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만세(노래)

 

1. 개요
2. 가사
3. 관련 문서


1. 개요



2000년대 초에 인조이재팬에서 혐한과 한국 민족주의 네티즌들이 치고 박던 시절 나온 힌국을 까는 노래인데, 원본은 플래시이며 노래를 부른 사람은 업로더의 조부로 추정된다.
원본 플래시는 소위 '특정 아시아 3국(한반도, 중국)'을 까는[1] 2ch발 특아플래시 보관소에서 볼 수가 있다. 당연히 다른 대한민국 관련 플래시도 대부분 이 작품처럼 혐한네타로 뒤덮여 있다. 왜곡을 뛰어넘어 창작에 가까워졌지만, 혐한초딩들에겐 이것들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우리나라 만세' 한마디는 한국어에 대해서 잘 모르는 혐한초딩이라도 아이고!!!, 갠차나요(괜찮아요) 등과 더불어 익숙해져있는(?) 한국어 단어이다. 반대급부로 일본어에 대해서 잘 모르는 한국인이라도 칙쇼!!!, 빠가 정도는 익숙해져있는(?) 일본어 단어인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2. 가사


ウリナラの歴史は 半万年
우리나라」의 역사는 반만년
証拠はないけど 九千年
증거는 없어도 구천년
日本もロシアも 中国も
일본러시아중국
かつては ウリナラの領土
예전에는 우리나라의 영토
倭国に漢字を 伝えてやった
왜국한자를 전해줬다[2]
陶磁器 儒教も 教えてやった
도자기유교도 가르쳐줬다[3]
剣道 盆栽 寿司 サッカー
검도 분재 스시 축구[4]
みんな ウリナラが起源
모두 우리나라가 기원
ウリナラ マンセー
우리나라 만세-」
ウリナラ マンセー
「우리나라 만세-」
文明の中心
문명의 중심
ウリナラ マンセー
「우리나라 만세-」
ウリナラ マンセー
「우리나라 만세-」
日本人よ 感謝しる[5]
일본인은 감사하라!
豊臣秀吉 攻めて来て
도요토미 히데요시쳐들어와서
残していった トンガラシ
남기고 간 고추
ウリたちが キムチくさいのは
「우리」들이 김치 냄새 나는건[6]
秀吉のせいニダ アイゴー
히데요시 때문「니다아이고[7]
ロシアに就こうか 清国か
러시아에 붙을까 청나라에 붙을까?[8]
それとも 欧米の植民地
아니면 구미의 식민지[9]
優柔不断 事大主義
우유부단 사대주의
お願い 韓日併合
그냥 한일합병 해주세요 [10]
ウリナラ マンセー
「우리나라 만세-」
ウリナラ マンセー
「우리나라 만세-」
朝鮮総督府
조선총독부
ウリナラ マンセー
「우리나라 만세-」
ウリナラ マンセー
「우리나라 만세-」
日本人は 反省しる!
일본인은 반성하라!
白丁奴隷を 解放し
백정노예를 해방시키고[11]
こどものキーセン 禁止して
꼬마 기생도 금지하고
ハングル教える 小学校
한글을 가르치는 소학교 [12]
街には 電車も走る
길에는 전차도 달린다 [13]
小作にも 農地を所有させ
소작농도 땅을 갖게 하고[14]
はげ山に 緑の木を植えて
민둥산에는 푸른 나무를 심고[15]
シャーマン治療を禁止して
무당 치료를 금지하니
たちまち 人口2倍
순식간에 인구는 두 배[16]
ウリナラ マンセー
「우리나라 만세-」
ウリナラ マンセー
「우리나라 만세-」
勝手に近代化
멋대로 근대화 [17]
ウリナラ マンセー
「우리나라 만세-」
ウリナラ マンセー
「우리나라 만세-」
日本人は 謝罪しる!
일본인은 사죄하라!
徴兵制度は 大歓迎
징병제도대환영[18]
名実ともに 日本人
명실공히 일본인
でも 戦争に負けて 寝返った
하지만 전쟁에서 지니 배신
ウリたちは 連合国民
「우리」들은 연합국민[19]
韓日協定 結ばれて
한일협정이 체결되어
戦時保障が 5億ドル
보상금액이 5억달러
すべて決着したけれど
모두 매듭지은 이야기지만
まだまだ欲しい 金よこせ
아직도 부족해 돈 더 줘 [20]
ウリナラ マンセー
우리나라 만세-」
ウリナラ マンセー
「우리나라 만세-」
捏造 言いがかり
날조와 트집 [21]
ウリナラ マンセー
「우리나라 만세-」
ウリナラ マンセー
「우리나라 만세-」
日本人は 賠償しる!
일본인은 배상하라!
アジアの恥
아지아노 하지
아시아의 수치
女性の敵
조세이노 테키
여성의 주적
世界の嫌われ者
세카이노 키라와레모노
세계가 싫어하는 놈
大嘘つき
오오우소츠키
툭하면 뻥치고
無礼で下品
부레에데 게힌
예의라곤 1도 없는
朝鮮半島消えてよし!
초오센한토오 키에테요시!
한반도는 사라져라![22]
보다싶이 혐한성 날조가 많은 내용들이 많다.

3. 관련 문서


  • Remove Kebab[23]
[1] 그리고 그 외에는 구 일본군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카테고리도 있다. 대표적으로 '''카미카제 찬양''' 플래시라든가...[2] 굳이 한자는 아니지만 임나일본부로 유명한 일본서기에 백제가 천자문을 전해줬다고 나온다.[3] 가까운 만큼 문화 교류는 당연하고 임진왜란 때 조선을 통해 가져와서 도자기와 성리학이 크게 발전했다는건 기정사실.[4] 주로 해동검도 측에서 주장을 하고 식해가 스시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식해의 형태는 중국 남부 쪽에도 있었다. 나머지는 몰라도 되는 듣보잡.[5] 원래대로라면 ~しろ가 맞는데, ~しる라 적혀 있는 이유는 김영진(1947)2ch 용어집의 H부분 참고.[6] 이전엔 백김치였다고 한다.[7] 에도 막부와의 교역으로 전해졌다면 몰라도 전쟁중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농작물을 전해줬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8] 조선 말기 아관파천 임오군란등 조선이 러시아나 일본 청나라의 세력 사이에서 갈팡지팡한건 사실이다.[9] 그당시 아시아는 대부분 열강들의 식민지 신세였다. 그리고 광복후 미군정이 들어온것도 사실. [10] 을사늑약, 의병운동 때를 제외하면 양민들은 나라가 망할거란 건 인지는 하기도 했지만 대놓고 합병을 바라는 말은 안했다. 그리고 일부는 어떻게 되든 거의 신경도 안 쓰기도 하였다.[11] 해방이라면 실상의 기만이 문제였지 이미 조선에서도 했었다 (갑오개혁). 허나 신분에 따른 차별대우는 일제 강점기에도 변함이 없었으며(형평운동이 왜 일어났는지 생각해보자) 6.25 전쟁의 발발과 급진적인 산업화 과정 속에 소멸되었다. 정작 일본은 아직도 부라쿠민에 대한 차별이 남아있다.[12] 한글 교재는 총독부에서 출판한 자료들이 남아 있다. 문제는 조선 현지의 교육 수준이 대학과정을 제외하고 일본의 중학교 과정이 최종 과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학교로의 접근성은 매우 낮았으며 (학교도 거의 없었다. 시골 치안을 헌병 (군사경찰)이 담당하고 도시를 민정경찰이 밑았다니 이건 뭐.. 애초에 도시 인프라가 양호하다면 군에서 헌병을 차출할 이유가?), 국내 7-80년대의 기성회비와 유사한 금전도 학교나 교사에게 납부했다.[13] 정작 전차는 대한제국이 일본보다 먼저 도입했다 (...)[14] 일제 초기에 기차나, 개발 계획 산미 증식 한다고 길거리에 앉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은 흠좀무.. (논문마다 주장이 다르다. 피해가 과장되었다는 이야기도.) 정작 소작농의 분쟁을 해결시킨 것은 해방 후 제정된 조봉암의 농지개혁법이다.[15]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은 국유림, 민유림을 가리지 않고 목재부터 나무껍질, 나뭇잎, 송진 채취를 위한 소나무뿌리까지 한국과 일본의 산림까지 철저히 수탈했다. 그 결과, 한국의 산림은 면적이 크게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면적당 나무의 수가 크게 감소하여 말만 숲이지, 휑한 산에 나무가 띄엄띄엄 있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정작 민둥산에 푸른 나무가 심어진 것은 해방 이후 박정희 정권 때 실시한 녹화사업의 결과이다.[16] 강점 전 조선에서 자체측정한 결과가 전근대 측정의 한계로 실제 인구보다 적은 수가 나왔을 뿐이지 이미 구한말의 인구는 천만대 중~후반으로 추산되며 실제로 당대에 이천만 조선 동포라는 말이 제법 쓰인 것으로 보아 조선인 스스로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조선의 인구가 일제시기간 늘어난 것은 사실이나 이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급격한 증가율은 아니며 근대의 의학과 과학이 들어와 확산된 것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놀랄 일 또한 아니다.[17] 어디까지나 지배국 국민을 위한 식민지의 입맛대로 한 근대화였다.[18] 일본은 1870년대부터 징병제를 시행했고, 일제시대 당시 조선은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인 1944년부터 징병제를 시행했는데, 실상 누가 전쟁에 끌려가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이 때 반긴 것은 친일파 내지 드디어 국민 취급을 하는 줄로 착각했던 사람들이였다. 일본에서는 패전과 일본군 해체로 징병제가 폐지되고 다시 시행하지 않았고 지금도 시행되지 않지만 한반도에서는 해방 후의 남북분단그 후 터진 전쟁을 전후로 해서 남북한에서 징병제가 다시 시행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남한 내부에서는 이것을 일부 계층을 제외하면 분단 상황 때문에 필요악이라고 인식하는 것 외에는 대환영을 할 리가 아예 없다.[19] 이 네 줄은 자기모순이다. 당연히 일제시대 때 조선인들의 국적은 일본이었다. 하지만 광복 이후 우리는 일본국적을 '''강제로 박탈'''당했다. 이 이야기는 일본인으로서 의무를 이행한 대가의 권리를 얻지 못한 셈이다. 즉 일본은 의무에서만 국민을 내세우고 권리는 이런 식으로 외면한 거다. 물론 한국 땅에 살던 사람들이야 일본이 물러갔으니 일본국적이 없어진 거야 별 상관할 바 못 되었다. 하지만 해외(일본 본토 포함) 거주 한국인들의 상황은 다르다.[20] 1964년 한일회담으로 일본과의 재수교 과정에서 벌어졌던 박정희 정부의 실책 중 하나다.[21] 일본에 대한 과장, 특정 정서 유도 등을 쉽게 찾을 수 있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작 일본이 남말 할 처지는 아니다 (...)[22] 조선반도는 그냥 한반도를 칭하는 말이다. 남북 전체를 일컬을 때 까놓고 말해서 조선이 아니라 (韓)으로 부르는 나라는 한자문화권에서 남한, 대만 밖에 없다.[23] 급조된 증오성 노래라는 공통점이 있다. 단 그쪽과 달리 이 증오발언은 밈일지언정, 일본 넷 우익 그들의 리그내에서만 통용되던 내수용 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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