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흐테솀 유즈이을: 쾨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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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쾨셈 술탄 버전 트레일러(영어자막)
아흐메트 1세 버전 트레일러(영어자막)
시즌 1 1화 예고편(영어자막)
시즌 2 무라트 4세 버전 트레일러(영어자막)
시즌 2 베들렌 파리아 버전 트레일러(영어자막)
시즌 2 1화 예고편(영어자막)
터키어 : Muhteşem Yüzyıl: Kösem(위대한 세기: 쾨셈)
영어 : Magnficient Century: Kosem
터키의 민영방송 STAR TV에서 제작한 사극 드라마. 중동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 50개국에서 방영되며 터키 문화 신드롬을 일으켰던 터키 드라마 무흐테솀 유즈이을의 후속작이다. 터키 시간으로 매주 목요일 저녁 8시에 방영중이다.
작중 배경은 전작으로 부터 50여년이 흐른 시기인 17세기 초반의 오스만 제국이다. 사실 이 시기부터 오스만 제국은 쉴레이만 대제 사후 무능한 술탄들이 줄줄이 등장했고 태후들이나 황후들이 실질적으로 술탄의 자리에 오르면서 술탄의 절대군주적 위상은 바닥으로 추락한 상황.[1]
드라마는 오스만 제국의 하렘에 강제로 끌려온 그리스 소녀 아나스타시아가 술탄을 뛰어 넘는 제국의 최고 권력자인 태후(Valide Sultan), 쾨셈 술탄[2] 으로 등극하는 과정을 그릴 예정이다.
전편이 남녀간 세기의 로맨스와 지존을 둘러싼 여인들의 궁중 암투를 소재로 이야기를 화면에 그려냈다면 이번 편은 권력을 둘러싼 음모와 암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3]
평가는 세계 각국에서 1억 5천만 ~ 2억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았던 전작에 못 미치는 편. 드라마 소품과 미장센은 좋지만 주인공 쾨셈 술탄 역의 베렌 사아트가 중동 전역에서 이름난 배우이자 터키 최고액 출연료를 받는 여자 배우[4] 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기가 비판을 받은 점과 전작에 비해 이야기 진행이 루즈하고 역사 각색 등 무리수가 많다는 평가를 받아 전작만큼의 높은 시청률은 못나왔다. 현지에서도 1화에서 동시간대 시청률 2위로 출발해 시즌2에서는 아예 하위권으로 떨어졌다.[5] 다만 전작의 기록적인 해외 인기와 후속작과 새 시즌을 요구하는 칠레나 아랍에미리트등 해외 시청자들의 성화 덕분에 투자는 많이 받았다고 한다.
2016년 6월, 오스만 2세가 예니체리에게 시해당하고 쾨셈 술탄이 제국의 권력을 잡는 것으로 시즌 1이 종영됐으며 2016년 11월 부터 무라트 4세 시기부터 메흐메트 4세 초기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시즌 2를 방영 했다.
2. 등장인물
2.1. 주연 및 시즌 1 등장인물
오스만 제국의 14대 술탄. 메흐메트 3세와 한단 술탄의 아들. 5살때 까지 지방에서 지내다가 이스탄불로 온 후 왕위 계승에 실패한 다른 황자들이 아버지 메흐메트 3세의 명령으로 처형된 후 황자들의 주검을 담은 관이 궁전 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6] 그 비정한 광경을 목격한 아흐메트와 그의 이복형 마흐무트 황자는 큰 충격을 받았고 마흐무트는 자신이 황제가 되면 황위에 오르지 못한 동생을 죽이는 오스만 제국의 관습을 없애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성년이 된 마흐무트 역시 자신의 세력을 모으려는 시도를 하다가 아버지 메흐메트 3세의 명령으로 살해당하고 사랑하는 형의 죽음을 목도한 아흐메트는 황위에 오르기 전까지 자신 역시 처형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아흐메트는 과거, 자신의 선조이자 오스만 제국의 시조인 오스만 1세가 꾸었던것과 똑같은 꿈[7] 을 꾸게 되면서 황제가 될것임을 암시한다.
슬픔에 빠져있는 손자를 안스럽게 여긴 할머니 사피예 술탄이 아흐메트에게 진귀한 선물들을 마련해 주는데 그 선물 목록 중에 금발 소녀의 초상화를 발견하고 그 소녀에게 연모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 소녀가 바로 그리스 섬 마을 소녀 아나스타시아. 그러니까 부모형제들과 잘 살고있던 아나스타시아가 이스탄불의 하렘으로 끌려오게 된 이유도 아나스타시아는 사피예가 자기 손자에게 주는 선물이었기 때문. 어찌보면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해를 끼쳤으므로 모든 일의 원흉으로 볼 수도 있다.
아버지 메흐메트 3세가 사망한 그 날 까지도 자신의 형처럼 아버지의 명령으로 살해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8] 선황의 급작스러운 붕어로 황위 계승이 확정됐지만 권력의 비정함과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갑자기 황위에 오른 상황에 아흐메트는 그저 떨떠름해 할 뿐이다. "나는 아흐메트. 어느날 갑자기 황위에 오른 술탄."이라고 되뇌일 정도로.[9]
황위 계승이 확정되자 마자 모후 한단 술탄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제국의 관습에 따라 제위 계승에서 배재된 배다른 동생(무스타파 황자)을 죽여야 한다고 조언했고 모두들 아흐메트가 당연히 관습을 따를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아흐메트는 즉위식장에서 제국의 관습을 따르지 않고 어린 동생을 죽이지 않을것이라는 자신의 뜻을 천명한다.
즉위 직후 아버지 메흐메트가 자연사로 죽은 것이 아니라는 밀서를 받고 아흐메트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발각되는 등 궁정의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동생 무스타파를 살리려고 했던 결심이 흔들리게 되고 무스타파를 죽이라고 설득하는 어머니 한단 술탄의 말에 동의. 무스타파를 처형하기로 결심한다.
그 즈음 아흐메트는 황궁의 비밀 정원[10] 에서 궁전을 빠져나가려고 시도하던 아나스타시아와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할머니 사피예가 아흐메트에게 아나스타시아를 선물로 주기 이전이라서 아나스타시아는 자신과 마주친 남자가 황제인걸 모르는 상황. 아흐메트는 가족과 헤어져 강제로 황궁으로 끌려와 늙고 뚱뚱한 황제[11] 와 동침하게 됐다고 서러워하는 아나스타시아를 보면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황위에 오른 자신과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며칠 뒤 아나스타시아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인 아흐메트는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처음에는 자신을 선물 취급하지 말라고 말하던 아나스타시아지만 두 남녀의 사이는 가까워져 가고 아흐메트는 아나스타시아의 간청으로 이복 동생 무스타파를 죽이려던 생각을 버리고 이복동생을 죽이지 않기로 결심을 굳힌다. 아나스타시아가 점차 마음을 열어가면서 둘 사이에는 사랑이 싹튼다. 하지만 6화에서 오스만 제국의 황위를 노리는 샤힌 기라이의 음모로 오랫동안 병석에 눕게 되고, 옆에서 아흐메트를 지킨 아나스타시아 덕분에 살아나자 그전까지의 병약한 태도를 바꾸어 자신의 적을 하나 하나 궁궐에서 몰아내기 위해 분투한다. 첫빠따로 아나스타시아에게 총을 쏜 예니체리 장교를 직접 칼로 날려버리고, 사사건건 황위에 도전하는 기라이 형제들을 감옥에 가두고, 사피예 술탄도 별궁으로 쫓아버린다.
여담으로 실존인물 아흐메트 1세는 14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는데, 본작에서 아흐메트 역을 맡은 배우는 1992년생. 즉 2017년 현재 26세로,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이다. 아흐메트가 사망한 것이 28세였으니 이쪽에 맞추었을지도 모르지만, 위화감이 제법 크다.
유년기때는 수염이 없어서 뭔가 이상하다고 까였지만 성년기때부터 수염이 생긴 이후부터는 인물이 훤칠해 졌다고 호평 받았다.
무능한 선대의 황제들과 달리 나름대로 황제 노릇을 해 보려 하지만 여러가지 음모에 휘말려 목숨이 위험할 뻔한 위기가 몇차례 찾아 왔다. 결국 역사대로 30살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의심스러운 중병에 걸려 버린다.[12] 죽음을 직감한 아흐메트는 죽기 직전 쾨셈과 결혼식을 거행하지만 결혼식 다음날 아침, 쾨셈을 처음 만났던 정원에서 쾨셈의 품안에 안겨 숨을 거둔다.
슬픔에 빠져있는 손자를 안스럽게 여긴 할머니 사피예 술탄이 아흐메트에게 진귀한 선물들을 마련해 주는데 그 선물 목록 중에 금발 소녀의 초상화를 발견하고 그 소녀에게 연모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 소녀가 바로 그리스 섬 마을 소녀 아나스타시아. 그러니까 부모형제들과 잘 살고있던 아나스타시아가 이스탄불의 하렘으로 끌려오게 된 이유도 아나스타시아는 사피예가 자기 손자에게 주는 선물이었기 때문. 어찌보면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해를 끼쳤으므로 모든 일의 원흉으로 볼 수도 있다.
아버지 메흐메트 3세가 사망한 그 날 까지도 자신의 형처럼 아버지의 명령으로 살해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8] 선황의 급작스러운 붕어로 황위 계승이 확정됐지만 권력의 비정함과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갑자기 황위에 오른 상황에 아흐메트는 그저 떨떠름해 할 뿐이다. "나는 아흐메트. 어느날 갑자기 황위에 오른 술탄."이라고 되뇌일 정도로.[9]
황위 계승이 확정되자 마자 모후 한단 술탄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제국의 관습에 따라 제위 계승에서 배재된 배다른 동생(무스타파 황자)을 죽여야 한다고 조언했고 모두들 아흐메트가 당연히 관습을 따를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아흐메트는 즉위식장에서 제국의 관습을 따르지 않고 어린 동생을 죽이지 않을것이라는 자신의 뜻을 천명한다.
즉위 직후 아버지 메흐메트가 자연사로 죽은 것이 아니라는 밀서를 받고 아흐메트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발각되는 등 궁정의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동생 무스타파를 살리려고 했던 결심이 흔들리게 되고 무스타파를 죽이라고 설득하는 어머니 한단 술탄의 말에 동의. 무스타파를 처형하기로 결심한다.
그 즈음 아흐메트는 황궁의 비밀 정원[10] 에서 궁전을 빠져나가려고 시도하던 아나스타시아와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할머니 사피예가 아흐메트에게 아나스타시아를 선물로 주기 이전이라서 아나스타시아는 자신과 마주친 남자가 황제인걸 모르는 상황. 아흐메트는 가족과 헤어져 강제로 황궁으로 끌려와 늙고 뚱뚱한 황제[11] 와 동침하게 됐다고 서러워하는 아나스타시아를 보면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황위에 오른 자신과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며칠 뒤 아나스타시아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인 아흐메트는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처음에는 자신을 선물 취급하지 말라고 말하던 아나스타시아지만 두 남녀의 사이는 가까워져 가고 아흐메트는 아나스타시아의 간청으로 이복 동생 무스타파를 죽이려던 생각을 버리고 이복동생을 죽이지 않기로 결심을 굳힌다. 아나스타시아가 점차 마음을 열어가면서 둘 사이에는 사랑이 싹튼다. 하지만 6화에서 오스만 제국의 황위를 노리는 샤힌 기라이의 음모로 오랫동안 병석에 눕게 되고, 옆에서 아흐메트를 지킨 아나스타시아 덕분에 살아나자 그전까지의 병약한 태도를 바꾸어 자신의 적을 하나 하나 궁궐에서 몰아내기 위해 분투한다. 첫빠따로 아나스타시아에게 총을 쏜 예니체리 장교를 직접 칼로 날려버리고, 사사건건 황위에 도전하는 기라이 형제들을 감옥에 가두고, 사피예 술탄도 별궁으로 쫓아버린다.
여담으로 실존인물 아흐메트 1세는 14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는데, 본작에서 아흐메트 역을 맡은 배우는 1992년생. 즉 2017년 현재 26세로,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이다. 아흐메트가 사망한 것이 28세였으니 이쪽에 맞추었을지도 모르지만, 위화감이 제법 크다.
유년기때는 수염이 없어서 뭔가 이상하다고 까였지만 성년기때부터 수염이 생긴 이후부터는 인물이 훤칠해 졌다고 호평 받았다.
무능한 선대의 황제들과 달리 나름대로 황제 노릇을 해 보려 하지만 여러가지 음모에 휘말려 목숨이 위험할 뻔한 위기가 몇차례 찾아 왔다. 결국 역사대로 30살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의심스러운 중병에 걸려 버린다.[12] 죽음을 직감한 아흐메트는 죽기 직전 쾨셈과 결혼식을 거행하지만 결혼식 다음날 아침, 쾨셈을 처음 만났던 정원에서 쾨셈의 품안에 안겨 숨을 거둔다.
전작에서 소녀였던 사피예가 노부인으로 돌아왔다.
아흐메트 1세의 할머니이자 선황 메흐메트 3세의 어머니. 오스만 제국의 태황태후. 하렘의 가장 웃어른이다. 베네치아 공화국 출신.[14] 즉위식장에서 손자의 폭탄 발언에 흠칫하지만 손자의 선언에 부합하면서도 제국의 관습이 가진 뜻[15] 을 거스르지 않을 방법을 찾으려 한다.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선물한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의 고양이[16] 를 기르고 있는데 하렘의 환관들과 나인들이 고양이한테 절을 한다.
베네치아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주인공 아나스타시아가 이 귀부인만 설득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알현 자리에서 사피예의 대답은 "넌 집으로 절대 못 돌아가." 동시에 아나스타시아에게 마흐페이케르(Mahpeyker)라는 이름을 지어 줬다.
남편 무라트 3세와 아들 메흐메트 3세 치세에는 제국의 사실상의 황제로서 권세를 누렸으나, 그 뒤를 이은 손자놈 아흐메트 1세가 즉위한 지 한달만에 내린 명령이 '할마마마를 정중하게 별궁으로 뫼시어라.' 라는 것. 이후 14년을 더 살다 죽었다. 드라마에서는 단순히 별궁에 짱박혀 있는 뒷방 노인네가 아니라 궁전에 남기위해 외부인인 기라이 형제들을 다음 황제로 미는 등 권모술수의 달인으로 묘사된다.
시즌 1의 사실상 보스로 시즌 1은 쾨셈과 사피예의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다. 작중 내내 권모술수에 능한 노부인 포스를 뽐내며 권력에 집착한다. 막 제위에 오른 손자 아흐메트 1세로부터 무스타파 황자를 아흐메트 1세 대신 옹립하려 한다는 혐의를 추궁 받고 별궁으로 추방당한 사피예는 쾨셈에게 자신이 황궁으로 돌아와 권력을 거머쥘 수 있도록 도울것을 요구하나 아흐메트 1세를 사랑하는 쾨셈이 이를 거절하고 사피에와 쾨셈 둘 사이의 악연이 시작 된다
사이가 좋지 않은 며느리 한단이 무스타파 황자를 암살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이를 자신의 황궁 복귀 기회로 본 사피예는 딸을 찾아 이스탄불로 온 쾨셈의 아버지를 납치해 자신의 황궁 복귀를 돕지 않으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쾨셈을 협박해 복귀에 성공한다. 쾨셈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피예의 복귀를 도왔지만 사피예는 약속과 달리 쾨셈의 아버지를 죽여버린다. 빡돌아버린 쾨셈도 그냥 당하고 있지 않았고 나중에 사피예의 수족인 제네트 칼파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 들이고 사피예의 딸 파흐리예 술탄을 리타이어 시키며 복수한다. 사랑하는 아흐메트를 지키려는 쾨셈과 아흐메트를 없애고 권력을 쥐려는 사피예 둘 사이의 갈등과 대립의 골은 깊어져 간다. 결국 사피예는 아흐메트 1세가 사파비 왕조를 치기 위해 원정을 떠난 사이(14화 후반부에서 15화 초반)에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아흐메트를 제거하고 무스타파를 황위에 올리려는 대형 사고를 도모하다가 실패, 이스탄불 앞 바다에 있는 처녀의 탑(크즈 쿨레시)[17] 감옥에 수감 된다.
훗날 도적에게 납치된 쾨셈을 구해주는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다시 풀려나 별궁(에스키 사라이)에 거하면서 또 다시 음모를 꾸미고 이번에는 성공해 아흐메트가 중병에 걸려 사망해 버린다. 이 과정에서 쾨셈의 고향 그리스 섬마을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쾨셈의 여동생까지 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는다. 이후 오스만 2세가 폴란드와의 전쟁을 위해 황궁을 떠날 무렵, 권력에 대한 집착과 자신의 숨겨진 아들의 안위를 위해 맏딸 휘마샤와 함께 그 아들을 황위에 올리려는 역모를 또 꾸민다. 이번에는 휘마샤의 남편이자 쾨셈의 편인 쥘피카르 파샤까지 포섭하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 사피예는 쾨셈의 거처를 방문까지 하며 쾨셈에게 음모의 성공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기 까지 한다. 그러나 사실 쥘피카르 파샤는 여전히 쾨셈의 편(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을 떠난 아흐메트 1세의 편)이었고 쥘피카르는 사피예의 숨겨진 아들을 폭사시키며 사피예의 음모를 저지한다.
아들을 잃은 충격에 사피예는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고 삶에 대한 의욕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쾨셈이 보는 앞에서 독을 탄 커피를 마시고 자살한다. 죽기 직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며 자신이 항상 지니고 있던 휴렘 술탄의 에메랄드 반지를 쾨셈에게 건낸다.
아흐메트 1세의 할머니이자 선황 메흐메트 3세의 어머니. 오스만 제국의 태황태후. 하렘의 가장 웃어른이다. 베네치아 공화국 출신.[14] 즉위식장에서 손자의 폭탄 발언에 흠칫하지만 손자의 선언에 부합하면서도 제국의 관습이 가진 뜻[15] 을 거스르지 않을 방법을 찾으려 한다.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선물한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의 고양이[16] 를 기르고 있는데 하렘의 환관들과 나인들이 고양이한테 절을 한다.
베네치아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주인공 아나스타시아가 이 귀부인만 설득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알현 자리에서 사피예의 대답은 "넌 집으로 절대 못 돌아가." 동시에 아나스타시아에게 마흐페이케르(Mahpeyker)라는 이름을 지어 줬다.
남편 무라트 3세와 아들 메흐메트 3세 치세에는 제국의 사실상의 황제로서 권세를 누렸으나, 그 뒤를 이은 손자놈 아흐메트 1세가 즉위한 지 한달만에 내린 명령이 '할마마마를 정중하게 별궁으로 뫼시어라.' 라는 것. 이후 14년을 더 살다 죽었다. 드라마에서는 단순히 별궁에 짱박혀 있는 뒷방 노인네가 아니라 궁전에 남기위해 외부인인 기라이 형제들을 다음 황제로 미는 등 권모술수의 달인으로 묘사된다.
시즌 1의 사실상 보스로 시즌 1은 쾨셈과 사피예의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다. 작중 내내 권모술수에 능한 노부인 포스를 뽐내며 권력에 집착한다. 막 제위에 오른 손자 아흐메트 1세로부터 무스타파 황자를 아흐메트 1세 대신 옹립하려 한다는 혐의를 추궁 받고 별궁으로 추방당한 사피예는 쾨셈에게 자신이 황궁으로 돌아와 권력을 거머쥘 수 있도록 도울것을 요구하나 아흐메트 1세를 사랑하는 쾨셈이 이를 거절하고 사피에와 쾨셈 둘 사이의 악연이 시작 된다
사이가 좋지 않은 며느리 한단이 무스타파 황자를 암살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이를 자신의 황궁 복귀 기회로 본 사피예는 딸을 찾아 이스탄불로 온 쾨셈의 아버지를 납치해 자신의 황궁 복귀를 돕지 않으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쾨셈을 협박해 복귀에 성공한다. 쾨셈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피예의 복귀를 도왔지만 사피예는 약속과 달리 쾨셈의 아버지를 죽여버린다. 빡돌아버린 쾨셈도 그냥 당하고 있지 않았고 나중에 사피예의 수족인 제네트 칼파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 들이고 사피예의 딸 파흐리예 술탄을 리타이어 시키며 복수한다. 사랑하는 아흐메트를 지키려는 쾨셈과 아흐메트를 없애고 권력을 쥐려는 사피예 둘 사이의 갈등과 대립의 골은 깊어져 간다. 결국 사피예는 아흐메트 1세가 사파비 왕조를 치기 위해 원정을 떠난 사이(14화 후반부에서 15화 초반)에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아흐메트를 제거하고 무스타파를 황위에 올리려는 대형 사고를 도모하다가 실패, 이스탄불 앞 바다에 있는 처녀의 탑(크즈 쿨레시)[17] 감옥에 수감 된다.
훗날 도적에게 납치된 쾨셈을 구해주는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다시 풀려나 별궁(에스키 사라이)에 거하면서 또 다시 음모를 꾸미고 이번에는 성공해 아흐메트가 중병에 걸려 사망해 버린다. 이 과정에서 쾨셈의 고향 그리스 섬마을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쾨셈의 여동생까지 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는다. 이후 오스만 2세가 폴란드와의 전쟁을 위해 황궁을 떠날 무렵, 권력에 대한 집착과 자신의 숨겨진 아들의 안위를 위해 맏딸 휘마샤와 함께 그 아들을 황위에 올리려는 역모를 또 꾸민다. 이번에는 휘마샤의 남편이자 쾨셈의 편인 쥘피카르 파샤까지 포섭하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 사피예는 쾨셈의 거처를 방문까지 하며 쾨셈에게 음모의 성공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기 까지 한다. 그러나 사실 쥘피카르 파샤는 여전히 쾨셈의 편(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을 떠난 아흐메트 1세의 편)이었고 쥘피카르는 사피예의 숨겨진 아들을 폭사시키며 사피예의 음모를 저지한다.
아들을 잃은 충격에 사피예는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고 삶에 대한 의욕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쾨셈이 보는 앞에서 독을 탄 커피를 마시고 자살한다. 죽기 직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며 자신이 항상 지니고 있던 휴렘 술탄의 에메랄드 반지를 쾨셈에게 건낸다.
아래에 이 '아들' 에 대해 설명한 문단이 있지만 이 아들이라는 인물은 실제 역사에 기반을 둔 가공 인물이며, 그에 따라 사피예의 최후나 음모 등도 모두 극 중의 설정이다.
선황 메흐메트 3세의 배우자이자 아흐메트의 모후. 오스만 제국의 태후(Valide Sultan). 그리스 출신. 다른 황제 시절 같았으면 황제의 어머니로서 하렘의 웃어른으로 등극했겠지만 태황태후인 사피예 술탄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에 얄짤없다.[18] 황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옛 관습을 지켜 아흐메트의 동생 무스타파를 죽여야 된다고 아들에게 이야기 했으나 아들이 즉위식장에서 한 폭탄발언때문에 당황해 한다. 즉위식 이후에도 무스타파를 죽여야 한다고 아들에게 계속 권유한다.[19]
사피예 술탄, 할리메 술탄과 암투를 벌이고 있다. 아들의 잠재적 경쟁자인 무스타파를 죽이려는 시도를 막자 노여워 했지만 사피예에 맞서기 위해 쾨셈과 동맹을 맺는다. 그러다가 쾨셈의 아버지 엔조를 납치한 사피예의 협박에 못이긴 쾨셈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사피예의 한단의 비밀을 아흐메트에게 털어놓자 한동안 별궁으로 쫓겨나 버리기도 한다.
죽었을때의 나이가 만 31세 밖에 안됐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의 나이가 상향 조정돼서 그런지 불혹의 중년 여성처럼 보인다.
너무 이른 나이에 죽어서 역사 속에서는 사피예, 할리메, 쾨셈 세 명 중 한 명에게 독살 당한거 아니냐는 설이 있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선황 메흐메트 3세의 석연찮은 죽음에 한단이 배후에 연계되어 있다는 참신한 설정을 만들어, 모든 사실이 밝혀진 후 한단이 자살해버리는 결말을 맺는다.
사피예 술탄, 할리메 술탄과 암투를 벌이고 있다. 아들의 잠재적 경쟁자인 무스타파를 죽이려는 시도를 막자 노여워 했지만 사피예에 맞서기 위해 쾨셈과 동맹을 맺는다. 그러다가 쾨셈의 아버지 엔조를 납치한 사피예의 협박에 못이긴 쾨셈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사피예의 한단의 비밀을 아흐메트에게 털어놓자 한동안 별궁으로 쫓겨나 버리기도 한다.
죽었을때의 나이가 만 31세 밖에 안됐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의 나이가 상향 조정돼서 그런지 불혹의 중년 여성처럼 보인다.
너무 이른 나이에 죽어서 역사 속에서는 사피예, 할리메, 쾨셈 세 명 중 한 명에게 독살 당한거 아니냐는 설이 있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선황 메흐메트 3세의 석연찮은 죽음에 한단이 배후에 연계되어 있다는 참신한 설정을 만들어, 모든 사실이 밝혀진 후 한단이 자살해버리는 결말을 맺는다.
선황 메흐메트 3세의 또 다른 배우자. 아흐메트의 이복형 마흐무트 황자와 이복동생 무스타파 황자의 어머니. 압하지야 출신. 마흐무트가 살아있던 시절부터 자신의 아들을 황위에 올리기 위해 흑마술을 쓴다는 소문이 있었다. 마흐무트가 죽은 후 아흐메트가 황위에 오르자 무스타파 역시 제국의 관습에 의하여 살해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동생을 사랑한 아흐메트의 배려로 아들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무스타파의 존재는 그 자체로서 아흐메트의 황권을 불안정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궁중 내부에서는 무스타파를 둘러싼 암투가 일어나게 됐고, 할리메 역시 자신의 아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음모를 꾸미지만 음모가 발각, 이스탄불에서 벗어나려고 도망치다가 실패한다. 그 후로도 아흐메트가 병석에 눕자, "이젠 무스타파가 황위에 오를때다!" 라고 좋아하다가 무스타파마저 병석에 눕자 어찌 되었든 사피예 술탄이 지지하는 샤힌 기라이가 황제가 되는 것보단 아흐메트가 황제로 남아있는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해 한단 술탄과 일시적으로 뜻을 함께 하게된다.
아흐메트 1세 사후, 아들 무스타파의 황제 즉위를 인정한 쾨셈을 별궁에 유폐시킨 후 권력을 쥐려하고 쾨셈의 아들들을 몰살하려는 음모를 꾸몄지만 쾨셈이 가담한 쿠데타가 일어나 오스만 황자가 무스타파를 폐위시키고 오스만 2세로 즉위하자 닭 쫓던 개 꼴이 된다. 그러나 그 후에도 아들의 복위와 권력의 중심으로 복귀하기 위해 뒤에서 부단히 음모를 꾸민다. 결국 그녀와 연계된 예니체리의 반란으로 오스만 2세가 폐위, 시해된 후 권력자로의 화려한 복귀를 꿈꾸지만 쾨셈의 밀명에 의해 30화 말미에 무스타파와의 식사 도중 독약으로 암살당한다. 오스만의 목숨은 살려 놓으라는 쾨셈의 요구를 대놓고 무시한대다가 쾨셈 역시 할리메에게 권력을 그대로 넘겨 줄 생각이 없었던 것.
그러나 무스타파의 존재는 그 자체로서 아흐메트의 황권을 불안정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궁중 내부에서는 무스타파를 둘러싼 암투가 일어나게 됐고, 할리메 역시 자신의 아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음모를 꾸미지만 음모가 발각, 이스탄불에서 벗어나려고 도망치다가 실패한다. 그 후로도 아흐메트가 병석에 눕자, "이젠 무스타파가 황위에 오를때다!" 라고 좋아하다가 무스타파마저 병석에 눕자 어찌 되었든 사피예 술탄이 지지하는 샤힌 기라이가 황제가 되는 것보단 아흐메트가 황제로 남아있는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해 한단 술탄과 일시적으로 뜻을 함께 하게된다.
아흐메트 1세 사후, 아들 무스타파의 황제 즉위를 인정한 쾨셈을 별궁에 유폐시킨 후 권력을 쥐려하고 쾨셈의 아들들을 몰살하려는 음모를 꾸몄지만 쾨셈이 가담한 쿠데타가 일어나 오스만 황자가 무스타파를 폐위시키고 오스만 2세로 즉위하자 닭 쫓던 개 꼴이 된다. 그러나 그 후에도 아들의 복위와 권력의 중심으로 복귀하기 위해 뒤에서 부단히 음모를 꾸민다. 결국 그녀와 연계된 예니체리의 반란으로 오스만 2세가 폐위, 시해된 후 권력자로의 화려한 복귀를 꿈꾸지만 쾨셈의 밀명에 의해 30화 말미에 무스타파와의 식사 도중 독약으로 암살당한다. 오스만의 목숨은 살려 놓으라는 쾨셈의 요구를 대놓고 무시한대다가 쾨셈 역시 할리메에게 권력을 그대로 넘겨 줄 생각이 없었던 것.
실제 역사에서는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독살을 당했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으며, 오스만 2세가 폐위되고 친아들인 무스타파 1세가 즉위하지만 얼마 안 가 쾨셈의 아들인 무라드 4세가 즉위할 때 무스타파의 목숨만은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무스타파는 살해당하는 대신 다시 감옥 신세를 지게 되었으니, 약간의 영향력이나마 가지고 있었던 듯.
아흐메트의 이복 동생. 오스만제국의 15대 술탄. 할리메 술탄의 하나 남은 아들. 아흐메트는 지난 시절 겪었던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이 황제가 되어도 이복 동생을 죽이지 않기로 다짐했고 이복 동생에게 잘 해 준다.[20] 그러나 무스타파의 존재 자체가 황권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한단 술탄등이 예의주시 하고 있는 상황. 훗날의 무스타파 1세.
그래도 여차 저차 문제가 잘 풀려 선대의 황자들이라면 꿈도 못 꿀 생활을 영위 하고 있었지만 할머니가 저지른 대형 사고에 휘말리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무스타파가 사피예 술탄의 음모에 이용당한 것을 보고 진노한 아흐메트에게 살해당할 뻔 했다. 그 후 마음을 가라앉힌 아흐메트 1세는 무스타파가 반역 세력들에게 더 이상 이용당하지 못하도록 가두는 것으로 결정 되어 문이 막힌 독방에 감금당한다. 문제는 감금당하는동안 허깨비를 보는 등 정신 상태가 나빠졌다는 것.
이드 울 피트르[21] 를 맞이해 아흐메트는 무스타파를 감금에서 풀어주기로 결정하나 이미 상태는 나빠질대로 나빠진 상황. 허깨비를 자신의 유일한 친구로 여기고 있으며(...) 그 허깨비에 홀려 형 아흐메트 1세를 조각칼로 죽일뻔 하기도 했다. 풀려난 이후에도 조카들인 다른 황자들과는 별 다른 교류가 없었고 누이인 딜루바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듯. 25화에서 황제로 즉위. 어머니 할리메와 쾨셈 사이의 갈등 과정에서 평소 두려워 하던 조카 오스만에게 황위를 빼았기지만 오스만 2세가 예니체리에게 살해 당하고 다시 복위한다.
그러나 어머니, 누나와 함께 무스타파 복위를 위해 정변을 일으킨 예니체리들을 찾은 자리에서 "술탄 오스만 만세!(...)"를 외치고 어머니에게 화를 내는 등 영 좋지않은 정신 상태를 보인다. 오스만 2세 제위 시절 문이 아예 벽으로 틀어 막힌 방에 감금당하면서 정신이 더 이상해진 것. 1차 제위 시절에는 허깨비를 보거나 발작은 해도 나름 제 정신은 유지하고 있었는데 오스만 2세에게 반란을 일으킨 예니체리들이 무스타파를 구하러 방 안에 들어왔을때 그저 해맑게 웃고 있기만 한다. 감금당한 사이 제 정신을 놓아 버린 것. 풀려난 후에도 계속 헤벌쭉 웃고 있어 보는 사람을 어이 없게 만들 정도. 결국 복위 후, 어머니 할리메 술탄과 누나 딜루바 술탄이 쾨셈의 밀명으로 암살 당하고 제국의 실권은 쾨셈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무스타파 본인은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아 살해 당하지 않고 유폐된 채 살 수 있었다.
황제로 즉위한 이후에는 암군이란 어떤 것인가를 몸소 보여줬는데, 이유 없이 고관들의 수염을 잡아당기고 터번을 벗겼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물고기와 새들에게 동전을 뿌리며 돌아다녔다는 기록도 있다[22] 결국 나라가 돌아가는 꼴을 보다 못한 중, 하급 관료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아흐메트의 아들이자 무스타파의 조카인 오스만 2세를 옹립했지만 재위 4년만에 예니체리들의 반란으로 끔살당하고[23] , 다시 불려나와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쿠데타가 일어나 오스만의 이복동생인 무라트 4세가 즉위하고, 무스타파는 다시 감금 신세. 이후 16년 동안 살다가 죽었다[24]
쾨셈 술탄이 다시 감금한 후 시즌 2에서 성년이 된 무라트 4세가 감금되어 있는 무스타파의 방을 방문해 보니 폭삭 늙어 있다.[25] 무스타파의 방을 방문한 무라트는 삼촌에게 푸념을 늘어놓곤 한다. 하지만 쾨셈의 손아귀에 제국이 넘어가느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오스만 황실의 혈통을 단절시켜 버리겠다는 무라트 4세의 편집증 때문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26]
그래도 여차 저차 문제가 잘 풀려 선대의 황자들이라면 꿈도 못 꿀 생활을 영위 하고 있었지만 할머니가 저지른 대형 사고에 휘말리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무스타파가 사피예 술탄의 음모에 이용당한 것을 보고 진노한 아흐메트에게 살해당할 뻔 했다. 그 후 마음을 가라앉힌 아흐메트 1세는 무스타파가 반역 세력들에게 더 이상 이용당하지 못하도록 가두는 것으로 결정 되어 문이 막힌 독방에 감금당한다. 문제는 감금당하는동안 허깨비를 보는 등 정신 상태가 나빠졌다는 것.
이드 울 피트르[21] 를 맞이해 아흐메트는 무스타파를 감금에서 풀어주기로 결정하나 이미 상태는 나빠질대로 나빠진 상황. 허깨비를 자신의 유일한 친구로 여기고 있으며(...) 그 허깨비에 홀려 형 아흐메트 1세를 조각칼로 죽일뻔 하기도 했다. 풀려난 이후에도 조카들인 다른 황자들과는 별 다른 교류가 없었고 누이인 딜루바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듯. 25화에서 황제로 즉위. 어머니 할리메와 쾨셈 사이의 갈등 과정에서 평소 두려워 하던 조카 오스만에게 황위를 빼았기지만 오스만 2세가 예니체리에게 살해 당하고 다시 복위한다.
그러나 어머니, 누나와 함께 무스타파 복위를 위해 정변을 일으킨 예니체리들을 찾은 자리에서 "술탄 오스만 만세!(...)"를 외치고 어머니에게 화를 내는 등 영 좋지않은 정신 상태를 보인다. 오스만 2세 제위 시절 문이 아예 벽으로 틀어 막힌 방에 감금당하면서 정신이 더 이상해진 것. 1차 제위 시절에는 허깨비를 보거나 발작은 해도 나름 제 정신은 유지하고 있었는데 오스만 2세에게 반란을 일으킨 예니체리들이 무스타파를 구하러 방 안에 들어왔을때 그저 해맑게 웃고 있기만 한다. 감금당한 사이 제 정신을 놓아 버린 것. 풀려난 후에도 계속 헤벌쭉 웃고 있어 보는 사람을 어이 없게 만들 정도. 결국 복위 후, 어머니 할리메 술탄과 누나 딜루바 술탄이 쾨셈의 밀명으로 암살 당하고 제국의 실권은 쾨셈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무스타파 본인은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아 살해 당하지 않고 유폐된 채 살 수 있었다.
황제로 즉위한 이후에는 암군이란 어떤 것인가를 몸소 보여줬는데, 이유 없이 고관들의 수염을 잡아당기고 터번을 벗겼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물고기와 새들에게 동전을 뿌리며 돌아다녔다는 기록도 있다[22] 결국 나라가 돌아가는 꼴을 보다 못한 중, 하급 관료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아흐메트의 아들이자 무스타파의 조카인 오스만 2세를 옹립했지만 재위 4년만에 예니체리들의 반란으로 끔살당하고[23] , 다시 불려나와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쿠데타가 일어나 오스만의 이복동생인 무라트 4세가 즉위하고, 무스타파는 다시 감금 신세. 이후 16년 동안 살다가 죽었다[24]
쾨셈 술탄이 다시 감금한 후 시즌 2에서 성년이 된 무라트 4세가 감금되어 있는 무스타파의 방을 방문해 보니 폭삭 늙어 있다.[25] 무스타파의 방을 방문한 무라트는 삼촌에게 푸념을 늘어놓곤 한다. 하지만 쾨셈의 손아귀에 제국이 넘어가느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오스만 황실의 혈통을 단절시켜 버리겠다는 무라트 4세의 편집증 때문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26]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알려진 청년. 예니체리에 지원해 이스탄불로 가던 도중 에디르네 근교에서 아나스타시아가 도망치는 것을 발견하고 구출해준다. 결국엔 알렉스의 상관이 아나스타시아와 일행의 목적지가 황궁이라는걸 알곤 아나스타시아의 뜻과는 달리 이스탄불까지 보호하게 되지만 2화에서 알렉스가 예니체리 병영에 들어와 적응하는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는데, 예니체리들의 종교인 하즈 벡타쉬파[27] , 훈련장면 등이 자세히 묘사된다. 한편 입대하자마자 '뺑뺑이'를 돌게 되는데, 여기서 우승해 알렉스는 분대장이 된다. 그리고 아흐메트가 알렉스가 있는 병영을 방문해 시범으로 황제와 대련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알렉스가 아흐메트를 이기자 아흐메트는 처음에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알렉스의 뺨을 쳤다가 나중에는 궁전으로 불러내어 이따금 대련 연습을 한다. 쾨셈의 시녀인 멜레키 하툰이 이스켄데르를 좋아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에게는 말 못할 출생의 비밀이 있었는데...[스포일러]
실제 역사에 기반을 둔 인물로 아흐메트 1세의 할아버지인 무라트 3세와 트레비존드 제국의 황가인 콤니노스 가문 출신 엘레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이자 오스만 제국의 황위를 주장했던 야흐야가 모델이다.
그러나 사실 그에게는 말 못할 출생의 비밀이 있었는데...[스포일러]
실제 역사에 기반을 둔 인물로 아흐메트 1세의 할아버지인 무라트 3세와 트레비존드 제국의 황가인 콤니노스 가문 출신 엘레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이자 오스만 제국의 황위를 주장했던 야흐야가 모델이다.
크림 칸국 왕자 메흐메트 기라이 한과 썸을 타고 있으며, 그 사랑때문에 아흐메트와 무스타파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결국 이어지는건 메흐메트 기라이 한이 아닌 데르비쉬 무스타파 파샤. 사피예 술탄의 딸. 아흐메트 1세의 고모.
오스만 제국의 신하 국가인 크림 칸국의 왕자. 첫화 술탄 즉위식때부터 형제 메흐메트에게 술탄 아흐메트를 비꼬는 불경스러운 말을 내뱉으면서 오스만 황조에 대한 본인의 안좋은 감정을 드러낸다. 즉위식 직후 아흐메트 1세에게 사자를 선물하는데 사실 샤힌은 사자를 이용해 아흐메트를 암살하려고 했다. 밤에 사자 우리에 몰래 들어가 사자를 묶고 있는 족쇄를 절단해 족쇄에서 풀린 사자를 이용해 사자 먹이를 주러 온 아흐메트를 암살하려 하나 사자가 근위대장 데르비쉬의 총에 맞아 죽는 바람에 실패한다.
암살시도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지만 자신을 늑대에 비유하며 술탄 아흐메트와 무스타파 황자를 모두 제거하고 칭기즈칸의 자손인 자신이 오스만의 황위에 올라야 한다는 야심을 드러낸다.[28] 이후로도 독, 세균을 이용해 계속해서 암살을 시도하고, 6화에서 거의 성공할 뻔했다가 7화에서 아나스타시아가 데려온 마녀가 가르쳐준 주술[29] 로 좌절되고 메흐메트 기라이와 함께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암살시도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지만 자신을 늑대에 비유하며 술탄 아흐메트와 무스타파 황자를 모두 제거하고 칭기즈칸의 자손인 자신이 오스만의 황위에 올라야 한다는 야심을 드러낸다.[28] 이후로도 독, 세균을 이용해 계속해서 암살을 시도하고, 6화에서 거의 성공할 뻔했다가 7화에서 아나스타시아가 데려온 마녀가 가르쳐준 주술[29] 로 좌절되고 메흐메트 기라이와 함께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샤힌의 형제. 훗날 크림 칸국의 칸의 자리에 오른다.
이스탄불 예니체리 경비대의 대장. 이스켄데르의 능력을 알아보지만 결국 이스켄데르의 출생의 비밀까지 알게 된다. 사피예 술탄의 맏딸 휘마샤 술탄과 결혼하며 후에는 부재상(Vizier)의 자리에 오른다. 작중 이곳 저곳 구르며 상당히 고생을 많이 하는 인물. 아흐메트 1세와 그 가족들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을 자신의 신조로 삼고 있기 때문에 아흐메트 1세 사후에도 아흐메트 1세의 배우자인 쾨셈과 그 아들들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쓴다. 때문에 사피예 술탄의 맏딸인 부인 휘마샤 술탄과 갈등을 밎기도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쾨셈의 적이며 휘마샤 자신도 쾨셈과 갈등 관계이기 때문.
30화에서 오스만 2세를 몰아내기 위한 예니체리와 카라 다우드 파샤의 정변을 막으려다 예니체리에게 살해 당하며 리타이어. 시즌 1 마지막 부분에서 휘마샤와 갈등의 골이 깊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마샤 역시 남편을 사랑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30화에서 오스만 2세를 몰아내기 위한 예니체리와 카라 다우드 파샤의 정변을 막으려다 예니체리에게 살해 당하며 리타이어. 시즌 1 마지막 부분에서 휘마샤와 갈등의 골이 깊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마샤 역시 남편을 사랑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술탄 아흐메트의 경호 대장. 아흐메트 1세에게 충성을 다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충신으로 보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한단 술탄과의 관계와 그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 드러나는데...
그리스 출신의 하렘 여인. 마흐피루즈라는 이름을 받기 전에는 라샤(Rasha)라고 불렸다. 하렘에 오기전 여러가지 교육을 받았으며 황제와 동침하는 것 하나만을 목표로 삼고 있는 전형적인 하렘 여자다. 아나스타시아를 밀고 있는 사피예의 움직임에 맞서 한단은 마흐피루즈를 아흐메트와 짝지으려 시도 하는 중.[30] 마흐피루즈는 한단의 명에 따라 아흐메트와 동침하기 위해 아흐메트 앞에서 춤을 추며 황제를 유혹한다. 하지만 이미 아나스타시아의 초상화에 홀딱 빠져 있는 아흐메트의 눈에 마흐피루즈가 눈에 띌 리가 없고 소박맞는다.
그래도 그 후에는 도적들에게 납치당한 라샤를 아흐메트 1세가 구한 일을 계기로 여차저차 눈에 드는데 성공, 마흐피루즈라는 이름을 하사 받고 훗날 오스만 제국의 황제가 되는 오스만 2세를 낳는다.
첫화에서 아나스타시아가 황제를 위해 특별히 선발된 여자라는 소리를 듣고 아나스타시아의 가슴을 만지며 신고식을 하는걸 봐서 향후 아나스타시아와 대립할 것으로 보였다. 아래에 소개하는 실제 역사를 감안해보면, 전작의 마히데브란과 비슷한 포지션이 될 듯 보였지만 나름대로 황자를 낳고 팔자를 펴려는 찰나, 아흐메트 1세가 사파비 왕조와의 전쟁 때문에 황궁을 비운 사이 사피예 술탄이 일으킨 쿠데타에 휘말려 목숨을 잃고 만다.
실제 역사에서는 아흐메트의 총애를 받아 그의 장남인 오스만을 낳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쾨셈에게 밀려났고, 이후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오스만이 즉위한 이후에도 황실의 재정 출납부에 발리데 술탄(모후)의 품위 유지비에 대한 기록이 없는데다 아흐메트와 함께 묻히지 못하고 공동묘지에 안장된 점 등으로 보아 모후 대접도 못 받은 것 아니냐는 추정이 유력하다. 오스만의 재위기인 1620년에 30세 전후의 나이로 요절했는데, 쾨셈 술탄의 밀명으로 살해당한 것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그래도 그 후에는 도적들에게 납치당한 라샤를 아흐메트 1세가 구한 일을 계기로 여차저차 눈에 드는데 성공, 마흐피루즈라는 이름을 하사 받고 훗날 오스만 제국의 황제가 되는 오스만 2세를 낳는다.
첫화에서 아나스타시아가 황제를 위해 특별히 선발된 여자라는 소리를 듣고 아나스타시아의 가슴을 만지며 신고식을 하는걸 봐서 향후 아나스타시아와 대립할 것으로 보였다. 아래에 소개하는 실제 역사를 감안해보면, 전작의 마히데브란과 비슷한 포지션이 될 듯 보였지만 나름대로 황자를 낳고 팔자를 펴려는 찰나, 아흐메트 1세가 사파비 왕조와의 전쟁 때문에 황궁을 비운 사이 사피예 술탄이 일으킨 쿠데타에 휘말려 목숨을 잃고 만다.
실제 역사에서는 아흐메트의 총애를 받아 그의 장남인 오스만을 낳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쾨셈에게 밀려났고, 이후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오스만이 즉위한 이후에도 황실의 재정 출납부에 발리데 술탄(모후)의 품위 유지비에 대한 기록이 없는데다 아흐메트와 함께 묻히지 못하고 공동묘지에 안장된 점 등으로 보아 모후 대접도 못 받은 것 아니냐는 추정이 유력하다. 오스만의 재위기인 1620년에 30세 전후의 나이로 요절했는데, 쾨셈 술탄의 밀명으로 살해당한 것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아나스타시아가 궁궐에 처음 들어왔을때 맞이한 대머리 아저씨. 하렘을 총괄하는 경호실장으로 두려움에 떨고있는 아나스타시아에게 하렘을 쿠란에 나오는 여러가지 지옥들에 비유하며 "이곳은 지옥이 될 수도 있지만, 저 문의 뒤에는 낙원이 기다리고 있다."고 소개한다. 이후 무스타파를 데리고 궁궐을 빠져나가려는 할리메 술탄의 음모를 적발하는데 공을 세운다. 하지만 기라이와 더불어 암살에 연관되었다가 우연히 아나스타시아가 이것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자 그녀를 죽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다 하지만 데르비쉬 아아에게 딱 걸려서 궁전 2층에서 내던져져 어이없이 리타이어인줄 알았는데 7화 끝부분에 기라이 형제가 갇힌 감방에서 다시 등장한다. 데르비쉬 아아와 쾨셈에게 복수심을 품고 있다.
아나스타시아가 궁궐에 처음 들어왔을때 레이한 아아와 함께 맞이한 여성으로 '칼파'는 하렘의 여성들을 관리하고 황제의 시중을 드는 '상궁'과 같은 위치이다. 처음 아나스타시아를 봤을때는 꾀죄죄한 옷차림을 보고 "내가 사피예 술탄이었다면 저런 년은 하렘에 안받았다"고 불평한다. 이후 독방에 갇힌 아나스타시아가 반항하자 "내 이름은 '천국(Cennet[31] )'이라는 뜻이지. 하지만 니가 고분고분할때만이야. 내 직책이 바뀌면 내 이름도 바뀌지. '지옥(Cehennem)'으로." 라고 자기 이름을 가지고 협박을 한다. 한편 젠네트 칼파가 웬 남자랑 함께 있는 것을 몰래 본 아나스타시아에게 약점을 잡히고, 아나스타시아에게 그녀의 편지를 가족들에게 전달해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 후로는 점점 가까워 진다. 본래 사피예 술탄의 측근이었는데 사피예의 내막을 알게 된 후 사피예 술탄과의 관계를 끊고 쾨셈의 편이 된다.
사피예 술탄의 충성스러운 시종 환관. 사피예 술탄의 여러가지 음모에 가담했지만 쾨셈을 싫어하는 건 아니라서 15화에서 사피예의 명으로 처형될 뻔한 쾨셈의 목숨을 구해 준다. 사피예가 죽을때까지 그녀를 따르지만 사피예가 죽고 난 뒤 쾨셈을 따르게 된다.
레이한 아아의 후임 환관. 본래는 한단 술탄의 시종이나 한단이 죽은 후 쾨셈의 시종이 된다. 커다란 터번을 쓰고 있다. 전작의 쉼뷜 아아(Sümbül Ağa)와 비슷한 위치의 인물이지만 개그 씬은 별로 없다. 쾨셈 술탄을 소녀 시절부터 지켜보아 왔고 한단 술탄 사망 후 평생 쾨셈 술탄 곁에서 함께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겪으며 그녀를 보필하는 충복으로 살아왔다..
마지막 화에서 쾨셈 술탄과 함께 메흐메트 4세를 폐위시키고 쉴레이만 황자를 새 황제로 올리려는 역모를 준비하면서 수십년전 그리스 소녀 아나스타시아가 황궁에 처음 들어왔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쾨셈과 함께 추억에 잠긴다(...). 그 직후 쾨셈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정변을 시작하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탑에 올라갔지만 미리 사태 파악을 한 투르한 술탄에게 살해당한다. 환관장이었던 실존 인물.
마지막 화에서 쾨셈 술탄과 함께 메흐메트 4세를 폐위시키고 쉴레이만 황자를 새 황제로 올리려는 역모를 준비하면서 수십년전 그리스 소녀 아나스타시아가 황궁에 처음 들어왔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쾨셈과 함께 추억에 잠긴다(...). 그 직후 쾨셈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정변을 시작하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탑에 올라갔지만 미리 사태 파악을 한 투르한 술탄에게 살해당한다. 환관장이었던 실존 인물.
흑인 여성. 쾨셈을 납치해 황궁으로 끌고 온 장본인이지만 그 후로는 쾨셈의 보디가드가 되어 갖은 험한 꼴들을 당한다.
배우는 영국 출신 음악가 사샤 페레라(Sasha Perera).
배우는 영국 출신 음악가 사샤 페레라(Sasha Perera).
아흐메트 1세의 눈에 띄어 아흐메트 1세의 첩이 된 소녀. 그러나 사실 진짜 정체는 사피예 술탄이 아흐메트 1세를 해하기 위해 준비한 비밀 무기. 한편 쾨셈은 야세민의 스케치북을 보다가 자신의 고향인 그리스 에게해 섬마을 풍경과 똑같은 그림이 그려진 것을 보고 의아해하는데...[스포일러2]
사피예 술탄의 맏딸, 쥘피카르 아아의 부인. 사피예 술탄이 역모에 휘말려 이스탄불 앞 바다에 있는 처녀의 탑에 수감 된 후 이집트에서 이스탄불로 온다. 한단 술탄이 죽은 후 하렘의 실권자가 된다. 사피예 술탄을 다시 궁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쾨셈을 음모의 소용돌이로 끌어 들인다..
시즌 1 마지막 화인 30화에서는 남편 쥘피카르와 함께 오스만 2세를 보호하려 하지만 남편과 오스만 2세 둘 다 죽어버리고 상심한 휘마샤는 황궁을 떠난다.
가공 인물로 추정. 무라트 3세의 딸들의 이름은 아이셰 술탄, 파트마 술탄, 파흐리예 술탄, 루키예 술탄으로 비슷한 시기 휘마샤라는 이름을 가진 황녀는 없다.
시즌 1 마지막 화인 30화에서는 남편 쥘피카르와 함께 오스만 2세를 보호하려 하지만 남편과 오스만 2세 둘 다 죽어버리고 상심한 휘마샤는 황궁을 떠난다.
가공 인물로 추정. 무라트 3세의 딸들의 이름은 아이셰 술탄, 파트마 술탄, 파흐리예 술탄, 루키예 술탄으로 비슷한 시기 휘마샤라는 이름을 가진 황녀는 없다.
마흐피루즈 하티제 술탄의 아들. 오스만 제국의 16대 술탄.
어머니 마피루즈 술탄이 사피예가 일으킨 쿠데타 당시 목숨을 잃은 후 쾨셈이 양육했다. 쾨셈은 오스만을 친아들처럼 여기며 양육하지만 오스만은 자라나면서 쾨셈의 친아들인 메흐메트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아흐메트 1세 사후, 쾨셈과 할리메가 대립하는 사이에서 하마터면 할리메에게 죽을뻔했지만 쾨셈의 도움으로 무스타파를 끌어 내리고 황제로 즉위한다. 쾨셈은 자신의 친아들인 메흐메트를 황제로 올릴 수도 있었지만 오스만에게 제위를 양보한 것. 그러나 오스만은 황제가 된 후 쾨셈의 뒷통수를 때리고 그녀를 별궁에 유폐시켜버렸고 쾨셈의 정치 참여를 경계한다. 그 와중에 자신의 아들까지 태어나자 후계자 문제에 대한 초조함이 모락모락 피어 올라 쾨셈의 맏아들이자 자신의 배다른 형제인 메흐메트 황자까지 죽여 버리고 쾨셈과의 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한편 본인도 메흐메트의 처형 후 착찹해하며 넋두리를 한다.
이후 정치적 목적과 제국의 불안정 해소를 위해 이슬람 법관의 딸 아킬레를 배우자로 맞아들여 하렘 여인이 아닌 지체 높은 민간 여성을 하렘에 들이는 걸 못마땅해 하는 이슬람 법학자(울라마)들의 노여움을 산다.[32] 거기에다 폴란드와의 전쟁 중 예니체리가 매우 불순한 움직임을 보이게 되는데 오스만은 정작 역심을 품은 예니체리들 대신 애꿎은 다른 예니체리들을 처벌하는 오판을 저지른다. 오스만은 예니체리를 대신할 새로운 정예 부대 창설을 생각한다. 하지만 오스만에게 역심을 품은 예니체리들, 할리메 술탄과 손잡은 대재상 카라 다우드 파샤, 쾨셈과 연결된 예니체리들이 함께 정변을 일으키는 바람에 황궁에 난입한 예니체리들에게 추포당한다. 비록 쾨셈은 첫째 아들 메흐메트를 오스만의 손에 잃은 복수심에 칼을 갈고 있었기 때문에 오스만을 제위에서 몰아내는데에 동의하고 쿠데타의 한몫을 담당했지만 오스만을 기른 정이 있었기 때문에 예니체리 반란군을 피해 도망치던 오스만과 뒤늦은 화해를 한다. 이후 할리메 일당의 손에서 오스만을 살리려 애를 쓰지만 오스만은 예니체리들에게 험한꼴을 당한 뒤 20살이 되지 않은 젊은 나이로 살해당하고 자식들까지 살해 당한다. 살해당할 때 고환이 터져 끔살(본편에서는 해당장면 촬영 후 삭제) 당한 듯.
실제 역사에서의 행적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폴란드와의 전쟁 중에 예니체리가 불순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예니체리는 열심히 싸웠으나 아직 10대 청소년이었던 오스만이 요새에서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는 폴란드군을 상대로 무조건 닥돌을 명령하는 등 전략이 부실했기 때문에 고전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고환이 터져 죽었다는 것은 야사에서만 전해지는 사항이며, 시해당하기 직전에 쾨셈 술탄과 화해했다거나 하는 내용은 본작의 각색인 듯.
시즌 2. 17화 (47화)에서 자식들을 잃고 상심해 말을 타고 궁 밖을 나갔다가 숲속에서 기절한 무라트 4세 앞에 환영(幻影)의 모습으로 재등장.
어머니 마피루즈 술탄이 사피예가 일으킨 쿠데타 당시 목숨을 잃은 후 쾨셈이 양육했다. 쾨셈은 오스만을 친아들처럼 여기며 양육하지만 오스만은 자라나면서 쾨셈의 친아들인 메흐메트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아흐메트 1세 사후, 쾨셈과 할리메가 대립하는 사이에서 하마터면 할리메에게 죽을뻔했지만 쾨셈의 도움으로 무스타파를 끌어 내리고 황제로 즉위한다. 쾨셈은 자신의 친아들인 메흐메트를 황제로 올릴 수도 있었지만 오스만에게 제위를 양보한 것. 그러나 오스만은 황제가 된 후 쾨셈의 뒷통수를 때리고 그녀를 별궁에 유폐시켜버렸고 쾨셈의 정치 참여를 경계한다. 그 와중에 자신의 아들까지 태어나자 후계자 문제에 대한 초조함이 모락모락 피어 올라 쾨셈의 맏아들이자 자신의 배다른 형제인 메흐메트 황자까지 죽여 버리고 쾨셈과의 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한편 본인도 메흐메트의 처형 후 착찹해하며 넋두리를 한다.
이후 정치적 목적과 제국의 불안정 해소를 위해 이슬람 법관의 딸 아킬레를 배우자로 맞아들여 하렘 여인이 아닌 지체 높은 민간 여성을 하렘에 들이는 걸 못마땅해 하는 이슬람 법학자(울라마)들의 노여움을 산다.[32] 거기에다 폴란드와의 전쟁 중 예니체리가 매우 불순한 움직임을 보이게 되는데 오스만은 정작 역심을 품은 예니체리들 대신 애꿎은 다른 예니체리들을 처벌하는 오판을 저지른다. 오스만은 예니체리를 대신할 새로운 정예 부대 창설을 생각한다. 하지만 오스만에게 역심을 품은 예니체리들, 할리메 술탄과 손잡은 대재상 카라 다우드 파샤, 쾨셈과 연결된 예니체리들이 함께 정변을 일으키는 바람에 황궁에 난입한 예니체리들에게 추포당한다. 비록 쾨셈은 첫째 아들 메흐메트를 오스만의 손에 잃은 복수심에 칼을 갈고 있었기 때문에 오스만을 제위에서 몰아내는데에 동의하고 쿠데타의 한몫을 담당했지만 오스만을 기른 정이 있었기 때문에 예니체리 반란군을 피해 도망치던 오스만과 뒤늦은 화해를 한다. 이후 할리메 일당의 손에서 오스만을 살리려 애를 쓰지만 오스만은 예니체리들에게 험한꼴을 당한 뒤 20살이 되지 않은 젊은 나이로 살해당하고 자식들까지 살해 당한다. 살해당할 때 고환이 터져 끔살(본편에서는 해당장면 촬영 후 삭제) 당한 듯.
실제 역사에서의 행적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폴란드와의 전쟁 중에 예니체리가 불순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예니체리는 열심히 싸웠으나 아직 10대 청소년이었던 오스만이 요새에서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는 폴란드군을 상대로 무조건 닥돌을 명령하는 등 전략이 부실했기 때문에 고전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고환이 터져 죽었다는 것은 야사에서만 전해지는 사항이며, 시해당하기 직전에 쾨셈 술탄과 화해했다거나 하는 내용은 본작의 각색인 듯.
시즌 2. 17화 (47화)에서 자식들을 잃고 상심해 말을 타고 궁 밖을 나갔다가 숲속에서 기절한 무라트 4세 앞에 환영(幻影)의 모습으로 재등장.
할리메 술탄의 딸. 무스타파 황자의 누나. 15화에서 사피예 술탄의 쿠데타를 피해 은둔한 쾨셈을 유인, 밀고해 쾨셈이 죽을 뻔 했다. 이후 어머니 할리메 술탄과 합세해 쾨셈과 대립한다. 무스타파가 제위에서 쫓겨 날 당시 쾨셈측에게 납치당했고 덕분에 할리메에게 살해당하기 직전까지 몰렸던 쾨셈의 아들들은 극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30화에서 오스만 2세가 시해 당한 뒤 남동생 무스타파 1세가 복위하자 팔자가 펴는듯 했지만 자신의 남편인 대재상 카라 다우드 파샤는 어디론가 끌려가 처형되고 딜루바 본인은 쾨셈의 밀명을 받은 시녀에게 궁전 복도에서 암살당한다.
여러모로 재수 없는 짓을 하지만 남동생 무스타파를 걱정하는 애틋한 마음을 자주 보이고 남편과의 관계도 괜찮다. 애초에 어머니가 눈여겨 둔 신랑감을 제쳐두고 결혼한 사이.
여러모로 재수 없는 짓을 하지만 남동생 무스타파를 걱정하는 애틋한 마음을 자주 보이고 남편과의 관계도 괜찮다. 애초에 어머니가 눈여겨 둔 신랑감을 제쳐두고 결혼한 사이.
딜루바 술탄의 남편. 무스타파 1세 제위 시절 오스만 제국의 대재상. 큰 야망을 가지고 있으며 할리메, 딜루바와 손잡고 있다. 쾨셈이 무스타파 1세를 제위에서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을 당시 할리메의 명으로 쾨셈의 아들들을 모두 죽이려 했지만 사랑하는 아내 딜루바가 인질로 잡혀 있어서 할리메의 명을 따를 수 없었다. 이후 자기편 예니체리들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켜 오스만 2세를 살해하고 무스타파 1세를 복위시킨다. 그러나 정변 도중 납치, 감금 해놨던 무라트 황자 등 쾨셈의 아들 4명을 죽이는데 실패해버리고 제국 관리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바람에 무스타파 1세의 어명을 빙자한 쾨셈 술탄의 명령으로 체포된 후 감옥에서 처형당한다.
쾨셈의 편에 있는 관료. 쾨셈 술탄 시기에 대재상 자리에 오른 사람.
2.2. 시즌 2 주연 및 등장인물
쾨셈의 두번째 아들. 오스만제국 17대 술탄. 어린 나이에 형제들과 함께 여러가지 험한 일을 겪는데 무스타파 1세가 즉위해 있을 당시에는 할리메의 명으로 그의 형제들과 함께 살해당할 뻔 했으나 살해 당하기 직전 쾨셈의 쿠데타 성공으로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다. 이후 이복 형 오스만 2세가 자신의 친형 메흐메트를 살해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고 3명의 형제들과 함께 방 안에 감금 된다. 그러다 오스만 2세가 살해당할 즈음 할리메 술탄 세력에게 나머지 남동생 3명들과 함께 유괴된 후 불에 타 죽을 뻔했지만 황자들이 감금된 장소까지 달려온 뷜뷜 아아에게 구출된다. 무스타파 1세가 폐위당하고 쾨셈의 정적들이 모두 살해 당한 뒤 제국의 권력을 거머쥔 쾨셈과 무라트가 누대에서 쾨셈과 제위에 오른 무라트의 이름을 연호하는 군중들을 바라보며 웃는 장면으로 시즌 1 종료.
그 후 10년이 지난 1632년, 21살의 청년으로 성장한 무라트 4세는 시즌 2의 사실상 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시즌 2 부제목부터 바그다드의 정복자 무라트 4세(Bağdat Fatihi IV. Murad)다.[33] 이 무렵 무라트 4세는 10년간 섭정 자격으로 제국의 실권자로 군림한 어머니 쾨셈과의 갈등을 빚고 있으며 전 시즌 말미의 예니체리 반란에 이어 이번에는 시즌 2 첫화인 31화부터 시파히가 노골적으로 불온한 행동을 하고 있다.[34] 이복형 오스만 2세가 예니체리 반란군들에게 끌려 다니며 능욕 당하던 기억은 무라트 4세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교황청을 중심으로 서유럽의 기독교 세력들도 음모를 꾸미고 있는 상황. 여러가지 걸림돌이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 무라트 4세는 제국의 실권을 찾고 망가진 제국을 다시금 위대하게 만들고자 한다.
거의 무협지 수준의 무력을 구사한다. 1대 다수의 칼싸움에서 적들을 모두 죽이고 한눈에 봐도 엄청 무거워 보이는 둔기를 휘두르지를 않나 낙법으로 적을 메어쳐서 성벽밖으로 날려 버린다. 사파비 페르시아 사신이 바친 아주 크고 무거운 활 시위를 아무도 걸지 못했는데 무라트 4세는 매우 손쉽게 활 시위를 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로도 무라트 4세는 수십 Kg에 달하는 커다란 둔기를 휘둘렀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그 무기가 현존한다고 하니 나름대로 고증이 잘된것인지도. 아역 배우와 성년 배우 양쪽 모두 외모가 훤칠해 비쥬얼적인 면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다만 성격은 다혈질이라 호불호가 갈린다. 민간인으로 위장한채 사람들이 모이는 곳들을 암행하며 시찰하는것을 즐기는데, 부패한 법관에게 뇌물 보따리 주는 척하다가 칼 뽑아 들어 뇌물 받으려는 손 자른다던가 술마시는 남자에게 "원없이 술마셔보라."고 술통을 통째로 입에 들이 붓는(...)[35] 등 몸소 화끈한 모습들을 여러 차례 보여준다. 그러면서 암행어사 출두요 하는 식으로 정체 밝히며 좌중을 데꿀멍 시키는건 덤.
13화에 그 유명한 금주령과 금연령을 포고한다. 시난 파샤와 반역 세력들이 개입한 1633년 이스탄불 대화재 사건이 발생한 이후 생긴 조치. 아울러 카페를 금지하고 야간 기도 후 두명 이상 무리지어 길거리를 다니거나 등잔, 촛불등을 켜지 않고 밤거리를 돌아 다니는것 역시 금지하고 어길 시 처형하겠다고 밝힌다. 파리아와의 사랑, 황권을 강화하겠다는 명분, 누군가 자신을 해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그 화살은 형제들과 어머니로 향하고 그 불안과 초조함, 증오가 마음을 좀먹어 가게 된다.
황위의 부자 상속을 천명해 카슴, 이브라힘 형제들을 이용한 모후의 정치 참여를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지만 황위를 물려주려던 아들 셀림과 쉴레이만이 귈바하르의 음모에 휘말려 죽으면서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다 무라트는 중병에 걸리고 그 직후 쾨셈이 자신을 직접 폐위하고 유폐시키려던 음모가 발각되자 카슴을 처형해버린다. 자신이 죽은 후에 모후가 권력을 쥐는건 못보겠다며 황실이 망하는 한이 있어도 황실에 하나 남은 후계자인 이브라힘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죽어가면서도 하나 남은 형제인 이브라힘을 죽이려고 한다.
26화에서 어머니 쾨셈에게 증오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나온다. 청소년 시절 무라트는 무사(موسى)라는 또래 소년을 좋아했고[36] 무사와 우정을 쌓으면서 자신이 성인이 되면 무사와 함께 국정을 운영하며 최종적으로는 무사를 대재상으로 임명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소년 무라트는 섭정을 하고 있던 쾨셈에게 이제 자신이 국정 회의(디반)를 직접 열어 스스로 제국을 통치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고 화를 낼줄 알았던 쾨셈은 웃으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그의 소망과 달리 국정에서 그의 말은 하나도 먹혀들지 않았고 여전히 쾨셈의 뜻대로 흘러간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무사는 쾨셈이 폭동을 일으킨 무리에게 넘겨 죽게 만들었던 것.
무라트 4세가 형제들을 한명씩 죽이고 하나 남은 이브라힘까지 죽이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시즌 2도 그 이야기에 기반을 뒀다. 확실히 군사적으로는 명군의 자질을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성격에는 문제가 있는 편. 무라트 4세는 엄격한 금연 정책으로 유명하지만 그 동시에 바닥까지 추락한 황제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사파비 왕조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 후 10년이 지난 1632년, 21살의 청년으로 성장한 무라트 4세는 시즌 2의 사실상 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시즌 2 부제목부터 바그다드의 정복자 무라트 4세(Bağdat Fatihi IV. Murad)다.[33] 이 무렵 무라트 4세는 10년간 섭정 자격으로 제국의 실권자로 군림한 어머니 쾨셈과의 갈등을 빚고 있으며 전 시즌 말미의 예니체리 반란에 이어 이번에는 시즌 2 첫화인 31화부터 시파히가 노골적으로 불온한 행동을 하고 있다.[34] 이복형 오스만 2세가 예니체리 반란군들에게 끌려 다니며 능욕 당하던 기억은 무라트 4세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교황청을 중심으로 서유럽의 기독교 세력들도 음모를 꾸미고 있는 상황. 여러가지 걸림돌이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 무라트 4세는 제국의 실권을 찾고 망가진 제국을 다시금 위대하게 만들고자 한다.
거의 무협지 수준의 무력을 구사한다. 1대 다수의 칼싸움에서 적들을 모두 죽이고 한눈에 봐도 엄청 무거워 보이는 둔기를 휘두르지를 않나 낙법으로 적을 메어쳐서 성벽밖으로 날려 버린다. 사파비 페르시아 사신이 바친 아주 크고 무거운 활 시위를 아무도 걸지 못했는데 무라트 4세는 매우 손쉽게 활 시위를 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로도 무라트 4세는 수십 Kg에 달하는 커다란 둔기를 휘둘렀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그 무기가 현존한다고 하니 나름대로 고증이 잘된것인지도. 아역 배우와 성년 배우 양쪽 모두 외모가 훤칠해 비쥬얼적인 면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다만 성격은 다혈질이라 호불호가 갈린다. 민간인으로 위장한채 사람들이 모이는 곳들을 암행하며 시찰하는것을 즐기는데, 부패한 법관에게 뇌물 보따리 주는 척하다가 칼 뽑아 들어 뇌물 받으려는 손 자른다던가 술마시는 남자에게 "원없이 술마셔보라."고 술통을 통째로 입에 들이 붓는(...)[35] 등 몸소 화끈한 모습들을 여러 차례 보여준다. 그러면서 암행어사 출두요 하는 식으로 정체 밝히며 좌중을 데꿀멍 시키는건 덤.
13화에 그 유명한 금주령과 금연령을 포고한다. 시난 파샤와 반역 세력들이 개입한 1633년 이스탄불 대화재 사건이 발생한 이후 생긴 조치. 아울러 카페를 금지하고 야간 기도 후 두명 이상 무리지어 길거리를 다니거나 등잔, 촛불등을 켜지 않고 밤거리를 돌아 다니는것 역시 금지하고 어길 시 처형하겠다고 밝힌다. 파리아와의 사랑, 황권을 강화하겠다는 명분, 누군가 자신을 해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그 화살은 형제들과 어머니로 향하고 그 불안과 초조함, 증오가 마음을 좀먹어 가게 된다.
황위의 부자 상속을 천명해 카슴, 이브라힘 형제들을 이용한 모후의 정치 참여를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지만 황위를 물려주려던 아들 셀림과 쉴레이만이 귈바하르의 음모에 휘말려 죽으면서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다 무라트는 중병에 걸리고 그 직후 쾨셈이 자신을 직접 폐위하고 유폐시키려던 음모가 발각되자 카슴을 처형해버린다. 자신이 죽은 후에 모후가 권력을 쥐는건 못보겠다며 황실이 망하는 한이 있어도 황실에 하나 남은 후계자인 이브라힘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죽어가면서도 하나 남은 형제인 이브라힘을 죽이려고 한다.
26화에서 어머니 쾨셈에게 증오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나온다. 청소년 시절 무라트는 무사(موسى)라는 또래 소년을 좋아했고[36] 무사와 우정을 쌓으면서 자신이 성인이 되면 무사와 함께 국정을 운영하며 최종적으로는 무사를 대재상으로 임명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소년 무라트는 섭정을 하고 있던 쾨셈에게 이제 자신이 국정 회의(디반)를 직접 열어 스스로 제국을 통치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고 화를 낼줄 알았던 쾨셈은 웃으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그의 소망과 달리 국정에서 그의 말은 하나도 먹혀들지 않았고 여전히 쾨셈의 뜻대로 흘러간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무사는 쾨셈이 폭동을 일으킨 무리에게 넘겨 죽게 만들었던 것.
무라트 4세가 형제들을 한명씩 죽이고 하나 남은 이브라힘까지 죽이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시즌 2도 그 이야기에 기반을 뒀다. 확실히 군사적으로는 명군의 자질을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성격에는 문제가 있는 편. 무라트 4세는 엄격한 금연 정책으로 유명하지만 그 동시에 바닥까지 추락한 황제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사파비 왕조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명목상) 헝가리의 개신교도 국왕이자 트란실바니아 공작 베들렌 가보르(Bethlen Gábor)[37] 의 딸. 작중에서는 파리아 공주(Prenses Farya)라고 불리고 있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 카탈린이 여공작 자리에서 쫓겨 나는 등 공국 지배권을 놓고 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해 온다. 아버지 베들렌 가보르가 30년 전쟁 당시 신교도들을 이끌고 합스부르크 가문과 맞섰던 만큼 가톨릭 세력과는 척을 진 사이.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교황의 조카를 암살한 암살자로 지목 받고 있다. 때문에 이스탄불에 도착하자 마자 오스만 군인으로 위장해 있던 카톨릭과 연계된 역도들의 습격을 받아 시녀인 마담 마가렛을 제외한 수하들이 모두 죽어 버렸다. 파리아는 무라트 4세에게 교황과 손잡은 자신의 숙부가 아버지를 시해하고 자신과 어머니는 그들의 손아귀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하는데....
무라트 4세의 호의 아래에서 오스만의 황궁에서 지내면서 무라트 4세와 사랑에 빠지고 무라트 4세의 여동생 아티케 술탄과도 친해진다. 그러나 무라트 4세와 사랑에 빠지면서 무라트 4세 배우자인 아이셰 술탄의 질시와 증오를 받게 되고 처음에는 망명객으로서 환대해 주던 쾨셈 술탄도 황실의 균형을 흔드는 파리아의 등장을 못마땅해 한다. 인질로 잡혀 있는 어머니 카탈린 여공작을 구하기 위해 속이 뻔히 보이는 이스트반 트란실바니아 대공의 음모에 휘말려 무라트 4세 암살범으로 몰려 감옥에 갖히기도 한다. 첫눈에 반한 파리아가 자신을 해하려 했다는 배신감에 파리아의 뺨까지 때린 무라트 4세였지만 사랑에 빠진 무라트 4세는 차마 그녀를 죽일 수 없었고 파리아를 용서 한다. 대신 파리아가 가질 수 있었던 트란실바니아의 통치권은 이스트반을 처단한 보스니아의 베일레르베이(대총독)인 아바자 메흐메트 파샤에게 넘어 간다. 파리아는 격하게 반발하지만 목숨이 무라트 4세에게 달려있으니 어쩌겠나.
트란실바니아에서 카탈린 여공작을 겁박하던 이스트반 대공이 아바자 메흐메트 파샤에 의해 제거된 후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어 어머니, 마담 마가렛과 함께 트란실바니아로 향하는 마차를 타고 오스만 제국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무라트 4세는 파리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고, 파리아 일행은 파리아를 잊지 못해 홀로 말을 타고 모녀가 탄 마차를 쫓아온 무라트 4세를 다시 만난다. 너없이는 못살겠다고 이스탄불에 남으라고 요구하는 무라트 4세의 요구에 결국 파리아는 어머니의 동의로 무라트 4세와 함께 다시 톱카프 궁전으로 돌아오게 되고 파리아의 오스만 황실 생활이 시작된다. 파리아가 영원히 떠나는 줄 알고 기뻐하던 아이셰 술탄은 황궁으로 돌아온 파리아 보자 눈이 뒤집어 지고(...) 쾨셈 술탄 역시 미천한 신분의 여인이 아닌 자유인, 그것도 고귀한 신분의 왕녀를 배우자로 두겠다는 무라트 4세의 결정이 하렘의 법도를 어기는 것이기에 반발하며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한다.
무라트 4세에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소유욕과 훗날 황자를 낳아 태후 자리를 꿰어 차겠다는 야심을 보여줘 처음의 호의적인 반응과 달리 시청자들 평가는 점점 집안 망치는 X년으로 흘러가는 듯. 아들과 딸을 잃고 상심한 무라트 4세에게 쉴레이만, 셀림 황자를 낳아 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쾨셈 술탄의 명령을 받은 케만케쉬 카라 무스타파 파샤에게 취침 도중 암살 당한다. 형제인 카슴과 이브라힘의 목숨과 신변을 위협하고 쾨셈을 핍박하는 무라트 4세에 대한 쾨셈 술탄의 복수로서 무라트 4세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암살해 버린 것. 쾨셈 술탄은 바예지트 황자의 모후인 귈바하르 술탄에게 파리아 암살 혐의를 뒤집어 씌운다. 시즌 2의 히로인 치고는 상당히 허무하게 하차.
무라트 4세의 호의 아래에서 오스만의 황궁에서 지내면서 무라트 4세와 사랑에 빠지고 무라트 4세의 여동생 아티케 술탄과도 친해진다. 그러나 무라트 4세와 사랑에 빠지면서 무라트 4세 배우자인 아이셰 술탄의 질시와 증오를 받게 되고 처음에는 망명객으로서 환대해 주던 쾨셈 술탄도 황실의 균형을 흔드는 파리아의 등장을 못마땅해 한다. 인질로 잡혀 있는 어머니 카탈린 여공작을 구하기 위해 속이 뻔히 보이는 이스트반 트란실바니아 대공의 음모에 휘말려 무라트 4세 암살범으로 몰려 감옥에 갖히기도 한다. 첫눈에 반한 파리아가 자신을 해하려 했다는 배신감에 파리아의 뺨까지 때린 무라트 4세였지만 사랑에 빠진 무라트 4세는 차마 그녀를 죽일 수 없었고 파리아를 용서 한다. 대신 파리아가 가질 수 있었던 트란실바니아의 통치권은 이스트반을 처단한 보스니아의 베일레르베이(대총독)인 아바자 메흐메트 파샤에게 넘어 간다. 파리아는 격하게 반발하지만 목숨이 무라트 4세에게 달려있으니 어쩌겠나.
트란실바니아에서 카탈린 여공작을 겁박하던 이스트반 대공이 아바자 메흐메트 파샤에 의해 제거된 후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어 어머니, 마담 마가렛과 함께 트란실바니아로 향하는 마차를 타고 오스만 제국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무라트 4세는 파리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고, 파리아 일행은 파리아를 잊지 못해 홀로 말을 타고 모녀가 탄 마차를 쫓아온 무라트 4세를 다시 만난다. 너없이는 못살겠다고 이스탄불에 남으라고 요구하는 무라트 4세의 요구에 결국 파리아는 어머니의 동의로 무라트 4세와 함께 다시 톱카프 궁전으로 돌아오게 되고 파리아의 오스만 황실 생활이 시작된다. 파리아가 영원히 떠나는 줄 알고 기뻐하던 아이셰 술탄은 황궁으로 돌아온 파리아 보자 눈이 뒤집어 지고(...) 쾨셈 술탄 역시 미천한 신분의 여인이 아닌 자유인, 그것도 고귀한 신분의 왕녀를 배우자로 두겠다는 무라트 4세의 결정이 하렘의 법도를 어기는 것이기에 반발하며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한다.
무라트 4세에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소유욕과 훗날 황자를 낳아 태후 자리를 꿰어 차겠다는 야심을 보여줘 처음의 호의적인 반응과 달리 시청자들 평가는 점점 집안 망치는 X년으로 흘러가는 듯. 아들과 딸을 잃고 상심한 무라트 4세에게 쉴레이만, 셀림 황자를 낳아 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쾨셈 술탄의 명령을 받은 케만케쉬 카라 무스타파 파샤에게 취침 도중 암살 당한다. 형제인 카슴과 이브라힘의 목숨과 신변을 위협하고 쾨셈을 핍박하는 무라트 4세에 대한 쾨셈 술탄의 복수로서 무라트 4세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암살해 버린 것. 쾨셈 술탄은 바예지트 황자의 모후인 귈바하르 술탄에게 파리아 암살 혐의를 뒤집어 씌운다. 시즌 2의 히로인 치고는 상당히 허무하게 하차.
쾨셈 술탄의 딸. 무라트 4세의 누나다. 시즌 2 첫화인 31화에서 남편인 대재상 토팔 레제프 파샤가 역모를 꾸미다가 무라트 4세의 철퇴에 맞아 죽어버리는 바람에 슬픔에 빠진다. 실라흐타르 무스타파 파샤가 마굿간에서 말발굽에 치일 뻔한 게브헤르한의 아들을 구해준 일을 계기로 실라흐타르에게 묘한 감정을 품게 된다.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며 실라흐타르에 대한 사랑이 깊어져 가지만 도중 동생 아티케 역시 실라흐타르에게 마음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되어 혼란스러워 한다.
45화, 46화에서 아이셰 술탄의 최후와 더불어 역사왜곡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실라흐타르와의 삼각관계에서 소외된 게브헤르한이 실라흐타르와 아티케의 결혼식에서 자살해 버린 것. 문제는 실제 역사보다 훨씬 일찍 죽은 것은 물론 실제로는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즌 1의 초창기 아흐메트 1세가 13살 소년이 아닌 청년으로 처음 등장한 거나 오스만 2세의 모후인 마흐피루즈 하티제 술탄이 실제 역사보다 일찍 죽은 건 각색 수준이라서 그래도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역사 왜곡의 정도가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실제 역사에서 이 이후로 눈에 띌 만한 행적을 보이지 않았으니 드라마에서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한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을 예정이었다는 것 정도랄까.
45화, 46화에서 아이셰 술탄의 최후와 더불어 역사왜곡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실라흐타르와의 삼각관계에서 소외된 게브헤르한이 실라흐타르와 아티케의 결혼식에서 자살해 버린 것. 문제는 실제 역사보다 훨씬 일찍 죽은 것은 물론 실제로는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즌 1의 초창기 아흐메트 1세가 13살 소년이 아닌 청년으로 처음 등장한 거나 오스만 2세의 모후인 마흐피루즈 하티제 술탄이 실제 역사보다 일찍 죽은 건 각색 수준이라서 그래도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역사 왜곡의 정도가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실제 역사에서 이 이후로 눈에 띌 만한 행적을 보이지 않았으니 드라마에서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한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을 예정이었다는 것 정도랄까.
쾨셈 술탄의 막내 딸. 파리아에게 호감을 가지고 곧 친해진다. 실라흐타르 무스타파 파샤를 마음에 두고 있으며 그 감정을 언니 게브헤르한에게 고백한다. 이후 자매의 삼각 관계는 심각해져 간다.
사랑을 쟁취했지만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사랑의 결말이 별로 좋지 않았고 사랑하던 실라흐타르와 친구 파리아가 어머니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자 어머니와 사이가 멀어져 버린다. 이후 이브라힘을 무라트 4세로부터 지키는데 힘을 쓴다..
사랑하던 연인과 친구는 물론 나중에는 남매인 이브라힘까지 어머니의 의도대로 살해당한 후 모후와의 관계는 끝장난다. 연인과 친구가 어머니에 의해 죽었는데도 꾹 참고 어머니 대접을 해준걸 보면 아티케가 거의 보살 수준.
사랑을 쟁취했지만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사랑의 결말이 별로 좋지 않았고 사랑하던 실라흐타르와 친구 파리아가 어머니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자 어머니와 사이가 멀어져 버린다. 이후 이브라힘을 무라트 4세로부터 지키는데 힘을 쓴다..
사랑하던 연인과 친구는 물론 나중에는 남매인 이브라힘까지 어머니의 의도대로 살해당한 후 모후와의 관계는 끝장난다. 연인과 친구가 어머니에 의해 죽었는데도 꾹 참고 어머니 대접을 해준걸 보면 아티케가 거의 보살 수준.
무라트 4세의 경호를 맡고 있는 보좌관이자 무라트 4세의 벗. 실라흐타르(Silahtar)는 황제의 기병 근위대인 카프쿨루 시파히(Kapikulu Sipahi) 부대 가운데 하나로, 그 부대의 최고 지휘관인 실라타르 아아(Silahtar Aga)는 황제의 무술 스승 겸 보좌관[38] 을 겸했다. 초반부터 여자 셋(게브헤르한 술탄, 아티케 술탄, 에스테르 하툰)과 엮이고 있다. 결국 게브헤르한, 아티케 자매와 삼각 관계로 흘러간다.
동로마 제국의 태후이자 여제였던 이리니가 자신의 아들인 콘스탄티노스 6세를 폐위하고 눈을 뽑은 일화를 무라트 4세에게 들려주는데 이게 모후를 향한 무라트 4세의 의심과 불안감이 더욱 증폭되는 계기가 된다. 그 후 자신의 다른 아들들을 위협하는 무라트 4세에 앙갚음 하려던 쾨셈 술탄의 명을 받은 케만케쉬에게 갈라타 탑에서 둔기로 암살 당한다. 베들렌 파리아처럼 좀 허무한 최후.
실존 인물을 적당히 각색한것으로 추정. 실제 역사의 실라흐타르가 케만케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건 맞지만 실라흐타르가 살해당한건 무라트 4세 때가 아닌 이브라힘 시기.
동로마 제국의 태후이자 여제였던 이리니가 자신의 아들인 콘스탄티노스 6세를 폐위하고 눈을 뽑은 일화를 무라트 4세에게 들려주는데 이게 모후를 향한 무라트 4세의 의심과 불안감이 더욱 증폭되는 계기가 된다. 그 후 자신의 다른 아들들을 위협하는 무라트 4세에 앙갚음 하려던 쾨셈 술탄의 명을 받은 케만케쉬에게 갈라타 탑에서 둔기로 암살 당한다. 베들렌 파리아처럼 좀 허무한 최후.
실존 인물을 적당히 각색한것으로 추정. 실제 역사의 실라흐타르가 케만케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건 맞지만 실라흐타르가 살해당한건 무라트 4세 때가 아닌 이브라힘 시기.
알바니아 출신 관료. 쾨셈 술탄의 측근 중 한명. 실제 역사에서는 무라드 4세 치세 말부터 이브라힘 치세 전반기까지 제국의 대재상을 지냈던 인물이다. 무라트 4세의 측근인 실라흐타르와 대척점에 있는 쾨셈의 남자. 쾨셈을 보필하는 환관 하즈 아아는 케만케쉬와 쾨셈의 관계을 보면서 쾨셈 이전에 모셨던 한단 술탄과 데르비쉬 무스타파 파샤의 부적절하고 위험한 관계를 다시 떠올리며 케만케쉬를 너무 가까이 두지 말라고 조언하지만 쾨셈은 이를 질책으로 일축한다. 케만케쉬 역시 그 어떤 언급도 없지만 쾨셈을 거의 흠모하는게 아닐까 할 정도로 그녀를 따른다. 나중에 이는 실제 역사에서 케만케쉬의 좋지 않은 최후로 현실이 되어야 했으나...
이브라힘 즉위 후 몇년간 대재상으로 권세를 누리고 있었으나 간신 진지 호자의 음모와 투르한 술탄의 공작에 빠져 이브라힘에게 역사대로 처형당한다. 그런데 사형 직전 델리 휘세인 파샤가 케만케쉬를 빼돌려 다른 사람이 케만케쉬 대신 처형당하고 케만케쉬는 살았다![39] 그 길로 은둔한 케만케쉬는 쾨셈 술탄의 이브라힘 1세 폐위에 가담하게 되고 죽은줄로만 알았던 케만케쉬가 모습을 드러내자 이브라힘과 진지 호자는 기겁한다.
결국 쾨셈을 연모하는건 사실이었다. 마지막 화에서 메흐메트 4세를 폐위하려던 쾨셈의 역모에 행동대장으로 가담했다가 분전 중 목숨을 잃는다. 죽을때 한손에는 쾨셈이 정원에서 땄던 장미꽃을 쥐고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쾨셈 술탄의 측근이 아니라 차라리 정적(政敵)에 더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는 무라드 4세 치세 말기인 1638년부터 이브라힘 치세 전반기인 1644년까지 재상을 지낸 인물로서, 황제 이브라힘이 가장 신임하는 신하로 활약했다. 스스로가 정신병에 걸려 있음을 자각한 황제 이브라힘은 무스타파 파샤에게 정치를 도맡게 했고, 이브라힘 자신은 되도록 자주 시찰을 다니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부분은 무스타파에게 시정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무스타파 파샤의 지위를 시기하는 다른 관료들, 무스타파가 살아 있는 한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게 된다고 판단한 쾨셈 술탄에 의해 처형되고[40] , 재상 자리는 술탄자데 메메드 파샤가 이어받았다[41] .
이브라힘 즉위 후 몇년간 대재상으로 권세를 누리고 있었으나 간신 진지 호자의 음모와 투르한 술탄의 공작에 빠져 이브라힘에게 역사대로 처형당한다. 그런데 사형 직전 델리 휘세인 파샤가 케만케쉬를 빼돌려 다른 사람이 케만케쉬 대신 처형당하고 케만케쉬는 살았다![39] 그 길로 은둔한 케만케쉬는 쾨셈 술탄의 이브라힘 1세 폐위에 가담하게 되고 죽은줄로만 알았던 케만케쉬가 모습을 드러내자 이브라힘과 진지 호자는 기겁한다.
결국 쾨셈을 연모하는건 사실이었다. 마지막 화에서 메흐메트 4세를 폐위하려던 쾨셈의 역모에 행동대장으로 가담했다가 분전 중 목숨을 잃는다. 죽을때 한손에는 쾨셈이 정원에서 땄던 장미꽃을 쥐고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쾨셈 술탄의 측근이 아니라 차라리 정적(政敵)에 더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는 무라드 4세 치세 말기인 1638년부터 이브라힘 치세 전반기인 1644년까지 재상을 지낸 인물로서, 황제 이브라힘이 가장 신임하는 신하로 활약했다. 스스로가 정신병에 걸려 있음을 자각한 황제 이브라힘은 무스타파 파샤에게 정치를 도맡게 했고, 이브라힘 자신은 되도록 자주 시찰을 다니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부분은 무스타파에게 시정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무스타파 파샤의 지위를 시기하는 다른 관료들, 무스타파가 살아 있는 한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게 된다고 판단한 쾨셈 술탄에 의해 처형되고[40] , 재상 자리는 술탄자데 메메드 파샤가 이어받았다[41] .
무라트 4세의 정실 배우자. 슬하에 아들까지 두고 있었으나 어느날 갑자기 황궁에 등장한 파리아 때문에 무라트 4세의 총애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무라트의 관심을 빼앗아간 파리아를 증오 한다.
눈엣 가시같은 파리아가 무라트와의 사랑 때문에 본국으로의 귀환 대신 아예 하렘에 들어와 사는것을 선택하자 귈바하르 술탄과 손을 잡는다. 파리아의 아이까지 죽이는 악행을 저지른다.
그러나 결국 무라트 4세에게 버림받은건 물론이고 그녀의 악행들로 인해 책망받게 된다. 결국 46화(시즌 2 16화)에서 자신은 평생 무라트 4세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라트는 자신을 배신하고 상처만 줬다며 무라트 4세를 원망하는 편지를 남기고 아들 아흐메트 황자, 딸 한자데 황녀[42] 와 함께 음독 자살해 버리는데... 실제 역사속의 아이셰 술탄보다 수십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버린 제작진의 역사 왜곡이다. 아흐메트 황자를 포함한 무라트 4세의 아들들이 어린 나이로 죽은건 맞지만 꽤나 오래 살았던 한자데까지 죽여버린 건 덤. 그냥 별거하고 아마시아로 가버리는 이야기로 끝내도 되는데 굳이 죽을 이유가 있는지 의문.[43]
눈엣 가시같은 파리아가 무라트와의 사랑 때문에 본국으로의 귀환 대신 아예 하렘에 들어와 사는것을 선택하자 귈바하르 술탄과 손을 잡는다. 파리아의 아이까지 죽이는 악행을 저지른다.
그러나 결국 무라트 4세에게 버림받은건 물론이고 그녀의 악행들로 인해 책망받게 된다. 결국 46화(시즌 2 16화)에서 자신은 평생 무라트 4세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라트는 자신을 배신하고 상처만 줬다며 무라트 4세를 원망하는 편지를 남기고 아들 아흐메트 황자, 딸 한자데 황녀[42] 와 함께 음독 자살해 버리는데... 실제 역사속의 아이셰 술탄보다 수십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버린 제작진의 역사 왜곡이다. 아흐메트 황자를 포함한 무라트 4세의 아들들이 어린 나이로 죽은건 맞지만 꽤나 오래 살았던 한자데까지 죽여버린 건 덤. 그냥 별거하고 아마시아로 가버리는 이야기로 끝내도 되는데 굳이 죽을 이유가 있는지 의문.[43]
무라트 4세의 이복 동생. 귈바하르 술탄의 아들.[44] 어린 시절 무라트 4세 및 이복 형제들과 동고동락하며 생사를 넘나든 턱에 형제간 우애가 있지만 그 자신의 미묘한 정치적 위치와 모후 귈바하르 술탄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점점 기묘하게 흘러간다. 자신을 황위에 올리려는 모후 귈바하르와 시난 파샤와 가까워 지며 그의 역모에 휘말리게 된다.
자신과 썸을 타던 민간 여인 칼리카를 무라트 4세의 명령으로 직접 처형하게 되면서 이복형을 원망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결국 사파비 왕조 원정 동행길(시즌 2 19화 : 49화)에서 자신을 따르는 예니체리들과 함께 무라트 4세 암살 시도를 하지만 이미 무라트 4세는 이복 동생의 움직임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45] 암살이 성공한 것으로 착각하고 어린 시절 형제의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있던 바예지트 앞에 죽은줄 알았던 무라트 4세가 떡하니 나타나고 그 후 무라트 4세는 바예지트를 옆에 세워 놓은 후 바예지트가 보고 있는 가운데에서 암살 역모에 가담한 예니체리들을 체포해 손수 처형해 버린다.(시즌 2 20화 : 50화) 이스탄불 황궁으로 돌아간 뒤 바예지트를 처형하라는 무라트 4세의 편지를 받은 쾨셈 술탄의 명령으로 농아 처형자들에게 목이 졸려 처형 당한다.
처형당하기 전 바예지트는 쾨셈 술탄에게 친어머니 귈바하르는 살려줄것을 부탁하고 쾨셈은 귈바하르를 살려주겠다고 약속한다. 비록 친아들은 아니지만 기른 정이 있고 자신의 친아들들과 동고동락하던 황자를 처형하는데 기분이 좋을리가 있나. 쾨셈은 바예지트가 죽어가는걸 차마 바라 보지 못하고 뒤돌아서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데 창 밖에서는 사파비 왕조와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축제가 벌어지고 있어 불꽃놀이 폭죽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는 대조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자신과 썸을 타던 민간 여인 칼리카를 무라트 4세의 명령으로 직접 처형하게 되면서 이복형을 원망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결국 사파비 왕조 원정 동행길(시즌 2 19화 : 49화)에서 자신을 따르는 예니체리들과 함께 무라트 4세 암살 시도를 하지만 이미 무라트 4세는 이복 동생의 움직임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45] 암살이 성공한 것으로 착각하고 어린 시절 형제의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있던 바예지트 앞에 죽은줄 알았던 무라트 4세가 떡하니 나타나고 그 후 무라트 4세는 바예지트를 옆에 세워 놓은 후 바예지트가 보고 있는 가운데에서 암살 역모에 가담한 예니체리들을 체포해 손수 처형해 버린다.(시즌 2 20화 : 50화) 이스탄불 황궁으로 돌아간 뒤 바예지트를 처형하라는 무라트 4세의 편지를 받은 쾨셈 술탄의 명령으로 농아 처형자들에게 목이 졸려 처형 당한다.
처형당하기 전 바예지트는 쾨셈 술탄에게 친어머니 귈바하르는 살려줄것을 부탁하고 쾨셈은 귈바하르를 살려주겠다고 약속한다. 비록 친아들은 아니지만 기른 정이 있고 자신의 친아들들과 동고동락하던 황자를 처형하는데 기분이 좋을리가 있나. 쾨셈은 바예지트가 죽어가는걸 차마 바라 보지 못하고 뒤돌아서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데 창 밖에서는 사파비 왕조와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축제가 벌어지고 있어 불꽃놀이 폭죽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는 대조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무라트 4세의 동생이자 이브라힘 황자의 형. 초반부에 하렘의 여인(=황제의 여인) 엘라노르를 건드리는 대형 사고를 친다.
바예지트 황자의 역모 시도와 처형 후 불안에 휩싸인 무라트 4세의 명령으로 동생 이브라힘과 함께 감금당한다. 그러다 무라트 4세가 병석에 누워 있는 동안 예니체리의 동요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건 쾨셈 술탄의 주장에 따라 모후, 동생과 함께 예니체리 병영을 방문하는데 이때 입고 있는 옷이 영락없는 황제의 의상. 거기에 쾨셈이 준 부황 아흐메트 1세의 반지까지 끼고 있다.[46] 예니체리들이 모인 자리에서 쾨셈은 황제가 병석에 누워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차도가 없으니 황제가 죽으면 카슴이 옥좌를 물려받게되니 카슴에게 충성하라고 말하고 예니체리들이 그에 동의하며 "쾨셈 술탄 만세! 카슴 황제 폐하 만세"를 외칠때 병석에서 일어난 무라트 4세가 씩씩거리며 예니체리들이 모인곳으로 들어온다. 졸지에 반역에 가담한 모양새가 된 카슴 이브라힘 형제들은 다시 감금되고 궁지에 몰린 쾨셈이 직접 무라트 4세를 폐위하려던 역모가 실패로 돌아가버린 후 무라트 4세가 보낸 농아 암살자들에게 처형당한다..
바예지트 황자의 역모 시도와 처형 후 불안에 휩싸인 무라트 4세의 명령으로 동생 이브라힘과 함께 감금당한다. 그러다 무라트 4세가 병석에 누워 있는 동안 예니체리의 동요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건 쾨셈 술탄의 주장에 따라 모후, 동생과 함께 예니체리 병영을 방문하는데 이때 입고 있는 옷이 영락없는 황제의 의상. 거기에 쾨셈이 준 부황 아흐메트 1세의 반지까지 끼고 있다.[46] 예니체리들이 모인 자리에서 쾨셈은 황제가 병석에 누워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차도가 없으니 황제가 죽으면 카슴이 옥좌를 물려받게되니 카슴에게 충성하라고 말하고 예니체리들이 그에 동의하며 "쾨셈 술탄 만세! 카슴 황제 폐하 만세"를 외칠때 병석에서 일어난 무라트 4세가 씩씩거리며 예니체리들이 모인곳으로 들어온다. 졸지에 반역에 가담한 모양새가 된 카슴 이브라힘 형제들은 다시 감금되고 궁지에 몰린 쾨셈이 직접 무라트 4세를 폐위하려던 역모가 실패로 돌아가버린 후 무라트 4세가 보낸 농아 암살자들에게 처형당한다..
이브라힘 즉위 전까지의 시즌 2 메익 악역. 역모를 꾸미던 대재상 토팔 레제프 파샤가 무라트 4세에게 죽은 뒤 뒤를 이어 이스탄불 뒷세계에 암약해온 가톨릭 세력과 연계해 음모를 꾸민다. 재상 자리에 있고 디반 회의(Divan : 오스만 제국의 최고국정회의)에도 참여하는 자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인물. 물론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있기 때문에 무라트 4세와 파리아는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오히려 가톨릭 암살자들에게 쫓기던 파리아 공주를 시난 파샤가 구해준 걸로 알고 있다. 무라트 4세와 황실 가족들간의 갈등을 이용해 반간계를 획책하려 한다. 반역을 위해 유럽의 가톨릭 세력은 물론이고 사파비 페르시아까지 연결되어 있는 등 안닿아 있는 곳이 없다.
역모에 함께 가담해 있는 귈바하르와의 로맨스(...)에 빠지는 등 악역에 안어울리는 훈훈한 장면들을 보여 준다. 사실 역모를 꾸민 이유도 그 로맨스 때문. 귈바하르에게 역모가 끝나면 함께 저 멀리 가서 결혼해 함께 살자고 하지를 않나, 귈바하르가 죽은 후 크게 상심해 단검 하나로 책상에서 문서 보고 있는 무라트 4세를 암살하려는 모습 등등이 나온다. 귈바하르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기 위해 무라트 4세에게 쾨셈의 폐위 시도를 밀고해 쾨셈의 무라트 4세 폐위와 감금 시도를 실패로 돌아가게 만든다.
결국 쾨셈 술탄에게 꼬리가 밟혀 그의 정체가 발각되어 처형 직전까지 갔으나 시난 파샤를 자기 사람이라고 여긴 무라트 4세에 의해 풀려난다. 귈바하르의 복수를 위해 무라트 4세를 이용, 쾨셈 술탄을 죽이고 제국의 황통을 끊으려 했으나 이브라힘 황자가 끝까지 살아 남아 황위에 오르게 되고 그 직후 케만케쉬 무스타파 파샤의 화살을 맞고 죽는다.[47]
역모에 함께 가담해 있는 귈바하르와의 로맨스(...)에 빠지는 등 악역에 안어울리는 훈훈한 장면들을 보여 준다. 사실 역모를 꾸민 이유도 그 로맨스 때문. 귈바하르에게 역모가 끝나면 함께 저 멀리 가서 결혼해 함께 살자고 하지를 않나, 귈바하르가 죽은 후 크게 상심해 단검 하나로 책상에서 문서 보고 있는 무라트 4세를 암살하려는 모습 등등이 나온다. 귈바하르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기 위해 무라트 4세에게 쾨셈의 폐위 시도를 밀고해 쾨셈의 무라트 4세 폐위와 감금 시도를 실패로 돌아가게 만든다.
결국 쾨셈 술탄에게 꼬리가 밟혀 그의 정체가 발각되어 처형 직전까지 갔으나 시난 파샤를 자기 사람이라고 여긴 무라트 4세에 의해 풀려난다. 귈바하르의 복수를 위해 무라트 4세를 이용, 쾨셈 술탄을 죽이고 제국의 황통을 끊으려 했으나 이브라힘 황자가 끝까지 살아 남아 황위에 오르게 되고 그 직후 케만케쉬 무스타파 파샤의 화살을 맞고 죽는다.[47]
바예지트 황자의 모후. 아흐메트 1세의 3번째 후궁. 자신의 아들 바예지트를 황위에 올리려는 야심으로 시난 파샤와 손을 잡고 있으며 쾨셈 술탄과 대립 한다. 목욕하러 하맘(터키식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쾨셈 술탄이 그대로 문을 걸어 잠그고 가두어 놓는 바람에 증살(蒸殺) 당할뻔 했다. 쾨셈은 귈바하르에게 너는 언제나 내 손안에 있으니 딴 생각 품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음모를 꾸민다.
제국의 최고위직 이슬람 법학자인 셰이휼 이슬람까지 엮여 들어간 반역 음모도 실패, 감옥에 잡혀가 죽은줄 알았으나 위기때마다 시난 파샤등의 도움으로 생존력을 보이며 회생한다. 죽은 척 위장해 모두를 속여 넘기고 외부에 은신해 있었으나 아들 바예지트 황자가 처형된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을 살리기 위해 황궁 근위병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쾨셈 술탄에게 자신을 죽이고 그 대신 아들을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황궁으로 달려오지만 바예지트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었다.
바예지트가 죽기 전 쾨셈 술탄과 한 약속대로 쾨셈은 귈바하르를 죽이지는 않았으나 쾨셈 술탄이 무라트 4세에게 앙갚음 하기 위해 베들렌 파리아와 실라흐타르를 암살한 후 쾨셈은 귈바하르에게 자신의 암살 혐의를 뒤집어 씌우기로 마음 먹는다. 그래서 무라트 4세가 루멜리 히사르 성채에 감금해 놓은 귈바하르를 납치해 입막음용으로 죽이려 하나 그 과정에서 나타난 시난 파샤에게 구출된다. 그 직후 쾨셈에게 복수하기 위해 무라트 4세와 파리아의 아들인 쉴레이만, 셀림 황자를 납치한 후 두 황자의 위치를 알려주는 대가로 쾨셈의 나머지 아들인 카슴과 이브라힘을 죽일 것을 무라트 4세에게 요구한다. 카슴, 이브라힘 형제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두눈으로 확인한 귈바하르가 무라트 4세를 쉴레이만, 셀림 황자가 유폐된 곳으로 데려와 풀어주지만 사실 카슴, 이브라힘 형제는 죽은게 아니라 약을 먹고 기절해 있었던 것이었고 유괴 행위에 열받은 무라트 4세가 직접 귈바하르의 목을 졸라 죽여 버린다.
그러나 그 사이 손을 써뒀는지 황궁에 돌아온 셀림, 쉴레이만 형제는 급사해버리고 무라트 4세는 딸 카야를 제외한 모든 자식들을 잃게 된다.
제국의 최고위직 이슬람 법학자인 셰이휼 이슬람까지 엮여 들어간 반역 음모도 실패, 감옥에 잡혀가 죽은줄 알았으나 위기때마다 시난 파샤등의 도움으로 생존력을 보이며 회생한다. 죽은 척 위장해 모두를 속여 넘기고 외부에 은신해 있었으나 아들 바예지트 황자가 처형된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을 살리기 위해 황궁 근위병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쾨셈 술탄에게 자신을 죽이고 그 대신 아들을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황궁으로 달려오지만 바예지트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었다.
바예지트가 죽기 전 쾨셈 술탄과 한 약속대로 쾨셈은 귈바하르를 죽이지는 않았으나 쾨셈 술탄이 무라트 4세에게 앙갚음 하기 위해 베들렌 파리아와 실라흐타르를 암살한 후 쾨셈은 귈바하르에게 자신의 암살 혐의를 뒤집어 씌우기로 마음 먹는다. 그래서 무라트 4세가 루멜리 히사르 성채에 감금해 놓은 귈바하르를 납치해 입막음용으로 죽이려 하나 그 과정에서 나타난 시난 파샤에게 구출된다. 그 직후 쾨셈에게 복수하기 위해 무라트 4세와 파리아의 아들인 쉴레이만, 셀림 황자를 납치한 후 두 황자의 위치를 알려주는 대가로 쾨셈의 나머지 아들인 카슴과 이브라힘을 죽일 것을 무라트 4세에게 요구한다. 카슴, 이브라힘 형제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두눈으로 확인한 귈바하르가 무라트 4세를 쉴레이만, 셀림 황자가 유폐된 곳으로 데려와 풀어주지만 사실 카슴, 이브라힘 형제는 죽은게 아니라 약을 먹고 기절해 있었던 것이었고 유괴 행위에 열받은 무라트 4세가 직접 귈바하르의 목을 졸라 죽여 버린다.
그러나 그 사이 손을 써뒀는지 황궁에 돌아온 셀림, 쉴레이만 형제는 급사해버리고 무라트 4세는 딸 카야를 제외한 모든 자식들을 잃게 된다.
무라트 4세의 측근. 무력으로는 무라트 4세 못지 않은 괴력의 소유자. 무라트 4세만 활시위를 걸수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도 활시위를 걸수 없었던 사파비 페르시아 사신의 대궁의 활시위를 걸며 무라트 4세의 신임을 얻는다. 매부리코가 인상적이다. 무라트 4세의 충실한 신하로 황제를 보필해 왔지만 자신이 죽기 직전 이브라힘 황자를 제거하라는 무라트 4세의 마지막 명령을 받고 그 명령을 수행하러 갔다가 황통이 끊어지면 안된다고 애원하는 아티케 술탄을 마주하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실존 인물로 무라드 4세 사후에도 이집트 대총독이나 루멜리아 대총독 등을 역임하며, 베네치아와의 전쟁에서 군을 지휘하며 활약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휘세인의 명망을 우려한 재상 쾨프륄뤼 메메드 파샤의 명령으로 처형.[48]
실존 인물로 무라드 4세 사후에도 이집트 대총독이나 루멜리아 대총독 등을 역임하며, 베네치아와의 전쟁에서 군을 지휘하며 활약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휘세인의 명망을 우려한 재상 쾨프륄뤼 메메드 파샤의 명령으로 처형.[48]
17세기 오스만 제국의 유명한 여행가이자 기행문 작가인 에울리야 첼레비인 듯 한데, 1632년 당시 20대 초반이었음을 감안하면 굉장한 노안인 듯. 아래의 헤자르펜 아흐메트 첼레비와 콤비를 이룬다.
무라트 4세 시대에 실존했던 괴짜 과학자. 하제르판 아흐메트 첼레비(Hazerfan Ahmed Çelebi)고도 불리며, 에울리야 첼레비의 글에 잠시 등장하는 인물이다. 비행 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고안했던 글라이더에서 영감을 받아 1632년 이스탄불의 갈라타 탑에서 자신이 만든 글라이더를 타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날아서 건너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한다. 시즌 2 오프닝에 갈라타 탑과 글라이더 그림이 나오는 이유. 갈라타 탑 안에 아지트 겸 연구실을 차려 놓고 사는 듯. 에울리야 첼레비와 더불어 무라트 4세의 심복이다. 결국 황실 가족들과 이스탄불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보스포루스 해헙 횡단 비행에 성공한다.
실제 역사에서 헤자르펜 아흐메트는 끝이 좋지 않았는데 헤자르펜을 질투한 이슬람 성직자들이 헤자르펜 아흐메트의 실험들이 알라의 창조에 도전한다고 거품을 물고 비난을 하는 바람에 알제리로 유배 당해 그곳에서 31살의 나이로 죽었다.
현재 이스탄불에 위치한 공항 세 곳 가운데 하나에 이 사람의 이름인 헤자르펜이 붙어서 헤자르펜 공항으로 불린다. 현대 터키에서 굉장히 띄워주는 인물로 터키 항공의 광고에서도 언급되고, 터키 공군의 F-35 1호기 출고식에서 이 사람의 비행을 형상화한 세레모니를 하기도 했다.
실제 역사에서 헤자르펜 아흐메트는 끝이 좋지 않았는데 헤자르펜을 질투한 이슬람 성직자들이 헤자르펜 아흐메트의 실험들이 알라의 창조에 도전한다고 거품을 물고 비난을 하는 바람에 알제리로 유배 당해 그곳에서 31살의 나이로 죽었다.
현재 이스탄불에 위치한 공항 세 곳 가운데 하나에 이 사람의 이름인 헤자르펜이 붙어서 헤자르펜 공항으로 불린다. 현대 터키에서 굉장히 띄워주는 인물로 터키 항공의 광고에서도 언급되고, 터키 공군의 F-35 1호기 출고식에서 이 사람의 비행을 형상화한 세레모니를 하기도 했다.
베들렌 파리아의 프랑스인 시녀. 파리아와 함께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한 부하들 중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파리아에게는 단순한 시녀가 아닌 어린 시절부터 거의 가족처럼 동거동락하는 사이. 파리아가 트란실바니아로의 귀환 대신 무라트 4세와의 사랑을 선택하자 마가렛도 파리아의 어머니 카탈린의 허락을 받고 이스탄불로 와 파리아를 계속 보필한다. 초반부에 입고 있던 유럽식 드레스도 하렘에 정착한 뒤부터 오스만식 의복으로 바뀐다.
후일 이슬람교로 개종한 후 멜렉 칼파(Melek Kalfa)가 되어 아티케 술탄의 시녀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 화에서는 투르한 술탄에게 쾨셈의 메흐메트 4세 독살 음모를 말해주는데 실제 역사에서 쾨셈의 정변 계획을 투르한에게 고해 바쳤던 시녀 멜레키 하툰이 이 사람인듯 하다.
후일 이슬람교로 개종한 후 멜렉 칼파(Melek Kalfa)가 되어 아티케 술탄의 시녀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 화에서는 투르한 술탄에게 쾨셈의 메흐메트 4세 독살 음모를 말해주는데 실제 역사에서 쾨셈의 정변 계획을 투르한에게 고해 바쳤던 시녀 멜레키 하툰이 이 사람인듯 하다.
시즌 2 1화부터 수십년간 쾨셈 술탄을 보필해오던 궁녀. 쾨셈의 메흐메트 4세 독살 음모가 실패한 후 쾨셈에 의해 보스포루스 해협에 수장당한 듯. 순진한 아이(메흐메트 4세)가 희생당하는 걸 그대로 보고 있 수 없었다고 말하며 끌려 나간다. 20년 이상 자신을 보필한 측근을 한순간에 처단해 버리는 장면은 쾨셈 술탄이 얼마나 막나가고 있나를 보여준다
압하지야 출신 오스만 제국 고관. 보스니아 등지를 다스리는 베일레르베이(총독). 오스만 2세가 예니체리들에게 시해당했을 무렵 군사를 일으켰다가 훗날 사면 받은 바 있다. 헝가리 국왕을 자처하며 파리아 일행을 핍박하던 이스트반을 적절하게 처리한다.
역사에서는 무라트 4세가 사파비 페르시아와 전쟁을 하고 있을 무렵 타타르족등을 이용해 폴란드에게 전쟁을 걸었다가 역관광 당한 뒤 패전을 가리려고 무라트 4세에게 선물을 헌상했으나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뒤 폴란드와의 화친을 위해 무라트 4세에 의해 처벌 받았다. 이후 뇌물을 먹었다는 죄목으로 처형 당한다.
초반부에 특이하고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 캅카스식 외투등을 즐겨 입던 패셔니스타였다는 듯.
역사에서는 무라트 4세가 사파비 페르시아와 전쟁을 하고 있을 무렵 타타르족등을 이용해 폴란드에게 전쟁을 걸었다가 역관광 당한 뒤 패전을 가리려고 무라트 4세에게 선물을 헌상했으나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뒤 폴란드와의 화친을 위해 무라트 4세에 의해 처벌 받았다. 이후 뇌물을 먹었다는 죄목으로 처형 당한다.
초반부에 특이하고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 캅카스식 외투등을 즐겨 입던 패셔니스타였다는 듯.
무라트 4세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고 있는 로마 교황의 수하. 이스탄불 지하에 음모를 꾸미는 아지트를 마련해 둔 듯. 시난 파샤등을 이용해 황실과 조정의 일들을 보고 들으며 마수를 뻗쳐온다.[49]
쾨셈 술탄을 경제적으로 후원하고 쾨셈 술탄의 재산을 관리하는 여성 부호. 쾨셈 술탄은 에스테르를 곁에 두며 그녀를 중히 여긴다. 이건 거꾸로 말하자면 모후의 국정 참여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무라트 4세에게는 주요 공격 대상이라는 의미.
옷차림이 하렘의 다른 여성들과 확연하게 구분 가능한 차이점이 보이는데 파리아 공주의 시녀인 마담 마가렛과 마찬가지로 유럽식 의복을 착용하고 있는것. 에스테르 역 배우도 동유럽 보스니아 출신이라서 확연히 눈에 띈다.
그녀의 이름과 르네상스 시대풍 옷차림으로 봐서 유대인으로 추정 된다. 오스만 제국 태후들은 주로 보석상을 하는 유럽계 유대인 여성 부호들을 통해 하렘 외부와 경제적 거래를 했고[50] 금전적 지원을 받았는데 그 예시로 휴렘 술탄과 눌바누 술탄의 경제적 지원자겸 수행원이었던 에스테르 한달리, 사피예 술탄의 상업 거래인이었던 에스페란자 말치 등이 있다.
시난 파샤와 내통하는 귈바하르 술탄의 밀회 장면을 목격해 귈바하르의 음모를 확인하나 본인은 납치된다.
옷차림이 하렘의 다른 여성들과 확연하게 구분 가능한 차이점이 보이는데 파리아 공주의 시녀인 마담 마가렛과 마찬가지로 유럽식 의복을 착용하고 있는것. 에스테르 역 배우도 동유럽 보스니아 출신이라서 확연히 눈에 띈다.
그녀의 이름과 르네상스 시대풍 옷차림으로 봐서 유대인으로 추정 된다. 오스만 제국 태후들은 주로 보석상을 하는 유럽계 유대인 여성 부호들을 통해 하렘 외부와 경제적 거래를 했고[50] 금전적 지원을 받았는데 그 예시로 휴렘 술탄과 눌바누 술탄의 경제적 지원자겸 수행원이었던 에스테르 한달리, 사피예 술탄의 상업 거래인이었던 에스페란자 말치 등이 있다.
시난 파샤와 내통하는 귈바하르 술탄의 밀회 장면을 목격해 귈바하르의 음모를 확인하나 본인은 납치된다.
무라트 4세 시기에 이름을 떨친 시인. 무라트 4세의 총애를 받으며 활동한다. 작 중 오스만 터키어로 시를 읊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하고 그때마다 현대 터키어 자막이 추가 된다.
시즌 2 22화(=52화)에서 무라트 4세의 통치와 고관들을 시로 풍자했다가 재상 바이람 파샤에 의해 궁전 한복판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고위 관료들을 허구헌 날 모욕하는 것이 너무 심하다' 라는 이유로 처형되었으나, 이를 앞장서서 주청했던 바이람 파샤는 재상이 아니라 재상이 군사 원정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 그의 역할을 잠시 동안 대신하는 일종의 대리인인 카이마캄(Kaymakam)이라는 직위에 있었다.
시즌 2 22화(=52화)에서 무라트 4세의 통치와 고관들을 시로 풍자했다가 재상 바이람 파샤에 의해 궁전 한복판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고위 관료들을 허구헌 날 모욕하는 것이 너무 심하다' 라는 이유로 처형되었으나, 이를 앞장서서 주청했던 바이람 파샤는 재상이 아니라 재상이 군사 원정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 그의 역할을 잠시 동안 대신하는 일종의 대리인인 카이마캄(Kaymakam)이라는 직위에 있었다.
무라트 4세의 사파비 페르시아 원정 당시 오늘날의 예레반을 지키고 있던 사파비 페르시아의 장수. 보통 줄여서 에미르귀네(Emirgüne)라고 부른다. 오스만군의 예레반 공격에 맞서 예레반을 지켰으나 포격은 계속되고 식수가 끊기는 등 상황은 페르시아군에게 별로 좋지 않게 돌아갔고 샤의 지원은 기약이 없었다. 결국 시즌 2 20화(50화)에서 무라트 4세에게 항복을 하는 조건으로 무라트 4세에게 일기토를 요구한다. 역시나 인간 흉기인 무라트 4세에게 상대가 되지 않아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부하인 압바스가 무라트 4세에게 단검을 던지자 이를 부끄러워 하며 압바스를 베어 버리고 무라트 4세에게 진심으로 항복한다[51] . 항복한 뒤 유수프라는 이름을 받은 후 무라트 4세의 새로운 측근이 된다. 쾨셈은 그를 페르시아놈이라고 일컫으며 그를 싫어한다.
페르시아 변절자라고 손가락질 받지만 무라트 4세에대한 충성심은 우직하다. 덕분에 쾨셈의 무라트 4세 축출 시도는 유수프 파샤에게 막혀 여러차례 물을 먹게 된다. 문제는 무라트 4세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황통을 단절시키려는 무라트 4세의 명령을 너무 충실히 수행한다는 것. 그러나 무라트 4세가 내린 이브라힘 황자 제거 임무 완수는 결국 실패.
음악과 시에 관심이 많아 무라트 4세를 기쁘게 해 제위 기간 동안 총애를 받았으나 무라트 4세가 죽고 이브라힘이 황위에 오르자 처형당하는 인물. 이스탄불에 이 사람의 이름을 딴 에미르간(Emirgan) 공원이 있다.
페르시아 변절자라고 손가락질 받지만 무라트 4세에대한 충성심은 우직하다. 덕분에 쾨셈의 무라트 4세 축출 시도는 유수프 파샤에게 막혀 여러차례 물을 먹게 된다. 문제는 무라트 4세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황통을 단절시키려는 무라트 4세의 명령을 너무 충실히 수행한다는 것. 그러나 무라트 4세가 내린 이브라힘 황자 제거 임무 완수는 결국 실패.
음악과 시에 관심이 많아 무라트 4세를 기쁘게 해 제위 기간 동안 총애를 받았으나 무라트 4세가 죽고 이브라힘이 황위에 오르자 처형당하는 인물. 이스탄불에 이 사람의 이름을 딴 에미르간(Emirgan) 공원이 있다.
2.2.1. 이브라힘, 메흐메트 4세 제위기 주연들
57화부터 59화 까지는 이브라힘의 치세, 60화는 메흐메트 4세의 치세다.
무라트 4세의 뒤를 이어 황위에 오르는 이브라힘. 무라트 4세의 친동생이자, 아메드 1세와 쾨셈 술탄의 아들이다. 이복형 바예지트가 처형당하는 막으려다 케만케시와 카슴 황자의 제지로 졸지에 이복형이 자신의 눈 앞에서 목이 졸려 죽는 걸 보고 거의 실성해버린다. 이복형이 목 졸려 죽는걸 보고 오열하다가 정신이 훼까닥 나가 미친듯이 웃고 그 후 자기 묘자리를 만들겠답시고 스스로 삽으로 땅을 파는 모습을 보면 이브라힘이 받은 충격과 자신도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감에 사로잡힌 이브라힘의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바예지트 황자가 죽은 다음 회에서는 황위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무라트 4세의 명령으로 카슴황자와 함께 감금 당하게된다. 그 후에도 손목을 그어 자해하고 자신이 암살당하는 악몽을 꾸는 등 정신이 피폐해져 간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 어느 날 뜰에서 눈을 맞으며 즐거워하다가 방안에서 형 카슴이 무라트 4세의 명령으로 살해당하는 장면까지 목격하게 된다.
그 후로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다가 실제로 죽음 직전까지 가는 것도 여러 차례. 무라트 4세는 죽어가면서 이브라힘까지 죽이라는 어명을 내렸으나 누이 아티케 술탄의 기지로 기적적으로 목숨을 보전하고 오스만 제국의 18대 황제 이브라힘으로 황위에 오른다. 어찌나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는지 무라트 4세가 승하했다는 소식을 들어도 그게 자신을 유인하기 위한 함정이라고 생각해 숨어 있던 방 밖으로 나가길 거부할 정도. 무라트 4세의 시신과 시신의 코에 거울을 대고 김이 서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서야 형의 죽음을 믿게 됐을 정도. 황제가 된 뒤에는 지금까지 나왔던 황제들 보다 더 많은 여인들을 거느리고 있으며[52]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 역사에서는 무스타파의 뒤를 이어 오스만 역사상 두 번째로 정신이 쇠약한 상태로 즉위한 황제로, 쾨셈 술탄에 의해 옹립되었다. 드라마에서는 즉위 직후 4년이 지난 1644년으로 곧장 넘어가 묘사되지는 않지만, 재상 케만케시 무스타파 파샤의 보필을 받고 나름대로 국정에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스타파 파샤가 죽은 이후부터 간신과 하렘 세력이 득세. 점차 폭정을 자행하게 되고, 결국 폭군이 제위에 있어서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어머니(!) 쾨셈의 주도로 폐위. 시해당한다.
그 후로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다가 실제로 죽음 직전까지 가는 것도 여러 차례. 무라트 4세는 죽어가면서 이브라힘까지 죽이라는 어명을 내렸으나 누이 아티케 술탄의 기지로 기적적으로 목숨을 보전하고 오스만 제국의 18대 황제 이브라힘으로 황위에 오른다. 어찌나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는지 무라트 4세가 승하했다는 소식을 들어도 그게 자신을 유인하기 위한 함정이라고 생각해 숨어 있던 방 밖으로 나가길 거부할 정도. 무라트 4세의 시신과 시신의 코에 거울을 대고 김이 서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서야 형의 죽음을 믿게 됐을 정도. 황제가 된 뒤에는 지금까지 나왔던 황제들 보다 더 많은 여인들을 거느리고 있으며[52]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 역사에서는 무스타파의 뒤를 이어 오스만 역사상 두 번째로 정신이 쇠약한 상태로 즉위한 황제로, 쾨셈 술탄에 의해 옹립되었다. 드라마에서는 즉위 직후 4년이 지난 1644년으로 곧장 넘어가 묘사되지는 않지만, 재상 케만케시 무스타파 파샤의 보필을 받고 나름대로 국정에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스타파 파샤가 죽은 이후부터 간신과 하렘 세력이 득세. 점차 폭정을 자행하게 되고, 결국 폭군이 제위에 있어서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어머니(!) 쾨셈의 주도로 폐위. 시해당한다.
이브라힘의 배우자. 우크라이나 출신. 메흐메트 4세의 모후. 쾨셈과 투르한은 사이 좋은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처럼 보이는데 그도 그럴게 쾨셈이 직접 거느리고 키우던 여인이기 때문. 쾨셈의 총애를 받고 이브라힘의 배우자들 중 가장 으뜸가는 위치에 있다.
이브라힘이 에디르네에서 데려온 여인(텔리 휘마샤 술탄) 때문에 사이가 틀어지며 텔리 비 앞에서 이브라힘의 명령으로 굴욕을 당한다. 마냥 좋아보이던 쾨셈 술탄 사이와의 관계도 투르한이 뒷공작을 벌이며 대립 관계로 변하며 아들 메흐메트가 황위에 오르자 쾨셈과의 분쟁은 더욱 심해진다.
투르한을 끝장내야 겠다고 생각한 쾨셈은 메흐메트 4세의 음료에 독을 타 독살하려 했지만 상황을 파악한 멜레크 하툰(마담 마르그리트)가 투르한에게 달려가 역모를 고해 바쳐 실패한다. 이때 보여준 모성애 때문에 황궁의 다른 사람들에게 점수를 땄고 최종적으로 투르한이 쾨셈에게 승리하게 된다. 쾨셈이 사피예 술탄에게서 건내 받은 휘렘 술탄의 에메랄드 반지도 투르한의 손에 들어간다. 사실 투르한이 음흉한 인물인건 맞지만 다른 후궁 태생의 황자로 황제를 갈아치우려던 쾨셈에 맞서 자기 아들을 지키려 하던 것도 사실인데 정작 유튜브에는 투르한을 Bitch, 쑤까(Сука)라고 욕하는 댓글들이 많다.
실존 인물로, 쾨셈이 이브라힘의 후궁으로 들인 여자인 것은 맞고 쾨셈이 메메드 4세를 옹립한 것도 자신이 들인 여자인 만큼 조종하기 쉬우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르한 하티제는 황제의 모후로서 제국을 사실상 운영할 수 있는 자리를 순순히 내어줄 생각이 전혀 없어서 쾨셈과 정권 다툼을 벌이게 되고, 쾨셈은 그렇다면 메메드를 폐위하고 자신에게 순종적인 여자의 소생을 다음 황제로 옹립하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보다 투르한 하티제가 한 발 먼저 수를 써서, 쾨셈을 살해했다. 투르한은 그 직후 그 이전 쟁쟁했던 태후들도 받지 못했던 섭정(Naib-i-Sultanat) 직위를 받지만 정치적으로 꽤 볼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쾨셈과 달리 투르한 하티제는 정치에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협력자가 필요했고, 이에 이미 퇴직했지만 청렴하고 유능한 관료로 이름이 높았던 쾨프륄뤼 메메드 파샤를 불러들여 재상으로 임명하게 된다. 투르한은 정치에서 빠진 후 건축 사업에 열중했다.
이브라힘이 에디르네에서 데려온 여인(텔리 휘마샤 술탄) 때문에 사이가 틀어지며 텔리 비 앞에서 이브라힘의 명령으로 굴욕을 당한다. 마냥 좋아보이던 쾨셈 술탄 사이와의 관계도 투르한이 뒷공작을 벌이며 대립 관계로 변하며 아들 메흐메트가 황위에 오르자 쾨셈과의 분쟁은 더욱 심해진다.
투르한을 끝장내야 겠다고 생각한 쾨셈은 메흐메트 4세의 음료에 독을 타 독살하려 했지만 상황을 파악한 멜레크 하툰(마담 마르그리트)가 투르한에게 달려가 역모를 고해 바쳐 실패한다. 이때 보여준 모성애 때문에 황궁의 다른 사람들에게 점수를 땄고 최종적으로 투르한이 쾨셈에게 승리하게 된다. 쾨셈이 사피예 술탄에게서 건내 받은 휘렘 술탄의 에메랄드 반지도 투르한의 손에 들어간다. 사실 투르한이 음흉한 인물인건 맞지만 다른 후궁 태생의 황자로 황제를 갈아치우려던 쾨셈에 맞서 자기 아들을 지키려 하던 것도 사실인데 정작 유튜브에는 투르한을 Bitch, 쑤까(Сука)라고 욕하는 댓글들이 많다.
실존 인물로, 쾨셈이 이브라힘의 후궁으로 들인 여자인 것은 맞고 쾨셈이 메메드 4세를 옹립한 것도 자신이 들인 여자인 만큼 조종하기 쉬우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르한 하티제는 황제의 모후로서 제국을 사실상 운영할 수 있는 자리를 순순히 내어줄 생각이 전혀 없어서 쾨셈과 정권 다툼을 벌이게 되고, 쾨셈은 그렇다면 메메드를 폐위하고 자신에게 순종적인 여자의 소생을 다음 황제로 옹립하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보다 투르한 하티제가 한 발 먼저 수를 써서, 쾨셈을 살해했다. 투르한은 그 직후 그 이전 쟁쟁했던 태후들도 받지 못했던 섭정(Naib-i-Sultanat) 직위를 받지만 정치적으로 꽤 볼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쾨셈과 달리 투르한 하티제는 정치에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협력자가 필요했고, 이에 이미 퇴직했지만 청렴하고 유능한 관료로 이름이 높았던 쾨프륄뤼 메메드 파샤를 불러들여 재상으로 임명하게 된다. 투르한은 정치에서 빠진 후 건축 사업에 열중했다.
이브라힘이 에디르네에서 데려온 여성. 한눈에 홀딱 반해 이스탄불로 데려 왔다. 흑담비 모피를 아주 좋아하는 듯. 실제로 이브라힘은 텔리 휘마샤에게 이집트의 보물로 가득차고 흑담비 모피로 도배된 궁전의 방을 선물로 줬으며 갈수록 흑담비 모피에 집착했다고 한다.
이브라힘의 두통을 치료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실제 역사에서도 이브라힘을 낫게 할 수 있다며 접근했으나[53] 재위 초의 이브라힘이 그나마 선정을 베풀 수 있도록 보좌했던 재상 케만케시 무스타파 파샤를 모함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아나톨리아 지방의 대법관(Kazasker) 자리를 지내며 막대한 부를 긁어모았다. 하지만 이브라힘의 뒤를 이어 메메드 4세가 즉위하면서 다마스쿠스로 유배당했다가 유배지로 가는 길에 죽임을 당하는데, 본래 오스만 제국의 황제들은 즉위할 때마다 예니체리 군단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메메드 4세는 보너스로 줄 자금을 마련할 수 없었고, 그 와중에 눈에 띄었던 것이 진지 호자의 재산이었던 것.
오스만 제국의 19대 황제로, 1648년부터 1687년까지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재위했다. 이브라힘이 에디르네에 갔다가 왠 여인(텔리 휘마샤 술탄)을 이스탄불로 데려온 자리에서 이브라힘이 에디르네에 간 사이 쾨셈이 자리페 하툰과 오스만 황자를 이브라힘이 감금시켜 놨던 사실을 알게 된다. 이브라힘과 투르한은 크게 싸우는데 투르한이 자신의 아들 메흐메트는 적법한 황자이지만 오스만은 황자가 아니라는 소리를 내뱉게 되고 그 과정에서 화가 난 이브라힘이 메흐메트를 땅바닥에 던져 머리를 크게 다친다.
그렇다고 무스타파 1세처럼 정신이 나가거나 하는 불미스러운 일 없이 어린 나이로 황위에 오르지만 할머니에 의해 독살당하고 폐위당할 위기에 처한다.
정치적인 움직임은 전혀 없어 쾨프륄뤼 가문이 황제 대신 제국을 운영했으며[54] , 메메드는 에디르네에 머물며 허구헌 날 사냥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이 때문에 '사냥꾼(avcı)' 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
그렇다고 무스타파 1세처럼 정신이 나가거나 하는 불미스러운 일 없이 어린 나이로 황위에 오르지만 할머니에 의해 독살당하고 폐위당할 위기에 처한다.
정치적인 움직임은 전혀 없어 쾨프륄뤼 가문이 황제 대신 제국을 운영했으며[54] , 메메드는 에디르네에 머물며 허구헌 날 사냥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이 때문에 '사냥꾼(avcı)' 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
이브라힘이 황자 시절 감금당해 있었을때 쾨셈이 보내 이브라힘을 보필했던 여인. 이브라힘을 잘 보필하는것 까지는 좋았는데 아직 황위에 오르지도 못한 이브라힘의 아이를 임신해 버렸다. 오스만 제국 황실에서는 황자가 아이를 가지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는데 이 금기를 어긴 것. 쾨셈에게 임신 사실이 발각 되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유폐된 채 생활을 하게 된다. 조금만 더 기다려 이브라힘이 황제가 된 후 임신했다면 황제의 배우자가 됐을탠데 그 꿈이 실현되기 직전 허사가 되어 버린 것.
세월이 지나 1644년이 되어 자리페와 그 사이에 태어난 오스만 황자는 이브라힘의 명령으로 궁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고 자리페는 하렘으로 귀환해 술탄이 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 꼴을 두고볼 수 없었던 투르한 술탄의 모략과 쾨셈 술탄의 명령으로 배를 타고 이집트로 추방.[55] 그러나 배를 타고 이집트로 가는 도중 베네치아 공화국과 연계된 해적들에게 납치 당한다. 크레타를 둘러싸고 이브라힘 때 시작된 베네치아와의 20년 전쟁의 도발점이 될 듯.[56]
세월이 지나 1644년이 되어 자리페와 그 사이에 태어난 오스만 황자는 이브라힘의 명령으로 궁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고 자리페는 하렘으로 귀환해 술탄이 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 꼴을 두고볼 수 없었던 투르한 술탄의 모략과 쾨셈 술탄의 명령으로 배를 타고 이집트로 추방.[55] 그러나 배를 타고 이집트로 가는 도중 베네치아 공화국과 연계된 해적들에게 납치 당한다. 크레타를 둘러싸고 이브라힘 때 시작된 베네치아와의 20년 전쟁의 도발점이 될 듯.[56]
이브라힘의 아르메니아 출신 후궁. 먹는걸 아주 좋아하는 금발의 뚱뚱한 여성.
메메드 4세 시대의 재상으로, 오스만판 최씨무신정권이라 할 만한 쾨프륄뤼 시대의 막을 연 인물이다. 원래 나이보다 더 젊어 보이는 것이 특징. 투르한 술탄의 오른판이다. 오랫동안 관료 생활을 하다가 고령을 이유로 퇴직해 있었지만 1656년에 대략 여든의 나이로 재상에 임명되는데 그때 메메드는 '황제는 관료 임명권을 재상에게 넘길 것', '황제는 재상이 승인한 것만 승인할 것', '황제는 혹여 재상에 관해 불미스러운 소문을 듣더라도 곧이듣지 말 것' 등 이전까지 그 어느 재상도 누려본 적이 없는 막대한 권한을 요구했고, 메메드 4세의 모후인 투르한 하티제 술탄은 이를 승인했다. 오스만 역사에서는 이로써 휘렘 술탄 이래로 쾨셈 술탄, 그리고 투르한 하티제 술탄에 이르기까지 황제의 모후나 후궁이 사실상 정권을 장악했던 '여자 술탄 시대(Kadınlar Saltanatı)' 가 끝나고, 쾨프륄뤼 가문이 독점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쾨프륄뤼 시대(Köprülüler Devri)' 가 도래하게 된다. 요컨대 한 마디로 줄이자면 무흐테솀 유즈이을 시리즈의 막을 내리게 되는 사람.
이브라힘의 세르비아 출신 후궁. 훗날 쉴레이만 2세로 즉위하는 쉴레이만 황자의 모후. 메흐메트 4세의 폐위 후 딜라슙의 아들인 쉴레이만을 황위에 올리려는 쾨셈이 딜라슙 모자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기다리게 하지만 역모가 실패해 모자의 앞날에 고생길이 열렸다. 실제로 딜라슙은 이 사건 이후 30년 넘게 별궁에서 지내야만 했다.
투르한 하티제 술탄의 최측근 환관. 마지막 화에서 쾨셈 술탄을 죽이는데 일조 한다.
2.3. 실제 역사 관련
- 실제 역사에서, 아흐메트가 왜 황위 계승법을 바꾸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57] 물론 본작에 묘사되는 것처럼 인도적인 이유도 작용했겠지만, 아흐메트 스스로 역대 황제들 가운데 처음으로 지방 총독을 지내지 않은 인물이라는 단점을 없애고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함[58] 이라는 설도 있으며, 황제를 점차 무능하게 만들어 자신들이 정권을 장악하려는 관료들의 계략이었다고도 한다.[59] 또 아흐메트는 아직 아들이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 무스타파를 처형했다가 아흐메트마저 무슨 일을 당하면 황가의 대가 끊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전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흑인 엑스트라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쉴레이만 대제의 손자이며 아메드 1세의 조부인 무라드 3세 시대부터 환관의 수가 급증하면서 흑인 환관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늘어나므로 전작에는 안 나오고 본작에는 나오는 것은 정확한 묘사다.
- 베들렌 파리아의 아버지인 베들렌 가보르 자체는 실존 인물로, 오스만 제국의 신하국인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공작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오스만과 함께 동유럽의 양대 강자였던 신성로마제국에 맞서는 등으로 오늘날 헝가리에서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 다만 베들렌 파리아는 이런저런 정황으로 보아 가공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 보인다. 아들들이 모두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탓에 무라트 4세의 후궁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황실 내탕금에 대한 기록에 아이셰 술탄과 사나브베르 하툰(Sanavber Hatun)이라는 이름만 겨우 보이는 정도이기 때문. 더구나 여기에서 하툰은 황자를 낳고 태후 자리를 노리고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단순히 '황제와 동침한 적이 있는 여성' 정도의 의미라서, 파리아가 사나브베르라는 투르크식 이름을 얻었다는 설정이라고 보기에도 힘들다. 또한 극중에서는 아버지인 베들렌 가보르가 파리아의 숙부에 의해 암살되어서 파리아와 그 어머니가 오스만 궁정으로 피신했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베들렌 사후 그 아내인 카탈린이 뒤를 이어 1년 가량 재위한 뒤 시동생인 이슈트반에게 자리를 넘겨주었기 때문에 파리아가 망명을 온다는 이야기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아바자 메메드 파샤가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사실상의 지배자 노릇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나, 파리아의 숙부라는 이슈트반은 암살을 당한 것이 아니라 공작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18년간 살았다는 점[60] 등은 보너스.
-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멀쩡히 살아 있어야 할 게브헤르한 술탄과 아이셰 술탄이 시즌 2에서 수십년 일찍 죽어 버리면서 중대한 고증 오류가 생겼다.
3. 볼 수 있는 곳
- 유튜브 공식 계정
- 1화(터키어 원어 버전)
- 1화(영어 자막 버전)[61][62]
- 시즌 1 최종 화 (30화)(터키어)
- 시즌 2 1화(31화)(터키어 원어 버전)
- 시리즈 최종 화(60화)(터키어)
영어 자막 추가 해 달라는 요구가 많던 영미권 및 기타 외국인 시청자들의 성화 때문인지 트레일러등에 영어 자막이 추가 됐다. 단. 트레일러만. 드라마 본편을 외국에 수출해야 되기 때문에 본편에 영어 자막은 안달릴 뿐더러 1화 방영 3일도 안되어 데일리모션과 브콘탁테에 영어를 비롯, 러시아어, 프랑스어등 유럽 여러나라 언어와 아랍어 자막이 붙은 불법 동영상들이 판을 쳤지만 모두 삭제 됐다.[63]
4. 의상
한국 내 커뮤니티에 이 시리즈 의상이 올라왔을 때 유럽같다는 반응이 많았다.[64] 국내에서는 이슬람 의상하면 히잡, 차도르, 니캅, 부르카 정도만 떠올리는 편이고 오스만 제국 시절 황실 의상에 대한 이미지는 낯선 감이 없지 않기에 의상에 대하여 아래에서 서술한다.
전작처럼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는 의상들이 화려해서 외국인 시청자들에게 호평 받고 있다. 중, 근세 의상 덕후들이 모여 있는 유럽쪽 사이트에서 반응이 좋다.
그러나 미적인 측면에서의 호평과 별개로 비판도 받았다. 드라마 속 여성 의상의 경우 착용하는 관, 머리 가리개의 모양이나 오스만 특유의 너울거리는 소매 자락등 여러가지 면에서 기본적인 오스만 제국 의복 양식의 틀을 지키고 있긴 하지만 당대 의상보다 가슴골이 더 드러나 있거나 지나치게 원색을 많이 사용한다는 지적을 들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복이라 그런지 묘하게 서구적인 느낌이 나기도 하는 편.
그래도 기본적인 양식의 틀은 지키고 있기 때문에 유럽 여성 의상(에스테르 하툰이나 베들렌 파리아, 마담 마르그리트등 유럽 출신 인물의 의상)과는 구분이 가능하다.
[image]
플랑드르의 아브라암 드 브륀(Abraham de Bruyn)이 그린 16세기 오스만 여성 의상
오스만 제국 황실 및 하렘의 여성 의상들은 흔히 이슬람 의상하면 떠올리게 되는 차도르, 니캅 등과는 분위기가 꽤 다른 의복들이 많았다. 오스만 시대 하렘 여성 의상은 드라마 속에서 보이는것 처럼 모슬린 등 아주 얇은 천으로 만들어진 옷들이라 겹겹이 입어도 그 무게가 28g밖에 되지 않았을 정도 였다.[65] 의상에 대한 디자이너의 재해석이 가미된 탓에 전작의 몇몇 황실 여성 의상은 터키의 전통 의상 디자이너에게서 19세기 탄지마트 시기의 오스만 제국 의상 같다고 까이기도 했다.[66] 화려함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어떤 의상은 전통 복장의 기본적인 틀을 지키면서도 화려함을 잘 표현하거나 꽤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쾨셈 술탄이나 아티케 술탄의 몇몇 의상(어깨뽕[67] )은 과할 정도로 서구 의상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68] 당시 하렘 여인들이 즐겨 입던 바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 점도 아쉽다. 남성 복식과 궁녀 계급 의상은 고증에 충실한 편이라 뒷말이 없다.
어쨌든 다소 지적이 있어도 미적인 면에서는 큰 호평을 받은 위대한 세기 시리즈의 의상 디자이너는 '''세르다르 바쉬부으(Serdar Başbuğ).''' 드라마 이전에도 창작 발레나 오페라 등에서 오스만 제국 시절 의상들을 디자인 했다고 한다.
소품, 의상의 퀼이 갈수록 화려해지고 있다. 전작에서 어색했던 CG도 그럭저럭 봐줄만한 수준이 됐다. 사계절의 흐름을 압축한 시간 묘사라던가 드라마 속 소품과 빛의 구도와 명암을 잘 활용해 묘사한 화면과 미장센은 감탄스러울 정도.
5. OST
아이테킨 아타쉬가 작곡한 무흐테솀 유즈이을 시리즈의 OST 역시 의상과 더불어 평가가 굉장히 좋다. 무흐테솀 유즈이을: 쾨셈의 OST는 전작보다 더 발전했다는 소리를 듣는데 터키 전통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등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 요약 가능하다. 일부 음악은 체코 프라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것이라고 한다. 아쉬운 스토리, 고증과 대조되어 OST는 좋았다 축에 들어간다.
제작진의 이스탄불 거리 깜짝 연주회. 드라마 오프닝 곡이다.
쾨셈 술탄 버전 트레일러 초반부에 나오는 노래이자 드라마의 메인 테마곡은 그리스 가수 카테리나 파파도플루(Κατερίνα Παπαδόπουλου)의 《자장가(Νανούρισμα)》이다. 원곡 드라마 버전
6. 여담
첫화 첫장면부터 죽은 황자들의 관이 줄줄이 행렬로 궁전 밖으로 나가고 황자들의 어머니인 하렘 여인들이 오열하는 장면, 다른 황자가 목이 졸려 죽는 살벌한 장면들이 나온다. 차기 술탄이 될 황위 계승자 한명을 제외한 모든 황자들이 살해당하는 오스만 제국의 살벌한 황위 계승법을 나타내는 장면으로 아흐메트 1세는 이 계승 제도를 처음으로 폐지한 술탄이니 만큼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69]
1회당 방영 시간이 유독 길기로 악명 높은 터키 드라마 아니랄까봐 첫 화부터 '''2시간 30분'''이라는 무지막지한 분량이다.
2018년 3월 14일자 KBS2 세상의 모든 다큐에서 방영된 《사이먼 리브의 터키 기행2 - 갈림길에 놓인 나라[70] (원작 BBC, 2017년 방영분》후반부 에서 이 드라마 방송촬영 현장과 주연 배우 인터뷰가 비중있게 소개됐다. 베들렌 파리아역의 파라 제이넵 압둘라에게 본인이 출연하는 드라마를 '''전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본다'''고 추켜세우는 사이먼 리브의 모습과 사이먼 리브가 시종역 엑스트라로 드라마에 출연하는 모습이 나온다.("폐하. 바예지트 황자께서 오셨습니다."하고 무라트 4세의 방문을 여는 역할.)
[1] 조금 구체적으로 덧붙이자면, 먼저 쉴레이만 대제의 뒤를 이은 것은 막장 주정뱅이로 유명한 셀림 2세. 그가 술을 마시고 하렘의 후궁들과 놀러다니는 동안 정치는 재상인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가 도맡아 했고, 셀림의 누나(어머니 휘렘 술탄이 셀림이 즉위하기 전에 죽어, 누나가 '퍼스트 레이디' 가 될 수 있었다)인 미흐리마흐 술탄(Mihrimah Sultan)이 제국의 2인자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무라트 3세는 재상이 정권을 장악하는 것을 싫어하여 쉴레이만 대제 치세 말부터 정권을 잡고 있던 메흐마트 파샤를 처형했지만 정작 그 자신이 어머니인 누르바누 술탄, 애첩인 사피예 술탄에게 질질 끌려다녔으며,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예술에만 빠져살았다. 이때 무라트 3세가 어찌나 게을렀던지 매주 금요일마다 아야 소피야로 행차하여 예배를 올리는 관례도 생략했을 정도. 원정 중이거나 하면 모를까 멀쩡히 황궁에 있는데도 이러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어어서, 당시 오스만 역사가들에게도 호된 비판을 받았다. 그 뒤를 이은 메흐메트 3세도 다르지 않아서, 정치에 무관심하며 향락에 빠져산데다 모후 사피예 술탄이 대부분의 일을 처리했다. 그나마 신성로마제국과의 전쟁 중이었던 1596년에 친히 군대를 이끌고 헝가리 원정을 단행하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메흐메트가 직접 나선 것이 아니라 '일이 잘 안 풀리는데, 황제께서 가셔서 군사들 사기나 올려주시죠?' 라는 대신들의 설득으로 얼굴마담격으로 참가한 것에 불과. 결국 신성로마제국과의 전쟁은 오스만의 대패로 끝나고 만다.[2] 이 여자는 태후와 황후들이 실권을 잡은 16~17세기의 오스만 제국에서도 아주 독보적으로 최고 정점에 오른 여자고 그만큼 혼란한 시기였는데 이 여자가 태후로 있는 동안 두명의 술탄이 살해당했다.[3] 그도 그럴 것이 전작에서는 오스만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46년) 재위한 쉴레이만 대제가 있었지만, 이번 작에서는 그렇게 오래 재위한 황제가 없다(끽해야 18년 재위한 무라드 4세 정도.). 게다가 전작의 여주인공인 휘렘 술탄은 쉴레이만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쾨셈 술탄은 아메드 1세보다 훨씬 오래 살았으니, 로맨스를 할 '남자' 도, '지존' 도 있을 수가 없다.[4] 한국으로 치면 여러모로 이영애와 비슷한 급이다.[5] 이 밖에 쾨셈 술탄의 이야기 자체가 사실 인기 드라마로 만들기에는 어려운 소재에 속한다. 이 항목이나 이 항목에 나오듯이 전작이 인기를 끌었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쉴레이만 대제와 휘렘 술탄의 로맨스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전작으로 치면 휘렘 술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쾨셈 술탄은 몰라도 쉴레이만에 해당할 아메드 1세가 요절한 바람에 이런 로맨스를 그려낼 수가 없다. 결국 남는 것은 궁정 암투인데, 이마저도 고증에 충실하면서 흥미롭게 그려냈다면 모를까 전혀 그렇지않고 전작이나 이번 작이나 고증에 맞지 않는 장면이 꽤 나온다.[그리스인] [터키인] A B [?] 유년기지만 성인 배우가 배역을 맡아 설정과 외관의 괴리가 심하다.[6] 아흐메트 1세 제위전 까지 오스만 제국의 관습이 황위 계승전에서 패배한 다른 황자들을 모조리 처형하는 것이었기 때문.[7] 자기 가슴위로 커다란 나무가 자라나는 꿈.[8] 메흐메트 3세의 붕어를 알리러 온 환관을 자신을 죽이러 오는걸로 의심할 정도.[9] 다만 이렇게 되뇌인 것 치고는, 즉위하자마자 사파비 왕조와의 전쟁을 총지휘할 지휘관을 임명한 것을 시작으로 황제 노릇을 제대로 한 편이다. 명군이라거나 성군이라고 말하기는 부족하지만, 셀림 2세를 시작으로 무라트 3세, 메흐메트 3세에 이르기까지의 암군 3대, 그리고 아흐메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정신병자 황제 무스타파 1세 등과 비교하면 이만한 황제가 등극한 것만도 당시의 오스만 제국으로서는 행운이었다.[10] 아흐메트가 어렸을때 이복형 마흐무드와 검술 대련을 하던 곳.[11] 하렘의 여자들이 아나스타시아를 골려주려고 아나스타시아와 동침할 황제가 늙고 뚱뚱한 변태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아나스타시아는 이걸 그대로 믿어 버린 상황. 참고로 이때의 '황제' 라 함은 메흐메트 3세를 가리키는데, 주정뱅이로 유명했던 할아버지를 닮아서 허구헌 날 먹고 마신 탓에 사망했을 당시 38세에 불과했다. 즉 '뚱뚱한 변태' 인 것은 맞지만, '늙고' 는 과장인 셈.[12] 다만 실제 역사에서는 독살당했다는 이야기가 없으며, 사인은 발진티푸스라고 전해진다.[13] 터키의 원로 여배우로 터키판 나가수인 "당신이 능력자입니다" (Yetenek Sizsiniz Türkiye)의 진행자이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부계가 쿠르드라서 그런지 쿠르드계 인기가수인 이브라힘 타틀르세스와 젊은 시절부터 함께 진행한 프로그램이 많다.[14] 베네치아 공화국의 발칸 영토 출신. 오랬동안 이탈리아인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연구 결과, 이탈리아인은 아니고 알바니아계라고 한다.[15] 가장 유능한 황자가 황위를 계승하고 나머지들은 모두 죽어야 한다. 나머지 황자들을 죽이지 않으면 제국 내부에 권력 다툼등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보충을 하자면, 몽골 제국이나 티무르 제국 등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장남에게 재산을 몰아주지 않고 여러 아들들에게 재산을 골고루 나누어 주는 유목민이 세운 나라인 경우 으레 분열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창건자 오스만 1세의 아들로 2대째 군주가 된 오르한 역시 동생인 알라딘에게 나라를 함께 다스리자. 즉 나누어 갖자고 제안했지만, 알라딘은 그러지 않아도 아나톨리아 반도의 작은 점에 불과한 나라를 둘로 쪼갤 수는 없는 일이며 아버지는 형님만 후계자로 천명했지 함께 다스리라 하시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르한의 제안을 거절했다(여담으로, 동생의 말에 감복한 오르한은 재상직을 창설하고 그를 초대 재상으로 임명했다). 이로써 유목민인 튀르크인이 세운 오스만 제국만은 형제가 나라를 나누지 않는다는 전례가 생겨났으며, 이후 바예지트 1세가 앙카라 전투에서 사로잡혀 옥사한 이후 아들 4형제 사이에 내전이 벌어져 결국 나라가 재통합되면서 절대로 분열해서는 안된다는 지침은 다시금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분열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장남이 대를 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마련되지는 않았고 첫째이든 막내이든 가장 유능한 황자가 뒤를 잇게 되었는데, 이는 황제의 권위가 불안정해지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현재 황제의 형제로서 반란을 일으켜 새 황제로 즉위한다면 그것이 곧 유능하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 따라서 이러한 반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형제들을 살해하는 관행이 3대째 군주인 무라트 1세 때부터 생겨났으며, 메흐메트 2세는 아예 그것을 법제화했다.[16] 실제 역사에서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와 사피예 술탄은 여러 통의 편지를 주고받고 선물을 교환하면서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작중에서도 엘리자베스 1세가 죽자 사피예 술탄이 하렘에 3일간의 애도 기간을 두었다는 언급이나 엘리자베스 1세 이야기를 꺼내며 며느리 한단을 갈구는 장면이 나온다. 잉글랜드로서는 합스부르크 왕가 스페인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오스만으로서는 스페인과 합스부르크 황가 신성로마제국 모두 쉴레이만 대제 이래로의 적이었기에 잉글랜드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오스만 제국은 1590년에 이미 국가 파산을 선언할 정도로 경제가 안 좋았던데다 레판토 해전 이후 해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 있었고 신성로마제국과 15년 전쟁(1591~1606)을 벌이면서 '잉글랜드나 신성로마제국이나 다 같은 이교도고, 똑같이 못 믿을 놈 아닌가요?' 라는 주장을 하는 관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기에, 잉글랜드와의 동맹이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17] 동로마 제국 시절 지어진 등대 탑. 사진.[18] 실제 역사에서는 아흐메트가 즉위 한달만에 사피예 술탄을 제쳐버렸지만, 한단 술탄의 말도 안 들었다. 어떻게 보면 셀림 2세부터 메흐메트 3세까지 막장 황제 3대 이후에 등장한 개념찬 황제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 '개념' 으로 무언가 한 일도 딱히 없기 때문에 평범한 축에 속한다.[19] 실제 역사에서는 아흐메트가 어머니의 조언을 대부분 무시하는 편이었다고. 즉 극중에서도 한단 술탄의 권유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실제로도 무스타파는 무사히 살아남아 다음 황제가 된다.[20] 위의 각주에서 소개했듯이, 이론의 여지가 있다. 아흐메트가 무스타파에게 호감이 있었다기보다, 황실의 대가 끊어지면 안 되었기 대문. 게다가 무스타파는 아흐메트가 즉위하기 이전부터 정신병을 앓고 있었기에, 별다른 위협은 되지 못한다고 여겨졌다.[21] 라마단 다음에 있는 이슬람교의 명절.[22] 애초에 관료들이 꼭두각시 황제로 옹립했기에 정신지체장애인이라고 해도 황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23] 예니체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부대를 창설하려 했다. 자세한 내막은 항목 참고.[24] 이로써 무스타파는 오스만 제국의 역대 황제 36명 가운데 폐위당했다가 복위했다가 다시 폐위된 유일한 황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25] 역사상 출생 년도를 고려하면 당시 30대 후반이나 40대 초중반의 나이여야 하는데 극중 묘사로는 노인에 가깝다.[26] 실제 역사에서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지 않고 자연사했다. 무라드 4세가 이런 편집증을 가지게 된 것은 유명한 야사가 기원인데 이 야사에 따르면 무라트 4세는 자신의 형제들을 손수 죽이다가 마지막 남은 이브라힘 황자까지 죽이려고 했는데 무라트 4세가 먼저 죽는 바람에 실패한다. 시즌 2 스토리는 이 야사를 모티프로 한 것이다. 다만 아무도 지지하는 사람이 없는데다 본인도 무능한 정도가 아니라 정신병에 걸려 있는 만큼 무라드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즉 굳이 죽일 필요가 없는 사람까지 죽이려 했을까는 의문.[27] 알레비파와 같은 계열의 신비주의 종파로 아무래도 기독교에서 개종한 이들이 많은 예니체리인 만큼 양측 모두가 적절히 짬뽕된 하즈벡타쉬파 교리가 널리 퍼져있었다. 입대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양파를 까고 초르바를 준비하는 일로, 이 의식을 통해 예니체리 분대는 한솥밥을 같이 먹는 운명공동체로서 함께 죽고, 함께 산다는 공동체 의식을 배운다.[스포일러] 사실 이스켄데르의 정체는 사피예 술탄의 숨겨진 아들이었다. 사피예와 그녀의 맏딸 휘마샤는 이스켄데르의 정체를 알고 함구한다. 출신이 출신인 만큼 사피예는 아흐메트를 독살 한 뒤 이스켄데르를 황제로 옹립하려했으나 그의 정체를 간파한 아흐메트에 의해 음모는 저지됐다. 24화에서 처형 장면이 나와 사피예와 휘마샤가 대성통곡했으나 사실 살아 남았다. 그 후 모자 상봉이 이루어지고 아들에 대한 사랑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못 버린 사피예가 휘마샤와 함께 또 다시 이스켄데르를 황위에 올리려는 음모를 꾸미지만 할리메에게 역이용당하며 실패한다. 이스켄데르는 몸을 피하기 위해 휘마샤의 배웅을 뒤로 한 채 배를 타고 이스탄불을 빠져 나가려는 찰나, 휘마샤가 보는 앞에서 배가 폭발해버린다. 쾨셈의 밀명을 받은 쥘피카르가 배에 폭발 장치를 설치해 놓았던 것.[28] 이건 절대로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었는데, 오스만 제국의 황통이 단절됐을 경우 크림 칸국의 칸이 오스만 제국의 황위를 계승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크림 칸국은 오스만의 신하국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신하국들과는 달리 군사 지원을 하는 대가로 연공도 지불하지 않고 독자적인 외교권과 화폐 발행권을 갖는 등 독립적인 성향이 상당히 강했다. 다만 마음대로 외교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는 해도 오스만의 적국과 비밀 외교를 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당연히 문제가 되었고, 오스만의 황제는 새로 즉위한 칸을 인정할 것인지 다른 왕족을 앉힐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 즉 칸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29] 자세히 보면 병에 면역이 있는 아나스타시아의 손바닥에서 얻은 피를 천에 묻혀서 아흐메트의 팔에 낸 상처에 붙인다. 일종의 항체 생성에 대한 게 아닌가 싶다.[30] 사실 한단은 아나스타시아를 보고 호기심이 들어 그녀를 방으로 불렀지만, 한단의 면전에서 "당신이 아흐메트의 어머니인가요?" 같은 질문을 하는 등 버릇없이 굴자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년을 우리 아들이랑 짝지운다고? 예의범절을 철저히 교육시키고 나서 보세."라고 바로 내보낸다. 그 후로도 일방적으로 마흐피루즈 편을 드는등 아나스타시아와 대립각을 세우는 중.[31] 터키어로 '천국'을 의미.[스포일러2] 쾨셈의 여동생이다.[32] 사실 노여워할 법도 한데, 실존 인물 아킬레 하툰(Akile Hatun)의 아버지가 그냥 법관 정도가 아니라 셰이휼이슬람(Şeyhülislam)이었기 때문이다. 이 직위는 황제가 곧 칼리프이기도 한 오스만 제국에서 황제를 제외하면 최고위 이슬람 성직자로 특정한 정치적 사건이나 움직임이 있을 때 이슬람 법이나 코란에 비추어봤을 때 가하다/잘못됐다 라는 판결인 파트와(Fatwa)를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여러 종교의 공존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황실은 무슬림이었던 오스만 제국의 사정상 셰이휼이슬람이 발한 파트와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33] 참고삼아 덧붙이면 바그다드는 본래 페르시아의 사파비 제국 영토였다가 쉴레이만 1세가 정복한 이래 줄곧 오스만령이었는데, 1624년에 사파비 황제 아바스 1세가 정복에 성공했다. 그리고 무라드 4세가 (오스만 입장에서)탈환에 성공하고, 실제 역사에서도 '바그다드의 정복자' 라는 별명을 얻었다.[34] 실제 역사에서 1년전인 1631년에 예니체리가 또 반란을 일으켰다.[35] 무슬림은 금주가 원칙이고 실제 역사속에서도 무라트 4세는 금주령을 내렸다.[36] 회상속에서 나오는 소년 시절 무라트와 무사의 관계는 거의 브로맨스, 소년애#s-3 수준으로 묘사된다.[37] 헝가리 2000 포린트 지폐의 앞면에 이 사람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38] 황제가 친정에 나설 경우엔 그의 무기와 갑옷을 준비하는 일을 책임졌고, 황제와 재상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주시하는 일도 맡았다.[39] 복면으로 죄수의 얼굴을 가리고 있어 이브라힘는 사형수가 바꿔치기 된 줄 몰랐다.[40] 무라드 4세 치세 초기에도 그랬지만 이브라힘 치세에도 쾨셈이 정치에 관여할 수 있었던 명분은 '황제 폐하의 모후로서 혼자서는 통치가 어려우신 폐하를 도와 드리겠다' 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케만케시 무스타파 파샤 혼자서도 통치를 원활하게 해낸다면 쾨셈이 들어갈 여지가 없게 되는 것.[41] 전임자가 열심히 정치에 참여한 끝에 무슨 꼴을 당했는지를 두 눈으로 보았던 메메드 파샤는 보신(?)을 위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되도록 꺼렸는데, 이러한 그의 태도와 관련하여 황제 이브라힘과 주고받았다고 전해지는 대화가 일품이다. 어느 날 이브라힘이 메메드 파샤에게 '자네는 왜 짐의 말에 한 번도 반대를 하지 않는가?' 라고 물었더니 메메드 파샤가 말하기를, '저희 신민들 모두 폐하의 말씀을 이해할 수는 없사오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깊으신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은 아옵니다.' [42] 위에서 베들렌 파리아를 소개할 때 언급했듯이 무라드 4세의 후궁들에 대한 기록은 대단히 빈약한데, 그가 낳은 딸 가운데 한자데라는 이름은 없다. 오히려 실제 역사에서의 한자데 술탄은 무라드가 아니라 아메드 1세의 딸이다.[43] 실존 인물 아이셰 술탄이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최소한 1678~79년까지는 살아 있었으며, 1680년은 무라드 4세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째 되는 해다. 문제는 이거 다음으로 나온 47화(시즌 2 17화) 초반부가 무라트 4세의 황폐해진 내면 심리 묘사를 환상과 현실의 교차를 통해 역대급으로 잘 뽑아냈다는 점.[44] 확실하지는 않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마흐피루즈 하티제 술탄의 아들로 추정중.[45] 무라트 4세의 천막안에 잠입한 예니체리가 무라트 4세를 암살하는데 성공한 줄 알았지만 사실 칼에 맞은 사람은 무라트 4세가 아니었고 무라트 4세는 천막 뒤에서 역모를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46] 쾨셈이 카슴에게 반지를 주면서 "네 형 처럼 엄마 속썩이지 말고 황제가 돠 후에도 엄마 무시하면 안된다." 라는 투의 말을 한다.[47] 케만케시 무스타파 파샤는 예니체리 장교를 지낸 적이 있는데, 그 때 궁술이 뛰어나다는 평판을 얻었다. 케만케시(Kemankeş)라는 별명도 궁수(弓手)라는 뜻.[48] 덧붙이면 쾨프륄뤼 메메드 파샤는 쾨셈 술탄의 사후에 시작되는 오스만판 최씨무신정권이라 할 만한 '쾨프륄뤼 시대' 의 시조 격인 인물이다. 다만 자기 밥그릇 지키기가 최대의 관심사였던 최충헌과는 달리 메메드 파샤는 그래도 재상 노릇을 제대로 했다.[49] 실제 역사에서는 메메드 2세나 쉴레이만 1세 내지는 무라드 1세 급이라면 모를까 유럽과 이렇다 할 만한 군사 분쟁이 없었던 무라드 4세를 제거하려 한다는 것은 무리가 많은 설정이다.[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인] [50] 이런 일을 하던 여성들을 Kira(혹은 Kyra)라고 한다.[51] 실제 역사에서는 이런 결투가 없었던 것은 물론, 저항하지 않고 항복했기 때문에 공방전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다.[52] 이 부분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이브라힘의 실책 가운데 하나가 총애하는 후궁들에게 토지를 하사하고 각종 금은보화를 하사하고 하며 그러잖아도 베네치아와의 전쟁 등으로 삐걱대는 나라 살림을 더욱 막장으로 몰아넣은 것이기 때문.[53] 이 점은 러시아 제국 말기의 수도사 라스푸틴과 유사하다.[54] 이 시기에 오스만 제국은 선제 이브라힘 때 시작된 베네치아와의 전쟁을 시작으로 신성로마제국, 폴란드, 러시아 등과 돌아가며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1683년에 2차 빈 공방전에서 오스만이 대패한 것을 시작으로 이들 나라들은 손에 손을 잡고 오스만을 두들겨 패러 나섰고, 메메드의 다음다음 황제인 무스타파 2세 때에야 끝난 이 전쟁은 오스만 역사상 초유의 굴욕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불리하게 끝났다.[55] 사실 임신이 발각됐을때도 하즈 아아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자리페를 죽여버릴 수 있다고 쾨셈에게 말하나 쾨셈이 살려두라고 해서 살 수 있었다. 이번에도 죽이지 않고 이집트로 추방하는 선에서 끝내려 했으니 나름대로 운은 좋은 셈.[56] 실제 이 전쟁의 원인에는 몰타 기사단의 해적질 문제가 있으며 예루살렘에 다녀오던 오스만 제국 하렘 여인들이 탄 배가 해적에게 납치된 일도 그 중 하나.[57] 황위 계승법이 멀쩡하게 돌아가지 않았냐는 의견도 있지만 쉴레이만 대제 이후부터는 그다지 멀쩡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일단 쉴레이만이 직접 아들들의 문제까지 손을 댔고, 그 뒤를 이은 막장 황제 셀림 2세는 아들들을 모두 지방 총독으로 내려보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남 무라트만을 파견했다(그마저도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쉴레이만이 취해놓았던 조치를 그대로 둔 것 뿐. 즉,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그러니 무라트도 아버지의 예를 본받을 수밖에. 그리고 넓게 보면 쉴레이만은 셀림 1세의 외아들이라 경쟁할 형제가 없었으므로, 이미 그의 대부터 황위 계승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58] 이전까지 모든 황자들은 예외없이 지방 총독으로 보내져 자질을 검증받는 한편 제왕교육을 받았다.[59]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흐메트의 뒤를 이어 즉위한 동생 무스타파 1세만 봐도 답이 나온다.[60] 당시 트란실바니아 공작은 선출제였는데, 처음에 이슈트반을 지지했던 트란실바니아 의회는 곧 그에게 등을 돌리고 죄르지 라코치라는 귀족을 지지했고, 오스만 정부에서도 기정사실을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죄르지의 즉위를 인정했다.[61] 외국 수출용 버전이라 일부 장면들이 미묘하게 다르다. 초반부 몇몇 장면등을 삭제해서 터키판보다 10분 가량 짧다.[62] 작중 10여분까지의 초반부 주요 장면들(가슴에서 나무가 자라는 오스만 1세의 꿈, 마흐무트와 아흐메트의 검술 대련, 아나스타시아에 대한 아흐메트의 감정등)이 삭제되는 바람에 왜 아흐메트가 아나스타시아에게 품는 연모의 감정, 이복형 마흐무트에 대한 아흐메트의 형제애를 묘사하는 모습과 그 형제애 때문에 제국의 관습을 깨고 자신의 이복 동생을 처형시키지 않는 아흐메트가 결심한 이유등이 시청자들에게 잘 와닿지 않게 되 버렸다.[63] 보통 드라마 수출로 유명한 나라의 방송국들은 유튜브 등지에 외국인들이 볼 수 있도록 홍보용으로 드라마 영상을 올려놓는 경우가 많다. 한국 방송국들도 국내 시청은 막아 놓았지만 외국인들이 한국 드라마나 뮤직 비디오를 시청할 수 있게 유튜브에 외국 IP만 볼 수 있도록 올려 놓은게 종종 있다. 역시 드라마 수출로 유명한 스페인 방송국등도 마찬가지.[64] 해당 링크의 사진에서는 이사벨라 포르투나 등 유럽 여성도 있다. 또 오스만 제국 자체가 아시아가 아니라 엄연한 유럽 국가이기도 하다.[65] 유럽에서의 튀르크리의 유행으로 카프탄을 비롯한 15세기 - 17세기의 오스만 의복은 동시대 유럽 여성 의복에 꽤 영향을 줬고 튤립 시대에 접어든 18세기 부터는 오스만의 여성 의복이 유럽 스타일을 조금씩 수용했다.[66] 이스탄불 사드베르크 하늠 박물관(Sadberk Hanım müzesi)에서 소장중인 19세기 오스만 제국 시대의 여성 의상(Entari - 엔타리)들. 그리고 탄지마트 시행 이후 여성들 중에서는 링크에 있는 기존 터키 풍 의복 뿐 아니라 유럽 여성복을 입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고 터키와 유럽 양식이 혼합된 의복 입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67] 당시 유럽 등지에서는 직조 기술이 발전 하지 않아 옷감을 덧붙이는 식으로 드레스를 만들었는데 그게 장식화 된것이 어깨뽕이다.[68] 위에 있는 아티케 술탄의 인스타그램 의상은 터키풍 튤립 문양을 수놓긴 했다.[69] 다만 오늘날의 도덕률로 보면 죽이는 것보다는 평생 독방에 가둬두는 것이 인도적이지만,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리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제위 계승법이 바뀌어 '황자들 가운데 가장 유능한 자' 가 아니라 '황족 남자들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자' 가 즉위하게 되면서 황위 계승 후보들의 자질 자체가 떨어졌고, 무스타파 1세나 쾨셈 술탄의 아들로 제위에 오른 이브라힘(재위: 1640~1648)처럼 정신병에 걸린 자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옥좌에 앉는 경우도 생겨났다.[70] 예고편에도 잠깐 촬영장 모습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