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프레레호/2005년

 



1. 개요
2. 과정과 결과
2.1. 연이은 친선경기
2.2. 아시아 최종예선 초중반
2.4. 이후 경기들, 그리고 자진사퇴


1. 개요


본프레레호2005년 경기 기록을 다루는 문서.

2. 과정과 결과



2.1. 연이은 친선경기


해가 바뀐 2005년 1월, 대표팀은 미국에서 전지훈련을 잡았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을 앞두고 마련된 훈련이었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우즈베키스탄, 쿠웨이트 등과 한 조에 속해 있는 상태였다. 각설하고, 다시 전지훈련 내용을 쓰자면 콜롬비아, 파라과이, 스웨덴 등 호락호락하지 않은 중견강호들과의 3연전을 치르게 되었다. 어쩌면 조편성에 따라, 월드컵 본선에서도 비슷한 전력의 국가들과 3연전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만큼 상당히 내실 있는 평가전이었다. 3연전의 결과는 2무 1패를 기록한다. 콜롬비아와의 첫 경기에서는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가나 했는데 페널티킥 동점골을 내주고, 신예 수비수 김진규의 패스미스로 역전골을 내주며 아쉽게 1-2 패배. 두 번째 파라과이전에서는 먼저 페널티킥 선제골을 내준 후 김진규가 헤딩 동점골을 기록하여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압권은 스웨덴과의 3차전이었다. 대한민국은 그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1승을 거둔 적이 없었지만, 정경호의 선제골이 터지며 앞서가기 시작한 것. 다만, 선취득점 이후 얼마 못가 동점골을 내줘 1-1로 무승부를 거두며 미국 전지훈련을 마무리 지었다. 순수 국내파로만 구성된 멤버였음에도 경기 내용면에서 그리 나쁘지 않았던데다가, 중견 강호들을 상대로 상당한 선전을 거뒀기에 월드컵 최종예선 준비는 순조로웠다.
그리고 귀국해 벌어진 2월 4일, 이집트와의 새해 첫 평가전에서 뜬금없이 0-1로 패했다. 축구팬들의 비난이 빗발쳤으나...[1]

2.2. 아시아 최종예선 초중반


2월 9일[2] 열린 쿠웨이트와의 최종예선 1차전 경기이자 홈경기에서는 2-0으로 깔끔하게 승리를 거둔다.[3]
이집트전과 쿠웨이트전으로부터 한 달 뒤인 3월 말에 2차전 경기과 3차전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해당 경기를에 앞서 3월 20일, 아랍에미리트두바이에서 부르키나파소과 먼저 모의고사를 겸해서 친선경기를 치렀는데, 결과는 후반 10분에 터진 김상식의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켜 1대0으로 이겼다. 그리고 사우디로 이동하여 3월 26일 새벽[4]에 열린 월드컵 최종예선 사우디아라비아 원정 경기에서 0-2로 완패했다. 사실 지금이야 '중동의 강호'라고 하면 이란을 꼽지만, 정작 이때까지 우리에게 가장 힘든 상대는 사우디였다.[5] 이날 경기에 박지성 등 유럽파도 모두 차출되었으나, 경기 결과는 2골 차의 충격적인 패배였고, 경기 직후 본프레레가 "선수들이 지능적으로 플레이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며 여론이 꼬였다.[6]
이런 상황에서 이어진 우즈베키스탄과의 귀국 이후 홈경기. 전반전을 무득점으로 마치며 정말 꼬여가는 듯 했지만, 후반 이영표의 선제골과 이동국의 감각적인 발리슛이 터진 후 막판에 우즈베키스탄에 만회골을 내주어 2-1로 승리하며 일단 한숨 돌렸다.
[image]
2005년 6월에 대표팀 훈련 도중 인터뷰를 하다가 한 발언. 1분부터 보면 된다[7][8].
이후 당시 떠오르던 샛별 '''박주영'''을 발탁하고 6월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와 쿠웨이트 원정 경기에 임했다. 후반전 박동혁의 수비 실수로 선제골을 내주며 패배를 기록하나 했는데... 후반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바로 박주영이 기록하며 1-1로 비기게 된다. 데뷔전에서 터진 데뷔골이었던 것이다.[9] 더구나 같은 날 쿠웨이트가 사우디에 0-3으로 대패하면서 대한민국에 유리해졌는데, 쿠웨이트와 무승부를 기록하게 될 경우 나머지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전패하고 쿠웨이트가 전승을 해도 승점이 서로 같아지게 되며, 이 때 처음으로 따지는 상대전적에서 대한민국이 1승 1무로 앞서 최소한 조 2위가 확정되는 것. '''쉽게 말해서 쿠웨이트한테 지지만 않는다면 월드컵 본선 진출은 99% 확정되는 상황'''.
그리고 며칠 후 쿠웨이트 원정 경기. 사실 전년도 아시안컵 이전까지만 해도 쿠웨이트에는 역대전적 5승 3무 8패로 열세였고, 실제로 아시안컵 외에 월드컵 지역예선 등에서 쿠웨이트에 번번이 발목을 잡혔었기 때문에 이번 원정경기는 결코 결과를 낙관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끝에 박주영의 선제골과 이동국의 페널티킥 추가골로 2-0으로 앞서가기 시작했고, 이에 흥분한 쿠웨이트 관중들의 물병 투척 등으로 인한 경기 잠정 중단 등의 해프닝이 있었다. 이후 후반 들어 정경호와 박지성의 추가골로 4-0 대승을 거두었다. 경우의 수를 따질 것도 없이 승점에서 앞서며 6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때까지 거둔 성적만 보자면 감독으로서 본프레레의 자질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본선에서 8강에 그친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이 대회는 부임하자마자 임했던 대회였던 만큼 책임을 논하기는 어려웠다. 문제는 언론플레이에 능숙하지 못한 본인의 언론 대처 능력이었다는 것인데, 언론이야 발행 부수 증가와 트래픽 유도를 위해 일부러 자극적으로 기사를 뽑게 마련이고, 이는 기업으로서는 언론의 숙명이다. 따라서 언론의 태도를 갖고 피하거나 적대시하며 틈을 주어선 안 되지만, 본프레레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 당장 본프레레에게 호의적으로 서술된 기사를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두 번째로는 본프레레 부임 2년 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하며 한없이 높아진 국민들의 기대감이었다. 비록 전임 코엘류 시절 오만 쇼크를 경험하며 현시창의 상황을 직시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아시아 최강자는 지난 월드컵 4강의 우리'''라는 자부심까지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안 그래도 대부분 국민의 눈높이가 하늘을 찌를 수준인데, 인선에서부터 전임 코엘류보다도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듣보잡에 가까운 인물이었으니 본프레레에 대한 신뢰는 매우 낮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때까지 본프레레가 거둔 성적은 오히려 좋다면 좋은 수준이었으나, 시작부터 신임을 받지 못하며 삐걱댄 것은 그의 개인적 비극이나 다름없었다.


2.3. 2005 동아시안컵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이어진 여론의 불신은 이후 홈에서 열린 동아시아 연맹컵에서 기어코 한껏 꼬이기 시작한다. 앞서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선보였으나, 동아시아연맹컵에서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부진들이 마구 쏟아져나오기 시작한다.
첫 경기였던 중국과의 개막전. 전반 초반 강력하게 상대 문전을 유린하며 분위기에서 앞서나갔으나, 과감한 슈팅이 없이 슬슬 밀린다 싶더니... 리웨이펑 등 특유의 비매너 플레이를 펼친 중국이 무려 '''2명'''이 퇴장당하며, 9명이 싸우는 중국을 상대로 0-1로 뒤지기 시작한다. 후반전 김진규가 낮게 깔아찬 대포알 프리킥으로 간신히 1-1 무승부를 기록한다. 그때까지 공한증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절이다 보니, 여론은 말그대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10]
이어진 북한전에서도 답답한 경기가 지속되었다. 안 그래도 2명이 퇴장당한 중국을 상대로 가까스로 비겨서 여론이 심히 좋지 않았는데, 당시 몇 수 아래로 여겨지던 북한을 상대로도 속터지는 골결정력을 선보이며 0-0 무재배를 기록하고 만다.
그리고 마지막 일본전. 본프레레 본인도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여론을 매우 잘 알았고[11] 경기 자체가 단두대 매치나 다름없었다. 이날 수비라인에서 개편이 있었다. 그 전까지 한국은 3백을 고수하고 있었는데, 코엘류 시절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급하게 투입되었던 유상철이 괜찮은 수비력을 보여줘 3백의 중심에 유상철을 박아두고 있었다.[12] 멀티 플레이어이자 노장인 유상철의 능력에 기댄 셈인데,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언제까지 유상철에게만 마냥 기댈 수는 없었다. 본프레레호가 출범하며 그 대체자로 발탁한 것이 유경렬이었고, 나쁘잖은 수비 조율을 보이며 유상철의 빈 자리를 메웠다. 유상철이 빠졌을 때 유경렬이 맡던 그 자리에, 역시 노련한 노장이었으나 국가대표와는 인연이 멀던 김영철을 발탁한 것.[13] 그리고 이 때 신인 수비자원으로 이정수도 발탁했으나, 하필 부상을 입어 최종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경기 초반부터 한국은 일본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일본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으나 템포를 읽고 거둬내는 김영철의 솜씨는 기대 이상이었고, 무엇보다 미드필드에서 전방으로 찔러주는 김두현의 크로스와 패스도 일품이었다. 김두현이 직접 때린 중거리 슈팅이 일본 골대를 강하게 때리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전방의 골 결정력... 90분 내내 애무축구를 하던 한국은 끝내 후반 막판 코너킥 경합상황에서 일본에게 헤딩 결승골을 내주며, 압도적 경기를 펼치고도 패배하고 만다.
결과적으로, 동아시아연맹컵 초대 우승국으로서 홈에서 열린 2회 대회에서는 2무 1패에 꼴찌[14]라는 심하게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야 말았다.[15] 거기다 공한증이 깨질 뻔한데다, 한일전 패배라는 빅 이벤트까지 겹쳤으니 여론은 말 그대로 폭발 직전이었다. 이후 언론에서도 본프레레를 마구 까는 기사까지도 여기저기서 마구 나올 지경이었을 정도로 일반인들의 본프레레에 대한 평판도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2.4. 이후 경기들, 그리고 자진사퇴


북한과 우호적이던 노무현 정부 시절이라, 동아시아 연맹컵이 끝난 직후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과 통일축구라는 명목으로 다시 한 번 리바이벌 매치를 벌였다. 다행히 김두현, 김진용, 박주영의 연속골로 이 경기에서 3-0 완승을 거두며 감독 본인으로서는 한숨 돌렸다 생각했겠지만... 저때의 북한은 어디까지나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최약체였고, 북한의 요청으로 A매치로 인정되지도 않았다. 설사 A매치로 인정되었다 하더라도 팬들도 상대가 상대인지라 잘 했다고 인정도 안 해 줬을 것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불신 속에 시작했던 여론은 동아시아 연맹컵에서 수면 위로 솟구쳤고, 통 진정될 기미조차 없었다.
이에 본프레레는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인 사우디와의 홈경기를 반드시 이겨 분위기 반전을 꾀하려 했다. 그래서 가뜩이나 더운날, 그것도 평소에 잘 입지 않는 양복 정장까지 입고 나왔지만...[16] 전반 3분만에 맥없이 내준 상대의 헤딩 선취골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0-1 패배를 당하며[17] 여론은 제대로 폭발했다. 심지어 경기 종료 후 월드컵 6회 연속 본선진출 기념식 및 출정식에서도 야유가 터져나왔다.[18][19]
그래도 한국 축구에 대해 애정과 열의가 있었는지 며칠 뒤 K리그 올스타전도 찾아와서 관전했으나, 오히려 이날도 관중들에게 야유만 잔뜩 들었다. #
결과적으로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으나, 곳곳에서 야유를 듣고 축구협회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어지는 등 폭발한 비난 여론과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사퇴. 물론 말이 자진사퇴지 바로 그 며칠 전까지는 자진사퇴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처음에는 경질이라고 보도되기도 한 것으로 봐서 축구협회에서 퇴진을 강요한 것으로 보인다. 1, 2, 3 마침 이 때는 본프레레의 친아들이 여자친구와 직접 한국으로 여행을 왔을 때였다. #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차기 감독 자리에는 같은 네덜란드 출신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앉게 된다. 히딩크 - 본프레레 - 아드보카트, 그리고 마지막 핌 베어벡으로까지 이어지던 이른바 '더치 커넥션'이었다.
재임 기간 동안 본프레레는 코엘류에게 등용되지 않던 이동국을 재발탁, 주전으로 기용하며 월드컵 예선전의 주축으로 삼았다. 이동국은 아드보카트호에서도 주전 공격수로 기용되었으나 본선을 앞두고 부상으로 낙마했다. 훗날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원톱 자리를 맡은 조재진은 이동국이 정상 컨디션으로 본선에 나왔다면 결과는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실제로 월드컵 최종예선과 동아시안컵을 제외한 유럽/남미팀과의 경기들을 종합해봤을 때 본프레레 체제가 월드컵 본선까지 갔다면 충분히 해볼 만 했다. 독일, 스웨덴,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모두 선제골을 넣었을 정도의 저력이 있었다.
또한 조재진과 정경호 등 전반적으로 피지컬이 좋거나 발이 빠른 선수들을 중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 나온 독일전 엔트리도 김두현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한 체격하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당시 청소년 대표팀이나 K리그에서 떠오르는 별이었던 박주영은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는 이유로 벤치 신세. 그리고 이것은 분명히 '''맞는 말'''이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스위스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당시 박주영은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의 강력한 피지컬과 압박을 이겨낼 힘이 없었다. 다만, 이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본선 직전 준비 과정이나 본선에서의 경기 운영 및 용병술이 많이 아쉬운 수준이었기에 월드컵 본선에 한정해서 본프레레 체제를 그대로 적용했다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결과론적일 가정일 뿐이지, 그렇다고 본프레레가 월드컵 본선까지 이끌어갈만한 믿음을 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사우디전에서 박주영, 안정환 투톱을 기용해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프레레호 시절이 미스테리한 점이 너무 많은 느낌이지만, 분명한 것들은 여러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것과 독일 월드컵 최종 멤버 구성에 공헌하였다는 것 두 가지라는 거다.


[1] 이때 오프사이드 상황에서 정경호가 상대 골망을 갈랐다. 주심은 오프사이드를 선언하며 골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걸 못 본 정경호는 홀로 관중석을 향해 뛰어가며 골 세레머니를 벌였다. 정경호 개인에게는 안습한 상황이었는데, 당시 상황을 편집해 인터넷에 올라온 화질이 너무나도 좋았다(...). 이후로 한동안 화질이 극히 좋은 편집본을 두고 '''정경호급 화질'''이라는 관용어가 널리 쓰였다.[2] 참고로, 이날은 설날이었다.[3] 당시 송종국의 기량이 저하된 뒤, 오른쪽 풀백에는 우수한 자원이 없었다. 이 경기부터 본프레레는 이영표가 왼쪽 오른쪽을 가리지 않고 뛸 수 있음에 착안, 왼쪽에서 뛰던 이영표를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시킨다. 이영표가 뛰던 왼쪽 풀백에는 김동진을 투입했다. 제1회 동아시아 연맹컵에서 3경기 모두 출전하며 첫 우승에 기여했던 김동진의 기량은 매우 준수했으며, 독일을 아시아 최초로 격침시켰던 바로 그 친선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김동진 역시 풀백은 물론 중앙수비수도 가능한 자원이었으나 왼발잡이(...)인 탓에 왼쪽 풀백만을 맡아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는데, 이영표는 최종예선에서 득점까지 기록하며 우수한 활약을 뽐냈다.[4] 한국시간.[5] 반면에 한때 번번히 우리의 발목을 잡던 쿠웨이트는 본프레레 시절부터는 한국 전용 연승행진 셔틀(?)이 되며 서아시아, 나아가 아시아 내에서도 아예 가장 만만한 상대로 추락했다. 또한 사우디와는 2008년 이후로는 전세가 역전되어 우리나라가 사우디보다 갑이 되었다.[6] 그러나 실제 인터뷰는 자신의 전술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 지극히 정상적인 수준이었다. # 뿐만 아니라 5개월 전의 레바논 원정 경기 때도 '''"적어도 우리는 오늘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6~7차례 결정적인 기회에서 골로 연결을 못했을뿐인데 지금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나?"'''라는 말로 답답함을 토로했을 뿐, 선수 탓을 하면서 책임전가나 하는 무능한 감독은 결코 아니었다.[7] 한참이 흘렀지만, 지금도 축구를 비롯해 여러 스포츠에서 4:3 승리가 나올 때면 항상 튀어나오는 짤방이다.[8] 그리고 14년 후 K리그1에서 이 발언과 비슷한 '''대역전승이 나오게 되는데'''...[9] 이 골은 사실 오프사이드로 볼 여지가 있다. 물론 워낙 정신없던 상황이라서인지 우즈벡 선수들이 별로 항의를 안 했지만...[10] 이로부터 5년 뒤 똑같이 동아시아연맹컵에서 중국에 0-3으로 패하면서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이 중국에 패하는 결과를 만들었던 허정무도 뒤이은 한일전에서 3-1 대승을 거두지 않았다면... 어떤 식으로든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11] 또한 한일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동아시안컵 직전 인터뷰에서 '''"중국은 한 번도 진 적 없으니 이겨야하고, 북한은 같은 민족이니까 이겨야 하고, 일본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라고 강조했을 정도.(...)[12] 아시안컵보다 올림픽을 중시하던 풍토상, 유상철이 와일드카드로 올림픽에 선발되자 앞서 아시안컵에선 이민성을 같은 자리에 투입했었다.[13] 본프레레 시절 붙박이 수비수였던 유경렬은 정작 아드보카트호에서는 처절하게 외면받았다. 4백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나 뭐라나... 반면에 김영철은 독일 월드컵까지 승선, 월드컵 무대에 나설 수 있었다.[14] 9명이 뛴 중국에 1-1 무승부, 북한과 0-0 무승부, 일본에 0-1 패.[15] 여담이지만, 동아시아연맹컵은 홈 개최국은 우승하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일본에서 열린 1회 대회에서 대한민국이 우승한 것부터가 시발점이었다. 그러나 2019 EAFF E-1 풋볼 챔피언십에서 당대회 개최국 대한민국이 우승하면서 이 징크스는 깨졌다.[16] (본프레레가 감독으로 있었을 때) 그 동안 한국 대표팀 경기들을 보면 본프레레는 항상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선수들을 지휘했다. 그런데 앞서 말한 통일축구 당시 특별한 날이니 정장을 입었다가 3-0으로 승리하자, 사우디전에서도 꼭 이기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정장으로 표현한 것. 그만큼 본프레레가 한국 대표팀에 열정적이었음을 알 수가 있는 일화.[17] 이 경기만큼은 본프레레의 전술이 완전히 실패했다. 사우디가 수비에 중점을 둘거라 예상하고 초반에 공격적으로 나갔는데, 오히려 사우디가 맞불을 놓으며 생긴 틈에 실점한 것. 물론 그 뒤로 사우디는 침대축구를 시전했고 결국...[18]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아시아 지역 예선 최종전에서 이란에게 패배한 뒤 맞은 월드컵 출정식을 기억하는가? 물론 간신히 본선에 진출한 상황은 그때가 더 안 좋았지만, 분위기는 본프레레의 월드컵 출정식이 훨씬 더 나빴다.[19] 그리고 본선 여부와 관계없던 이 경기에서 김동진이 퇴장을 당하며 본선 첫경기인 토고전에 출장정지가 적용되어 아무런 소득도 없이 잃은것만 잔뜩 떠안은 경기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