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찰스/출연자 목록/외국인 신입생/2021년 상반기
1. 개요
본 문서는 이웃집 찰스의 2021년 상반기 외국인 신입생 목록이다.
2. 상세
2.1. 269회
- 컬렌: 미국 출신. 오하이오 주 출신으로 2013년에 교환 학생으로 한국에 건너온 그는 졸업 이후 귀국했다 다시 한국으로 와서 만난 내국인 여성과 2년간 사귀고 혼인했다. 출연 당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중산동에서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었으며, 원어민 교사로 재직하다 2019년부터 피자 전문점 힐빌리 피자[1] 를 운영하고 있었다. 집에서 부부가 일어난 다음 치킨랩을 만들어서 식사를 했으며, 사업장으로 가서 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례자는 왜 네모난 피자를 파냐는 PD의 물음에 고향의 네모난 땅을 닮은 피자가 유명해서 팔게 되었다고 대답했다[2] . 부부가 치즈피자 주문을 받자 사례자가 직접 만들어서 배달했다. 단지를 헤맨 끝에 목적지에 겨우 도착해서 손님에게 치즈피자를 줬다. 그는 한국의 아파트 문화로 인해 배달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사례자가 업소에서 주문을 받았다가 배달해야 할 곳을 놓쳐서 배우자가 손님에게 전화로 다시 확인해야 했다. 자택에서 배우자가 일어나지 않자 사례자가 그녀를 데리고 덕양구 화정동에 위치한 한 산부인과로 갔다. 진단을 받아보니 임신 17주차로 밝혀졌으며, 태아는 건강하다고 했다. 식사동에 위치한 공원에서 배우자의 아버지를 만난 부부는 사리현동에 위치한 한 유아용품 매장에 가서 유아복과 한글 교육 자료를 샀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양파, 사과, 당근, 닭고기 등으로 닭볶음탕을 만들어 식사를 했다. 업소에서 손님들이 감자 피자를 주문한 것 때문에 배우자가 감자 피자와 불고기 피자도 팔자고 했으나 사례자가 거절했다. 이유는 향토음식의 전통성과 고유성을 중요시하려는 사례자의 생각 때문이라고. 결국, 사례자가 성석동에 있는 한 물류센터를 찾아 불고기 토핑을 산 다음 불고기 피자와 버펄로 치킨 피자를 만들어서 주변 상권을 대상으로 시식 행사를 했다. 먼저 공인중개사를 찾아가 시식 행사를 진행한 다음 카페에 가서 시식 행사를 진행했는데, 그 때까지 버펄로 치킨 피자를 선택한 사람들만 있었다. 이후 미술학원으로 가서 시식 행사를 했더니 원생들이 불고기 피자를 선택했는데, 이유는 짠맛이 나서라고. 투표 결과 버펄로 치킨 피자를 선택한 사람이 많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저녁이 되자 사례자가 고향에 있는 부모에게 전화를 했으나, 부모가 새벽에 전화를 받게 되어 급히 끊었다[3] . 사례자는 가을이 되면 고향에서 추수감사절과 미식축구 경기 등 각종 행사가 열린다고 하는데, 원래 2020년 말에 고향을 찾으려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범유행과 배우자의 임신으로 인해 갈 수 없었다고 했다. 배우자가 사례자 먼저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으나, 사례자는 배우자를 두고 갈 수 없다며 인근에 있는 한 일식집으로 가서 사업주와 이야기를 나눴다. 부부가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에 위치한 한 캠핑장으로 여행을 가서 고기로 식사를 했으며[4] , 스모어를 먹다가 사례자가 어딘가로 가더니 꽃다발을 가지고 배우자 앞으로 돌아와서 편지와 함께 전달했다. 어느 날, 강재준이 사례자 부부의 사업장을 방문해 백화점 행사를 앞두고 판매 요령을 지도했다. 강재준이 피자를 먹고 호평한 다음 성질 급한 한국인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며 팔지 않는 메뉴를 주문하는 손놈이 있으면 자신이 팔고 있는 메뉴를 추천하는 것은 물론 주문받은 즉시 판매하라고 지도했다. 그는 이와 함께 한국식 피자를 팔지 않는다고 고지해야 하는 점과 백화점으로 많이 찾아오는 중년 여성들에게 어머니라고 말하라고 지도했다. 현대백화점 킨텍스점에서 열린 우리동네 찐 맛집 왕중왕전에 참가해 손님들에게 피자를 판매했으며, 강재준이 지도한 대로 한국식 메뉴를 안 판다는 고지 사항을 명시했다. 부부는 이번 행사를 통해 피자 100판을 판매하고 역대급 수익을 올렸다. 여담으로, 엔딩 크레딧에서 후지타 사유리가 득남한 사실을 직접 전했다[5] .
2.2. 270회
- 마이클: 캐나다 출신. 모험과 도전을 좋아해서 2008년에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제주도의 경치가 좋아서 정착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출연 당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서 매슈와 함께 살고 있었으며, 영평동에 위치한 MCN 아일랜드 스토리에서 프로듀서로 재직하다[6]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직장에서 작품을 만들던 사례자가 동료에게 편집 지침을 전달했으며, 각종 장비들을 준비한 다음 차를 타고[7][8]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 위치한 해녀의 자택을 찾아갔다. 사례자가 해녀를 주제로 영상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히자 해녀 할머니가 흔쾌히 승낙했다. 해녀 할머니는 해녀학교에 다닌 다음 어촌계에 가입해야 해녀가 될 수 있다면서 우리 세대 이후로 해녀를 배출할 수 없게 된 심정을 밝혔다[9] . 한 식당 옆에 위치한 부속건물로 가서 인터뷰 장면을 찍은 다음 잠수복을 입고 광치기해수욕장 남쪽 해안으로 들어가 뿔소라를 채취했다. 자택에서 자다 일어난 사례자가 매슈의 지시에 따라 일도일동 동문시장으로 갔으며, 한 할머니가 파는 호떡과 어묵을 사먹은 다음 채소 장수를 찾아가서 채소를 사왔다. 자택에서 라자냐를 만들다가 캔따개가 없자 가위로 직접 열었다. 사례자가 1시간 30분 동안 만든 라자냐를 매슈와 함께 5분 동안 먹었으며, 서귀포시 대륜동 제주 올레길 7코스를 따라 걸어가서 노을을 구경했다. 이유는 3년 동안 함께 살아온 매슈가 새로운 일을 하러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례자가 집에서 각종 장비들을 준비한 다음 차를 타고 조천읍 교래리에 위치한 렛츠런팜 제주를 방문해 말을 장제하는 과정을 촬영했다. 장제사가 편자를 만들어 말발굽에 달았으며, 사례자에게도 두 짝을 증정헀다. 밤에 직장에서 작품을 편집하다가 왜 삼각대를 쓰지 않았냐는 대표자의 지적을 받게 된다. 사례자는 가지고 가기 불편해서 쓰지 않았다고 대답했으며, 대표자는 삼각대 없이 영상을 찍었다는 건 편집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갑자기 사무실에 불이 꺼지더니 동료들이 케이크를 가져와서 사례자의 퇴직을 축하해주었다. 사례자가 한림읍 금악리에 위치한 금오름으로 올라가서 드론 촬영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2.3. 271회
- 앤디: 본명은 인트리스 크리머.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고향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그는 취업이 쉽지 않자 외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지인들의 조언을 듣고 2012년에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 때 그의 지도를 받은 한 내국인 여성과 사귀다 2016년에 혼인해 자녀 1명을 두었다[10] . 출연 당시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송치리에서 살고 있었으며, 운봉읍 화수리에 위치한 농업회사법인 조아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례자가 반려견을 데리고 지리산 자락으로 가서 임야를 개간했는데, 열쇠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PD의 지인과 전화한 끝에 부지에 세워둔 굴착기에서 전선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시동을 걸어야 했다. 사업장으로 간 사례자가 듀라볼스를 만들었으며, 밤 10시가 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2020년에 귀화시험을 통과해서 한국식으로 이름을 지어야 하는 상황이라 배우자와 논의를 했다. 딸이 예방접종을 받아야 해서 죽항동에 위치한 한 의원을 다녀왔으며, 배우자의 어머니가 집으로 찾아오자 배우자가 학원으로 일하러 나갔다. 사례자가 설탕물과 진드기약을 만들어 벌꿀을 채취했다. 밤이 되자 배우자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와서 딸을 돌봤으며, 사례자 부부가 스테이크를 만들어서 배우자 부모와 함께 식사를 했다. 사례자가 배우자의 친척들과 함께 공터로 가서 메주를 만들었는데, 아프리카에 텔레비전이 없어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본다는 농담과 고향집 지붕에 표범이 올라간 걸 봤다는 증언을 했다. 메주를 만든 사례자와 친척들이 식사를 한 다음 친척들이 사례자에게 옷을 증정했다. 사례자가 사업장에서 빌통을 만들었으며, 동업자들과 함께 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사례자가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이유는 소시지 50킬로그램을 주문하겠다는 한 음식점주의 제의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집에서 복장을 준비한 일가족이 고향에 있는 사례자의 부모와 영상통화를 했다. 사례자가 차에서 나무 토막을 내리더니 지인의 도움을 받아 딸이 쓸 식탁을 만들었다. 여담으로, 엔딩 크레딧에서 딸이 이유식을 먹는 장면이 배경음악 없이 방송되었다.
2.4. 272회
- 찬찬: 미얀마 출신. 외동딸로 태어난 그녀는 외대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배웠으며[11] , 졸업 이후 한국국제협력단에서 통역사로 재직하다 봉사활동을 하러 미얀마로 찾아온 한국 출신 남성을 만나게 된다. 그의 적극적인 연애 끝에 2019년에 혼인해 자녀 1명을 두었다. 출연 당시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와우리에서 살고 있었으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어 강좌와 동화 창작 활동을 하고 있었다. 사례자가 배우자에게 미얀마어를 지도하였으며, 아들에게 영어를 지도했다. 이유는 혼혈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12] . 오후가 되자 배우자가 이유식을 만들었는데, 아들이 아버지가 만든 것과 어머니가 만든 것을 모두 먹었다. 자택에 동향민들이 찾아오자 다자옹몽을 맞아 사례자에게 따라 인사를 했으며,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눈 다음 사례자가 동향민들에게 돈을 지급해주었다. 일가족이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에 위치한[13] 미얀마 불교 사원을 방문해 절을 한 다음 동향민들과 함께 승려들에게 공양할 음식을 만들었다. 사례자가 아들을 데리고[14] 1층에 있는 배우자 부모의 자택으로 갔다. 사례자가 고국에 있는 한 출판사와 저서 출간을 위한 원고와 월간지를 제출하기로 약속한 다음 창작 활동을 했다. 배우자의 어머니가 식사를 만들었으며, 배우자가 집으로 돌아오자 일가족이 함께 식사를 했다. 밤이 되자 일가족이 고향에 있는 사례자의 부모와 영상통화를 했다. 일가족이 제주도로 여행을 갔는데,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에 위치한 동백포레스트를 방문했다 사례자가 제주도의 자연 환경이 고향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배우자의 친척이 운영하는 감귤 농장을 방문해 감귤을 수확한 다음 직원들과 함께 육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이 되자 토평동에 위치한 한 숙박업소에 들어간 다음 사례자가 아들에게 이유식을 먹여주었으며, 배우자가 새우 바비큐를 만들어서 함께 식사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여담으로, 방송이 나간 지 6일만에 사례의 고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기에 이번 회차의 편성은 결국 제작진이 신의 한 수를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2.5. 273회
- 엘로디: 본명은 엘로디 스타디슬라스. 프랑스 출신. [15] 고향에 있는 대학에서 연기를 배우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찾은 그녀는 전통 문화를 배우다 고국으로 돌아갔다. 귀국 이후 TV 프로그램 오디션 담당자의 제의를 받아들여 2015년에 한국을 다시 찾았으며, 이듬해에 방송된 어느날 갑자기 외.개.인에 출연하면서 예능 활동을 시작했다. 출연 당시 서울특별시 용산구 보광동에서 살고 있었으며, 각종 방송 활동을 하고 있었다. 사례자가 한 내국인 여성의 도움을 받아 황태 요리 강좌를 제작한 다음 시내버스를 타고 광진구 구의동에 위치한 한 스튜디오를 방문해 박태산의 지도를 받아 무술 연기를 배웠다. 저녁이 되자 자택에서 먹으라는 식사는 안 먹고 사극을 봤는데, 그녀가 연기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청소년 드라마에 출연하려던 꿈이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상북도 상주시 홍보 영상에 출연했으니 뒤늦게나마 꿈을 이뤘다고 할 수 있을 듯. 영등포구 당산동에 위치한 한 건물을 방문해 인근에 있는 연기학원 강사의 지도를 받아 대본 연습을 했다. 저녁이 되자 자택에서 1박 2일/2020년#s-1.231박 2일을 보며 영상통화로 부모에게 출연 사실을 자랑했는데, 어머니가 '우리 딸이 지금처럼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례자가 제주도를 찾게 되었는데, 이유는 한국어를 배웠을 때 제주민속촌에서 사물놀이를 배운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도이동에 위치한 한 건물을 방문해 물허벅춤을 배웠으며, 저녁이 되자 한 고깃집을 방문해 사업주 부부와 함께 식사를 했다. 사례자가 자택에서 발음 연습을 한 다음 갑자기 옷을 여러 벌 입더니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위치한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방문해 문화시설사업소 관계자의 설명을 들은 다음 108배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2.6. 274회
- 로돌포 파텔라: 이탈리아 출신. 1989년에 발레단원으로 한국에 진출해 오랜 기간 활동하다 한 여성 동료와 혼인하게 되었다. 출연 당시 서울특별시 송파구 가락동에서 살고 있었으며, 자녀로 딸 1명[16] 을 두고 있었다. 2019년에 고향으로 돌아가 대학원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다 아버지[17] 가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치룬 다음 돌아오려고 했지만, 2020년 들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범유행으로 인해 귀국을 하지 못 하다 그해 12월에 겨우 귀국했다. 아침이 되자 배우자가 딸의 체온을 측정한 다음 학교 관계자에게 등교 가능을 통보했다. 모녀가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제3자의 차량을 밀어낸 다음 자신의 차량을 타고 딸이 다니는 학교 앞으로 가서 등교를 도와주었으며, 딸이 학교로 들어가자 배우자가 무용학원을 방문했다. 촬영 당시 무용학원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수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딸이 원격 수업이 끝나자 마자 라면을 끓여달라고 하자 어머니가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먹겠다고 하자 결국 끓여주고 말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딸이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까지 부모를 따라 무용을 배울 정도였으나 학업에 집중하면서 척추가 옆으로 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례자가 고향인 풀리아 주 타란토에 있는 본가에서 RAI의 지역 뉴스를 보는 장면으로 체류 상황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2020년 말 기준으로 확진자 250만 명에 사망자 8만 명을 기록하고 있었던 상황인데, 이미 3월부터 집에서 100미터 이상 벗어나는 것을 금지하는 정부의 방침이 시행되고 있다는 설명을 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이었음에도 문을 닫은 가게가 많이 보이는 것은 물론 밖에서 손님들이 기다린다거나 손님이 없는 가게도 많이 보였다. 카스텔라네타 원도심에 위치한 숙박업소[18] 도 상황이 마찬가지라 일가족이 생계를 위해 마스크 사업에 뛰어들었다. 딸이 사례자와 영상통화를 한 다음 PD가 사례자를 한국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더니 비행기를 세 번 타고 가야하는 점과 해외에서 왔으면 2주간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특히, 감염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 해도 무조건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음에도 사례자가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었는데, 사례자가 가지고 있는 여권이 2020년 1월 27일자로 만료되었고 12월 21일에 국가 봉쇄령을 다시 시행하는 상황이라 20일까지 출국을 하지 않으면 언제 한국으로 돌아올지 알 수 없게 된다. 사례자가 타란토 시내에 위치한 경찰서(Questura)를 방문해 여권 발급을 신청했으며, 배우자도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주한이탈리아대사관으로 가서 가족이 한국내에 있음을 증명한 다음 대사관 관계자가 이를 현지 출입국 관리 기관에 보내는 방법으로 비자 발급을 신청했다. 다행히 다음날에 사례자가 새 여권을 받는데 성공해 누나와 함께 시내에 있는 한 가게를 찾았다. 두 명까지 출입을 허용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안에 손님이 없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에서 신발을 산 다음 가게들을 돌아다니면서 몇 가지 물건을 사왔으며, 친척집에서 일가족을 만난 다음 아버지의 묘소를 참배했다. 바리에서 로마까지 알리탈리아의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기내에서도 거리두기가 이어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제공항에서 터키 이스탄불 공항까지 터키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간 다음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동사의 다른 여객기로 갈아타 26시간만인 다음날 저녁이 되어서야 한국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
입국하자 마자 배우자와 영상통화를 한 다음 고급택시를 타고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장안동에 위치한 한 호텔로 가서 격리 생활을 시작했다[19] . 다음날에 사례자가 택시를 타고 송파구보건소로 가서 검사를 받았으며, 격리 장소로 돌아온 다음 객실을 청소했다. 식사 시간이 되자 도시락을 받아서 식사를 했으며, 바이러스 감염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보건소 관계자의 통보를 전달받았다. 자택에서 딸이 어머니에게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자고 말하자 어머니가 장식들을 준비해서 딸과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그 시간에 사례자도 격리 장소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딸에게 편지를 썼지만, 10일이 지나자 우울함에 빠지기 시작했다. 배우자의 친척이 사례자 가족의 자택을 방문하자 모녀가 할머니와 함께 족발을 먹었다. 2021년으로 넘어오면서 격리 생활이 끝나자 사례자가 석촌동에 위치한 한 꽃집으로 가서[20] 꽃다발을 산 다음 송파동에 위치한 한 카페로 가서 배우자를 기다렸다. 배우자가 차를 타고 카페로 찾아오자 사례자가 오른쪽 뒤에 숨어서 기다린 다음 배우자와 다시 만났다. 배우자의 차를 타고 자택으로 돌아온 사례가 갑자기 방에서 컵라면을 발견했다. 딸이 친척집에 있었기 때문에 사례자가 저녁 식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딸이 집으로 돌아오자 사례자가 방에서 나와 그녀를 맞이했다. 일가족이 연어 스테이크로 식사를 한 다음 사례자가 딸이 쓴 편지를 읽었다[21] . 아침이 되자 사례자가 커피 등을 만들었으며, 배우자와 딸이 일어나자 과일 등으로 식사를 했다. 부부가 자택 맞은편에 있는 한 미용실에 다녀온 다음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에 연고를 둔 서울발레시어터를 방문해[22] 공연단장을 만난 다음 단원들을 지도했다. 지도를 받은 일본 출신 발레리나의 말에 따르면 '정말 신선했고, 에너지가 넘쳐서 재미있게 지도를 받았다'며 극찬했다. 사례자가 단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는 것으로 지도를 마쳤으며, 일가족이 아차산에 가서 포부를 밝히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여담으로, 엔딩 크레딧에서 스튜디오 촬영이 끝난 다음날에 사례자가 본가의 사업을 도와주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입국하자 마자 배우자와 영상통화를 한 다음 고급택시를 타고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장안동에 위치한 한 호텔로 가서 격리 생활을 시작했다[19] . 다음날에 사례자가 택시를 타고 송파구보건소로 가서 검사를 받았으며, 격리 장소로 돌아온 다음 객실을 청소했다. 식사 시간이 되자 도시락을 받아서 식사를 했으며, 바이러스 감염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보건소 관계자의 통보를 전달받았다. 자택에서 딸이 어머니에게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자고 말하자 어머니가 장식들을 준비해서 딸과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그 시간에 사례자도 격리 장소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딸에게 편지를 썼지만, 10일이 지나자 우울함에 빠지기 시작했다. 배우자의 친척이 사례자 가족의 자택을 방문하자 모녀가 할머니와 함께 족발을 먹었다. 2021년으로 넘어오면서 격리 생활이 끝나자 사례자가 석촌동에 위치한 한 꽃집으로 가서[20] 꽃다발을 산 다음 송파동에 위치한 한 카페로 가서 배우자를 기다렸다. 배우자가 차를 타고 카페로 찾아오자 사례자가 오른쪽 뒤에 숨어서 기다린 다음 배우자와 다시 만났다. 배우자의 차를 타고 자택으로 돌아온 사례가 갑자기 방에서 컵라면을 발견했다. 딸이 친척집에 있었기 때문에 사례자가 저녁 식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딸이 집으로 돌아오자 사례자가 방에서 나와 그녀를 맞이했다. 일가족이 연어 스테이크로 식사를 한 다음 사례자가 딸이 쓴 편지를 읽었다[21] . 아침이 되자 사례자가 커피 등을 만들었으며, 배우자와 딸이 일어나자 과일 등으로 식사를 했다. 부부가 자택 맞은편에 있는 한 미용실에 다녀온 다음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에 연고를 둔 서울발레시어터를 방문해[22] 공연단장을 만난 다음 단원들을 지도했다. 지도를 받은 일본 출신 발레리나의 말에 따르면 '정말 신선했고, 에너지가 넘쳐서 재미있게 지도를 받았다'며 극찬했다. 사례자가 단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는 것으로 지도를 마쳤으며, 일가족이 아차산에 가서 포부를 밝히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여담으로, 엔딩 크레딧에서 스튜디오 촬영이 끝난 다음날에 사례자가 본가의 사업을 도와주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1] '사장님은 미국산'이라는 원산지 표기가 돋보인다.[2] 실제로 2000년대에 피자헛과 피자에땅은 물론 지금은 망한 에뜨나 피자에서도 네모난 피자를 판 적이 있었다. 2010년대 기준으로 네모난 피자를 팔고 있는 유명 체인은 59쌀피자가 거의 유일하다.[3] 한국과 미국 오하이오 주의 시차가 14시간이나 되는 걸 상기하자.[4] 혼인 전에도 사례자의 조국에서 3개월 동안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5] 이 장면에서 뒤로 제작진이 증정한 기념패와 EBS 까칠남녀 출연 당시 만든 팬아트를 볼 수 있다.[6] 원래 1년 동안 영어 교육에 종사하려다가 2013년에 라디오 방송 진행자(아리랑 라디오로 추정.)로 활동한 것을 계기로 아일랜드 스토리에 들어가게 된 것.[7] 순정 변속기를 뺀 다음 사제 변속기를 달아놓았다.[8] 왜 경차냐면 크기가 작음에도 키가 큰 사람도 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사례자보다 키가 큰 하승진이 직접 검증한 바 있다. [9] 정확하게 말하자면 2021년 기준으로 제주도 거주 해녀 가운데 30대 해녀가 있긴 하다. 심지어 미성년자가 우도에서 해녀 활동을 한 적도 있었으니 대가 끊길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수 있다는 것.[10] 자녀의 이름은 에릭 클랩튼이 1970년에 발표한 노래의 제목에서 따왔다.[11] 한국어를 배우게 된 이유는 대회에서 입상하면 한국으로 유학을 갈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라고.[12] 자세히 말하면 일가족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미얀마 출신이라는 이유로 욕설을 들은 적이 있었고, 관공서에 갔다가 직원이 내리까는 말투를 쓰는 등 불친절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이런 식으로 손님을 대접하면 명백한 징계 사유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한다.[13] 시내 전경이 나오는 영상은 인천역에서 동인천역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촬영한 영상이다.[14] 이 때 사례자의 집 앞으로 차가 지나가는 장면이 묘하게 이 장면을 연상케 한다.[15] 참고로, LED는 프랑스에서 DEL이라고 한다.[16] 출연 당시 문정초등학교 재학.[17] 레오나르도 파텔라, 1933년 8월 15일 ~ 2019년 11월 20일[18] 할머니가 살던 집을 숙박업소로 전용했다고 밝혔다.[19] 비용은 사례자가 직접 부담했다고 밝혔다.[20] 직전 장면에서 사례자가 '배우자를 만나러 간다'고 말했는데, 이상하게도 영등포구 양평동 롯데제과 본사 앞을 지나고 있었다.[21] 편지 내용이 영어로 쓰여져 있었다. [22] 샤워장으로 들어가는 문 사이에서 사례자의 현역 시절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