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개인처신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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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통령 당선 이전
1.1. 최태민과의 부적절한 관계
1.2. 부일장학회 강탈 관련
박정희가 김지태의 부일장학회를 강탈하여 정수장학회(당시 5.16 장학회)를 세운 것과 관련하여 박근혜는 문제가 없었다고 부정했다. 김지태는 박정희의 지시에 의해 1962년 3월 재산 해외 도피 혐의 등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두 달 정도 구금 생활을 하다 강압에 의해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등의 운영권 포기 각서를 쓴 며칠 뒤 공소 취하로 풀려났다.
김지태의 큰아들 김영구는 "그 해 5월 25일 부산 육군 군수기지사령부 법무관실에서 아버지가 수갑을 찬 상태로 운영권 포기 각서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었다"며 "내가 장남이라 인감 도장을 가지고 가, 현장을 똑똑히 목격했다"고 했다.(기사1), 기사2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 쟁점이 되자 박근혜 후보 측은 김지태가 친일 행적을 했다고 주장하였지만(기사) 사실무근으로 확인되었다.
1.2.1. 정수장학회, 육영재단으로 재산 은닉
강탈 이후의 행적 역시 문제의 대상으로, 부일장학회의 재산을 국고에 귀속시켜야 했음에도 이를 이용하여 정수장학회, 육영재단을 설립하여 재산을 은닉하고 사유화 했다. 정수장학회는 주로 박정희의 친인척과 측근이 운영해왔다. 박근혜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맡았다. 김영삼은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을 '부정축재의 수단'이라고 했다.[1] 2005년 언론노조 정수장학회 공동대책위는 정수장학회의 문화방송 주식, 부산일보 주식, 영남대학교, 부동산 등 그 재산을 최소 1조원이라고 추산했으며, 많게는 10조원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았다.[2] 1982년에 육영재단의 경영권을 두고 박근혜와 여동생 박근령이 분쟁을 겪은 후 1990년부터 박근령이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1.3. 전두환으로부터 6억 수수
10.26 사건으로 박정희 사후 청와대에서 나온 박근혜는 1979년 당시 보안사령관 신분이었던 전두환에게 청와대 금고에 들어있던 10억원 중 6억원을 예우 차원에서 받은 사실이 있었다.
이 10억원은 청와대의 사금고에 보관되어 있던 정치자금으로, 유신 이후 박정희는 청와대 비서실장 김정렴을 통해 기업들에게 정기적으로 정치헌금을 받아 야당을 포섭하고 지지세력을 강화하는데 사용했다. 당시 기준으로 6억원은 당대 최고 부동산이던 대치 은마아파트를 30채 가량(1978년 31평의 분양가가 2,090만원)이나 살 만큼 큰 돈이였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화폐가치계산'으로 계산한 결과 2015년 기준 34억 원에 달한다.
박근령의 남편 신동욱의 라디오 인터뷰에 의하면 그 3억 원은 당시 아파트 300채를 살 돈인데, 최태민이 박근령에게 2천만 원짜리 아파트 1채를 얻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박지만도 비슷한 가격의 집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머지 298채 가격의 돈은 어디 갔냐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중요한 증언으로, 이러한 집 구입을 최태민 측이 알선해주었다는 의미는 이때부터 이미 박근혜와 최태민은 통장을 같이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2016년에 이를 때 까지 박근혜와 최 씨 일가가 통장을 같이 쓴다는 것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당시 아버지(박정희)도 그렇게 흉탄에 돌아가시고 나서,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한 상황이었다. 아무 걱정 문제없으니 배려 차원에서 해주겠다고 하는데, 경황없는 상황에서 받았다. 나는 자식도 없고, 가족도 없다. 나중에 사회에 다 환원할 것이다.
처음 알려졌을 당시에는 9억 원이니, 부풀려져서 6억 달러(!)이니,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청문회를 통해서 수령한 9억 중 3억은 김재규 사건 수사 격려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고 6억은 본인 및 형제의 생계비로 썼다고 해명했으며 이를 통해서 의혹은 사실로 확인되었다.[3] 하지만 박정희 사망 이후 박근혜가 이사한 신당동 집은 '''대지 99평에 건평 39평의 단층 기와집으로 방이 5개나 있는, 당시 도시의 단독 주택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큰 집'''에 속했다.
또한 당시 박근혜의 나이는 27살이었고 새마음봉사단 총재였으며, 여동생 박근령은 25살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한 상황이었고, 남동생 박지만은 육군사관학교 생도로 지원금을 받아 재학하고 있던 점을 감안하면 생계비 차원에서 받았다는 말은 설득력이 매우 떨어진다. 그 당시 이 셋의 학력이면 수 년 동안 군대에 복무해야 하는 박지만을 제외하면 어디든지 취업이 가능했고#, 박지만도 의무복무기간만 채우면 장교출신 특별전형을 통해 어디든지 취업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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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란 때문에 박근혜는 17대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에게, 18대 대선 토론회에서는 이정희에게 공격 당하게 된다. 대선 토론회 당시의 박근혜는 이정희 후보 측에게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1.4. 상속세, 증여세 탈세
1979년에 박근혜는 청와대 금고 안에 있던 돈 10억여 원 중 6억 원을 전두환에게서 건네받았고 아버지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살았던 신당동 저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청와대 금고 안에 있던 현금과 신당동의 저택은 본래 모두 박정희의 소유였는데 박근혜에게 상속된 것이다. 사실상 무단으로 갖고 나온 채권 만해도 트럭 한 대분량이었으나 이걸 신군부가 회수하고도 남은 게 은마아파트 30채를 살 수 있다는 거액의 현금과 신당동의 그 넓은 저택을 물려받고도 박근혜는 단 1번도 상속세를 낸 적이 없다고 한다. 이후에 신기수[4]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무상으로 성북동의 집을 증여 받았다. 타인으로부터 재산을 증여 받았으면 당연히 증여세를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는 성북동 자택에 대한 증여세도 단 1번도 납부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박근혜가 탈세한 2건의 상속세와 1건의 증여세를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그 액수가 무려 '''48억 원'''이라고 한다. 과거 좋은나라 운동본부에서 진행한 코너 <최재원의 양심추적>에서 고액 체납자들을 단속하는 걸 보여준 바 있는데 그 방송에서 나온 고액 체납자들이란 사람들이 탈세한 금액도 기껏해야(?) '''수천만 원~수억 원''' 정도에 지나지 않았는데 박근혜는 그들보다 넘사벽인 48억 원이나 체납한 셈이다. 아마 대한민국 역사 상 최고액 탈세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1번도 국세청의 추적을 받은 바 없다는 게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48억 원이나 되는 세금을 아무렇지도 않게 탈세한 것 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도덕적 관념이 결여되었는지 말해주며 얼마나 부패한 인물인지 말해준다고 할 수 있겠다. 설마 나이 60이 넘은 사람이 세금을 어떻게 내는지 모르는 것도 아닐 테고 그냥 내가 왜 세금을 내야 하는지 생각도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사실 이미 박근혜의 고액 체납 사실은 2012년 18대 대선 토론회에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가 맹렬하게 공격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박근혜의 이미지가 지금처럼 그렇게 나빴던 때가 아니었던 데다 이정희가 가한 그 공격이 대다수 국민들에겐 네거티브 공세 혹은 어그로 끌기로 보였다. 그 탓에 박근혜의 고액 체납 사실이 고스란히 묻혀 버렸다. 그만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란 인물은 화려한 포장지로 잘 포장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제 박근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그 날부터 아무것도 안 남은 벌거숭이가 되었고 국민들에게 최악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현재 선친인 박정희가 40여 년 전에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스위스 등지에 은닉한 사실과[5] 박근혜가 상속세, 증여세 48억 원을 탈세한 사실 등 모든 것이 다 까발려진 상황이라 조만간 이 세금에 대해서도 추징 등의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판단된다.
1.5. 영남대학교 운영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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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1980년대 영남대학교 재단 이사장 시절의 전횡과 정관 1조에 '교주 박정희'라는 조항을 삽입한 것 때문에 엄청난 논란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박근혜는 영남대 재단이사가 된 지 1년 후에 학교법인 영남학원 정관 1조에 '''교주(校主) 박정희'''라는 표현에 대하여 "67년 영남대 설립 시 이사 전원이 서명한 결의문에 '교주 박정희'라는 글귀가 들어 있었다. 당시 이사 한 사람이 그것을 정관에도 넣자고 제의하여 이사회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나도 이사회에 참여하였고 찬성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답하였다.김동영(통일민주당 의원): 고 박정희 대통령이 재단에 출연한 자금은 얼마입니까?
조일문(영남학원 이사장): 문서상 나타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김동영(통일민주당): 현재 재단이사로 박근혜 씨가 되어 있는데, 박근혜 씨가 재단에 출연한 액수는 얼마입니까?
조일문(영남학원 이사장): 그것도 나타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박석무 위원: 그러면 박근혜 씨가 이 학교에 등장해서 관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조일문: 그것은 박 대통령을 교주로 모셨고 따님이라는 인연 때문에…
한편 영남대학교 재단 재산 착복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었으며, 86년 당시 영남대학교 대학병원장 모 씨의 해외 출장비 명목으로 280여만 원이 박지만의 항공료 등으로 지급됐고 병원장은 주치의 자격으로 박지만 씨와 미국에 함께 갔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그때는 몰랐지만 검증위 소명 자료를 준비하면서 발견해 남동생에게 알아 봤더니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며 반박하였다.
그외에도 '영남대 재단이 전액 출자한 영남투자금융회사는 육영재단이 발간하는 어린이 잡지 <보물섬> 등에 장기간 광고하고 광고비로 2,700여만 원, 기부금도 1억 3,000여만 원 지급했는데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육영재단이 공익재단이기 때문에 영남투자금융 뿐만 아니라 다른 데서도 기부금을 받을 수 있다. 영남투자금융에 강요한 적은 없다. 경영진에서 판단해서 한 것으로 안다."고 답변하는 등 각종 논란에 시달렸으며 박근혜가 영남대 재단 이사장 시절 운영에 개입하였다는 확인서를 제출한 김기택 전 영남대 총장은 박근혜로부터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자 측 참모라는 역공을 받는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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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정희, 박근혜 부녀가 영남대 출연 기금에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영남대 사유화와 부정입학 논란까지 겹쳐 1988~89년에 걸쳐 국회의 국정감사를 받게 된다. 당시 경향신문과 매일신문 등 메이저 언론에서는 영남대 국정감사 이슈를 상세히 다루었으며 결국 박근혜는 이사장 직에서 사퇴하였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재단에 다시 복귀하는 데 성공하였다.#
1.6. 정치자금 관련
최순실의 전 운전기사 김모 씨는 자신이 1998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부터 최씨 일가의 돈을 받아 박근혜의 자택으로 전달했다는 증언을 했다.
김 씨의 증언에 따르면 김 씨는 1998년 4월 2일 보궐선거 개시 직전 할매(최 씨의 모친 임 씨)가 '우리 딸 너이(넷)하고 내(나)까지 해서 5,000만 원씩 내 2억 5,000만 원인데, 니(네)가 잘 가지고 내려가라'고 말했다', '돈가방은 1m가 넘는 길이의 밤색 여행용 가방이었다'면서 '이후 우연히 가방 속의 돈뭉치를 보게 됐다'면서 자신이 자동차로 임 씨, 최 씨와 함께 돈 가방을 싣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살던 대구 달성군 아파트로 내려갔다고 주장했다. 또한 2000년 실시된 16대 총선에서도 '1998년과 똑같았다'며 최씨 일가가 박 대통령의 선거 자금 지원에 관여했다고 말했다.
이는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2016년 11월 13일 방송에서 탐사 보도했던 최태민 씨의 친아들 A씨를 인터뷰 중 최태민의 다섯째 부인 임선이 씨가 남편에게서 받은 의문의 재산을 최순실 씨 등 딸들에게 상속했으며, 임 씨가 박 대통령의 정치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과 유사해 신빙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1.7. 불법 줄기세포 주사 시술 의혹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OOO바이오에서 근무했던 제보자에게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 최순실 씨 이름으로 예약해서 강남 OO성형외과에서 불법 줄기세포 주사를 맞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문제는 배양된 줄기세포는 의약품으로 규정돼서 임상 실험이 끝내지 않은 줄기세포를 임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인체에 주입하는 것은 불법이고 설령 임상이라고 해도 의료 기관이 아닌 바이오업체가 배양 세포를 사용하면 불법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전문가와 인터뷰에서도 해당 전문가는 배양 세포의 수여도, 판매도 금지되어있으며 배양된 줄기세포 주사 자체가 불법이라고 잘라 말한다. 제보자에 의하면 보안 속에 예약을 받은 뒤 이를 VIP들에게 비밀리에 시술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이오 업체가 지목한 피부과에서만 시술을 했으며 그 중 최순실이 있었다고 언급한다. 제보자는 최순실을 4번 정도 봤으며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성 2명과 항상 따라다니는 여성 2명 총 5명이 항상 같이 왔다고 한다. 최순실에 대해 과거와 달라졌으며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이를 기억하며 그 이유로 줄기세포 주사를 시술 받을 때 보통 본인인데 최순실은 본인이 시술 받지 않고 다른 사람이 와서 시술 받았던 것이 무척 이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술 받은 사람이 박근혜 국회의원이라고 밝혔다.[6] 다른 vip 고객들은 혼자 왔지만 박근혜는 항상 최 씨와 경호원으로 보이는 일행과 동행해서 더 신경을 써야만 했다고 한다. 박근혜 의원이 오는 날은 보안을 위해 병원이 비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당시 박근혜 국회의원이 시술 받은 부위는 케어 쪽으로, 얼굴에 시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시술 자체가 로비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라 비용 지불도 이뤄진 것은 없었다고 한다. 전문가는 추가로 대가성이 없다고 해도 허가 받지 않은 배양줄기세포를 제공한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언급한다. 이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실에 공식적인 해명을 요구했지만 담당자 분이 나오면 전달해주겠다는 언급 이후 현재도 무소식.
이후 당시 박근혜 국회의원은 2010년 9월 15일 '산업계 줄기세포 연구 개발을 더 활성화 할 수 있게 되어서 많은 분들이 큰 해택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언급한다. 14년간 의정활동을 박근혜가 대표 발의한 법안은 15대 0건, 16대 1건, 17대 4건, 18대 10건으로 총 15건인데 그중 하나가 줄기세포 관련 법안이었으며 이후 2016년 1월 19일 정보 업무 보고에서 바이오헬스 7대강국 계획발표, 2016년 7월 달 임시회 의료 영리화정책, 같은 달 배아줄기세포연구 일부 승인되었다. 실제로 2016년 5월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도 '여러 가지 윤리, 생명 및 연구 윤리 때문에 (바이오 분야가) 엄격하면서도 중첩적인 규제 대상이 되고 있으며, 선진국들이 푼 규제는 우리도 풀겠다는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관련 제도의 틀을 재정비 할 것'을 발표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시술했던 바이오 업체는 이후 중국, 일본의 협력 병원에서 해외 원정 시술을 하다가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당시 보건복지부에서도 문제를 제기했던 곳이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서 000바이오 업체가 무허가 줄기세포 치료제를 제조, 배양해서 판매한 것을 확인, 검찰에 수사 의뢰를 했을 정도. 이후 해당 업체는 문을 닫으면서 불법 시술을 중단했다. 제보자는 문을 닫았던 업체에서 관리하던 vip 상당수가 차 바이오로 넘어갔다고 증언했는데, 이후 병원 관계자들도 병원이 문을 연 지 얼마 안 돼서 자주 올 땐 일주일에 1, 2번 정도 박근혜 국회의원이 와서 관리를 했다고 증언한다. 이때는 최순실도 같이 자주 왔다.[7] 이때 억대의 회원권을 가진 유명인 고객들이 많아 실명보다 예명을 사용했는데 이때 대통령이 되기 전 박근혜 국회의원이 사용한 예명이 바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 이때 박근혜 대통령은 고객 동선을 피해서 다녔으며, 움직이는 동선에 최대한 직원이 없게 했다고 증언한다. 최근 해당 병원에 대한 줄기세포 특혜 의혹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이후 병원 측에선 박근혜 개인이 2011년 1월부터 2012년 6월까지 방문했으며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라고 의혹 해명을 한다. 하지만 최순실과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는 1억 원 이상 연회비를 낸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추가로 받고 있다. 연회비를 내지도 않고.
병원장은 최순실이 차움에서 정맥주사를 대리 수령한 의혹에 대해 차움병원에 있던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가 청와대에 자문의로 들어갔는데 청와대에서 처방을 내야지 왜 여기 차움에서 처방을 받았겠냐고 한다. 하지만 최 씨가 주사제를 대리 수령한 것은 인정했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최순실이 혈관이 안 좋은데 차움병원 측 간호사가 혈관을 터뜨렸다며 개인 주치의가 있다고 주사제를 싸 달라고 해서 싸줬다고 하면서 주사제가 나갈 수는 있는데 가족이 아닌 사람, 비서가 수령한 것은 문제가 있음을 시인했다. 결국 병원 측의 해명은 박 대통령이 맞은 주사는 비타민 주사고 취임 전에만 맞았다는 것. 최순실이 주사를 대리 수령했지만 이것이 청와대로 흘러가진 않았다는 것.
병원 측은 이후 자신들이 피해자이며 자신들이 이런 걸로 타격 받으면 우리만 손실이 아닌 국가적 손실이라는 헛소리를 했다. 의료인들은 정치나 이런 식으로 일부러 거짓말하고 이러지 않는다고.
이후 제보에서 차움병원 측에선 문서 기록을 삭제하기 시작한다. 특히 박근혜 관련 문서 파일들. 물론 병원 측에선 부인.
1.8. 김정일에게 보낸 편지 논란
2016년 12월 18일 경향신문이 단독으로 2004년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가 유럽코리아재단을 통해 김정일에게 보낸 편지를 입수하여 공개했는데,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정동영도 편지가 북한으로 갔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북한 주민과 접촉할 때는 반드시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9조 및 국가보안법 제8조를 위반한 것이 될 수 있다. 또한 편지 내용 중에서도 북한의 연호인 주체연호를 사용하거나, 김정일과 그 당시 협의했던 어떠어떠한 정책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내용, 그리고 '남북'이 아닌 '북남'표현 사용 등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심지어, 박근혜는 방북 때에 김대중, 노무현 前 대통령들도 가지 않은 주체사상탑도 방문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주체사상탑은 북한에게 있어서 주체사상(사실상 김씨 일가 독재 체제)의 상징과 같은 건물로, 주체사상탑을 방문했다는 것 자체가 주체사상을 지지(혹은 인정)하는 꼴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의 유화적인 노선을 강조했던 김대중과 노무현도 주체사상탑에 가거나, 날짜를 표기할 때 주체연호를 쓰든지 또 '북남' 같은 소리를 입에 담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 한 누리꾼이 박사모 카페에 '''"이 편지는 문재인이 청와대에 있을 때 김정일에게 간 것이다."'''는 글을 쓰며 편지 전문을 공개하는 게시물을 썼는데, 댓글들은 당연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득달같이 물어뜯었다.[8] 나중에 박근혜 당시 대표가 썼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박사모에서 해당 게시물이 삭제된 상태라고 하는데, 그들 중 일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다른 일부는 내로남불을 시전하였다. '''박근혜의 이전 행보와 비교했을 때 박근혜가 이렇게 쓴 것은 정상이며, 문재인이 썼다면 문제가 된다'''는 주장이다. 일부는 아예 이 편지 자체도 조작된 것이라는 뇌내망상에 빠져 있다.
2. 사이비 종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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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근혜 5촌 살인사건 관련 의혹
4. 소통문제
새누리당 인사들은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로 연락이 온다[9] ', '솔직하게 터놓고 소통하지 않는다', '만나거나 접근하기 어렵다'는 경험 등을 예로 들며 박근혜가 소통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2002년 박근혜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구기동 자비정사(한국불교 법성종)를 찾아와 <빙의>라는 책을 저술한 비구니 묘심화(妙心華) 스님과 처음 대화를 나누었다.[10] 묘심화는 박근혜에게 "앞으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박근혜를 가리켜 "女 미륵"이라 하는 등 덕담을 하였다고 한다. 박근혜도 묘심화에게 "女 무학대사"라고 화답하며, "무학대사 같은 분이 되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로 와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묘심화가 청와대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하자 "무학대사처럼 더 자주 오셔야죠"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인연이 돼서 묘심화는 박근혜를 위해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한테 밀려) 낙선당한 뒤에는 묘심화에게 화난 표정으로 따지듯 물었고, 그 이후로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화는 합리적 사고보다 신비한 체험이나 듣기 좋은 아부만 좋아하고, 필요 없으면 가차없이 버리는 박근혜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11] "박 대통령, '여성 대통령' 예언 틀리자 연락 끊어"
2004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맡고 있던 박근혜와 함께 원내대표로 활동하였던 김덕룡은 박근혜가 소통이 안 되는 것을 넘어 "먹통"이라고 평가하면서, 당시 박근혜에게 "정수장학회 문제를 털고 넘어가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자신의 조언을 거부한 것은 물론 이후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12] 또한 "박근혜에게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으며, 참모들조차 주요 현안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누구와 상의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출처 최근 들어 급부상하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면 이미 야인 시절과 정치 초중반에도 그 사람과 교류하면서 주요 문제를 논의했을 가능성이 꽤 높아 보인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이는 비슷해서, 극단적으로 사람을 잘 만나지 않으며, 공무처리도 정말 알려지지 않는 측근들 아닌 이상 대통령과 직접 대화하거나 건의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2015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참모들과의 독대와 대면보고가 적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화나 이메일로 보고하는게 더 빠른데 왜 대면보고가 필요하냐"'''는 식으로 반문했다. 이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발언인데, 일반적인 기업에서도 상사들은 대면보고를 지속적으로 받고, 거래처 사람들과도 필요하면 반드시 직접 만나서 논의한다. 서로 대면해서 일할 필요가 없다면 지옥 같은 출퇴근을 피해서 전부 재택근무를 하고, 전화와 이메일로만 업무를 처리해서 비용을 절약하지, 왜 굳이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정보통신기술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20세기 말에 "21세기 미래의 생활상" 하면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있던 것이 재택근무였음에도, 재택근무가 크게 확산되지 않은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보안상 문제도 있다. 대통령과 관련되는 모든 통신활동은 외국 정보기관의 '''도감청 제0순위'''가 된다.
게다가 대통령은 국민들의 민심을 읽고 국정 운영의 큰 방향을 잡아야 하는 자리이다. 그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참모들이 여론과 정책 동향을 정리해준 것을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그걸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은 과연 박근혜가 국민과 소통할 의사가 있는지를 매우 의심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특히 언론과 소통이 중요한 대통령의 위치상 기자회견이 중요한데 박근혜는 4년간 한 기자회견이 겨우 '''5번'''에 불과하다. 똑같이 소통 문제로 비판 받던 이명박도 20번 정도는 했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이 종편에 출연하여 밝힌 바에 의하면 박근혜의 핵심 측근이 박근혜에게 '야당과 대화하는 게 어떠냐'고 건의하자 박근혜는 '내가 왜 정치를 하는지 모르느냐'며 발끈하면서 해당 측근을 경질해버렸다고 한다.
박근혜의 대선캠프에서 실무자로 일했던 정성철씨의 증언에 의하면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극도로 폐쇄적인 인간이라서 심지어 새누리당의 현직 국회의원들조차 박근혜와 직접적으로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박근혜와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문고리 3인방'이라 불리우는 박근혜의 보좌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의향을 전달하는 방법 뿐이었다고 한다.#
김무성은 박근혜가 전근대적이고 폐쇄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면서 "박근혜의 극단적인 폐쇄성 때문에, 대통령이 돼도 문제고 안돼도 문제다." 는 걱정을 하였다고 한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때 대통령의 7시간을 밝히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이완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어느 나라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밝히느냐.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일정을 밝히라고 하는게 온당한 주장인가"라는 말을 했다. 물론 미국인들은 대통령의 일정을 상세히 밝히라는 요구를 하지 않는다. '''요구하기 전에 백악관 홈페이지에서 미국 대통령의 일정과 위치를 분 단위로 공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9.11 테러 당시 초등학교를 방문 중이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보좌관의 보고를 받고도 아이들이 놀랄까 봐 7분 동안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미국인들은 이를 두고두고 크게 비판하면서 의회가 이에 대해 수천 페이지 분량의 조사 보고서를 만들 정도이다. 이 정도로 대통령의 대처와 일정에 문제가 있다 싶으면 당장 의회에서 이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샅샅이 조사하여 보고서를 만들고, 이를 구글 검색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미국이다. 일본도 도호쿠 대지진 당시 약 100시간 동안 총리 관저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상세히 기록한 문건을 만들 정도로, 최고 지도자의 대응을 철저하게 기록물로 남긴다. 심지어 과거 조선시대에도 사관들이 왕을 감시하듯이 따라다니면서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기록하여 조선왕조실록을 남겼다.
그리고 멀리 갈 것도 없이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자신의 일정을 어디에서 누구를 만난다는 것까지 상세히 공개했다. 그만큼 대통령의 일정 공개와 기록은 개인 또는 집권여당의 정치 스탠스와 관계없이 기본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어느 나라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밝히냐는 저 말은 기본도 모르는 발언이었으며 세월호 사고 당일 7시간의 행적을 2년 반이 넘도록 공개하지 않다가, 부랴부랴 공개했다는 것이 '''관저에서 계속 보고를 받고 있었다'''라는 것. 그러나 이 변명마저 2018년 3월 검찰의 발표에 의해 거짓말이란 것이 드러났다. 세월호 7시간 문서 참고.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총리실 비선을 통해 일으킨 민간인 사찰 사건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처음부터 수십년간 알고 지낸 몇몇 지인들, 즉 비선이 아니면 접근조차 어렵고, 모든 일을 극소수의 심복들을 통해 전달 받으려는 태도를 보여오며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을 불러왔다. 당대표였던 김무성마저 대통령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고 토로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예 그 이외의 사람들은 대통령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속칭 문고리 3인방을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를 자초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사생활에서도 불법적으로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다는 것과 새누리당의 이혜훈 의원에 따르면 저녁 8시 이후에 드라마만 봤다고 하며, 쇼핑도 안했다는 것이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인터뷰에서는, '''토론'''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으며 대면 보고를 1년에 6번밖에 안 했다고 한다.#
이는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매력을 떨어트리는 근본적인 원인이 됐다. 무능하기까지 한데 구중궁궐에 숨어 대화도 안 하니, 지지율이 오를 턱이 없다.
결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이후로도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야당들과 여당에게 통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정하여 소통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초래하였다. 하지만 이는 시간 벌기를 위한 꼼수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박지원 "우린 함정에 빠졌다".
5. 대통령 당선 이후
5.1. 불성실한 근무 태도
고급식사, 고급주거 무료 제공에 연봉 2억.[13] 여기에 수백 억 한도의 법인 카드까지 제공. 집과 직장의 거리는 고작 300m.
그럼에도 관저에 쳐박혀서 1주일에 1~2번 출근하지만, 매주 수요일은 제멋대로 정한 '''자체 정기 휴일'''. 어쩌다가 출근할 때는 점심 때 나와서 오후 5시에 정시 퇴근(집권 초기) 혹은 오후 3~4시(집권 말기)에 멋대로 조기 퇴근[14] 해 저녁 내내 텔레비전 드라마 시청했다고 한다. 다만 확실하게 공식 확인은 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저녁 드라마는 대부분 9시 뉴스 전후로 방영하는 게 상식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근무한 어떤 청와대 직원에 증언에 의하면 "이명박은 그래도 매일 아침 7시에 집무실로 출근하는데, 박근혜는 아예 출퇴근의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이명박의 경우 대한민국 대통령들 중에서도 유명한 워커홀릭이다. 애당초 이쪽은 사장 출신이니 그렇겠지만, 청와대 직원들이 이명박의 근무 패턴을 따라가다 극심한 피로를 호소했다는 기사까지 떴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일을 잘 했는지 못 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본분에만큼은 매우 충실했다는 뜻'''이다.
노무현도 이명박 정도는 아니었지만 노무현의 근무 패턴을 따라가다 힘들어하는 참모가 있었다. 게다가 문재인은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이었는데, 격무에 시달리다가 치아가 약해져 임플란트를 여러 개를 박았으며, 잠시 쉬었다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복귀한 뒤 다시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올랐다. 강원국 당시 연설비서관도 대통령이 연설할 일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새벽까지 머리를 맞대며 연설문 작성에 몰두했다. 어쩔 때에는 새벽에도 불렀다고 하니 말 다한 셈. 그런 문재인도 대통령이 된 현재 워커홀릭으로 분류되며, 몇몇 참모들이 힘들어한다고 한다. 특히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한포진에 걸린 상태라고 한다. 다만 모두 공식적인 확인은 되어있지 않다.
"박근혜가 일반 회사원이었다면?"이라는 가정을 하고 본다면 아마도 가장 놀라울 부분이 이 부분 아닐까 싶을 정도다. 대통령은 물론, 도무지 사회인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근무 태도가 상당히 불량하다. 자기 마음대로 매주 수요일은 쉬는 날로 정했다는 보도마저 나올 정도로 월·화 이틀 간 출근하고 수요일에 쉰 후 목·금 이틀 간 출근하고 주말인 토·일도 쉰다는 것이다. 수요일에 쉬었다 할지라도 주5일 근무를 고수하기 위해 토요일에는 출근했더라면 중간에 연속으로 이어지지만 않았을 뿐 다른 일반적인 직장인과 동일하게 일을 한 것이 되지만 박근혜는 '''자기가 쉴 것만 철저하게 챙겨서 쉬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조찬, 오찬, 만찬 회담이라는 것이 있다. 대통령은 바쁘기 때문에 아침은 수석들과 밥 먹으면서 하루 일을 챙기고, 점심에도 주요 인사들과 식사하며 회담을 갖고, 저녁은 여야대표나 외국 대사 같은 귀빈들을 초청에서 식사와 함께 회담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에게는 조찬과 만찬 회담이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신동아의 2014년 12월 ‘박근혜 청와대’에 없는 3가지? 조찬, 만찬, 돌발행동 기사는 박 대통령의 파워가 가장 세던 시기에 이미 이런 상태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채널A의 한상훈 전 청와대 조리장 최초 인터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점심까지도 대부분 관저로 돌아가서 혼자 밥을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때는 긴급 회의가 많아 언제나 밥을 10~20인분씩 준비했었는데, 박 대통령은 항상 밥을 1인분만 하면 돼서 편했다고 한다. 후임 대통령인 문재인의 경우에도 어떻게 보면 편한 축에 속하기는 한데, 그것도 "구내식당만 잘 준비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모 및 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귀빈 초청 같은 일정이 없으면 비서실 참모 및 청와대 직원들과 같이 비서동 구내식당을 이용하기 때문. 당연하지만, 조리장의 편함 정도만 비슷하다는 거지, 문제 여부를 따지면 천지차이다.
조사 결과 1년 365일 중 129일은 놀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즉, 1년 중 약 1/3 정도를 놀았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멋대로 4개월 내외를 낭비한 셈이다. 대통령은 일에 파묻혀서 지내는 존재라서, 법정 근로일을 넘기기 일쑤이며[15] , 대한민국은 평범한 직장인조차 초과 근무로 몸살을 앓는 나라다. 특권 의식에 사로잡혔는지 지도자가 책임질 부분을 쥐뿔도 모르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내가 제일 높은 사람이니 나는 좀 덜 일한다.'는 관념이 참으로 두렵다는 반응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스스로 노동 시간 연장 법안을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긴 노동 시간으로 인해 고통받는 대한민국 직장인으로서는 더더욱 악몽이다. 유독 박근혜 정부에서는 '몸이 아파서 이 일정은 건너뛴다.',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링거 투혼까지 발휘해 힘든 일정을 소화했다.'는 식의 보도가 많았고,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4월 16일도 수요일이었고, 때마침 아파서 쉬었다고 하는데, 1년 중 129일을 쉬어야 할 정도로 건강 상태가 나쁘다면 애초에 대통령직에 출마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15대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 진영의 역린 가운데 하나가, 김대중의 건강 문제였다. "70대 고령에 고문 후유증도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그런 건강 상태로 어떻게 격무를 소화해 낼 수 있느냐?"가 김대중 반대 진영에서 내세우는 표면적인 반대 사유였다.
게다가 이렇게 몸도 아프다는 사람이 신체에 큰 무리가 가는 해외 일정은 왜 그리 쓸데없이 많이 잡은 건지... 가히 생각이 없는 수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해외 순방 가서도 일을 잘 하지 않았다고 한다.[16] 일단 저녁은 항상 호텔에 가서 혼자 먹는다고 하니,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는 꼴이다. 여기에 변기와 화장실 수도꼭지까지 꼭 들고 가는 것은 기본이다.
진짜 문제는 이런 뒷이야기가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런 허황된 말을 곧이 들을 만큼, 정황상 근무 태도가 매우 불량했다는 증거가 넘친다는 거다. 김장수 전 안보실장도 청문회장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집무실과 관저 2곳으로 모두 서면 보고를 올렸다"고 실토했다.
만약 제2차 한국전쟁이 박근혜 정부 때 일어났다고 생각해 보자. 물론 어쨌든 안보 상황이니까 대한민국 국방부가 초기 대응을 했겠지만, 엄청난 전사자가 나왔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박근혜가 보여준 태도를 보면 만약 이런 대형 참사 정도가 아니라 국가적 비상 사태라고 할 수 있는 전쟁, 아니면 국지전만 났다면 완전히 무정부 사태까지 도달했을 수 있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유행 사태가 이 시기에 터졌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2015년 메르스 사태에서 짐작 가능하다.[17] 대통령이라는 자가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에 제멋대로 쉬는데 '''하필 이때 신천지 대구교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 사랑제일교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 급의 일이 발생했다?''' 전염병 유행 사태는 1분 1초에 성패가 갈릴 정도로 급박한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국가 최고 책임자가 부재중이라면 '''정말 미합중국처럼 정부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최악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감염되는 상황이 생길 게 너무도 뻔하다.'''
어찌 되었든 평일 오전 10시에, 외근 다니는 영업 부서 회사원도 아닌 대통령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 중론이다. 보통 대통령의 일과는 오전 6~7시 정도에 시작된다. 오전 10시라면 보통 대통령 일과가 몇 개는 끝났을 시점인데, 이때까지도 관저에서 출근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으니… 대선후보캠프 대변인을 지낸 이혜훈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저녁 7시 이후로는 절대 일을 하지 않으며 방에서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만 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 가장 중요한 정치 관련 얘기는 제대로 말도 못하면서 모든 연예 관련 지식은 유독 줄줄이 꿰고 있어 피디가 놀랐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 중에서는 21대 대통령 체스터 A. 아서가 10시 출근해 16~17시 퇴근을 임기 내내 고수하며 게으른 대통령이라 욕먹은 사례가 있으나, 아서 대통령은 최소 평일 출근은 엄수했고 일과 시간 중엔 제대로 일했으며, 미합중국 해군 전력 강화와 엽관제의 폐해를 청산한 펜들턴법 제정 등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사실상 박근혜 수준의 임금 먹튀에 가까운 선출직 국가원수는 전례가 거의 없는 셈이다.
또한 대면 보고를 절대 받지 않으며, 오로지 서면 보고만 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서면 보고가 대면 보고에 비해 더 제한된 정보만 담고 있으며, 절차 면에서도 훨씬 비효율적이라는 것은 굳이 설명할 것도 없다. 말 한마디면 될 사안까지도 양식 따져서 서류로 만들어 올리는 것은 극도의 허례허식이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상사태가 난 직후 대면 보고를 한다면 금방 상황 전달이 끝나는데, 서면 보고를 한다면 보고서 작성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증언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 당시 대통령의 행방을 모른다"고 하는가 하면, "주 1~2회 만나는 경우도 있고, 그마저도 못 만날 때도 있다"고 하며,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경우 "홍보수석, 정무수석 시절에 단 한 차례도 독대한 적이 없다"고 한다. 정작 당시 이 말을 한 조윤선도 "그럴 거면 정무수석을 왜 했냐?"고 비판을 들었다.
이런 것이 단순히 업무태만이나 '여성으로서의 사생활'[18] 따위로 치부될 수 없는 중대 문제임은 이른바 '비선의료' 의혹에 관한 다음과 같은 언론 논평이 잘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건물 구조 자체가 대통령이 참모들과 소통을 하기 어렵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을 문제로 보기도 한다. 물론 대통령 집무실과 참모들의 방이 같은 건물 안에 있어 수시로 대통령과 참모들이 만날 수 있는 백악관의 구조와 비교했을 때,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 건물과 참모들이 일하는 건물이 멀리 떨어져 있어 소통을 하기 어려운 구조는 맞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가 있었다면, 이런 구조 속에서도 참모들과 소통을 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실제로 노무현은 이러한 청와대의 구조적 문제점을 깨닫고, 참모들이 일하는 건물인 여민관에 간이 집무실을 만들어 참모들과 소통을 하려 노력했다. 이 간이 집무실은 이명박 정부 때까지 계속 쓰였으나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로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미용 시술은 누구나 받을 수 있으며 대통령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더욱이 과거 안면 테러를 당한 적 있는 박 대통령의 경우 후유증 때문에 시술이 절실했을 수 있고,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시술 사실을 일일이 공개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략) 주름을 펴고 얼굴의 비대칭을 해소하는 미용 시술이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철도 파업과 메르스, 북한 도발 등 국가적 위기 상황에도 아랑곳 없이 행해졌다면, ‘여성으로서 사적인 영역’에 대한 이해는커녕 국정 운영 의지마저 의심 받기 충분하다. #
이런 문제가 불거지면서 박근혜의 후임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은 후보 시절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청와대 광화문 이전 계획은 경호와 보안상의 문제로 인해 현재는 사실상 취소되었다.
이 때문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만큼이나 박근혜의 '역린'으로 꼽히는 세월호 7시간의 이유도, '다른 복잡한 이유가 아니라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도 안 하고 관저에서 놀고 있었다.'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해당 문서 참조. 18년 3월 검찰이 관련 내용을 발표하였는데, 진짜로 오전 10시까지 침실에 있느라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하였고, 중대본에 가기로 한 것도 오후에 최순실과 의논 후에 결정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 국가의 원수이며 행정부 수장인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직위를 얼마나 가볍게 보고 있었는지 드러났다.
5.1.1. 연설문 관련 논란
박근혜는 연설문 관련해서도 완전히 개차반이었다. 비서실장이 기껏 애써서 연설문을 작성해주면, 박근혜는 그걸 들고 청와대를 나와서 다름 아닌 최순실에게 그 연설문을 첨삭 받았다. 그러면 최순실은 그 연설문을 완전히 '''본인 꼴리는 대로''' 수정했다. '''전문가인 대통령비서실장과 연설비서관이 작성한 연설문을, 아무런 전문적 능력도 공직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인인 최순실에게 수정하게 한 것이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짓이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보통 연설문은 연설비서관이 작성하며, 대통령 본인도 첨삭하고 일부분은 직접 작성하기도 한다.
전여옥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유승민 비서실장이 힘들게 연설문을 작성해주면 그걸 들고 어딘가 다녀왔는데, 그러면 그 연설문이 쓰레기가 되었다."라는 말을 박근혜 임기 중에 입에 달고 살았는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마자, 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면 그렇지. 그 쓰레기 연설문이 최순실의 짓이었구나!"라고 말했다.
실제로도 최순실이 '''"내 취미는 대통령 연설문을 작성하는 거야!"'''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하곤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당연히 이상하게 여겼고 믿지 않았으며 기껏해야 허풍 정도로 생각했는데, 충격적이게도 이게 '''사실'''로 드러나자, 그 말을 최순실에게 들었던 사람들이 기절초풍했다고 한다.
2019년 5월 17일, 최순실이 2013년 2월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사에도 매우 깊게 관여한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이 시사저널에 의해 공개됐다. #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인 2월에 녹음된 것으로 대화를 들어보면 최순실은 마치 본인이 대통령 당선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정호성은 얌전하게 받아적고 있으며 박근혜는 최순실의 명령조 발언에 그저 '''"예예예!"'''라고 대답만 하며 허수아비 같은 모습만 보인다. #,#
5.2. 사치
5.2.1. 의생활 논란
2014년 한 해 동안만 입은 '''공식 의상만 122벌'''이라고 한다. #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이 같은 여성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 같은 정장만 입는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비교가 되어, 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후일 밝혀진 바로는, 그간 보아왔던 비슷한 옷들은 '''모두 명품이 아닌 최순실 측근 디자이너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 게다가 전 세계 외교 무대에서 국가를 대변하는 인물인 국가원수에게, 겉옷 안에 입는 기본 옷으로 만 원짜리를 입혔다고 한다. 질이 좋으며 가격은 최저, 디자인은 버린 중저가 브랜드인 유니클로에서도 만 원짜리는 구석에 쌓여 있는, 인기 없고 질도 하급이라 재고 처분 세일 가격으로나 볼 수 있는 가격이다. 이는 '''최순실이 얼마나 박근혜 대통령을 꼭두각시 취급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거기서 얼마나 많은 '''횡령'''이 있었을지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일반 외교관도 옷 잘 입고 세련되게 다니라는 의미에서 품위 유지비가 많이 지급된다. 특히 '''대통령의 옷은 어느 나라를 보아도 그 나라를 대표하는 브랜드 혹은 장인이 만든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국내 최고의 한복 명인들이 기대가 많았다는 인터뷰를 보아도 알 수 있듯[19] , 대통령의 옷은 한 국가의 최고 명품 브랜드가 무엇인지 부각시키면서 그 나라의 능력을 말해주는 중요한 것이다.[20]
10월 말, 최순실이 대통령이 입던 옷의 대금을 지불하는 영상이 발견되었다. 이 경우 이 돈이 최순실의 개인 자금일 경우 뇌물로 간주될 수 있고, 국가 예산일 경우 국가 예산을 아무런 공적 책임이 없는 민간인이 집행한 꼴이 된다. 최순실이 박근혜와의 친분을 이용해 여러 정보를 미리 받고 자신의 사적 이익을 챙긴 정황이 포착된 시점에서 발견된 영상이다. 청와대에서 옷 값으로 얼마나 지불했고 거기서 어느 정도 되는 차익의 횡령이 있었는지도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2017년에는 최순실이 '''만 원 짜리 수입 옷을 대통령에게 사다 주었다'''는 증언까지 나온 상황이니 더욱 그렇다.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영나 해임 건에서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 명품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그 동안 집권한 대통령들 및 영부인, 특히 직후에 집권한 문재인 정부의 영부인 김정숙을 볼 때 과도한 비판이었을 수 있다는 여론이 크다.
5.2.2. 식생활 논란
조선 말부터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보낸 우리 민중은 언제나 빈곤과 다투었다. 현대에 들어서 이렇게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조차 간당간당했던 시절은 이제 먼 과거의 얘기가 되었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이를 고려하여 검소한 식단을 고수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박근혜는 재임 초기까지는 현미밥과 채식을 즐기는 검소한 식생활의 소유자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재임 말기에 진상이 밝혀지며 그 이미지도 무너졌다. 물론 채식만 한다고 검소하다는 것은 선입견이다. 왜냐하면 채식만으로 얻을 수 없는 자극이나 포만감을 채우려고 더 먹어대거나 자극적인 맛을 준다 싶은 채소를 매 끼 먹거나 웬만한 최고급 고기나 해산물보다 더 비싼 야채를 먹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돌프 히틀러는 언제부터인지 분명치 않아도 채식주의자가 된 후 케이크나 콜라 등 단 음식을 엄청 먹어대거나 고급 채소인 아스파라거스를 즐겼고, 인도의 국부로 불리는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는 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 식사 때마다 마늘을 엄청 곁들여 먹어서 식비로 인해 살림이 남아나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다.
2016년 8월 11일 이정현 신임 당대표 회동 만찬에 나온 바닷가재, 훈제 연어, 캐비아 샐러드, 송로버섯[21] , 샥스핀 찜[22] , 한우 갈비 등의 호화 메뉴가 구설수에 올랐다. 전임 대통령들이 해외 주빈에게도 검소한 요리를 대접한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평이다. 여당 대표에 취임한 것을 축하하는 의미라고 하기에도 과한 게, 이전에 김무성 같은 신임 당대표 자격으로 회동 만찬에 참석했을 때는 일반적인 중화요리 코스로 대접한 사실이 있다. 물론 박근혜가 만찬 메뉴에 개입한 건지 아니면 누구의 책임인 건지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애당초에 검소한 대통령이었다면 모든 만찬에서 지나치게 화려한 음식은 사전에 금했을 것이다.
게다가 저 자리에서 전기료 누진제 완화에 대해 담화를 나눴다고 하는데, '''자신들은 호화로운 만찬을 즐기면서 여름철 전기 요금 폭탄이 무서워 에어컨도 틀지 못하는 서민들한테는 고작 몇 천 원 정도 내려주자는 얘기가 오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청와대에 광복회의 국가유공자들을 초대했는데, 사전 통보도 없이 초대객 수도 줄이고 음식도 조촐하게 대접하였다. 하필 자기 최측근들한테는 저런 호화로운 식사를 대접했던 게 알려진 직후였기에 더더욱 비교되었다. 만찬 내용이 기사화된 후 이에 대한 강한 비판들이 쏟아졌다. 또 다시 인선과 변별력의 문제가 드러난 만찬인 셈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7월에 울산광역시의 한 재래시장 방문 당시 소라 과자를 생전 처음 본 듯한 모습을 보여,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개돼지나 먹는 사료라서 모르시는가 보다"라는 비아냥을 사기도 했다. 고춧가루를 보고 굉장히 귀하다고 말한 것도 있었으나 사실 이것은 중국산 고춧가루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산 고춧가루가 귀하다는 말로 악마의 편집에 해당한다. 朴, 휴가 중 울산 시장 방문.."고춧가루, 소라과자도 몰랐다" ..서민경제 챙긴다? 사실 아무리 그래도 한국 요리에 그렇게 많이 쓰이는 고춧가루를 '''모른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소리이긴 했었다. 하지만 이 쪽이 더 임팩트가 있어서 그런지 더 널리 알려졌다. 어떻게 보면 이런 소문이 '''진짜인 것처럼''' 널리 퍼질 정도로 박근혜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바닥을 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탄핵 이후 청와대에서의 각종 더러운 추문들이 표면 위로 올라왔을 때, 이 표현을 인용하여 "'''플라스틱으로 맨든 고추, 이건 굉장히 귀하네요'''"라는 패러디 짤방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후속 보도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토속 음식과 채소, 소식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청와대 주방팀에서 일한 요리사의 말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까다로울 정도로 정갈하고 담백하며 간이 세지 않은 음식을 찾아서 신경이 많이 쓰인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고 한다. 엘리제 궁에서 퇴출된 송로버섯, 왜 청와대 식탁에 올랐을까 즉, 그래도 매 끼니를 저렇게 먹는 것은 아니었던 듯 하다. 앞서 말한 대로 과한 사치를 부린 반면에 이후의 국가유공자 초대 만찬과 비교되어서 논란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식생활 관련 논란은 또 있다. 2013년 11월 박근혜가 영국에 방문할 당시 국빈 방문 준비단으로 활동했던 한 인사가 JTBC에 폭로한 내용에 따르면 박근혜가 영국에 도착해 첫날 머무르던 호텔에서 직원들이 대통령 전용기에서 내린 어떤 스티로폼 상자를 옮기다가 상자에서 비린내가 난다며 코를 움켜쥐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이 상자에는 살아있는 전복이 있었는데, 박근혜가 아침마다 전복죽을 먹기 때문에 일부러 한국에서 공수한 것이라고 한다. 이에 한 대사관 직원이 당시 박근혜를 보좌했던 윤전추 행정관에게 '국빈 방문이면 영국 정부에서 다 알아서 해주는데, 무슨 해산물까지 챙겨 왔냐'[23][24] 고 물었더니 윤전추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왜 굳이 전복을 외국까지 옮겼는지는 모르지만, 겨우 자신이 먹자고 저렇게 한 건 확실히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박근혜/비판/자질 문서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이런 것도 변기 교체처럼 일종의 강박증 때문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조선시대에도 임금님 드실 건 수라간에서 별도 관리했잖아요. 대통령님 식사 재료를 따로 준비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25]
한겨레의 박근혜 관련 동영상을 보면, 박근혜의 영애 시절을 지켜본 자들이 '박근혜는 육영수 여사의 요리를 도왔고 북엇국을 잘 끓여서 한 번 대접 받은 적이 있다'고 증언한다. 이것으로 보아 박근혜는 그 시대의 정갈한 한정식집 같은 밥상 차림을 고집했을 걸로 보이고 이에 최순실 측도 청와대 시절이나 가정에서 먹었던 종류의 음식을 제공했을 것으로 보인다.[26] 노점 어묵이나 떡볶이, 소라과자 같은 것에 대해 무지한 것은 제3자의 수발에 기대어 밖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는 대선 유세 당시 시장에 갔다가 족발을 보고 "이게 서민 음식이에요"라고 말해 빈축을 산 적도 있다. 상류층 음식은 아니지만 아마 누군가 박근혜가 족발을 보고 뭐냐고 물었을 때 서민들이 먹는 족발이라는 음식이라고 소개하여 그리 기억을 하고 있는 듯 싶다. 게다가 시장에서 아주머니가 입에 꽂아주는 어묵 꼬치를 주변에 있던 참모진들이 하도 권유해서 할 수 없이 하나 입에 넣었다가 '''사진 찍고 즉시 뱉었다고 한다'''. 즉, 서민 코스프레도 못 했다는 얘기다.
이런 모습은 전/현직 대통령들과 비교해도 엄청 심각한 것이다. 이 문서의 이 문단을 참고해도 된다. 당장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초기에 국민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농촌을 방문해 직접 농사를 돕고 막걸리와 파전 등을 먹던 모습이 대표적이다.[27] 언플이 아니라 그 당시 청와대 요리사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비빔밥처럼 토속적인 음식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나마 크게 부린 사치래봤자 연회 자리에서 마신 시바스 리갈 정도가 없진 않았지만 말 그대로 연회 자리였다는 건 감안해야 한다. 일반적인 식사 자리에서는 소주와 막걸리를 마셨으며, 로얄 살루트라는 최고급 고가 술도 아까워서 머리맡에 두고 매일 한 잔씩 정말 조금씩만 아껴 마셨을 정도였다. 게다가 안주는 멸치 볶음 등의 소박한 것이었고, 특별한 날에도 딱히 사치스럽게 먹었다는 얘기는 없다. 실제로 식탁에 오른 음식도 나물, 전, 생채, 편육처럼 소박한 것이었고, 비싸다고 해 봤자 꿀에 재운 인삼이나 송이버섯 정도였다. 실제로 그의 식성이 그랬다. 박정희는 군부 독재자긴 했지만, 딸과 달리 유복한 집안 출신도 아니었고, 초등교사와 육군 장교라는 사치와 거리가 먼 직종을 지냈으며, 이런 식으로 고생하면서 서민의 식사를 익혔기 때문에 이런 음식들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식가라 티가 별로 나지 않기도 했다.
이승만은 카스텔라나 샌드위치 같은 서양 요리도 좋아했지만, 부인 프란체스카 도너의 일기의 의하면 물김치, 콩나물, 두부, 김, 된장찌개 같은 한국 요리도 좋아했다고 한다. 샌드위치도 당시에 생소했을 뿐이지 서양에선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었다.[28][29] 그 외에 현미떡국, 타락죽을 좋아했다고 한다. 아이스크림도 좋아하긴 했지만, 안 그래도 가난한 나라에 전쟁통이라 암만 대통령이라도 매일 먹진 못하고, 덴마크 병원선에 위문이라는 핑계로 자주 들러 대접받고 갔다고 한다.
윤보선의 경우엔 귀족적 성격으로 인해 더덕구이, 갈비찜, 잣죽, 해물전골, 너비아니 등 화려하게 먹는 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박근혜처럼 최고급 음식을 자주 즐겼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반찬은 화려하긴 했어도 술은 절대 입에 대지 않았고, 특이하게도 부유한 유력 양반 가문 출신이었음에도 쌀밥이 아닌 잡곡밥만을 먹었다고 한다. 재산이 많을수록 청빈해야 한다는 양반가다운 집안 가르침의 영향이었다고... 이 금주와 잡곡밥이라는 건강한 식단이 그의 장수의 비결로 꼽는 사람이 많다.
최규하의 경우엔 거의 박근혜와는 정반대 수준으로, 본인의 종교부터가 유교에다가 보수주의 성향, 게다가 젊었을 적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으로 인해서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도 엄청 소박하게 먹었다. 국수, 콩자반, 냉면을 즐겼으며, 나물 등을 많이 먹었고, 그가 먹었던 음식 중 끽해야 생선구이나 전골, 갈비탕 정도가 그나마 호화로운 요리였다고 한다.
전두환은 고기와 술을 무척 좋아했지만, 랍스터, 푸아그라, 캐비아 같은 고급 음식을 내놓으라는 식은 아니었다. 고기를 좀 좋아한다는 일반인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먹는 편이니 큰 문제 사항은 아니다.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세 대통령의 식사를 담당한 청와대 요리사의 증언에 의하면 전두환은 맵고 칼칼하며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했다고 한다.
노태우도 전두환처럼 고기를 즐겼으며, 일반인 식단과 비슷했다. 노태우가 무척 좋아한 음식 중 하나로 유명한 갱시기라는 음식이 있는데, 문서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소박하고 토속적인 음식이다. 사실 특이할 일도 아닌 것이 전두환과 노태우는 상관이던 박정희처럼 군인 출신이니 음식을 가리기도 힘들었다.
김영삼은 그 유명한 칼국수 대통령이었다. 하도 칼국수만 먹어서 대통령이 영양실조에 걸릴까봐 조리사가 부재료라도 푸짐하게 넣으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물론 식단 중 양갈비 구이, 랍스터 같은 다른 몇 가지 제법 화려한 음식들도 있었고, 아래의 이명박처럼 서민 코스프레, 이미지 정치를 한다는 비판도 있어서 90년대 한총련의 대자보를 보면 "칼국수가 아니라 보름달 빵을 먹으라"는 내용도 있었고, IMF 직후에는 "4년 간의 임상 실험 결과, 칼국수를 먹으면 먹을수록 머리가 나빠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내용의 만평도 나왔다. 어쨌든 칼국수를 좋아한 것 자체는 사실이다. 참고로 김영삼이 즐겨 먹던 칼국수는 일반적인 바지락 칼국수나 멸치 국물에 말아내는 칼국수가 아니라, 사골 혹은 양지 육수에 소고기 고명을 얹어 내는 고기 칼국수다.[30] 그렇다고 무슨 그릇당 몇 만 원짜리는 아니고, 일반적인 칼국수보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서울 도심에서 1만원 내외, 싼 곳에선 몇천 원대의 가격으로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서민들도 한 달에 몇 번 정도 먹기엔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건강 관리 차원에서 부실하게 먹어선 안 되는 데다 연봉도 억대에 달하고 품위 유지도 해야 하는 국가원수라는 신분을 생각하면 이 정도를 사치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김대중 정도가 그나마 식생활로 이야깃거리가 많은 전직 대통령으로, 일단 대식가이자 미식가 기질이 있었다.[31] 다만 일단 크게 가리는 음식은 없었고,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흑산도 홍어를 비롯해서 고향인 전라도에서 쉽게 접하던 해산물과 전라도식 젓갈 등을 서울특별시에서 공수해 먹는 정도였으나, 대통령 시절에는 음식으로 갑질 비슷한 투정을 다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음식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운영관에게 일일이 지적을 자주 했으며 때로는 짜증, 역정까지 냈다는 증언이 있고, 비행기 안에서 뜬금없이 냉면을 찾았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또한 야식으로 라면을 자주 먹었는데[32] 이 때문에 퇴근 후 인근 관사에 있던 운영관이 밤중에 불려와 라면을 끓여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이후 이희호 여사가 남편의 건강을 걱정하여 따로 이야기해서 라면을 못 먹게 하고, 대신 견과류로 바꾸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고가의 호화로운 음식을 즐긴 것은 아니었기에 박근혜 수준의 논란까지는 보여준 적이 없다.
노무현도 밑바닥부터 출세해 올라온 인물이라 식생활과 관련하여 큰 논란이 된 적은 없다. 우선 일반적인 식단도 아무거나 만들어라는 식으로 대해서 전속 영양사로 보는 편이 편하며, 경호상의 이유로 혼자서 라면 하나 편히 끓여 먹을 수 없어서 운영관[33] 이 끓이게 하고 서로 반 개씩 먹는 등의 고생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해봐야 '''소고기국밥'''[34] 과 삼계탕 정도로 별로 큰 문제가 있는 식사도 아니었다고 한다.
이명박도 사회 바닥부터 자신의 입지를 다졌고, 그 영향으로 음식을 가리지 않아서 식단으로 구설수에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이명박은 뭐든 잘 먹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먹방의 시초란 말도 있다. 당장 17대 대선 당시 국밥을 맛있게 먹는 광고를 선보였었고, 어묵꼬치, 설렁탕, 국밥, 찌개처럼 자주 접할 수 있고 회사 주변에서 때울 만한 음식을 주로 먹는 사진이 많다. 그리고 이명박이 특별나게 좋아하는 음식은 냉면인데, 이명박은 김밥천국 같은 곳에서 파는 냉면을 그렇게나 좋아해서 대통령 당선 전에는 자주 먹었다고 하며,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청와대에서 계속 먹었다. 이명박 항목에도 나오다시피 만두나 풀빵 등 주전부리류도 좋아했으며, 재직 중에도 피자, 스파게티처럼 중노년층에선 선호도가 낮은 음식도 잘 먹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대통령 시절 군부대에 방문했을 때 일반 육군 병사들이 먹는 짬밥을 이명박이 같이 먹었던 일이다. 거기서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는 모습에 현역 장병이나 군필자들이나 다들, '''짬밥을 어떻게 저렇게 맛있게 먹냐'''며 감탄하는 반응을 보였다. 오죽하면 정치적으로 이명박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특히 오유와 루리웹처럼 반이명박이 강한 사이트에서도 "진심이든 연기이든 먹는 거 자체는 참 잘한다."고 인정할 정도다. 이런 모습이 정치적 이미지 구축을 위해서 일부러 과장해서 먹는 서민 코스프레에 정치 쇼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건 결국 추측에 불과하다. 그리고 정말로 그게 사실이었어도, 어찌 됐든 그런 쇼조차도 못하는 박근혜보다야 훨씬 성공적인 이미지 메이킹이었던 셈이다. 이명박은 본인 입으로 성공한 사업가이자 정치인이라 하여 그런 음식을 거부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가리는 음식이 있다면 잡곡밥 정도인데, 어릴 적에 하도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흰 쌀밥을 먹는 것이 소원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명박 나이대의 가난한 집에서 자수성가한 사람들 중에서는 이렇게 '흰 쌀밥'에 대한 갈망을 가졌던 기억 때문에 잡곡밥을 안 좋아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문재인도 자신의 친구이자 직장 동료였던 노무현처럼 밑바닥에서 출세한 사람으로, 식단도 도널드 트럼프 現 미국 대통령 국빈 방문, 2018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외교적으로 큰 행사를 제외하곤[35] 대체로 소박한 축에 속한다. 취임 100일 기념 유튜브 영상에서도 본인은 주로 찌개류를 선호한다고 직접 밝혔다. 무엇보다 취임 직후에 청와대 직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모습과 2017년 포항 지진 당시 이재민들 사이에서 식판들고 밥먹는 모습 등 대통령 본인이 직접 식판을 들고 식사를 하며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아무리 쇼네 뭐네 해도 박근혜와는 비교가 안 된다. 아니, 시민들의 생활에 관심이 없다면 이런 쇼 자체도 할 수 없다.
즉, 역대 대통령들 중에 박근혜처럼 음식 가지고 구설수에 오를 정도로 논란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얘기'''다. 당시 시대 상황적으로 화려하게 먹은 이승만, 윤보선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런 건 대통령의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고 이미지 메이킹이나 조작이라는 비난도 있긴 하나, 어찌됐건 이런 걸 한다는 것 자체가 민생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박근혜는 이런 쇼를 할 노력조차도 안 했다는 게 문제다.
물론 대통령이 항상 소박한 음식만 먹으라는 뜻은 아니다. 너무 잦지만 않으면 초호화 식사도 당연히 된다.[36] 하지만 역대 대통령은 최소한 시민이 보기에 대통령이 사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미지 정도는 주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조선왕조실록에 국가에 전쟁, 기근 등이 들면 전제군주정 조선 국왕조차 죄인 행색을 하고 수라상에서 고기를 빼거나(철선), 반찬 및 음식 가짓수를 줄이거나(감선), 극단적으로 죽 한 그릇만 먹으며 지냈다는 기록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는 잘 실감이 안 되겠으나, 왕정 시대에는 왕보다 더 권세가 있거나 더 귀한 걸 먹는다는 이유 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예를 들면 제주도 말고기와 전복 등은 일반인이 잘못 건드리면 문자 그대로 '''사형을 당했다'''. 당시 왕이 죽만 먹었다는 것은 "일국의 지존인 과인도 이렇게 단출하게 먹는데, 경들은 무엇을 하는가?"라고 암묵적으로 압박하는 수단이었다. 이것이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국가원수의 모범적 태도다. 이 자체를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당장은 저런 인식이 대중적인 이상 지키는 편이 더 좋다.
그 때문인지 구치소 수감 초기엔 구치소 식사가 입에 안 맞아 거의 남기거나 버린다는 뉴스가 보도될 정도였다. 물론 사실이 아니라는 뉴스도 뜨긴 했지만, 당장 구속되기 전까지만 해도 식단에 민감했던 사람이 구치소 식단에 적응해봐야 얼마나 적응하겠는가?
5.2.3. 주생활 논란
청와대를 벗어나서 해외를 순방하거나 국내 지방을 방문할 때도 '''침대 매트리스나 변기를 새로 교체하는 등'''의 상당히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례가 빈번하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는 지극히 비효율적, 비정상적이며 여기에 투입되는 모든 비용은 당연하게 '''세금'''으로 충당되었다. 실제 사용하기라도 했으면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사용할 수도 있으니까 뜯어 고쳐야 한다'는 식으로 과잉 의전이 이어진 사례가 무수히 쏟아지고 있는데, 단 5분 사용하려고 대기실을 개조한 사례부터, 아예 들르지도 않았는데 소변기를 없애고 좌변기를 뜯어 고친 사례까지 별 희한한 목격담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사치 수준이 아니라 결벽증, 강박장애를 의심해야 할 정도인데, 이에 대해서는 박근혜/비판/자질 문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심지어 대통령 임기 당시 청와대 관저 거실 사방에 '''거울'''을 붙여 놨다고 한다. # 다만, 이 논란에 대해 직접적인 관계자라고 할 수 있는 문재인 정부 측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거울이 있었다"고 증언을 통해 확인되는 공간은 거실이 아니라 박근혜가 필라테스를 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다고 하는 옛 접견실 공간. 한쪽 벽에 전면을 거울로 처리해 놓았었다고 하는 청와대 주재 요리 연구가[37] 의 증언이 있다.
또한 대통령 재임 시절엔 "전기를 아끼기 위해 여름에도 청와대에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고 국민들에게 홍보하였으나, # 실제로는 전기 절약과는 아무 상관 없었고, 그냥 박근혜 본인이 에어컨 바람을 극도로 싫어하고 땀을 흘리는 체질이 아니라서 에어컨을 아예 켜지 않은 것이었다. 전여옥 전 의원의 증언에 의하면 박근혜는 한여름에도 긴 소매 옷만 입었다고 한다.
물론 이 자체는 개인의 체질 문제일 뿐이고, 이를 가지고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노력으로 포장하여 국민들에게 홍보한 것을 비판 받는 것으로 끝날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로 인해 불편해 할 수 있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것이다.
당 대표 시절에는 한여름에 회의를 할 때도 에어컨을 틀지 않아서 회의장이 마치 한증막에 들어간 것처럼 더웠다고 한다. 박근혜의 측근이었던 조순제의 아들이 박근혜의 운전기사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박근혜는 무더운 여름에도 차 안에서 에어컨을 켜지 않아 운전기사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해야 했고, 결국 1달 만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심지어 페이스북 경영인인 마크 저커버그가 청와대에 초청 받았을 때도 에어컨을 틀지 않아서 저커버그는 더운 나머지 계속 냉수를 마시며 곤란해 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전기 절약을 위해 저커버그에게도 양해를 구했다고 하는데, 실상은 이랬으니 심각한 결례다.
그런가 하면 국가 예산으로 침대를 3개나 사서 썼다고 한다. # 특히 이 중 제일 고가인 660만 원짜리 침대는 파면당한 이후 삼성동 사저로 가져가지 못하고 그냥 청와대에 두고 떠났다. # 그런데 이 침대는 국가 예산으로 구입된 만큼 사용 연한이 정해져 있어 해당 기간 동안은 버릴 수도 없고, 숙직자나 청와대 경호실 등에서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고급이고, 이전 사용자가 누구인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사용하기도 부적절하기 때문에 그냥 놔두고 쓰는 것도 부적절하다. 그렇다고 중고로 팔아 치우자니 전직 대통령이 쓰던 제품을 일반인에게 팔아넘기기는 그렇기 때문에 쉽사리 팔지도 못한다. 그야말로 처리하기 곤란한 상황. 일단 박근혜의 제부인 신동욱이 친인척인 자기한테 넘기라고 주장한 적은 있으나, 아무리 대통령 친인척이라도 민간인에게 함부로 청와대 물품을 넘기는 것은 불법이기에 흐지부지되었다. 그밖에 최민희 전 의원은 국정농단의 상징으로 공개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노회찬 의원은 '''그냥 태워버리면 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5.3.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 불참
2015년 11월 26일에 건강을 이유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불참했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헌화하였으나, 국회의사당 앞 뜰에서 약 1시간 20분 정도로 진행되는 영결식에는 대통령 주치의인 서창석 서울대병원 교수의 권고로 불참했다. 박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피로가 누적돼 면역력이 감소'''한 상태이며, 안정이 필요한데 오늘 같은 '''추운 날씨에 1시간 30분 동안 실외에 있기에는 무리'''[38] 라는 얘기다. 최근 고열과 인후염을 동반한 감기 증세를 보여 운구차가 떠나는 8분 동안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최초로 국가장 영결식에 불참한 현직 대통령''''이 되었다. 이때 김영삼의 장남 김은철은 아픈 몸을 이끌고 중절모와 선글라스 차림으로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39] 누리꾼 사이에서는 박 대통령이 개인사를 이유로 결석했다는 사실 자체를 비난했다. 전직 대통령의 국가장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것 자체가 무례다. 아무리 사이가 나빴어도 전직 대한민국 대통령이었으며, 국민들이 찍은 사람이었다. 당연히 예우할 존재다. 미국에서도 현직자는 전직자에게 무척 깍듯이 대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권좌에서 쫓겨나 듯이 사임한 리처드 닉슨이 1994년에 사망했을 때, 공화당과 민주당 전현직 대통령(당시 빌 클린턴 재임기)이 모두 장례식에 가서 유가족을 위로하였다. 참고로 박근혜는 안 그래도 그간 잦은 출국으로 무슨 여행 다니냐고 욕을 들었는데, 영결식이 끝난 지 '''겨우 사흘 만인''' 2015년 11월 29일에 기후회의 참석으로 출국[40] 하면서 '영결식 갈 힘은 없는데 여행 갈 힘은 있다'고 또 까였다.[41]
게다가 발인식에도 또 참여하지 않았다.
5.4. 농지 소방호스 직사
메르스 대유행 시기였던 2015년 6월 21일, 박 대통령은 강화도 가뭄 현장을 방문해 농민들을 격려하고 직접 소방호스로 논에 물을 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안 그래도 '전염병 유행으로 흉흉한데 대처도 제대로 안하고 여론 환기용 쇼 아니냐', '물을 주다 말고 떠났다', '논 물 대기는 있지만 물 쏘기는 처음 듣는다' 등 비판 여론이 일어났다.[42]
박 대통령이 다녀간 해당 논을 찾은 노컷뉴스 취재진은, 소방차 4대와 급수지원 차량 4대, 산림방제용 차량 1대를 이용해 집중적으로 급수를 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15톤 급수지원 차량 4대가 한 번에 공급하는 물의 양은 60톤이나 됐고, 급수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거북이 등 껍질처럼 쩍쩍 갈라져 있던 논바닥에 물이 차서 2천 평 논을 가득 채웠다. 마을 이장은 "가뭄으로 이미 죽은 곳은 포기하고 살아있는 부분만 살리려고 군에서 급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대통령이 물 뿌리고 간 논에만 물을 계속 대자 주변 메마른 논에서 모내기를 준비하던 한 농민은, 답답한 마음에 물을 대줄 것을 요청해 모판에 물을 공급 받았다.
앞서 서술되어 있지만 이건 쓸데없는 짓으로 보는 견해가 강하고 실제로 맞다.대통령은 모든 행정계통의 책임자로써 본인 책임 하에 모든 자원을 배분할 권리가 있고 위기 상황에서는 더더욱 나서서 해야 한다.근데 안 나서고 저런 쇼만 한다는 것은 그냥 멍청한 짓거리일 뿐이다.그렇다고 본인이 문재인이나 이명박처럼 앞에서 모든 책임을 지며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이면 모를까 그런 스타일도 아니다.그냥 뒤에서 누가 해결해주길 바라면서 앞에서는 쇼만 하고 그 쇼조차도 못하는 사람일 뿐이다.
5.5. 발언 문제
5.6. 약물 오남용 의혹
11월 넷째 주 들어서 에토미데이트, 리도카인, 비아그라, 백옥주사 등의 약물을 국비로 구입하여 오남용 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리도카인은 국소마취제로, 감각을 둔화시키고 통증을 완화시키는 약품인데, 조루증환자에게 쓰이기도 한다. 청와대에서 구입한 것은 리도카인 주사액으로 조루증으로 쓰이는 겔 타입과는 다르다. 주사액은 수술용으로 쓰거나 케타민과 같은 마약성 약품과 섞어서 쓰이기도 한다. 백옥주사는 항산화효과 등으로 미용 목적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글루타치온의 해독 효과 때문에 마약 성분 세척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전 세계일보 사장 인터뷰[43] 이후 2016년 12월 29일, 주사 아줌마라는 비선 진료 의혹이 제기되었다.[44][45]
5.7. 검찰, 특검수사 방해 및 탄핵심판 고의지연
'''1. 검찰에 수사지휘권 발동 지시 의혹'''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제보받은 정보에 의하면 탄핵의결 직전 검찰에 피의자로 몰리고 수사압박을 받던 박근혜가 김현웅 前 법무부장관에게 검찰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통해 검찰수사를 무력화시키고 자신은 범죄인이 아니라는 결과를 억지로 도출해내려 한 것으로 백혜련 의원은 분석하고 있다. 당연히 법무부장관은 박근혜의 이런 말도 안 되는 지시를 거부하고 장관직 사의를 표명하였다고 한다. #
'''2. 대통령 특권을 오남용한 범죄자 비호 및 입 맞추기 의혹'''
최순실 및 측근들과 어떤 루트를 통해 입을 맞추고, 청와대가 기밀시설이라는 점과 대통령의 불체포특권을 남용해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구치소 내 청문회를 진행하고자 하는 의원들의 진입을 막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협박한 의혹이 있다. 또한 구치소장이 법무부 장관대행과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상황보고를 올렸다고 한다. 특검은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등 피의자들에 대해 '비둘기가 날아다니고 있다'[46] 고 판단, 압수수색을 진행하려 했으나 최순실, 정호성에 대한 수색영장이 기각되었다. 여기에 대해 박근혜 측이 실제로 이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기 때문에 청와대의 영장기각 압력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정황증거는 많이 있으며, 물증확보를 위해 수사를 하려 하면 영장이 기각되는 상황.
청와대에 숨어서 농성하고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청와대는 '''범죄현장'''이다. 증거인멸이 있었다는 정황과 증언은 이미 확보 된 상황이나, 물증확보를 위한 압수수색을 '청와대를 압수수색한 전례가 없고, 기밀시설이라 특검의 출입을 허가할 수 없다'는 논리로 거부하고 있다. 언론에 공개 된 특검 시나리오에 따르면 특검이 강행돌파를 선택 할 경우 청와대에서 발포하면 어쩌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이미 법적으로는 압수수색을 거부 할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법학자들의 생각이고, 법원 역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한 상황인데 군사력을 동원한 물리력으로 막고 있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청와대 압수수색 및 박근혜의 대면조사를 거부함으로써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구속영장까지 기각되었다.
'''3. 특검과 탄핵 정당성 훼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조사하고 있는 특검에 대해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다 본인에게 불리해지니 이젠 '청와대 압수수색, 대통령 피의자 명시는 위헌'이라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게다가 관제데모 지시 의혹이나 물증, 증인 진술에 명백히 반하는 행위에 대해선 구체적 해명이나 증거 없이 특검이 중립적이 아니라 대통령 흠집내기를 하고 있다는 본인 이름으로 임명한 특검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대통령 변호인측은 헌법재판소의 공정성까지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넘어져 재판관들한테 주의까지 받는 등의 행태를 보면 탄핵기각을 노리는 것은 물론,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탄핵 인용 전에 사퇴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4. 국정을 위임 받았다는 책무에 대한 무책임한 자세'''
박근혜가 법을 뛰어넘었다고 보는 가장 큰 이유. 탄핵심판은 '대통령이 하루라도 빨리 업무에 복귀하려고 할 것이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전제로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 있다. 대통령 측이 고의로 탄핵심판을 지연시켜 국정공백 및 혼란을 부추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야말로 법이라는 제도의 허점을 치고 들어온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아 국가를 제대로 운영해나가야 할 의무와 책무가 있는데 의무를 져버렸으니 탄핵사유고, 책무를 저버렸으니 무책임한 인간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탄핵 인용 이후에도 바로 퇴거하지 않고 퇴거시간대를 가지고 말을 바꾸며 버티기 작전에 돌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5.8. 직무정지 중 특수활동비 집행 논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인 2017년 5월 25일, 대통령비서실은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를 투명하게 꼭 필요한 용도에 사용하는 데 솔선수범하겠다"고 밝혔는데[47] , 보도자료의 내용 중에 '2017년 특수활동비 및 특정업무경비 예산이 161억 9,900만 원이었는데, 5월 현재 126억 6,700만 원만 남아 있다.'라는 내용이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계산상, 박근혜가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35억 원이 넘는 돈을, 즉, 평균하면 매일 무려 5,000만 원씩이나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관계자들의 해명(?) 역시 황당하기 짝이 없는데, 이관직 전 총무비서관은 "탄핵 기간에 박 전 대통령이 사용한 특수활동비는 없다. 황교안 전 권한대행과 한광옥 전 비서실장 이하 직원들이 사용한 금액"이라고 주장한 반면, 임충연 총리실 총무기획관은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황 전 대행이 무슨 수로 집행하고 썼겠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5.9. 국정원 특수활동비 착복 논란
2017년 11월 1일, 박근혜의 '''문고리 3인방''' 중 두 사람인 이재만과 안봉근이 2013년부터 3년간 국정원으로부터 매월마다 1억원 씩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았다는 명목으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및 국고손실 혐의로 검찰에 체포되었다. 이튿날인 11월 2일, 문고리 3인방 중 좌장격인 이재만이 "'''박근혜의 지시에 따라 받은 돈이다.'''"라고 실토하였다. #
청와대 측에 별도로 35억씩 지정되는 특수활동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국정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받았다는 정황을 볼 때, '''개인착복''' 내지는 '''불법한 용처'''로의 소비 등을 예상할 수 있다.[48] 이로써 박근혜가 말한 "'''1원의 사익도 없었다'''"는 말은 거짓임이 밝혀졌다.
심지어 박근혜는 김영한 민정수석비서관에게서 국정원 특활비 관련 의혹에 측근이 연루되어 있다는 보고를 받자 측근을 해임하거나 질책하기는 커녕 오히려 의혹을 조사 중인 민정수석비서관을 불러 '''"쓸데없는 짓 하지 마세요."'''라면서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 당시 민정라인은 박근혜의 비선조작에 의해 장악된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국정원 특활비 착복 문제는 흐지부지 묻혀버리고 만다.
6. 영구집권 계획
보통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는 후임 대통령이 부담감을 갖지 않도록 정치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 통례이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김영삼, 김대중도 퇴임 이후엔 정치와 딱 거리를 두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자제해 왔다. 그러나 박근혜는 퇴임 이후에도 권력을 놓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월간조선의 보도에 의하면 박근혜는 20대 총선에서 "자신에게 다른 이야기 안 하고 말 잘 듣는 충성스러운 80~90명의 의원만 당선되면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고, 친박 국회의원들은 박근혜가 퇴임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과 지분이 공고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이런 박근혜의 입장에 동조하였다고 한다. #
내일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 #2, 박근혜는 퇴임 이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했고, 자신의 영향력을 뒷받침해 줄 후임자로서 반기문[49] 을 지목하여 전폭적으로 지원해 줬다고 한다. 또한 자신을 추종하는 원내세력을 만들어 영구불멸의 권력을 행사하고팠던 박근혜는 청와대를 통해 20대 총선의 공천에 노골적으로 개입하였다고 한다. 비례대표 명단을 청와대에서 순번까지 정해 당에 하달하였으며, 당내 비박계 의원들을 숙청하고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불법적으로 유용하여 친박인사들의 지역구에 여론조사를 돌리기도 하였다. 장시호의 증언에 의하면 박근혜의 비선실세인 최순실은 남북통일 이후 박근혜를 한번 더 대통령을 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고, 최순실의 이메일 계정인 'greatpark1819'의 의미도 박근혜가 18대 대통령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권력을 행사하게 하여 실질적인 19대 대통령으로 군림하게 할 생각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
그러나 현재의 박근혜는 탄핵당하고 깜빵에 가면서 영구집권 계획은 실현 가능성도 영원히 사라짐과 더불어서 범죄자가 된 상태이다. 20대 총선에서 박근혜가 무리하게 꽂아넣은 친박 국회의원이 건재하고, TK 지역이나 60대 이상 유권자에게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판국이다. 허나 박근혜는 20/30대 젊은 보수에게 완전히 인심을 잃었고, 모든 지역은 박근혜의 ㅂ만 들어도 펄쩍펄쩍 뛰는 지경에 이르렀다.[50] 더군다나 호남 지역에서는 이정현 전 대표가 새누리당에서 탈퇴한 채 지역구인 순천시에서 숨죽여 살 정도로 현재 박근혜에 대한 민심은 최악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