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찬/선수 경력

 




1. 프로 경력


2005년 군산상고의 대통령배 4강 진출을 이끌었던 주역.[1] 2006년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본래 삼성은 1라운드에서 차우찬이 아닌 경희대학교의 좌완투수 박정규[2]를 지명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명 당일 선동열 감독 본인이 직접 스카우트 팀에 '''차우찬을 뽑아 달라!'''는 요청을 했고, 결국 2차 1순위에서 차우찬을 지명하게 되었다.[3] 군산상고 3학년 시절 급작스럽게 체격이 자라면서 밸런스는 아직 맞지 않지만, 잠재력 하나는 무궁무진하다는 판단 하에 삼성은 차우찬을 2차 1순위에서 지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윤성환, 오승환처럼 2차 1순위에서 또 재미를 보게 된다.

1.1. 삼성 라이온즈 시절


<colbgcolor=#074ca1> 삼성라이온즈 No.23
<colcolor=#fff> '''차우찬
車雨燦 / Woo-Chan Cha
'''

1.1.1. ~2009년까지


[image]
2007년 시즌 후 마무리 훈련 때. 오른쪽은 정현욱. 이 둘은 FA 때 LG한테 4년 보장을 받고 이적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6년 4월 9일 롯데전을 통해 1군에 데뷔하였다. 패스트볼 구위 하나만큼은 장원준을 능가할 정도로 뛰어나 선발 자원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선동열 특유의 불펜야구 때문에 중간계투로 썩다가 2009년 팀의 선발진이 무너지기 일보 진적인 상황이 닥쳐서야 안지만과 함께 선발 훈련을 받게 되었다.
안지만과 비슷하게 불펜에선 철벽이나 선발에선 조금 흔들리는 감을 보여줬는데, 팀에 좌완이 없다 보니 선동열 감독은 일단 차우찬을 선발로 낙점하기로 한 듯…했으나 조금 급하니까 바로 불펜으로 돌렸다.
2009년 6월 2일 히어로즈를 상대로 데뷔 4년 만에 첫 선발승을 거뒀다.
이후 한동안 삼성의 선발 한 축을 담당했으나, 시즌 중반 이후 선발로 나오기만 하면 털리더니 곧 중간계투로 강등당했다. 게다가 중간계투로 가서도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못 집어넣으며 수많은 역전패의 원흉이 되었다. 특히 윤성환이 차우찬 때문에 승수를 많이 날렸다. 이로 인해 촥, 차션 등의 별명을 얻게 되었으며, 그 전까지 삼성의 잉여 불펜 3인을 지칭하던 ''''''가 박성훈까지 다해지면서 '''조원수박차'''로 업그레이드되었다(…).[4] 박민규도 데뷔 첫 승을 차우찬 때문에 날리고 만다.[5]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부진. 데뷔 후 지금까지 쭉 중간계투로만 던진 선수를 팀 전력이 무너져갈 때가 되어서야 땜빵 선발로 집어넣고, 이후에도 급할 때마다 보직을 이동시킨 선동열 감독의 책임이 더 크다.
누구나 바로 류현진처럼 던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고교 선수 한 명을 믿을 만한 선발 투수로 키우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과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이 된 김광현조차 데뷔 시즌 초반에는 기대에 비해 부진하다 말미에서야 각성을 했다. 차우찬의 실패는 구위 좋은 젊은 투수를 장기적으로 키우는 대신 눈앞의 성적에 급급해 불펜에 쑤셔박은 선동열식 야구의 부작용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통념이 있었으나, 사실 선동열 감독 아래에서 젊은 투수 중 차우찬만큼 선발 기회를 많이 받은 투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선발로 쓰기도, 불펜으로 쓰기도 갑갑했던 것은 사실.
선동열이 바뀌지 않는 이상 팀 메이트 백정현, 이우선은 물론 신인 지명으로 입단한 젊은 투수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6]

1.1.2. 2010 시즌


2009년처럼 중간계투로 시작하다가 다시 선발로 들어왔는데, 6월 27일 목동 넥센전에서 355일 만에 선발승을 거뒀고 7월 6일에는 7이닝 무실점 승리투수가 됐다. 7월 18일 대구 LG전에서는 생애 첫 완봉승을 기록했다. 승리 후 인터뷰에서 울먹거리기도. 6월 이후 평균자책점은 KBO 투수 전체 1위! 이 완봉은 2005년 배영수의 완봉승 이후 삼성 투수로서는 무려 5년 만의 완봉승이다!!
SK와의 페넌트레이스 최종전(겸 양준혁의 은퇴경기)에 선발 등판해 7.1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으나 상대 선발 김광현이 시즌 최고의 피칭을 선보이는 바람에[7] 패전투수가 되어 승률왕에서 멀어지나 했는데, 9월 26일 LG 트윈스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등판, 9이닝 1실점 11K의 절정투구를 펼치면서 완투승으로 10승을 기록, 역전 승률왕에 등극했다. ERA 역시 2.14로 류현진에 이어 이 부문 2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규정이닝에 '''6.2이닝''' 모자라서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다.
2010 시즌 각성을 단순한 운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그 많던 피홈런이 이 해는 5개로 줄어들었고, 탈삼진 페이스는 꾸준히 가져가면서 볼넷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평균자책점은 '''2점대'''에다 WHIP은 '''1점대 초반'''.
차우찬 본인은 밸런스를 드디어 익힌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일부 팬들은 제대로 각성하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했는데,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LG 트윈스, SK 와이번스에게 강한 면모를 보였다. LG 상대로는 '''3승(1완투/1완봉승) 무패 32.1이닝 4실점(1자책) 평균자책점 0.28'''을 기록했다. SK 와이번스를 상대로는 9경기에 출장해 30.1이닝 동안 '''3승 1패, 평균자책점 1.19'''로 정규 시즌 1, 2위인 SK와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만나며 차우찬의 대 SK전 호투는 이전부터 주목받았다.
포텐 폭발로 인해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했지만, 팀이 스코어 0:2로 이기던 4회 초 무사 1루에서 김동주에게 투런 홈런을 맞았고, 스코어 2:2인 5회초에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하고 만루를 채운 상태에서 강판되어 정인욱으로 교체되었다. 정인욱이 완벽하게 분식회계를 해서 차우찬은 이날 4이닝 78투구수 5피안타 1피홈런 5볼넷 4탈삼진 5실점 5자책점을 기록했지만, 팀이 8회 말에 4점을 뽑아 스코어 5:6으로 재역전승하여 차우찬은 패전을 면했다. 승리투수는 해병대장.
10월 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7번째 투수인 정인욱이 11회말에 난타당하자 차우찬이 등판을 자청하며 몸을 풀었으나, 선동열 감독은 오늘만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며 그를 등판시키지 않았다. 결국 이날 팀은 연장 11회 초에 2점을 뽑고도 11회 말에 3점을 내줘 스코어 8:9로 재재재역전패당했다.
차우찬은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6.2이닝 10피안타 1피홈런 7볼넷 7탈삼진 10실점 10자책점 평균 자책점 13.50으로 완전히 망했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시리즈 전적 1패로 지던 2010년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5.1이닝 86투구수 6피안타 2볼넷 1몸에 맞는 공 3탈삼진을 기록하며 괜찮은 투구 내용을 보였지만, 최정에게 '''연타석 홈런'''을 맞고 2피홈런 3실점 3자책점을 기록하며 강판되었다. 이날 팀이 스코어 1:4로 패하여 차우찬은 패전투수가 되었다.
차우찬은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7.2이닝 8피안타 2피홈런 2볼넷 1몸에 맞는 공 5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 자책점 3.52,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스윕당해 준우승에 그쳤다.
차우찬은 2010년 포스트 시즌 9경기 중 5경기 등판하여 14⅓이닝 18피안타 3피홈런 9볼넷 1몸에 맞는 공 12탈삼진 13실점 13자책점 평균 자책점 8.16, 1패를 기록했다.

1.1.3. 2011 시즌


2011 시즌 새로 감독으로 부임한 류중일 신임 감독으로부터 1선발로 낙점받았다. 2011년 개막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2011 시즌 초반에 활약하다 중반에 이르른 지금 아무래도 풀 타임 선발이 처음이라 그런지, 아니면 자기가 팀의 에이스라는 부담감 때문인지 6월 16일부터 부진하였다.
8월에는 팔꿈치 통증을 느껴 잠시 2군에 있었다.
9월 27일 두산전에서 승리하며 2년 연속 10승을 기록했지만 피안타율 0.273로 작년의 0.232에 비해 증가한 데다, 피홈런도 22개로 지난해에 비해 무려 17개나 증가했다. 게다가 경기 내용도 갈 수록 안 좋아져 삼팬 사이에서는 포스트시즌에서 롱 릴리프로 기용하거나 아예 쓰지 말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반전의 스토리를 쓰게 되는데….

1.1.3.1. 한국시리즈

2011년 10월 25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1차전, 류중일 감독의 선발 1+1 전략에 따라 팀이 스코어 0:2로 이기던 5회초에 선발 투수덕 매티스의 다음 투수로 등판해 3이닝 36투구수 5탈삼진 퍼펙트로 막고 마운드를 내려왔고, 신명철의 2타점으로 팀이 0:2로 승리하여 차우찬이 승리투수가 되었다. 한 달 여간 쉰 휴식이 효과가 있었던지 투구수의 2/3가 넘는 공이 속구였으며, 대부분의 공이 150km/h에 육박하는 강속구였다. 그리하여 1차전 MVP#s-1로 선정되었다.
팀이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이기던 10월 3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1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나와 7이닝 104투구수 5피안타 2볼넷 1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며 고전했지만, 위기에서 상대 타자들을 삼진과 범타로 돌려세우며 무려 7삼진을 기록, 결국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팀이 이 날 강봉규의 홈런으로 스코어 0:1로 승리하여 차우찬은 한국시리즈에서 2승을 거두었고, 삼성은 4승 1패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하였다.
차우찬은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1선발) 10이닝 5피안타 2볼넷 1사구(死球) 12탈삼진 무실점 2승을 기록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를 하였다. 사실 이 정도면 한국시리즈 MVP도 충분히 노릴만한 호성적이었으나 끝판왕의 위엄(4경기 3세이브)에 밀려서 아쉽게 MVP는 되지 못했다.
2011년 시즌을 보내면서 1선발로는 다소 아쉬운 활약을 보이긴 했어도 한국시리즈에서는 본인의 활약과 더불어 팀의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함으로써 2011 시즌의 마지막을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더불어 2010년 포스트시즌의 부진도 단숨에 만회하는데 성공했고, 2012년의 활약도 기대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1.1.4. 2012 시즌



볼넷이나 피홈런을 지나치게 많이 내주며 심하게 부진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출장 기회를 가져 류중일의 양아들 소리를 들었다. 이 해 6승 7패에 그쳤다. 하지만 이 해 부진했던 건 다 이유가 있었다.[8]

1.1.5.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image]
봉중근이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지고, 정우람이 예비 엔트리에도 들지 못해 상근으로 입대하면서[9]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뜬금없이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이미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전례가 있기에 감독은 물론이고 구단마저 반대했으나 양상문한용덕 코치의 추천으로 강영식, 박정진, 강윤구, 박성훈, 이명우 등의 경쟁자[10]를 제치고 결국 차우찬은 대표팀에 승선했다.[11] 그리고 그 결과는, '''세계에 공개된 대한민국의 핵무기.''' 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1차전인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0:3으로 뒤진 7회초, 손승락이 2루타와 몸에 맞는 공으로 무사 1,2루 위기에 몰리자, 차우찬은 좌타자 로저 베르나디나[12]를 상대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온다. 하지만 올라오자마자 베르나디나에게 우익선상 2루타를 허용하며 2루주자를 불러들였고, 곧바로 정대현으로 교체되었다. 이후 호주전과 대만전에는 등판하지 못했고, 대한민국이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하면서 결국 네덜란드전 1피안타가 차우찬의 유일한 WBC 투구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이미 2012 시즌 성적도 안 좋았고 부상선수의 대체요원으로 뽑았지만, 차우찬 역시 허리 부상을 안고 있었던 것만큼 애초 선발자체가 무리수였다.

1.1.6. 2013 시즌



시즌 초반까지는 여전히 2012시즌의 모습을 보여주며 욕을 바가지로 먹었으나 5월 중순 이후부터 구속이 오르고 공에 힘이 붙으며 6월까지 롱릴리프로써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7월 말부터는 모 외국인 관광객, 사기꾼 때문에 선발로 전환하여 괜찮게 활약, 2011시즌 이후 2년만에 10승 달성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는 정말로 미친 투구를 보여주었다. 1984년의 최동원까지는 아니더라도 2006년의 배영수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엄청난 역투를 펼쳐 삼성의 통합 3연패와 V7의 큰 주역이 되었다.

1.1.7. 2014 시즌




1.1.8. 2015 시즌



1년 만에 다시 선발투수로 복귀한 시즌. 시즌 탈삼진왕, 개인 최다승 등 얻은 것이 많은 시즌. 나아가 한국시리즈, 프리미어 12에서도 맹활약하며 여러모로 좋은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평균자책점은 무려 4.79로 매우 높았다.

1.1.9. 2016 시즌



시즌 후 FA로 풀렸고 팀을 옮기는 과정에서 삼성을 떠나버린 4번타자의 지역드립 언플러와 달리 차우찬은 비교적 잡음없이 LG로 이적하였다.[13] LG의 제안을 뿌리치기 힘들었고[14], 삼성에는 항상 미안하고 감사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LG 이적 후에는 대구 율하초등학교 야구부에 기부까지했다http://osen.mt.co.kr/article/G1110828413

1.1.10. FA


[image]
김한수 신임 감독이 취임식에서 최형우랑 차우찬을 잡겠다고 했으며 뒤이어 구단에서도 잡겠다고 공언했다.
일본의 3개 팀과 협상한다는 기사가 떴다.
해외진출 희망 차우찬, 국내 잔류하면 LG 간다
12월 6일, LG 트윈스와의 계약에 잠정적으로 합의 했다는 기사가 떴다. 거기다 삼성이 차우찬에게 세 자리를 제시했다고 시인했는데 협상 내용은 보통 비공개로 하는 걸 생각해보면 롯데가 장원준을 놓치자 대놓고 88억 불렀다고 공표해서 우린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선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후 우규민의 삼성행이 발표되었는데,[15] 삼성은 얼마 전 이원석 영입을 발표함으로써 최형우와의 협상이 파토났다는걸 간접적으로 알린 적이 있고, 최형우는 진짜 KIA로 갔다. 사실상 차우찬이 떠난다는 데에 쐐기를 박은 셈.
일단 양상문의 인터뷰에서도 차우찬 영입을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 걸 보면 LG가 영입을 시도한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8일에는 삼성을 떠나 메이저 진출 또는 KBO리그 타 구단 입단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송구홍 단장은 “삼성에서 차우찬에게 제안한 내용을 공개해 당혹스럽다. 원소속팀에서 100억 원 이상 불렀으니 우리는 150억 원을 배팅해야 한다는 뜻인가” 라고 한 것으로 봐서, 이것이 차우찬의 잔류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말도 영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형우의 KIA행 소문이 진짜가 된 것 처럼 차우찬 역시 12월 14일 LG와 4년 95억의 FA 계약을 맺으면서 또다시 소문이 현실화돼 버렸다. 결국 우규민과 차우찬이 서로 트레이드된 것이나 다름 없어졌다.
차우찬이 삼성을 떠나 LG로 이적한 이유에 대해 차우찬 측은, 11월 27일 만났을 때만 해도 삼성의 조건이 LG보다 좋았지만 이날 이후 삼성은 단 한번도 차우찬과 재미팅을 가지려는 모습을 전혀 안 보여 차우찬의 에이전트는 메이저리그 쪽을 알아보려 윈터미팅이 열리는 12월 미국에 출국했고, 이후 삼성이 우규민을 영입한 것을 보자 서로 작별할 것 같다고 예감했다고 언급했다. 또한 삼성 구단으로부터 100억+@를 준비했다는 뉴스에 정말 협상 지속 의사가 있다면 저런 기사가 나오겠냐며 당혹스러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16]
송구홍 단장은 축소발표 아니냐는 의혹에 펄쩍 뛰면서 '''하늘이 두쪽나도 95억에서 한푼도 추가되지 않았다.''' 라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인터뷰에서 '''옵션 15억이 별도로 있음을 제 입으로 불면서''' 역으로 110억 설이 팩트임을 인증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12월 28일 올라온 인터뷰에서 본인 입장을 밝혔다. 삼성과 항상 좋은 관계였고 대우도 더 좋았지만 환경의 변화가 필요해서 일부러 대우낮은 해외계약 (메이저 스플릿계약)등을 추진했으나 앞서간 의 충고와 계약조건(WBC 출전포기 등등)으로 새로운 팀에서의 국내잔류를 택했다고.

1.2. 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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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2017 시즌: LG에서의 첫 시즌




1.2.2.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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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2019 시즌


4월에 한때 잘 던지다가 무더위가 시작되자 20 18모드로 돌아갔다. 팔꿈치 수술 후유중으로 인해 구위 나 구속 등을 전혀 회복 하지 못했고 시즌이 갈수록 정말 안 좋은 투구를 보여주고 있다. 안정감을 줘야하는 '''토종 에이스''' 타이틀을 달고 있는 주제에, 4,5선발들 보다도 안정감을 전혀 못 주고 있다. 오히려 차우찬이 선발 등판인 날엔 아예 야구를 안 보는 엘지 팬들도 많다는 얘기가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박명환을 넘어설 팀 역대 최악의 투수 먹튀가 될 가능성이 많다. 다만 휴식이 필요함에도 자꾸 금강불괴 시절 못 잊고 쓰는 감독의 탓도 크다.
그나마 작년과 마찬가지로 극심한 1~2달의 부진 이후 호투하며 후반기 LG에서 켈리와 함께 계산이 서는 선발투수 역할을 수행했고, 8월 18일 5년 연속 10승을 달성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차우찬/2019년 문서로.

1.2.4. 2020 시즌


두 번째 FA를 앞둔 시즌. 그러나 FA로이드 그런 거 없고 열심히 난타당하다가 부상으로 사이버 투수가 된 커리어 로우 시즌.
자세한 사항은 차우찬/2020년 문서로.

1.2.5. 두번째 FA


2020 시즌이 끝난 후 FA를 신청했다. 부상으로 커리어로우를 찍었음에도 차우찬 영입에 관심이 있는 팀들이 있다고 한다. 고대우를 요구해준다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LG에서 삼성으로 간 우규민과 함께 쌍으로 욕먹었다.[17] 사실 4년 40승이면 최악의 먹튀 수준은 아니지만[18] 문제는 세이버 스탯이 나쁘다. 첫 시즌 이후 나머지 세 시즌 모두 그다지 잘하지 못했고 특히 2018년, 2020년은 부상과 부진으로 95억이라는 고가 대비 활약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스탯티즈 기준 WAR 1당 '''14억'''인데 이정도면 우규민(WAR 1당 18억)보다 살짝 나은 수준이다. 따라서 LG팬들도 차우찬들에게 오버페이를 하는 것은 반대하는 입장인 듯하다.
FA를 신청한 것이야 선수 본인의 권리이니 문제될 것이 없지만 1월이 다 지나가도록 협상을 질질 끌며 팬들에게 괘씸죄로 찍혔다. 심지어 인터뷰에서 "꿈을 쫒아 일본에 진출하고 싶다."거나 '''"동기부여를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해서 욕을 푸짐하게 먹었다. 투수 역대 최고액을 기록하며 이적해놓고 첫해 빼고 방어율 4~5점대를 왔다갔다하며 그저그런 성적을 기록한데다 마지막 해에는 시즌 초반에 이탈하여 포스트 시즌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도 않아서 쌩신인인 김윤식남호에게 선발로테를 돌게 해놓고선 본인은 해외진출 드립을 치고 앉았으니 팬들 입장에선 복장 터질 노릇. 거기에 동기부여 드립으로 화룡점정을 장식하며 팬들은 "꿈 찾게 일본으로 보내라.", "동기부여 되게 옵션 떡칠해라."는 반응이다.
차명석 단장도 스프링캠프 직전 "이제 조건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최후 통첩을 날렸다.
결국 2월 3일에 2년 최대 20억(연봉 3억원, 인센티브 연당 7억원)에 계약을 했다. 보장금액은 겨우 6억원이고, 나머지 14억원은 활약에 따라 지급되는 계약이라 이번 시즌 활약이 더욱 중요해졌다. 옵션의 상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차명석 단장의 말에 따르면 건강하기만 하면 대부분 채울 수 있는 옵션이라고 하는데, 반대로 차우찬은 모든 옵션을 충족시킬 수 있으려면 리그토종 TOP 5에 들어갈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대충 2020년 임찬규급으로만 던지면 될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차우찬 본인은 계약이 늦어진 원인이 연봉이나 옵션 때문이 아니라 21시즌 종료 후 해외진출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조건을 요구했는데, 구단측과 이 문제에 이견이 있어서 계약이 늦어졌다고 한다. 원래는 첫번째 FA가 끝나는 20시즌 종료 후에 일본리그 진출을 시도할 생각이였는데, 시즌을 부상으로 말아먹어서 21시즌에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시도 할 생각으로 요구했다고.

1.2.6. 2021 시즌



2. 국가대표 경력



2.1. 2013 W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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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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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대만과의 예선전에서 4이닝을 소화한 선발 양현종에 이어 5회에 등판해 2이닝 1피안타 1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승리투수가 됐다. 이후 28일 대만과의 결승전에 중간계투로 등판할 예정이었으나, 경기가 워낙 박빙이어서 등판하지 않았다.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면서 결국 1경기만 등판하고 병역특례를 받게 됐다.

2.3. 2015 프리미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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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상세
5
0
10⅓
0.87
1
0
0
0
5
1
1
1
5
14
##
2015년 서울 슈퍼시리즈 쿠바전 2차전에 등판, 1이닝 15구 퍼펙트로 막아 내며 프리미어 12에서의 투구에도 기대감을 갖게 해주었다.
프리미어 12에서도 김인식 감독은 차우찬을 전천후로 등판시킬 예정. 6년 전 WBC처럼 팀의 선배였던 정현욱의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15 WBSC 프리미어 12 개막전인 일본전에 등판하여 2이닝 1실점을 기록하였다. 4회말 조상우가 안타를 맞고 등판하였는데, 뒷 타자들을 찍어 누르며, 구위는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그 구위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5회는 2아웃까지 막았으나, 볼카운트 싸움에서 밀리면서 안타, 볼넷, 안타를 내주며 1실점하였다. 그러나 왜 국대에서도 전천후로 활약할 투수인지 확실히 보여 주었다.
11월 14일 멕시코전에서는 3이닝동안 '''8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했다. 특히 6회 무사 1루 상황에서 7회까지 '''6타자 연속 삼진'''이라는 경이로운 피칭을 보여주었고 8회에 선두타자를 땅볼로 잡은 뒤 정대현과 교체되었다. 역시 삼진만큼은 국내 최정상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도박 사건 이후 안 좋은 소식만 들려오던 삼성 팬들에게 오래간만에 들려온 좋은 소식이었다.
미국전 호투와 일본전 2.2이닝 무피안타! 3탈삼진 2볼넷으로 에이스급 피칭을 했다.
미국과의 결승전에서도 등판하여 1.1이닝 1피안타 2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대표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의 최종 기록은 10.1이닝 14삼진 방어율 0.87 1승 0패 1홀드로 MVP급 활약을 보여줬다. 이 대회에서의 차우찬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단일 대회 5경기 이상 등판한 5번재 투수이자 가장 낮은 방어율을 기록했다.

이름
대회
출전경기
선발등판
불펜등판
이닝


홀드
세이브
탈삼진
ERA
박석진
2000
시드니 올림픽
5
1 [19]
4
15⅔
2
1
0
0
11K
1.72
정현욱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5
0
5
10⅓
1
0
1
0
13K
1.74
차우찬
2015
WBSC 프리미어 12
5
0
5
10⅓
1
0
0
0
13K
0.87
이영하
2019
WBSC 프리미어 12
5
0
5
8⅓
1
0
0
0
6K
1.08
구대성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5
0
5
8
1
0
0
0
3K
1.18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5
0
5
7⅔
2
0
0
1
6K
2.35
하지만 아쉽게도 대회 MVP는 김현수가 가져갔다.

2.4. 2017 W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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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실점
자책점
사구
삼진
상세
3
0
5
3.60
0
0
0
0
5
0
2
2
1
4


2.5. 2019 프리미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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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실점
피홈런
자책점
사구
삼진
상세
3
0
2⅓
0.00
1
0
0
0
0
0
0
0
2
2
##
2019 프리미어 12에 참가하는 김경문호에 발탁되었다. 담당 포지션은 선발이 아닌 전천후 활용 가능한 롱릴리프.
[1] 또 다른 주역으로는 차우찬과 함께 원투펀치를 이룬 원종현이 있다.[2] 이후 KIA 타이거즈에서 지명했으나, 2012년에 방출당했다. 좌완 사이드암으로 전향까지 했던 투수.[3] 당시 군산상고 감독을 맡고 있었던 해태 출신 김성한선동열에게 연락했다고 한다.[4] 후반에는 정현욱도 맛이 가는 등, 누구라 할 것 없이 별로이기는 했다. 그래서 삼성은 PS 진출에 실패.[5] 결국 박민규는 프로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삼성에서 방출당했다.[6] 선동열 감독은 2009년 신인지명에 앞서 고졸을 뽑지 않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실제 고졸은 2명만 뽑았고, 나머지를 대졸 투수로 뽑았다. 누가 봐도 혹사로 무너져가는 현 투수진 대신 젊고 고졸보다 튼튼한 대졸 투수들 데리고 불펜야구를 하겠다는 포석이었다.[7] 7⅔이닝 8K 무실점. 직구 최고구속은 151 Km/h, 슬라이더도 140 km/h 가까이 나왔다.[8] 정작 오치아이 코치는 말리지는 않았지만, 후회할 거라고 경고했다고 한다.[9] 정우람은 봉중근이 엔트리에서 빠진 후 엔트리에 발탁된다면 군입대를 미룰 수도 있다고 했지만 쿨~하게 씹혔다. 참고로 이 해 SK의 마무리를 맡은 정우람의 2012 시즌 성적은 평균자책점 2.20 53경기 소화.[10] 이들 외에 2012시즌 차우찬보다 좋은 활약을 펼친 좌완투수는 8명 가까이 됐다. 심지어 후보군에도 없었던 유창식이 차우찬보다 더 나은 성적을 기록했다.[11] 반대로, 다른 기사에선 류중일 감독의 의중도 차우찬을 강하게 원했다고 하는 얘기가 있다. 그리고, 정말로 강하게 반대했다면 아무리 강한 추천이 있었다고 해도 뽑히진 못했을 것이다. 결정권은 결국 감독 몫이다.[12] 공교롭게도 4년 후 KBO 리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저 천적관계는 그대로 이어졌다..[13] 떠나면서 구단을 까는 등 별 다른 언플을 전혀 하지않았다.[14] 야구팬만 안다는 그분을 위해 서울팀으로 옮겼지만....[15] LG가 우규민과의 협상이 순탄치 않자 우규민보다 협상우선순위가 높은 투수가 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해당되는 선수는 몇 없다.[16]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뒤 FA행보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삼성 프런트가 협상 실패+가계약 썰에 분노해 자신들은 할만큼 했다는 것을 피력하려는 입장이라는 해석도 할 수 있다.[17] 우규민의 경우 고대우를 해준다는 프런트가 욕먹고, 차우찬은 본인이 고대우를 요구하였기 때문에 본인이 욕먹었다.[18] 가격을 보지 않고 4년 40승만 보면 매년 10승은 찍어주는거니 최악은 아니다. 당장 삼성산 투수먹튀인 우규민, 장원삼을 보면 1년간 10승은 커녕 5승도 간당간당했다. 그나마 장원삼은 삼성왕조의 주역이었으니 그만이지...[19] 네덜란드전에서 선발 등판해 8이닝을 던졌다.