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치

 

野太刀(のだ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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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
2. 역사
3. 영향
4. 사용법
5. 신장차?
6. 매체에서의 등장
7. 노다치를 쓰는 인물


1. 설명


일본도의 한 종류. 커다란 타치 혹은 우치가타나 형상의 무기로 일본도 중에서도 가장 큰 축에 속한다. 그 길이는 1m를 조금 넘는 수준에서 3m를 넘는 것까지 다양하며, 에도시대의 기준으로는 칼날 길이가 3척(90cm 가량)을 넘는 물건을 통틀어 이야기한다.
'커다란 대도'라는 의미에서 '오오타치(大太刀)'라고 부르기도 하며, 등에 지고 전장에 나간다고 하여 '세오이타치(背負太刀)'라고도 불린다.

2. 역사


가마쿠라 시대에 무가가 권력을 잡게 된 이후 무사 개인의 무예를 중시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에 무사의 위무를 보이고 적을 위협할 목적으로 중후장대한 무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일반적인 타치보다 더 긴 노다치가 나타나게 된 것도 이 시기부터이다.
이러한 노다치는 점점 더 길고 무거워졌으며, 무기의 중후장대화가 최고점에 이르렀던 남북조 시대(약 14세기)에 이르게 되면 극에 달한다.
전국시대가 되자 다시 노다치가 실전에 사용되었다가, 오사카의 진 때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이고는 실전에서는 퇴역한다.
이후, 긴 칼이 유리하다는 생각으로 검술가들 사이에서 잠시 노다치가 유행하기도 하나, 에도 막부에서 무사들이 차고 다닐 수 있는 칼 길이를 날길이(하바키 제외) 2척 3촌(69cm)으로 제한하면서 이쪽으로도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후 만들어진 노다치는 거의 대부분이 신사에 봉납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으로, 현재 남아있는 가장 큰 일본도(전장 322.2cm, 칼날 길이 220.4cm이며 칼 본체 무게는 9kg) 역시 니가타현의 야히코 신사에 봉납된 물건이다.
일부의 주장과 달리 서양의 클레이모어투핸디드 소드 역시 적의 진영을 부수거나 기병이나 창병에 대항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므로 노다치 전체를 장식용이나 의식용으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됐다.

3. 영향


이 노다치에서 파생되어 나온 무기가 나가마키이며, 나기나타의 발달에도 이 노다치가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16세기 중반 즈음 중국 남부 해안을 침범하던 왜구들이 노다치를 사용했다고 하며, 당시 이들을 토벌하던 명의 장군 척계광은 이 노다치의 위력에 충격을 받아 이에 대항하기 위해 원앙진이라는 특수 진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의 저서인 《기효신서》에는 왜구들이 5척(150cm)이나 되는 큰 칼을 써서 무참히 도륙했다고 적혀 있다. 또한 중국의 큰 칼인 묘도(苗刀)[1] 역시 노다치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에 따르면 왜병이 노다치를 들고 '''"사람과 말을 동시에 썰어버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노다치에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가 바로 쌍수도이다.

4. 사용법



신카게류 목검 시연영상 2012년

신카게류 진검 시연영상 2015년[2]

5. 신장차?


간혹 노다치가 이렇게 커 보이는 것은 아시아인들 기준이고, 유럽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아밍 소드 급의 칼길이인지라 중세의 아시아인과 유럽인의 신장 차이를 알게 해주는 요소라는 주장이 보인다. 그런데 사실 노다치라는 물건은 유럽 무기의 기준으로 치면 좀 큰 아밍 소드급의 칼에서부터 트루 투핸더까지를 포함하는 상당히 넓은 범위의 무기이다. 노다치가 일률적으로 아밍 소드 취급받는다는 것은 별로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3]
거기에 중세를 포함 전근대 유럽은 시대와 지역, 처한 상황에 따라서 체격의 편차가 제법 큰 편이었다. 이를테면 삶이 어려운 암흑 시대에는 남성 평균 체격이 160cm대였지만, 온난화로 경작지 면적이 늘어난 10~15세기에는 평균 체격이 170cm 중반까지 올라가기도 했으며, 30년 전쟁으로 전 유럽이 타격을 받았을 때는 160cm대 초반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로마 제국 멸망 이후 전쟁과 전염병으로 남는 농지로 이주한 유럽인들은 곡물뿐만 아니라 육류의 섭취가 비교적 용이해 오히려 체격이 커지기도 했다. 유럽인이 대체적으로 동양인에 비해 체격이 큰 편이기는 했지만 이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많이 다르며 그렇게까지 커다란 차이는 없다는 걸 생각하면[4] 도검류나 동시대 냉병기의 크기에 따른 체격 차이 가늠은 의미가 없다.
또한 노다치는 롱소드류가 다 그렇듯 재련 난이도가 높기에 그 자체가 귀한 칼로, 이를 사용하기에 충분한 신체조건에 해당되는 덩치 큰 무사들이 애용했을 것이며, 애초에 평균 체구보다 월등한 신체력을 선호하는 전쟁터에서, 장수급에 해당하는 남성들은 영양상태가 현대기준 수준으로 월등해 대부분 덩치가 평균 이상이었으며, 그렇기에 국가간 평균 신체비교는 그다지 유의미한 비교가 아니다.

6. 매체에서의 등장


노다치중에 유명한 것으로 사사키 코지로의 애검 모노호시자오가 있다.
또한 간혹 게임에서 등장하는 바지랑대[5]라는 검들은 대개 노다치로 분류된다.
2011년 제작되어 2013년엔 국내에서도 개봉한 "무사 4대 문파와의 혈투(원제목은 왜구의 검, The Sword Identity)"라는 영화에서는 일본도를 중국식으로 개량했다는 대도를 쓰는 유파의 이야기가 중심 스토리이며 노다치를 개량한 중국식 왜도가 주무기로 쓰인다. 문제는 배기를 주력으로 삼았던 일본도와는 달리 이 개량형 왜도는 직도인데다 칼날이 끝 부분에만 붙어있어서 거의 찌르기 위주로 사용되며, 칼날이 없는 부분을 그냥 손으로 잡고 쓰는 등 간지나는 무협 액션을 기대했던 관객에게 뭥미 싶은 영화라는 것. 특히 최후의 결투 부분은 유튜브 등지에서 '''극 사실주의 무협영화'''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단창 두 자루를 쓰는 상대가 찔러 들어오는 주인공의 칼을 쳐 내고 나머지 한 창으로 찔러 승리한다. 사실 이 영화는 감독 서호봉(徐浩峰)의 무협관을 알아야 비로서 이해할 수 있는데, 일찌기 상운상(尙雲祥) 계열 형의권의 전승자 이중헌(李仲軒) 노사를 알게 되어 무술계의 여러가지 비화를 들으면서 피를 끓게 만드는 영웅담과 달리 무술인의 '''현실은 시궁창'''임을 알게 된다. 무사 4대 문파와의 혈투는 중국사에 무지한 번역자 탓에 자막에서 핵심 키워드 '''척계광'''이 빠졌기 때문에 잘 전해지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4대 문파는 '''왜구 토벌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무술을 가지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신선놀음'''에 빠져 있으며, 주인공의 변태적인(?) 무기와 검술은 척계광 휘하에서 '''왜구와 목숨을 건 싸움 끝에 체득한 실전 FM이 사도라며 탄압받는''' 암담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그 때문에 자칭타칭 천하제일 고수라는 인물부터 각 문파의 온갖 고수들이 '''원 포인트 레슨을 받은 아녀자의 노다치 한방에 줄줄이 뚝배기가 깨지는 상황'''으로 통렬한 야유를 넣은 것이다.
포 아너에서 사무라이 진영의 돌격 클래스인 켄세이가 사용한다. 이 작품에서 대체로 무기들의 크기가 과장되는 편인데, 노다치도 좀 긴 일본도 정도가 아니라 두 손으로 잡지 않으면 안될 레벨의 매우 긴 칼로 묘사된다.
도미네이션즈에서 화약 시대의 일본 고유 유닛이 사용한다.

7. 노다치를 쓰는 인물



[1] 영어 표기론 miao dao[2] 잘보면 칼날 밑부분에 끈을 감아 잡을수 있게 해놨다[3] 아밍 소드와 길이가 비슷한 건 우치가타나 쪽이다. 어쩌면 이 쪽의 이야기가 노다치로 와전된 듯.[4] 발굴되는 바이킹의 유골이 150cm대 중후반이 많으며, 중세 기사들의 체격이 160cm대 중반이 많다.[5] 본래의 뜻은 걸어놓은 빨랫줄을 받치는 긴 막대. 모노호시자오도 원래는 이걸 의미하는 단어이다.[6] 게임상에서는 대태도이지만 실제 검은 타치이다.[7] 고태도, 아이스고태도 등[8] 물론 평범한 인간은 아니고 근력과 검을 다루는 능력에선 인간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초능력자다. 자세한 내용은 쾌검 이글 항목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