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역
漢陽大驛 / Hanyang University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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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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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2호선 209번[2]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 206 (행당동)에 위치해 있다.
2. 역 정보
역사 전체가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서측 부지에 자리잡고 있다.
수도권 전철 최초의 반지하식 역사다.[3] 뚝섬역 방면 승강장은 지상역, 왕십리역 방면 승강장은 지하역의 형태다. 내선순환 열차는 역을 빠져나가자마자 철교에 진입하고, 외선순환 열차는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터널로 들어간다. 이 역의 부산광역시판 바리에이션으로 동원역이 있다.[4] 둘 다 반지하 형태의 역사이고 노선도 2호선으로 같다.[5]
3. 역 주변 정보
한양대학교 근처에 위치한 역이 아니라, '''역사 자체가 학교 부지 내에 있는 형태'''이다.[6] 2번 출구로 나가면 학교 본관과 신본관이 바로 위치해 있다. 길 건너에는 덕수고등학교와 문방구, 분식점 등이 몇 군데 있으며 캠퍼스 뒷쪽으로는 중랑천이 흐른다.
2014년에는 포스코 서울숲더샵이 입주하여 승차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실제 2016년 현재 유의미한 규모의 승차량 증가는 없었다. 더샾 아래의 엔터식스가 별 인기가 없을 뿐 아니라 접근성이 떨어져[7] 주민들의 지하철 이용빈도가 낮고 그나마 있는 이용객 또한 왕십리역과 나눠먹기 때문으로 보인다. 3번 출구 표지판에는 한양여자대학교가 안내되어 있으나, 이 말만 믿고 나서면 다리가 아프다. 2번 출구를 통해 한양대학교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것이 훨씬 빠르다. 주변 정보를 자세히 알고싶다면 한양대학교/서울캠퍼스 항목을 참조.
4. 일평균 이용객
한양대역을 이용하는 도시철도 일일 승객 수이다. 아래 표는 승차객 + 하차객의 총합이다.
- 출처: 서울교통공사 자료실
2020년에는 승하차량이 2019년보다 절반 가까이 줄면서 본선 구간에서는 꼴찌를 차지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 원격수업과 원격시험을 실시하였고, 주변에 역세권이 별로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양대역의 의존도는 한양대학교 학생의 비중이 높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5. 승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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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은 왕십리방면으로 8퍼밀 하구배가 있다.
6. 한양대역의 역 구조와 역 부지에 얽힌 전설(?)
캠퍼스 내부에 지하철 역 전용 출입구가 뚫려 있다. 이렇게 한양대역의 부지 내에 역이 들어선 이유로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설계 담당자[9] 가 한양대학교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애교심에 학교를 위해 역을 지었다고도 볼 수 있고, 길을 따라서 노선을 건설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길을 놔두고 캠퍼스를 뚫고 선로를 놓았다는 점 때문에 한양대학교 학생들한테는 일단 이 소문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 한양대학교는 공과대학, 그것도 건축토목으로 유명한 대학이라서 설계 엔지니어 실무진이 한양대 공대 출신이어서 이렇게 노선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신빙성 있다.[10] 한마디로 노렸다는 이야기.
초기 계획에서는 이 역이 없었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린다. 굳이 이 역이 없어도 왕십리역을 통해 통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소문도 널리 퍼져 있다. (더군다나 왕십리역-응봉역 사이 선로에서는 캠퍼스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니 할 말 다 했다.) 과거 2호선 공사 당시 중랑천을 지하로 관통하여 하저터널을 지을 만한 토목기술이 없어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의견도 있지만, 매우 가까운 예로 초기에 건설된 1호선의 시청-종각의 청계천 하저터널과 같은 시기에 건설된 서울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삼성역 구간이 탄천을 하저터널로 통과하고, 신도림역-문래역 & 신도림역-도림천역 구간 또한 도림천을 하저터널로 통과하기에 근거가 없다고 볼 수 있다.[11]
하지만 이 전설은 진실이 아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건설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왕십리역이 왕십리 오거리에서 동북쪽으로 올라간 위치에 있는 이상, 환승을 한 후 최단거리로 성수 방향으로 가려면 지금처럼 한양대 정문 앞 캠퍼스 부지를 통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며, 이는 지도 한 번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즉 한양대 측이 "우리 대학부지 통과 안 됨" 이라고 나오지 않는 이상, 어떤 대학 출신 엔지니어라도 가장 효율적인 선형을 만들려면 지금과 같은 선형을 택할 수밖에 없다.
현재 2호선 왕십리역에서 한양대학교를 피해 도로(왕십리로)를 따라서 지하 건설을 하는 경우, 선형이 안 좋은 것은 물론 왕십리 오거리 지하차도 하부 굴착이라는 난공사, 왕십리역에서의 막장환승까지 모두 감수해야 한다. 학교에서 학교부지 통과를 반대했어도, 어떻게든 설득해서 부지 통과를 해야 할 판. 참고로 전술한 왕십리 오거리 지하차도는 국내에서 초창기에 건설된 지하차도라서, 오래된 구조물이라 이 밑을 굴착하다가는 붕괴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실제로 이후에 보강 공사가 시행될 정도였다. 즉 이 밑으로 전동차가 지나는 터널을 뚫는다는 것은 무리. 물론 왕십리역 출입구 지하통로 정도는 뚫었다.
또한 2호선 구간 중 가장 먼저 착공, 개통된 뚝섬-강변 구간은 지반이 연약지반으로, 철로 아래의 도로는 하천인 성수천을 복개한 도로다. 당시 기술로는 안정적으로 지하구간을 공사할 수 없어서 지하로 뚫으려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판국이었는데, 재정적으로 건축비용을 절감해야 하기도 했고, 올림픽 유치를 위해 빨리 개통하기 위해서라도 지하구간 대신 지상 고가철도 형식으로 건설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2호선 최초 개통구간인 신설동-성수-종합운동장 구간 중 강북 구간 전부가 지상 고가철도로 개통된 것 또한 위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성수역이 이미 고가철도역으로 개통된 이상 이후에 만들어진 한양대-뚝섬 구간이 중랑천 하부를 관통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한양대학교 입장에서는 한양대역 때문에 손해도 많이 봤다. 원래 한양대 땅이었던 역사 상부 부지를 상실했음은 물론, 하필이면 지하철 통과구간이 정밀 실험기기가 많은 의대, 자연대 건물이어서 결국 자연대와 의대는 새 건물을 지어서 건물을 옮겨야만 했다. 또한 한양대학교가 전철역에 이름을 얻어 인지도를 높일 필요가 있는 무명의 학교도 아닌데다, 왕십리역 6번 출구에서 학교까지 거리는 웬만한 XX대입구 같은 이름[12] 이 붙은 전철역과 해당 학교까지의 거리보다 가깝다. 즉 한양대역은 여러 이유로 학교 통과가 최선이었던 지하철 건설 당국의 학교 통과에 대한 보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2호선 계획이 처음 나왔을 때의 일화를 보면, 당시 서울특별시장이었던 구자춘이 도시계획과 관련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서울시 지도를 펼친 뒤에, 매직펜으로 찍찍 그려서 지금의 2호선 라인을 즉석에서 그렸다고 한다. 구자춘 시장이 포병 출신이라 그런지 어디에 노선을 깔아야 되는지 보는 안목은 꽤 정확했다고. 거기다 뭐든 안 된다 하고 태클 걸면 광분했던 구자춘 시장의 불 같은 성격을 잘 알고 있던 도시계획과 공무원들은 구자춘 시장이 그려놓은 계획 노선도에 아무도 태클을 걸지 못하고 그대로 2호선 계획에 반영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구자춘 시장 덕분에 한양대역이 만들어진 셈. 위의 내용은 손정목이 저술한 서울도시계획 이야기 2권 참조. 그렇지만 이것도 사실과 좀 다르다. 구자춘 시장이 계획했던 2호선과 이후 현실화된 2호선은 많이 다르다. 물론 이유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문.
다만 예전엔 지하철의 진동 때문에 자연과학관에 정밀 기기를 설치하려면 진동 방지 때문에 돈이 배로 들었다. 당시 자연과학관은 전철역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 결국 지하철 진동 때문에 자연과학관이 전철역에서 멀리 떨어진 산 꼭대기[13] 으로 1990년대 초반 이전하고 구 자연과학관은 제2학생회관으로 용도를 바꾸었다. 또한 역사 바로 위에 해당되는 한양대학교 한마당[14] 일대에 서 있으면 열차가 지나갈 때 진동을 느낄 수도 있다.
출구는 원래 왕십리/한양대 정문 쪽으로 난 곳, 뚝섬/한양대 서문 쪽으로 난 곳, 그리고 길 건너로 난 곳 이렇게 3개였으나, 한양대가 2002년에 캠퍼스와 직접 연결된 출구를 직접 만들었다. '애지문'이라 불리는 현재의 2번 출구. 원래 설계 계획에 이 출구가 있었지만, 개통 당시가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무렵[15] 이라 운동권 학생들의 도주로가 될 수 있다고 하여 건설을 미뤘다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소문이다. 되려 경찰청 의무경찰들의 학내 침투 및 진압에 더 유리하기 때문.
다만 1989년 6월 29일 평양학생축전 남측 행사가 한양대에서 있었을 때, 임종석 학생회장(현 정치인)의 전략으로 학생들이 자그마치 '''철로에 뛰어들어''' 뚝섬역에서 철통 봉쇄된 한양대로 진입하는 전설적인 장면('환상의 텍') 때문에 과장된 것이다.[16] 참고로 도망칠 때는 배수로로 달아났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처음이 아니다. 원래 한양대 정문은 의대 앞쪽, 그러니까 차량 출입이 가능한 곳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84년 지하철 2호선 개통 직후 1번 출구에서 가까운 쪽에 '''새로운 정문'''을 하나 더 만들었다. 이후 원래 있던 정문은 구정문, 이 정문은 신정문이라고 부르게 된다. 하지만 2007년도에 담장을 헐고 분수대를 설치하면서 문이라는 구조물이 완전히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정문이라고 하는 곳은 신정문과 구정문 사이에 있는 정원과 분수대와 기타 지역을 총칭하는 말이 되었고 현재 구성원들에게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되었다.[17] 한양대학교에서는 이 문을 한양대학교의 교훈인 '사랑의 실천(愛之實踐)'에서 따온 '애지문(愛之門)'(사랑의 문)이라고 부르며, 이 출구를 나오면 눈 앞에 바로 한양플라자와 한양대 본관이 나타나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또한 출구 안쪽 역사에서부터 대놓고 'Welcome to Hanyang University'라고 구조물을 설치하고 그 아래쪽에 홍보 책자를 비치하는 위엄을 선보이기도 한다.
참고로 애지문에서 한양대 쪽으로 올라가는 계단 가운데의 난간에 있는 목재 손잡이가 엄청나게 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일부 몰지각한 인라인 스케이트 및 스케이트보드 라이더들이 지하철이 영업을 안 하는 심야 시간대에 난간 손잡이 위에서 슬라이딩을 하며 손잡이를 갉아 먹었기 때문이다. (심야에 지하철 입구 쪽 셔터는 내려지지만 한양대학교 쪽 계단은 24시간 개방되는 정문을 통해 접근이 가능하다) DJ DOC의 'Street Life' 뮤직비디오에 애지문 계단에서 이 짓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3분 37초경) 2015년경에 난간이 원상복구되었다.
상대식 승강장이며 역의 양 끝으로 출구가 나 있어 게이트 내에서는 반대편 승강장으로 횡단할 수 없다. 다만 5분 안에 하차 찍고 나간 후 반대편 게이트에서 승차 태그하면 횡단이 가능하다. 물론 역 특성상 비상게이트도 잘만 열어주므로 환승 횟수가 빠듯하거나 과금 여부가 못미더우면 이쪽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
이 역을 기점으로 2호선 동측 지상구간(한양대역-잠실역)이 시작된다. (다만, 실제로는 잠실나루역까지 지상 정거장이고 잠실역은 지하에 있다.) 한양대역을 기점으로 왕십리 방향 선로가 터널을 통해 한양대가 위치한 산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는 구조로서, 왕십리 방향 선로는 일반 지하철 구간과 다를게 없어 보이는데 뚝섬역 방향 선로는 지상 고가 구간이기 때문에 이 역을 처음 이용하는 사람들은 신기해 보일 수도 있다. 전함에서 로봇이 탑재될 때(외선 방향)와 발진할 때(내선 방향)의 느낌이 들기도. 심시티의 지하철-고가 철도 전환역과 역할, 구조가 똑같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한양대역 길 건너 육교로 연결된 4번 출구는 덕수고등학교 담장과 붙어 있는데, 1977년까지 이 곳은 서울교육대학교 캠퍼스였다. 서울교대가 당시로는 허허벌판인 서초동으로 이전하고 동대문운동장 인근에 있던 덕수상고가 이곳으로 이전한 것. 만일 2호선 개통시까지 이전하지 않았다면 둘 다 역사와 붙어있는 2개 대학이 한 역을 공유하게 될 수도 있었다. 물론 이렇게 되더라도 학교 부지 통과 때문에 한양대가 우선권을 가졌을 것이다.
서울교육대학교 입장에서는 본좌 3형제중 하나인 세종대학교처럼 전철역 바로 앞에 교문이 있으면서도 대학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 케이스가 되었을 듯. 하지만 아마 부역명에라도 들어갔을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현재 혜화역은 대학교 이름이 붙을 수 없는 역이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의 일부 부지가 혜화역 3번 출구를 만들 때 수용되었다.
7. 기타
외선순환 플랫폼엔 밀폐형, 내선순환 플랫폼엔 반밀폐형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이 역부터 잠실나루역까지 모두 지상구간이다.
이 역과는 대조적으로 안산선 한대앞역은 분캠인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역으로 유명했다. 다만 2024년에 한양대에리카캠퍼스역이 개통하게 되면 해당 역 또한 역사가 캠퍼스 부지 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ERICA 캠퍼스도 본캠과 한양대역의 관계와 유사해진다.
[1] 뚝섬역 방향(내선순환)은 창문이 있어 밖이 보이는데, 왕십리역 방향(외선순환)은 거의 반지하역이다.[2] 개정 전 9번[3] '''2020년 9월 12일을 기해 수인분당선 사리역이 개통하면서 수도권 유일의 반지하역이라는 타이틀이 무효화되었다.''' 그 대신 수도권 최초의 반지하역이라는 타이틀로 대체되었다. 사실 수도권 전철 1호선 광명역, 수도권 전철 경강선 초월역, 인천 도시철도 2호선 운연역도 반지하역이기는 하지만 한양대역과는 다른 구조이다.[4] 부산도시철도 4호선 반여농산물시장역도 그렇다.[5] 노선 색깔도 둘 다 초록색이다.[6] 일본에서도 한양대역과 비슷하게 나고야 시영 지하철 메이죠선 나고야다이가쿠역이 있다. 우리와 비슷하게 대학 캠퍼스내에 있는 수준이지만 일본 나고야의 경우는 우리보다 더하다.[7] 그도 그럴 것이 왕십리역 엔터식스가 바로 400m 앞인 데다, 한양대 시가지와도 대형 교차로를 두고 좀 동떨어져 있다...[8] 한양대학교 정문은 이 역과 바로 붙어있지만, 원룸촌 및 대학 상권은 왕십리역에 더 가깝다.[9] 노선 전체 담당인지 해당 공구 담당인지는 불명[10] 몇몇 교수님들과 고학번(8~90학번) 선배들은 정부에서 ~진사로와 미나스티리스를 끼고 버티는 시위대들을 잡기 위해 ~ 용이한 학생운동 진압을 위해 역을 놓았다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11] 다만 한강은 1~4호선은 지상으로 가지만 5호선은 기술이 발달 돼서 하저터널로 통과한다.[12] 서울대입구역, 이수역, 한성대입구역, 숙대입구역, 성신여대입구역, 이대역, 홍대입구역 등[13] 지금의 인문관 바로 옆 자연과학관[14] 학생회관과 농구코트가 있는 곳[15] 당시의 한양대 학생운동의 전투력과 전술(텍)은 유명했다.[16] 관련게시물, 이글루스[17] 「[seoul in] 한양대 정문앞 담장 개방」, 2007-05-01, 서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