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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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일본'''
1. 개요
2. 역사
2.1. 초기
2.2. 근대
2.3. 현대
2.3.2. 일-소 공동선언
2.3.4. 현재
2.3.4.1. 2016년
2.3.4.2. 2018년
2.3.4.3. 2019년
2.3.4.4. 2020년
3. 문화 교류
4. 경제 교류
5. 대사관
6. 관련 문서


1. 개요


러시아어: Японо-российские отношения
일본어: 日露関係
러시아일본의 관계.

2. 역사



2.1. 초기


양국은 각각 에도 시대와 러시아 제국기인 18세기 초에 덴베캄차카 반도에서 표류하던 것을 러시아 탐험가들이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처음 조우했다. 이 때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덴베를 통해 일본어 교육이 실시되기도 했다. 그리고 덴베 자신도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표류하여 러시아까지 방문했던 다이코쿠야 고다유가 예카테리나 대제의 초상화를 일본으로 가져왔고, 초상화를 히다야가 모사한 바 있다.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이다. 양국은 식민개척 정책으로 사할린을 자국 영토라 주장하는데, 1855년 러일 화친 조약을 맺어 사할린을 공동 관할구역으로 만든다. 1875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맺어 러시아가 사할린을, 일본이 쿠릴 열도를 차지한다.
1891년 방일한 니콜라이 러시아 황태자가 일본인 경찰관에게 피습되는 오쓰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 제국은 열강으로 같은 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부설하는 등 동아시아로 진출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당시 러시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했던 일본 제국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외교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러시아의 보복을 두려워해 민, 관을 가리지 않고 사죄의 뜻을 표현했다. 러시아 제국은 일본 제국의 범죄자 처벌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이후 일본과의 외교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지도 않았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전국이 된 일본 제국은 전리품으로서 요동반도를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고 통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급격한 팽창으로 인한 만주 일대의 자국 영향력 저하를 우려한 러시아 제국이 자신들과 의견이 일치하는 독일, 프랑스와 함께 삼국간섭을 주도, 일본 제국의 요동반도 영향력 행사를 포기하도록 일본 제국을 압박하였다. 삼국간섭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한 일본은 이에 굴복하여 요동반도를 타의적으로 포기하였지만 이에 대한 반발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이 거세졌다. 또한 한반도를 지배 관련하여 갈등이 빚어져 발생한 것이 러일전쟁.
의외이지만, 19세기에 러시아내 타타르, 바시키르인 등 일부 튀르크계 무슬림들이 일본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타타르, 바시키르인들은 일본에서 모스크를 세우면서 타타르인 공동체, 바시키르인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했다.

2.2. 근대



2.2.1. 러일전쟁


일본 입장에서는 아시아의 패권국 청나라를 상대로 승리하여, 청의 한반도의 영향권을 잘라 내었고, 식민지배의 기반을 마련한다.
일본의 세력 확대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러시아는 한반도를 안빼앗기려고 영향권 확대를 하게된다.
두 나라는 한반도를 놓고 대립을 벌였다. 애시당초 러시아에게 일본은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약소국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대피하자, 한반도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유한 러시아는 일본을 꾸준히 압박하였다. 궁지에 몰린 일본은 심지어 아관파천마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국면에 몰렸다.
러시아가 태평양 지역에 가진 부동항이 없기 때문에 부동항을 가지기 위해 한국과 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러시아 내에선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복잡한지라, 정작 러시아는 충분한 전쟁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일본은 이미 전쟁을 할 마음을 굳히고 있었고 내부에서는 전시 동원체제의 확립과 아시아주의 라는 이념무장, 만주 지역에 대한 대러시아 첩보망을 갖춰놓은 상태였다. 모든 게 러시아에게 불리했다. 결국 러시아는 약국이라 생각했던 아시아의 일본 제국에게 진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의 한반도 영향권을 없애고, 열강들에게 한반도 지배권을 인정받는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든다.

2.2.2. 적백내전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세력을 확장한 적군(볼셰비키)와 백군(반대파)의 내전이 일어난다. 일본은 백군에 편에 참가하여 개입하지만 진정한 목적은 시베리아와 극동지방을 먹는 것. 이 사건을 시베리아 출병이라 한다. 하지만 적군이 이기면서 소련이 성립되고, 백군은 감옥으로 가거나 추방당했다. 일본은 더 이상 시베리아에 있을 명분이 없었고, 주둔지역의 격렬한 반발에 결국 극동 지방에서 철수한다.

2.2.3. 전간기


1931년 일본 제국이 만주 사변을 일으켰을 때, 소련은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 소련과 이후 수립된 만주국의 국경을 놓고 양국간 의견차가 있었으나 아무런 의미 없는 좁은 황무지였기 때문에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일본군 육군은 소련을 가상 적국으로 여기고, 소련도 일본군 육군의 일탈적인 행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양측은 경쟁적으로 군비를 확장했고, 1930년대 중후반에는 소련-일본 국경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1937년,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은 일본과의 마찰에 강력한 수를 낸다. 당시 일본 영토에서 러시아로 넘어와 거주하던 일본인, 즉 '''한국인'''을 중앙아시아로 보내버리는 것이었다. 일본 국민이면서 일본 본토 출신 사람들은 러일전쟁때 본국으로 돌아갔고, 한국 출신 사람들은 러시아에 남아있었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일개 지명이었고, 조선 거주자는 전부 일본인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소련은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소련은 연해주에 여행 금지 조치를 내리고 일본인(한국인)들을 이주시킨다. 이들이 훗날의 고려인이다.
일본은 소련을 상대로 수 차례의 도발을 했으나, 결국 1939년 할힌골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소련에 대한 적극적인 군사 개입을 망설이게 된다.

2.3. 현대



2.3.1. 제2차 세계 대전


독일과 소련이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일본 제국은 다다음해인 1941년 소일 불가침조약을 맺는다. 불가침조약을 맺고 양국은 서로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다. 스탈린은 장교들에게 만주국, 몽골과의 국경에서 충돌을 피할 것을 지시했고, 일본 제국은 태평양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다. 물론 서로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한 것일 뿐이지 양국 모두 이것만으로 방심하진 않았다. 만주와 몽골에 주둔한 일본 관동군 병력은 항상 대소련 작전을 우선 과제로 삼고 이를 수행했다. 소련군 역시 독일군에게 수도 모스크바가 위협받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극동 지역에 주둔시킨 병력 중 일부를 동부전선에 차출해 재배치했을 뿐 독소전쟁 내내 수십개 사단을 상설 배치해서 일본을 견제했다.
이는 추축국 입장에서 보면 악수였다. 독일은 일본이 동쪽에서 소련을 공격함으로써 바르바로사 작전을 도울 것이라는 전제 하에 소련을 침공했으나, 소일 불가침조약이 맺어짐으로써 독일은 혈혈단신으로 소련을 상대해야 했다. 일본은 일본대로 미국이라는 강력한 적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패전하고 말았다. 단, 당시 일본과 독일은 동맹이라기보다 같은 적을 싸우는 관계에 더 가까웠다.
양국 간에 불가침 조약이 있었으나, 1945년, 소련은 얄타 회담의 결과에 따라 대(對)일본 전쟁에 참여할 것을 결정한다. 이로써 소일 불가침조약은 결국 파기되었고 만주 작전으로 일본은 만주, 몽골, 조선 등의 식민지를 상실한다. 소련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 후에도 평화협정에 서명하지 않았고, 양국은 계속 휴전 상태를 유지한다.

2.3.2. 일-소 공동선언


1956년 일-소 공동선언으로 외교관계가 회복된다. 하지만 공동선언 제9항에서 소련은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 섬을 평화 조약 체결 후 일본에 넘기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에 서명했다는 점에서 다시 북방 영토 분쟁이 불거졌다.
여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는데 바로 미국이 일본과 소련의 외교에 개입하였기 때문이다. 이 선언은 흔히 일본에게 유리한 편으로 알려져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일본에게도 상당히 골때리는 여지들을 남겨줬기 때문. 그로인해 중소결렬 이후 일본은 소련에 밀착하였다.
이후 미국이 공식적으로는 쿠릴 열도에 대해 일본의 편을 들어주고 있으며 이에 대해 적잖은 일본의 우파들은 미국의 지지는 러시아와의 쿠릴 열도 분쟁에서 일본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라고 보기도 하지만 이는 철저한 오판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미국의 일본을 편드는 태도는 오히려 러시아가 쿠릴 열도에 대해 더 강경한 외교 태도를 취하게 만들게 하기 때문.[1][2]
또 일본은 소련을 사실상의 주적으로 규정해 소련군의 상륙을 대비해서 훗카이도에 전차를 집중적으로 배치했었다. 이는 소련이 무너지고도 이어졌으며 2010년에 와서야 이 틀을 뜯어고쳤다.#

2.3.3. 소련 해체


소련이 해체됐으나, 러일 양국은 아직도 2차 세계대전 이후로 평화 협정을 맺지 않았다.

2.3.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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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태도가 두 나라의 현재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이나 한국과의 갈등만큼은 아니어도 서로 갈등이 존재하는 편이다.
전반적으로 쿠릴 열도 분쟁이 아직도 있다. 2000년대에는 일본이 북방영토 회복 문제를 제기했고, 러시아는 도쿄 근해에 폭격기를 근접 비행시키는 등의 갈등이 있었다.
러시아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려고 하고, 중국은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을 포섭하려 하고,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거나, 최소한 러중 합동 공세 만큼은 이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러시아와 친해지려고 하는 편이다. 아베 신조블라디미르 푸틴한테 익살스럽게 달려가는 장면이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다. # 게다가 쿠릴 열도 반환도 있기 때문에 일본으로서는 러시아를 찍어누르려는 미국에 무작정 공조해줄 수 없는 상황이다.[3]
일단 일본과는 갈등이 있기 때문에 푸틴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한민국에게 접근하려고 하고 있는 편이다.
푸틴이 일본에 방문했을 때 예고 없이 일본 유도 도장에 가서 대련한 적도 있고, # 노다 총리와 유도 이야기를 하며 '아리가토' 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 2005년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 유도 영웅을 만나고, # 일본 토종견인 시바견을 선물받기도 했다. #
그러나 러시아는 센카쿠 열도, 남중국해 등의 분쟁에 대해서 중국 편을 들고 있다. 중, 러가 동시에 센카쿠 열도에 진입했을 때,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다르다며 중국 쪽에만 항의를 했다. # 이러한 러시아의 태도에 열받았는지 일본은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사태 이후 러시아에 적극적으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추가 제재를 단행하거나#, 친러시아파 자산을 동결하고 #, 독자 제재까지 검토하기도 했다. #

2.3.4.1. 2016년

2016년에 러시아와 일본은 북극해로 진출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극동방위협력을 강화했다. # #
푸틴은 일본과 관계발전을 기대한다는 발언을 했다. # 그리고 2016년 12월 16일, 야마구치나가토 시에서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비자발급 요건 완화 등을 발표했다. # 그리고 외교·국방각료협의(2+2), 북방 영토(쿠릴 열도 4개섬) 특별한 제도 하에서 공동경제활동도 협의했다. # 일본은 러일 간의 안보협력도 강화할 방침도 보이고 있다. # 그러나 러시아는 최근 일본의 사드 배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양국의 관계는 다시 얼어붙기 시작했다.

2.3.4.2. 2018년

5월 21일에 일본의 산케이 신문은 러시아와 일본이 외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참석하는 2+2 협의를 연내에 개최하기로 합의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8월 18일에 러시아와 일본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한 화물수송로 정비에 나섰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했다.#
9월 10일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방경제포럼이 열렸고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했다.# 그리고 쿠릴 문제 등을 논의했다.#
9월 12일 푸틴이 일본측에 러일평화 조약을 맺자고 깜짝 제안을 해왔다.그에 비해 일본 측은 쿠릴열도 반환이 먼저라는 목소리다.# 일본과 러시아는 11월 중순에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정상회의 기간에 현지에서 양국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조정에 들어갔다.#
지난 7월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사할린 섬과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2개의 다리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도쿄 신문이 10월 15일에 보도했지만, 부정적인 의견이 찬성의견과 각각 절반씩 차지했다.# 그리고 12월 6일에 아베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2019년에 열리는 세계유도권선수대회에 참석을 요청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는 12월 13일에 앞으로 일본과의 평화협상이 진행될 경우, 주일미군문제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시리아 내전사태와 관련해서도 러시아와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미국편을 드는걸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

2.3.4.3. 2019년

한일 레이더 갈등 속에서 러시아가 일본의 태도를 보고 이틀 연속 일본 공해 근처까지 가는 무력시위를 벌었다. 그리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1월 21일에 러일 평화조약의 조기체결은 어렵다고 밝히면서 조기체결을 추진할려는 일본을 견제했다.# 1월 22일에 푸틴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모스크바에서 만나서 쿠릴 열도 문제, 평화협정 체결에 대해 논의했다.#
또한 중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강하게 못 나온다고는 해도 어쨌든 미국 입장을 대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4]
일본은 지금도 러시아에 대해서는 반러감정이 있어서 60%이상이 러시아에 대해 비호감이라고 집계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재특회넷우익 같은 사람들은 반한, 반중, 반미 성향 말고도 반러 성향도 자주 보이는편이다.
2월 2일에 일본 어선이 러시아 근해에서 불법으로 조업하다가 러시아 경비정에 의해 끌려갔다고 NHK가 보도했다.#
5월 30일에 러시아와 일본은 외교/국방회의를 개최했지만, 이지스 어쇼어, 쿠릴 열도를 두고 갈등을 벌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의 미쓰이 물산이 러시아의 노바텍이 추진하는 야말 반도의 북극 LNG-2 사업지분의 10%를 사들이기로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6월 29일에 오사카의 G20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난항을 겪는 양국간의 평화조약체결을 위한 교섭에 박차를 가하기로 합의했다.# 9월 5일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평화조약체결에도 협의를 가지기로 합의했다.#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사이의 긴밀한 관계 등 여러가지 이유로 평화조약을 맺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12월 17일에 러시아 국경수비국이 조업중인 일본 어선 5척을 어획량 조사를 목적으로 나포해갔다고 NHK가 보도했다.#

2.3.4.4. 2020년

소프트뱅크의 전 직원이 러시아에 기밀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1월 25일에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고 NHK와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일본 언론인이 군사기밀자료를 취득할려다 붙잡혀 추방된 일이 발생되었다.#
러시아 외무부가 주러 일본 대사관 직원을 불러 도쿄의 영토·주권전시관에 새로 마련된 쿠릴 열도 4개 섬에 관한 전시에 대해 항의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퍼지는 가운데, 5월 7일에 푸틴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전화통화를 통해 양국간에 협력을 약속했다.#
아베 총리는 러시아의 대독일 전쟁 승리 75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한 러시아 방문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2019년 11월 25일 일본 방위성이 러시아 해군 총참모장을 초대하고는 도고 헤이하치로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8월 10일, 주일 러시아 대사관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 만주 작전소개하는 트윗을 올리는 패기로운 모습을 선사하여 수많은 넷우익들의 어그로를 끌었다(...)
9월 29일에 스가 총리는 취임 이후, 푸틴 대통령과 처음으로 전화통화로 회담을 갖고, 쿠릴 열도 4개 섬 문제와 코로나19대책에 대해 논의했다.#

3. 문화 교류


러시아를 대표하는 인형인 마트료시카는 일본을 방문한 러시아인이 일본의 오뚝이 인형에서 착안하여 만든 것이다. 또한 일본의 유도가 러시아로 전해져 삼보의 뿌리가 되는 등, 근대부터 많은 문화 교류가 있었다. 현대에도 대도숙 공도 등의 일본 무술들은 러시아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근대 일본의 소설들은 러시아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만화가, 애니메이터 중에서도 러시아 예술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꽤 있다.
일본과 정치적으로는 사이가 좋지 않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일본 요리는 인기가 있다. 특히 일본과 가장 가까운 러시아 지역인 블라디보스토크 지역민들이 좋아한다. 가끔 유명 관광지나 지하철, 대학 부지를 코스프레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기행을 벌이는 러시아인들도 있다. 게다가 2015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가수 오리가도 일본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홋카이도는 러시아와 매우 가까운 곳이라서 러시아어 표기를 볼 수 있고 러시아 선원들이 홋카이도에서 머무는 경우도 있다. 또한, 홋카이도에선 러시아어 수업이 매우 활발한 편이다. 그리고 소수지만 러시아 혼혈들도 있는 편이다. 일본에도 러시아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어서 이들의 대부분은 러시아인들이지만, 일부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독일계 러시아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반면에 러시아 제국, 소련시절에 건너온 볼가 타타르인, 바시키르인, 크림 타타르인 등 투르크계 민족들은 일본에 건너온 경우도 있지만, 이들은 터키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러시아에도 소수의 일본인 공동체가 있고 일부는 러시아에 귀화했고 정치인으로 활동한 경우도 있다(예컨대, 이리나 하카마다라는 러시아의 정치인은 일본인과 러시아인 혼혈이었다).
닌텐도가 2016년부터 러시아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 중인데, 포켓몬스터썬·문을 러시아 국가에 정발하였지만 러시아어는 없었다. (그 이전까지는 영어판을 유럽연합에 수출하고 EU에서 러시아로 재수출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닌텐도 스위치에는 본체 언어에 러시아어까지 포함되어 있다.
러시아와 일본은 문화 교류가 있는 경우도 있어서 일본에서도 러시아 관련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러시아어) 그리고 일본은 19세기에 러시아 제국과 교류를 많이 했기 때문에 러시아관련 학문이 뛰어난 편이고 자료도 매우 풍부한 편이다.#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은 유학생들이 각각 러시아와 일본에서 유학하러 오는 경우도 있다. 거기에다 일본에서는 러시아에서 러시아어 어학연수를 받는 경우도 있다.#(러시아어) 그리고 일본에서도 토르플이 실시되고 있고 러시아쪽에서도 JLPT가 실시되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도 일식의 인기가 높은 편이라서 초밥을 판매하는 식당이 흔한 편이다.
상술했다시피 일본은 러시아 제국과 교류를 많이 했고, 50년대에 소련과 수교를 했기 때문에 러시아와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연구수준이 매우 높다. 그리고 노어노문학과도 일본내 대학교에 설치되어 있고 러시아어 수업도 활발한 편이다.[5]
하지만 외교관계가 좋지 못하다보니 항공 노선이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라[6] 일본인들이 러시아를 방문할 때 인천공항을 경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7]
콘찰롭스키의 영화가 도쿄 영화제에 출시될 예정이다.#(러시아어)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1,000개의 종이학들이 일본으로 보내졌다.#(러시아어)

4. 경제 교류


러시아내에도 일본 기업들이 진출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90년대에 러시아 경제가 어려웠을 때, 일본 기업들이 철수한 적도 있어서 갈등이 생긴 경우도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기업들도 러시아에 많이 진출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 일본과 가깝다보니 일본제 자동차들이 많이 보이고 있고 일본제 자동차들을 많이 수입하고 있다.

5. 대사관


양국 모두 대사관을 뒀다. 모스크바에는 주 러시아 일본 대사관, 도쿄에는 주 일본 러시아 대사관이 존재한다.

6. 관련 문서



[1] 일본에서 쭉 미국의 지지를 부각시켜오다가 뒤늦게서야 일본 아베 총리 집권시기 미국 지지가 쿠릴 열도 분쟁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점차 미국에 대한 언급을 줄여가기 시작해서, 급기야 아베 총리 본인이 쿠릴 열도에서는 일본의 허락없이 일방적인 미군 주둔은 없을 것이라고 공식 거론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일본이 미군기지 결정권을 가지고 있긴 하냐"'''고 불신한다.[2] 실제로 러시아의 지적은 사실이다. 일본은 미군 기지와 미군 배치등에서 미국의 YES맨이지 이래라저래라할 입장이 결코 아니다.[3] 문제는 미국에게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는데 있어 일본은 반드시 필요한 입장이다. 때문에 일본도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처해있다.[4] 러시아 외무부의 고위당국자는 "일본과 러시아의 평화조약 체결문제와 일본의 安保理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이 맞물려 있다"고 밝혔고 더 나아가 러시아-독일 관계에는 대립이 없으나 러시아-일본 관계는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라면서 반대입장을 내놓고 있다.[5] 이러한 것은 당시 소련과 적대적이고 외교관계가 없어서 러시아어관련 학과가 적었던 한국보다 활발한 편이여서 러시아어공부를 위해 일본어를 배워야 했을 정도였다. 거기에 제2세계에서는 필수 외국어가 러시아어랑 일본어였다.[6] 취항지 자체는 크게 차이는 없으나 상대적으로 취항사 및 취항 시간의 다양성이 한국에 비해 부족하다.[7] 한국과 러시아는 충돌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인천공항의 독립국가연합 노선은 의외로 풍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