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게임 축구

 


1. 개요
2. 역사
3. 위상과 수준
4. 빡빡한 일정
5. 대한민국 아시안 게임 대표팀
6. 대회 연혁
6.1. 남자부
6.2. 여자부
7. 메달 순위
7.1. 남자부
7.2. 여자부
8. 관련 문서


1. 개요


아시안 게임의 종목 중 축구 종목에 관해 정리한 문서.

2. 역사


아시안 게임이 시작된 1951 뉴델리 아시안 게임부터 정식 종목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연령 제한은 없었으나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보다 10년 뒤인 2002 부산 아시안 게임부터 23세 이하로 제한을 뒀으며 역시 올림픽처럼 와일드카드 제도를 도입했다. 여자 축구는 1990년 베이징 대회부터 도입됐으며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연령 제한이 없다.

3. 위상과 수준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경우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의 법률 때문에, 병역 해결을 하지 못한 대한민국 남자 축구 선수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가 아시안게임 축구 국가대표팀 발탁 여부다. 올림픽 3위 이내에 들어도 병역 혜택이 가능하긴한데, 남미유럽의 축구 강국들을 이겨야하는, 올림픽 동메달은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미션이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은 한국 대표팀 전력으로도 도박사들이 예측하는 금메달 획득 확률이 1위, 2위를 오가는 수준이고,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은 아시안 게임 축구에 별 관심이 없어서 선수 구성에서부터 무성의하게 선수단을 꾸려 출전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뛰는 선수들은 상무에 가는 것으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해외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경우 병역 특례를 받지 못할 경우 본인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국내로 들어와 병역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거기에 축구 선수로 뛰면서 병역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상무는 국내에서 1년 이상 뛴 선수들에게만 지원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마저도 바로 입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은 어떻게든 대회에 참가해 병역 특례를 받으려 사활을 건다. 올림픽도 동메달 이상 획득하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지만 올림픽에서 병역 특례를 받은 경우는 단 한 번뿐이기도 하고 전세계에서 예선을 뚫고 온 팀들이기 때문에 사실상 올림픽에서 병역 특례를 받기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아시안 게임이 대한민국 축구 선수들에게는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셈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시안 게임은 무조건 금메달이어야 하기 때문에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가장 최근 두 대회였던 2014, 2018 대회에서 2연속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아 체감이 덜 될 뿐이지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이후 18년 동안 우승하지 못한 대회였음을 생각하면 결코 쉽지만은 않은 대회다. 거기에 우승한 2014, 2018 대회도 모두 연장까지 가는 접전이었던 만큼 실력차가 성인 대표팀에 비해 적은 U-23 대표팀에서는 토너먼트를 올라갈수록 그 격차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승했던, 1986년이나 2014년 대회도 이점이 있었다. 홈이점이 없었던 2018년 대회도 손흥민이라는 슈퍼스타를 와일드카드로 차출했으며, 조별리그부터 토너먼트까지 경기 면면을 살펴보면, 피를 말리는 승부를 여러 차례 한 끝에 간신히 우승했다.
또한 나이 제한이 있기 때문에 시기를 놓쳐 만 23세 이상이 되면 연령 제한이 없는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어야 하는데 이 자리는 20명의 선수 중 단 3명에게만 주어지고 감독의 스타일에 따라서 와일드카드를 전부 쓰지 않기도 하고, 팀의 우승을 위해 이미 병역 특례를 받은 선수라도 능력이 출중한 선수를 선발하는 경우도 있어서 해당 연령대에 대표팀에 가지 못하는 선수들을 일찌감치 상무에 지원해 병역을 해결하기도 한다.
박주영의 경우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을 시작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전부 출전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4수 끝에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특례를 받았으며,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았던 손흥민은 출전 연령대였던 2012 런던 올림픽과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은 각각 대표팀 탈락과 소속팀 차출 거부로 인해 불참했는데 이 두 대회 모두 동메달과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았다. 이후 출전한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탈락하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 출전해서야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았다. 이동국은 당시 2002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이어졌던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해 관심을 받았으나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며 상무에 입대해야 했다. 차범근은 1978 방콕 아시안 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이 당시에는 아시안 게임도 동메달 이상만 획득하면 특례를 받을수 있어 지금보다 기준이 널널했다. 허나 차범근은 이 당시 공군 축구단에서 뛰며 병역 의무를 수행중이었는데 현재같으면 금메달을 획득한 순간 조기전역이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이미 군복무를 수행중인 선수는 금메달을 획득하더라도 복무 기간을 끝까지 채워야 했다. 이 시절에 지금같은 제도가 시행됐으면 차범근의 유럽 진출은 1년 더 빨랐을 것이다. 현재와 같이 개정된건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이후부터다.
이렇듯 유명 해외파 선수들이 출전에 힘을 쓰는지라 국가 대항전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대회 수준이 낮기도 하고 단순히 금메달보다는 우승해서 선수들이 병역 특례를 받는지 여부에 대한 팬들과 언론의 이목이 더 많이 집중된다. 2018 대회의 인기는 2018 러시아 월드컵의 영향과 더불어 손흥민, 조현우 등 월드컵 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의 출전 등의 특수한 상황 이전 대회들보다 그 관심이 더 지대했고 결과도 우승으로 이어지면서 시너지를 낸 것이지 원래 엄청나게 관심을 가지는 대회는 아니다. 반대로 2002 한일 월드컵 4강 성과와 자국에서 열린 대회로 역시 엄청난 관심을 받았던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는 4강에서 탈락해 축구 인기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이 당시 한일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 중 6명이 아시안 게임 대표팀으로 출전했으나 이들은 알다시피 월드컵 4강으로 병역 특례를 받았던지라[1] 동기부여가 다른 대회때보다 부족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외에 징병제를 실시하는 이란의 경우도 대한민국과 유사한 병역 특례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때문인지 최다 금메달 1, 2위가 대한민국과 이란이다. 이외에 아시아의 축구 강국으로 분류되는 팀들의 경우 올림픽으로 가기 위한 전초전으로 조직력 다지기 차원으로 참가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처럼 반드시 우승하려는 모습은 덜하다. 이보다는 월드컵은 커녕 아시안컵도 간당간당한 수준의 국가들이 아시안 게임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으며 2018 대회에서의 베트남이 자국 최초로 4강에 오르자 마치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당시처럼 전국민이 엄청난 성원을 보냈다.
남자 축구의 인기와 관심에 비해 여자 축구는 비인기 종목 수준으로 격차가 크다.

4. 빡빡한 일정


하계 아시안 게임 기간은 보통 보름에서 17일 정도의 짧은 일정이어서 대회 기간 안에 축구 경기를 전부 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축구는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개막식 이전에 조별 리그를 진행한다. 출전팀도 올림픽보다 많아 그만큼 경기수도 더 많으며 늦어도 폐막식 이전에는 경기를 다 끝내야 하기 때문에 2~3일마다 경기가 치르므로 일정이 굉장히 타이트하다. 다만 아시안 게임은 올림픽보다 2명 많은 20명의 선수로 엔트리를 구성한다.

5. 대한민국 아시안 게임 대표팀



5.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1951~1998)


  • 1954 마닐라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골키퍼 : 홍덕영, 함흥철
    • 수비수 : 박규정, 이종갑
    • 미드필더 : 이상의, 김지성, 강창기, 한창화
    • 공격수 : 주영광, 최정민, 성낙운, 최광석, 정남식, 박일갑, 민병대, 정국진
    • 감독 : 이유형
  • 1958 도쿄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골키퍼 : 함흥철, 김상진
    • 수비수 : 김홍복, 심건택, 차태성
    • 미드필더 : 김지성, 김찬기, 김진우, 김용일
    • 공격수 : 김동근, 최광석, 이수남, 성낙운, 박경호, 최정민, 김영진, 우상권, 문정식
    • 감독 : 김근찬
  • 1962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골키퍼 : 함흥철, 정영환
    • 수비수 : 김홍복, 조남수, 손경호, 박승옥, 차영만
    • 미드필더 : 김두선, 김찬기, 차태성
    • 공격수 : 정순천, 조윤옥, 박경화, 장석우, 김덕중, 장지운, 문정식, 이현
    • 감독 : 민병대
  • 1966 방콕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골키퍼 : 이세연, 이준옥
    • 수비수 : 백영근, 박광조, 서효길, 조정수, 서윤찬, 황호
    • 미드필더 : 김성철, 안원남, 김기복, 박수일, 김창일, 임국찬
    • 공격수 : 배금수, 이회택, 정안웅, 정강지, 주민환, 이완석, 이이우
    • 감독 : 안종수
  • 1970 방콕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골키퍼 : 1. 오인복, 24. 이세연
    • 수비수 : 2. 서윤찬, 3. 김호, 4. 김기효, 5. 김정남, 6. 최재모
    • 미드필더 : 8. 박병주, 11. 임국찬, 12. 홍인웅
    • 공격수 : 14. 이회택, 15. 박이천, 16. 박수일, 17. 정강지, 18. 김창일, 20. 정규풍, 21. 박수덕, 22. 김기복, 23. 최상철
    • 감독 : 한홍기
1998 월드컵의 참패로 차범근 감독이 중도 해임되고 대표팀 후임 감독으로 허정무가 선임되었다. 2002 월드컵까지 내다 본 감독선임으로 1998년 아시안게임이 허정무 감독의 첫 시험무대가 되었다. 그런데 1차 조별리그에서부터 신생국인 투르크메니스탄에게 2-3 패배를 당하면서 불안하게 대회를 시작했다. 다행히 베트남을 4-0으로 이기고 2차 조별리그에 진출해 2차리그에선 일본을 2-0, 아랍에미리트를 2-1, 쿠웨이트를 1-0으로 꺾고 3연승으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전에선 홈팀 태국을 만났는데 엄청난 고전을 하면서 후반 36분 선제골을 먹어버린다!. 곧바로 유상철의 동점골이 후반에 터져 겨우겨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갈 수 있었지만, 거친 몸싸움으로 퇴장 2명까지 받아가며 태국이 저항한 끝에 연장전 얻은 프리킥에서 결승 골든골을 넣어 태국이 4강에 진출한다. 대한민국으로써는 충격의 8강 탈락. 4년전보다 더 안좋은 성적에 축구계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5.2.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2002~현재)


이때부터 올림픽과 동일하게 23세 이하 대표팀으로 대회 출전 자격이 변경되었고, 24세 초과 선수 3명을 등록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제도도 도입되었다.
  •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골키퍼 : 1. 이운재[와카], 16. 김용대
    • 수비수 : 2. 조병국, 4. 박요셉, 5. 김영철[와카], 6. 박용호
    • 미드필더 : 3. 현영민, 7. 변성환, 8. 김두현, 10. 박지성, 12. 이영표[와카], 13. 김동진, 15. 조성환, 19. 박동혁
    • 공격수 : 9. 이천수, 11. 최태욱, 14. 박규선, 17. , 18. 김은중, 20. 이동국
    • 감독 : 박항서
2002 FIFA 월드컵 4강 진출 이후 처음 나가는 국제대회로 많은 이목이 집중되었다. 세계대회에서도 4강에 갔는데 아시아대회쯤이야 하는 자만감으로까지 보이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상황이었고, 당시 월드컵 멤버 중에서 어린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이 연령별 대표팀인 아시안게임 대표팀 엔트리에 다수 합류해 전력도 좋은 편이었다.[2] 감독은 대표팀 수석코치였던 박항서 감독이 선임되었다. 조별리그 첫경기 몰디브를 4-0으로 이기며 기분좋게 시작한 대표팀은 오만에게 5-2, 말레이시아에게 4-0으로 이기며 가볍게 8강에 진출했다.[3] 그런데 8강전 바레인에게 이동국의 페널티킥 골로 1-0으로 겨우 이기면서 불안함을 노출하더니 준결승전 만난 난적 이란과의 경기에서 우세한 경기를 하고도 골을 넣지 못해 0-0으로 비기며 승부차기에서 그 유명한 이영표의 '''동국아 군대가라''' 실축으로 3-5로 져버리며 금메달 확보에 실패해버렸다! 3-4위전 태국을 3-0으로 이기며 동메달은 얻었지만, 이로인해 이 대회가 정식 대표팀 감독직의 시험무대였던 박항서 감독은 곧바로 경질되었고, 이동국, 김용대 등은 광주 상무에 입단해 군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또한 이 대회에서 우승에 실패하면서 월드컵과 K리그로 불붙었던 축구 열기가 확 식어버리는 악영향도 겪어야 했다. 근데 이땐 몰랐다. 이것이 아시안게임 잔혹사의 첫 서막에 불과하단 것을.
  •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골키퍼 : 1. 김영광, 20. 정성룡
    • 수비수 : 2. 조원희, 3. 김진규, 4. 김동진[와카], 5. 김치우, 12. 김치곤, 13. 정인환, 14. 이종민
    • 미드필더 : 6. 이호, 7. 백지훈, 8. 김두현[와카], 15. 오범석, 16. 오장은
    • 공격수 : 9. 정조국, 10. 이천수[와카], 11. , 17. , 18. 박주영, 19. 염기훈
    • 감독 : 핌 베어벡[4]
4년 뒤 아시안게임에선 아예 A대표팀 감독인 핌 베어벡이 U-23 대표팀까지 맡아 지휘하는 체제로 아시안게임을 비중있게 준비했다. 와일드카드 또한 4년전 아시안게임과 2년전 올림픽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선수들을 뽑아가는 전략으로 제한 나이보다 1~2세 많은 선수들인 이천수, 김두현, 김동진을 뽑아갔다. 1년 전 청소년 대회의 주요 멤버인 박주영백지훈, 김진규도 명단에 합류했고, 이 연령대에서 가용할 수 있는 거의 베스트 멤버를 데리고 나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선수진이었다. 그러나 본선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답답함 그 자체였다. 조별리그 방글라데시전 3-0 승리부터 이런 비판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베트남 전 2-0, 바레인전 1-0 모두 빈공의 극을 보인 경기력이었기 때문이다. 8강전에서 만난 북한이 무시할 수 없던 전력이었기 때문에 위기감이 커졌고, 다행히 북한전에선 오랫만에 시원한 공격력을 보이며 3-0 완승을 거두고 준결승에 올라간다. 하지만 거기까지였고, 이라크전 0-1 패배로 금메달 무산에, 3-4위전 이란과의 경기에서도 연장 끝에 0-1로 지며 8년만에 '''노메달'''의 수모를 당하게 된다.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골키퍼 : 1. 김승규, 20. 이범영
    • 수비수 : 2. 홍철, 3. 신광훈, 4. 김주영, 5. 김영권, 6. 홍정호, 12. 김민우, 13. 장석원, 15. 오재석, 17. 윤석영
    • 미드필더 : 7. 구자철, 8. 윤빛가람, 11. 조영철, 14. 김정우[와카], 16. 서정진, 19. 김보경
    • 공격수 : 9. 박희성, 10. 박주영[와카], 18. 지동원
    • 감독 : 홍명보
2010년 대회에서도 목표는 '''금메달'''이었지만 당시 홍명보 감독은 2년 뒤 올림픽에 더 집중을 해야한다는 의지로 와일드카드를 단 두장만 활용하는 등 철저히 2년 후 올림픽 출전가능 멤버들 위주로 엔트리를 구성해 역대 가장 젊은 아시안게임 대표팀이 탄생했다. 1년전 U-20 월드컵 8강 멤버가 대다수 올라왔으며 여기에 박주영AS 모나코에서 차출해오는데 성공했다.[5] 또한 군인 신분이었던 김정우가 엔트리에 들어 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사상 최초로 '''조기전역'''하는 상무 축구선수가 될 수 있었다.
조별리그 - 8강 토너먼트가 조별리그 -'''16강 토너먼트'''로 확대되며 우승까지 치뤄야 할 경기가 1게임 더 늘어나 더 빡빡한 경기일정이 되었고, 반면 조별리그에서 무조건적인 조 1위를 할 필요는 없게 되어 조별리그는 매우 여유로운 운용이 가능해졌다. 이랬던 이유에서인지 조별리그 1차전 북한전에서 뜬금 0-1 패배를 당하게 된다. 다행히 2차전 요르단전 4-0 승리, 3차전 팔레스타인전 3-0 승리로 깔끔하게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개최국 중국과의 16강전에서 3-0의 완승을 거둬 8강에 진출한다. 8강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과는 매우 접전을 벌였고 연장 끝에 3-1로 이기면서 4강에 진출했지만 체력 소비를 많이 하는 불리함을 안고 4강에 임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박주영에 많이 치우진 공격전술이 불안요소가 되었고, 4강전 상대 UAE는 박주영을 성공적으로 봉쇄하며 한국의 공격을 무디게 만들었다. 거기에 박주영이 그 유명한 '''논산 힐킥'''이라는 결정적인 찬스 실축 장면을 연출하면서 또다시 연장전에 간 대표팀은 종료직전 승부차기 대비를 위해 골키퍼까지 바꿨지만 극장골을 허용하며 0-1로 져 또다시 결승전 진출에 실패했다. 3-4위전에서 다시만난 이란과의 경기에서는 그래도 1-3으로 뒤진 경기를 지동원의 대폭발로 인해 4-3으로 뒤집는 명경기를 연출한 끝에 유종의 미를 거뒀고, 동메달에 그쳤지만 과거보다 어린 선수들로 이뤄낸 성과였다는 점과 마지막 3-4위전에서 보여준 모습 덕분에 그렇게 욕은 먹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도 비판은 받았지만 감독 교체등의 주장은 별로 나오지 않았고, 이 멤버들로 2년 뒤에 올림픽 메달을 따면서 반전을 이뤄내는데 성공한다.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골키퍼 : 1. 김승규[와카], 12. 노동건
    • 수비수 : 2. 최성근, 3. 김진수, 4. 김민혁, 5. 이주영), 13. 곽해성, 15. 임창우, 20. 장현수
    • 미드필더 : 6. 손준호, 7. 안용우, 8. 박주호[와카], 10. 김승대, 11. 윤일록, 14. 김영욱, 17. 이재성, 19. 문상윤
    • 공격수 : 9. 이용재, 16. 이종호, 18. 김신욱[와카]
    • 감독 : 이광종
12년만에 다시 국내에서 치르게 된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연령별 대회의 전문가인 이광종 감독을 아시안게임 감독으로 선임하고 대회를 준비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U-17 월드컵과 U-20 월드컵에 나서면서 88~92년생 축구선수들에 대해 가장 정보가 빠삭했던 이광종 감독이었기에 국내 팬들의 기대가 꽤 컸다.[6]최종 엔트리에 이광종 감독과 같이 세계대회 본선에 출전했던 선수들이 대거 합류했으며 몇 달 차이로 Over-Aged Player가 된 골키퍼 김승규와 국내리그 최정상 공격수 김신욱, 그리고 유럽파 축구선수 중 가장 군 문제가 시급했던 유틸리티 플레이어 박주호가 소속팀의 동의를 얻어 와일드카드로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표팀은 이광종 감독의 스타일대로 단단한 축구의 정수를 보이며 쭉쭉 올라가기 시작했다. 조별리그 말레이시아전 3-0 승리, 최대 난적이라 불린 사우디아라비아에게 1-0 승리로 조기 16강 진출을 확정했고, 로테이션을 돌린 3차전 라오스전에서도 2-0으로 가볍게 승리하며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 만난 홍콩과의 경기는 홍콩 대표팀의 김판곤 감독의 존재로 인해 일종의 '''코리안 감독 더비'''로 불리며 관심을 모았는데 예상치 못한 이용재의 대활약과 박주호의 역대급 중거리골 등을 묶어 3-0으로 이기면서 8강에 올라간다. 8강에선 일본을 만나게 되었고, 시종일관 빡빡한 경기가 이어졌지만 경기 막판 얻은 페널티킥을 장현수가 마무리하며 1-0으로 5연승을 달리며 4강에 올랐다. 4강전에선 예상외의 상대인 태국을 만났지만[7] 전반에 2골을 몰아 넣고 잘 지키며 2-0 완승을 거두고 '''28년만의 결승'''에 진출했다! 거기에 토너먼트 3경기에서 전부 90분에 승부를 보며 체력 문제에서도 자유롭게 되었다. 결승전에선 북한을 만나 남북대결이 성사되었고 예상대로 혈투가 진행되었다. 경기를 주도했지만 간간히 나오는 북한의 날카로운 역습에 고전하던 대표팀은 연장까지 가는 경기 끝에 연장 종료 직전 코너킥 상황에서 흘러나온 볼을 임창우가 밀어넣어 라스트 미닛 골로 금메달을 획득한다! 이광종 감독은 이 대회의 성과로 2년 뒤 올림픽 감독까지 보장받게 되었다.[8]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골키퍼 : 1. 송범근, 18. 조현우[와카]
    • 수비수 : 2. 황현수, 3. 김민재, 4. 김진야, 5. 정태욱, 6. 김문환, 12. 이시영
    • 미드필더 : 8. 이진현, 10. 황인범, 13. 조유민, 14. 장윤호, 15. 이승모, 19. 김건웅, 17. 김정민
    • 공격수 : 7. 손흥민[와카], 9. 황희찬, 11. 나상호, 16. 황의조[와카], 17. 이승우
    • 감독 : 김학범
2012년 올림픽 동메달, 2014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역대급으로 병역특례 혜택이 쏟아지던 상황에 손흥민은 항상 없었다. 겨우겨우 소속팀을 설득해서 나오게 된 2016 올림픽에선 8강전 뜬금포로 패배하며 메달획득에 실패했고, 그에게 남은 기회는 2018 아시안게임이 마지막이었던 상황. 때문에 2018 대회는 그 어느때보다 금메달이 중요한, 아니 금메달 아니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대회 일정이 오락가락 했고, 그 때문에 잡아놓은 평가전마저 취소되며 김학범 감독은 실전 경험 한 번 없는 팀을 데리고 대회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조별리그 1차전 바레인전에서 황의조의 대폭발로 6-0으로 대승을 하며 좋은 출발을 했지만, 손발을 맞춰보지 못한데에서 나오는 불안요소들이 2차전 말레이시아전에서 터지며 1-2 충격패를 당하고 만다. 체력문제를 염려해 빠른 로테이션을 택한 김학범 감독은 자신의 패착을 인정하면서 남은 경기를 거의 풀 전력으로 계속 치르는 모험수를 선택하게 되었고, 3차전 키르기스스탄전부터 선발로 뛰기 시작한 손흥민이 결승골을 넣어 1-0 승리를 챙기고 16강에 오를 수 있었다.
반전은 16강전부터였다. 드디어 손발이 맞기 시작한 대표팀은 난적 이란을 맞아 2-0 완승을 거뒀고, 대회 최대의 고비로 평가되던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엎치락 뒷치락하는 명승부끝에 연장에서 황희찬의 결승골로 4-3 역전승을 거두고 4강에 올랐다. 체력적인 문제가 점점 현실이 되었지만 김학범 감독은 오히려 초반 강공으로 체력 문제를 만회하려 했고 이게 적중하면서 돌풍의 베트남에게 3-1의 여유로운 승리를 거두게 된다. 결승전은 한일전이 되었고, 처음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한일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와일드카드를 쓰지 않고 2020 올림픽 연령대 선수들인 21세 이하로만 팀을 꾸려온 일본이었지만 조직력에서는 대한민국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또한 상대적인 전력 열세를 인정하고 일본이 역습 위주의 경기를 계획하고 나오면서 전후반 0-0으로 연장전까지 경기가 이어졌다. 연장전 들어 대한민국 선수들이 거의 모든 힘을 쥐어짜내다시피 하며 초반 강공을 펼쳤고, 결국 이승우가 선제골을 넣어 균형이 깨지게 된다. 이후 황희찬의 추가골까지 나오면서 연장 후반 1골을 내줬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은 2-1로 승리하며 '''2회 연속 금메달'''과 '''손흥민 병역특례''' 미션을 완수하게 된다! 세계적인 공격수 반열에 올라가는 손흥민이 출전하였기 때문에 별 볼일 없는 대회 취급을 받았던 아시안게임 축구에 아시아팬들은 물론 유럽의 축구팬들까지 대한민국의 경기를 지켜봤다고... 거기에 황의조라는 새로운 스타까지 탄생하면서 2018 아시안게임은 대 성공을 끝나게 된다.
2022 대회는 2022년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릴 예정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올림픽-아시안게임 두 대회간의 간격이 1년밖에 나지 않게 되었다. 때문에 97년생까지 제한연령인 올림픽과 99년생까지 제한연령이 되는 아시안게임에 99년생 이후 출생자들의 두 대회 연속 출전이 힘들 수도 있는 상황이 전개가 되면서 2020 올림픽 대표팀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99년생 이후 선수들의 아시안게임 엔트리 진입 싸움이 그 어느때보다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 세대에서는 이강인정우영이 제일 큰 스타로써, 물론 이강인이 연령으로만 보면 2024년 파리 올림픽까지 출전이 가능한 연령이지만, 일찍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2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것이 매우 유력하며 정우영은 이대회가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도쿄올림픽에서 메달을 못따면 출전이 유력하다. 또한 2019 U-20 월드컵 준우승 멤버들의 아시안게임 대표팀 대거 합류가 매우 유력하며[9] 만약 2021년 올림픽 축구에서 메달 획득에 성공할 경우 현 올림픽대표팀 주축인 엄원상, 정태욱, 이상민 등은 2022 아시안게임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올림픽 엔트리 진입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2020 AFC U-23 챔피언십에서 제외되었으나 현재 K리그에서 매우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송민규 등의 합류도 예상된다.

6. 대회 연혁



6.1. 남자부


'''연도'''
'''개최지'''
'''금메달'''
'''결과'''
'''은메달'''
'''동메달'''
'''결과'''
'''4위'''
1951[10]
인도 뉴델리
인도
1 - 0
이란
일본
2 - 0
아프가니스탄
1954
필리핀 마닐라
대만
5 - 2
대한민국
버마
5 - 4
인도네시아
1958
일본 도쿄
대만
3 - 2
대한민국
인도네시아
4 - 1
인도
1962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도
2 - 1
대한민국
말라야 연방
4 - 1
남베트남
1966
태국 방콕
버마
1 - 0
이란
일본
2 - 0
싱가포르
1970
태국 방콕
버마
대한민국
0 - 0 (연장)[A]

인도
1 - 0
일본
1974
이란 테헤란
이란
1 - 0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2 - 1
북한
1978
태국 방콕
대한민국
북한
0 - 0 (연장)[A]

중국
1 - 0
이라크
1982
인도 뉴델리
이라크
1 - 0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2 - 0
북한
1986
대한민국 서울
대한민국
2 - 0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5 - 0
인도네시아
1990
중국 베이징
이란
0 - 0 (4 - 1 PSO)
북한
대한민국
1 - 0
태국
1994
일본 히로시마
우즈베키스탄
4 - 2
중국
쿠웨이트
2 - 1
대한민국
1998
태국 방콕
이란
2 - 0
쿠웨이트
중국
3 - 0
태국
2002
대한민국 부산
이란
2 - 1
일본
대한민국
3 - 0
태국
2006
카타르 도하
카타르
1 - 0
이라크
이란
1 - 0 (연장)
대한민국
2010
중국 광저우
일본
1 - 0
아랍에미리트
대한민국
4 - 3
이란
2014
대한민국 인천
대한민국
1 - 0 (연장)
북한
이라크
1 - 0
태국
2018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팔렘방
대한민국
2 - 1 (연장)
일본
아랍에미리트
1 - 1 (4 - 3 PSO)[11]
베트남
2022
중국 항저우

-


-

2026
일본 아이치, 나고야

-


-




6.2. 여자부


'''연도'''
'''개최지'''
'''금메달'''
'''결과'''
'''은메달'''
'''동메달'''
'''결과'''
'''4위'''
1990
중국 베이징
중국
조별리그 순위
일본
북한
조별리그 순위
대만
1994
일본 히로시마
중국
2 - 0
일본
대만
조별리그 순위
대한민국
1998
태국 방콕
중국
1 - 0 (연장)
북한
일본
2 - 1
대만
2002
대한민국 부산
북한
조별리그 순위
중국
일본
조별리그 순위
대한민국
2006
카타르 도하
북한
0 - 0 (4 - 2 PSO)
일본
중국
2 - 0
대한민국
2010
중국 광저우
일본
1 - 0
북한
대한민국
2 - 0
중국
2014
대한민국 인천
북한
3 - 1
일본
대한민국
3 - 0
베트남
2018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팔렘방
일본
1 - 0
중국
대한민국
4 - 0
대만
2022
중국 항저우

-


-

2026
일본 아이치, 나고야

-


-


7. 메달 순위



7.1. 남자부


'''순위'''
'''국가'''
'''금'''
'''은'''
'''동'''
1
대한민국
5 (1970, 1978, 1986*, 2014*, 2018)
3 (1954, 1958, 1962)
3 (1990, 2002*, 2010)
2
이란
4 (1974*, 1990, 1998, 2002)
2 (1951, 1966)
1 (2006)
3
인도
2 (1951*, 1962)

1 (1970)
미얀마
2 (1966, 1970)

1 (1954)
5
대만
2 (1954, 1958)


6
일본
1 (2010)
2 (2002, 2018)
2 (1951, 1966)
7
북한
1 (1978)
2 (1990, 2014)

8
이라크
1 (1982)
1 (2006)
1 (2014)
9
우즈베키스탄
1 (1994)


카타르
1 (2006*)


11
쿠웨이트

2 (1982, 1998)
2 (1986, 1994)
12
중국

1 (1994)
2 (1978, 1998)
13
사우디아라비아

1 (1986)
1 (1982)
아랍에미리트

1 (2010)
1 (2018)
15
이스라엘

1 (1974)

16
말레이시아


2 (1962, 1974)
17
인도네시아


1 (1958)
* = 개최국

7.2. 여자부


'''순위'''
'''국가'''
'''금'''
'''은'''
'''동'''
1
중국
3 (1990*, 1994, 1998)
2 (2002, 2018)
1 (2006)
2
북한
3 (2002, 2006, 2014)
2 (1998, 2010)
1 (1990)
3
일본
2 (2010, 2018)
4 (1990, 1994*, 2006, 2014)
2 (1998, 2002)
4
대한민국


3 (2010, 2014*, 2018)
5
대만


1 (1994)
* = 개최국

8. 관련 문서


[1] 와일드카드인 이운재는 한일 월드컵 이전 상무에서 병역을 수행했다.[와카] A B C D E F G H I J K L M N [2] 현영민, 박지성, 이천수, 최태욱이 연령제한에 걸리지 않는 월드컵 멤버들이었다.[3] 그런데 당시에는 졸전이라고 까였다. 몇개월 전에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이겼었던 기억이 있었으니 아시아팀들에겐 다득점 무실점 승리가 기본 아니냐는 여론이 대세였기 때문.[4] 당시 A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겸직했다.[5] 대신 늦게 합류하게 되어 대회 조별리그 2차전부터 출전이 가능했다.[6] 하지만 이광종 감독의 축구 스타일이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7] 그런데 그렇게 이변도 아닌게 태국은 아시안게임 한정으로 4강에 4번이나 올라간 복병이다. 문제는 그렇게 올라간 4번의 대회에서 모두 '''4위'''를 해서 메달은 한번도 못땄다는거....[8] 그러나 치명적인 병마와의 싸움 때문에 이광종 감독은 도중에 지휘봉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9] 이 중 이미 군면제 혜택을 받은 김정민이나 현재 상주 상무 복무중인 오세훈, 전세진 등은 제외될 공산이 매우 크다.[10] 대한민국 미출전[A] A B 연장까지 승부를 보지 못했고 당시에는 승부차기로 넘어가지 않아서 공동 금메달이 됐다.[11] 연장전 없이 승부차기가 실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