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기
1. 개요
2017년 1월 1일부터 동년 3월 19일까지 일요일 밤 9시 40분에 방영했던 팩츄얼 드라마.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까지를 다루었고 총 10화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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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출연자 및 연출[3]
2.1. 연출
- 촬영감독 - 박길홍, 박진형
2.2. 선사시대
2.2.1. 구석기 시대
2.2.2. 신석기 시대
2.3. 고조선(위만조선)
2.4. 삼국시대
2.4.1. 고구려
2.4.2. 백제
2.4.3. 신라
3. 방영목록
3.1. 프롤로그-우리는 누구인가
구석기 신석기를 거쳐 한민족의 문화가 나타났다. 고조선 이후 수백년에 걸친 발전과 중국과의 항쟁을 통해 '우리' 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는 내용.
3.2. 1화-인간의 조건[7]
기원전 10만년 전, 아시아에서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두 종족이 대립하고 있는 중이다. 호모 사피엔스 계열의 늑대부족은 이동 중 습격을 받고, 부족장의 아내는 이 와중에 난산 끝에 아들을 남기고 사망한다. 이 아이는 호모 에렉투스 부족이 거두어 가는데, 신체 능력에서 덜떨어져 있어 '모잘라'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모잘라는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 비너스와 여자친구에게 사랑을 받지만,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부족원들에게 차별을 받아,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늑대 부족을 찾아간다. 처음에 호모 에렉투스 무리로 오인받은 모잘라지만, 늑대부족장이 그가 가진 장신구를 보고 죽은 아내가 남긴 자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부족원으로 인정받는다.
모잘라는 '돌아온 늑대'라는 새 이름을 받게 되고, 작중의 평화주의자로 두 종족의 화합을 바란다. 하지만 늑대부족의 지도자가 죽자, 늑대부족은 현장에 남겨진 주먹도끼를 보고 호모 에렉투스들의 소행인 줄 알고 그들을 모두 죽이려고 한다. 돌아온 늑대는 이에 반대하지만, 오히려 누나에게 '넌 우리와 다르다'는 말을 듣는다.
또 다시 차별을 당한 돌아온 늑대는 탈출하여 에렉투스들에게 위험을 알리러 가지만, 오히려 늑대부족은 그를 추적해와서 돌아온 늑대의 여자친구만 남기고 에렉투스들을 모두 죽인다. 하지만 돌아온 늑대를 키웠던 비너스가 죽어가면서 알려준 바에 따르면, 늑대 무리가 늑대부족 지도자를 죽이려고 해서 도와주려 했지만 실패했던 것. 문제의 주먹도끼는 그 과정에서 남겨진 것이다.[8]
세월이 지나 살아남은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딸을 얻은 돌아온 늑대는, 에렉투스 부족이 살던 바위 그늘에 양 종족의 화합을 기념하는 벽화를 남기고 떠난다.
3.3. 2화-최초의 문명
기원전 6000년 경, 사냥꾼인 너울은 혹독한 겨울에 동료들을 잃는다. 그느 해안가에 자리 잡은 부락에 의해 구조되어, 고래 사냥꾼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고래가 오지 않는 힘든 시절이 찾아오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거 수렵 채집 시대의 지식을 이용하여 도토리를 식량으로 모아 저장하고, 농경을 시작하며, 이웃 부락과 교역을 하는 등 이전과 새로운 시대를 맞이 한다.
3.4. 3화-국가의 탄생, 고조선
신석기 시대 이후로 사회는 계속 발전하고 마을은 규모가 커져갔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분쟁은 늘어났고, 사람들은 가족과 친지들을 지키기 위해 울타리를 세운다. 울타리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우리'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유재산이 축적되고 이를 바탕으로 신분계급이 나타났다. 고인돌은 이 시기에 탄생했다. 처음에 작은 고인돌은 이후에 수십톤의 무게로 수천명이 동원되어야 할 정도로 커졌다. 울타리는 점점 더 커지고 마침내 국가가 시작되었다.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건국을 다룬 단군신화는 이주민과 토착민의 결합을 보여준다. 중국이나 북방민족과 다른 비파형 동검과 미송리식 토기는 이 시기 '우리'의 영역이 어떠했는지 알려주고 있다. 중국과 모피무역을 통해 성장한 고조선은 연나라와 경쟁하며 왕을 칭할 정도로 중앙집권화를 이루었으며 8조법이라는 한국역사 최초의 법령을 발표하였다. 이후 진한교체기에 조, 제, 연 지역에서 유민들이 고조선으로 많이 넘어왔고, 이들 중에 위만이 있었다. 준왕는 위만을 신뢰해 박사의 벼슬을 내리고 서쪽 변경의 수비를 맡기지만, 위만은 훗날 거병하여 준왕을 쫓아내고 고조선의 왕이 된다. 한국역사에 기록 된 최초의 쿠데타다.[9]
위만의 왕통은 3대째 우거왕때까지 이어진다. 한나라 무제는 중계무역으로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고조선을 굴복시키려 하지만, 우거왕은 이에 반발하고, 황제의 사신인 섭하가 고조선 비장을 죽임으로서 양국의 관계는 최악이 된다. 당시 전성기의 한나라는 육군과 수군 10만을 동원하여 고조선을 공격하지만, 고조선군의 반격과 이간에 한나라군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10] (중략)
3.5. 4화-민족의 여명, 부여로부터
3.6. 5화-문명의 교차로, 백제
3.7. 6화-새로운 질서, 고구려
3.8. 7화-주변에서 중심으로, 신라
3.9. 8화-하늘의 자손, 수당에 맞서다
3.10. 9화-외세와 자주, 김춘추의 선택
3.11. 10화-하나를 위하여, 문무왕의 꿈
4. 고증
4.1. 1화
한국 사극 특징의 발고증이 이 드라마라고 피해가지 않았다. #
나레이터가 "호모 에렉투스는 언어를 사용했다"고 언급하는데, 실제로는 이와 관련해서 추정만 할 뿐, 확실한 결과가 나온 것은 단 한 개도 없다.[11][12]#
주인공 돌아온 늑대는 두 종족의 언어를 미친 듯한 속도로 습득한다. 드라마니까 가능한 일이지만... 여튼 두 종족의 화합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에렉투스가 살던 바위 그늘에 벽화를 남기는데, 손으로 찍어 그린다. 그러나 구석기 시대 벽화는 손이 아니라, 물감을 입에 머금었다가 대롱 같은 것으로 불어서 그린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스프레이식으로 뿜는 것이, 손으로 찍어 바르는 것보다 울퉁불툭한 벽체에 보다 확실히 착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또 하나의 오류는 사피엔스 부족인 늑대부족이 너무 고도의 하이테크 문화를 영유하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가 주먹도끼를 쓸 때, 이쪽은 창병을 이끌고 다닌다.[13] 이 시절은 사피엔스도 아직 매머드 잡으면서 살던 시절로, 이웃부족처럼 동굴에 살거나 평원에서 매머드 뼈와 가죽으로 천막을 치는 것이 정확하다. 강가에서 움막짓고 산 것은, 해수면이 상승하여 강과 바다에서 식량을 구하던 신석기 시대에 들어서다. 다른 예를 들자면 배경은 조선인데 경복궁 대신 청와대가 있고 왕이 그 안에서 스마트폰을 쓰고 빔 프로젝터와 스크린으로 어전 회의를 하는 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돌아온 늑대가 사피엔스 부족에 돌아와 사용하는 투창은 나무틀에 박편을 끼워 만드는 방식인데, 이 같은 방식은 1화의 시대적 배경인 기원전 10만년이 아닌 기원전 2만년에서 1만년 사이의 세석기 시대에 나타난 것이다.[14]
뿐만 아니라 벽화를 그릴 때 토기도 사용하는데, 토기 역시 신석기 시대에 처음으로 사용했다. 호모테리움, 매머드, 기간토피테쿠스 등의 신생대 생물들이 등장하는데, 어설픈 CG는 빠듯한 제작비 때문에 넘어가더라도 호모테리움과 기간토피테쿠스는 한반도에서 발견된적이 없다.[15] 뿐만 아니라 검치호는 호랑이와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호모테리움을 검치 달린 호랑이처럼 묘사했으며, 기간토피테쿠스도 실제론 오랑우탄에 가까웠는데 여기선 무슨 고릴라처럼 나왔다.
왜곡이 심했던 EBS의 모 고생물 다큐들과 다를 바 없는 발고증인데도 신경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물론 이 작품은 고생물다큐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선사 시대가 역사 시대의 전 시대니까 한국 사극 사상 최초로 다룬 한국사기로 치면 좀 아쉬운 부분.
4.2. 2화
1화의 늑대부족 오버 테크놀러지 수준의 오류는 없다.
다만 당시 고래잡이 부족의 인종적인 묘사가 틀렸다. 부산광역시 가덕도 유적에서 발견된 인골의 경우, 현대 한국인과 다른 고대 유럽인의 골격 특성과 미토콘드리아 유전 정보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16] 다만 이 점은 당시 인종적인 특성을 확실히 알 수 없고, 배역을 구하기도 힘드니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는 부분.
농경의 시작은 너무 간단하게 넘어갔다. 배고파서 농사짓기 시작했습니다...는 그야 말로 밑도 끝도 없는 성의 없는 묘사. 최초로 농경을 시작한 것은 중동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후 동서로 전파된다. 농경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종자부터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묘사가 너무나 부실했다. 이 부분은 프롤로그에서 주인공 너울이 시장에 갔다가 구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작 본편에선 짤렸다. 거기다 이때 이미 개나 돼지 등의 기본적인 가축을 길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축산업에 대한 묘사는 나오지 않는다.
신석기 시대 시장의 묘사도 너무나 부실하다. 시장이 무슨 길가에 만들어진 것마냥 묘사를 해 놨는데, 시장은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도시나 부락을 끼고 만들어진다. 상품을 기본적으로 소비하고 유통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야 시장도 유지될 수 있기 때문. 거기다 당시 상품으로 흑요석이 강조되는데, 그 시절에는 흑요석과 함께 소금도 매우 귀중한 상품이었지만, 언급되지 않는다.
의복의 경우는 그럭저럭 납득할만한 수준이었다. 유사 이전이라고 무조건 가죽옷 입고 우가우가하는 원시인 수준에서 탈피하여, 면직물 옷을 입은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드라마에 묘사되진 않았지만, 실제 이 시기 가락 바퀴 같은 유물이 있기에, 이미 이때 섬유질로 실을 뽑고 직물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을 하자면, 과거 아이누족이나 퉁구스 계열의 해양 민족들은 짐승가죽 뿐만 아니라 물고기의 껍질도 가공해서 옷을 해 입었다는 점이다. 이런 어피는 후대에도 칼 손잡이나 칼집 등의 장식에 썼을 정도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볼 때, 신석기 해양 부족도 어피옷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4.3. 3화
고조선인데, 의상은 삼국시대 수준. 고조선 갑옷은 #[17] 청동단추를 잔뜩 단 형태로 추정되고 있으나, 드라마에 나온 것은 고구려의 찰갑이다. 다만 고조선 말기가 되면 본격적으로 철기가 사용되니 그 점을 가만 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무래도 소품 재활용을 한 듯 보인다. 고조선의 무대가 되는 함경도나 평안도 지역에서도 청동기 시대의 찰갑 파편이 많이 출토되었으니 찰갑을 안썼다고도 할 순 없다.
고조선의 문명 수준을 설명할 때 북한에서 출토된 마차를 보여줬지만, 정작 마차는 한나라 사신 섭하가 타고, 섭하에게 살해당한 비왕 장은 거적대기에 덮여 질질 끌려가는 묘사를 보였다.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도 기마군과 전차군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하나, 드라마 제작비 때문인지 전투씬에 등장하진 않는다.
고조선-한나라 전쟁 때 왕검성의 CG를 보여주는데 성문 누각에 기와를 사용했다. 국내에서 기와는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이때에는 초가로 사용했을 것이다.
4.4. 5~7화
고구려 기병, 귀족, 군주의 갑옷이 근초고왕(드라마) 이후로 사용된 고증이 잘 된(목울대 제외) 갑옷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중국식과 판타지사이의 어중간한 갑옷이다. 근초고왕 이후, 대왕의 꿈 정도를 제외하면 근초고왕의 훌륭한 고증을 거친 갑옷 소품을 잘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대체 소품 잘 만들어 놓고 왜 안쓰는지 의문일 지경이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을 다룬 6화와 5화때 고국원왕이 나온 회와 마찬가지로 7화도 고증에 대해 많은 비판이 나왔다.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부인이 551년까지 섭정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정작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는 진흥왕이 즉위한 후 태후가 섭정했다는 말만 나올뿐 언제 섭정을 거두었는지 언급이 없다. 오히려 551년 이전부터 신라의 영토확장 정책이 추진되고 권력이양으로 인한 공백의 정황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볼 때 진흥왕의 친정은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지고 태후가 정치에 끼친 영향은 미미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뿐만 아니라 백제, 신라의 군주가 스스로를 과인으로 칭하며, 신하에게는 전하라 불리고, 백성들은 군주에게 천세를 외치는데, 외왕내제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진흥왕 시기에 백제와 신라의 왕은 스스로를 짐으로 칭했으며, 신하들에게는 폐하라 불렸고, 백성들은 군주에게 만세를 외쳤던 게 금석문으로 남아 있다. 그 동안의 사극에서 문제가 되던 과도한 치켜세우기가 아닌 과도한 깎아내리기가 된 것.
장수왕 이후로도 고구려가 스스로를 고구려라 칭하고 고구려라 불리는데, 장수왕 이후로는 국호를 고려로 바꾸었으므로 이 또한 고증 오류에 속한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일반 시청자들을 배려한다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고려로 국호를 바꾸었다는 언급조차 없다는 것은 아쉬운 점.
4.5. 10화
KBS 역사 다큐멘터리의 단골 언급인 매소성 전투 당시 신라군이 3만이라는게 당연하다는듯이 또 언급되었다. 삼국사기에는 매소성 전투 당시 이근행이 이끈 당군이 20만이라는 말만 있을 뿐 신라군의 병력은 물론이고 지휘관이 누구인지조차 기록이 없다. 또한 매소성에 주둔한 이근행이 주력이고 천성을 공격한 설인귀가 보급부대인양 묘사했지만 삼국사기에 설인귀의 부대가 보급부대라는 기록은 없고 오히려 설인귀는 항복한 신라인인 풍훈을 향도로 앞세우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침공을 감행하고 이듬해까지 작전을 진행하는 등 유인궤가 철군한 이후 확실한 신라 침공군의 총사령관 역할을 했다. 오히려 이근행은 매소성 전투 패전 이후 그대로 철군하여 대토번 전선으로 이동해 신라와의 전투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9주 5소경 편성은 신문왕 때의 일인데 나레이션에서는 문무왕의 업적으로 소개했다.
[1] 이곳을 참조.[2] 기존의 드라마 편집이 아닌 순수 오리지널이라고 한다.[3] 이곳을 참조.[4] 늑대부족.[5] 대야성 함락을 도운 신라의 반역자[6] 비형랑의 어머니.[7] 기존의 드라마 편집이 아닌 순수 오리지널이라고 한다.[8] 이것을 멀리서 듣고 있던 누나도 오해인 걸 깨닫고 눈물을 흘린다.[9] 기자가 등장하고 단군이 입산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기록에서 당대에 정교가 분리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왕을 단순한 통치자 수준으로 생각했기에 갈아치울 수 있었던 것. 이와 달리 덴노를 국가 그 자체라 여기는 일본은 공식적으로 왕조가 교체되지 못했다.[10] 드라마에선 전쟁이 한 번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실제 한-고조선 전쟁은 두번이나 벌어졌으며, 고조선은 첫번째 전쟁에서 승전한 후 적절한 협상을 통해 종전을 하려 했다. 하지만 한나라 측에서 협상사절로 찾아온 고조선 왕자 일행의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고조선측에서 이를 거절하며 돌아가면서 협상은 결렬된다. 협상때 이런 신경전이 벌어진 이유는 전쟁 전에 한나라 사신 섭하가 고조선 비장을 죽이고, 또 이후에 살해당했기 때문.[11] 허나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드라마를 이끌어 나갈 수가 없다!! 참으로 엄청난 딜레마... 사실 입모양만 만들어 놓고 대충 자막 만들어 놓아도 되긴 하지만.[12] 원시시대를 배경으로 한 프랑스 영화 <불을 찾아서>의 경우, 네안네르탈인 부족인 주인공들은 감탄사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대사는 일절 하지 않는다. 호모 사피엔스 부족이 언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못 알아먹는 언어일 뿐 따로 자막으로 해석해 놓거나 하진 않았다.[13] 정확히 호모 에렉투스도 창이 있었다. 하지만 끝을 불에 태워 깎은 나무창이나, 대나무를 날카롭게 깎은 죽창을 썼을 뿐. 드라마 전투씬에선 나오지 않았지만, 실제 호모 사피엔스는 투창을 사용했기 때문에 싸움이 나면 드라마대로 에렉투스가 발린다. 실제 학계에서도 일반창과 투창은 권총과 반자동소총에 비교할 정도로 위력의 차이가 크다. 이유는 날아가면서 파괴력이 더 강해지기 때문.[14] 최후의 빙하기 때는 상당히 추위가 혹독했고, 그만큼 자원을 구하는 게 힘들어서 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무기나 도구를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이 같은 방식이 나타나는 것. 거기다 이 시절에 사피엔스의 석기 기술도 상당히 정교해졌다.[15] 애초에 기간토피테쿠스는 중국 남부, 베트남, 인도 등에서 발견되었는데 북쪽의 한반도까지 올 이유가 없다.[16] 고대 신석기인들의 이런 특성은 현재 유럽인과 다르며, 이 시기 빗살무늬 토기를 사용한 사람들은 유럽에서 시베리아, 몽골을 거쳐 한반도 남부까지 넓게 분포하고 있다.[17] 다만 위 링크로 들어가면 '환웅의 배달국' 등 환단고기적 요소가 어느정도 있으니 알아서 거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