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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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는 屠畜業者, 영어로는 Butcher이다. 축산물의 도축을 담당하는 업종으로 고기를 만들어 내는 첫 단계를 하는 사람들이다. 관련 국가 자격이 95년부터 시행하는 식육처리기능사인데, 엄연히 전문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직종이며, 10여년 전 정도 기준으로는 여성 중 이 자격이 있는 사람은 식품영양학과 교수 한 사람뿐이었을 정도로 굉장한 남초직업.
이 자격이란 게 단순히 소나 돼지를 죽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몸통을 부위별로 세세하게 나눠야 하니깐 해부학적 지식과 숙달된 기술, 근력과 체력이 모두 필요하다. 물론 도축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자격이 있어야 하지만, 실제 도축 인원보다 발골, 정형에 종사하는 인원이 훨씬 많다. 즉 이 문서에서는 도축에 직접 종사하는 인원과 발골/정형기술자 모두를 포함한다.
현대의 서양에서는 한국과는 인식이 정반대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다르다. 서양에서 도축업자들은 엄연한 스페셜리스트로 대우받는다. 도살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진득하고 고어한 이미지 탓에 대중문화에서 빌런으로 자주 등장하는 등, 살가운 인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천하다는 인상은 없다.[2] 사냥한 동물을 해체하거나 요리한 뒤 나누어 주는 일을 집단의 우두머리가 맡았던 전통이 있어 오히려 도축업자는 생각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업이다. 이러한 전통의 영향으로 지금도 서양에서는 바비큐 파티 등을 할 때 고기를 굽고 나누어주는 역할은 연장자나 보스가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히려 PETA같은 단체나 채식주의자들의 시위와 모욕 때문에 장사하기 더 힘들다고 (...). 이베리아 반도의 전통적인 천민 계층이었던 카고는 도축업자를 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한국과 반대라고 보면 된다.
미국의 경우 바비큐와 스테이크가 일상이라 고기 자르고 소세지와 버거 패티까지 만드는 가게가 동네마다 하나씩 있을뿐더러, 도심지 위주로 점점 도시 인근에서 생산된 유기농 식품 및 동물의 삶의 질을 따지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인근 농가들과 계약맺고 직접 에이징 까지 하는 등, 고급화, 로컬화와 인식의 변화가 맞물려 이들의 사회적 위상이 상당히 높아진 편이다.
한국은 보통 사는 부위가 거기서 거기지만 미국은 반 마리씩 끌고와 정형한다. 손님이 어떤 부위를 추천받아서 사겠다고 하면 특정 부위를 그 자리에서 썰어주는 게 기본이라 칼솜씨와 해부학 지식 뿐만 아니라 요리까지 박식해야 한다. 그래서 Butcher shop에 가면 온 김에 다 사라고 에이징 재료나 소스, 심지어 사이드로 먹을 채소와 기타 grocery까지 팔기도 한다. 손님이 미어터지지 않는다면 부위 예약도 친절하게 받아서 예약한 날에 맞춰 썰어준다! 미국도 KBBQ (한국식 고기 요리) 인기가 최근 부쩍 늘어서 코리안 컷 달라고 하면 알아서 해주는 집도 많다. 아니면 그냥 부위 집어서 두께 0.5인치 정도 썰어달라하면 해준다. 물론 시간이 많이 드는 만큼 팁 좀 주자(...)
게다가 민간에까지 사냥 문화가 발달해 있기에 도축업자랑 접할 일이 많으므로 거부감도 딱히 없다. 일례로 유튜브 가서 Butchery까지만 쳐도 아래에 연관 검색어가 줄줄이 뜬다. 아예 요리 학원 수업에서 선생이 돼지 한마리를 통째로 발골 정형해 버리는 영상이 HD 화질로 올라와 있다. 도살장 도축 과정은 대통령에게도 안 보여준다고까지 하는 국내 문화랑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또한 서양에서는 도축 과정이 요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고기를 통째로 쓰는 일이 많은 바비큐의 경우, 고기를 원하는 모양과 크기로 다듬는 정형과 발골 기술은 필수적으로 해야 되는 작업이다. 즉 절간 조리사거나 채식만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축과 발골, 정형은 양식 요리사의 기본기라고 할 수 있다. 바비큐 쪽의 유명 조리사인 스티븐 라이클렌의 "바비큐 바이블"이란 베스트 셀러에서도 발골, 정형 기술 부분까지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아는 스타 요리사 Salt Bae 또한 도축업자 출신으로 부와 명예를 동시에 쌓았다. 일은 험해도 일단 도축업자는 이쪽 문화권에서는 거의 대부분 재력을 쌓은 부자인 경우가 많다.
업종의 차원에서 논하자면 과거 백정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업계 종사자들에게 '''끔찍한 실례가 되는 말이다.'''[3] 젊은 세대에서는 익숙치 않을 수 있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는 엄청나게 경직되어 있었고 차별에 대한 인식도 약했다. 엄연히 신분제가 철폐된 평등사회임에도 도축업자를 '''백정'''이라고 부르며 경원시하기도 했고, 자식까지도 도축업자의 직업을 이유로 차별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인식 때문에 과거부터 도축업자들은 얼굴을 드러내고 인터뷰하는 것을 꺼려 왔고, 이와 관련된 일화가 식객에서 소개되어 젊은 세대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애초에 부모님 직장 같은 걸 오만 군데서 물어보는 한국 사회에서 차별이 없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는 것 자체가 무리다. 다행히 90년대 이후로 이런 인식은 서서히 개선되어 가고 있다.
일이 굉장히 거칠고 힘든 일이기 때문에 막노동마냥 일을 배울 때도 구타와 욕설이 난무할 것 같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사용하는 칼의 위험성도 매우 무시무시할 뿐더러 스승도 제자도 모두 피지컬이 만만치 않은데다 칼을 들고 일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순간 욱해서 이성을 잃으면 '''어느쪽이든 누군가의 인생이 그 자리에서 끝장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축 및 정형에 쓰이는 칼의 날카로움은 여타 주방용 식칼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주방에서 쓰이는 칼은 이미 가공을 거친 재료를 썰어 내는 용도이지만 정형 과정에 사용되는 칼은 죽인지 얼마 안 된 가축을 잘라내고, 살과 뼈 사이를 파고 들어가서 발골을 하게끔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동물의 몸통을 자르기에 적합하다는 거고, 바꿔 말하면 '''사람의 몸통을 썰기에 충분하다는 뜻이다.''' 특히 동물의 살은 대체로 근육이나 힘줄이 사람의 살보다 훨씬 질기다. 이런 걸 싹싹 잘라낼 수 있는 칼이 사람에게 향한다면 그대로 사람을 '''두부 썰듯 썰 수 있다.''' 이런 만큼 안전하게 다뤄야 한다. 장난 같은건 꿈도 꾸지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실수든 고의든 장난이든 '''이 칼이 사람에게 향하는 순간 그 사람 인생은 박살난다.''' 운 좋아도 자상이고, 과다출혈 정도는 정말 막말로라도 드물다고 못한다.[4] 때문에 현직 기술자들도 조심해서 다루는 것은 물론 가르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그만 배우고 딴 길 찾아보라며 '''정중하게 말하지''' 뭘 이런 것도 못하냐고 고함지르고 욕하지는 않는다.
큼지막한 고깃덩이를 이리저리 뒤집고 누르면서 발골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일단 힘이 매우 좋아야 하므로 근력이 약한 사람들은 배우는 단계에서 쉽게 떨어져 나간다. 애초에 도축작업을 할 때 드는 갈비 한 짝이 수십kg은 우습게 나가는 무게인데다 2~4도 정도로 낮게 유지하는 도축장의 고기는 써는데에도 상당한 근력이 요구된다. 참고로 한국 돼지 평균 무게가 '''115kg'''이다. 내장이나 이런걸 다 뺀다해도 100kg은 된다는 소리이며, 절반으로 나눠도 50kg이다. 보통 무거운게 아니다. 소? 소는 '''300 ~ 400kg'''이다(...). 그나마 닭을 포함한 가금류가 가벼운 축에 속하지만 이쪽은 그 작은 덩치 때문에 작업량이 더 많다. 그래서 경험있는 현직 종사자 분들은 자연스레 몸이 근육질이 되는 것은 물론 소나 돼지를 발골하는 과정에서 손이 기형적으로 뒤틀리는 경우도 있다. 언뜻 보면 보기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실례되는 말은 하지 말자. 대장장이가 불 때문에 눈이 금새 나빠지고, 망치와 집게를 잡고 풀무질을 하면서 손이 거칠게 변한 것이 장인의 영광스런 흉터듯이, 이 사람들의 뒤틀린 손도 고기를 썰고 다듬으며 생긴 장인의 흉터다. 존경심을 가지자.
도시전설이긴 하지만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조폭이 함부로 설쳤다가 도축업자들에게 역으로 끔살당하고 지금도 발을 못 붙인다는 얘기가 돌 정도. 따라서 가혹행위가 있는 경우는 보기 드물며, 같은 이유로 조직문화는 상당히 수평적이다. 요리학원에서도 이렇게 가르친다. 비슷한 업종인 요리사들 사이에서 똥군기가 만연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내 독립영화에서도 비리비리한 청년이 폭력배들에게 처맞다가, 칼을 잡더니 죄다 조폭들을 썰어버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알고 보니 정형 기술자. 조폭들을 다 죽여버린 뒤 그 청년의 대사가 압권인데 '''"미안, 내 칼이 아니라서 X나 어렵네?"''' 이 말이 뻥이 아닌게 상술했듯 정형 기술자들의 칼은 굉장히 날이 세서 사람 담그는건 일도 아니기 때문. 조폭들 칼이 날카로워봐야 요리용 칼 정도니...
도축업자의 얼굴이 공개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허영만이 취재를 허가받은 사례가 있지만 매우 드문 경우이다. 이 경우는 예전처럼 신분을 만들어 차별하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직업에 대한 차별이다. 사실 중노동인 도축, 육가공업에 종사하는 도축업자들의 노고가 없이는 소비자들도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만화가 허영만은 식객에서 "이 분들이 없었다면 '''풀밭'''만이 무성한 밥상만을 볼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작중에서는 김진수의 입을 빌려 "도축업자들을 천시하는 사람들은 고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고기 먹을 자격이 없다.'''"고 하기도 했다. 농담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만약 일제 파업이라도 한다면 그 순간 식탁에서 육류와 당분간 작별을 해야 한다.
아무래도 육체노동이 주가 되다 보니 몸이 힘든 건 피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육류라는 식재를 다루는 직업이다보니 수입은 괜찮은 편이다. 애초에 백정이라고 천대받던 과거 시절에도 능력껏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직업이었다.
90년대에 연재했던 백성민 화백 만화에서 주인공이 백정의 아들인데 백정 일이 싫다고 어릴 적부터 징징거리던 주인공을 아버지는 한심하게 바라보며 "이놈아, 백정 일이 천하다고 하지만 적어도 굶주릴 일은 없어. 고기도 실컷 먹고 우리더러 천하다고 우습게 보던 농것(농부를 비하하듯이 부른 말)들이 정작 흉년에 굶주렸다가 우리가 고기 먹는 걸 보고 침흘리는 걸 난 수도 없이 바라보며 '농것들아 배고프지?'라고 약올리던 적도 많다. 때론 굶주린 양반들도 '어이구야, 천한 것이 고기 많이 먹어 죄송합니다'라고 약올리던 적도 있고. 이런 맛으로 살면 백정 일 나쁘지 않아. 그리고, 돈도 잘하면 쏠쏠하게 번단 말이야."라고 말하는 게 나온다. 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커서 백정 일을 벗어나고자 달아나고 오히려 누나가 백정으로 활약하게 된다.
현대에 들어서 베테랑 도축업자들은 식육식당을 겸하는 경우가 많고 마장동 점주들은 상당수가 자산가 및 건물주이다. 옛날에야 백정 집에 시집, 장가 간다고 천대받았을 뿐이고 요즘에 이르러서는 우리 자식이 사장님 집안으로 시집 간다는 소리가 나온다.
농담이 아닌 것이, 정형 기술자는 대부분 고기 유통업이나 식당을 겸하는 경우가 많고 고기를 파는 요식업은 다른 업종과는 수입에 있어 그 차원을 달리한다. 이제는 인식과는 다르게 판사, 검사, 변호사여도 집안이 한미하면 마장동 고깃집에 장가 못 간다는 우스갯소리 아닌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한다. 사회가 발전하고 3D 업종에 대한 인식이 개선될수록 이런 천대 현상은 사라질 듯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일은 100% 기계화를 할 수가 없고,[5] 대한민국의 육류 소비량은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즉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한 꾸준한 수요가 있는 유망 직종'''이며, 마찬가지로 기계화가 완벽하게 되지 않고 식재료 소비 증가로 각광받고 있는 조리사의 연장선(전단계)에 있는 직업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일이 매우 고되기 때문에 조리사보다는 경쟁률이 덜하다. 작업 현장은 기본적으로 피와 내장이 많기 때문에 미끄러우며 냄새가 심하게 나는 데 이런 환경에서 무거운 고기덩어리를 들고 움직이거나 칼을 쓰는 위험하고 힘든 일이라는 제약이 있어 여성이 진출하기 어렵긴 하지만 엄연히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는 국가 기능사 자격이기 때문에 아예 법으로 진입 자체를 막는 광부와 달리 연령과 성별에 따른 진입장벽은 없다.
서양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인식이 꽤 좋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좋았으며 현재도 한중일 3국 중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가장 좋은 편이다. 고대 중국에서부터 제례에 바치는 희생은 군주에 의해 주관 및 분배되었고, 포인이라고 불렸던 왕실 요리사들은 직접 도축을 집행했으며 심복 대우를 받았다. 장자에 나온 일화인 포정해우가 아주 좋은 예로, 군주가 도축업자의 신들린 칼솜씨를 보고 감탄하며 묻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중국에 북방 유목민족의 정복왕조가 많이 들어섰던 만큼 그들의 영향으로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좋은 것도 있는데, 그러한 정복왕조에 해당하는 북위, 요나라, 서하,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는 도축업자를 기술자로 존중해주었다. 한족 왕조를 표방했지만 실상은 한족과 선비족의 혼혈왕조였던 수나라와 당나라 또한 유목민족인 선비족의 영향으로 도축업자가 좋은 대우를 받았다. 순수 한족에 가까운 송나라와 명나라는 어땠는지 잘 아는 위키러의 추가 설명을 요한다.
대표적으로 삼국지의 하진은 일개 백정이었지만, 도축업을 통해 상당히 많은 돈을 벌어들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관직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다.[6] 오늘날로 치자면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서 국무총리까지 진출한 셈이다.
하지만 중국의 고전문학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도축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소설 삼국지의 하태후만 해도 시어머니인 동태후에게 "개돼지나 잡고 살던 천한 것들이 어딜 감히 나랏일에 참견하려 하느냐!"라며 모욕을 받았고, 수호전의 주인공들 중 한 명인 노지심은 자기가 사는 동네의 진관서(鎮關西)라는 이름을 가지고 거들먹거리는 자의 정체가 도축업자인 정도호(鄭屠戶)라는 사실을 알자 "도축이나 하는 천한 것이 무슨 진관서라고 건방지게 까부느냐?"라고 화를 내며 그를 죽여버렸다. 그리고 청나라 시대의 소설 유림외사에서는 도축업을 하는 백정 호씨를 가리켜 마을 사람이 "당신은 매일 돼지를 잡으며 살고 있으니, 죽으면 지옥에 떨어져 염라대왕한테 몇 천 몇 만 대의 철퇴를 맞고 살 것이오!"라고 조롱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래도 도축업 자체가 힘든 직업이다 보니 힘든 직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서 그런 모습도 보였던 듯하다. 대체로 유목 문화의 영향이 강했던 중국 북부 지역에서는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좋았던 반면 농경 문화의 영향이 강했던 중국 남부 지역에서는 도축업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의외로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인식이 끝내주게 나쁘다. 일본은 육식금지령이 오랫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고기는 드물게 약으로 먹거나 ''''이것은 고기가 아니다''''라고 우기면서 야생동물 고기(고래, 맷돼지, 오리 등)를 종종 섭취하는 정도였다. 이렇게 육식 자체가 금기시되는 상황에서 도축업자의 대우가 좋을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조선도 백정들을 천대했지만 여기엔 다른 문화적인 원인도 개입해 있었고, 어쨌든 조선은 농사일에 써야 되니 소 잡아먹지 말라고 하자 일부러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소를 기어이 잡아먹고야 말 정도로(...)[7] 육식에 대한 거리낌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육식 자체가 법적, 문화적으로 금기였기 때문에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빴다.
부라쿠민이 전통적으로 종사해 온 업종 중 하나가 바로 이 도축업이다. 가업을 물려받는 문화가 상당히 강한 일본에서는 도축업에 대한 편견이 부라쿠민에 대한 편견과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인식의 심각함을 알고 싶다면 부라쿠민 문서로.
아이러니하게도 개항 이후 일본인들은 고기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부흥과 경제적 위상 때문에 온 사회의 고기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와규처럼 대중적인 고기를 길러내는 데도 성공했다. 그런데도 도축업에 대한 인식 개선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모든 지역에서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극단적으로 나쁜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오키나와, 구마모토현, 홋카이도를 들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 본토와 같은 뿌리를 가졌으면서도 일본 본토와는 별개의 나라로 지내왔던 오키나와의 경우 일본 본토에 비해 불교의 영향력이 약했던 관계로 전근대부터 육류 요리가 발달했기 때문에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다.
구마모토현의 경우 울산성 전투 당시 전투식량이 부족해진 탓에 어쩔 수 없이 군마를 도축하여 말고기를 먹었던 가토 기요마사가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도 말고기맛을 잊지 못하여 계속 말고기를 먹으면서 가토 기요마사가 번주로 있던 구마모토가 말고기 요리로 유명해졌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덜 나쁘다.
그리고 아이누족을 포함한 홋카이도의 원주민들도 수렵민족이었던 영향으로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대체로 긍정적이다.
해당 지역들은 육식에 관대했던 역사가 일본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길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일본인들 대부분이 육식에 관대해진 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고도성장기에 들면서부터였던 반면, 오키나와와 홋카이도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계속 육식 문화가 발달해왔고 구마모토는 정유재란이 막 끝난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말기 때부터 점차 육식(정확히는 말고기)에 관대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들마냥 도축업자를 천박한 직업으로 여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유대인이나 아랍인, 몽골인 같은 유목민족들은 깨끗한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랍비가 정육점을 운영하거나 백정이 나라에서 벼슬을 받는 등 상당한 대접을 받았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라서 솜씨 좋은 도축업자에게 술탄이 후한 보상을 하던 것도 흔했다. 성직자인 이맘이 도축업을 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천시하는게 아닌, 알라의 뜻으로 소중한 고기를 먹게 하는 고맙고 거룩한 직업이라고 여겨 인식이 엄청 좋을 수 밖에 없었다.
유대교는 신자들 사이에서 도축업자는 반드시 유대교 신학을 공부한 엘리트들만 했으며, 이맘과 마찬가지로 유태교 성직자 격인 랍비가 도축업자를 겸직한 경우도 있었을 만큼 사회적인 대우도 매우 좋았다.
몽골이라든지 소, 염소, 낙타, 양 등 여러 동물을 기르는 유목민들은 고기를 다루는 일이 기본이라, 어린이들도 새끼양 한 마리 잡아 요리하는 것을 라면 끓이듯 간단하게 한다고 한다. 도축을 전문 업자가 하지 않고 가정일의 일환으로 매일같이 하니, 인식이 나쁠 수가 없다.
불교권에서는 좀 인식이 좋지 않았지만, 동남아 불교권에서도 제법 큰 돈을 벌거나 일부는 벼슬을 하던 경우가 있었기에 꼭 나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불교 일화에서 도축업자가 짐승을 죽이는 게 괴롭다고 하니 꿈에 부처가 나타나 고통없이 내세를 끝내주고 사람에게 큰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데 그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이야기하여 도축업자는 괴로운 마음을 접고 열심히 일했는데 그 사람이 죽어서 화장하니 사리가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장동에는 과거에 소, 돼지 도축장이 있어서 그 주변에 정육점이 많이 생겼다.[9] 도축하자마자 바로 먹기 때문에 냉동 → 해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서 돼지나 소의 특수부위나 곱창 등이 싸고 신선하고 맛있다.
그곳 종사자들 전원은 말 그대로 '정형사(칼잡이)'인데다가 비록 연장을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소나 돼지같은 거대한 동물들을 일격에 보내야 하는 요구능력에 엄청난 무게의 고깃덩어리들을 상대하다 보니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도 힘이 엄청나게 세다. 난다긴다 하는 조폭들도 마장동은 절대 함부로 못 건드린다고 한다. 1982년 마장동에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보호비 내놓으라며 12cm 칼을 들고 날뛰다 담금질 당했다는 조폭의 이야기가 도시전설마냥 퍼져있다. 상인(=발골/정형기술자)이 '''"자네, 돼지 멱따는 소리 들어봤나?"''' 하고 말한 다음 바로 배를 칼로 찔러버렸다고 한다.[10] 실제로 근래에는 개선되어가고 있다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도축업자들에 대한 차별대우와 인식은 남아있으며, 그로 인해 도축업자들과 정형발골사들은 단결의식과 불합리한 대우에 강경대응을 하는 것을 기피하지 않는만큼 조폭들이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뒷감당을 하기 어렵다. 조폭들이 사실상 기생충 수준의 잡범으로 몰락한 요즘에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도축업자들이 다루는 칼은 검도에서 쓰는 길지만 가느다란 진검이나 나이프 수준이 아니라 '''크고 아름다운 발골용 칼'''로 용도 자체도 긋거나 찌르고마는 무기의 용도가 아니라 인간보다 두꺼운 근육을 지닌 짐승들의 살과 뼈를 한꺼번에 썰어서 분리시키는 용도의 칼이다. (인터넷에서 "소머리칼"로 검색해 보자. 도축업용 칼 중에서는 중간 정도 크기 칼인데, 날 길이만 27cm를 넘는다.) 조폭이 소총만 들고 다닌다면 우시장 사람들은 '''소총은 물론''' 대포까지 같이 들고 다니는 정도의 차이라고나 할까. 물론, 이 내용은 약간 과장되었다는 의견이 있다. 그렇다고 이분들을 만만하게 봐도 된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애초에 힘이 세고, 칼을 잘 다루는 사람에게 함부로 개기는 게 과연 현명한 짓일지 잘 생각해 보자.''' 게다가, 식당이나 생선 가게, 정육점 등 소수의 업종만 칼을 쓰는 일반 시장과 달리, 마장동 시장은 9할의 상인이 저런 어마무사한 칼을 매일 만져대는 칼잡이들이다.
이곳도 시대의 변화상 때문인지 과거에 비해선 많이 쇠락했다고 한다. 특히 2010~2011년에 일어난 대규모 구제역 파동 때문에 거의 분위기가 초토화되다시피 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위상을 회복했다. 고기를 다루는 곳인지 주변 상권은 엄청나게 돈이 많으며, 구제역 파동 이후에도 금방 회복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곳이 없어지면 서울 - 수도권 주민들은 풀만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곳이다. 수입산 고기가 많아지면 이들 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소리도 있으나 헛소리다. 수입 쇠고기, 돼지고기도 발골하지 않고 국내에 들여오기에 다시 정형발골해서 먹을 만하게 내놓는 일도 결국 이들이 맡아야 하기 때문에 이들이 없으면 제대로 시중에 팔기도 어렵다.
고기를 칼로 해부한다는 업무가 대중에게는 꽤나 자극적인 소재여서인지 영화나 게임에서는 짐승 말고 다른 것을 도축하는 악당이나 괴물로 곧잘 등장해서 호러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조한다.
1. 개요
한자로는 屠畜業者, 영어로는 Butcher이다. 축산물의 도축을 담당하는 업종으로 고기를 만들어 내는 첫 단계를 하는 사람들이다. 관련 국가 자격이 95년부터 시행하는 식육처리기능사인데, 엄연히 전문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직종이며, 10여년 전 정도 기준으로는 여성 중 이 자격이 있는 사람은 식품영양학과 교수 한 사람뿐이었을 정도로 굉장한 남초직업.
이 자격이란 게 단순히 소나 돼지를 죽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몸통을 부위별로 세세하게 나눠야 하니깐 해부학적 지식과 숙달된 기술, 근력과 체력이 모두 필요하다. 물론 도축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자격이 있어야 하지만, 실제 도축 인원보다 발골, 정형에 종사하는 인원이 훨씬 많다. 즉 이 문서에서는 도축에 직접 종사하는 인원과 발골/정형기술자 모두를 포함한다.
2. 인식
2.1. 서양
현대의 서양에서는 한국과는 인식이 정반대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다르다. 서양에서 도축업자들은 엄연한 스페셜리스트로 대우받는다. 도살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진득하고 고어한 이미지 탓에 대중문화에서 빌런으로 자주 등장하는 등, 살가운 인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천하다는 인상은 없다.[2] 사냥한 동물을 해체하거나 요리한 뒤 나누어 주는 일을 집단의 우두머리가 맡았던 전통이 있어 오히려 도축업자는 생각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업이다. 이러한 전통의 영향으로 지금도 서양에서는 바비큐 파티 등을 할 때 고기를 굽고 나누어주는 역할은 연장자나 보스가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히려 PETA같은 단체나 채식주의자들의 시위와 모욕 때문에 장사하기 더 힘들다고 (...). 이베리아 반도의 전통적인 천민 계층이었던 카고는 도축업자를 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한국과 반대라고 보면 된다.
미국의 경우 바비큐와 스테이크가 일상이라 고기 자르고 소세지와 버거 패티까지 만드는 가게가 동네마다 하나씩 있을뿐더러, 도심지 위주로 점점 도시 인근에서 생산된 유기농 식품 및 동물의 삶의 질을 따지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인근 농가들과 계약맺고 직접 에이징 까지 하는 등, 고급화, 로컬화와 인식의 변화가 맞물려 이들의 사회적 위상이 상당히 높아진 편이다.
한국은 보통 사는 부위가 거기서 거기지만 미국은 반 마리씩 끌고와 정형한다. 손님이 어떤 부위를 추천받아서 사겠다고 하면 특정 부위를 그 자리에서 썰어주는 게 기본이라 칼솜씨와 해부학 지식 뿐만 아니라 요리까지 박식해야 한다. 그래서 Butcher shop에 가면 온 김에 다 사라고 에이징 재료나 소스, 심지어 사이드로 먹을 채소와 기타 grocery까지 팔기도 한다. 손님이 미어터지지 않는다면 부위 예약도 친절하게 받아서 예약한 날에 맞춰 썰어준다! 미국도 KBBQ (한국식 고기 요리) 인기가 최근 부쩍 늘어서 코리안 컷 달라고 하면 알아서 해주는 집도 많다. 아니면 그냥 부위 집어서 두께 0.5인치 정도 썰어달라하면 해준다. 물론 시간이 많이 드는 만큼 팁 좀 주자(...)
게다가 민간에까지 사냥 문화가 발달해 있기에 도축업자랑 접할 일이 많으므로 거부감도 딱히 없다. 일례로 유튜브 가서 Butchery까지만 쳐도 아래에 연관 검색어가 줄줄이 뜬다. 아예 요리 학원 수업에서 선생이 돼지 한마리를 통째로 발골 정형해 버리는 영상이 HD 화질로 올라와 있다. 도살장 도축 과정은 대통령에게도 안 보여준다고까지 하는 국내 문화랑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또한 서양에서는 도축 과정이 요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고기를 통째로 쓰는 일이 많은 바비큐의 경우, 고기를 원하는 모양과 크기로 다듬는 정형과 발골 기술은 필수적으로 해야 되는 작업이다. 즉 절간 조리사거나 채식만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축과 발골, 정형은 양식 요리사의 기본기라고 할 수 있다. 바비큐 쪽의 유명 조리사인 스티븐 라이클렌의 "바비큐 바이블"이란 베스트 셀러에서도 발골, 정형 기술 부분까지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아는 스타 요리사 Salt Bae 또한 도축업자 출신으로 부와 명예를 동시에 쌓았다. 일은 험해도 일단 도축업자는 이쪽 문화권에서는 거의 대부분 재력을 쌓은 부자인 경우가 많다.
2.2. 동양
2.2.1. 대한민국
업종의 차원에서 논하자면 과거 백정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업계 종사자들에게 '''끔찍한 실례가 되는 말이다.'''[3] 젊은 세대에서는 익숙치 않을 수 있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는 엄청나게 경직되어 있었고 차별에 대한 인식도 약했다. 엄연히 신분제가 철폐된 평등사회임에도 도축업자를 '''백정'''이라고 부르며 경원시하기도 했고, 자식까지도 도축업자의 직업을 이유로 차별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인식 때문에 과거부터 도축업자들은 얼굴을 드러내고 인터뷰하는 것을 꺼려 왔고, 이와 관련된 일화가 식객에서 소개되어 젊은 세대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애초에 부모님 직장 같은 걸 오만 군데서 물어보는 한국 사회에서 차별이 없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는 것 자체가 무리다. 다행히 90년대 이후로 이런 인식은 서서히 개선되어 가고 있다.
일이 굉장히 거칠고 힘든 일이기 때문에 막노동마냥 일을 배울 때도 구타와 욕설이 난무할 것 같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사용하는 칼의 위험성도 매우 무시무시할 뿐더러 스승도 제자도 모두 피지컬이 만만치 않은데다 칼을 들고 일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순간 욱해서 이성을 잃으면 '''어느쪽이든 누군가의 인생이 그 자리에서 끝장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축 및 정형에 쓰이는 칼의 날카로움은 여타 주방용 식칼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주방에서 쓰이는 칼은 이미 가공을 거친 재료를 썰어 내는 용도이지만 정형 과정에 사용되는 칼은 죽인지 얼마 안 된 가축을 잘라내고, 살과 뼈 사이를 파고 들어가서 발골을 하게끔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동물의 몸통을 자르기에 적합하다는 거고, 바꿔 말하면 '''사람의 몸통을 썰기에 충분하다는 뜻이다.''' 특히 동물의 살은 대체로 근육이나 힘줄이 사람의 살보다 훨씬 질기다. 이런 걸 싹싹 잘라낼 수 있는 칼이 사람에게 향한다면 그대로 사람을 '''두부 썰듯 썰 수 있다.''' 이런 만큼 안전하게 다뤄야 한다. 장난 같은건 꿈도 꾸지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실수든 고의든 장난이든 '''이 칼이 사람에게 향하는 순간 그 사람 인생은 박살난다.''' 운 좋아도 자상이고, 과다출혈 정도는 정말 막말로라도 드물다고 못한다.[4] 때문에 현직 기술자들도 조심해서 다루는 것은 물론 가르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그만 배우고 딴 길 찾아보라며 '''정중하게 말하지''' 뭘 이런 것도 못하냐고 고함지르고 욕하지는 않는다.
큼지막한 고깃덩이를 이리저리 뒤집고 누르면서 발골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일단 힘이 매우 좋아야 하므로 근력이 약한 사람들은 배우는 단계에서 쉽게 떨어져 나간다. 애초에 도축작업을 할 때 드는 갈비 한 짝이 수십kg은 우습게 나가는 무게인데다 2~4도 정도로 낮게 유지하는 도축장의 고기는 써는데에도 상당한 근력이 요구된다. 참고로 한국 돼지 평균 무게가 '''115kg'''이다. 내장이나 이런걸 다 뺀다해도 100kg은 된다는 소리이며, 절반으로 나눠도 50kg이다. 보통 무거운게 아니다. 소? 소는 '''300 ~ 400kg'''이다(...). 그나마 닭을 포함한 가금류가 가벼운 축에 속하지만 이쪽은 그 작은 덩치 때문에 작업량이 더 많다. 그래서 경험있는 현직 종사자 분들은 자연스레 몸이 근육질이 되는 것은 물론 소나 돼지를 발골하는 과정에서 손이 기형적으로 뒤틀리는 경우도 있다. 언뜻 보면 보기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실례되는 말은 하지 말자. 대장장이가 불 때문에 눈이 금새 나빠지고, 망치와 집게를 잡고 풀무질을 하면서 손이 거칠게 변한 것이 장인의 영광스런 흉터듯이, 이 사람들의 뒤틀린 손도 고기를 썰고 다듬으며 생긴 장인의 흉터다. 존경심을 가지자.
도시전설이긴 하지만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조폭이 함부로 설쳤다가 도축업자들에게 역으로 끔살당하고 지금도 발을 못 붙인다는 얘기가 돌 정도. 따라서 가혹행위가 있는 경우는 보기 드물며, 같은 이유로 조직문화는 상당히 수평적이다. 요리학원에서도 이렇게 가르친다. 비슷한 업종인 요리사들 사이에서 똥군기가 만연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내 독립영화에서도 비리비리한 청년이 폭력배들에게 처맞다가, 칼을 잡더니 죄다 조폭들을 썰어버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알고 보니 정형 기술자. 조폭들을 다 죽여버린 뒤 그 청년의 대사가 압권인데 '''"미안, 내 칼이 아니라서 X나 어렵네?"''' 이 말이 뻥이 아닌게 상술했듯 정형 기술자들의 칼은 굉장히 날이 세서 사람 담그는건 일도 아니기 때문. 조폭들 칼이 날카로워봐야 요리용 칼 정도니...
도축업자의 얼굴이 공개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허영만이 취재를 허가받은 사례가 있지만 매우 드문 경우이다. 이 경우는 예전처럼 신분을 만들어 차별하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직업에 대한 차별이다. 사실 중노동인 도축, 육가공업에 종사하는 도축업자들의 노고가 없이는 소비자들도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만화가 허영만은 식객에서 "이 분들이 없었다면 '''풀밭'''만이 무성한 밥상만을 볼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작중에서는 김진수의 입을 빌려 "도축업자들을 천시하는 사람들은 고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고기 먹을 자격이 없다.'''"고 하기도 했다. 농담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만약 일제 파업이라도 한다면 그 순간 식탁에서 육류와 당분간 작별을 해야 한다.
아무래도 육체노동이 주가 되다 보니 몸이 힘든 건 피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육류라는 식재를 다루는 직업이다보니 수입은 괜찮은 편이다. 애초에 백정이라고 천대받던 과거 시절에도 능력껏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직업이었다.
90년대에 연재했던 백성민 화백 만화에서 주인공이 백정의 아들인데 백정 일이 싫다고 어릴 적부터 징징거리던 주인공을 아버지는 한심하게 바라보며 "이놈아, 백정 일이 천하다고 하지만 적어도 굶주릴 일은 없어. 고기도 실컷 먹고 우리더러 천하다고 우습게 보던 농것(농부를 비하하듯이 부른 말)들이 정작 흉년에 굶주렸다가 우리가 고기 먹는 걸 보고 침흘리는 걸 난 수도 없이 바라보며 '농것들아 배고프지?'라고 약올리던 적도 많다. 때론 굶주린 양반들도 '어이구야, 천한 것이 고기 많이 먹어 죄송합니다'라고 약올리던 적도 있고. 이런 맛으로 살면 백정 일 나쁘지 않아. 그리고, 돈도 잘하면 쏠쏠하게 번단 말이야."라고 말하는 게 나온다. 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커서 백정 일을 벗어나고자 달아나고 오히려 누나가 백정으로 활약하게 된다.
현대에 들어서 베테랑 도축업자들은 식육식당을 겸하는 경우가 많고 마장동 점주들은 상당수가 자산가 및 건물주이다. 옛날에야 백정 집에 시집, 장가 간다고 천대받았을 뿐이고 요즘에 이르러서는 우리 자식이 사장님 집안으로 시집 간다는 소리가 나온다.
농담이 아닌 것이, 정형 기술자는 대부분 고기 유통업이나 식당을 겸하는 경우가 많고 고기를 파는 요식업은 다른 업종과는 수입에 있어 그 차원을 달리한다. 이제는 인식과는 다르게 판사, 검사, 변호사여도 집안이 한미하면 마장동 고깃집에 장가 못 간다는 우스갯소리 아닌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한다. 사회가 발전하고 3D 업종에 대한 인식이 개선될수록 이런 천대 현상은 사라질 듯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일은 100% 기계화를 할 수가 없고,[5] 대한민국의 육류 소비량은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즉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한 꾸준한 수요가 있는 유망 직종'''이며, 마찬가지로 기계화가 완벽하게 되지 않고 식재료 소비 증가로 각광받고 있는 조리사의 연장선(전단계)에 있는 직업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일이 매우 고되기 때문에 조리사보다는 경쟁률이 덜하다. 작업 현장은 기본적으로 피와 내장이 많기 때문에 미끄러우며 냄새가 심하게 나는 데 이런 환경에서 무거운 고기덩어리를 들고 움직이거나 칼을 쓰는 위험하고 힘든 일이라는 제약이 있어 여성이 진출하기 어렵긴 하지만 엄연히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는 국가 기능사 자격이기 때문에 아예 법으로 진입 자체를 막는 광부와 달리 연령과 성별에 따른 진입장벽은 없다.
2.2.2. 중국
서양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인식이 꽤 좋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좋았으며 현재도 한중일 3국 중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가장 좋은 편이다. 고대 중국에서부터 제례에 바치는 희생은 군주에 의해 주관 및 분배되었고, 포인이라고 불렸던 왕실 요리사들은 직접 도축을 집행했으며 심복 대우를 받았다. 장자에 나온 일화인 포정해우가 아주 좋은 예로, 군주가 도축업자의 신들린 칼솜씨를 보고 감탄하며 묻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중국에 북방 유목민족의 정복왕조가 많이 들어섰던 만큼 그들의 영향으로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좋은 것도 있는데, 그러한 정복왕조에 해당하는 북위, 요나라, 서하,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는 도축업자를 기술자로 존중해주었다. 한족 왕조를 표방했지만 실상은 한족과 선비족의 혼혈왕조였던 수나라와 당나라 또한 유목민족인 선비족의 영향으로 도축업자가 좋은 대우를 받았다. 순수 한족에 가까운 송나라와 명나라는 어땠는지 잘 아는 위키러의 추가 설명을 요한다.
대표적으로 삼국지의 하진은 일개 백정이었지만, 도축업을 통해 상당히 많은 돈을 벌어들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관직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다.[6] 오늘날로 치자면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서 국무총리까지 진출한 셈이다.
하지만 중국의 고전문학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도축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소설 삼국지의 하태후만 해도 시어머니인 동태후에게 "개돼지나 잡고 살던 천한 것들이 어딜 감히 나랏일에 참견하려 하느냐!"라며 모욕을 받았고, 수호전의 주인공들 중 한 명인 노지심은 자기가 사는 동네의 진관서(鎮關西)라는 이름을 가지고 거들먹거리는 자의 정체가 도축업자인 정도호(鄭屠戶)라는 사실을 알자 "도축이나 하는 천한 것이 무슨 진관서라고 건방지게 까부느냐?"라고 화를 내며 그를 죽여버렸다. 그리고 청나라 시대의 소설 유림외사에서는 도축업을 하는 백정 호씨를 가리켜 마을 사람이 "당신은 매일 돼지를 잡으며 살고 있으니, 죽으면 지옥에 떨어져 염라대왕한테 몇 천 몇 만 대의 철퇴를 맞고 살 것이오!"라고 조롱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래도 도축업 자체가 힘든 직업이다 보니 힘든 직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서 그런 모습도 보였던 듯하다. 대체로 유목 문화의 영향이 강했던 중국 북부 지역에서는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좋았던 반면 농경 문화의 영향이 강했던 중국 남부 지역에서는 도축업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의외로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2.2.3. 일본
인식이 끝내주게 나쁘다. 일본은 육식금지령이 오랫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고기는 드물게 약으로 먹거나 ''''이것은 고기가 아니다''''라고 우기면서 야생동물 고기(고래, 맷돼지, 오리 등)를 종종 섭취하는 정도였다. 이렇게 육식 자체가 금기시되는 상황에서 도축업자의 대우가 좋을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조선도 백정들을 천대했지만 여기엔 다른 문화적인 원인도 개입해 있었고, 어쨌든 조선은 농사일에 써야 되니 소 잡아먹지 말라고 하자 일부러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소를 기어이 잡아먹고야 말 정도로(...)[7] 육식에 대한 거리낌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육식 자체가 법적, 문화적으로 금기였기 때문에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빴다.
부라쿠민이 전통적으로 종사해 온 업종 중 하나가 바로 이 도축업이다. 가업을 물려받는 문화가 상당히 강한 일본에서는 도축업에 대한 편견이 부라쿠민에 대한 편견과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인식의 심각함을 알고 싶다면 부라쿠민 문서로.
아이러니하게도 개항 이후 일본인들은 고기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부흥과 경제적 위상 때문에 온 사회의 고기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와규처럼 대중적인 고기를 길러내는 데도 성공했다. 그런데도 도축업에 대한 인식 개선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모든 지역에서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극단적으로 나쁜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오키나와, 구마모토현, 홋카이도를 들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 본토와 같은 뿌리를 가졌으면서도 일본 본토와는 별개의 나라로 지내왔던 오키나와의 경우 일본 본토에 비해 불교의 영향력이 약했던 관계로 전근대부터 육류 요리가 발달했기 때문에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다.
구마모토현의 경우 울산성 전투 당시 전투식량이 부족해진 탓에 어쩔 수 없이 군마를 도축하여 말고기를 먹었던 가토 기요마사가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도 말고기맛을 잊지 못하여 계속 말고기를 먹으면서 가토 기요마사가 번주로 있던 구마모토가 말고기 요리로 유명해졌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덜 나쁘다.
그리고 아이누족을 포함한 홋카이도의 원주민들도 수렵민족이었던 영향으로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대체로 긍정적이다.
해당 지역들은 육식에 관대했던 역사가 일본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길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일본인들 대부분이 육식에 관대해진 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고도성장기에 들면서부터였던 반면, 오키나와와 홋카이도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계속 육식 문화가 발달해왔고 구마모토는 정유재란이 막 끝난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말기 때부터 점차 육식(정확히는 말고기)에 관대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들마냥 도축업자를 천박한 직업으로 여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2.2.4. 기타
유대인이나 아랍인, 몽골인 같은 유목민족들은 깨끗한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랍비가 정육점을 운영하거나 백정이 나라에서 벼슬을 받는 등 상당한 대접을 받았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라서 솜씨 좋은 도축업자에게 술탄이 후한 보상을 하던 것도 흔했다. 성직자인 이맘이 도축업을 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천시하는게 아닌, 알라의 뜻으로 소중한 고기를 먹게 하는 고맙고 거룩한 직업이라고 여겨 인식이 엄청 좋을 수 밖에 없었다.
유대교는 신자들 사이에서 도축업자는 반드시 유대교 신학을 공부한 엘리트들만 했으며, 이맘과 마찬가지로 유태교 성직자 격인 랍비가 도축업자를 겸직한 경우도 있었을 만큼 사회적인 대우도 매우 좋았다.
몽골이라든지 소, 염소, 낙타, 양 등 여러 동물을 기르는 유목민들은 고기를 다루는 일이 기본이라, 어린이들도 새끼양 한 마리 잡아 요리하는 것을 라면 끓이듯 간단하게 한다고 한다. 도축을 전문 업자가 하지 않고 가정일의 일환으로 매일같이 하니, 인식이 나쁠 수가 없다.
불교권에서는 좀 인식이 좋지 않았지만, 동남아 불교권에서도 제법 큰 돈을 벌거나 일부는 벼슬을 하던 경우가 있었기에 꼭 나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불교 일화에서 도축업자가 짐승을 죽이는 게 괴롭다고 하니 꿈에 부처가 나타나 고통없이 내세를 끝내주고 사람에게 큰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데 그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이야기하여 도축업자는 괴로운 마음을 접고 열심히 일했는데 그 사람이 죽어서 화장하니 사리가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3. 마장동 축산물시장[8]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장동에는 과거에 소, 돼지 도축장이 있어서 그 주변에 정육점이 많이 생겼다.[9] 도축하자마자 바로 먹기 때문에 냉동 → 해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서 돼지나 소의 특수부위나 곱창 등이 싸고 신선하고 맛있다.
그곳 종사자들 전원은 말 그대로 '정형사(칼잡이)'인데다가 비록 연장을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소나 돼지같은 거대한 동물들을 일격에 보내야 하는 요구능력에 엄청난 무게의 고깃덩어리들을 상대하다 보니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도 힘이 엄청나게 세다. 난다긴다 하는 조폭들도 마장동은 절대 함부로 못 건드린다고 한다. 1982년 마장동에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보호비 내놓으라며 12cm 칼을 들고 날뛰다 담금질 당했다는 조폭의 이야기가 도시전설마냥 퍼져있다. 상인(=발골/정형기술자)이 '''"자네, 돼지 멱따는 소리 들어봤나?"''' 하고 말한 다음 바로 배를 칼로 찔러버렸다고 한다.[10] 실제로 근래에는 개선되어가고 있다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도축업자들에 대한 차별대우와 인식은 남아있으며, 그로 인해 도축업자들과 정형발골사들은 단결의식과 불합리한 대우에 강경대응을 하는 것을 기피하지 않는만큼 조폭들이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뒷감당을 하기 어렵다. 조폭들이 사실상 기생충 수준의 잡범으로 몰락한 요즘에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도축업자들이 다루는 칼은 검도에서 쓰는 길지만 가느다란 진검이나 나이프 수준이 아니라 '''크고 아름다운 발골용 칼'''로 용도 자체도 긋거나 찌르고마는 무기의 용도가 아니라 인간보다 두꺼운 근육을 지닌 짐승들의 살과 뼈를 한꺼번에 썰어서 분리시키는 용도의 칼이다. (인터넷에서 "소머리칼"로 검색해 보자. 도축업용 칼 중에서는 중간 정도 크기 칼인데, 날 길이만 27cm를 넘는다.) 조폭이 소총만 들고 다닌다면 우시장 사람들은 '''소총은 물론''' 대포까지 같이 들고 다니는 정도의 차이라고나 할까. 물론, 이 내용은 약간 과장되었다는 의견이 있다. 그렇다고 이분들을 만만하게 봐도 된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애초에 힘이 세고, 칼을 잘 다루는 사람에게 함부로 개기는 게 과연 현명한 짓일지 잘 생각해 보자.''' 게다가, 식당이나 생선 가게, 정육점 등 소수의 업종만 칼을 쓰는 일반 시장과 달리, 마장동 시장은 9할의 상인이 저런 어마무사한 칼을 매일 만져대는 칼잡이들이다.
이곳도 시대의 변화상 때문인지 과거에 비해선 많이 쇠락했다고 한다. 특히 2010~2011년에 일어난 대규모 구제역 파동 때문에 거의 분위기가 초토화되다시피 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위상을 회복했다. 고기를 다루는 곳인지 주변 상권은 엄청나게 돈이 많으며, 구제역 파동 이후에도 금방 회복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곳이 없어지면 서울 - 수도권 주민들은 풀만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곳이다. 수입산 고기가 많아지면 이들 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소리도 있으나 헛소리다. 수입 쇠고기, 돼지고기도 발골하지 않고 국내에 들여오기에 다시 정형발골해서 먹을 만하게 내놓는 일도 결국 이들이 맡아야 하기 때문에 이들이 없으면 제대로 시중에 팔기도 어렵다.
4. 기타
- 도축업자들의 손을 보면 이고깽을 비롯한 판타지물이 얼마나 현실과 괴리가 큰지 실감할 수 있다. 수십년 칼을 잡고 효율적으로 힘을 써야하기에 어마어마한 굳은살이 생긴다. 반대로 말하면, 평생 펜대만 굴려온 고사리손의 고등학생이 갑자기 먼치킨 칼잡이가 되긴 어림 반푼도 없다는 것.
- 도축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도축업자와 친하게 지내 호감도를 올리면 간혹 원하는 부위의 고기를 득템할 수도 있다고 한다. 주로 많이 나누어 주는 부위는 천엽이라고 한다. 초식 동물들은 내장이 엄청나게 길어서 천엽도 보기보다 가장 양이 많기 때문에.
- 최근에는 일반 가정에서 지역 도축업자와 연락을 터서 직접 식육을 사들이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직거래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명함을 준비하는데, 대개 이 명함에는 도축업자와 황소가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식육처리기능사 직함과 E메일 주소, 전화번호가 들어간다.
- 생명을 죽여야 하기에 PTSD가 유행하는 직종이라고도 한다. 안그래도 워낙에 일이 고된 직종인데, 거기에 생명을 죽여서 해체한다는 부담감까지 더해져 작업하기 전에 많이들 술과 담배를 한다고 한다. 어류등을 다루는 수산시장에서는 덜하지만, 도축업자는 어찌보면 사람과 엇비슷한 신체구조를 가진 포유류 및 조류를 죽여야 하는 일이라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상당히 힘들 수 밖에 없다. 많은 문화권에서 도축 직전이나 사냥하기 전에 의식을 치르는 것도 PTSD 발생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 현재 배양육이 발전되어 육류 소비량을 맞출 정도로 배양육이 상용화되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살아남는 업자들은 배양육은 일상용으로 소모하고 비싼 돈을 줘야 먹을 수 있는 고급 식품이 되었을 생육을 최급하는 소수 정도가 될 것이다. 다만 가격이 비싸서 배양육이 자리 잡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인다.
5. 창작물
고기를 칼로 해부한다는 업무가 대중에게는 꽤나 자극적인 소재여서인지 영화나 게임에서는 짐승 말고 다른 것을 도축하는 악당이나 괴물로 곧잘 등장해서 호러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조한다.
6. 같이보기
[1] 엄격히 따지면 도축업자가 아니라 정형기술자들이 모인 곳이라 이 카테고리에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2] 서양 매체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나 사이코 의사등의 빌런이 많다고 저 직업들이 천대받는건 아닌 것과 같다.[3] 실제 조선시대에 고기를 잡고 파는 백정은 노비만도 못한 말그대로 사람 취급도 안했기 때문에 고기를 잡는 사람에게 백정이라 하는건 실례이다[4] 자기 칼에 베이면 거친 업종 특성상 혀를 차며 갈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오히려 안 베인 옆의 사람이 더 기겁하고 병원 가라고 소리친다.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5] 숨통을 끓거나 사체를 운반하는 작업이나 가금류처럼 크기가 작은 가축의 도축작업 일부에 기계화가 도입되어 있긴 하지만 돼지나 소와 같이 일반적인 가축을 부위별로 가공하는 작업은 아직까진 순전히 사람의 손으로만 가능한 영역이다.[6] 물론 자기 여동생인 하태후의 뛰어난 외모도 한몫 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하진의 능력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대 매관매직이 엄청 유행했는데 갑부인 하진의 입장이라면 높은 관직에 오르기 굉장히 쉬운 조건이었다.[7] 조선시대에는 원칙적으로 소는 잡아먹을 수 없으나, 병든 소는 먹을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이다.[8] 엄격히 따지면 도축업자가 아니라 정형기술자들이 모인 곳이라 이 카테고리에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9] 도축장 자체는 도시개발 때문에 1998년 이전했다.[10] 만화 식객에서도 등장하는 대사다. 흠좀무. 신문기사에서 소개하였으나, 진상은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