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문화
1. 개요
오키나와는 현재 일본의 하나의 현으로 되어있지만 일본 본토와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랜 기간동안 독립국인 류큐 왕국으로 존재해 왔고 중국 등의 외국과 활발히 교류했었다. 또한 기후도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일본 본토의 문화와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2. 언어
원래 오키나와에서는 류큐어를 써왔다. 류큐어를 일본어의 방언으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본토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별개의 언어로 간주한다. 게다가 섬과 지역마다 여러 방언들이 존재하며, 멀리 떨어진 섬들 사이에는 방언의 차이가 커서 대화가 쉽지 않다고 한다. 보통은 류큐 왕국의 중심지였던 슈리를 기반으로 한 동시에 사용인구 규모가 가장 큰 오키나와어가 류큐어의 표준어로 간주되곤 한다. 류큐어로 된 노래가 인기를 끌기도 하는 등 명맥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유네스코가 지정한 언어소멸위기 단계 가운데 '위험'에 해당하며, 요나구니와 같이 작은 섬의 방언 같은 경우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는 다들 일본어를 사용하지만, 그 가운데 우치나 야마토구치 또는 오키나와벤(沖縄弁)이라 불리는 일본어의 사투리도 많이 쓰이고 있다. 우치나 야마토구치는 일본에 합병된 이후 일본에서 건너온 표준 일본어를 바탕으로 류큐어의 어휘들이 많이 섞인 방언이며, 미군기지를 통해 유입된 영어 어휘가 적지 않게 섞였다. 또한 지리적으로 가까운 가고시마의 가고시마벤의 영향도 받았는데, 이는 류큐 왕국이 가고시마의 전신인 사쓰마 번의 속국이 된 것도 있고 그 전에도 류큐 왕국으로 귀화한 야마토 민족 중에 사쓰마 출신이 많았기 때문이다. 표준 일본어와 차이가 크지 않아 본토의 일본인들과 의사소통하기에 무리가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젊은 층일수록 오키나와벤을 잘 안쓰고 일본어를 많이 쓴다.
미군 점령과 지배(1945~72)의 영향으로 나이 드신 분들 중에는 영어를 잘 하는 분도 계신다. 약한 영어라도 좀 하면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 일본의 여타 지역과는 이 점이 다르다.[1] 그러나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일본에서 영어 실력이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오키나와 본섬에서 동쪽으로 340km나 떨어진 다이토 제도(大東諸島)는 류큐어 문화권이 아니다. 원래는 무인도였으며 19세기에 이즈 제도에 위치한 하치죠 섬에서 온 이주민들이 1900년에 상륙하여 개척한 곳이다. 때문에 이곳은 일본어파에 속하는 하치죠어(八丈語)를 써왔다. 정확히는 하치죠어의 다이토 방언(大東方言). 하치죠 섬도 워낙에 본토에서 떨어지 섬이었다 보니 하치죠어도 본토 일본어와 소통이 힘들며, 때문에 별개의 언어로 분류되기도 한다. 하치죠어 역시 현재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사멸 위기 언어이다.
3. 의복
3.1. 전통 의상
오키나와의 전통 의상을 류소(琉装) 혹은 우치나스가이(ウチナースガイ)라고 부른다. 오키나와의 더운 기후 특성상 통이 넓고 통풍이 잘 되는 옷이 발달하였다. 본토의 기모노와 비슷하게 긴옷를 입고 허리띠를 두르는 것이 기본으로, 위의 왕자 평상복과 같이 띠의 너비는 무척 좁으며 매듭 역시 본토의 방식과는 달리 뒤가 아닌 앞으로 매었다. 여성의 의복의 경우에는 서민들의 옷차림과, 후술하는 빈가타의 옷자락을 들어올릴 때와 겉옷 안의 속끈을 제외하면 허리띠를 두르지 않는 것이 특징으로, 속옷 위에 띠를 두르고 그 안쪽에 겉옷의 옷깃을 넣어 고정하는데, 이 방식을 우신치(ウシンチー)라고 한다.
류큐왕국 역시 이웃나라였던 명나라와 청나라, 그리고 조선과 마찬가지로 계급에 따른 복식제가 나름대로 체계화되었다. 상류층 같은 경우에는 한두겹 정도의 옷과 띠만으로 해결했던 서민들과는 달리 여러 겹을 겹쳐 입었는데, 남성의 경우 옷 아래에 속옷을 받쳐 입고 끈을 맨 후, 포(袍)에 해당되는 겉옷을 입고 넓고 긴 허리띠를 둘러 옷을 고정한다. 여성은 속옷 위에 두진(ドゥジン)이라는 저고리와 같은 옷고름이 달린 긴 옷과 카간(カガン)이라는 흰 치마를 기본으로 입는다. 조선의 상궁에 해당되는 우후세도베(大勢頭部(うふせどべ)들은 빨간 두진을, 그 아래의 궁녀들은 분홍색과 같은 옅은 색의 두진을 입었다. 그리고 왕비와 왕자비, 후궁 같은 왕실인물들, 귀족 여성들은 빈가타를 기본 복장 위에 예복겸 평상복으로 입었다. 여기서 빈가타(紅型, びんがた)란 겉옷이라는 뜻 이외에도 예로부터 전해져 발달해온 전통 염색기법이기도 한데, 이걸로 만든 옷을 입는 이들의 대부분 역시 상류층들이었다.
[image]
당대 어진에서도 볼 수 있는 통천관, 강사포, 사모, 단령과 조복 등을 보아, 명나라 멸망 전까지는 중국의 영향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명종실록 3권, 명종 1년 2월 1일 무자 첫 번째기사에서 언급된 류큐 왕국의 풍속에 관한 기록에 의하면 궁에서는 명나라의 제도를 따라 사모와 단령 일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에도 막부가 세워진 이후의 풍속화나 쿠미오도리의 무대의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후리소데의 영향을 받아 기존의 중국식 의복과 통소매 이외에도 겨드랑이 아래에 소매통이 터진 후리소데 형태의 긴소매의 옷도 생겨났다. 그 후리소데 형태의 옷은 본토와는 달리 주로 어린아이들과 젊은 남자들이 입었다.
상술했던 것과 같이 신분제 사회였던 류큐 왕국에서는 남성의 경우 조선과 명의 사모에 해당되는 관[2] 의 색깔과 비녀의 재질, 옷과 빈가타의 바탕 색과 무늬 등이 정해져 있어 이것으로 신분을 구분하였다. 옷의 재질 역시 신분에 따라 달랐는데, 사족(士族)은 무명이나 고급 삼베, 그 아래의 서민들의 경우에는 파초와 같은 식물섬유로 된 재질의 옷을 입었다.
[image]
일본 본토 식으로 목깃 뒷쪽을 느슨하게 입은 우치나스가이
[image]
지금은 많이 볼 수는 없지만, 전통 공연, 결혼식 등에서 볼 수 있다. 관광지에서도 우치나스가이를 입은 직원들을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으며, 돈을 내면 직접 입어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도 있다.
3.2. 카리유시 웨어
[image]
카리유시 웨어(かりゆしウェア)[3] 는 하와이안 셔츠가 오키나와에 현지화된 형태이다. 1970년대 관광상품으로 개발되었으며, 더운 기후에 알맞아 인기가 있다. 요즘은 냉방비를 아끼는 차원으로 관공서 등지에서 정장 대신에 많이 입는 추세라고 한다. 일종의 쿨비즈. 인터뷰 사진등에서도 종종 보인다.
4. 식문화
일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다 보니 본토 일본요리와 구분되는 독자적인 오키나와 요리가 발달하였다. 불교의 영향이 약해서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다거나 하는 점이 큰 차이. 여기에 미군기지의 영향으로 스팸의 소비량이 많은 점도 있다.
오키나와에서는 초밥이나 우동 같은 일반적인 일본 요리는 파는 곳이 있긴 하지만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애초에 오키나와에서 본토 일본요리는 남의 나라 음식에 가까워서 식당도 그렇게 많이 있지는 않은 편이다. 초밥 같은 경우는 질 좋은 재료 수급이 쉽지 않다거나[4] 하는 점으로 좋은 평가를 못 받는다. 드물게 정말 잘 하는 집이 있다고는 하니 잘 찾아보자.
자세한 내용은 오키나와 요리 문서 참조.
5. 건축
전통 가옥들은 지역 환경에 잘 맞춰진 양식을 보이는데,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마루와, 거센 바람은 막고 부드러운 바람은 들여보내는 방풍림이 발달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그 이전 시대의 오키나와 전통 가옥은 오키나와 본섬에서는 거의 전멸하다시피했다. 전통 가옥을 보고 싶다면 본섬에서는 테마파크나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본섬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전쟁의 참화를 비교적 비켜간 야에야마 제도 타케토미 섬(竹富島)에는 여전히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전통 가옥이 많이 남아있다.
슈리성은 류큐 왕국의 궁궐이었던 곳으로, 중국과 일본의 영향이 들어간 독특한 양식을 보인다.
현대 건축은 태풍에 강하다는 이유로 철근 콘크리트를 많이 사용한다. 또한 오키나와 자체가 시멘트의 재료인 석회암이 풍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벽돌과 통유리 구조는 잘 쓰지 않는다.
현대 오키나와의 주택들도 일본 본토와 다른 특색을 보인다. 의외로 한국 주거문화와 유사한 점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거실이 개방된 평면구조 선호와 바닥에 배수구가 있는 습식 화장실[5] 을 들 수 있다. 또한 공동주택을 규모와 관계없이 아파트라고 부르는 용법도 한국과 똑같다.[6]
6. 종교
류큐에는 류큐 신토라고 불리는 전통 종교가 있었다. 또 류큐 왕국 시절부터 불교, 유교, 일본 본토의 신토 또한 전래되었으나 외래종교의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모로 류큐 신토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일본 본토보다 기독교인 비율이 높다고는 하지만, 오키나와 인구의 3% 정도로 체감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미군과의 접촉 등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기독교 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본토에 비해 적은 편이다. 심지어 원래 무종교였다가 개신교로 개종한 사람도 있을 정도.
7. 전통공예
오키나와의 염색 기법을 빈가타(紅型)라고 한다.
직물로는 파초잎 섬유로 제조하는 파초포(芭蕉布)가 유명하다.
도자기를 오키나와어로는 야치문(焼物, やちむん)이라 한다. 그 중 츠보야야키(壺屋焼, 오키나와어로는 치부야야치)가 유명한데, 17세기에 사츠마 번에 요청하여 임진왜란때 포로로 끌려온 도공 장헌공(張獻功)을 초빙하면서 시작되었다.[7] 그 이전 구스쿠 시대에 사용된 고려 기와 등을 볼 때 이전에도 바다 건너의 도예 기술이 유입되고 있었던 것 같다.
유리공예인 류큐 글래스(琉球ガラス)도 유명한데, 오키나와 전쟁 이전에 일본 본토에서 유리 기술이 들어온 후, 미군 점령기 당시 군 기지에서 버려진 콜라와 맥주 병을 재활용해가며 다양한 색감과 질감의 독특한 유리 제품들을 생산하였다.
8. 무술
해외에 일본 무술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가라테는 원래 류큐 왕국 시절에 중국 무술이 건너와서 만들어진 오키나와 테가 원조이다. 이후 일본에 합병되면서 나서 지금의 가라테의 모습을 갖추었고, 본토 및 해외에도 세계적으로 가라데가 퍼져 나갔다. 때문에 오키나와는 '가라테의 원형'을 간직한 곳으로 알려진다.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에선 이 때문에 뭔가 알려지지 않은 비장의 무술이나 격투기술은 오키나와에서 나오는 걸로 묘사하곤 한다(...).[8] 여러 유파가 존재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유파인 고주류(剛柔流)는 일본 본토에 진출하고, 극진공수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만큼 세력이 크다.[9] 그래서 그런지 현지에는 극진공수도 도장도 적지 않은 편이다.
9. 음악
오키나와/류큐 지방 음악은 일본 음악과 차이가 많이 난다. 원래 류큐에서 써오던 음계는 도미파솔시[10] 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도레미솔라로 구성된 요나누키 음계[11] 를 쓰는 본토와 구별되는 큰 차이이다. 또한 산신과 같은 오키나와의 전통악기를 쓰는 것도 특징이다.
열대지방 해변 느낌이 강하다는 감상이 많으며, 종전 이후 미군 기지가 주둔하고 있어서 미군이 즐기던 음악까지 수용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독특한 록 음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하이사이 오지상을 부른 키나 쇼키치[12] & 참프루즈 같은 밴드가 그런 류큐 지방 록 밴드의 선구주자로 유명하다. 지금도 류큐 록 밴드나 가수들은 일본 음악계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통음악도 호소력 있고 모던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어서, 국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리메이크 되기도 한다.(섬사람의 보물, 섬노래, 눈물이 주룩주룩 등등.)[13]
다른 항목에 넣기는 애매해서 여기 넣는데, 전통 음악과 문화도 큰 차이가 있는 편이다.
매년 1월 1일에 오키나와에서 TV를 보면 NHK에서는 일본의 전통 공연을 보여주고, 오키나와 로컬 방송들은 오키나와의 전통 공연들을 보여주는데 전혀 다른 느낌으로 방송한다.
자세한 내용은 오키나와 음악 문서 참조.
10. 스포츠
지리상 문제로 스포츠 구단 등이 거의 없는 편이다. 오키나와를 연고로 NPB에 참가하는 야구구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시엔만큼은 엄청난 인기가 있다. 또한 겨울에도 온난한 기후로 인해 한국과 일본 야구 구단들의 스프링캠프가 이 곳에서 많이 열리기 때문에 2월에는 연습경기를 보러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더러 있다. 정식 리그는 아니지만 오키나와에서 전지훈련을 겸해서 열리는 야구 평가전을 오키나와 리그라고 부른다. 또한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정식경기를 퍼시픽리그 팀들이 오키나와에서 매년 1~2경기 정도 연다. 프로야구팀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인기가 높은 편.
축구팀으로는 3부 리그격인 실업 축구리그 JFL에 참가하던 'FC 류큐'[14] 가 있었으나, 2014년 시즌부터 새롭게 창설된 정식 3부리그 J3리그에 참가하게 되어 프로구단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2018시즌에는 11월 3일 자스파구사츠 군마전에서 4-2 승리를 하며 창단 첫 J3리그 우승 및 J2리그 승격에 성공했다. 농구팀으로는 B리그 '류큐 골든 킹스'[15] 가 있으며 오키나와현 내에서 농구인구의 증가와 함께 최고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11. 마츠리
12. 연간 행사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는 달리 명절을 대개 구력(음력)으로 쇤다. 하지만 일본 본토의 영향을 받다보니 요즘은 나하시의 경우에는 설날을 구정이 아닌 신정으로 쇠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불의 신인 히누칸(ヒヌカン)에게 공물을 바치며 안녕을 기원하는 날이 많다. 히누칸은 한국의 조왕신에 해당하는 신으로, 집안의 안녕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명절은 아니지만, 양력 6월 23일은 위령의 날(慰霊の日)로, 오키나와 전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날이다. 현에서 지정된 기념일로, 이날 현내 관공서들은 휴무한다.
13. 오키나와 붐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일본 본토에서 오키나와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는데 이를 오키나와 붐(沖縄ブーム)이라고 한다. 1992년 슈리성이 복원되었고, 1993년에 류큐 왕국을 소재로 한 NHK 대하드라마 《류큐의 바람(琉球の風)》이 방영되었으며, 1995년부터 오키나와 출신 가수 아무로 나미에가 큰 인기를 끌면서 '아무라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오키나와 붐의 끝으로 본다.
[1] 실제 경험담으로, 국제거리에서 회전초밥을 먹고 있는데 밖에서 다수의 영어 대화음이 들렸다. 당연히 주둔 미군 및 그의 가족이거나 외국인 여행객으로 생각했는데 웬 걸,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오키나와 어르신들과 좀 높아보이는 미군이라 카더라.[2] 하치마키(冠, ハチマキ)라고 하며, 일본 본토에서 하치마키는 머리띠(鉢巻)를 의미한다.[3] 카리유시(嘉利吉)는 '경사롭다', 혹은 '자연과의 조화'를 의미하는 오키나와어 단어이다.[4] 따뜻한 곳에서 나는 물고기는 맛이 없다는 평가가 많은데 일본 본토쪽 생선들에 비해 지방질이 부족한 것이 이유라고 한다. 이 때문인지 사시미보다 어묵의 형태로 많이 먹는다고 한다.[5] 일본 본토는 건식 화장실이 대부분이라 배수구가 없다.[6] 일본 본토의 경우 '아파트'는 원룸이나 소규모 다세대주택을 가리키며 대규모 고층 공동주택은 '맨션'으로 부른다.[7] 사츠마 번은 조선 포로들을 통해 도자기 사업을 펼쳐나갔으며 이들이 만든 사츠마야키(薩摩焼)는 국내외에서 명성을 떨쳤다. 참고로 일본 제국의 외무대신을 지냈던 도고 시게노리가 이 조선인 도공 가문 출신이다.[8] 잘 알려진 '톤파'역시 오키나와에서 쓰던 무기. 현재는 개량을 거쳐 경찰봉으로도 쓰인다.[9] 이는 창시자인 최영의 총재가 고주류 유단자였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최영의는 쇼토칸류를 먼저 배웠기 때문에 쇼토칸류의 유단자이기도 하다. 거기다 친한 형 뻘인 기무라 마사히코에게 유도를 배워 4단을 따낸 종합무술인이다. 본인이 가라테가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활동했을 뿐.[10] 현대에 작곡되는 오키나와풍 음악은 도'레'미파솔시의 6음계로도 만들어진다.[11] 엔카와 트로트에 쓰이는 그 음계이다.[12] 이 분은 후일 일본 민주당 국회의원으로도 지내기도 했다.[13] 정작 오키나와 저항의 노래였던 섬노래(島唄)는 일본 본토인들이 대표곡으로 써먹는 안습한 상황이지만(....).[14] 2008~2010년의 감독이 무려 전 일본대표팀 감독이던 필립 트루시에 [15] http://www.okinawa-basketball.jp/[16] 밥으로 지은 요리[17] 仏壇, 집 안에 두는 작은 제단으로 본토의 부츠단에 해당한다.[18] スーチカー, 염장 돼지고기[19] 아시안 게임에서 볼 수 있는 드래곤 보트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