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화학상/수상자
1. 개요
여기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의 발견은 화학 관련 학과에 진학한 사람의 교과서(=전공서적)에 나와있다. 언제 나오느냐가 문제지, 하다 못해 노벨상 받은 연구업적이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이름은''' 나온다.
초창기에는 동식물에서 유래하는 천연물(Natural Product)의 특성 규명이 수상 주제의 커다란 축을 이루다가, 최근에는 거의 생화학 분야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할 정도로 비중이 급격히 높아졌다. 일부 주제의 경우에는 이게 왜 노벨생리의학상이 아니라 노벨화학상인지 의문이 들 정도. 때문에 기존의 순수 화학자들(물리화학, 유기화학, 무기화학, 분석화학)의 위기의식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2. 연도별 수상자
2.1. 1900년대
2.2. 1910년대
2.3. 1920년대
2.4. 1930년대
2.5. 1940년대
2.6. 1950년대
2.7. 1960년대
2.8. 1970년대
2.9. 1980년대
2.10. 1990년대
2.11. 2000년대
2.12. 2010년대
[1] 당의 입체배열을 표시하는 방법[2] 포도당의 공간 절대배열을 밝혔다.[3] 그 밖에도 반응속도론 분야에도 많은 공헌을 했다. 아레니우스 식(k=Aexp(-Ea/RT))가 그 예.[4] 노벨물리학상 수상은 같이 연구를 했던 J.W.S 라일리가 했다.[5] 인디고 염료 최초 합성으로 유명하다.[6] 이 해의 화학상 후보에는 주기율표로 유명한 멘델레예프도 있었으나 근소한 표차로 무아상에게 돌아갔다. 이 때만 해도 주기율표는 단순히 원소의 주기성을 파악하고 이를 기준으로 배열한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었고, 왜 주기성이 존재하는지는 증명하지 못한 상태여서 상대적으로 그 평가가 낮았다. 게다가 당시 플루오르의 정제는 대단히 어려워서 많은 과학자들이 부상을 입거나 죽기까지 했으며 무아상 본인도 한쪽 눈을 잃을 정도였다.[7] 의외라면 의외겠지만, 최초의 약사 출신 수상자이다. 파리 약학대학 졸업. 사실 이 당시에는 약사와 화학자 사이의 구분이 매우 모호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겠으나 무아상이 분리해 낸 플루오르는 실제로 제약업계의 신약개발에서 엄~청 자주, 그리고 유용하게 쓰인다. 생체 대사 경로를 회피하고(생물은 탄소-불소 결합을 대사할 수 있는 효소가 없다.), 약물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유리하게 바꿀 때(높은 전기음성도에 기인함) 이만큼 좋은 물질이 없기 때문.[8] 이름을 보고 오해하기 쉬우나, 사실 이건 이름이 비슷한 독일의 화학자인 에른스트 부흐너(Ernst Büchner)가 개발한 것이다. 본인은 세포에서 분리한 효소가 세포 밖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여 수상하였다.[9] 퀴리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그 분. 1903년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노벨물리학상 수상. 노벨상을 여럿 받은 사람 및 단체는 꽤 있으나 서로 다른 과학분야에서 수상한 것으로는 유일하다.[10] 사실 화학 관련 교재보다는 오히려 '''위인전'''에서 훨씬 많이 나올 것이다.[11] 오늘날에는 2010년 수상 내용과 같이 많은 C-C coupling 반응이 개발되어 최신 연구에서는 다소 등한시되는 감이 있지만, 그래도 산업계에서는 엄연히 현역인 중요한 유기화학 반응이다. [12] 최초의 미국인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이다. 1907년 물리학상 수상자인 마이켈슨은 프로이센에서 태어난 폴란드계 유태인이다.[13] 생각보다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이게 확고하게 뒷받침되어 있지 않으면 플로지스톤설 같은 황당한 이론들이 횡행하게 된다. 화학분석에서 '''정량'''을 가능하게 해 준 원동력.[14] 하버는 이론을 만들었고, 보쉬는 그 이론에 맞추어 개발한 촉매 반응을 최적화하는 역할이었다. 이 때 탈락의 쓴 맛을 본 보쉬는 1931년에서야 베르기우스와 함께 수상하게 된다.[15] 원자량이 정수가 아니라 소수점으로 측정되는 이유가 여러 동위원소들이 섞여 있어서 그들의 평균값을 나타내기 때문임을 질량분석기를 통해 증명하였다.[16] 고등학교 화학에 단골로 나오는 미지물질 연소 후 나오는 CO2,H2O를 포집하고 비율을 분석하여 분자식을 얻어낼 수 있었다... 하는 그 방법의 창시자이다.[17] 분산계 연구를 위하여 초원심분리기를 개발하였다. 사실 원심분리기는 화학보다는 생명과학 연구에서 더 중요하게 사용되는 편이다.[18] 이름과는 달리 1902년 수상자인 헤르만 에밀 피셔와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남남이다. 그러나 같은 연구실에서 일했으며, 둘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19] 카를 보슈 한정. 베르기우스는 이와는 별개로 석탄을 이용한 '''인공석유''' 합성법을 개발하였기 때문에 수상하였다. [20] 미국화학회에서 내는 랭뮤어(Langmuir) 저널은 이 화학자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계면-표면공학에 대한 저널로 유명함.[21] 중수소로 구성되어 만들어지는 중수(D2O)는 훗날 원자탄 개발에 감속재로서 매우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나치 독일의 원자탄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대영제국에서 노르웨이의 중수 공장 파괴 작전을 벌인 것은 매우 유명하다. 지금도 중수소는 NMR과 화학반응 메커니즘 규명 등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22] 화학에서는 마이너하지만 지구과학에서는 중시되는 경향을 보인다. 지구 외핵 및 내핵의 원소 구성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 여담으로 이 핵반응을 통해 '''금'''을 합성할 수 있다. 다만 합성에 드는 비용이 금값보다 더 비싸다는 게 문제지만...[23] 네덜란드 태생이나 국적은 미국이어서 이름이 좀 꼬인다. 영어식으로는 피터 조지프 윌리엄 디바이(Peter Joseph William Debye), 독일어식으로는 페터 요제프 빌헬름 데바이(Peter Joseph Wilhelm Debye).[24] 나치 독일의 방침에 의해서 수상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25] 나치 독일의 방침에 의해서 수상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26] 이론 교과목에서는 잘 다루지 않지만, 실험에서는 매우 중요한 테크닉이다. 화학동역학부터 시작해서 생화학, 무기화학에 이르기까지. 특히 fluorine-18이 방출하는 positron을 PET로 탐지하는 방법은 뇌과학(!)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Carbon-13을 이용한 약물 ADME 연구는 이제 고전적인(?) 테크닉으로 여겨질 정도.[27] 고등학교에서는 물리 교과에서 다루지만, 일반화학에서는 핵화학 파트가 있다.[28] 역사에서 말하는 史料가 아니라 동물 먹이인 飼料를 말하는 것이다.[29] 단백질 정제에 대해서는 생화학 교재에서 언급되지만(size-exclusion chromatography 등), 결정화에 대해서는 대학원 수준의 구조생화학에서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결정화(=광선 회절 가능)를 통해 단백질을 X선 회절 구조결정법을 통해 분석할 수 있게 되었고, 구조생화학 연구자들이 노벨화학상을 무더기로 쓸어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30] 유기화학을 배우다 보면 가끔 고난이도 예제에 이러한 복잡한 천연물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한가지 좀 쩌는 건 이 양반은 NMR 없이(!) 이 복잡한 구조들을 규명해냈다는 것. 궁금하면 당장 모르핀과 스트리크닌 구조를 구글에 검색해보기 바란다. [31] 초반에는 용액 상에서 전기영동을 진행하여 대중화되지 못했으나, gel이 도입되면서 생화학실험에서 빼놓을 수 없는 SDS-PAGE 및 각종 blotting(서던 블로팅 등)이 가능해지게 된다.[32] 고리화합물, 특히 Bridged된 복잡한 고리화합물의 합성에 필수적인 반응[33] 원자번호 106번 시보귬이 이 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인명에서 유래한 원소 중 유일하게 당사자가 살아있을 때 명명되었다.[34] 이 반응 때문에 노벨상을 수상한 건 아니지만, 고분자 쪽에 종사하지 않는 대부분의 화학도들에게는 이 쪽이 더 익숙할 것이다. 특히 유기화학 전공자들. [35] 반핵운동으로 노벨평화상 또한 수상하였다.[36] 아직 효율적인 폴리펩티드 합성법이 등장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엄청난 노가다와 정제과정을 거쳐 합성을 완료하게 된다. 사실 수상의 진정한 의의는 따로 있는데, 생체에서 발견되는 천연물에는 일종의 생명력(?)이 있어서 인공적으로는 천연물을 만들 수 없거나, 만들어도 생체 내에서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팽배했던 시절이었다.(주로 베르셀리우스 등의 메이저 학자들이 이를 주장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 그러나 그 믿음은 이 발견으로 인해 깨졌고, 1965년 수상자인 로버트 우드워드에 의해 한번 더 깨지게 되며, 1984년 수상자인 메리필드에 의해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37] 정확히 말하면 구조가 아니라 폴리펩티드 서열을 결정한 것이다. 구조는 1964년 수상자인 도로시 호지킨이 X선 구조결정법을 통해 완전히 분석하게 된다. 나중에 생어는 DNA sequencing도 개발하여 노벨화학상을 한번 더 수상하게 된다.[38] 의외로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많이 등장한다. 정작 화학 전공책에서는 잘 안 다루는 것이 함정이지만...[39] 학부 과정에서는 잘 안 나오고, 대학원 과정의 물리화학 및 구조생화학 부분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밑의 도로시 호지킨 항목에서 X-ray crystallography에 대해서 언급되는데, 이 기술을 이용해서 복잡한 구조를 풀 때 산란된 x-ray의 phase를 측정할 수 없어서 정확한 구조 해석이 어렵다는 난점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은(!)을 단백질에 도입하는 등 갖은 실험적 노가다를 통해(좀 전문적인 표현으로는 anomalous dispersion 방법이라고 한다) phase를 비교적 정확하게 구해내어 hemoglobin의 구조를 규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너무 주먹구구식(...)이었기 때문에 큰 분자구조를 푸는 데에 본격적으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맥스 페루츠 본인도 이 구조를 푸는 데 무려 '''20년'''이나 걸렸다), 이는 1982년 수상자인 헤르트 하우푸트먼과 제롬 칼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컴퓨터기술을 토대로 해결하게 된다.[40] 28년만의 여성 수상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분이 옥스포드에 재직할 당시 X선 결정학을 이용한 항생제 구조 연구에 대해서 지도한 학부생 제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마거릿 대처다. 영국 수상이었던 그분 맞다.[41] 수상은 맥스 페루츠가 먼저 했으나, X선 결정학을 생체분자에 적용한 것은 도로시 호지킨이 최초이다. 맥스 페루츠는 1960년대에야 헤모글로빈 구조를 밝혀냈지만, 도로시 호지킨은 1949년에 당시까지만 해도 쉽게 예측되지 못했던 페니실린의 beta-lactam 구조를 규명하여 매우 유명해진 상태였다.[42] 이 분석법을 개발한 건 아니지만, 이 분석법이 생물에서 발견되는 복잡한 분자(콜레스테롤, 페니실린, Vitamin B12 등)의 구조를 해석할 수 있음을 최초로 구현 및 입증하였다.[41] 이후의 과학자들이 이 방법을 발전시켜 단백질의 구조까지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여 수많은 노벨상을 쓸어가게 된다. (GPCR, ATP 합성효소, RNA polymerase 등...)[43] 여담으로,1962년 수상자인 맥스 퍼루츠, 1982년 수상자인 아론 클룩, 도로시 호지킨, 왓슨-크릭에게 DNA구조 업적을 도둑맞은것(...)으로 유명한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모두 동일한 지도교수(존 버날)에게서 사사받았다. 정작 존 버날 본인은 소련에 우호적인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하였다.[44] NMR 분석법은 1960년대 후반에야 대중화되었다. NMR분석법은 1991년 노벨화학상 수상.[45] 코리(E.J.Corey, 1990년 노벨화학상 수상) 이전의 유기합성화학계의 본좌. NMR 없이도(!!!) 천연물을 뚝딱 합성해내던[44] , 유기화학자들에게 있어 가히 신선과 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도 어린 시절을 보면. 불과 22살에 '''MIT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여러모로 상식을 벗어난 비범한 커리어를 보여준다. 유기화학의 named reaction들에서 간혹 그의 이름이 붙은 반응들을 확인할 수 있다.[46] Robert S. Mulliken. 기름방울실험으로 알려진 '''밀'''리컨(Robert A. Millikan, 192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과는 성의 철자부터 다른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다.[47] 화학동역학의 효시가 되는 부분으로, 에너지 펄스를 이용하여 매우 빠르게 일어나는 화학반응들의 반응속도상수 k를 측정하였다. [48] 유기화학 초반부에 나오는 chair형 및 boat형 고리 구조 그거 맞다.[49] 내과 레지던트 수련 도중 생화학으로 진로를 변경[50] 생화학 교과서에는 아미노산 서열에 따라 단백질 구조가 특이적으로 접힌다고 아주 대충(...) 언급되어 있지만, 본격적인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안핀센 선생께서 '''아미노산 서열만 가지고 단백질 접힘 구조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할 것이다'''라는 무시무시한 떡밥을 던져놓고 가신 덕분에, 지금도 수많은 물리화학자(특히 계산화학자)들은 날밤을 지새며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다. 지못미... 그런데 최근(2020년 말)에 이쪽 분야에서 큰 진전이 일어났다. 오오 구글 인공지능 딥러닝 오오... 자세한 것은 '''알파폴드''' 참조[51] 나름 일반화학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기 소재이다. [52] 출생지는 러시아. 소련이 되기 몇달 전에 태어나, 1929년 일가가 벨기에로 이주하였다.[53] 대학원 수준 물리화학에서 맛볼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복잡계 과학 또는 카오스 이론에 대한 연구로도 매우 유명한 사람이다.[54] 나중에 Horner-Wadsworth-Emmons가 이 반응을 개량함[55] 이로써 두 번째 수상[56] 생화학에서 시퀀싱 관련 대목이 나올 때 프로토타입으로서 자주 언급된다. 프레데릭 생어의 업적으로 인하여 휴먼 지놈 프로젝트의 실현이 가능해졌으며, 훗날 일루미나 등의 기업이 개발한 차세대 시퀀싱 기술(nanopore sequencing 등...)의 개발로 이어지게 된다.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과 맞춤의학(Individualized medicine)의 탄생도 이것 덕분에 가능했다.[57] 유기화학 및 물리화학에서 방향족 화합물을 다룰 때 frontier orbital에 대한 개념을 들어본 일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이러한 분자오비탈에 대한 개념이 학부생도 쉽게(?) 이해할 정도로 보편화되어있지만, 그 당시에는 뭐...[58] 구조생화학에 최초로 전자현미경을 동원하였다. 이 방법을 통해 바이러스의 핵산-단백질 복합체 구조를 규명한 공로로 수상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기술의 한계로 전자현미경의 성능이 영 좋지 않았고+가격도 어마어마했기에 대중화된 분석법이 되지는 못했지만, 2010년대에 들어 전자현미경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 Cryo-EM등의 최첨단 구조분석법이 개발되는 등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다. '''그리고 2017년이 되면서...''' [59] 오늘날은 합성법이 많이 개량되어서 오리지날 버전 합성법은 잘 쓰이지 않지만 폴리펩티드를 인공적으로 합성 가능하다는 개념을 최초로 구현했기에 수상하였다. 다만 아무리 개량되었어도 수율 및 순도 문제상 합성 가능한 최대 길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단백질 합성에는 여전히 적용하기 어렵고, 유전공학이 이것을 보완한다. [60] 1962년 수상자인 존 켄드루 & 맥스 페루츠에서도 언급이 나오지만, 아직 이 문제의 해결은 불확실한 상태였다. 이들은 이 문제를 통계와 컴퓨터를 이용해서 파동함수를 근사하는 방법으로 해결하였다. 덕분에 구조 규명 연산에 걸리는 시간이 크게 단축되었다.[61] 중국계 최초 노벨화학상 수상자(두 번째는 2008년의 로저 첸(첸융젠)), 대만 출신의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단, 대만에 일시 거주한 외성인을 포함한다면 하나 더 있긴 하다). 1974년에 미국 국적을 취득하였으나, 1994년에 미국 국적을 포기하여 현재는 대만 국적. 참고로 대만 본토(본섬) 출신이다.[62] 물리화학의 삼대장(양자역학,열역학,화학동역학)에 속하는 화학동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방법론으로 꼽히는 교차분자빔을 이용한 반응 관측법을 개발하였다. 이거 덕분에 그동안 이론 및 가설의 영역에 속했던 화학반응 메커니즘들이 실제로 규명되기 시작하였고, 기존에 잘못 알려져 있던 메커니즘들이 바로잡히는 계기가 되었다.[63] 재미있게도 이 사람은 아버지가 노르웨이인, 어머니가 일본인이고 '''대한제국''' 부산에서 태어난 뒤 부모의 직장인 평안북도 운산군 금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노벨상 위원회 공식 기록에 출신지가 '''한국'''으로 기록되어 있다. 국적 규정이 대단히 복잡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출생지를 기록하는 것. 이후 10세 때 일본에서 중등교육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한 이후에 최종적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64] 2016년 노벨상 수상자들이 연구한 초분자화학의 효시...쯤 되는 분야이다. 학부 유기화학에서 간혹 볼 수 있는, K+를 묶어두어 친핵체의 친핵성을 높이는 18-Crown-6 분자가 바로 그것.[65] 고등학교 생명과학 교재의 생명체의 탄생 부분에서 나온다. 생체분자들의 탄생은 RNA의 자가촉매반응으로 인한 것이다...는 대목에 나오는, 이른바 RNA WORLD 가설. 수상자들은 바로 이 RNA의 자가촉매 기능을 밝혀내었다.[66] 역시 유기합성화학계의 본좌. Synthon,Umpolung,FGI 등의 현대 유기전합성에서 필수적으로 쓰이고 있는 개념들을 창시. [67] 학부 수준은 물론이고, 대학원 과정에서 나오는 FT-NMR과 다차원 NMR 등의 고급 테크닉까지도 전부 이 분이 개발한 것이다. 여담으로, 2002년 다나카 고이치와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쿠르트 뷔트리히는 이 FT-NMR 기술을 생체분자 분석에 응용한 공로를 인정받았기에 수상하였다.[68] LSD를 빨고 본 환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PCR을 개발해서 벼락부자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한 인물.[69] 5배위 탄소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하겠지만, 유기화학 항목에도 5배위 탄소가 무기화학에서는 가능하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실제로 무기화학 교과서의 초반부에서 저학년동안 유기화학에 찌든 가엾고 딱한 학부생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할 목적으로 5배위 탄소에 대해서 예시를 드는 경우가 많다.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사람이 바로 조지 앤드류 올라. 여담으로, 위의 앙리 무아상 각주에서 설명한 플루오르를 약물 분자에 도입하는 fluorine chemistry를 실제로 구현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70] 지금은 6배위 탄소까지 만들어냈다 흠좀무[71] 의외로 고등학교 교과서 및 일반화학에서 언급이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교과서 후반부의 환경 관련 부분에서.[72] 워낙 구조가 특이하다보니 고등학교 교과서 및 학부 저학년 과목에서 '''동소체''' 관련 부분을 설명하면서 항상 언급된다. 재료공학에서는 이를 길게 연장한 구조인 탄소나노튜브가 더 메이저한 편.[73] 사실 진짜 처음으로 풀러렌을 구성한 사람은 오사와 에이지이지만, 해당 논문을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만 작성하는 바람에 주목받지 못해서 수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는 네이처 저널 제384호에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74] 코펜하겐 의대를 졸업, 의사면허가 있다.[75] 생화학 교과서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며, 효소 구조가 매우 특이한 것으로 유명하다. 톱니바퀴처럼 생긴 구성요소가 있는 등 마치 나노머신을 생체에서 구현한 것처럼 정교하게 생겼다.[76] 분자의 구조, 성질을 계산하는 GAUSSIAN 프로그램 개발 공로[77] 물리화학에서 특정 반응의 메커니즘을 규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분석법이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관찰하기 위한 일종의 초고속 카메라라고 할 수 있다. [78] 시라카와 교수 연구실의 한 한국인(한국계 미국인=미국인)유학생이 실수로 적정량 1000배의 촉매를 쏟아부은 것에서 발견했다고 한다[79] 특정 반응에 첨가하는 카이랄 첨가제의 입체구조에 따라 생성물의 입체구조가 달라지는 것을 밝혀냄. 현대 의약품 비대칭 전합성의 핵심기법[80] 학사 출신 유일.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발명한 기술로 노벨상을 수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수상 소식이 알려진 후 본인도 매우 얼떨떨했다고 한다. [81] ESI, MALDI는 거대분자를 이온화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각각의 방법마다 장단점이 존재하며 현재 단백질 분석에 빠지지 않는 기술들이다. ESI(존 펜), MALDI(다나카 고이치)[82] 의사 출신의 생화학자다.[83] 세포 내의 필요 없거나 손상된 단백질을 분해시키기 위해 쓰레기통행 대상 딱지(...)를 붙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세포내의 쓰레기통 역할을 하는 프로테아좀(Proteasome)이 이 딱지를 인식하고 분해를 수행하게 된다. 목적은 비슷하면서도 기전은 다른 것으로 자가포식(Autophagy)이 있는데, 이것 역시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6년 오오스미 요시노리가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단 노벨화학상은 아니고 노벨생리의학상.[84] 석유화학기업에서 근무하면서 아~주 오래 전에 수행했던 연구로 인하여 말년에 뜬금포(...)로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85] 기존의 방법으로는 합성이 어려운 고분자 및 거대고리화합물 합성에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촉매[86] 195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아서콘버그의 아들[87] 물리화학 분과에서 매우 활발하게 연구된다. 번외로 화학공학과에서도 촉매 때문에 중요하게 다뤄지는 편이다. 이분은 자동차 백금 촉매 등에서 일어나는 고체 표면에서의 기체 분자 전환의 메커니즘을 규명하여 수상하였다.[88] 미국에서 로켓을 연구하다가 매카시즘 때문에 중국으로 쫓겨난 첸쉐썬의 5촌 조카이다. 중국식 이름은 첸융젠(錢永健, 전영건). [89] 앙리 무아상 이래로 102년 만의 약사 출신 수상자이다. 나가사키 대학 약학부 졸업.[90] 미국 해안에 서식하는 해파리를 수없이 잡아 추출해서 얻은(...) 단백질이다. 생명과학 연구에서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유기화학 관련 종사자들에게 "형광 분자"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하여 GFP를 보완할 small molecule dye 및 chemical probe의 설계 및 합성 방법에 대한 개발이 붐을 이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길게 보면 의약화학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91] 시상식 때 마틴 챌피와 로저 첸은 자신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을 시상식 자리에 직접 초대했는데, 특이하게도 그 사람은 셔틀 운전기사였다. 이름은 더글러스 프래셔로, 본래는 그 또한 화학자였고 해당 단백질 연구도 행했지만, 연구비 지원을 받지 못해서 연구를 포기하고 챌피와 첸에게 연구 자료를 승계해준 것. 이후 동료들의 설득으로 학계에 복귀했다고. [92] 46년만의 여성 수상자.[93] 이 세 사람의 이름을 딴 반응이 다 따로 있다! 이 반응으로 인해 기존의 방법으로는 연결이 곤란했던 분자들의 결합이 가능하게 되었다. [94] 준결정 발견 주장 당시 다른 과학자들에게 준과학자(...)라는 조롱까지 들을 정도로 다굴을 당하며 고생했지만, 결국 자신의 이론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어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95] 인터넷 짤방으로 수업 폐강 사유 레전드 등으로 알려진 그 교수님 맞다. 대통령 선거 출마... 다만 낙선 [96] 코빌카와 레프코위츠 모두 의사 출신으로 내과전문의까지 취득하였다. 레프코위츠는 순환기내과 펠로우까지 마친 세부전문의다.[97] 세포막에서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이 세포에 작용하도록 만든다.[98] 생화학 교과서의 신호전달 부분에서는 이것에 관한 내용이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당장 우리 몸을 관장하는 자율신경이 이 수용체에 의해서 작동하는 것임을 보면 그 중요성이 얼마나 심대한지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벨생리의학상이 아니라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게 된 이유는, 이 GPCR이 구조를 온전히 유지하면서 세포막에서 분리해내기가 매우 어려운 문제가 있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보조제 사용법'''을 개발한 것에 대한 공로 또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99] CHARMM이라는 프로그램 개발. 종전의 GAUSSIAN은 양자역학적 계산만 하지만 CHARMM은 작은 분자에는 양자역학을, 큰 분자에는 고전역학을 적용해 계산속도를 빠르게 하고 거대분자 계산도 가능하게 했다.[100] 역시 이것 때문에 노벨상을 수상한 건 아니지만, NMR을 이용한 분석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것이 훨씬 익숙할 것이다.[101] 의사면허 취득 이후 진료 경험이 있던 임상의사 출신이다.[102] 아직까지 나노머신 레벨에는 당연히(...) 미치지 못하지만 나름 무기화학 분과에서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이다.[103] 35년 전의 수상 주제와 비슷하나, 그 때와 지금의 기술력 격차는 넘사벽이다. 원래 Cryo-EM이 기존 X선 회절법에 비해 고품질의 시료 결정 제작이 필요없다는 상당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푸대접을 받아왔는데, 용액을 저온으로 만들 때 얼음 결정이 생겨서 시료 구조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중대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적절한 시료처리방법 및 컴퓨터로 전자빔 산란결과를 분석하는 방법을 개발해서 수상하게 되었다.[104] 1922년 7월 25일 출생, 현(現) 최고령 수상자. 201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아서 애슈킨(1922년 9월 2일 출생)보다 39일이나 일찍 태어났다. 재미있게도 영어 본명의 철자가 Goodenough. [105] 휘팅엄이 이론을 발견, 굿이너프는 이를 크게 개량했으며, 요시노는 상용화에 성공했다[106]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