행각은 개인적인 원한 관계에 의한 테러가 아니었고 미국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터지고 있던 터라 수사에 굉장한 어려움을 주었다. 게다가 웬만한 증거물도 남지 않은 폭발물 테러였고, 불발 사례도 16건 중 단 두 건뿐이었던 점에서 상당한 정확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폭발물 제조와 관련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아메리칸 항공 444편 폭탄테러 당시에는 폭탄을 공중에서 폭파하기 위해 고도계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그는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주워 폭탄을 만들었으며 원시적인 용광로에 쇠를 녹이기도 했다. 그리고 폭탄의 가장 단단한 부품에는 FC라는 자신의 이니셜을 남겼다.[8]
FBI는 최초 조사때 용의자가 낮은 지능(IQ 90 정도)에, 저학력이며, 항공사에서 블루칼라(정비공 계열)로 일해 폭발물 관련지식이 해박하고, 직장에서 해고당해서 증오심을 가지고 테러를 한 남성이라고 추정하였다. 그러나 실제 카진스키는 높은 IQ와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실험과 독서를 통해 폭발물 관련 지식을 가졌고, 원한이 아니라 신념적인 이유로 테러를 저질렀으며, 연구실력이 충분했음에도 스스로 교수직을 박차고 나왔다. FBI가 저학력의 블루칼라 출신이라는 잘못된 프로파일링을 고집한 것이 수사가 난항을 겪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9]
그는 폭탄에 어떠한 지문이나 DNA도 남기지 않았으며 일부러 추적이 어려운 오래된 우표를 사용했다. 수사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가짜 증거들을 첨가하기도 했으며, 이런 교란 작전은 매우 유효하게 먹혀들어서 FBI 내부에서도 수사방향이 천차만별이었다. 유나바머를 봤다는 제보전화는 2만통에 달했으며 자신이 유나바머를 볼 수 있는 투시능력자라는 인간들까지 등장했다.
3.3. 검거
유나바머의 테러 행위 후반기에 뭔가 결정적일 만한 단서를 제공한 인물이 나타났는데, 바로 동생인 데이비드 카진스키였다[10] . 데이비드는 1978년 이래로 형이 가족들과 일체의 연락을 끊고 지내고 있어서 형이 유력한 용의자였는지 어쨌는지도 몰랐지만, 1995년에 언론에 공개된 선언문 <산업사회와 그 미래>를 읽어보고는 형의 문체와 상당히 비슷하다며 FBI에 연락을 취했다.
FBI도 그동안 손가락만 빨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동안 진보한 수사 기법을 총동원해 주요 테러 지역이 시카고(일리노이)-솔트레이크 시티(유타 주)-샌프란시스코(캘리포니아) 축선에 집중되어 있는 점을 들어 유나바머가 이 축선에 해당하는 지역 출신이거나 그 지역에 장기간 거주하고 있는 인물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FBI는 데이비드가 제공한 형의 과거 논문이나 이런저런 글과 선언문을 언어학자까지 불러 정밀 대조한 결과,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유나바머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결론지었다.
카진스키가 유력한 용의자라고 단정한 FBI는 약 두 달 동안 해당 축선 상에서 그의 거처를 수색했고, 1996년 4월 3일에 몬태나 주 링컨 블랙풋 강가에서 마침내 검거에 성공했다. 수사관들은 카진스키의 너저분한 이동식 오두막에서 폭발물 제작에 사용한 도구와 재료들, 발송 채비를 마친 완제품 폭발물 외에 선언문의 타이프 원문과 40,000페이지에 달하는 자필 원고[11] 를 유력한 증거물로 압수했다.
유나바머 검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동생 데이비드 카진스키는 FBI가 내건 현상금 100만 달러를 받았지만 현상금 대부분은 유가족들에게 나눠주었고, 형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형만은 면해줄 것을 청하며 대신 용서를 구했다.
3.4. 심리 검사
체포 이후 1996년 5월 1일에 실행된 심리검사에서 53세인 테드 카진스키의 웩슬러 지능검사(WAIS-R) 결과는 표준편차 15 기준 136이었다.# 카진스키의 언어성 지능은 138, 동작성 지능은 124를 기록했다.[12] 기억지능 검사인 WMS-R에서는 Visual Paired Associates Test가 평균정도 수치로 비교적 낮았고 나머지는 매우 우수했다.
카진스키의 심리평가를 주관한 Sally Johnson은 카진스키가 극도로 내향적이고 우울증 수치가 높고 DSM-IV에 정의된 편집성 성격장애가 있으며 타인이 주는 수치나 조롱에 대단히 민감하다고 밝혔다. Sally의 진단에 따르면 카진스키는 망상장애도 있는데 충분한 근거없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착취하거나 속이고 있다고 의심하며 사회적 억제, 현대 산업 발달에 대한 심각한 과민반응이 있었다. 또한 이성과 연애관계에 대한 갈망이 있었으나 인생 내내 성적 친밀관계를 이루지 못했고 그에 따른 실망감과 자기 혐오가 이성과 타인에 대한 증오로 변해 이는 살인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정신병적 문제는 카진스키의 업무, 대인, 자기관리에서 문제를 만들었다. 그의 반사회적 성격 특성은 타인을 상처입히고 권리를 빼앗는 것에 매우 무관심하며 이는 범법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카진스키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죄책감을 방어기제를 통해 거의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검사결과를 기각했다. 설령 카진스키에게 이러한 정신병리적 문제가 있어도, 재판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이해와 변론에 대한 취합적 선택 및 의사결정 능력이 충분히 있으며 재판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당시 재판을 맡았던 갈랜드 뷰렐 판사는 이와 같이 말했다.
카진스키를 정신이상자로 몰아가려는 시도는 당시에도 대중으로부터 빈축을 샀다.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망상장애자라면, 그럼 18년간 망상장애자에게 농락당한 FBI는 뭐가 되냐는 것이다.I find him to be lucid, calm. He presents himself in an intelligent manner. In my opinion, he has a keen understanding of the issues. He has already seemed focused on the issues in his contact with me. His mannerisms and his eye contact have been appropriate. I know there’s a conflict in the medical evidence as to whether his conduct, at least in the past, has been controlled by any or some mental ailment, but I’ve seen nothing during my contact with him that appears to be a manifestation of any such ailment. If anything is present, I cannot detect it.
제가 보기에 그는 침착하고 명료합니다. 그는 자신을 지성적으로 표현합니다. 제 의견으로는, 그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안을 날카롭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와 만났을 때, 그는 재판 내용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행동과 시선처리는 적절했습니다. 그가 과거에 어떤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의학적 증거가 있다는 사실은 알겠으나, 제가 그와 만나는 동안에는 어떠한 정신질환의 징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신질환이 있다고해도, 저에겐 보이지 않습니다.
3.5. 재판
카진스키는 자신의 오두막을 수색할 때 발부된 수색영장의 법리적 근거 부족을 바탕으로 증거를 무효화하기 위한 공격논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변호사들은 가족들에게 대중들 앞에서 그의 정신이 비정상임을 어필시키도록 지시하고, 그를 심각한 조현병 환자로 포장해 사형 대신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사법거래까지도 시도되었다.
이런 움직임에 카진스키는 몹시 불쾌해했다. '범죄에 대한 사리구분이 불가능한 정신분열자'라는 판정이 유나바머로서의 자신의 업적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묻지 않고 정신분열자로 어필한 변호인단을 스스로 해고하려 했다. 그는 두번째 변호사를 고용해서 사법거래를 취소하려고 했지만 판사에 의해 기각되었고, 이에 감옥에서 자살을 시도했으나 의료진의 치료로 죽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정신분열자가 되는 대신 유죄를 인정하는 사법거래를 선택했고 덕분에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받았다.
3.6. 그 후
이후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수퍼맥스급 교도소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2020년 기준으로 계속해서 집필 활동을 하며 복역 중이다.
4. 사상
미시간 대학교 철학과 교수 데이비드 스커비나(David Skrbina)는 테드 카진스키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 인간은 낮은 기술 환경에서 수렵채집인으로써 진화했다. 수렵채집인의 삶의 방식이 인간에게 생물학적으로 가장 적합한 것이다.
- 현대의 기술 사회는 인간이 적응한 환경과는 급진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환경에게 전례없이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 기술로 인한 스트레스는 시간이 갈 수록 점점 심해져 결국에 인간은 유전공학, 나노공학 기술을 통해 기술 체제의 필요에 완벽하게 부응하는 방향으로 조작될 것이다. 이런 상황은 혐오스럽고, 자연에게는 심각한 재앙이고, 끔찍하게 비인간적이다.
- 이러한 미래를 피하기 위해 기술 체제를 수정하거나 개혁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 따라서, 기술 체제는 끝장나야만 한다.
4.1. 권력 과정(Power Process)과 대리 활동(Surrogate Activity)
권력 과정(Power Process)과 대리 활동(Surrogate Activity)은 카진스키의 주장의 근간으로 볼 수 있다.
카진스키가 말하는 권력 과정의 '권력'은 타인에게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의미한다.
카진스키는 권력 과정을 뚜렷한 세 요소인 '목표 설정', '노력', '목표 달성'과 뚜렷하지는 않은 '자율성'의 4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 권력과정이 상실되거나 좌절되면 사람은 여러가지 정신적인 문제를 앓게 된다.
고도로 발전한 기술 문명은 인간이 권력 과정을 통해 충족감을 얻는 것을 방해하여 현대인의 정신적인 문제점이 태어났다고 보았다. 수렵채집인들은 30명 정도의 소규모 그룹을 만들어 활동했으며, 이들은 어디에서 살지,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어떻게 방어할지를 스스로 결정했으며, 이를 통해 권력 과정을 통한 충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고도의 기술 문명 하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대부분의 중대한 결정들이 대기업 또는 정부에 의해 내려진다. 이런 문제는 민주주의로도 해결 할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의 의사결정은 결국 다수결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다수결 앞에서 개개인의 의견의 영향력은 미미하므로, 권력과정을 충족시킬 수 없다. 누군가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개인의 결정권을 보장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지만 이 역시 불가능하다. 현대인이 누리는 전기, 자동차, 인터넷, 휴대폰, 컴퓨터 등의 문명의 이기들은 대규모의 인력이 조직적으로 행동해야만 생산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개개인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설령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인의 결정권을 보장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자율성을 침해당하기 때문에 권력 과정을 충족시킬 수 없다.
권력과정이 상실되거나 좌절된다 해도 사람은 '대리 활동'(Surrogate Activity)을 통해 정신적인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대리활동이란 권력과정(목표 설정, 노력, 목표달성)을 흉내내는 활동이다. 누군가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서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데, 그 목표가 생존과 무관하다면 그 사람은 대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카진스키는 중세 유럽의 영주들의 사냥, 히로히토 천황의 해양생물학 연구를 대표적인 대리활동의 사례로 제시했다. 중세 유럽의 영주들은 굳이 직접 사냥을 하지 않아도 원하는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냥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것은 모든 것이 충족된 지루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리활동이었던 것이다. 히로히토 천황 역시 굳이 해양생물학을 연구하지 않아도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런 삶에서는 만족감을 얻을 수 없었으므로 해양생물학 연구라는 대리활동을 한 것이다.
대리활동의 양상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일생을 예술, 과학, 스포츠에 매진하고, 누군가는 더 많은 돈을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데에 매진하고, 누군가는 정치활동에 매진한다.
인간은 대리활동을 통해 일시적인 즐거움을 얻지만, 이는 여전히 문제를 남긴다. 상실한 권력 과정에 대한 박탈감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대리활동에서 만족감을 느끼기도 힘들고, 끝을 모르고 파고들기 때문이다.
4.2. 산업사회와 그 미래
카진스키는 첫 문장에서 '인류에게 있어 산업 혁명과 그 결과는 재앙이었다'라고 말한다. 카진스키는 기술이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었으며 광범위한 심리적 고통을 초래했다고 말한다.
그는 기술 진보로 인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위적인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대리 활동(surrogate activities)"이라고 부르는 활동에 종사하는 데 시간을 소비하게 되어 제대로 된 권력활동과 만족을 해낼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기술적 진보가 결국 광범위한 인간 유전 공학으로 이어질 것이며, 인간이 기술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카진스키는 기술의 진보를 인간이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지배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13] 기술의 나쁜점과 좋은점은 분리될 수 없으며 설령 기술이 악영향을 만들더라도 인간은 수동적으로 복종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은 산업사회의 자연적인 산물"로 "사회 시스템은 인간의 행동을 규제해야만 기능을 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한다. 이러한 구조의 개혁은 불가능하고 오로지 파괴와 원시로의 복귀만이 해답일 뿐이다.
카진스키는 현생 인류가 갈림길에 놓여있다고 설명한다. 현재 시스템은 아직 인간 행동의 완전한 통제를 달성하지 못했고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절박한 투쟁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시스템이 빠른 시일 내에 인간 행동을 통제할 효과적인 수단을 찾아낸다면, 시스템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스템은 붕괴한다." 40년-100년 내에 결과가 나올 것이며 인류가 이 시간안에 시스템을 붕괴시키지 못한다면 기계가 지배하는 세계의 영원한 노예로의 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따라서 카진스키는 산업 사회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과제는 "사회적 스트레스와 불안정성"을 촉진시키고 "자연에 대한 이상"을 제공하는 "기술에 반대하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명시했다. 즉 산업 사회가 아직까지는 완전히, 100% 인간을 통제하지는 못하는 지금, 산업혁명이 가져온 기술과 그로 말미암은 사회적구조를 혁파(파괴)함으로써 인간이 본연적으로 누리던 권력과정을 회복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반산업혁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4.3. 정치적 입장
그는 보수주의자들을 바보라고 평가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이미 썩어 문드러진 전통적 가치관에 집착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국가의 힘을 부강하게 만들어줄 기술의 발전을 열광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과 경제 성장은 필연적으로 전통적 가치관들을 붕괴시킨다는 것을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산업사회와 그 미래 전체에서 카진스키는 좌파를 강도 높게 경멸한다. 그는 좌파가 "열등감"을 갖고 있으며. "지나치게 사회화"된 존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카진스키가 보기에 좌파들은 패배주의와 마조히즘에 빠져 있으며 좌파들의 행동과 태도의 근간에 있는 열등감이 집단주의와 다양한 문제점을 낳는다. 지나친 사회화로 인해 인간의 자유가 훼손된게 현대 사회의 문제의 근원이라 여기는 카진스키에게 "사회주의자, 집단주의자, 정치적 올바름, 페미니스트, 게이, 장애 운동가, 동물 권리 운동가" 등이 속하여 더 많은 도덕률과 집단주의에 대한 압박을 주는 좌파는 강도 높은 비판 대상이 된다. 다음 9개의 구절은 카진스키의 선언문 중 일부다.
18.현대의 좌파 철학자들은 이성, 과학, 객관적 현실을 포기하고 모든 것의 문화적 상대성을 주장한다. 물론 누구나 과학적 지식의 토대에 대해, 그리고 도대체 객관적 현실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좌파 철학자들이 지식의 토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냉철한 논리학자들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진리와 현실을 공격할 때 그들은 감정적으로 심한 흥분 상태에 빠져 있다. 그들이 이들 개념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들의 심리적 욕구 때문이다. 그들의 공격은 그들이 지닌 적대감의 배출구이며, 공격이 성공할 때 그들의 권력 욕망도 충족된다. 더욱이 좌파들은 과학과 합리성을 증오한다. 과학과 합리성에 의해 참된 신념들(즉 성공한 것, 우월한 것)과 거짓 신념(즉 실패한 것, 열등한 것)이 구분되기 때문이다. 좌파의 열등감은 점점 깊어져 어떤 것을 성공한 것이나 우월한 것으로, 그리고 나머지를 실패한 것이나 열등한 것으로 구분하는 것조차도 참을 수 없게 된다. 많은 좌파들이 정신 질환이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IQ측정의 유용성을 거부하는 것에도 역시 그 같은 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다. 좌파들은 인간이 능력이나 행동을 유전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그런 설명이 어떤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우월하게 또는 열등하게 보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좌파들은 개인의 능력이나 무능력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설명을 선호한다. 따라서 만약 어떤 개인이 '열등'하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잘못이다. 사회가 그를 올바르게 양육하지 않은 것이다
19. 좌파는 열등감 때문에 허풍선이, 이기주의자, 건달 두목, 자화자찬파, 무자비한 경쟁자가 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그런 유형의 사람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자신에게 별로 힘이 없음을 알고 자부심도 약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강한 자가 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스스로를 강한 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그런 불쾌한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좌파는 거기에서 한참을 더 나간다. 그의 열등감은 워낙 깊숙이 뿌리박혀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강하고 가치 있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여기서 좌파의 집단주의가 생겨난다. 그는 자신을 동일화시킬 수 있는 거대 조직, 또는 대규모 사회 운동의 일원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강하다고 느낄 수 있다.
20. 좌파의 전략이 지닌 마조히즘적 성향에 주목하라. 좌파들은 자동차 앞에 드러누움으로써 저항하는가 하면, 자신들을 학대하도록 경찰이나 인종 차별주의자를 일부러 자극한다. 그런 전략이 때로는 효과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좌파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그것이 '좋아서' 그런 마조히즘적 전략을 사용한다. 자기 증오는 좌파의 속성 중 하나일 뿐이다.
21. 좌파들은 자신들의 운동이 동정심 또는 윤리적 원칙이라는 동기에 의해 촉발되었다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나치게 사회화된 좌파의 운동에서 윤리적 원칙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동정심과 윤리적 원칙은 결코 좌파 운동의 중심 동기가 아니다. 좌파의 행동에서는 호전성이 너무나 뚜렷이 드러난다. 권력 욕망 역시 그렇다. 더 나아가 좌파의 행동에서 상당 부분은, 좌파들이 도우려 한다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계산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흑인들의 차별 해소(affirmative) 운동이 흑인을 위해 좋은 것이라고 믿는다면, 호전적이고 교조적인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운동을 선동하는 것은 무슨 자가당착인가? 차별 해소 운동이 성과를 거두려면, 그 운동이 자신들을 역차별하고 있다고 느끼는 백인들로부터 그저 빈말로라도, 또 상징적으로나마 양보를 얻어낼 수 있도록 좀더 외교적이고 타협적인 접근 방법을 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좌파 운동가들은 그런 접근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 그런 접근 방법으로는 자신들의 감정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진정한 목표는 흑인을 돕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인종 문제는 좌파가 자신들의 적대감과 좌절된 권력 욕구를 표출하기 위한 좋은 핑계거리를 제공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좌파는 실제로는 오히려 흑인들에게 피해를 입힌다. 운동가들이 다수 백인에 대해 보이는 적대적 태도로 인해 인종간의 증오가 증폭되기 때문이다.
22. 만일 우리 사회에 문제가 전혀 없다면, 좌파들은 분쟁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핑계거리를 얻기 위해 문제들을 발명해 낼 것이다.
213. 반항에의 욕구와 운동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좌파나 그와 비슷한 심리적 유형의 사람들은 애당초 좌파의 목표와 소속을 공유하지 않은 저항 운동가에게 별로 호감을 갖지 않는다. 좌파 성향의 사람들은 비좌파 운동에 들어와도 쉽게 운동을 좌파 운동으로 변질시켜 버린다. 그러면서 운동의 원래 목표까지도 좌파의 목표로 대체해 버리거나 아니면 왜곡시켜 버린다.
216. 일부 좌파는 테크놀로지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테크놀로지에 저항하는 것은 그들이 아웃사이더일 경우에 한해서이며, 테크놀로지 체제가 비좌파에 의해 통제되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만약 좌파가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그래서 좌파가 테크놀로지 체제를 언제든 쓸 수 있는 도구로 만든다면, 그들은 그 때부터 열광적으로 테크놀로지를 이용하고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지원할 것이다. 좌파주의가 역사에서 끝없이 반복해 왔던 그 패턴 그대로의 행동이다. 러시아 볼셰비키가 아웃사이더였을 때는 검열과 비밀 경찰에 대해 격렬히 저항했고, 소수 민족의 자율권을 외쳤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권력이 넘어오자마자 볼셰비키는 더 철저한 검열을 실시했고 짜르 치하에서의 비밀 경찰보다도 잔인한 비밀 경찰을 창설했다. 그리고 소수 민족에 대단 억압도 짜르 시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미국의 경우, 몇십 년 전 대학에서 좌파가 소수였을 때, 좌파 교수들은 열렬히 학문의 자유를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좌파가 주도권을 쥔 대학들에서 좌파들은 나머지 모든 사람으로부터 학문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이것이 바로 '정치적으로 옳은' 운동이다) 똑같은 일이 좌파와 테크놀로지 사이에도 벌어질 것이다. 일단 테크놀로지를 자기 통제하에 넣고 나면, 좌파는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나머지 모든 사람을 억압할 것이다.
217.과거의 혁명에서 권력에 눈이 먼 좌파들은 처음에는 진보적 성향의 좌파는 물론 비좌파 혁명가들에게도 협력했다. 그리고나서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양쪽을 모두 배반했다. 프랑스 혁명에서는 로베스피에르가 그랬고, 러시아 혁명에선 볼셰비키가 그랬다. 1938년 스페인 내란에선 공산주의자들이, 쿠바에선 카스트로와 그 일당이 그랬다. 좌파의 지난 역사를 두고 볼 때, 오늘의 비좌파 혁명가들이 좌파와 협력하는 것은 참으로 멍청한 짓이다.
카진스키는 "자연을 찬양하고 기술에 반대하는 운동은 단호하게 반 좌익적 태도를 취해야하며 좌파와의 모든 협력을 피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좌파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순수한 자연, 인간자유, 그리고 현대 테크놀로지의 제거와는 공존할 수 없는데, 좌파는 집단주의적이며 전 세계(자연과 인류 모두를) 하나의 '좌파적 통합체'로 묶으려 한다. 이는 조직 사회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삶을 관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기 위해선 첨단 테크놀로지가 필요하다. "고속 수송 수단과 통신망이 없이는 통합된 세계를 만들 수 없다. 정교한 심리적 기술 없이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 테크놀로지의 기초 없이는 '계획적 사회'를 만들 수 없다. 무엇보다도 좌파를 끌고 가는 동력은 바로 권력에 대한 욕구이다. 그리고 좌파들은 대규모 운동이나 대규모 조직과의 동일화를 통해 집단주의적 논리에서 권력을 추구한다." 그의 판단하에서, 좌파는 결코 테크놀로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집단주의적 권력의 원천으로서 테크놀로지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219. 좌파는 전체주의적 세력이다. 좌파가 일단 권력을 장악하면, 곧바로 모든 사적 영역을 침범해 들어가며 모든 사상을 좌파의 틀에 맞춰 뜯어고친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좌파가 지닌 사이비 종교적 성격 때문이다. 좌파에 어긋나는 모든 것은 '죄악'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좌파가 전체주의적 세력이 되는 것은 좌파들의 권력 욕망 때문이라는 점이다. 좌파는 사회 운동과의 동일화를 통해 권력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며, 운동의 목표를 추구하고 달성하도륵 협력함으로써 권력 과정을 통과하려 한다. 하지만 운동이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에도 좌파는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그의 운동이 대리 만족을 위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즉 좌파의 진정한 동기는 좌파의 표면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진정한 동기는 사회적 목표를 위해 투쟁하고 목표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그가 얻게 되는 권력의 느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좌파는 자신이 이미 달성한 목표로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권력 과정에 대한 욕구로 인해 좌파는 항상 새로운 목표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좌파는 소수 민족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기를 원한다. 일단 그 목표가 이루어지면 이번엔 소수 민족의 통계적인 평등을 이룩해 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 때까지 변함없이 여전히 소수 민족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을 경우에는 그사람을 재교육시켜야 한다. 소수 민족만으로는 층분치 않다. 누구도 동성애자와 장애자, 뚱뚱한 사람, 노인, 못생긴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대상은 끝없이 이어진다. 대중에게 흡연의 위험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담뱃갑마다 경고문을 찍어야 한다. 이어서 담배 광고를 금지하지는 못해도 제한해야 한다. 담배가 불법이 되기 전에는 운동가에게 만족은 결코 있을 수 없고, 담배가 불법이 되고 나면 이번엔 술이, 다음 번엔 인스턴트 음식이 표적이 된다. 운동가들은 어린이 학대가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 잘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엉덩이 때리기까지 금지하고 싶어한다. 엉덩이 때리기를 금지하고 나면 그 때는 또 그들이 보기에 건전하지 않은 어떤 것을 금지하려 들 것이다. 금지 대상품목은 끝없이 이어진다. 어린이 양육법에 관한 모든 것을 통제하기 전까지는 그들은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사회 문제로 넘어갈 것이다.
4.4. 어록
카진스키는 기술적 특이점의 등장을 예견하고 기술문명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며 인류가 노예가 될 날이 머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폭탄테러를 시작한 1978년은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2016년으로부터 무려 38년 전으로, 당시는 RAM의 용량이 겨우 16KB에 불과한 시기임에도 불구 기술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40여년 후인 현대학자들과 매우 유사하다는 특징이 있다.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조건에 처하게하고 불행을 없애는 약물을 제공하는 사회를 상상해보라. 공상 과학이 아니라 실제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일이다. 현대 사회는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조건을 제거하는 대신 항우울제를 제공한다. 사실상 항우울제의 존재는 참을 수 없는 사회적인 상태를 용인할 수 있도록 개인의 마음을 수정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기계가 스스로 모든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전혀 예측할 길이 없다. 그런 기계가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짐작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다만 인류의 운명이 기계의 자비심에 달려 있다는 것뿐이다. 인류가 기계에게 모든 힘을 넘겨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류가 자발적으로 기계에 힘을 넘겨주거나 기계가 자신의 의지로 권력을 장악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인류가 쉽사리 기계에 종속된 지위로 떨어질 것이며, 결국 기계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리라는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따라서 사회 문제들도 점점 더 복잡해짐에 따라, 그리고 기계가 점점 더 지능화함에 따라,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결정권을 기계에게 넘겨줄 것이다. 단순히 기계에 의한 결정이 사람에 의한 결정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마침내는 체제를 계속 돌아가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결정이 너무나 복잡해져서 인간의 지능으로는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는 그런 단계가 도래할 것이다. 그 단계에서는 기계가 통제권을 장악한다. 이제 인간은 기계를 꺼 버릴 수조차 없다. 기계에 철저히 종속된 인간이 기계를 끈다는 것은 곧 자살 행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간이 기계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 경우, 보통 사람도 자동차나 PC 같은 개인 소유 기계는 통제할 수 있겠지만, 대형 기계 시스템에 대한 통제권은 극소수 엘리트의 손에 쥐어지게 될 것이다. 오늘날과 비슷한 상황이지만, 거기엔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진보된 기술 덕분에 엘리트는 대중에 대해 더 강화된 통제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노동이 불필요해진 탓에 대중은 불필요한 존재, 즉 체제에 떠념겨진 쓸모 없는 짐더미가 되어 버린다. 무자비한 엘리트라면, 간단히 엄청난 인구를 죽여 없앨지도 모른다. 인간적인 엘리트라면 프로파간다나 심리적, 생물학적 기술을 활용해 출산율을 줄이는 식으로 대부분의 인구를 멸종에 이르게 한 뒤, 남은 세상을 독차지할 것이다. 만약 엘리트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마음 약한 리버럴들이라면 그들은 나머지 인류의 선한 목자 역할을 하겠다고 나설 것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의 신체적 욕구가 충족되고 있는지, 모든 아이들이 심리학적으로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 모든 사람이 유익한 취미 생활로 바쁘게 지내고 있는지,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제대로 '문제'를 고치는 '치료'를 받고 있는지 꼼꼼히 챙길 것이다. 물론 삶은 너무나 무의미해졌으므로, 사람들은 권력 과정에 대한 욕구를 제거하거나, 안전한 취미로 권력 욕망을 '승화'시킬 수 있도록 생물학적으로건 심리적으로건 공학적 처치를 받아야 한다. 이들 공학적 처치를 받은 사람들은 해당 사회안에서 행복하긴 하겠지만 결코 자유롭지는 않다. 그들은 가축의 신분으로 전락한 것이다.
여러 가능성들이 서로 결합되는 시나리오도 머리 속에 그려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계가 실질적인 노동을 전부 떠맡는 대신, 인간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노동에 종사하면서도 바쁘게 뛰어다녀야 하는 상황이 생겨말 수 있다. 서비스 산업의 엄청난 발전에 따라 인간을 위한 직업이 계속 생겨나리라는 주장은 이제까지 줄곧 제기되어 왔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서로의 구두를 닦아주며, 서로를 택시에 태워 여관 주변을 달리며, 서로에게 팔기 위해 수공예품을 만들며, 서로의 테이블에서 음식 주문을 기다리며,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인류가 그런 길로 간다니, 얼마나 경멸스러운 일인가. 그런 아무런 의미 없는 일에 허겁지겁 하면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낄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생물학적 또는 심리적인 공학적 처치를 통해 그런 생활 양식에 적합하게 자신을 짜맞추지 않는 한, 사람들은 (마약, 범죄, '광신', 증오 집단 등의) 위험한 배출구를 찾게 될 것이다.
현대의 인간은 규칙과 규제의 그물에 사로잡혀 있고, 그의 운명은 그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그로부터 떨어진 사람들의 행동에 달려있다. 이것은 우연적이거나 거만한 관료주의자의 전제의 결과가 아니다. 모든 기술적으로 진보된 사회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필요하고 불가피하다. 시스템은 제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행동을 빈틈없이 규제해야만 한다. 작업장에서는 인간은 자신이 지시받은 일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산은 혼란으로 빠지게 마련이다. 관료제도는 엄격한 규칙에 따라 시행되어야 한다. 하위 관료에 대한 어떠한 실제적인 재량권의 부여도 시스템을 망치거나 각 관료들이 자신의 재량으로 시행한 방법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불공정에 대한 문책으로 이어진다. 우리들의 자유에 대한 어떤 제한들은 제거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거대한 조직에 의한 우리들의 삶에 대한 규제는 산업-기술 사회의 기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결과는 보통 사람들의 측면에서는 일종의 무력함이다. 물론, 공식적인 규제는 사람들이 시스템이 자신들에게 필요로 하는 것을 하고 싶어하도록 만드는 심리적인 도구들로 급속하게 대체될 수도 있다.
시스템은 인간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대신 인간의 행동이 시스템의 요구에 맞춰 수정되어야 한다. 이것은 기술적인 시스템을 유도하는 것 처럼 보이는 정치적인 혹은 기술적인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하다. 시스템은 이데올로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술적인 필요에 의해 유도되기 때문에 그것은 기술의 잘못이다. 물론 시스템은 많은 인간의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것이 그렇게 하는것이 시스템에 유익한 한에서는 그렇게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스템의 요구이지 인간의 요구가 아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굶주린다면 시스템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에 시스템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공급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침체되어 빠져있거나 반항적이라면 시스템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에, 쉽사리 가능할 때 마다, 시스템은 사람들의 심리적인 요구를 봐준다. 그러나, 시스템은, 합당한, 학고한, 실용적인 이유에 의해, 사람들이 그들의 행위를 시스템의 요구에 맞추도록 끊임없이 압력을 가해야한다. 너무 많은 쓰레기가 쌓이는가? 정부, 매체, 교육 제도, 환경주의자, 모두들 우리에게 재활용에 관한 대량의 선전을 퍼뜨리고 있다. 더 많은 기술인이 필요한가? 한떼의 목소리들이 어린이들에게 과학을 공부하도록 권한다. 아무도 청년들에게 그들의 많은 시간을 그들 대부분이 싫어하는 주제를 공부하는데 보내도록 강요하는 것이 비인간적인 것인지를 물어보려 하지 않는다. 숙련된 노동자가 기술적 진보에 의해 직장에서 쫓겨나서 '재교육'을 받아야 하게 될때도, 아무도 그들이 그런식으로 내몰리는 것이 잔인하지 않는가를 물어보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기술적인 필요성과 합당한 이유에 굴복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만약 인간의 요구가 기술적인 요구보다 앞서 놓여진다면 경제 문제들, 실업, 물자 부족 및 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 건강'의 개념은 개인이 사회의 요구에 발맞추어 행동하고 스트레스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대개 정의되고 있다.
기술과 자유사이의 지속적인 타협을 유지하는 것은, 기술이 훨씬 더 강력한 사회적 권력이고 반복되는 협상을 통해 계속해서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최초에 같은 크기의 땅을 소유하고 있던, 하지만 한쪽이 다른쪽보다 힘이 센, 두 이웃의 경우를 상상해보자. 더 힘이 센 쪽이 상대의 땅의 일부분을 요구한다. 약한쪽은 거절한다. 힘이 센 쪽이 말한다. "좋소, 타협을 합시다. 내가 요구한 것의 절반을 주시오." 약한쪽은 굴복하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얼마후에, 힘이 더 센쪽이 땅의 다른 부분을 요구하고, 다시 타협이 이루어지고, 계속해서 이런 식이다. 약한쪽에 대해 일련의 타협을 강요함으로써, 힘이 더 센쪽은 결국은 그의 모든 땅을 얻는다. 기술과 자유사이의 갈등에서도 그러하다.
왜 기술이 자유를 향한 열망보다 더 강력한 사회적 권력인지 설명해 보이겠다. 자유를 위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기술상의 진보는 종종 자유를 위협하는 것으로 밝혀지며 나중에 가서는 종종 그것을 매우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으로 밝혀진다. 예를 들어, 차량 운송에 대해 생각해 보자. 도보자는 전에는 그가 원하는 어디든, 어떤 교통 법규도 살피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갈 수 있었고 기술적인 지원시스템에 독립적이었다. 자동차가 소개되었을 때 그것들은 인간의 자유를 증진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들은 도보자로 부터 어떠한 자유도 박탈하지 않았으며,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자동차를 가질 필요가 없었고, 자동차를 사기로 선택한 사람은 도보자보다 훨씬 빨리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차량 운송의 도입은 곧 사회를 인간의 이동의 자유를 상당히 제한하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자동차가 매우 많아졌을 때, 그것들의 사용을 광범위하게 규제할 필요가 생겼다. 특히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서는, 차를 몰고서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 자신의 페이스대로 갈 수는 없다. 그의 움직임은 교통의 흐름과 여러가지 교통법규에 의해 좌우된다. 운전자는 여러가지 의무에 묶여 있다. 면허 취득, 운행 테스트, 갱신 등록, 보험, 안전에 필요한 유지, 월부 자동차 할부금. 게다가, 차량 운송수단의 사용은 더이상 선택적인 것이 아니다. 차량 운송수단의 도입 이후로 도시 배치는 대다수의 사람이 더이상 그들의 직장, 쇼핑지역과 여가선용지역으로 부터 걸어서 갈 수 있는 지역에 살지 않도록, 그래서 그들이 교통을 위해 자동차에 의존해야만 하도록 바뀌었다. 혹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야만 하는데, 이 경우에는 그들은 자가용을 몰때보다 그들 자신의 이동에 대해 훨씬 더 적은 통제력을 가지게 된다. 도보자의 자유또한 이제는 매우 제한된다. 도시에서는 그는 반복해서 멈추고는 자동차 통행을 위주로 설계된 교통 신호를 기다려야 한다. 지방에서는 자동차 통행이 고속도로를 따라 걷는 것을 위험하고 불쾌하게 만든다. 기술의 새로운 요소가 그가 선택하는 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는 것으로 도입되었을 때, 그것은 영원히 선택적인 것으로 남아있지 않는다. 많은 경우에, 새로운 기술은, 사람들이 결국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강요하는 쪽으로 사회를 바꾼다.
단락 125에서 우리는 일련의 타협을 강요함으로써 모든 땅을 뺏어가는 힘센 이웃에 의해 궁핍한 상태에 있는 약한 이웃의 비유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제 힘센 이웃이 병들어서 그가 자신을 방어할 수 없다고 가정해 보자. 약한 이웃은 힘센 이웃에게 그의 땅을 돌려줄 것을 강요하거나 그를 죽일 수도 있다. 만약 그가 강자가 살아남도록 하고 단지 그의 땅만 되돌려 줄 것을 강요한다면 그는 바보이다. 왜냐하면 강자가 회복하면 그는 다시 모든 땅을 그의 것으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약한자의 유일한 현명한 선택은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을때 강자를 죽이는 것이다. 같은 방법으로, 산업 시스템이 병들어 있을때 우리는 그것을 파괴하여야 한다. 만약 우리가 그것과 타협을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질병으로부터 회복하도록 한다면, 그것은 결국에는 우리의 모든 자유를 없앨 것이다.
4.5. 평가
미시간 대학교 철학 교수인 데이비드 스커비나(David Skrbina)는 노자, 플라톤, 루소, 사무엘 버틀러[14]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조지 오웰, 그리고 자크 엘륄(Jacques Ellul)[15] 과 같은 앞선 세대의 철학자들이 이미 카진스키에 앞서 비슷한 주장을 한 바가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카진스키 외에도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이 여럿 있다는 사실은 카진스키의 주장을 약화시키는게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고 말했다. 그는 카진스키의 사상과 관련한 몇 가지 에세이를 발표했다. 그 중 하나는 '우리 시대를 위한 혁명가(한글번역)'이다. 또한 2000년대 초반에 카진스키와 200통 가량의 편지를 통해 기술 문명의 미래에 대해 논했으며, 이를 엮어 '기술의 노예(Technological Slavery)'를 카진스키와 함께 공동출판하였다.
잡지 The Atlantic에서 앨스톤 체이스(Alston Chase)는 "산업 사회와 그 미래"에 대해 1995년도의 많은 지식인들이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체이스 자신은 이 글이 "천재도 미치광이도 아닌 사람의 글"이라고 주장했다. 카진스키가 가진 기술 문명의 방향에 대한 비관주의와 현대 세계에 대한 거부는 여느 미국 고등 교육 계층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는 것이다.[16]
선언문에서 언급된 UCLA의 제임스 윌슨 교수는 더 뉴요커 지에서 "산업 사회와 그 미래"는 신중한 추론과 치밀한 논리로 쓰여진 논문이라고 평가했다. "만약 그것을 미친 사람의 작품으로 치부한다면, 장 자크 루소, 토마스 페인, 칼 마르크스같은 정치철학자들은 거의 제정신이 아닙니다."
The Ecologist지의 부국장 폴 킹스노스(Paul Kingsnorth)는 오리온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카진스키의 주장을 "걱정스러울 정도로 설득력 있다"며 "내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강준만이 펴냈던 비정기 시사인문지 <인물과 사상>[17] 에서도 카진스키에 관한 컬럼이 투고된 바가 있다.
5. 그 외
그는 무려 17년이나 미국정부의 수사망을 회피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하지만 협박 편지나 선언문 등의 글로 자신의 입장을 당당히 피력하는 등의 행각이 덜미를 잡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자기 동생의 제보로 검거당했다. 유나바머의 수사와 체포 과정에서 FBI가 투입한 자금은 무려 '''5000만 달러'''에 달했고, 그때까지 미국 역사상 최고액의 수사비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검거 과정보다 더 논란이 된 것은 카진스키의 인생 역정과 테러 사이의 상관관계였는데, 한때 천재 수학자로 불리던 중산층 출신의 인재가 어떻게 해서 악질 테러범이 되었느냐에 대한 심리학 논문도 검거 전후로 엄청나게 발표되었다.
작가 존 저잔(John Zerzan)은 에세이 Whose Unabomber?#에서 카진스키의 우편폭발물은 민간인 피해를 입힐 수도 있었으므로 그에 대해선 비판했지만, 그의 테러 동기 자체는 정의로웠다고 평가했다.
카진스키의 테러 행각은 '강력범죄자는 교육 수준이 낮고 가정 폭력이 빈번한 저소득층 가정에서 발생한다'는 통념을 깬 사례가 되었다. 동시에 유아나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 지식의 기계적인 전달보다 인성이나 심리학을 통한 접근이 더 세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교육계의 책임도 제기되었다.[18] 반대로 카진스키가 저지른 범죄는 현대 산업 사회가 저지르는 폭력에 비하면 보잘 것 없으며, 카진스키의 폭력은 현대 산업 사회의 만행을 멈추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정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위에서 언급된 존 저잔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녹색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는 카진스키의 폭탄테러 대상자들이 무차별적인 벌목과 인류를 위협하는 컴퓨터과학, 유전공학의 발전에 책임이 있는 종 배반자(Species Traitor)#였다고 주장하며 칭송하는 여론이 강하다.
아나코 원시주의 잡지 Green Anarchy는 테드 카진스키를 포로라고 평했다.#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Steven David Levitt)과 뉴욕 타임스의 기자 스티븐 더브너(Stephen J. Dubner)가 함께 쓴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은 에필로그 부분에서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간 두 사람을 비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사람은 백인으로서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 수학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이면서 하버드에 조기 입학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흑인으로서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으며, 10대 때 폭력조직에 소속되기도 하는 등 불우한 삶을 살았다. 에필로그의 마지막에 가면 두 사람의 정체를 알려주는데, 전자는 바로 카진스키이고, 후자는 롤랜드 프라이어(Roland G. Fryer Jr.)이다. 롤랜드 프라이어는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흑인 사회의 빈곤과 교육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2015년 존 클라크 메달 수상자이다.
카진스키는 교도소 복역 중에도 계속 저술 활동을 하고 있고, 심지어 책이 옥중 출판되고 있다. 다만 전공이었던 수학 관련 서적은 없고, 대부분 선언문에서 쓴 내용을 보충하거나 동어 반복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주장을 다시 정리하여 세상에 밝히는 정도다. 관련 서적이나 자료를 외부에서 반입해서 읽고 정리해서 다시 책으로 쓰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한다면 카진스키에게 편지를 보낼 수도 있고, 카진스키가 직접 쓴 답장을 받을 수도 있다.[19] 실제로 이런 식으로 테드 카진스키의 검거과정을 다룬 드라마 '맨헌트: 유나바머'에 대한 감상평을 당사자로부터 받아낸 사람도 있다.#
미국 연방 정부에서는 이러한 출판물 간행이 범죄자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고 출판 금지와 봉인을 전제로 한 국유화를 시도했지만, 2009년 연방 법원에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패소했다.[20] 대신 법원은 동생이 현상금 받은 돈을 유가족들에게 합의금으로 지불하면서 감형을 청했을 만큼 카진스키가 피해자 배상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을 고려하여 필요 경비를 제외한 저작물 판매 수익은 '''전액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손해배상금으로 지불하라'''고 판결했고, 카진스키도 여기에 이의는 없는지 2010년에 '기술의 노예'라는 신간 서적을 간행하는 등 계속 글을 쓰면서 자신의 범죄에 대한 피해 배상도 겸해서 하고 있다.
그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텍사스 오스틴 연쇄 테러, 오바마, 클린턴, CNN에 파이프 폭탄을 배달한 테러미수 범죄 등 소포를 이용한 테러가 늘어나고 있다.
2018년을 기준으로 세계적으로 카진스키의 사상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카진스키의 저작들은 4chan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끄는지 lit(4chan)의 /lit/100대 도서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가 쓴 편지, 에세이들의 대부분은 웹사이트 The Anarchist Library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6. 대중 매체에서
- 유나바머와 언어학 기법을 이용한 FBI 수사관의 두뇌게임과 체포 뒤의 심리전을 2017년에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맨헌트 유나바머(Manhunt: Unabomber)라는 제목의 8부작 드라마로 제작하였다. FBI 프로파일러인 제임스 피츠제럴드 역에는 샘 워딩턴이, 유나바머 역에는 폴 베타니가 출연했다. 2019년 현재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 정작 테드 카진스키 본인은 이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편지를 통해 스토리를 알게 되었다고 하며, 드라마 대부분의 내용이 허구이며, 특히 머레이 교수와 MK울트라 실험에 관한 내용이 "단 한 차례 30분 정도 차분히 진행된 실험을 심하게 과장한 허구"라고 평했다.# 카진스키가 하버드대 재학 시절 당했다는 CIA의 심리실험은 시청률에 목마른 언론들이 자극적으로 과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실험과 관련된 언론보도들은 적당히 걸러들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 2020년 이 드라마에 근거한 카진스키에 관련해 본 문서의 일부를 발췌포함한 카드뉴스적 짤방이 국내야구 갤러리 등지에 뒤늦게 돌았는데 묘하게 야갤러들의 심리를 자극해 일시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 듀크 뉴켐 3D의 에피소드 4에서는 그의 상상도가 그려진 포스터가 저화질로 붙어있으며 우체국 레벨에서는 아예 대놓고 시어도어 카진스키 관련으로 패러디한 공간이 있다. 포르노 영화 제작소 레벨에는 포르노 제작소 인근 민가 아파트에 그가 사는곳을 묘사한것이 숨겨진 장소로 있다. 카진스키 거주지안에는 가스통이 잔뜩 흩어져 있다.
- 잔향의 테러에서는 주인공 테러범을 언급하는 단어가 됐다.
- 영화 굿 윌 헌팅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분한 심리학자 맥과이어 교수가 수학자 램보 교수에게 제자 윌 헌팅(맷 데이먼 분)을 가르치는 방향에 대해 얘기할 때 언급된다. 램보 교수가 아인슈타인도 제대로 이끌어 줄 사람이 없었다면 스위스의 특허 공무원으로 살았을 것이라고 얘기하자, 맥과이어 교수는 지식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며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천재였지만 폭탄 테러범으로 전락한 카진스키의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램보 교수의 의견을 반박한다. 즉, 재능이 특출나다고 해서 이끌어주는 것이 꼭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건 아니라는 주장.
- SBS 드라마 경찰특공대 4화에서 90년대 테러경향에 대해 설명하며 데오도르 칸딘스키 라는 정체불명의 독음으로 언급된다.
- 에미넴의 'Brainless'라는 곡이 있는데, 이 곡은 '자신이 공부를 할 만한 뇌가 없기에 가사를 쓰고 라임을 짜는 천재성이 드러났다는 주제이다. '이런 멘탈의 내가 만약 X나게 똑똑했으면 흉악범이 되었을 거야'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저 '흉악범' 부분에서도 유나바머가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