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한중일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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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중국'''
'''일본'''
'''언어별 명칭'''[1]
'''한국어'''
한중일
韓中日(한중일)
'''中文(简体)'''
Zhōng rì hán(쫑르한)
中日韩[2](중일한)
'''日本語'''
にっちゅうかん(닛츄칸)
日中韓(일중한)
'''English'''
CJK(씨제이케이)
中日韓(중일한)
1. 개요
2. 용어
2.1. 북한
2.2. 대만
3. 역사
4. 국력
5. 현재
6. 여담
7. 관련 문서


1. 개요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3대 강국인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일본국을 묶어 이르는 말. 로마자 표기는 '''CJK'''('''C'''hina - '''J'''apan - '''K'''orea)이다.

2. 용어


세 국가 각각 자신의 국가를 맨 첫 단어에 배치시키고 나머지를 국제관계나 전체적인 인지도에 따라 순서를 정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일본, 중국 둘 다 한국을 맨 마지막에 배치시킨다. 다만, 중일관계가 나빠질 시 가끔 중국에서 '중한일'이라고 부른 적도 있어서 바이두 문서 검색 수로 따지면 '한일'이 약 2,600여 만 건 뜨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한중관계 악화 여부와는 상관없이 보통 '한중일'이 사용된다. 다만 명칭은 이리 사용하고 자국 포함 세 나라를 소개할 때 한국-일본-중국 순으로 소개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영어권은 '중일한(CJK)'이 많이 쓰인다. 제3자 입장에서는 로마자순이 무난해서인 듯하다. 재미있게도 경제력(국력), 인구, 국토 면적 순과도 일치한다.[3]

2.1. 북한


  • 한국: 북한이 중국과 만나면 북중(北中), 일본과 만나면 북일(北日)이라고 한다. 가끔 반북 성향이 강한 사람이나 국방부 등에서 일북관계로 부르기도 하며, 일본보다도 우선 순위가 뒤로 갈 때가 있다.
  • 중국: 중국은 북한을 조선이라 부른다. 북한이 한국과 만나면 북남(北南)이나 한조(韓朝), 일본과 만나면 조일(朝日)이라고 한다. 다만 현재 남한의 국력이 북한보다 월등히 앞서기 때문에 정부, 언론 등 공식적인 발언이 아닌 경우 남북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 일본: 일본은 북한을 북조선(北朝鮮)이라 부른다. 북한이 한국과 만나면 남북(南北), 중국과 만나면 중조(中朝)라고 한다.
  • 북한: '조선'이다. 자신이 한국과 만나면 북남, 중국과 만나면 조중, 일본과 만나면 조일이라고 한다.
  • 대만: 한국과 북한이 만나면 남북한(南北韓) 또는 양한(兩韓)이라고 한다.

2.2. 대만


중화민국이다. 하지만 중국 때문에 앞 글자로 대(臺)를 쓰기도 한다. "華"라는 표현을 쓸 때도 있다. "駐華大使(대만 주재 대사)" 같은 표현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에서도 한동안 그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 일본, 북한 등에서는 중국과 대만이 만나면 양안(兩岸)이라고 한다.

3. 역사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떼놓고는 아예 설명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와 중국에서 시작된 유교는 중국을 타고 한국을 거쳐 일본까지 퍼졌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한자는 한중일 모두가 활용한다. 이러면서 한중일은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특히 중국의 정세가 중요했는데 중국과 땅으로 연결된 한국은 여기에 늘 긴장의 끈을 조이고 풀고 반복했으며 일본은 동해를 끼고있기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었으나, 일본의 이웃 국가 중 가장 밀접한 곳이 한국이니 결국 어떻게든 일본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 나라 모두 왜구 때문에 문제를 많이 겪었는데 고려는 왜구를 토벌하면서 세력을 키운 무인들이 정변을 일으켜 조선이 됐고 명나라 역시 동남부 해안 지대에서 몸살을 앓아 왜구를 토벌하면서 아예 해금령을 내려 주민들을 내륙으로 옮기고 했다. 일본은 왜구 때문에 툭하면 외교적으로 조선과 명나라에게 털렸기에 막부 차원에서 나중에 왜구를 처리했다.[4] 왜구가 들끓은 시기는 대체로 일본 본토가 전란이나 혼란으로 인해 국가 차원에서 관리가 안 될 때였고 나중엔 영주들이 돈 벌려고 거의 정규군 수준으로 편성하기도 했다. 에도 막부에 간 뒤론 끊기지만.
한국과 중국은 중국의 통일왕조인 수나라당나라가 공격하여 전쟁을 치룬 사례가 있고 당나라 때는 백제가 망할 때 나당연합군왜국의 군이 만날 일도 있었다. 굳이 중국의 왕조가 아니더라도 한반도는 북방의 여진족이나 거란, 몽골 때문에 중국 대륙과 늘 연결됐다. 조선은 북방 문제를 상당히 중시했으며 평안도나 함경도에 정예 병력이 주둔했다.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하에 놓였을 땐 여몽연합군이 결성되어 일본을 침략하기도 했다. 일본 유사 이래로 외국군이 본국에 쳐들어온 건 처음이라 긴장했으나 때마침 나타난 태풍으로 몽골의 점령 계획은 흐지부지됐다. 참고로 여몽연합군 철수 이후 일본에서는 이때 불어닥친 태풍에 하나의 이름을 붙였는데 그게 바로 카미카제.
시간이 흐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하면서 조선과 명의 연합군이 일본군과 거하게 전쟁을 벌인다. 끝내 일본은 막부를 갈아치운 이후, 전쟁 종결에 대한 의사를 표한다. 조선은 이를 받아들이고 명은 청의 침공과 각지의 반란 때문에 국력이 쇠하며 멸망한다. 그 후 세워진 청은 수 백년간 쇄국으로 일관했고 조선이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에 이르러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구식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국력을 잃어가던 조선을 공격하고 패권 유지에 급급하던 청도 뒤늦게 제국주의 물결에 동참하려고 조선에 손을 들이밀다가 둘이 1894년에 청일전쟁을 일으킨다.[5] 최종적으로 일본이 전쟁에 이기면서 청은 조선에서 추방되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고, 1897년 고종이 제국을 선포하면서 조선은 대한제국이 된다.
그 이후 1904년 러시아 제국이 일본과 대한제국 침략을 놓고 경쟁했으나 일본이 러일전쟁마저도 승리하면서 결국 대한제국은 멸망하여 일본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청나라도 안에서 온갖 소용돌이로 어지러워 1912년에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되었으나 1920년대에는 군벌들의 난립으로 내전 상태가 된다. 그 사이 일본은 식민지로 전락한 한반도를 기점으로 삼아 차근차근 국력을 키워나갔고, 마침 1930년대가 되자 누더기가 된 중국을 공격해 만주를 점령하는데 성공, 그 직후 만주국을 세운다. 군벌간의 반장전쟁에서 중국 국민당중국 공산당으로 갈려서 싸우고 있던 중국은 국공합작을 이루며 침략자 일본과 싸웠고 미국의 도움을 받아 중일전쟁에서 승리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 세력은 일본이 포함된 추축국들에 대한 전범 재판과 처벌, 이들의 소유하던 식민지들을 깔끔히 해산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때 한반도와 타이완을 비롯한 일본의 동북아 식민지들이 해방하게 된다. 그 이후에도 연합국 측은 박차를 가하며 일본의 국가 체제 자체마저 뒤바꾸려는 시도를 가행하나 때마침 소련이 한반도까지 남하하면서 한반도의 북부는 공산정권이 세워지고 남부에는 미군이 들어와 대한민국이 생긴다. 제국주의의 물결이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갈등인 냉전이 자리잡은 순간이었다.
또한 1949년에는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다시금 다투게 되었고, 그 국공내전의 결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니 중화민국 정부는 타이완으로 쫓겨났다. 그 후 한중일에서 한은 이 대한민국을 가리키는 말, 중은 중국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간혹 대만을 중으로 하여 한중일을 표기하는 경우도 있으나, 1970년대 이후로는 이런 용례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4. 국력


시대별 각 나라의 힘의 크기를 따지자면
'''조선초기 이전''' : '''중''' > 한 > 일[6]
'''임진왜란''' : '''중''' > 일 > 한[7][8]
'''임진왜란 이후 ~ 메이지 유신 이전''' : '''중''' > 일 > 한[9]
'''메이지 유신 ~ 2차 세계 대전''' : '''일''' > 중 > 한[10]
'''6.25 전쟁''' : 일 > 중 > 한[11][12]
'''1980년대''' : '''일''' > 한 > 중[13][14]
'''현대''' : 중 > 일 > 한[15]
'''당대 다른 국가들보다 압도적으로 국력의 우위를 두고 있는 나라는 볼드체로 표시됨.'''

5. 현재


인적, 경제적 교류가 활발하나 역사와 정치, 영토 문제로 서로 증오가 많으며 통상의 문제도 많다. 특히 한중일은 산업적으로 다들 수출을 많이 하는 편이라서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중국이나 일본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인구를 가져서 내수가 상당히 크지만 한국의 내수는 세계 10위 정도로 국가별 명목 GDP 순위 규모에 비해선 규모가 조금 작다.[16][17] 아시아 내에서만 따지면 한국은 중국, 일본, 인도에 이어 4위 수준. 중국의 내수는 2020년 기준 일본과 한국의 그것을 합친 것의 2배 수준이다. 일본은 중국에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를 내준 이후에도 장시간 내수 세계 2위를 유지하다가 아베노믹스 이후 엔화 약세로 인하여 중국에 추월당했다.
2020년 9월 기준 재한 외국인 1위는 중국인이며 일본인은 14위이다.
재중 외국인2010년 말 기준으로 60만 정도인데 1위는 12만의 한국인, 2위는 7만의 미국인, 3위는 6만 6천의 일본인이다. 출처 이 기록은 홍콩은 제외한 것이다. (중국에 체류하는 홍콩인은 23만 정도)
재일 외국인 1위는 중국인이다. 1990년만 해도 20만도 안 됐지만 지금은 70만에 이른다. 2위는 한국인이다.
유니코드에서 한자 인코딩 문제로 한중일 통합 한자를 지정할 때는 'CJK'로 호칭했다. '''C'''hina, '''J'''apan, '''K'''orea의 앞글자를 ABC순으로 나열한 것.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경제권은 북미, 유럽과 함께 세계 3대 경제권에 속한다. 현재는 유럽연합의 경제력 보다 중국, 일본, 한국 세 나라의 경제력을 합친 것이 더 큰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유럽연합같은 블록경제를 형성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5.1. 한중일 정상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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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제 5회 한중일 문화장관회의. 가운데 배석된 인물이 당시 문체부 장관 유진룡.
위에서 주목할 게 한국식 한자 독음으로 읽자면 중국식 표기는 '중한일 문화부장 회의', 일본식 표기는 '일중한 문화대신 포럼'이다. 특이하게 중국에서 중한일로 표기했다..
자존심 싸움으로 인해 사진과 같이 3국의 표기를 몽땅 표기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 와중에 한국에서 열린 자리라 세로드립은 한중일(첫 글자는 나 먼저 원리가 적용됐다.) 두번째 글자와 마지막 글자의 순서를 통해, 한중일 상호 간 미묘한(...) 감정을 파악할 수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한중일 정상회의 참고.

5.2. 한중일 패권 경쟁


한중일 3국이 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서로 경제, 문화, 군사 등을 발전시키려 경쟁하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한중일 패권 경쟁 참고.

5.3. 한중일3국협력사무국


몰랐겠지만 한중일 협력을 위한 국제기구도 존재한다. 여러 이해관계를 고려해 한국 서울에 2011년 설립되어 벌써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다. 자세한 내용은 한중일3국협력사무국 참고.

6. 여담


  • 한국인과 일본인과 중국 한족의 유전적 차이는 전체 유전적 다양성의 1% 미만으로, 이는 다른 집단과 비교했을 때도 매우 작은 차이이다.[18]
  • 도래인 계통의 야요이인은 현대 일본인의 혈통 비율 중에서 87~96.7%를 차지한다고 한다.[19][20]

"일본인의 기원이 고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부정·왜곡하는 일본 학계의 의식이 한일 계통 연구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한국과의 관계를 회피하고 한반도와 다른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왜곡된 인식이 패전 후 계통 연구에 큰 장애물이 됐다"

"1970년대 이후 학자들이 일본인 기원 모델을 내놓았지만 그들조차 도래인(渡來人)의 위상을 가능하면 과소평가하고 단순히 한반도 문화가 일본 열도에 전파된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컸다"

세키네 교수는 "일부 학자는 도래인이 시베리아·만주에서 한반도를 뛰어넘어 일본 열도로 이주했거나 멀리 중국 남부에서 바다를 건너왔다고 해석한다"고 말했다. 왜곡된 형태로나마 한국인과의 직접적 관계를 회피하려고 고안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 세키네 교수의 분석이다.

"인류유전학적으로도 도래인은 분명 '고대 한국인'이 맞다"며 "일본 학계가 한일 간에 명백한 문화적 연속성이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적어도 혈연관계만큼은 인정하면 안 된다는 신념이 작용하는 것 같다"

"여전히 일본 학계 연구자들이 왜곡된 잠재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몇몇 뜻있는 학자들은 학계의 냉대에도 꿋꿋하게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며 "과거 짧은 시간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졌듯이 머지않아 한일 계통 연구에 획기적 전기가 찾아오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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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네 히데유키 가천대 동양어문학과 교수, 2016년

  • 한중일 3국의 수도를 각각 지도에서 찾아보면 베이징-서울-도쿄인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위도가 낮아지는 하향선의 형태를 띠고 있다. 영문 앞자를 모아 베세토(Beijing-Seoul-Tokyo)라고 부르기도 한다.
  • 컴퓨터 IME 개발 시 같이 묶이는 경우가 많다. 구현 방식이 영어와 다르다보니, 로망스어군이나 게르만어파에 비해서 IME 개발 시 따로 신경 써줘야할 부분들이 있기 때문. 비교적 최근의 사례로는, 윈도우 10 20H1에서 IME 개선을 같이 받았고#, 데스티니 가디언즈 한글 채팅이 안 되는 등의 호환성 문제가 터진 상황이다. #.
  •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넷상을 중심으로 반일감정과 반중감정이 서로 급격한 반전을 보이면서 "한중일"대신 "한일중"이라는 표현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 2020년 12월 10일에 대한상공회의소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시대에 한중일의 경제 협력은 정경분리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 iOS 번역 앱에서 최초 지원하는 11개 언어에 한국어, 표준중국어, 일본어가 나란히 포함되었다. 한중일 3국 언어를 제외한 아시아 언어는 아랍어가 유일하며, 나머지 7개 언어[21]는 전부 유럽 언어다.

7. 관련 문서



[1] 표기 방식이 한국을 제외하면 한국이 전부 다 맨 뒤에 있어서 한국인 입장에서는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영토로 보나, 인구로 보나, 국내총생산(GDP) 등으로 보나 한국이 모두 제일 맨 뒤이기 때문이다. 국제관계는 힘의 논리가 우선이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이으로 그렇게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다. 참고로 영어 표기는 로마자 알파벳 순서이기도 하다.[2] 중국은 반일감정 또는 기타 이유 등으로 인해, 中韩日(중한일)로 한국을 자국인 중국 다음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일본에 비해 제법 있는 편이다. 하술된 제5회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공식적으로 '中韩日'로 표기했다.[3] 여기에 한자나 유교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동아시아권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베트남을 추가해서 CJKV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인구나 국토크기 순서는 무너지지만 신기하게 로마자 순서와 경제규모, 국력 순서는 그대로 일치한다. 물론 베트남과 한중일은 국력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함께 거론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몽골이나 대만, 북한 또한 마찬가지. 세계 2위 강대국인 중국, 분류상 강대국은 아니나 그 자격을 사실상 갖추고 선진국의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일본, 선진국이자 지역강국에 해당하는 한국에 비해선 이들은 대만을 제외하곤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으며, 대만도 중국과의 정치관계나 국가 규모를 고려했을 때 함께 거론되지 못 한다.[4] 자국민이라고 봐줬을 것 같지만 막부 입장에선 자기네 직속도 아니라 이득볼 것도 없는데 지방 세력들 배를 불려주는데다 외교적 마찰로 외국의 침략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에 중국이나 조선만큼 절박하진 않더라도 당연히 단속해야 할 집단이었다.[5]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은 청나라에 부정적이었던 터라 지금 들으면 생소하겠지만 일청전쟁이라고 했다. 수구파, 개화파 양쪽 모두 청나라를 싫어했는데 수구파는 수구파대로 만주족의 오랑캐 정권이니 정통 중국이 아니라고 싫어했고 개화파는 개화파대로 중국 자체가 구세력의 사상인 중화주의의 모체이니만큼 당연히 싫어했다.[6] 조선에 전성기는 조선초기로 평가하는 학자들이 많다. 세종대왕이 조선초기 인물인 것만 봐도....[7] 조선이 선조의 개트롤로 인해 방어를 굉장히 미흡하게 한 것도 있으나 임진왜란 이전 일본은 100년간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풍부한 전투경험을 가진 군사들과 군사전략 또한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도 군사강대국이라고 평가 받을 정도다 또한 행정능력이 부족한 시기라 지방 단위로 쪼개진 것이 오히려 통치의 효율성이 더 나았다 이러한 성과 덕분에 전국시대가 끝나고 농업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8] 조선임진왜란전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에 평화로 인하여 군대의 기강이 해이해졌고 사전에 일본군의 침공가능성을 보고하였지만 무능한 정부의 느슨한 태도로 인하여 대처가 미흡했다. 하지만 조선의 초기에 쌓아놓은 기술력과 이순신이라는 먼치킨 영웅과 명나라에 도움으로 일본군을 무찔렀다.[9] 조선의 인구와 농업생산량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일본보다 낮았고 에도 시대 일본의 구매력 지수는 동아시아에서 제일 높았다. 중국은 세계 경제에 20 ~ 30%를 차지했다. ~[10] 간혹 역사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중국이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명맥을 이어왔다고도 생각하는데, 중국은 한국처럼 강제 점령을 당하진 않았으나, 나라가 여러개로 쪼개지고 내전까지 하던 상황에 중일전쟁까지 일어나 국민이 학살당하고 나라가 반으로 쪼개지며 수모를 겪었다. 서방국가들의 지원을 통하여 다행히도 중일전쟁은 중국이 승리하였다.[11] 중국은 마오쩌둥이 내건 공산화로 인하여 인민들의 충성심이 높아짐에 따라 중국도 예전의 위상을 조금이나마 되찾았고, 결과적으로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하여 다 이긴 한국전쟁을 못 이겼으니 말 다했다. 또한 한국은 한국 전쟁으로 인해 세계 경제국가 120개국 중 무려 119위를 차지하게 된 전쟁 직후의 남한은 나라 축에도 못 들 판이었다.[12] 일본은 패망으로 인하여 국력이 많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과거 아시아 유일 열강 답게 공업력과 경제수준은 여전히 아시아 원톱이였다. 그런상황에서 한국전쟁까지 일어나니 가장 큰 수혜자는 누가뭐니 해도 일본인 상황이였다.[13] 일본은 1960년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1980년대에는 미국을 위협정도로 경제가 발전하여 일본인을 경제동물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그리고 버블 경제시기 미국 GDP에 '''71.12%'''까지 따라잡았고 GDP 규모 면에서 일본은 영프독을 다합친 것 보다 많았다. ~[14]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의 지도 아래에서 개혁개방을 하였다. 하지만, 대약진 운동문화대혁명 후유증 때문에 이미 전세계에서 최빈국이 되어버린 중국이기에 이미 국력은 떨어질때로 떨어진 상태였다. ~[15] 중국은 PPP는 2000년대쯤 일본을 추월했고 GDP는 2010년에 추월했다. 현재 중국의 전체 GDP는 한일 양국을 압도하지만 군사력 측면에서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동맹이 있으니 오히려 불리하다.[16] 대한민국의 인구 순위는 5182만으로 세계 27위다. 사실 중국(1위), 일본(11위)의 규모가 워낙 커서 그렇지 20위 권의 세계 상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프랑스(21위), 영국(22위), 이탈리아(23위)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17] 이전에는 단순하게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와 한국 사이의 순위 격차가 적은터라 비슷한 체급이라고 작성되었으나, 프랑스와 영국이 6천 7백만명 정도의 인구로 한국에 비해 1천 4백만명 가량 많은 규모를 자랑하며 이탈리아 역시 한국보다 1천만 명 이상의 인구를 지니고 있다. 완전히 비슷한 체급은 아니라는 뜻이다.[18] #[19] 조몬인 혈통 비율 3.3% 3.3% (2020) 8% ~ 9.8% (2019) 9% ~ 13% (2019) (연구 모델을 조몬인과 야요이인을 염두하고 설계했다.)[20]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종종 일본인에 관한 생물학적인 연구를 할 때, 일본 내에 존재하는 오키나와인, 아이누인, 본토 일본인(야마토 민족)을 각각 비슷한 숫자로 표본을 수집하여 연구 결과를 낼 때도 있다. 이렇게 되면 1억 2천만 명이 넘는 일본 인구 중 오키나와인과 아이누인은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유전 형질 비중(조몬인 계통)이 심하게 과대평가된다. 과학계에서 이런 식으로 표본을 편향되게 수집하여 의도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유도하는 행태가 아예 없는 게 아니므로 주의해야 한다. 의도한 부분은 아니었겠지만 암내 유전자 비율을 조사할 때도 유사한 경우가 있었다.[21]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22] 다름이 아니라 냉전시절의 미소관계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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