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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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홍하(李洪河)
'''출생'''
1938년 7월 20일(85세)
전라남도 고흥군
'''직업'''
前 사학인, 교원
現 무직(수감 중)
'''학력'''
조선대학교 동생물학과
'''혐의'''
횡령, 성폭력
'''처분'''
징역 9년, 벌금 90억원(횡령)
징역 3년(성폭력)
1. 소개
2. 초기 생애
3. 사학계에 뛰어들다
4. 대학 장사
5. 구속 및 처벌


1. 소개


대한민국의 '''횡령성범죄자'''. 박철웅, 김문기, 백인엽, 손종국 등과 함께 '''비리 사학인'''으로 아주 악명이 높은 사람 중 하나다.
원조 비리 사학인 중 하나인 박철웅의 학교 경영 방식에 영향을 받고 그걸 더 발전시켜 더욱 막장으로 경영하여 아래의 '''부실 학교들을 줄창 양산'''했는데, 허술한 법망을 이용해서 이득을 보고 범행을 저질렀다. 대학설립준칙주의를 이용해서 부실대학들만 잔뜩 세웠고, 그것도 모자라서 등록금까지 갈취했다.
어찌 보면 호남 지역을 전국 고등교육 최약체로 만든 1등 공신이기도 하다. '고등교육'은 대학전문대학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말한다. 고등학교는 중등교육 단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홍하의 손이 거의 닿지 않는 중등교육은, 호남의 지역특성을 고려해도 상산고등학교광주과학고등학교를 대표적으로 선전하는 편이다. 이홍하의 대광여자고등학교도 비리를 제외한다면, 오히려 선전한다(...)

2. 초기 생애


이홍하는 1938년전라남도 고흥군에서 태어난 뒤 조선대학교 동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공립 중등교원으로 임용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모교인 조선대학교 역시 그의 대선배격인 박철웅이 비리 사학으로 추락시킨 바 있다. 공립고등학교 생물교사로 근무하면서 부업으로 목욕탕을 운영했다. 대표적으로 광주고등학교, 순천고등학교 등에서 근무했었다. 아내인 서복영 역시 고등학교 가정교사 출신이라고 한다. 과거 목욕탕은 거리제한규정이 있어서 돈벌이가 쏠쏠한 직종이었다. 여기 참고. 교원은 창작 활동을 제외한 일체의 영리 활동이 공무원법에 의거하여 금지되어 있다. '''요약하자면, 말단 교원 시절부터 범죄자싹수가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생물교사로 재직했을 당시에는 평범한 교사였고, 오히려 당시 제자들 사이에서는 꽤나 재미있게 가르쳤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에도 사립 중등교원은 재단에 돈 바치고 들어가는 직업이고, 공립 중등교원은 실력으로 들어가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제자들 사이에서의 평판도 그렇고 기본적인 실력 자체는 어느 정도 좋은 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비록 적법한 행위는 아니었다지만 수업 끝나고 자신이 운영하는 목욕탕으로 달려가서 투잡 뛰는 것을 보며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었다. 5공 설립 이후 급료 올려주기 이전의 교사는 생계 꾸려가기조차 힘든 박봉이었고 그 박봉을 벌충하겠다고 대놓고 방과후에 '''자기 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과외를 해서 시험문제를 흘려주거나''' 촌지를 받아챙기며, 돈 안되는 제자들을 학대하는 교사도 흔했다. 평생직장이라는 장점이 있었지만, 어차피 그 시절엔 대기업이나 은행들도 정말 어지간히 큰 사고를 저지르지 않은 이상 평생 직장이 보장되었기에 있으나 마나 한 장점이었다. 따라서 투잡은 불법이라 해도 촌지에 비하면야 훨씬 도덕적이라고 평가할 여지가 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것만 가지고 도덕성을 비판하는 건 무리가 있다. 그 시절 이홍하의 모습을 기억하는 제자들은 이후의 타락한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거나 씁쓸했다고 한다.
여기서 끝내고 그냥 목욕탕을 찜질방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고등학교 교감 또는 교장이나 하면서 그럭저럭 살았거나, 학교법인이라도 건전하게 운영하면서 괜찮은 교육자로 살아갔다면 문제가 없었겠으나, 그의 욕심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고, 결국 파국에 치닫게 만들었다.

3. 사학계에 뛰어들다



그런데 목욕탕이 장사가 잘 되자 이 어느 정도 모였고, 그 돈에 은행에 융자를 받아서 상당한 규모의 금액을 만든 뒤 그 돈으로 이'''홍'''하와 그 아내 서'''복'''영의 이름을 각각 따서 1977년 6월 20일에 학교법인 홍복학원을 창설했다. 이후 이 씨 부부는 1978년 3월 4일전라남도 광주시 남구 주월동에 광주시 최대 규모의 여자고등학교인 옥천여자상업고등학교(현 서진여자고등학교)[1]를 개교, 뒤이어 1984년 11월 27일에 18학급 설립 인가를 받아 나주군 남평읍[2]광남고등학교가 이듬해인 1985년 3월 13일[3]에 개교하였으며, 1985년 12월 28일에는 옥천여자상업고등학교 옆에 대광여자고등학교가 15학급 설립 인가를 받아 이듬해인 1986년 3월 5일에 개교, 이렇게 총 3개의 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이사장에 취임했다.
의외일 수도 있는데, 이 중 대광여고는 광주광역시에서 '''최고의 명문 여고'''로 손꼽히는 학교였었다. 광주광역시 여고 중 명문대 합격률이 가장 높은 여고 중 하나였다. 엄청난 스파르타식 교육을 하기 때문에 애들이 딴짓할 틈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홍하가 오직 이 학교만은 전력투구해서 '''명문'''으로 만들었던 건 다 이유가 있다. 이 학교마저 똥통학교일 경우 학교법인 홍복학원이 문을 닫게 될 위기에 몰리기 때문이다. 이홍하는 그걸 막으려고 오로지 이 학교 만은 명문 고등학교로 만들었던 것이다. 관선 이사가 파견된 이후 현재는 높아진 수시 비율에 전혀 대비하지 않고 오직 정시 하나만 믿고 밀어붙인 결과 입시 성적이 나락으로 떨어져서 모든 것은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대광여고의 경우는 내부 시설만 봐도 이홍하 계열 대학교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인데, 교실 벽은 우드 그레인으로 되어 있고 창문에는 고급 롤스크린이 걸려있으며, 천장에는 고급 매립식 형광등, 간접 조명, 샹들리에(!)가 있으며, 고급 책걸상에다가 교실마다 빔 프로젝터냉장고가 있고, 복도 벽 까지 인조대리석(!)으로 마감했을 정도로 호화로운 인테리어와 내부 설비를 자랑해서 화제가 되었을 정도였다. 천장에 텍스마감도 없이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고 70~80년대 학교 건물에서 볼법한 구형 갓형 형광등이 달리고 다 낡아 빠진 책, 걸상에 제대로 된 비품도 갖춰지지 않은 이홍하 계열 대학교와는 확실히 비교되는 수준. 사실 대광여고의 호화로운 인테리어는 외고 전환을 신청하기 위해서 호화롭게 리모델링한 것이라고 하지만, 보기 좋게 탈락... 하지만 교실 내부만 호화로울 뿐, 급식실운동장, 강당 등 '''학교 주요 시설이 아예 없는''' 데다 건물 안정성 평가도 낮을 뿐더러 서쪽을 향한 일자 형의 건물이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여간 불편하고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이어서 이홍하는 광주에 외국어고등학교가 없다는 점에 착안해 2010년에 이 대광여고를 외국어 고등학교로 전환하려 했으나, 국정감사에서 비리 사학이 외국어 고등학교를 운영하려 한다고 제대로 몰매를 맞았고, 당연히 장휘국 광주광역시 교육감이 대광여고의 외국어 고등학교 전환을 막아서 최종적으로 무산되었다. 게다가 이홍하까지 구속되었으니 이제 대광여고가 외국어 고등학교로 전환할 일은 앞으로도 절대로 없을 것이다.
서진여고 역시 이홍하가 세운 모든 대학교들과 비슷한 운명에 처했다. 안 그래도 갈수록 광주광역시의 여고생 입학 인원 수도 줄어드는 판국에 남녀공학이나 특성화고로는 전환도 안 되고 있는 데다가 이 학교는 대광여고와는 달리 이홍하가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고등학교이다. 현재 이홍하 표 학교 중 관선 이사가 파견되지 않은 학교는 광남고등학교 1곳 뿐이다. 여고 2개에도 관선이사가 파견된 상태이다.
그러다 보니 2016년 6월 이후부터 계속 대광여고와 서진여고 모두 전교생과 전교직원(교사, 경비원, 시설물 관리자, 행정직원, 영양사 등등 모두 포함.) 전체가 '''학교 재단의 공립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4. 대학 장사



그래도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대학교를 차리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본격적으로 '''돈맛이 들린''' 이홍하는 때마침 1990년에 노태우 대한민국 대통령이 전라도 지역에 대학교를 설립하여 전라도 지역 주민들의 민심을 달랠 겸 전라도를 발전시켜주기 위해 대학교를 세울 사람을 모집 공고했을 때 여기에 응했고 결국 이홍하가 입찰을 따냈다.
그 학교가 바로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서남대학교이다. 그래서 다른 부실대학교들이 추풍낙엽처럼 폐교를 하는 와중에도 서남대는 몇년을 버티가다 어렵게 폐교된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이름을 걸고 설립했으니 폐교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홍하는 1991년서남대학교, 1993년광주예술대학교를, 1995년에 한려산업대학교 등을 세운다. 물론, 이 대학교들은 당연히 정상적으로 세운 것들이 아니다. 학교 하나를 세우고 '''학생들이 등록금 내고 들어오면''', 교실 한 칸에 연봉 2천만원짜리 교수 한명에 시간강사 몇명 붙여서 칠판 하나에 백묵만 사주면 그걸로 끝. #1
이 기사에 등장하는 기자는 MBC 사장 출신의 강원도지사 최문순이다. #2 나머지 돈은 '''또 다른 대학을 만들 종자돈으로 사용했다.''' 대학만 만들면 등록금 들고 입학하려고 줄을 서니 이보다 좋은 장사는 없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게다가 아예 건설사까지도 별도로 하나 차려서 '''100억짜리 건물을 짓는다고 하면 자기 소유 건설사와 200억에 계약하고 나머지 100억은 떼어 먹는''' 짓거리까지도 서슴치 않았다.
다른 대학을 설립할 때도 학교 재단도 각각 별도의 재단을 만들어 재단 이사들도 자기 똘마니들 바지사장으로 내세워서 대학 신설 신청을 하게 했다. 소위 대학재단이사라는 자들이 주로 자기 소속 고등학교 교사들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교육부에서는 '''이홍하 멀티 대학'''인 줄도 모르고 허가했다. 나중에 진실을 안 교육부 공무원들은 혀를 내둘렀다고... 그래서 한 대학이 문제가 생기거나 부실이 발각되어도 '그 법인 하나만' 징계를 받으니, 다른 학교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2013년 8월 29일, 그가 세운 '모든' 대학들이 경영부실대학에 선정되는 위업(?)을 달성했다. 경영부실대학에 선정된 학교 9개 중 무려 4개가 이홍하 멀티대학이다.
2016년에 그가 세운 모든 대학에 관선이사가 파견되었다. 하지만 관선이사는 권한이 워낙 제한적이라 이홍하가 횡령한 자산만 토해내면 언제든지 복귀할 수가 있다. 여기서 이홍하는 잔머리를 쓰기 시작해서 적당한 대학(한려대) 하나를 폐교하고, 그 자산을 팔아 적당한 대학(서남대)을 되찾겠다는 전략을 구사한다. 대한민국 교육부는 이 행위에 어떻게 대처할지 갈팡질팡하고 있고, 관선이사진과 대학측은 당연히 적극 반발하고 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나중에 학교가 폐교될 때를 대비하여, 한 학교가 폐교될 경우 그 재산이 이홍하 계통의 다른 학교로 귀속되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앞의 세 학교가 폐교되면 땅, 건물 등 그 모든 재산이 나머지 하나의 대학교인 신경대학교의 재단에 귀속되게 된다는 것. 이것이 알려지자 신경대 측에서는 재산을 받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이미 약관에 있는 것이라 법적으로 받게 되어 있기에 말뿐인 다짐에 불과했다.
JTBC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따르면 이홍하는 교육부 내부에 인맥이 굉장히 많았었다고 한다. 심지어 교육부 내부에서는 이홍하를 2012년 서남대 사태 이전 까지는 상당한 능력자로 평가했었다고... 그 덕분에 이홍하는 사학비리로 잡혀 들어가도 쉽게 풀려나서 다시 똑같은 짓거리를 계속 반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신경대한려대를 통합하는 방안이 나왔다. 둘을 통합해서 부실대 이미지도 털어내고 재산도 지키자는 묘수인 것이다. 현재 신경대 총장 대행은 이홍하의 딸이다. 합법적인 상속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2018년에 서남대가 폐교되자 그쪽 예산을 신경대에 넘겼는데 이것 때문에 대한민국 교육부자유한국당사이에 격렬하게 싸움박질이 벌어졌다.
  • 교육부의 논지: 공과 사는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공적인 대학 예산을 사적인 용도로 횡령하는 이홍하와 그 일당들에게 폐교된 서남대 예산 및 남은 신경대와 한려대를 넘겨줄 수 없다.
  • 자유한국당의 논지: 국가가 국민의 재산에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 비록 이홍하가 죄인이긴 하나, 이홍하의 재산을 함부로 몰수해서는 안 된다.
2018년 11월 현재 신경대는 대학기본역량진단 전체 최악의 등급이자 폐교 대상인 '한계대학'에 올라간 유일한 일반대학이다. 전문대도 광양보건대가 한계대학인 관계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2개교 이상의 대학을 한계대학에 올린 이사장이 되었다.

5. 구속 및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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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12년 12월 26일, '''전격 구속되었다.'''
#1 #2 #3#4
그가 세운 학교들은 이제 아시아대학교명신대학교 같은 부실대학들이 겪었던 '''퇴출절차(횡령금 회수 경고 후 학교 폐쇄)를 밟아나갈 것'''으로 보인다. #
그것이 알고싶다 2013년 3월 30일 방영분에서 이홍하를 파헤치는 르포를 방영했다. 그런데 이것이 첫번째 방송이 아니다. 이미 2000년에도 1998년에 409억원의 교비를 횡령한 것으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방영된 바가 있었다. 이때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이씨에 대항하던 '''총학생회 회장'''을 500만원으로 매수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고, 그리고 13년이 지난 2013년에 '''1004억이 들통나 또 방영'''되는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교수를 부려먹은 게 상상 이상이라는 것인데, '''건설 노동'''까지 시켰던 것이다. 물론 그 건설 막노동을 건물을 제대로 지을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건설 인부를 쓸 때는 쓰긴 썼는데 그럴 땐 그 인부에게 일당 3,000만원씩 준 것처럼 서류를 꾸며 그 돈을 자기 주머니로 챙긴 거다. 대학교 시간강사들이 경제적으로 쪼들린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방영분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이홍하는 '''15년 전과 마찬가지로 병보석으로 풀려나서'''[4] 병원 VIP 객실에 은둔 중이라는데, 알려진 바와 달리 의료쪽 업계 전문가의 교차검증에 따르면 실제 병세도 심각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즉 정황적으로는 윤길자원주 사랑의 집 사건 장본인인 장모 목사의 '''꾀병쇼'''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 조선일보는 가짜 링거 의혹까지 제기했다.
그리고 방영된 시점에서 이씨를 병 보석으로 풀어준게 정당하냐는 법적 공방이 오가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이번에야말로 이런 사이비 종교 교주 수준의 비리 사학인은 뿌리 뽑아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검찰은 즉각 병보석 결정에 대해 항소를 제기했고, 3월 20일 2심 재판부에서 '''병보석을 취소'''하였다.
결국 2013년 6월 20일, 이홍하에게 징역 9년이 선고되었다. 이에 이홍하는 징역 9년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지만 이 항소가 진행되고 있던 도중 또 '''다른 횡령 혐의까지 발견되어 징역 3년'''이 별도로 선고되었다.
그 뒤 2015년 8월 19일, 동료 재소자에게 폭행당하여 간이 파열되고 두개골과 뇌 사이에 피가 고이는 등의 중상을 입었다. 관련 기사1, 관련 기사2. 다른 교도소로 이감될 재소자가 가해 재소자에게 양말, 속옷 등을 나눠주는 걸 보고 '빼앗는다'며 비아냥대다 화를 참지 못한 가해 재소자가 결국 이홍하를 구타한 것. 사람들은 대부분 자업자득이란 반응이다.
2015년 10월 29일, 항소심에서 징역 9년 벌금 90억원의 원심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관련 기사.
그 뒤 2016년 5월 24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면서 최종적으로 형이 확정되었다(징역 9년, 벌금 90억). 2012년 11월에 구속이 되었으니 판결 확정되는 데만 무려 '''3년 6개월'''이나 걸린 셈. 그럼에도 아내 서복영을 통해 배후에서 재단이사를 지시하는 행위를 시도하고 있으며, 관선이사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서복영을 통해 학교를 통제하려 하고 있다. 대광여고 재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이홍하가 구속된 이후부터 학교에 매일같이 서복영이 찾아와서 교직원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한다고 한다.
수감 생활 중인 2018년에는 대광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을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재산이야 많으니 사식은 충분히 먹겠다만, 여생을 감빵에서 보낼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교육부며 사법계에 인맥이 많다고 한들 지금도 푸짐하게 형이 나온 마당에 성폭행 사실까지 드러났으니, 이 인맥들도 어차피 이 작자는 나이도 많고 여생을 감옥에서 쭉 보낼 가능성이 높으니 슬슬 손절할 듯 하다. '''현재 그의 나이는 80줄이 넘었으며, 나아가 평균 수명도 이미 넘어간 상태다. 그리고 설사 형을 다 하고 나왔다 해도 그가 설립한 대학교들은 전부 망해버린 뒤일 테고...''' 2012년 구속되어 9년+3년 선고이니 2021년 기준 3년 뒤인 2024년이다. 이때까지 살아 있다면 87세.
2019년 2월 24일 국민일보 단독 보도 결과 이홍하가 교도소에서 대리인을 통해 청산절차를 밟고 있는 서남학원에 550여억원의 채권을 신고한 사실이 밝혀져 공분을 사고 있다. 쉽게 말하면 1000억원 이상을 횡령한 혐의로 감옥에 간 주제에 '''자기가 망하게 한 학교에다가 550억원이 자기 돈이라며 채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 심지어 이홍하의 주변인들도 너도나도 채권을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적으로 이홍하의 부인은 학교법인에 대한 재판 관련 변호사 수임료를 법인 대신 납부했다며 4억원을 청구했다고 한다. [단독] 서남대 폐교 주범의 적반하장 “내돈 550억원 달라”
2019년 3월 31일에 보낸 옥중 서신을 보면 아직도 그는 일말의 반성조차도 하고 있지 않는 걸로 보인다. #
2021년 9월에 출소가 예정되어 있으며 이렇게 되면 신경대학교로 복귀할 확률이 높아진다. http://m.usline.kr/news/articleView.html?idxno=15594#


[1] 원래는 상업고등학교였다가 2001년 9월 21일에 인문계로 전환하면서 서진여고로 이름을 고쳤다. 충청북도 옥천군, 강원도 춘천시강릉시의 옥천동, 옥천면과는 무관하다. 여담으로, 남원시에도 서진여고가 존재하는데, 이 남원시의 서진여고는 원래부터 인문계였고, 이홍하와는 '''일절 아무런 관계도 없는 학교'''이다. 공교롭게도 두 학교 모두 사립이다.[2] 1995년 도농통합으로 현재는 나주시 남평읍[3] 2000년에 폐교된 광주예술대학교가 이 학교 뒤에 방치되어 있다. 현재 나주광남고등학교의 학교법인은 하남학원이라는 재단에서 1996년부터 운영 중이다.[4] 그는 인맥이 많다. 사위 하나는 판사이고, 다른 하나는 변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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