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호/2011년
1. 개요
조광래호의 2011년 경기 기록을 다루는 문서.
2.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2.1. 국가대표 엔트리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끝으로 허정무 감독의 후임으로 조광래 감독이 선임되었다. 당연히 목표는 우승으로 잡았고 슬로건은 '''왕의 귀환'''. 특히 박지성, 이영표의 국가대표 은퇴 무대로 정해졌으며, 박지성은 은퇴 전에 국가대표로서 첫 우승을 하고 싶다며 전의를 다졌다.
2010년 12월 24일 최종 결정된 23명의 엔트리는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각 포지션의 인원 수. 가나다순 정렬. 굵은 글씨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참가 선수.
- 골키퍼(3) : 김용대, 김진현, 정성룡
- 수비수(8) : 곽태휘, 이용래, 이영표, 이정수, 조용형, 차두리, 최효진, 홍정호, 황재원
- 미드필더(8) : 구자철, 기성용, 김보경, 박지성, 손흥민, 윤빛가람, 염기훈, 이청용
- 공격수(4) : 김신욱, 유병수, 지동원
2.2. 한국 2 - 1 바레인
조별예선
득점자: 구자철(2)
2011년 1월 10일, 카타르 도하. [1]
명목상으로는 공격형 미드필더이지만, 사실상 세컨톱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인 구자철. 새로운 옷이 맞지 않을 것 같았지만 첫 공식전에서 멀티골을 넣으며 우려를 불식시킨다. 하지만 후반 막판 곽태휘가 불필요한 파울로 페널티킥을 내주며 실점한 것은 옥의 티.
2.3. 호주 1 - 1 한국
조별예선
득점자: 구자철
2011년 1월 14일, 카타르 도하. 정성룡의 장거리 골킥을 이어받아 지동원과 구자철이 선제골을 합작하며 경기를 순조롭게 가져가는 듯 했으나 후반전 코너킥 위기상황에서 호주의 마일 제디낙에게 동점골 허용. 동점골을 실점할 때 혼전 상황에서 호주 공격수가 오프사이드 위치였던 것으로 드러나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이 경기에서 유병수가 후반전에 교체 출전되었다가 20분 만에 다시 교체아웃되었는데, 이에 대해 미니홈피에 불만섞인 글을 남겼고, 바레인전 윤빛가람의 케이스에 이어 이런 식으로 넣었던 선수를 바로 빼는 것을 조광래교체라고 부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이후 조광래의 선수단 관리 실패가 드러나면서 재조명.
2.4. 한국 4 - 1 인도
조별예선
득점자: 지동원(2), 구자철, 손흥민[2]
2011년 1월 18일, 카타르 도하. 인도의 전력이 우리보다 한참 떨어지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8강전 이후의 빡센 일정에 대비해 후보들을 섞어 출전시켜 체력안배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고, 이에 대해 갑론을박도 많았지만, 주전 선수들 그대로 출전. 결국 4-1로 승리하기는 했으나, 호주에 승점 - 골득실 동률 다득점으로 밀려 조 2위로 8강에 진출하여 8강전 이란 - 4강전 일본(예상)이라는 지옥의 일정을 받아들이게 된다.
만약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는 후보선수들이 뛰었어도 전력이 안습인 인도 상대로 네 골밖에 넣지 못했을까? 설령 어쩔 수 없이 조 2위로 8강에 가야 하더라도 이후 3일에 한 번 꼴로 경기를 치르는 토너먼트 일정을 감안하면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줬어야 했다는 것이 중론. 게다가 인도전은 비가 계속 오는 와중에 경기가 펼쳐져서 출전한 주전 선수 중 몇몇이 컨디션 난조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뒤이어질 8강전 이란, 4강전 일본과의 120분 연장 혈투에서 조광래의 이 선택은 나비효과로 돌아온다.
2.5. 이란 0 - 1 한국
8강
득점자: 윤빛가람
2011년 1월 22일, 카타르 도하. 아시안컵 5대회 연속 8강전에서 붙게 된 한국과 이란. 패(96) - 승(00) - 패(04) - 승(07) 순환법칙에 따르면 이번에 질 차례라서 불길했다는 거고, 그나마 지리한 경기 끝에 연장전에서 교체 투입된 윤빛가람이 인생골을 터뜨리면서 1-0 승리, 준결승에 진출한다.
그러나 조별예선 3연전 주전 풀가동에 이어 언제 만나도 힘겨운 경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대인 이란과의 120분 연장 혈투는 주전 선수들 체력관리에 실패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2.6. 일본 2 PK 2 한국
4강
득점자: 기성용(PK), 황재원
2011년 1월 25일, 카타르 도하. 숙명의 한일전. 한국[3] 이나 일본[4] 이나 8강에서 힘든 경기를 하며 올라왔고, 단기 토너먼트인 만큼 체력전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애초에 이란과 연장을 치렀고 휴식도 짧았던 한국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던 싸움이었다.
그래서 한국은 초반에 승부를 보겠다는 듯 공세로 나왔고 박지성이 페널티 킥을 유도해 냈고 이를 기성용이 성공시켜 1-0으로 앞서기 시작했다. 이 때 기성용은 골을 넣고 원숭이를 연상시키는 골 세레머니를 했는데, 경기 후 많은 논란을 낳았다.[5][6]
그러나 잠시 후 차두리가 나가토모에게 뒷공간을 털리면서 동점골을 내주었고, 일본이 경기 주도권을 잡아 가기 시작한다. 이에 조광래 감독은 원톱 지동원을 빼고 홍정호를 투입하였다. 교체투입된 홍정호는 일본 공격의 핵 혼다를 묶으면서 서서히 경기흐름을 한국 쪽으로 가져왔으나, 역시나 문제는 공격진 선수들의 체력이었다. 결국 추가득점 없이 90분 종료되면서 연장전으로 돌입.
연장 전반에 이번엔 일본이 페널티킥을 획득. 혼다가 찬 페널티킥을 정성룡이 한 번 막았으나 곧바로 쇄도하던 호소가이가 가볍게 골로 연결했다.[7] 체력이 고갈된 한국 선수들의 몸 상태를 고려하면 패색이 짙었고 조광래 감독은 결국 패스축구를 버리고 최후의 카드, 김신욱을 이용한 롱볼축구를 시작하는데... 연장 전후반까지 120분도 다 지나고 추가시간이 적용될 때쯤에 결국 하나가 터졌다. 길게 넘어온 프리킥을 김신욱이 헤딩으로 떨궈 준 볼을 손흥민이 여차여차 수비진과 비벼 가며 소유권을 유지했고, 이를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수비수 황재원이 바로 일본 골문으로 차 넣었다. 극적인 동점골에 당시 생중계를 하던 SBS 박문성 해설위원은 멘트를 하다 울먹이기도...
이렇게 극적으로 승부는 외나무다리 승부차기까지 이어졌으나 그 이후는 생략... 자세한 내용은 삼연뻥 참고.
2.7. 우즈베키스탄 2 - 3 한국
3/4위전
득점자: 구자철, 지동원(2)
2011년 1월 28일, 카타르 도하. 전반전에 세 골을 넣으며 경기를 쉽게 가져가는가 했지만 전반 막판과 후반에 연속골을 허용하면서 기어코 축빠들의 똥줄을 태워가며 승리.
그래도 이 승리로 인해 4년 후 2015 AFC 아시안컵 호주 대회의 아시안컵 예선 면제권을 획득했다는 점에서는 의미 깊은 승리였다.
2.8. 평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단 6개월만에 단 9명만을 제외하고 전원 교체되었으며, 전체적으로 젊어졌다. 거기에 대표팀의 거의 유일한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김정우는 부상 회복이 느려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박주영은 소속팀에서 결승골 넣고 세레머니하다가 동료들한테 깔리는 바람에(...) 부상 당하여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한편 염기훈은 K리그 맹활약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국가대표팀에 승선하였다.
박주영이 부상으로 불참하여서 결국 공격수는 전부 새로운 얼굴들로 꾸려졌다. 김신욱(22), 유병수(22), 지동원(19)로 모두 상당히 어린 선수들이며 모두 K리그 소속. K리그 득점왕 유병수와 U19 월드컵과 소속팀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지동원의 활약이 관심을 끌고 있다.
중원에서는 K리그에서 맹활약한 젊은 미드필더들인 구자철과 윤빛가람이 합류하였다. 기성용과 함께 세 명의 조합에 대해서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중. 최근 기성용의 폼이 부쩍 오르면서 기성용은 고정으로 보는 시선이 많아졌다.
독일에서 활약하고 있는 화제의 신성 손흥민이 합류되어 많은 이들을 설레이게 하고 있다. 조광래 감독은 조커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조광래 감독이 경남에서부터 3백을 중시해왔고 이를 국대에서도 적용하고 있기에 많은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부임 후 몇차례의 평가전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기에 이번 아시안컵은 조광래 감독의 국가대표 감독 생활에 중요한 고비가 될 듯 하다.
결국 4강전 한일전에서 2:2 무승부를 기록, 어린 선수들이 통한의 승부차기 패배를 기록하며 아쉽게 3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여러모로 어린 선수들의 '''가능성'''을 확인한 대회였으며, 성공적인 세대교체로 평가할 만한 경기력을 보였다. 특히 일정이 꼬이고 결과가 안좋아서 그렇지 경기력 자체는 굉장히 훌륭한 편이었다. 눈에 띄는 선수로는 무명에 가깝던 이용래가 활발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조광래호의 새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 대회를 끝으로 박지성과 이영표가 대표팀에서 은퇴하면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세대는 사실상 차두리 혼자 남게 되었다.
2011년 조광래 감독은 국가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의 선수 중복차출을 거부해, 축구협회와 심각한 불화를 빚었다. 8월 10일, '''한일전'''에서 3대 빵으로 발리며 일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11월 15일,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 레바논전에서 제대로 '''추태'''를 작렬시키며 결국 12월 7일 자로 감독에서 짤렸다. 조광래호 시절에 있던 일들.
3.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지역예선
3.1. 한국 6 - 0 레바논
득점자: 박주영(3), 지동원(2), 김정우
2011년 9월 2일, 고양종합운동장. 대승을 거두긴 했지만, 사실 레바논 선수들은 라마단 기간 직후여서 제대로 뛸 몸 상태도 아니었다. 이후 홈에서 우리나라에게 두번이나 빅엿을 먹인 레바논 본연의 전력이 아니었단 것. 아무튼 박주영이 커리어 최초 A매치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이날 승리는 2007년 아시안컵 예선 대만전 '''8-0''' 승리 이후 최다 점수차의 승리이다. '''이렇게 출발은 나름 좋았다'''.
3.2. 쿠웨이트 1 - 1 한국
득점자: 박주영
2011년 9월 6일, 쿠웨이트 쿠웨이트. 삿포로 참극으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한 조광래호가 본격적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하였음을 알린 경기였다. 야간경기임에도 기온이 30도 후반대를 넘나드는 현지의 무더운 날씨로 인해 선수들이 애를 먹었고,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전이 채 끝나기도 전부터 체력적으로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아랍 원정 특유의 뭐에 홀린 듯한 분위기까지...
조광래 감독의 자충수도 있었는데, 선발로 출전한 차두리가 부상당하자 김재성을 측면 수비수로 기용한 것. 포항 소속으로 리그 순위급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던 중앙 미드필더를 측면 수비수로 기용하다니? 아니나 다를까, 김재성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자잘한 미스를 반복했고, 국빠들한테 '저건 뭐하는 듣보잡이냐?'라며 대차게 까였다. 사실상 감독이 제 손으로 선수 한 명에게 엄청난 비난을 안겨 준 셈. 이는 아직까지도 조광래식 포지션 파괴가 얼마나 좆망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결국 후반 8분에 동점골을 허용하였고, 그 후에도 역전을 허용할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겨가며 승점 1점을 거두었다.
3.3. 한국 2 - 1 UAE
득점자: 박주영, UAE OG
2011년 10월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 침체에 빠진 경기 내용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어찌어찌 꾸역승이라고 요약 가능하다. 스코어만 봐도 자책골의 덕을 봤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이 경기에서 손흥민이 후반 늦은 시간에 교체투입됐는데,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씨가 조광래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식으로 벤치에 앉힐 거면 차라리 한국까지 오라가라 하지를 마라'''며 분통을 터뜨린 것이 이 경기 후이다.
여담으로, 하프타임엔 걸그룹 레인보우의 축하 공연이 있었다.[8]
3.4. UAE 0 - 2 한국
득점자: 이근호, 박주영
2011년 11월 11일, 알 아인. 스코어만 보면 무난하게 이긴 것 같지만 풀경기를 보면 레바논 쇼크의 전주곡이라 해도 될 만한 지지부진한 경기력이다. 특히 박주영의 경기력이 논란이 되었는데, 아스날에서 경기 제대로 못 뛰면서 폼이 급하락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흔히 경기감각이 좋은지 여부는 퍼스트터치가 얼마나 부드러운지를 보면 단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날 박주영은 퍼스트터치를 하면 공이 1~2미터는 튀어가기 일쑤였다(...). 그나마 후반 추가시간에 쐐기골을 넣으며 까방권 획득.
하지만 박주영은 후반전에 경고를 받으며 경고 누적으로 레바논전 결장이 확정.
3.5. '''레바논 2 - 1 한국'''
득점자: 구자철
2011년 11월 15일, 레바논 베이루트. 레바논 쇼크 항목 참고.
4. 친선경기
4.1. 터키 0 - 0 한국
득점자: 없음
'''거스 히딩크를 상대편으로 만나다'''.
2011년 2월 9일, 터키 트라브존.
4.2. 한국 4 - 0 온두라스
득점자: 이정수, 김정우, 박주영, 이근호
2011년 3월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
4.3. 한국 2 - 1 세르비아
득점자: 박주영, 김영권
2011년 6월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
4.4. 한국 2 - 1 가나
득점자: 지동원, 구자철
2011년 6월 7일, 전주월드컵경기장.
4.5. '''일본 3 - 0 한국'''
득점자: 없음
2011년 8월 10일, 삿포로 돔. 삿포로 참사 항목 참고.
4.6. 한국 2 - 2 폴란드
득점자: 박주영(2)
2011년 10월 7일, 서울월드컵경기장.
이 경기는 조광래 감독이 선수를 7명씩이나 교체하는 바람에 FIFA A매치에서 규정하는 공식 교체 출전 횟수인 6명을 넘어버려서 공식 A매치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박주영의 2득점 기록이 취소된 것은 물론, 폴란드에서 골을 넣었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득점 또한 날아갔다. 결국 이 경기는 A매치로 인정되지 못하고 비공식 경기로 남게 되었다.
[1] 헌데, 이건 농담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이당시 까지만 하더라도 구자철은 중앙 미드필더였으나, 조광래호 이후 공미 자리에서 개화를 시작하더니, 2014년에 이르러서는 세컨탑 또는 윙포가 되어 버렸다.(...)[2] 손흥민의 A매치 첫 골이다.[3] 연장 혈투 끝에 승.[4] 개최국 카타르 상대로 힘겹게 3-2 역전승.[5] 사실 이는 변명의 여지 없이 인종차별적 행동으로, 기성용에게 FIFA가 징계를 내렸어도 할 말이 없다. 마케다 골 세레머니 때 한국 축구팬들이 얼마나 분노했었는지 상기해 보자.[6] 특히 일본의 반응이 웃겼다. 그 쓰레기 같은 극우 잉여 집합소인 2ch에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7] 여담이지만, 이 장면은 사실 혼다가 킥을 하기 전에 호소가이가 이미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노골이 선언되어야 맞다. 심판들의 오심.[8] 경기 시작 전 시축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