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게임 축구
1. 개요
아시안 게임의 종목 중 축구 종목에 관해 정리한 문서.
2. 역사
아시안 게임이 시작된 1951 뉴델리 아시안 게임부터 정식 종목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연령 제한은 없었으나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보다 10년 뒤인 2002 부산 아시안 게임부터 23세 이하로 제한을 뒀으며 역시 올림픽처럼 와일드카드 제도를 도입했다. 여자 축구는 1990년 베이징 대회부터 도입됐으며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연령 제한이 없다.
3. 위상과 수준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경우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의 법률 때문에, 병역 해결을 하지 못한 대한민국 남자 축구 선수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가 아시안게임 축구 국가대표팀 발탁 여부다. 올림픽 3위 이내에 들어도 병역 혜택이 가능하긴한데, 남미와 유럽의 축구 강국들을 이겨야하는, 올림픽 동메달은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미션이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은 한국 대표팀 전력으로도 도박사들이 예측하는 금메달 획득 확률이 1위, 2위를 오가는 수준이고,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은 아시안 게임 축구에 별 관심이 없어서 선수 구성에서부터 무성의하게 선수단을 꾸려 출전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뛰는 선수들은 상무에 가는 것으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해외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경우 병역 특례를 받지 못할 경우 본인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국내로 들어와 병역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거기에 축구 선수로 뛰면서 병역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상무는 국내에서 1년 이상 뛴 선수들에게만 지원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마저도 바로 입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은 어떻게든 대회에 참가해 병역 특례를 받으려 사활을 건다. 올림픽도 동메달 이상 획득하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지만 올림픽에서 병역 특례를 받은 경우는 단 한 번뿐이기도 하고 전세계에서 예선을 뚫고 온 팀들이기 때문에 사실상 올림픽에서 병역 특례를 받기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아시안 게임이 대한민국 축구 선수들에게는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셈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시안 게임은 무조건 금메달이어야 하기 때문에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가장 최근 두 대회였던 2014, 2018 대회에서 2연속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아 체감이 덜 될 뿐이지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이후 18년 동안 우승하지 못한 대회였음을 생각하면 결코 쉽지만은 않은 대회다. 거기에 우승한 2014, 2018 대회도 모두 연장까지 가는 접전이었던 만큼 실력차가 성인 대표팀에 비해 적은 U-23 대표팀에서는 토너먼트를 올라갈수록 그 격차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승했던, 1986년이나 2014년 대회도 홈 이점이 있었다. 홈이점이 없었던 2018년 대회도 손흥민이라는 슈퍼스타를 와일드카드로 차출했으며, 조별리그부터 토너먼트까지 경기 면면을 살펴보면, 피를 말리는 승부를 여러 차례 한 끝에 간신히 우승했다.
또한 나이 제한이 있기 때문에 시기를 놓쳐 만 23세 이상이 되면 연령 제한이 없는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어야 하는데 이 자리는 20명의 선수 중 단 3명에게만 주어지고 감독의 스타일에 따라서 와일드카드를 전부 쓰지 않기도 하고, 팀의 우승을 위해 이미 병역 특례를 받은 선수라도 능력이 출중한 선수를 선발하는 경우도 있어서 해당 연령대에 대표팀에 가지 못하는 선수들을 일찌감치 상무에 지원해 병역을 해결하기도 한다.
박주영의 경우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을 시작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전부 출전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4수 끝에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특례를 받았으며,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았던 손흥민은 출전 연령대였던 2012 런던 올림픽과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은 각각 대표팀 탈락과 소속팀 차출 거부로 인해 불참했는데 이 두 대회 모두 동메달과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았다. 이후 출전한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탈락하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 출전해서야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았다. 이동국은 당시 2002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이어졌던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해 관심을 받았으나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며 상무에 입대해야 했다. 차범근은 1978 방콕 아시안 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이 당시에는 아시안 게임도 동메달 이상만 획득하면 특례를 받을수 있어 지금보다 기준이 널널했다. 허나 차범근은 이 당시 공군 축구단에서 뛰며 병역 의무를 수행중이었는데 현재같으면 금메달을 획득한 순간 조기전역이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이미 군복무를 수행중인 선수는 금메달을 획득하더라도 복무 기간을 끝까지 채워야 했다. 이 시절에 지금같은 제도가 시행됐으면 차범근의 유럽 진출은 1년 더 빨랐을 것이다. 현재와 같이 개정된건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이후부터다.
이렇듯 유명 해외파 선수들이 출전에 힘을 쓰는지라 국가 대항전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대회 수준이 낮기도 하고 단순히 금메달보다는 우승해서 선수들이 병역 특례를 받는지 여부에 대한 팬들과 언론의 이목이 더 많이 집중된다. 2018 대회의 인기는 2018 러시아 월드컵의 영향과 더불어 손흥민, 조현우 등 월드컵 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의 출전 등의 특수한 상황 이전 대회들보다 그 관심이 더 지대했고 결과도 우승으로 이어지면서 시너지를 낸 것이지 원래 엄청나게 관심을 가지는 대회는 아니다. 반대로 2002 한일 월드컵 4강 성과와 자국에서 열린 대회로 역시 엄청난 관심을 받았던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는 4강에서 탈락해 축구 인기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이 당시 한일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 중 6명이 아시안 게임 대표팀으로 출전했으나 이들은 알다시피 월드컵 4강으로 병역 특례를 받았던지라[1] 동기부여가 다른 대회때보다 부족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외에 징병제를 실시하는 이란의 경우도 대한민국과 유사한 병역 특례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때문인지 최다 금메달 1, 2위가 대한민국과 이란이다. 이외에 아시아의 축구 강국으로 분류되는 팀들의 경우 올림픽으로 가기 위한 전초전으로 조직력 다지기 차원으로 참가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처럼 반드시 우승하려는 모습은 덜하다. 이보다는 월드컵은 커녕 아시안컵도 간당간당한 수준의 국가들이 아시안 게임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으며 2018 대회에서의 베트남이 자국 최초로 4강에 오르자 마치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당시처럼 전국민이 엄청난 성원을 보냈다.
남자 축구의 인기와 관심에 비해 여자 축구는 비인기 종목 수준으로 격차가 크다.
4. 빡빡한 일정
하계 아시안 게임 기간은 보통 보름에서 17일 정도의 짧은 일정이어서 대회 기간 안에 축구 경기를 전부 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축구는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개막식 이전에 조별 리그를 진행한다. 출전팀도 올림픽보다 많아 그만큼 경기수도 더 많으며 늦어도 폐막식 이전에는 경기를 다 끝내야 하기 때문에 2~3일마다 경기가 치르므로 일정이 굉장히 타이트하다. 다만 아시안 게임은 올림픽보다 2명 많은 20명의 선수로 엔트리를 구성한다.
5. 대한민국 아시안 게임 대표팀
5.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1951~1998)
- 1951 뉴델리 아시안 게임 - 한국전쟁 중이어서 불참했다.
- 1954 마닐라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1958 도쿄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1962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골키퍼 : 함흥철, 정영환
- 수비수 : 김홍복, 조남수, 손경호, 박승옥, 차영만
- 미드필더 : 김두선, 김찬기, 차태성
- 공격수 : 정순천, 조윤옥, 박경화, 장석우, 김덕중, 장지운, 문정식, 이현
- 감독 : 민병대
- 1966 방콕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1970 방콕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1974 테헤란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1978 방콕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5.2.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2002~현재)
이때부터 올림픽과 동일하게 23세 이하 대표팀으로 대회 출전 자격이 변경되었고, 24세 초과 선수 3명을 등록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제도도 도입되었다.
-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조별리그 - 8강 토너먼트가 조별리그 -'''16강 토너먼트'''로 확대되며 우승까지 치뤄야 할 경기가 1게임 더 늘어나 더 빡빡한 경기일정이 되었고, 반면 조별리그에서 무조건적인 조 1위를 할 필요는 없게 되어 조별리그는 매우 여유로운 운용이 가능해졌다. 이랬던 이유에서인지 조별리그 1차전 북한전에서 뜬금 0-1 패배를 당하게 된다. 다행히 2차전 요르단전 4-0 승리, 3차전 팔레스타인전 3-0 승리로 깔끔하게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개최국 중국과의 16강전에서 3-0의 완승을 거둬 8강에 진출한다. 8강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과는 매우 접전을 벌였고 연장 끝에 3-1로 이기면서 4강에 진출했지만 체력 소비를 많이 하는 불리함을 안고 4강에 임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박주영에 많이 치우진 공격전술이 불안요소가 되었고, 4강전 상대 UAE는 박주영을 성공적으로 봉쇄하며 한국의 공격을 무디게 만들었다. 거기에 박주영이 그 유명한 '''논산 힐킥'''이라는 결정적인 찬스 실축 장면을 연출하면서 또다시 연장전에 간 대표팀은 종료직전 승부차기 대비를 위해 골키퍼까지 바꿨지만 극장골을 허용하며 0-1로 져 또다시 결승전 진출에 실패했다. 3-4위전에서 다시만난 이란과의 경기에서는 그래도 1-3으로 뒤진 경기를 지동원의 대폭발로 인해 4-3으로 뒤집는 명경기를 연출한 끝에 유종의 미를 거뒀고, 동메달에 그쳤지만 과거보다 어린 선수들로 이뤄낸 성과였다는 점과 마지막 3-4위전에서 보여준 모습 덕분에 그렇게 욕은 먹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도 비판은 받았지만 감독 교체등의 주장은 별로 나오지 않았고, 이 멤버들로 2년 뒤에 올림픽 메달을 따면서 반전을 이뤄내는데 성공한다.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그리고 대표팀은 이광종 감독의 스타일대로 단단한 축구의 정수를 보이며 쭉쭉 올라가기 시작했다. 조별리그 말레이시아전 3-0 승리, 최대 난적이라 불린 사우디아라비아에게 1-0 승리로 조기 16강 진출을 확정했고, 로테이션을 돌린 3차전 라오스전에서도 2-0으로 가볍게 승리하며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 만난 홍콩과의 경기는 홍콩 대표팀의 김판곤 감독의 존재로 인해 일종의 '''코리안 감독 더비'''로 불리며 관심을 모았는데 예상치 못한 이용재의 대활약과 박주호의 역대급 중거리골 등을 묶어 3-0으로 이기면서 8강에 올라간다. 8강에선 일본을 만나게 되었고, 시종일관 빡빡한 경기가 이어졌지만 경기 막판 얻은 페널티킥을 장현수가 마무리하며 1-0으로 5연승을 달리며 4강에 올랐다. 4강전에선 예상외의 상대인 태국을 만났지만[7] 전반에 2골을 몰아 넣고 잘 지키며 2-0 완승을 거두고 '''28년만의 결승'''에 진출했다! 거기에 토너먼트 3경기에서 전부 90분에 승부를 보며 체력 문제에서도 자유롭게 되었다. 결승전에선 북한을 만나 남북대결이 성사되었고 예상대로 혈투가 진행되었다. 경기를 주도했지만 간간히 나오는 북한의 날카로운 역습에 고전하던 대표팀은 연장까지 가는 경기 끝에 연장 종료 직전 코너킥 상황에서 흘러나온 볼을 임창우가 밀어넣어 라스트 미닛 골로 금메달을 획득한다! 이광종 감독은 이 대회의 성과로 2년 뒤 올림픽 감독까지 보장받게 되었다.[8]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대회 최종엔트리
반전은 16강전부터였다. 드디어 손발이 맞기 시작한 대표팀은 난적 이란을 맞아 2-0 완승을 거뒀고, 대회 최대의 고비로 평가되던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엎치락 뒷치락하는 명승부끝에 연장에서 황희찬의 결승골로 4-3 역전승을 거두고 4강에 올랐다. 체력적인 문제가 점점 현실이 되었지만 김학범 감독은 오히려 초반 강공으로 체력 문제를 만회하려 했고 이게 적중하면서 돌풍의 베트남에게 3-1의 여유로운 승리를 거두게 된다. 결승전은 한일전이 되었고, 처음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한일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와일드카드를 쓰지 않고 2020 올림픽 연령대 선수들인 21세 이하로만 팀을 꾸려온 일본이었지만 조직력에서는 대한민국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또한 상대적인 전력 열세를 인정하고 일본이 역습 위주의 경기를 계획하고 나오면서 전후반 0-0으로 연장전까지 경기가 이어졌다. 연장전 들어 대한민국 선수들이 거의 모든 힘을 쥐어짜내다시피 하며 초반 강공을 펼쳤고, 결국 이승우가 선제골을 넣어 균형이 깨지게 된다. 이후 황희찬의 추가골까지 나오면서 연장 후반 1골을 내줬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은 2-1로 승리하며 '''2회 연속 금메달'''과 '''손흥민 병역특례''' 미션을 완수하게 된다! 세계적인 공격수 반열에 올라가는 손흥민이 출전하였기 때문에 별 볼일 없는 대회 취급을 받았던 아시안게임 축구에 아시아팬들은 물론 유럽의 축구팬들까지 대한민국의 경기를 지켜봤다고... 거기에 황의조라는 새로운 스타까지 탄생하면서 2018 아시안게임은 대 성공을 끝나게 된다.
2022 대회는 2022년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릴 예정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올림픽-아시안게임 두 대회간의 간격이 1년밖에 나지 않게 되었다. 때문에 97년생까지 제한연령인 올림픽과 99년생까지 제한연령이 되는 아시안게임에 99년생 이후 출생자들의 두 대회 연속 출전이 힘들 수도 있는 상황이 전개가 되면서 2020 올림픽 대표팀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99년생 이후 선수들의 아시안게임 엔트리 진입 싸움이 그 어느때보다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 세대에서는 이강인과 정우영이 제일 큰 스타로써, 물론 이강인이 연령으로만 보면 2024년 파리 올림픽까지 출전이 가능한 연령이지만, 일찍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2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것이 매우 유력하며 정우영은 이대회가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도쿄올림픽에서 메달을 못따면 출전이 유력하다. 또한 2019 U-20 월드컵 준우승 멤버들의 아시안게임 대표팀 대거 합류가 매우 유력하며[9] 만약 2021년 올림픽 축구에서 메달 획득에 성공할 경우 현 올림픽대표팀 주축인 엄원상, 정태욱, 이상민 등은 2022 아시안게임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올림픽 엔트리 진입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2020 AFC U-23 챔피언십에서 제외되었으나 현재 K리그에서 매우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송민규 등의 합류도 예상된다.
6. 대회 연혁
6.1. 남자부
6.2. 여자부
7. 메달 순위
7.1. 남자부
* = 개최국
7.2. 여자부
* = 개최국
8. 관련 문서
[1] 와일드카드인 이운재는 한일 월드컵 이전 상무에서 병역을 수행했다.[와카] A B C D E F G H I J K L M N [2] 현영민, 박지성, 이천수, 최태욱이 연령제한에 걸리지 않는 월드컵 멤버들이었다.[3] 그런데 당시에는 졸전이라고 까였다. 몇개월 전에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이겼었던 기억이 있었으니 아시아팀들에겐 다득점 무실점 승리가 기본 아니냐는 여론이 대세였기 때문.[4] 당시 A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겸직했다.[5] 대신 늦게 합류하게 되어 대회 조별리그 2차전부터 출전이 가능했다.[6] 하지만 이광종 감독의 축구 스타일이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7] 그런데 그렇게 이변도 아닌게 태국은 아시안게임 한정으로 4강에 4번이나 올라간 복병이다. 문제는 그렇게 올라간 4번의 대회에서 모두 '''4위'''를 해서 메달은 한번도 못땄다는거....[8] 그러나 치명적인 병마와의 싸움 때문에 이광종 감독은 도중에 지휘봉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9] 이 중 이미 군면제 혜택을 받은 김정민이나 현재 상주 상무 복무중인 오세훈, 전세진 등은 제외될 공산이 매우 크다.[10] 대한민국 미출전[A] A B 연장까지 승부를 보지 못했고 당시에는 승부차기로 넘어가지 않아서 공동 금메달이 됐다.[11] 연장전 없이 승부차기가 실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