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개요
인터넷 만화가 김태권이 2004년에 디시인사이드의 카툰연재 갤러리에 연재했던 역사 만화. 연재 시작 당시에는 중세적인 화풍과 당시 시류에 영합하는 반전, 반미적인 내용으로 디시 네티즌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디시에서의 연재는 중도에 끊겼으며, 이후 프레시안을 걸쳐 오프라인으로 작업을 거듭하여 단행본으로 출간되기에 이른다. 2016년 말 기준으로 5권까지 출간되었다. 작가가 밝힌 완결 예정은 6권.
출판사는 원래는 '길찾기'였다가 개정판을 내면서 '비아북'으로 옮겼다. 개정판으로 옮기면서 역시 비아북에서 출간된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시리즈와 통일성을 맞추기 위함인지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로 제목이 바뀌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가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권과 3권 사이에 나왔는데 구분을 쉽게 하기 위해 바꿨다는 추측도 있다.
십자군 전쟁이라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익숙치 않은 주제를 가볍고 알기 쉽게 다루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할 수 있겠다. 그림 또한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내용을 짜서 만든 바이외 태피스트리의 그림체를 모사해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재연한 점도 높게 살만하다. 만화라는 매체의 장점을 잘 살렸고 '''흥미'''로 따지면 우수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1, 2권 합쳐 15만 권이라는 흔치 않은 판매고를 세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2000년대 초반의 반미 열풍도 가시고 이슬람권에 대한 시각도 많이 바뀌게 되는 한편 '정치를 위해 역사를 왜곡한다'와 같은 독자들의 비판이 누적되었다. 아래는 그 비판에 대한 정리다.
-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싶자면 십자군 전쟁 시대의 디테일한 역사가 궁금하다면 작가가 뒤에 모아놓은 참고서적들을 직접 찾아보자. 책 내용 자체는 이덕일이나 시오노 나나미에게 미안한 수준으로 역사왜곡과 편향의 절정이지만 참고서적은 나름 꼼꼼하게 정리하였다.
- 사실 국내에서 십자군에 관련된 입문 서적이나 만화가 잘 없기 때문에(당연히 김태권의 책보다 훨신 낫지만 그래도 까일만한 시오노의 십자군 이야기은 별로 좋지 않고), 십자군에 관련된 내용을 입문하고 싶으면 김태권의 평가과 달리 토머스 F. 매든의 서적을 참고하는 편이 낫다.
- 작가는 1권에서 참고서적들을 소개하면서 '이런 좋은 책을 내버려두고 일본 작가의 우익적인 역사관이 삽입된 책이 유행하는게 이상하다'는 서평이 있는데 이건 누가 봐도 시오노 이야기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가장 비판을 받는 시오노의 주장들은 다수가 1970년까지 로마사 연구가 기반이 된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가장 비판을 받는 제국주의부터 엄연히 기존의 주설이었던 로마의 방어적 확장론을 기반으로 한다.
2. 비판
2.1. 그림체나 패러디에 관해
중세 화풍을 나름 고증하려고 노력한 점은 인정해야 하지만, 패러디에서는 아재 개그의 연속일 뿐이다.
후반권에서 대중적인 패러디가 늘었는데 이건 굽시니스트의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나 최훈의 삼국전투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즐길 방식이지 십자군 전쟁 1, 2권의 분위기를 좋아할 기존 독자들이 좋아할 방식은 아니다. 사실 3권에서부터 심영 드립을 비롯한 패러디가 나왔고 4권에선 샤티옹 똘마니로 나오는 루피등 ... 5권에는 빌리 헤링턴 드립을 쓰기도 했다, 샤티옹이 어깨에 칼을 맞으면서 "oh my shoulder!"라고 외친다.
5권의 중심인물인 사자심왕 리처드 1세는 세기말 패왕 그 자체, 거기다 아버지 헨리 2세는 지상 최강의 아버지다. 리처드 1세의 형제는 각각 토키, 켄시로, 쟈기로 나온다. 클레멘스 3세는 계왕신... 거기다 무다무다나 오라오라 같은 죠죠 패러디까지 나온다. 지금까지의 노선과는 너무 달라서 당황스러울 정도. 참고로 살라딘은 그냥 딱따구리처럼 생겼다. 아말릭과 싸움에서 하얗게 불태우며 확 늙어버렸지만...
메시지와는 별개로 풍자나 개그의 수준이 심히 썰렁한 경우가 많다. 주로 언어유희를 구사하는 편인데, 작가도 재미없다는 자학개그를 만화 내에서 시전하는 수준이다. 3권에 내가 고자라니드립과 드라군 놀이를 시전하기도 했다. 2권에서도 로베르 기스카르의 아내인 시켈가이타의 활약에 "유혈'''낭자'''로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1, 2권의 드립은 아재개그보다는 예전의 개그를 이용하는 편이 크다.
그 외에도 부시를 이용한 개그도 있고 마블 관련 패러디도 있다.레몽 : "보에몽 공작! 당신이 먹어댄 특별한 메뉴(인육 바베큐) 덕에 '''사람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랴!"
보에몽 : "'''사람 냄새'''가 난다니 이 얼마나 '''인간적'''이오?"
이런 개그는 코드 맞는 사람은 거의 배꼽 잡고 웃을 수 있는 개그이긴 하다. 문제는 3권 넘어서면서부터 김태권 항목에도 실려 있듯이 "우린 '''나지''' 님과 같은 고향 출신의 누비아 용병들이다. 이제 정신이 번쩍 '''나지'''?"를 개그로 한다.
예를 들자면 3권 116페이지의 십자가 드립이나[1] 3권 프롤로그 27페이지의 알리는 '''알'''아서 물러가라! 취향대로 받아들이자.
2.2. 정치적 편향성에 따른 역사왜곡
연재 시작 의도 자체가 이라크 전쟁 반대였기 때문에 십자군 전쟁의 본질을 같은 것으로 억지로 대입하고 시작했다. 실제로 이라크 전쟁과 미국의 군사개입에 대한 악의적 비유가 꽤 많다.
가장 큰 문제는 9.11 테러와 반미열풍으로 인해 잠시 불었던 '''관대한 이슬람의 떡밥'''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이슬람권이 타 종교에 관대하고 유대인, 오리엔트 정교회 등의 지지를 받던 시절은 엄연히 십자군 전쟁보다 수백년 이전 라쉬둔 왕조나 우마이야 왕조 시절 이야기고 서기 10~11세기 이후로는 압바스 왕조의 관료제가 튀르크계 군벌들의 봉건 통치로 전환[2] 되고 그 여파로 중동의 비무슬림 인구가 대거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비무슬림에 대한 관용성이 점점 약해진다. 물론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철저한 체리피킹을 통해 마치 십자군 전쟁 당시 현지 무슬림 토후들이 라쉬둔 왕조만큼 기독교인에게 관대한 것으로 나온다. 이슬람 신학이나 역사학 등에 대한 큰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사관의 친이슬람적인 논조를 중심으로 보고 해당 포스트모더니즘 사관 외에는 다 편향적인 쓰레기 정보로 제껴놓으니, 이슬람과 중세유럽의 서술은 사실상 '''역사왜곡'''이며 현실 정치 문제를 중세사에 아무런 가감도 없이 마구 대입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이러한 왜곡된 내용들은 연재가 시작된 2003년 당시에는 국내에 생소했던 십자군 전쟁사에 대한 이해가 드물고, 부시 대통령의 일방적 행동과 무리한 이라크 침공으로 반미 감정이 오를대로 오른 시점이라서 큰 지지를 받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십자군 전쟁에 반미주의를 억지로 끼워 맞춘 부분에 공감대를 찾기 쉽지 않다. 당시에는 시류에 발맞추어 낸 만화이지만 격세지감이 너무 심한 편. 연재 당시의 시사나 현대 정치와 관련된 비유가 실리지 않은 페이지 자체를 찾기 힘들 정도다. 또한 운동권 특유의 작가의 정치사상을 곳곳에 대입해서 구판 시절부터 억지스러운 보수 세력 비난을 집어넣은 부분도 비판을 받는다.
2.2.1. 반미 관련 사례
1권의 경우 본 파트를 '부시도 없고 블레어도 없어 그 만큼 세상이 평화롭던 시절'로 시작하고 있으며 은자 피에르가 타고 다니는 나귀부터가 부시의 얼굴을 하고 있는 '부시나귀'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자체는 상당히 막장스러운 면이 많았고 명분도 적절치 않았으니 이 정도까진 꽤 재치있는 비유라고 할 수도 있다.[3]
하지만 문제는 정도에 있다. "왜 십자군이 기독교도인을 죽이냐?"는 질문을 던지며에서 "부시가 당선된 것부터 알 수 없던 일이었지만"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후 등장인물이 죽을 때마다, 어느 마을 하나 함락시키는 것마다 끼어들어서 부시와 같은 짓, 현대 미국과 같은 짓이라며 반미드립을 끼워넣는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예시를 들기 어려울 지경.
프롤로그 만화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악당은 다 부시의 외모를 하거나 미국이나 다름없다는 비방을 자주 한다. 이런 식으로 대입된 인물들은 캄비세스 2세나 셀레우코스 제국. 거기에 이스라엘과 이란이 수천년 전에 우방이었단 이유로 지금 이스라엘이 미국 편 들어서 이란을 압박하는 것을 촌극이라고 비웃었는데, 국제 사회에는 제국의 주변 지역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법이다.
반미 드립들이 너무 철지난 것임을 인식했기 때문인지 길찾기에서 비아북스로 옮겨온 개정판에는 이라크 전쟁, 조지 W. 부시를 조롱하는 대목들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예컨대 부시 나귀가 2004년 재선에서 떨어지겠다고 울상을 짓는 장면은 이러다간 버락 오바마가 당선되겠다는 하소연으로 바뀌었고 초판에는 약방 감초처럼 등장하여 갖은 개드립을 치던 부시나귀의 비중 자체가 상당히 줄어서 이젠 그냥 탈 것 신세로 전락했다. 1권 맨 시작에서 토니 블레어를 푸들로 비유한 장면도 삭제되었고 열화우라늄탄과 관련한 미군 비방과 007 시리즈가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영화란 주장도 삭제되었다.
대신 늘어난 것이 개정판이 나오던 시점의 정부인 이명박 정부와 보수를 비방하는 반정부 드립들인데, 미국 의회니 뭐니 하는 드립들이 종편과 간첩단 사건 드립들로 상당히 교체되었다.
2.2.2. 반보수 관련 사례
3권과 개정판이 나올 시점엔 반미 떡밥이 식은 것도 있고 아예 정권 자체가 노무현 정권에 비해 보수적인 이명박 정권으로 바뀐 때라서 그런지 반미 드립에서 반정부 드립으로 반향을 선회해서 편향적인 정치적 드립을 만화 곳곳에 넣어놨다.
이미 작가는 1권과 2권에서 알렉시오스 1세의 얼굴을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하게 그렸고 수구 세력으로 작가가 설정한 동로마 군사귀족의 대척점으로서 알렉시오스를 긍정적으로 묘사했으며, 이명박 대통령을 침을 질질 흘리는 쥐새끼로 묘사하거나 "무기가 좋아도 정신적인 대비를 해놓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라고 발언을 갖고 마구 조롱하며,. 심지어 1권 후기에선 이명박 대통령을 아이히만에 비유하기도 했다. 아이히만처럼 아무 생각도 없이 살면 이명박처럼 아이히만 같은 인간이 된다! 라는 게 김태권의 논지였다.
이러한 예시들을 들어보면 우선 동로마의 군사 귀족층 문제를 현실정치와 억지로 연관을 시켜서 그들을 악의 축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동로마의 군인귀족이 내부의 혼란을 야기한 것은 물론 부정할 수 없으나 수세적일 수밖에 없었던 동로마 제국의 전략적인 문제로 만들어진 것이 테마제와 군사귀족이었다. 특히 아나톨리아 지역의 군사귀족은 반란을 자주 일으킨다는 단점이 있으나, 외적의 침공을 막아내는 역할 또한 했기 때문에 필요악에 가까웠다. 그래서 콤네누스 왕조 이전 황제들이 그렇게 시달리면서도 테마 제도를 없애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악의 축'이 된 동로마 기득권을 아무런 여과없이 한국의 보수에 억지 대입을 하여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다. 아니 십자군 전쟁 시기의 동로마 귀족들이 "이게 다 주사파 때문이다!"[4] 라고 외치는 건 무슨 드립이란 말인가. 작중에서 진정한 의미의 '보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나오지 않는다. 무슬림들과의 평화를 촉구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진보와 전쟁을 호소하고 이득을 위해 나라까지 팔아먹을 궁리만 하는 수구들만 있을 뿐이다. 이들이 동로마 제국에 필요한 개혁을 번번히 좌절시켰음을 고려하면 수구는 맞을 지 모르나, 동시에 튀르크를 막아내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매국노라는 것은 참으로 황당한 누명을 씌운 것이라 하겠다. 당시 동로마 제국은 바실리우스 2세 사후 이른바 13명의 이류 황제의 통치 시대를 거치며 무능한 황제들의 방치 속에서[5] 동로마 토지 귀족들이 자체적으로 아나톨리아를 튀르크 군벌들로부터 방어하던 시기를 거쳤다. 한국 역사에 대비해보자면 개혁을 격렬히 반대하던 수구 유림 세력이 그래도 외세에 가장 격렬히 맞서 싸운 것은 사실인데 유림이 친일에 가장 앞장섰다고 왜곡하는 격이다. 작가의 편향적이고 극렬한 정세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비슷한 모습으로 1권 프롤로그에서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을 반대하는 자들을 '좌파 빨갱이를 죽이는' 악랄한 인간들로 묘사했다. 그라쿠스 형제는 로마의 개혁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진보적' 인물로 판정되었는데 그 반대급부로 그라쿠스의 반대파들은 죄다 '빨갱이 죽일 궁리'하는 인간들이라고 묘사한다.
2.3. 역사적 관점의 왜곡
2.3.1. 동로마 군사 귀족에 대한 서술 문제
1권과 2권에 거쳐서 동로마 제국의 군사 귀족층 문제를 현실정치와 억지로 연관을 시켜서 그들을 악의 축으로 묘사하고 있다.
동로마의 군인 귀족이 내부의 혼란을 야기한 것은 물론 부정할 수 없으나 서방, 아랍, 페르시아, 슬라브인들의 계속된 공격으로 수세적일 수밖에 없었던 동로마 제국의 전략적인 문제로 만들어진 것이 테마제와 군사귀족이었다. 특히 아나톨리아 지역의 군사귀족은 반란을 자주 일으킨다는 단점이 있으나, 동시에 외적의 침공을 막아내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필요악에 가까웠다. 이때문에 콤네노스 왕조 이전 황제들이 그렇게 시달리면서도 테마 제도를 없애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악의 축'이 된 동로마 기득권을 아무런 여과없이 한국의 보수에 억지 대입을 하여, 십자군 전쟁 시기의 동로마 귀족들이 "이게 다 주사파 때문이다!"[6] 라고 외치는 건 매우 황당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정작 진정한 의미의 '보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나오지도 않는다. 무슬림들과의 평화를 촉구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진보와 전쟁을 호소하고, 이득을 위해 나라까지 팔아먹을 궁리만 하는 수구들만 있을 뿐이다. 이들이 동로마 제국에 필요한 개혁을 번번히 좌절시켰음을 고려하면 수구는 맞을지 모르나 동시에 페르시아, 아랍, 투르크를 막아내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 있다.
대한민국 역사에 대비해 보자면 개혁을 격렬히 반대하던 수구 유림 세력이 비판을 받으나 그래도 외세에 가장 격렬히 맞서 싸운 것은 사실인데, 그런 유림이 친일에 가장 앞장섰다고 말하는 식이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 유림에는 두 가지 세력이 모두 다 있었지만, 이들을 모두 싸잡아 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비슷한 모습으로 1권 프롤로그에서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을 반대하는 자들을 '좌파 빨갱이를 죽이는' 악랄한 인간들로 묘사했다. 그라쿠스 형제는 로마의 개혁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진보적' 인물로 판정되었고, 그 반대로 그라쿠스의 반대파들은 죄다 '빨갱이 죽일 궁리'하는 인간들이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현대의 연구는 그라쿠스 형제의 라티푼티움 증언부터 정적 공격을 위한 흔한 왜곡으로 보고 있다. '''그라쿠스 형제가 증언한 토스카나 지역에 라티푼티움은 없었다.'''
2.4. 서구에 대한 왜곡
2.4.1. 헬레니즘-로마 관련
로마 제국을 노예제로 이루어지는 악의 제국으로, 카이사르는 단순히 침략자, 도살자라는 식으로 서술했으나, 로마 제국과 율리우스 카이사르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로마 제국의 노예제와 라티푼디움부터 신뢰성을 의심받고 있고, 카이사르는 옹호와 비판이 나뉘는 인물이긴 하나, 극단적인 예는 보기 힘들다.
갈리아 전쟁만 해도 카이사르는 분열된 갈리아의 여러 부족들간의 대립을 적극 활용했으나 김태권은 침략자 카이사르 VS 방어자 갈리아, 게르만, 브리타니아 연합이라는 단순 무식하고 역사와도 맞지 않은 서술을 했다.
게다가 갈리아도 옛날에 로마가 약할 적에 쳐들어와서 공격하고 약탈했다. 나중에 게르만족이 로마를 점령해 불사르며 이게 다 로마가 카르타고 등지에서 한 걸 보고 배운 것이란 내용은 거짓이다.
바로 작가가 띄워주는 알렉산드로스만 해도 테베 등 거슬리는 도시들을 닥치는대로 태우고 파괴하며 약탈했고 페르시아 군대도 아테네를 불태웠는데 그건 전자는 아예 무시하고 후자는 사르디스에 대한 복수("사르디스를 기억하라!")일뿐이라고 치운다. 역사에서 인과응보라는 개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했지만, 김태권이 이런 측면을 참고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또한 아우구스투스를 부시와 같은 인종으로 평가되는 부분에서는 할 말이 없어진다.[7] 이 쯤되면 체리피킹의 절정으로 고대 로마 제국을 무조건 퇴폐한 악의 제국으로만 묘사하는 반지성주의적 기독교 근본주의 사관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아무런 죄도 없는 순진한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부부를 모함으로 처단하고 중동의 밀을 노린 침략자로 묘사된다. 그리고 당시 로마 시민들도 중동의 밀을 얻기 위해 옥타비아누스의 거짓선동에 넘어가는 우민들로 그렸고, 로마 시민들이 이집트가 대량살상병기를 가지고 있더라고 믿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옥타비아누스vs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당시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던 관계이지 한쪽이 일방적인 침약자였던 것은 아니다.
이후 1권에서 묘사한 로마의 몰락은 걸핏하면 군사력으로 해외를 침공하는 통에 생긴 "전쟁중독"의 역효과이자 댓가라고 주장하지만, 아우구스투스 시절의 게르마니아 원정 실패 이후 로마는 클라우디우스와 네로 황제 때 정복한 브리타니아, 도미티아누스가 정복하고 장벽을 세운 슈바르츠발트, 트라야누스가 정복한 다키아, 오현제 이후 파르티아, 페르시아와 다툰 북 메소포타미아 정복을 빼면 그렇게 해외 원정을 하지 않았다. 차라리 과거에 나돌던 로마인들이 계속된 평화에 나약해져서 망했다는 구시대 사관이나 들고 왔으면 좋았을텐데, 작가는 피에 굶주린 로마인들이 심심하면 외국을 두들겨패다가 그게 역효과로 돌아왔다는 해석과 수백년 전에 있었던 그라쿠스적 개혁을 안해서 망했다고 주장한다.
김태권은 버나드 로 몽고메리의 전쟁의 역사[8] 를 주로 참고해서 비판하는데 후술하겠지만 전쟁의 역사에서 서술되는 내용이라도 자기 입맛에 맞는 내용만 인용하고[9] ,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밑에서도 설명하겠지만 고대 로마 제국은 구제불능의 악인데 그 후예인 동로마 제국은 선역으로 그린다는거 자체가 이 책의 앞뒤가 맞지 않는 취사선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셀레우코스 제국의 경우에는 관용과 공존을 버린 악랄한 제국주의자들이라서 몰락을 자초했다는데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건 김태권뿐이다. 김태권이 그렇게 띄워주던 페르시아 제국이 알렉산드로스에게 멸망당했던 것은 관용이 부족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페르시아 제국부터가 수많은 민족을 정복하여 세워진 침략자였다는 것은 나오지 않고 페르시아 제국 체제에서도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속주들이 그리스의 지원을 받아 들썩이는 건 책과 역사 사이에 앞뒤가 맞지 않는다. 헬레니즘 계열 제국들의 멸망 원인은 그리스 민족으로 구성된 엘리트 계층이 다수의 피지배 민족을 통치하면서 인구 유입이 고갈되고 그들의 정권 기반인 정예 군사력이 자기들끼리의 분쟁으로 소모된 탓이라서 김태권의 주장과 1%의 연관성도 없다고까진 못하지만 이걸 두고 셀레우코스 제국이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10] '''사악하다고''' 해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지배 민족의 특권을 포기하는 것이 언제부터 관용적인 관점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김태권이 관용의 상징으로 띄워준 알렉산드로스 3세나 키루스 2세도 김태권이 셀레우코스 제국이나 로마 제국을 깔때 쓴 잣대를 들이대면 그들과 다를게 없어진다. 관용이 존속기간에 이바지한다는 김태권의 주장에 따른다면 그들이 세운 나라는 오히려 로마보다 열등한 나라다.
고대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작가가 고평가하는 세력이라서 후의 헬레니즘 제국, 로마 제국, 십자군들과 같이 매도당하진 않았으나 페르시아 전쟁의 경우에는 그리스인들이 먼저 히피아스를 보호해주는 페르시아 때문에 반이란 감정에 사로잡힌 것처럼 나오며 페르시아에선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첨부하기도 했다.
2.4.2. 십자군 전쟁 관련
김태권은 기본적으로 십자군 원정의 명분 자체를 조작으로 본다. 성지 순례는 안전했고 성지가 무슬림들에게 모욕당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저언혀 사실이 아니다. 피에르가 헝가리와 동로마령 발칸반도에서 개고생하다 겨우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자 안나 콤네나가 그만 집에 돌아가는게 어떻냐고 종용하는 장면에서 은자 피에르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이유로 성지순례가 안전했다고 묘사하는데("그대의 몸이 안전한 것이 증거"), 그 당시 역사를 무시하는 개드립이다.
십자군 전쟁은 기본적으로 '''무장순례'''가 확장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전근대 시기에서 성지순례를 포함한 장거리 여행이 안전하면 그게 이상한거다. 순례길은 시기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평화롭기도 하였으나, 위험할 때도 있었으며, 1차 십자군 당시는 파티마조 이집트 대신 셀주크 제국이 점령하여 상대적으로 불안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무장순례의 전통을 생각하면 피에르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과 예루살렘 순례길이 안전하다는 것은 결코 동의어가 아니며, 오히려 십자군 운동 자체가 그동안 있었던 무장순례의 전통을 기반으로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성지 모욕 건만 해도 1권 초반에 피에르가 "전쟁합시다! 전쟁!"이라고 주장하자 군중들이 "이 미친놈아, 이게 일방적인 침략이지 무슨 해방이냐? 그리고 그동안 무슬림들이 성지에 무슨 모욕이라도 한적이 있었냐?"하고 마구 비웃지만, 불과 십자군 전쟁이 터지기 몇년 전에 파티마 왕조가 예루살렘의 일부를 파괴한 사건이 있어 기독교도들의 공분을 산 일이 있었다. 특히 1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에서 파티마 왕조의 사신을 만나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맹렬히 항의할 정도로 그 일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이후 진행되는 원정의 서술에서도 십자군은 악. 동로마와 이슬람은 피해자라는 시각하에 왜곡하였다. 십자군이 룸 술탄국에게 점령된 동로마 영토인 니케아를 공격할 때, 알렉시오스 1세가 십자군을 바람맞히고 일방적 강화를 해서 기껏 피흘려 도시를 점령했더니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동로마가 홀라당 도시를 다 먹어버려 십자군이 느낀 배신감과[11] , 이슬람보다는 동로마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안티오키아의 문제, 십자군을 통한 동로마의 영토 회복 등은 서술하지 않거나 왜곡했다.
아민 말루프의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을 보면 룸 술탄국의 주민들은 술탄을 찬탈자로, 동로마의 황제만을 진정한 왕으로 모셨다는데 그럼 김태권식 잣대를 들이대면 십자군은 해방자여야 하지만 김태권은 십자군의 니케아 원정도 그냥 침략자들이 무슬림을 공격한 식으로 묘사한다. 1,2권의 서술만 보면 왜 서방의 호구로 보이는 동로마가 그 사이에 영토를 넓혀서 3권에서 요안니스 황제가 안티오키아에게 갑질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특히 안티오키아는 동로마령이었다가 십자군 전쟁 직전 셀주크 튀르크에게 점령당했고, 주민부터 이슬람계보다는 동로마계인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100% 무슬림이 사는 도시라고 왜곡했다. 안티오키아의 동로마적인 성격은 십자군 전쟁 초반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 문제를 왜곡하니 동로마의 회복 의지와 십자군 간의 갈등 등은 무시해 버렸고 결과적으로 책의 성향이 친이슬람으로 왜곡되는데 한 몫을 했다.
이후 안티오키아 공방전의 경우에는 안티오키아의 성주 야기 시얀이 기독교도 십자군이 몰려오자 기독교도 시민들을 밀정으로 간주하고 추방한 일을 다루면서 전쟁이 좋은 인연을 망쳐놨다고 서술했는데 생각해보면 굉장히 웃긴 일이다. 우선 안티오키아는 불과 얼마 전까지 동로마 제국령이었고 주민들은 대부분 기독교도였다.
침략자 영주가 원주민을 내쫓은 일을 가지고 십자군이 나쁜 놈이라고 하는데, 임진왜란으로 비유하자면 일본군이 어느 도시를 점령하자 명나라 군대가 탈환하러 오고 일본군이 살던 조선 주민들을 내쫓자 누가 "봐라, 괜히 명나라 군대가 와서 일본군과 조선인이 같이 살던 '''좋은 인연이 망가졌지 않느냐?'''"라고 한다면 당사자들 입장에선 할 말 없어진다.
그리고 안티오키아 전투 중에 은자 피에르를 성창을 발견한 피에르 바르톨로메오를 동일인물로 처리했는데, 실제로 다른 인물이다. '''은자 피에르는 프랑스로 돌아와 1115년에 죽었고 피에르 바르톨로메오는 1차 십자군 전쟁 와중 성창 문제로 죽었다.''' 작가는 본문 중에 두 명의 피에르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언급하며, 만화적인 재미를 위해 은자 피에르와 동일 인물로 처리했다고 분명하게 서술하였다.
또한 군중 십자군 시절부터 일관적으로 십자군을 독소전쟁 당시에 나치 독일군처럼 매도하지만, 김태권이 거품 물고 흥분하며 깐 묘사들 자체가 당시 기준에선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광경들이었으며(십자군 전쟁에서 대부분의 학살 건은 도시가 무력으로 함락된 뒤이거나 포로협상이 결렬된 뒤에 벌어졌으며, 이것은 근대까지도 전쟁의 관습으로 받아들여졌다. 고대 이래로 '공성구가 성벽에 닿은 뒤'부터는 방어자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없었다. 그 이전에 항복할 경우 십자군은 대체로 당시 전쟁의 룰을 준수했다.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나치에 비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심각한 무지다), 십자군의 관용은 아예 무시한다. 십자군도 마라트 안 누만의 일 정도를 제외하면 순순히 항복한 도시들을 동맹군을 늘리기 위해 우대했고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고증만 봐도 유럽에서 온 귀족들이 일상 생활에는 중동식 복장을 하는데 거부감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에데사 백작령을 세운 보두앵은 현지 아르메니아 여인과 결혼하기도 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현지 주민들을 싸그리 인종청소할 수 없는 이상 통치를 위해 이질적인 요소를 인정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실 십자군 왕국에서 종교 간의 공존은 이베리아 왕국의 이슬람 왕국들의 모습과 별로 다를 것도 없었다.
악명높은 예루살렘 학살에서도 십자군은 탕크레드 등이 부녀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명하기도 했고 몸값을 지불할 수 있던 자들은 살려줬다. 이런 점은 거의 지적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편향성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사실 십자군 정복자들은 초반에는 학살을 저질렀지만 일단 십자군 국가를 건설한 다음에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토착민들을 나쁘게 대우하지 않았다. 이건 3권 이후로는 그럭저럭 드러난다.
같은 시대의 인물인 우사마 이븐 문키드의 기록을 보면 우트르메르에 오래 거주한 '프랑크인'과 '사라센인'들은 제법 괜찮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1차 십자군 전쟁 당시에도 시리아의 여러 영주들이 십자군에게 오히려 동맹을 요청하는 등 유럽인 vs 아랍인의 단순 구도가 아니었다.
또한 학살의 서술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만 보여 주었다. 군중 십자군과 1차 십자군 전쟁 당시 서방측의 학살은 마을 단위의 학살까지 하나하나 자세하게 서술하면서, 2차 십자군 전쟁의 원인이 된 이마드 딘 장기의 에데사 함락 및 학살은 생략했다. 단지 에데사를 이슬람이 회복했다고 하는 묘사인데, 에데사는 애초에 무슬림 도시도 아닌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도시고, 십자군에게 정복당한게 아니라 현지 아르메니아인 군주인 토로사가 보두앵 1세를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평화적으로 양도한 영토다.
이마드 딘 장기의 공세는 그냥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려는 침략 행위에 불과했고 에데사 사람들이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데 저항했다는 이유로 도시에서 서구인은 물론 아르메니아인을 가리지 않고 한 살육은 1차 십자군의 예루살렘 함락과는 달리 단지 회복일 뿐이라는 식으로 기술한다.
당연하지만 장기를 비롯한 주요 이슬람 군주들은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묘사된다. 카르부카 빼고는 이슬람에서 나쁜 놈 나오는 일이 없다. 반면 십자군은 고드프루아나 레몽 정도나 조금 정상적이고 나머진 그냥 다 피에 굶주린 전쟁광들이다. 하지만 장기도 김태권이 주장하는 '과거사 청산'인지 따윈 안중에도 없이 그냥 자신의 제국을 건설하는데 열중한 정복군주에 불과하다. '과거사 청산' 운운 자체가 20세기에나 가능한 시각을 과거에 투영하는 것으로 역사학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시대착오의 오류이다. 고대부터 상당히 근래까지도 힘을 키운 세력이 정복에 나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고, 대체로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당장 작가가 띄워주는 이슬람 세력부터가 정복으로 성장한 제국이고, 이들이 정복한 땅들 대부분이 본래 그리스도교 문명권에 속한 지역들이었다.
작중에서 시민들에게 도시를 돌려줘야 한다 운운하면서 정작 그 시민들이 기독교도인 건 신경 안 쓰고 무조건 주민들 입장에선 침략자인 건 십자군이나 매한가지인 무슬림에게 땅 돌려줘라 라고 일관한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선빵 때린 것은 무슬림이니 더 깊게 들어가면 이것도 적절한 비유는 아니다. 게다가 김태권이 미화한 에데사의 경우는 투르크가 싫어서 자발적으로 십자군을 받아들인 케이스니 왜곡의 도가 더욱 심해진다.
다니슈멘드 왕조에게 포로로 잡혔던 보에몽이 그의 조카 탕크레드에게 뒤통수를 맞아 안티오키아의 지배권을 뺏겼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빼도 박도 못하는 역사왜곡이다. 다만 탕크레드가 보에몽 석방을 방해한 건 사실이라고 한다.
안티오키아급의 거대한 영지의 지배권을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낼름 먹어치우는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이후 보에몽의 알레포 원정도 탕크레드에게 사정해서 간 걸로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그냥 보에몽의 주도였고 그 전투에서 패배한 보에몽은 조카 탕크레드에게 쫓겨난 것이 아니라 탕크레드를 섭정으로 임명한 후 동로마의 그리스 영토를 노리고 이탈리아로 건너간 것이다. 당장 보에몽이 죽고 나서 안티오키아의 지배권은 보에몽의 어린 아들인 보에몽 2세에게 돌아갔다. 타란토의 보에몽에 관한 왜곡은 그뿐만이 아니라서 타란토의 보에몽이 단순히 새어머니 시켈가이타의 농간으로 한치의 땅도 상속받지 못했다고 서술했지만 사실 보에몽은 아드리아해 동편의 영토, 즉 두라초를 위시로 한 그리스 영토를 상속받았으나 역병으로 초토화된[12] 그 지역을 베네치아와 동로마가 순식간에 탈환해서 빈털털이 신세가 된 것이다.
김태권은 폭력의 순환을 비판하면서 풀크, 보두앵 3세 등 '''십자군''' 군주들을 폭력의 신봉자로 못박아놓고 그 반대에 선 평화의 신봉자로 멜리장드를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 역사를 떠나서[13] , 김태권의 서술만 보고는 멜리장드가 평화주의자였는지, 평화주의 관련 내용이 김태권의 일방적 주장인지 많이 헷갈린다. 멜리장드는 풀크가 죽자 이번 기회에 유럽인과 아랍인의 화해를 만들어내겠다고 원정 사업이 아니라 문화 사업에 투자하겠노라고 나서는데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했는지는 전혀 말하지 않았다. 뭐 그간 김태권이 작중 행적에 일일이 다 사료의 출처를 제시한 건 아니지만 하필이면 그 다음에 멜리장드가 우트르메르를 문화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할 때는 김구가 쓴 백범일지의 일부('나의 소원' 중에서)를 발췌해서 인용한 바람에 독자들이 이게 다 김태권의 상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들게 만들었다. .
그리고 토머스 F. 매든[14] 등이 주장한 "십자군 전쟁은 가톨릭 세력이 이슬람권에 벌인 일방적 침략전쟁이 아니다"는 주장을 부정하면서, 참고문헌에 포함한 매든의 저서 <십자군: 기사와 영웅들의 장대한 로망스>(2005)>[15] 를 극우적이고 서구 우월주의를 담은 책으로 비판했다. 김태권의 주장과 달리 매든은 성향도 리버럴한 뉴욕타임스에 기고를 하는 사람이고[16] 십자군 연구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권위자인데 김태권은 자기 논조('''=사악한 서양은 절대악, 선량한 이슬람은 피해자''')에 맞지 않는 주장을 폈다. 개정판에서는 매든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줄고 서구 중심적에 우익적인 관점이 거슬린다 정도로 완화되었다.
2.5. 극단적인 동로마 제국, 이슬람 편향 서술
애초에 동로마 제국과 이슬람권은 서로 적대하는 사이였는데도 불구, 체리피킹을 통해 서구 십자군만 없으면 둘 사이에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 식의 답정너 논조로 만화를 전개한 게 문제였다.
2.5.1. 동로마 관련 왜곡
안나 콤네나의 기록(《알렉시아드》)을 주로 참고하였으며, 그를 바탕으로 동로마 제국을 긍정하고 십자군 전쟁을 서방의 일방적인 공격이라고 묘사한다. (반면 서방의 기록은 언급은 하면서 알렉시아드와의 차이점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침략자'의 역사"란 식으로 폄하하며 믿기 어렵다는 투로 이야기한다.) 물론 역사란게 자기네 입맛에 맞춰 과장, 왜곡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동로마의 기록이 절대적이란 저의는 대체 뭘까? 다만 동로마나 안나 콤네네의 기록을 대중적으로 소개한 것 자체는 성과.
동로마 제국의 경우는 전략적으로 주로 수세적 입장을 유지했기 때문에 서유럽으로 뻗어나갈 정신이 없어 서유럽과의 트러블이 적은 편이었으나[17] , 1차 십자군 전쟁은 엄연히 튀르크족의 압박에 시달리던 동로마의 요청으로 일어난 것이다. 김태권은 이 사실을 아예 빼버렸다가 개정판에서 마지못해 "당신네 비잔티움이 이슬람과 싸울 용병을 구한다며?"라고 합리화하는 십자군의 모습을 그려놨는데 그뒤에 알렉시우스가 한다는 말이 우린 얌전한 용병을 원했지 말썽쟁이 십자군을 원한 적은 없다!라고 투덜거리는 모습을 넣었다.
물론 십자군을 모으는 과정에서 교황 우르바노 2세가 뻥튀기를 해서 동로마도 당황하는 결과를 만들어냈지만, 이러한 상황을 무시한채 일방적인 서방의 횡포라고 하는 점은 노골적인 서방 폄하적 서술이며 아무리 피에르와 우르바노 2세의 농간이 있었다고 한들 엄연히 동로마가 룸 셀주크에 대항하기 위한 원군을 요청하고 이에 응답한 것이 1차 십자군 원정인데, 이것이 '''동로마의 일방적인 피해인 것처럼 서술하는 건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십자군이 잘한 것도 아니지만, 십자군을 비판하기 위해 동로마나 이슬람을 너무 띄어주면서 올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외에도 자잘한 왜곡들이 있는데 동로마가 십자군에게 충성 서약과 영토 양도에 대한 서약을 요구하면서 벌어진 충돌을 '배은망덕한 십자군'이 동로마 수꼴의 선동에 벌인 촌극 정도로 왜곡했다. 그리고 동로마 제국군이 안티오키아를 구원하러 오다가 회군해버리고 안티오키아를 양도하는 댓가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달라는 요구도 거절해서 십자군이 격노하여 날뛰어 댄 것도 빠졌다. 알렉시우스가 블루아의 에티엔 말만 믿고 회군하지 않았으면 안티오키아는 동로마령이 됐을 것이다.
이후 동로마가 1차 십자군이 점령한 니케아를 포함, 스미르나를 비롯하여 아나톨리아 해안가를 대거 점령한 사례는 전혀 기록하지 않았다. 알렉시우스 황제가 십자군을 쥐락펴락하면서 그들 등쳐먹었던 얘기들도 다 사라지고 강대국 횡포에 휘둘리는 약소국 군주로만 묘사해놨는데 콤네노스 조 동로마가 유럽의 별볼일없는 약소국이라는 사관은 옳지 않다. 강대국 횡포에 시달리던 약소국으로 묘사하려면 오히려 셀주크 튀르크의 침공을 피해 아나톨리아 동남부로 대거 이주한 아르메니아인들이 세운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이 있겠지만, 물론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서는 철저한 체리 피킹을 통해 십자군 전쟁 당시 아르메니아인 소수자들의 절박한 사정은 사실상 누락되었다.
그나마 프레시안 연재분에선 동로마가 십자군을 이용하는 모습이 묘사되었다는 증언이 있는데 프레시안 연재분이 사라져서 지금은 확인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최종적 편집본인 출판본이 엉망이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십자군이 만악의 근원이자 불관용의 상징이고 동로마는 무조건 선이라는 관점에 대해서 굳이 구체적으로 따져보자면... 예루살렘 왕국 같은 십자군 국가들은 그래도 영내 상당수의 무슬림 신민들이 거주했던 것[18] 과 대조적으로 동로마 제국의 경우 무슬림 인구가 주가 되는 지역으로 새로 영토를 확장한 경우, 대표적으로 니케포루스 포카스가 크레타 섬을 재점령한 경우나 레반트 지역의 영토를 수복한 경우 현지 무슬림 신민들을 어떻게 통치할지 곤란하다는 이유로 도회지의 무슬림들을 다시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힘들 것 같다고 대거 학살하고, 시골 지역의 비교적 이슬람 문화가 약했던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선교사들을 파견해서 전부 정교회로 강제 개종시켰다. 고의로 이런 점을 다 누락시켰다면 정말 문제가 심각한 거고, 만약 작가 본인이 진정 이러한 부분을 몰랐다면 김태권은 십자군 전쟁 역사를 저술하면서 안나 콤네나의 기록(《알렉시아드》) 한 권 외에는 동로마 제국 역사 관련하여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2.5.2. 이슬람주의 선교 레퍼토리의 무비판적 반영
1권 프롤로그에서 김태권이 말하길 이슬람은 서구 열강들의 왜곡과 달리 아주 평화롭고 강제 개종도 전혀 없었으며, 그들의 정복은 세금을 얻기 위한 평화로운 정복이라고 옹호해주고 이들은 관용을 베푸는 착한 자들이라서 대제국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배운 무슬림들 사이에서도 비웃음당한다. 팔레스타인을 그린 미국 만화가 조 사코가 가자 지구를 방문해서 그 지역 청년들의 토론을 들었는데, 국수주의적 생각을 가진 청년 하나가 "야, 그래도 우리는 유럽 놈들처럼 침략은 안 했잖냐? 우리가 이베리아 간 건 다 계몽해 주러 간 거 아니었어?"라고 주장하자 옆에 있던 청년이 '''"미친 놈아, 칼 들고 간게 침략이지, 계몽이냐? 무슬림들은 유럽을 침략한게 맞다고."'''라고 비웃었고 아무도 반박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하고 있던 서고트 왕국은 비록 로마 제국 시절에 비하면 비교적 경제와 문화 부분에서 퇴보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계몽 운운할 정도로 미개했던 나라가 아니다. 일례로 이슬람 치하 스페인에서는 천문학과 역법이 이슬람 천문학과 이베리아에 보존된 율리우스력 두 가지 배경을 바탕으로 발전했으며, 알안달루스의 의학의 경우 무슬림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입성할 당시는 아직 이슬람 의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이베리아에 보존된 갈레누스 의학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로마를 원색적으로 모독에 가깝게 비난하던 아까 모습에 비하면 가히 우디르급 태세 전환이다. 로마나 셀레우코스나 중세 유럽 국가들은 피를 흘리고 사람이 죽어자빠지는 꼴을 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악마의 사생아들이라서 전쟁을 했는가? 그들이 한 정복도 마찬가지로 부와 영토를 얻기 위함이었다. 김태권이 처음부터 이런 부분에만 집중했으면 그나마 이해라도 되지[19] 갑자기 이슬람 제국은 돈을 목적으로 쳐들어갔으니 서구완 달리 착하다는 것인데 이런 말도 안되는 옹호 때문에 김태권은 자기 책의 논지 자체를 자기 손으로 붕괴시킨 거나 다름없다. 여기에 그러놓고 보에몽이 재물을 노리고 동로마를 치는 일은 "봐라, 돈 가지고 쳐들어가는 유럽인들은 얼마나 추악하냐?"라는 황당한 소릴함으로 확인 사살.
거기에 이슬람은 전반적으로 결백하기 그지 없는 피해자들로만 묘사하는데, 이슬람 세력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일어나서 사산조 페르시아와 동로마를 싹 쓸어버리고 대제국을 세운 것을 자기가 묘사해놓고 이들을 침략자로 해석할 생각은 전혀 못하는 모양이다. 시리아와 이집트, 북아프리카는 비교적 현지인들이 환영한 편인 데다가 같은 성서의 백성이라는 이유로 몽골 제국 수준만큼 대학살이나 대규모 반달리즘이 자행된 것은 아니었지만, 당연히 정복 과정에서 '''최소''' 십수만여 명 이상이 죽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경우 조로아스터교도들이 그동안 자신들을 괴롭힌 것을 보복하겠다는 이유 + 쿠란에서 성서의 백성 이른바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보호하라는 내용과 다르게 조로아스터교에 대해서는 좀 더 완강한 입장이었던 이유로 사산 왕조의 주류 조로아스터교단이 완전히 박살나고 페르시아인 농민들은 심지어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후에도 마왈리라고 불리며 상당한 차별을 받았다. 김태권이 그나마 인정한게 룸 술탄국이 점령한 니케아 지역의 기독교도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김태권식 사관은 콥트 기독교나 아시리아인 박해를 정당화하는 이슬람주의들이 서구에 이슬람주의를 선교할 때 사용하는 이중 잣대 레퍼토리[20] 를 아무 비판 없이 그대로 믿었다고 볼 수 있겠다.
십자군의 주요 참여 세력 중 십자군 수송이나 이후 십자군 국가와의 무역 및 보급에 주력했던 것은 주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제노바 같은 도시 국가들이었는데, 이탈리아에 이런 해상 무역 국가들이 해군력이 성장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북아프리카 출신 해적들이 남유럽을 약탈했기 때문에 그 방어 차원에서였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십자군에 참여하고 십자군 내에서도 비교적 과격, 강경파에 속했던 이유는 이들이 북아프리카의 아랍 무슬림들과 직접 대치하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북아프리카와 알안달루스의 무슬림들은 시칠리아와 바리를 위시로 남이탈리아에 에미르국을 세우기까지 했고, 상술한 것처럼 니케포루스 포카스에게 축출당하기 이전에는 크레타 섬마저 장악하기도 했다.
상술한 것처럼 동로마 제국과 이슬람권과 전쟁이나 갈등 자체를 누락시키고 십자군만 아니면 둘 사이에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 전개 논지는 책 자체의 내용을 꼬이게 만들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슬람이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함락시킨 다음에 유럽에 쳐들어가서 남이탈리아, 스페인을 점령한 것과 십자군이 레반트를 점령한 것이 근본적으로 뭐가 다른가? 김태권식의 해석의 방향성만 바꾼다면 리처드 1세나 레몽 백작의 이집트 원정을 다른 십자군들이 성지 외의 지역엔 관심 없다고 거부한 일화나 십자군들이 정복자의 지위를 마다하고 고향에 돌아간 것을 두고 십자군을 성지 탈환 외엔 관심이 없던 거룩하고 고결한 기사들로 띄워줄 수도 있다. 십자군 전쟁 이전 셀주크 튀르크가 당시 약소국이던 아르메니아나 라지카 토후국 주민 상당수를 학살하여 다른 지역으로 피난하게 만든 경우를 김태권은 아예 무시한다.
강제 개종 따윈 없었다는게 김태권의 주장이지만, 김태권은 서기 9세기 이전 중동의 상황과 13세기 당시의 상황을 혼동하고 있다. 북아프리카, 시리아, 아나톨리아의 기독교도들, 이란의 조로아스터교도들이 다 어디로 간 걸까? 오히려 이슬람 측의 이교도에 대한 인식은 본격적으로 이교 및 유대인 탄압에 나서기 전 기독교 왕조가 수립된 초기 스페인과 비슷한 측면이 많다. 이때 개종한 무슬림들은 그나마 개종자는 받아주는 피레네 이북의 프랑스 등 대륙으로 넘어갔고, 유대인과 일반 무슬림들은 오스만 제국으로 건너갔다.
가장 큰 문제는 무함마드에게 아라비아 반도의 유대인 공동체들이 싹 쓸린 사례나 바이바르스나 장기의 기독교도 학살, 야기 시얀의 기독교도 추방에 대해서 김태권은 눈을 딱 감거나 고토 회복이라고 미화하거나 이게 다 십자군 때문이다를 시전한다. 이쯤 되면 대체 뭘 잘못 먹고 이렇게 쓴 거냐고 묻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다. 애시당초 살라흐 앗 딘이 오늘날까지 자비로움으로 칭송받는 것은 '''이슬람 세계에서 그가 특별하게 자비로웠던 것 때문이며''' 점령한 십자군 도시들을 싹 쓸어버린 바이바르스나 장기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슬람 전체가 살라딘과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 살라딘조차도 성인군자가 아니라 엄연히 현실정치인이라서, 권력투쟁도 했고 필요할 경우 숙청도 하고 암살도 하고 포로학살도 했다. 살라딘이 관용의 대명사가 된 것은 사자심왕 리처드와의 일화 및 '쓸데없는' 잔혹행위를 그나마 자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조건 착하기만 한 사람이었다면 그 시기 중동의 살벌한 현실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오히려 이슬람은 살라딘이 이교도에게 쓸데없이 관대했다고 오랫동안 바이바르스를 띄워주었다가 나중에 그런 식의 묻지마 외교 때문에 바이바르스 사후 기독교권과 다른 유목민 세력, 티무르 제국 등에게 연이어 털리며 된통 당하고 나서야 재평가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특히 동로마와의 전쟁에서 약탈과 학살의 기록은 김태권이 좋아하는 전쟁의 역사에서도 서술되나, 이것을 생략한 것을 보면 얼굴에 철판 깔고 내 편만 무조건 착한 편이라는 논리로 취사선택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3. 내용 전개상 문제
주인공으로 삼은 인물의 하이라이트가 나오는 부분에서 해당 단행본이 끊기고 그 다음권에서 그 하이라이트가 되었어야 했을 부분이 후일담식으로 스리슬쩍 넘어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권의 주인공 '타란토의 보에몽'의 최후가 3권에서 음유시인의 입으로 전해지는 방식으로 나오고 4권의 주인공 살라흐 앗 딘의 하틴 전투가 4권에서 직전까지만 나온 뒤 5권에서 겨우 풀려난 기 드 뤼지냥이 하틴 전투와 예루살렘 함락이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하는 방식으로 나오고 5권 역시 주인공 리처드 1세가 살라흐 앗 딘과 본격적으로 싸우기 직전에 끊겼다.
그나마 보에몽의 최후를 3권에서 제대로 다뤄볼 의지가 있었는 걸로 추정되는데 5년이나 연재중단하면서 다 날아가버린 걸로 보인다. 보에몽의 최후보다 더 안습하게도 아예 언급조차 되지 못하고 날아가버린 파트가 예루살렘 대학살인데 2권에선 3권에서 확인하라고 해놓고 개정판 나오면서 "대학살을 저질렀다."으로 마무리되었다.
또 사라진 부분으로 고드프루아 드 부용의 동생 보두앵의 일대기와 보두앵과 탕크레드의 타르소스 분쟁이 있고 2권이 나올 즈음에 작가가 미리 공개한 3권의 제목인 '아사신의 음모'를 보아 3권은 아사신에 대해서 길게 다뤄볼 것으로 추정됐지만 역시나 연중의 나날이 길어지면서 3권에서 몇마디 언급하고 사라지는 처지가 되었다.
4. 늦어진 연재
1권이 나온 게 '''2003년''' 12월, 2권이 나온 게 '''2005년''' 8월인데, 3권은 5년 11개월이나 지난 '''2011년''' 7월에야 나왔다. 그때문인지 1, 2권의 작화와 3권의 작화는 풍만 비슷하다 뿐이지 다른 사람이 그렸나 싶을 정도로 작화가 조악해졌다.
당시 어머니가 투병 중이었기에 작가는 아예 연중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덕분에 김태권은 만화 잘 안 그리는 작가로 이미지가 굳혀졌다. 이런 역사 저런 전쟁의 만화가 남문희가 직접 책 홍보할 때 김태의 서평이 있는 걸 발견한 네티즌들이 김태와 친하게 지내면 만화 펑크 낸다면서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다는 썰도 있었다.
그 후 2010년 4월에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란 제목으로 진나라의 중국 통일부터 시작해서 한나라 역사 전체를 다루는 만화를 출간했다. 게다가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를 10권 짜리 시리즈로 기획해 놓았으며 결국 십자군 이야기보다 먼저 3권이 출간되었다.
한편 십자군 이야기는 2010년 12월 14일부터 프레시안에서 1~2권 내용의 요약본이 한 달 동안 연재되었고, 연중된 지 5년 5개월이 지난 2011년 1월 14일에 와서야 1차 십자군 원정으로 예루살렘 왕국이 세워진 직후인 1198년 이후를 배경으로 한 3권 내용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알라딘 블로그에서 십자군 이야기 4권 분량을 연재를 시작했고, 제3차 십자군이 결성되는 5권 분량을 연재하고 있었지만 6개월 잠적 후 5권을 발매했다.[21] .
5. 여담
- 개정판 이전의 제목은 1권 '충격과 공포', 2권 '돌아온 악몽, 3권 '아사신의 음모', 4권 '인간 살라딘', 5권 '사자심왕 리처드'였다. 물론 개정판 나오면서 다 갈렸지만. 대놓고 십자군을 충격과 공포이니 악몽이니로 표현하는 것이 편향적이라는 것을 작가가 의식했는지 은자 피에르와 군중 십자군 이런 식의 중립적인 표현으로 바뀌었다.
- 프레시안에서 웹 연재됐을 때 고드프리의 동생 보두앵을 자세하게 다뤘는데, 연중 후 나온 3권에선 몽땅 다 사라졌다... 그나마 개정판 2권에서 차차 다룰 것이란 떡밥을 뿌리긴 했는데 과연? 그외에 고드프루아 드 부용이 초판엔 피에르의 제자라는 묘사가 있었는데 개정판에선 삭제됐다..
- 3권부터 멜리장드 공주나 엘레오노르 왕비를 비롯한 주요 여캐들은 모에선 보정을 받았다. 1, 2권의 안나 콤네나의 얼굴을 생각해보면 환골탈태 수준이다. 단 그만큼 작품 특유의 독특한 화풍에서 나오던 개성은 많이 사라졌다. 5권을 기점으로 갑자기 패러디의 기운이 대폭발하기 시작했다.
- 개정판과 구판의 경우는 후기에 들어가는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문제가 있다. 구판의 경우는 작가가 다른 작품에 대한 리뷰를 진행하는 형태였다면, 신작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같이 본문에 좀 더 충실해보이는 구성이다.
[1] 십자군이 십자군과 싸우느라 십자군을 저버려? 에잉, 십자매 먹이나 되도록 십자가에 묶어 십자로에 세워놓을 녀석![2] 압바스 왕조의 행정력이 약화되면서 돈으로 봉급을 받던 관료들이 이후 이크타라는 토지의 수조권을 분급받는 방식으로 퇴보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농촌에 대한 무슬림 군벌들의 착취가 강화되자 농촌의 비무슬림들이 대거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이는 이슬람권에서 비무슬림들에 대한 박해가 강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3] 물론 어디까지나 십자군 전쟁=이라크 전쟁으로 봐야 어느 정도 성립하지만 실제론 그렇지가 않다는게 문제다.[4] 개정판에선 친북좌파로 바뀌었다.[5] 심지어 동로마 제국 국방의 핵심에 해당하는 아르메니아 테마를 폐지한 정신나간 경우마저 생겼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에 있는 군부대 대부분을 경상북도로 옮긴 수준의 심각한 오판으로, 동로마 귀족들이 자체적으로 무장하지 않았다면 아르메니아 테마 해체 이후 아나톨리아 북부 해안지대마저 금새 튀르크족들이 전부 정복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6] 개정판에선 친북좌파로 바뀌었다.[7] 아우구스투스가 구축한 로마 초기 제정은 오현제 시대까지 이어지는 고대 로마 제국 전성기의 근간을 마련했다. 한국사에 대해 무지한 외국인이 세종대왕과 철종을 헷갈렸다 볼 수 있는 수준이다.[8] 이 책 역시 영국인 시각을 지나치게 많이 반영하여 인도에 대한 제국주의적 시각의 비하가 강하다는 비판이 크다만, 당시 이 책 외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괜찮은 전쟁사 책이 부족하기는 했다. 즉 명색이 서울대 학벌을 자랑하는 사람이 역사 관련 책을 쓰면서 원서를 제대로 안 봤다는 뜻이다.[9] 예컨대 몽고메리의 주장을 인용하여 카이사르가 사실 브리타니아에서 대패하고 와놓고는 승리한 척 연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후 브리타니아가 로마에 복속된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만 카이사르의 브리타니아 원정은 대패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성공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상당히 고전을 한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브리타니아가 확고히 로마 세계로 편입된 것은 한참 뒤인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의 일이다.[10]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관용을 베풀었단 식으로 띄워주는데 그렇다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로마에게 멸망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11] 이 배신 행위를 자비로운 알렉시오스 1세가 학살 위기에 처인 무슬림들을 구원했고 탐욕스러운 십자군은 배은망덕하게 황제를 원망했다는 식으로 서술했다.[12] 보에몽의 아버지인 로베르 기스카르도 이 때 역병으로 죽었다.[13] 예루살렘의 멜리장드에 대한 기록은 당시 기준으로는 후계자의 혈통 유지 필요성 때문에 결혼을 상당히 늦게 했다는 것과 제2차 십자군 요청. 예루살렘 왕국의 유일한 여왕 등이 전부다.[14] 세인트 루이스 대학 역사학과의 중세사 교수이자 학장이다. [15] 출간 당시 기준이지만 정설을 잘 반영한 책으로 십자군 관련 자료가 부족한 한국에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책이다. 국내에 번역된 다른 책을 더 찾자면 W.B.바틀릿이 2004년에 쓴 <십자군전쟁: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아민 알루프가 쓰고 2002년에 번역본이 나온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도 있다. 국내에 번역본이 없는 책을 보려면 영어를 원서 읽을 수준까지 배우는 수밖에 없다...[16] 물론 뉴욕타임스는 워낙 다양한 스펙트럼의 칼럼니스트들을 섭외한다.[17] 사실 알렉시우스 1세 같은 황제들은 노골적으로 십자군들을 동맹군이라기보단 야만인으로 멸시했으며, 서방 베네치아 공화국의 상인들을 동로마인들이 공격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런 반 서방적인 동로마의 입장은 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게 만든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18] 물론 서구 십자군들이 무슬림 현지인들에 대해 비교적 더 관대했던 이유는 십자군 국가의 유럽인 인구가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지만...[19] 물론 십자군 전쟁에는 신앙적 동기가 강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20] 즉 "과거에 이슬람은 기독교에 관대했으므로 오늘날 이슬람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해서 강제로 이슬람으로 개종시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인과관계, 논리 따위는 걍 씹어먹는 주장[21] 사실 잠적 전에 김태권은 5권 분량을 거의 다 그렸으나, 연재분에 안 실린 약간의 본편 내용과 단행본 추가 내용을 6개월만에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