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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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노동운동가, 정치인.
정의당 내 여러 계파 가운데서 서울대 PD계열의 대표 주자였다. 2020년 10월 정의당 제6기 전국동시당직선거에서 범 PD계열로부터 두루 지지를 받아 당내 최대 계파인 NL계열의 인천연합을 꺾고 정의당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PD계열 정치인으로서 그는 평등을 강조하여 '평등한 사회', '민주적 사회주의', '서민을 위한 정치'를 표방해 왔고, 정책적으로는 재벌 및 기업 규제 및 노동조합 정책에 앞장서 왔다. 운동권 출신이긴 하지만 이미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인 90년대 학번 세대이기 때문에 민주화 운동과는 무관하다.[4]
취임 반년이 안되어 같은 당 장혜영 의원에 대한 성추행 사건을 일으켜 취임 109일 만인 2021년 1월 25일 직위해제(사퇴)되었다. 이후 1월 28일, 최고수위 처벌로 정의당에서 '''제명'''당했다.
2. 생애
1970년 서울특별시 용산구에서 철도공무원 아버지와 국수 장사를 하시는 어머니 사이에서 3남 중 셋째로 태어났다.
김종철은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서 학교에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공무원이고 어머니가 맞벌이로 장사까지 했는데, 당시 공무원 월급이 박봉이었다 하더지만 끼니를 굶을 정도라는 것은 너무 심한 거짓말이라는 주장이 있다. 당시 말단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서울에서도 특별히 부자 동네가 아닌 이상 동네에서 비교적 괜찮게 사는 편에 속했다. 김종철이 자랐던 서울 용산구 이촌동은 60년대까지는 모래사장밖에 없는 허허벌판이었으나, 70년대 초에 아파트 단지가 계획단지로 건설되면서 70년대 당시 여의도, 반포동과 더불어 상당한 부촌에 속했다. 학창 시절 7살 터울의 큰형이 대학교에 들어가 데모를 하면서 가족 전체가 사상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큰형의 책을 모두 탐독하여 마르크스에 심취했다고 한다. 김종철은 이촌동의 중경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재수를 택했다. 원래는 이과였으나 재수 시절 문과로 갈아타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 입학했다.
큰 형과 둘째 형을 통해 이미 사상화 된 상태에서 대학에 입학한 그는 자연스레 운동권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1992년 경제학과 과대표를 맡은데 이어, 1993년에는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을 역임했다. 운동권으로서 그는 PD계열이었으며, 학생회장 시절 '대장정'이라는 운동권 그룹을 만들었다. 기사[5]
군복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는데, 20대에 사법시험 공부 및 직장 생활을 거쳐 만 29세 때 정계에 입문한 그의 경력상 군복무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한때 사법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다고 한다.
졸업 이후에는 정계에 입문할 때까지 한 벤처기업에서 근무했다. 원래는 회사에 계속 다니다가 민주노총에 가서 노동운동을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1999년 권영길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2살 연상인 직장 상사와 결혼했다.
3. 정치 활동
PD계열로서 김종철은 김대중의 민주당에 대거 흡수된 NL계열과 달리 김대중과의 연합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1999년 건설국민승리21 권영길 대표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여 부대변인과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민주노동당 초창기에는 서울 용산구 지구당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용산구청장 선거에 출마하는 등 용산을 지역적 기반으로 두고 활동했다. 그러나 2001년 9월 NL계열이 대거 민노당 합류를 결정한 후 소위 '용산지구당 사태'가 발생, 당비 대납, 위장 전입 따위 스캔들이 터졌다. 당시 NL계열이 용산 지구당에 집착했던 이유는 용산에 미군기지가 있어서 반미 시위를 일으키기에 좋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결국 NL계열의 공세에 김종철은 용산 지구당에서 쫓겨나고 동작구로 지역을 옮겨야 했다. 자세한 사항은 인천연합(정파)#s-4 문서를 참고.
2004년 6월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었다. 기사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당내 경선에서 자주파(NL)가 지지하던 김혜경[6] 후보를 제치고 공천을 받았으나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에 밀려 2.97%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기사 당시 선거 슬로건으로 '민주적 사회주의'를 내걸었다.[7][8]
2008년 2월 15일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진보신당 창당발기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 이후 진보신당에서 대변인을 역임했다.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후보의 동작구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1년 11월 25일 진보신당의 부대표로 선출되었다. #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진보신당 소속으로 서울 동작구 을에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다. 5.7%라는 나름 유의미한 득표율을 거두기는 했지만 민주통합당 이계안 후보와의 단일화 불발로 인해 사표론에 휩싸이기도 했다. 실제로 단일화가 되었다면 매우 박빙인 상황이 되었을 수 있었다.
2012년 10월 27일 홍세화 상임대표가 사퇴한 후 10월 29일 안효상 공동대표까지 사퇴하자 진보신당의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았다. 기사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노동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이 때 서로 관계가 앙숙이었던 통합진보당 후보의 지지를 받은 게 의외라면 의외일 수 있겠다. 다만 끝내 정의당 노회찬 후보와의 단일화에는 임하지 않았고,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다. 노회찬으로 단일화가 되었다면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노회찬에게는 상당히 아쉬운 결과로 보여진다.
2015년 말 노동당에서 탈당한 이후로 정의당 소속이다. 박빙이었던 19대 총선,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모두 야권단일화에 임하지 않았고 그 결과 초박빙 또는 야권 우세였던 결과가 모두 여권 승리로 바뀌면서 후보를 단일화해야 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에 시달렸다. 그러나 정작 20대 총선에서 후보 사퇴로 더민주 허동준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구는 나경원 의원에게 돌아갔다.
2016년 20대 총선 이후 노회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의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때 노회찬과의 단일화에 실패해서 노회찬이 당선되지 못한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노회찬 의원의 사망 이후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의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2020년 총선에서 미리 동작구 을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통과되면서 최종적으로는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해 비례순위 16번에 배정되면서 결국 또다시 낙선했다. 기사
정의당의 21대 총선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았다. #
2020년 5월 정의당의 선임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 #
2020년 9월 정의당 제6기 전국동시당직선거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하였다. '''과감하게 단단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경험과 내용을 강조하며, 진보적 사회운동정당으로 정의당을 바꿔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9월 27일 발표된 결과에서 29.79%를 득표해 1위를 기록했지만, 선거가 비등한 4자구도로 치러지다 보니 과반득표는 하지 못해 27.68% 2위를 마크한 배진교 전 원내대표와 양자구도로 결선투표를 치르게 됐다. 10월 4일 결선투표에 앞서 1차 투표에서 4위를 기록한 김종민 전 후보와 공동 선언을 발표, 연대하게 됐다.[9]
결국 결선투표에서 55.57%를 얻고 당 대표에 당선되었다.
3.1. 6기 당대표
"선의의 정책경쟁"을 강조하였다. 기사 취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에 대해서 남북의 한반도 평화 군축을 제안하였다. 또한, 국회에서 정의당이 계속 입법을 추진하고 있던 중대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기사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전국민 고용 및 소득보험을 당의 중심 의제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기사
민주당이 당헌을 어기고 서울시장, 부산시장 후보를 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
국민의 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추진하는 노동법 개정에 대해 "순서도 방향도 틀렸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할 조치를 하면서 노동 개혁을 이야기해야지, 해고를 쉽게 해달라고 접근하면 동의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기본소득에 대해 취지에는 동의하나 그 재원으로 다른 직접복지를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예시로 대학등록금 무상교육, 상병수당, 주거보조금, 노인 기초연금 인상 등의 의제를 제시하였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위기 속에서 준칙주의를 고집하는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서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여당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 국민의힘에 "임신중지하면 처벌하겠다고 으름장 놓는 게 국가의 역할인가"라는 강한 워딩을 사용하면서 낙태죄의 전면 폐지를 촉구하였다. #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공무원연금·사학연금·국민연금 통합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10] #
11월 26일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놓고 국정조사 개최 여부로 갑론을박을 하고 있는 세태와 관련해 여야 모두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치가 토론해야 할 것은 안전하게 일할 권리이고, 몸에 대한 안전한 보장이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받고 낙태죄 폐지까지 더블로 가자고 강조했다.#
3.2. 당 제명
2021년 1월 15일 당시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했다.
2021년 1월 25일 같은 당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한 죄로 중앙당기위원회에 제소되어 대표직에서 직위해제되었다.#
2021년 1월 28일 오후 9시경, 정의당에서 김종철 前 대표에 대해서 당적박탈을 발표하였다. 이로써 김종철 前 대표는 공식적으로 무소속 신분이 되었다.# 김종철은 21대 총선에서 낙선하여 원외 신분으로 당대표가 되었었기 때문에, 정의당의 의석수에는 변함이 없다.
4. 사건사고/논란
4.1. 성추행 사건
2021년 1월 25일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인 배복주 부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브리핑을 열어 “오늘 당원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께 매우 부끄럽고 참담한 소식을 알려드리게 됐다”며 “지난 1월 15일 발생한 정의당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으로, 피해자는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인 장혜영 의원”이라 전했다.#
사건 경위를 보면, 1월 15일 저녁, 여의도에서 같은 당 장혜영 초선 의원과 당무상 면담을 위해 저녁식사를 가졌다. 면담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면담 종료 후 나오는 길에서 김종철 대표가 장혜영 의원에게 성추행을 하였다. 피해자인 장혜영 의원은 고심 끝에 1월 18일 젠더인권본부장 배복주에게 해당 사건을 알렸고, 그 이후 수차례에 걸친 피해자-가해자와의 면담을 통해 조사를 진행했다. 범행 당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2차 가해를 우려로 밝히지 않았다.
김종철 대표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인정하였고, 그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하기로 하였으며, 장혜영 의원에 따르면 형사고소는 진행하지 않기로 하였다고 한다.[11] 원내 주요정당의 현직 당대표가, 그것도 현직 국회의원을 상대로 한 성추문에 휩싸인 것은 더불어민주당 계열이나 국민의힘 계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유례없는 일이며, 정의당 내에서는 이를 두고 당을 "발전적 해체"하는 것이 어떠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불과 5일 전에 알페스 공론화 사건에서 "잘못 된 것이나, 이를 여성혐오에 이용해선 안된다"는 발언을 하자마자 사건이 터져 더욱 비판거리가 되었다. # 정확히 말하면 성추행 사건 발표가 25일이지 발생한 건 15일이고 알페스 관련 발언이 20일이므로, '''본인이 성추행한 후에''' 저런 발언을 한 것이라 알페스 등에 대한 주장의 차이와 별개로 이중적인 행보를 비판을 받고 있다.
한편, 피해자 장혜영 의원은 김종철 前 대표에 대한 형사고발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시민단체에서 김종철 前 대표를 고발하자 이를 두고 페이스북에 '피해자의 의사를 묻지 않은 경솔한 처사'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장혜영은 원치 않는 조사 과정에서 피해를 또다시 상기하는 것 자체가 일상으로의 복귀를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의 하태경 의원은 "정의당이 친고죄 폐지에 대선 공약으로 하고 주도적으로 폐지 하였다"고 지적하면서 정의당은 난감한 처지가 되었다. 하태경은 또한 "그런 행동이라면 친고죄를 다시 입법하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과 피해자 의견 존중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의 장혜영 의원은 피해자를 무시하는 형태라 비판했고, 정의당은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노력 중이라 하였다.[12]# 일부 성범죄 전문가 쪽에서는 피해자에게 함부로 정의 실현을 강요 할 수 없으며 피해자 회복을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13] 그리고 친고죄 폐지는 민사에서 형사로 가져온 것이지 신고 의무는 아니며 피해자 보호와 회복이 우선이고 의견이 우선이라는 의견을 대다수 내었다. 그리고 정쟁이 되지 말고 조직이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엄단하는 방식을 잘 보여주었기에 이런 방법에 대한 고민이 잘 되길 바란다고 하였다.[14]
결국 장혜영 의원과 정의당의 미고발 조치로 인해 공당의 당대표가 명명백백하게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법적인 처분을 받지 않는 꼴이 되었다. 과연 김종철 대표가 같은 당의 당대표가 아니었다면 장혜영으로부터 이렇게 관대한 봐주기식 처분을 받을 수 있었겠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겨레 쪽에서는 이번 논란이 보통에 사건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조직은 가해자를 내치거나, 피해자를 방치 내지 압박하는 방법을 썼는 데 정의당은 즉각 반응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내치지 않았고 가해자를 타자화 하지 않은 체 같이 안고 갔기에 낯설어 하는 것이라 하였다.[15] 그러면서도 이 기조가 계속 된다는 보장은 없으며 계속 되어야[16] 정의당이 생존 할 수 있을 것 이라 하였다.#
이번 보궐선거가 민주당의 잇따른 성추문으로 인해 선거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민주당은 본인의 잘못으로 일어난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며 줄곧 강하게 비판해온 정의당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수습할지, 보궐선거 후보는 낼지 여러가지 고심이 깊어졌다. 정의당의 잘못으로 일어난 선거는 아니나, 당에서는 무겁게 받아들여 무공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17]
결국 정의당은 무공천이 확정되었다.
5. 기타
민주노동당 안에서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약칭 '전진')이라는 정파에 속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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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For Your Soul 밈에 출현하기도 했다. 위의 키보드가 김종철, 아래의 빗자루는 노회찬이다.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조승수의 축하파티 도중 찍힌 사진이다. #
민중의 소리 이완배[18] 기자와 동기이며, 다른 운동권 동기들과는 달리 꾸준히 진보정당으로 활동하는 몇 안되는 인물로 평가된다.[19] 이 평가는 12년이 지난, 50대가 된 2020년 현재도 진행형이다.
방탄소년단의 팬이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최고의원이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병역특례를 주자고 주장했을 때 "BTS의 팬인 '아미' 일원으로서 노 의원 제안에 반대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대다수의 진보정당 정치인이 그렇듯 많은 낙선을 경험하였다. 이번 당 대표 당선은 7전8기 만에 이루어 졌다고.# 그러나 성추행 사건이 터지면서 3개월 만에 사퇴했다.
6. 소속 정당
7. 선거 이력
[1] 성추행 사건으로 인한 제명[2] 2021년 1월 25일 성추행 사건 이후에 모든 게시물이 삭제 또는 비활성화되어 있음. 현재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3] 2021년 1월 25일 성추행 사건 이후에 모든 게시물이 삭제되어 있음. 현재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4] 90년대 학번 운동권은 이를 매우 자조적으로 말한다.[5] 80년대 AMC그룹의 후신으로 정식명칭은 <민중정치 실현을 위한 대장정학생연합>. 대장정은 90년대 PD계열에서는 최대규모로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꽤 여러 학교 총학생회를 장악했지만, 당시 PD가 NL에 비하면 워낙에 소수파라서 대중동원력은 비교하기 힘들었다. 1997년 한총련 출범식 사태 이후 전면적인 한총련 개혁을 주장하다가 안받아들여지자, 98년 집단적으로 한총련을 탈퇴해서 학생연대회의(통칭 YD)를 만들었고,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전국학생행진으로 이어졌다.[6] 원래 김혜경은 자주파(NL)/평등파(PD)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당시 마땅한 서울시장 후보가 없던 자주파(NL)가 조직적으로 지원하였다.[7] 미디어오늘 당시 기사 오마이 당시 기사[8] 노회찬계열이었던 이재영 전 민주노동당 정책실장은 당시의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선거 슬로건에 대해서 '당 강령과 정책을 알려야 한다는 강박이 과중했던 탓에 김종철 선본이 세운 선거 전략과 이미지 계획에 부합하지 않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때문에 서울시민들이 김종철 후보를 특이한 군소 후보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레디앙 칼럼[9] 한편 1차 2위였던 배진교 결선후보는 3위 박창진 전 후보와 연대했다.[10] 유승민도 과거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연금개혁을 추진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국회법 개정안을 수용한 대가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에 합의하기도 했지만, 박근혜가 이를 배신의 정치라고 비난하기도 했다.[11] 비록 성추행은 친고죄가 아니지만, 피해자의 진술을 통해 수사를 하므로 설령 고발조치가 들어간다 한들 장혜영 의원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처벌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12] 한 네티즌은 “장 의원의 말을 이해하지만 친고죄의 존치론이 바로 그것”이라면서 “정의당 심상정의 2012년 대권공약이었고 그동안 친고죄가 폐기돼서 성범죄 고발률이 올랐다고 자화자찬하더니 자기들 내부 성범죄는 고발을 안 하겠다는 건 이중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13] 폐지 된 성범죄 친고죄가 원래 이런 목적이었다. 훗날 악용 되어서 문제 였다.[14]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를 맡고 있는 서혜진 변호사는 “김 전 대표와 장 의원은 공인 중의 공인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직에 있는 여성 피해자에게 우리가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현직 국회의원인 장 의원의 행동과 선택이 많은 여성 피해자들에게 메시지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관여하지 말라’는 건 상당히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직 국회의원 피해자와 현직 정당 대표 가해자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 브리핑을 통해 공개됐는데 ‘공동체적으로 해결한다’는 식의 발언은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했다.[15] 애당초 법이 있는 이유가 죄지은 사람을 처벌하고 격리 시키고 교화를 통해 재범을 맞고 피해자 보호와 공동체 안정화가 목적이다.[16] 신고하고 재판과 처벌을 하는 이유는 가해가 피해자와 같은 공간에 있게 하지 못하고 보호하기 위함이다. 지금 당장은 주위 눈치 때문에 그러다가 안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법이 있는 이유가 그것이고 성범죄 강경한 처벌은 가해자가 피해자와 같은 공간에 있지 못하기 위함이다. [17] 사실 비단 성추행 뿐만 아니라 정의당의 선거 자금도 부족한 등 여러모로 선거에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무공천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18] 2020년 정의당 대표 선거 지지의 일환으로 김종철 후보에게 응원의 글을 써주기도 했다.[19] 참고 : 김용민 브리핑 080112.금[20] 2021년 1월 28일 오후 9시 정의당에서 장해영 성추행건으로 김종철 전 당대표의 당적을 박탈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