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드라마)/비판
'''"그 바탕을 깔아주는 과정이 생각보다 길었지만 역사 왜곡은 없었다."'''
1. 설정 및 전개
1.1. 문제 가득한 기획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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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하면 침략이고 우리가 하면 정복이라는 식의 시각이 보인다.''' 광개토대왕을 주목하는 이유라는 게 지금껏 맞고 살았던 우리 민족[2] 이 남을 정복하던 시기를 추억한다는 의미인데, 정복자를 무조건 찬양하는 사상 자체가 문제가 있을 뿐더러, 더 큰 문제는 밑에도 나와있지만 그 의도에도 못 미쳤다는 것.
'''이에 따르면 고구려는 기원전 1세기에 건국되어 지난 400년 동안 하나도 발전한 게 없었던 셈이 된다.''' 고구려는 이미 연나부, 소노부의 반란을 거치면서 지방의 토호적 귀족들을 제압하는 왕권을 확보하였고, 그 뒤로 중천왕, 서천왕, 봉상왕이 자꾸만 친족들을 숙청함으로써 왕권의 크기를 키워 온 상황이었다.그것이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에 의한 율령과 불법의 반포, 태학의 설치, 종묘사직의 제정, 불교의 국교화 등등. 그러니 고국양왕 대 고구려가 군약신강의 나라라는 건 되지도 않는 개드립이다. 제작진이 정말 고구려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드라마에선 이런 내면적 가치들이 하나도 묘사되지 않는다.''' 막강한 경쟁국들이라는 게 후연 패밀리의 찌질이들이고 나머지도 백제와 말갈 따위의 졸개들이다."으으으 담덕 으으으" 하면서 이를 가는 게 역할이 다며 왕권을 확보하기 위한 내부의 투쟁이라는 것도 정작 즉위한 이후로는 무한한 우주 저 너머로 날아갔고 개인적인 야욕인가 하는 갈등은 그냥 내가 잘하면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어느새 퉁치고 넘어간다. 내적인 고민 없이 그저 주어진 적을 처리할 뿐.
결국 한민족이라는 미명하에 고구려에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그마저도 당대 고구려의 사회상에 대해 무지했으며, 당초 광개토대왕의 내면적인 갈등을 그려내겠다는 기획 의도조차도 실제로는 구현되지 않았던 것이다.
1.2. 창작이 아닌 표절
그 원작이 정립의 소설 '광개토대제'[3] 라는 데에서도 어찌보면 비극은 예고되어 있었다. 이 소설 광개토대제가 어마어마한 역사 왜곡 소설[4] 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가장 잘 알려진 광개토왕 관련 역사소설이다 보니, 이쪽을 다룬 물건들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벗어나질 못했기에 이 물건은 우려먹고 또 우려먹어 식상해진지 오래인 전개가 한가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소설 광개토대제도 표절작이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 팬픽 '후삼국지',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조금만 섞어보면 이런 건 금세 연성할 수 있다. 덧붙여 주인공 담덕의 연애 라인은 엉뚱하게도 순정만화 바람의 나라에서 베껴왔다(...). 주인공 무휼이 첫번째 아내인 연에게 하는 대사(자신은 고구려 왕이며 북방으로 영토를 넓혀가야 하는데 네가 자꾸 울면 내가 맘놓고 정복하러 못 간다는)를 그냥 싹 베꼈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표절작과, 그 표절작을 다시 표절한 작품을 원작으로 삼았던 것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광개토왕 당대 고구려의 사회상에 대한 몰이해가 군약신강과 같이 역사와는 전혀 다른 역사 왜곡의 방향으로 전개되었던 것은 이 표절들의 행진에 상당부분 빚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거짓말도 자꾸 하면 진실이 된다지만 이건 정말이지...
그런데 반전은 아무리 봐도 스토리상 진 원작은 자사 드라마인 대조영으로 보인다는 것(...). 광개토대제에서는 가공인물들의 이름이나 좀 가져온 정도. 심지어 시청소감 중에는 '''대조영을 재방송하는 줄 알았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실제로 초반 전투 장면에서 대조영의 안시성 전투 때 나온 전략을 완전히 그대로 써먹었으며, 킹덤 오브 헤븐의 공성 장면과 같은 연출도 공통적이고, 치우천황 운운하는 충공깽 대사라든지, 주인공을 노예로 만드는 설정이라든지. 게다가 돈이 떨어진 후반부에는 대조영의 전투장면을 재활용하기까지 했다.
1.3. 평면적인 인물상
우선 주인공 담덕부터가 캐릭터 설정면에서 심각성을 보여준다.
광개토대왕이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는 역사대로라면 이미 삭아버린(…) 용모로 등장하는 것부터가 에러. 더군다나 10대 초반의 청소년인 거꾸로 말해 극 전반을 통해 가장 큰 성장과정을 보여주었어야 할 담덕이라는 캐릭터가 초장부터 주인공 보정 하나만 믿고 '''힘이든 머리든 어느 것 하나 어른들에게 뒤지지 않는 먼치킨'''으로 설정되어 있으니 어린 나이에 즉위했음을 아는 시청자들의 눈에는 더욱 괴이하게 비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대리만족물 수준의 이고깽. 악역들은 그저 '으아니 세상에 이런 전술이!'하면서 우수수 쓰러져주기만 하면 된다. 이런 점들이 극의 현실감각을 많이 깎아먹었다.
기타 담덕의 조력자들도 딱히 자기만의 주관과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모습 같은 건 없고 그저 담덕의 충성스러운 개들에 지나지 않는다. 따지고보면 제아무리 왕에게는 충성스러운 신하라도 일단 권력을 맛보면 아래로 민폐를 끼치고 다니는 안하무인으로 바뀌기 십상이고 그 충신들 사이에서도 어떻게든 서열경쟁, 충성경쟁, 과잉충성 따위의 상호작용이 생겨나기 마련인데 이 드라마에는 그런 거 없다. 그냥 주인공 편이면 당연히 다 욕심 없는 착한 사람들이다. 애당초 기승전결이 뚜렷한 정교한 에피소드와 그를 통해 반영된 캐릭터를 꾸릴 능력이 제작진에게는 없었다는 소리.
그나마 주인공과 그 조력자들은 고구려인들이고 본 작품이 대한민국 드라마라는 이유로 주인공 보정에 의한 미화(!)가 불가피했다는 쉴드라도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국의 캐릭터성도 망가트린 묘사는 옥의 티 수준을 한참 넘어서는 상태이다.
작중 만악의 근원인 후연은 전형적인 '한민족을 침탈하려 드는 사악한 외세'의 이미지고 왜 그들이 고구려를 침공하는지 따위에 대한 묘사가 전무하다. 그저 사악하기 때문에 침공하고, 침공하기 때문에 사악하다는 순환논법만이 있을 뿐. 이렇다 보니 반동인물(악역)들에 대한 묘사도 패배를 반성하고 국익을 위해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기보다 그저 '''열폭하고 우월한 주인공을 못 잡아먹어 안달하는 찌질이'''에 불과하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전후 처리 협상을 위해 파견된 모용보가 담덕을 독살이나 암살하려 드는 행위. 당연하지만 외교적으로 결례를 아득히 뛰어넘어서 자국에 심각한 해악을 주는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참고로 본 에피소드에서 후연은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이긴 것도 아니고, '''져서''' 전후 처리 협상을 하러 간 것이다.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져서 협상하러 간 팔레스타인 대표가 이스라엘의 유력 정치인을 암살하려 시도한다고 생각해보자(...).
심지어 그나마 대인배(?!)라며 후하게 평가해주는 모용수도 애당초 아들을 갈궈대며 날뛰는 호전광의 이미지로 출발했으니 그 후로 이미지를 바꾼다 한들 뭘 봐서 대인배로까지 호감도가 급상승해야하는지 설득력이 충분치 못하다.
한편, 캐릭터성 자체는 문제가 아닐지라도 그 평가가 의외로 너그러운 인물이 있으니 다름아닌 '''고구려 내부의 적 개연수'''.
본 작품에서 담덕이 지나치게 거칠고 과격한 성격으로 등장하여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적 개연수가 마치 나라를 위한 신념이 강했으나 미흡한 스토리텔링 탓에 중반부 권력이나 탐하는 악역인양 묘사되었다고 하지만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담덕이 왕위에 오른다면 전쟁은 피할수 없으니 비록 내 나라 왕자이긴 하지만 평화를 위해 제거하겠다”며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담덕의 발목을 붙잡는 막장 행극들에서 이미 심각한 에러이다.
즉, 이 사람은 '''악역이라는 캐릭터성 묘사가 잘된거고''' 상대적으로 담덕이 이고깽 먼치킨답다보니 차라리 개연수가 나아보인다는 식의 평가가 있다.
하지만 외세와 싸우기는 싫다면서 제 나라 왕자를 적으로 간주해 제거하려는 '''막장짓까지 정당화할수는 없다. '''게다가 개연수 이 자는 다름아닌 고구려의 국정을 책임지는 최고위층이다! 주인공 캐릭터성이 맘에 안든다 하여 외세가 호시탐탐 나라를 노리는 마당에 내부분열을 획책하다 못해 결국 반란을 일으켜 자신의 신세마저 스스로 망치고 나라를 위기상황에까지 내몬 개연수를 포스 넘치는 카리스마로 미화하려는 관점이 존재한다는 부분에는 주의를 요한다고 하겠다. 막장(!) 개연수를 까주시는 블로그
1.4. 막장 드라마식 전개
해신(전 51화)은 7화, 대조영(전 134화)은 71화,[5] 천추태후(전 78화)는 28화에 주인공이 노예로 굴러떨어졌는데 이 드라마는 고작 8화 만에 주인공을 노예 신세로 떨어뜨렸다. 해신의 경우 실제 장보고의 출신이 별볼일 없었기에 그런 내용이 있어도 별 문제 안되었으며 대조영의 경우 대조영이 고구려 부흥운동을 하다가 적국에 포로로 잡힌 경우이기 때문에 그나마 억지 전개는 아닌 반면에 이 드라마의 경우 금수저 왕족이 노예생활을 하는 전개를 넣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게 문제였다.
여기에 원작의 히로인인 약연을 실존인물인 고무의 딸로 끼워맞췄는데 고무는 고국원왕의 동생이자 고국양왕의 숙부이며 광개토왕의 작은할아버지이므로 '''광개토대왕은 졸지에 5촌 당고모와 연애 플래그가 이어지게 되었다.''' 애당초 작가의 의도인지는 불명확하나 설정을 어거지로 역사에 맞추다 보니 생긴 문제임은 자명하다. 결국 이런 무리수를 커버하려는 것인지 출생의 비밀로 피가 섞이지 않은 누나 드립이 나왔지만, 이것이 그 자체로는 아무런 사건의 발단이 되지 못하는 Ad Hoc인지라 설득력 확보에 실패.(...)[6]
여기에 광개토대왕이 즉위하기 전 태자비였던 도영은 괜히 담덕을 따라서 후연에 갔다가 난리통에 낙오되어서(...) 아신에게 주워지고 이로 말미암아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백제의 아신왕 사이에서 혼자 사이코드라마를 찍고 있었다. 광개토 대왕이 아신왕과 전면전을 벌이면서 점차 전작에서 신나게 욕먹었던 부여화와 같은 기믹이 연출되었으며, 도영이 둘 사이의 전쟁을 막으려고 끼어들었다가 아신왕 대신 화살을 맞고 죽어버려서 무슨 새드 엔딩의 주인공이 된 광개토대왕과 아신왕이 갑자기 전의를 상실해 광개토대왕에게 항복해서 전쟁 끝.(...)
거기다 관계도를 보면 어쩐지 약연과 도영만이 아니라 말갈족의 설지까지도 광개토대왕과 연인으로 엮여서 종국에는 삼각관계도 아닌 사각관계를 이루게 생겼었다.(...) 다만 작가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도저히 설지까지 연인으로 엮을 힘이 없었는지 설지는 연인에서 그냥 여전사로 격하되고 관계도에서도 연결이 지워졌다. 마찬가지로 드라마가 중반으로 진행되는 와중에 배역들이 여러 사정으로 리타이어되고 뜬금없이 사라지는 등 드라마 진행이 흐트러졌으니...
'''지나치게 빈번한 총알받이 기믹의 사용도 역시 극의 완성도에 있어 커다란 구멍이다.''' 전작 근초고왕이 툭하면 모든 정치상의 암투와 갈등을 매 단락마다 내란과 진압으로 해소함으로써 극의 완성도를 수직낙하시킨 것에 비견되는 문제. 극작가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곤했는지가 훤히 보인다.
78회에서는 담덕이 일본군과 싸운다. 그러다가 담덕 앞에 일본군 4명이 나서서 활을 쐈는데 담덕은 망토와 함께 한바퀴를 휙 돌며 피한다. 그러고는 달려들어 일본군 4명을 한번에 킬한 장면이 나왔다.
2. 역사 왜곡
드라마 특성상 사극에선 작가의 창작이나 각색이 들어가는 경우가 흔하나 이 드라마에서는 스토리 창작이나 각색 수준을 넘어서 아예 소설 수준이었다. 특히 고구려[7] 는 광개토대왕시기에는 사료가 제일 많은 왕이기 때문에 기록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역사를 창작했다는 변명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빼도 박도 못한 사실을 가지고 감독이란 분이 역사 왜곡이란 없었다고 현실부정을 했으니 기가 찰 따름.
2.1. 발로 한 캐릭터 설정
2.1.1. 가계도 날조
졸지에 광개토대왕이 고국양왕의 둘째 아들이 되었다. 장남 담망이 동생 담덕을 지켜주기 위해 나중에 자객들이 쏜 화살로 몸을 던져서 목숨을 잃게 되며 이로써 담덕은 고구려의 태자가 되어 애당초 상극이었던 국상 개연수의 딸과 혼인해 사위로 인정 받아 관계 개선을 하려나 싶더니 한다는 짓은 국방을 강화한다며 귀족들의 땅을 빼앗아서 개연수의 뒤통수를 치고 있었다.(...)
이런 전개는 여러모로 양녕대군과 충녕대군의 관계를 연상시키는데 첫째가 능력 있는 둘째를 왕으로 올리려고 목숨을 내놓는다(?)는 전개는 양녕대군이 충녕대군을 왕으로 올리려고 일부러 망나니짓을 했다는 야사를 연상시킨다.[8] 문제는 그렇게 왕위에 오른 충녕대군(담덕)이 하는 짓이 대왕 세종의 어느 군국주의자와 판박이. 그러니까 이 극에서는 장남 충녕대군이 둘째 양녕대군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스스로 희생된 식의 전개.(...)
당연히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다. 훗날 광개토대왕으로 즉위하는 담덕이 태자로 책봉되었던 것은 고국양왕 3년이고 광개토왕릉비문으로 추론해보면 이때 담덕의 나이는 고작 12세였다. 이 정도면 다른 고구려 왕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신속하게, 이른 나이에 태자로 책봉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상식적으로 담덕에게 형 같은 게 있었으면 이렇게 이른 시기에 이른 나이로 태자가 될 수가 있었을 리가 없다. 굳이 조선 시대가 아니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위계승 1순위는 장남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훗날 북연의 군주가 되는 고운(혜의제)이 고구려 국상 개연수의 아들이고 담덕의 소꿉친구라고 설정되어 있다. 이건 심지어 원작에도 보이지 않는 설정인데 문제는 그러기에는 역사서에 고운의 출신이 너무나도 뚜렷하다. 고운(高雲)의 아버지는 고발(高拔), 할아버지는 고화(高和)이며 바로 이 고화가 고구려에서 포로로 잡혀오면서 연나라에 정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실제 고운(혜의제)은 '''재연교포 3세'''가 된다. 더 큰 문제는 분명 아버지가 개씨이며 고운의 여동생은 도영, 고운은 그냥 고씨라는 점.(...)
2.1.2. 멀쩡한 인물 악역 만들기
작중에서 후연의 모용보와 풍발이 담덕의 주요 정적, 라이벌로 각광받게 되는데 정작 '''실제 이들은 고구려에 찝쩍거린 적이 전혀 없다.''' 당시 고구려와 악연을 맺었던 것은 모용보가 아니라 그의 아들이자 그 뒤의 황제인 모용성, 그의 동생인 모용희로 바로 이들이 광개토대왕과 치열하게 싸운 주적이었다. 본작의 또 다른 악역인 풍발도 실제 역사에서는 오히려 쿠데타를 일으켜 반고구려 성향의 모용희를 몰아낸 뒤에 친고구려 성향의 고운을 내세웠다. 고운(혜의제)이 암살당하자 풍발이 직접 즉위하긴 했지만 그 뒤에도 그다지 고구려와 갈등을 빚은 적은 없거니와 풍발은 외적을 소탕하고 내정을 잘 살펴 북연백성들에게 추앙을 받았던 성군이다. 그에게 고구려를 적대시하는 감정이 있었다고 설정하는 것 자체가 멀쩡한 캐릭터를 망쳐놓은 셈이다.
이후 모용희가 나옴으로써 이 문제는 어떻게든 해소되는가 했지만 다른 한 축인 모용성은 끝끝내 등장하지 않았고 결국 모용보가 모용성 역할까지 대신하는 바람에 망했어요. 전의 대조영은 설인귀가 죽어야 할 나이에 안 죽고 10년이나 더 살아남아서 발해의 건국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까임을 당했지만 여기에서는 인물상 자체를 잘못 설정했으니 이미 나이만으로 까임당할 수준을 초월한 듯하다.(...) 더 많은 나이 문제는 등장인물 항목 참조.
정사에 나와있는 내용들마저도 완전히 뒤집어 엎었다는 점에서 그냥 역사 왜곡물이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
2.2. 역사를 창조하는 스토리 라인
2.2.1. 승자는 패자로, 패자는 승자로
제1화부터가 고구려로 쳐들어온 후연이 현도성을 함락시키고 요동성을 포위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단순히 그런 사실이 없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애당초 광개토대왕이 즉위하기 전까지만 해도 '''현도성과 요동성은 고구려 땅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전까지만 해도 현도성과 요동성을 중심으로 한 요동벌 일대는 전연, 전진, 후연으로 이어지는 중국 측 세력의 영토로 귀속되어 있었고, 여기를 정복하는 것이 동천왕 이래 고구려의 국가적 목표였으나 이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실제로 고구려는 전진과 후연이 교체되는 혼란기를 틈타 고국양왕 2년에 요동군과 현도군을 침공한 적이 있었지만, 그로부터 4개월 만에 볼기짝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9]
그나마 1화의 전개는 이 고국양왕 2년의 전쟁을 조금 비튼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극중에서 담덕이 모용보에게 "한낱 늑대도 자기 굴을 지키려고 죽음을 무릅쓰고 덤빈다"면서 요동이 고구려의 고유 영토라고 강변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주객전도가 따로 없다.''' 게다가 이때 후연 측 대장은 모용수의 삼남 모용농이었지, 모용수 본인이 아니었으며, 이때 모용수는 황제도 아니고 연왕(燕王)이었다. 모용수가 황제가 되는 것은 담덕이 태자로 책봉되는 것과 동시의 일로, 따라서 '''모용수가 황제라면 담덕은 이미 태자가 되어 있어야 한다!'''
2.2.2. 조공은 어디 가고 전쟁 배상금?
이렇게 후연의 볼기짝을 신나게 두들겨준 결과 고구려는 후연으로부터 전쟁 배상금을 받아먹게 되는데, 아니 잠깐, 전쟁 배상금? 물론 전쟁 배상금은 고대 로마를 침공하여 일시적으로 멸망시킨 켈트족이나 포에니 전쟁에서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럽 이야기고,''' 조공과 책봉을 통해 일원적으로 편성되어 있던 고대 동양사 국제질서상에서 전쟁 배상금 같은 건 있을 수가 없다. 차라리 북송 때의 세폐 개념에서 근거를 찾는다면 모르겠지만, 전쟁 배상금은 일시불이든 분할 지불이든 일정한 액수를 지불하면 끝나는 것이었던 반면 세폐는 정해진 액수를 매년 바쳐야 한다는 데에서 분명히 다르다.
드라마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광개토대왕의 거란 정벌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광개토대왕에게 앙심을 품고 후연으로 망명한 고운이 거란을 꾀어 고구려로의 소금 공급을 차단하는 에피소드를 전개했는데 비문(패려)을 보나 삼국사기(거란)을 보나 당시 광개토대왕이 거란을 정벌한 것은 소수림왕 대 잡혀갔던 백성들을 되찾기 위해서였지 소금과는 전무했다.정작 당시 고구려는 적어도 동천왕대 이전부터 옥저로부터 소금과 해산물을 상납받고 있었으며, 미천왕대 차지한 낙랑군 지역(황해도)은 한반도 최대의 염전 지역이었다. 이러니 거란이 고구려에 소금을 수출해봤자 똥값일 수밖에...[10]
2.2.3. 자르고 붙이는 후연 가족들
게다가 역사서에 따르면 후연의 황제 모용수는 396년에 북위의 등짝을 보러 갔다가 앞서 태자놈이 말아먹었던 참합피 전투의 현장을 보고 울화통이 터져서 죽었는데 여기에서는 하무지가 충동질한 모용보와 모용희 간의 내홍에 휘말려서 자신을 희생하여 내홍을 봉합하는 식으로 독살됨으로써 역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더욱이 모용수의 사망으로 말미암아 후연은 북위에게 일방적으로 관광당하고 중원의 영토를 죄다 까먹은 채 요서로 쫓겨났는데 극중에서는 399년에도 여전히 중원에 도읍하고 있어 북위의 존재를 완벽히 무시했다.
그리고 이 연장선상에서 모용보를 낚시하여 죽이고 왕이 된 난한과 난한을 거꾸러뜨리고 왕위를 되찾은 모용성이 스킵되면서 진즉에 죽었어야 할 모용보가 3년이나 더 살아있다가 모용희와 고운의 계략으로 사망하고 곧장 모용희가 황제가 되었으며 이어서는 모용희의 막장 행각이 잘리고 오로지 고구려와의 문제 때문에 모용희가 살해되며 직후 고운이 즉위하는 상황으로 이어져서 '''작가진이 얼마나 중국사에 무지한지를 만천하에 까발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냥 아침 드라마 수준으로 사극을 만든 셈이니 황당한 전개.
2.2.4. 설득 종료!
이외에도 광개토대왕이 일본까지 건너가 일본의 군주를 굴복시키고 돌아온다거나 대대적인 후연 정벌 과정에서 하무지가 유주의 13태수를 말 몇 마디로 설득시킨다거나 '''역사적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정신줄 놓은 전개를 거론하자면 끝도 없다.''' 심지어 후연 정벌 과정에서는 유주(幽州)를 유주(柳州)라 써놓고 유주성이라는 정체불명의 장소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당시 유주의 치소로는 따로 유주성이라는 곳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유주 치하의 계현(薊縣)이 유주의 치소였는데[11] 그걸 이렇게 써놓았으니 요서의 조양에 있던 유성(柳城)[12] 과 헷갈리는 것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급기야 마지막화 부근쯤와서는 드라마가 막장의 극치를 달리기 시작하는데 일단 광개토대왕이 후연의 수도인 용성을 함락시키는건 둘째치고 마지막회에 결국 사로잡은 모용운(혜의제)을 만나서 서로 가지고 있던 앙금을 풀고 화해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담덕은 모용운(혜의제)에게 후연의 통치권을 인정해주며 '''전과 같이 나라를 통치해도 좋다는 말을 한다!''' 이에 모용운은 담덕 앞에 무릎을 조아리면서 '폐하'라고 호칭을 높여 부르고 앞으로는 고구려에 대항할 생각을 접게 된다는 최종회가 대충 훈훈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마지막회가 더 문제인 것은 그 뒤에 나온 해설 내레이션이 마치 이것이 실제 광개토대왕의 업적인 것처럼 설명을 해주기 때문이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시청자라면 해설까지 친절하게 곁들여 주니 진짜인줄 알 가능성이 다분하다.
2.3. 시간을 달리는 사회상 묘사
고국원왕이 굴욕을 맛보기는 했지만 그를 딛고 일어난 소수림왕의 체제 정비와 고국양왕의 의욕적인 확장 준비로 왕권이 한창 강해지던 고구려의 리즈시절에 신하가 귀족이랍시고 왕을 마구 갈궈대고,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반란까지 일으키는 고의적인 갈등 구조만 하더라도 엄청나게 식상하다. 이게 다 정립의 소설 '광개토대제' 때문으로 광개토대왕을 다루는 소설에서는 이런 군약신강의 구도를 기본으로 우려먹는 데다가 허구헌날 갈등이 나서 주인공을 몰아넣고 주인공은 역경을 딛고 그것을 해결한다는 식의 지긋지긋한 전개는 대조영에서 밑천이 드러난 클리셰에 불과하다. 물론 역사적으로도 전혀 맞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역사적으로 전혀 성립될 수 없는 전개를 그대로 밀고 나가면서 41~42화에서는 그동안 왕권을 무시하고 실권을 휘두르던 국상 개연수가 결국 도영이 일로 반란을 일으키더니 고국양왕에게 억지 조항을 들이대면서 무슨 영국의 존 왕이 마그나 카르타를 서약하게 만드는 수준의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45화에서는 결국 개연수가 담덕에게 죽음을 당하며 그를 따르던 귀족 반란군이 패퇴하고 모두 숙청되는데 문제는 뒷처리 묘사가 영 부실하다.[13] 당장 귀족들이 숙청되면 몰수된 그들이 영유하고 있던 토지들부터 처리해야 하는데 어쩌려고 아무런 언급이 없는지?[14]
또 후연이든 고구려든 군주의 칭호로 '''황제'''라는 말이 밥 먹듯초반 쓰이는데 연나라의 왕 모용수는 386년 1월에 들어서야 황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에러가 있다. 그리고 광개토대왕 문서 초입에 잘 설명되어 있듯이 고구려에는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당시의 기준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왕'이라는 칭호가 반드시 '황제'보다 작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주문왕과 무왕(주) 이래 주나라의 군주들과 춘추전국시대의 군주들은 음...
여기에 후연에서 받은 배상금을 사용해서 전국적인 도로망 건설 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백성을 의무적으로 국책사업에 부려먹는 역(役)은 어디가고 품삯을 주고 백성을 부린다고 한다. 그런데 동양사에서 국책사업에 인력을 유상으로 동원한 것은 북송시대 왕안석이 신법의 일환으로 입안했던 모역법이 시작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한국사에서는 고임(雇賃)을 주고 백성을 공식적으로, 대대적으로 동원한 것은 조선 정조 때 수원화성 건축 사업이 시작이고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이 유명하다.[15]
게다가 고구려 시대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표현과 행정이라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2.4. 상식 수준의 역사 지식 부재
- 후연군에게 거짓으로 항복한 모두루의 말에 따르면 요동성이 구불구불한 협곡을 따라 방어용으로 지어진 천혜의 요새란다. 그런데 실제 요동성은 고구려에서 몇 안되는 평지성으로서, 천혜의 요새 따위가 아니라 전략적 위치상 평지라도 성을 세울 수밖에 없어서 세운 곳이었다. 뭐, 애당초 대조영때와 마찬가지로 요동성과는 하나도 매치되는 게 없는 문경새재 관문에서 공성전을 촬영하면서 자막만 요동성이라고 띄워놓는 행태가 이뭐병이지만.(...)
- 관미성 공략 과정에서 강화도 지도가 등장하는데, 강화도가 모든 간척이 끝난 현대의 지도로 등장한다. 본래 강화도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간척을 통해 활발히 그 규모를 키워 온 섬이므로, 오늘날보다 몇배는 더 해안선이 자잘하고 섬들이 복잡했다. 해당 항목 참조.
- 여기에서 담덕이 700년 고구려 역사를 운운하는데 고구려 건국은 기원전 37년이고 당시는 엄연히 380년대다! 그러니까 지나봐야 400년인데 도대체 뭘 근거로 700년을 운운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혹자는 고구려 900년설[16] 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애초에 고구려를 900년으로 따지더라도 당시는 600년이 되어야 맞다. 그저 충공깽.
- 3화에서도 역시 고무와 모용수가 회담하는 장면에서 환빠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충격과 공포의 발언이 등장했다. 고무가 "요동성에서 중산까지는 우리 선조 치우천왕의 영토"라고 한 게 그것. 도대체 왜 치우천왕이 고구려의 선조로 언급되는지도 의문이거니와 같은 PD의 대조영에서 양만춘이 "치우천황이 말을 달리며 중원을 호령한지 천 년이 지났다"고 운운한 것과 오버랩되는 장면이다.
- 이것이 발전해 42화에서는 안시성주 해모월이 집무실에 도깨비 얼굴을 가져다놓았고 안시성을 빈집털이 한 담덕은 그것을 보더니 다시 치우천왕 운운한다. 아니나 다를까 담덕은 치우천왕 드립으로 해모월을 설복시키는데 치우가 배달국을 다스리면서 일흔 세 번을 싸워서 일흔 세 번 이겼다거나, 배달국을 강대한 제국으로 만들었다거나 하는 환단고기의 내용이 나와버렸다.(...)심지어 담덕의 꿈과 목표란다. 본격 제작진 환빠 인증.
- 마지막으로 후연, 북위, 동진과 같은 명칭은 훗날의 역사가들이 같은 국명을 가진 나라들을 서로 구분하기 위해[17] 임의로 붙인 것인데, 이것을 당시 시대상에 맞지도 않게 등장인물들이 마구 사용하고 있다. 당대에는 당연히 그냥 연나라, 위나라, 진나라로 부르는 것이 맞다.[18]
3. 물질적 고증 오류
3.1.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갑옷 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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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청자들은 바로 전작인 근초고왕(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고증이 잘 된 의상 및 갑옷을 그대로 이어받길 원했지만, 제작 기간이 서로 겹친 때문인지 초장에는 과거 대조영(드라마)에서 써왔던 것으로 회귀하는 바람에 거꾸로 엄청난 실망만 안겨주었다. 특히 김종선 감독이 '저런 목가리개가 있으면 얼굴이 안 보인다'는 식으로 근초고왕 갑옷의 고증을 깠다는 말이 스탭을 통해 퍼지면서 제작진에 대한 기대는 그저 곤두박질치고 말았다.[19] 거기다 근초고왕 시절 호평받았던 귀중한 백제 갑옷을 '''칙칙한 금색으로 떡칠하고 이상한 용무늬 판때기를 붙여놓는 만행'''을 저질러서(사진 참조기사) 근초고왕의 고증을 호평하던 수많은 시청자들이 뒷목을 부여잡았다.
아무리 한국 사극이 주인공에게 투구 따위를 안 씌우기로서니, 이미 한 번 고증하고 호평까지 받은 것을 저런 이유로 무시하며 되물리려고 드니 어찌 보면 반감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겠다. 그리고 누차 강조되는 점이지만 고증에 더해 디자인만 잘 하면 고증도 충분히 멋있을 수 있다. 아니, 애시당초 갑옷이란 것이 단순히 방호력 못지 않게 편리하면서도 멋있는 것이 중요한 물건이다. '''뭐가 어찌되었든 지금의 판타지 갑옷보단 나을 것이다.''' 갑옷고증의 퇴보
게다가 중국 후연의 병사들은 기본이고 장군들이 입는 갑옷까지도 대부분 대조영에도 나온 당나라 갑옷인데 당시에는 고증이 잘되었다는 칭찬을 받았으나 300여년 전 배경에 대조영 때 입었던 같은 갑옷을 우려먹기 하니 고증 따윈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오히려 후연 병사들과 장군들도 고구려의 것과 거의 동일한 것을 입혔어야 고증에 맞고,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근초고왕 때 나왔던 후조 장군들과 병사들의 갑옷을 입혔어야 옳았다. 더욱이 대조영(드라마)의 거란 갑옷은 광개토태왕에서 말갈이 입었고 정작 거란은 본 적도 없는 괴상한 풀갑옷을 입고 나온 것은 도대체 ?
이와 관련해 홈페이지의 시청자 게시판에서는 고구려 투구의 장식이 쇠뿔 모양(드라마 대조영식)이냐 날개 모양(드라마 근초고왕식)이냐 언쟁이 벌어졌는데, 결론적으로 드라마에는 둘 다 나온다. 요동성 장수들은 쇠뿔 모양, 국내성 장수들은 날개 모양으로 연출되고 있이다. 그러나 10화 이후부터는 그 날개형 투구가 잘 등장하지도 않을 뿐더러, 투구 자체의 형태도 종장판주가 아닌 정체불명의 통철판주에 날개만 그럴싸하게 장착된 형태였고 더큰문제는 한국 사극의 고질적 병폐인 주조연들의 투구 착용 자체가 미흡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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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왕 복식의 재현품
투구를 비롯해서 고구려 왕이 썼다는 백라관이나 흰 비단 모자 등도 안 나올 뿐만 아니라 기존의 대신들의 책이라는 모자만 하더라도 여전히 대조영으로부터 한 발짝도 진보하지 않은 엉망인 상태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20화 이후 이런 문제를 의식하여 기존에 근초고왕에서 재현된 종판장주(종판투구)에 찰갑들을 고구려군 병사들이 사용하는 모습이 보인다. 천군의 경우에는 근초고왕 때의 모습의 회색을 살렸지만, 일반 고구려군의 경우에는 황갈빛의 색을 입혀서 벽화에 나온 고구려군의 모습을 살린점도 눈에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주연들 갑옷은 중국식과 판타지 사이의 어중간한 갑옷을 사용하고 있으니... 이게 도대체 중국 무협 사극인지, 한국 고구려를 재현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불행하게도 몇년후 팩추얼 사극 한국사기에서 이런 논란을 무시했는지, 고구려의 갑옷을 근초고왕(드라마) 시절의 호평받던 갑옷들이 아닌 이 작품의 갑옷을 또다시 재활용하는 무개념적인 모습을 보였다.
말갈족 병사들(장군 제외) 복장을 보면 대조영 드라마에서 거란족이 입었던 그 갑옷이다
그대로 가지고 온것이다
3.2. 기타
40화에서 나온 도영의 꽃신은 '''고무 밑창'''이 붙어있다! 물론 배우는 현대인이라 가죽신이나 짚신 따위를 신으면 발에 금세 문제가 생긴다지만, 적어도 연출상으로 그런 시대착오적인 밑창은 보이지 않게 촬영을 전개했어야 하건만, 촬영된 장면을 보면 그런 안배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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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가 '''고구려 건안성 수군 기지에 일본 아타케부네가 떠 있는 장면까지 나왔는데, 아타케부네는 훨씬 뒤인 전국시대는 가야 등장하는 배다.''' 더욱이 고대 일본 조정은 무슨 무로마치 막부풍으로 재현되어 있는데다가, 포구에 떠 있는 것은 역시 아타케부네다.(...) 재현 센스가 아무리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는 수준. 정작 아타케부네를 다루어야 했던 드라마에서 아타케부네의 차이와 세키부네의 차이가 '''고작 지붕 하나'''[20] 였던 것을 비교하면 이건 무슨 썩을 오버테크놀로지?
4. 언론 호도
그런데 정작 언론에서는 첫 시청률이 10.9% '''씩이나''' 된다면서 되지도 않는 헛바람을 불어넣었다... 심지어 왕모의 연기를 파워풀하다고 시청자들이 호평했단다. 아무래도 언론이 근초고왕의 X망 이후로 사극 평가 기준을 낮추는 데 합의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근초고왕도 그렇고 광개토태왕도 그렇고 이렇게 호도할 수 있나. 그나마 근래에는 시청률이 괜찮은 듯. 분명한 선악 구도와 자극적인 민족주의+영웅주의적 코드에 힘입은 바 크다. '''물론 이건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다!'''
제작진이 얼마나 정줄을 놓았는지 알 수 있는 기사. 결국 한국일보에서는 '시청자 분노 폭발'이라 전했지만 이미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이 드라마가 '''중동에 수출'''되는 장면이 뉴스에 잡힌 바 있었는데, 하필이면 막장극마냥 모용수가 윽박지르는 장면이라서 이거 참 인지부조화스러운 상황... 그저 국가망신 수준. 이러한 시청자들의 꾸준한 디스로 드디어 2011년 11월 5일 11시 KBS1의 TV비평 시청자 데스크에서 '<대하드라마 광개토태왕>을 비롯한 시청자의견'으로 다루어지게 되기도 했다.
[1] 전작도 그렇지만 애당초 제작자나 감독이 직접 스스로 만든 작품을 까는 것은 스스로의 커리어와 함께 자폭하는 짓이므로 저렇게 답변하는게 당연하긴 하다.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작품의 실제 역사와의 불일치 정도는 기황후(드라마)와 쌍벽을 이루는 수준이거나 '''그 이상'''이다. 아무리 역사왜곡이 심한 사극이라도 기본적인 스토리는 실제 역사의 틀을 따라가기 마련인데 이 드라마는 그것조차 없었다.[2] 사실 이것부터가 일제의 식민사관으로부터 연원한 문제 많은 인식이다. 따지고 보면 이 보다 전쟁과 침략이 많이 난 곳은 수두룩하며, 조선시대만 해도 큰 사건이 여러개 있어서 그렇지 그 외엔 국지적인 접전 수준의 전쟁만 있었다.[3]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한 형민우의 만화 태왕북벌기. [4] 존재하지도 않는 사료를 작가가 직접 창작해 버린다. 이른바 '후연서'라는 것이 그것인데, 우습게도 근대적 한문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5] 그런데 종살이도 노비 취급으로 본다면 대조영은 등장하기 무섭게 그런 꼴이 되었다.(...)[6] 사실 애초부터 광개토대왕의 당고모가 광개토대왕과 비슷한 외모다... 아무리 설정상 막내딸에 양녀라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한 동안이 아닐 수 없다. 굳이 따지자면 고무(김진태)가 고국양왕(송용태)과 비슷한 나이대의 외모인 것부터 탓해야겠지만.[7] 물론 삼국시내 전체적인 사료는 신라가 가장 많으나 이건 신라가 200년 더 존속해서 그렇고, 광개토대왕 시기인 4세기 까지는 고구려사료가 신라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광개토대왕 시기 기록 양은 비교불가. 일단 광개토대왕릉비 하나만으로 당시 신라, 백제 기록 합친거보다 많다.[8] 물론 양녕대군이 충녕대군을 왕으로 올리기 위해 망나니 짓을 했다는 이야기는 사실무근이다. 양녕대군 문서 참조.[9] 6월에 고구려가 요동을 점령했고, 7월에는 요서에서 후연의 여암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11월에 후연의 모용농이 여암을 작살내고, 그 기세를 몰아 요동과 현도까지 밀고 들어와서는 요동에서 고구려를 쓸어버렸다. [10] 그 에피소드 후반에서 거란에게 잡혀간 고구려 백성 만 명을 데리고 돌아온다는 언급이 있었긴 했지만...[11] 예컨대 경기도의 도청으로 따로 '경기도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경기도 아래의 '수원시'에 경기도청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12] 당시에는 후연의 수도인 용성(龍城).[13] 그 개연수의 난조차도 제대로 처리할 명확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며 안시성 성주 해모월과 시간 끌기로 뒷치기, 요동성에서 고무의 지원군이 도착해 진압되는 식으로 처리했다.[14] 특히 이 문제의 45화는 담덕이 궁궐에 침입해 온갖 적군과 방해요소를 물리치며 개연수를 죽이는 단 몇 시간의 장면이 한 화에 전부 담겨 나오는 통에 이 드라마에 호의를 갖던 시청자들에게조차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15] 애당초 품삯이란 화폐 경제가 대중화된 사회에서나 유용하다. 동원하는 사람이 소수라면 화폐 대신 현물로 품삯을 줄 수도 있었겠지만 전국적인 토목사업에 대규모로 인력을 동원하면서 그 인원 전체를 관리하고 그들 전원에게 나눠줄 현물 품삯을 확보, 수송, 보관, 관리, 분배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곤란한 일이다.이 때문에 백성들을 매년 일정기간 동안 국책사업에 동원하는 역(役)은 단순한 백성의 노동력 착취가 아니라 당대 기준으로는 엄연히 세금의 일부였고 이는 동양사뿐 아니라 서양사에서도 마찬가지다.[16] 졸본의 연계성 문제라든가 사서에 기록된 몇 가지 이설들에 근거한 소수설이다. 대체로 환빠적 경향을 띠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그런 것만도 아니고 소수의 전문 연구가들도 이를 주장하곤 한다.물론 BC 37년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17] '연(燕)'이라는 이름만 해도 춘추전국시대의 연나라와 함께 전연, 후연의 3개가 있다. '한(漢)'이라는 이름은 더욱 심해서 유방의 전한, 유수의 후한, 유비의 촉한, 유연의 한, 이수의 성한, 유엄의 남한, 유숭의 북한. 이렇게 7개나 된다![18] 단적으로 우리나라에 대입해 보면 고조선이라는 명칭은 후대의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古)자가 붙여진 것인데(단, 처음 고조선이라는 말을 쓴 일연은 원래 '단군조선'을 '위만조선'과 구분하려 한 것이었다.) 단군이 자기 나라를 가리키면서 "우리 고조선은~"이라고 말하면 얼마나 웃기겠는가... 이건 변명의 여지도 없이 그냥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단적인 예로 드라마 태조 왕건의 견훤도 자국을 '후백제'라고 부르지 않고 시종일관 대(大)백제국 내지 백제국이라 한다.[19] 실제 출토된 유물이나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통해 삼국시대의 갑옷 목가리개를 보면 대부분 입가에서 귀밑 정도 높이라서 얼굴이 가려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문제는 근초고왕(드라마)의 목가리개가 이보다 조금 크게 구현되는 바람에 높이가 관자놀이까지 올라와 배우들의 뒷태를 가리곤 했던 것. 물론 그렇다고 해서 '''촬영에 큰 지장은 없었다!''' [20] 물론 불멸의 이순신에 나온 것과 같은 형태의 아타케부네도 실제로 존재했으며, 세키부네 또한 실제로 크기가 제각기 달랐음을 감안하면 판옥선 및 아타케부네처럼 큰 크기를 가진 세키부네 또한 임진왜란 당시에 실제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실제 아타케부네는 불멸의 이순신에 나온 것보다 더욱 크고 화려한 것도 존재했으며(대표적으로 위의 이미지처럼 광개토태왕에 나온 안택선), 반대로 세키부네는 판옥선 및 아타케부네보다 작은 것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불멸의 이순신에 나오는 아타케부네와 세키부네가 크기와 모양에 있어 다양성이 없었던 게 문제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